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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듯한 미소 남기고…김수환 추기경 선종

    따듯한 미소 남기고…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선종(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향년 87세.  천주교 서울대교구 고위 관계자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추기경이 이날 6시12분 선종했다고 밝혔다.김 추기경의 안구 등 장기는 고인의 뜻에 따라 기증될 예정이다.  앞서 서울대교구 한 관계자는 이날 오후 4시반부터 관계자들이 김 추기경의 임종에 대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밝혔다.서울대교구는 명동성당에서 고인의 장례미사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은 지난해 8월29일부터 건강 악화로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해 6월11일 조촐한 생일파티가 고인이 세상에 공개된 마지막 모습이다.이후 끊임없이 위독설이 나돌았고 수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최근에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김 추기경은 입원 이후에도 생명연장 장치 사용을 거부해왔으며,의식불명 상태에서 의료진이 매일 응급 처치한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 큰 고통 없이 영면한 것으로 전해졌다.주치의였던 강남성모병원 정인식 교수는 “추기경께서는 노환에 따른 폐렴 합병증으로 폐기능이 떨어져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 호흡했다.”면서 “선종때까지 큰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추기경께서는 평소 늘 하시던 말씀대로 임종을 지켜본 교구청 관계자들과 의료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고 덧붙였다.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고인은 1951년 사제서품을 받았고,초대 마산교구장(1966년)을 거쳐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정년(75세)을 넘긴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교회와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다.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곧 깊은 관심을 가졌던 김 추기경은 독재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1970년에는 3선 개헌·유신 등 박정희 정권의 독재 행보에 강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정권의 거센 압력 속에서도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고자한 고인의 신념에 힘입어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김 추기경은 또 장애인과 사형수·빈민 등을 만나 소외받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농민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노력했다.19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기구로 설립,복지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고인은 1999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등 2권의 책을 발표했다.이 책에서 김 추기경은 “가톨릭 최고의 성직자로서 예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또 “이웃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지 못함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 지난 1966년 주교서품을 받으면서 사목표어로 정한 이 말 처럼 김 추기경은 자신의 신념을 평생에 걸쳐 실현하고 따뜻한 미소를 남긴 채 떠나갔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김수환 추기경 약력  ▲1922년 5월8일(음력) : 대구 출생  ▲1941년 : 서울 동성상업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 상지대 입학  ▲1942년 : 상지대 문학부 철학과 진학  ▲1944년 : 2차 대전으로 학업 중단  ▲1947~51년 :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 신학전공  ▲1951년 : 사제서품 및 대구 대교구 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3년 : 대구 대주교 비서 신부  ▲1955~56년 : 대구 대교구 김천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6~63년 : 독일 뮌스터대 대학원 사회학전공  ▲1964년 : 주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  ▲1966년 : 마산교구 주교 서품 및 마산 교구장 착좌  ▲1967년 이후 : 교황청 세계 주교 시노드(대의원회의)에 한국대표로 6차례 참석  ▲1968년 : 서울 대주교 승품 및 서울 대교구장 착좌  ▲1969년 :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 서임  ▲1970~75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1차 역임)  ▲1970~73년 :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5~98년 : 평양교구장 서리  ▲1981~87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2차 역임)  ▲1998년 : 서울대교구장 은퇴,아시아 주교회의 공동의장  ▲1998~99년 : 실업극복국민운동 공동위원장,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국민재단 초대 이사장  ▲2001년 : 사이언스 북 스타트운동 상임대표  ▲2003년 : 생명21운동 홍보대사  ▲2009년 2월16일 : 선종    ●김수환 추기경의 명예학위  ▲1974년 :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1977년 : 미국 노틀담대 명예법학박사  ▲1988년 : 일본 상지대 명예신학박사  ▲1990년 : 고려대 명예철학박사,미국 시튼홀대 명예법학박사  ▲1994년 : 연세대 명예신학박사  ▲1995년 : 대만 푸젠 가톨릭대 명예철학박사  ▲1997년 : 필리핀 아테네오대 명예인문학박사  ▲1999년 : 서울대 명예철학박사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공교육 아름다움 일깨운 ‘임실 혁명’ 대학생 직장인 눈물겨운 부채탕감 비책 ”고용유지도 힘든데 나누긴 뭘” ’워낭소리’ 성공했지만 갈길 먼 독립영화
  • “아파도 진료받을 꿈조차 못꿨는데”

    “아파도 진료받을 꿈조차 못꿨는데”

    │앤젤레스(필리핀) 한찬규특파원│“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필리핀 마닐라 북쪽 앤젤레스시 빈민촌에 사는 제니퍼(22·여)는 낯선 한국인 대학생의 손을 잡고 ‘생큐’를 연발했다. 3개월 된 그의 딸 옌지칼이 이 대학생들의 도움으로 생후 첫 진료를 받았다. 옌지칼은 두드러기, 반점 등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는 데다 입이 헐어 모유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제니퍼는 지독한 가난으로 병원 찾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이곳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는 대구 보건대 학생들은 옌지칼을 앤젤레스대학 부속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도록 도와주었다. 또 비슷한 피부병을 앓는 옌지칼의 언니(2)도 이날 함께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학생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립병원과 연결했다. 체재비 중 일부를 모아 약값으로 쓰도록 제니퍼에게 전달했다. 대구보건대 20여명은 앤젤레스대와 레지나카렐리대 등 필리핀 자매대학 두 곳에서 지난달 29일부터 16일까지 의료봉사를 했다. 이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빈민촌 가정을 찾아 주민들의 혈압을 재고, 마사지를 해주며 요가와 스트레칭 방법을 전했다. 또 예방 의료상식을 가르치고 말벗도 됐다. 빈민촌 주민 왈슨(46)은 “이곳에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없는데 한국 대학생들이 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간호과에 입학한 이강하(37·간호과 2)씨는 “짧았지만 직장생활에선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을 했다.”며 “이를 통해 환자들의 아픔을 나누는 참된 의료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송다예(19·물리치료과)양은 “해외 물리치료사로 성공하는 것이 꿈인데 이번에 현지인의 생활을 경험하며, 외국 병원에서 실습을 하게 돼 기뻤다.”고 밝혔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지원자들이 넘쳐 대학측이 자체 토익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했고, 성적순으로 프로그램을 선택토록 해 캠퍼스에 자극을 주었다. 한편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은 15일 봉사활동 현지를 방문해 학생들을 격려했다. cghan@seoul.co.kr
  • 與 변호사 시험법안 ‘혼선’

    한나라당이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부 반란표에 의해 부결된 변호사 시험법 제정안의 처리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윤선 대변인은 16일 “모든 상황을 고려해 합리적 제도를 마련하겠다.”면서 “법사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검토한 뒤 의총을 거쳐 당론을 확정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당 지도부에서도 이견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 조 대변인은 “이 법과 관련해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은 지도부 개인의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간단치 않다. 논의의 초점은 응시 자격·횟수·기간에 제한을 두느냐 하는 문제로 모아진다. ▲응시 자격을 로스쿨 졸업생에게만 부여할지, 독학생에게도 부여할지 ▲로스쿨 졸업 후 5년 이내 3회까지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할지 등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사견을 전제로 “독학생이 시험을 칠 수 없는 구조는 시정이 필요하다.”면서 “선발 인원의 최소 10% 정도는 독학한 사람들에게 할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의 박민식 의원도 “독학생에게도 5~10% 정도 제한적으로 응시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스쿨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응시 횟수 제한은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마디로 지난 17대 국회에서 이런 사항을 모두 고려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마당에 뒤늦은 문제 제기는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법사위 한나라당 간사인 장윤석 제1정조위원장은 “로스쿨을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응시 기회를 주자는 것은 로스쿨의 도입취지와 맞지 않다.”면서 “그렇게 되면 사법고시의 재탕과 다름 없다.”고 강조했다. 학비가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 장 의원은 가난한 학생들도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 제도가 마련돼 있음을 지적했다. 다만 ‘고시 낭인’을 예방하기 위해 ‘5년내 3회’로 제한한 응시횟수는 일부 조정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낮은 자의 삶 실천한 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낮은 자의 삶 실천한 시대의 성자

