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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화·교육·자선의 원불교 힘쓸 것”

    “교화·교육·자선의 원불교 힘쓸 것”

    “과거가 움직이지 않고 고인 정(靜)의 시대였다면 지금 세상과 닥쳐올 미래는 살아움직이는 동(動)의 시대입니다. 종교도 과거 자기 수행에 치중했던 것에서 탈피해 생활 속에서 활동하는 폭 넓은 면모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원불교 이성택(64) 교정원장은 지난해 11월 취임한 뒤 6일 기자들과 처음 만나 “언제 어디에 있건 생활 속에서 신앙과 병행한다는 교법을 가진 원불교도 시대에 맞춰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교역자와 신자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교정활동을 철저하게 교화와 교육, 자선에 맞추겠다.”고 강조했다.“그동안 원불교 교단은 가난했기 때문에 더 단합할 수 있었고 교권 다툼 없이 빠른 시일 내에 교세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교단의 틀이 확고하게 갖춰진 만큼 이제는 내연에 더 충실해 사회에 대한 공헌도를 높여야 합니다.” 경북대 수의학과를 다니면서 ‘생명을 구제한다.’는 자부심을 가졌지만 더 넓은 의미의 구원과 구제에 뜻을 두고 원불교에 귀의했다는 이 교정원장. 졸업하고 곧바로 입대해 병역을 마친 뒤 원광대 원불교학과 3학년에 편입, 교무 수업을 쌓아 서울·부산교구장을 거쳐 지난 1994년 최고 의결기구인 수위단원에 피선됐고 지난해 마침내 원불교 교단 행정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인간은 각기 다른 능력과 감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하는 데 종교야말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원불교의 교법중 가장 큰 장점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출가할 때 집안에서 지어준 이불 한 채만 달랑 갖고 익산 총부로 입교했는데 지금도 그 이불을 보면서 초발심을 되새긴다고 한다.“솔직히 대학 재학시절 치열한 경쟁과 각박한 현실에 불만을 가져 좀더 평화로운 세계를 찾기위해 원불교에 귀의한 측면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생명을 살려내는 수의사보다 사람의 마음을 살려내는 교무로 살아온 것을 큰 다행이자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절 다양한 서구 문화와 철학이며 사상이 물밀듯이 이 땅에 들어왔지만 우리의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한국은 지구상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거듭 말한다.“일본의 문화가 다듬는 문화, 중국의 문화가 끓이고 굽는 문화라면 우리 문화는 숙성의 문화입니다. 이가운데 한국의 문화는 세계적으로 가장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깊은 것이지요. 한류가 그 예일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에선 ‘일사불란’이 아니라 ‘다사불란’이 강조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각자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 교정원장. 그는 지난 시절 숱하게 겪었던 대립을 이제는 지양해야 하며 종교가 바로 그 첨병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오늘의 눈] 불법체류자에 대한 색안경/이재훈 사회부 기자

    지난 2일 몽골인 불법체류자 B(32·여)씨가 3년 동안 일하며 쌓아둔 퇴직금 600만원을 체불한 인천의 한 가구공장 업주를 신고하러 노동부의 한 지방 사무소를 방문했다. 그러나 B씨는 업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고 말았다. 당시 B씨는 “신고를 하면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나게 되지만 피땀흘려 번 돈이 소중해 위험을 무릅쓰고 신고했다.”면서 “경찰에 연행될 때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인권 침해를 당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라면 합법체류든 불법체류든 일단 구제해 주고 사법기관에 통보한다는 노동부의 ‘선구제 후통보’ 지침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B씨는 돈을 받지 못한 채 강제출국될 위기에 놓였다가 노동부가 뒤늦게 조치를 취한 뒤에야 풀려났다. ‘국내 체류 외국인 범죄 건수가 선진국이 개도국보다 많다.’(2월5일자 1면 보도)는 보도가 나간 뒤 일부 독자들로부터 항의 이메일을 받았다. 보도가 나가기 직전 안산역 토막살인 사건 용의자가 중국인 불법체류자로 밝혀지면서 ‘불법체류자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기록되지도 않는데 왜 그들을 옹호하느냐.’,‘중국이 폭력범죄 비율이 높은데 왜 전체범죄만 가지고 따졌느냐.’는 식이다. 공식 통계조차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피해자들이 훨씬 많이 양산될 수 있는 투기자본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다가 주로 개인간 다툼에 불과한 블루칼라 노동자 범죄에만 분노하는 모습엔 결국 피부색에 따라 달리 생각하고픈 우리의 편견이 담겨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토막살인 사건 용의자가 중국인 불법체류자로 밝혀지자 인터넷 게시판은 온통 불법체류자 때려 죽이기의 장(場)으로 변했다.‘가난한 나라에서 온 지저분한 인간들’이 왜 우리나라를 더럽히냐는 분노였다. 지난해 전국을 경악케 했던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을 떠올려 본다. 영아의 엄마인 프랑스인이 범인으로 밝혀졌다. 그때 우리는 똑같이 분노했던가. 이재훈 사회부 기자 nomad@seoul.co.kr
  • 「미스·덕성여대(德成女大)」송윤희(宋潤熙)양-5분데이트(86)

    「미스·덕성여대(德成女大)」송윤희(宋潤熙)양-5분데이트(86)

    깊고 맑은 눈, 후리후리한 몸매의 송주희양은 덕성여대(德成女大) 70연도 「메이·퀸」. 올해 21세로 가정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아가씨이다. 대전(大田) 태생. 아버지 송하용(宋河用)씨(63)의 3남 2녀중 막내동이. 따라서 어릴적부터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온통 독차지하고 자랐다는 행복한 아가씨이다. 어머니 김영성(金榮星)씨는 현재 대전 한밭여중(女中)의 교장 선생님. 본집이 대전이기 때문에 송양은 서울에서는 오빠들과 함께 상도(上道)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고. 『엄마가 선생님이긴 하지만 전 교편을 잡을 생각은 없어요. 화학을 좋아하니까 계속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두 눈을 반짝이며 또렷또렷 이야기 한다. 대학원(大學院)에 진학해서 영양학을 공부한 다음 장차 미국에서 종합병원을 경영하는 이모곁으로 가서 영양사로 근무할 작정이란다. 취미를 묻자 『취미가 너무 많아요』라고 대답. 꽃꽂이 「볼링」 수영 운전 등 종횡무진이다. 『운전은 오빠의 권유로 작년 7월부터 배웠어요. 이제는 운전면허도 따놓았고 인적이 드문 교외에서는 혼자 운전을 하기도 해요』 의상은 주로 「스포티」한 「T·셔츠」종류를 즐겨 입고. 감명깊게 읽은 책은 『가난한 애인(愛人)들』 . [선데이서울 70년 6월 14일호 제3권 24호 통권 제 89호]
  • [박기철의 플레이볼] 프로 스포츠가 살 길

    2007년은 한국이 IMF 사태를 겪은 지 10년이 되는 해다. 많은 회사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직장을 잃는 피해를 당한 반면에 구조조정의 결과는 몇몇 기업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해 조 단위의 수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했다.IMF 이전이라면 연간 조 단위의 순익을 내는 회사가 프로 야구단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일은 거창한 홍보 효과를 들먹이기 이전에 직원 사기를 위해서라는 말만으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IMF 이후 바뀐 기업 패러다임은 과거와 같은 프로 스포츠에 대한 기업의 평가 기준을 바꾸어 버렸다.재정난을 겪고 있는 현대 야구단의 최대 주주인 하이닉스는 지난해 2조원의 순익을 올리고도 구단 운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채권단이 최대 주주라는 사정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아무리 홍보 효과라는 가치를 강조하고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호소해도 기업은 냉정하게 주판알을 굴릴 뿐이다. 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섭섭하기 이를 데 없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현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이상적인 길은 앞서 말한 조 단위 순익을 내는 기업들이 프로 야구단의 가치를 기존 구단처럼 평가해 인수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길을 가야 한다. 프로 스포츠 리그가 살아나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처럼 완전한 자유 경쟁을 하는 것이다.첼시나 유나이티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전 세계 최고 몸값의 선수들을 끌어 모아 우승을 다투고 경쟁에서 떨어지는 팀은 리그에서 탈락한다.어느 누구든 프리미어 리그의 구단주가 되고 싶다면 기존 구단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2부 리그 팀을 하나 사서 우승을 시키면 자연스럽게 1부 리그에 합류한다. 열린 상태에서의 무한 경쟁이다. 두 번째 방법은 미프로야구(MLB), 미프로농구(NBA)처럼 리그를 폐쇄해 놓고 가난한 구단도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샐러리캡, 수입 공동분배, 연봉에 대한 사치세 등으로 기본 수익을 보장하고 신인선수 스카우트에는 완전 드래프트를 실시해 경기력에 대한 기본 경쟁력을 갖춰 주면 된다.2006년 메이저리그 팀 연봉을 살펴보면 하위 5개 구단의 연봉합계는 상위 5개 구단의 30%에 불과하다.공동분배 기금으로 연봉의 대부분을 부담할 수 있게 만든 닫힌 상태에서의 제한 경쟁이다. 프로야구를 비롯한 한국의 팀 스포츠가 추구해야 할 모델은 무엇일까?`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kr
  • [길섶에서] 인생의 법칙/최태환 수석논설위원

    화가 이중섭은 두 아들을 오브제로 한 그림 엽서를 여러 장 남겼다. 한국전쟁과 화가. 피란생활 중 그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끝내 두 아들을 부인과 함께 일본의 처가로 보낸다. 엽서엔 게 잡는 풍경 등 제주시절 추억이 동화처럼 펼쳐졌다. 박수근화백은 직접 동화책을 만들었다.3자녀를 위해서였다. 주몽, 낙랑공주, 호동왕자 등 고구려 설화를 엮었다. 정성스레 글을 쓴 뒤, 담백한 그림을 곁들였다.1950년대 말이었다. 지금도 남아있다. 너무 가난했지만, 한없이 자상했던 아버지였다. 몇 해 전인가, 작가 조정래가 엄청난 높이의 육필원고 옆에 손자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보도됐다. 며칠전 그가 앞으로 동화를 쓰겠다고 했다. 소설 ‘아리랑’ 100쇄를 기념하는 자리에서였다. 대하소설은 힘들어 그만 쓰겠단다. 손자에 더 다가가고 싶은 소박한 필부의 심정이 전해온다. 괴테는 “어머니가 들려준 동화에서 인생의 법칙을 배웠다.”고 했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조정래. 그를 통해 후생들이 더 풍성한 ‘인생의 법칙’을 만났으면 한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녹색공간] 햇빛 누리기/ 박정임 KEI 책임연구원

