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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피아 본거지 나폴리 찾은 교황 “약자 착취하는 마피아에 맞서라”

    “마피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맞서라.” 마피아 본거지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 나폴리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현지시간) 미사를 주재하면서 마약 거래 등의 범죄로 젊은이와 가난한 사람, 약자들을 착취하고 부패시키는 범죄 조직에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당부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정직하지 못한 수입이나 돈을 쉽게 버는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이는 당장 오늘의 먹을거리는 될 수 있지만 내일은 또다시 굶주리게 되며 결국 아무것도 가져다주는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범죄 조직원에게 젊은이들이 이용당하는 것을 더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특히 “부정부패와 범죄가, 아름다운 나폴리의 얼굴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모든 것을 용서하는 신의 은총으로 정직한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 만큼 범죄자와 공범들은 사랑과 정의로 돌아설 것을 거듭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정규직조차 장기간 노동과 비교하면 너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면서 이는 사실상 노예 상태이며 착취라고 비판했다. 교황은 마피아 조직인 ‘카모라’가 장악한 나폴리 북부 외곽의 저소득층 지역 스캄피아에서도 마피아의 유혹에 저항하고 정직한 직업을 통해 스스로의 존엄성을 찾으라고 촉구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히말라야 산맥 북서부에 위치한 라다크(Ladakh)는 현재 인도의 잠무 카슈미르 주(州)에 속한다. 어느 쪽을 둘러봐도 눈 덮인 높다란 산봉우리와 광활한 고원뿐인 이곳은 고도 1만 피트(3000m)의 척박한 땅이다. ‘산길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 티베트 어 ‘라 다그스’(La Dags)에서 라다크라는 이름이 파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곳은 사용하는 언어뿐 아니라 예술과 건축, 의술, 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티베트의 영향이 드러나고 있어 ‘리틀 티베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북부 인도의 몽족과 파키스탄 길기트의 다드족 그리고 티베트에서 이주한 몽골족의 후손들이 현재 라다크의 주민을 이루고 있다. 스웨덴의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1975년에 영국 런던에 있는 ‘동양-아프리카 연구소’의 일원으로 처음 이곳에 왔다. 라다크의 언어와 민담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몇 년을 머무는 동안 그녀는 라다크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 그리고 여유롭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는다. 그러다가 인도가 라다크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유입된 서구 문화에 의해 라다크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정신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며 소모를 전제로 하는 개발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사회운동가로 변모한다. 1991년 나온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전통에 관하여’에서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어려움 없이 살아가던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적인 생활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2부 ‘변화에 관하여’에서는 라다크의 수도 레가 인도 정부의 개방정책에 따라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과정을 통해 외국 관광객들과 함께 들어온 서구 문화가 라다크의 전통 사회를 어떻게 붕괴시켰는지를 담고 있다. 3부 ‘미래를 향하여’에서는 16년간 라다크에 머물면서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호지가 생태 친화적이면서 공동체적 삶에 기반을 둔 전통 라다크 사회의 회복을 위해 설립한 ‘라다크 프로젝트’와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라는 국제기구의 구체적인 활동 상황을 소개한다. 호지는 라다크에 오기 전까지는 진보라는 것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공원을 가로질러 새 도로가 생겨나고 길모퉁이 가게 대신 현대식 대형 마트가 들어서며 철제와 유리로 된 고층 건물이 세워지는 것이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했다. 인류는 본질적으로 이기적 심성을 가지고 있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당연한 것이며 서로 돕는 사회라는 것은 유토피아적 꿈에 불과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라다크에 머물며 그녀는 자신이 가진 생각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이 기술 개발을 진화론적 변화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그들은 인류가 직립 보행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처럼 현대에 와서 원자폭탄을 만들고 생명공학을 태동시킨 것 또한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 결과 자신들 고유의 원칙과 가치관을 따르며 사는 전통적 문화권의 사람들에 비해 첨단 과학 기술의 혜택을 받고 사는 서구 사회가 훨씬 더 많이 진화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은 글로벌 경제화 또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하나의 획일화된 개발 모델 속으로 사람들을 잡아 이끄는 동력이 된다. 동시에 지구온난화, 독성 물질로 인한 오염, 실업, 빈곤, 인간 소외와 같은 부작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호지가 처음 라다크를 찾았을 때 라다크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기들의 사회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스스로를 부유하다고 생각했다.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 라다크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이었지만 그들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균형 있게 살아가는 전통을 발전시켰고,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 내는 것이 검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배어 있었고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협동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에 대한 개념도 아주 여유로워서 삶의 속도 또한 느슨했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 관광객들이 라다크를 찾기 시작하면서 아름답던 공동체는 깨지고 풍요롭게 살던 마을이 갑자기 가난해지고 빈곤해진다.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서면서 단지 며칠을 머물기 위해 그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라다크의 한 가족이 일 년 동안 쓸 수 있는 돈을 한 번에 쓰고 떠나는 것을 보며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이곳에 가난이란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불과 몇 년 만에 “우린 너무 가난하니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고 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사람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가 우위에 서게 되고 그들의 터전은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로 더럽혀진다. 이제 그들은 이웃과의 공존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더 급급해졌다. 호지는 라다크 사람들의 이러한 변화가 단지 그들의 욕심과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거대 기업과 세계화에 눈먼 강대국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이 함께 기반을 두고 있는 땅과 전통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이윤 추구만을 목표로 하는 개발 정책 외에 더 나은 삶을 위한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기술에 의존하는 서구 현대 문화가 유입된 이상 라다크가 예전 사회로 돌아가기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개발이라는 것이 꼭 파괴를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볼 수밖에 없다. 호지는 중앙 집권적이고 자본과 에너지가 집약되는 거대 기업 중심의 경제 개발은 필연적으로 물질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와 함께 노동력 착취, 상대적 빈곤감, 계층 간 갈등,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를 불러오기 때문에 개발에 대한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것은 지역 중심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자연친화적 경제의 재건이다. 거주지 인근 지역의 토산품을 구매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공동 육아에 참가하며 지역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들이 모두 대안이 될 수 있다. 호지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무조건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전통 사회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인 제목에서 보듯, 오래된 라다크의 문화 속에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 정말로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우리가 라다크의 전통 사회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자립정신, 검약정신, 사회적 조화, 환경적 지속성 그리고 내면적인 풍요로움 같은 것들이다. 이미 지나간 ‘오래된’ 것에 우리가 찾는 ‘미래’가 있다.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케냐 소녀가 짊어지기엔 버거운 가난의 무게

