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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잔] ‘내마음의 아리아’ 펴낸 안동림 前 청주대 교수

    [저자와 차 한잔] ‘내마음의 아리아’ 펴낸 안동림 前 청주대 교수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평생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이 없을 듯하다. 그런 기준으로 따지자면 안동림 전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는 참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전공한 영문학자, 장자를 흠모하는 한학자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멘토로 특히 유명하다. 중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에게서 배운 노래들을 통해 음악에 빠져든 이후 그는 평생을 클래식 음악과 벗하며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는 비평가도, 전문가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가 쓴 책 ‘이 한장의 명반 클래식’은 클래식 입문자들이나 애호가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그가 평생 즐겨 들어 온 오페라 아리아 명곡 63곡을 뽑아 ‘내 마음의 아리아’(현암사 펴냄)를 내놓았다. 지난 5일 서울 성북동의 한 북카페에서 선생을 만났다. 선생이 팔순을 맞은 날이기도 했다. 특별한 가족 행사가 있는지를 여쭸더니 “그런 것 번잡해서 싫다.”고 한다. 오랜 지기인 평론가 이순열 선생과 단골 국밥집에서 만나 얼큰한 우거지국밥을 맛있게 먹고, 차 한잔 마시며 새 책을 평하고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충분하단다. “오페라는 줄거리만 보면 통속 소설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배신하고…. 그런 오페라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아리아가 있기 때문이죠.” 60여년 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어 온 선생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거치는 단계는 대략 이렇다. 관현악에서 출발해 협주곡, 실내악 등 기악곡을 거쳐 결국은 성악곡에 빠지게 된다. 성악곡의 대부분은 오페라 아리아다. “인간의 목소리를 능가하는 악기는 없기 때문입니다. 음악·미술·문학·연극이 총화된 오페라가 클래식 음악의 보석이라면 아리아는 다이아몬드에 해당합니다.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의 오페라 아리아는 결국 음악 사랑의 종착역인 셈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선생에게 오페라 아리아는 언제나 절실한 향수(鄕愁)로 와 닿는다. 평양 태생인 그는 전쟁 통에 고향을 떠나 살면서 가난하고 외로운 젊을 날을 보내야 했다.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았던 고독한 마음을 달래 주었던 것은 바로 오페라 아리아였다. 마음속에 보석처럼 담아 두었던 아리아들을 이번 책에 담담하게 풀어냈다. 푸치니의 라보엠 중 ‘그대의 찬손’과 ‘제 이름은 미미입니다’처럼 클래식 초보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대중적인 아리아부터 그가 콧노래로 즐겨 부르는 레하르의 오페레타 명랑한 과부 중 ‘빌리야의 노래’와 가장 좋아하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중 ‘카탈로그의 노래’까지. 요란한 것을 싫어하는 그답게 화려한 수식과 달콤한 감상을 배제하는 대신 꼭 필요한 정보를 알차게 담았다. 오페라의 핵심 내용과 함께 아리아 원문 가사와 한글 번역, 작곡가와 명연주 및 명가수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친절하게 곁들였다. 책 발매에 맞춰 음반사 EMI는 책에 소개된 아리아들을 담은 동명의 음반을 출시했다. 선생은 이번 책을 통해 오페라가 개화기 이후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통용돼 온 엉뚱한 아리아 번역을 원전에 최대한 근접하게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청아한 아리아’가 아닌 ‘거룩한 아리아’(베르디의 아이다 중)로,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를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베르디의 리골레토 중)로 바꿨다. 또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외국어 표기를 현재 통용되는 맞춤법에 따르지 않고 원어 발음에 최대한 근접해서 썼다. 독자들이 클래식음악과 아리아의 원래 내용과 참맛에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책은 지난 3월까지 2년여에 걸쳐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했던 내용들을 수정 증보한 것이다. “인터넷 세대에 아름다운 오페라 아리아의 세계를 알려주고 싶어 시작했던 일”이라며 “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가 지치고 외로운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듯이 독자들도 각자의 마음 속 아리아를 발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3만 5000원.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부에노스 아이레스, 50명 시위에 마비됐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50명 시위에 마비됐다

    넓고 긴 길이 사방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어 유명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6일(현지시간) 최악의 교통정체가 벌어졌다. 자동차를 줄지어 서게 한 건 단 50명. 하지만 중심부 전체를 마비시킬 만큼 정예군(?)의 시위였다. 문제의 시위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시작됐다. 불법으로 형성된 빈민촌에 사는 주민들이 갑자기 일리아 고가도로로 밀려올라가 차선을 장악하고 시위판을 벌였다. 불이 붙은 타이어를 군데군데 놓아 자동차의 주행을 원천 차단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근교를 연결하는 핵심 통로인 일리아 고가도로가 막히자 지상에선 자동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장장 7시간 동안 시위가 지속되면서 길에는 6km까지 자동차행렬이 늘어졌다. 빈민들은 이날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사는 빈민촌에선 최근 한 주민이 병원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이웃 주민들은 “위급한 환자가 있으니 무료 앰뷸런스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빈민촌 입구까지 왔던 앰뷸런스는 동네를 보더니 방향을 틀어 되돌아갔다. 이런 일이 2번이나 벌어지는 사이 아팠던 주민은 결국 눈을 감았다. 시위대는 “앰뷸런스가 그냥 돌아가는 바람에 결국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됐다.”며 빈부차별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사진=클라린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열린세상] 중동의 한류열풍과 이슬람포비아/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열린세상] 중동의 한류열풍과 이슬람포비아/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이번 중동 출장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최고의 대접을 받은 적이 많았다. 한류 열풍 때문이다. 그들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식, 태권도, 축구, 게임, 한국말은 기본이고 한국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대학생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이집트의 ‘겨울연가’ 열풍도 대단했지만, 이란에서 방영된 ‘대장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6개월 평균 시청률 90%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물론 정확도에서야 오차가 있겠지만 실제로 대장금을 방영하던 날 밤, 테헤란 시내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식당과 카페, 번화가 가전제품 전시관 앞에는 오로지 대장금을 보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는 거의 자동차도 다니지 않았다. 이러한 한류 열풍 때문에 거의 대부분 중동 국가에서 가전, 정보기술(IT), 자동차 부문에서 한국제품이 단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독한 한국 사랑이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의 90%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고,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건설·플랜트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약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한국상품만 골라 사준다. 월드컵 축구 같은 국제대회에서 한국과 유럽팀이 맞붙으면 그들은 당연히 한국팀을 응원한다. 중동의 많은 아랍인들은 1970~80년대 연인원 100만명이 넘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흘린 고귀한 땀방울을 신화처럼 기억한다. 그들에게 한국인은 ‘성실과 근면’의 화신이다. 그 결과 뜨거운 열사의 땅에서 24시간 3교대하면서 일구어 놓은 사막의 고속도로를 한국제 자동차가 달리고, 우리 기업이 건설해 놓은 관공서에서 근무하고, 한국형 아파트에서 한국제 텔레비전 앞에서 가족이 모여 앉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사랑을 키워간다. 그때는 가난해서 외화를 벌러 왔던 한국인들이 이제는 자신들보다 훨씬 앞서 있는 현실에 기분 좋아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지배했던 서구의 앞선 발전은 따라가기 싫지만, 고유한 전통과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첨단기술 획득과 경제 발전에 성공한 한국은 적어도 중동사람들에게는 닮고 싶은 진정한 롤 모델이다. 중동에 출장 중일 때, 국내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수쿠크(이슬람 채권)법 논쟁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테러자금과 관련되고 국내 이슬람 포교의 자금줄이 된다는 논리를 지켜보면서 참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수쿠크의 애매한 역기능이 크게 문제되고 부각되어야 할까. 왜 종교가 공공의 영역에 자주 침범하게 될까. 참 생각이 많았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무슬림 숫자는 10만 정도, 전체인구의 0.2% 수준인데도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이슬람 국가가 되리라는 논리의 비약도 수긍하기 힘들다. 그들이 결혼한다 해도 국내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일부다처를 할 수도 없고, 한국에서 살려면 아이를 5~6명씩 낳아 기르기도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서구에서 바라보는 전형적인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증) 현상으로 보인다. 중동·아랍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해서 코리아 브랜드를 찾고,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려 하는데 왜 우리는 그들을 버리고 가려 하는가? 이제는 지나친 편견보다는 우리의 눈으로 그들을 보고 친구로 받아들이자. 특히 이슬람을 종교적 문제로만 보면 불편한 이념체계로 보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일신교는 ‘선과 악’의 구도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이슬람의 문제를 종교적으로 풀지 말고 같고 다름의 문제인 문화로 접근하면 어떨까 싶다. 지구촌 미래를 함께 짊어질, 나와 다른 가치·생각을 가진 따뜻한 이웃으로 무슬림들을 바라 볼 수는 없을까? 우리가 온통 색안경을 끼고 이슬람세계를 버리고 간다면, 언제까지 그들이 우리를 기다려주고 사랑해 줄지 장담하기 어렵다. 14억 인구, 57개 국가를 가진 이슬람 세계와 윈윈하는 협력적 동반자로 끌어안아야 비로소 진정한 글로벌화로 가는 길이 아닐까.
  • [최종찬 따뜻한 사회]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만들기