    한국 천주교의 최고 성직자라는 명성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살며 우리의 곁을 지켰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용기있는 발언으로, 때로는 ‘무거운 침묵’을 지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 온 시대의 양심이었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를 품고 시대의 메신저로서 사회적 지침을 제시해온 그는 단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 정의와 진리에 바탕을 둔 인간성 회복에 앞장선 휴머니스트였다. 병인박해로 순교한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독실한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아버지 김영석과 어머니 서중하 슬하의 5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옹기점과 농업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부모 아래서 유아세례를 받아 자랐지만 원래 사제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남달리 자식에게 열정을 가진 모친은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사제가 되기를 권했지만 정작 소년 김수환은 썩 내켜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남들처럼 처자를 거느리며 평범한 세상을 살아갈 요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친의 권유를 따라 결국 형(동한)과 함께 성직의 길을 택했다. 보통학교 5년 과정을 졸업하고 1933년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한 게 성직자 인생의 첫걸음. 서울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입학했으며 1941년 동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그해 4월 일본 유학을 떠났다. 조지(上智)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사제의 길을 놓고 망설임이 적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나라 잃은 민족적 현실에의 고민이었다. 조지대학의 게페르트 신부가 “정치가가 될 것이냐, 신부가 될 것이냐.”고 물었을 때, “민족이 저를 부른다면 정치가라도 되겠다.”고 대답했던 것을 보면 당시 갈등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성직보다 항일 독립투쟁에 더 마음을 두던 중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44년 학병에 징집되어 섬에 끌려갔다. 강제로 일본 국가를 부를 때마다 서러움이 사무쳐 미군에 투항할 생각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듬해 전쟁이 끝나 조지대에 복학, 1946년 12월 부산항에 도착했고 곧바로 서울의 성신대학에 편입해 4년 뒤인 1951년 9월15일,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남의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던 학병 시절 체험한 전쟁속 인간의 잔학상은 사제로서 “목숨 바쳐 지킬 가치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다. 경북 안동 본당에서 사목을 시작해 대구교구장 최덕홍 주교의 비서, 해성병원 원장을 거쳐 1955년 6월 경북 김천본당 주임 겸 성의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전임됐고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신학·사회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1년 8개월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1966년 44세의 김 신부가 마산교구 설정과 함께 초대 교구장에 임명돼 주교 성성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가졌을 때 택한 사목표어가 바로 그 유명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이다. 이 표어는 평생 소외받고 어두운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몸과 마음을 둔 채 어길 수 없었던 큰 나침반이었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을 때의 취임인사도 바로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교회 쇄신과 현실 참여로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짐대로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에 초점을 맞춰 살면서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부조리한 정치사회 현실을 향한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아 교회 안팎에서 ‘인권 옹호자’의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상계동과 목동의 철거민 주거지를 직접 방문했고 성탄 전야 미사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집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19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 기구로 설립해 놓았다. 그 때문에 서울대교구의 복지 시설은 200여 개로 크게 늘었다.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가 사임한 다음해인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면서 대주교로 승품, 이후 30년 재임기간 중 서울대교구에서 6명의 주교를 탄생케 했고 48개이던 본당이 200여개로 늘어나는 교세확장도 일궜다. 한국 천주교사상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된 것은 서울대교구장 착좌 이듬해. 나이 47세로, 전세계 추기경 136명 가운데 최연소 추기경이 됐던 그는 2차례에 걸쳐 총 12년동안 한국 주교회의 의장을 맡은 것을 비롯,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FABC)를 출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실에의 냉정한 처신을 비켜나지 않으면서도 늘상 이웃집 아저씨, 할아버지 같은 살가운 정과 웃음을 달고 살았던 김 추기경. 그는 떠날 때도 정확히 알고 지킨 인물이었다. 75세가 되던 1997년 교회법 제401조에 따라 로마 교황청에 서울대교구장 사임 의사를 단호히 밝혔다. 교황청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거듭 사임의사를 밝힌 끝에 마침내 이듬해인 1998년 5월29일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직에서 물러났다. 목자 생활 47년 만이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현대사 고비마다 버팀목으로… 한국 민주화 큰 횃불

    [김수환 추기경 선종] 현대사 고비마다 버팀목으로… 한국 민주화 큰 횃불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 안의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긴 ‘큰 횃불’로 인정받는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던 인사들의 인권과, 정의를 위해 힘겨운 투쟁을 벌였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양심의 울림과 행동을 끈질기게 이어갔던 투사였다. ●박정희 독재정권 비판 시국 메시지 김수환 추기경이 인권과 민주화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삼도직물 사건부터. 당시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불거진 이 사건을 놓고 추기경은 주교단 공동성명을 통해 교회가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정당함을 전격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 차원에서 낸 최초의 성명서로 기록된다.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와 인권에 개입하기 시작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과 유신헌법 선포, 긴급조치 등 독재와 부정부패가 극성일 무렵 성탄절 미사를 통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고 나선 것은 유명하다. 당시 KBS를 통해 방송된 미사 강론에서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인가.”라고 비판했으니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1971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시절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는 공동사목교서를 발표한 데에 이어 이듬해 ‘평화의 날’을 맞아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선포, “불의와 부정부패, 부조리, 인권탄압, 독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일인독재체제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그 유명한 시국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그 이듬해인 1972년 8월이었다. “인권과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선 정치적 민주화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을 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춘 정치”를 거듭 촉구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이다.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1974년 구속된 사건은 유신체제하 독재정부와 천주교회의 대립 차원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마다 추기경은 “우리 민족이 처한 아픔이자 교회의 아픔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직선제 주장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1979년 유신 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국가권력과의 대립을 거듭해야만 했다. 1976년 명동 3·1절 기도회, 1978년의 전주교구 7·18기도회 등에서 사제들이 잇달아 구속되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와중에서 모든 신자들에게 ‘광주를 위한 특별기도’를 요청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 부산의 미 문화원 사건, KBS시청료 납부 거부운동, 언론통제 등 군부독재에서 빚어진 사회문제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1986년 군사정권에 개헌실시를 촉구한 데 이어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를 비판,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주장했다. 그 끝에 나온 6·29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실시는 결국 문민정부를 등장시킨 큰 발판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KBS에 ‘K’가 없다/김무곤 동국대 교수