    케냐 소녀가 짊어지기엔 버거운 가난의 무게

    극심한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는 전 세계 소외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EBS 1TV‘글로벌 프로젝트 나눔’(20일 밤 8시 20분)은 풍부한 관광 자원과 공업, 서비스업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46%가 하루 약 500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케냐를 찾는다. 아프리카의 대표국 중 하나지만 가뭄과 국내 분쟁 등으로 인한 가난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동쪽으로 6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에메젠 마을에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신발을 고치는 나코리복(68) 할아버지가 있다. 마을이 작은 탓에 손님을 찾기가 쉽지 않아 허탕 치는 날이 대부분이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음식을 기다리는 막내 손녀 카리미(2)를 보고 미안해한다. 두 손녀 에밀리(15)와 조세핀(5)은 집에서 굶고 있을 할아버지와 동생이 걱정돼 학교에서 받은 급식을 꼭 집으로 가져온다. 제작진이 찾은 날도 이 급식이 하루 식사의 전부였다. 에밀리는 매일 10㎏이 넘는 물동이로 물을 떠 집까지 실어 나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하고 동생들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집안일은 온전히 에밀리의 몫이다. 에밀리가 집에 돌아왔지만 할아버지는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다. 그런 할아버지를 지켜보던 에밀리는 학교에 가는 대신 일을 구하러 집을 나선다. 할아버지가 일을 구하지 못하는 날에는 늘 이렇게 에밀리가 이웃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먹을 걸 구해 오곤 한다. 그런 에밀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엔 미안함이 가득하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아들이 연기한다’ 필립 가렐 감독작 ‘질투’ 4월 개봉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아들이 연기한다’ 필립 가렐 감독작 ‘질투’ 4월 개봉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이 층층이 쌓여진 영화”, “상상할 수 없었던 정서적 따뜻함을 주는 드라마” 프랑스 거장 필립 가렐 감독의 연출작 ‘질투’에 대해 해외 언론들이 이와 같은 찬사를 쏟아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새로운 누벨바그 방식으로 탄생한 무드 넘치는 멋진 영화”라고도 평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립 가렐 감독에 대해 궁금해진다. 포스트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시네아스트(cineaste, 영화 작가) 필립 가렐 감독은 ‘비밀의 아이’(1983)와 ‘밤의 바람’(1999), ‘평범한 연인들’(2005) 등의 작품을 통해 그만의 독창적 기법과 예리한 묘사로 인정을 받았다. 신작 ‘질투’는 필름으로 촬영해 그윽하고 아름다운 흑백의 영상미는 물론 사랑에 대한 시적인 대사를 선보인다. 또 낭만의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을 모던한 화법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가난한 연극배우 ‘루이’가 새로운 연인 ‘클로디아’와의 연애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 걱정이나 의심 없이 이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순간도 잠시. ‘사랑하고 있는데 왜 외로울까?’, ‘영원한 사랑이란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이들의 머릿속을 맴돈다.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가난한 연극배우 루이, 그리고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클로디아의 사랑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흔치 않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바로 이 두 주인공은 감독 필립 가렐의 아버지 모리스 가렐(1923년~2011년)의 사랑이야기다. 특히 이번 작품에는 감독 필립 가렐의 페르소나(감독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배우)이자 아들인 루이 가렐이 출연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을 지닌 파리 남자로 분해 일에 열정적인 한 여자와의 사랑에 고뇌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여자 친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엄마를 ‘질투’에 빠지게 만들었던 소년 필립. 그 감정은 영화 ‘질투’의 시작이었고, 약 50년이 지난 후에 아들 루이 가렐에게 이어져 3대가 하나의 필름 안에 오묘하게 담긴 작품으로 완성됐다. ‘질투’는 제70회 베니스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초청, 18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에 이어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포함한 유명 비평가들이 앞 다투어 ‘올해의 영화 TOP10’으로 선정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낡은 서랍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수첩을 꺼내보는 듯 그윽한 감성을 전하는 포에틱(Poetic·시적) 로맨스 영화 ‘질투’는 오는 4월 9일 국내 개봉된다.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77분. 사진·영상=찬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와우! 과학] 돈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할리우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처럼, ‘돈’에 의해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은 우리 주변에 셀 수 없이 많다. 이는 ‘돈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생각을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람은 돈에 의해 바뀔 수도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 영국 BBC 뉴스는 ‘돈이 당신을 가치 있게 하는가?’(Does money make you mean?)라는 제목으로, 최근 ‘테드’(TED) 강연에 나와 주목받고 있는 미국 UC버클리(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의 폴 피프 교수를 소개했다. 사회심리학자이기도 한 폴 피프 박사는 매일 오후가 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해안가의 한 산책로를 찾는다. 이곳은 이국적인 야자수가 즐비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부터 개와 함께 산책 나온 노인까지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간다. 하지만 피프 박사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이 지역은 LA에서도 많은 부유층이 사는 곳으로 유명한 데 도로에는 수억에서 수십억 원이 넘는 고급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피프 박사는 보행자가 건널목을 건너려고 할 때 어떤 차량이 차를 세우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LA에서는 법적으로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이 들어오지 않아도 보행자가 건너려고 할 경우에는 차량은 무조건 횡단보도 앞에서 정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실험 결과에서는 고급 차량일수록 보행자 앞을 위험하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피프 박사는 설명한다. 피프 박사는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하는 자동차에 탄 운전자들은 모두 법을 어기지 않았다. 즉 횡단보도 앞에 확실하게 정차한 것”이라면서도 “반면 가장 비싼 부류에 들어가는 차를 타고 다니는 운전자들의 거의 절반이 법을 어기고 보행자 앞을 당당하게 지나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부유층과 빈곤층에 관한 이미지에 대한 최근 조사에서는 많은 사람이 빈곤층은 규칙을 깨는 경향이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빈곤층은 재정적으로 불안정해 다른 사람들보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피프 박사는 이런 성향은 정반대라고 지적한다. 많은 돈을 가진 부자들이야말로 타인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고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피브 박사는 돈이 사람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10년 가까이해왔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자비와 도덕심이 줄어든다”고 결론짓고 있다. 피프 박사의 말로는 사람은 돈이 많아지면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게 되고 돈은 사람을 심리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고립시킨다. 피프 박사와 그가 속한 심리학 연구소는 지금까지 수많은 실험을 통해 서서히 돈이 사람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밝혀왔다. 이전 실험결과 가운데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주사위를 사용한 간단한 게임에서도 더 나은 보상을 얻기 위해 자주 부정을 행하려고 했으며, 어린이를 위한 과자를 준비하고 먹지 말라고 놔둔 것도 마음대로 먹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타인을 돕도록 설정한 상황에서도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경향을 보였다. 심리학에서 ‘독재자의 시험’(Dictator Test)이라는 유명한 테스트가 있다. 한 그룹에는 개개인에게 10달러씩 주고 나머지 그룹에게는 돈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받은 그룹에 돈이 없는 사람에게 일부를 기부해도 좋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시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을 조사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돈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돈을 아껴야 하고 부유한 사람은 돈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와 반대로 부유할수록 타인에게 기부하는 돈의 액수가 적었고 가난할수록 많게는 150% 더 돈을 나눠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무작위로 추출한 두 사람에게 유명 보드게임 ‘모노폴리’를 하도록 하고 한 사람에게는 시작할 때부터 많은 돈을 주는 특혜를 준 상태에서 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한 실험도 있었다. 이 게임의 결과는 처음에 많은 돈을 획득한 사람이 결국 부자가 됐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더 가난해졌다.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같은 조건에서 게임을 하게 하고 옆에 간식을 놔두자 게임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거만한 자세로 서슴없이 간식을 집어먹는 행동을 보였다. 이에 대해 피프 박사는 “이런 행동은 인간은 자신이 부유하다고 느낄 때 타인에 관한 관심이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빈곤층일수록 어려운 일을 극복해나가기 위해 서로 돕는 등 대인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것을 중요시했지만, 부유층일수록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 타인에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는 피프 박사가 2010년 발표한 결과로 지금까지 많은 학자가 이를 검증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그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연구도 있는 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경우도 있다. 한 예로, 네덜란드에서 발표한 한 연구는 ‘독재자의 시험’에서 부유층이 더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관대하다는 결과를 보였다. 반면 홍콩에서 시행한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실험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속임수와 거짓말 같은 도덕적 위반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게임 중 상대방에게 소리를 들려줄 수 있도록 했을 때 피험자는 불쾌한 소리를 내 상대방을 방해했고 이 실험에서 보상을 더 얻을수록 소리를 내는 빈도는 높았다고 한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펜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원을 그려 달라고 했을 때, 그리는 원의 크기가 개인의 실제 부에 비례했는데 큰 원을 그린 경우가 부자였고 작은 원을 그린 쪽은 가난했다고 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영국 뱅크시 거리 벽화 누군가에 ‘테러’ 당하다

