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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가난과 폭압의 땅’ 아프리카·남미 그들에게 축구는 치유이자 해방구/정윤수 스포츠평론가

    [특별기고] ‘가난과 폭압의 땅’ 아프리카·남미 그들에게 축구는 치유이자 해방구/정윤수 스포츠평론가

    며칠 전 방송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우리 대표팀이 속한 H조 전력을 분석하면서 2002한·일월드컵 스타 출신인 해설위원들이 아프리카의 알제리를 묘사하는 언어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중해 연안의 오래된 이 나라에 대해 오직 아프리카란 말만 갖다붙일 뿐이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신체적인 특성이니 ‘아프리카라서 흥분을 잘한다’느니 ‘아프리카 선수들은 돈 문제가 많다’느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슬픔과 분노까지 느꼈다. 그러나 우선 그들이 말한 ‘아프리카’의 알제리 선수들은 대다수 프랑스 출신이거나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는, 일찌감치 유럽 축구문화에서 성장하고 활약해 온 선수들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알제리뿐만 아니라 카메룬, 나이지리아, 가나, 코트디부아르 등 거의 모든 아프리카 선수들이 그렇다. 오랜 식민지 역사가 낳은 서글픈 산물이지만, 그들은 영어도 잘하고 프랑스어도 잘한다. 우리의 피상적인 이해와 달리 유럽 역사의 절반은 아프리카와 혼융해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란 단어다. 그들의 아프리카, 아니 우리 모두의 고정관념 속 아프리카는 어떤 이미지란 말인가. 이미 1970년대에 소설가 최인훈은 ‘회색인’을 쓰면서 우리는 왜 실제의 아프리카가 아니라 왜곡된 아프리카를 상상하게 되었냐고 캐물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프리카는 문명과 거리가 먼, 거칠고 야만적인, 돈만 주면 뭐든지 할 것 같은 이미지로 왜곡돼 있다. 이 같은 인종주의적 편견이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분석한 한양대 조성식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그 편견은 아프리카 선수의 ‘스피드, 파워, 근육질 등의 신체적 특징을 강조하는 표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 팀들은 체계적인 훈련과 합리적인 전술보다는 탄력 넘치는 신체적 능력으로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런데 보라. 평가전 3연승을 거둔 알제리에는 이청용 같은 선수가 대여섯 명씩 있는 듯하며, 우리를 4-0으로 꺾은 가나에는 박주영이나 손흥민 같은 선수가 즐비하지 않던가. 브라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니 남미 쪽도 살펴보자.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케스는 남미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구의 지식과 언론이 주조한 왜곡된 이미지로는 이 대륙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브라질이라면 낮에는 공을 차고 밤에는 삼바를 추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랜 식민 지배를 떨치고 독립국가를 일궈냈지만 군사독재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도모해 오늘에 이른 나라가 브라질이다. 그들의 삼바는 이 모든 시련과 희망이 교차된, 쓰디쓴 무곡이다. 남미를 대표하는 소설가 갈레아노는 “영혼을 애무해 주는 삼바에 몸을 맡기면 가난한 자가 왕이 되고 불구자가 일어서고 따분한 자가 아름다운 미치광이가 된다”고 썼다. 축구는 말해 무엇하랴. 브라질의 축구 경기장은 잠시나마 가난을 잊게 해 주는 치유의 공간이었고 축구공은 폭압적인 군사독재를 버티게 해 준 마술적인 도구였다. 역사상 이 둥근 물체를 가장 현묘하게 찼던 펠레는 군사정권과 축구협회의 무한 권력에 맞서 싸웠던 인물이며 그 뒤를 잇는 호나우지뉴는 세계 시민운동의 요람인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브라질월드컵은 이런 열망 속에서 열린다. 자, 이젠 아프리카와 남미를 제대로 보자. 왜곡된 시선과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축구를 제대로 음미하는 게 스무 번째 월드컵을 맞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 불임·대리모·복수… ‘막드 여신’ 복귀작 명불허전

    불임·대리모·복수… ‘막드 여신’ 복귀작 명불허전

    연희(장서희)는 자신의 연애를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남자친구를 잃었다. 3년 뒤 결혼을 했지만 자궁암 수술로 불임 상태가 됐다. 시어머니는 연희에게 이혼을 종용하더니 급기야 ‘대리모’라는 제안을 건넨다. 한편 죽은 남자친구의 여동생 화영(이채영)은 가난한 삶을 살다 우연히 연희를 만난다. 그리고 연희의 남편이 과거 자신을 장난삼아 만나다 버렸던 남자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을 망쳐버린 장본인을 연희라고 생각한 화영은 대리모가 돼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시월드’와 불임, 복수,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로 만든 비빔밥에 ‘대리모’라는 강력한 양념까지 끼얹었다. 지난 2일 시작한 KBS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다. ‘막드(막장드라마)여신’으로 불리는 장서희의 복귀작이자 KBS ‘루비 반지’의 기획과 대본을 담당했던 곽기원 PD와 최순영 작가가 다시 손을 잡았다. 대리모라는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겠다는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빠르고 자극적인 전개로 시청률 15% 고지를 넘었다. 네티즌까지도 ‘믿보막’(믿고 보는 막드)이라 치켜세울 정도다. “막장드라마도 하나의 장르”(장서희)라는 말처럼 막장 드라마는 나름의 패턴을 갖추면서 장르 내 세분화까지 이뤄지고 있다.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여주인공의 복수극(‘아내의 유혹’, ‘루비반지’), 시월드, 불륜과 패륜, 가부장제 등 가정 내의 온갖 문제점들을 버무려낸 드라마(‘왕가네 식구들’, ‘백년의 유산’), 내용과 전개가 상식의 선을 넘어선 드라마(‘오로라 공주’, ‘신기생뎐’) 등으로 나뉘고 있는 것이다. ‘뻐꾸기 둥지’는 복수를 위해 대리모가 된 여자와 그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한 여자의 갈등을 그린 전형적인 복수극이다. 친정어머니 앞에서 이혼을 종용하는 시어머니와 아들의 제사비용을 콜라텍에서 탕진하는 어머니, 자신을 사랑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자동차로 부족하면 오피스텔 열쇠를 줄까?”라고 내뱉는 남자 등 막장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믿보막’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빠르고 자극적인 전개가 나름의 설득력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리모 문제가 마냥 비현실적이기만 하지는 않은 데다 두 주인공의 상황 설명도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드라마의 내용이 현실에서 존재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드라마 안에서만큼은 극적 리얼리티가 확보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막장드라마가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되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막장으로 규정하는 데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제는 불륜이나 시월드, 복수 등의 소재가 아니라 이야기 전개의 개연성과 설득력을 두고 평가가 이뤄지는 분위기다. 윤 교수는 “그리스 비극도 출생의 비밀과 불륜 등의 소재로 가득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고 있지 않느냐”며 “‘뻐꾸기 둥지’는 혈연에 대한 집착과 대리모 등의 문제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날 데려가요” 사람 등에 업힌 ‘겁 없는 염소’ 포착

