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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6·25 북한군 남침, 9·28 서울 수복 1보 방송한 전설의 아나운서 위진록

    [김문이 만난사람] 6·25 북한군 남침, 9·28 서울 수복 1보 방송한 전설의 아나운서 위진록

    [상황 1] 1950년 6월 25일 오전 7시. “임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공산군은 38선 전역에 걸쳐서 전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우리 국군이 건재합니다.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 2] 1950년 9월 28일 일몰 직전. “여기는 서울중앙방송국입니다. 여기는 서울중앙방송국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민 여러분, 오늘 새벽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완전히 탈환하고 패주하는 공산군을 추격하며 북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과 서울 수복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제1성은 이렇게 다급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KBS 아나운서 위진록(85)씨.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또한 1950년 11월 도쿄에 자리한 유엔군총사령부(VUNC)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격동의 현대사의 물줄기와 함께 파란만장한 삶의 길을 걸었다. 그의 이력을 얼핏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다. 월남한 뒤 경성역(서울역)에서 역부로 근무하다가 8·15 해방을 맞이하고 만 19세때 서울중앙방송국(KBS)의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창기의 현장 일선에서 활약했다. 김구 선생 장례식 실황중계, 이승만 대통령의 수행기자 등 현대사의 한복판을 지켰던 것이다. 현재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는 위씨가 잠시 귀국했다. 자서전 ‘고향이 어디십니까’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 15일 그를 만났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고 인사를 건네자 “규칙적인 생활과 생각, 그리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꾸준히 기록한다. 아마 늙지 않는 비결인 것 같다”면서 웃는다. 주로 어떤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번역물도 읽고 영어와 일어로 된 책도 읽는다”고 대답한다. 그는 평소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최근 펴낸 자서전도 그동안 열심히 메모해둔 결과물이다.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미국 이민길에 올라 LA 해변에서 햄버거 장사를 하면서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지금은 현지에서 수필가, 방송인,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수필집과 음악 에세이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을까. 한창 전쟁중인 1950년 11월 일본 도쿄와 오키나와에 있는 유엔군총사령부 방송 아나운서로 가게 된 배경부터 설명한다. “연희송신소(당시 고양군 연희면)에서 기거하면서 방송을 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도쿄의 맥아더사령부 심리작전국 방송담당자 매튜 중령을 만났습니다. 그는 제 방송을 자주 듣는 편이며 2차대전때 종군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린 CBS의 월터 크롱가이트와 목소리가 아주 닮았다고 했습니다. 이어 ‘한국전쟁도 이제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한달정도 도쿄에 가서 방송일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하더군요.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좋다고 대답했지요.” 맥아더 사령부의 심리작전국은 6·25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도쿄에 유엔군총사령부 방송국을 창설하고 NHK 방송망을 통해 이미 방송을 시작하고 있던 터였다. 남한과 북한으로 보내는 별도의 송신소가 작동이 됐음은 물론이다. 방송은 NHK 본사의 여러 스튜디오를 필요에 따라 사용했다. 방송은 전쟁에 관한 뉴스가 최우선이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소식, 스탈린 독재하의 소련의 내막, 김일성이 소련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해설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방송원고는 모두 미국인이 작성한 것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서울을 떠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아군 수중에 있던 평양에 공산군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평양시민들이 대동강 철교를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피난하는 모습을 보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흥남 지역에서 미 해병1사단의 해상탈출 등을 보도하면서 한달 예정이었던 체류기간이 무기한 연기 됐지요. 그렇게 도쿄에서 8년을 보낸 뒤 오키나와 사령부로 옮겨 14년을 더 근무하고 자식들 교육을 위해 식구들과 미국 이민을 가게 됐습니다.” 그는 오키나와 시절을 회고하면서 베트남 전쟁과 연관된 일화를 떠올린다. 1968년 가을 한달동안 종군기자로 베트남에 파견된다. 이때 비둘기 부대가 주둔한 나트랑 외에 맹호와 청룡부대 주둔지 등을 두루 방문했고 사이공에서는 주월한국군 채명신 사령관과 수차례 만나기도 했다. 또 베트남 전쟁이 확전되면서 한국군의 파병은 계속됐다. 자연스럽게 오키나와는 베트남에 주둔해 있는 한국군을 위해 위문차 오가는 연예인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 됐다. 이때 길옥윤과 패티 김 등 여러 연예인들과 친분을 맺기도 했다. 얘기를 다시 ‘6·25 남침 제1성’으로 돌렸다. 방송국장의 지시로 38선상(경의선의 한 중간역)에 있는 여현역에 도착한 것은 1950년 6월 10일이었다. “민심을 살피기 위해 38선이 보이는 지점에 중계차를 세우고 38선을 오가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을 했지요. 특이 동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6월 24일 밤 저는 아나운서실 숙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후배 아나운서와 11시에 야간방송을 끝내고 다음날 아침 방송순서를 점검하고 숙직실로 쓰고 있는 제2 스튜디오로 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퉁탕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것은 새벽 5시 10분이었습니다. 방송국 수위와 육군대위가 스튜디오에 급히 들어왔던 것이지요.” 육군대위는 종이 한장을 내밀면서 즉시 방송하라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종이에는 ‘오늘 새벽 북한 공산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공격을 시작했다. 국군은 모두 원대에 복귀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방송시작이 6시 30분이고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상부의 허락 없이 방송할 수 없다고 했다. 잠시후 민재호 방송국장이 국방부 정훈국장에게 확인한 뒤 원고를 급히 작성하고 제1보를 내보냈다고 위씨는 회고했다. “서울수복이 됐는데도 그해 6월 말에 이미 행방불명되거나 처형됐다고 알려진 선배 아나운서들의 소식은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평양에서 온 방송요원을 상대로 열성적으로 도운 아나운서들은 그들과 함께 도주하듯이 북쪽으로 갔고 자백서를 쓰고 포섭당해 그들 밑에서 방송한 아나운서들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으니까요.” 필사적으로 숨어 다니며 살아남은 그는 동료와 선배들이 하던 일을 도맡아 하는 등 한동안 연희송신소에서 기거하면서 열심히 방송을 하게 된다. 이국땅에서 60여년을 살고 있지만 그 기억의 편린까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2남 9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군청 토지측량기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42세때 늑막염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들과 평안북도 선천으로 이사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난 때문에 직업전선에 뛰어들 생각이었지만 돈이 없어도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에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좋은 목소리와 뛰어난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합창과 독창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학교 브라스 밴드에서 트럼본 연주를 했다. 아울러 문학서적에 심취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 학교생활에서 일탈, 모란봉 주위를 쏘다녔다. 결국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발각돼 3학년때 퇴학당했다. 이후 형이 있는 남신의주역으로 가서 역부로 생활한다.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 등의 문학서적은 꾸준히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얼마 후 어머니와 누이가 살고 있는 서울에 온 그는 낙원동 근처의 한 회사에서 사환으로 일하다 경성역의 역부로 취직한다. 이어 해방이 되면서 누이가 종로2가 근처에 술집을 열자 외상값 받으러 다니는 일을 하게 된다.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에서 ‘방송극 연구생’ 모집공고를 보고 응시해 합격한다. 그후 2주일 만에 방송드라마에 출연한다. 당시 동기생으로는 장민호, 민구, 송영란, 윤길숙 등이었다. 같은 해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하면서 아나운서의 길을 걸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20세기 격동기를 한 마리 늑대처럼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조국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아직도 내 마음의 눈물 줄기에는 희망의 꽃망울이 살아 있다”면서 ‘백년동안의 고독’을 쓴 남미의 작가 마르케스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또한 유대교 랍비이자 시인인 사무엘 울만의 말처럼 “청춘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아니냐”라고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위진록은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개성, 평북 선천 등을 전전하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40년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하고 1942년 3학년때 중퇴했다. 남신의주역 역부, 서울의 한인회사, 일본광고회사 대리점 등의 사환을 거쳐 서울역 역부로 일하면서 1945년 해방을 맞았다. 1947년 KBS 제1회 ‘방송극 연구생’ 모집에 합격했다. 장민호, 민구, 조남사 등과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했다. 같은 해 9월 KBS 아나운서 모집에 합격해 만 19세로 최연소 아나운서 기록을 세운다. 1948년 KBS 제1회 방송극 대본 공모에 입선했으며 김구 선생의 장례식 중계 등 격동기의 방송 일선에서 활약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 9월 28일 서울수복의 제1보를 방송한 아나운서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해 11월 일본 도쿄의 유엔군총사령부방송(VUNC)에 파견돼 22년동안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이민했다. LA에서 햄버거 장사 10년, 서점 등을 경영하면서 동네 신문을 발행했다. 재미 방송인협회 고문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수필집 ‘하이! 미스터 위’(1979년), ‘잃어버린 노래’(1993년), ‘낙타의 속눈썹’(1997년), ‘위진록의 커먼센스’(1999년), ‘클래식, 내마음의 발전소’(2011년) 등이 있다.
  • “가난한 사람들의 아주 작은 일상이 진리”