    영국 뱅크시 거리 벽화 누군가에 ‘테러’ 당하다

    얼마전 MBC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 방영돼 화제가 된 '뱅크시'의 작품 중 하나가 '테러'를 당해 현지에서 논란이 되고있다. 최근 데일리메일등 영국 현지매체는 "웨스트 런던 하운슬로에 위치한 노스 스타 퍼브 벽에 그려진 뱅크시의 작품이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덧칠됐다" 고 보도했다. '반달리즘'(vandalism·문화·예술 및 공공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이라며 건물주는 물론 현지 주민들까지 분노케 만든 이 작품의 이름은 '스마일'(smile). 지난 2007년 건물주의 허락없이 하룻밤 새 깜짝 등장한 이 그림은 한 소녀가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을 담고있다. 처음 등장할 당시 이 그림은 철없는 한 작가의 장난 쯤으로 여겨졌으나 뱅크시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치가 무려 10만 파운드(약 1억 700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그림은 얼마전 '수난'(?)을 당했다. 누군가 낙서와 함께 부르카를 입은 소녀로 그림을 바꿔버렸기 때문. 지금은 스마일 글자와 소녀의 눈매만 보여 과거 벽화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이에 그림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민들이 화가난 것은 당연한 일. 한 주민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데 지금은 망가져 버렸다" 면서 "누가 이같은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부끄러워줄 알아라" 며 분노했다. 현지 주민들은 다시 뱅크시가 와서 이 그림을 손봐 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뱅크시가 다시 작업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한편 영국 출신의 미술가 겸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는 정확한 정체가 알려진 바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지난 2005년 미국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전시하면서 화제를 모은 그는 미술은 순수 예술이 돼야 한다고 일갈하며 세계 곳곳 거리에 자신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이번 사례처럼 뱅크시 벽화는 세계 곳곳에서 반달리즘의 타깃이 되고 있으며 실제 훼손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인순이, 어려서 그렇게 가난했다고 하더니 결국…

    인순이, 어려서 그렇게 가난했다고 하더니 결국…

    가수 인순이가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773번째 회원으로 가입했다.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6일 인순이가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앞으로 5년간 총 1억원을 기부하기로 하고 가입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5년 간 1억원 완납을 약정하면 가입할 수 있다. 인순이는 이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홍보대사로도 위촉됐다. 홍보대사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동시에 된 것은 방송인 현영·김보성, 가수 현숙에 이어 네번째다. 인순이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팬들의 응원과 사랑에 보답하고자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게 됐다”며 “앞으로 어려운 환경의 저소득 가정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인순이는 “어려서 가난했고 못 배웠고 외모가 남들과 달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그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불우한 사람을 돕는 등 선행을 베풀어 왔다. 한편 2007년 12월 만들어진 아너 소사이어티는 현재까지 누적 기부금이 856억원에 이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늘 말씀하셨죠, 사법권은 썩지 않았다고…”

    “늘 말씀하셨죠, 사법권은 썩지 않았다고…”