    “날 데려가요” 사람 등에 업힌 ‘겁 없는 염소’ 포착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성의 등에 업힌 ‘겁 없는 염소’의 모습이 포착됐다.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의 한 남성은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에 들어서자마자 행인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등 뒤에 성인 몸집만한 커다란 염소 한 마리가 업혀 있었기 때문.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남성은 등에 거대한 동물을 업은 채 묵묵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으며, 염소 역시 편안한 모습으로 업힌 채 도로를 빠르게 지나갔다. 염소는 앞다리를 이용해 남성의 어깨 윗부분을, 뒷다리를 이용해 아랫부분을 꽉 붙들어 매우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떨어지지 않도록 앞다리와 뒷다리를 단단히 묶은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남성이 왜 염소를 업은 채로 자전거를 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30초 분량의 해당 동영상은 유투브 사이트에서 큰 화제가 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이 남성의 독특한 가축 운반이 아마도 극심한 가난 때문이며,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가축을 직접 운반 또는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맥도널드, 여배우 첫 토니상 그랜드슬램

    배우 오드라 맥도널드(왼쪽·44)가 연극·뮤지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연극 ‘에머슨 식당의 레이디 데이’(Lady Day at Emerson’s Bar&Grill)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여배우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6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맥도널드는 개인 통산 6관왕과 함께 연극과 뮤지컬에서 주연상과 조연상을 모두 받는 기록을 남겼다.그는 1994년 뮤지컬 ‘회전목마’(Carousel)로 토니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토니상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연극 ‘마스터클래스’(Master Class)와 뮤지컬 ‘래그타임’(Ragtime), 연극 ‘태양 아래 건포도’(A Raisin in the Sun·영화 제목은 ‘월터의 선택’)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지난 2012년에는 뮤지컬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에서 처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재즈가수 빌리 할러데이의 일생을 그린 이 작품에서 열연한 맥도널드는 토니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그랜드 슬램에 성공할지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연극 ‘…레이디 데이’는 여우주연상과 함께 연극 부문 음악상(브라이언 로넌)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의 이야기를 담은 ‘올 더 웨이’(All the Way·연극), 가난한 남성이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사랑과 살인에 관한 신사의 안내’(A Gentleman’s Guide to Love & Murder·뮤지컬)에 각각 돌아갔다. 연극 부문 연기상은 브라이언 크랜스턴(남우주연상·‘올 더 웨이’), 마크 라일런스(남우조연상·‘십이야’), 소피 오코네도(여우조연상·‘태양 아래 건포도’)가 각각 수상했다. 뮤지컬 부문 연기상 수상자로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오른쪽·남우주연상·‘헤드윅’)와 제시 뮬러(여우주연·‘뷰티풀’), 제임스 먼로 이글하트(남우조연·‘알라딘’), 레나 홀(여우조연상·‘헤드윅’)이 각각 선정됐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한방 관광명소 만드는 동대문

    한방 관광명소 만드는 동대문

    동대문구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방 관광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구는 흩어져 있는 지역 관광자원을 하나로 묶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관광 코스 개발’ 정책의 첫 번째로 ‘한방과 함께 느끼는 건강체험 코스’를 마련했다고 9일 밝혔다. 서울 약령시장과 한의약박물관, 경희대 한의학역사박물관 등을 하나로 묶어 체험과 볼거리, 쇼핑 등이 가능하도록 꾸몄다. 먼저 제기동 서울약령시는 시내에서 소비되는 인삼과 꿀의 75%, 전국 한약재의 70%가 유통되는 곳이다. 서울의 최대 한약재 시장이다. 4번 출입문 길목에는 한방 카페 ‘약령성’이 있다. 시장에 대한 각종 정보뿐 아니라 좋은 약재로 만든 쌍화차와 오미자차 등 다양한 한방차를 맛볼 수 있다. 한방 비누 만들기와 스트레스를 없애 주는 한방 향주머니 만들기 등의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시장 건너편 한의약박물관은 2006년 선조들의 우수한 한의약 문화를 알리기 위해 문을 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3D로 된 대형 화면에서 음악과 함께 조선 때 가난하고 병든 백성을 돌보던 보제원에 관한 설명이 나오고, 이어 문이 열리면서 한의약에 관한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한약재 350여종을 선보이는 전시관에서는 약재에 얽힌 전설을 해설사들의 재미난 풀이로 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상 체질검사, 가속도맥파와 혈관검사를 통한 스트레스 검사, 약첩 싸기, 약재 향주머니 만들기, 한방차 시음 등의 체험도 가능하다. 경희대 한의학역사박물관은 고전 의서와 임상기록 등 100여권의 서적과 한의학 관련 유물 30여종 및 역사적 가치가 높은 500여점 이상의 다양한 자료들과 한의학이 발전해 온 역사적 과정을 담은 설명문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유덕열 구청장은 “우리 한의학 역사와 각종 한방 재료를 믿고 사고 각종 체험이 가능한 곳이 바로 동대문”이라고 말했다. 또 “한방에 친숙한 중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시민들을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 정책을 가다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뮤지컬 영화 ‘저지 보이스’로 돌아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할리우드의 거장이다.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도 명성을 굳힌 지도 오래다. 이스트우드가 올해 뮤지컬 영화 ‘저지 보이스(Jersey Boys)’로 돌아왔다. 이미 뮤지컬로 이름을 떨친 ‘저지 보이스’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스트우드 작품이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저지 보이스’는 뉴저지 거리에서 살던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아이들 4명이 위대한 팝스타로 거듭나는 내용이다. 뮤지컬은 그래미상 ‘최고 뮤지컬 앨범상’뿐만 아니라 주요 상을 휩쓸었다. 이스트우드는 9일(현지시간) 뉴욕 엔젤로 갈라소 하우스에서 열린 영화 ‘저지 보이스’의 시사회 겸 디너를 위한 행사에 참석했다. 전설적인 ABC 뉴스 앵커였던 바바라 월터스, 영화 ‘저지 보이스’에서 주연을 맡은 크리스토퍼 웰켄 등이 함께 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저지 보이스’ 위해 바바라 월터스까지

