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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일 사람과 향기] 내 행복을 위해 먼저 남을 존중하자

    [김병일 사람과 향기] 내 행복을 위해 먼저 남을 존중하자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흑룡의 해이자, 임진왜란 7갑 주년(420년)이 되는 의미 깊은 해이다. 매년 연초가 되면 우리는 올 한 해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염원을 담아 소망을 빌기도 한다. 새해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지내고 있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 없이는 가치 있는 새것을 만들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논어’에서 옛것을 익혀야 새로운 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에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지난해 우리가 이룬 성취도 적지 않았으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들 역시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발생하였다. 고3 수험생이 부모를 살해하고 방안에 8개월 동안 방치하면서도 태연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사건, 왕따당한 여중학생이 자살한 사건, 친구들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폭력 앞에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중학생 자살 사건 등을 접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가슴 아파했다.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들을 보면서 먼저 태어나 앞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기성세대도 가난과 전쟁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하였지만, 이처럼 비인륜적인 극한 상황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요즘 우리는 성과 지상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언제나 허둥대며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해법을 찾는다. 친구들의 가혹 행위로 인한 중학생 자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걱정과 관심이 커지자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관심들이 학교에서 시작된 학생들 간의 문제라는 생각 때문인지 학교교육에만 시선이 모아지는 감이 있어 아쉬움을 준다. 문제의 본질을 다루지 않고 ‘가해학생을 전학시켜야 한다.’든지, ‘가해학생 부모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든지, ‘교사의 관심을 더욱 환기시키기 위해 교사평가에 반영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지면 유사한 사건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잇달아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의 이익과 욕구의 충족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사회 풍토가 주범이 아닐까? 이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자라면서 그렇게 되었다. 부모와 교사, 어른들의 언행이나 세태를 보고 듣고 느끼면서 그리되었음이 틀림없지 않겠는가? 남을 존중할 줄 알아야 나도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나이가 많고 높은 지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받을 수는 없다. 먼저 남을 배려하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어 주고 솔선수범할 때 존중받을 수 있다. 우리가 걱정하고 우려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방법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혹은 주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잘못이 가정에 있다거나, 학교와 당국에 있다거나 하는 식의 책임 떠넘기기로는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다. 가해 당사자나 당국만의 잘못이 아니라 나 중심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님들이,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사회에서는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작은 약속이라도 실천하는 모습, 학교에서는 스승이 어린 제자들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 사회에서는 서로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아낄 줄 아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즐겁고,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삶이 즐거워야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고 온 사회가 사람의 향기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印소녀, 간 적출당한 채 발견…“신께 바쳤다”