    “가난한 사람들의 아주 작은 일상이 진리”

    누군가는 잡스럽다, 부박하다고 할 세속의 공간과 사람들이 시 안에 북적인다. 보통 사람들의 지리멸렬하고 애잔한 일상에 비감을 느끼려는 찰나, 시인은 어느새 슬며시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눙친다. 권혁웅(46)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창비)이다. ‘시는 세속의 자식’이라 여기는 시인은 능수능란한 말재주로 세속의 풍경을 시의 언어로 절묘하게 엮어냈다. ‘편안한 수평이 되어’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봄밤), “늙으면 죽어야지” 하면서도 ‘오늘도 로맨스가 그치지 않는’ 노인대학의 노인들(불멸), ‘종이상자가 주소지인’ 노숙자들(삼국지 열전-노숙), ‘온 마을을 돌며 원주율을 만드는’ 야쿠르트 아줌마(야쿠르트 아줌마와 중국집 청년) 등 무심하게 지나쳐온 인물들이 시인의 연민과 해학에 힘입어 시로 태어났다. 세속을 시로 품은 이유를 묻자 시인은 “내 최초의 서정적인 공간이 어릴 적 살았던 돈암동 산동네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열었다. “제가 맨 처음 시를 쓰게 된 자리도, 첫사랑이 움텄던 자리도 바로 거기였어요. 보통 시인들이 나무나 새를 노래하듯이, 세속의 공간이 제 서정시의 원형이자 표상이죠. 그게 저한테는 가장 순수하고 고결하다고 할까요.” 시의 배경은 영화관, 불가마, 주부노래교실, 해장국집, 감자탕집, 순댓국집 등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하는 공간들이다. 평소 학생들에게 시를 쓸 때 ‘세상을 초대하라’고 가르치는 시인답게 그는 상호명까지 낱낱이 밝히며 우리 바로 곁의 이야기임을 주지시킨다. 이별을 앞둔 연인들의 울음을 이어졌다 토막났다 하는 순대에 비유하는 표제시처럼 말이다.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시간째/끊겼다 이어졌다 한다/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댓국을 앞에 두고/(…중략)/나는 당면처럼 미끄럽게 지나간/시간의 다발을 생각하고/마음이 선지처럼 붉어진다/(…중략)/연애의 길고 구부정한 구절양장을 지나는 동안/우리는 빨래판에 치댄 표정이 되었지’(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인연이란 잠시만 한눈팔아도 불어버리는/라면사리 같은 것/혹은 산발한 채 국물 속에서 숨죽이는/신 김치를 닮은 세월도 있어요/(…중략)/우리는 두부처럼 마음이 풀어져요/마지막에 얹는 치즈처럼 웃으며/그게 또다른 기념사진인 줄도 모르고’(의정부 부대찌개 집에서) 권혁웅의 시는 슬픔과 유머가 함께 간다. “지극해지는 순간,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월수금 오후 두시마다 사지에 못 박히고 세시면 박힌 못을 탈탈 털고 일어나는’ 어머니를 두고 ‘부활절에 관하여’라는 시로 웃음을 안기는가 하면, ‘어머니는 나뭇잎처럼 뒤척인다’에서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밴 애처로움을 담담하게 읊는다. ‘어머니는 내게 보낸 엽서다 안 와도 돼, 바쁜데 뭐,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중략) 엽서엔 도장이 찍혀 있다 성북우체국에서 검버섯을 찍어보냈다 주민쎈터에서는 다달이 팔만원을 준다 어머니는 코라다 팔만원짜리 불면증이다 나뭇잎처럼 어머니가 뒤척인다’(어머니는 나뭇잎처럼 뒤척인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어려운 시절을 견뎠다는 그에게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도 어느 순간, 작은 것 하나가 위로와 위안이 되어 줍니다. 가난하고 힘은 없지만 주인공인 사람들의 아주 작은 일상이 진리라고 생각해요. 그 바깥에서는 어떤 것도 소중한 것은 찾아지지 않는다는 깨달음, 그게 바로 저의 시이자 언어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길섶에서] 욕망의 끝/문소영 논설위원