    미국 ABC 뉴스의 간판 앵커였던 바바라 월터스(76)이 9일 뉴욕 엔젤로 갈라소 하우스에서 열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뮤지컬 영화 ‘저지 보이스’ 시사회에 참석했다. 바바라 월터스는 지난달 16일 50년간 몸담고 ABC 방송사를 은퇴했다. 영화 ‘저지 보이스’는 뉴저지 거리에서 살던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아이들 4명이 위대한 팝스타로 거듭나는 내용이다. 뮤지컬은 그래미상 ‘최고 뮤지컬 앨범상’뿐만 아니라 주요 상을 휩쓸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경남 의령 대표브랜드 의령소바, 전국구로 나선다

    경남 의령 대표브랜드 의령소바, 전국구로 나선다

    여름철 별미인 소바. 시원한 살얼음 육수와 메밀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져 한여름 더위도 말끔히 날려주는 여름철 인기음식이다. 메밀소바는 맛도 맛이지만, 메밀 자체가 찬 성질의 띄고 있어 여름철 무더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별미다. 또한 성인병과 변비를 예방하고 모세혈관 강화와 체중감량, 여성 냉증 완화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본격적인 여름철을 앞두고 소바 맛집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남 의령 역시 메밀소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으로, 그 중에서도 ‘의령소바’는 경남을 대표하는 맛집 브랜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의령소바(www.uiryeongsoba.co.kr)는 경남지역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있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의령지역의 전통과 특성을 반영해 다양한 메밀소바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사골과 과일, 한약재 등을 사용해 우려낸 진한 육수가 일품이며, 이러한 입소문을 타고 점점 전국구 브랜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의령소바는 최근 SBS일일드라마 ‘사랑만 할래’의 제작지원에 나섰다. 지난 6월 2일 첫 방영된 ‘사랑만 할래’는 미혼모와 연상연하 커플, 혈육과 입양, 가난한 삶의 편견을 이겨내는 여섯 남녀의 로맨스와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령소바’는 극중에서 김예원이 엄마와 함께 운영하는 소바전문점으로 소개된다. 김예원과 윤종훈의 연상연하 러브스토리는 코믹한 로맨스로 그려지며, 스토리 전개상 ‘의령소바’의 매장도 방송을 통해 꾸준히 노출될 전망이다. 의령소바의 관계자는 “이번 사랑만 할래 드라마의 제작지원을 통해 전국적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주력할 계획”이라며 “드라마와 함께 의령소바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기울여주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명인·명물을 찾아서]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천재 화가 이중섭과 서귀포. 이중섭(1916~1956)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인 평남 평원군을 떠나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제주 서귀포로 피란을 왔다. 서귀포 바다 섶섬이 보이는 초가집 한 평 남짓한 셋방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고달픈 피란살이를 했다. 1년여의 피란 생활을 마치고 그해 12월 이중섭은 서귀포를 떠났다. 하지만 서귀포는 이중섭과의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97년 그가 살았던 옛 삼일극장 일대를 ‘이중섭거리’로 이름 짓고 이중섭이 세 들어 살던 초가집을 복원했다. 2002년 11월에는 그가 피란살이를 했던 초가집 바로 옆에 이중섭미술관을 세웠다. 문을 연 지 13년째를 맞는 이중섭미술관은 이제 서귀포를 대표하는 문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개관 당시 미술 애호가들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파도와 물고기’, 은지화인 ‘가족’, ‘물고기 아이들’ 등 이중섭 원화 8점을 흔쾌히 내놨다. 이듬해에도 ‘파란 게와 어린이’란 작품을 기증받았다. 가난하고 절박한 피란 시절이었지만 서귀포에서 이중섭은 이상 세계를 발견해 작품에 몰두했다. 전쟁이란 암울한 현실과는 무관한 남국의 평화로움을 담은 ‘서귀포의 환상’과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달구지를 타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이중섭 가족의 모습을 기록한 ‘길 떠나는 가족’ 등을 그렸다. 2009년 이중섭미술관은 10억원을 들여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과 ‘꽃과 아이들’ 등 그의 원화 작품 2점을 구입했다. 규모가 작은 지역 미술관이 예산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서귀포시와 시민들은 이중섭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 흔쾌히 지원했다. 2012년에 은지화 1점을 추가 구입했고 지난해 은지화 2점을 기증받아 이중섭의 원작 14점을 전시 중이다. 2012년 11월에는 일본에 거주 중인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94·한국명 이남덕)가 서귀포를 직접 찾아와 이중섭의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했다. 야마모토는 이중섭으로부터 사랑의 징표로 받았던 팔레트를 70여년간 고이 간직하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서귀포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요즘 이중섭미술관은 제주 올레 6코스가 지나가면서 문화 올레꾼들의 발길이 넘쳐 난다. 올해 들어 벌써 10여만명이 미술관을 찾았고, 미술관 바로 아래 이중섭이 살았던 초가집에도 그의 서귀포 행적을 엿보려는 관람객이 줄을 잇는다. 미술관은 올해 관람객이 2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국내 최초로 화가의 이름이 붙여진 이중섭거리에는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등 그의 작품을 형상화한 조형물 등이 설치돼 거리에서도 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이중섭미술관 인근에서 주말마다 펼쳐지는 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시장에도 올해 들어 4만명이 찾았다. 문화예술디자인시장에서는 지역의 작가와 동아리, 시민이 손수 만든 목공예품, 도자기, 퀼트공예품, 천연염색, 한지공예품 등을 전시 판매하고 은지화와 탁본 체험도 할 수 있어 인기다. 청년 작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이중섭미술관 창작 스튜디오도 해마다 전국에서 희망자가 넘친다. 이중섭거리 카페 바농에서는 제주 올레의 상징인 간세 인형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이중섭의 사랑과 서귀포 피란 시절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일본 영화제작사인 우쓰마사는 지난해 일본과 한국에서 영화 ‘이중섭의 아내’(감독 사카이 미쓰코)를 촬영했다. 부부는 이중섭이 도쿄의 미술학교에서 유학할 때 만나 194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결혼했다. 야마모토가 직접 출연해 피란 시절 살았던 초가와 인근에 조성된 ‘이중섭 문화거리’, 이중섭 작품의 중심 무대였던 서귀포 바닷가 등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일본에서 시사회를 연 뒤 올해 개봉될 예정이다.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는 “이중섭과의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이중섭 사랑 열기가 대단하다”며 “서귀포 칠십리 아름다운 바다와 문화 예술을 함께 즐기려는 문화 올레꾼들의 명소로 해마다 관람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자녀 10명 낳은 中부부 “피임법 몰라서…”

