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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미국산 쇠고기 감상/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미국산 쇠고기 감상/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청사 구내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 며칠 전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신임 국무총리가 국가정책조정회의 말미에 불쑥 던진 말이란다. 그 뒤 벌어진 국정감사에서는 그 실마리가 쏟아졌다. 그간 미국산 쇠고기 창자 등이 해동검사나 조직검사 없이 육안으로만 검역되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선택권도, 힘도 없는 전경이나 의경에게 돌아갔다. 이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떨치는 국가대표선수들의 태릉선수촌에서 대량 소비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연구원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필자도 주말에 시장을 볼 때마다 맛있게 포장된 쇠고기를 보고 군침만 흘리다 돌아서곤 한다. 가난한 유학생 시절에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그랬는데 지금은 아는 게 병이라고 예전처럼 마음껏 못 사먹는 것이다. 한국에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30개월 또는 그 이상에 뼈까지 포함될 수 있지만 미국에 유통되는 쇠고기는 거의 모두 20개월 미만이라 안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면을 걸어도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달 초 끔찍한 기사를 본 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현재 22세로 젊고 건강한 미국 여성 하나가 햄버거를 먹은 뒤 바로 설사와 발작을 일으켰다. 곧이어 그녀는 9주 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녀의 어머니가 다진 고기를 사서 집에서 손수 구워 만든 햄버거 고기는 이콜라이균에 오염된 것이고 그녀는 신경계통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로 더 이상 걷지 못한다. 그 기사를 읽기 바로 며칠 전 맛나게 하나 사먹었던 M사의 햄버거 때문에 아연 내 하반신도 쭈뼛해졌다. 햄버거의 다진 고기에는 질 좋은 쇠고기만 쓰이는 게 아니라는 의심을 받는다. 내장이나 다른 부위도 종종 들어가고 뼈도 때때로 포함되기도 한다. 간혹 쇠고기 아닌 다른 종류의 고기도 포함되고 미국 외 다른 나라의 고기도 섞인단다. 그래서 갈아서 다진 고기가 아닌가. 미국에서 쇠고기와 관련하여 올 10월에만 해도 최소한 3건의 리콜조치가 이루어졌단다. 비단 다진 고기가 아닌 다른 종류 또는 다른 부위의 쇠고기도 대상이다. 이콜라이균의 오염 가능성이나 특정위험부위 또는 특정위험물질의 미제거 등이 리콜의 배경이다. 한데 10월에 리콜조치가 이루어진 미국의 한 쇠고기회사는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미국산 쇠고기는 국내외 소비자의 불안감을 키운다.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2008년 10월까지 증가했다가 그 즈음 불어 닥친 세계적 경제위기로 인해 한국 경제가 악화되고 환율도 높아지면서 줄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감이 약한 탓도 있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하여 PD수첩과 여배우를 소송한 한 수입업체 사장은 촛불집회로 인해 업계가 무려 4000억원 이 넘는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미국의 축산업계도 한국에서 목표로 생각했던 것만큼 시장도 못 넓히고 이윤도 못 남긴 게 분명하다. 일본에서는 지난 10일 수입금지부위인 등뼈가 조금 섞였다고 미국의 해당 공장에 20개월 미만으로 한정된 쇠고기마저 수입을 전면 금지시켰다. 하토야마 정부는 미국의 요구대로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할 재협상 계획이 전혀 없다고 못을 박았다. 타이완에서도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만큼 완화시켰다는 협상소식은 없다. 이른바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일본이나 타이완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보면서 추후 대처하겠다는 정부 지도자는 지금 뭐하고 있는가. 국무총리는 구내식당 수준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설 때가 아닌가. 소비자가 안심하고 “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즐기고 한· 미 양국 업계의 손해도 줄이며 분열된 국론도 치유할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토요 포커스] 인터넷 게임에 빠졌던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토요 포커스] 인터넷 게임에 빠졌던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서울에 사는 중학교 3학년의 김한수(15)군.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13시간씩 인터넷 게임을 하는 게임광이었다. 정밀검사 결과 인터넷 중독에 근접한 ‘잠재위험군’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그는 “PC방에서 친구들과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는 슈팅게임에 빠지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런 그가 요즘은 “친구들과 공놀이하고 운동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고 말한다. 경기도 군포에 사는 최순호(14)군은 매일 5시간 이상 즐기던 게임을 어느 날부터 접고 바둑에 빠졌다. 그는 ‘바둑 프로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하루 13시간 게임했지만 이젠 직업군인이 꿈” 한수군은 올 초까지 거의 매일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과 얘기하고 게임 상에서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를 이해해 주는 것은 채팅으로 만나는 ‘얼굴없는 친구들’뿐이었다. 부모는 모두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새벽 4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해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할 일이 없어 접한 것이 인터넷 게임이었다. ●부모님 생계전선…“집서 할일없어 게임” 순호군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채무 관계 때문에 이혼을 한 상태였다. 부부 사이의 갈등은 아이를 방황하게 만들었고, 가난한 살림에 인터넷 게임이 아니면 특별히 즐길 거리도 없었다. 한수군은 초등학교 때 운동을 좋아해 친구들과 넓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길 좋아했지만 게임에 빠져들자, 활동공간은 집과 PC방으로 압축됐다. 컴퓨터가 부모님 방에 있었던 탓에 야간에 집에서 게임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휴일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게임을 하기도 했다. 순호군도 올해 중순까지 하루 5시간씩 집에서 게임을 즐겼다. 성적은 중위권에 친구들과의 대인관계도 비교적 좋은 편이었지만 그는 “집에서 정말 할 일이 없었다.”고 예전 기억을 되살려 들려줬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한수와 순호군의 부모에게는 아이들의 행동을 제어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보다 못한 학교 선생님과 부모들은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운영하는 ‘인터넷 레스큐 스쿨’의 전문가 치료를 권유했다. 둘은 이때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난 8월 11박12일의 일정으로 프로그램에 동참한 두 학생은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많은 친구들을 보고 불안했던 마음이 처음으로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1:1 개인상담이 있었지만 집단상담 프로그램이나 역할극이 마련돼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시간이 많았다. 따분한 상담만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들은 본격적으로 각 프로그램의 단계를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인터넷 중독으로 인한 금단증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규칙적인 생활’이다.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 각종 상담 활동과 스네이크보드, 방송댄스, 삼림욕, 천체관측,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특히 운동을 좋아하는 한수군에게는 활동적인 프로그램은 안성맞춤이었다. 순호군도 상담가들이 꾸준히 정서적인 안정을 주자, 새로운 목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레스큐 스쿨에 들어오기 전 한수군의 꿈은 슈팅게임 ‘프로게이머’였다. 그런데 프로그램 이후 그의 꿈은 ‘직업군인’으로 바뀌었다. 90㎏에 182㎝의 우람한 체형을 본 상담사들이 “군인이 제격이겠다.”고 말하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꿈으로 궤도를 선회했다. 긍정적인 꿈을 심어주는 것도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한수군은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고 높은 지위도 생길 것 같아 다른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순호군도 치료 프로그램을 접한 뒤 바둑에 취미를 붙이면서 게임을 하루 1~2시간 이내로 줄였다. ●부모도 함께 중독치료 교육 받아야 한수와 순호군의 부모는 따로 교육을 받았다. 아이와 부모를 함께 교육하는 것은 인터넷 중독치료 프로그램의 필수사항이다. 두 학생의 부모에게는 방과 후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방임’이 중대한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모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용돈을 주고 아침, 저녁을 차려주는 것만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치료는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관심의 영역에 방치되지 않도록 청소년 동반자와 상담가들이 시간이 날때마다 1~2시간씩 방문해 직접 진로와 현재 생활 상태를 상담한다. 현재 한수군의 청소년동반자로 도움을 주고 있는 서울 문래청소년지원센터 오충환씨는 “(한수군은) 조기에 치료와 상담을 받아 고위험군까지 가지 않은 행운아”라면서 “정신건강의 80~90% 정도는 회복됐다.”고 말했다. 순호군의 동반자인 군포청소년지원센터 나한나 상담사는 “현재 50% 정도 상태가 완화됐다고 본다.”면서 “어디까지나 잠재위험군이었기 때문에 완화가 가능했던 것이지 고위험군으로 가면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광장] 外高, 실패한 모델 아니다/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外高, 실패한 모델 아니다/함혜리 논설위원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문제 제기로 촉발된 외국어고등학교(외고) 논란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정 의원 측이 고교를 일반계, 전문계, 특성화, 영재고 등 4개로 나누고 외고 등 특목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히자 외고는 물론이고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까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은 외고 폐지다. 반면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운영 형태의 전환보다는 입시안 개선에 비중을 두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들의 86%가 외고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외고는 개편될 공산이 크다. 정치권에서 외고 폐지를 들고나온 이유는 외고가 사교육 광풍의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어학영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계열의 특수목적 고등학교’라는 설립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명문대 진학의 보증수표로 변질되면서 외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외고는 고난도 문제로 학생들을 선발함으로써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은 대한민국의 학부모들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사교육비의 차이는 교육격차를 확대·고착화시켜 계층간 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외고를 폐지하는 것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는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류투성이다. 우선 외고를 폐지하는 것으로 사교육 열풍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좋은 대학 진학과 좋은 교육환경을 원하는 부모들의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른바 풍선효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고가 어떤 식으로 바뀌든 사교육 시장은 새로운 대상을 찾아 빠르게 형성될 것이 분명하다. 사교육이 사라지면 평등하고 역동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외고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옳지 않다. 외고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것은 맞다. 외고의 어문계열 진학률은 30%에 불과하고 최근 공개된 수능성적 상위 30개교 가운데 26개가 외고다. 그렇다고 외고를 실패한 교육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외고는 꽉 막힌 평준화의 체제가 만들어낸 돌연변이지만 수월성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해 왔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대원외고를 비롯한 서울·경기 지역의 외고들은 유수의 미국대학에 매년 많은 합격생을 배출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강한 열정과 학교 시스템은 미국의 학부모들도 부러워할 정도다. 25년의 역사가 쌓이면서 많은 외고 졸업생들이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어려운 경쟁력 있는 학교를 하루아침에 폐지하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로 볼 때 큰 손실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리나라는 자산 소유 상위 10%가 거주 주택을 제외한 총 자산의 75%를 소유하고 있다. 그만큼 불평등이 심각하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계층간 이동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없고 영영 도태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주류사회 진입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명문대 진학이다. 그러니 사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교육 광풍의 주범은 외고가 아니라 바로 이 사회다. 정치권과 정책 입안자들은 외고 폐지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머리가 반쯤 잘린 채… 내 딸이 이 지경에”