    “돌아보니 참 행복한 삶이었다.” 1965년 3월 16일.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리던 봄날 훗날 ‘사형수들의 아버지’, ‘사도법관’으로 기억될 김홍섭 판사는 5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20년 넘게 남편을 뒷바라지해 온 아내 김자선씨와 당시 대학생이던 맏딸 철효씨가 간암으로 시름하던 김 판사의 임종을 지켰다. 욕심 없이 살아온 삶처럼 그는 가는 길에도 특별한 당부의 말을 남기지 않았다. 최근 서울신문과 만난 철효씨는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차츰 흐려져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하나를 꺼냈다. 예전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김 판사는 작은 물건도 결코 받지 않았다. 사람들이 슬그머니 보따리를 놓고 돌아가면 재빨리 뒤따라가 물건을 돌려주는 일은 자녀들 몫이었다. 철효씨는 “아버지의 이런 평소 모습이 산교육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 판사는 자상하면서도 엄했다. 자녀들이 아플 때면 밤을 새워 간호했지만 잘못했을 때는 준엄하게 꾸짖었다. 하지만 회초리를 드는 법은 없었다. 소년부에 자원해 재판할 때도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성인 범죄자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벌을 주기보다는 타일러 교화하려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년 범죄에 대한 형벌이나 규칙은 성인 범죄와 크게 구별이 없어서 이를 시정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1950년 한 일간지에 연재한 글에서는 이 같은 그의 철학이 오롯이 드러난다. 자녀들에게는 일기 쓰기를 강조했다. 하루 동안 한 일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만들기를 바랐다. 여덟 남매를 둔 아버지였지만 김 판사는 더 많은 아이들을 마음으로 보듬고자 했고, 틈나는 대로 고아원을 찾아가 아이들을 위로했다. 191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김 판사는 21살이 되던 해 전주의 한 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다 전주지원 군산지청 서기시험에 합격했다. 1940년에는 18명이 합격한 조선변호사시험에 붙었고 이듬해 가인 김병로(초대 대법원장) 선생의 사무실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검 검사, 서울지법 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전주지법원장을 거쳐 1964년 서울고법원장에 올랐다. 판사로 재직하면서 늘 값싼 중고 양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점심은 언제나 아내가 싸준 무짠지 반찬 도시락이었다. 많지 않던 봉급 중 일부는 사형수들에게 보내 줄 책과 영치금에 썼다. 가족조차도 외면한 그들이 묻힐 묘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피고인들에게 판결을 내리면서도 늘 자신을 되돌아보며 법관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고자 다짐했던 김 판사는 수시로 사형수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뒤에는 사형수들의 대부가 되길 자처했다. 그들과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는 현재 190여통이 전한다. 한 사형수는 “인간으로서는 하지 못할 죄악을 범하고 지금은 최고형이 확정된 보잘것없는 저에게 친히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는 영감님의 뜻 대단히 감사히 생각합니다. 영감님의 따뜻한 손길에 감화받아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참삶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라고 썼다. 베푸는 삶을 살았기에 가정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지만 가족들은 가난을 불평하지 않았다. 철효씨는 “오히려 ‘사법권만은 절대로 썩지 않았다’고 누누이 하시던 말씀에 자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 판사가 세상을 떠난 뒤 집안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지만 부인은 이후에도 수십년간 교도소를 찾으며 남편의 뜻을 이어 갔다. 서울고법은 제10대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김 판사 탄생 100주년, 서거 50주기를 맞아 16일 추념식을 연다. 가족들을 비롯해 양승태 대법원장,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법조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법조인으로 구성된 법조 관현악단이 기념 연주를 하고 ‘어느 법관의 삶-사도가 된 법관 김홍섭’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최종고 서울대 명예교수의 특별강연도 이어진다. ‘사도법관 김홍섭 회고전’은 오는 18일까지 계속된다. 김 판사가 생전에 남긴 자작시, 스케치, 사진, 사형수들과 주고받은 편지, 그가 입었던 법복 등 유품이 전시된다. 현직 법관들과 생전 지인들이 말하는 김 판사에 대한 기억과 그가 맡았던 주요 사건의 판결, 신문 등에 기고한 논문 등을 실은 자료집도 발간된다. 글 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궁금한 이야기 Y’ 포천 농약 연쇄살인사건 두 얼굴의 엄마

    ‘궁금한 이야기 Y’ 포천 농약 연쇄살인사건 두 얼굴의 엄마

    ‘궁금한 이야기 Y’ 포천 농약 연쇄살인사건 두 얼굴의 엄마 ‘궁금한 이야기 Y’ 포천 농약 연쇄살인사건 14일 방송되는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포천에서 일어난 농약 연쇄 살인 사건 피의자에 대한 정체를 파헤쳐본다.   지난 2월 가족 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검거됐다. 선한 인상의 평범한 주부였던 노 씨는 왜 강력사건의 피의자가 됐다. 불과 3년 사이에 전 남편과 현 남편을 연이어 잃고 시어머니까지 떠나보낸 그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2011년 노 씨는 전 남편이 마실 음료수에 치사량의 제초제를 넣은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들은 연이은 사업 실패와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이혼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전 남편이 음료가 든 병을 들이키는 장면을 본 목격자의 진술도 있어, 사인은 ‘자살’로 결론 지어 졌다. 하지만 1년 뒤, 재가를 한 노 씨는 희귀 폐 질환을 앓았던 시어머니와 재혼한 남편을 한 해에 모두 떠나보내게 되었다. 단순 죽음으로 처리하기에 무언가 미심쩍게 여긴 보험사의 신고로 사건의 전말은 밝혀졌다. 노 여인은 시어머니가 마신 박카스 음료에 제초제를 넣었고, 재혼한 남편 역시 음식에 들어 간 소량의 제초제를 장기간 복용 하게 되면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전 남편의 잦은 폭력에 시달렸고, 시어머니는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구박했기에 죽인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재혼한 남편의 경우에는 음식에 제초제를 섞은 것은 인정하지만, 극소량이기 때문에 죽일 의도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20억이 넘는 보험금을 독차지하게 된 노 씨 주장은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노 씨는 살해 이유가 결코 돈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수령한 보험금으로 골드바와 귀금속을 구매하는 등 쇼핑에 많은 돈을 지출했다. 겨울에는 거의 매일 스키를 즐긴 사실도 확인 됐다. 다만 이상한 것은 상당한 금액의 보석을 구입했는데도 실제로 노 씨가 그것을 착용 하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유난히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노 씨는 불우한 유년을 보상 받듯 자식들에게는 비싼 음식과 옷을 사주며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노 씨는 친 딸 역시 소량의 제초제가 섞인 음식을 먹여 서서히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다행히 친 딸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평생 제초제 중독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한다. 좋은 엄마와 연쇄 살인범 사이를 오가는 노 씨의 두 얼굴,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궁금한 이야기 Y’에서 ‘포천 농약 연쇄 살인 사건’ 피의자 노 씨의 정체를 파헤쳐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 책] 할머니 삶에 투영된 우리 근·현대사의 맨얼굴

    [이주일의 어린이 책] 할머니 삶에 투영된 우리 근·현대사의 맨얼굴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임정자 지음/권정선 그림/한겨레아이들/96쪽/1만원 ‘오실랑가 오실랑가/우리 손님 오실랑가/기별 없이도 오는 소님/오늘은 오실랑가.’ 할머니는 오늘도 툇마루에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이제나 올지 저제나 올지 알 수 없는 손님을 마냥 기다렸다. 할머니는 동백나무 우거진 섬마을에서 민박을 하며 홀로 근근이 살고 있다.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모습이 장관을 연출해 휴가철이면 섬마을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민박 집마다 손님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할머니 집은 손님이 잘 찾지 않았다. 다른 집들은 전복 농사로 돈을 많이 벌어 집을 현대식으로 새로 지었지만 할머니는 돈이 없어 집을 리모델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내용물이 훤히 보이는 옛날식이고 씻는 것도 밖에서 쪼그려 앉아 씻어야 했다. 옛날 그대로의 시골집인데도 행여나 찾는 손님이 있을라치면 할머니는 가족처럼 반겨주고 대했다. 할머니 남편은 6·25 때 빨갱이로 몰려 죽었다. 빨갱이 처자식이라는 낙인을 피해 아들을 데리고 살던 곳을 떠나 지금의 섬마을로 야반도주했다. 아들은 집안에 보탬이 되기 위해 뱃사람이 됐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배가 전복돼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할머니는 딴 데 가서 다시 시집가라며 혼자된 며느리를 억지로 떠밀어 친정으로 보내고, 손자를 맡아 길렀다. 손자는 장성해 뭍에 나가 가정을 꾸렸다. 설을 앞두고 손자에게서 내일 아침 일찍 식구들과 찾아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손님은 누굴까. 가난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남존여비 사상의 고통까지 감내해야 했던 여성들의 고달픈 삶뿐 아니라 그 속에 흘렀던 강렬한 생의 의지까지 담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힘겨운 시대의 무게를 가녀린 몸과 의지로 견디며 새로운 세대를 길러낸 이 땅의 여성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할머니의 삶은 아프고 어두운 우리의 근·현대사이자 맨얼굴”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이의 마음과 현실은 물론 신화와 옛이야기까지 아름다운 우리말로 구현해 어린이문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고 있다. 초등 고학년.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얼마나 재밌었으면 영화로 태어났을까

