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가난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15억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송치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실수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총선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85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비우티풀’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비우티풀’

    ‘아모레스 페로스’(2000)가 미국에서 개봉됐을 때, 영화평론가 엘비스 미첼은 뉴욕타임스에 ‘새로운 세기의 첫 번째 클래식’이라고 소개했다. 호들갑스러운 감이 있으나 지금까지 그 평가는 유효하다. 남미판 ‘펄프픽션’인 ‘아모레스 페로스’는 라틴 시네마의 폭발을 예언했으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는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으로 성장했다. 이냐리투는 다음 작품들을 준비하면서 데뷔작과 다른 노선을 취했다. 다양한 인물과 복잡한 내러티브는 여전했지만, 무대를 멕시코 바깥으로 옮긴 이야기는 비극의 색채를 더해갔다. 에너지가 바깥으로 분출되는 ‘아모레스 페로스’와 달리 ‘21그램’(2003)과 ‘바벨’(2006)은 내면에 슬픔을 켜켜이 쌓아둔 인물을 이야기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우티풀’은 그 노선을 연장한다. 고통의 심연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인물이 다시 한번 우리 앞에 선다.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스페인으로 밀입국한 사람들을 현장과 연결해 주는 인력중개인이다. 그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 돈을 벌면서도 밀입국자의 열악한 삶을 부담으로 느끼는 이중성을 지닌 남자다. 약아빠진 사람은 아닌 거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와 헤어지고서 두 아이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던 중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전처에게 두 아이를 맡겨 보지만, 그녀의 고질병은 아이들에게 독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욱스발에게는 망자(亡者)와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죽은 자가 못다 한 말을 듣고 싶은 사람들은 그를 찾곤 한다. ‘비우티풀’의 대다수 인물은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산다. 중국과 세네갈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이를 악문다. 돈에 연연하는 점에서 욱스발도 다를 바 없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곳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은 물론, 죽은 자의 말을 전해 주면서도 푼돈을 챙기는 그의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욱스발은 아마도 지난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기 아이들에겐 번듯한 삶을 보장해 주고 싶기에 그는 지독할 정도로 돈벌이에 몰두한다. 욱스발처럼 영적 능력을 지닌 노파가 “아이는 우주가 키워준다.”고 충고하자 그는 “우주가 전셋집을 마려해 주진 않는다.”고 대꾸한다. 병세가 심해지는 순간에도 돈을 세는 그가 어리석어 보인다면, 노후자금과 학자금 마련으로 허리가 휘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일이다. 곧 세상과 이별을 고할 욱스발의 눈에 세상은 아름답다. 반면 그가 발을 딛고 사는 바르셀로나의 하층민 구역엔 온통 죽음과 상실과 고통이 새겨져 있으니 어쩌면 좋을까.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천장에 달라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끝내 떠나기를 주저하는, 그래서 천국에 오르지 못하는 그는 천장에서 아등바등한다. 프롤로그와, 프롤로그를 뒤집은 에필로그 사이로 화면비율이 바뀌는 영화다. 와이드스크린에 비친 손과 반지, 눈 숲의 아버지와 아들을 주목하게 하기 위함이리라. 기나긴 고통의 여정 끝에서 욱스발은 인간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 사이의 약속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비우티풀’은 믿는다. 몇몇 관념적인 장면의 지루함을 버틸 수 있다면 충분히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13일 개봉. 영화평론가
  • [씨줄날줄] 마에킨(前金)/박대출 논설위원

    1863년 미국의 노예제도가 폐지됐다. 남북전쟁 직후였다. 해방 흑인들은 노동력밖에 없었다. 식료품이나 옷을 살 돈이 필요했다. 농장주에게 전차금(前借)을 받고 일했다. 일종의 선급금(先給)이었다. 전차금엔 높은 이자가 매겨졌다. 노동자들은 늘 빚에 쪼들렸다. 해방 흑인뿐만 아니었다. 가난한 백인도 마찬가지였다. 전차금 제도는 신(新)노예계약이었던 셈이다. 이런 악순환은 남부의 농업을 더 뻗어나지 못하게 했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이런 나라는 허다했다. 전차금이란 미리 받는 임금이었다. 일을 해서 갚기로 약정하는 돈이었다. 저임금으론 전차금을 갚기 어려웠다. 고리(高利)일수록 더했다. 근로자 착취로 이어졌다. 국가 개입은 전후에 이르러서다. 우리 근로기준법도 엄격하다. 전차금 상계의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전차금을 임금으로 갚을 수는 있다. 이를테면 가불 같은 형태로 가능하다. 학자금 대여나 주택구입자금 대부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임금과의 상계 조건을 달지는 못한다. 빌려 쓴 ‘빚’과 미리 받은 ‘임금’을 구분한 것이다. 현실은 법과 다르다. 빚과 임금의 경계가 모호하다. 오히려 빚으로 더 많이 쓰인다. 전차금은 일본에선 전금(前金)으로 불린다. ‘마에킨’으로 발음된다. 우리나라에선 ‘마이낑’ ‘마이킹’으로 변용됐다.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속어다. 유흥가에서 많이 쓴다. 업주가 여종업원에게 빌려주는 돈이다. 고리의 이자가 붙기 십상이다. 여종업원들에겐 목돈이 필요하다. 성형은 아예 초기 투자다. 의상비, 주거비도 한두 푼이 아니다. 업주로부터 마에킨을 받아 충당할 도리밖에 없다. 수천만원에서 1억원대도 있다고 한다. 제일저축은행이 대형 사고를 쳤다. 마에킨을 담보로 불법 대출을 했다가 탈이 났다. 유흥업소에 빌려준 규모가 1546억원에 이른다. 밤무대 종사자를 상대로 무리한 짓을 벌였다. ‘강남 유흥업소 대출 특화상품’이란 이름으로. 이를테면 아가씨 담보 대출인 셈이다. 이자가 무려 18~23%에 달했다. 멀쩡한 고객이 찾을 리 만무하다. 30개 업소는 폐업했고, 업주 36명은 신용불량자였다. 2000년 음반 발행이 연간 4000만장을 넘었다. 당시 음반업계는 전속금 명목으로 마에킨을 줬다. 마에킨이 수십억원에 달한 가수도 있었다. 마에킨은 몸값을 가늠하는 척도다. 하지만 수입이 보장될 때 얘기다. 그러지 못하면 마에킨의 노예가 된다. 어느 분야든 예외가 없다. 그 위험률은 액수와 정비례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덴마크 지방 ㎏당 3400원 ‘비만세’ 첫 도입…“살 찌려거든 세금 내라”

    덴마크 지방 ㎏당 3400원 ‘비만세’ 첫 도입…“살 찌려거든 세금 내라”