    “머리가 반쯤 잘린 채… 내 딸이 이 지경에”

    “위로는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는 처음 벼슬을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술에 빠져 있는 것으로 일을 삼고 경리(經理)에는 뜻이 없으니 중흥을 어찌하며, 백성을 어찌할까?”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함양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벌인 선비 고대(孤臺) 정경운(1556~?)이 1594년 1월17일 일기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위정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며 쓴 글이다. 정경운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년) 4월23일부터 1609년(광해군 원년) 10월7일까지 약 18년간 임진왜란, 정유재란 전후의 참상과 현실비판을 기록한 ‘고대일록(孤臺日錄)’을 남겼다. 이 기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황윤석의 ‘이재난고’, 오희문의 ‘쇄미록’ 등과 함께 임진왜란 무렵의 상황과 생활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하지만 1986년 처음 학계에 소개된 이후 지금까지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반인은 물론 전공자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남명학연구원(원장 이성무)이 최근 이 책을 완역했다. 박병련(한국학중앙연구원), 정우락(경북대), 오용원(경북대), 한명기(명지대), 신병주(건국대) 교수 등이 번역에 참여했다. 정경운은 ‘고대일록’에서 전쟁의 경과와 자신의 전쟁 체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국맥이 실과 같아서 도적들이 바닷가에 진을 치고, 명나라 병사는 이제 막 도착했다. 그러나 나라의 비용은 텅 비어 고갈되었다.’(1595년 7월8일) ‘조카가 산에 이르러 정아의 시신을 찾았다. 머리가 반쯤 잘린 채 돌 사이에 엎어져 있었는데, 차고 있던 칼로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아아! 내 딸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1597년 8월21일) 이와 함께 사적인 일기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선조의 실정과 악행을 일삼는 관리들에 대한 현실비판의 글을 상세하게 실었다. 또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기아로 무너져가는 사대부의 삶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남명학연구원은 23일 오후 1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고대일록 완역을 기념하는 ‘고대일록과 임진왜란’ 학술대회도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잠재력이 성적 눌렀다