    아이들이 맘마, 엄마, 아빠 다음으로 배우는 말은 아마도 “싫어”일 것이다. 아직 졸리지도 않은데 잠자라 하고, 노는 게 더 좋은데 밥 먹으라니까 그때마다 싫단다. 어린아이의 “싫어”가 조금 세련돼지면 “왜 나만”이 된다. 엄마 아빠는 안 자면서 왜 자기만 먼저 자야 하느냐고 하고, 친구들은 다 하는 무엇을 왜 자기만 못하게 하느냐고 항의하는 것이다. 외국영화에서도 어린아이가 불만을 표현할 때 “그건 공평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공평에 대한 요구는 문화권에 상관없이 아주 어려서부터 인식되는 것 같다.“세상은 불공평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성공할 수 있다.”고 빌 게이츠가 말했단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이 역시 공평함을 지향하는 인간사회의 욕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말인 것 같다. 작년 이맘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일간지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수준이 소득, 교육, 성별, 직종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다룬 적이 있다. 도시와 농촌의 사망률이 달랐고, 부모의 학력에 따라 태어나는 아이의 몸무게가 달랐다. 대개의 경우 건강을 결정짓는 인자로 영양섭취와 의료이용 정도를 든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빈곤, 교육, 주거 등의 사회적 원인 또한 건강 수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이 구체적인 자료를 통하여 입증되었다. 공평하지 않은 사회적 요인들이 개인의 건강 수준도 불평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두 번 죽이는 일인데, 이런 경우가 또 있다. 바로 사회경제적인 약자가 환경오염의 피해는 더 받게 되고 좋은 환경의 혜택은 덜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언뜻 들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지만 사실인 것 같다. 영국 조사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약자일수록 교통량이 많은 지역에 살고, 이 때문에 대기오염과 관련된 호흡기계통 질환에 더 많이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거주지 주변에는 오염배출업소가 많은 반면 공원이나 녹지는 많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적절한 도움을 얻거나 행동을 취하지도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환경에도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환경 불평등’ 또는 ‘환경정의’의 개념은 원래 미국 시민운동에서 시작되었다. 흑인이나 빈민 등 소외된 계층의 주거지역에 유해시설 밀집, 환경소송에서의 편파적인 판결, 환경민원 해결에 불공정함과 같은 불평등 사례가 파악되었고, 이에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은 모든 연방기구가 그들의 정책을 통하여 환경정의를 이룰 것을 대통령령으로 선포하였다. 이를 근거로 현재 미국 환경청은 새로운 환경정책이나 규제를 만들 때 그 규제가 환경정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는 절차를 거친다. 영국도 환경정의적 관점에서 환경자원 분배 등을 다루고 있다. 환경불평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환경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사회경제적 조건과 환경피해 또는 혜택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체계적인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심증은 충분하다. 반지하와 같은 불완전한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대도시 저소득계층의 환경피해는 공론화되기도 하였다. 특히 집안에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생기고 이로 인해 건강의 피해를 겪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발표한 ‘환경보건 10개년 종합계획’에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은 환경오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환경성 질환에 걸리기 쉬우므로 우선적인 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책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환경불평등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가난한 사람과 착취하는 사람이 다 함께 살고 있으나, 주님은 이들 두 사람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신다.”는 성서 구절이 있다. 똑같이 내려진 햇빛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박정임 KEI 책임연구원
  • [이 한권의 책]‘자유의 역사’ 아이티 부활을 꿈꾸다

    우리가 식민지를 경험했듯이 지구의 4분의 3 이상이 식민지를 경험했다. 그 대부분은 지금 독립했으나 식민지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씻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한 36년의 열배에 가까운 장기간 식민지를 경험한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런 식민지 이후의 상황을 포스트 콜로니얼(Post colonial)이라고 한다. 침략지배자인 제국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식민지와 식민지 이후를 주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이라고 한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이론가로 우리나라에 일찍 소개된 프란츠 파농과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중요하면서도, 그들 모두에 선구적인 사람이 C.L.R. 제임스(1901∼1989)이고 그의 대표작이 ‘블랙 자코뱅’이다. 1938년에 나온 그 책이 70년 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1791년의 세계 최초 흑인 노예혁명, 나아가 당대 세계 최대 열강이었던 스페인, 영국, 프랑스 연합군을 흑인노예들이 격파하고 1804년 1월1일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이자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오래된 아이티공화국을 수립하는 역사적 과정을 다룬 최초의 책이다. 나아가 그것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이다. 촘스키가 강조했듯이 아이티는 서구 유럽 제국주의 체제에 대해 저항한 ‘자유인’들이 세운 ‘최초의 자유국가’였다. 그 땅이나 인구가 한반도의 10분의 1도 안되는 매우 작은 섬나라이자 남미에서도 가장 가난하며 유독 흑인만의 나라인 아이티.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아이티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역사 소개라는 점에서도 이 책 번역의 의의는 크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아이티에 미국자본이 진출하고 1915년부터 1934년까지는 미국이 점령했다. 그 뒤 최근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정권이 악순환했다는 점에서 포스트 콜로니얼의 전형적 사례로 촘스키가 ‘아이티의 비극’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C.L.R. 제임스가 그 미국 점령 하에서 ‘블랙 자코뱅’을 쓴 것은,20세기 아이티 사람들을 비롯한 구식민지인들에게 그 100년 전의 위대한 역사가 침략자들에 의해 은폐되고 망각되었던 점을 일깨워 준다. 또한 새로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찬란한 자유의 역사를 부활시켜 역사에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자신들이 목표로 삼는 미래를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강조하듯이, 유럽의 사상과 문화를 배타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식민지 역사를 세계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했다. 즉 그는 아이티혁명을 제국주의에 저항한 흑인노예의 반란이라는 전형적인 독립운동만으로 묘사하지 않고, 대서양을 무대로 한 보편적 혁명으로 묘사했다. 제국과 식민지라는 대립적 인식을 넘어 그는 그 대립을 대서양이라고 하는 세계로 확대하여 새롭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흑인노예란 서양역사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사이더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흑인역사를 단순히 억압이라는 소극적인 측면이 아니라 독자적 문화의 주체이자 세계사의 주체라는 적극적 측면으로도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우리의 식민사나 역사에 대한 인식도 이제는 세계사 속에서 주체적으로, 특히 서양과 동등한 동양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흥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 美 슈퍼볼 $잔치는 시작됐다

    美 슈퍼볼 $잔치는 시작됐다

    슈퍼볼 열기로 미국이 들썩거리고 있다. 올해 슈퍼볼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 시카고 베어스가 각각 36년과 21년 만에 진출해 열기를 더한다. 두 팀은 오는 5일 아침 7시30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돌핀 스타디움에서 격돌한다. 미프로풋볼(NFL) 왕좌를 가리는 슈퍼볼은 야구, 농구와 달리 단 한차례 열리기 때문에 집중력과 폭발력에서 다른 종목을 압도한다.‘혼혈 영웅’ 하인스 워드가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지난해 슈퍼볼 평균 시청률은 41.6%, 점유율은 62%로 잠깐이라도 슈퍼볼 중계를 접한 미국인이 1억 4000만명에 이를 정도. ●티켓 800만원대까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대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이애미는 슈퍼볼을 나흘 앞두고 이미 축제에 휩싸였다. 시는 4억달러(약 384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쿠바 망명자들이 북적이는 이 도시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하면 시내에서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이번 주 카스트로가 운명할 경우 극심한 혼란이 우려된다. 시 전역은 벌써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두 팀 모두 수십년 만에 진출한 탓에 공식 가격이 600∼700달러(57만∼67만원)인 정중앙 관중석 티켓은 인터넷 경매사이트 ‘e베이’에서 9000달러(864만원)까지 치솟았다. 쉐라톤 호텔은 마이애미 비치가 내려다보이는 객실 5일 숙박권과 자동차, 슈퍼볼 사각지대 입장권을 묶어 일인당 6200달러짜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호색잡지 ‘펜트하우스’는 래퍼 스누프 도그와 25명의 펜트하우스 걸이 나오는 쇼를 관람하면서 파티를 즐기는 티켓을 1000달러에 판매한다. 기업들은 슈퍼볼 입장권과 바닷가 리조트 숙박권, 고급 리무진을 일주일 통째로 빌려 고객에 제공하느라 15만달러까지 쓰고 있다. 2004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재닛 잭슨의 가슴 노출로 한바탕 말썽이 일었는데 올해 주인공으로 엉덩이를 노출시키는 등 숱한 기행을 저지른 남자 가수 프린스가 등장할 예정이어서 ‘그가 잭슨처럼 사고칠까.’를 놓고 인터넷 내기까지 성행하고 있다. 지난해 30초짜리 광고 단가는 250만달러였지만 올해는 260만달러(24억 9600만원)로 올랐다. 최근 한 컨설팅업체는 슈퍼볼 탓에 미국 기업들이 최소 8억달러의 손실을 입는다고 추산했다. ●창과 방패의 대결 이번 슈퍼볼은 창과 방패의 대결로 요약된다. 인디애나폴리스가 쿼터백 페이튼 매닝에서 시작돼 와이드 리시버 마빈 해리슨과 러닝백 조지프 아다이로 이어지는 파상 공격을 뽐내는 반면, 시카고는 내셔널 콘퍼런스 챔피언결정전 상대 뉴올리언스 세인츠에 4개의 턴오버를 따내고 56러싱야드만 허용할 정도로 수비 라인이 막강하다. 특히 ‘중원의 괴물’ 브라이언 울라커가 버틴 시카고를 인디애나폴리스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공략할지가 변수다. 여기에 다소 기복이 있는 시카고의 쿼터백 렉스 그로스먼이 키를 쥐고 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전설적인 쿼터백 출신 트로이 에이크먼은 “베어스 팬이라면 그가 제 역할을 해주기만을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초유의 흑인 감독 대결에서 누가 승리할지도 관심사다. 네살 아래인 시카고의 로비 스미스 감독이 절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토니 던지(인디애나폴리스)와의 두뇌싸움을 이겨낼지도 흥미를 돋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OUR STORY] 섬마을 남해 자전거 하이킹