    인도의 7세 여자아이가 풍년을 기원하는 주술 의식의 희생양으로, 간(肝)이 적출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인도 카르나타카주 북부의 비자푸르에 사는 라리타 타티는 지난 10월 잔인하게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타티의 배는 투박한 흉기에 의해 절개돼 있었고, 장기 중 간 만이 적출 돼 사라진 상태였다. 약 3개월의 수사 끝에 잡힌 범인은 이 지역의 가난한 농부 2명으로, 농작물 수확이 원활하지 않자 과거 자신의 지역에서 행해지던 주술적 의식을 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소녀의 간을 신께 바치면 풍년이 온다는 옛 의식을 떠올려 이 같은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다. 당시 타티는 이웃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납치됐으며, 실종된 지 1주일만에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살해범 2명 모두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면서 “피해자가 어리고 수법이 잔혹해 법정에서 종신형 또는 사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녀석이 톱밥 속으로 숨어들었다. 녀석은 밀크셰이크처럼 어감이 달콤한 밀크스네이크 종이다. 먹이 줄 것과 따뜻하게 해 줄 것, 간단한 러시아 단어로 적어 놓은 메모지를 들여다보았다. 이반이 출항하기 전 남긴 글이다. 이반은 녀석의 등을 쓰다듬고 마지막 선물처럼 케이지를 앞에 내려놓았다. 한국 사람과 러시아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아, 이반은 러시아 사람들도 개나 고양이, 새 같은 애완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뱀이라니, 나는 검정 바탕에 노랑, 빨강 줄무늬가 있는 이국의 낯선 뱀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러시아에서 뱀은 집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다고 생각해. 녀석을 보고 놀란 나에게 위로라도 하려는지 이반은 한국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다고 했다. 명자, 이반은 내 이름을 부르고 입으로 휘이휘이 휘파람 부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 집안이 텅 비게 돼, 녀석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종종 휘파람을 불던 내게 이반은 러시아 속담을 빗대 말했다. 나는 멀찍이 녀석을 내려다보며 이반의 익살에 웃음을 내보였었다. 이반을 만난 것은 클럽 로즈에서였다. 로즈는 P시에서 속칭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외국인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는 주로 미군들이 드나들었는데 미군이 철수하고 러시아 선원과 상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날도 나는 로즈에서 맥주를 마시며 립스틱이 번지지 않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젊은 러시아 청년 하나가 보드카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담 장 앞에서 한국 얘기를 듣던 선원 중 하나였다. 술을 마실 때 거울을 보면 안 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귓불에 입술을 갖다 대며 그가 속삭였다. 흔한 작업멘트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의 나긋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반이라고 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처음 출발하는 곳이 고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베리아 열차가 끝없이 달리는 드넓은 숲과 초원을 떠올렸다. 그에게 러브 오브 시베리아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양손을 허공에 올려 내 얼굴을 길게 그려보였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왼쪽 손목에 새겨진 푸른색 돛이 펄럭였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여주인공과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린 얼굴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러시아 사람과 첫 대면을 할 때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영화 속 여주인공을 만난 것처럼 이국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영화 속 지명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들먹이는 선에서 끝이 났다. 러시아말로도, 한국말로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가 턱을 괴고 조용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여행지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음악이 흘렀고, 클럽 로즈는 마치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을 품고 있는 대합실 같았다. 그의 손목에 새겨진 푸른 돛 때문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라면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월요일만 아니라면 언제라도 좋아요, 월요일 여행은 불행하거든요, 러시아 속담이에요. 느닷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는 벽면에 붙은 러시아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마치 오래 전에 만난 사람처럼 손을 잡고 아무 손님도 잡지 못한 나타샤를 지나쳐 거리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만국기가 꽃잎처럼 나풀거렸고 만국기의 행렬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두 블록 떨어진 내 숙소로 걸어올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도 이반이 러시아 속담을 말하며 내 입술에 입을 맞출 것만 같다. 시계가 밤 아홉시를 넘겼다. 녀석은 원색의 몸을 감춘 채 아직 기척이 없다. 나는 열선을 펴서 케이지 크기만큼 접었다. 그 위에 타월을 깔고 케이지를 얹었다. 사람 옷 입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판매원이 열선 까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겨울철,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열선은 생명줄과 다름없다고 했다. 녀석에게 25도의 체온으로 이국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불행일 수 있었다. 나는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케이지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거실의 불을 낮추고 이반이 남긴 메모지를 냉장고에 붙였다. 주방 창가로 가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북향으로 나 있는 주방에서 밖을 보면 아래층에 있는 중국집 ‘홍루’의 뒤꼍이 훤히 보였다. 홍루 뒤꼍에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새들었다. 쥐라도 쫓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담자락을 타고 지나간다. 지난봄, 가게의 주인이 바뀌면서 홍루(紅樓)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홍루는 붉은 다락방이라는 뜻이지만 이곳에 사는 화교들은 늙은 기생의 방이라는 별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변두리 사거리의 허름한 중국집 이름 홍루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거리는 스산할 정도로 빛이 꺼져 가고 휑하니 바람만 몰아 불었다. 멀리 텍사스 거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넘겨 자주색 민소매 드레스의 지퍼를 올렸다. 목선이 등 뒤로 깊게 파인 드레스였다. 이반을 만났을 때 이 드레스를 입었다. 이반이 긴 허리를 굽히고 마른 등에 입술을 댈 때면 나는 수줍은 소녀처럼 간지러움을 참아내곤 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빨강 립스틱을 덧바르고 귓불 뒤에 향수를 뿌렸다. 구제를 구입해 수선한 밍크를 꺼내 걸치고 자투리로 만든 밍크 모자를 머리에 비스듬히 얹었다.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장갑을 꼈다. 은색 스팽글이 촘촘하게 박힌 카우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텍사스촌에 접어들자 겨울 내내 공중에 걸려 있던 해진 만국기가 바람에 나풀댔다. 그 아래, 술에 취한 러시아 선원 두 명이 러시아 혁명가 스텐카 라진을 부르며 지나갔다. 나는 시애틀 노래주점을 지나고 캄차카 노래방을 지나 클럽 로즈로 걸음을 옮겼다. 로즈에는 러시아 민요인 백만 송이 장미가 흐르고 있었다. 낮고 고혹적인 중년 여가수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와 흐린 불빛에 섞여 들었다. 손님이라고는 한국 선원 두 명과 러시아 선원 두 명이 전부였다. 마담 장이 표정 없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얹었다. 한국 선원과 함께 있던 나타샤가 다가와 서툰 한국어로 언니, 마셔? 라고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러시아 닭 꼬치인 샤실릭을 시켰다. 담배를 피워 물고 천천히 로즈 안을 둘러보았다. 마담 장이 무료하게 하품을 해댔다. 필리핀에서 온 구잘은 러시아 선원과 섞여 백만 송이 장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나타샤가 보드카와 샤실릭을 내왔다. 나는 담배를 끄고 보드카를 한 잔 따랐다.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자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목까지 치닿았다. 이반은 보드카를 마시는 순간이면 고향을 떠났다는 것도, 추운 바다 위를 떠돈다는 것도 모두 잊는다고 했다. 나는 열기가 되뿜어져 나오는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실릭 꼬치에서 닭 가슴살 한 점을 빼 마요네즈에 찍어 입에 넣었다. 내가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미군이 철수하고 나서였다. 러시아 선원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거리의 젊은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짐을 꾸려서 떠났다. 고작 러시아 선원의 비위나 맞추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마담 장도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갔던 여자였다. 나는 미군 대신 러시아 선원을, 맥주 대신 보드카를,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몸에 익혔다. 이 거리에 나타샤와 구잘이 찾아들었다. 나타샤는 러시아에서 발레리나였고 구잘은 필리핀에서 가수였다고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꿈을 찾아 이곳을 떠났고 또 누군가는 또 다른 꿈을 좇아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텍사스촌으로 되돌아 온 사람들은 좀체 이 거리를 다시 벗어나지 못했다. 마담 장이 러시아 민요 대신 빠른 행진곡으로 음악을 바꾸었다. 선원들이 경쾌한 해군의 노래에 맞춰 무릎과 팔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드카 병이 순식간에 비어 갔다.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넘겼다. 한국 선원이 나타샤의 뺨을 비비며 등줄기를 훑었다. 선원 하나가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순간 그녀가 마담 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담 장이 전화를 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아가씨가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여자였다. 계산을 마친 그들이 클럽 안을 빠져 나갔다. 손님은 이제 러시아 선원만 남았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살집이 많은 러시아 선원 하나가 보드카를 마시며 계속 나를 주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선원은 보드카 병을 쥐고 일행을 벗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구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틀거리는 선원보다 구잘이 먼저 내 테이블 앞에 와 선다. 러시아 선원이 들으라는 듯 러시아말로 이번에도 손님을 채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원이 멈칫거리는 사이 구잘이 밖으로 나갔다. 선원이 내 앞에 앉는다. 그는 잔에 보드카를 따르며 자신의 고향 이야기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에게 이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깨를 추켜올리며 자신이 이반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주색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며 슬쩍 어깨를 감싸 쥐었다. 해군의 노래가 끝나고 러시아 혁명가가 시작되었다. 구잘이 필리핀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구잘의 친구가 러시아 선원의 팔을 꿰찼다. 멍청이! 저 언니 나이 많아, 주름 많아, 구잘이 선원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구잘의 말에 선원이 내 앞에 앉은 선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동료가 만류하는 손짓을 무시하듯 선원이 지갑을 꺼내 보드카와 샤실릭 값의 두 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켜보고 있던 구잘이 거칠게 다가왔다. 언니 년 나빠! 그녀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놀란 선원이 성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의 돈을 챙겨 일행 쪽으로 가버렸다. 망할 년! 어린 년이! 마담 장이 구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언니 년, 나빠! 구잘이 악다구니 끝에 손을 풀었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샤실릭 꼬치가 꾸들꾸들 말라갔다. 러시아 혁명가가 끝나고 경쾌한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이 짓도 이제 지긋지긋해, 러시아 년들을 한국 놈들에게 붙이고 필리핀 년들은 러시아 놈에게 붙이고, 이렇게 갈보 년들 불러대는 것도 신물이 난다구!” 그녀가 보드카를 마시며 넋두리를 해댔다. 쿨럭쿨럭, 천식 때문인지 잔기침이 뒤따랐다. “그래도 옛날에 이 바닥에서 명자, 하면 알아줬는데, 사내들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지, 그 시절에는 먹물 튄 년이 드문 때였으니…….”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흐릿한 불빛을 타고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거에 혹해서 사내놈들이 많이 찝쩍댔지…… 그때 한 놈 잡아 떠나지, 무슨 미련이 있다구…….”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 홀로 앉은 재즈가수의 독백처럼 한없이 낮았다. “너나 나나, 진즉에 이 바닥을 떴어야 하는데……, 사나운 팔자는 이래도 저래도 막히니…….” 그녀는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손님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코트를 걸쳤다. 카우치 백을 열어 계산을 마치고 조용히 로즈를 나왔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나는 홍루 앞에서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고 모자를 반듯하게 썼다. 보드카 때문인지 속에서 열이 올랐다. 어두운 계단을 지나 2층 현관문을 열었다. 녀석은 아직도 톱밥 속에 파묻혀 있다. 녀석에게 다가가 케이지 밑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댔다. 따뜻했다. 월요일에 길을 떠나면 여행이 불행하게 된다고 했던 이반은 정작 월요일에 떠났다. 이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단순히 그가 월요일에 떠났기 때문이리라. 나는 욕실로 들어가 화장을 지우고 드레스를 벗었다. 거울에 깡마른 몸이 드러났다. 이반이 명자, 라고 이름을 부른 뒤 커다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려 보이면 나는 러시아 회화 책을 뒤지듯 그가 허공에 그려낸 그림을 꼼꼼히 살폈다. 이반은 종종 그렇게 자신이 탈 배가 지나갈 곳을 손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이반의 손목에 새긴 푸른 돛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깡마른 몸에 샤워기의 물을 뿌렸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것은 녀석 때문이었다. 문득 녀석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나는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케이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톱밥 위를 보았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은 줄곧 톱밥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일까, 나는 케이지 안을 살폈다. 톱밥의 곡선이 흐트러짐 없이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이반이 사 놓은 먹이를 하나 꺼냈다. 먹이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개수대에 따뜻한 물을 받아 포장된 먹이를 그대로 담갔다. 재스민 차를 우려내 창가로 간다. 눈이 흩날렸다. 홍루 지붕에는 엘피 가스통 4개와 물탱크,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작업복과 면장갑, 깨진 그릇이 나뒹굴었다. 그 낡은 지붕 아래 자장면과 짬뽕 옆으로 적힌, 익숙하나 한 번도 맛을 본 적 없는 횡서 끝자락의 낯선 메뉴를 떠올린다, 어쩌면 남자가 만들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감조차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메뉴 밑으로 삐뚤삐뚤하게 적힌 러시아 음식들. 흑빵과 함께 홍루의 남자는 육개장과 비슷한 쌀단까나 빈대떡과 비슷한 블린 같은 러시아 음식도 만들었다. 종종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 음식 중에 끼어 있는 러시아 음식을 주문하였다. 눈이 내려앉는 홍루 뒤꼍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등을 보이고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등이다. 남자는 마치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양파를 깠다. 넓은 고무 대야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물에 붇고 있는 양파 껍질을 벗겨 낸다. 인조털이 달린 두툼한 점퍼에 가려진 남자의 양 옆 어깨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나는 껍질과 뒤섞인 혼탁한 물에 한 쪽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남은 양파 알을 찾는 남자의 기울어진 어깨를 본다. 언뜻언뜻 삐져나오는 남자의 붉고 물에 불은 손. 남자는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는 법이 좀체 없다. 남자의 등 뒤로 살금살금 나타샤가 다가간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허리를 익살스럽게 굽히고 남자의 등 뒤에 몰래 다가섰다. 나타샤가 두 손으로 남자의 눈을 가린다. 남자가 양파 껍질이 묻은 젖은 손을 차마 나타샤 손에 포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타샤가 손을 풀었다. 나는 뒤돌아보고 멋쩍어하는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며 식어가는 찻잔을 볼에 대고 눌렀다. 나타샤가 남자 앞에 턱을 괴고 앉는다. 분홍색 털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클럽에서와는 달리 앳돼 보였다. 남자가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을 멈추었다. 나타샤가 일어서더니 뒤꿈치를 모으고 양발을 벌려 발레의 폴리에 자세를 취한다. 두 팔을 뻗어 머리 위로 올리고 천천히 발 앞굽을 세워 잔걸음으로 뒤꼍을 옮겨 다녔다. 한눈에 봐도 그녀가 백조의 동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타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뒤꼍을 돌아 남자 앞에 섰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동그랗게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남자를 향해 웃고 있는 나타샤를 보며 식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개수대에 던져놓은 녀석의 먹이가 녹았다. 먹이를 건져서 접시에 담고 알루미늄 포장지를 벗겨냈다. 손가락 한 마디를 좀 넘긴 연한 핑크색 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나는 숨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쥐가 녀석의 먹이라니. 처음 기지촌에 왔을 때처럼, 처음 러시아 선원을 만났을 때처럼 무섭고 낯설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집게로 새끼 쥐를 집어 올려 녀석에게로 갔다. 톱밥 위는 아직도 텅 비어 있었다. 케이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먹이를 내려놓았다. 휘파람을 분다. 녀석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휘파람을 분다. 어릴 적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집 마루에 앉아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곤 했다. 설령 어른들의 말처럼 뱀이 나온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면 곁에 누가 있는 것처럼 무서움이 가셨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어서 집이 비었는지 집이 비어서 휘파람을 불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케이지에서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앉아 여행자를 위한 러시아 회화 책을 폈다. 90쪽 ‘거리’에서부터 120쪽 ‘모자 가게’까지는 이반이 떠나기 전 러시아어로 읽어주었다. 151쪽 기차여행 편을 한글로 따라 읽는다. ‘그제야 마구 쎄스츠 나 보예즈제?’ 어느 기차에 타야 합니까? 홍루 뒤꼍으로 함박눈이 쌓였다. 나는 눈을 밟으며 홍루로 갔다. 홍루에는 나타샤와 한국인 두 명만이 앉아 있었다. 주방 안으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종업원에게 이반이 즐겨 먹었던 쌀단까와 흑빵을 주문했다. 종업원 대신 나타샤가 내 쪽을 힐금거리며 주방 입구로 갔다. 그리고 주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주문을 받아 전해준다. 나는 낮은 선반 위에 펼쳐진 러시아 회화 책을 잠시 쳐다보았다. 남자도 틈틈이 회화 책을 뒤지며 러시아 말을 익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폴리에 자세로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나타샤의 뒷모습이 왠지 서글퍼서 고개를 돌렸다. 쌀단까와 흑빵이 나왔다. 이반은 홍루의 쌀단까 맛이 고향의 맛과 같다고 했지만 홍루의 쌀단까 맛은 육개장과 별반 다름없는 맛이었다. 천천히 흑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흑빵이 입안에서 거칠게 씹혔다. 나는 반쯤 뜯어 먹은 흑빵을 남기고 홍루를 나왔다. 케이지 안에 먹이가 그대로 있었다. 녀석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케이지의 뚜껑을 열고 먼지떨이를 거꾸로 찔러 넣어 천천히 톱밥을 휘저었다.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막대기로 커다랗게 원을 그은 뒤 안으로 조금씩 좁혀가며 톱밥을 감아 올렸다. 녀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반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내가 휘파람을 불어 모든 게 텅 비어버린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눈이 녹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진 지 일주일째, 부두에 배가 들어왔다. 텍사스 거리는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 상인들로 붐볐다. 나는 클럽 문을 열었다. 로즈도 러시아 선원들로 북적였다. 여전히 러시아 음악 백학이 흘러나왔고 조명은 더 흐려 있었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거울이 걸린 자리에 앉았다.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리고 카우치 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언니 머? 구잘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샤실릭을 주문했다. 마담 장이 새로운 선원들을 앞에 두고 예전 텍사스 거리에 몰려들었던 미군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선원들이 이야기를 채근하듯 마담 장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시절 마담 장의 사랑을 구하려는 한 미국 병사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사다가 거리에 뿌렸노라고 말하자 선원들이 속았다는 듯 몸을 털며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백만 송이 장미에 얽힌, 가난한 화가의 슬픈 사랑이야기란 것을 이내 알아챈 모양이었다. 마담 장은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선원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했다. 선원들은 이국의 낯선 이야기에 자신들 나라의 이야기가 섞여 든 것을 알아채자 긴장이 풀렸는지 보드카를 연거푸 마셨다. 마담 장이 의자를 돌려 몸을 반쯤 틀고 있는 러시아 선원들을 달래듯 두 손을 들어 허공을 다독였다. 선원들이 다시 마담 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타샤는 한국인 선원들 사이에 섞여 있었고 이미 취해 보였다. 한국인 선원이 길고 곧은 나타샤의 등줄기를 더듬어 내려가다 허리를 감싸 안고 일어섰다. 마담 장이 재빠르게 나타샤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타샤와 한국인 선원이 계산을 마치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홍루의 남자가 클럽에 들어선 것은 내가 두 번째 담배에 막 불을 붙일 때였다. 남자는 이곳이 처음인 듯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소 들뜬 표정으로 구잘에게 주문을 했다. 그의 테이블에 맥주와 마른안주가 올려졌다.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셨다. 마담 장이 음악을 바꿨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었다. 러시아 선원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의 춤은 마치 목각 인형이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처럼 무릎과 팔이 절도 있게 꺾어졌다. 격렬하면서도 율동 사이사이에 강한 매듭이 있는 러시아 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춤이 격렬하면 할수록 더 그랬다. 나는 선원들이 원무를 이뤄 추는 가팍을 보며 이반을 떠올렸다. 이반도 어디선가 함성을 지르며 저들처럼 가팍을 추고 있을까, 나는 보드카를 마시고 샤실릭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에 앉아서 계속 몸을 흔들고 있던 마담 장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육중한 그녀의 몸이 빠른 리듬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였다. 선원들의 함성이 추임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음악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의 춤은 자정까지 계속될 것이다. 구잘이 나타샤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하여 분주히 움직였다. 마담 장은 점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갔다. 가끔 이렇게 마담 장이 흥에 취해 선원들과 춤을 추면 그녀가 어김없이 해 오던 일, 러시아 아가씨를 한국 선원에게 붙이고 필리핀 아가씨를 러시아 선원에게 붙이는 일을 잊었다. 더불어 나의 존재도 잊었다. 그녀가 잊는 것은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천식처럼 오래된 이 거리의 모든 것들, 그녀를 되돌아오게 만들었던 익숙한 모든 것들, 그녀의 생 모두를 잊을 것이었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면 무언가 텅 비게 되는 것처럼 그녀도 텅 비어가는 것이리라. 원무에 끼어 점점 격렬하게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가 한줌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기라도 할 듯 깡마른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홍루의 남자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남자는 무릎 사이에 손을 찔러 넣고 눈은 줄곧 나타샤를 찾았다. 나는 마지막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남자가 취했는지 점점 고개를 떨궜다.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문득 잊고 있던 녀석을 떠올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든다. 거짓말처럼 녀석을 찾은 것은 소파 밑에서였다. 환전소에 가기 위해 러시아 동전을 지갑에 넣는 중이었다. 소파 밑으로 굴러들어간 동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누렇게 바랜 벽지에 노랑 빨강 검정 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소파 안쪽 벽 틈에 일자로 붙어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가만히 녀석을 지켜보았다. 녀석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먹이를 꺼내 따뜻한 물에 담근 다음 물기를 닦아 소파 입구에 놓았다. 집게를 들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숨을 삼켰다. 먹이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녀석이 고개를 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녀석의 여린 혀가 재빠르게 입속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다. 녀석이 먹이 앞으로 다가가 먹이를 덥석 무는 순간 집게로 녀석을 집어 케이지에 넣었다. 녀석의 입에는 삼키다 만 새끼 쥐의 여린 몸이 반쯤 물려 있었다. 로즈 앞에는 며칠째 클로즈라는 안내판만 달려 있었다. 겨울이면 도지는 마담 장의 천식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다고 했다. 나타샤도 가끔씩 목욕탕이나 환전소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한국 선원을 따라 이곳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고 임신을 해서 로즈에서 쫓겨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텍사스 거리는 다 해진 만국기를 걷어내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나는 만국기가 끝나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반을 처음 만났던 날, 이반의 달콤한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던 순간, 나는 내 여행이 이대로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랐었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만국기가 걷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블라디보스토크 행 비행기표 판매소를 지나 환전소로 갔다. 마지막 남은 먹이를 녀석에게 넣어주었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먹이에 다가간다. 잠시 목을 추켜세우더니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또 먹이를 먹지 않을 모양이었다. 온수에 목욕을 시키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수의사는 전화로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소화불량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상적으로 탈피를 하기 힘들어진다고도 했다. 대야에 온수를 받아 케이지 옆에 놓았다. 케이지 뚜껑을 열고 널브러지듯 몸을 길게 풀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집게를 들다가 내려놓았다. 녀석의 외피에 손을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녀석의 차가운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천천히 선을 그으며 머리 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녀석의 입을 지나 턱쯤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녀석이 감미로운 몸동작으로 손에 감겨든다. 소름인지 전율인지 무언가 몸속으로 울려들었다. 나는 녀석을 안듯 들어올려 온수에 담갔다. 녀석이 천천히 물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물끄러미 녀석을 보다가 물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미끄러지듯 내 손을 비켜나가는 녀석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손을 저어 작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녀석이 점점 생기를 찾은 듯 작은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뒤 작은 수건으로 민첩하게 손아귀를 벗어나는 녀석을 떠내 마른 수건을 깔아놓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녀석을 재빨리 수건 위에 굴린 뒤 케이지 안으로 털어 넣었다. 명자, 아주 잘했어, 이반이 보았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홍루를 지나고 로즈를 지나 도로 건너편에 있는 수족관으로 갔다. 파충류 먹이 있음. 간판 옆에 적힌 글씨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햄스터 케이지를 열다가 내 쪽을 본다. “뭘 드릴까요? 손님.” 점원이 케이지 안에서 햄스터를 꺼내며 물었다. “밀크스네이크 종인데……먹이 좀 사려고요.” 나는 나무토막을 기어오르는 비단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뱀을 키운 지 오래되셨나 봐요. 처음 키우는 사람은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거든요.” 점원이 손에 쥔 햄스터를 비단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이렇게 한창 클 때는 녀석도 산 먹이를 찾아요, 그래야 탈피를 제대로 할 수 있거든요.” 나무막대를 기어오르던 녀석이 슬그머니 방향을 틀며 혀를 날름거렸다. 케이지에 던져진 햄스터가 꾸물꾸물했다. 움직임을 감지한 녀석도 먹이를 견준 채 꼼짝 하지 않다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물어 삼켰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점원에게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속담이 있었나요?” 점원은 손에 묻은 햄스터 털을 털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 냉동 쥐로 드릴까요?” 점원이 물었다. 나는 햄스터의 하얀 몸이 비단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점원은 케이지에서 꿈틀거리는 분홍색 새끼 햄스터 한 마리를 꺼냈다. “녀석들이 종종 냉동 먹이를 먹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탈피를 하려고 그럴 겁니다. 제대로 크고 있다는 증거죠.” 나는 점원에게서 새끼 햄스터를 받아 골목으로 돌아왔다. 날이 풀리고 있었다. 곧 부두에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문이 닫힌 로즈를 지나 홍루에 들러 쌀단까와 흑빵을 시켰다. 남자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탁자 위에는 너덜너덜해진 러시아 회화 책과 비닐도 뜯지 않은 발레 슈즈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흑빵을 뜯어 쌀단까에 적셔 먹었다. 맞은편 거울에 흑빵을 씹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밥을 먹을 때 거울을 보면 안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이반이 내 귓불 뒤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일 것 같았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 대형서점 ‘책 도둑’ 속앓이