    냉소적인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신작 ‘블루 재스민’을 봤다. 1947년 초연된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샤넬 의상과 에르메스 버킨백, 루이비통 여행용 가방을 든, 살짝 정신이 나간 금발의 재스민이 주인공이다. 자신의 본명인 자넷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재스민으로 바꾼 그녀는 ‘우월한 유전자’ 덕분에 신분상승의 꿈을 이룬다. 그러나 뉴욕 상위 1%의 일원인 재스민은 남편의 파산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가난한 이혼녀 동생 진저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제목의 블루(blue)라는 말처럼 우울한 일이다. 하지만 재스민에게선 그리 연민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녀의 삶은 타인을 착취하고 세금을 탈루하고, 법을 위반하면서 쌓은 ‘월스트리트의 신기루’, 자기기만적인 자세를 버리는 순간 이내 붕괴하고 마는 허영의 삶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종종 행복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 환상에 넘어간다면 기다리는 것은 비극일 듯싶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한국 가도 이방인”… 절절한 파독 노동자의 삶

    “한국 가도 이방인”… 절절한 파독 노동자의 삶

    유랑, 이후/최화성 지음/실천문학사/328쪽/1만 3800원 “우리는 민들레 홀씨야. 빈 몸으로 날아와 아무데다 시멘트 뚫고 살았고 번식력도 강하니까.”(312쪽) 50년 전, 20㎏짜리 가방 하나 들고 8000㎞를 날아 독일에 정착한 한국의 청춘 남녀들이 있었다. 남자들은 지하 1000m의 막장에 들어가 지열 40도가 넘는 극한의 환경에서 석탄을 캐며 ‘라인강의 기적’을 일궜다. 여자들은 병원에서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당하며 허드렛일을 감내하면서도 희생과 헌신적인 태도로 ‘동양에서 온 천사’로 불렸다. 체류 기간 3년의 제한을 받던 남자들은 체류 연장을 위해 무기한 노동권이 있던 여자들과 결혼했다. 파독 광부 7936명과 간호사 1만 32명은 그렇게 먼 이국땅에 한인사회의 뿌리를 내렸다. 파독 50주년에 맞춰 출간된 ‘유랑, 이후’는 당시 최대 탄광공업지역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한인사회를 만들었던 루르 지역의 8개 도시에서 만난 파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르타주다. 1960~1970년대 독일에 온 이들은 저마다 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다. 1977년 마지막 광부로 독일에 온 김대천씨는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삶이 싫어 가족을 데리고 한국을 떠났다. 독일에 온 지 35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독일어를 못한다. 한국전쟁 이후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큰형을 잃은 이종현씨는 광부로 일하는 틈틈이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뒤 파독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 왔다. 파독 근로자 중 3분의1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집안 곳곳에 태극기를 걸어둘 정도로 지독한 향수병을 앓으면서도 이주민의 삶을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천명윤씨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유랑인으로서의 슬픈 운명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독일은 이민국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노동 인력일 뿐이었지요. 10년 넘게 한쪽 발만 걸치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문 앞에 서 있는 심정이었지만 문을 열고 받아주지 않았어요. 이제 와서 한국에 가면 또 이방인인 거예요. 영원한 이방인의 삶이에요.”(321쪽)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일제… 유신… 광주… 낮은 곳에서의 80년

    일제… 유신… 광주… 낮은 곳에서의 80년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한국 진출 8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선교회 측은 한국 진출 80년이 되는 오는 2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의 주례로 개회미사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6개월 동안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는다고 10일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4월 27일까지 전국 순회 미사·음악회를 비롯해 6·25전쟁 골롬반선교회 순교자 영상전 등 80년사를 정리한 물품전시회 등이 잇따라 열리게 된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는 유일하게 평신도와 사제들로 구성된 국제 가톨릭 선교단체.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현장에서 함께 활동한다’는 설립 목적을 갖고 있다. 1933년 10월 29일 아일랜드의 선교사 10명이 부산항에 입항한 게 한국 진출의 시초. 선교사들은 대구교구 신학교에서 한국말을 배워 광주·목포·순천·제주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으며, 유배지 흑산도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정치인들과 협상하지 말고, 한국어를 배우라’는 초대 감목대리 맥폴린 신부의 지침을 따라 빠르게 한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활동 중인 사제 35명과 평신도 3명을 포함해 지난 80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회 신부는 266명에 달한다. 서울대교구 30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131개 성당을 건축해 한국 교회에 넘겨준 것으로 집계된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거나 추방,가택 연금된 신부도 부지기수. 6·25전쟁 중에는 골롬반선교회 신부 7명이 순교했고, 박정희 정권 때에는 선교회에서 야학과 노동사목을 폈으며 지학순 주교 투옥사건을 계기로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철수 지시를 받고도 “6·25전쟁 때에도 나가지 않았다”며 시민들과 함께한 일화는 유명하다. 정부는 1999년 선교회 신부 3명에게 독립유공훈장을 수여했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인 아일랜드 출신 오기백(63·본명 도날 오 키프) 신부는 “사회가 변한 만큼 교회도 변했고 이에 따라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며 “지난 80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울퉁불퉁 ‘코끼리 발’ 가진 中청년의 사연

    일명 ‘코끼리 발’로 알려진 기형 발을 가진 청년의 사연이 전해졌다. 중국 장시성 푸저우에 사는 올해 27세의 청년 쉬 안요는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만큼 큰 발을 가졌다. 그의 신발 사이즈는 28.5cm로 일반인과 비교하면 다소 큰 정도지만 가로폭은 무려 22.5cm에 달한다. 기형의 커다란 발이 주는 불편은 하나 둘이 아니다. 안요는 “맞는 신발이 없어 여름에는 맨발로, 겨울에는 형이 직접 만들어준 슬리퍼같은 신발을 신었다”고 털어놨다. 안요의 병명은 ‘상피병’이라 불리는 ‘림프성 사상충증’으로 땅이나 모기 등의 기생충으로 부터 감염된다.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며 안요의 사례처럼 울퉁불퉁한 코끼리 발을 갖게되며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주로 걸린다그의 딱한 사연은 최근 현지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안요는 “지역 내 신발공장 사장님이 나를 위해 특별 제작한 신발을 무료로 제공했다” 면서 “이제 겨울에도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길섶에서] 군밤/문소영 논설위원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거리의 군밤 타는 냄새가 유혹적이다. 어릴 적 겨울이 되면 ‘군밤타령’이라는 경기민요가 많이 들렸는데, 그땐 아무래도 군밤 수요가 지금보다 많지 않았나 싶다. 군밤 타령은 ‘바람이 분다’로 시작하는 1절도 좋지만, ‘눈이 온다, 눈이 와요’로 전개되는 4절이 더 감칠맛이 있다. 눈이 내리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흰 종이봉투 속 따뜻한 군밤을 꺼내먹으며 데이트하던 가난한 연인을 회고하는 중년들이 꽤 많을 것 같다. 겨울철 군밤은 군고구마와 함께 서민적인 데이트 도구였다. 남녀칠세부동석을 ‘사회적으로 감시’하던 시절 봉지의 군밤을 꺼내면서 살짝 손가락이 닿고, 닿은 손가락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면서 서로 친밀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달나라에서 토끼가 방아 찧던 시절 이야기냐고 코웃음 치겠지만, ‘수줍은 사랑’이 대세였던 1970~80년대에 이렇게 군밤에도 낭만을 입혔다. 햇밤을 삶다가 한눈을 팔아 군밤을 만들어 놓고, 새까만 냄비를 윤이나게 닦을 생각을 하니 낭만이 저만치 가 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단언컨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역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린 기차역이 화제다. 방글라데시 디카 지역의 한 기차역에서 포착된 이 사진은 이슬람 축제인 이드 알 아드하(Eid Al-Adha)에 참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린 모습을 담고 있다고 영국 일간 미러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드 알 아드하는 이슬람 달력으로 12월 10일에 해당하며, ‘하지’라고 불리는 성지순례의 마지막 날이다. 전 세계의 이슬람 교도들이 이날을 축하하며, 신에게 양이나 염소와 같은 동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다. 올해 이드 알 아드하는 지난 15일. 가족들과 함께 이슬람 축제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기차역으로 몰리며 창문에 걸터앉거나 기차 위에까지 올라타는 등 진풍경을 보였다. 이들은 축제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잡은 동물을 친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돈을 기부하기도 한다. 사진=미러 캡처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집안 덕에 성공? 열정으로 이룬 것… 한국전쟁 소재로 그림 그리고 싶어”