    가난한 고3 학생은 매일 저녁 동생을 돌봐야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항상 웃고만 있는 동생. 염색체 이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다. 누군가 항상 옆에서 지켜봐야만 한다. 그래서 남들이 학원 갈 시간에 집으로 향했다. 어차피 학원 갈 돈도 없지만 학교에서 자율학습할 처지조차 안 됐다. 부모님이 교대로 일 나가면 동생 볼 사람이 없어서다. 집에 와서 동생 저녁 먹이고 수발 들어가며 틈틈이 공부했다. 남들에게 뒤처지는 게 아닐까 불안했지만 성적은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이 학생은 “아무리 힘들어도 세계적인 공학자가 되겠다는 꿈만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학생을 포스텍(옛 포항공과대) 입학사정관들은 눈여겨봤다. 지난 17일 모집정원 300명의 3배수가 조금 넘는 913명 1차 합격자에 포함시켰다. 포스텍 관계자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2차 면접이 남았지만 1차 합격했다는 건 포스텍에서 수학할 만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라고 했다. 합격의 제1요인은 ‘역경 극복의지’였다. 이 관계자는 “학생 의지가 너무나 분명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남달리 뚜렷해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합격 이유를 설명했다. 포스텍은 21일 913명의 1차 합격자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11% 정도인 101명이 성적이 아닌 잠재력 요소로 당락을 뒤집었다고 밝혔다. 이들 당락의 주요 잣대는 ▲주어진 환경극복 의지 ▲리더십 ▲이공계 수학에 대한 적성 및 봉사활동 ▲학교 성적 상향 추세 등이었다. 이에 따라 고교시절 과학봉사단 활동을 473시간 동안 했던 한 학생도 1차 전형에 합격했다. 고교 1학년 1학기 성적이 62%로 하위권이었다가 3학기 만에 상위 17%까지 끌어올린 과학고 학생도 합격했다. 전체 학년 평균 성적은 예년 합격선에 못미쳤다. 그러나 사교육 없이 성적을 끌어올린 의지가 합격의 이유였다. 교육 전문가들은 포스텍의 이번 전형 결과가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대학들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진학사 김희동 입시분석실장은 “이번 포스텍 전형 결과는 다른 대학들에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하나의 모델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고 했다. 김 실장은 “일반 대학의 경우 그 모델을 그대로 가져다 옮기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왜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까

    ‘또 다른 미국’은 가능할까? 뜬 구름 잡는, 너무 먼 나라 얘기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또 다른 한국’은 가능할까? 역시나 무슨 소리인가 싶다. 조금만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사례1. 서울 영등포에서 5년째 조그만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최모(47)씨는 매일 오전 11시쯤 부인 김모(41)씨와 함께 장을 본 뒤 오후 3시 남짓부터 새벽 3~4시까지 중·고생부터 취객들까지 상대한다. 튀김, 어묵, 떡볶이에 간단한 부침개, 소주, 막걸리 등을 팔고 나면 매출은 20만~30만원 정도. 하지만 재료값에 청소비에, 수도요금, 무전취식 줄행랑 등등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손에 떨어지는 돈은 많아야 8만~10만원이다. 올해 들어 딱 사흘 쉬었다. 늘 서있다 보니 허리, 무릎은 늘 2500원짜리 파스 신세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 중학교 3학년 딸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앞선다. 학원은 언감생심이며, 대학에 보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사례2. 16년차 직장인 박모(43)씨는 결혼 이후 11년 동안 벌써 여섯 차례나 짐을 싸고 풀며 집을 옮겨 다녔다. 신촌 학교 근처에서 시작한 살림은 이후 홍은동→합정동→행신동 등으로 외곽으로만 이동했다. 제 방을 갖고 싶은 딸아이가 있어 집을 좁힐 수는 없고 22평 남짓에서 이사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부인이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림에 보탠다지만, 치솟는 집값에 내 집 마련은 요원하기만 하다. 가끔 구입하는 로또 5000원어치에 허망한 기대를 품어볼 뿐이다. 성실하게 일하는 대한민국 중산층 서민들의 모습이다. 대통령이 끊임없이 유포시키는 ‘국민소득 4만달러’ 주장은 이들에게는 딴나라 얘기일 뿐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혹은 더 심각하다.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나일등 옮김·후마니타스 펴냄)를 쓴 데이비드 K 쉬플러는 미국 사회를 지탱해 왔던 ‘정직하게 부지런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청교도적 직업관과 윤리적 노동관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이념적으로 완고한 미국의 독자들에게 접근하는 쉬플러의 수단은 바로 빈곤의 경계 언저리에 있는 ‘워킹 푸어(근로 빈곤층)’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547쪽 전권에 걸쳐 이어지는 수십명의 생생한 사례 등 꼼꼼한 취재의 결과물들은 저자가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22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민완기자였음을 확인시키고 남는다. 쉬플러는 “5, 6년간 지속적으로 참여 관찰했으며, 가능한 진보, 보수의 이데올로기적 렌즈를 배제하고 바라보려 노력했다.”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음을 자신있게 말했고, 이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됐다. 실제 개인의 가난을 구조 탓으로 돌려버리기에는 자본주의의 환상이 여전히 크다. 그렇다고 빈곤을 사실상 강요하는 사회 구조의 구체적인 모순을 마냥 눈감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다른 미국이건, 또 다른 한국이건 가능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고,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구체적 모습을 그려보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1만 9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필드가이드 새·필드가이드 나비(김성수·허필욱/이기섭·이종렬 지음, 필드가이드 펴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새와 나비에 대한 모든 것을 포켓북에 담은 자연탐사의 안내서. ‘나비’에서는 한국에 기록된 226종의 나비 중 224종의 사진과 생태를, ‘새’는 한국의 대표적인 새 320종의 사진과 380종의 설명을 실었다. 각 1만 2500원. ●서울풍경화첩(임형남·노은주 지음, 사문난적 펴냄) 좋은 집에 대한 생각과 건축 철학을 풀어낸 책을 써온 건축가 부부가 지난 10년간 만난 서울 속살을 글로 쓰고 섬세한 그림으로 소개한다. 사라지는 것에는 아쉬워하고, 자신의 삶의 배경이 된 곳에서 희망을 들려준다. 시차를 두고 찍은 작은 사진에서 서울의 변화 속도를 짐작해본다. 1만 3000원. ●바보사장의 머릿속(사이토 구니유키 지음, 천재정 옮김, 더숲 펴냄) 혼다, 파나소닉 등 일본 최고 기업들을 컨설팅한 경영평론가가 말하는 역발상의 사장학. “회사에서 가장 멍청한 것은 경영인으로서 임무를 다하지 않는 사장”이라는 도발로 시작해 사장이 자신을 개혁하고 성장시키는 방법을 들려준다. 1만 2900원.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진회숙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식민지배, 가난, 전쟁, 이데올로기 갈등, 분단 등 한국사 격동의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의 치열한 예술혼을 엿본다. 작곡가 김순남과 안익태, 소프라노 김자경, 영화감독 나운규, 화가 이중섭, 극작가 임선규, 아동문학가 윤석중, 무용가 최승희 등 15인의 예술가를 조명한다. 1만 5000원. ●조선전기 교환경제와 상인연구(박평식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사·농·공·상의 통념이 퍼져 있던 조선시대 전기에도 상업정책과 교환경제가 엄연히 존재했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발전했음을 밝히는 연구서. 1부 교환경제의 성장과 도성상업, 2부 상인의 활동과 유통체계, 3부 상품의 유통과 상인으로 나눠 조선 전기 교환경제의 실상을 정리했다. 2만 8000원.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진주 지음, 북극곰 펴냄) 인간은 경외심을 가졌던 위대한 자연을 정복하며, 자신의 발자국으로 자연을 황폐하게 한다. 네팔 정부에는 엄청난 관광 수입을 안겨주는 안나푸르나를 보며 환경과 인간의 위기를 논한다. 한때 평범한 관광객이던 저자는 ‘가지 말자.’라기보다는, 갈 거면 ‘친환경적인 모범 관광객’이 되라고 말한다. 1만 3000원.
  • [생각나눔 NEWS] 경기 부양책의 딜레마