    점점 뚱뚱해지는 국제사회가 비만과의 전쟁을 위해 ‘세금’이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낙농업의 나라’ 덴마크가 버터와 우유 등에 ‘비만세’를 매기면서 ‘전면전’을 선포하자 영국과 스위스, 루마니아 등에까지 ‘도미노 효과’가 퍼질 기미를 보인다. 국민 3명 중 1명이 비만인 미국도 ‘카우치 포테이토’(소파에서 감자칩을 먹고 TV만 시청하며 하루를 보내는 뚱뚱한 사람)를 줄이기 위해 ‘징세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국민 건강도 챙기면서 바닥난 재정도 채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덴마크 정부는 1일(현지시간)부터 포화지방산이 2.3% 넘게 함유된 제품에 지방 1㎏당 16크로네(약 3400원)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비만세는 버터와 우유는 물론 피자, 식용유, 육류, 조리식품까지 포화 지방을 함유한 모든 식품에 적용된다. 지방 성분을 포함한 전 제품에 비만세를 매기는 것은 덴마크가 처음이라고 BBC가 전했다. 덴마크는 이미 90여년 전부터 사탕류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고 세계 최초로 트랜스 지방 사용을 금지하는 등 국민 건강을 위해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정책 시행 일주일 전부터 덴마크의 식료품점은 사재기를 하려고 몰려든 주부 등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비만세가 부과되면 250g짜리 버터를 사는 데 징세 이전보다 2.2크로네(약 445원)를 더 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 코펜하겐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가게 진열장이 텅 비었다.”면서 “사람들이 집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덴마크 보건당국이 앞서 나가자 늘어나는 ‘뚱보’ 탓에 고심하는 유럽 각국 정부도 바빠지게 됐다. 헝가리는 이미 지난달부터 지방, 염분, 설탕 등이 많이 함유된 음식에 개당 10포린트(약 55원)를 부과했다. 헝가리의 비만율은 18.8%로 유럽연합(EU) 국가의 평균(15.5%)보다 높다. 헝가리 정부는 비만세 덕에 연간 7400만 유로(약 1120억원)가량의 세수가 늘 것으로 전망했다. 이 돈은 건강 관련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빅토르 오르번 헝가리 총리는 “(비만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건강관련 재정에) 더 많이 공헌해야 한다.”며 비만세 징수를 정당화했다. 영국도 비만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옥스퍼드대 건강증진연구그룹의 마이크 라이너 교수는 “영국도 비만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덴마크처럼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건강식인 과일과 채소류 등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면 해마다 3200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르키 카타이넨 핀란드 총리도 “덴마크의 계획은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것”이라고 말했고 스웨덴과 루마니아도 덴마크 사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 비만국인 미국은 ‘탄산음료세’ 등을 통해 비만 인구 줄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워싱턴과 매릴랜드 등 33개 주에서 이미 탄산음료에 세금을 물리고 있고 연방정부 차원의 탄산음료세 도입도 추진 중이다. 또 소금·설탕·지방 함량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업체에 대해 TV 및 라디오, 인터넷 광고 등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의회에 제출돼 있다. 하지만 비만세를 고깝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지방 함유량이 높은 패스트푸드를 먹는 인구가 주로 저소득층인 탓에 당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금폭탄’을 떨어뜨리는 꼴”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덴마크 산업연맹(DI) 식품부 대변인은 “이번 조치가 건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이 세금에 따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6)천재 화가 반 고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6)천재 화가 반 고흐

    모난 머리와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꾹 다문 입술. 얼핏 봐도 비호감의 외모를 지닌 스물 다섯의 청년 반 고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목사가 되고 싶었던 그다. 그의 부친 역시 개신교 목사였으나, 부친은 장남 반 고흐의 꿈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신에게 직접 다가가려는 그의 열망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무시”하는 듯이 격렬한 그의 행동과 신앙이 부친에겐 한없이 위험해 보였던 터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실 반 고흐에게 치명적으로 결여되었던 것은 목사가 지님직한 권위였다. 교구의 교사나 목사에게는 반 고흐의 옷차림이나 태도가 영 마뜩잖았다. 그러던 중, 반 고흐는 보리나주의 탄광지대에서 임시전도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거기서 그는 “거칠고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허위라고는 없는” 사람들을, “허술한 옷차림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는 남자들”과 “자연스럽고 겁없이 마주할 수 있는 여자들”을, “그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거기가 바로 신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 고흐는 위원회로부터 해고당하고 만다. 교구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너무 낮추고, 그들의 비참한 활동에 동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해고의 이유였다(1879년 광부 파업 당시 광부들의 편에 섰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동했겠지만). 목사가 되고 싶었던 청년 반 고흐는, 그렇게 교회와 아버지를 옭아맨 소명에서 벗어났고,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1880년.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오십줄에 들어선 남자처럼 폭삭 늙어버린 이 사내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동생 테오의 권유도 있었지만, 설교로 전하지 못하는 말씀을 그림으로는 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어온 터였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19세기에 흔히 그려진, 화가의 시선으로 멀찌감치에서 바라본 ‘민중의 풍경’이 아니라, 가난한 시절 반 고흐 자신의 초상이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를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1885년 일기) 감자를 먹는 그 손으로 그들은 땅을 일구고, 감자를 심고, 감자를 거뒀다.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농부처럼 뿌리고, 뿌린 대로 거둘 뿐이다. 농부들의 손처럼 화가의 손이 정직할 수 있다면! 농부들의 정직한 식사만큼이나 그림 또한 정직할 수 있다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반 고흐는 1886년 앤트워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만, 거기서도 그는 ‘아카데미’의 적이 되었다. 그의 취향, 기질, 그림의 스타일, 그 어느 하나 고상한 아카데미의 예술가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반 고흐는 주기적인 신경발작증에 시달리게 된다. ●‘노란집’, 화가공동체의 꿈 동생 테오는 형에게 프랑스 파리행을 권유한다. 당시 모든 예술은 파리로 통했다. 파리는 멋진 댄디들로 북적였고, 순간의 빛을 담은 인상주의 회화가 유행했으며, 새로 단장한 거리는 스펙터클로 넘쳐 흘렀다. 이 모든 것이 반 고흐를 사로잡을 듯했으나, 시시각각 변하는 ‘모던 시티’ 속에서 반 고흐는 기쁨보다는 환멸과 허무를 느꼈다. ‘성공한’ 파리의 인상주의자들은 반 고흐의 세련되지 못한 행동을 용납하지 못했으며, 반 고흐 또한 흥청거리는 파리를, 그곳의 가볍게 살랑거리는 그림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성공이 끔찍스럽다. 인상파 화가들이 성공해서 축제를 열 수도 있겠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축제의 다음날이다.” 1888년. 반 고흐는 파리를 떠나 아를로 향한다. 파리에 없던 풍경이 거기 있었다. “대기가 그의 짐들을 벗겨주었고, 그래서 그는 마치 천한 가죽신 대신에 날개에 실려 다니기라도 하는 듯이 움직였다.” 그는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아를의 ‘노란집’은 그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화가공동체를 만들자! 반 고흐는 “사람들의 무관심은 내가 값비싼 구두를 신고 신사의 생활을 원한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나막신을 신고 나갈 거니까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밀레의 말을 가슴에 품어왔다.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살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된다면 억지로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럼 화가들이 함께 모여서 그리면 된다. 화가들이 고립되어 있으면 패배하기 마련이라고, 함께 의지하고, 함께 생계를 마련하며 살 수 있는 화가공동체를 만들면 외롭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아를로 가는 기차에서 반 고흐는 생애 가장 환한 희망을 품었다. 그 때 거기에, 그, 고갱이 왔다. 대단히 현실적이고, 지배하려는 성향이 강했던 고갱은 매사에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물음이 많은 반 고흐를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몇 번의 말다툼과 예기치 못한 자해. 꿈으로 설레던 ‘노란 집’의 행복한 날들은 그렇게 저물었다. 생레미 요양소에서의 날들은 반 고흐의 삶에서 가장 비참했던, 동시에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반 고흐를 미치게 한 것은 그림’이라며 그를 고발했지만, 반 고흐는 ‘그래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은 그림뿐’이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병원의 창문 밖으로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보며, 반 고흐는 저들처럼 정직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지를 다진다. 그림이 광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그림만이 자신의 광기를 치유해줄 거라고 믿었던 반 고흐. 병원을 나온 후 머물렀던 오베르 쉬아즈의 정신과 의사이자 ‘예술애호가’였던 가셰 박사 역시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가셰와의 다툼 후 집을 뛰쳐나가 권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해바라기고, 햇빛이고, 길이다 가난, 외로움, 정신발작, 자살. 드라마틱하다면 드라마틱한 인생이지만, 이런 몇 가지로 반 고흐의 삶을 드라마화하는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 예술가의 삶을 이런 식으로 드라마화하거나 신화화하게 되면, 그의 예술이 갖는 단단함과 특이성을 놓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불멸’, ‘천재’, ‘광기’ 등의 수식어가 붙는 반 고흐의 화면에서 무턱대고 죽음을 읽으려 하고, 그의 색채와 붓질에서 광기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신화화야말로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박제화시켜 버리는 길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 반 고흐는 해바라기였고, 아를의 햇빛이었으며, 오베르 쉬아즈의 길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바로 그것이 되기 위해 땅을 기고, 비를 맞고, 종일토록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이런 그에게서 사람들은 광기를 봤지만,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광기를 다스렸다. 중요한 건, 그의 광기 자체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광기를 돌파한 그 지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반 고흐는 발작이 일어난 순간에는 붓을 들지 않았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자가 어떻게 손의 붓질을 통제한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병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병을 넘어서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서, 흔들림 없이. 바로 이것이, 예술을 예술이게 한다.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 해나갈 수 있겠니?”(1882) 반 고흐를 ‘드라마’로부터 구출해내고, 그의 그림을 광기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면,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이 말해주는 진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그것이 길이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채운 남산강학원 연구원 서울신문, 수유+너머 공동기획
  • 세금으로 비만 잡으려는 세계