    대형서점 ‘책 도둑’ 속앓이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에서는 일상적으로 책 도난 사건이 발생하지만 정작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훔친 물건이 책이어서 대부분 자체적으로 훈방하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권학(勸學) 정서도 감안한 조치다. 2일 교보문고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 지점에서 한 달간 사라지는 책만 무려 수백~수천 권에 이른다. 하지만 적발하는 경우는 한 달에 2~3건뿐이다. 서점 측은 “책을 훔치는 이들이 대부분 학생이지만 더러는 유모차에 유유히 책을 싣고 나가는 젊은 주부도 없지 않다.”면서 “대부분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탓에 차마 경찰에 넘기지 못해 자체적으로 훈방만 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약점을 노린 상습 절도다. 2년 6개월간 대형서점을 돌며 3억원 상당의 책을 훔친 절도범이 지난달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2010년 7월에는 30년간 책을 훔쳐 수억원짜리 아파트에 식당까지 마련하고, 고급 승용차를 몰며 해외여행까지 다닌 60대 노인 2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들은 책에 별도의 도난방지 장치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을 노려 상습적으로 고가의 전문서적 등을 훔쳐 팔아치웠다. 대형서점은 인파가 몰려 부담이 적은 데다 감시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다는 점도 책 도둑의 군침을 돌게 했다. 이런 점을 알지만 예방책이 마땅치 않다. 한 지점당 500만 권에 이르는 장서에 일일이 도난방지 장치를 부착하려면 비용 부담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설마 책 찾는 사람이 도둑질을 하랴.’는 세간의 인식도 대형 서점을 절도 사각지대로 내모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알고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형 서점 내에는 최소 50여 대의 폐쇄회로(CC) TV가 설치돼 있지만 경찰처럼 기동대책반을 따로 설치할 수도 없어 책을 훔치는 모습만 담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에 불과하다. 서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단속과 점검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고객의 대부분이 학생인 서점에 도난방지 시스템을 설치하기는 어렵다.”면서 “현재로서는 시민들의 양식을 믿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복권의 저주?…돈 때문에 ‘인생’ 망친 사람들