    [최종찬 따뜻한 사회]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만들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상업고등학교만 나와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해야 법조인이 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은 법조인이 되기가 과거에 비해 어려워졌다. 서울대 등 일류대학 학생들의 학부모 소득이 과거에 비해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가난한 수재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시골의 가난한 수재가 명문대학에 입학하여 아르바이트로 자기 학비는 물론 동생들 학비까지 조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요즈음 우스갯소리로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한다. 요즈음 세계화시대에 각계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포함해 외국어를 잘하고, 컴퓨터 등 정보기술(IT)에 능숙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해외유학을 보내고, 대학생들은 1년 정도 해외 어학연수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 또한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어려운 일이다. 공교육이 부실하여 사교육의 비중이 커진 것도, 가난한 집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개천에서 용 나기가 훨씬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평등사회를 원한다. 평등사회는 결과적 평등사회와 기회균등사회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결과적 평등사회가 아니라 기회균등사회라고 생각한다. 결과적 평등사회는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자는 것인데, 이것은 근로의욕을 빼앗아 모두 가난해지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파멸한 공산주의가 실례이다. 기회균등사회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있지만 빈부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돈 벌고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회를 말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처지가 어렵더라도 미래에 희망이 있으면 참고 기다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성취의욕이 강하다.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세대, 손자세대라도 이루기를 희망한다. 우리 사회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면 열심히 일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 사회시스템을 불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사회불안의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누가 법과 질서에 순응만 하려 하겠는가?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많이 나올 것이다. 따라서 신분상승을 원활하게 하는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 확대는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다. 사회적 유동성은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처럼 정기적으로 통계 수치가 발표되는 것도 아니어서 과연 우리나라의 사회적 유동성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질 때까지 국민적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앞으로 사회적 유동성을 확대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 모든 정책이나 예산 운용이 사회적 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문제점과 보완방안을 제기할 전담기구가 필요하다. 신분상승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실제로 고교평준화 도입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사회적 유동성 확대인데, 현재 그와 같은 목적이 달성되었는지 제대로 분석이 안 되고 있다. 사교육 비중이 커진 것으로 볼 때 사회적 유동성 확대에 별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또한 법학전문대학원과 같은 제도가 사회적 유동성을 억제하지 않도록 보완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단편적으로 각 부처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도 여건변화에 따라 실효성이 없거나 심지어 악용되는 사례도 많으므로 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민과 정책 담당자들이 사회적 유동성 상태에 관심을 갖도록 사회적 유동성 지표를 개발해 정기적으로 발표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유동성 백서도 정기적으로 발간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어려워도 내일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이 있는 사회가 살맛 나는 세상이다. 전 건설교통부 장관
  • 교과서적인 대답 합격 못한다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강도는 도망가고 있다. 피해자를 구할 것인가, 강도를 잡을 것인가?” 순경 1차 면접시험이 오는 11일부터 22일까지 전국 지방경찰청에서 진행된다. 면접은 개별면접과 단체면접으로 구성되며, 개인당 15~2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 순경 면접 질문은 기출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만큼 지금까지 면접에서 나왔던 질문들을 꼼꼼히 파악해야 실제 면접에서 당황하지 않고 잘 말할 수 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지금까지 순경 면접에서는 ▲가난한 고등학생이 천원짜리 빵을 훔쳐먹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파트에서 개가 짖는다고 신고가 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호스트바와 관련해 남녀평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물과 뇌물의 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사귀고 있는 애인이 경찰직 지원을 반대한다면 등의 질문이 응시생들을 당황케 했다. 이와 관련, 김재규 경찰학원의 김재규 원장은 “면접에는 정답이 없다. 어떤 질문이든 자신의 소신에 따라 답하는 것이 최고의 면접 요령이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공무원 면접이라고 해서 정부의 정책을 대변하거나 법 규정에 맞는 교과서적인 대답을 한다면 결코 합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면접은 응시자들이 얼마나 많은 법률 지식을 암기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다.”면서 “면접위원들은 틀에 박힌 지식이 아닌 사고의 유연성과 공직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존 기출질문 외에도 최근 주요 이슈인 ▲동남권 국제공항 건설 무산 논란 ▲전 좌석 안전띠 착용 의무화 ▲예능프로 ‘나는 가수다’ 논란 ▲일본 역사 교과서 파문 등도 출제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꼽았다. 이 밖에 응시자들은 수험표, 신분증,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를 각 1부씩 지참해야 하며 면접 1시간 전에 고사장에 도착해야 한다. 최종 합격자는 27일 해당 지방청 홈페이지에 공고된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공부와 인성 채워주는 특별한 학교

    공부와 인성 채워주는 특별한 학교

    나눔과 배움으로 공부와 인성 두 가지를 채워주는 행복한 학교가 있다. 6일 오전 11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행복한 교실’에서는 경남 산청 지리산고등학교를 소개한다. 2004년 설립되어 대안교육 특성화 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시골의 작은 학교지만 해마다 학생들이 서울대에 진학한다. 과연 지리산고등학교의 특별한 교육법은 무엇일까. 지리산고등학교는 처음에는 가난한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대안학교였지만, 정부 인가를 받아 대안교육 특성화 학교가 되었다. 폐교된 2층짜리 초등학교 분교를 학교 건물로 쓰고, 전교생 72명에 학생들의 교육과 생활을 책임지는 선생님도 10명뿐인 작은 학교다. 하지만 이 학교에는 특별함이 있다. 가정환경이 어려워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꿈을 포기하는 학생들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환경은 어렵지만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학생이라면 지리산고등학교의 학생이 될 수 있다. 이 학교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전교생이 무료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초창기에는 주변의 후원자 800여명이 매월 1만~2만원씩 꾸준히 후원해 준 것으로 운영했고, 지금은 지원금과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후원금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시설, 교재, 교복과 식비, 학비, 기숙사비까지 학교에서 모든 것을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이렇게 받은 특혜는 전교생이 봉사로 베푼다. 지리산고등학교에서는 일주일 중 하루가 전교생이 봉사하는 날이다. 바로 나눔을 통해 인성교육을 실천하는 것. 학생들은 인근의 마을회관, 양로원, 복지회관 등을 방문해 마을 청소를 돕거나 노인들의 말동무도 되고 식사도 챙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차 한잔 하실까요]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무상급식은 또다른 교육”

    [차 한잔 하실까요]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무상급식은 또다른 교육”