     점점 뚱뚱해지는 국제사회가 비만과의 전쟁을 위해 ‘세금’이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낙농업의 나라’ 덴마크가 버터와 우유 등에 ‘비만세’를 매기면서 ‘전면전’을 선포하자 영국과 스위스, 루마니아 등에까지 ‘도미노 효과’가 퍼질 기미를 보인다. 국민 3명 중 1명이 비만인 미국도 ‘카우치 포테이토’(소파에서 감자칩을 먹고 TV만 시청하며 하루를 보내는 뚱뚱한 사람)를 줄이기 위해 ‘징세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 국민 건강도 챙기면서 바닥난 재정도 채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덴마크 정부는 1일(현지시간)부터 포화지방산이 2.3% 넘게 함유된 제품에 지방 1㎏당 16크로네(약3400원)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비만세는 버터와 우유는 물론 피자, 식용유, 육류, 조리식품까지 포화 지방을 함유한 모든 식품에 적용된다. 지방 성분을 포함한 전제품에 비만세를 매기는 것은 덴마크가 처음이라고 BBC가 전했다. 덴마크는 이미 90여년 전부터 사탕류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고 세계 최초로 트랜스 지방 사용을 금지하는 등 국민 건강을 위해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정책 시행 일주일 전부터 덴마크의 식료품점은 사재기를 하려고 몰려든 주부 등으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비만세가 부과되면 250g짜리 버터를 사는데 징세 이전보다 2.2크로너(약 445원)를 더 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 코펜하겐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가게 진열장이 텅 비었다.”면서 “사람들은 집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덴마크 보건당국이 앞서나가자 늘어나는 ‘뚱보’ 탓에 고심하는 유럽 각국 정부도 바빠지게 됐다. 헝가리는 이미 지난달부터 지방, 염분, 설탕 등이 많이 함유된 음식에 개당 10포린트(55원)를 부과했다. 헝가리의 비만율은 18.8%로 유럽연합(EU) 국가의 평균(15.5%)보다 높다. 헝가리 정부는 비만세 덕에 연간 7400만유로(약1120억원)가량의 세수가 늘 것으로 전망했다. 이 돈은 건강 관련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비만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건강관련 재정에) 더 많이 공헌해야 한다.”며 비만세 징수를 정당화했다.  영국도 비만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옥스퍼드대 건강증진연구그룹의 마이크 라이너 교수는 “영국도 비만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덴마크처럼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건강식인 과일과 채소류 등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면 해마다 3200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르키 카타이넨 스위스 총리도 “덴마크의 계획은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것”이라고 말했고 스웨덴도 덴마크 사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 비만국인 미국은 ‘탄산음료세’ 등을 통해 비만 인구 줄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워싱턴과 매릴랜드 등 33개 주에서 이미 탄산음료에 세금을 물리고 있고 연방정부 차원의 탄산음료세 도입도 추진 중이다. 또 소금·설탕·지방 함량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업체에 대해 TV 및 라디오, 인터넷 광고 등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의회에 제출돼 있다.  하지만, 비만세를 고깝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지방 함유량이 높은 패스트푸드를 먹는 인구가 주로 저소득층인 탓에 당장 “가난한 사람들에 ‘세금폭탄’을 떨어뜨리는 꼴”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덴마크 산업연맹(DI) 식품부 대변인은 “이번 조치가 건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이 세금에 따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열린세상] 중산층을 살려야 사회갈등 해소된다/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산층을 살려야 사회갈등 해소된다/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계급투쟁이 일어나 사회혁명의 도화선이 된다고 주장했다. 대공황에서 허덕이던 1930년 전후 당시의 경제 현실을 보고 사회주의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의 도래를 전망했다. 그러나 대규모 공공사업과 사회보장이라는 두 축을 가진 케인스의 재정정책이 실현되자 자본주의는 자정력을 갖추었고, 사회주의는 도래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맞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양극화 사회로 묘사된 지 오래이고, 보수와 진보 갈등의 골도 깊어만 간다. 중산층 붕괴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또한 심상치 않다. 정책마다 갈등이 촉발되고, 갈등이 일어나면 극한으로 치닫는다. 반값 등록금, 서울시 무상급식, 한진중공업 사태가 대표적 사례이다. 중산층의 정의 방법은 다양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소득 순으로 나열하면 중위소득의 50~150% 내 가구를 중산층으로 규정한다. 소득을 기준으로 10등급으로 분류할 때 아래에서 세번째에 속하는 3분위에서 위에서 세번째에 속하는 8분위까지가 중산층이다. 한국의 중산층 비중은 1997년 73.6%에서 2008년 63.2%로 추락했다. 중산층의 소득증가 폭은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그 층이 더 얇아질 전망이다. 10여년 전인 1999년 소득이 가장 많은 계층인 10분위의 소득은 전년보다 6.2% 늘었으나 2분위에서 9분위까지의 소득증가율은 이보다 낮은 2.2~4.3%에 그쳤다. 2000년에도 그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 2001년에는 10분위의 소득이 전년보다 9.9% 늘었으나, 중산층이 포함된 2분위에서부터 7분위까지는 이보다 낮은 8.5~9.7%에 불과했다. 중산층의 상대적 소득 감소 추세는 김대중 정부 말기에서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완화되다가 노무현 정부 말기 다시 심화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10분위의 소득이 전년보다 5.9% 많아졌으나 3~6분위는 5.2~5.8% 증가에 그쳤다. 2007년에는 10분위의 소득이 전년보다 8.8% 증가했으나 나머지 9개 분위는 5.3~7.2%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10분위 소득이 전년보다 6.0% 증가했지만 나머지 9개 분위는 4.8~5.9% 증가에 그쳤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이 10년 넘게 지속되어온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이자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산층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줄면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거나 그 경계선상으로 밀려나는 가구가 늘어난다. 그래서 앞으로 중산층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중산층에 관한 현 정부의 2009~2010년 성적표는 명암이 엇갈린다. 전 가구를 대상으로 할 경우, 2년간 중산층에 해당되는 3~8분위의 소득증가율은 상위 9~10분위의 소득증가율보다 높았다. 도시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면 2009년에 10분위의 소득증가율은 나머지 9개 분위보다 높았고, 2010년에는 반대였다. 중산층에 대한 정책결과가 과거 10년에 비해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개선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의 사회갈등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5%이며, 갈등지수는 세계 네번째로 높다고 주장한다. 공감하지만 처방에는 동의할 수 없다. 법치주의 확립, 정책결정 효율화, 신뢰사회 구축, 유연한 시민의식과 열린 문화 정착, 시장경제의식 제고, 사회갈등관리 강화, 국제사회 리더십 강화 등을 처방책으로 제시했다. 이 중에서 가진 자가 양보하고 중산층을 지원하는 스스로의 역할은 하나도 없다. 모두 “네 탓이며, 네가 먼저”를 주문하는 과제이다. 이런 인식은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중산층은 사회통합과 유지의 중심축이다. 빈부격차로 갈등이 유발되면 완충역할을 하는 계층이다. 이 계층이 취약하면 완충 역할은커녕 갈등의 주체로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갈등이 심화된다. 중산층 복원정책이 시급하다. 비정규직 같은 노동구조 개편과 세제 개편 등 가시적, 정책적 처방이 없으면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국내외 인사 175명 ‘노태우의 추억’