    복권의 저주?…돈 때문에 ‘인생’ 망친 사람들

    ▶원문 및 추가사진 보러가기 임진년 새해를 맞아 복권 1등에 당첨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는 내 집 마련을 기원할 것이며, 차를 바꾸길 희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하던 일을 관두고 여행을 다니며 살길 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꿈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실제로 고액의 복권에 당첨된 이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하룻밤 사이에 막대한 부를 얻은 사람들은 장밋빛 인생을 손에 넣었을까. 여기 미국의 오디닷컴(ODDEE.com)이란 사이트에서는 많은 고액 복권 당첨자 중 안타까운 인생을 살고 있거난 산 10인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캘리 로저스 지난 2003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190만파운드(약 39억원)를 획득한 캐리 로저스는 어린 나이에 큰돈을 갖게 돼 돈을 물 쓰듯이 썼다. 지인들에게 집과 차를 선물했으며 매일 밤 파티를 즐겼다. 또한 가슴 수술을 받고 명품을 사는데 많은 돈을 썼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 복이 없었다. 전 남편은 자신의 돈을 노리고 결혼했으며 바람도 피웠다. 이 때문에 그녀는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이후 만난 남성 역시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로저스의 집에서 코카인 거래를 하다가 체포됐다. 그녀 역시 사건에 연루됐지만 막대한 돈을 주고 변호사를 고용해 겨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녀는 결국 복권 당첨 6년 만인 2009년 파산을 신청했다. 청소부로 전락한 그녀는 두 아이의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지난해 유명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반라사진을 게재하며 상담사로 변신, 다시 한 번 제대로 인생을 살겠다고 전한 바 있다. ◇‘사교계 신데렐라’ 재닛리 재미교포인 재닛리(한국 이름 이옥자)는 지난 1993년, 52세의 나이에 일리노이주 사상 최대 당첨금인 1,800만달러(약 265억원)에 당첨돼 화제가 됐다. 국내에도 보도를 통해 알려진 그녀는 기부금을 달라는 수많은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당첨금을 20년간 분할 지급받는 연금식을 택했지만 이를 담보로 고금리 대출을 받는 등 과시적인 소비를 했다. 그녀는 대학 시설과 교회, 그리고 국내의 한 정당에도 막대한 기부금을 쾌척하면서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그녀는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부통령 앨 고어, 그리고 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찬에도 등장했었다. 하지만 과소비와 도박 거기다 투자에도 실패한 그녀는 지난 2001년 파산 신청을 한뒤,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잭 휘태커(앤드류 잭슨 ‘잭’ 휘태커 주니어) 잭 휘태커는 2002년 12월, 버지니아주에서 잭팟 최고 당첨금인 3억1490만달러(약 3330억원)에 당첨됐다. 원래 송유관 건설업체 사장이었던 그는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당첨금을 가족과 친구, 사회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그는 수많은 재단이나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원금을 달라는 문의를 받았고, 회계사를 고용하고 관련 재단까지 설립했다. 그는 음주 운전이나 협박을 한 혐의로 체포, 막대한 보상금을 물고 풀려났으며 소송이나 도난 등으로 몸살을 알았다. 결국 재단은 2년 만에 사라졌고 아내와도 이혼하고 말았다. 또 그는 아끼던 외손녀 마저 마약중독으로 사망해 한때 술과 담배로 살아갔다. 하지만 현재 휘태커는 비록 많은 돈을 날렸지만 보도와 달리 파산하지는 않았으며 재기를 위해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는 등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켄 프록스마이어 1977년 기계공인 켄은 100만달러, 즉 현재 시가 1000억원이 넘는 복권에 당첨됐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과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지만 4년만에 파산하고 말았다. 수익을 도외시했는지, 그의 아들 릭은 “아버지는 행운을 얻은 단순한 가난한 소년이다. 그는 모든 사람의 불편을 살피길 원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시 기계공으로 일하고 있다. ◇이블린 애덤스 이블린은 1985년과 이듬해인 1986년 연달아 복권에 당첨됐다. 그는 총 540만 달러(약 52억원)를 손에 넣었지만 도박에 빠져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프리 댐피어 이 사례는 본인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어 더욱 안타깝다. 1986년 2,000만 달러(약 210억원)에 당첨된 제프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집이나 차 등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줬지만 이런 그의 넉넉한 인심은 그의 명을 재촉하는 꼴이 됐다. 지난 2005년 제프리는 형수와 애인에게 납치돼 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됐다. 현재 두 사람은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수잔 물린스 1993년 420만달러(약 52억원)가 당첨됐던 수잔은 일시금이 아닌 20년 분할 지급받는 연금식을 택했지만, 이를 담보로 고금리의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와 가족은 돈을 펑펑 써댔다. 이에 그녀는 당첨금 분할을 해제하고 모든 돈을 받았다. 하지만 이도 잠시 그녀의 사위가 큰 병에 걸렸고 치료에 100만달러가 들게 됐다. 이후 그녀에게 돈을 대출해 준 금융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당시 이 업체는 승소했지만 그녀는 지불 능력이 없어 부채는 상환되지 않았다. ◇빌리 밥 하렐 주니어 1997년 3,100만달러(약 298억원)를 손에 넣은 빌리.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그는 주위에서 말하는 대로 저택과 신차를 사는 등 돈을 펑펑 쓴 결과, 아내와 이혼했다.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이클 캐롤 2002년 970만 파운드(약 160억원)를 획득한 마이클. 그는 복권 당첨으로 20대 벼락부자가 됐지만 약물과 도박, 여자에 빠져 돈을 흥청망청 낭비해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최근 주급 200파운드(약 30만원)의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있다. ◇비비안 니콜슨 1961년 15만 2,300 파운드, 현재 300만 파운드(약 53억원)에 상당하는 돈을 손에 넣은 비비안은 “쓰고 쓰고 또 써라(spend , spend, spend)”라고 말해 유명해졌다. 그녀는 과소비는 물론, 5번의 결혼을 했으며 알콜 중독에도 빠졌다. 또한 자살을 시도해 정신 요양소에 들어갔다. 추후 그는 자신의 쓴 체험수기를 에미상수상작가 잭로젠탈이 각색해 영화화 되기도 했다. ‘스펜드, 스펜드, 스펜드’로 알려진 이 영화는 국내에 ‘무지개’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그녀는 주급 87파운드 (약 16만원)의 연금 생활을 하고 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2012 불황 ‘함께 견디기’] 자영업자 소득불평등 최악… “개선될 것” 17%뿐

    [2012 불황 ‘함께 견디기’] 자영업자 소득불평등 최악… “개선될 것” 17%뿐

    가계부채, 금융불안, 소득감소, 고용불안, 수출감소 등 올해에 예상되는 경제분야 악재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정부가 ‘불황의 파고를 넘기보다 함께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2012년에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를 양극화라고 지적한다. 불황의 파고에도 특정 계층의 소득만 급증하거나 특정계층의 소비가 지나치다면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서로 함께’ 견디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1일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12월 가계가 체감하는 소득분배 형평성은 1년전인 2010년 12월과 비교해 크게 악화됐다. 설문에 참가한 1000명 중 ‘지난해와 똑같다’는 대답이 47.2%였고, ‘조금 악화됐다’는 36.1%, ‘많이 악화됐다’ 7.7% 등이었다. ‘조금 개선됐다’는 8.9%, ‘많이 개선됐다’는 답변은 0.1%에 불과했다. 이들은 소득분배 형평성이 올해 말에도 특별히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56.9%가 ‘똑같을 것’이라고 했고, ‘조금 악화될 것’ 21.7%, ‘많이 악화될 것’ 4.0% 등이었다. ‘조금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이 17.4%였고, ‘많이 개선될 것’이라는 답변은 전혀 없었다. 소득분배 형평성 문제는 크게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의 2가지로 구분된다. 양극화는 증산층이 붕괴되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으로 나뉘는 현상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 안정성이 떨어진다. 소득불평등은 분배가 균등하게 이뤄지지 않는 현상을 말하며 주로 지니계수로 정도를 나타낸다. 소득의 재분배가 해법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7년간 소득에 대한 양극화지수와 지니계수를 계산한 결과, 우리나라는 양극화보다 소득불평등의 문제가 컸다. 지난해 양극화지수는 2003년보다 0.89%만 상승해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지니계수는 2009년에는 2003년에 비해 5.65%, 2010년에는 2003년에 비해 2.73%가 상승해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특히 월급쟁이보다 자영업자의 소득불평등 문제가 심각했다. 근로자가구의 지니계수는 2009년 0.3, 2010년 0.29였지만 자영업가구는 2년간 모두 0.39를 기록했다. 올해 경기가 더욱 안 좋아질 것을 감안할 때 사상 처음으로 0.4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도가 높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높다는 의미다. 소득불평등뿐 아니라 소비불평등도 안심할 수 없다. 수치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2003년 0.26이었던 소비부문 지니계수는 지난해 0.29로 8.5%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 교육비의 소비부문 지니계수는 0.70을 기록해 사상최대치였다. 사교육비의 경우 소비부문 지니계수가 0.78에 달했다.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지속될 수 있다. 특히 교육비의 경우 양극화 지수도 크게 악화됐다. 지난해 교육비 양극화지수는 2003년보다 무려 65%가 늘었다. 양극화는 소득불평등도와 같이 기초노령연금 등 정부의 공적부조로는 안정시키는 효과가 없었다. 지난해의 경우 공적부조를 통해 지니계수가 0.02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양극화지수는 변화가 없었다. 정부가 양극화지수와 소득불평등도를 줄이려면 정책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설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극화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이윤이 커져 중산층에게 혜택이 많이 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반면 불평등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적부조 등 정부의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주·임주형기자 kdlrudwn@seoul.co.kr
  • [‘민주화 대부’ 김근태 1947~2011] ‘리틀 김근태’ 이인영이 말하는 김근태

