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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재벌개혁 용두사미, 되풀이 말아야”

    “정부 재벌개혁 용두사미, 되풀이 말아야”

    “대통령이 곧 중대발표를 한다는데요, 아마 금융실명제 관련인 것 같습니다. 지금 빨리 스튜디오로 나와 주세요.” 1993년 8월 12일 저녁 조교들과 식사를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온 고려대 경영학과 이필상 교수에게 방송국에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예상대로 김영삼 대통령은 그날 오후 8시 TV에 나와 금융실명제 실시 긴급명령을 공표했다. 이 교수는 대통령의 발표 직후 TV에 나와 금융실명제란 무엇이고 앞으로 일상에 어떤 변화가 올지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책연구위원장이었고, 금융실명제는 그가 10년 이상 정권과 기업의 반대를 무릅쓰고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경제정의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 진보 시민운동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이 교수가 새 학기부터 서울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다. 올해 66세인 그는 지난달 28일 고려대에서 정년퇴직하고 명예교수가 됐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대학(서울대 금속공학과)을 졸업할 때쯤 되니까 집(경기 화성)에 땅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어요. 가난한 농군이었던 아버님께서 땅을 팔아 저를 가르치셨던 거죠. 천신만고 끝에 미국 유학(뉴욕 컬럼비아대)까지 마쳤는데, 가족의 희생을 바탕으로 공부했으니 정말로 소신껏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제가 사회 참여에 관심을 갖게 된 근본적인 동기였지요.” 그는 1982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곧바로 정경유착과 재벌 경제력 집중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교수 부임 직후 한 경제단체의 강연회에 강사로 나서게 됐어요. 대기업 행태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행사가 끝나고 저를 섭외했던 직원이 엄청난 질책을 받았다더군요. 그 이후 지금까지 저를 연사로 초빙하는 기업들은 없었지요.” “개혁을 하려면 특정 이슈를 공론화해 이를 여론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여론이 커지면 사회적 동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입법도 쉬워집니다. 국민에게 알리고 도움을 얻고 힘을 결집시켜 국민의 힘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와 역량입니다.” 그는 “선거 전에는 대선 후보들마다 재벌개혁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면 일자리와 투자를 대기업에 부탁하고, 그로 인해 개혁이 흐지부지되는 용두사미의 악순환이 되풀이돼 왔다”면서 “그간의 과정을 볼 때 박근혜 정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균 기자 windsea@seoul.co.kr
  • 출마선언 하루만에… 野, 安에 맹공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오는 4월 24일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키로 한 것과 관련해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이 야당 세(勢)가 강한 노원병 대신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 영도에서 출마하라고 압박했다. 노원병 출신인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4일 라디오에 잇따라 출연,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 나가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집안에 있는 식구들 음식을 나눠먹느냐”며 안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 의사를 비판했다. 설훈 민주당 비상대책위원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노원병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성급했다”며 부산 영도 출마를 촉구했다. 노원병의 이동섭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속히 노원병 지역구의 보궐선거 후보자를 공천하라”고 주장했다. 안 전 교수와 야권 단일화 의사가 없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안 전 교수가 영도가 아닌 노원병을 택한 데에는 ‘야권 후보 단일화 트라우마’가 작용했다는 주장이 안 전 교수 측에서 나왔다.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 측에서는 안 전 교수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이유로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를 꼽은 바 있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안 전 교수가 다시 친노 진영의 본거지인 부산에 출마하면 친노세력과 어떻게든 힘을 합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통합당과 ‘제2의 야권단일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날 “부산은 문재인 의원의 영역 아니냐”면서 “안 전 교수가 부산 영도에 출마하면 부산에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문 의원 라인과 합쳐야 한다. 친노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책임론 등을 둘러싼 계파 갈등을 깨끗이 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안 전 교수가 친노 세력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부산은 안 전 교수의 고향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안 전 교수 측은 서울 노원병은 ‘기득권과의 싸움, 정의 회복’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잡을 수 있는 선거구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사설] 쉬운 정치 택한 안철수씨 서울 노원병 출마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4·24 재·보궐 선거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당초 10월 재·보선에 출마한 뒤 내년 6월 지방선거 참여를 목표로 신당을 만들 것으로 본 정가의 예상을 깬 발 빠른 행보다. 그의 ‘조기 등판’ 결심은 무엇보다 새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누빌 정치적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대선이 끝난 지 석 달이 다 되어 가건만 여전히 계파 대립의 늪에서 허덕이며 쇄신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을 보면서 ‘안철수당’의 향배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을 법하다. 안 전 교수가 어떤 정치적 행보를 취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18대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의 한 축으로서 대선 패배의 책임을 나눠 져야 할 그가 석 달도 안 돼 정치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온당한가, 대선 개표상황도 지켜보지 않고 출국한 처사가 올바른가 등에 대해 시시비비의 여지가 있으나 이는 관점의 문제로, 그의 재·보선 출마를 구속할 사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굳이 다른 지역구를 제쳐 두고 서울 노원병에 출사표를 던지기로 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은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가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한 혐의로 국회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아 재·보선이 치러지게 된 곳이다. 현행법상 법원의 판단이 불가피했다지만 정치적으로 과연 노 대표의 의원직 상실이 사회의 보편적 정의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란을 남겨 놓은 곳이다. 야권 단일 후보가 될 수도 있었을 인사라면, 나아가 여전히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책임 있는 역할을 해나갈 인사라면 최소한 이런 정치적 함의는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야당세가 강한 지역이라 당선이 수월할 것으로 판단한 결과라면, 이는 기회주의적 행태일 뿐이다. 노 대표로부터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 나가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왜 집 안에 있는 식구들 음식을 나눠 먹으려 하느냐”는 힐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 나라 정치는 물론 안 전 교수 자신을 위해서도 옳지 않다. 기왕 정치를 하겠다면 좀 큰 정치를 하기 바란다.
  • “가난한 사람에게 5억 나눠줬다” 현대판 로빈후드?

    “가난한 사람에게 5억 나눠줬다” 현대판 로빈후드?

    거액의 현찰을 훔친 도둑이 현대판 로빈후드를 자처하고 나섰다. 피해를 본 회사 측은 그러나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술책”이라면서 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남미 파라과이에서 현금수송차를 운전하던 기사 카를로스 곤살레스는 최근 마음먹고 사건을 벌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현찰 16억원 정도를 수송하다 무장 경비원들이 잠깐 내린 틈을 타 현금수송차를 타고 도망을 쳐버렸다. 믿었던 기사가 도둑으로 변신, 현금을 갖고 사라지자 현금수송업체는 발칵 뒤집혔다. 당장 사건을 신고하고 도망간 기사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경찰은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시동이 걸린 채 버려져 있는 현금수송차를 발견했다. 차량 안에는 11억 정도의 현찰이 남아 있었다. 5억 정도의 돈이 모자랐다. 차량에 돈이 남아 있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겼던 경찰은 사건 발생 이틀 뒤 또 한번 놀랐다. 좀처럼 찾기 힘들 것으로 보였던 문제의 기사가 스스로 경찰서에 들어선 것이다. 당당하게 수도 아순시온 근교의 한 경찰서를 찾아간 그는 신분을 밝히고 “자수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의 기사는 이미 빈털털이(?) 신세였다. 그가 갖고 있는 현찰은 20만원 정도였다. 기사는 경찰조사에서 “택시를 타고 이파네, 카피아타, 산로렌소 등의 지역을 돌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줬다.”고 밝혔다. 경찰은 기사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 중이다. 한편 피해를 입은 현금수송업체는 “기사가 가져간 돈은 정확히 4억7000만원에 이른다.”면서 “문제의 기사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에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중국판 정여사?…가짜 ‘임신 배’ 하고 지하철 탄 女 논란