    국내외 인사 175명 ‘노태우의 추억’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국내외 인사 175명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각자의 ‘추억’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노태우 대통령을 말한다’(동화출판사 펴냄)이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 정해창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석립 전 대통령 경호실장 등을 비롯해 제6공화국 각료, 국회의원, 청와대 출입기자, 고향 지인 등의 육성이 담겼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등 외국 정상들도 가세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보낸 편지에서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국 땅에서 철수시키는 데 동의한 노 전 대통령의 현명한 결정에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잊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이 현 위치에 오르기까지 가장 큰 기여를 한 국가원수는 박정희, 김대중, 그리고 노태우 세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은 그의 소극적인 이미지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노태우 정권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전 장관은 “힘없고 가난한 신설 문화부에 추임새를 보낸” 노 전 대통령을 회고하며 “생채기 난 문화를 어루만져 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대통령의 따뜻한 손길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빚 공화국’ 2011 자화상] 공무원, 빚 못 갚고 지자체, 빚 늘리고

    [‘빚 공화국’ 2011 자화상] 공무원, 빚 못 갚고 지자체, 빚 늘리고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대출받는 공무원이 해마다 늘어 올해 대출 공무원 10만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또 대출 상환 연체금액은 2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태원 한나라당 의원이 26일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 연금을 대출한 공무원은 지난 8월 말 현재 9만 9073명으로 2009년 8만 8302명, 지난해 9만 3515명 등 지난 2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누적 대출금액은 2009년 8539억원, 2010년 8632억원, 올해 9777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2009년과 올해는 상반기에 대출금 5000억원이 조기 소진될 정도로 대출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년간 연 2회 이상 연금대출을 받은 공무원은 2543명(누적 대출금액 88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세·물가난 공무원도 못 피해” 또 올해 연금대출 연체 공무원은 7303명으로, 전체 연체금액은 249억 5600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체 공무원의 41.9%는 1년 이상 장기 연체자이며, 이들이 연체한 금액은 전체 연체금액의 90.6%를 차지했다. 연체 기간별로는 1년 이상 3063명(41.9%), 3개월 미만 2905명(39.8%), 6개월 미만 721명(9.9%), 1년 미만 614명(8.4%) 순이었다. 김 의원은 “이 같은 통계는 주택 전세금과 물가 상승 탓에 공무원도 그만큼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공단의 설립 목적이 공무원의 생활안정과 복리 향상을 위한 것인 만큼 기금의 유동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출 규모를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장기 연체자와 관련해서는 “3개월 이상 연체자에 대해서는 매월 급여에서 원천공제가 되도록 해당 기관에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원천공제는 해당 공무원의 동의가 있어야 상환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급여압류 등 연체 공무원의 동의없이 연체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여압류 등 대책 세워야” 한편, 행안위 소속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연금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2008~2011년 6월)간 공단 수입액은 19조 5000억원인 반면 지출액은 24조 8000억원에 달해 모두 5조 3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1~16년 연금 재정 추이’자료에 따르면 2016년까지 수입액 42조 8000억원, 지출액 56조 1000억원으로 13조 2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16개 시·도 지방채 분석…2년새 잔액 평균 50% 증가 지난 2년간 전국 16개 광역 시·도 가운데 빚(지방채)이 가장 많이 늘어난 지역은 서울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기간 전국 지방채 잔액 평균 증가율은 50%를 기록했다.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유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2008~2010년 지방자치단체별 지방채 잔액 현황’ 자료에 따르면 2년 새 지자체 전체 빚은 49.9%(9조 5005억원) 늘어났다. 이 가운데 서울이 143.4%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전남(94.4%), 인천(73.6%), 충북(72.0%), 경남(71.6%), 충남(59.4%)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광주는 -6.8%로 유일하게 빚이 줄었다. 2010년 말 현재 전국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 잔액은 28조 5491억원이었고, 지역별로는 경기가 4조 571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3조 7831억원, 부산 2조 9158억원, 인천 2조 8261억원 순으로 지방채 잔액이 많았다. 지방채 잔액을 주민 수로 나눈 ‘주민 1인당 빚 평균액’은 66만 7000원으로 2년 만에 37.5% 증가했다. 지역별 주민 1인당 빚은 130만 7800원을 기록한 제주가 가장 많았고, 이어 인천(102만 4500원), 대구(83만 1100원) 순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주민 1인당 빚이 가장 많이 늘어난 지자체는 서울(140.7%)이었다. 이어 전남(94.3%), 인천(69.5%), 충북(68.7%), 그리고 경남(68.2%) 순이었다. 광주는 이 부문에서도 유일하게 빚 증가율이 감소(-12.7%)했다. 유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능력을 초과하는 빚은 결국 지역주민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한번 늘어난 빚은 줄여나가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무리한 사업 추진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행안부 관계자는 “광주는 2009년 지방채 상환 규모가 커 유일하게 전년도 대비 10년 지방채 잔액이 줄어들었다.”면서 “지역별로 지방채 상환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일괄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씨줄날줄] 따뜻한 의사/최광숙 논설위원