    자녀 10명 낳은 中부부 “피임법 몰라서…”

    중국에서 피임 방법을 몰라 법을 어기고 자녀를 10명이나 출산한 부부가 있어 이슈로 떠올랐다. 현지 언론의 8일자 보도에 따르면 장쑤성 피저우시에 살고 있는 류(劉, 58)씨는 중국의 산아제한정책(한가구 당 한자녀 출산)을 어기고 무려 10명(4남6녀)의 자녀를 낳았다. 이중 7번째 아이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남은 9명의 아이들과 어려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현재 외지에서 유학중인 두 아이들을 제외한 7명의 아이들과 류씨의 고향인 피저우시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산아제한 법을 어긴 이유로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가난한 생활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자녀를 출산한 것은 두 사람이 피임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 피임약이나 피임도구에 대한 인식이나 사용법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결국 8번째 아이까지 ‘무사히’(?) 순산했다. 2010년 8번째 아이를 낳은 뒤에야 피임과 정관수술에 대해 알게 됐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둥이를 임신, 출산했다.류씨의 아내는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팔아 넘겼다가 경찰에 잡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면서 “중절수술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류씨는 “아이들의 교육이 가장 걱정이다. 첫째 딸(21)은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둘째와 셋째가 인근 초등학교에서 공부하는데, 학비가 많이 든다”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쑤성 및 피저우시 관계자들은 이들의 사정을 살핀 뒤, “(류씨부부의 초과출산은) 문명과 법에 무지해서 생긴 일”이라면서 “벌금이 얼마든지간에 어차피 이들은 벌금을 내지 못할 것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약간의 생활비와 아이들 용품, 먹거리 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지 공무원들이 직접 가족의 생활을 시찰한 후 현재 호적에 등록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정식 ‘신분’을 만들어 주는 절차를 의논하고 있다. 한편 현재 중국은 순차적으로 산아제한법을 개정하고 특수조건에 해당하는 가족에 한해 한 자녀 이상의 출산을 허용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아이디어 메이커(뤼크 드 브라방데르·앨런 아이니 지음, 이진원 옮김, 청림출판 펴냄) 요즘처럼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사유와 행동을 알게 모르게 속박하는 틀을 깨야 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인 저자들은 어떤 현상에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 해법을 제시한다. 인간의 사고구조부터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어떤 틀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지를 알아본다. 철학, 견해, 고정관념, 패러다임, 접근법 등 다양한 틀을 통해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단순화한다. 저자들은 “창의적 생각을 원한다면 새로운 틀을 만들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 틀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그런 틀을 만드는 시작점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간의 연구 결과와 컨설팅 경험, 다양한 비즈니스 사례를 통해 창의성을 키우려면 모든 것을 의심하고, 가능성을 조사하고, 확산적·수렴적으로 사고하며, 냉혹하게 재평가하라는 5단계 접근법을 제시한다. 360쪽. 1만 8000원.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L 레너드 케스터·사이먼 정 지음, 현암사 펴냄) 세계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재판과 판결 기록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파헤쳤다. 기원전 399년 열린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부터 잔 다르크의 마녀재판,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재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알프레드 드레퓌스 재판, LA폭동을 일으킨 로드니 킹 사건, 2011년 일본 벤처기업인 호리에 다카후미에 대한 판결까지 다양한 시대와 공간에서 벌어진 법정으로 초대한다. 부패가 극에 달한 공화정 말기의 로마, 황금시대에 접어든 영국, 혁명의 후유증에 휘청거리던 프랑스와 러시아, 술과 불륜이 재즈의 선율을 타고 넘쳐 흐르던 대공황 직전의 미국,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과 일본 등 재판은 역사적 배경 안에서 이뤄졌다. 법은 국민을 보호하고 권익을 보장하는 것이지만 증오와 차별에 휩싸인 사람들이 편견에 가득 찬 눈으로 법을 집행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508쪽. 2만원. 희망의 불꽃(조너선 코졸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도시 뉴욕의 브롱크스는 미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마약 거래와 총기 사용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이 거리에서 많은 아이들이 가혹한 환경에 짓눌려 무너지고 사회의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어떤 아이들은 주변의 애정과 헌신을 통해 환경을 극복하고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미국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이 인종과 소득수준을 넘어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40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교육자이자 작가인 조너선 코졸이 브롱크스의 아이들을 지켜보며 그들과 맺어 온 25년간의 인연을 논픽션으로 담았다. 아이들이 범죄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이들 탓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저자는 아이들의 눈부신 생명력을 예찬하는 동시에, 몇몇 유력가의 ‘개인적인 자비’에 의존해야 하는 미국의 빈민 지역 공교육 체제를 매섭게 비판한다. 392쪽. 1만 7000원.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고양이 똥 냄새는 지독하기로 유명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양이 배설물에 있는 톡소포자충이 인간의 뇌에 자리 잡으면서 후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두 번이나 원자폭탄의 영향을 받은 한 일본인은 93세까지 장수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던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는 놀라울 만큼 유연한 손가락으로 현란하게 연주하면서 청중을 사로잡았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들을 ‘DNA’라는 공통점으로 묶었다. 톡소포자충에서 미생물의 DNA가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장수한 일본인 사례에서 DNA를 빠르게 복구하는 유전자의 특징을 발견한다. 파가니니와 존 F 케네디에게서는 유전 질환을 파헤친다. 저자는 DNA의 이야기들을 모으면 인류의 등장과 존재론적 의미뿐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물 중 하나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508쪽. 2만원.
  • [사설] 절박한 고령 빈곤층 문제 심각히 인식해야