    중국판 정여사?…가짜 ‘임신 배’ 하고 지하철 탄 女 논란

    지하철을 편하게 타고 싶었던 한 여성의 ‘꼼수’가 된서리를 맞았다. 최근 중국 베이징시에 사는 한 여성이 현지 공상국(工商局)을 찾아 민원을 제기했다. 장씨로만 알려진 이 여성이 화가난 것은 인터넷에서 구매한 가짜 임신 배 때문. 여성은 얼마전 한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를 통해 눈길을 사로잡는 물건을 발견했다. 바로 이번에 문제가 된 가짜 임신 배. 평소 만원 지하철로 고통을 받아온 장씨는 승객들의 자리 양보와 노약자석에 앉기 위해 이 가짜 임신 배를 구매했다. 그러나 장씨는 실제 이 임신 배를 착용하고 지하철을 탔으나 사람과 부딪히며 아래로 흘러내려 톡톡한 망신을 당했다. 이에 화가 치민 그녀가 관계 당국을 찾아 항의에 나선 것. 장씨는 “가짜 배가 밖으로 나와 사람들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았다.” 면서 “불량 제품을 만든 이 회사를 처벌해 달라.”고 공상국에 호소했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공상국 측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공상국 측은 “이 경우는 생활에 필요한 구매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법이 정한 소비자 보호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접수를 거부했다. 마치 TV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정여사’같은 이 여성의 사례가 현지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네티즌들의 비난이 쇄도했다. 네티즌들은 “사람의 선의를 나쁘게 악용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 “윤리의식이 없는 부끄러운 짓을 했다.” 며 비판했다.    인터넷뉴스팀  
  • [의정 포커스] 홍운철 동작구의회 의장

    [의정 포커스] 홍운철 동작구의회 의장

    “올해는 무엇보다 의회가 정파 간 진영 논리를 극복해 내고 구 발전을 위해 발벗고 뛸 수 있도록 앞장서 돕겠습니다.” 홍운철 동작구의회 의장은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해소’를 첫 번째 목표로 내세웠다. 홍 의장은 “지난해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깊은 골을 극복하지 못해 생산성과 효율성이 부족한 의정 활동을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효율성과 실용성을 극대화하는 의정 활동을 펼침으로써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고 설명했다. 현재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에 대해서는 뉴타운사업과 재개발에 대한 방향 설정을 꼽았다. 홍 의장은 “사업 추진 여부를 놓고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라지면서 집단 민원이 발생하고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기초의회의 권한과 능력을 벗어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게 해야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확대, 청년실업 해소를 통한 서민 생활 안정, 고령화와 출산율 하락에 따른 대책도 집행부와 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복지예산의 급증으로 인한 지방재정 악화 문제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원 배분 구조의 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동작구의 예산 가운데 46%가 복지예산일 정도로 재정압박이 큰 상황이다. 홍 의장은 “세법 개정을 통해 지방세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만 우선은 복지비용에 대한 중앙정부의 부담 비율을 높임으로써 가난한 기초지자체의 재정난을 해소하는게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홍 의장은 주민들에게 “40만 주민이 선출해 준 지역의 심부름꾼인 구의원들을 최대한 활용해 의정에 많은 도움을 달라”고 당부했다. 홍 의장은 “중선거구제가 도입된 이후 의원 한 사람이 두 세 개 동을 지역구로 맡다 보니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하거나 찾아보지 못할 때가 있다”면서 “망설이지 말고 구의원들을 찾아주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공부하며 즐기는 박물관 여행

    공부하며 즐기는 박물관 여행

    강원도 영월은 박물관의 고을이다. 20여개의 박물관이 밀집돼 있다. 민화, 사진 등 ‘기본’ 아이템부터 지도, 곤충 등 아이들의 눈길을 끌 만한 아이템들이 ‘널려’ 있다. 이뿐 아니다. 경북 포항의 로보라이프뮤지엄 등 지역별로 독특한 박물관이 산재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한 각 지역의 이색 박물관을 소개한다. [강원 영월] 박물관 20곳 줄지어 보는 고을 영월이 박물관의 고장으로 거듭난 것은 2005년부터다.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1기 신활력사업의 하나로 박물관 고을 육성 사업이 지정되면서 다양한 박물관이 속속 들어서게 됐다. 최근에도 인도미술박물관 등이 문을 열며 박물관 러시를 이어 가고 있다. 영월엔 특히 아이들에게 유익한 박물관이 많다. 그 가운데 조선민화박물관은 조선 시대 민화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현대 민화 100여점 등 300여 작품은 상설 전시된다. 민화를 목판에 그리거나 판화로 찍어 보는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2층에는 어른들만 출입이 가능한 춘화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88번 지방도→영월. 영월군 문화관광과(www.ywtour.com) 370-2037(이하 지역번호 033). ▲맛집 주천리 다하누촌은 토종 한우를 싼 가격에 제공하는 한우 전문 상가다. 정육점에서 원하는 부위의 한우 고기를 사다 인근의 지정 식당에서 조리해 먹는 방식이다. 372-0121. 주천묵밥은 도토리묵밥과 메밀묵밥이 별미인 집. 372-3800. ‘꼴두국수’는 가난했던 시절 물릴 정도로 먹어 ‘꼴도 보기 싫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일식당이 유명하다. 372-7743. ▲주변 볼거리 단종의 묘소인 장릉,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쳐진 청령포, 서강이 휘돌아 치며 한반도 지형을 만들어 낸 선암 마을, 큰 칼로 절벽을 쪼개다 만 듯한 기묘한 형태의 선돌 등이 유명하다. [경북 포항] 생활 로봇 한자리서 만나보는 미래 공간 로봇이 보편화된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경북 포항의 한국로봇융합연구원 1층에 조성된 로보라이프뮤지엄은 로봇을 활용한 주거 생활과 미래 로봇 환경을 구현한 박물관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평상시 로봇을 접하기 어려운 데다 전시물을 직접 만지고 조작해 볼 수 있어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흥미로워한다. 전시된 로봇 중에는 가정이나 산업 현장에서 실제 이용되는 것도 있다. 물개 로봇 ‘파로’는 병원이나 양로원에서 심리 치료용으로 쓰인다. 가장 인기 있는 로봇은 ‘제니보’다. 지능형 로봇 강아지로, 스스로 돌아다니고 감정 표현을 하며 코끝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주인을 알아보고 애교도 부린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김천 분기점→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 나들목. 포항시 관광진흥과(phtour.ipohang.org) 270-2371(이하 지역번호 054). ▲맛집 포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모리국수는 일종의 잡어 칼국수다. 여러 사람이 ‘모디가(모여) 먹은 국수’란 사투리가 변해 모리국수가 됐다. 국수에 아귀와 물메기, 대게 다리 등 각종 해산물을 넣고 칼칼하게 끓여 낸다. 구룡포항 얼음공장 뒤 ‘까꾸네’가 많이 알려졌다. 276-2298. 동림횟집(247-6700), 재성회대게식당(276-2252) 등에서 회와 대게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주변 볼거리 내연산 계곡과 보경사, 오어사, 호미곶 등은 전국구 관광 명소다. 동빈 내항에는 비운의 천안함과 동일한 기종의 포항함이 전시돼 있다. 하옥계곡은 때묻지 않은 자연미가 살아 있다. [충북 진천] 문화재급 고대 범종의 종소리 진천종박물관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한국 범종에 대한 연구와 수집, 전시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종 전문 박물관이다. 성덕대왕신종, 상원사 동종 등 한국의 종은 물론 전 세계의 독특한 종과 장식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긴 밀랍 주조 공법으로 복원복제한 문화재급 고대 범종들이 즐비하다. 박물관은 2층으로 조성됐다. 1층에는 복제된 문화재급 고대 범종들이 전시돼있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대표하는 종이 무려 7000여개나 된다. 2층엔 세계의 종 전시실이 마련됐다.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진천 나들목→좌회전→성석사거리 우회전→벽암사거리 좌회전→백곡저수지 방향 직진→장관교 지나 좌회전→종박물관. 진천군 문화체육과(www.jincheon.go.kr) 539-3623(이하 지역번호 043). ▲맛집 느티나무집은 민물매운탕과 닭백숙을 잘한다. 532-5534. 엄나무에걸린닭은 누룽지를 활용한 닭·오리죽으로 이름났다. 532-8200. 두부촌(533-9946)은 깻잎두부보쌈, 곰가내(532-0767)는 쌀밥 정식이 맛있다. ▲주변 볼거리 진천을 상징하는 것은 농다리다. 농다리는 돌을 원래의 모양 그대로 투박하게 쌓았다. 듬성듬성 구멍도 뚫렸고, 발로 밟으면 삐걱대기도 한다. 그 상태로 1000년 세월을 견뎌 왔다.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보탑사, 정송강사(충북도기념물 9호), 덕산양조장(등록문화재 58호) 등도 둘러볼 만하다. [전남 순천] 한평생 모은 뿌리 깊은 문화유산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샘이깊은물’ 등을 창간하며 한국 잡지사에 큰 획을 그은 고 한창기 선생이 평생 수집한 문화유산을 전시한 공간이다. 선생이 창간한 잡지 ‘뿌리깊은나무’에서 이름을 따왔다. 선생이 생전 수집한 우리 문화재는 무려 6500여점에 이른다. 박물관은 이를 유물 전시실과 야외 전시 공간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정순왕후국장반차도’ 등 문화재급 유물도 있지만, 서민 생활용품도 제법 많다. 박물관 주변의 백경 김무규 선생 고택도 멋들어지다.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구례에 있던 상류층 양반집을 옮겨 왔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승주 방면 우회전→서평삼거리 우회전→낙안읍성 방면 857번 지방도→낙안읍성 주차장→뿌리깊은나무박물관. 순천시 관광진흥과(tour.suncheon.go.kr) 749-4221(이하 지역번호 061). ▲맛집 전주산들청국장(725-6447)은 진한 청국장이 일품이다. 송광사 진입로의 길상식당(755-2173)은 산채정식, 별량면 일출길의 전망대가든(742-9496)은 짱뚱어탕을 잘한다. ▲주변 볼거리 박물관 지척에 낙안읍성이 있다. 남문까지 길게 이어진 성곽 길과 초가집, 흙길 등 온통 누런빛이 감도는 읍성의 풍경이 예스럽다. 금전산 자락의 금둔사는 매화로 유명한 절집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운다는 납월홍매가 이 절집에 있다. 순천의 아이콘은 역시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이다. 갈대 데크를 따라 용산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것은 순천 여행의 필수 코스다.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시간 쪼개 하던 노래, 경찰복 벗고 원없이 할래요”