    누군가 편작(扁鵲)에게 “당신은 의술에 있어서 신(神)”이라고 하자 편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술에 있어 자신의 큰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형이 그 다음이며, 자신이 꼴찌라고 했다. 하지만 돈은 자신이 가장 많이 벌고, 그 다음 둘째형, 그 다음은 의술이 가장 뛰어난 큰형이라고 했다. 이유인즉 큰형은 사람들이 병이 나지 않도록 했고, 둘째형은 작은 병이 큰 병이 되지 않도록 했고, 자신은 큰 병이 되어야 이를 발견하고 고친다는 것이다. 중국 주나라 때 전설적인 명의인 편작. 괵나라 태자의 급환을 고쳐 죽음에서 되살려낸 편작이건만 자신을 하잘것없는 의사로 낮췄다. 과연 천하의 명의다운 태도다. 편작의 지적처럼 의사도 다 똑같은 의사가 아니다. 실력이 출중한 의사가 있는가 하면, 돈벌이에 급급한 의사도 없지 않다. 실력 있는 의사도 능력만 뛰어난 이가 있는가 하면, 인품까지 갖춘 의사도 있다. 지금 병원에도 서비스 개념이 도입돼 의사들도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의사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1993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연세의료원이 도입한 ‘환자의 권리장전’에서 ‘모든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첫째 항목으로 명시한 것도 환자들 위에 ‘군림’하는 의사들을 향한 메시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고 이태석 신부가 지난해 선종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펼쳤던 인술(仁術) 때문이다. 그는 진흙과 대나무로 움막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본, 가난한 이들의 따뜻한 의사였다. 최근 한 미국의 80대 환자가 시카고대 병원에 “앞으로 환자와 소통하는 의사를 많이 배출해 달라.”는 취지로 480억원을 쾌척했다. 담당 의사가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태도에 감동 받았다는 것이다. 담당 의사인 시글러 박사는 “의사가 치료과정에서 질병에만 관심을 두고 환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며 “의사와 환자들의 소통이 원활할 때 치료 효과가 커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랫것’처럼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병원에서 한번쯤 경험했다면 정말 공감하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의사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 자체가 의술이다. 성적 순이 아닌 인성(人性)이 꼭 필요한 직업이 바로 의사라는 사실을 의사들만 모르는 것은 아닐는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염상섭(1897~1963)은 널리 알려진 ‘국민작가’다. 염상섭이 ‘국민작가’인 것은 물론 그의 걸출한 문학작품 덕분이지만, 그의 삶이 근대 이후 한국사의 중요한 맥락들과 궤를 같이해 온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철들 무렵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그는 한일병탄 2년째인 1912년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1930년대에는 만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38선을 간신히 통과해서 서울로 돌아왔고, 이후 종군작가로 한국전쟁을 체험한다. 이처럼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 해방과 한국전쟁을 마주했던 염상섭의 삶의 국면들은 100편이 훨씬 넘는 그의 장·단편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히 문제적 시대를 살아낸 문제적 작가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시대가 문제적이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적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한국문학사에서 염상섭을 일컬어 ‘리얼리즘의 최고봉’이라 하는데, 이 찬사 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는 평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염상섭이 바라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선망과 자괴 사이에서 일본 유학생 시절, 그는 식민지인이라는 피해자의 입장과 제국 일본을 선망하는 학습자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른바 ‘친밀한 적’을 마주해야하는 고통, 즉 일본을 본받고 따라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 자책하는 이중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에 유학한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염상섭의 경우는 좀 더 특별난 데가 있었다. 그의 유학이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보살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맏형 염창섭은 대한제국 시절, 영친왕이 유학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으로 인질처럼 끌려갈 때 그 시종으로 따라갔다. 이후 염창섭은 대한제국의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는 일본군대로 편입하는 길을 선택한다. 곡절 많은 내력이지만, 현실에서 일본군 장교라는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형 덕분에 염상섭도 사립학교나 학원가를 전전하던 조선유학생들과는 달리 정규 일본 명문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후 염상섭은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일본특파원)를 비롯해서 시대일보, 조선일보, 심지어 총독부기관지였던 매일신보, 만주국의 홍보지 역할을 했던 만선일보에서까지 두루두루 일한다. 할 일 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는 가난한 식민지 지식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게다가 염상섭만큼 일본어와 일본문학에 정통한 문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염상섭에게는 ‘군복자락 콤플렉스’, ‘현해탄 콤플렉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일본군 장교인 형은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부끄러운 존재였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 현해탄을 오가는 것처럼 일본을 선망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식민지인임을 자각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콤플렉스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사카 독립선언서 사건이다. 염상섭은 2·8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8일 오사카에서 단독으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거사를 꾀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미결수 생활을 겪는다. 이 독립선언문에는 ‘오사카 한국 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이라고 쓰여 있다. 그 전해에 병으로 대학을 자퇴했고, 작은 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하긴 했지만 그가 노동자 대표라기엔 다소 억지스럽다. 게다가 정규 일본 명문 중학을 졸업하고, 귀족자제들이 다니던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했던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생뚱맞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동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의 깊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염상섭의 내면에는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 안온한 일본유학생이라는 자괴감이 늘 존재했고, 그 반작용의 심리로 자신을 노동자대표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군복자락으로부터 야차의 길로 식민지 상황에 대해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체념했다. 또 어떤 이는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투쟁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했다. 어떤 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괴로움으로 현실을 등지거나 스스로 자기 파멸로 내몰아가기도 했다. 물론 자기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무리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염상섭은 자기 삶을 글쓰기로 옮겨놓음으로써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세계와 대면하고자 한다.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만세전’(1924)은 자전적 경험이 깊이 투영된 일본 유학생 ‘이인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인화’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 맹렬하게 발작을 일으킬 정도이면서도 딱히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변명과 자기연민, 자조가 뒤범벅인 소설 속 인물. 그런 인물을 그려놓는 일, 바로 글쓰기를 통해 염상섭은 새로운 길을 만난다. 그는 1923년 첫 창작집 ‘견우화’를 발간하면서 자신의 소설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이란 것이 인생과 그 종속적 제상을 묘사하는 것인 이상 인간이 어떻게 고민하는가를 그리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에 예술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연극적·음악적·회화적·조각적 요소를 어떻게 약배하며 약동하도록 그리겠느냐는 문제이지만, 기초적 조건은 역시 사람은 어찌하여, 어떻게, 얼마나 고민하는가, 또는 그 고민이 어떻게 전개되며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묘사함에 있다. (중략) 이러한 의미로 나의 처음 발간하는 단편집에 대하여 야차(夜叉)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는 표제를 택하였거니와…….” (‘견우화’의 서문) 그에게 소설쓰기는 세련된 기교를 펼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적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가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보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죽하면 첫 단편집을 “야차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고 이름 붙였다고 스스로 해명하는 것일까.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일은 스스로 야차(악마)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야차되기를 선택함으로써 그는 군복자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이자 독립선언을 하는 식민지 조선인, 총독부 기관지의 정치부장이자 조선인 소설가. 이러한 극단들을 오가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그러한 자신이 속해있는 두 세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그것이 염상섭의 작가적 출발이자, 글쓰기의 의미였다. 물론 두 눈으로 세계를 똑똑히 본다고 해서 쉽게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염상섭의 작가적 두 눈은 해답보다는 일상적 삶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삶의 미세한 진실을 바라보고자 했다. 일상 속에서는 아무도 순결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박쥐 같은 양면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들조차도 핏줄보다는 돈(욕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등. 1930년대 ‘삼대’가 그려낸 풍경은 그러한 삶의 이면에 대한 해부였다. 그래서 염상섭의 작품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마치 외눈박이처럼 하나로만 바라보는 것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었던 역사적 현장이나 전쟁 상황에서도 염상섭의 이러한 자세는 계속 이어진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서 1·4후퇴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낸 ‘취우’(1953)는 전쟁의 극한상황이나 고통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와중에도 노골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왜 염상섭이 국민작가로 회자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와 삶을 대면하는 방식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단면적인 세계, 양가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그의 글쓰기는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자기 삶의 응시가 그로 하여금 글쓰기로 나아가게 했고, 그것이 국민작가 염상섭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일 터이다. 김연숙 남산강학원
  • [책꽂이]

    ●프로세일즈의 조건(최광돈 지음, 이담북스 펴냄) 22년간 영업 일선에서 고군분투한 저자는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되는 영업의 시대는 갔으며, 성공하려면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만 6000원. ●선택의 과학:뇌과학이 밝혀낸 의사 결정의 비밀(리드 몬터규 지음,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의사 결정 연구의 권위자가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선택 과정을 뇌과학으로 설명한 책. 2만원. ●도시 개발, 길을 잃다(김경민 지음, 시공사 펴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화려하게 출범했으나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한 국내 대형 건설 프로젝트의 폐해를 파헤쳤다. 1만 3800원. ●꾀꼬리와 국화(이숭원 엮음, 깊은샘 펴냄) 위대한 시인 정지용(1902~1950)의 산문 글솜씨를 엿볼 수 있는 책. 2만 3000원. ●소설 읽는 방법(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펴냄) 1999년 24살에 최연소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일본 천재 소설가가 소설 감상법에 대해 썼다. 1만 2000원. ●시,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김지수 지음, 페이지원 펴냄) 패션 잡지 ‘보그’의 편집자가 시와 관련해 쓴 에세이. 인생에 위로가 된 시 50편과 저자의 삶을 엮었다. 1만 1800원.
  • 박원순 “난 말한 대로 모금 전문가 나눔 위해 기업후원 받아”