    “집안 덕에 성공? 열정으로 이룬 것… 한국전쟁 소재로 그림 그리고 싶어”

    ‘예술가는 늘 배고파야 하는가.’ ‘어려운 환경이 예술가의 촉을 세우고 진정한 예술을 꽃피우는가.’ 호주의 대표 화가인 데이비드 하트(42)는 이런 궁금증에 답을 안겨주는 예술가일는지 모른다. 관용구처럼 굳어진 ‘가난=예술’이란 등식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삶의 궤적 덕분이다. 작고한 아버지 프로 하트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호주 미술계에선 전설적인 화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하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장해 자연스럽게 미술계에 입문했다. 또 예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의 저택과 작업실은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 북쪽의 선샤인코스트에 자리한다. 하트의 한국 진출을 돕는 ACDC컨설팅그룹의 이민진씨는 “작가는 호주의 외딴 마을인 뉴사우스웨일스의 브로큰힐에서 태어나 자랐고 작업 중인 아버지를 보고 기저귀도 떼지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고 전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작가는 도자기, 조각, 주물 등을 섭렵하다가 16세에 직업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강렬한 생명력의 화가’로 불리며 붓보다 나이프를 이용한 화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힘찬 손놀림으로 완성한 그림들은 또렷하고 섬세하며 캔버스에 흐르는 물감이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호주 방송국인 텔스트라는 런던올림픽 기념 벽화를 그릴 호주의 대표 화가로 하트를 꼽았고, 그의 이름을 딴 머그잔과 와인이 출시되기도 했다. 호주방송위원회가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정도였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할리우드 여배우 니콜 키드먼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열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하트를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용산 전쟁박물관이 인상적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부인과 막내아들을 데리고 한국을 찾은 그는 지난 주말 용산을 다녀왔다고 했다. 이번이 두 번째 방한이다. “전쟁박물관을 둘러보며 여러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60여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전쟁은 가족을 떼어놓고 많은 아들, 딸의 목숨을 앗아갔을 겁니다. 이면에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겠죠.”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언젠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화답했다. “사람들이 흔히 호주는 전쟁의 상흔이 없다고 말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과서에 나오진 않지만 수백년 전 호주 원주민과 서구 침략자 사이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간의 내면과 자연환경을 유약 광택 기법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해 온 하트는 요즘 호주의 역사를 캔버스에 옮기며 진지한 성찰을 이어 가는 중이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그에게 무엇이 예술적 영감을 주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웃백’이라 불리는 탄광촌이 대표하는 척박하면서도 아름다운 호주의 자연환경”이라며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동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내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하트는 이번 방문에서 디자이너 이상봉과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한국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싶은 바람도 간절하다. 이번 방한길에선 리움, 대림 등 국내 대형 미술관들과 전시회 개최 의사를 적극 타진했다. 수익 내기에 급급한 상업 갤러리를 애써 피하는 이유는 자신을 상업 예술가로 바라보는 편견 때문이다. 그는 “예술가의 열정을 불태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공이 따라온 것일 따름”이라며 말을 아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새 영화] ‘벤다 빌릴리’

    [새 영화] ‘벤다 빌릴리’

    ‘벤다 빌릴리’(Benda Bilili)는 콩고의 밤 풍경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차와 사람이 어지럽게 뒤섞인 콩고는 한눈에 보기에도 혼란스러운 무법 지대다. 거리의 소년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소매치기가 뭐가 나쁘냐. 나라가 ‘개판’이니 ‘뽀릴(훔칠) 수밖에’ 없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중이다. 화면이 바뀌면 ‘거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키가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휠체어에 앉아 기타를 매만지고 있다. 비슷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하나둘 모여드는가 싶더니 이내 노래가 시작된다. “판지를 깔고 자던 내가, 빙고! 매트리스를 샀다오. 사람 팔자 모르는 일이지. 난 알아요, 언젠가 우리는 성공하리.” 프랑스의 음악 취재기자 르노 바레와 플로랭 드 라 툴라예가 공동 연출한 ‘벤다 빌릴리’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과 ‘서칭 포 슈가맨’을 잇는 음악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벤다 빌릴리’라 불리는 거리의 장애인 밴드가 음반을 내고 세계적으로 성공하기까지의 5년을 그린다.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이브라힘 페레처럼 리키는 담배를 팔며 생계를 이어 간다. 감독의 내레이션을 빌리면 “이들의 무기는 재능과 한없는 긍정 뿐”이다. 벤다 빌릴리의 중심에는 리키와 10대 소년 로제가 있다. 노래를 맡은 리키는 거리의 삶을 그대로 가사에 녹여낸다. 한창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고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이는 로제는 양철 깡통에 줄 하나를 매달아 ‘사통게’라 불리는 악기를 직접 만들어 연주한다. 연습 장소는 거리 위다. 조용하다는 이유로 선택된 녹음 장소는 동물원이다. 벨기에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앨범 작업을 시작한 뒤에도 이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하지만 “판지 위에서 태어나 판지 위에서 잠을 자는 삶”을 노래하면서도 벤다 빌릴리는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장애가 먼저인지 가난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벤다 빌릴리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삶의 화음이 다른 어떤 것보다 풍요로울 수 있음을 증명한다. 2009년 첫 번째 앨범 ‘트레 트레 포트’(아주 아주 강한)가 나오면서 벤다 빌릴리의 활동은 절정에 이른다. 영화는 흥겨운 음악과 함께 벤다 빌릴리의 성공담을 가감 없이 전한다. 다만 무명 밴드의 성공담이 이제는 다소 익숙한 데다 영화가 실패보다는 성공에 집중하는 까닭에 기대만큼 극적이지는 않다. 벤다 빌릴리는 2010년 영화가 제작된 이후 지난해 2집 앨범을 발매했다. 85분. 17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20년, 창작무대선 커다란 ‘작은신화’