    “시간 쪼개 하던 노래, 경찰복 벗고 원없이 할래요”

    “35년 넘게 경찰로 사는 동안 노래가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몇 달 후 정든 제복을 벗고 나면 제 소중한 인생 2막을 무대에서 마이크 잡고 열어 갈 생각입니다.” 환갑의 나이에도 한 달에 서너 번씩 음악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가수가 있다. 그의 직업은 경찰이다. 서울서초경찰서 소속 우동하(60) 경정이다. 오는 6월 말 정년 퇴직을 하는 그는 얼마 전 서초경찰서 청문감사관을 끝으로 업무 일선에서 물러났다. 어려서부터 노래 하나는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고향(경북 봉화) 노래자랑에서 ‘한 많은 대동강아’를 불러 우수상을 받았다. 다들 열 살배기 트로트 신동이 탄생했다고 놀라워했다. 악기에도 재능이 많았다. 육군 군악대에서 트럼본을 연주했던 아홉 살 많은 형은 그의 우상이었다. 성당에서 드럼, 기타, 피아노 등의 악기 주법을 두루 섭렵했다. 1972년 가수가 되려는 그의 꿈이 실현되는 듯했다. 대구 MBC 신인가요제에서 우수상을 탔다. 하지만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형이 복막염에 걸렸는데 의료보험이 없어서 논, 밭, 집을 다 날렸어요. 작곡가는 가수 하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라고 하고…. 집에서도 가수로 밥벌이할 수 있겠냐고 엄청나게 반대했죠.” 현실의 벽에 부딪힌 청년은 결국 경찰이 됐다. 1977년 스물네 살 때였다. 정보·보안 형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1993년 운명처럼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격무 때문에 부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동료를 보고 노랫말을 쓴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럼 꿈이 있었지. 못다 했던 우리 사랑 어디에서 이룰까’라는 가사에 곡을 붙여 노래 ‘너를 보내며’를 만들었다. 이런저런 곡들을 모아 12곡짜리 음반을 냈다. “7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 때였는데 음반 낸다고 적금 깨서 3800만원을 투자했어요. 아내와 엄청 싸웠죠.” 그래도 1만 2000장이 팔렸다. 본전치기는 됐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그는 각종 경찰 행사의 섭외 1순위가 됐다. 내부 행사는 물론이고 양로원, 독거노인 등을 위한 자선 무대 등 외부 행사에도 종종 나선다. 스스로 콘서트라고 이름 붙일 만한 행사가 지금까지 12차례에 이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6년 전 석가탄신일에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노래를 했을 때다. “2500명이 모인 큰 무대에서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어요. 그때 저 스스로 ‘나는 천생 가수를 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경찰이 너무 노래에 빠져 사는 게 아니냐는 주위의 시선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혼 생활 30년 중 집에 들어간 게 절반도 안 될 만큼 바빴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퇴직 하루 전날 경찰복을 입고 신나게 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그동안은 시간을 쪼개서 노래했는데 앞으로는 눈치 볼 일도 없으니까 마음껏 하렵니다.” 글 사진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몸 바쳐’ 돈 벌어오던 형이, 엄마를 죽였다