    한국의 65세 이상 은퇴자의 소득이 자신의 장년기 소득의 절반 이하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이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가진 상황에서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노년 빈곤의 심각성을 재차 확인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최근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노인들의 불만이 자살의 증가와 함께 방화와 같은 극단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한 정책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노후소득수준의 장기적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장년기(45∼54세)의 소득 대비 노후소득 대체율은 65세 50%, 70세 40%, 75세 30%로 큰 폭으로 낮아진다. 65세에 도달했을 때 소득 대체율은 1936년생이 66%이지만 1941년생 49%, 1946년생은 45%로 낮아져 빈곤 노년의 시점이 과거보다 더 빨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절한 수준의 노후소득 대체율이 50∼70%인 점을 감안하고, 1990년대 미국 장년기(55세) 소득 대비 70세의 노후소득 대체율이 세후 70∼80%인 것을 비교해도 형편없이 낮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 충분하지 않고, 자녀의 부모부양 전통은 사라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노후소득은 근로·사업 소득의 비중이 크다. 연금소득의 대체율은 공적연금은 4∼6%이고 사적연금은 3∼4%에 불과하다. 정년 이후에도 노동시장에 남아 오랫동안 일해야만 한다. 이것은 지난 2일 OECD가 발표한 ‘실질적 은퇴연령과 공식 은퇴연령 통계’에서 한국 남성의 실제 은퇴연령이 71.1세로 멕시코(72.3세)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피곤한 노년상(像)’과 맞물려 있다. 빈곤에 시달린다면 ‘100세 시대 도래’를 좋아할 수만은 없다. ‘65세 이상 기초연금 월 20만원 지급’과 같은 복지정책이 대통령 공약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그러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기대여명도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정부담 등을 고려해 대상이 축소됐다. 정부 부담을 줄이려 청장년층에게 저축을 늘리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장년은 사교육비와 주택담보대출 등을 갚아나가느라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공염불에 그치기 십상이다. 결국 노년 빈곤 해소의 가장 좋은 대안은 정부와 기업이 공적 부조를 뛰어넘는 노인 일자리 창출을 하고 ‘기초연금’의 수혜자를 점차 확대하는 방안을 병행해나가는 것이다.
  • 기성용-한혜진 부부, 결혼식 축의금 6천만원 기부 ‘어디에?’

    기성용-한혜진 부부, 결혼식 축의금 6천만원 기부 ‘어디에?’

    축구선수 기성용, 배우 한혜진 부부가 결혼식 축의금 일부를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5일 한혜진의 소속사 나무엑터스에 따르면 기성용, 한혜진 부부는 지난해 결혼식 축의금 중 6천여만 원을 월드비전에 기부해 국내 복지관 등록가정 의료비로 지원했다. 이를 통해 소뇌종양-조혈모이식수술, 희귀성 급성백혈병, 폐기흉 폐기절제술 등 시급하게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었던 가정에 전달돼 안전하게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결혼한 기성용, 한혜진 부부의 축의금 기부 사실은 약 1년이 지난 이날 한혜진의 목소리 재능기부 소식과 함께 알려졌다. 월드비전 홍보대사 한혜진이 EBS 나눔0700 특집방송 ‘맨발의 아이들 희망을 쏘다’ 1부 내레이션 기부에 참여한 사실이 보도자료로 전해지며 축의금 기부 내용도 함께 공개된 것. 축의금 기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과 관련 나무엑터스 관계자는 마이데일리에 “결혼식 당시에는 두 사람의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 싶어 밝히지 않았으나, 이번에 월드비전 측에서 한혜진의 목소리 재능기부 사실을 알리며 축의금 기부 사실도 함께 알리고 싶어해 밝히게 됐다”며 “기성용·한혜진 부부가 남모르게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한혜진이 목소리 재능기부에 나선 ‘맨발의 아이들 희망을 쏘다’는 가난과 학교 폭력, 가정 해체 등의 상처를 지닌 국내 아동들의 꿈과 브라질에서 열린 전세계 12개국 아이들의 축구 및 아동 권리 행사인 월드비전컵 도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월드비전 양호승 회장은 “국내 아이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전하는 목소리가 되어 따뜻함을 전해준 한혜진 홍보대사에게 감사하다”며 “국내 저소득 가정 아이들의 꿈을 지원하는 이번 방송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맨발의 아이들 희망을 쏘다’ 1부는 7일 오후 3시 50분에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화마당] 도움에 대하여/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문화마당] 도움에 대하여/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아침에 일어나니 이틀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에 나오는 하늘처럼 푸른 하늘이 통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창을 열고 잠들었었는데 아침 내내 집 앞 비닐하우스에서 농부들이 틀어 놓은 음악소리가 바람과 함께 실려와 방안에 가득 차 있다. 텃밭에 내려가 확인해 보니 호박이 밤새 한 뼘이나 자라서 높은음자리표 같은 이파리를 속으로 돌돌 말고 있다. 고추는 따 먹어도 될 만큼 크게 달렸고, 토마토도 어린아이 주먹 쥔 것만큼 굵어졌다. 메신저엔 번역자를 구하지 못해 끙끙 앓던 책의 번역자가 구해졌다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알고 지내는 선생한테 잠깐 사정을 얘기했을 뿐인데, 두 발 벗고 뛰어다니며 도와주신 그 선생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 가득히 번져온다. 어제는 투표하는 날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정치적인 날인데, 그 덕분에 휴일의 기분을 만끽하게 된 나는 오전 내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 울진, 죽변 등에서 유학을 와 하숙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이 가운데 유독 나와 친했던 친구는 아주 가난했다. 종종 이 친구와 내 용돈을 나눠서 쓰곤 했다. 주말에 여자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갈 때 거금 1만원을 꿔주는 식이었다. 친구는 이를 두고두고 고마워했다. 군대에서도 돈 없이 외박을 나가게 된 후배에게 5만원을 꿔 준 적이 있다. 이 후배는 사회에 나와서까지 그 이야기를 해서 사람을 바늘방석에 앉힌다.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돕는 일의 기분 좋음’을 알게 됐다.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 본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것. 그 네트워크가 금전적인 네트워크보다 더 촘촘하다는 생각을 부쩍 하게 된다.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 사람의 도움을 종종 받는다. 하나를 바라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열을 도와주는 분들도 많다. 너무나 열성적인 도움 앞에서 즐거운 부채의식이 쌓여간다. 이 부채의식이 가려워 덜어내고 싶어지면 나도 누군가를 돕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때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뿌듯해했고 이것도 결국 ‘이기적 유전자’가 시키는 짓 아니겠는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인간은 누구나 도움을 주는 만큼 받기 때문에 그 둘을 함께 봐야지, 어느 하나만 놓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독립성을 훼손할 정도가 아니라면 인간은 누군가에게 의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지론처럼 뇌리에 자리 잡기도 했다. 후배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도움의 정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며 정치적인 사유를 할 수밖에 없으며 도움을 매개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최근 지방선거 유세 열전 속에서 등장한 무수히 ‘도와달라는 읍소’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을 가려가면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왠지 ‘도’둑의 마음만 ‘움’트고 있는 것 같아서 나의 인정(人情)이 인격모독을 당한다는 기분까지 든 것이다. 점심나절이 지나 마음을 다져 먹었다. 줄도 어느 정도 줄어들었을 테니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투표장으로 향했다. ‘도움의 사기(詐欺)’가 아닌 ‘도움의 정치’를 위하여.
  • 국내여행 | 제주를 걷는 새로운 방법①예술 따라 걷기-서귀포시 유토피아길