    20년, 창작무대선 커다란 ‘작은신화’

    지금에야 정부나 대기업의 문화재단에서 창작 희곡을 공모하고 멘토링과 지원금까지 주고 있지만, 20년 전에는 창작 희곡 발굴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민간 극단이 공연으로 번 돈을 고스란히 쏟아부어 좋은 창작 희곡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고 그들이 뿌린 씨앗은 23편의 연극으로 무대 위에서 싹을 틔웠다. 극단 작은신화의 창작 희곡 발굴 프로젝트 ‘우리연극만들기’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1986년 창단해 지금까지 순수 창작극 위주로 공연을 해왔던 단원들은 1993년 창작 희곡 공모전을 통해 좋은 연극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최용훈 작은신화 상임연출은 “무려 6000만원을 까먹은 유서 깊은 축제였다”고 회고했다. 작은신화는 1993년 연극 ‘미스터 매킨도·씨’를 한 달 동안 60회, 보조석까지 채워가며 공연했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3000만원을 어떻게 쓸까 고민에 빠졌다. 최 상임연출은 “젊은 열정으로 연극을 하는 사람들끼리 돈을 나눠가져서 무슨 의미냐고 생각했다”면서 “연극으로 번 돈 연극에 쏟아부어 젊은 작가들에게 활로를 찾아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1993년 첫 프로젝트를 통해 ‘황구도’와 ‘두 사내’, ‘꿈, 풍텐블로’를 선보였다. 첫 프로젝트를 치르고 나서 정산해보니 적자가 6000만원. 자금을 감당할 길이 없어 매년이 아닌 격년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후 조광화, 장성희, 고선웅, 김태웅, 고 윤영선, 김민정, 오세혁 등 그동안 활발히 활동해 온 극작가와 신인들이 거쳐갔고 ‘G코드의 탈출’, ‘길 위의 가족’, ‘인간교제’, ‘우주인’ 등 23편이 빛을 보았다. 최 상임연출은 “연극계에 중추적인 작가들과 신인 작가들이 우리연극만들기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지명도를 높였다”면서 “민간 극단이 꼭 해야 하냐는 말도 들었지만, 작가들과 연극적 동지의 관계를 맺게 된 중요한 행사”라고 말했다. 올해 열리는 열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창신동’(작 박찬규·연출 김수희, 10~20일 서울 정보소극장)과 ‘우연한 살인자‘(작 윤지영·연출 정승현, 31일~11월 10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가 선정됐다. ‘창신동’은 영세 봉제공장이 빼곡히 들어선 창신동의 어느 단칸방을 배경으로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도시 빈민의 일상과 파국을 그린다. 경제성장기에 희생을 강요당한 부모 세대와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당하면서도 창신동을 떠나지 않는 여자 ‘연주’를 통해 이들이 바라는 희망이 무엇인지 묻는다. ‘우연한 살인자’는 살인을 저지른 한 남자의 기억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조작된 기억과 감추고 싶은 진실을 하나씩 드러낸다. 진실은 무엇이며 인간은 왜 진실 앞에서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02)889-3561.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우울하고 독한 캔디 “이게 현실적이야”

    우울하고 독한 캔디 “이게 현실적이야”