    [지구촌 책세상] 얼마나 재밌었으면 영화로 태어났을까

    “그 영화 원작 책도 읽었어요?” “아니요.” “영화도 좋지만 원작이 아주 재미있어요. 꼭 읽어 보세요.” 워싱턴DC에서 독서광으로 소문난 지인과 얼마 전 나눈 대화다. 지난 1월 중순 개봉해 역대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전쟁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파격적인 성 묘사로 소위 ‘엄마들의 포르노’라는 평가를 받는 등 지난달 중순 개봉한 이래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원작에 대한 평가를 듣게 됐다. 이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2013년 1월 출간된 자서전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왼쪽)’와 2012년 4월 출간된 소설 3부작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오른쪽)는 영화가 흥행하면서 원작소설이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두 책을 주문해 읽었다. ‘아메리칸’는 미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총잡이’로 평가받는 네이비실 대원 크리스 카일이 이라크전에서 겪었던 경험을 쓴 자서전이다. 카일은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미군 역사에서 적들을 가장 많이 사살한 총잡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보호하는 미군 전사들은 그를 ‘전설’이라고 불렀지만 적들은 그를 ‘악마’라고 부르며 현상금까지 걸었다. 카일은 전쟁의 고통과 압박감을 솔직하게 써나간다. 친한 동료들의 죽음, 부인 등 가족의 고통, 전쟁 후 겪어야 했던 후유증 등…. 책이 출간된 뒤 나흘 만에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그의 인생은 삶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그레이’는 지인의 평가대로 매혹적이다. 가난한 여대생과 모든 것을 갖춘 젊은 사업가의 불꽃 같은 사랑은 남자의 특이한 성적 취향과 어두운 과거 때문에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1억부 이상 판매돼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 잡은 E L 제임스는 인간의 악마적 근성과 구속하려는 욕구, 나약함, 질투, 공포심 등을 너무나 자세히 묘사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을 만큼.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교황 “방한 때 환대한 한국민 기억합니다”

    교황 “방한 때 환대한 한국민 기억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을 찾은 한국 주교단과 얘기를 나누며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함께 나누며 환대해준 한국 국민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면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시복한 것이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교황은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희생하고 자비를 베풀도록 하는 좋은 본보기를 제공했으며 그들의 가르침은 개인은 소외되고 사회관계는 더욱 약화된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서 “한국 방문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 끊임없는 격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과 한국 주교단의 만남은 17일까지 계속되는 주교들의 교황청 정기 방문 행사 중 하나로 진행됐다. 교황은 앞서 지난 9일 한국 주교단 26명 중 14명을 먼저 만난 데 이어 이날 12명을 따로 만났다. 교회법에 따라 모든 교구의 주교들은 5년마다 교황청을 공식 방문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묘소를 참배하고 세계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에게 지역 교회의 현황을 보고한다.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이날 교황 보고 자리에서 “교황의 방한 이후 한국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면서 “결론은 복음으로 돌아가 저희 주교들이 먼저 ‘복음의 기쁨’으로 살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즉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교황은 올해가 남북분단 70주년이라는 말을 듣고는 “남한과 북한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라며 “순교자의 피는 남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피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남북의 화합과 평화를 당부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소득 많아도 건보료 한 푼 안 내는 건보체계 손봐야

    건강보험료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연간 소득이 4000만원에 이르는데도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는 이들이 무려 4800여명이나 된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하듯 소득이 있으면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건만 이 같은 상식이 거꾸로 가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정부가 소득이 많아도 건보료를 내지 않고 마음 놓고 병원에 다닐 수 있도록 건보료 부과체계 자체를 엉터리로 설계한 탓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건보료 체계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 현행 건보료 제도에서는 소득이 있어도 직장을 다니는 가족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면 건보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반면 저소득층의 지역가입자라도 전·월세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어김없이 부과된다. 집도 있고, 수천만원의 연금소득이 있는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말 “(나는) 퇴임해도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바뀌어 보험료가 0원이 되지만 (가난 때문에 자살한) 송파 세 모녀는 집도 없고 소득도 없는데 보험료를 내야 한다”고 개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건강보험 수지가 올해 흑자를 끝으로 내년부터는 매년 조 단위의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있다. 세계에서 부러움을 받는 우리의 건강보험제도가 지속 가능하려면 잘못된 건보료 개편밖에 답이 없다. 우선 소득이 있는 이들의 무임승차부터 막아야 한다. 현재 근로소득·연금소득·이자소득이 각각 4000만원 이하일 경우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하는데, 이들 소득을 합한 총액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나아가 저소득층의 보험료 부과체계도 손질이 불가피하다. 연간 491만원의 소득을 가진 이가 불과 10여만원 소득이 올라도 연 보험료는 24만원에서 79만원으로 보험료 폭탄을 맞게 된다고 한다. 보험료 기준 500만원에 기계적으로 맞추다 보니 생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1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하려다 전격 중단했다. 연말정산 소동으로 여론이 들끓자 놀란 나머지 정작 추진해야 할 건보료 개편을 없던 것으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던 것이다. 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건보료 개편의 당위성을 또다시 보여 주고 있다. 복지부는 하루빨리 건보료 개편안을 만들어 실천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 국내여행 | 합천이어야 했던 이유