    국내여행 | 제주를 걷는 새로운 방법①예술 따라 걷기-서귀포시 유토피아길

    제주에 올레길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 동안 제주의 둘레만을 돌고 돌았던 당신에게 이제 제주의 속살을 밟아 보라고 말한다. 더 깊은 제주가 여기 있다.예술 따라 걷기 - 서귀포시 유토피아길추억 따라 걷기 - 제주시 두맹이 골목 자연 따라 걷기 -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예술 따라 걷기서귀포 70리 예술산책남인수의 노래 ‘서귀포 칠십리’를 아는 사람 혹은 서귀포 칠십리를 걸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서귀포 유토피아길을 걸어 본 사람은? 많다. 그러나 더 많아져야 한다.서귀포를 걸어야 하는 이유 서귀포칠십리시공원 입구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서귀포가 왜 칠십리인가?” 북쪽의 제주 시청부터 남쪽의 서귀포 시청간의 직선거리가 27.2km쯤 되는 걸 보니(70리는 약 27.5km이다), 그래서인가 했지만, 추측은 틀렸다. 1653년 발간된 <탐라지>에 의하면 서귀포칠십리길은 조선시대 새로 부임한 정의현 현감이 성읍의 현청을 출발해 서귀포구까지 초도순시를 나섰던 70리 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의 청사와 객사, 민가 등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관광 필수코스가 된 남제주군 표선면의 성읍민속마을이다. 그 옛날 현감이 걸었던 길이 칠십리건, 구십리건 민초들이야 무슨 상관이었을까 싶었는데, 또 틀렸다. 서귀포 사람들에게 서귀포칠십리는 단순한 거리 개념이 아니라 이상향과 피안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1938년에는 ‘서귀포칠십리’라는 곡(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이 만들어져 서귀포가 제주를 너머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서귀포 뒤에는 서귀포칠십리축제, 서귀포칠십리 건강달리기대회, 서귀포칠십리 70경, 서귀포칠십리 감귤 등 칠십리가 꼭 따라붙는다. 아무튼 오늘 걸어야 할 길이 70리가 아니라니 참 다행이다. 서귀포 시내를 타원형으로 돌게 만드는 ‘유토피아 길’은 고작 4.7km의 워킹투어 코스다. 천혜의 자연포구와 섬, 기암들이 줄지어 선 해안절경으로 이뤄진 비경만을 쫓는 길이 아니다. 제주를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예술 풍경이 이 길에서는 더 중요한 테마다. 박물관을, 미술관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걸음이 한없이 느려지듯, 유토피아길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경고 하나. 하나하나 곱씹으며 걷다 보면 체감거리는 칠십리를 훌쩍 넘을 수도 있다.이중섭의 제주-추억유토피아길의 공식 추천 루트가 시작되는 곳은 이중섭 미술관이다. 사실 서귀포와 이중섭(1916~1956년)의 인연은 길지 않다. 1·4 후퇴 때 원산을 떠난 그의 가족이 부산을 거쳐 제주 서귀포에서 머문 시간은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채 1년이 안 된다. 그러나 4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에게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서귀포의 환상’, ‘게와 어린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여러 작품이 제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에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거주지 그리고 이중섭 공원과 거리까지 조성된 것에는 시의 노력과 미술계의 도움이 컸다. 2003년에 가나아트가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65점의 작품을 기증하면서 이중섭 전시관은 미술관으로 등록(2종)할 수 있었고, 2004년에 갤러리 현대가 ‘파란 게와 어린이’ 등 53점을 기증해 1종 미술관이 될 수 있었다. 서귀포시 중심에 위치한 이중섭 거리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주말이면 지역 예술가들이 참가하는 목공, 도자기, 퀼트, 천연염색, 한지공예, 칠보공예, 민예품, 서화류 등을 판매하는 아트마켓(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시장)이 열려서 더 북새통을 이룬다. 봄꽃이 만개한 이중섭 공원의 벤치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이중섭 조각상이 상대적으로 쓸쓸해 보일 정도였다. 사실 이중섭의 일생은 죽는 날까지 가난하고 고독했다. 종이를 사기 어려워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은지화’ 탄생에 얽힌 그의 비화는 유명하다. 복원된 그의 서귀포 거주지는 꽤 커 보이는 초가집이지만 실제로 그의 가족들이 거주했던 곳은 1평 남짓한 구석방이었다. 가난했지만 가족들이 함께였기에 그에게 서귀포는 가족에 대한 추억이 가득한 낙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길 떠나는 가족’처럼 수레를 타고 피난길에 오른 상황이든, ‘게와 어린이’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게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든, 그의 작품 속 가족의 풍경은 항상 행복하다. 이후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아 작품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남덕)과 주고받은 애틋한 편지들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변시지의 제주-고독이중섭에 쏠린 관심에 비해 지난해 타계한 변시지(1926~2013년) 선생의 미술관 설립 계획이 무산 위기에 처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그의 작품은 외사촌인 기당奇堂 강구범 선생이 1987년에 설립해 시에 기증한 기당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일본에서 수학하고 서울로 돌아와 초창기에 정밀한 풍경화를 그렸던 변 화백의 화풍은 후학양성을 위해 1975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온 후 크게 달라졌다. 바닥 장판색에서 착안했다는 흙빛에 담긴 제주의 바다와 바람은 그에게 ‘폭풍의 화가’라는 별칭까지 선사했다. 초가, 소나무, 돛단배, 조랑말, 까마귀, 청년 등 그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작가의 심리상태가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전율이 느껴진다.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그의 작품 2점이 살아있는 동양화가로는 최초로 2007년부터 10년간 상설전시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흥분했지만 멀리 워싱턴까지 갈 필요 없이 기당미술관에만 가도 그의 작품들을 다수 볼 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기당미술관의 명예관장이기도 했다. 작품뿐 아니라 건물도 훌륭하다. ‘눌(땔나무 등을 쌓은 더미를 말하는 ‘가리’의 사투리)’에서 영감을 얻어 나선형으로 설계한 박물관은 자연채광이 잘 들어오고 숨은 정원까지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러나 시 외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 미술관 앞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전망도 최고인데 말이다. 