    드라마 속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마냥 해맑고 당차기를 바라는 건 이제 비현실적인 일일까. 드라마의 ‘캔디’ 캐릭터가 변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긍정하기보다 증오하고, 재벌과의 로맨스에 빠지지만 결코 끌려가지는 않는다. 일과 사랑을 주도적으로 쟁취하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변종 캔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9일 첫 전파를 탄 SBS 수목 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하 상속자들)에도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캔디 캐릭터가 나온다. ‘상속자들’은 재벌 2세들이 다니는 사립 고교에 서민 여주인공이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하이틴 로맨스라는 점에서 ‘제2의 꽃보다 남자’로 불렸다. 박신혜가 맡은 차은상은 ‘가난 상속자’이자 재벌 2세인 김탄(이민호)과 아찔한 로맨스를 펼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구혜선)와 비교돼 왔다. 하지만 1, 2회를 통해 드러난 은상의 모습에서 금잔디와 같이 긍정적이고 밝은 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언어 장애가 있는 어머니는 재벌가의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고, 은상은 고교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를 3개씩이나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은상에게 가난은 지긋지긋한 운명이다. 미국에서 멋진 남자와 결혼할 줄 알았던 언니가 사실은 초라하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욕까지 섞어 가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은상을 괴롭히는 건 절대적 빈곤이라기보다 상대적 빈곤이다. 은상의 어머니가 일하는 재벌집에서 남은 반찬을 가져와 밥상 위에 펼치자 은상은 “내가 음식물 쓰레기통이야?”라며 화를 냈다. 또 어머니가 재벌집 사모님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수첩을 펼쳐들고는 서럽게 울었다. 수첩에는 ‘죄송합니다 사모님’, ‘영어는 제가 잘 몰라서…빨리 외울게요 사모님’ 등 재벌과 자신의 간극을 실감케 하는 문구가 빼곡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는 온데간데없고 설움과 피해의식으로 눈물 마를 날 없는 소녀가 남았다. 최근 열린 ‘상속자들’의 제작 발표회에서 박신혜는 “캐릭터 자체는 가난하지만 그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라면서 “그동안의 캔디 캐릭터는 도움을 받으면 고마워하는 설정이 많았는데 이번엔 도움을 뿌리치고 스스로 정답을 찾아가는 캐릭터”라며 기존 캔디 캐릭터와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한동안 브라운관을 가득 채웠던 캔디들은 언제부턴가 특유의 당돌함과 엉뚱함이 지나치게 강조돼 ‘민폐’ 캐릭터로 변해 갔다. 그런 가운데 가난한 여주인공들은 보다 현실적인 면모를 갖춰 갔다. 억울하고 속상할 땐 주먹을 먼저 날리고(‘보스를 지켜라’), 스스로 속물이 되기로 다짐하면서 거짓으로 재벌에게 접근하기도(‘청담동 앨리스’) 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취업도 어렵고 취업을 한 후에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속상한 일에는 울분을 토하는 캐릭터가 여성들의 공감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MBC 토요일 오전 8시 45분) 매일 아침, 밥상을 세 번 차리는 여자 변정수는 한국인 최초로 뉴욕 패션쇼에 진출했던 모델 출신 연기자다. 그런 그녀가 아프리카 말라위로 가족과 함께 향한다. 가난하고 아픈 아프리카의 엄마들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일상을 엿본다. ■다큐극장(KBS1 토요일 밤 8시) 비행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먼 이국땅에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땀방울이 떨어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한번 잘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중동 건설에 뛰어든 이들이다. 절제된 생활, 고된 노동,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싸우며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한다. ■왕가네 식구들(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광박은 집 안의 살림도구들을 큰 가방에 쓸어담고 상남과 같이 낚시터로 향한다. 세달이 미란의 차로 살라를 태워 동네 계모임에 가 식사비를 계산하자 살라는 신이 나서 동네 아줌마들에게 세달에 대해 자랑한다. 이를 본 앙금은 속상해하고, 때마침 택배 물건을 배달하는 민중과 식당에서 마주쳐 창피해한다. ■접속 무비월드(SBS 토요일 오전 10시 50분) 충무로 대세로 떠오른 국민 연하남, 배우 이종석에게는 이상야릇한 버릇이 있다는데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가수 서인국과 ‘소녀시대’ 유리를 기겁하게 만든 이종석의 친밀도 200% 스킨십을 소개한다. ■TV 동물농장(SBS 일요일 오전 9시 25분) 평화로운 제주에서 영화 ‘추격자’를 뛰어넘는 추격전 한판이 매일 벌어지는 곳이 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간다는 오리 형제와 도망 다니기 바쁜 닭이 주인공이다. 복수심에 불탄 오리 녀석들은 추격은 기본에 잠복까지 하는 등 심상치 않다. ■명불허전(OBS 일요일 밤 9시 15분) 라디오, TV, 연극, 뮤지컬 역사의 산증인인 배우 김성원이 출연해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는 1957년 성우로 데뷔해 1966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인 ‘살짜기 옵서예’ 무대에 오르며 뮤지컬 1세대로 활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겪은 기막힌 사연과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전한다. ■서양미술기행(EBS 일요일 밤 10시 10분) 길이가 6m나 되는 거대한 그림. 알폰스 무하가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그려야 할 정도로 컸던 이 작품은 바로 ‘슬라브 서사시’다. 무하가 왜 승승장구하던 파리의 생활을 뒤로하고 체코로 돌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아주 낮고 냄새나는 곳에도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지요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아주 낮고 냄새나는 곳에도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지요

    똥바다에 게가 산다/김중미 지음/유동훈 그림/낮은산/128쪽/9500원 “아빠가 돈을 안 가져오는 것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자주 싸운다. 엄마 아빠가 싸우면 나는 다락에 올라간다. 엄마 아빠 옆에 있으면 마음이 깜깜해지고 답답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 인천에 왔을 때는 가난해도 안 싸우고 서로 위해줬는데 왜 점점 싸우게 되는 걸까? 언니가 돈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돈 때문에 싸우는 집이 우리 집만이 아니다. 옆집, 앞집 다 그런다.”(66쪽) 사남매는 빚 때문에 전남 진도에서 인천항 근처 똥바다 앞 판자촌까지 쫓겨온 참이다. 사남매의 부모와 이웃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기로 엮인 이야기는 사남매 가운데 셋째인 상미가 언니, 오빠, 동생의 일기를 꺼내 읽는 것으로 시작해 다시 자신의 일기로 되돌아오며 끝난다. 일기는 사남매가 처음 판자촌에 이사 왔을 때인 1990년부터 재개발 광풍으로 공동체가 무너지고 골목에 모여 놀던 아이들도 사라지는 2001년까지를 아우른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사태를 기점으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 격변기를 사남매로 대표되는 서민들이 어떻게 통과해 왔는지 보여준다. 아이들은 황폐한 삶에서 헛된 욕심을 품기보다는 좋은 엄마, 성실한 선원, 따뜻한 소설가 등 건강한 희망을 길어 올린다. ‘똥바다에도 게가 산다’는 제목처럼, 여리지만 강인한 아이들의 분투가 믿음직하고 뭉클하다. ‘괭이부리말 아이들’(1999)로 유명한 김중미 작가의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2002)를 일부 보완해 펴낸 개정판이다. 작가는 “우리는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것들만 보며, 익숙함에 자신도 포함되길 바라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곤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삶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곡진하게 당부한다. “눈길을 더 멀리, 더 넓게 보내고, 더 낮추어 보세요.” 초등 4학년부터.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추장 아들이 컨설턴트 된 사연

    그들은 왜 신발 대신 휴대전화를 선택했는가/여한구 지음/알마/316쪽/1만 6500원 ‘나머지 국가’라는 말이 있다. 인도 출신의 저명한 미국 칼럼니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가 ‘미국 이후의 세계’라는 저술에서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다분히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명명된 이 용어는 이제는 점점 옛말이 돼 가고 있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난과 부패 그리고 전쟁의 악순환에 빠져 있던 ‘나머지 국가’들이 지금은 당당히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나머지 국가’들이 경제 성장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 5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은 오랜 내전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에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유엔과 세계은행에서는 대규모 지원 방안을 발표했고 콩고는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신간 ‘그들은 왜 신발 대신 휴대전화를 선택했는가’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나머지 국가’들이 어떻게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됐는지, 또 그 발단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다루고 있다. 개발도상국 현장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상세히 들여다본다. 아프리카 추장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땅을 밟은 지 7년 만에 개도국 출신의 엘리트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세계은행 컨설턴트가 된 사람의 이야기 등은 충분히 흥미를 끌고도 남는다. 이렇듯 신발은 없어도 휴대전화는 가져야 하는 아프리카 젊은이들, 세계 곳곳에서 글로벌화를 이끄는 디아스포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의 이야기 등을 자세히 언급한다. 아울러 경제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속에서 점점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한국의 모습도 그렸다. 2010년부터 세계은행 선임투자정책관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개도국 거리의 굶주린 사람들에서부터 엘리트로 구성된 최상위 계층에 이르기까지 두루 접촉하면서 느꼈던 수많은 생각들을 이동하는 차에서, 비행기에서 틈틈이 메모해 두었다가 책으로 펴냈다. 국제개발 현장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만하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커버스토리] 밥그릇이 부른 세대갈등- 정책으로 본 노년층 우대의 ‘허와 실’