    정부가 어떤 정책을 만드는 데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이다. 당초 목표로 삼았던 방향과는 다른 갈래의 결과가 수반돼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거나 역효과로 이어지는 경우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한 비정규직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면 문제가 완화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업주들이 2년이 되기 전에 고용계약을 종료할 가능성은 간과한 것이다. 그동안 취해진 경제정책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식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져 보다 면밀한 정책적 고려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정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저소득층 고용 지원을 위해 시행된 ‘희망근로 사업’은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는 공공근로 일자리를 20%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올 6월 희망근로 사업이 시작되면서 기존 공공근로 참여자들이 대거 희망근로로 이동했고, 지자체들도 공공근로 사업 규모를 줄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대도시의 노인 일자리도 희망근로 시행 이후 6.5%가 감소했다. 지난 5월부터 대기환경 개선과 자동차 업계 지원을 위해 노후차를 교체하는 사람에게 최고 250만원의 세금을 깎아 준 것도 엉뚱하게 기름을 많이 먹는 중·대형차의 판매비중 확대로 이어졌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노후차 교체 지원이 시작되기 전인 올 1~4월 국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13.6%를 차지했던 경차 비중은 5~8월 9.9%로 줄었다. 소형차와 준중형차 비중도 같은 기간 2.6%에서 2.3%로, 63.4%에서 60.5%로 각각 줄었다. 반면 중·대형 승용차 비중은 20.3%에서 27.3%로 늘었다. 세금을 일률적으로 감면하면서 중·대형차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 탓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차와 소형차의 비중을 확대한다는 큰 틀의 친환경 정책방향에 역행한 것이다. 정부의 감세 정책에 따른 세수 감소가 가난한 지자체들에 집중된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 감세 정책에 따른 1인당 세입 감소액은 재정자립도 최하위권인 전남이 143만원으로 16개 지자체 중 가장 많았다. 강원, 경북, 전북, 제주, 충남 등 재정이 취약한 다른 지자체들도 감소액이 100만원 이상이었다. 반면 재정 여력이 높은 수도권과 광역시는 감소액이 대체로 50만원 이하였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대상이 되는 경제주체들의 행동이나 상태 변화를 사전에 충분히 예측하고 사후에는 면밀한 평가를 해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균 이경주기자 windsea@seoul.co.kr
  • 윤종신·타블로·하림, 가난한 인디밴드 위해 노래 선물

    윤종신·타블로·하림, 가난한 인디밴드 위해 노래 선물

    가수 윤종신, 타블로, 하림이 거리에서 공연하는 인디밴드에게 무료로 노래를 선물했다. 최근 프로젝트 O.S.T 그룹 ‘디렉터스 컷’을 결성한 세 사람은 그룹 ‘일단은 준석이들’을 위해 신곡 ‘다가와줘’를 선사했다. ’디렉터스 컷’은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이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 매주 한 명의 연예인이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에 멤버들이 공동으로 음악을 제작, 공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세 사람은 첫 회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버스킹 밴드(거리 공연 밴드)인 ‘일단은 준석이들’을 선택하고 자신들의 첫 작품을 선물했다. ’일단은 준석이들’은 패기와 음악에 대한 열정은 돋보이지만 가난한 현실을 피할 수 없는 배고픈 뮤지션. 경찰의 제지에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하고 쫓겨난 적도 부지기수다. 윤종신이 직접 찍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O.S.T를 구상하던 ‘디렉터스 컷’ 멤버들은 자신들이 음악을 시작할 때의 어려움과 열정을 떠올리며 작업을 시작했다. 신곡 ‘다가와줘’는 윤종신이 작곡을 맡았으며, 거리의 시민들을 향한 인디밴드의 마음을 담아 세 사람이 공동 작사에 참여했다. 윤종신은 “나 또한 거리에서 기타 하나 매고 노래한 적이 있다. 그 때는 100원 짜리를 던지는 행인들에 기분이 나빴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니 그 사람은 내 노래에 100원어치 감동을 받아 간 것 뿐”이라며 어려웠던 당시를 떠올렸다. 세 사람의 신곡 ‘다가와줘’는 오는 14일 오후 6시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사진=엠넷미디어 서울신문NTN 박영웅 기자 her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알 파치노 “20살 때 몸 판 적 있다” 충격 고백

    알 파치노 “20살 때 몸 판 적 있다” 충격 고백

    영화 ‘대부’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알파치노가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충격 발언 했다.뉴욕 포스트의 한 칼럼니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파치노는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 받기 위해 20세 때 성매매를 했다.”고 고백했다.알 파치노는 “배우 지망생 시절인 20살 때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살았고 매우 가난한 시기에 가진 것은 몸 밖에 없었기 때문에 성매매를 했다.” 며 ”섹스에 대한 보답으로 음식과 숙소를 제공 받았으나 다음날 후회했다.”고 토로했다.오디션을 보러 갈 차비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알 파치노는 꿈을 향해 학교를 그만 둔 후 이탈리아에서 잠시 살다가 1969년 영화배우로 데뷔했으며 영화 ‘대부’시리즈로 일약 대스타로 발돋움했다.사진 = 영화 ‘여인의 향기’(1992) 캡처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정윤수의 종횡무진] ‘수비수’ 차두리에 거는 기대