    ‘몸 바쳐’ 돈 벌어오던 형이, 엄마를 죽였다

    살인 사건이었다. 13평 아파트에 사는 중년의 변계숙이 살해됐다. 범인은 볼링공으로 내려쳤다. 범인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주변을 돌아다닌 터라 7명이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고 15분 만에 잡혔다. 현장검증에서 범인은 거침없이 자신의 범행을 재연했다. “더 이상은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살해 직전 변계숙에게 건넸다고 했다. 신문 1면 헤드라인은 ‘후안무치한 살인범 춤추듯 현장으로’로 채워졌고, 2면과 3면 사진은 ‘태연자약하게 범행 재연 반성의 기미 전혀 없어’가 됐다. 현장검증이 끝나 사진기자들과 형사들이 사라진 살해 현장, 아파트에는 락스와 향균스프레이, 수세미를 든 조인호가 서 있다. 조인호는 변계숙의 아들이다. 또한 범인은 조인호의 형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존속살해를 당한 피해자이자 범인의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조인호의 굴곡진 인생이 등장하려니 했다. 그러나 안보윤(32)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모르는 척’(문예중앙 펴냄)의 주인공은 조인호의 네 살 위 형, 어머니를 살해한 조인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신문 사회면에 있을 법한 보험 사기라는 것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러니 이야기의 대강과 결말도 윤곽이 잡히는 듯했지만 예단은 어긋났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형제의 심리적 갈등과 편애가 낳게 되는 병리적인 감정, 착한 자식이자 가장으로 길러지는 맏이의 운명, 제대로 살고 싶은 가난한 사람들의 욕망 등이 ‘자본주의적 폭력’과 뒤얽혀 굴러가기 때문이었다. 어느 집이나, 어느 집단이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너 아니면 안 돼’라는 마법 같은 주문에 휘둘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사람들은 산다. 그런데 헌신적인 사람들은 어느덧 그 주문에 휘말려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 하나 고생하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며 각오를 다진다. 그런데 그들의 헌신은 고작 ‘제가 좋아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해된다. 전업주부였던 변계숙의 가족은 가장인 아버지가 돌연사한 탓에 가난한 P시로 흘러왔고, 무능한 엄마 대신 12살의 맏아들이 가장 역할을 떠맡았다. 머리를 벽에 짖이기고, 망치로 발가락뼈를 부러뜨리며,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려 206개의 뼈가 모두 조각조각 났는데도 인근은 말한다.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의 범죄의 기원은, 근친살해의 기원은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부모가 동반자살해 절집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석문정은 이런 잔혹하고 매정한 상황을 적시한다. “제일 나쁜 건 있지,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야.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당장 나한테 이득이 생기면 마음이 흔들려. 못 이기는 척, 모르는 척 받아들이게 돼. 그게 좀 더 지나면 당연해져 버리는 거야.”(201쪽) 가난하고 남루한 P시 청소년의 대화도 암담하다. 가난은 뿌리가 깊다. “아빠가 시멘트 개고 엄마가 벽지 바르고 내가 벽돌 나르면 알콩달콩 신도 나겠다, 씨발. 노가다가 가업이라니 끔찍하잖아.”(207쪽) 왜 제목이 ‘모르는 척’인가. 사실 우리는 헌신적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고 영악하게 부려 먹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32살의 젊은 작가가 묻고 있다. 우리는 또 무엇을 모르는 척 회피하고 있는지 큰 바늘로 쑤시는 듯하다. 같은 사실을 처한 상황과 인지 수준에 맞게 이해하는 인근과 인호의 엇갈리는 서술은 영화 ‘오! 수정’이나 소설 ‘산체스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작가는 2005년 문학동네 작가상으로 등단해 2009년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을 받았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이제 출발이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글로벌 시대] 이제 출발이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관문 중 하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는 것이었고, 그 꿈은 2010년 달성됐다. 2011년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우리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DAC의 주관으로 5년마다 받아야 되는 피어 리뷰(Peer Review, DAC 회원국 간 상호 평가)를 한국은 지난해부터 받기 시작해 그 결과를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그동안 한국은 공적개발원조(ODA) 규모(2013년 2조 411억원 예상)를 꾸준히 증액시켜 왔다. 2015년까지 국내총생산(GDP)/국민소득(GNI) 비율 0.25%까지 확대(2013년 0.16%),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제정,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 수립, 총리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설치 등 ODA의 양적·질적 성장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반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해온 국제개발 NGO 단체들과 시민단체, 학회 등에서 꾸준히 제기한 문제들이 이번 DAC 피어 리뷰에서도 권고사항으로 지적됐다. 이 가운데 중요한 과제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정부의 ODA 실행에 대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2015년 GDP/GNI 비율 0.25%를 준수하려면 연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 새 정부의 각종 공약 실천 등으로 ODA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를 위해서 정부의 국제적 약속에 대한 강력한 실행 의지가 있어야 한다. 둘째, 독립적이고 통합된 원조기구의 신설이 필요하다. 양자와 다자 간 원조, 유상(기획재정부 주관)과 무상원조(외교부)의 분절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30개 이상의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들이 ODA를 시행 중인데, 통합된 전략과 시스템의 부재로 효과를 경감시키고 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 셋째, ODA 정책에 대한 소통과 투명성,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ODA와 관련된 정책을 입안하거나 결정된 사항들에 대한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중점 국가조차 비밀이라고 공개하지 않았다. 국내·외 파트너에 대한 투명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국민 홍보를 통해 ODA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강화하길 바란다. 넷째, ODA 관련 국제규범을 지켜야 한다. 원조 효과성에 대한 국제적 규범과 원칙 준수, 비구속화 확대 약속 준수, 최빈국에 대한 유상원조 규모 축소, 무상원조 확대 등에서 한국적 특성을 고려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섯째,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파트너로 협업을 확대하는 것이다. 유상 원조는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되 무상 원조 확대 및 이에 대한 시행 파트너로 시민단체들을 참여시켜 시민사회의 기능과 역할을 활성화해야 한다. 불과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DAC의 일원이 된 한국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를 방문하면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따뜻하게 환영해준다. 어느새 한국은 그들에게 희망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 아직 한국의 ODA는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이제 출발이다. DAC의 일원이 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부단히 부족함을 채워 세계를 바라볼 때 설 자리가 보이고 어떤 모습으로 나가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한국의 ODA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니까.
  • [경제 프리즘] 불황에… 저소득 술·담배 늘어

    불황이 잘사는 집과 못사는 집의 지출 패턴을 극명하게 갈랐다. 지난 1년간 저소득층 가구는 술에 대한 지출은 늘렸지만 보건·교육 지출은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층 가구와 정반대다. 저소득층의 건강 악화, 교육 부족이 양극화 심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술·담배 월 지출액은 2만 500원이다. 2011년보다 8.3% 늘었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술·담배 월 지출액은 2만 9100원으로 전년보다 4.0% 줄었다. 담배만 보면 두 계층 모두 줄이긴 했지만 차이가 크다. 잘사는 5분위는 1년 새 담배 지출액을 9.9%나 줄였지만, 못사는 1분위는 0.5% 줄이는 데 그쳤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유한 사람들은 건강 지식도 상대적으로 많고, 준비할 시간도 많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정신·육체적 피로를 술·담배로 푼다”면서 “그런 상식적 상황을 반영한 통계”라고 설명했다. 보건비 지출도 큰 차이가 났다. 지난해 1분위 보건비 지출액은 11만 7200원으로 전년보다 2.9% 줄었다. 5분위가 5.8%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입원 등 비싼 의료서비스 지출에서 1분위(18.9%↓)와 5분위(11.8%↑)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사교육비 지출도 확연히 달랐다. 1분위는 지출을 7.3%나 줄였지만 5분위는 0.9% 감소에 그쳤다. 특히, 성인을 위한 평생교육비를 1분위는 32.5%나 줄였지만, 5분위는 되레 13.7% 늘렸다. 홍 교수는 “노동유연성이 강조되면서 저소득층의 전업·재취업 교육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저소득층이 민감한 고용여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폭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가구 지출에서 1분위는 기타 의료서비스(55.1%↓), 자동차 구입(50.4%↓), 5분위는 복권 구입(39.0%↓)을 전년보다 가장 많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Norway OSLO 오늘, 오슬로