    “밥 한 그릇을 주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상급식은 복지가 아니라 교육입니다.” 유덕열(57) 동대문구청장은 5일 집무실에서 가난했던 어린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남 나주군 가난한 집안의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5·16군사쿠데타 때 실직한 뒤 가세가 기울면서 학교 공납금도 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밥 한끼의 소중함과 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절감한 때였다. “신문배달을 하면서도 고교진학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보급소에서 숙식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꿈을 꾸었어요.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죠. 낡은 책상을 몇개 붙여서 그 위에 닭털 침낭을 깔고 잠이 들곤 했는데 깨보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죠.” 그가 올해 교육에 올인하는 것도 너무나 어렵게 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경비지원조례를 개정해 재정을 확보하고 전농7구역에 우수고 유치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해보다 40억원이 늘어난 105억원을 유치원과 초·중·고교 학생들의 학력신장과 시설개선에 투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앞으로 5년간 학생 학력신장을 위해 8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전출하는 사태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내놓은 비장의 카드였다. ●가난한 어릴적 한끼 소중함 배워 1976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던 시절 그의 꿈은 기자였다. 그러나 그 꿈은 1979년 부마(釜馬) 민주화운동 때 시위에 동참하며 바뀌었다. 민주화의 한복판에 몸을 맡기게 된 계기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부터다. “삼청교육대에서 겪은 한달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어요. 물 마실 자유도, 화장실 갈 자유도 없는 수용소군도 같은 그곳에서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더 갈망하게 됐죠. 군홧발로 짓이기고, 개패듯 곤봉 세례를 퍼부어댔죠. 수갑 찬 팔목이 피범벅인 채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또 한번 눈앞에서 보는 듯) 말을 잇지 못하다가 “덕분에 어린시절 신문배달로 근근이 살았을 때도 굽히지 않던 자존심과 욱하는 성격이 많이 고쳐졌다.”며 “요즘은 사람 비위를 가장 잘 맞추는 구청장이 됐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부인(정승교 제천 세명대 교수) 얘기로 말꼬리를 돌렸다. 아직도 주말부부로 지내느냐고 묻자 “주말에 만나면 영화를 보러 다니고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먹으러 다니곤 한다.”며 “얼마 전엔 ‘킹스피치’(올해 아카데미 수상작)를 재밌게 봤다.”며 뒤늦게 부인과 함께하는 오붓한 시간이 흡족한 듯 말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신혼부부처럼 사는 그에게 부인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시기(?) 서린 질문을 던지자 돌아오는 말이 ‘아내 사랑 종결자’답다. “결혼 전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걷는데 그 청순함이 확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며 “지금은 친구처럼 믿고 말없이 지켜봐 줘서 더없이 고맙다.”고 말했다. 부인은 그가 민주화추진협의회 선전부장,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가난한 정치생활을 할 때도 그렇게 말없이 지켜봐 준 ‘내조의 여왕’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좌우명도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이다. 민추협 선전부장을 지내던 1985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받은 휘호 선물이기도 하다. 민원인들과 목요일마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심지어 전농·답십리 촉진지구, 이문·휘경촉진지구 등 뉴타운을 비롯, 유난히 많은 재개발·재건축 민원으로 골치가 아플 법도 한데 현장을 일일이 찾아가 다독였다. ●“토박이 많은 동대문 인간적” 그는 지난해 취임 이후 줄곧 재개발·재건축(40곳)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을 찾아가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다. 고된 현장방문 탓인지 그의 머리는 요즘 반백(半白)이 됐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어르신들을 만나러 현장에 갈 때 반백으로 나타나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염색을 했다. 사소한 것까지 생각하는 섬세한 배려가 통했던 것일까. 얼마 전 답십리16구역을 찾아가 고도 때문에 “일조권이 침해된다.”며 뉴타운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시공사를 동시에 만나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는 “조합운영에 따른 부정비리를 막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게 더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유 구청장은 차 한잔 끝에 그가 꿈꾸는 명품도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동대문구에는 토박이들이 많이 살아요.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죠. 강남과는 다른 끈끈한 정이 넘쳐요. 주민과 소통을 하는 이유도 바로 정을 나누기 위해서예요. 고품격 주거단지와 쾌적한 환경이 조성된다고 명품도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래 살고 싶은, 인정이 흐르는 도시야말로 명품도시가 아닐까요.”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美공화 “정부예산 10년간 4조弗 줄여야”

    미국 야당인 공화당이 앞으로 10년간 정부 예산을 4조 달러 이상 대폭 깎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백악관은 향후 10년 간 적자를 1조 1000억 달러 이상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공화당의 예산 삭감 목표는 정부 안보다 4배 가까이 큰 셈이다. 여야 간 예산 갈등과 정부 폐쇄 논란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공화당 소속인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은 4일(현지시간) 2012 회계연도 예산안에 이 같은 감축 목표를 반영하겠다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2012 회계연도 3조 7000억 달러 예산안에 대한 공화당 차원의 공식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언 위원장은 “우리는 가지고 있지도 않은 돈을 소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다음 세대에는 빚 없는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고 긴축재정을 강조했다. 라이언 위원장은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강보험 개혁 부분에 칼을 들이대겠다고 선언했다. 메디케어(노인층 의료보장)를 시행하느라 지난해에만 3965억 달러의 비용이 소진됐고 2016년에는 5028억 달러의 비용이 전망되는 만큼 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현재 55세 이하의 국민에게는 일종의 개인 보험을 선택토록 하고 정부가 초기 보험료를 지원해 주되 가난하거나 덜 건강한 이들에게는 더 많은 규모를 지급해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 정책의 핵심인 이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예산 협상을 정치적인 논쟁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장애인도 납세자로 자기 삶 창조할 수 있어야”

    “장애인도 납세자로 자기 삶 창조할 수 있어야”