    [OUR STORY] 섬마을 남해 자전거 하이킹

    우리나라 남해안의 섬은 그 빼어난 풍광으로 무척 아름답다. 또한 여기저기 흩어져 연결되는 섬마다 사연도 많아 일년내내 찾아도 그 느낌이 각각 다르다. 특히 화가의 눈에 비쳐진 남해 섬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가는 곳마다 캔버스의 그림처럼 예술작품으로 다가오며 미적 카타르시스를 빚어낸다. 앞으로 3회에 걸쳐 한려수도와 경남 남해의 섬을 돌아볼 예정이다. 이번 주는 첫회로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에서 1박, 남해도 서쪽 해안선을 따라 ‘다랭이 마을’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두번째는 남해도에서 ‘창선도’를 거쳐 2006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뽑힌 길을 따라 늑도 대교, 창선교, 삼천포 대교를 지나 삼천포 항을 거쳐 통영으로 간다. 마지막에는 통영에서 거제교를 지나 장승포 남쪽 해안선을 따라 ‘해금강’으로 가는 아름다운 해변 길을 느껴볼 예정이다. 글·그림 화가 남궁문 artistdiary@hanmail.net 섬이 커서였을까. 남해도는 산도 높아 보였고 그만큼 길도 험했다. 그러기에 여기저기 계단식 논들 역시 눈에 많이 띄었다. 길은 산과 언덕을 따라 계속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그럴 때마다 마을이 하나씩 등장했다. 처음엔 이리저리 둘러 보며 관심을 가졌지만, 내리막길에선 마주치는 바람 때문에 추위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이제 길은 바다 쪽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는데, 해도 맑아서 겨울바다는 계속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언덕 길 몇 굽이를 돌다 보니 시야도 서서히 터지기 시작했다. #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의 비탈마을 섬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하늘은 왜 이다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하기만 한가. 사실,1년을 살아도 오늘 같이 이렇게 맑은 날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나이 50줄에 접어들면서야 깨닫게 된 일이다. 날씨가 이렇게 티 없이 깨끗하다는 건, 그만큼 내가 운이 좋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점점 바다는 넓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 깨끗한 바다, 수평선, 맑은 하늘.. 자전거로 달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여행은 행복하지 않을까. 여기는 남녘이라 바람도 온화해서, 마을마다 이른 봄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따사로와 보이기도 했다. 굳이 서둘러 갈 일도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는 것은(오르막이라 자전거를 끌면서 걷고 있었기에), 그리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니 최대한 즐기면서 천천히 가도 될 것이다. 그렇게 또 한 굽이를 도는데, 아, 거기가 바로 내가 오고 싶었던 ‘다랭이 마을’이었다. 산 중턱에 옹기종기 마을이 형성되어, 척박한 주변 환경의 농지는 다 계단식(다랭이) 논인데다 그 앞에는 너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아늑한 마을.45도 비탈에 108층이나 되는 계단식 논은 마치 신이 빚은 모습이었다. 옛 사람들은 이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지으려고 저렇게 계단식인 다랭이 논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리곤 또 저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왔으리라. 그런 이 지역의 특수성을 간직한 채, 그동안 오랜 세월을 조용하고 이름 없이 견뎌왔을 한 가난한 어촌 마을.‘다랭이 마을’이란 이름 속엔, 그런 모든 속뜻도 다 포함돼 있을 듯 싶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곳을 와 보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었다. 한 나그네가 되어, 바다와 수평선이 보이는 이런 평화로운 언덕길이 있는 마을을 그저 지나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정말, 천혜의 조건이었다. 어쩌면, 비밀의 요새 같기도 한, 그러면서도 어쩐지 신비스럽기까지 한 마을의 모습은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여름이거나 가을 같은 경우엔 다랭이 논의 색깔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좀 자세히 보니, 최근에 지었을 법한(아니면 개축을 했을 법한) 새로운 사각의 콘크리트 집들도 몇 채 눈에 띄었다. 게다가 이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을 이상한 형태의 집들도 건설되고 있었다. 아, 그 건 ‘불협화음’이었고, 크나큰 아쉬움이었다. 이미 저 마을도 저런 현대식 집이거나 마을 뒤 도로 쪽의 이런저런 관광시설 등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난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저렇게 현대화 바람이 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체념만 하기엔 이 아름다운 자연조건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다랭이 마을은 다랭이 마을일 때에만 그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저 사람들에게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가난하게만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 얻어 먹었던 ‘하얀 고구마´의 추억 초가집이었을 때 와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이렇게 따스한 날에는 저런 어떤 한 집의 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동치미에 따끈한 고구마를 먹어도 좋으리라. 그래 나는 어제 밤에도 고구마를 먹었었지. 바로 이 섬, 남해도로 들어오다가 얻어 먹었던(?) ‘하얀 고구마’에 얽힌 기분 좋은 꿈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미 어둠이 내렸고, 남해대교를 건넌 뒤 조금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는데,‘배 직판’이란 등이 켜진 간판이 보였다. 그런 일이 있으려고 그랬을까. 내 마음은 그 곳으로 끌리고 있었다. 시원한 뱃물이 입 속 가득 담기는 환상에 젖어,‘저기 가서 배를 두어 개 깎아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끌었다. 그 가게는 컨테이너 박스로 되어 있었는데, 안에 여자가 있어 보였다. # 넉넉한 인심에 배부른 길손 “아주머니! 저, 배 좀 먹고 갈 수 있을까요?”하고 불렀더니,“예, 들어 오세요.”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나오는 사람은 어린 티가 나는 여학생이었다. 좀 의아했지만 나는 “내가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중이라, 배를 사러 온 건 아니고. 지금 너무나 목이 타서 들른 것이니 배 한 두개만 깎아 먹고 가도 될까요?” 하고 물으니,“그러세요.”하면서도, 그 여학생은 유심히 나를 살피는 기색이었다.“그럼, 조금 기다리세요.” 하더니, 배를 가져 오려는지 그 뒤에 있던 집 쪽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곧 이어 그리 크지 않으면서 볼품도 없는 배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여행을 다니세요?” 하고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그러게나 말이오.” 하면서 나는 그 배를 받아 깎으려는데,“아니라예. 제가 깎아 드리께예.” 하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배를 직접 깎기 시작했다. 그 것도 괜찮은 방법 같았다. 어차피 내 장갑을 꼈던 손이야 하루 종일 여행에 절은 땀내가 배어 있을 테니까. 학생은 고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방학을 맞아 집에 와서 부모님을 돕고 있는 대학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이렇게 추운데 여행 다니시려면, 힘들지 않으세요?” 하고 다시 물었다. “힘이야 들지요.. 이렇게 목도 타고.” 그러는 사이에 그 학생이 배를 다 깎은 것 같아 빼앗듯이 받아, 입을 크게 벌려 통째로 베어 먹으려는데,“아저씨, 안돼예! 그렇게 드시면, 입천장 다쳐예.” 하는 핀잔(?)을 들었다. 이어 그 학생은 무슨 생각이었는지,“배 드시면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학생이 시킨 대로 잘게 자른 배를 포크로 찍어 먹으며, 갈증을 풀고 있었다. 못 생긴 배였음에도 보기보다 물도 많았고 또 시원했다. 그리고 퍽 달았다. 잠시후 그 학생의 손에는 고구마 몇 개가 올려진 쟁반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좋아하실는지 잘 모르겠는데예. 시장하실 텐데, 이 것 드세예.” 한다. 무척 오랜만에 보는 껍질이 멀건 하얀 물고구마였다. 나는 허기진 배에, 체면이고 염치고 접어두고는 그 고구마 세 개와 배 두 개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워 버렸다. 이런 모습을 본 여학생은 “더 갖다 드리까예? 저는 안 좋아하시까봐 쪼금만 가져 왔는데예.”라고 말한다.“아니, 아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 거면 충분해요. 남해읍에 도착하면 또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라고 대꾸했다. 그러면서 “학생, 이 거 얼마면 되까?” 하고 물으니,“아녜예, 돈 안 받으려고 했어예. 그래서 배도 못난 걸로 갖고 왔는데예.”라고 한다. 의외였다. 어쩌면 나에겐 딸 같을 수도 있는 어린 여학생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을 한다. “그래도 받아야 돼. 힘들게 농사짓는 부모님도 생각해야지.” 거의 반강제로 돈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만 보면, 정말 돈을 더 주고 싶기도 했다. 하긴 가난한 내가 돈을 준다면 그 아이에게 대체 얼마를 더 준단 말인가. 설사 그렇다 해도 그 건, 그 순수한 마음에 어울리지 않을, 어른의 ‘허세(?)’일 수도 있고, 하찮은 돈으로 마음을 사려는 행위일 것이었다. # 가로등없는 어두운 도로위에 별만 총총 “너무 맛있게, 잘 먹고 가요. 고마워요, 학생!” “근데예. 아저씨! 여기는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위험한 곳이니, 조심해서 가셔야 돼예.” “그래요?” “예, 저 앞에는 1년에도 몇 차례씩 사고가 나는 지점이니 조심하세요.” 그 마음도 무척 예뻤다.‘너는 왜 이리 예쁜 짓만 하고 있는 거냐.’ 나는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론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학생.” “가실 때는 저 쪽, 도로 끝 오른 쪽으로 바짝 붙여서 가세예. 아저씨, 여행 잘 하시고예, 안녕히 가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고구마는 너무 맛있었어요.” 깜깜한 도로로 나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데, 언뜻 뒤를 돌아 보니 아직도 그 학생은 방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의 전깃불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고맙구나. 웃음 띤 그 얼굴이, 그리고 니 마음씨가 너무나 예쁘구나.’ 아까 배를 먹으며 방 안에 있던 시계를 보니, 일곱시가 안 되었던데 읍엔 여덟시 무렵에 도착되겠지. 나는 14~15㎞ 남았던 남해읍까지, 일단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도로를 자전거로 달려야 했다. 남녘이라 그런지, 초저녁부터 하늘엔 오리온 별자리가 총총했다. 주위가 어두워 별은 더 빛나 보였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제는 땀도 식어 슬슬 추워올 것도 같은데, 마음은 푸근하기만 했다. ‘아, 하늘에 뜬 저 별들도 아름답다지만, 그 여학생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다음호 계속> ●주변 들러볼 곳 남해 호구산 군립공원, 한려해상 국립공원, 금산 보리암, 남해 상주해수욕장, 미조포구, 독일인 마을
  • 가난한 인재 자치구가 키운다