    박원순 “난 말한 대로 모금 전문가 나눔 위해 기업후원 받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민주당 유력 주자인 박영선 정책위의장이 22일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재벌기업 후원 특혜 의혹을 전날에 이어 또다시 거론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상임이사는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부자들의 후원을 받는 것이 뭐가 나쁜가.”라고 반박했다. 범야권 통합경선을 앞둔 상황에서 재벌 문제를 놓고 ‘차별화’ 카드를 꺼내 든 박 정책위의장과 시민후보의 ‘도덕성’을 강조한 박 전 상임이사의 맞대응으로 풀이된다. 박 정책위의장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박 전 상임이사가 좋은 일은 많이 하셨는데 그동안 하셨던 일들이 혹시 재벌로부터 후원을 받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재벌들이 어떤 일을 후원함에 있어서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해 왔던 경우는 찾기가 많이 힘들다.”며 공세를 이어 갔다. 이에 박 전 상임이사는 이날 공성경 창조한국당 대표를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출마 선언을 하면서도 말했지만 나는 모금 전문가”라면서 “나눔 활동을 하기 위해 한 것인데(재벌 후원을 받는 게 문제라면)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받았어야 하느냐.”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참여연대 활동을 할 때는 소액주주운동에 앞장섰다. 내가 살아온 여러 단계들을 함께 봐 줬으면 한다.”면서 “서울시장이 된다면 이런 점들이 많은 기업과 사람들을 아우르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날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당 서울시장 후보 TV토론회에서 “박 전 상임이사가 시민운동을 하면서 재벌기업의 후원을 많이 받은 것도 짚어 봐야 한다.”고 공격했다. 박 전 상임이사는 이날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있는 두꺼비 하우징 시범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아름다운 재단은 원래 모금단체라 문제 될 게 없다.”면서 “만약 그분(박 정책위의장)이 내가 개인적으로 받았다는 뜻으로 말한 거라면 항의하겠다.”고 거듭 반박했다. 그러면서 “선거 과정에서 검증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런 건 쟁점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공방이 확산되자 박 정책위의장 측은 한 발 물러났다. 박 정책위의장 측 김형주 대변인은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해가 있었다. 그 건(재벌 후원 의혹)에 대해서는 캠프 측이 자료를 기획하거나 추진할(의혹을 폭로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전통이야!”…가족에 끌려 매춘에 나서는 인도소녀들

    “전통이야!”…가족에 끌려 매춘에 나서는 인도소녀들

    인도의 빈민가를 중심으로 아직도 가족에 의해 어린 소녀가 돈을 벌기 위해 사창가로 내몰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CNN은 21일(현지시간) 한 소녀의 사례를 들어 “가족들에 의해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어린 소녀들이 매춘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지역은 인도 서부의 라자스탄주 바랏푸르 지역. 이 지역에서는 아직까지도 ‘데브다시’(devdasi)라는 이름으로 이같은 매춘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데브다시는 원래 상류 계급의 사람들을 위해 여자들이 노래와 춤으로 그들을 즐겁게 한다는 전통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현재는 매춘으로 변질됐다. 현지 주민은 “마을 일부 주민들이 농업이나 일일 노동으로 돈을 벌지만 살기에 매우 적은 돈”이라며 “소녀들의 매춘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가정이 많다.”고 밝혔다.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아버지와 형제들의 의해 사창가로 끌려 간 소녀들이 버는 수입은 하루 20달러 남짓. 그녀들은 몇개월 간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고 몇주 동안 집에 다녀오는 일을 반복한다.     매춘부로 가족들을 부양하는 한 여성은 “이같은 일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내 일을 여동생들이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NN은 “많은 인권단체가 이 악습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가난과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이같은 일이 자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정책에는 新舊만 있을 뿐 左右는 없다”

    1944년 나치병사였던 아버지가 전사한 지 몇달 뒤 유복자로 니더작센주에서 태어났다. 농장 인부로 일한 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4살 때부터 상점 점원, 공사장 잡역부 등으로 일하면서 야간학교에서 고학한 끝에 명문 괴팅겐대 법과에 입학했고 변호사가 됐다. 1963년 사민당에 입당한 뒤 1978년 사민당 청년조직 의장에 선출되는 등 일찌감치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급진 좌파에서 온건 지도자로 당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외치고 적군파 변호인으로 나설 정도로 급진 좌파성향이었으나 1980년 연방하원의원, 1990년 니더작센주 총리 등을 거치면서 이념적 편향에서 탈피해 온건파 지도자로 성장했다. 1998년 4월 사민당 총리후보로 지명된 뒤 9월 총선에서 정계의 ‘거목’ 헬무트 콜 당시 총리를 무너뜨리고 총리로 선출됐다. 집권 뒤 친기업적 정책으로 돌아서 이념을 넘어선 ‘제3의 길’을 걷는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사민당 사상 최고 인기 정치인 이 때문에 당내 강경파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정책에는 신구(新舊)만 있을 뿐 좌우는 없다.”는 소신으로 맞섰다. 화려한 언변으로 한때 사민당 사상 가장 인기 높은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았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꽃 향기는 천리를, 사람 향기는 만리를 간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꽃 향기는 천리를, 사람 향기는 만리를 간다

    인간은 말은 쉽게 한다. 그러나 말한 대로 행동하긴 쉽지 않다. 언행일치나 지행일치는 옛말이 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개인들 간에는 믿음이 사라지고 사회는 이기심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개인이 더 행복해지고 신뢰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말한 대로’, ‘배운 대로’ 꼭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우리 아이들 또한 그렇게 길러야 한다. 백번 말로 일러 주는 것보다 느낄 수 있는 곳에 데리고 가서 한 번 보게 하는 것이 더 교육 효과가 높다. 근래 휴가 때나 주말에 가족 친지와 함께하는 여행의 형태가 점차 바뀌고 있다. 둘레길 걷기, 템플스테이, 고택 체험 등을 통해 자연과 전통문화를 벗하면서 자기와 주변을 되돌아보는 체험형 여행 문화가 늘어나고 있다. 필자가 있는 안동에서도 고택 체험 여행객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고택 체험에는 한옥의 고풍스러움 못지않게 그곳에 살던 분들이 배운 대로 실천한 삶의 향기가 곳곳에 배어 있어 특히 의미가 더 있다. 향산고택도 그중 하나다. ‘향산’은 구한말 순국지사인 이만도 선생의 호이다. 퇴계의 11대손인 선생은 경술국치를 당하자 치욕을 견디지 못해 24일간 단식 순국한 분이다. 나라 잃은 치욕의 삶보다 의롭게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평소 배운 선비의 삶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선생의 이러한 행동은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조카도 단식 순국으로 뒤를 이었고, 아들과 손자들 역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특히 며느리인 김락 여사는 남편과 아들들의 독립운동을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했다. 그리고 뒷날에는 자신도 직접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의 시뻘건 인두 고문으로 실명하는 고난을 겪었다. 김락 여사의 그러한 삶은 ‘락,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제작돼 2년째 주말 여름밤마다 안동에서 공연되고 있다. 학봉종택의 13대 종손이었던 김용환 선생의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종택의 전답을 노름으로 모두 탕진한 파락호로 소문이 났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도 모르게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기 위한 방편이었다. 노름꾼으로 위장함으로써 독립자금 마련을 좀 더 용이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독립자금 조달을 위해 외동딸이 결혼할 때 사돈댁에서 혼수 장롱 구입비로 보내준 돈까지 처분하는 바람에 딸이 할머니가 쓰던 헌 장롱을 가지고 울면서 시집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선생은 자신의 그런 행적을 결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심지어 해방된 다음 해 죽는 순간까지도 김구 선생과의 면담 등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신의 모든 행적을 비밀에 부쳤다. 남을 의식하고 자기를 내세우기보다 웃어른들로부터 배워 아는 대로 묵묵히 실천하는 참선비의 전형이다. 우리는 지금 김락 여사나 김용환 선생이 살던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시대의 삶의 향기는 왜 그 시절보다 못할까. 가난하고 어려웠던 때보다 무엇이 부족해서 그럴까. 당장의 이해보다 옳다고 생각하면 꼭 실천하는 솔선수범의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하여 이웃과 공동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회의 건강성을 담보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물질보다 정신이다. 따라서 지도층부터 이러한 정신을 솔선해 실천하여야 한다. ‘꽃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 향기는 만리를 간다(花香千里 人香萬里)’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만리’는 단순히 공간적인 거리만을 가리키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올곧은 정신이 후대에 미치는 영향의 지속성을 가리키는 시간적 은유이기도 하다. 마치 누가 더 천박해지는가를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오늘의 세태에서 우리 서로 앞다투어 옛 선현의 향기를 맡으며 자신의 수신부터 시작해 보자.
  • [서울광장] 이젠 청춘들을 보듬을 때다/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젠 청춘들을 보듬을 때다/최광숙 논설위원