    [커버스토리] 밥그릇이 부른 세대갈등- 정책으로 본 노년층 우대의 ‘허와 실’

    “선거 때마다 노인복지 공약만 넘쳐난다. 결국 재원은 젊은 층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 아닌가.”(서울지역 사립대 재학 중인 20대 A씨) “청년층을 위한 공약도 많다. 노인복지 정책은 젊은 사람들이 언젠가 누릴 혜택이다.”(퇴직 후 커피숍을 운영 중인 60대 B씨)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선거 공약이나 정부 정책을 둘러싼 세대 간 입장차도 뚜렷해지고 있다. 세대를 막론하고 삶은 퍽퍽해지는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나랏돈은 정해져 있으니 ‘2030세대’와 ‘5060세대’의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초연금을 포함한 복지 정책과 정년 연장 등의 고용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그야말로 첨예하다. 세대 갈등이 사회 분열의 새 뇌관으로 급부상한 가운데 표심에 민감한 정치권도 눈치만 살피고 있다. ‘정부 정책을 놓고 불만의 목소리가 큰 쪽은 청년층이다.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에 진입한 이후 노인 우대정책이 점점 노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세대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지난해 18대 대선에서 각 후보들은 중·장년 세대와 고령층의 마음을 뺏기 위한 공약을 여럿 앞세웠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의 기초연금 지급 ▲공공 노인 일자리의 참여수당을 현재(20만원)의 2배로 단계적 인상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노인 어금니 임플란트 비용의 건강보험 적용 등을 내세웠다. 문재인 통합민주당(현 민주당) 후보도 ▲기초 노령연금 2배 인상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권자를 2017년까지 전체 노인의 10%까지 확대 ▲노인 치매병원 확충 ▲노인 틀니(임플란트 포함) 지원 대상을 현행 75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확대 등을 내놓았다. 노인복지 공약은 많은 예산이 드는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 중심인 청년 공약보다 유권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광재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두 후보의 공약별 예산을 분석해 보니 박 후보는 어르신 지원과 보육 문제 해결을 위한 공약에 많은 재원을 편성했고, 문 후보는 서민과 중산층, 차상위계층 공약에 예산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실버 세대’와 ‘여성’을 핵심 공략층으로 삼았는데 이 전략이 성공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박 후보는 ‘5060세대’로부터 몰표를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8대 대선 당시 50대 투표율은 82.0%로 가장 높았고, 60대가 80.9%로 뒤따랐다. 기표소에 들어선 50대 가운데 62.5%(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기준), 60대 이상 가운데 72.3%가 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반면 문 후보는 50~60세 이상을 뺀 모든 연령층에서 박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었지만 5060세대의 응집력을 극복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어르신들이 이 가난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데 고생을 많이 했고,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사회적으로 보답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18대 대선의 학습 효과로 향후 공직 선거에서는 5060세대를 향한 정치권의 구애가 한층 뜨거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1일 “정책 공약은 기본적으로 모든 계급과 계층을 겨냥해 마련하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아무래도 50대 이상 세대에 더 초점을 맞출 듯하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 국민이 빠른 속도로 늙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에서 ‘실버 파워’는 갈수록 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50세 이상 유권자 수는 1997년 27%에서 2010년 38%로 치솟았고 2020년 46%, 2030년에는 53%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은퇴자협회(AARP)처럼 국내에 거대한 노인 이권단체가 등장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AARP는 전직 대통령 등 3000만명 이상의 회원을 거느리고 100명이 넘는 로비스트를 고용해 행정부와 의회 등에 입김을 불어넣는다. 저소득 노인에게 무료 의료혜택을 주는 ‘메디 케어제’(노인의료보험)가 AARP의 압박으로 탄생한 대표적 제도다. 정치권은 “세대 갈등의 양상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까닭에 정책 마련 때 고민이 깊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예전에는 부모 세대가 사회·문화적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녀를 짓누르려 하면 자식 세대가 반항하는 구도로 갈등한 반면, 지금은 일자리와 복지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놓고 이권 다툼 양상으로 다툰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은 “요즘 세대 갈등은 기회와 자원을 둘러싼 싸움”이라면서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커져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갈등이 심각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책이나 공약을 특정 세대만을 위한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예컨대 반값 등록금은 20대를 위한 정책도 아니고, 기초연금은 노인만의 정책으로 볼 수 없다”면서 “등록금 인하는 부모인 5060세대에게 좋고, 기초연금제도는 언젠가 노인이 될 젊은 세대에게도 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노년층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오해하지만 노인을 필요로 하는 직종과 청년을 원하는 직종은 크게 겹치지 않는다”면서 “정당이나 정부는 연금, 일자리 정책 등 특정 세대에만 도움이 될 것 같은 정책이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음을 홍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용술 ‘청년연합 36.5’ 대표는 “노년층 공약 때문에 청년층이 소외받는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청년을 위한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 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출범해 기대했지만 역할이 없다”고 꼬집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김민석기자 shiho@seoul.co.kr
  • 말이 닿지 못해 몸이 먼저 알다