    3일 이성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과의 직격 인터뷰 첫 질문은 ‘장애인을 왜 도와야 하나.’였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정의론’을 꺼냈다. ‘열패감’(劣敗感)이 적은 사회가 공정사회라면 사람들의 시선만으로도 ‘남보다 못해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장애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정은 아니었다. 무조건적 복지보다 중증장애인들도 고용을 통해 사회로 끌어내겠다고 했다. 오는 9월 50여개국이 참가하는 가운데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서 5연패를 노릴 정도로 기능이 훌륭한 이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적 차이에 의해 장애인의 기능과 고용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애인기능올림픽 처음으로 폐막식에서 발표할 ‘서울 선언’의 내용이다. ●장애인기능올림픽 5연패 도전 →4월이 장애인의 달이다. 매년 한쪽에서는 사회의 편견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일부는 장애인을 왜 도와야 하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사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 나와 장애인을 구분하는 시선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장애인을 특별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실제 만나면 잘 되지 않는 수준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포용해야 하는 이유는 요즘 유행하는 공정사회론과 매우 닮아 있다. 니체는 공정사회가 되려면 ‘열패감’이 강한 사람부터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조건과 같은 상황이라면 사회의 시선에 대해 장애인들이 갖는 열패감이 훨씬 크다. 현재 장애인 실업률은 비장애인의 2~3배이고 소득수준은 절반밖에 안 된다. 배려가 아니라 당연히 함께 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결국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 조기 교육을 하는 국가의 경우 장애인들을 자연스럽게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나라 기업은 정원의 2.7%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장애인의 실업률이 비장애인의 두배라지만 일부는 장애인 채용 쿼터제 때문에 일반 실업자가 역차별을 받는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일본과 유럽 일부에서 노동조합이 장애인 채용 쿼터 때문에 비장애인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경우가 있었다. 실제 일부 기업은 노동조합이 강성이어서 그들을 내몰고 장애인으로 채용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연대이므로 장애인을 노조원으로 여기고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최근 기업들은 결원이 생기거나 추가 인력이 발생할 때 장애인을 뽑는 경우가 많다. 통상 장애인 채용이 일반인 채용을 줄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대학이 유색인종 입학쿼터제를 운영하면서 백인들이 소송을 하기도 했지만 유색인종은 쿼터제가 없으면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점에서 미국 법원은 유색인종의 손을 들어줬다. 유색인종이 고등교육을 받고 납세자로 전환하면서 사회의 인종 갈등을 치유하는 역할도 했다. 장애인 쿼터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올해 9월 우리나라에서 국제 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가 개최된다. -8회 대회로 우리나라는 이미 5차례 우승했고 5연패에 도전한다.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양재동 aT센터에 50개국 1500명 이상이 모인다. 이번 대회는 ‘서울선언’을 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국력의 차이가 장애인들의 직업적 능력 차이가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캄보디아나 베트남 등은 오랜 전쟁으로 장애인이 많지만 직업훈련 시설 하나 변변치 않다. 이를 지원하는 동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에 이미 23개국이 동의했다.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해 다국적 기업들의 관심도 늘고 있다. →최근 ‘장애인복지 발달사’를 집필했는데 역사 속 장애인들은 사회와 어떤 소통 과정을 거쳐 왔는가. -사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역사가 발전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고려시대에는 동네 사람들이 추수할 때 곡식을 장애인에게 모아서 가져다 주면 조공에서 그만큼을 빼주는 제도가 있었다. 이조 시대에는 맹인들에게 복지관을 지어주었다. 반면 자본주의와 도시문명 사회에서 개인의 직업 능력을 중시하면서 장애인들이 열패감에 휩싸이게 됐다. 요즘 다시 복지로 장애인을 보조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마음으로 실천하는 정도까지 오지는 않았다. ●“중증장애인 고용에 무게 둘 것” →장애인 고용에 있어서 중증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이 적다는 지적이 많다. -장애인고용공단의 정책은 경증장애인보다 중증장애인 채용에 무게를 크게 두도록 할 것이다. 이미 지난해 기업과 공공기관의 장애인 고용 쿼터에서 중증장애인 고용의 경우 경증장애인 2명으로 산정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 중증장애인 82명을 공무원으로 채용되도록 했고 그 수를 더욱 늘릴 예정이다. 기업 안에서 중증장애인들이 할수 있는 직무도 개발 중이다. 영국은 램플로이(remploy)라는 시스템이 있다. 중증장애인을 고용하는 공기업으로 지역에 따라 가구부터 속옷, 무기까지 만들어서 납품한다. 독일은 아예 장애인 고용에 대한 법 이름이 ‘중증장애인고용법’이다. 직업훈련 등을 중증장애인에 맞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자체 등과 연합해 이런 모델들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있지만 장애인 스스로도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장애인을 위한 기초복지는 좋은 개념이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장애인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납세자로 들어오게 해 자기 삶을 창조하도록 해야 한다. 사전적, 적극적, 능동적 복지다. 장애인의 심리에너지를 활성화시키고 사는 맛을 느끼게 해야 한다. 자는 공간과 먹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달라야 한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한정 의존적 존재로 여기는 정책은 잘못 설계된 것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 창조가 가능하도록 도와야 한다. 글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약력 ▲1961년 충남 출생 ▲경성고, 고려대 경제학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국장 ▲대통령비서실 사회복지수석실 행정관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통령실 사회정책자문위원
  • “초등학생 아냐”…편견 맞선 ‘120cm 커플’ 결혼

    “우리 결혼했어요!” 앳된 외모와 작은 신장 탓에 세상의 편견에 맞서야 했던 중국 남녀가 공개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중국 관영신문 차이나 데일리는 “주 지에(23)와 동갑내기 남자친구 칭 쉬에시가 지난 2일(현지시간) 다롄에 있는 테마파크 ‘디스커버리 랜드’(Discovery Land)에서 하객들의 축하 속에 부부가 됐다.”고 보도했다. 성장장애를 앓는 신랑과 신부는 초등학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와 120cm가 간신히 넘는 키를 가졌다. 그동안 호기심 어린 시선에 상처를 받아야 했던 부부는 아예 공개결혼식으로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테마파크 측에 따르면 이 결혼식은 신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테마파크 관계자는 “신부가 어릴 적부터 동화책에 나오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꿈꿨고, 우리의 취지와도 맞아서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부는 딱딱한 결혼식 대신 동화 속 주인공처럼 변신해서 호박마차를 타고 요정들로 변신한 배우들과 기념 퍼레이드를 했다. 이 행사에는 가난한 도시노동자 자녀 100명이 하객으로 초대돼 더욱 그 의미를 살렸다. 종을 치고 반지를 나눠 정식 부부로 거듭난 이들에게 하객들은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쳐줬다. 편견에 맞서 공개 결혼식을 한 부부의 용기있는 선택에 하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 http://twitter.com/newsluv ) 
  • [나와 통일] 배해동 태성산업 회장 “개성공단 北근로자 수당 받는 야근 자원”

    [나와 통일] 배해동 태성산업 회장 “개성공단 北근로자 수당 받는 야근 자원”

    내가 개성공단에서 북한과 사업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북한에 친·인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우리 회사는 지금 18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2005년 당시 국내 인건비가 많이 올라 중국에 해외공장을 설립하려 했었다. 사업자등록증도 다 받아놓은 상태에서 개성공단 시범단지 분양소식을 접했다.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북한에서 사업한 사람 가운데 99.9%가 실패했다는 자료가 있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망하더라도 북한에서 망하면 기계, 설비는 북한에 놓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북한행을 결심한 것이었다. 지난 7년간 사업을 접을까 말까를 수백번도 더 생각했다. 합작 일본 법인은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합작을 취소했고, 북한에서 만든다는 이유로 거래를 끊은 외국 바이어도 있었다. 개성에 공장을 열었을 때야 남북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처럼 3통(통행·통신·통관)문제가 해결 안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누구도 남북 간 정치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주기업 122개 가운데 어느 한곳도 철수하지 않은 것은 그래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60%가 봉제업이다. 한국에서는 봉제업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개성공단의 인건비는 중국과 비교해서 3분의1 정도, 최대 10분의1까지도 차이가 난다. 단지 인건비만 비교할 것은 아니다. 물류가 당일 가능한 것도 장점이고 관세가 없다. 말도 잘 통하기 때문에 동남아 국가나 중국 근로자보다 숙련 속도도 훨씬 빠르다. 초창기엔 북측 사람들과 신경전도 있었다. 업무 지시를 내리면 “내가 당신 도우러 왔는 줄 아느냐. 나는 당에서 보내서 왔다.”면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음식 문화도 상당히 달라서 미역국에 고기 대신 식용유를 넣고 끓여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도 잘하는 편이다. 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경제인으로서의 역할을 말하고 싶다. 남과 북은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문화나 사상, 경제적 격차를 최대한 좁힌 다음에 통일을 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하는 사람들이 먼저 자본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알려줘야 한다. 말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보면서 자연히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7년간 개성공단을 드나들면서 북한 사람들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북측 근로자와는 만나서 일과 관련한 회의만 하고 정치적인 얘기는 절대 안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남한 사람들이 먹을 게 없고 가난하다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저절로 깨닫고 있다. 야간 수당이 나오는 심야근무도 서로 하려고 하는 걸 보면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2, 3의 개성공단도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개성공단 1세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게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세대에서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후대에서 통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내가 개성공단에서 기업을 일군 것이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정치문제를 다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성공단만큼은 어떤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통행을 자유롭게 했으면 한다. 정치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면 무 자르듯이 “폐쇄하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 개성공단의 가치는 매우 크다. 통일이 되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모른다. 개성공단이 홍콩이나 선전처럼 경제특구가 된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공단이 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국민이 1억명은 되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남북한이 합쳐 7000만명이 되면 얼마나 힘 있는 나라가 될까 상상해 본다. 정부도 통일세 대신 차라리 북한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켜주면 어떨까. 7000만 민족이 뭉쳐서 경제를 발전시키면 주변의 어떤 강대국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배해동 회장 ▲53세 ▲1992년 ㈜태성산업 설립 ▲2005년 태성하타 개성공장 준공 ▲2006년 ㈜토니모리 설립 ▲2008년 산업포장 수상(남북관계 발전 기여) ▲2010년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 [깔깔깔]