    ‘은평구민 장학재단’ 설립이 본격화된다. 노재동 구청장은 31일 “은평구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 저소득 가정과 복지시설이 많은 편”이라면서 “돈이 없어서 우수한 인재가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자치구 차원에서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은평구는 2001년부터 3억 2000만원 규모의 ‘은평장학기금’을 운영하면서 지역 중·고등학생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지금까지 148명에게 7563만 5000원의 장학금을 주었다. 이 은평장학기금을 발전시킨 공익법인이 은평구민 장학재단이다. 노 구청장은 “장학재단을 통해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고, 우수한 인재육성과 지역교육환경 개선에도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는 장학재단 설립을 위해 오는 3월까지 발기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올 상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장학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장학재단을 통해 2007년부터 ▲지역내 중·고교 성적우수자와 예체능 특기자 ▲대학교 입학생 및 재학생 성적우수자 ▲지역 교육발전에 유공자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2016년까지 장학기금 100억원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매년 3억∼4억원씩 모두 39억원을 은평구가 조성하고, 나머지 61억원은 민간기탁금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자립형 특목고 유치, 지역 학교의 과밀학급 해소, 주민자치대학 운영 등의 교육 사업도 추진한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MBC 개그야 ‘최국의 별을 쏘다’ 세 주인공

    MBC 개그야 ‘최국의 별을 쏘다’ 세 주인공

    지긋지긋한 무명 개그맨의 설움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별을 쏜’ 이들이 있다. “아∼무 이유 없어.” “MC계의 쓰레기, 쒸레∼이기∼.”를 연신 외치며 한달 만에 ‘별’이 된 MBC 개그야 ‘최국의 별을 쏘다’ 코너의 주인공인 MC 최국(33), 죄민수의 조원석(31), 죄민수의 여자친구 양희성(32)을 만났다. ●‘3톱 개그’ 정상에 촌스러운 옷차림, 엄청 오버하는 액세서리,‘마빡이´만큼 자유분방하게 생긴 죄민수가 여자들을 향해 쏟아내는 유행어 한마디 한마디에 웃지 않고는 견뎌낼 재간이 없다. 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인 양 과장된 행동도 한몫한다. “이거 이거 손짓 하나에 다 넘어가는구먼.” “스타가 되고 싶나? 그럼 나처럼 생기든가!” “어머니 감사합니다.(잘 생겨서)남들보다 쉽게 먹고 살아요.” 죄민수의 여자친구 양만금은 또 어떤가. 양만금은 죄민수에게 “잘 생긴 놈. 역시 여자를 희롱할 줄 알아.” “이 매력 덩어리”라고 연신 외친다. 쓰레기라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MC 최국. 이들 세명이 엮어내는 ‘별을 쏘다’는 단 4회 방영 만에 개그야의 엔딩을 장식하는 영광을 안았다. ●개그에 대한 단상 세 사람 모두 KBS,SBS 등 다른 방송사를 거치며 5년 이상의 무명시절을 지낸 만큼 이번 코너에 대한 애착이 크다. 대학로 공연과 개그야 준비로 거의 붙어 살다시피 한다.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실제 “연예계의 먼지, 멘트가 후지다, 쥐뿔도 없는 청순 가난형”이라는 대사는 이들이 치고받으면서 하는 말이다. 삶이 개그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다. 요즘처럼 개그 코너가 단명하는 시절에 ‘별을 쏘다’가 언제까지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지 걱정된다고 하자 최국은 이렇게 답했다. “우린 장기간 무명이었기 때문에 사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요. 또한 개그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원석이와 풍부한 감성을 지닌 희성 선배와 같이 간다면 아마 몇년을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원석은 “이런 MC계의 쒸∼레기.”라고 우스꽝스러운 대사를 날리며 “그냥 시청자들이 원할 때까지 ‘아∼무 이유없이’ 가고 싶다.”고 했다. 희성은 “역∼쉬 너는 여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마력이 있어∼응.”하며 애드리브를 날렸다. 그들의 말이 바로 개그였다. 쇼와 개그를 섞어 자유롭고도 많은 형식을 담을 수 있는 코너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최국. 새로운 웃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개그를 찾는다는 양희성. 미스터 빈의 로완 앳킨슨처럼 모두를 웃기는 바보가 되고 싶다는 조원석. 바라보고 있는 곳이 같아서일까. 친형제처럼 정이 느껴진다. ●‘자뻑’과 호통 개그의 만남 이런 기발한 토크쇼 형식의 개그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했다. 개그야의 ‘깔깔이’를 같이 하던 최국과 조원석이 새로운 코너를 구상하던 중 “내 사인을 원하나.”라는 조원석의 거들먹거리는 말투에 웃음을 참지 못한 최국이 “바로 이거야. 우리는 무명이지만 ‘떴’다고 생각하고 만들어 보자.”라고 화답했다.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조원석은 자뻑과 호통 개그를 접목시켜 지금의 죄민수를 탄생시켰다. 여기에 양희성이 진지한 눈빛으로 “넌 너무 멋져. 여자를 녹일 줄 알아.”라고 하자 죄민수가 “너 또한 아∼름다워.”라고 답했다. 옆에 있던 최국은 배를 잡고 넘어갔다.“그래 이런 컨셉트야. 이런 비호감, 아니 막 생긴 사람들이 서로 예쁘고 멋지다며 치켜세우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라며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한다. 개그에 대한 열정으로 뭉쳐져 있는 데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별’을 쏠 수 있지 않을까.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한글 깨치니 새 세상 열려”

    “한글 깨치니 새 세상 열려”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 너무 컸습니다. 상점 간판도, 버스 간판도 제대로 읽지 못해 언제나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30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초등학교 지하 강당. 국내 최초의 성인대상 학력인정 초등학교인 이곳에서는 할머니 초등학생들의 ‘나의 주장 발표 대회’ 본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옥자(62) 할머니는 단상에 올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공부의 중요성을 웅변했다. 의자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발표에 귀기울이는 200여명의 재학생들 대부분은 50∼80대 할머니들. 소복이 눈 내린 듯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얼굴엔 주름살이 가득하지만, 차례대로 단상에 올라 가슴속 열정을 쏟아놓았다. 이 할머니는 8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학교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뒤늦게 학교에 입학해서 한글도 배우고 웹서핑도 배워서 딴 세상에 사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한 학기에 8개월씩 모두 4년 12학기로 구성돼 있는 양원초등학교는 2005년 3월 개교해 2009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현재 2개 학년 16개반 총 550여명의 학생들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 직업과 그 한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 직업과 그 한계