    [열린세상] KBS에 ‘K’가 없다/김무곤 동국대 교수

    KBS에 ‘K’가 빠졌다. KBS(Korean Broadcasting System)의 K는 ‘코리안’인데도 KBS가 송출하는 방송프로그램에는 ‘대한민국’이 보이질 않는다. ‘국가기간방송’을 표방하는 KBS는 국민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는가. 텔레비전 화면 귀퉁이의 방송국 표지만 가리면 ‘국가기간방송’은커녕 완전히 다른 나라 방송이다. 오히려 방송프로그램의 전후에 방영되는 민간기업의 상업광고가 “힘내라.” “잘 될 거야.”하고 국민을 격려하고 있는 동안 KBS가 만든 프로그램들은 사오정처럼 생뚱맞고, 소가 닭 쳐다 보듯 엉뚱하다. 그중에서도 드라마가 가장 황당하다. 처음 본 여성에게 파락호 짓을 하다가 뺨을 맞은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고 재벌회장이 방송국 앵커우먼의 뺨을 때리거나(‘미워도 다시 한 번’), 가난한 여고생이 재벌 아들인 남학생 집에서 자고 와도 그 여학생 부모가 되레 기뻐하거나(‘꽃보다 남자’), 사통(私通)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국왕을 몰아내려다 실패한 고려의 한 왕후를 거란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구국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게다가 그 내용은 역사의 기록과 전혀 다르다. 이웃 일본의 공영방송 NHK를 보자.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 ‘오싱’은 전후(戰後)의 가난과 고통 속에서 꿋꿋이 버텨온 일본국민에게 바치는 공감과 존경의 헌시(獻詩)였다. 그뿐이 아니다. 전후 수십 년간 방영되어온 NHK 역사대하드라마는 동시대를 규정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패전으로 인한 열패감에 젖어 있던 1950년대에는 전국시대 무장(武將) 오다 노부나가를 내세워서 강력한 리더십의 전형을, 고도성장기로 접어든 1960, 70년대에는 일개 하인에서 최고권력자의 자리까지 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혈통이나 학벌이 없는 사람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신화를, 저성장기인 1980년대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통해 인내(忍耐)와 수성(守成)의 미학을 그렸다. 글로벌화를 요구하던 시대에는 최초의 국제인 사카모토 료마를 찾아내고, 버블의 조짐이 보이던 1993년에는 후지와라 일가의 영화(榮華)와 멸망을 그린 ‘불꽃이 타오르다’를 통해 버블 붕괴를 경고했다. 소득격차사회의 폐해가 속출하던 2004년에는 메이지유신 직전 구체제였던 도쿠가와 막부(幕府)를 수호하다 전멸당한 ‘신센구미(新選組)’를 등장시켜 사회변혁기의 패배자집단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 팍팍한 2009년에 KBS가 드라마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억울하면 재벌이 되라.”는 것인지, “돈 많고 잘생기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것인지, “나라가 외세의 침략 앞에 놓였으니 여자도 나가 싸워야 한다.”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KBS 드라마의 어떤 내용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전한 정서를 함양하고 올바른 품성을 심어주며 미래에 대한 꿈을 갖도록 노력(KBS 방송강령 제12항)”한 것인지, “‘다양성’을 바탕으로 시청자 선택의 폭을 확대하여 상업방송의 선정적 프로그램으로부터 국민정서를 보호하는 정신적 그린벨트를 구축(KBS 편성원칙)”하려 한 것인지 우리는 알고 싶다. 지금의 방송경영환경에서, 또 이런 경제난국에 시청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바 아니다. 시청률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시청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이건 아니다. 이 시점에 공영방송이 할 일이 아니다. 시청자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알량하고 음험하다. KBS가 자기 회사 이름에 들어 있는 코리안(Korean)을 대체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그 코리안(Korean)들은 참으로 답답하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 용산참사 여진 ‘일파만파’

    용산참사의 여진이 정치권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야권은 15일 청와대의 홍보지침 사건이 전대미문의 청와대발(發) 여론조작 시도라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촉구했다. 일개 행정관 차원에서 홍보지침을 경찰청에 내려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윗선을 밝혀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권은 정치적 공세로 일축하면서도 불똥이 어디로 튈지 전전긍긍하고 있다.●메일 발송 이성호 행정관 사의 표명파장이 확산되자 ‘용산참사의 국면전환을 위해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홍보지침 이메일을 경찰청에 보낸 홍보기획관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이성호 행정관은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이 행정관은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아들이다.민주당 서갑원 원내 수석부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보지침 사건은) 연약한 여성을 죽인 연쇄살인마를 홍보해 가난한 시민의 죽음을 묻으려고 한 범죄행위”라면서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단죄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부대표는 “참여정부 때 ‘박근혜 패러디’ 문제가 불거졌을 때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행정요원이 직위해제됐고, 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청와대 행정관도 직위해제됐다.”고 지적했다.경찰 간부가 ‘용역업체가 진압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도록 현장에 동원된 경찰에게 강요했고, 검찰이 화재 발생지점에 대한 철거민의 진술을 왜곡했다는 의혹도 이날 제기됐다.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구속된 철거민 김모씨의 진술에 근거했다며 발화지점을 망루 3층 계단이라고 발표했다.”면서 “하지만 김씨는 심문과정에서 ‘발화’라는 용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심문 당시 검사가 ‘망루 3층 발화지점을 봤느냐.’고 추궁하자 김씨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옆에 있던 김씨의 변호사가 ‘불이 거기서 시작된 것이냐.’라고 다시 묻자 ‘거기서 불빛이 보였다는 말이다.’라고 정정했다.”면서 “심문조서에도 정정된 진술이 기재됐지만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 내용을 무시했다.”며 은폐·왜곡 의혹을 제기했다.●“경찰 허위 진술 강요 의혹”진보신당은 “신두호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장이 당시 용산참사 현장에 투입된 경찰에게 ‘용역을 못 봤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강요했다.”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편지가 지난 12일 당 대표 앞으로 제보됐다며 여권을 압박했다.한나라당은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윤상현 대변인은 이날 “(홍보지침은) 청와대 조사에서 이미 개인 차원의 돌출행동임이 밝혀졌다.”면서 “계속 문제 삼으려는 것은 정치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구혜영 주현진기자 koohy@seoul.co.kr
  • 히딩크 “내년 남아공 월드컵 후 은퇴”

    거스 히딩크(64) 러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이 내년 남아공 월드컵을 마치고 은퇴하겠다고 깜짝 선언했다.히딩크 감독은 15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미러와 가진 인터뷰에서 “월드컵 뒤 핼리데이비슨(오토바이)을 타고 세계를 돌고 나이키 홍보대사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으로 탄자니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할 것이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내게 접근해 왔다.”면서 “그들은 축구도 하고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내게는 의미 있는 것”이라며 은퇴 후 계획을 설명했다.이어 “첼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원한다. 그게 내가 구단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라면서 4개월간 런던에 머물며 매일 첼시를 지휘할 것이라고 전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15세 제2의 폴포츠 “저도 왕따였어요”

    15세 제2의 폴포츠 “저도 왕따였어요”