    국내여행 | 합천이어야 했던 이유

    이야기는 50여 년 전 한국에 머물렀던 어느 프랑스인에서 시작된다. 합천 해인사를 사랑해 죽어서도 그곳에 묻힌 사람. 무엇이 그를 넋으로 돌아오게 했을까? 그 질문에 밀려 합천으로 갔다. 홍류동에 뿌려지다 합천군은 잘 알고 있었다. ‘합천’ 하면 떠오르는 ‘해인사’의 공식이 이 도시의 이미지를 경직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시작한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나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귀가 솔깃했으나 결국 2013년 이 행사를 찾았다는 200만명의 대열에 속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로제 샹바르’의 사연과 프랑스인들과 동행하는 합천 여행은 만사를 제쳐 놓게 할 만큼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단 ‘문제적 그’를 먼저 소개한다. 로제 샹바르Roger Chambard는 1959년 한국에 부임해 10년간 근무한 초대 주한프랑스 대사였다. 그 기간 중에 한국을 널리 여행했던 그는 특히 해인사를 좋아해 ‘죽으면 화장을 해서 해인사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했고, 실제로 1982년에 78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유골은 한국으로 옮겨져 합천 해인사 자락에 뿌려졌다. 그의 손자 올리비에 샹바르Olivier Chambard는 프랑스 외교부 아프리카-인도양 담당 부국장이 되어 2011년 9월에 공무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종종 언론에 소개되곤 했지만 그냥 잊힐 수도 있는 이야기에 마음이 복잡해진 이유는 아마도 ‘죽을 자리’ 때문이리라. 세상을 많이 떠돈 만큼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회귀본능이다. 마지막 자리는 내 나라, 사랑하는 사람의 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결석처럼 단단해진다. 그런 본능을 넘어서 타국, 타향을 선택할 만큼 로제 샹바르의 해인사 사랑이 대단했던 것인지 영혼의 외로움이 컸던 것인지,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단편적이기만 하다. 어느 프랑스인의 피안彼岸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후 가난했던 한국의 모습은 흑백사진으로 남아있고, 그 사진 속 로제 샹바르도 흑백이다. 시간은 그냥 흐르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그 사이 홍류동紅流洞 계곡 옆으로 포장도로가 깔렸다. 2011년부터 ‘소리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해인사 산책로 6.3km는 3분의 2 이상이 이 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해인사 시외버스 터미널을 오가는, 통행량이 적지 않은 도로이고 커브를 도는 엔진소리는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도 잠식한다. 그 옛날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 할 정도로 옥계수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우렁찼다는 이야기가 무색하지만 다행히도(?) 소리길의 ‘소리’는 ‘Sound’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소리蘇利는 불교에서 ‘이상향’ 혹은 ‘피안’을 뜻한다. 작은 힌트를 주워 본다. 로제 샹바르가 해인사를 드나들던 그 시절에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홍류동 계곡은 어쩌면 그에게 이상향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우거진 송림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듬직한 바위 사이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청수, 그 물살의 기개를 보여 주는 폭포와 웅덩이들. 그 안에 숨은 19개의 명소. 신라 최고의 천재로 칭송받았지만 말년에 해인사에 머물다 홍류동 계곡에서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혹은 방랑 끝에 죽었다는) 최치원에게 이곳이 피안이었듯, 노년의 프랑스인에게도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은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소나무, 노각나무, 떡갈나무, 떼죽나무, 줄참나무, 굴참나무 가득하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지는 소리길을 두 시간 넘게 걷는 동안 두 노인의 마음을 소리 없이 헤아려 보았다. 최치원이 명명했다는 가야산 19경 중 16경이 그 헤아림에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마음에 담은 해인사의 보물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시작된 소리길은 해인사에서 끝이 난다. 경내로 들어서자 한눈팔지 않고 장경판전으로 직행했다.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장경판전은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소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팔만대장경8만1,258장은 12년 후에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은 통풍, 방습, 온도 유지 등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에 있어서 현재의 건축기술이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지만 일부 장경에 곰팡이가 피는 등 문제가 발생해 다시 옮겨 왔을 정도다. 통풍을 위해 앞뒤 창문의 크기를 다르게 하고 바닥에 숯과 소금 등을 깔아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지혜는 함부로 베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들어갈 수도, 사진촬영도 불가능하기에 아쉬운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 먼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해인사가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앞마당엔 법고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경내의 모든 사람들은 부동자세로 젊은 스님들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국 사찰 중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법고 소리로 유명한 해인사이니 가능한 풍경이다. 무려 23개의 산내 암자를 지닌 해인사이기에 타종 소리, 법고 소리는 그 어느 곳보다 멀리 도달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경외로 나가자 아까 스치듯 지나온 전나무와 작품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소리길에서부터 드문드문 만났던 조각품과 설치 작품들은 2013년 진행됐던 해인사아트프로젝트의 흔적이다. 30팀의 국내외 작가들이 ‘마음’이라는 주제를 담아 평면, 입체, 미디어, 설치작품을 완성했다. 5,200여 만 자에 이르는 팔만대장경의 글자들을 단 한 자로 요약하면 ‘마음 心’이기 때문이다. 방치되어 파손된 작품 앞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정성을 다한 작품 앞에서는 경탄심이, 위트가 넘치는 작품 앞에서는 ‘아하’ 하는 마음이 둥둥둥 울리고 있었다. 팔만대장경에 한 톨씩을 새겨 넣었던 선조들의 바람은 호국이었든, 무병장수였든, 소원성취였든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불운한 말년을 보냈던 최치원의 마음과 타향에서의 안식을 원했던 로제 샹바르의 마음도 홍류동 계곡에서 하나로 합수하여 합천으로 흘러들고 있듯이 말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합천군 www.hc.go.kr ●Bon voyage 해인사 소리길의 도반들 해인사와 소리길 여행에는 유쾌한 도반들이 있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3명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인의 시선과 감성에서 로제 샹바르와 해인사의 인연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합천 여행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묻기 위해 합천군에서 초대한 손님들이었다.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벵자맹 박사가 두 사람을 위해 통역을 맡아 주었다. 그들의 ‘까칠하지만 솔직한’ 피드백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한없이 모던하고 최첨단인 대장경테마파크의 시설과 기술이 오히려 팔만대장경과 단절되어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고, 해인사 사하촌에 많은 식당이 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지나치리만큼 자주 눈에 띄었던 해인사의 보시함을 지적할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견 합당하고, 일견 문화적인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던 대화들은 1박2일 내내 진지하게 이어졌다. 해인사에 가려져 있는 합천의 매력이 더 잘 알려지기 바라는 ‘마음’들이 합천군에도 한 자 한 자 기록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참고로 세 사람의 프랑스인이 예상외로 황매산의 때늦은 억새풍경을 극찬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travel info 합천 합천영상테마파크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으로 탄생한 합천영상테마파크는 합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1920년대 경성의 거리와 1980년대 서울의 모습이 교차하는 곳이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고 아이들에게는 낯선 근현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경남 합천군 용주면 합천호수로 757 055-931-2467 1,100원 대장경테마파크 초조대장경 간행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은 2011년 첫회를 시작으로 2013년 행사까지 성황리에 마쳤으며 다음 회를 기약하고 있다. 