    [‘민주화 대부’ 김근태 1947~2011] ‘리틀 김근태’ 이인영이 말하는 김근태

    ‘명절이면 고향집에 쇠고기라도 사가라며 가난한 살림을 떼어주던 마음이 따뜻하고 맑았던 선배’ 청년시절 김근태부터 정치인 김근태까지 일생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온 이인영 민주통합당 전 최고위원이 회상한 모습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1988년 재야민족민주운동의 전국조직인 ‘전국민주민족연합’(전민련) 활동을 계기로 김 상임고문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그의 권유로 2000년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했다. 살아온 궤적이 비슷해 ‘리틀 김근태’라고도 불린다. 30일 김 상임고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 전 최고위원은 평생의 멘토를 잃은 슬픔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인에 대해 말할 때는 북받치는 감정에 가끔씩 말을 끊고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이 전 최고위원이 기억하는 청년시절 김 상임고문은 맑고 진지하며 후배들과 격이 없이 토론하는 선배였다. ‘정치인’ 김근태에 대해 그는 “생각이 바른 분이었고, 오래 생각하지만 한번 결심하면 우직하게 가는 분이었다. 무릎 꿇고 사는 것보다는 서서 죽기를 원했다.”고 회상했다. 또 “딸을 끔찍하게 아끼고 아들에게는 무뚝뚝했지만 화해도 하고 참 좋은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김 상임고문이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씨를 용서한 일을 두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용서’라고 말하지만, 그에게도 인간적인 번민은 남아 있었다. 김 상임고문은 이근안씨를 용서하고도 “나의 용서가 진실이고, 이근안의 사죄가 진실인지는 하느님만 아실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최고위원은 “머리는 용서했지만 해마다 고문을 받은 시즌이 되면 몸서리치게 몸살을 앓고는 했다. 몸은 그 일을 기억하고, 마음은 그 일을 못 잊어 자신의 용서도 진실인지 반문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용어클릭] ●뇌정맥 혈전증 혈전(피떡)이 뇌정맥을 막아 뇌에서 나오는 혈액이 심장으로 가지 못하고 역류하는 증상이다. 혈관이 막혀 혈액이 흘러가지 못하기 때문에 각 조직에 빈혈 증상이 나타나고, 산소 및 영양공급 부족현상을 보인다. 뇌가 부어오르기도(뇌부종) 하고, 심하면 혈관이 터지기도(뇌출혈) 한다. 심한 두통과 함께 운동장애와 실어증, 감각장애 증상 등이 동반한다. 원인은 두부 외상이나 염증, 유전적 영향 등 다양하지만 10~20%는 원인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35) 그녀와 만난 남자는 모두 죽는다 마약에 눈먼 20대 명품녀의 엽기적 살인행각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문화마당] 남과 북, 축구로 화해하자/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남과 북, 축구로 화해하자/신동호 시인

    북방의 친구들이 분주해 보인다. 자신들의 지도자가 급서했으니 내심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으리라. 두만강을 쩡쩡 얼게 만든 바람이나 중강진 쪽으로 눈발을 실어가는 먹구름 같은 시절이다. 정부의 조의문처럼 나 또한 그동안 남북교류를 통해 인연을 맺은 북녘의 친구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남쪽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불편한 이웃이라지만 산맥으로, 강으로 이어진 혈족이니 어찌 그들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책회의와 분석이 계속되고 때로 근거 없는 예측이 난무하지만 그 또한 샴쌍둥이의 운명에서 비롯된 관심이리라. 빨라진 심장의 고동소리가 괴롭지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 순 없다. 그들이 죽고 우리가 살 수 없으며 그 어떤 발달된 의술로도 떼어낼 수 없는 게 국토다. 화해와 협력은 멈출 수 없으며 그들의 마음을 올바로 헤아리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북한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학과 예술의 나라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부르며 당을 배우고 수령을 흠모한다. 그들은 예술소조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문학통신원으로 시를 쓰면서 체제에 동화되어 간다. 우리는 좋은 작품을 감상하지만 그들은 직접 작품 창작에 참여하면서 체제에 더 깊숙이 관여한다. 그들의 선전선동 방법이다. 집단공연 ‘아리랑’에 10만명의 출연자가 등장하는 건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동원을 넘어 체제를 결속하는 고도의 예술적 효과다. 북한의 문학예술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1967년 그는 문학예술 부부장으로 조선노동당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972년 선전선동 부장이 된다. 한 해 전 혁명가극 ‘피바다’를 초연하면서 북한의 예술은 완전히 새로운 틀로 정착했다. 이미 1958년 5·8 종파투쟁을 통해 ‘김일성주의’의 등장을 예고하면서 무용가 최승희, 작가 한설야 등 구시대의 예술가들이 숙청되어 창작 일선에서 사라졌다. 남과 북의 문화가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시발점이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문화교류를 다른 영역보다 쉽게 여기지만 남북 간에 문화교류가 어려운 건 이런 까닭이다. 우리의 문화가 개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사고의 영역으로 발달할 때, 북한의 문화는 사상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언론과 학습의 영역으로 발달했다. 작가의 삶이 다르며 작품의 가치 척도가 다르니 이를 봉합하는 데 애를 먹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를 알림과 동시에 등장한 것이 축구여서 안심이다. 모든 사상과 이념을 푸른 잔디밭에 뭉뚱그리는 것이 축구 아닌가. 유럽의 축구는 전쟁을 대신할 정도로 치열하지만 반면 분쟁을 보듬는, 아름다운 기능을 한다. 우리의 축구라고 흡수통일론이나 주체사상이 담겼을 리 없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축구대회 본선에 진출한 북한은 대부분의 공을 김정은에게 돌리고 있다고 들었다. 1970년대 우리의 가난한 시절처럼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를 통해 인민을 위안하고 체제를 결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정은이 아직 젊고 불안하다지만 적어도 그가 문학예술을 내세운 아버지의 시대와 달리 스포츠를 앞세워 손을 내민다면 흔쾌히 잡아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축구를 이용해 선전선동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올 2월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도 중국 쿤밍에서 ‘인천평화컵 유소년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운동장에서 몸을 부딪치며 우정을 나눈 인천유나이티드의 소년들과 북한의 소년들이 평화를 만들어 가리란 기대가 충만한 대회였다. 지난달 카타르 도하에서는 ‘피스 앤드 스포츠 탁구컵’이 열려 남북단일팀이 깜짝 우승을 했다. 서울시도 ‘경평축구’를 추진한다는 소문이다. 따뜻한 봄날이 되면 북방 친구들의 슬픔이 잦아지리라. 평양 순안공항 양지바른 곳에서 여자축구 우승을 자랑하던 그들의 웃음소리도 듣고 싶다. 잔디가 파릇하게 올라올 무렵, 우리 정부가 먼저 축구 교류를 제안하는 건 과연 안 될 일일까.
  • 쓰나미 아픔 딛고 일어서는 스리랑카

    쓰나미 아픔 딛고 일어서는 스리랑카

    “갑자기 파도가 집 쪽으로 오는 걸 봤어요. 저는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어요. 계곡 나무다리에 올라갈 때 파도에 휩쓸려 버렸어요. 아빠가 물에 빠진 저를 잡아서 올려 줬고, 저는 옆에 있는 20m 높이의 야자나무를 꼭 붙잡고 매달렸어요. 하지만 다른 가족은 아빠의 손을 놓쳐서 다 죽었어요.”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 58분. 온 가족이 함께 절에 가려고 모여 있던 순간 밀려온 거대한 파도는 디란(당시 4세)의 엄마와 동생을 무참히 삼켜 버렸다. TV를 보던 어른도, 집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던 아이들도 휩쓸려 갔다. 마을 기차역도, 집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리히터 규모 9.1의 지진과 이후 발생한 강력한 쓰나미는 4만 5000여명의 생명을 앗아 갔다. 30일 밤 8시 50분 EBS의 ‘세계의 아이들-인도양의 눈물, 스리랑카’에서는 쓰나미가 강타한 이후 ‘동양의 진주’에서 ‘인도양의 눈물’로 변했던 스리랑카를 찾아간다. 카메라는 쓰나미 이후 달라진 삶을 살게 된 11세 동갑내기 두 아이의 모습을 통해 스리랑카의 오늘과 미래를 엿본다. 쓰나미로 엄마를 잃은 디란은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쓰나미 이전에는 공부만이 가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여겼던 아빠가 이제는 그물 손질법과 낚시법을 손수 가르쳐 준다. 쓰나미를 겪고 나서 가치관이 달라진 것. 이제는 새엄마도 생기고, 여동생도 태어났다. 디란에게도 다시 울타리가 생겼다. 쓰나미가 할퀴고 간 자리에 서서히 희망의 새살이 돋는다. 세계적으로 맛과 향이 좋기로 유명한 스리랑카 홍차의 이면에는 눈물로 찻잎을 따는 타밀족이 있다. 스리랑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타밀족이다.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되다. 차밭에서 일하는 쿠마르 부부가 온종일 찻잎을 따서 버는 돈은 2000원 정도. 막내아들 쿠마르만이 희망이다. 막내아들은 차밭 일을 하지 않길 바라는 부부는 그저 쿠마르가 열심히 공부하기만을 바란다. 쿠마르 역시 개구쟁이 같지만 해가 지면 고교생 누나가 공부방에서 가르쳐 주는 영어 공부에 밤 깊어 가는 줄 모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절대권력’ 아버지 마지막길 배웅 김정은 칼바람 맞고 서있는 인민들 생각했을까