    오늘 저녁,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속속 귀국한 해외파 선수들의 각오가 남다르다. 백전노장 김남일(32·빗셀 고베)이나 설기현(30·풀럼FC)은 물론이고 소속 팀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조원희(26·위건 애슬래틱)도 남다른 각오로 입국을 했다. 박주영·이근호·기성용·이청용 등 ‘영 건’이 주축이 된 허정무호에서는 ‘해외파’라는 명함이 무임승차의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선수는 차두리다. 그는 ‘자유 도시’라는 뜻의 독일 1부 리그 프라이부르크 소속이다.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과 마틴 하이데거의 정신적 고향이자 유럽 최고의 친환경 도시인 프라이부르크에서 차두리는 축구 인생 2막을 새로 열고 있다. 한·일 월드컵 때 그는 비록 벤치 멤버였지만 뛰어난 기량으로 4강 신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후반 막판에 터뜨린 오버헤드킥은 비록 골은 되지 못하였으나, 탈선한 폭주기관차 같은 당시 한국 팀의 힘과 열정을 상징하는 강렬한 장면이었다. 그 후 차두리는 적어도 대표팀과 관련해서는 씁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2006독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바이에른 레버쿠젠을 시작으로 지난 7년 동안 무려 6개 팀을 옮겨 다녀야 했다.아마도 ‘보통’ 선수들 같았으면 일찌감치 고국으로 돌아왔거나 어쩌면 은퇴의 수순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두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힘겹게 축구를 배운 여느 선수들과 달리 ‘독특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 그는 유년기를 한국에서 보내기는 했지만 독일이 ‘제1의 고향’이나 진배없다. 그곳에서 태어났으며 20대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국내 프로팀에 소속된 적이 없는 차두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해외파’가 아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전세계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현대 축구의 전설이다.이런 ‘조건’은 차두리가 고통없이 축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그 역시 60억명 인구 가운데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고 게다가 매일같이 승패가 반복되는 선수인 까닭에 실의와 좌절을 겪겠지만 그것이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오직 공 하나에 목숨을 걸고 뛰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경우라고 할 것이다. 아버지의 ‘후광’ 때문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선진 축구의 토양 속에서 차두리는 성장하였고 그곳에서 8년 넘게 프로 선수로 뛰고 있다. 축구가 일상인 곳에서 차두리는 천천히 자신의 강건함과 부족함의 균형점을 찾아내 왔다. 그 균형 감각이야말로 수비수로서는 최고의 미덕 아닌가.차두리는 “내 나이로 봐서 남아공월드컵이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의 화려했던 4강 멤버가 독일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어느새 축구 인생의 마무리 지점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차두리는 2001년 11월 바로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통하여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오늘 저녁, 차두리는 다시 세네갈과의 평가전으로 축구 인생 2막에 도전한다. 오랜 세월이 성숙시킨 능란하고 믿음직스러운 수비수 차두리를 기대한다.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 美 빨랫줄 싸움

    “빨래를 집 밖에 널지 말란 말이오.” 미국 미시시피주 베로나의 한 마을에 사는 한 남자가 이웃에게 총을 쏘면서 내뱉은 마지막 일성이다. 내년 5월에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건조시킬 자유’에 나오는 실화로 빨랫줄 사용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미국에서 최근 환경 보호를 위해 건조기 대신 빨랫줄을 사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에서 빨랫줄 사용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지역사회에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건조기가 가정 소비 전력의 6%를 차지한다는 점을 들어 빨랫줄 사용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플로리다, 유타 등에서는 각 지역사회가 빨랫줄 사용 금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통과됐고 메릴랜드,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는 입법 추진되고 있다. 이에 지역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집값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주 정부가 지역 사회 자치권까지 침해한다는 이유다. 세대 간 혹은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도 생기고 있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들은 빨랫줄에 긍정적이지만 나이 든 세대에게 빨랫줄은 가난한 집에서나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설사 기성세대가 빨랫줄 사용에 찬성해도 집주인이라는 벽을 넘어서야 한다. 빨랫줄 사용 운동을 위한 사이트 ‘프로젝트 런드리 리스트’를 운영하는 알렉산더 리는 “빨래방이나 집단거주 공간까지 생각하면 건조기로 소비되는 전력은 연방 정부 추정치의 3배는 될 것”이라면서 “요즘은 빨래집게가 뭔지조차 모르고, 먹다 남은 과자 봉지를 집는 집게로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비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가 볼만한 사진전 2제

    가 볼만한 사진전 2제

    오는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이다. 2005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구촌빈곤퇴치 시민네트워크에서 그날에 대해 인식하길 희망하며 ‘무고한 세계:The Innocent World’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사진전을 연다. 전시공간은 세종문화회관부터 현대해상빌딩까지의 거리이자, 야외다. 사진작가 성남훈, 이상엽, 한금선은 세계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구촌 한쪽에서 겪고 있는 빈곤에 대해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길 희망한다. 가깝게는 중국부터 프랑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몽골, 마다가스카르까지 도처에 가난이 도사리고 있다. 2008년 유엔새천년개발목표의 보고서에 따르면 식량가격의 상승으로 1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 상태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 세계적으로 최근 2~3년 사이의 식량가격의 상승은 석유를 대체하기 위한 선진국의 바이오 연료의 개발과 농촌의 도시화였다. 선진국의 변화는 후진국에 치명적인 빈곤을 가져왔다. 절대빈곤 속에 죽어가는 생명들을 우리는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도 우리의 양심은 숨을 쉴 수 있을까, 190×118㎝의 대형 사진은 묻고 있다. 17일 오후 4시45분 시네마정동 3관에서 작가들과의 만남도 준비돼 있다. 070-8282-1704. 상명대 석좌교수인 에드워드 김(한국명 김희중)의 ‘내 마음의 풍경’ 사진전은 한국이 가난했던 50년대 말 농촌풍경이다. 그는 1960년 연세대 재학 중에 유학을 떠나 텍사스주립대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하고 1967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입사해서 1985년까지 미국에서 활동했다. 한국에 돌아온 것은 1987년 미국잡지 타임의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2008년에는 대구 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그의 사진은 시간을 40~50년 전으로 훌쩍 넘는다. 하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이웃마을 잔치 참석차 집을 나선 어르신들과 소똥 냄새 날 듯한 나지막한 집들에 둘러싸인 우시장, 머리에 큰 함지를 이고 모델처럼 늘씬한 몸매로 걸어가는 아지매들, 미루나무가 바람에 날리고 주변이 온통 논밭인 봉은사 주변의 모습 등을 담아내고 있다. 아직도 이런 모습을 기억하는 농촌 출신의 40~50대들은 아련한 추억에 젖을 테고, 60대 노인들은 고향친구를 만난 듯 반가울 듯하다. 은근하고 섬세한 흑백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서울 서초동 화이트홀갤러리. 12월12일까지.(02)535-7119.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공주형 미술세계] ‘철의 노동자’들이 땀으로 빚어낸 물레아트페스티벌