    그동안 한양 인왕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중인들의 이야기를 몇차례 소개했다. 그 가운데는 관청의 아전들이 많았지만, 역관이나 의원들도 있었고, 서당 훈장도 있었으며,인쇄전문가도 있었다. 조선시대 신지식인 이라고 평가되는 중인은 과연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본다. ●중인의 직업은 수십가지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인문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지으면서, 서론이라고 볼 수 있는 사민총론(四民總論)에서 우리나라 백성을 네가지로 나누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네 부류를 신분으로 보지 않고 직업으로 보았다. 벼슬하지 못한 선비는 농·공·상(農工商) 가운데 한 직업을 택해 일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혹시 사대부라고 하여 농·공·상을 업신여기거나 농·공·상이 되었다고 하여 사대부를 부러워한다면, 이는 모두 그 근본을 모르는 자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직업은 네가지가 아니라 수십가지였다. 이 책의 총론에서 그 예를 들었다. “종실(宗室)과 사대부는 조정에서 벼슬하는 집안이 되고, 사대부보다 못한 계층은 시골의 품관(品官)·중정(中正)·공조(功曹) 따위가 되었다. 이보다 못한 계층은 사서(士庶) 및 장교·역관·산원(算員)·의관과 방외의 한산인(閑散人)이 되었다. 더 못한 계층은 아전·군호(軍戶)·양만 따위가 되었으며, 이보다 더 못한 계층은 공사천(公私賤) 노비가 되었다.” 이 가운데 “노비에서 지방 아전까지가 하인(下人) 한 계층이고, 서얼과 잡색(雜色)이 중인 한 계층이며, 품관과 사대부를 양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집안의 흥망성쇠에 따라 “사대부가 혹 신분이 낮아져 평민이 되기도 하고, 평민이 오래 되면서 혹 신분이 높아져 차츰 사대부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인은 전문직업인 이중환이 말한 중인은 서얼과 장교·역관·산원·의관 등의 전문직업인이다. 서얼은 물론 양반이지만 진출에 제한받기 때문에 저절로 중인과 한 부류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위항문화가 가장 발달한 시기는 정조시대였는데, 정조(正祖)는 중인과 시정배(市井輩)를 이렇게 구분하였다. “중인에는 편교(校)·계사(計士)·의원·역관·일관(日官)·율관(律官)·창재(唱才)·상기(賞技)·사자관(寫字官)·화원(畵員)·녹사(錄事)의 칭호가 있다. 시정(市井)에는 액속(掖屬)·조리(曹吏)·전민(廛民)의 이름이 있다. 이것이 중인과 시정의 명분이다. 이들 밖에도 하천(下賤)의 복사역역자(服事力役者)들이 수만이나 되니, 군예(軍隸)·노복(奴僕)·공(工)·상(商)·용고(傭雇)같이 미천한 자들도 또한 낫고 못한 차이가 있다.” 정조가 말한 중인들의 직업을 요즘으로 치자면 장교, 공인회계사, 의사, 외교관 겸 동시통역사, 천문학자, 변호사와 법관, 서예가, 화가, 공무원 등이다. 정조는 중인 외에 시정(市井)과 하천(下賤)을 구분했는데, 이 세가지 계층을 아울러 당시에는 위항인(委巷人)이라고 했다. 사대부와 상민 사이의 중간계층인데, 넓은 의미의 중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임숙영이 지은 서문에 “유희경은 본래 위항인이다.”고 했는데, 본래는 천한 종이었다.‘화곡집’ 서문에는 “아깝게도 황군은 위항인이다.”라고 했는데, 황택후는 금위영 서리였다. 역관이나 의원 같은 중인만이 아니라, 훨씬 낮은 서리나 노예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위항인이다. 위항인은 글자 그대로 위항(委巷)에 사는 사람이다. 위(委)는 곡(曲)이고, 항(巷)은 ‘이중도(里中道)’이다. 즉 ‘마을 가운데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바로 위항이고, 작은 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위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네에 사는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조선 후기로 내려가면서 양반보다 부유한 중인들이 많아졌으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열가지 복을 누린 역관 조수삼 송석원시사 동인 조수삼(趙秀三·1762∼1849)의 호는 추재(秋齋)로 한양 조씨이다. 그의 후배 조희룡은 그의 전기를 지으면서 “그는 풍채가 아름다워 신선의 기골이 있었다. 문장력이 넓고도 깊었는데, 시에 가장 뛰어났다.”는 칭찬으로 시작했다. 사대부의 풍채와 문장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의 문집을 엮어준 손자 조중묵이 화원이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원래 직업적인 역관이 아니었는데,28세에 이상원의 길동무로 처음 중국에 따라갔다고 한다. “길에서 강남 사람을 만났는데, 같은 수레를 타고 가면서 중국말을 다 배웠다. 그 뒤론 북경 사람과 말할 때에도 필담(筆談)과 통역의 힘을 빌지 않았다.” 역관을 선택한 중인들은 사역원(司譯院)에서 몇년 동안 그 나라 말을 배웠는데, 그는 북경까지 가는 길에서 중국어를 다 배운 것이다. 여섯차례나 중국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마도 그 뒤엔 역관의 신분으로 따라갔을 것이다. 19세기가 되면서 서울의 모습이 바뀌자, 전에는 듣고 보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조수삼은 그러한 이야기를 71편 골라서 ‘기이(紀異)’라는 시를 쓰고 그 앞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군상의 소묘이면서도 사회변화를 보여준다. “내 나무(吾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라 말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말하였다. 심하게 바람 불거나 눈 내리는 추운 날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내 나무’라고) 외치다가, 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속에서 책을 꺼내 읽었는데, 바로 고본 경서였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추위에도 열두 거리를 돌아다니며 남쪽 거리 북쪽 거리에서 ‘내 나무’라고 외치네. 어리석은 아낙네야 비웃겠지만 송나라판 경서가 가슴속에 가득 찼다오.” 고본 경서를 읽는 것으로 보아 나무 장사꾼은 양반계층에서 몰락한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는 존댓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아,“내 나무”라고 반말을 씀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웠던 듯하다. ●양반에 60년 뒤진 중인 그러나 송나라판 경서가 가슴속에 가득 찼어도 쓸 데가 없는 것이 당시 사회였고, 그런데도 끝까지 양반의 알량한 자존심과 경서를 내버리지 못하는 것이 그의 한계였다. 그에 비하면 조수삼은 행복한 중인이었는데, 조희룡은 그의 행복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 사람들은 추재가 지닌 복이 모두 열가지라고 하면서, 남들은 그 가운데 하나만 지녀도 평생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가지란 첫째 풍도(風度), 둘째 시문(詩文), 셋째 공령(功令), 넷째 의학, 다섯째 바둑, 여섯째 서예, 일곱째 기억력, 여덟째 담론, 아홉째 복택, 열째 장수이다.” 88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정말 장수하여 남의 부러움을 샀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공령문인데, 과거시험 때에 쓰는 시나 문장이다. 양반들은 대부분 과거시험을 보았으며, 답안지를 쓰기 위해 공령문을 배웠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하면 더 이상 배울 필요도 없고, 쓸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문집에 공령시가 실리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그의 문집에는 공령시가 57편이나 실렸다. 그가 공령시를 잘 지었다고 소문났지만, 자기가 시험을 보기 위해 연습한 것이 아니라 양반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연습한 것이다. 그는 61세에 경상도 관찰사 조인영의 서기로 따라갔는데, 실제로는 가정교사이다. 그는 83세에야 진사에 합격했는데, 영의정 조인영이 시를 짓게 하자 ‘사마창방일구호칠보시(司馬唱榜日口呼七步詩)´를 지었다. 뱃속에 든 시와 책이 몇백 짐이던가. 올해에야 가까스로 난삼을 걸쳤네. 구경꾼들아. 몇 살인가 묻지를 마소. 육십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합격자 명부인 방목에 그를 유학(幼學)이라고 표시했으니,83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양반들은 20대 초반에 이미 진사에 합격하고 곧이어 문과에 응시했는데, 그는 60년이나 뒤처졌다. 시의 제목은 “진사시 합격자를 발표한 날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입으로 읊은 시”이다. 조인영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그 기쁨을 시로 표현해 보라는 주문을 한 것인데,“가까스로” 합격해 난삼을 걸친 기쁨과, 몇백 짐의 책을 외우고도 60년 늦게 합격한 중인의 한을 함께 표현했다. 그나마 영의정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전문직업을 지녀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으면서도 신분적으로는 60년이나 양반에게 뒤진 것이 바로 중인의 한계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공익소송 선도 로펌으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결정을 이끌어 낸 이석연 변호사가 법무법인을 만들었다. 법무법인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을 기념해 이름을 ‘서울’로 정했다. 이 변호사는 “‘서울을 세계로, 세계를 서울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을 상징하는 로펌으로, 국제화된 로펌으로, 공익소송을 선도하는 로펌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 외에 안미영·함정민·이두나 변호사도 합류했다. 법무법인 서울은 공익과 관련한 법률자문을 필요로 하는 시민·사회단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억울하면서도 가난한 소송 당사자들을 도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공익부를 운영하고 올 연말에는 공익소송센터로 확대할 예정이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화가 남궁문의 섬진강 자전거 하이킹