    왕따, 가난 등의 시련을 딛고, 영국 음악계의 샛별로 떠오른 앤드류 존스턴(15). 때묻지 않은 맑고 순수한 목소리로 ‘꼬마 폴포츠’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전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을 방문해 노래하고 싶다는 이 열다섯살 소년을 이메일로 만났다. 존스턴은 폴포츠와 여러가지로 닮은점이 많다. 휴대폰 외판원이었던 폴포츠는 생활고와 병마를 이겨내고 유명 오페라 가수가 되었고, 둘은 모두 영국의 대표적인 스타발굴 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를 거쳤다. 지난해 5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존스턴이 예선에서 미사곡 ‘Pie Jesu’(자애로운 예수님)를 청량한 목소리로 불렀을 때 독설가 사이먼 코웰이 매료된 표정을 지었고, 일부 심사위원과 관객은 눈물을 흘렸다. “결선에서도 같은 곡을 불렀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들 중 하나에요. 비록 고음이긴 하지만, 제 목소리도 언젠간 변할텐데 그전에 최대한 많이 그 목소리를 불러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투명한 보이 소프라노의 진수를 자랑하는 존스턴은 칼라일 대성당 수석 성가대원이 된 이후, 또래들에게 ‘계집애처럼 노래하는 게이 성가대원’이라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또한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유아시절 내내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너무 심하게 놀림을 받아 그냥 밖에 나가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어요. 제가 고음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성가대도 여러번 그만뒀죠. 하지만 그때 어머니께서 이런 문제일수록 숨기고 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어요.” 존스턴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다시 성가대에 나갔고, ‘브리튼즈 갓 탤런트’ 출연 역시 어머니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자신의 이름으로 신청서를 접수해 놓았다는 것이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 결승에서 재능을 알아본 사이먼 코웰은 바로 그와 계약해 앨범을 내놓을 수 있었다. 데뷔 앨범 ‘원보이스’에는 ‘피에 예수’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스노우맨’의 주제가 ‘워킹 인 디 에어’(Walking in the Air), 에릭 클랩튼의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 등이 담겼다. “결승전에서 3등을 한 것만해도 전 참 감사했어요. 처음 시작할 땐 여기까지 오리라고 생각지 못했거든요. 제가 노래를 부름으로써 용기와 위안, 그리고 평화를 얻었듯 제 앨범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 역시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존스턴은 실제로 폴포츠를 만났다고 한다. ‘꼬마 폴포츠’는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저 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또 그래서 어쩌면 저보다 더 힘들었던 시간이 길었을 텐데, 끝까지 꿈을 이뤄내신 걸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2의 폴포츠’라고 그와 비교되는 것 자체가 제겐 기분좋고, 감사한 일이에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씨줄날줄] 착한 초콜릿/함혜리 논설위원

    밸런타인데이에는 친구,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풍만하며 깊은 맛을 내는 그런 사랑을 기약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달콤한 초콜릿에 담긴 아동노동 착취의 불편한 진실을 안다면 그다지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의 70%는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된다. 특히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는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카카오의 최대 생산지다. 이 나라에서는 약 30만명의 어린이들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가 9∼16세의 어린이들인데, 농장주들이 카카오의 원가를 낮추려고 임금이 낮은 어린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웃나라에서 인신매매로 팔려 온 어린이들도 상당수 있고 빚을 진 부모로 인해 노예로 전락한 아이들도 있다. 이 어린이들은 학교는 갈 생각도 못 하고 매일 카카오 농장에서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한다. 물론 노동의 대가는 형편없다. 어린이 노동자들의 땀이 밴 카카오 콩은 중간 상인을 거쳐 수출회사로 넘어간다. 수출회사는 구입한 가격의 두 배가 넘는 값에 카카오 콩을 다국적 식품기업에 판매한다. 이 다국적 기업들은 카카오 콩을 1차 가공해 초콜릿의 원료로 만들어 세계 각국의 제과업체들에 되판다. 이렇게 들여온 원료에 설탕, 향료, 유화제 등을 배합하면 우리가 먹는 초콜릿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초콜릿 가격이 형성되지만 애초의 카카오 생산자들 손에 쥐어지는 것은 초콜릿 가격의 5%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보다 나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공정무역(Fair trade)이다. 기업의 절대적 이윤을 추구하는 무역 형태가 아니라 생산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생산자들에게 합당한 이윤을 돌려주는 것이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는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착한 초콜릿’이 단연 화제다. 직수입한 공정무역 초콜릿도 불티나게 팔리고, 아동 노동 없이 콜롬비아 농가를 지원해 생산된 초콜릿도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년에 한 번뿐이지만 소비자들의 착한 선택이 세상을 조금은 밝게 만드는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대통령이 된 통나무집 소년 링컨(러셀 프리드먼 지음, 손정숙 옮김, 비룡소 펴냄) 미국에 링컨 대통령이 없었다면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링컨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했던 성경에 한 손을 올리고 취임선서한 것은 노예해방을 이뤄낸 링컨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 짙게 깔려있다. 12일은 링컨 탄생 200주년. 가난한 개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노예해방을 통해 분열 위기에 있는 나라를 통합해낸 위대한 대통령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논픽션 청소년 소설의 대가로 평범한 위인전에 다양한 취재와 사진자료로 생생함을 보탰다. 1만 1000원. ●지도는 언제나 말을 해(김희경 글·크리스티나 립카-슈타르바워 그림, 논장 펴냄) 알쏭달쏭 퍼즐처럼 보이는 1800년전 로마인들이 만든 지도가 하는 말. “우리 인생도 1200 조각의 퍼즐이 아닐까?” 16세기 네덜란드 사람 오르텔리우스가 그린 일본지도의 당돌한 선언. “코레아는 섬일지도 몰라. 그까짓 것 대충 그리지, 뭐.” 봐도 봐도 헷갈리는 고대 지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도 속에 담긴 철학, 역사가 보인다. 이 책은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한국 작가와 폴란드 그림작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다른 나라 문화를 존중하는 열린 시각이 바탕이 된 핵심을 뚫는 문장이 각 지도의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끝에 각 지도에 대한 보충 설명과 함께 원본 지도도 실어 다양한 정보도 주고 있다. 1만 3000원.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김혜리 글·그림, 사계절 펴냄) 왜 절에는 뱃속이 텅 빈 나무로 된 커다란 물고기가 달려 있을까. 왜 스님들은 아침저녁으로 물고기의 배를 두드릴까. 불교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목어’에 관한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그림책. 작가는 나무 물고기의 탄생 배경과 쓰임새를 불교 가르침에 맞게 그럴듯하게 꾸며냈다. 주인공인 동자승 ‘멋대로’의 이야기는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으나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세상살이의 교훈도 준다. 고무 판화로 제작된 그림은 인물의 표정과 상황 묘사가 생생해 읽는 재미를 한껏 높여준다. 98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Healthy Life] (10) 火病