    Norway OSLO 오늘, 오슬로

    오슬로에서 한 예술가의 절망을 목격했고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을 엿봤다. 삶의 방향성을 끈질기게 고민하는 여행자라면 오늘, 오슬로로 향하라. 2008년 개장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노르웨이의 상징인 피오르드를 형상화 했다. 건물 깊숙이 바다가 차오른 듯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 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 신동엽의 <산문시> 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신동엽 시인의 시에도 그곳은 등장한다. 헬싱키를 거쳐 오슬로까지. 가는 데만 14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그래도 노르웨이는 꼭 가야만 했다. 깔끔한 북유럽식 가구처럼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세련된 이야기를 동경했다. 정말 시인의 말처럼 대통령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거니는 세상일까. 3일간의 짧은 일정상 그들의 복지 체계는 얼마나 단단한지, 그들 사이에는 얼마만큼 끈끈한 신뢰가 엮여 있는지는 알 턱이 없겠지만. 오랜 시간 품어 오던 의문에 답을 내릴 때가 된 것이다. 평생 한번쯤 메카를 여행하는 이슬람교도처럼 그렇게 오슬로로 향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쑤욱 찬바람이 파고든다. 달력의 날짜가 동지 즈음에 걸린, 해가 가장 짧다는 시기라 다소 스산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북유럽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풍경은 추위에도 당당히 맞설 만한 값어치를 했다. 호텔로 향하는 길에 침엽수림이 울창하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빨간 지붕 집들이 언뜻언뜻 솟았다. 오슬로를 키운 건 7할이 숲이고 도시를 걷는 건 산림욕과도 같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머지 3할은 바다의 몫이다. 바이킹의 후손들에게 바다는 투쟁과 호혜의 대상이었다. 움푹 파인 만灣 끝자락에 자리한 오슬로는 혹독하기도, 자비롭기도 한 바다와 지척이었다. 여기에 볕에 굶주린 듯 최대한 창을 키운 건물들이 단순하지만 모던한 자태를 더한다. 숲, 바다, 건물이 어우러져 오슬로만의 노르딕 스타일을 창조한다. 도시를 소개하는 브로슈어를 보니 오슬로 카피 문구는 바로 ‘슬로 시티Slow City’. 이 느릿한 도시를 흡수하는 최고의 수단은 걷기라는 뜻이다. 현재 국왕과 여왕 등 왕족일가가 머무는 노르웨이왕궁에서 오슬로 중앙역에 이르는 1.5km의 칼요한슨거리Karl Johans Gate를 따라 걷는다. 구석구석 가구와 디자인 숍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소담한 수도의 첫인상은 우선 합격점이다. 나의 침대를 바라보고 있던 것은 밤과 광기와 죽음의 검은 천사들이었다. 그들은 그 후에도 줄곧 나의 생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 뭉크의 일기 中 당신도 셀카를 찍는군요 겨울에 오슬로에 와야 할 이유가 또 있었다. 뭉크Edvard Munch를 기념하는 뭉크박물관Munch Museet에서 뭉크 탄생 150주년이 되는 2013년을 기념해 특별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인을 포착했다는 그의 작품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시 기간이 올해 2월13일까지라 발걸음을 서둘렀다. ‘더모던아이The Modern Eye’라는 부제의 전시는 집단보다 개인이, 자연보다 도시가, 농업보다 공업이, 종교보다 과학이 우선시된 근대를 살아간 뭉크의 기록을 집약했다. 합리성을 내세웠지만 근대는 개인의 외로움과 절절한 고독을 불러왔다. 소년기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나를 잃었고 여동생은 정신병을 앓았으며 성년이 됐을 땐 남동생마저 죽었다는 뭉크의 인생은 듣는 것조차 버겁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버지의 히스테리를 고스란히 받아냈던 지친 영혼은 캔버스에 자신을 투영했다. 깨끗하고 단아한 느낌을 자랑하는 뭉크박물관. 들어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의 작품은 감당하기가 녹록진 않다. ‘절규’ 앞에 섰을 때도 작품 속 울렁거리는 붉은 하늘이 평온하기만 한 오슬로의 그것과는 완전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뭉크의 작품은 콜렉터 사이에서 최고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사실 뭉크의 ‘절규’는 단 한 점이 아니라 5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중 한 작품이 지난해 5월 소더비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인 1,37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현재 뭉크박물관에 걸린 절규도 도둑맞았던 것을 다시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도난 중 훼손을 심하게 입어 지금도 1/3가량이 변색된 그림을 보니 세상은 뭉크에 미쳐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고깃덩이마냥 육체가 나뒹굴고 어둑한 사자가 튀어나오는 작품인데도 전세계 관람객은 그를 숭앙하고 환호한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려는 찰나 그는 대예술가답게 반전을 선사한다. 절규의 방에서 그의 사진이 전시된 방으로 건너갔다. 이게 웬걸. 그곳에는 히스테릭한 뭉크가 처음 접한 카메라를 장난감 삼아 숱하게 찍었던 ‘셀카’가 진열돼 있었다. 이런저런 얼짱 각도를 연출한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셀카의 의외성은 강렬했다. 그의 자화상과도 같은 셀카들. 당당히 렌즈를 자신 앞으로 가져갔던 그는 얼마나 오랜 시간 번민했을까. 인간의 심연에 있는 불안과 광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 뭉크는 진솔하다. 남이 눈치챌까 꼭꼭 숨겨 놓은 우리 모두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제야 그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렷해졌다. 우리 안의 꿈틀거리는 어둠을 대신 꺼내 보였던, 이 예술가의 솔직함에 대한 경의는 아닐지. 묵직했던 무언가가 소화되면서 자신의 결핍과 욕망에 너무도 충실했던 그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뭉크박물관Munch Museet┃주소 Tøyengata 53 0578 OSLO 개관시간 월, 수, 목, 금, 토요일 오전 12시~오후 6시.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화요일 휴무(1월1일부터 5월12일까지 적용) 입장료 성인 95크로네(약 1만8,000원) 학생 50크로네(약 1만원) 홈페이지 www.munch.museum.no 1 셀카의 달인, 뭉크. 그의 작품은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예술품 중 하나다.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뭉크식 화풍으로 풀어냈다 2 올해 뭉크 사후 150주년을 기념해 오슬로 뭉크박물관에서는 대대적인 회고전이 열린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같이 함께 살기, 어렵나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듯하다. 우리를 잠식한 우울과 고통은 같이 극복해내는 거라고. 두루두루 사는 인생이 행복의 총량을 높일 거라고 말이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거리의 모습도 다를 바 없다. 오슬로는 마천루가 즐비한 도시는 아니다. 고층빌딩 없이 고만고만하게 고풍스런 건물들이 어깨를 견주고 있다. 2008년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는 정갈한 오슬로의 풍광을 화사하게 수놓는 건물이다. 피오르드를 상징화했다는 오페라하우스는 바다에 유유히 떠다니는 빙산처럼 바다를 품었다. 유명한 건축회사인 스뇌헤타Snøhetta가 설계했다고 해서, 건물 전면이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도배될 만큼 호화롭다고 해서 마음에 찬 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위축감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고고한 예술의 정수가 되어 신전처럼 떠받들여지는 여느 무대와는 달랐다. 오슬로 시민들과 관광객은 긴 경사면을 타고 오페라하우스 지붕과 벽면을 완만히 오르락내리락한다. 여름이면 옥상 정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오페라 공연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대통령이나 총리조차 특별할 것 없는 그들의 철학이 부러웠다. 하지만 오슬로에 와서야 철저히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특별하다는 것, 그 명제가 행복한 노르웨이를 만들었다. 부산에 들어설 오페라하우스도 스뇌헤타가 설계한다고 하니, 건물이 문화를 낳는 힘을 좀 기대해도 되려나. 이들의 삶의 방식은 일상의 면면에 구체화된다. 요즘 노르웨이에는 협동조합 설립이 붐인데 마침 우리나라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당장 지난해 8월 개장했다는 마달렌Mathallen으로 향했다. 마달렌은 오슬로 시가 리모델링한 폐공장터에 들어선 푸드코드. 30여 개 상점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신선한 과일, 연어, 염소치즈를 사러 노르웨이 사람들이 바지런히 드나든다. ‘푸드코트’로 직역되지만 ‘식품문화원’으로 번역하는 게 어울릴 것 같다. 푸드 컨퍼런스, 조리 강습, 푸드 페어, 음식 경연대회가 활발하게 열리면서 노르웨이식 ‘잘 먹고 잘 살기’를 실천해 간다. 요새 우리 식탁에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마일리지가 쌓이는 것처럼 원거리를 여행해 푸드마일리지를 쌓은 식재료가 태반이다. 20cm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닭, 우유만 주구장창 생산하다 평균수명의 1/10도 못 채우고 죽는 소, 유전자변형이란 유혹에 쉽게 노출된 콩과 옥수수들. 건강하지 못한 밥이 건강한 사람을 만들 리 없다. 이 평범한 진리를 알기에 음식이 자본의 도구가 된 지금 좋은 음식에 대한 열망도 반사적으로 높아졌다. 안정적인 판매를 원하는 공급자와 바른 먹을거리가 필요한 소비자의 만남에 문화적 옷을 덧입혀 관광객에게 내보이는 그들의 자신감이 더없이 부러웠다. “우리도 싸울 때가 있다구.” 감탄 사이사이에 어쩔 수 없이 부러움이 묻어나자 오슬로 사람들,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위로랍시고 이런 말을 한다. 90년대 노르웨이 국민들은 EU 가입 여부를 두고 극명하게 두 편으로 갈라섰다. 논쟁을 벌이다 결국 1994년 국민투표까지 이어졌다. 결과는 반대 52%, 찬성 48%. 얼마 전 우리나라 대선 결과와 묘하게 맞물린다. 세가 비슷한 집단이 첨예한 갈등을 겪고 나면 허탈감과 혼란을 피할 수 없는 건 동서가 마찬가진가 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국 경제가 나날이 번창하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웃 EU 국가들을 보면서 성공적인 논쟁이었다고 자평한다. 물론 사람도 사회도 실수할 수 있다. 대신 옳은 선택을 이끌어내는 생산적인 ‘갑론을박’이 필요하다. 비현실적인 정답을 실현한 사회. 합리적이고 따뜻한 노르딕 라이프스타일은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남길 것 같다. 3 마달렌은 오슬로에서 가장 신선한 노르웨이와 유럽산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이다 4 푸드홀 마달렌은 장도 보고 유기농 식사를 즐기는 오슬로 시민들의 잇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오페라하우스┃주소 Kirsten Flagstads pl. 1 N-0150 Oslo 박스오피스 개장시간 월~금요일 오전 9시~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일요일 낮 12시~오후 6시 홈페이지 www.operaen.no 사이트를 방문하면 5월, 6월에 집중된 문화공연 스케줄 표를 볼 수 있다. 마달렌Mathallen┃주소 Maridalsveien 17 OSLO 개장시간 화~수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목~금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일요일 낮 12시~오후 5시, 월요일 휴무 홈페이지 www.mathallenoslo.no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02-777-5943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460g으로 태어난 미숙아 엥흘렌의 투병기