    ●땀 흘리는 물고기 맹구가 숙제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학교에서 땀을 흠뻑 흘린 채로 들어와 자꾸 맹구한테 졸라대며 물어봤다. 동생:“형, 물고기도 땀 흘려?” 맹구:“……” 동생:“형, 물고기도 땀 흘려?” 맹구:“……” 동생:“형, 물고기도 땀 흘려?” 동생의 계속된 물음에 화가난 맹구는 맹구:“당연하지, 이 바보야! 안 그럼 왜 바다가 짜겠냐?” ●썰렁개그 1 -가나는 왜 가나? -피아노를 던지는데 어떻게 피아노. -티파니가 동대구에서 티파니. -사과한테 사과해라. -참외를 먹으면 참 외롭대. -김구가 김구어주니. -장미란에게 장미란? -권지용이 뭐하는 권지용.
  • [문화마당] 잘 사는 것과 아름답게 사는 것/공선옥 소설가

    [문화마당] 잘 사는 것과 아름답게 사는 것/공선옥 소설가

    4대강 살리기의 불똥이 4대강에 포함되지 않은 섬진강에도 튀었다. 흙길이던 섬진강 둑길을 ‘자전거도로’로 만든다고 콘크리트로 포장을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둑길이 그렇게 허옇게 포장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보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흙길을 원하는 사람들이 반대 시위를 치열하게 하고 난 뒤에야 나머지 흙길은 그나마 시멘트길이 되는 것을 면했다는 것이다. 몇년 전 내가 소위 귀향을 해서 시골에 살 적이다. 우리 집 마당에 풀이 우북한 것을 보고 논에 약을 치고 오던 동네 사람이 ‘풀 꼬실라지는 약’을 쳐준 적이 있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잡초로 푸르던 우리 집 마당이 가을도 아닌데 누렇게 초토화돼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 마당의 풀들을 그렇게 퇴치해 버린 분은 약만으로는 양에 안 찼던지, 마당을 ‘쎄멘’으로 깨끗이 발라 버리라고 성화였다. 동네 집들 중에는 흙이라고는 한 뼘도 남겨 두지 않고 모조리 그렇게 ‘쎄멘’으로 ‘공구리’ 친 집들이 많았다. 내가 잡초도 안 나고 깨끗하고, 비 오면 신발에 흙 묻히지 않아도 되고 곡식 말리기 좋은 ‘쎄멘 마당’을 안 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답답해했다. 나도 물론 흙마당, 흙길보다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당과 길이 기능적으로는 더 편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흙마당이 좋았다. 흙길이 더 좋았다. 흙마당, 흙길이 일상을 사는 데 더 불편하긴 하지만, 나에겐 흙이 주는 따뜻한 정서를 기능적으로 편리한 쪽에 내어줄 수가 없었다. 결국은 그것이다. 우리 생활이 그다지도 쉽게, 그다지도 빠르게 바뀐 이유는. 빠른 효과, 효율, 편리함에 불편하지만 정서적 안정과 심미적 아름다움의 가치들을 다 내어주고 만 것은. 그리하여 지금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농촌 어디를 가도 편리하고 효율적인 생활을 위하여 망가져 버린 풍경들은 숱하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양옆에 포플러라든가, 버드나무가 울창한 개울이 들판을 굽이굽이 흘러가는 풍경이 흔했다. 농부들은 그 개울 옆 나무 그늘 밑에서 새참도 먹고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냇가 바윗돌을 들추고 가재를 잡고 물장구를 치고 놀던 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이다. 그러나 이제 시골 어디를 가도 그런 풍경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개울이란 개울은 시멘트로 ‘직강 공사’를 해 놓았다. 물은 이제 굽이굽이 흐르지 않고 직선으로 흐른다. 논에 물 대기는 좋아졌지만, 우리는 이제 개울이 들판을 굽이굽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 그 풍경 덕에 노동의 고단함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어디서도 구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잘살자는 구호 아래 우리 일상의 풍경, 환경들이 거덜나는 상황을 이제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온갖 곳을 파헤치고 온갖 곳을 ‘콘크리트 친’ 결과로 우리는 이제 잘살게 되었는가. 과연 진정으로 잘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생활의 편리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조금은 불편해도 위로와 안식을 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무지막지한 행위를 앞으로도 계속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그렇게 해서 결국 남아나는 것은 무엇일까.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의 여러 부작용들을 제하고 나서 새마을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상황을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해야 한다면, 잘살자는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을 복원하자는 의미의 새마을운동을 제창하고 싶다. 새마을운동 때문에 망가져 버린 농촌을 아름답게 되살리는 새마을운동을 하고 싶다. 산에 가야만 숲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주변에, 마을 진입로에,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나무를 심고 포장이 꼭 필요하지 않은 길은 그냥 흙길로 놔두고 그 길에 나무와 꽃을 심고 그 길 어느 곳엔가 작은 문화공간을 지어 마을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는 마을. 그런 아름다운 마을을 우리는 진정 이룰 수 없는 것일까.
  • 민주당은 룰라 연설문 ‘열공’중

    정치권에 브라질 전 대통령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룰라) 열풍이 불고 있다. 민주당 원혜영·김부겸·김재윤 의원은 29일 룰라 전 대통령의 연설문 번역집을 출간했다. 룰라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치 철학을 배우자는 취지다. 소통과 통합, 성공한 진보정권, 양극화 해소. 이들이 룰라 전 대통령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정치적 격변기를 앞둔 민주당의 과제로도 받아들여진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임기 8년 동안 브라질 인구 25%에 생활보조금을 지급했다. 빈민 2000만명이 중산층으로 도약했고 기업은 활기를 띠었다. 그 결과 브라질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그는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보편적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 양극화 해소를 꾀하는 민주당의 기대와 연결된다. 브라질은 30여개의 정당이 난립된 국가다. 어떤 리더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 인사들을 요직에 중용했다. 야당 하원의원 엔히크 메이렐리스를 8년 임기 내내 중앙은행장으로 뒀다. 룰라식 화합·포용 정치는 상·하원 의석 20%밖에 안 되는 소수당을 이끌고도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이 됐다. 그는 “통합은 공통된 가치와 염원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제1 야당이지만 야권 통합도 이뤄내지 못하는 민주당의 현 주소와 대비된다. 한·브라질 의원협회 회장인 원혜영 의원은 “정파 간 타협과 전임 정권에 대한 예우는 현 정권에도 요구되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선반 노동자,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진보·민중적 정치인이 8년만에 국가 부채를 해결하고 경제대국을 만들었다. 진보정권의 실력을 보여줬다. 민주정부 10년을 계승·평가하려는 민주당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번역집은 취임사와 국제 회의석상 발언, 퇴임사 등으로 구성됐다. 여권에서도 올해 초 ‘룰라 벤치마킹’ 바람이 불었다. 한나라당 일부 친이계 의원들은 룰라 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정권 재창출 과정을 검토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도 서울대 이성형 교수를 초청해 ‘브라질의 유산과 과제’라는 세미나를 열었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룰라 전 대통령의 화합과 포용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혜영·허백윤기자 koohy@seoul.co.kr
  • [시론] 동일본에서 빛난 민간외교/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과 교수