    말이 닿지 못해 몸이 먼저 알다

    여름의 맛/하성란 지음/문학과지성사/368쪽/1만 3000원 하성란의 다섯 번째 소설집 ‘여름의 맛’은 언어가 미끄러지는 곳에서 출발한다. 일본 교토에 간 표제작의 주인공 ‘최’는 금각사(킨카쿠지)를 은각사(긴카쿠지)로 잘못 알아들은 택시 기사 탓에 계획에도 없던 은각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유학생은 최에게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 한 알을 건넨다. 한 입 가득 베어 문 복숭아의 맛은 최에게 말들의 차이로는 붙잡을 수 없는 어떤 생의 감각을 남긴다. ‘여름의 맛’에서는 말과 의식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고 존재의 잉여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몸의 이물감이 도드라진다. ‘제비꽃, 제비꽃이여’의 화자는 “언제부턴가 늘 1센티미터 정도 허공을 떠서 다니는 느낌” 속에서 “내가 나처럼 여겨지지 않”으며, ‘순천엔 왜 간 걸까, 그녀는’의 주인공은 “본인조차 생경스러울 만큼 낯선 모습”의 사진을 발견하고 “‘이 여자는 누구야?’라고 되물을 뻔”한다. 그 이물감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며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이상한 어떤 것”(‘오후, 가로지르다’)이다. 말 되어지지 않은 존재의 이면이 있다는 불안과 의문은 때로는 도플갱어로(‘두 여자 이야기’, ‘순천엔 왜 간 걸까, 그녀는’) 때로는 쌍둥이로(‘알파의 시간’) 때로는 엉덩이에 돋아난 압정으로(‘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불쑥 솟아난다. 화자를 달리하고 말을 변주해 설명하고(‘여름의 맛’), 무의식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미지의 화자를 괄호 안에 등장시켜 부연하더라도(‘오후, 가로지르다’) 말과 사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도리어 멀어진다. 말의 그물망을 벗어나 잃어버린 몸으로 인물들을 데려가는 것은 맛과 향, 촉각 같은 감각이다. ‘두 여자 이야기’의 ‘김’은 홍어애탕을 먹고 “두 콧구멍이 뻥” 뚫리며 최의 도플갱어를 본다. 감옥 같은 큐비클들의 공간에 갇혀 살던 ‘오후, 가로지르다’의 주인공은 우연히 사무실에 풀린 뱀이 발목을 휘감고 지나가는 순간 의자 위에 펄쩍 뛰어올라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를 직시한다. ‘카레 온 더 보더’의 주인공은 식당에서 카레 냄새를 맡고 10여년 전 다섯 명의 노인을 모시며 살던 친구의 집에서 “늙음과 죽음 그리고 가난의 냄새”를 맡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몸이 환기하는 감각은 존재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본질적이고 분해 불가능한 죽음의 경험에 닿는다. 복숭아의 맛은 싱그럽되 마냥 달콤하지는 않다. ‘카레 온 더 보더’가 내뿜는 죽음의 향은 ‘여름의 맛’이 전하는 생의 감각들과 일종의 대구를 이룬다. 작가는 존재의 휘장을 슬쩍 들춰 죽음의 냄새를 맡은 뒤에도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대신 “앞에 펼쳐진 풍경을 응시”(‘알파의 시간’)함으로써 삶을 감각하고 지켜볼 뿐이다. 언어가 미끄러지는 곳에서 삶의 감각은 사뿐히 몸 위에 내려앉는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기껏 복숭아 한 알처럼 사소한 것”이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한세대, 나이지리아 영부인에 명예박사 수여

    한세대, 나이지리아 영부인에 명예박사 수여

    한세대는 10일 나이지리아 대통령 부인 페이션스 굿럭 조너선(왼쪽·56)에게 명예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김성혜(오른쪽·71) 총장은 축사를 통해 “빈곤퇴치 및 복지 증진을 위해 많은 일을 추진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서 부국으로 성장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조너선은 사회적 약자층을 위한 정책을 꾸준히 펼치는 등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의 복지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학위 수여식에는 데스몬드 아카워 주한 나이지리아 대사와 외교부 관계자, 한세대 교직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조너선은 “한세대에 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어려움에 놓인 전 세계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뻔하지 않게… 김은숙표 ‘하이틴 로맨스’

    뻔하지 않게… 김은숙표 ‘하이틴 로맨스’

    김은숙 작가의 마법이 이번에도 통할 것인가. 하반기 기대작으로 손꼽혀 온 SBS 새 수목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상속자들’이 9일 밤 10시 첫 방송된다. 이 작품은 드라마 ‘온에어’,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등을 히트시킨 김은숙 작가가 대본을 쓰고 ‘꽃보다 남자’로 한류스타로 급부상한 이민호가 손잡아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는 재벌 2세 김탄(이민호 분)과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받은 차은상(박신혜),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질투하는 김탄의 약혼녀 유라헬(김지원)을 배치해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의 흥행 공식을 충실하게 따랐다. 여기에 김우빈, 최진혁, 제국의 아이들의 박형식, 씨엔블루의 강민혁, 에프엑스의 크리스탈 등 젊은 스타들로 화려한 진용을 갖췄다. 극중 은상은 미국에서 결혼하는 언니를 만나러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언니와 대판 싸우고 김탄의 집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다. 한국에 돌아온 후 명문가의 자제들이 가득한 제국고에서 김탄을 다시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은숙 작가는 “같은 재벌, 혹은 같은 가난한 여주인공이더라도 기존 드라마 캐릭터와 다른 행보를 걷는 게 클리셰(상투적인 표현)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새로운 소재가 아닐 때에는 남들이 상상하지 못한, 반보(半步) 앞선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26세인 이민호의 극중 나이는 18세로 무려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난다. 그는 “‘꽃보다 남자’가 끝나고 4년이 흘렀는데 20대가 가기 전에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한 감정을 연기해 보고 싶었다”면서 “일단 앞머리를 내려 최대한 어려보이게 하고 현장에서도 동료에게 장난도 치면서 어리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역인 박신혜는 “극중 차은상은 무조건 도움을 받고 고마워하는 캔디 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가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KBS 2TV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큰 사랑을 받은 강민혁은 제국그룹 회장실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둔 윤찬영을 연기한다. 재벌 2세들이 즐비한 제국고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는 밝은 캐릭터로 차은상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는 “대본에 충실하고 캐릭터에 맞게끔 연기하면 드라마에서 자연스레 돋보이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제국의 아이들의 박형식은 국내 최대의 로펌 상속자 조명수로 분한다. 그는 “드라마를 보며 ‘톡톡 튀는’ 상큼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사설] 국민 상식 비웃는 진보당 대리투표 무죄 판결

    서울중앙지법이 통합진보당 경선과정에서 대리투표를 한 진보당 당원 45명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진보당의 당내 경선은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를 뽑는 선거였다. 그동안 대리투표를 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 11명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정당의 대리투표가 불법이 아니라는 이번 판결은 일반의 법 상식으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의와 선거제도의 근간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재판부가 이번에 무죄 판결을 내린 근거의 핵심은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 및 대통령 선거에 대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등 4대 원칙이 명시돼 있지만 당내 경선에 대해서는 이런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당내 경선에서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도 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당내 경선에서 재산이 많은 당원들과 남성 당원들에게는 가난한 당원이나 여성 당원들보다 투표 기회를 더 주고, 그것도 남이 대신해서 공개적으로 의사표시를 해도 된다는 것인가. 선거 관련 규정이 없다고 해도 4대 원칙은 민주주의의 요체다. 더구나 진보당의 당내 경선 부정은 누가 봐도 과거 당권파들의 ‘조직적 행위’로 인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측면은 얼마나 고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두명도 아니고 수십명이 단순히 신뢰 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부가 대리투표를 적법하다고 해석한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라고 본다. 검찰이 대리투표 행위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아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듯이 이번 판결을 둘러싸고 법리 논쟁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당내 경선을 공직선거법의 범주에 넣기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당의 경선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광주지법 등 6개 법원에서 “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 원칙은 근대 선거제도를 지배하는 원리로, 간접적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당내 경선도 예외는 아니다”며 대리투표를 한 11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검찰이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상급 법원에서 사실상 대리투표를 조장하는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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