    [Healthy Life] (10) 火病

    분노나 절망의 극한 상황에서 느끼는 보편적 감정을 일반인들은 ‘미칠 것만 같다.’거나 ‘환장하겠다.’고들 말하곤 한다. 이처럼 정상적인 심리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분노나 절망, 극한의 스트레스가 앙금처럼 가슴에 쌓여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가 바로 화병(火病)이다. 우리 민족, 특히 여성들은 화를 겉으로 표출하고 풀어내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사고와 행동을 제한했던 가부장적 사회의 영향에다 모든 문제를 내면으로 삼키려는 유교적 사회정서가 작용한 결과이다. 이런 감내의 문화는 화병을 일상적 질환으로 만들었다. 쏟아내지 못하는 절망과 분노감이 응축되어 화석처럼 흉금에 병을 만들고 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병은 병명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학자들의 보고에 따라 국제적으로 공인된 틀림없는 질환이다. 1996년 미국 정신과협회는 화병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정신질환의 일종인 ‘문화결함 증후군’으로 공인했다. 물론 국제적인 명칭 표기도 ‘Hwabyung(화병)’이다. 이런 화병의 실체를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함봉진 교수로부터 듣는다. ●화병을 의학적으로 규정해 달라. 화병은 예전부터 민간에서 흔히 통용된 개념이다. 주로 대인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그에 대한 분노반응으로 표출되는 심리·신체적 증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심리·신체적 증후군을 1977년 무렵부터 일부 의학자들이 의학적 실체로 보기 시작했고, 국내·외에 발표하면서 국제 의학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질병을 ‘자신의 통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개인의 행복과 안녕이 파괴되는 특수한 상태’라고 정의한다면 화병은 넓은 의미에서 질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 국제적으로 합의된 진단기준이 없을 뿐 아니라 엄격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 특성과 예후, 치료법 등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온전한 의학적 질병이라고 말하기에 주저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흔히 화병을 병이라기보다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이상반응 정도로 이해하는데…. 그런 점에서 화병은 우울증과 유사하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우울감은 한 개인에게 생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발생하는 자연적인 정신증상이다. 하지만 의사가 우울증이라고 진단한 경우라면 그 심각성과 유병 기간이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며, 개인의 행복과 직업·대인관계·사회생활에서 특정 수준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화병은 억울하거나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이 없는 경우에 흔히 나타나는 정신 또는 신체증상으로, 주관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직업·사회적 영향이 미미하며, 스트레스가 제거되면 금방 소멸되는 특성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 인식과 달리 정신과에서 말하는 화병은 심각성과 기간이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며, 개인·사회생활에 명백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이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 중에는 자해·자살 같은 극단적 행동을 하거나 지속적이고 심각한 심리적·신체적 증상으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많은 장애를 겪게 된다. 물론 화병과 스트레스로 인한 정상적인 심리반응을 일반인이 구별하기는 힘들므로 강한 심리적 고통이 지속된다면 전문가의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화병의 일반적인 증상은 무엇인가. 화병은 분노·불안·우울·건강염려증·강박증 등의 정신과적 증상에 답답함·열기·입마름·치밀어오름·두근거림과 목이나 가슴의 덩어리 뭉침·한숨 등과 같은 신체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증상은 우울증, 신체형 장애,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장애에서 흔히 관찰되기 때문에 화병은 기존의 정신과적 장애와 관련이 많은 증후군으로 본다. ●의학적 진단 기준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증상은 제시할 수 있으나 진단기준은 아직 없다. ●화병의 원인을 세분화해 제시할 수 있을까. 감정표현을 절제하고, 참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 문화에서 우울증 등의 정신과적 장애가 화병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편·시부모와의 관계, 가난과 고생, 사회적 좌절 등 성장 이후 또는 결혼 이후의 외적 요인에 의해 주로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물학적 발병기전에 대해서는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원인을 규정할 수 있다면 발병 경로도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화병은 충격기-갈등기-체념기의 과정을 밟아 진행되는데, 이러한 단계는 연쇄적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여러 단계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보통 충격기에는 불안증상이, 체념기에는 우울증상이 주를 이루며, 갈등기에는 불안·우울증상이 비슷한 빈도로 나타난다. ●화병으로 사망에 이르거나 신체·정신적으로 치명적인 병증 또는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는가. 화병이 우울증처럼 치명적 증후군은 아니나 불안·우울 등의 증상으로 인해 자해나 자살 같은 심각한 문제는 당연히 발생할 수 있다. 운동 등 건강을 유지하려는 활동이 줄고, 흡연·음주 등에 의존하게 되며, 당뇨나 고혈압 같은 질환을 통제하지 못해 신체적 악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 ●화병의 종류와, 각 종류에 따른 임상적 특성은 무엇인가. 원인에 따른 특징적인 증상은 제시되기도 하지만 체계적으로 분류가 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임상적 특성도 특정하기 어렵다. ●일반인을 위한 자가진단법이 있는가. 자가진단법 역시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앞서 언급한 증상이 참고가 될 것이다. ●국내 유병률과 발병 추이는 어떠며, 또 발병 추이에 나타난 특이성은 무엇인가. 화병의 유병률은 4.2% 정도이고, 중년 이상의 여성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연구가 2000년 이전에 수행돼 정확한 발병 추이를 추정하기도 쉽지 않다. ●치료는 어떻게 하는가. 항우울증 약물 치료 등에 일부 반응한다고 알려져 있어 발병 기전 또한 우울증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울증 치료와 유사하게 약물치료와 인지치료를 비롯한 정신치료가 효과적이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80년대도 철거민 5명 죽는 참사 없었는데…”

    “80년대도 철거민 5명 죽는 참사 없었는데…”

    “80년대에도 철거민 5명이 죽는 사고는 없었는데….” 말문을 잊지 못하고 내쉰 한숨에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서려 있었다. ‘철거민의 대부’ 고(故) 제정구 의원(1944~1999·한나라당)의 부인이자 작은자리 종합사회복지관 이사장인 신명자(57)씨는 “후진적인 재개발 방식은 남편이 있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며 ‘용산 참사’를 비판했다. 제 의원의 사망 10주기인 2월9일을 하루 앞둔 8일 그를 만났다. 제 의원은 1972년 27살의 나이로 빈민운동에 뛰어든 뒤 70~80년대 일방적 개발주의에 맞서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평생을 바친 운동가다. 1999년 폐암으로 숨지기 직전까지 도시빈민을 위한 입법활동에 힘쓴 국회의원(14·15대)이기도 하다. 고(故) 제 의원과 평생을 ‘아내’이자 ‘동지’로 살아온 신씨는 남편을 떠나 보낸 뒤 뜻을 이어받아 경기도 시흥에서 작은자리 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고 있다. 신씨는 용산참사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근본적으로 돈이 주인행세를 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지방자치단체들과 건설사들이 개발이익을 조금 줄이더라도 세입자들이 살아갈 방법은 마련해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 신씨는 “영화 ‘상계동 올림픽’의 시대배경인 1988년에도 국가가 집잃은 세입자들이 사는 천막마저 빼앗는 등 ‘몰아내기’ 방식을 동원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또 “자본의 힘이 예전보다 더 세졌기 때문에 이익 극대화를 위해 철거민들을 내쫓는 방식은 점점 더 잔인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씨는 “결국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국회가 재개발 난맥을 풀어야 할 것”이라면서 “남편은 국회활동을 할 당시 뜻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이라고 한탄하면서도 주거 관련 입법 활동에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국회의원들도 큰 사건이 터진 뒤에야 유족들을 찾을 게 아니라 철거민들이 겪는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법을 고쳐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복타러 간 총각(최민오 그림·김세실 글, 시공주니어 펴냄)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수박을 먹다가도 이가 부러지는 ‘지지리 복도 없는’ 순박한 총각 석순.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억울한데…. 석순은 부처님을 만나 복을 타기 위해 서천서역국을 향해 먼 길을 나선다. 고비마다 마음 고운 처자, 백발 노인, 순진한 이무기의 도움을 받은 석순은 부처님께 이들의 근심거리까지 전하겠다고 약속한다. 드디어 부처님 앞에 엎드린 석순. “너는 이미 복을 탔으니 돌아가거라.” 어리둥절할 법하지만 책을 읽는 아이들도, 석순도 이미 깨달았다. 남 탓하지 않고 직접 불행을 떨치기 위해 일어선 의지, 이웃의 근심까지 풀어주려는 착한 심성이 복을 가져왔다는 것을 말이다. 8500원. ●나무들의 어머니(지네트 윈터 글·그림, 지혜연 옮김, 미래아이 펴냄) 황폐화된 고국 케냐를 푸른 숲으로 되돌려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이의 자서전. 어린 시절 초록 나무가 우산처럼 드리운 작은 마을에서 자란 왕가리. 외국 유학 후 돌아와 고국이 사막처럼 변해 있자 눈물을 흘린다. “그래, 나무를 심는 거야! 여기 뒤뜰부터 한 그루 한 그루 시작하면 돼.” 그녀가 심은 아홉 그루의 어린 나무는 30년 후 3000만 그루가 되는 기적의 씨앗이 됐다. 한 개인의 불굴의 의지가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지 잘 보여준다. 이국적 색채와 간결한 그림체도 많은 걸 이야기한다. 9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문화마당] 상처의 기원/소설가 구효서