    최근 한 통신사 광고에는 특별한 상점들이 등장합니다. 한 청년이 서점에서 책이 아닌 지혜를 뒤적입니다. 청춘남녀가 카페에서 커피가 아닌 인연을 기다리지요. 퇴근길 샐러리맨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은 뜨끈한 국밥이 아니라 고향입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가치를 주고받는 교감의 장입니다. 이런 특별한 시장이 텔레비전 광고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 도림천에 이르는 문래동 철재 상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철재뿐이 아닙니다. 예술이 두둑한 덤입니다. 철 자재, 용접기계 등을 사는데 예술이 덤이라니 의아합니다. 철의 노동자와 예술인의 동거가 빚어낸 결과물이지요. 일제시대 방직공장과 사택을 개조한 철공장에서 시작해 1980년대 ‘철의 메카’로 군림하던 이곳에 가난한 예술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5~6년 전입니다. 영세한 몇몇을 남기고 철공장들이 도시 외곽으로 다 빠져나가고 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철과 예술의 한집 살림이라니, 궁합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편견일 뿐입니다. 철공장에서 절삭기 돌아가는 소리와 춤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박자를 맞춥니다. 용광로가 뿜어내는 시뻘건 열기와 붓끝에서 피어나는 고단한 열정이 선의의 경쟁을 벌입니다. 줄타기 퍼포먼스를 하는 극단 배우들에게 쇳가루 내려앉고 기름 냄새 밴 거리보다 생생한 무대는 없습니다. 오시네 한식당, 동방 당구장, 현대 퀵, 예술과 도시 사회 연구소. 나와 남의 구분이 없이 분식집 쟁반에 예술가가 써 건물 입구에 나란히 걸어 둔 간판들은 발상부터 참신합니다. 낡은 철공장 철문에 예술가가 그려 놓은 나비가 철의 노동자의 신산한 삶을 지지합니다. 문래동 상인이 낙후한 철공장을 빈 캔버스 삼은 예술에 보내는 관심에 고단한 예술혼은 예술의 쓰임을 기쁘게 고민합니다. 계산하는 머리가 아니라 느끼는 가슴으로 노동의 장을 공유합니다. 정연한 논리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노동을 인정합니다. 더불어 살아갑니다. 커다란 중심이 자잘한 주변을 거느리는 공존이 아닙니다. 여러 개의 작은 주변이 나름의 중심이 되는 상생입니다. 함께 자랍니다. 곳간을 만들고 채우는 성장이 아닙니다. 가치를 발견하고 키우는 성숙입니다. 문래동 골목에서 조우한 철과 예술을 보며 어느 초현실주의 문학가의 말을 떠올립니다. 의과대학의 해부대 위에서 만난 재봉틀과 양산이 아름답다고 했던. 17~31일. 물레아트페스티벌 2009 ‘철과 사람과 함께 서다’, 서울 문래동 철재 상가 지역, 춤 공장, 극단몸꼴 스튜디오 외. <미술평론가>
  • [11일 TV 하이라이트]

    ●TV 동물농장(SBS 오전 9시30분) 개가 웃는다는 말이 정말일까? 개의 웃음을 둘러싼 논란, 웃는 개들을 찾아다닌 결과 밝혀진 개 웃음의 놀라운 진실은 개도 웃는다는 것! 그리고 그 웃음에는 마법같은 힘이 숨겨져 있었다. 개의 웃음소리가 난폭견공과 아픈 개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개의 웃음을 전격 해부해 본다.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 공가산은 쓰촨성 동 티베트에 속한다. 공가산의 공식 높이는 7556m이고 동 티베트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산을 걷다 보면 사소한 것도 감사하게 되고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나면 고요와 평화가 오는 것 같다는, 산의 매력에 푹 빠진 김진아씨와 최고은씨. 공가산의 첫 번째 트레킹 코스에 도착한다. ●KBS 스페셜(KBS1 오후 8시) 지난 4월 국회 인권상 수상자로 1985년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난민 96명을 구한 전제용씨가 선정됐다.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명87호’의 선장이었던 그는 인도양에서 조업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말라카해협에서 표류중인 베트남 보트피플을 만난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 선장은 어떤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늘 푸른 인생(MBC 오전 6시10분) 경북 영주시 안정면 오계1리를 찾아간다. 15살 어린 나이에 가난한 곳으로 시집와서 호랑이 시어머니 시집살이까지 꿋꿋이 견뎌내신 김정희 어르신. 애주가인 남편 때문에 술 냄새도 맡기 싫다는 부인. 이런 부인에게 술상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인 남편, 석대현 전하순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천만번 사랑해(SBS 오후 8시50분) 술에 취한 강호는 비틀거리며 은님을 바래다 주겠다면서 악착같이 쫓아온다. 그리고 은님을 혼자 보내면 집에 가서 잠도 못 잘 것 같다며 은님에게 사귀자고 고백한다. 은님은 황당한 얼굴로 기기막혀서 무시하며 가방으로 강호의 얼굴을 때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에 올라탄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45분) 1979년, 오랜만에 개인 비행을 하고 돌아온 퇴역 파일럿 마크. 그날 밤, 의문의 남자들이 마크를 찾아왔다. 그들은 마크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이유로 그를 어디론가 데려가 버린다. 1998년 하와이. 바다 속에서 물고기들을 촬영하고 있던 제프는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한 물체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대서양에 서식하는 대구는 한때 유럽인들의 식탁에 가장 많이 올랐으며, 인기가 많은 어종이었다. 하지만 최근 남획으로 인해 대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물고기 남획으로 인한 대구의 멸종을 이대로 두고 봐야만 할까? 대구가 사라져가는 원인과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 [한글날 3제] 어르신도 몽골서도