    ‘절대권력’ 아버지 마지막길 배웅 김정은 칼바람 맞고 서있는 인민들 생각했을까

    눈이 펑펑 내리는 평양에서 28일 김정일 영결식이 거행됐다. 금수산기념궁전(생전에 김일성이 집무를 보던 곳으로 그의 1주기를 맞아 9억 달러를 들여 리모델링한 시신 보관소) 광장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눈에 띄는 그림은 운구차를 후계자 김정은과 당·정·군 최고위 간부들이 호위를 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다섯 차례나 참배한 김정은은 이날 침통한 표정으로 검은색 운구차량에 한 손을 올리고 광장을 걸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7년 전 김일성 사망 당시 시신이 안치될 궁전에서 운구차량을 맞았던 김정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국화 목란꽃으로 단장된 운구차는 주요 행사 때 그가 즐겨 타던 링컨 컨티넨털이었고 주변은 경호용 모터사이클 수십 대가 배치됐다. 김정일이 생존에 받던 경호 그대로였다. 뒤로는 장의위원들이 탄 100여 대의 벤츠승용차와 수십 대의 소형버스들이 따랐다. 궁전을 출발한 영구차를 수십여 대의 모터사이클과 지프차들이 엄호하며 시작된 장례행렬은 혁신거리, 전승광장, 천리마거리, 평양체육관 광장 등을 지나 충성의 다리와 통일거리를 거쳐 평양시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귀환했다. 김정은이 운구차를 호위한 모습과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라는 그림만 빼 놓으면 김일성 영결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필자가 평양에 있을 당시인 1994년 7월 19일 김일성 영결식에 동원되어 노동당에서 지시받은 행사장소인 통일거리 평양면옥(냉면전문점) 앞에 나갔던 상황을 상세히 전하면 이렇다. 19일 새벽 2시까지 본 행사장소로부터 300m 지점의 예비 집합장소에 나갔다. 오전 4시부터 이곳에서 안전원(경찰)들이 참가자의 얼굴과 신분증을 정확히 대조했다. 오전 5시부터 200m 지점을 통과하는데 이곳에서 보위원들이 휴대용 전자감식기로 참가자의 신체와 소지품을 깐깐히 검사했다. 오전 6시부터 100m 지점에서 전신용 보안검색대를 세워 놓고 양쪽에 호위총국(대통령경호실)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3시간 동안 초긴장 상태에서 보안검색을 마친 참가자들은 오전 7시부터 대기했다. 곳곳에 설치된 대형스피커에서는 각종 추모방송이 나왔다. 외국의 정상들과 국제기구, 단체들에서 보내 온 조전, 남조선의 양심 있는 지식인, 문화인, 종교인들이 보내 왔다는(실지는 모두 대남기관에서 조작하여 만든 것) 애도편지, 공화국 각 지역에서 올라온 인민들의 충성편지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전 10시부터 행사요원의 안내에 따라 30분 간격으로 연습이 진행됐다. “모두 집중하십시오. 연습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영구차가 들어섭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북한에서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불리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 울려 퍼졌다. 그러면 참가자들이 누구 할 것 없이 “어버이 수령님!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김정일 장군님이 계십니다.” 등 온갖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것이었다. 이어서 ‘김정일 동지의 노래’를 열창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아버지 김일성을 잃은 슬픔을 아들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꿔 변함없는 자식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인민들의 충성의 맹세이다. 낮 12시쯤, 필자의 20m 앞으로 운구행렬이 지나간 시간은 단 5분도 안 되었다. 그 순간을 위해 꼬박 10시간을 긴장했으니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의아한 것은 왜 진행요원이 “진짜로 행사 시작입니다.”라는 말을 안 했을까인데 그것은 김정일 경호수칙으로 절대 비밀이다. 북한에서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불리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환영하는 어떤 행사도 대부분 연습 중에 거행되었다. 평생을 인민의 축복 속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려온 김정일이 갔다. 절대 권력자였지만 그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신이 부르면 주저 없이 가는 존재였다. 그의 아들 김정은이 아버지의 운구차에 손을 얹고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으나 사나 그 제도를 끝까지 핵으로 지켜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했을까? 아니면 눈이 펑펑 오는 날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뛰쳐 나와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한 고맙고 순진한 인민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까? 그 불쌍한 인민들의 굶주림과 가난을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멋진 생각을 했으면 좋으련만. ‘소설 김정일’ 저자
  • [열린세상] 문화는 복지다/박양우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문화는 복지다/박양우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올해는 무상급식을 비롯하여 복지논쟁이 어느 해보다 치열한 한 해였다.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어떻게 실시할 것이냐를 놓고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를 제안했다가 사퇴하고 보궐선거까지 치르는 홍역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정치권에서 복지가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문화가 위축되는 현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문화는 배부른 사람, 가진 사람들의 사치품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문화는 인간의 창의력을 부추기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삶의 필수 자양분이다. 복지를 사전적으로 정의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물질적·문화적 조건을 충족한 상태 정도가 무방할 것 같다. 그런데 정책담당자, 특히 정치권에서는 복지를 으레 사회복지로 국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 보니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공적 부조(扶助)를 포함해 소외계층에 대한 금전 급부와 서비스라는 인상이 아직까지도 짙게 남아 있다. 최근 보편적 복지 논쟁이 가열되면서 복지의 대상이 국민 전반으로 확대된 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직도 집행 수단은 기존의 사회보장·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맴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상당수의 문화활동이나 사업들은 복지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나아가 소모적이고 전시적이며 부유층 일부를 위한 사업 정도로 폄하될 수도 있다. 이미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노들섬에 추진 중이던 한강예술섬 사업은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사업비가 적잖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민자 유치 등 다양한 재원 조달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다.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야 어떻든 간에 문화를 비복지로 정의한 전형적 정책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규모 문화사업은 혹 그렇다고 해도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 지원 사업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지도 않다. 이렇게 문화는 과거에는 경제라는 괴물에 차이더니 최근에는 복지라는 꽃마차에 차인다. 그러나 문화와 복지는 대립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인 관계다. 아니 상생관계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흔히 문화정책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국민의 문화 창조력을 함양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이 문화를 골고루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셋째는 문화예술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모두 복지와 연계되어 있다.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문화정책은 문화를 통한 복지정책, 곧 문화복지정책과 다름없다. 무상급식을 비롯해 가난한 이웃에게 구호적인 복지를 베푸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빵만으론 살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문화적 자양분을 공급받아 창의력을 키우고 감수성을 배양하는 일은 빵 못지않게 중요하다. 소외된 미취학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상 음악교육을 제공하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성공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성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해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이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동작구와 함께 소외된 지역주민을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주민들이 직접 공연무대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책임교수로서 그들이 자신감과 삶의 의욕을 찾았노라고 감동적으로 얘기한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할 권리인 이른바 문화권은 인간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국가는 문화를 진흥하고 국민에게 문화를 골고루 공급해야 할 의무, 곧 문화복지를 추진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문화복지는 단순히 국가의 의무 차원 문제가 아니다. 문화복지를 통한 문화적 상상력과 창조력의 제고는 문화산업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을 배가시켜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원동력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분열과 갈등을 치유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에도 수월찮게 기여할 수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또다시 복지 논쟁으로 날을 지새울 것이다. 이제는 무상급식 수준을 넘어 한 차원 높은 생산적 복지로 눈을 돌리면 좋겠다. 문화야말로 진정한 복지다.
  • 콜롬비아 달동네에 ‘옥외 에스컬레이터’ 설치 화제

    콜롬비아 달동네에 ‘옥외 에스컬레이터’ 설치 화제

    콜롬비아 메데인 시의 한 달동네에 거주자 전용 옥외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화제에 올랐다.메데인 13구의 이 달동네는 대략 1만 2000명의 빈곤층이 모여 사는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빈민촌이다. 이 거주지의 가장 큰 고통은 너무나 높은 곳에 있는 달동네라는 것. 거주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무려 28층 빌딩을 올라가는 수준의 걸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몇 세대에 걸쳐 고통을 겪은 이 달동네의 꿈이 최근 실현됐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대 규모의 에스컬레이터가 운행을 시작한 것. 이 에스컬레이터는 6개로 분할돼 있으며 총 384m의 길이로 기존 35분을 ‘등산’해야 올라갈 수 있는 거주지가 단 6분으로 단축됐다.    알론소 살라자르 메데인 시장은 “가난한 지역의 거주자용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옥외 에스컬레이터” 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악천후에 대비해 지붕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에스컬레이터가 운영을 시작하자 현지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주민들은 “수세대에 걸친 꿈이 이루어졌다. 우리 삶에 변화를 줄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세수부족 때문에… 도박도 OK

    미국 법무부가 오랫동안 견지해 오던 온라인 도박 반대입장을 뒤집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동안 온라인 도박 합법화를 주장하던 일부 주정부들로서는 중요한 장애물이 없어진 셈이다. 전신을 이용해 국경이나 주 경계를 넘어 도박을 하는 것을 금지한 연방 통신법은 주 경계 안에서 인터넷으로 성인들에게 복권을 판매하는 것도 불허해 왔다. 이에 대해 뉴욕과 일리노이주가 법무부에 유권해석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법무부가 사실상 온라인 도박을 허용하는 길을 터준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부채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내건 아우성 앞에서는 법무부도 더 버티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세금인상이 정치적인 난관에 부딪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결국 복권판매 수익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꼼수로 선택한 셈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많은 주정부가 온라인 도박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조세수입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유권해석이 나오자마자 뉴욕주는 2005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복권사업에 잭팟게임 두 종류를 추가하기로 했다. 일리노이주는 내년 초 온라인 로또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마이클 존스 일리노이 로또사업 감독관도 “이제는 신용카드로 로또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며 세입이 늘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워싱턴DC와 네바다주도 제한된 형태이긴 하지만 온라인 도박을 허용했다. 문제는 정부가 로또나 도박 등 사행산업을 장려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복지확대나 교육예산 확충이지만 정작 그 재원은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에게서 거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복권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데이비드 니버트 미국 위튼버그대 사회학과 교수는 손쉽게 세수를 충당할 목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꿈에 고통 없는 세금을 부과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2012년 지구촌 뒤흔들 3대 사건] (1)아랍의 봄