그의 작품명이기도 한 ‘외로운 시간’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이왈종의 열정과 중도지난해 5월 서귀포에 문을 연 왈종미술관은 유포피아길 코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시립이 아닌 사설미술관이어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왈종은 변시지와 더불어 제주를 대표하는 화가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유명하다. 전국적인 커피체인점인 드롭탑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그의 그림이 새겨진 텀블러, 머그컵, 핸드폰케이스 등이 판매 중이기 때문. 민화풍의 그의 그림은 꽃과 자연을 화사하게 담고, 춘화적인 요소도 강하다. 들판에서 커플이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는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처럼 거침없이 묘사된 제주의 일상은 요새 ‘제주앓이’를 앓고 있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더 불타 오르게 한다. 그러나 정작 이왈종(1945년~)이 제주를 선택했던 당시의 상황은 그리 밝지 않았다. 추계예술대 교수로 재직하다 그만두고 1990년 낙향했을 때 그의 소망은 남은 몇년을 그림만 그리며 살아 보자는 것이었다. 가족과 떨어진 고독한 생활을 20년 넘게 지탱해 준 것은 시와 그림이었다. 그런 그가 제주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태풍이 올 때를 꼽았단다. 변시지가 즐겨 그렸던 제주의 폭풍은 어쩌면 가장 황홀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현재 왈종미술관은 정방폭포 주차장 바로 맞은편에 세워졌다. 문화재보호지역이지만 미술관으로 겨우 허가를 받았다. 미술관 겸 그의 작업실, 주거지이지만 사실 그가 작품 300여 점을 기증해 설립한 왈종후연미술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1층은 어린이 미술교육실, 2층에는 자신의 작품 90여 점은 전시했고, 3층은 그의 작업실, 옥상 황토방이 그의 잠자리다. 자신이 머물 공간이었기에 설계에만 2년이 걸릴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제주가 천국보다 좋다는 그는 여생을 제주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살 계획이란다. 현중화의 열정과 붓이왈종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글씨가 그림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왈종미술관에서 멀지 않다. 소암 현중화 선생(1907~1997년)의 서예 작품들을 전시한 소암기념관이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즈음하여 2008년에 세워진 곳이다. 모든 서체에 능했던 현중화 선생은 ‘먹고 잠자고 쓰기’만 했다고 할 정도로 작품활동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특히 취중에 흘려 쓴 선생의 ‘취필’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하다. 서예를 전혀 몰라도, 한자를 잘 몰라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같은 서체의 같은 글자라도 쓸 때마다 모양이 다른 화첩 앞에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일본에서 유학한 소암은 더 큰 무대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지만 49세에 귀국하여 여생 동안 서귀포를 떠나지 않았다. 기념관 옆에는 선생의 유택인 조범산방眺帆山房·돛단배가 바라보이는 집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가 오른 경지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부분이지만 무료 관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 서예동호인들이 더 열광한다고 한다. 참고로 소암기념관 앞은 먼나무 가로수길이다. 제주와 보길도 등 남부의 저지대에서만 자생하는 먼나무는 가지가 꺾일 듯 흐드러지게 맺히는 붉은 열매로 여행자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술가의 유토피아지금껏 대가들에게 헌정된 미술관 이야기만 했지만 사실 유토피아길의 진수는 길 위에 있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조각상, 설치 작품, 벽화들이 칠십리시공원과 서귀포시 이곳저곳에 자리잡고 있다. 2012년 진행된 마을미술프로젝트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40여 점이나 되니 잠깐 한눈을 팔면 놓치고 지나칠 정도다. 조가비, 도자기, 유리, 테라코타, 아트타일, 유리자갈 등을 이용한 부조벽화 작품들은 조용한 포구마을을 야외 갤러리로 만들었다.유토피아길 덕분에 한때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났던 서귀포 도심은 활기를 되찾았다. 이중섭 거리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인 옛 아카데미 극장도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1960년대 건립된 아카데미극장은 1980년대까지 운영되다가 방치된 상태였지만 조만간 문화예술공간으로 되살아날 예정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아예 서귀포행을 선택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대의 실험예술계를 이끌었던 퍼포먼스 예술가 김백기 선생도 2013년 서귀포에 자리를 잡았다. 2012년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제주가 홍대처럼 될 것이라고 했던 어느 기자의 예언은 불과 2년 만에 (좋건, 나쁘건) 현실이 된 듯하다. 이효리 같은 슈퍼스타들도 제주를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제주의 바다, 제주의 꽃, 제주의 오름과 산, 제주의 돌멩이까지, 제주의 모든 것이 예술가들에게는 영감과 위로의 대상인가 보다. 돈도 명예도 마다하고 이 작은 섬에 살기를 고집할 만큼. 특히 서귀포가 대한민국 예술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혹시 붓끝 모양을 닮았다는 섶섬의 기운 때문은 아닌지, 싱거운 생각마저 해 본다. 어떤 이유에서건 서귀포는 예술가들의 유토피아가 되고 있다.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호텔 섬오름 www.sumorum.com☞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찾아가기제주공항에서 600번 공항리무진탑승, 서귀포 경남호텔 하차. 이중섭거리에서 탐방 시작.문의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481서귀포 유토피아길 | 서귀포 시내와 자구리해안로를 포함하는 총 4.7km의 워킹투어코스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이중섭 공원(출발)→이중섭미술관→이중섭거주지→동아리창작공원(아트하우스, 문화예술디자인시장)→기당미술관→칠십리시공원→ 자구리해안→소남머리→서복전시관→소암기념관 ▶프로그램 해설사와 함께하는 작가의 산책길 탐방 | 매주 토·일요일 오후 1시 출발,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시장 |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이중섭 문화의거리 일대 ▶통합입장권 이중섭 미술관, 기당미술관, 서복전시관, 소암기념관을 모두 입장할 수 있는 통합관람권을 1,300원(총 600원 할인)에 판매 중이다.글·사진 손고은 기자 취재협조 제주관광공사 www.ijto.or.kr
  • 죽어서도 병사들 곁에 묻힌 참군인의 진면목