대장경테마파크 안에는 대장경천년관, 지식문명관, 정신문화관, 세계교류관, 세계시민관 등 5개의 전시관이 조성되어 대장경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160 055-930-4801~2 어른 3,000원 황매산 철쭉, 억새 군락지 5월이면 철쭉 원피스를 입고, 10월이면 억새풀 망토를 두르는 산이 황매산이다. 북서쪽 능선의 정상 아래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기에 평소에도 산상화원을 만나고 싶은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다. 봄과 가을만 바라는 사람은 초목으로 뒤덮인 황매산의 여름이나 눈꽃이 만발은 황매산의 겨울은 놓치는 것이니 어느 계절이든 황매산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대장경 밥상 받으시오! 합천군에서 지정한 딱 2곳의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상차림이다. 절식을 기본으로 했기에 기본적으로 채소밥상이지만 육류를 추가 주문할 수 있다. 건강한 맛뿐 아니라 식기를 모두 놋그릇을 사용하기 때문에 품격도 남다르다. 대장경 한정식은 1인분에 3만원으로 반드시 사전에 주문해야 하며 이 밖에 도토리 비빔밥 세트(1인분 1만5,000원), 도토리 비빔밥(7,000원) 등의 메뉴가 있다. 백운식당 055-932-7393 해인식당 055-933-1117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명품 매장이 즐비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북동쪽으로 지하철로 20분만 가면 가난한 거리가 나타난다. 파리 19, 20구의 빈민가다. 이곳은 연초에 파리 연쇄 테러를 저지른 이민 2세대인 쿠아치 형제가 살았던 곳으로 여전히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방치돼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던 파리 19, 20구는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 흑인 등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다. 현재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벨빌’로 불린다. 이 벨빌 비송거리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칠층’에 아랍인 소년 고아 모모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가 함께 살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경계인들로 아랍인과 유대인, 어린아이와 늙은이, 고아와 창녀, 이주 노동자와 성소수자 등이다. 이들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한 공간에 살고 있다. 작가는 이들을 극단적인 상황에 던져 놓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 사랑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 그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인종, 나이, 성별을 초월한 사랑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경계인에 대한 에밀 아자르의 애정은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인 작가 자신의 삶과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공쿠르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며 외교관이었으며 영화감독이었다. 그럼에도 여러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존재 방식으로 프랑스 문단의 편견을 한껏 조롱한 작가는 권총 자살 후에야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임을 밝힌다. 작가는 책 ‘인간의 문제’에 실린 장 다니엘과의 대담에서 “내 소설의 진정한 관심사는 인간의 존엄성이며 인간의 권리”라며 “인간적 여지는 내 책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년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성장한 로맹 가리에게 소외, 인권, 소수자, 불평등, 편견 등 인간이 처한 사회적 구속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화두였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열네 살 모모와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로자 아줌마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모모는 자신을 돌보던 로자 아줌마가 뇌혈증을 앓자 거꾸로 로자 아줌마를 돌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살고, 병들고, 늙고, 죽어 가는 삶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모모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지혜를 주는 하밀 할아버지, 전직 복서였지만 지금은 여장 남자로 몸을 파는 롤라 아줌마, 비송거리의 유대인과 아랍인, 흑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카츠 선생님 등은 고아라도, 창녀라도, 성소수자라도, 종교와 인종, 세대가 다르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준다. 누구도 서로를 비난하지 않으며 외롭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기꺼이 보살핀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이들의 경계선은 해체돼 고아고 창녀고 이방인이 아니라 어느새 사랑할 줄 아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엄한 인간’으로 남는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삶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모모는 훔친 푸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 주고 싶어졌다”며 “남에게 줘 버리기까지” 한다. 그 대가로 받은 돈을 하수구에 처넣고는 오히려 행복해한다. “엄마가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여자라 해도 무조건 사랑했을 것”이고 “영웅 같은 것보다 그냥 아빠가 있어서 엄마를 잘 돌봐주는 뚜쟁이기를” 소망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아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 줄 것이다”라며 소외받는 이들의 편에서 생각할 줄 안다.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약속이라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늙었다 해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니까”라며 세상의 편견에 물들지 않는다. 늙고 병든 로자 아줌마를 보며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라며 우리의 마음이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늙고 추하고 다시는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없었기에 이때처럼 로자 아줌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죽음에 임박해 냄새가 나는 로자 아줌마에 대해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러면서 모모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하는 로자 아줌마를 위해 기꺼이 옆을 지킨다. 하밀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이라고 번역된 프랑스어 원제목(La vie devant soi)이 ‘여생’, 즉 ‘앞으로 남은 생’임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읽힌다. 그래서 로자 아줌마가 죽은 후 이웃에게 구조된 모모는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며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 이 책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렸지만 삶을 살아내는 문제를 결코 음울하게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극한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상황일수록 일상의 밑바닥에 고여 있는 초라한 삶에 침을 뱉을지라도 더 힘껏 생을 끌어안아야 하고, 그것이 사랑임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아련한 슬픔에 희망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밀 할아버지의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라는 말은 고통, 희망, 미움, 사랑 등이 섞여 있는 게 온전한 삶의 모습임을 역설하는 셈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 국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34개 회원국 중에서 32위다.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지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돈과 지위로 인간 존엄을 해치는 사건이 회자되고 있고 세계 곳곳은 테러와 전쟁으로 어수선하다. 이럴 때일수록 간절히 필요한 게 ‘사람과 삶에 대한 무한하고 깊은 애정’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낭만일까. 누군가가 지금 힘들어한다면 이 책에서 펼쳐 놓은 생의 적나라한 모습을 마주하길 바란다. 모모의 독백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모모가 깨달은 삶의 의미와 진실에서 용기를 얻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책, 삶의 부박함에 받은 상처를 치유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의 맨 앞장에는 이런 제사가 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쳐버린 거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의 참맛은 그런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걸.’”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난다.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이번 주부터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을 테마로 월요일에 격주로 게재됩니다.
  • [정병석의 경제산책] 다시 게을러지는 한국인?