    한글 사랑이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퍼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글을 깨치지 못한 ‘늦깎이 학생’들의 공부 열기가 이어지고 이역만리 몽골에서는 ‘한글 큰 잔치’가 몽골 내 최대 규모의 문화제로 진행됐다. ●‘못 배운 한’ 푸는 어머니 학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교에 딱 이틀 나갔는데 6·25전쟁이 터졌어요. 당시 어머니가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했는데 거기가 폭격을 맞으면서 가족들과 생이별했어요. 배움의 기회도 잃었죠.” 8일 서울 이문동의 푸른시민연대가 운영하는 어머니학교에서 한글 수업을 마치고 나온 백영자(67·여)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같은 반 친구인 김영자(60·여)씨는 “그래도 언니는 학교 문턱이라도 밟아 본 사람이잖아.”라며 백씨를 위로했다. 이곳은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들을 위한 한글학교다. 어머니학교는 1994년 10월 문을 연 뒤 지금까지 1100명 이상의 늦깎이 학생을 배출했다.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들은 “이곳은 우리들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학교”라고 입을 모은다. 70여명의 학생들이 한글을 익힌다. 대학생과 직장인 15명이 교사로 일한다. 이들은 학교 운영을 위해 매달 2만~3만원씩 회비도 내고 있다. 최고령자인 황보출(77) 할머니는 “경북 포항의 오지마을에서 태어나 6남매 중 큰 오빠와 남동생만 학교 교육을 받고 세 자매는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왔다.”면서 “어린 마음에 교복입고 학교 다니는 애들을 보면서 남몰래 많이 울기도 했다.”며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김영자씨는 “한글을 모른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 은행에 갈 때는 항상 오른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가서 ‘손목을 다쳐 글을 못 쓰니 대신 써 달라’고 부탁했었다.”고 말했다. ●몽골에 부는 한글 사랑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지난달 26일부터 3일간 울란바토르 대학교 주최로 ‘한글 큰 잔치’가 진행됐다. 한글 큰 잔치는 한국과 한글에 대한 몽골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4년부터 매년 한글날을 전후해 진행되고 있다. 올해 행사는 한글 말하기, 한국 노래대회 등으로 꾸며졌다. 몽골 내 최대 규모의 외국 문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글 글짓기 대회에 참가한 중학생 우 에느렐(15)은 “한글과 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해 꼭 한국의 대학교를 가겠다.”고 밝혔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열린세상] 기쁨의 게임/방은령 한서대학교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열린세상] 기쁨의 게임/방은령 한서대학교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왼손을 다쳤다. 걷다가 어떤 딱딱한 물체에 부딪혔는데, 통증이 가라앉질 않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인대가 많이 늘어났다며 물리치료를 요란하게 하더니 깁스를 해주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갔던 난 당혹감에, 깁스를 꼭 해야 하나요, 나중에 하면 안 되나요,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손가락은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것저것 요청했다. 의사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최소한 일주일은 치료만 받고 절대 손을 움직이지 말 것이며 특히 컴퓨터 작업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내게 다짐을 받았다. 전날만 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아니 몇 시간 전만 해도 내가 깁스를 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냥 걸으면서 흔들리던 팔이 부딪힌 건데, 이런 상황까지 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 정도의 반동으로 그렇게 큰 마찰력을 일으킨단 말인가. 학술대회 원고며 논문과 연구 보고서 등 앞으로 2주 동안 속도를 내서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더구나 다음 날은 이래저래 필요한 반찬과 간식들을 만들어 놓는 날이기도 했다. 밤새 두 손을 움직여도 모자랄 판에, 걱정이 나를 눌렀다. 아니 그 보다도 손을 다쳤는데 편히 쉴 수도 없는 신세라는 게 더 짜증이 났다. 첫날은 머리가 복잡해 마음만 바빴다. 모든 게 어설프고 불편했다. 한손으로 이것저것 건드리자니 신경만 곤두선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 한 손 사용이 조금 익숙해지자 마음도 조금씩 여유를 찾게 되었다. 아, ‘기쁨의 게임’이 있었지. 어릴 때 읽은 엘리너 포터의 ‘파레아나의 편지(Pollyanna)’*는 성장기 동안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책이다. 가난한 목사의 딸이었던 파레아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기쁨을 찾는 게임을 하는데, 게임의 시작은 이렇다. 산타할아버지께 인형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교회 구호품으로 파레아나가 받은 선물 상자 속엔 지팡이가 들어 있었다. 엉엉 우는 파레아나에게 아버지는 ‘지팡이를 선물 받고 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냐.’며 기쁨의 게임을 가르쳐 준다. 만일 지팡이가 간절히 바라던 선물이었다면 어떤 경우였을까. 그때부터 파레아나는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내고, 주변과 마을 사람들에게 기쁨의 게임을 전파한다. 책이 워낙 재밌기도 했지만 기쁨의 게임은 정말 신기했다. 나의 모든 일상 속에도 기쁨은 반드시 있었고, 어떤 경우에도 찾아낼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친구들은 내가 ‘무엇이든 항상 좋게 생각하려 하고 화를 잘 안 낸다.’고 말했는데, 파레아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기쁨의 게임을 하면 실제로 슬프거나 화낼 일이 거의 없어진다. 사춘기를 큰 갈등 없이 보낸 것도 어쩜 ‘기쁨의 게임’을 한 덕분인지 모른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잊고 지낸 것이다. 며칠 동안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던 난 기쁨의 게임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오른손을 안 다친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평소보다 열배나 시간을 들여 키보드를 치게 되니 같은 내용을 수십번 검토하게 되고 얼마나 좋은가. 내가 무쇠보다 단단한 줄 알던 가족들이 나의 존재를 귀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도 기쁜 일이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잠 못 자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쁨의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심리학 이론을 들먹이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난, 내 삶속에 가득 찬 기쁨들을 보지 못한 채 그동안 스트레스만 받으며 지내왔다. 컵 속의 물을 보고 ‘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반이나 남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전혀 딴 세상에 사는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기쁨의 게임은 어렵지 않다. 무엇이든 기쁜 일로 변할 수 있는 게 이 게임의 매력이다. 힘들수록 힘이 된다. *당시 ‘파레아나의 편지’로 번안되었다. 원제는 ‘폴리애나’다. 방은령 한서대학교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 [HAPPY KOREA]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 꽃길