    [2012년 지구촌 뒤흔들 3대 사건] (1)아랍의 봄

    또다시 격동의 한 해가 간다. 하지만 ‘송구영신’은 인간의 계산법일 뿐, 격동은 멈추지 않고 사건은 인과(因果)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2011년 지구촌을 들썩인 3대 사건으로 아랍의 봄, 유럽 재정위기, 월가 시위를 꼽았다. 2012년 한 해에 이 사건들은 지구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2012년을 전망하고 지나온 흔적을 되짚어 봤다. ‘아랍의 두 번째 봄바람이 군주제 국가와 사하라 이남에도 불어닥칠까.’ 2011년 예보 없는 태풍이었던 ‘아랍의 봄’(북아프리카·중동의 연쇄적 반정부시위)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채 ‘1막’을 내렸다. 서막의 희생자 대부분은 이집트와 리비아, 예멘 등 세습을 시도했던 공화정 국가의 독재자였다. 현재진행형인 이 지역 민주화 시위는 2012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다음 퇴출의 타깃은 군주제를 표방한 중동국 지도자들이 될 공산이 크다. 아랍 각국은 격변과 혼란을 감내하며 숨가쁜 1년을 버텨냈다. 혁명의 발원지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였다. 정부의 부당한 단속에 항의하며 몸에 불을 붙였던 젊은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당시 26세)가 지난 1월 4일 숨지자 분노의 불씨는 독재와 가난에 지친 튀니지 민중의 가슴에 옮겨붙었다. 반(反)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됐고 결국,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같은 달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23년 철권통치는 민중의 분노 앞에 무너졌다. 반정부 시위의 동력은 생활고와 독재, 지도층의 부패에 대한 염증이었다. 10% 가까운 실업률에 시달리던 이집트인들은 이웃 나라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이 성공하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다음 차례”라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30년간 비상계엄령에 의지해 권좌를 지켰던 무바라크는 군대를 앞세워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발생 18일 만인 지난 2월 11일 끝내 하야했다. ‘아랍의 봄’은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정권이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총칼로 답하면서 시위는 내전으로 비화했다. 리비아 사태는 지난 10월 20일 서방의 지원 속에 기세를 탄 시민군에게 카다피가 붙잡힌 뒤 숨지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예멘을 33년간 장기 집권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면책을 조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약속했다. 미완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아랍 국민들의 투쟁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시리아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부자세습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그는 국내외적 퇴진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붙들고 있으나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분석했다. 국민 다수를 이루는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가 아사드의 시아파 정권에 등을 돌렸고, 야권 세력이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구성하는 등 반정부 시위가 조직화되고 있다. 올해 민주화시위를 가까스로 막았던 중동 군주제 국가들에 다시 한번 혁명의 바람이 불어닥칠지도 관심사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26일 “시민혁명이나 내전이 아닌 중재를 통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예멘식 모델이 다른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절대왕정과 독재자들의 ‘낙원’으로 여겨졌던 아프리카 중·남부 국가들로 민주화시위가 확산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아랍의 봄을 지켜보며 중동·아프리카 국민들이 권위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의식을 키운 만큼 민주화 혁명의 불길이 사하라 이남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또 이집트, 리비아 등 혁명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파열음을 내온 국가들이 내년에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김동찬 성동구청 제설팀장 등 지방행정 달인 22명 최종확정

    김동찬 성동구청 제설팀장 등 지방행정 달인 22명 최종확정

    눈이 푹푹 쌓이는 밤 가난한 시인 백석은 아름다운 나타샤를 떠올리며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셨다(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폭설이 쏟아진 날이면 하루종일 차는 엉금엉금 기어다니다 접촉사고가 나고, 빙판을 걷던 노인네는 미끄러져 크게 다치기 일쑤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흔히 쓰는 대책은? 염화칼슘 뿌리기다. 염화칼슘은 빠른 제설효과만큼이나 부식시키는 성질도 강하다. 차량 부식을 가속화하고, 도로와 다리 등의 콘크리트를 약화시켜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토양을 알칼리화해 가로수를 고사시킨다. 특히 염화칼슘 대 소금의 비율을 5대5로 정했지만 마구잡이식으로 뿌려 대다 보니 효율적이지도 않고, 환경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흐르면 굳어버리는 성질의 염화칼슘을 과소비하는 것도 문제다. ●제설효과 3배… 해외 특허신청 서울시 성동구청은 달랐다. 김동찬(57) 토목과 제설현장팀장 덕분이다. 1978년 공무원이 된 뒤 제설 팀에서만 꼬박 19년 동안 일한 기계6급 기능직인 김 팀장은 ‘어떻게 하면 토양 오염과 도로 파손을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눈을 치울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미친 사람처럼’ 새벽에 먼저 나와, 또 한밤중까지 남아서 기술 개발과 연구에 몰두했다. 변변히 공부한 것도 아니었다. 중학교만 나와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카센터에서 일한 게 전부였다. 결국 2006년 다목적 제설차량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실용신안 특허를 냈다. 이후 특허권을 통해 나오는 수입은 모두 성동구청으로 넘겼다. 현재 미국, 중국, 유럽연합, 캐나다 등에 특허신청을 출원 중이다. 서울 용산구, 대구, 김포공항 등에서 제설차량 이용 상담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26일 “며칠 전 눈이 왔을 때도 확인됐지만, 우리는 어느 지자체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눈을 치울 수 있었다.”고 자랑스레 밝혔다. ●내년 1월31일 시상식 서울신문과 행정안전부가 공동주관하는 ‘2011 지방행정의 달인’ 심사에서 김 팀장을 비롯해 이형수 강원도 영월군 도시관광과장과 이명옥 부산 해운대구 기획감사실 주무관 등 22명이 최종 선발됐다. 내년 1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2회 달인 시상식 및 사례 발표대회가 열린다. 최우수 달인 1명에게는 대통령 표창이, 우수 달인 2명에게는 국무총리 표창, 달인 18명에게는 장관 표창이 수여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K팝 공연장/임태순 논설위원

    고교 시절 시를 배우면서 한국인에게 면면히 흐르는 정서는 ‘한’(恨)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는 시험에도 자주 출제됐으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연을 설명하며 감상에 젖던 선생님의 열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소월은 그 시절 단연코 가장 좋아하는 ‘국민시인’이었다. 한국 현대사가 구한말 외세의 침입,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가난과 분단으로 얼룩졌으니 한국인에게 한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서 시는 물론 대중가요도 슬픔과 비탄에 잠긴 애조 띤 노래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의 정서에서 한은 실종돼 자취를 감췄다. 무역규모가 1조 달러가 넘고 올림픽과 월드컵 등 지구촌 이벤트를 치른 덕분인지 한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대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흥’(興)으로 대체됐다. 그 중심에는 K팝이 자리하고 있다. K팝은 가볍고 쉬운 가사에 경쾌하고 발랄한 리듬, 여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꽉 짜여 돌아가는 댄스로 지구촌 젊은이들을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을 넘어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은 물론 브라질 등 멀리 남미까지 번지고 있으니 가히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에게도 ‘쾌지나 칭칭나네’ ‘강강술래’로 대변되는 신명나는 민요와 신바람이 있었던 만큼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흥의 유전인자가 뒤늦게 발현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K팝 열풍을 잇기 위해 7000석 규모의 K팝 전용공연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연장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와 연구용역을 실시하기 위해 5억여원의 예산을 올렸으나 국회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에 계류돼 있어 관계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화상품의 경제적 유인효과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영국 애든버러 축제만 해도 축제를 보기 위해서만 250만명의 관광객이 몰릴 정도다. K팝의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볼 때 K팝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문화를 들먹이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막상 예산 배정단계만 들어서면 지역구사업이다 하면서 도로나 다리 등 건설사업에는 후하고 문화 인프라 구축에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모래 속에서 진주를 캐내는 것도 국회의원이 할 일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열린세상] 사회적 정의와 줄탁동시/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사회적 정의와 줄탁동시/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정의(正義)란 의(義)를 바르게 한다는 말이다. 개인의 의로움은 마음에 의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자기의 능력을 역할에 맞게 마땅히 지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존재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과 유사하다. 정의는 항상 모두를 아우르고 베풀며 올바르기 때문에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정의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와 함께하면서 보다 나은 삶이 무엇인지를 구현해 보라는 화두이기도 하다. 사회적 정의란 끊임없이 진화하는 사회를 효율적으로 구성·유지시킬 수 있는 올바른 원리가 무엇이며 시대 상황에 맞춰 어떻게 도출할 것인가 하는 개념이다.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때 사회 전체에서 지켜야 할 덕목을 말한다.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 등 분별력과 연계되어 있다. 분별은 때와 장소,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지만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기준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안배하는 것이다. 사회적 정의가 당위성을 갖고 추진동력을 얻는 근원적 이유가 바로 배려와 보살핌의 분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정의는 각자의 능력과 역할에 맞게 균형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고 서로를 이롭게 하여 만족스러운 결과가 도출될 때 모두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힘을 갖게 된다. 사람은 지구상에서 수천년 동안 진화하면서 가장 강인한 영장류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진화는 막대한 물질의 혁명을 통해 일견 윤택한 삶을 제공해 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의 편재를 초래했고 소수의 경제적 독점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노출시켜 사회적 갈등만 심화시켜 왔다. 사람의 마음도 동시에 진화했다고 보면 정신적 도덕혁명은 별로 이루어진 것이 없으니, 세상이 시끄럽고 어수선한 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중요한 것은 사회적 정의가 작동되지 않고 있어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우리가 서 있다는 점이다. 줄탁동시(?啄同時)란 벽암록 16칙에 나오는 말로 깨달음으로 나가고자 하지만 어리석음의 껍질을 혼자만의 힘으로 깨기 어려우니 큰스님께서 쪼아서 깨트려 주십사 하는 제자의 간청이다. 본래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될 때가 되면 새끼는 알의 안쪽을 쪼지만 워낙 힘이 약해서 반드시 어미가 지껄이면서 동시에 알 밖의 같은 곳을 쪼아야 껍질이 깨져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의 이치는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이 역할에 맞게 힘을 보탤 때 조화를 이루며 한 껍질씩 변화가 모색되고 각자의 몫이 완성된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정의도 줄탁동시로 풀어야 할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요즈음 우리는 어느 때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훨씬 다양하게 많이 갖고 있지만 행복한가에 대하여 물으면 대부분 부정한다. 전쟁이 남긴 잿더미 속에서 가장 시급했던 것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외자를 끌어들여 기업에 특혜를 주면서까지 산업을 일으켜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데 성공하여 굶는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박정희식의 경제개발은 60여년 동안 공룡이라는 거대한 재벌을 탄생시켰고 치유하기 어려울 만큼 소수가 국가의 부를 독식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세습되는 기업제국, 즉 이단아를 낳게 만들었다. 시대적 아픔에서 만들어진, 분배를 무시한 정의가 오늘날 도전에 직면한 것은 당연하다. 과거 방식으로는 행복할 수 없으며 도저히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대한 저항의 물결이 지금까지의 사회적 정의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능력에 따라 역할이 부여되고 그 결과에 걸맞은 보상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정의이고 이것이 하늘의 뜻일 것이다. 이렇게 변화되어야 한다. 하늘은 항상 세상의 모든 것을 이롭게 아우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다시 정의가 숨쉬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우습게 보고 해치는 일이 없어야 하고, 가진 자는 가난한 자의 몫에 나누어 보태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사회적 정의는 모두가 합심하여 만들어 나가는 공동의 선이요, 희망의 동력임을 알아야 한다.
  • [CEO 칼럼] 어딜 가든 바로미터가 되자/박승복 샘표식품 회장