    화가 남궁문의 섬진강 자전거 하이킹

    남들처럼 승용차가 있기를 하나, 그렇다고 여기저기 비싼 교통비를 들여가며 여행할 돈이 있기를 하나…. 에이, 자전거라도 타고 떠나 볼까? 나의 ‘자전거 여행’은 그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사실,‘여행’이란 개념도 없었다. 그저 운동 삼아 날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자전거를 타던 나는, 여행을 떠난다는 거창한(?) 뜻도 없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 동네(서울 태릉 주변)를 벗어나 국도를 거쳐 나가는 일이 선뜻 내키지 않았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 때문에 겁도 많이 났다. 서울을 벗어난 장거리 여행을 떠나려면, 자전거의 성능도 문제였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지금 타는 자전거는, 한 친구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녹슬고 있다며 나에게 떠맡기듯 가져온 것인데다가, 특히 기어가 힘을 못 받아 오르막길에선 체인이 벗겨지는 소리가 틱, 칙! 들리면서 이따금 벗겨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 새로운 좋은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니, 일단 자전거포에 가서 점검을 하고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어차피 사이클 선수도 아닌데 굳이 속력을 낼 것도 없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달리다 보면 어디든 못 가겠는가 하는 배짱도 생겼다. 그리고 국도가 위험하다면, 그보다 좁은 마을 소로 등을 타고 다녀도 될 것이었다. 어디든 길은 길과 연결되었을 테니, 아무래도 내 스스로 몸을 조금 더 놀리면 고생이야 되겠지만, 그래도 못 갈 곳이 없을 것 같다는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또 하나, 잠자는 일이 걱정이었다. 무엇보다도 돈이 문제였다. 하루 나들이라면 모를까, 며칠씩 나가 있게 된다면 가난한 화가인 나에겐 그 숙박비만도 결코 무시 못할 테니…. 그러던 중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다가 얻은 정보, 찜질방에 가서 자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찜질방에서 자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낯설기도 하고 또 그런 곳에 가서 잠을 잘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었지만, 이미 힘들게 결정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그런 다음 겁없이(?) 자전거로 떠났는데, 인터넷 카페에서 읽었던, 처음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던 한 네티즌의 표현대로, 나 역시 처음 떠났다가(2박 3일간) 돌아오면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때가 2005년 9월초였다. 그렇게 시작된 ‘자전거 나들이’는 이제, 우리나라의 많은 곳을 싸돌아다닌 정말 ‘전문 자전거 여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artistdaiary@hanmil.net # 한적한 861번 지방도로 빙판길 겨울 섬진강은 듣기만 해도 설렌다.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였다. 점심을 먹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친구 K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요즘엔 그림도 잘 풀리지 않아서, 오늘 친구를 만나면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하면서 술이라도 한 잔 할 생각이었다. 그런 기대를 걸고, 한 시간 동안 세 번의 전화를 걸었는데도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오늘은 친구를 만나지 말라는 건가? 그렇담, 오늘 오후엔 뭘 한다지? 그러다가 에이, 오늘 떠나 버릴까? 순간적으로 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자전거는 지금, 전북 남원에 있다. 지난 번 자전거 여행은 남원에서 끝을 냈고, 거기 직장이 있는 친구 숙소에 자전거를 맡기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문득 남원에서 구례를 거쳐, 섬진강변을 따라 매화마을인 광양을 지나는 여정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그래서 남원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 눈 속에 어딜 가려느냐고 펄쩍 뛴다. 걱정하지 말아. 춥다고 못 떠난다면, 언제 떠나겠어? 곧바로 남원으로 향했다. 조금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친구를 뒤로 하고 자전거를 끌고 친구 숙소를 나섰다. 쨍하게 햇살이 돋는 맑고 깨끗한 겨울 아침이었다. 그만큼 공기도 찼다. 도로에는 일부 눈이 녹은 곳도 있었지만 응달쪽엔 그저께 내린 눈이 남아 빙판길도 있었다. 모처럼 타는 겨울 자전거이기도 했거니와, 위험스러운 눈길로 가는 행로라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아야만 했다. 구례읍에서 나는 섬진강의 서쪽 길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래도 섬진강을 경계로 하동으로 가는 동쪽 길(19번국도)엔 눈이 녹았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서쪽 길(861번 지방도)을 택한 것은 차량의 통행이 적어 한적할 것이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물론 섬진강을 끼고 양쪽엔 도로가 있고, 그 옆으론 상당히 높은 산들이 있기 때문에 서쪽은 빙판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길을 택했다. 예측이 맞아 서쪽 길은 군데군데 빙판길로 이어졌고 길을 달리면서 눈으로 보기에도 강 건너 하동 가는 길은 따스해 보여 평화로웠으나 차량 통행은 훨씬 많았다. # 응달길 바닥에서 꽈당! 그렇게 섬진강변을 따라 내려가는데 사진에라도 담고 싶은 지리산 풍경들을 자꾸만 지나치고 있었다. 경치 때문에 자주 멈춰 사진을 찍기에는 빙판길 자체가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이 녹은 길에서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지리산 쪽 풍경을 감상하면서 또 응달을 만나면 정신을 집중해서 바닥에 온통 신경을 써야만 했다. 물론 몇 차례 자전거를 세우고 지리산 쪽 풍경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날씨가 춥긴 했지만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날씨이기도 해서, 한적한 겨울날을 즐기며 자전거를 달리는 맛도 썩 좋았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응달을 지날 때는 코가 찡하도록 공기가 찼지만, 햇볕이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아늑한 따사로움도 느껴졌다. 이게 바로 자전거 여행의 장점이기도 하다. 눈에 쌓인 풍경도 아름답겠지만, 이 길은 명산 ‘지리산’을 끼고 부드럽게 흐르는 ‘섬진강’도 함께 하기 때문에 철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었다. 길은 빙판과 녹은 길로 반복되어 나타났다. 그런 모든 현상이 다 햇볕에 의한 것이라, 자전거로 달리면서도 태양의 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사진을 찍느라, 그리고 아무래도 빙판길이라 씽씽 달릴 수가 없어서 생각보다 많은 거리를 지나온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자전거로 달리기에 그리 멀다고 볼 수만 없을 거리였다. 그 길을 만끽하며 가능하면 느긋하게 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응달 길로 접어들었는데, 어? 어, 어! 꽈당! 길바닥 한 가운데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아무 정신이 없었다. 반사적으로 길 양편을 살펴 보니, 다행히 다른 차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도, 아, 교통사고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전거가 미끄러지며 빙판길에 떨어지는 순간 짚었던 왼쪽 손목이 찡!하게 울려왔다. 자전거 바퀴에 꼬였던 다리를 풀고 겨우 일어서서 길 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옷에 가득한 눈을 털어냈다. 아니, 이게 무슨 꼴이람. 만약에 누군가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봤다면?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어나 한 쪽 다리를 절면서,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강변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 나룻배 사라진 강에 아치형 ‘화개교´ 다시 양지쪽으로 나오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제야 ‘휴’ 하는 한숨이 나왔다. 자전거를 이리저리 살펴 보니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다만, 땅에 떨어지며 짚었던 왼쪽 손목이 약간 시큰거리긴 했다. 쌓인 눈의 모습이 줄어드는 남쪽으로 향한 길을 타고 내려가는데, 저 멀리에 아치 형 구조물이 눈에 들어 왔다. 최근에 건설된 화개교였다. 강 건너에는 ‘화개 장터’가 있는 곳.10여 년 전에 그 곳에 갔을 땐, 저 다리는 없었고 강 건너까진 양 편에 매달아 놓은 밧줄을 잡고 다니는 나룻배가 오가던 정겹던 곳이었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천천히 페달을 돌리며, 화개교를 지나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른 편으로 마을이 보이고 저 멀리 산 아래엔 아마득한 산촌 하나가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 마을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핸들을 오른 쪽으로 꺾었다. 오르막길이다 보니, 얼마 가지 못해서 바로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올라야만 했다. # 씽씽 내려오는 길 싱겁고 짧기만 화개교 부근은 산과 물의 골이 깊어서인지 바람의 통로처럼 어디서 불어오는지 방향도 모를 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갑자기 춥다는 생각이 들어 모자를 뒤집어 썼다. 그렇게 두어 굽이를 돌며 오르다 보니, 하얀 눈에 쌓인 마을이 보였다. 조금 전에 길바닥에 넘어진 기억에, 그 마을에 오르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길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었다. 자전거를 다시 돌렸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방향을 돌려 내려가는 건 순간이었다. 하기야, 자전거는 늘 이렇지. 힘들게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른 뒤, 씽씽 내려오는 시간은 왜 그리 싱겁고 짧기만 한지.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모습일지도 몰랐다.‘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고통을 동반한 힘든 노력을 해도, 그에 합당한(?) ‘행복’은 왜 이리 항상 짧게만 느껴지는지. 내리막길 찬바람에 얼굴이 얼얼했다. 문득,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웠다. 겨울에 혼자 떠나는 자전거 여행인데 그런 편안함을 찾아온 건 아니었지…. 그런데 왜 이렇게 남들이 말리는 여행을 죽자사자 하겠다며 나서는지 모르겠다. 글쎄, 나에게도 그 건 영원한 수수께끼다. 이런 여행은, 아니 내가 이미 해왔던 여행들은, 어쩌면 내 운명에 이미 기록돼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할 여행도 이미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 제멋대로 생긴 강기슭엔 살얼음만 길은 강을 따라가기 때문에 완만한 내리막이라서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햇살이 따스해서, 봄길 같기도 했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평화롭게 보이는 섬진강도, 이 추위에는 얼음을 얼리지 않을 수 없나 보았다. 강가에는 군데군데 얼음이 얼어 있어서, 겨울의 을씨년스러움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도 저 비단결 같은 강물 양편에 넓고 좁은 제멋대로 생긴 모래사장을 끼고 있는 섬진강 풍경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저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 내려가 보리라. 차가 아닌 자전거 여행이기에 내키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것이니까. 유심히 길을 살피며 페달을 밟다가 강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보이는 곳을 발견하고는 자전거를 멈췄다. 그 통로 주변엔 매화나무로 보이는 나무들이 많았는데, 아직은 겨울눈을 빼꼼하게 내 놓고 있었다. 여기에 매화가 피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텐데…. 모래사장은 원시의 모습 같았다. 사람의 발자국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 건, 겨우 내내 추워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바람에 모래들이 날려서 사람들의 발자국을 지워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에겐 원시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흐르는 강물 때문에 하동 쪽 도로로 달리는 많은 차량들과도 격리된 상태여서, 어쩌면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모래밭으로 보였다. # 발자국까지 남겨놓기 아까운 모래사장 모래사장은 너무 곱고 깨끗해서, 내 발자국을 남겨 놓기도 조금은 죄스러운 기분이었다. 굳이 그렇다고 발자국이 안 남을 것도 아닌데, 까치발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모래사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도톰하게 올라 있는 모래 언덕에 앉아 보았다. 아무도 없는 호젓함이 나를 감쌌다. 이 세상엔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이른 오후의 햇살은 아직 따스했고, 살기마저 느끼도록 새파란 하늘 아래론 머지않아 다가올 봄을 실음직한 맑은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봄이 되면 이 강가엔 매화가 만발하리라. 그래, 매화가 필 때 다시 오리라. 다시 오고 말리라. 너무나 맑고 깨끗한 하늘과 바람이 있는 강변에서, 나는, 하모니카라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 여행정보 주변 가볼 만한 곳=구례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산수유 축제, 하동 쌍계사, 평사리(‘토지’ 배경) 매화 축제, 광양 매화마을 매화축제. 먹거리로는 섬진강 재첩국, 섬진강 참게장, 참게 매운탕, 매실 장아찌 등이 유명하다. ▲그가 지나온 길 1983년 홍익대 미술대 서양화과 졸업,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 회화과 박사과정 수료(93년), 멕시코 국립조형예술대학 벽화과정 수료(97년), 도보여행 ‘산티아고 가는 길 (2001년 여름 첫번 째)’‘산티아고 가는 길(2004년, 겨울 두번 째)’‘외출금지 전’(일민미술관) 외 개인전 8회, 주요저서=멕시코 벽화운동(2000·시공사),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2002·예담)
  • [OUR STORY] 방학 걷이 도서관 나들이