    [시론] 동일본에서 빛난 민간외교/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과 교수

    정부가 외교를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다. 일본 지진 참사는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민간 분야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박찬호 등 스포츠 스타, 배용준·이병헌·최지우 등 한류스타, 익명의 수많은 한국인들이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을 돕고자 기꺼이 나섰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애증관계를 이어온 것이 한·일관계인데, 고난에 직면한 이웃에 대한 진심어린 한국인의 지원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을 이렇게 생각해 주다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일본 언론과 인터넷 포털이 전하는 일본인들의 반응이다. 물론 한국 정부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일본에 위로를 전하고 돕고자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주한 일본대사관을 직접 방문해 지진희생자를 위로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호대를 파견했고, 방사능 오염 논란이 있는 가운데서도 가장 늦게까지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것도 한국 구호대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들을 감격하게 한 것은 정부보다 대중문화 스타를 비롯해 평범한 일반 한국인들이 보여준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다. 그런 마음과 마음이 만나 ‘감동’이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세계인을 감동시킨 것은 비단 일본에서만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한국의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아프리카에서부터 동남아, 남미 오지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어려운 세계 이웃을 돕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평균치인 국민총소득(GNI) 대비 0.3%보다 현저히 낮은 0.1% 수준에 불과하지만, 해외 파견 자원봉사단의 규모는 세계 3위이다. 연간 활동인원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43개국에 1600명의 자원봉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8000명의 미국 평화봉사단, 3000명의 일본 봉사단(JICA) 다음이다. 이명박 정부는 2년 전에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국가 이미지가 국가경쟁력, 상품경쟁력과 직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이다.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그러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중심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라는 점을 늘 유념해야 한다. 물론 안보나 국방·정책 등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고, 정부가 전문성을 가진 분야도 많으나 국제사회에 한국을 알리고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민간이 더 잘할 수 있고 효과도 큰 경우가 훨씬 많다.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나아가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여론을 형성하는 데 민간 분야의 목소리가 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상대로 우리를 알리고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가는 일은 민간 분야에서 앞장서는 것이 훨씬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선진 각국들은 요즘들어 더더욱 민간 중심의 외교(Public Diplomacy)에 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를 기울이고 있다. 시대 조류를 읽은 결과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진 각국들과의 치열한 ‘국가 이미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과감하게 인적·물적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의 민간 해외봉사활동을 점검해 상대 국가와 국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야와 사업을 찾아내 우리만이 제공할 있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해주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개발도상국가와 오지 국가에 가 보면 한국 정부의 고위관리보다 더 큰 환영을 받는 이들이 민간 자원 봉사자들이다. 해외봉사단을 운영하는 국가 중에 유일하게 가난에서 탈출한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가 우리이고, 교육·농업·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경험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해외봉사는 이제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민간분야의 해외봉사가 제자리를 확고히 잡아나가도록 국민과 정부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역량을 키우는 지름길은 가까이 있다.
  • ‘고대문명 꽃’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 스페인어로 ‘구세주’란 뜻의 이 땅은 국토의 90%가 화산활동으로 이뤄진 그야말로 ‘화산의 나라’다. 엘살바도르는 이 화산지대의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수량의 호수를 갖고 있는 데다 태평양 연안으로부터 진취적인 문화를 흡수할 수 있었다. 28일부터 나흘간 밤 8시 50분부터 방영되는 EBS ‘세계테마기행’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마야와 아스테카의 고대문명을 꽃피웠던 엘살바도르를 찾는다. 고대 인디오들에겐 낙원과도 같았던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1980년 농민과 지주 사이에 벌어진 토지 분쟁이 원인이 되어 정부군과 게릴라가 12년이나 전쟁을 벌인 엘살바도르 내전이 발생했다. 전쟁은 정권을 비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데 앞장섰던 로메로 대주교의 암살로 이어졌다. 7만 4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으로 4조 달러에 달하는 재화가 소비됐고, 엘살바도르 국민의 절반이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 그 비극의 흔적은 아직도 그들의 삶에 남아 있다. 제작진은 내전의 상흔과 가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내일을 일구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을 만나본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서울구청장 71% 재산 평균 이하

    서울구청장 71% 재산 평균 이하

    서울시 24개(중구 제외) 구청장들의 지난해 말 현재 재산이 평균 9억 7600만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71%인 17명의 구청장이 평균 이하의 재산을 보유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했다. 특히 구청장의 37.5%인 9명은 3억원 미만의 재산을 가졌거나, 평균 1억 7000만원의 전세를 사는 ‘서민’으로 나타났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5일 공개한 공직자 재산에 따르면 부자 구청장은 김영종 종로구청장(67억 7238만 5000원), 문석진 서대문구청장(27억 1895만 5000원), 진익철 서초구청장(25억 8630만 7000원)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제외하면 10억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구청장은 4명에 불과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18억 4187만 6000원을,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15억 7771만원을 각각 공개했다. 특히 성 용산구청장은 본인 명의의 금 24K(372g·1720만원 상당)을 신고해 눈길을 끌었다. 재산이 많은 구청장은 특히 지난해 주식시장 활황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김 종로구청장은 SK와 SK브로드밴드, 동화홀딩스 등의 주식이 올라 지난해보다 재산이 1억 4433만원 늘었다. 문 서대문구청장도 현대중공업과 삼성증권 등으로 1억여원 이상 평가이익을 남겼다. 진 서초구청장은 삼성증권 등으로 전년보다 2억 8400여만원이 늘어 재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반면 재산이 3억원 이하인 ‘가난한’ 구청장은 광진·성북·노원·은평·영등포·마포·송파구청장 등 7명이나 된다. 특히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2671만원이다. 박 구청장은 지난해보다 금융기관 채무액이 1억여원이 더 늘어난 탓인데, 차남 명의의 전세자금 9000만원 대출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42살로 가장 젊은 구청장인 김우영 은평구청장의 재산은 1억 557만 6000원, 두번째로 젊은 43살의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1억 7172만원이다. 집 없이 1억 2000만원에서 2억원 대의 전세살이를 하는 ‘서민’ 구청장이 무려 6명이다. 서울시민 10명 중 7명은 집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평범한 서울시민보다 못한 셈이다. 문충실 동작구청장은 76.17㎡ 크기의 다세대주택에서, 이동진 도봉구청장과 김 은평구청장은 84.39㎡(24평형) 크기의 아파트에서 전세를 산다. 한편 서울시의원 114명의 지난해 재산 평균액은 9억 4600만원으로 2009년의 9억 8700만원 대비 4100만원 줄었다. 행정부 고위 공직자의 재산이 평균 4000만원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특이한 현상이지만, 이는 서울시의원 재산 순위 1위이던 최호정 의원(한나라당 서초3)이 아버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어머니의 재산 72억 2400만원을 신고하는 것을 거부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문소영·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정완영 “시를 안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정완영 “시를 안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자네는 왜 시를 쓰지 않나?” 노(老) 시인은 대뜸 묻는다. 그저 농담인가 싶어 머뭇거리니 다시 묻고 재촉한다. “자네도 시를 쓰시게. 제대로 된 시 두편만 남기면 그 어떤 훌륭한 정치인, 그 어떤 훌륭한 학자보다 더 오랫동안 역사가 기억할 거야.” 진지했다. 65년 시력(詩歷)의 시인답게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식과 지혜를 내보였고, 92세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 얘기 중간중간 유쾌한 농담을 잊지 않던 그는 지긋한 눈빛으로 정색한 채 손주뻘 되는 기자에게 시 쓰기를 권했다. 머리를 배반한 입이 절로 움직였다. “네,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4일 시조시인 정완영을 만났다. 최근 열일곱 번째 시집 ‘詩菴(시암)의 봄’(황금알 펴냄)을 내놓은 그다. 공식 집계는 없건만 창작 시집을 내놓은 최고령 시인임에 분명하다. 경북 김천시에 있는 그의 집과 백수문학관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제 강점 기 고문이 시로 터져나와 그의 호는 백수(白水)다. 정갈히 맑은 물이라는 뜻과 함께 고향 김천의 천(泉)을 쪼갠 글자(破字)다. 2008년 정부와 경북도 등이 예산을 들여 백수문학관을 개관했다. 시조시인으로 개인의 문학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난 시 지상주의자이면서 시 전도사야. 남녀, 학력, 노소 가리지 않고 늘 시를 권하지. 시를 쓰는 것이 즐거우니까 권하는 거지. 시를 안 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시에는 별 재주 없는 이가 많을 텐데 무작정 시를 권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짐짓 놔보는 어깃장에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면 많이 거두는 이도 있고, 조금밖에 못 거두는 이도 있지. 그러나 아무것도 못 거둔 이는 없는 법이야.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한 만큼은 반드시 거두게 돼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말 그대로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정완영은 일제 강점기 ‘불령선인’(일본을 따르지 않는 조선인)으로 찍혀 경찰에게 고문당해 오른쪽 중지를 쓸 수 없게 됐다. 고통은 시가 되어 터져나왔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김천에서 ‘시문학 구락부’를 만들며 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민족적 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장르로서 시조만을 고집해 온 민족사적 배경이자 개인사적 이유다. 1970~8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그의 시조 ‘조국’에서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와 같이 노래할 수밖에 없게끔 살아온 것이다. 정완영은 청마 유치환의 강권으로 공식 등단의 필요성을 느꼈고 곧바로 1960년 서울신문, 국제신보, 1962년 조선일보, 1967년 동아일보 등 신춘문예를 휩쓸다시피하며 중앙문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몸으로 꿰뚫고 살아온 시 세계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시인이 가난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시인의 가난함은 훈장이라고 머리로 외면서도 몸은 한사코 명예와 돈을 좇아 두리번거리는 것이 여느 시인들의 비루한 현실이니 말이다. “시는 벌판에서 와. 외롭고 쓸쓸할 때, 그때 시가 나와. 안일하거나 가득 차면 시가 안 나오거든. 시가 떠오를 때는 일부러 밥도 두세 끼니씩 거르기도 해.” 하지만 어쩌랴. 짜여진 형식의 틀과 고루한 인식에 갇혀 있는, 낡은 장르로 치부되는 것이 문단에서 시조가 겪고 있는 대접이다. 그는 “시조의 형식에는 종장 세 글자를 제외하면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로움이 들어 있다. 시의 정서와 시어 역시 다루지 못할 것이 없다.”면서 “시조를 모르는 이들의 편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시조 변형 자유로워… 낡은 장르 치부는 편견” 그의 신작 시집 ‘시암의 봄’을 펼쳐 읽어 보면 시조에 대한 편견이 단박에 허물어짐을 느낄 수 있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감꽃’ 중), ‘동구 밖 개 짖는 소리로 먼 마을에 눈 내렸다’(‘먼 마을에 내리던 눈’ 중),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것인가’(‘적막한 봄’ 중) 등과 같은 시편들은 젊은 시인의 모던함과 무람 없이 견줘도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길 만하다. 특히 ‘함부로 꽃 피지 않고, 함부로 열매 안하는 석류나무’를 보여준 ‘우리 집 석류나무는’는 품격 있는 시어 조련과 범우주적 가치에 대한 사유의 정수를 확인시켜 준다. 지금도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시를 공부하고, 생각하고, 쓰고 있다는 진짜배기 시인 정완영. 그러고 보니 김천은 소설 쓰는 김연수(41), 시 쓰는 문태준(41)의 고향이다. 그냥 불쑥 튀어나온 문재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글 사진 김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돈키호테’서 다시 만난 동갑내기 커플 ‘엄재용 & 김세연’