    [문화마당] 상처의 기원/소설가 구효서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 쓰며 사는 일도 녹녹지만은 않다.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읽어야 하며, 때로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해야 한다. 수백 편의 장편 응모작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밤새워 읽는 일이 예사다. 소설 쓰는 법이 따로 있을 리 없는데도 마치 대단한 비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작가 지망생들 앞에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저런 강연에 불려 다니고, 때로는 시국관련 선언문에 서명을 하기도 한다.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일과 경험들이 소설의 반성적 씨앗이 되기도 한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이 돌수록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인구는 늘어난다. 불황일수록 신문과 잡지에 응모하는 소설의 편수가 늘어나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남성에 비해 여성 응모자가 비약적으로 많아지는 이유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분명한 점은 여성 응모자들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아주 많아졌다는 것이다. 소설을 흔히 갈등구조라고 한다. 갈등 내용 없이 소설이라는 구조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한 만큼 소설은 대개 슬픔·상처·아픔·번민 따위를 안고 시작한다. 소설 쓰기는 그러한 갈등의 원인, 즉 ‘상처의 기원’이 무엇에서 비롯되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는 순간 갈등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 해소는 물론이고 갈등의 설정까지 작가의 몫임은 말할 것도 없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성 지망생의 경우 ‘상처의 기원’을 남성에게 두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남성의 부재가 슬픔과 번민의 기원이 된다. 가장이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면서 일가족의 불행이 시작되며, 그 불행은 현재로 이어져 일상생활의 소소한 갈등으로 지속된다. 좌우대결에서 희생되거나, 전장에서 전사하거나, 납북된 가장으로 인해 남은 여성과 가족들은 사회적 차별과 가난을 대물림한다. 남은 가족의 생계를 떠안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늙도록 기다리는 여성의 이중고는, 무심한 세월의 혹독한 외로움을 견뎌내는 인고의 아름다움으로 미화되거나, 민족사의 비극으로 환기되거나, 실존적 비장미마저 자극하며 감동을 유발한다. 그런가 하면 도박과 음주를 일삼는 무책임한 아버지에 의해, 외도와 폭행을 자행하는 부도덕한 남편에 의해, 혹은 비행과 탈선으로 속 썩이는 아들에 의해 소설 속 많은 여주인공들이 상처를 입는다. 놀랍다. 우리 사회의 남성들, 지탄받아 마땅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남성이라는 창을 통해서만 인식하는 습관은 분명 우려스럽다. 여성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 또한 남성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여성이 요구하는 바람직한 남성상이래 봤자 그 역시 ‘남성’이기 때문이다. 남성을 사회나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본다면 우려스러움은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든 걸 국가 탓으로 돌리거나 모든 걸 국가가 잘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는 국가 의존적 국민이라면, 국가라는 창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저 끔찍한 국가사회주의적 근시안에 갇히게 될 것이다. ‘상처의 기원’은 어쩌면 남성이나 국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조건적 의존이 이미 무의미해진 시대임에도 아직 버리지 못한 미련이 우리의 갈등을 지연시키는 건 아닌지. 더 나은 남성, 더 나은 국가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의 ‘기대’ 자체를 자문하고 반성해 볼 때이다. 소설가 구효서
  • 강제 결혼한 10세 소녀, 이혼후 자서전 출간

    강제 결혼한 10세 소녀, 이혼후 자서전 출간

    부모의 강요로 10살 나이에 20살 연상남과 결혼한 뒤 이혼 소송을 벌여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예멘(Yemen) 소녀가 자서전을 출간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은 “10살의 나이로 이혼녀가 된 누주드 알리(Nojoud Ali)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서전을 출간했다.”고 3일 보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예멘은 조혼(早婚)이 성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알리는 지난 2008년 2월 실업자인 아버지의 강요로 자신보다 20살 많은 파에즈 알리 타메르(30·Faez Ali Thameur)와 결혼했다. 그러나 알리는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고 결국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예멘 법원에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측은 인권 변호사 샤다 나세르(Shatha Nasser)의 도움으로 법정에 서게 된 소녀에게 이혼을 허락했다. 그 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알리는 고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세를 타며 미국에서는 ‘2008 올해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혼한 뒤 인권운동가들의 경제적인 도움으로 학교로 돌아가게 된 알리는 이번에 자신의 결혼 생활에 관한 괴로운 경험을 토대로 책을 펴냈다. ‘나 누주드, 10살, 이혼’(Moi Nojoud, 10ans, divorcée)이라는 제목의 이 자서전은 프랑스에서 출간됐으며 해외 출판업자들이 판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자신의 책을 선전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인 알리는 “앞으로 변호사가 되서 나 같은 처지의 다른 소녀들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누주드 알리의 자서전 표지(www.michel-lafon.fr) 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 기자 spirit0104@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민에 자신감 심어준 게 최고의 소득”

    “주민에 자신감 심어준 게 최고의 소득”

    “‘우리도 할 수 있구나,살 길이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주민들 사이에 넘치는 것이 최고의 소득입니다.” ‘산천어축제’를 7년째 진두 지휘해온 강원도 정갑철 화천군수는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말했다.그는 올해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뚝심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23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1일 폐막된 산천어축제는 올해에도 106만명이 다녀가 4년 연속 100만명을 넘겼다. ●지역경제 파급효과 年 400억~500억원 그는 그러면서도 “군민들과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산천어 축제가 최고의 겨울축제로 자리잡을수 없었을 것”이라며 공을 돌렸다. 산천어축제가 전국 최소 규모인 인구 2만 4000여명의 화천군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축제 하나로 한 해 400억~500억원대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내며 최전방 산골마을을 부촌으로 만들고 있다. 축제를 거듭할수록 화천읍 시가지의 모습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화천천변 일대에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한적하던 주택지가 아예 번화한 상가로 변모했다. 전형적인 시골 농촌마을이 골목마다 관광을 접목한 깔끔한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주민들도 활기가 넘쳐난다. 몇년 전까지 보기 힘든 모습이다. 2004년 민선 군수에 당선된 뒤 ‘가난한 화천군을 어떻게 살려볼까.’ 궁리하다 공무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이듬해인 2005년 겨울부터 산천어 축제를 시작했다. 화천지역에서 3년째 동네 얼음축제로 열리던 ‘낭천축제’의 판을 키워 전국 단위 축제로 만든 것이다. 당시에는 인제 ‘빙어축제’로 관광객이 몰리던 시절이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얼음낚시 등 신선한 아이디어로 첫해부터 22만명을 유치했다. 정 군수는 “시골 화천에도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올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환호했다.”고 회상했다. 이 덕분인지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강원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최고 득표율(69.4%)로 재선 됐다. 정 군수는 “축제준비와 군정을 챙기느라 솔직히 선거운동도 못했는데 최고 득표율이 나와 스스로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내년 산천어 훈제공장 지어 산업화 산천어축제 입장료 가운데 절반가량을 관광객들에게 상품권(화천사랑상품권,농산물상품권)으로 되돌려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아이디어도 성공했다. 상품권으로 축제기간 지역에는 지난해 14억원,올해 15억원이 풀려 돈이 넘쳐났다. 특정상품만 팔린다며 한때 갈등을 빚던 배분문제도 용도의 씀씀이가 커지며 자연스레 해소됐다. 육식성인 산천어가 하천 생태계를 교란시킬 우려가 있어 올해부터 축제가 끝나면 남아 있는 산천어는 모두 그물로 포획해 훈제와 어묵을 만들어 팔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정부에서 지원되는 30억원의 자금으로 산천어 훈제공장을 지어 산천어를 통한 산업화도 시도한다. 정 군수는 “해마다 축제를 배우러 찾아오는 다른 자치단체가 많아 벌써부터 내년에는 어떤 아이디어로 차별화 할까 고심하고 있다.”며 “그래도 외신을 통해 해외에까지 홍보되면서 세계적인 겨울축제로 자리잡았는데 어쩌겠느냐.”며 자신만만해했다. 글 사진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글로벌 시대] 관점의 차이/정희섭 주한 덴마크 대사관 투자담당관