    [OUR STORY] 방학 걷이 도서관 나들이

    방학 때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헤맨다. 초등학생들의 긴 겨울방학도 2주가 채 남지 않은 요즘, 남은 방학기간을 더욱 알차게 보내기 위해 어린이 도서관을 찾아보면 어떨까. 도서관 하면 당연히 책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요즘 어린이도서관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독서 외에도 도서관별로 다양한 특별프로그램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시립 어린이도서관이 유일했지만, 이젠 동네마다 어린이도서관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규모는 작아도, 동네 가까이에서 독서와 학습공간, 그리고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엄숙한 대형도서관과는 달리, 이웃집 사랑방 같은 ‘작은 도서관’들을 소개한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도서관’은 아이들의 작은 도서관이며 놀이터이자, 엄마들의 이야기방인 곳. 엄마와 함께하는 겨울방학 도서관 여행의 출발지다.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아이들과 문화가 있는 곳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도서관(www.littlelibro.org)’의 모든 프로그램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이야기방’. 책읽기를 위한 기본 능력인 ‘리터러시(literacy)’, 즉 읽고 쓰고 듣고 이해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한 학습과정 중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참새방앗간과 같은 곳이에요. 요즘 같은 방학 때는 거의 매일 이곳을 찾아요. 집에서 읽어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읽을 것도 많고 읽는 양도 많아요. 읽기, 쓰기 등의 진도도 빠르고요.” 주부 장호정(39)씨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다. 장씨는 또 “초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다양해요. 집에서 해주기 힘든 놀이들도 할 수 있고요. 도서관뿐 아니라 놀이터도 되는 셈이죠.”라며 자랑이 대단하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왜 아이에게 좋을까. 김소희(40) 관장은 “일생동안 책에 대한 기억이 글자나 스토리가 아닌 운율로 남게 됩니다. 또 책을 엄마처럼 따뜻하게 느끼기도 하는 등 정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레 말하고 쓰는 학습을 하게 되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6∼7세만 되면 애들 스스로 읽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나이에도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좋아요.”라고 당부했다. 아이들의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은 ‘책읽는 통장’. 읽은 책의 내용 중 재미 있었던 부분을 일기처럼 기록할 수 있게 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알-올챙이-뒷다리-앞다리-개구리’ 순서로 도장을 찍어주기도 한다. 개구리 5마리를 모으면 도서교환권을 선물로 준다.(02)2297-5935 # 크고 작은 공동체를 경험하는 자리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다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이웃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어린이도서관에는 늘 엄마들이 있다. 도서관이 이웃이 되고, 친근해질수록 엄마들은 자꾸 서로를 ‘도와주려’ 한다. 자체 모임도 늘어난다. 그런 엄마들이 마련한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뚱딴지’. “우리 고유의 전통인 ‘품앗이’로 하는 일종의 ‘방과 후 교실’입니다.‘놀토’가 생기면서 엄마 혼자 토요일마다 아이와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 쉽지 않죠. 방학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엄마들이 아이들의 현장학습을 함께 하기로 한 거죠.” 장호정씨의 설명이다. 엄마들이 번갈아가며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길라잡이가 되어주겠다는 것. 처음엔 엄마와 아이들만의 일이었지만, 요즘엔 아빠들의 참석률도 높아졌다. # 아이와 함께 엄마도 성장한다 엄마들간 소모임이 자연스레 활성화되기도 한다.‘크레파스’는 이 도서관에서 가장 오래된 엄마들 모임. 셋맘(아이 셋 둔 엄마)이 많은 이 모임 회원들이 ‘영상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다. 엄마와 아이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책을 고른 다음, 대본으로 각색해 동영상으로 제작하는 것. ‘크레파스’회원 엄마들은 아이들이 도서관을 ‘전쟁터’처럼 만들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책들 중에서 특별한 두 권을 고르고, 내용을 각색했다. 배역도 나누었다. 스튜디오 가는 날. 엄마들은 머리에 헤드폰을 쓴 채 녹음실에 들어가,‘성우’가 됐다.‘감독’을 맡은 엄마들은 화면을 재구성해 동영상으로 만들고, 배경음악도 넣었다. 드디어 ‘크레파스’회원들이 만든 영상그림책이 도서관과 지역 이웃들이 어울리는 문화행사 ‘나랑 같이 놀자’에서 상영됐다. 한 컷 한 컷 바뀌는 장면들 속에 난장판 같았던 도서관의 모습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회원 중 한 명인 정수정(38)씨는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산만하고 버거운 시간 속에서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회원 모두가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 같았어요.” ‘크레파스’ 엄마들이 만든 작품이 벌써 7편.‘손 큰 할머니 만두 만들기’,‘여우누이’ 등 해를 더할수록 작품은 정교해졌다. 김 관장의 말이다.“엄마에게도 꿈이 필요합니다. 주저앉은 엄마들에게 아이를 통해 만난 그림책이 새 날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김소희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도서관’ 관장 “도서관은 단순한 하루의 이벤트가 아닌 생활 속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도서관은 학교와 집을 오가는 사이의 ‘길거리’에 있어야겠죠. 스스로 찾아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이 도서관은 ‘작고 낮게, 그리고 느리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도서관’ 김소희(40) 관장의 ‘작은 도서관 ’론이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의 부인.10년 정도 기자생활을 하는 등 직장생활을 하다, 돌연 동화책을 만들겠다며 2001년 4월 성동구 행당동에 어린이 도서관을 설립했다. “아이들은 작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의 규모는 작아도 좋겠습니다. 대신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 혼자 힘으로도 찾아갈 수 있는 거리, 엄마에게도 큰 맘 먹고 하루를 고스란히 바치는 이벤트가 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있어야 합니다. 시내나 외곽 등의 특정한 곳에 커다란 도서관을 짓는다면, 아이들은 혼자 힘으로 찾아가지 못하겠지요. 또 애들을 안거나 업어야 하는 엄마들에겐 움직이는 것 자체가 전쟁입니다. 그런 엄마나 아이들에게 도서관 가는 것은 ‘생활’이 아닌 ‘일’일 겁니다.” 그가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곳은 성동구 행당동의 주택가.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곳이다. 요즘은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외형적으로는 제법 화려해졌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부실하다. “19세기의 도서관은 개인교습을 받을 수 없거나, 개인서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와 마찬가지로 지위상승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에게 더욱 문턱이 높다는 것도 비슷하고요. 가난할수록 현실에 밀접해지고 도서관과는 멀어지게 되죠. 따라서 아이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채,‘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반드시 규모가 클 필요도 없고요.” ■ 서울지역 여기가 좋아요 ●은평구 대조동 꿈나무 도서실 파출소로 사용됐던 주택가 2층짜리 빈 건물을 개조해 문을 열었다.1층은 주로 유아를 위한 공간,2층은 초등학생들에게 맞는 공간으로 꾸몄다. 책 수집, 정리 등 도서실 운영을 주민들이 직접 담당하고 있다. 방학 때는 책읽기 프로그램과 책읽어주는 엄마 프로그램을 진행해, 아이들이 보다 알찬 방학을 보낼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놀토’에는 영화상영을 하기도 한다. 지하철 6호선 구산역 2번출구에서 대조초등학교 방향 도보 10분. 오전 9시∼오후 7시. 토·일요일과 공휴일 휴관.(02)382-3959. ●노원 어린이도서관(www.nowonilib.seoul.kr) 노원구청이 설립하고, 서울여자대학교가 위탁 운영하는 21세기 디지털 어린이 전용 도서관. 지하 1층은 DVD,E-Book 열람 등을 할 수 있는 디지털자료실,1층은 유아열람실과 전시실,2층은 아동 도서실로 꾸며졌다. 지하철 4호선 상계역 4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오전 9시∼오후 6시(주말엔 5시). 매주 화요일 정기휴관.(02)933-7145. ●서초 어린이도서관(www.seocholib.co.kr) 영·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찾기 좋은 곳.2만 3000여권의 장서 대부분 아이들이 물거나 빨아도 별 탈이 없는 것들이다. 책을 읽다 잠든 아이들을 위해 수면실도 마련해 놓았다. 외국인 선교사가 영어동화를 들려주는 ‘영어동화 스토리텔링’은 월 1만원, 동화 그림 그리기, 독후감 쓰기 등 ‘어린이 독서교실’은 월 2만원의 수강료를 받는다. 매달 초 수강신청을 받는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3번 출구에서 우성1차 아파트 방향 도보 10분. 오전 10시∼오후 6시(일요일은 오후 4시). 매주 월요일, 공휴일은 휴관.(02)3471-1337. ●이진아 기념 도서관(www.sdmljalib.or.kr) 취학 전 유아 대상 프로그램이 돋보이는 곳. 여성의류업체 ‘현진어패럴’의 이상철 대표가 지난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 이진아씨를 기리기 위해 서울시에 50억원을 기부해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 유아부터 입학 전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모자열람실´과 영어동화 읽기와 어린이 논술 등 문화강좌가 진행되는 ‘문화창작실’ 등이 갖춰져 있다. 무료 영화도 상영된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에서 영천사 방향 도보 10분. 오전 9시∼오후 6시(주말엔 오후 5시). 월요일은 휴관.(02)360-8600. ●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www.childrenlib.or.kr) 2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 최대 어린이 도서관.20여만권의 책과 1만 4000여점의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분야별·수준별로 책들을 구분해 놓은 본관과 ‘문화교실’,‘이야기실’ 등이 마련된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우미 선생님이 좋은 책과 독서방법을 추천해주는 ‘독서상담실’, 가족영화 무료 상영회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해 놓았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사직공원 방향 도보 10분. 오전 9시∼오후 6시(주말엔 오후 5시). 매달 첫째·셋째 월요일은 휴관.(02)722-1379. ●구로 꿈나무도서관 3만여권의 책과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갖춘 복합 도서관. 일반 ‘도서관’기능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3500여점의 장난감을 무료로 빌려주는 ‘꿈나무 장난감 나라’다. 연회비 1만원만 내면 서울시민 누구나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마음껏 빌릴 수 있다.1주일에 한 점씩만 가능하다.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6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오전 9시∼오후 6시(동절기 오후 5시). 주말엔 오후 5시까지만 연다. 화요일은 휴관.(02)860-2383. ●가양 인표 어린이도서관(www.inpyolib.or.kr) 개인별 독서지도 프로그램이 특징이다. 이 프로그램에 등록한 어린이들은 책을 읽은 다음, 사서와 함께 줄거리나 느낌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도서관은 이 내용을 개인별 독서카드에 기재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취학 전 어린이들과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로 구성되는 독서동아리도 있다. 지하철 2호선 당산역 1번 출구에서 125번 버스 타고 가양7단지 하차. 오전 9시∼오후 6시. 일요일은 휴관.(02)2668-9814. ■ 경기지역 이곳으로 오세요 # 인천 맑은샘 어린이도서관(www.childlib.pe.kr) 1층은 책을 읽는 공간, 지하 1층과 2층은 문화체험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도자기 교실’,‘동시 따먹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지하 1층과 2층이 사실상 이 도서관의 중심이다. 지하철 1호선 백운북부역 출구에서 567번 버스 타고 영아다방 사거리 하차. 오전 11시∼오후 5시. 일요일 휴관.(032)507-1933. # 일산 웃는 책 도서관(www.gigglingbook.net) 그림책 마주이야기(7세 이하), 그림책 창작여행(1·2학년), 동화 깊이 읽기(3·4학년), 꼬마작가(5·6학년) 등 연령별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각각의 과정이 끝난 다음, 개인 문집도 발간한다. 지하철 3호선 대화역 장성중학교 방향 출구에서 성저공원 방향 도보 20분. 정오∼오후 7시.‘놀토’에는 오전 10시∼오후 6시. 토·일요일 휴관.(031)914-9279. # 부천 동화기차 어린이도서관(children.bcf.or.kr) 기차 모양의 서가로 유명한 곳. 기차 안에서 아이들끼리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엄마가 자녀에게 책을 읽어줄 수도 있다. 보라색 망토를 걸친 마녀와 아이들이 함께 독후활동을 하는 ‘마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오후 열린다. 지하철 1호선 송내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032)320-6366. # 광명 청개구리도서실(www.froglib.or.kr)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책 읽어주는 도서실’이 눈에 띄는 프로그램. ‘독서 릴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그램은 광명시 명사들이 참석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하철 7호선 철산역 2번 출구에서 도보 5분. 오전 10시∼오후 6시(주말엔 오후 5시). 월요일 휴관.(02)2619-6148. # 부천 도란도란 어린이도서관(www.gogang.or.kr) 부천시립도서관의 분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요일별, 학년별로 진행되는 독서활동 모임이 자랑. 방학동안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아이를 골라 상을 주는 ‘독서왕 선발대회’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 1호선 부천북부역 출구에서 8번 버스 타고 새보미아파트 하차. 오전 9시∼오후 6시(토요일은 오후 1시). 일요일 휴관.(032)677-9090. # 인천 청개구리 어린이도서관(frogkid.org) 가족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특별 프로그램들이 마련되기도 한다. 지하철 1호선 백운역 3번 출구에서 553번 마을버스를 타고 유진슈퍼 앞 하차. 오전 10시∼오후 4시(일요일 오후 2시). 월요일 휴관.(032)521-2040. # 도토리 미디어 사랑방(dotori.co.tv) 일산의 ‘웃는 책 어린이도서관‘ 지하에 있는 미디어 전문 도서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대상의 ‘웹 배낭여행’, 고학년 어린이들을 위한 ‘이미지 요리사’ 등의 프로그램이 열린다. 엄마들을 위해 ‘우리 동네 뉴스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해 놓았다. 정오∼7시(토요일은 5시). 일요일 휴관.(031)914-1394. # 수원시 어린이도서관 3인방 슬기샘·바른샘·지혜샘 각각 지상 3층 규모의 도서관 내부에 저마다 특화 분야로 내세우고 있는 천문우주, 멀티미디어, 환경에너지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최첨단 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모두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슬기샘(skid.suwonlib.go.kr) 지하철 1호선 화서역 1번 출구에서 92번 버스 경기도체육회관 하차.(031)228-4794. 바른샘(jkid.suwonlib.go.kr) 지하철 1호선 수원역에서 7번 버스 수원순복음교회 하차.(031)228-4764. 지혜샘(bkid.suwonlib.go.kr) 지하철 1호선 수원역에서 2-1번 버스 산남중학교 하차.(031)228-4764.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전시회·관광도 있어요 # 와!사이언스 과학마을체험전 과학의 원리를 실험을 통해 익히는 체험형 전시회.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다. 빛소리마을 등 5개관으로 구성된 전시실에서 실험과 놀이를 통해 과학의 원리를 익힌 다음, 콘서트 장으로 이동해 로켓 발사, 수면 위의 불꽃쇼 등 과학쇼를 감상하며 종합적인 과학학습을 할 수 있는 학습형 전시회다. 다음달 20일까지. 어린이 1만 5000원, 어른 1만 2000원.(02)784-6652. # 만지고 쌓고 배우는 올록블록 놀이터 ‘블록의 모든 것’이라 할 만한 전시회.2500만여개의 블록이 만들어 내는 환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끼워서 만드는 블록은 물론, 물로 붙이고 자석으로 연결하는 블록 등 모든 종류의 블록들을 모았다.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블록 놀이터’.10종류의 다양한 블록들로 관람객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오후 1∼4시에는 ‘레고 높이쌓기’ 등 ‘블록놀이터 올림픽’ 행사도 열린다. ‘블록으로 만든 성(城)’,‘레고기차마을’ 등 볼거리도 많다.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다음달 25일까지 열린다.(02)780-7856. # 서울 4대문안 도보관광 서울시는 학생들이 뜻깊은 방학기간을 보낼 수 있도록 ‘겨울방학맞이 가족·친구와 함께하는 4대문안 도보관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궁궐, 문화재 등을 전문 해설가의 설명과 함께 돌아볼 수 있다. 관광 희망일 3일전까지 ‘dobo.visitseoul.net’에 신청하면 된다. 오전 10시, 오후 2시 등 하루 2회. 궁궐 등 입장료만 본인부담.(02)2171-5452.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오늘의 눈] 철도공사의 ‘아전인수’/장세훈 공공정책부 기자