    누구나 한번쯤 깜깜한 긴 터널의 한복판에 갇힌 적이 있을 거다. 차가 앞뒤로 꽉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답답함. 언제 뚫릴지 기약없음이 더 힘들기만 하다. 언제 햇빛을 볼 수 있으려나…. 지금 우리 젊은 청춘(靑春)들이 처한 상황이 딱 그래 보인다. “청춘!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렌다.”는 ‘청춘예찬’이 무색하기만 한 그들이다. 생활고에, 비싼 등록금에, 아르바이트에 허덕이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해도 기다리는 것은 취업난. 그걸 뚫고 나가도 비정규직 인생일 뿐. 88만원짜리 비정규직 일자리도 못 구해 결혼도 못하고, 결혼해도 출산하기 겁난다는 가여운 청춘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그런가. 유독 이 시대에 ‘청춘’이 난무한다. ‘청춘 콘서트’에 열광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이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간다. ‘힘내라 청춘’ ‘열혈청춘’ ‘청춘불패’ ‘청춘 문학기행’…. 출판계만 하더라도 청춘이 대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이나 연애, 뭐하나 되는 일이 없는 29세 백수인 철수. 전자제품처럼 성능을 따져 값을 매기는 이 사회, 낙오자들의 삶을 그린 소설 ‘철수 사용설명서’와 같은 ‘루저 문학’까지 등장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등장 닷새만에 대권후보로 훌쩍 떠오른 것도,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책이 8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한 것도, 아름다운 청춘을 잃어버린 청춘들의 성원에서 비롯됐다. 젊은이들의 응원에 나섰던 두 교수가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들 덕에 스타가 된 이 세상. ‘청춘의 멘토’로 불리는 안 교수가 일으킨 안풍(安風)을 놓고 한창 정치공학적인 분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 바람의 정체를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강남좌파냐 아니냐.”는 등 순전히 여의도 시각으로만 이를 바라본다면 이 시대 허덕이는 청춘들의 문제를 또다시 외면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춘 콘서트’는 청년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였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짓눌려 어깨를 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돕고 용기를 불어넣고 싶었다.”는 안 교수의 말이 ‘청춘 콘서트’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 알맹이가 빠진 채 ‘안철수 현상’을 논하고, 그의 거취를 좇아 정치권의 지형만을 그리는 세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김 교수 역시 불투명한 미래를 품고 힘들게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꿈과 도전을 외쳤다. “책이 예상외로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서 짠하고 안타깝다.”는 김 교수의 소회에 우리 청춘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두 교수가 ‘누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혹자는 “과거 세대들도 어렵고 힘든 ‘맨발의 청춘’ 시절을 보냈다. 지금만 그런 게 아니다.”고 할지 모르겠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배고픔의 가난을 이기고자, 민주화 운동의 물결 속에 젊음을 다 빼앗긴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고난을 뚫고 나오면 기회는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했고, 월세방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이지만 방 한칸 내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낳아 힘겹지만 학교 보내고, 어렵사리 할 것은 다했다. 하지만 지금 청년 세대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이미 치워진, 출구가 없어진 세상에 놓여졌다. 더 이상 정부가 청년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희망과 도전을 꿈꿀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말로만 청년 문제를 떠들었지 그들의 현실에 진정 가슴 아파한 적이 있던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펴낸 ‘2011 고용전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전체 고용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돼 가고 있으나 올 1분기 청년 고용은 3년 전보다 5.4%나 감소했다. 청년층이 무너지면 우리의 미래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허약한 청년층으로 이 나라가 강한 체력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청년 세대들을 보듬는 실질적인 대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할 때다. bori@seoul.co.kr
  • 中 재정수입 1년새 31%↑… 감세론 대두

    中 재정수입 1년새 31%↑… 감세론 대두

    중국의 올 재정수입이 처음으로 10조 위안(약 17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빠른 경제성장과 그동안 옭아맸던 임금인상의 고삐가 풀리면서 세수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재정수입 급증을 반길 만한 처지는 아닌 듯싶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 유럽 등의 증세 움직임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국부민궁’(國富民窮·나라는 부유하지만 국민은 가난하다) 논란과 함께 감세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신경보 등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의 올 1~8월 재정수입은 7조 4286억 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9% 급증했다. 이 같은 증가 속도라면 올 재정수입이 10조 위안을 돌파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는 재정부가 올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때 지난해 재정수입보다 8% 늘려 보고한 8조 9720억 위안을 크게 초과하는 규모다. 중국 내에서도 너무 가파른 증가율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도한 재정수입 증가가 결국 기업과 국민에게 많은 부담을 주고, 경제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수입 증가폭을 낮추기 위해 세제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앙재정대학 세무학원의 류환(劉桓) 부원장은 “감세가 세제개혁의 목표가 돼야 한다.”면서 “증치세(부가가치세)와 영업세를 포함, 모든 항목의 세금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재정무역연구소 양즈융(楊志勇) 재정실 주임은 “개인소득세 등 직접세를 더 내릴 필요가 있으며 증치세 등 간접세도 줄여 줄 수 있는 공간이 많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달부터 개인소득세 면세점을 기존의 2000위안에서 3500위안으로 크게 상향조정한 바 있다. 과도한 세금부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연 평균 20%씩 최저임금 등이 인상되고 있지만 임금인상분의 상당액이 세금으로 빠져나간다는 푸념도 곳곳에서 들린다. 최근에는 세무당국이 회사가 중추절에 직원들에게 제공한 웨빙(月餠·중추절에 먹는 작은 달 모양의 케이크)에도 세금을 부과키로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 개개인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불만이 쌓이면 결국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 중국은 관영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전문가와의 대담 형식으로 중국이 세금부담 고통지수 세계 2위라는 포브스 보도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재정수입 증대를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처지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가로등 순차 점멸로 전기 절약을”

    “가로등 순차 점멸로 전기 절약을”