    [글로벌 시대] 관점의 차이/정희섭 주한 덴마크 대사관 투자담당관

    미국 제 44대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는 대선 후 승리 연설에서 수많은 청중에게 다음과 같은 표현을 썼다. “ Disabled(장애인)와 Not disabled(장애인이 아닌 사람)”. 우리 사회가 정상인과 대비한 개념으로서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장애인으로 묘사한 것과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는 것이어서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평범한 말이었지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왜 사람들이 오바마의 연설에 열광하는가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아가 그의 연설 속에 나오는 장애인과 장애인이 아닌 사람은 마치 주류로서의 장애인이 비주류인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말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 벌어질 미국 사회의 변화를 실감하는 듯했다. 인간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성 질환으로 선천적 장애인일 수도 있고, 노출된 환경에 따라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엄청난 고행을 낙으로 삼는 일부 종교인 외에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라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움의 대상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차별적인 어조를 띤 정상인과 장애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닌, 장애인과 장애인이 아닌 사람으로 사회의 구성원을 바라다보는 오바마의 관점은 많은 지지자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관점을 달리하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음을 그는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세상은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면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 때문에 싸움도 하고, 시위도 하고, 서로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것이 국가간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차이라면 전쟁도 불사한다. 싸움과 전쟁의 결과는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사소한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고통과 후회밖에 없다. 같은 사회에서도 관점의 차이 때문에 사회적 분열현상이 발생하는데,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해외 고객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쪽에서는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 해외 고객은 정반대로 생각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고, 파는 쪽에서는 고객의 입장에 서서 한걸음 나아가 판단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해외 고객은 그 선의의 판단 자체를 문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관점의 차이는 국내외를 막론한 고객과의 관계에서만 더 심각한 것은 아니다.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관점 차이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고, 오랜 기간 반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관점이란 자신의 위치에서 보는 방향만 다를 뿐이지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 정상인과 장애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문제인 것처럼 들리지만, 장애인과 장애인이 아닌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양자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치다. 한국인이 새해라고 여기는 관점에서의 진정한 새해가 밝았다. 올 해는 관점이 차이를 서로 이해하는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하는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가난한 자와 많이 가진 자의 관점이 아닌 가진 자와 조금 더 가진 자의 관점으로, 일하는 노동자와 노동을 사는 사용자의 관점이 아닌 솔선수범하는 자와 솔선수범의 이익을 나누어 가지는 자의 관점으로 이 사회를 바라 보면 좋겠다. 장애인과 장애인이 아닌 자라는 포용의 관점이 우리 사회에서 싹트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사회에도 진정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 올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에서 생겨남을 깨닫는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희섭 주한 덴마크 대사관 투자담당관
  • [엄마와 읽는 동화] 다시 쓴 초대장/배익천