    460g으로 태어난 미숙아 엥흘렌의 투병기

    장애와 희귀병을 앓고 있지만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전하는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미숙아로 태어난 엥흘렌을 조명한다. 몽골 출신 아빠와 엄마를 둔 엥흘렌은 태어날 때 몸무게가 460g이었다. 저체중아 중에서도 초극소저체중아이다. 그 때문에 엥흘렌의 세상은 인큐베이터가 전부이다.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만성 기관지·폐 이성형증, 서혜부(아랫배 양쪽과 허벅지 사이) 탈장 등 각종 질병과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산소호흡기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하는 이 작은 아이가 언제쯤 호흡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엥흘렌 부모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단기 비자를 발급받아 일시 체류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탓에 정식으로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3000만원에 육박하는 병원비가 밀려 있고, 앞으로도 집중 치료가 필요해 돈이 얼마나 더 들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다. 한국이 고향인 엥흘렌에게 희망의 빛이 전해질 수 있을까. ‘엥흘렌의 희망찾기’는 19일 오후 5시 35분에 만날 수 있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하)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하)

    하나, 남과 사회공동체를 위해서 살라. 사회 전체를 위해 살면 남이 나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잘되고 행복해진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위하려거든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둘, 고난과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라. 누구에게나 고난과 실패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더 큰 배울 점이 있다. 그걸 부채로 만들지 말고 자산으로 만들면 더 큰 깨달음이 있다. 이를 얻어야 큰 사람이 된다 셋,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특별히 행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 건설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을 지낸 박승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호는 푸른 벼를 뜻하는 청도(靑稻)다. 직접 지었다. 여기에는 고향에 대한 추억과 일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박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여름이면 논에서 일했다. 농부들이 논에서 호미로 김을 매면서 지나가면 모가 넘어졌다. 박 교수는 이 뒤를 따라가면서 모를 일으켜 세웠다. 그 뒤를 따라가다 보면 농부들의 땀 냄새, 그리고 모 냄새와 흙 냄새가 어우려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특이한 냄새가 났다. “지금도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어 그 냄새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을 찾은 것이 푸른 벼, 청도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8년 2월 노태우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과는 그때 처음 만났다. 청와대에서의 활동에 대해 박 교수는 “내가 나 스스로를 이끌어 가는 삶이 아니라 떠밀려서 사는 삶이었다”며 “야생마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내게는 생소한 환경”이라고 회고했다.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박 교수는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경제 정책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팀이 하고, 수석실은 대통령과 경제팀의 중간에서 보고·조정하고 경제팀이 잘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역할로 한정한 것이다. “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은 대통령을 만나 진지하게 정책을 협의할 기회가 적어 경제수석이 하기에 따라 행정부를 무력화하고 지나치게 정책에 관여할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 노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주택 200만호 건설은 예외였다. “국민의 수요가 밥과 옷에서 집으로 옮겨 가는 시기라 집 부족 문제와 집값 폭등 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경제수석실에서 일단 택지를 물색했다. 서울 시내에는 후보지가 없어 그린벨트를 넘어서 광화문 기점으로 25㎞ 지점, 지하철로는 약 1시간 거리가 신도시 후보였다. 경기 평촌·산본, 그리고 부천 중동이 나왔다. 당시 경기 분당은 유보됐다. 박 교수는 1988년 12월 건설부 장관이 됐다. 200만호 건설을 현장에서 책임지라는 대통령의 뜻이었다. 1989년 초 분당이 후보지로 확정됐고 여기에 박 교수는 경기 일산을 추가했다. 냉전 시대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고, 서울 강남·북의 균형발전을 꾀하자는 논리였다. 당연히 국방부 반대가 심했다. 현지 주민들과 국회의원들의 반대도 심했다. 주민들에 대한 설득과 가장 쾌적한 도시로 짓겠다는 약속에서 일산 신도시 개발이 확정됐다. 그래서 “일산은 박승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 교수는 “지금 5대 신도시를 보면 상전벽해라 감회가 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9년 7월 18일 공직을 떠났다. 앞서 두달 전 신도시 개발계획은 확정됐지만 분양가 현실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미리 사의를 표명하기는 했다. 그날 아침 노 전 대통령과의 조찬을 통해 물러나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이로써 1년 5개월의 관직을 끝냈다. 박 교수는 “관직은 참 허무하더라”고 말했다. 분양가 현실화는 그해 11월 단행됐다. 정부에서 물러나 쉬다가 1990년 다시 강단에 섰다.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전처럼 주택공사 이사장, 자영업자 소득파악 위원 등 다양한 외부활동도 했다. 총 26년간의 대학교수를 마치고 2001년 정년 퇴임을 했다. 그가 가르친 제자로는 백용호 청와대 정책특보, 김덕중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이 있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으로 바쁜 외부 활동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02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한은 총재로 임명됐다.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경제적 안정을 주고 박사학위를 얻어 교수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한은에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한은에 대한 애정이 강해 “직원 뒤꼭지만 봐도 예쁘다”고 해 아내의 시샘을 사기도 했다. 한은의 독립성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항상 경제성장과 경기부양 쪽으로 기울어 입으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장하지만 실제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도록 중앙은행에 간섭해 왔기 때문”이다. 2002년 재정경제부에서 일부 금융통화위원에게 금리 결정에 대해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박 교수는 당시 장관에게 항의 전화를 해 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한은법 개정도 추진했다. 금융통화위원에 증권업협회의 추천을 없애고 한은 부총재를 당연직 위원으로 하며, 한은이 금융결제제도의 총괄감시권을 갖고, 인건비를 제외한 모든 한은 예산에 대한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의 승인권을 삭제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은 2003년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와 싸우기도 했지만 설득과 타협도 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려고 애썼다”고 회고했다. 