    서울신문과 서울시의회가 함께하는 8월 의정모니터 회의에서는 심사를 거쳐 모니터 요원들이 올린 제안 91건 가운데 우수 의견 5건을 선정했다. 접수된 의견들은 시정에 반영하도록 서울시와 산하기관에 모두 전달됐다. 편현식(61·강남구 삼성동)씨는 “서울의 밤하늘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한꺼번에 점등을 하면서 어둡지도 않은데 모든 가로등이 켜졌거나, 어두운데도 모두 일찍 꺼질 때가 많다.”면서 “가로등에 타이머를 설치해 2~4개씩 세분화해서 점등과 소등을 한다면 점등할 때 너무 밝지도, 소등할 때 너무 어둡지도 않을 것이며, 전기 절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하철역 방치공간 갤러리로 활용” 신영숙(50·동대문구 장안2동)씨는 “지하철 표 판매가 자동화되면서 지하철 역사에 있는 기존의 매표공간들 중에는 방치돼 있는 곳이 적지 않다.”면서 “광화문역이나 경복궁역 갤러리처럼 매표공간을 시민들의 예술활동 전시공간으로 무료 또는 적은 비용으로 임대해 준다면 가난한 예술가들이 소규모 작품전을 열 수 있고, 시민들은 일상에서 가까운 전시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명순(53·동작구 흑석동)씨는 “한강을 거닐다 보면 물고기 산란장이나 보트장, 급경사 등 금지구역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또 낚시 금지 표지판이 작은 데다 밤에는 보이지 않아 알아보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강 생태계 보호와 오염 방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낚시 금지 구역임을 알리는 대형 표지판 설치와 지구대 순찰 강화, 벌금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슬이(22·마포구 아현1동)씨는 “지하철 1회용 교통카드 이용이 지하철에만 가능해 버스 등으로 갈아탈 때마다 1000원씩 추가로 지불해야 해 불편하다.”면서 “카드를 집에 두고 온 시민들을 위해 1회용 카드로 버스와 지하철의 환승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추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1회용 발급기를 편의점과 버스 정류소 등 다양한 곳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강 불법낚시 단속 강화 목소리도 이지연(28·마포구 성산2동)씨는 “시의회 홈페이지를 보면 제정한 조례가 시민들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이 부족하다.”면서 “홈페이지 메뉴에 ‘조례제정을 통해 변하는 서울’이라는 항목을 만들어 조례 개정과 제정이 끼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관련 소요예산과 수혜대상 등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이달의 지정 모니터 ‘市홈피’ ”무거운 주제 개선 필요” 8월 의정모니터에서는 지정과제로 ‘서울시 각종 홈페이지 운영실태’에 대한 모니터요원들의 의견 14건을 받아 교육위원회에 전달했다. 이은지씨는 “시의회 홈페이지는 시민들이 접근하기에 너무 무거운 주제들로만 구성돼 있다.”면서 “보다 친숙해지려면 서울 역사 알리미 등의 코너를 만들어 어린이들도 홈페이지에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어윤자씨는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시스템의 경우 예약을 하려면 인터넷으로만 가능한 게 대부분이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기에 힘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규씨는 “시청 및 산하기관 홈페이지 현황을 보면 106개인데 1년 단위로 유지보수, 신규구축, 기능개선 등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적지 않은 관리비가 들어간다.”며 “제작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은 단순히 수정 관리만 해도 무방한 만큼 운영실태를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따져 예산을 아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렇게 달라졌어요] 우이경전철 공사구간 차로 확장 지하철 객실 내 CCTV설치 검토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우이경전철 삼양로 공사구간의 차로가 좁고, 복공판 노면이 고르지 못해 사고 위험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펜스와 가림막을 정비해 2차선 도로폭을 6m로 넓혔으며, 노면 정비를 완료했다.”고 회신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또 ‘지하철 안전칸에 CCTV 설치’ 의견에 대해 “현재 전동차 객실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추행 및 위험상황, 무질서 행위를 막기 위해 객실 내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으며, 우선적으로 가장 혼잡도 높고 범죄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7호선에 설치할 예정이며, 이후 시행 효과를 반영해 5·6호선에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교통운영과는 ‘오류남초등학교 주변 오류로 횡단보도에 잔여시간표시기 설치요청’에 대해 “그동안 초등학교 주변의 횡단보도 신호등에는 잔여시간 표시기를 우선적으로 설치해 왔으나 학생들이 등·하교 때 잔여시간을 두고 빨리 건너기 경주나 게임 등으로 이용해 오히려 횡단보도 내 안전사고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면서 “초등학교 주변의 잔여시간 표시기 설치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답했다.
  • “美 소득불균형 르완다 수준”… 중산층 무너진 ‘슈퍼파워’

    “美 소득불균형 르완다 수준”… 중산층 무너진 ‘슈퍼파워’

    미국 사회의 ‘허리’로 경제를 지탱해온 중산층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반면 빈곤층 비율은 걷잡을 수 없이 늘었고 그 사이 ‘슈퍼리치’(갑부)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미국에는 부자 또는 가난뱅이만 있다.’는 자조 어린 표현마저 나온다. 경제불황에 소득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고 고용 불안에 그나마 있던 일자리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주택담보대출의 덫에 걸려 보금자리인 집마저 빼앗길 처지에 몰린 중산층의 모습은 추락하는 ‘슈퍼파워’ 미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전체 인구의 23%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중산층으로 자리 잡은 ‘라이벌’ 중국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 인구통계국이 13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중간 계층 가구의 지난해 연간 소득은 4만 9445달러(약 5500만원)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1997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산층의 소득이 이처럼 장기간 오르지 않은 것은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로렌츠 카츠 하버드대 교수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중산층 붕괴의 신호를 보여 주는 통계는 이뿐이 아니다. 비영리단체인 ‘퓨 자선기금’이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여년 전인 1979년 중산층 가정(소득분위 30~70%)에서 청소년기(14~17세)를 보낸 미국인 가운데 28%가 2006년 현재 중산층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회적 소득 불균형 정도를 보여 주는 미국의 지니계수가 2009년 현재 0.468까지 치솟았다. 지니계수는 최대 1에 가까울수록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를 뜻하며 보통 0.4를 넘어서면 소득 불균형이 심각한 것으로 판단한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보다 지니계수가 높은 곳은 찾아보기 어렵고 필리핀과 에콰도르, 르완다 등이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미국의 뉴스 사이트 ‘허핑턴포스트’가 전했다. 중산층이 실종된 사이 부자와 빈자는 두드러지게 늘었다. 미 인구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인 2만 2314달러(약 2470만원)에 못 미치는 소득을 벌어들인 미 가구의 비율(빈곤율)이 15.1%로 전년보다 0.8% 포인트 상승했다. 1993년(15.1%)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의 빈곤율은 조사가 처음 시작된 1959년 22.4%에 달했으나 이후 하락세를 이어 갔으며 2000년 11.3%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영향으로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미국의 소득 상위 20% 계층은 전체 부의 84%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거부 400명이 하위 50% 가정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화한 불황과 9%대의 높은 실업률, 주택·주식 가격의 붕괴 등으로 양극화가 뚜렷해지자 기업도 맞춤형 전략을 내놓고 있다. 부유층 혹은 서민층을 타깃으로 한 상품을 집중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공들여온 ‘중산층 소비자’는 찬밥 신세가 됐다. 세계 최대 소비재 생산업체인 프록터 앤드 갬블(P&G)은 설립 38년 만에 처음으로 서민층을 겨냥한 특가 세제를 출시했고 백화점 업체인 삭스는 부유층을 겨냥해 최고급 의류와 액세서리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카츠 교수는 “우리는 미국을 ‘모든 세대가 항상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나라’로 믿어 왔지만 중산층의 사정이 1990년대보다 악화되는 상황을 보게 됐다.”고 지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용어 클릭] ●미국의 중산층 소득 기준으로 봤을 때 상·하위 소득자 20%를 뺀 60%를 보통 중산층으로 잡는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 따르면 이 범위에 속하는 미국인의 연 소득은 2만 5000~10만 달러(약 2700만~1억 1000만원) 정도다.
  • 日, 탈북자 9명 한국 인도 검토

    일본 정부가 자국 해역에 표류한 탈북자들을 본인들의 희망에 따라 한국으로 인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당국은 14일 목선을 타고 표류해온 9명이 갖고 있던 서류 등에 대한 1차 검토 결과 이들을 탈북자로 판단하고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의 입국관리국 관련 시설로 옮겼다. 해상보안본부는 자체 시설에서 탈북자들을 보호하면서 탈북 경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탈북자들의 망명 의사가 확실해지면 외무성은 한국 측과 협의하며, 이 기간 동안 탈북자들은 입국관리국이 지정한 시설에서 머물게 된다. 일본 정부가 이들을 나가사키로 보내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가능한 한 이목을 끌지 않고 빨리 한국으로 보내려는 의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나가사키는 부산과 가깝고, 오무라시에는 나가사키공항이 있다. 탈북자 9명 중 책임자를 자처한 남성은 13일 자신이 조선인민군 부대 소속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14일 해상보안청 조사에서는 “어부였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탈북자들의 신상 정보는 여전히 정확하지 않은 상태다. 아사히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탈북자들이 이용한 어선이 상당량의 경유와 엔진으로 움직였고, 쌀과 김치 등을 준비한 것으로 미뤄 그다지 가난한 계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추측했다. 또 어업은 외화벌이 수단으로 군이 이권을 쥐고 있어 어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구입하거나 훔치는 방법밖에 없어 탈북자들의 어선 확보에 군 관계자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탈북자 9명은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3일 밤 가나자와항 부근에 정박한 순시선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들 가운데 어른 6명은 14일 오전 5시쯤, 어린이 3명은 오전 6시쯤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해상보안본부에서 아침 식사로 준비한 오니기리(주먹밥)와 김치를 먹었으며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한·일 외교 소식통은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결정되면 가능한 한 조용하게 보내는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