    [엄마와 읽는 동화] 다시 쓴 초대장/배익천

    ‘흐흥, 흐흥! 지태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일 이맘때면 선물 더미에 파묻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게 아닐까?’ 오직 그게 걱정이었다. ‘방학과 함께 맞는 생일, 초등학교 마지막 생일을 정말 멋지게 보내야지.’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언제나 내 편인 엄마는 오늘부터 바쁘시겠지?’ 지태는 바쁜 어머니를 어서 보고 싶었다. 빨리 걸었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굼벵이처럼 느렸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바쁜 걸음으로 문 앞으로 가 섰다. 딩동! 딩동! 벨이 울려도 기척이 없다. ‘시장 가셨나?’ 들뜬 기분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지태는 가방을 고쳐 메고 힘없이 벽에 기대 섰다. 1001 아파트 호수를 이마에 붙이고 있는 회색 문이 갑자기 솟을대문처럼 보였다. 지태는 장난기가 일었다. 텔레비전 연속극의 한 장면처럼 짐짓 뒷짐을 지고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이리 오너라!” 금방 어머니가 깔깔 웃으며 나올 것 같아 몸이 배배 꼬였다. “니가 오니라!” “어!” 어머니 목소리가 아니라 아이 목소리였다. 배배 꼬이던 몸이 기름에 튀긴 꽈배기처럼 빳빳해졌다. “이리 오너라!” 얼떨결에 다시 나온 말은 화난 목소리처럼 컸다. “아이구! 도련님이시군요. 죄송해요. 조금 전에도 어떤 아이가 장난질을 했기에…….” 삐이걱, 대문을 밀고 나온 아이는 머리카락을 궁둥이까지 땋아 내린 지태 또래의 아이였다. 반쯤 열린 대문 안에서 꽃향기가 더운 바람처럼 쏟아져 나왔다. 벌렁벌렁, 지태의 코는 저절로 벌렁거렸다. “도련님, 서당 다녀오십니까?” 대문 밖으로 나온 아이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이라니? 나는 지금 학교에서 온단다.” “도련님, 오늘도 서당에서 말썽부리셨지요? 마님께서 조금 전에 훈장님 전화를 받고 아주 슬프게 울고 계신답니다.” 아이는 지태의 말에는 아랑곳 않고 자기 말만 했다. “서당과 훈장님은 뭐고, 전화는 웬 전화냐?” 지태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이리 오세요. 오늘은 마님이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테니까요.” 아이가 지태의 손을 잡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고린내가 나는 신발장이며 복닥복닥 들어앉은 가구는 간 데 없고 대문 안은 넓은 흙마당이었다. 마당 저 끝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보이고, 군데군데 서 있는 나무는 환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는 지태를 장독대 곁으로 데리고 갔다. 크고 작은 장독이 넘어가는 햇빛에 맨질맨질 빛나고 있었다. 장독대 둘레에는 웃자란 상사화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듯 잎사귀를 늘어뜨리고 제비꽃이 무리지어 다소곳이 피어 있었다. “도련님, 왜 남의 귀한 도련님을 자꾸 때리세요?” 아이가 반반한 장독대 축돌 위에 지태를 앉히며 나무라듯 말했다. 지태는 가슴 한복판으로 서늘한 물줄기 하나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지태네 반 아이들이 알고, 선생님이 아는 일이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까맣게 모르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걸 선생님이 말씀하셨단 말인가? 그래서 어머니가 울고 있단 말인가?’ 지태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생일 선물 더미 속에 파묻혀 숨도 못 쉴 것 같은 즐거운 마음에 얼음물이 끼얹어졌다. 갑자기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마치 남의 집 아들처럼, 술만 취했다하면 머리고 뺨이고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새우처럼 몸을 오그렸다. 퍽, 퍽, 퍽. 귓속 가득 주먹 맞는 소리가 들어왔다. “죽어요. 죽어! 이러다 아이가 죽어요.” 어머니의 비명 소리다. “죽어, 죽어! 다 죽어!” 어머니 머리 위에도, 어깨 위에도 아버지 주먹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지태는 아버지에게 맞은 주먹을 아이들에게 다 돌려주었다. 조금만 거슬리면 주먹부터 날렸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고 뺨이고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날렸다. 시원했다. 새우처럼 오그라들었던 몸과 마음이 쭉 펴지는 것 같았다. 울고 있는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지태 편이던 어머니다. 지태가 또 두들겨 맞을까봐 아무 것도 아버지에게 이르지 않던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울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 엄마에게 데려다 줘.” “마님은 아직도 울고 계십니다. 오래오래 우실 것입니다. 도련님은 오늘도 귀한 집 도련님들을 많이 울리고 왔으니까요.” “아니야, 오늘은 아무도 때리지 않았어.” “꼭 주먹으로 때려야 때리는 게 아닙니다. 마음으로도 얼마든지 때릴 수 있지요. 도련님은 오늘 동우 도련님에게 생일 선물로 울트라 슈퍼 디럭스를 사오라고 했지요?” “네가 그런 것도 아니?” “왜 몰라요. 별의 커비에 나오는 거잖아요. 그게 얼만지 알아요?” “삼, 삼, 삼만…….” “그래요. 삼만 원도 넘어요. 그러면 동우네 마님께서 무얼 하시는지 아세요?” 지태는 잘 알고 있다. 동우 어머니는 우유 배달을 한다. 1교시가 끝나는 시간이면 학교에도 배달을 한다. 선생님 책상 위에도 우유 하나를 올려놓고 간다. “그 우유 하나를 배달하면 100원 남는다고 쳐요. 3만원이 되자면 몇 개를 배달해야 할까요?” ‘100원이 열이면 1000원, 100이면 10000원…….’ 지태는 눈덩이 굴리듯 머릿속에서 숫자를 굴렸다. ‘300개!’ 말없이 교실을 빠져나가는 동우 어머니 뒷모습이 떠올랐다. 코끝이 찡했다. 아버지의 주먹을 맞았을 때처럼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동우 도련님은 지금도 떼를 쓰며 울고 있어요. 그걸 사달라고요. 그래서 동우네 마님도 함께 울고 있어요.” 지태는 가슴 깊은 곳에 살얼음이 어는 것처럼 시렸다. “어디 그 뿐이세요? 상수 도련님은 왜 오지 말라고 했어요?” “너, 지금 뭘 보고 말하니?” 지태는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는 오늘 낮에 지태가 반 아이들에게 돌린 생일 초대장 내용을 훤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수는 모든 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야.” “그렇지만 도련님이 상수 도련님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상수 도련님처럼 가난하고 공부도 못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될 수는 없어. 우리 집은 이미 엄청난 부자고, 나도 공부를 엄청 잘해. 그리고 모두들 나를 좋아해.” “천만에요. 도련님을 좋아하는 건 도련님의 주먹 때문이에요. 억지로 좋아하는 거란 말이에요.” “아니야. 내일 와 봐.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올 거야. 손에손에 선물을 들고.” 지태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가슴에 얼었던 살얼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한 명도 안 올지도 몰라요.” “설마?” “두고 보세요. 닌텐도 디에스는 있어도 닌텐도 윌은 없으니 그걸 사오라고요? 울트라 슈퍼 디럭스보다 엄청 비싼 그걸 사올 도련님이 어디 있겠어요?” 지태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동우의 울트라 슈퍼 디럭스는 물론이고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 속에는 닌텐도 윌이 한 개쯤은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 알아요.” “뭘?” “도련님이 도련님보다 센 주먹 앞에서는 맥도 못 추고 쩔쩔맨다는 것을요.” “그건 무슨 말이니?” “기억 안 나세요? 지지난 수요일 도련님이 준표 도련님 주먹 한 방에 풀썩 쓰러진 거, 그리고는 이제까지 쩔쩔매고 있다는 거, 도련님들이 다 보고 다 알고 있지요. 그리고 모두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지요. 자기들도 도련님을 그렇게 한 방에 쓰러뜨려야겠다고.” 지태는 으스스 추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슴 깊은 곳에 또다시 사르르 살얼음이 얼었다. 무서웠다. 준표 주먹은 무서웠다. 아버지 주먹처럼 무서웠다. 아이들이 저마다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작은 주먹들이 점점 커지더니 태권브이 주먹처럼 지태 눈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살려 줘. 살려 줘!” 지태는 손바닥을 쫘악 편 채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진정하세요, 도련님!” 아이가 지태를 어깨동무하며 살풋 껴안았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다시 쓰면 돼요.” “뭘?” 지태가 아이의 가슴 속에서 귓속말처럼 물었다. “초대장을요.” “정말?” “그래요. 그리고 끝에 한 줄 더 쓰세요. ‘내 주먹은 이제 영원히 잠자는 주먹’이라고요.” “하지만 어쩌지? 생일은 바로 내일이고, 지금은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데…….” “자. 걱정 말고 쓰세요. 마음으로. 제가 모두 전해드릴 테니까요.” 지태는 아이의 가슴에 안겨 초대장을 다시 썼다. 달싹달싹, 마음의 연필로. -친구들아, 미안해. 아까 전해준 내 생일 초대장은 가짜야. 모두 농담이야. 선물은 아무 것도 필요 없어.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모두 와 줘. 우리 집에는 울트라 슈퍼 디럭스도 있고 닌텐도 디에스도 있어. 모두 재미있게 놀자. 그리고 내 주먹은 이제 영원히 잠자는 주먹이야. 영원히. 그럼 내일 봐.- 달싹달싹 초대장을 다시 쓴 지태가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너는 누구니?” 아이가 흠칫 놀랐다.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저, 저요? 저는 복숭아꽃이에요.” 아이가 방긋 웃었다. 아이의 입에서 분홍빛 꽃잎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 둘, 셋, 넷……. 그것들은 친· 구· 들 · 아 · 미 · 안 · 해 하고 꽃잎 하나하나마다 분홍빛 글자를 물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이도 꽃잎과 함께 사라졌다. -매력적이어서 남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용서와 희망을 품고 있기도 하지.- 어디선가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복숭아꽃 꽃말을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예쁘고 고운 목소리다. 복숭아꽃이에요, 하던 바로 그 목소리다. “아니, 지태야!”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어머니 목소리가 지태를 확 덮쳤다. “어, 엄마! 안 울었어?” “이 뚱딴지!” “엄마!” 1001. 아파트 호수를 이마에 붙이고 있는 회색 문 앞에서 지태가 가만히 무릎을 꿇었다. 까만 주름치마, 어머니 두 다리를 꼬옥 잡고. 복숭아꽃 향기가 사방으로 은은하게 퍼졌다.(*) ●작가의 말 아이들을 가르치는 맨 처음의 선생님은 부모님이다. 폭력적인 아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뒤에는 폭력적인 부모와 맹목적인 사랑이 숨어 있다. 사랑에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용서와 희망을 가르쳐주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아이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약력 ▲1950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남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동화집 ‘별을 키우는 아이’, ‘잠자는 고등어’, ‘내가 만난 꼬깨미’ 등 ▲대한민국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등 받음 ▲부산MBC ‘어린이문예’ 편집 주간, 동의대 문창과 겸임교수
  • 저소득층 학생 3명 유엔 연설 이슬기씨 등 청소년대표 선발

    가난을 극복하고 우수한 재원으로 자라난 청소년들이 유엔 회의에서 연설을 한다. 1일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이슬기(19·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군은 다음달 4일 개막하는 제47차 유엔 사회개발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한국 청소년의 교육 상황과 사회·정치 참여 문제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최수희(21·여·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심현주(21·여·부산외국어대 사회학과)씨는 오는 10월로 예정된 제64차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 한국 청소년 대표로 참석해 각국 대표단 앞에서 연설과 토론을 하게 된다.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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