박 교수는 한은 총재 내정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세 가지 화폐개혁을 구상했다. 첫째, 우리나라 지폐가 너무 크고 위조가 쉬우니 새 화폐로 바꾸는 것이다. 둘째, 수표 발행과 보관에 드는 비용 등을 줄이기 위해 5만원과 10만원권 등 고액권을 발행하는 일이다. 셋째,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떨어져 10원짜리 동전은 거의 쓰지 않으니 화폐 액면 단위를 1000대1, 즉 천원을 일환으로 바꾸는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이다. 총재 취임 후 한은 내에 구성한 화폐제도 개혁 추진팀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첫째는 쉬웠지만 고액권 발행이나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당시 정부는 부정적이었다.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고 뇌물을 주기가 편해져 부패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박 교수는 총재 임기 동안 5000원권의 신권 발행만 보고 물러났다. 1000원권과 1만원 신권은 박 교수가 총재에서 물러난 뒤 발행됐다. 고액권 발행 논의의 물꼬를 텄지만 5만원권 발행은 한참 뒤인 2009년에야 이뤄졌다. 화폐단위 변경의 필요성 논란은 지금 다시 불거지고 있다. 화폐 단위 변경이 1962년 실행된 뒤 50여년이 지나 지폐 최고액이 500원권에서 5만원권으로 100배 커지는 등 경제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지금도 세 가지를 다 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4년의 한은 총재 임기를 마치고 2006년 3월 은퇴했다. 이 기간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과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은퇴사에서 “한은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은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직에서 떠난 뒤에도 박 교수는 강연이나 저술 등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박 교수의 조언을 찾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지난해 ‘쫄지마, 청춘!’, ‘다가오는 경제지진’에서 경제 원로로서 조언도 했다. 매일 맨손 체조를 하고 운동기구를 이용한 운동을 거르지 않으며 체력을 관리한 것이 깨어 있는 정신의 밑거름이 됐다. 박 교수는 지금 40대인 5남매 중 4남매의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렀다. 청첩장도 없고, 축의금은 받지 않았고 예단이나 함도 없었다. 하지만 이를 사돈 측에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결혼식 당일 사돈 쪽은 하례객이 많은데 박 교수 측은 한가한 상황도 나왔다.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건 하루면 될 일”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우리나라 혼례의 사회적 낭비가 너무 심하므로 이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보내면 세금처럼 느껴지고, 결혼식장에 와서는 돈 내고 얼굴도장 찍은 뒤 자리를 뜨는데 서울의 교통사정상 한나절이 걸리고, 함과 예단 등으로 인한 부모의 갈등과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고.” 그가 꼽은 이유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나는 친구들 자녀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내면서 안 받겠다고 하니 친구들을 미안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라는 고민에 세 번째 자녀 결혼식 때 다른 사람들처럼 했다. 그런데 해보니 진짜 할 일이 아니었다. “청첩장 보낼 때부터 보낼까 말까 고민하지, 누가 왔는지 알아야지, 돈을 받았으니 정리하다가 얼마 냈는지를 보게 되지, 행여 많이 낸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걸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머리에 남지….” 그래서 네번째 결혼식부터 다시 원하던 대로 했다. 막내 결혼식에는 평소 입던 양복을 세탁해서 입었다. 자식 결혼식도 간소하게 치른 박 교수는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사후 장기기증도 약속했다. 이 같은 생각을 30여년 전부터 자식들에게 이야기해 왔다. “자식은 교육시켜서 자립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외국에서는 교육을 시키면 나머지는 사회가 알아서 뒷받침하는 구조인데 우리나라는 부모 협조가 없이는 집 마련도, 자식 교육도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집 마련이나 자식 교육에 일정 부분 도움을 주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한은 총재 재임 시절에는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썼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그는 “공공재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오늘에는 나 혼자만 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잘사는 좋은 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학교는 유일한 안식처… 가난·시련도 졸업할래요”

    “학교는 유일한 안식처… 가난·시련도 졸업할래요”

    조선족 손건성(14)군은 2011년 1월 한국땅을 밟았다. 3년 전 한국에 먼저 들어온 엄마 아빠를 찾아왔다. “가방에 넣어서라도 한국에 데려가 줘”라고 떼쓰는 외아들이 눈에 밟혔던 부모는 힘들더라도 함께 살기로 했다. 하지만 생활은 팍팍하고 고단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반지하 셋방은 폭염도 추위도 막아주지 못했다. 찬바람을 맞은 어머니 김순옥(43)씨는 안면마비가 왔을 정도다. 아버지 손강수(49)씨는 매일 날품을 팔아 고단한 생계를 꾸렸다. 부모는 건성이가 오자마자 입학시킬 학교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한국말을 못하는 아이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러다 개교를 앞둔 다문화 대안학교인 ‘지구촌 학교’의 전단지를 발견했고, 건성이네는 희망을 찾았다.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다시 중국으로 갈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학교 입학이 결정됐을 때 세 식구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또래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학교지만 건성이에겐 삶의 유일한 숨통이자 안식처였다. 한국말을 배우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어머니가 일하는 공장이 경기 김포로 이전한 지난해에는 학교를 포기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 통학하는 데만 왕복 6시간. 김포 월곶면에서 서울 구로구 오류동 학교까지 버스 세 번을 갈아타는 고된 여정이었지만 건성이는 결석 한 번 안 했다. “워낙 외지에 있어서 15분을 걸어나와 버스를 탔고, 50분씩 버스를 기다릴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학교는 제 생활의 끈이라 안 간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부모와 떨어진 세월 동안 말과 웃음을 잃었던 건성이는 2년의 학교생활을 통해 본래의 밝은 성격을 되찾았다. 한국말도 자연스러워졌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 앞뒤에서 춤추고 노래를 하며 끼를 뽐낸다. 인기도 많아 지난해 2학기에는 전교 회장에 당선됐다. “속 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의견상자’를 만들어서 수요일마다 토론하고 있어요. 축구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서 월·화요일 7~8교시를 축구시간으로 만들었어요. 잘했죠?” 장밋빛 미래도 꿈꾼다. “중학교에서는 더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제일 좋아하는 수학 과목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계획입니다.” 틈틈이 춤과 노래를 연습해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처럼 멋진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내 최초의 다문화 대안초등학교인 지구촌 학교는 15일 건성이를 포함해 6명의 1기 졸업생을 배출한다. 건성이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한다. “졸업식이 벅차고 설레요. 가난·시련·아픔 같은 것도 얼른 졸업할래요.” 글 사진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서러웠어… 못 배워서, 졸업이라니… 눈물 나