    죽어서도 병사들 곁에 묻힌 참군인의 진면목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 현충원 설립 사상 처음으로 장군 묘역을 마다하고 병사들 곁에 잠든 고 채명신 장군.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언제나 부하들과 함께한 사령관이었던 그의 마지막 소원은 죽어서도 사병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현충원에는 그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3일 밤 10시 20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다큐 공감 ‘우리 시대의 군인, 채명신’ 편은 그의 묘를 찾는 사람들을 통해 고인의 진면목을 되짚어 본다. 맹호부대 주둔지였던 베트남 중부 퀴논 지역에는 지금도 한국인 채명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트남전 당시 16세 나이로 한국군 관사에서 일했던 탄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정이 많았던 채명신 사령관은 당시 베트남 사람들을 돕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적과 민간인을 구분하기 힘들었던 상황에서도 그가 이끄는 한국군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가족처럼 지내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베트남전에서 그는 초기 맹호사단장으로, 그 후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작전을 지휘하며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지휘권을 확보했다. 베트남 양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민심을 확보하는 전략 전술을 펼쳤던 그는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구한다는 신념을 잊지 않았다.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 그의 묘비명에는 한순간도 잊지 않았던 그의 군인 정신이 담겨 있다. 참전 용사에서부터 생전에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 오늘도 제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고인의 빛나는 정신을 잊지 못해 묘지를 찾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13세 인도소녀, 에베레스트 ‘최연소 여성 등정’ 기록

    13세 인도 소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8848m에 올라 최연소 여성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말라바트 푸르나(Malabath Poorna)는 16세 남자친구 아난드 쿠마르, 네팔인 가이드 10명과 함께 티베트 쪽에서 출발해 지난 25일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앞서 푸르나보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최연소 여성은 2012년 16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네팔인 ‘니마 쳄지’다. 가난한 부족민 출신 여학생 푸르나와 쿠마르의 등정 소식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신임총리는 “이 소식을 전해 듣게 돼 매우 기쁘다”며 “그들 덕분에 우리는 매우 뿌듯하다”고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네팔인 가이드 밍마 셰르파는 “산악인 대부분이 가장 쉽고 인기가 좋은 네팔 코스를 택하는 데 어린 나이의 푸르나가 티베르 코스로 등정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전했다. 푸르나의 이번 등정은 남인도 지역의 정부 산하 사회복지단체 후원으로 가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말 영화]

    ■노트북(씨네프 토요일 오후 6시) 17살 노아는 놀이공원에서 활달하고 천진난만한 앨리의 웃음에 반했다. 부잣집 딸과 가난한 화가의 아들로 신분의 차이가 컸지만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을 하지만, 집안 반대에 부딪혀 이별한다. 갑자기 일어난 전쟁은 희미하게 남아있던 두 사람의 연결고리마저 끊어버렸다. 그렇게 7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24살이 되어서도 앨리는 여전히 노아의 전부였다. 우연히 신문에서 노아의 소식을 접한 앨리는 그를 찾아 나선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잊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만, 그 사이에 놓인 현실의 벽에 가슴앓이만 할 뿐이다. 약혼자와 잊을 수 없는 첫사랑, 앨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영화는 ‘늘 지켜주겠다’던 첫사랑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한 남자의 실화를 감동적으로 그렸다. ■레이(EBS 토요일 밤 11시) 흑인 소년 레이는 7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시각 장애인이다. 레이가 혼자의 힘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길 원했던 어머니 아레사는 엄한 교육으로 레이가 세상에 맞서도록 돕는다. 레이는 창문 밖 벌새의 날갯짓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타고난 청각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 덕분에 레이는 흑인 장애인이 받아야만 했던 모든 편견을 극복하고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2004년 6월, 74세로 생을 마감한 전설적인 음악가 레이 찰스의 극적인 삶을 영화에 담았다.
  • “꼭 잡아!” 염소 업고 자전거 타는 남성 ‘화제’

    “꼭 잡아!” 염소 업고 자전거 타는 남성 ‘화제’

    염소 한 마리를 등에 업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성이 촬영된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29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도로에서 목격된 것으로, 지난 28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게시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영상을 보면 자전거를 탄 한 남성이 웬만한 아이보다도 덩치가 큰 염소 한 마리를 등에 업은 채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염소는 행여 떨어질세라 두 앞발로 남성의 어깨를 꼭 잡은 듯이 보인다. 영상 촬영자로 보이는 여성은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짧은 30여초 분량의 이 영상은 유튜브에 게시된 지 하루만에 13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올리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에티오피아가 전쟁을 겪은 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뭄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가축을 등에 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사실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사진·영상=Nuno Sá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사람만한 염소 ‘등에 업고’ 자전거타는 男 포착

    사람만한 염소 ‘등에 업고’ 자전거타는 男 포착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성의 등에 업힌 ‘겁 없는 염소’의 모습이 포착됐다.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의 한 남성은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에 들어서자마자 행인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등 뒤에 성인 몸집만한 커다란 염소 한 마리가 업혀 있었기 때문.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남성은 등에 거대한 동물을 업은 채 묵묵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으며, 염소 역시 편안한 모습으로 업힌 채 도로를 빠르게 지나갔다. 염소는 앞다리를 이용해 남성의 어깨 윗부분을, 뒷다리를 이용해 아랫부분을 꽉 붙들어 매우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떨어지지 않도록 앞다리와 뒷다리를 단단히 묶은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남성이 왜 염소를 업은 채로 자전거를 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30초 분량의 해당 동영상은 유투브 사이트에서 큰 화제가 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이 남성의 독특한 가축 운반이 아마도 극심한 가난 때문이며,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가축을 직접 운반 또는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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