    ‘돈키호테’서 다시 만난 동갑내기 커플 ‘엄재용 & 김세연’

    유니버설발레단(UBC)이 올해 첫 정기공연으로 2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쾌한 고전 발레 ‘돈키호테’를 선택했다. 25일부터 나흘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다. 소설 ‘돈키호테’가 바탕이기는 하지만 발레는 소설을 비켜간다. 발레 ‘돈키호테’는 가난한 이발사 바질과 그의 연인인 선술집 딸 키트리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UBC 특유의 화려함과 다채로운 볼거리, 빠른 이야기 전개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주역인 키트리와 바질 역에 총 여섯 커플이 캐스팅돼 각각 한 차례씩 공연을 펼친다. 가장 조명이 집중되는 커플은 UBC의 수석 발레리노 엄재용(32)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김세연(32)이다. 김세연이 국내 정식공연 무대에 서는 것은 8년 만이다. 지난 21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동갑내기 커플을 만나봤다. 엄재용과 김세연이 ‘돈키호테’로 무대에서 재회한 것은 8년 만이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UBC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며 엄재용과 주로 호흡을 맞췄던 김세연이 2004년 해외 진출 이후 갈라 공연을 제외하고는 국내 무대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재용은 “그동안 달라진 건 경험이 풍부해졌다는 것”이라며 “세연씨는 유럽에서, 저는 한국에서 각각 경험을 쌓았고 둘 다 성숙해진 터라 호흡 면이나 작품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훨씬 편해졌다.”고 말했다. 김세연은 “예전엔 공연 준비하면서 돈키호테를 대표하는 3막 ‘그랑 파드되’ 장면 등에서 기교를 부리곤 했는데 지금은 어려운 동작도 관객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저 자신부터 편안하게 무대를 즐기려고 한다.”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이거”라며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예전에 비해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어릴 때부터 학교를 같이 다녀 워낙 친하다. 연습하면서도 서로의 옛날 실수를 끄집어내며 장난치고 그런다. 서른이 넘다 보니 이젠 단점을 숨기려 하지 않고 그냥 내놓게 되더라.” 김세연의 얘기다. 그러자 엄재용이 “단점? 전혀 없어 보이는데?”라고 재치있게 받아쳐 웃음이 쏟아졌다. 연습과정의 비화(?)도 폭로됐다. “글쎄 재용씨가 저를 들어올리다 그만 쓰러진 거예요. 어찌나 미안하던지…”(김세연) “그때 감기몸살로 워낙 제 몸 상태가 안 좋았거든요”(엄재용) 엄재용은 다음 달 시작되는 UBC 월드 투어(‘심청’) 준비하랴, ‘돈키호테’ 연습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도 한국적인 발레 작품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뿌듯하다.”고 엄재용은 말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꼽는 ‘돈키호테’ 명장면은 무엇일까. 김세연은 바질이 키트리와의 결혼 승낙을 받으려고 자작 자살극을 펼치는 장면을 꼽았다. “춤 동작보다 코믹한 연기가 재밌어요. 키트리는 바질의 자작극인 것을 눈치 채고, 이를 숨기느라 애를 쓰죠.” 엄재용도 “(바질의 자작 자살극을) 저만 알고 다들 모르는 상황이니 그 부분이 재밌다.”고 말했다. 엄재용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일화 등을 담은 1막도 최고로 쳤다. ‘돈키호테’는 UBC의 올해 첫 정기공연이다. 지난달 국립발레단의 첫 정기공연 ‘지젤’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아무래도 흥행성적 비교가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었다. 엄재용은 호탕하게 웃으며 “무용수들보다는 UBC 홍보팀에서 더 긴장하는 것 같더라.”면서 “한국에 있는 큰 발레단 두곳 모두에서 관객들이 즐기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세연은 “UBC나 국립발레단 무용수 모두 개성 있고 능력 있다.”면서 “요즘 (한국에서) 발레 인기가 부쩍 높아져 너무 기분 좋다.”고 거들었다. 두 사람은 ‘돈키호테’ 피날레 무대(28일)를 장식한다. 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영화계 장학사업 선도 원로배우 신영균