    철도공사가 직원 본인과 배우자의 부모는 물론, 조부모가 사망했을 때도 기본급의 100%에 이르는 사망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이사회가 관련 규정을 개정하기 전까지는 외조부모가 사망했을 때도 같은 수준의 위로금을 지급했다고 한다.<서울신문 1월23일자 3면 참조> 사망위로금 지급범위가 넓고, 지급액수도 많다는 지적이 일자 철도공사는 ‘공무원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자료를 배포했다.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전환되기 직전인 지난 2004년 단체교섭에서 사망위로금을 공무원 수준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나, 오히려 지금은 지급대상과 액수를 축소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더이상 행정기관이 아니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며, 직원들 역시도 공무원이 아니다. 사망위로금 문제를 지적한 철도공사 이사들도 민간기업을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직원들의 복리후생은 공무원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하면서, 급여는 공무원 이상으로 받겠다고 한다면 유리한 기준에만 맞추려는 ‘이현령 비현령’과 같은 태도다. 특히 잠정치이긴 하지만, 철도공사는 지난해 무려 935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54.2% 늘어난 것이다. 부채 규모도 7조 4891억원에 달한다. 부실 기업에 가깝다. 직원들이 연루된 각종 비리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철도공사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적어도 ‘조직은 가난뱅이, 직원만 부자’인 공기업의 병폐를 끊어야 한다는 얘기다. 올해는 적자 때문에 철도공사 노사가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하겠다거나, 경영의 부담요인인 복리후생의 혜택 범위를 축소하겠다는 등의 자구책을 우선적으로 내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같은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기업은 국민들의 눈에 ‘비호감’일 수밖에 없다. 장세훈 공공정책부 기자 shjang@seoul.co.kr
  • ‘빈민의 아버지’ 佛 아베 피에르 신부 선종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행동하는 성자’로 프랑스 최고의 휴머니스트이자 빈민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아베 피에르 신부가 22일 선종했다.94세. 피에르 신부의 선종 소식에 프랑스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50여년 동안 거리의 부랑자와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 등 빈민들을 도우며 해마다 발표하는 ‘가장 존경하는 프랑스인’에 8차례나 1위에 오른 인물이다. AFP통신 등 프랑스 언론들은 북서부 루앙 외곽에서 말년을 보내던 피에르 신부가 폐렴이 심해져 군병원에 입원했으나 타계했다고 밝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위대한 인물이자, 양심, 선(善)의 화신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피에르 신부가 없는 프랑스는 더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며 국장(國葬)으로 예우하자고 촉구했다. 반세기 동안 사랑과 봉사에 헌신해 온 피에르 신부의 활동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때는 지난 1954년 매서운 겨울 밤. 라디오에 나와 파리의 거리에서 숨진 한 여성의 죽음에 대해 호소하면서부터다. 그는 “친구들이여, 도와주세요. 한 여성이 오늘 새벽 3시에 얼어 숨졌습니다. 전날 받은 퇴거 통지서를 손에 든 채 숨을 거뒀습니다. 오늘 밤까지, 늦어도 내일까지는 담요 5000장과 대형 텐트 300장, 조리기구 200개가 필요합니다.”고 호소했다. 1912년 8월 5일 남동부 리옹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앙리 그루에스란 이름으로 태어난 피에르 신부는 2차 세계대전 때 반(反) 나치 지하 저항 활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전시 지도자 샤를 드골의 형제 한 사람도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독일인에게 체포된 뒤 탈출, 알제리로 피신한 그는 전후 귀국, 교외의 낡은 건물을 수리해 노숙자들을 위한 숙소로 만들었다.1949년에 탄생한 노숙자 자립 시설 엠마우스 공동체가 그것이다. 엠마우스는 현재 50여개국에 회원과 시설들을 가진 국제적인 단체로 성장했다. 피에르 신부는 프랑스 최고 영예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노벨 평화상 후보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저서로는 ‘단순한 기쁨’,‘피에르 신부의 고백’,‘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 등이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갑부의 외동딸이 도둑으로 곤두박질친 사연

    수십억원대 갑부의 외동딸이 ‘양경장수’로 전락한 까닭은? 중국 대륙에 수십억대의 갑부 외동딸이 양상군자로 돌변(?)하는 바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황당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서남부 구이저우(貴州)성 구이저우(貴州)시에 살고 있는 리멍(李萌·가명·17)양.강철 주물공장을 경영하는 수십억원대 재산가의 외동 딸인 그녀는 벤츠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돈 아까운줄 모르고 살아왔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풍족한 편이다. 그런 리양이 지난해 10월 남자친구와 여행을 다니는 등 신나게 놀다가 행탁에 돈이 떨어지는 바람에 두차례에 걸쳐 남의 물건을 후무리다가 그만 덜미를 잡혀 영어(囹圄)생활을 하게 됐다고 화상신보(華商晨報)가 최근 보도했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시 가오신(高新)구 공안분국 형경(刑警)대대에 따르면 리양은 지난해 10월 한 대학 영빈관에 몰래 들어가 현금 2000위안(약 24만원)과 MP3를 훔친데 이어,1주일 뒤인 21일 모 대학 예술학과 여학생 휴대전화를 후무린 혐의를 받고 있다. 형경대대 조사 결과 그녀의 아버지는 구이저우성 구이저우시에서 수천만위안(수십억원)을 투자한 강철 주물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지방 갑부였다.리양의 아버지는 사업에 너무 바빠 외동딸이지만 관심은 소홀했다. 그녀가 절도범으로 급전직하할 조짐은 1년 전인 지난해 초부터 서서히 나타났다.리양은 당시 컴퓨터 채팅을 통해 ‘꽃미남’의 한 남학생을 사귀게 됐다.이들 사는 곳이 너무 멀어 만나지는 못하지만 매일 채팅만으로도 사랑은 새록새록 깊어졌다. 지난해 9월 어느날,리양은 아버지와 대판거리로 말다툼을 벌였다.그녀의 아버지는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쓸데없이 채팅이나 하고 거리를 쏘다닌다고 꾸중했기 때문이다.화가난 그녀는 무작정 집을 뛰쳐 나갔다.가출을 한 것이다. 그때 리양은 6800위안(81만 6000원)이 든 아버지가 준 저금통장을 가지고 있었다.곧바로 남자친구가 있는 랴오닝성 진저우로 날아간 그녀는 남친을 만나 상하이(上海)·항저우(杭州) 등 관광을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바닥을 드러냈다.남친은 집으로 돌아가고 무일푼이 된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을 만들 방법이 없었다.구걸도 해봤으나 익숙하지 않은 탓에 하루 밥 먹기가 너무너무 어려웠다. 이에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양경장수가 되는 길 밖에 없었다.10월 13일 현금 2000위안과 MP3를 훔치는데 성공한 그녀는 여학생 휴대전화를 훔치는 등 두차례에 걸쳐 ‘사건’을 쳤다. 하지만 그 이상은 성공하지 못했다.현금과 MP3를 잃어버린 모 대학 영빈관 관계자가 도난 신고를 함으로써 공안당국의 수사망에 올라 끝내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리양은 형경대대 조사에서 “나의 한달 용돈은 보통 사람들의 1년 쓰는 돈과 맞먹는다.”며 “당신들 벤츠를 몰아본 적이 있느냐.”는 등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여 공안 관계자들을 당혹케 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좌측통행이 국가경쟁력 떨어뜨려”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한 명인 박근혜 전 대표가 새해 들어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외모와 말투부터 ‘전투 모드’로 확 바뀌었다. 외모는 특유의 고고하고 단아한 모습에서 탈피해 ‘가난한 집안의 억척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특강이나 인터뷰의 내용과 수위도 한층 강해졌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로 일축,‘참 나쁜 ○○’ ‘참 좋은 ○○’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낸 데 이어 18일 자유시민연대 초청 특강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이날 특강에서 청와대와 여권을 겨냥해 “국민은 모두 우측통행을 하는데, 자기들만 좌측으로 가면서 국민이 틀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전세계가 모두 우측통행을 하고 있는데, 자신들만 좌측통행을 하면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이어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섰던 우리나라가 지금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며 “이는 결국 국가 지도자의 문제”라고 몰아세웠다. 그는 선진국 진입 과제로 ▲자유민주주의 수호 ▲무너진 공권력과 국가기강 확립 ▲국민화합 ▲올바른 리더십 등 4가지를 제시한 뒤 “더 이상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면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다음 정권은 반드시 올바른 국가관과 국정능력을 갖춘 선진화세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 사태와 관련,“법 위에 ‘떼법’이 있다.”며 “강성·귀족·비리 노조가 이 땅에 더 이상 발붙이게 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공공의 적’일 뿐”이라고 맹비난했다. ‘후보 검증’에 대해서도 더욱 톤이 높아졌다. 즉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예방주사나 백신을 맞는 기분으로 미리 우리가 자체적으로 거를 것은 거르고 의문점이나 궁금한 것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사실상 경쟁자인 이명박 전 시장을 겨냥했다.특히 그는 “당내 경선이 첫 번째 관문이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가 있고, 그 상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칠 것”이라고도 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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