    [CEO 칼럼] 어딜 가든 바로미터가 되자/박승복 샘표식품 회장

    예나 지금이나 국무총리는 그 시대 최고의 행정가들이 앉는 자리이다. 나는 10년 동안 정일권 총리, 백두진 총리, 김종필 총리 등 총 세 분을 보좌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이들은 모두 ‘행정의 달인’이라고 칭송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김종필 총리는 빠른 결단으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출중한 능력 덕에 김 총리가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무와 국방 외에 나머지 부처의 업무가 총리실로 이관됐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 총리실에 국정을 총괄하는 새로운 부서인 행정조정실이 만들어졌고 이 부서의 총괄 책임을 필자가 맡게 됐다. 행정조정실장은 장관급에 준하는 지위로, 중앙행정기관 및 서울특별시에 대한 행정의 지휘와 조정·감독에 관해 국무총리를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총리의 지시를 받는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총리와 권한이 거의 같아 적잖이 놀라 이의를 제기했다. “차관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권한이 많을수록 직급은 낮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저야 그럴리 없겠지만 이후 누군가가 총리 권위에 도전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필자는 정무비서관에서 차관급에 준하는 행정조정실장으로 승격됐고 1973년 2월 1일 자로 행정조정실이 발족했다. 초반 행정조정실원들의 열정은 대단했고,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든든한 지지를 업고 있어서 사기 또한 매우 높았다. 당연히 많은 업무가 이곳으로 집중됐다. 서른 명 남짓한 실원들은 1년 중 정월 초하루를 제외한 364일 밤 10시까지 ‘근무중’이었다. 오죽하면 경비실에서 서울에서 불이 가장 일찍 켜지고 늦게 꺼지는 곳이 행정조정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우리는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일도 열정의 힘으로 해내고야 말았다. 당시 기억 나는 일이 광복 30주년 기념으로 발행한 ‘금일(今日)의 한국’이라는 화보이다. 이 화보집은 행정조정실 주도 하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홍보 책자로, 1961년부터 1975년까지 14년간 한국의 발전상을 담은 것이었다. 화보를 내기로 맘먹은 것은 일본 교포 사회를 방문했을 때다. 들르는 곳마다 북한에서 내놓은 월간지만 보였다. 당시 우리 정부가 가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책자를 만들려고 하니 예산이 걸림돌이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들이지 않을까 궁리하던 필자는 인쇄소를 운영하는 친구를 떠올렸다. 그에게 먼저 정부에서 지급하는 비용이 없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책을 의뢰했다. 물론 국영기업체와 은행권으로부터 광고를 받아 인쇄비를 충당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또한 책 어디에도 정부에서 만든 흔적을 담지 말아달라고 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그리 크지 않았던 때라 책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 우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책자가 완성돼 샘플이 도착한 날 마침 박 대통령이 총리실을 방문했다. 책을 본 박 대통령은 무척 기뻐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거 다른 나라 말로도 좀 만들면 좋겠는데 어떻게 안 되겠나?” 수완을 다시 한번 발휘해 부랴부랴 영어, 불어, 스페인어, 아랍어로도 책을 떡하니 찍어냈다. 해외에 소개된 최초의 우리나라 홍보 책자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단 한 푼의 예산도 없이 홍보 책자를 완성하자 행정조정실은 부처 사이에서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행정조정실처럼만 일해라’라는 말이 돌면서 다른 부서의 시샘을 받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니 어떤 조직에서 척도가 되는 일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일했다는 자부심은 살아가는 데 두고두고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새로운 힘이 솟는 걸 보면 ‘열정의 유효기간’은 없는 듯하다.
  • [열린세상] 아웃사이더가 이끈 세상에 대하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웃사이더가 이끈 세상에 대하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아웃사이더, 하면 반항적인 10대의 모습을 그린 힌턴(Susan E. Hinton)의 소설을 흔히 떠올린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아웃사이더란 제목의 평론집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 있다. 당시 24세의 콜린 윌슨이다. 소설 아웃사이더는 1967년에 나와 1983년 영화로 제작되어 세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윌슨의 아웃사이더는 19 56년에 나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을 감동시켰다. 이 책으로 청년 윌슨은 세계적 명사의 반열에 올랐다. 윌슨은 영국 레스터 지방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공업학교를 다닌 것 외에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졸업 후 16세 소년 윌슨은 공장을 전전하며 노숙을 일삼았다. 그러면서도 책읽기에 열광했다. 런던 대영박물관이 그의 독서공간이었다. 카뮈, 카프카, 샤르트르, 도스토옙스키 등 최고 문인과 철학자의 작품을 섭렵한 끝에 아웃사이더를 내놓았다. 배움이 짧은 애송이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에 세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윌슨은 이 작품에서 존재가치조차 없는 하잘것없는 사람에게서 가치를 찾으려 했다.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그 누구보다도 바르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인사이더는 제도권 내 사람이고, 아웃사이더는 제도권 밖의 사람이다. 인사이더는 힘이 있고, 아웃사이더는 힘이 없다. 그래서 인사이더는 이끌고, 아웃사이더는 따른다. 이것이 보통 사회인데, 윌슨은 다른 시각에서 아웃사이더를 바라보았다. 윌슨의 눈은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역할이 역전되기도 한다는 현실에 꽂혔다. 인사이더가 스스로의 역할을 하지 못해 아웃사이더가 나설 때 그렇다. 이 상황이 오면 아웃사이더가 사회를 이끌고 인사이더는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한다. 어느 순간 아웃사이더는 윌슨이 활동했던 영국의 문인클럽, ‘분노의 젊은 사람들’(Angry Young Men)처럼 세상을 향해 진실을 토해내고, 부조리를 고발하며, 행동에 나선다. 2011년 지구상에 행동하는 아웃사이더가 출몰했다. 이들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아랍의 봄(Arab Spring) 시위를 이끌었다. 그 시위는 튀니지에 이어 알제리, 수단, 요르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튀니지와 이집트 독재자가 축출되었고, 리비아에서는 내전 끝에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를 선정할 만큼 아웃사이더의 역할은 컸다. 아랍의 봄 시위자들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아웃사이더의 역할은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이끌었다. 제1야당임에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해 불임정당이라 조롱받던 민주당으로 하여금 야권 통합을 이끌도록 동력을 제공했다. 한나라당에는 당대표가 물러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새로운 인물 안철수를 내세웠다. 재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반값 등록금 시위에서 보듯 가진 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사회 인사이더는 정치를 주름잡았고, 경제를 주물렀다. 엄청난 돈을 만지며 승자의 축배를 들었다. 정치적으로 인사이더는 리더였고, 아웃사이더는 추종자였다. 경제적으로 인사이더는 가진 자였고, 아웃사이더는 머슴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사이더는 위너(winner)였고, 아웃사이더는 루저(loser)였다. 그러나 인사이더는 힘을 이기적으로 썼을 뿐 사회를 위해 활용하지 못했다. 돈으로 그들만의 아성을 쌓았을 뿐 나누기에 인색했다. 위너였음에도 루저를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천하를 손에 쥔 대통령은 인재 활용에서 내 편으로 도배질을 했고, 여의도 정치권은 잘난 사람의 영입에 소극적이었다. 재벌은 3대 세습에 열을 올렸다. 24세 청년 윌슨은 아웃사이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병에 걸린 것을 깨닫지 못하는 문명사회에서 자기가 환자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 아웃사이더라고 말이다. 2012년, 인사이더도 환자임을 자각하고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동참하는 행동을 보이면 참 좋겠다.
  • [주말 하이라이트]

    ●독립영화관 바보야(KBS1 토요일 밤 11시 35분) 바보 추기경 김수환, 영원한 사랑으로 기억될 그를 다시 만난다.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까지 기적 같은 사랑을 실천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 그는 한국사의 격동기 시절 종교를 넘어 사회의 가장 큰 어른, 약자들의 울타리, 마지막 대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바보야’에서는 김수환의 뜨거운 사랑이 다시 브라운관에 되살아난다. ●오작교 형제들(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태범은 수영이 자신을 사랑했다는 얘기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결혼을 유지하고 싶다며, 앞으로 노력해서 더는 상처받는 일 없도록 하겠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수영의 뜻은 확고하기만 하다. 한편 태희는 병원에 입원한 제하 옆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있게 되고, 제하는 그런 태희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얘기를 털어 놓는다. ●시추에이션 휴먼다큐 그날(MBC 토요일 오전 8시 45분)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톱 3에서 아쉽게 탈락했던 셰인. 그가 위탄 출신 중 최초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를 한다. 이제부터 셰인은 오디션 참가자가 아닌 가수로서 무대에 서야 한다. 캐나다에서 온 스무 살 셰인의 한국 가수 데뷔하는 그날을 공개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소원(OBS 토·일요일 밤 9시 15분) ‘바다 위의 숲’이라 불리는 맹그로브 숲에서 가난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블랑카와 루이스 남매.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 남동부에 위치한 우술루탄주의 작은 어촌마을 ‘이슬라 데 멘데스’에 살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전해 주기 위해 정동근·이재윤 마술사가 따라 나선다. ●TV 50년 전국 노래자랑 2011 연말결선(KBS1 일요일 낮 12시 10분) 국민 MC송해와 KBS 아나운서 박은영의 진행으로 치러지는 ‘전국노래자랑 2011 연말결선’. 이번 연말결선은 뛰어난 노래실력을 자랑한 출연자들 외에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유치원생의 화려한 춤 실력부터 83세 할아버지가 보여준 열창의 무대까지.풍성한 무대를 함께한다. ●창사50주년 기념 사랑콘서트-이미자와 친구들(MBC 일요일 밤 11시) 신동호 아나운서와 가수 박정아의 진행으로 시작되는 ‘이미자와 친구들’. 지구촌 가족에게 사랑과 나눔을 전하기 위해 50주년 특별기획 ‘코이카의 꿈’을 마무리하는 기념 공연이다. 코이카 봉사단의 노고를 되새기고 격려하는 무대가 펼쳐진다.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SBS 일요일 오후 6시 40분) ‘서바이벌 오디션 K팝 스타’는 매력적인 무대와 치열한 경합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그런가 하면 회를 거듭할수록 빅3 심사위원들의 차별점이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중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과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이 프로듀서로서 확연히 다른 선발 기준을 드러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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