    [김문이 만난사람] 영화계 장학사업 선도 원로배우 신영균

    노래 하나 감상해본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한운사 작사, 황문평 작곡의 ‘빨간 마후라’다. 얼핏 짧고 단순한 노래 같지만 대한민국 공군 출신들에게는 영원히 가슴 속에 남아 추억의 되새김질을 하게 하는 노래다. 또한 40~50대 이상의 남성들에게는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다가오는 노래이기도 하다. 1964년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영화 ‘빨간 마후라’는 공군 전투기가 하늘을 나는 장면과 시원한 활주로, 빨간 머플러가 컬러 필름으로 표현돼 관객을 압도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서울 충무로 명보극장에서만 25만 관객을 기록했다. 특히 이 영화는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됐으며 주연으로 나온 신영균(83)씨는 당시 제11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한류 스타가 누구냐고 했을 때 영화계에선 신씨를 거론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런 추억을 담은 ‘빨간 마후라’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고 유치곤 장군의 호국기념관에 노래비로 세워져 이곳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원로 영화배우 신씨가 2010년 10월 출연한 재산으로 출범한 재단법인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이 현판식과 함께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2011년도 상반기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달했다.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첫 장학금 전달 영화인 총연합회 회원단체와 영화인회의 등 8개 영화 관련 단체로부터 추천받은 영화인 자녀 이동규(서원대 유아교육학과 1학년), 임원룡(서울대 경영학부 4학년)군 등 대학생 10명과 홍민호(경복고 3학년), 정원(동두천외국어고 1학년)군 등 고교생 9명에게 총 4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들 장학생 중에는 영화배우 허기호(허장강씨의 장남)씨의 아들 허진우(안양대학교 공연예술학과 1학년)군도 포함됐다. 이 자리에서 신씨는 명보시네마테크 운영, 신영균연기예술상 제정과 함께 영화 인재 발굴 사업으로 청소년 영화제 ‘필름 게이트’와 방학 시즌 어린이 영화 체험 교실인 ‘꿈나무 필름 아트 캠프’ 등을 추진할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올 연말에는 제1회 신영균영화연기대상 수상자가 처음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처럼 ‘빨간 마후라’와 ‘5인의 해병’ 등으로 일찍부터 원조 한류스타의 명성을 얻은 신씨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는 등 국내 영화 발전을 위해 새로운 열정과 의욕을 보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명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신씨를 만났다. 때마침 김두호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도 함께 있어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며 인터뷰가 진행됐다. 검은색 양복에다 빨간 넥타이 차림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40대로 보인다.”고 인사를 하자 “에구 뭘, 마음이 젊어서 그런가.”라며 파안대소했다. 그래서 건강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운동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가끔 골프 라운딩도 하고 헬스클럽에는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 나가지요. 나이 먹어서는 근육 운동을 자주 해야 돼요. 골격이 튼튼해지니까.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합니다.” ●294편 영화 거의 다 기억… 팔순의 나이 무색 신씨는 웃음이 호탕하다. 생각을 젊게 하고 행동 또한 그러하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억력 또한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1960년 조긍하 감독의 ‘과부’로 데뷔한 이후 1978년 ‘화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출연한 294편의 영화를 거의 줄줄 꿰고 있었다. ‘빨간 마후라’에 출연한 동료 배우 최무룡씨를 비롯해 ‘5인의 해병’에 등장하는 황해·곽규석·박노식씨 등에 대한 추억도 또렷하게 떠올린다. 이들 중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아 우리나라 영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특별하다. 신씨는 알다시피 지난해 10월 자신의 사재 대부분을 털어 장학사업에 쓰겠다고 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 후 후회는 한번도 없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장학사업)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인들의 작업 환경이 아직도 열악합니다. 특히 그들 중에는 재능 있는 자녀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와 보탬이 된다면 그것처럼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대를 잇는 훌륭한 연기자들을 잠시 떠올린다. 1955년 ‘피아골’로 데뷔한 고 이예춘씨의 아들 이덕화와 손녀 이지현, 고 김승호씨의 아들 김희라와 손자 김기주, 오발탄의 명배우 고 김진규씨의 아들 김성준, 고 황해씨의 아들 전영록, 고 독고성씨의 아들 독고영재와 손자 독고준, 고 박노식씨의 아들 박준규 등. ●치과의사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꿈 간직 신씨 자신도 가난과 배고픔을 몸소 겪었기에 연기에 자질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청춘극단’에서 2년 동안 연기를 하다가 생활의 비참함을 벗어나고자 좀 더 안정적인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해군 대위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58년 서울 회현동에 ‘동남치과’를 개업했으나 도저히 끼를 못 버려 2년 뒤 황순원 원작 ‘과부’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 연극을 했는데 생활이 영 말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직업적으로 전망이 좋다는 치과의사가 되고자 했지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꿈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데뷔작 ‘과부’에서 처음 주연으로 발탁될 당시를 회고한 그는 “배역도 좋고 작품도 좋았는데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며 “많이 고민했지만 순전히 연기에 대한 욕심 하나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이후 신씨는 다양한 스타일의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스타의 길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빨간 마후라’ ‘5인의 해병’ 같은 군사물은 물론이고 ‘연산군’에서는 폭군,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는 멜로물의 주인공,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서는 종교인으로 등장하며 타고난 끼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18년 동안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니 그의 열정과 끼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다면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릴 때 왜 배우를 그만두게 됐을까. “당시 군사정권이었죠. 검열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권총을 쏘는 장면도 ‘왜 이 각도에서 총을 쏴야 하느냐’ 등의 이유로 가위질을 많이 당했지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 대한 매력도 없어지고 편수도 줄고, 관객 또한 마찬가지로 흥미를 잃게 됩니다.” ●군사정권시절 검열 심해 배우 생활 그만둬 배우를 그만둔 이후에는 제주도에서 영화박물관 건립에 열정을 쏟는다. 그가 제주도와 인연이 된 것은 영화 ‘마적’(신상옥 감독)이었다. 이 영화는 1967년 제주도에서 촬영됐는데 당시 신씨는 드넓은 초원에서 영화박물관을 생각하게 됐다. 결국 오랜 노력 끝에 1999년 제주 남원읍에 ‘신영영화박물관’을 건립했다. 이때부터 신씨가 부자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부를 일궜을까. “제 인생의 특징을 말한다면 실패를 안 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지도 않았고 또 무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인격적으로는 겸손하자고 늘 생각했어요.” 신씨는 배우 시절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늘 불안하게 여겼다. 그래서 1960년대 친구와 함께 서울 금호동에 동시 상영을 하는 ‘금호극장’을 지었다. 영화는 많으나 극장이 턱없이 모자라는 현실에서 발동이 걸렸던 것. 이후 명보극장 바로 옆에 있는 명보제과를 인수했다. 이때 부인 김선희 여사가 팔을 걷어붙여 직접 빵을 굽고 장사도 하면서 사업을 키워 나갔다. 당시 명보제과는 뉴욕제과와 태극당, 풍년제과 등과 함께 4대 제과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던 1977년 8월 명보극장을 인수하게 된다. 이후 ‘지옥의 묵시록’과 ‘빠삐용’ 등의 외국 영화와 ‘내가 버린 여자’(이문웅 감독),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감독), ‘미워도 다시 한번’(변장호 감독) 등의 한국 영화가 잇달아 대박을 터뜨렸다. 그가 지난해 기부 대상을 ‘명보극장’으로 정한 것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극장 소유는 영화인들의 꿈이었고 이제는 그 꿈을 후배들에게 돌려주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언젠가 꿈이 이뤄진다는 철학도 포함됐다. 신씨는 지금도 꿈을 꾼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노인과 바다’ 같은 영화에 출연해 멋진 연기로 영화배우로서 마무리를 잘하고 싶단다. 이를 위한 구상이 현재 기획 단계에 있다고 귀띔했다. 그의 취미는 나무 심기다. 신영영화박물관 옆에 많은 나무들을 심었단다. 서른두살에 영화 나무를 처음 심은 이후 지금도 꾸준히 나무를 심고 있다고 했다. 팔순 나이에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에서 또 한번 영원히 자라는 나무를 심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신영균은 치과의사 → 배우 → 국회의원… ‘빨간 마후라’로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 1928년 황해도 평산의 산 속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교육열에 의해 일찍 서울로 월남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히 교회 연극을 통해 연기를 접한 뒤 줄곧 배우를 꿈꿨다. 한성고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청춘극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극단 배우로 생계 유지가 힘들자 다시 공부를 시작해 서울대 치의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총학생회 연극부를 창립해 활동했고 졸업 후 치과의사로 일하다 1960년 32살의 나이에 영화 ‘과부’로 데뷔했다. 이어 1961년 ‘마부’로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고, 1962년에는 ‘연산군’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데뷔 2년 만에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출연작 중 단연 압권은 ‘빨간 마후라’(1964)이다. 이 영화로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원조 한류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던 1970년대, 유신정권 아래 영화에 대한 사전 검열이 심해지면서 영화계가 침체됐고 1978년 ‘화조’를 끝으로 배우 활동을 접었다. 이후 명보극장을 중심으로 영화사업에 뛰어들었고 15,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9년 제주도에 영화박물관을 지었으며 지난해에는 사재 500억원을 선뜻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18일에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현판식을 가지면서 장학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주요 대표작으로는 열녀문(1963), 쌀(1963), 달기(1964), 시장(1966), 천하장사 임꺽정(1968), 대원군(1968), 미워도 다시 한번(1968) 등이 있으며 18년 동안 모두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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