    [HAPPY KOREA]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 꽃길

    매년 3월이면 봄바람을 타고 온 노란빛 구름이 한 달 동안 머물렀다 떠나간다. 가을에는 탐스러운 붉은빛 열매가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곳,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 2·3리 ‘산수유 마을’이다. 아직 도회지의 때가 묻지 않은 듯 옛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할매·할배바위에 새끼줄로 엮은 고추와 숯이 그러했다. 산수유로 유명한 또 다른 지역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비하면 의성 산수유 마을에서는 가꿔지지 않은 야생의 멋마저 느껴졌다. 산수유 마을은 숲실마을(화전2리)과 전풍마을(화전3리) 둘로 나뉜다. ‘숲실’은 숲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라는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이다. 조선 임진왜란 때부터 마을에 다래와 머루 넝쿨이 어우러져 넓은 숲을 이뤄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전풍’은 마을에 중풍에 효과가 있는 산수유 나무가 많고 산 좋고 물이 좋아 끊임없이 풍년이 든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산수유 마을 입구로부터 10리(4㎞)가 넘는 산수유 길이 조성돼 있다. 봄철 산수유 꽃이 피면 마을은 노란 눈이 내린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산수유 나무는 무려 3만여 그루에 달했다. 그 나이도 짧게는 30년부터 길게는 300년이 넘는다고 했다. 산수유 나무가 화전리를 온통 뒤덮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의 가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전리 마을 주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시절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한약재로 쓰이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길러 내다팔기로 마음먹고 마을에 산수유 나무를 하나 둘 씩 심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염원이 현재 화전리를 전국 최고의 산수유 마을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산수유 열매는 가을인 8~10월에 붉게 익는다. 맛은 단맛, 떫은맛, 신맛이 동시에 난다. 열매에는 동맥경화 예방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인 리놀산과 체내의 불필요한 수분 배출을 촉진하는 사포닌 등이 다량 함유돼 있다. 산수유 열매는 보통 한약재료로 쓰인다. 몸의 장기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 내과질환에 좋으며, 원기 회복에 효능이 있다. 또한 눈을 밝게 하고, 특히 머리카락이 희어지지 않게 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무릎이 시큰거릴 때, 어지럽거나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식은땀이 날 때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산수유의 화려한 꽃망울로 매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산수유 마을이지만 지방도에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할 만큼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게다가 마을까지의 진입로가 꼬불꼬불해 관광객들이 쉽게 찾기 힘들며 주차여건도 좋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행정안전부와 의성군청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화전 2·3리에 걸친 산수유 마을에 넓은 주차공간과 부대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산수유 꽃길 20리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도 한창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산수유 꽃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탐방로가 올해 안으로 들어설 계획이다. 그 길이만도 약 20리(8㎞)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친환경적인 꽃길 조성을 위해 도로 포장은 하지 않으며, 농사철에는 경운기 통행도 겸하게 해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의 생업과도 연계된 꽃길로 탄생할 전망이다. 지난 3월 산수유 마을에서는 ‘노란 꿈망울 향연’이라는 이름으로 산수유 꽃 축제가 열렸다. 23일부터 4월10일까지 19일간 열린 행사 기간 동안 3만여명의 관광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축제기간에는 산수유 꽃길걷기 체험, 산수유 차·와인 시음, 산수유 찰떡 만들기, 알쏭달쏭 산수유 퀴즈 등 산수유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KBS 전국 노래자랑, 벨리댄스, 시화전, 시골장터 등의 다채로운 행사도 열렸다. 행사기간 동안 열린 토속음식장터에서는 산수유 국수, 산수유 동동주, 산수유 두부 등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김학수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계장은 “산수유 꽃길 20리 조성 사업으로 의성 산수유 마을이 환경 친화적인 휴양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의성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문화마당] 인생은 연극이다/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인생은 연극이다/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인생이란 무엇인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밤으로의 긴 여로’는 인생이란 여행이면서 연극임을 보여준다. 한 집에 사는 부모형제 간에 오랫동안 누적되어 잠재해 있던 갈등과 불화가 화산처럼 폭발하면서 전개되는 긴 하루 동안의 가족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가족이란 한 지붕 밑 같은 식탁에서 먹고사는 인연 공동체다. 타이런이라는 남자와 메어리라는 여자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는 인(因)으로 제이미와 에드먼드라는 두 아들이 태어나는 연(緣)이 생겨났다. 이 인연은 우연이지만 운명이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모순의 관계를 형성했다. 메어리는 수녀나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을 가졌다. 하지만 타이런과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선택함과 동시에 꿈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것들을 선택하지 않은 것의 결과는 잠깐의 행복과 불행의 연속이다. 현재의 불행이 크면 클수록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집착과 회한은 커진다. 그 간극을 맨 정신으로 견디지 못하는 그녀는 마약중독자가 되어 유령처럼 집안을 떠돈다. 아버지 타이런은 가난을 딛고 각고의 노력으로 연극배우로 출세했다. 하지만 어느 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자 돈에 눈이 어두워 전국을 순회공연하면서 그 역만을 편하게 몇 년간 하다가 결국 재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역시 잃어버린 과거의 포로가 되어 노년의 가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돈과 땅에 집착하는 구두쇠로 전락했다. 부모의 불행은 자식에게도 유전된다. 아버지의 끼를 전수받은 제이미는 연극배우가 되고, 어머니의 감수성을 이어받은 에드먼드는 시인이 되지만, 이들 역시 불행하다. 피를 나눈 가장 친한 친구지만 태어남과 동시에 가장 먼저 만나는 적인 형제란 카인과 아벨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동생의 탄생은 형에게는 불행이고, 형제의 성공은 축하보다는 질투의 대상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또한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명명한 것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해야 할 운명이다. 이처럼 부모형제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의 집합이 가족이다. 가족은 비극의 씨앗이다. 아버지 타이런은 토로한다. “돈 귀한 걸 배운 것도 집에서고, 늙어서 양로원 들어가는 걸 겁내게 만든 것도 집”이라고. 하지만 병 주고 약주는 곳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사회의 은신처며 세상에 혼자가 된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다. 비극의 씨앗인 가족이 희망의 보루일 수 있는 이유는 제이미가 동생에게 했던 말처럼, 가족 간에는 미워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유진 오닐은 이 작품에서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로 ‘내 묵은 슬픔을 눈물과 피로 쓴 극’이라고 썼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이 죽은 후 25년 동안은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왜 그는 공연되지도 말아야 할 희곡을 썼을까? 그는 먼저 인생이라는 연극을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하고 난 다음 그 대본을 작품으로 씀으로써 불행했던 삶을 구원받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연극은 인생의 거울이다. 나에게 연극은 일상을 떠나는 여행이면서 현실을 초월하게 해주는 종교다. 연극을 보면서 나는 인생이란 한바탕 꿈이라는 걸 깨달으며, 내가 주연인 인생의 연극을 보는 관객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셰익스피어가 썼듯이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어떤 이는 일생 동안 7 막에 걸쳐 여러 역을 연기한다.” 나는 어떤 배역을 하다가 몇 막에서 퇴장할까? 깊어가는 가을, 연극을 보면서 내 인생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생각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 홀로 사는 ‘기부천사’들 특별한 나들이

    홀로 사는 ‘기부천사’들 특별한 나들이

    기초수급대상자 할머니의 500만원, 전 재산 1500만원을 기부한 80대 할머니…. 어쩌면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뜻 기부한 독거노인들이 있다. 스스로도 가난과 병에 시달리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면서도 어려운 이웃의 삶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추석을 사흘 앞둔 30일 독거노인들이 서울 경복궁을 찾아 생애 가장 특별한 명절 나들이에 나섰다.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모금회)의 ‘행복한 유산 캠페인’에 동참한 12명 가운데 5명이 나왔다. 검은색 투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회색 꽃모자를 쓴 박부자(85) 할머니는 “명절마다 혼자 집에서 화초에 물을 주거나 기도를 했다. 20년만의 바깥 나들이”라면서 “날씨도 좋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보고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니 기분이 참 좋다.”며 수줍게 웃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박 할머니는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뒤 전세금 500만원을 모금회에 기부했다. 장기기증 서약도 함께 했다. 기초수급대상자인 그는 “자식도 없는 늙은이가 배 곯지 않도록 매달 나랏돈을 주는 정부에 남은 재산을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천식을 앓고 있는 김춘희(84) 할머니는 2005년 1월 전 재산인 전세금 1500만원을 기부하면서 ‘행복한 유산 캠페인’의 1호 회원이 됐다. 할머니는 기부 확인서에 도장을 찍은 날 밤 기분이 좋아서 잠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그깟 1500만원, 돈 많은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전부나 마찬가지”라면서 “이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탄 채 경복궁을 돌아본 뒤 삼계탕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운 할머니는 “오늘이 생애 최고의 날”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모금회 박영희 대리는 “유산을 남긴 독거노인 어르신들이 올해 들어 12명으로 늘어나 앞으로 명절 때마다 바깥 나들이나 문화공연에 모실 생각”이라면서 “유산을 기부하는 따뜻한 문화가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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