    서러웠어… 못 배워서, 졸업이라니… 눈물 나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사는 이순덕(65) 할머니는 전북 정읍시의 한 시골 마을에서 아홉 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오빠, 언니와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만 했던 할머니는 가난한 살림 탓에 자기 이름 석 자 쓰는 법을 배울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런 할머니가 지난 7일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됐다. 이 할머니는 “글 읽을 일이 있을 때면 눈이 어두워 잘 안 보인다고 얘기했다. 그러고 나면 참 많이 속상하고 창피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관악구는 최근 이 할머니를 비롯해 관악구평생학습관에서 1년 동안 ‘초등 학력 인정 문자 해득 교육’을 받은 만학도 11명이 초등학력 졸업장을 받았다고 12일 밝혔다. 또 58명의 노인들은 초등학교 1~2학년 과정에 해당하는 성인 문해 1단계, 3~4학년 과정에 해당하는 2단계를 수료했다.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거치며 피란살이와 가난 탓에 글을 배우지 못한 노인들이다. 구는 ‘문맹 제로 사업’의 일환으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한 성인들을 위한 문자 해득 교육을 진행해 왔다. 특히 2011년부터 운영해 온 초등 학력 인정 문자 해득 교육은 성실히 교육에 임할 경우 빠르면 1년 안에 초등 학력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전체 3단계, 3년 과정으로 구성돼 있으나 단계별 평가를 통과하면 바로 승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악구평생학습관은 시교육청에서 인증받은 초등 학력 인정 기관으로 이곳에서 교육과 평가를 모두 받을 수 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부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 최민식씨

    [부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 최민식씨

    부산의 시장통과 달동네 샛길을 누비며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의 존재를 사진으로 증명했던, 한국의 대표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씨가 12일 오전 8시 40분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85세. 1928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고인은 지독한 가난에도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 1955년 도쿄중앙미술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러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집어든 사진집 ‘인간 가족’을 보고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작가는 철저한 스트레이트 사진만 고집했다. 조명이나 삼각대도 쓰지 않을 정도니 트리밍이나 포토샵 따윈 있을 수도 없다. 오직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 찍어, 있는 그대로 인화해낸 사진만 고집했다. 사람의 역할은 오직 셔터 누르는 것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이다 보니 그의 작품에는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서민들의 실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때문에 2008년 국가기록원에 필름 10만점 등 모두 13만여점의 자료를 기증했고 이 자료들은 민간기증 국가기록물 1호로 지정됐다. 유족은 부인 박정남씨와 3남 1녀. 빈소는 부산 남구 용호동 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8시 30분. (051)933-7485.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박근혜 복지재원 부가세 올려 마련해야… 나홀로 토빈세는 되레 부작용 우려”

    “박근혜 복지재원 부가세 올려 마련해야… 나홀로 토빈세는 되레 부작용 우려”

    “한국이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면 직접세보다는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올리는 게 낫다. 토빈세(금융거래세)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5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사회정책 과제’ 국제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조언했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지난 10년간 한국 경제는 연평균 4%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면서 “이 과정에서 소득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이 덩달아 상승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1995~2010년 우리나라 소득 하위계층 10%의 실질소득은 거의 오르지 않았지만 상위 10%의 실질소득은 30% 증가했다. 공공부문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의 9.6%(2009년 기준)로 OECD 평균인 22.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한국은 산업화·민주화를 거쳐 이젠 사회 통합의 시대”라며 “(복지를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우선순위를 잘 설정했다”고 평가했다. 박 당선인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135조원을 마련하려면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법인세 등 직접세를 높이면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등 왜곡이 많다”면서 “부가세와 환경세 등을 올리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이어 “한국의 부가세율은 10%로 OECD 평균(19%)의 절반 수준이어서 올릴 여지가 있다”며 “부가세 인상에 따른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인상분을 꼭 필요한 빈곤층에게 쓰면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한) 역진성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빈세에 대해서는 사실상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그는 “모든 국가가 (토빈세를) 도입하면 몰라도 일부 국가가 적용하면 금융거래에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와 관련해서는 “일본이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인 2%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긍정적일 것”이라며 우호적으로 진단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기업·가계소득 성장격차 확대

    기업·가계소득 성장격차 확대

    부자인 기업과 가난한 가정 간의 극심한 소득불균형이 내수부진 장기화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산업연구원은 5일 ‘한국경제의 가계 기업 간 소득성장 불균형 문제’란 주제의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0년의 기업과 가계소득을 분석한 결과, 기업소득(순가처분 소득 기준) 연평균 실질증가율은 16.4%인 데 반해 가계소득은 경제 성장률의 절반에 불과한 2.4%로 격차가 14% 포인트를 넘는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양극화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헝가리에 이어 두 번째이다. 우리 가계와 기업의 가처분소득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서로 비슷한 증가세를 보였지만 외환위기 이후 기업소득 증가세는 가속되고 가계소득은 줄어드는 양극화 현상이 커지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2000년 이후 기업소득 증가율은 고도성장기의 두 배가량 상승했으나 가계소득은 고도성장기의 약 4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해 양극화가 심각해졌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소득의 불균형이 장기간 계속될 경우 내수 부진과 체감성장 부진, 가계부채 문제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즉, 가계·기업 간 성장 불균형은 가계 소비를 억제하고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효과는 있지만 가계소득 부진의 소비억제효과가 내수 부진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가계소득 활성화를 위해 저소득 가계에 대한 복지 지원을 강화하고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사회 안전망 확충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어릴적 받은 이웃사랑… 25년 모은 1억 기부로 갚아요

    어릴적 받은 이웃사랑… 25년 모은 1억 기부로 갚아요

    “어린시설 여덟 식구가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고 굶을 때도 잦았죠. 그럴 때 이웃에서 보내 준 고구마와 밀가루죽은 우리 가족의 행복이었습니다. 고마운 이웃의 사랑을 이제 조금이나마 갚게 됐습니다.” 현대중공업 대형엔진시운전부에 근무하는 박우현(57·기원)씨는 지난달 28일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와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0만원씩 모두 1억원의 성금을 기탁했다. 박씨는 당시 성금을 계좌로 이체해 신분을 숨기려 했으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수소문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전남 곡성군 오곡면 구성리의 가난한 농가의 6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난 박씨는 “어릴 때 도와준 이웃에게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면서 “저의 작은 나눔이 싹이 돼 또 다른 결실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 공사현장과 중동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다 198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직장이 안정되면서 매월 급여의 일부를 별도로 모았고 25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성금은 박씨의 뜻에 따라 혼자 사는 노인과 장애인, 이주정착민 등 소외계층을 후원하고 재난 긴급구호품을 마련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그의 이웃 사랑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2008년 사내 직무서클인 엔진기계 반장협의회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환경정화활동과 어려운 이웃 물품지원, 집수리 등 각종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1년 7월에는 고향 마을(오곡면 구성리) 노인 40여명을 거제도로 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박씨의 나눔 활동은 부인과 두 아들의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부인 조길자(54)씨도 건설현장과 시장에서 부업으로 모은 돈을 기부금에 보탰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제 뜻을 이해하고 성금 전달에 흔쾌히 협조했다”고 말했다. 회사 동료 서명규(49)씨는 “수십년을 함께한 나도 소문을 통해 기부 소식을 알게 됐다”면서 “회사에서도 늘 솔선수범해 주위 동료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이 없었다면 나 역시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돈의 많고 적고를 떠나 서로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씨는 현대중공업 생산현장에서 총 1512건의 공정개선안을 도출하고 특허출원한 베테랑 기능인으로 지난해 12월에는 ‘대한민국 신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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