    [정병석의 경제산책] 다시 게을러지는 한국인?

    나폴레옹 황제가 조선을 언급한 것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국민성에 대해서였다. 그가 세인트헬레나 섬에 귀양 가 있을 때 “이 세상에 남의 나라를 한 번도 쳐들어가지 않은 민족도 있다더냐?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 그 조선이라는 나라를 찾아보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의 서해안과 남해안을 탐사한 영국의 해군장교를 1817년 만난 자리에서 조선이 평화를 사랑하여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는 설명을 들은 후에 한 말이다. 나폴레옹이 귀양지에서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 말은 실현되지 못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거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표현은 어찌 보면 국력이 약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빈국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19세기 중반에 조선에 온 외국인들은 나라가 너무 가난하고 산물이 빈약하며 사람들이 게으르고 더럽다고 기록했다. 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이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사했는데, 조선 주민들이 게으르며 불결하고 비참한 주거환경에서 진흙으로 빚은 조잡한 살림도구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기록했다. 또한 토지가 비옥한데도 가난한 것은 주민들의 책임이 아니라 정부가 주민들을 열심히 일하도록 자극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즉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어 그렇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1885년 조선에 왔던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는 “조선인들이 가난하고 게으르고 무관심한 것은 그들이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산업을 일으킬 동기를 정부에서 빼앗아 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착취적인 지배계급 탓에 백성이 일할 의욕을 잃고 자본을 축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세기 말 청·일전쟁 이후에 한국에 왔던 영국인 비숍 여사는 서울 마포 거리 혼잡한 군중 속에서 남성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배회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농부나 상인에게 돈이 생겼다고 소문나면 이를 착취하려고 억지로 트집을 잡고 빌려주지도 않은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며 이를 거절하면 엉뚱한 죄목으로 투옥하여 매를 치는 양반들의 착취 횡포를 비판했다. 이들 서양인은 왜 당시 조선인들이 가난하고 게으른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민족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제도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평가는 한국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산업혁명을 완성하고 숨 가쁘게 살아가는 영국인들의 눈에 비친 19세기 중반의 독일인들은 게으르고 법질서도 지키지 않는 한심한 민족이었다. 20세기 초까지도 일본인들은 유럽인들로부터 게으르고 시간관념이 없는 민족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시장경제가 활발하게 작동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일 인센티브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돈을 벌 기회가 없고 축적한 재산이 보호받지 못하거나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없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독일인이나 일본인조차 게을러 보이게 만들 정도로 부지런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국인의 근면성이 20년 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그 추세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청년들의 의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일할 직장이 없고 설사 취업이 된다고 해도 스트레스를 견뎌 내면서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일해야 할 의욕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노력해 봐야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없으니 차라리 남을 의식하지 않고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살자, 적게 벌어 적게 쓰면서 소시민적 삶을 살자는 인생관이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밤새워 일하면 성공의 기회가 많았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요새 청년들이 직면한 사회는 성공의 사다리가 갈수록 좁아져 일할 기회도 없고 그럴 의욕도 없으니 일상의 작은 행복에 안주하려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근면한 국민성으로 바뀌었다가 성장이 정체되고 활력을 잃게 되자 다시 근면성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기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기를 살려주고 활력을 불러일으키며 열심히 일해서 신분 상승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체제를 바꾸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 해외여행 | 당신과 함께 스페인을②몬세라트 Montserrat

    해외여행 | 당신과 함께 스페인을②몬세라트 Montserrat

    ●Montserrat 신비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바위산, 몬세라트 희뿌연 새벽안개인지 몽실몽실 내려앉은 옅은 구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해발 1,200m의 거대한 바위산 몬세라트Montserrat 중턱에는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년의 40년 독재정권 시절, 카탈루냐 사람들이 침묵의 투쟁을 벌였던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다. 독재자의 매서운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지키기 위해 카탈루냐어로 미사를 진행하면서 합창곡을 부르던 애잔함 때문일까. 수도원에는 애달프면서도 굳건한 저항의 기운이 감돌았다. 카탈루냐인의 정신적 고향이었던 베네딕트 수도원은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다. 좀더 전문적인 해설을 위해 일일 섭외된 가이드 호세 마리아Jose Maria는 전 세계 신자들의 발걸음이 이곳으로 모이는 데는 역사적인 의미도 있지만 검은 성모 마리아상 ‘라 모레네타La Moreneta’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얼굴과 손 부분이 진한 갈색 또는 검은 빛을 띄우는 성모상은 12세기에 만들어졌다고만 추정할 뿐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증은 아직까지도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고. 그러나 성모상을 만나러 온 이들에게는 의문보다 희망이 더 먼저다. 성모상의 손을 만지며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이다. 마침 맑은 아침 공기 안으로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상의 목소리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에스콜라니아Escolania 소년 합창단의 성가까지 더해져 바위산 구석구석이 일렁였다. 그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기운에 취했는지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어느새 성모상의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food of Vasco 별들이 쏟아지는 바스크의 맛 조개 모양의 해안, 콘차 해변을 끼고 있는 바스크 지역의 아름다운 마을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에 다다르자 맛있는 냄새에 침샘이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하비는 이곳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라고 시간을 주었다. 어느 레스토랑에 가도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며. 바르셀로나에 타파스Tapas가 있다면 바스크에는 바게트 한 조각 위에 연어, 하몽, 엔초비 등 다양한 재료의 음식을 올려 먹는 핀초pincho가 있다. 산 세바스티안의 구시가지는 골목마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핀초 레스토랑이 즐비한데, 그래서 나는 이곳을 ‘핀초 거리’라고 불렀다. 가게마다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제각각이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1.5~2.5유로 사이의 저렴한 가격으로 색다른 핀초를 한두 개씩 실컷 맛볼 수 있었다. 바스크 지역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 특히나 자부심이 강하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남자 셰프들 중 대다수가 바스크 출신이고 이 작은 도시에만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12개나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핀초와 함께 이 지역의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 ‘차콜리’를 한 잔, 두 잔 곁들이다 보니 바스크 지역에 미슐랭 별들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스크는 어느 나라? 바스크 지역의 자부심은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비는 이날 우리에게 바스크 ‘나라’에 간다고 했다. 모두들 동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나는 일정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 바로 ‘나라’라는 단어인데 스페인에서 또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는 것인가 착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약 70여 인종이 크고 작은 지방자치 안에 모여 살고 있지만 ‘바스크’ 지역은 스스로를 ‘국가’라고 지칭할 만큼 특히나 지역감정이 심각하단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에 맞닿은 바스크의 지리적인 위치 때문이 아니더라도 스페인과는 오래 전부터 인종과 언어도 달랐기 때문에 오랫동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강력하게 염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바스크 지역에 직접 가 보니 그 이야기가 참으로 와 닿는다. 바르셀로나나 다른 소도시들과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의 건축양식이 골목 구석구석을 수놓았고 표지판은 스페인어와 함께 바스크어로도 표기해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 가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국경을 넘어 이제껏 알지 못했던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랄까. 민속축제에서도 그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무거운 돌을 든다거나 통나무 패기 등 힘을 과시하는 경기들이 많은데 스페인이라는 국가에서 그들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강인함을 기르기 위함일까? ▶must go 당신에게도 기적을 프랑스 루르드Lourdes 이번 취재는 스페인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일정에는 스페인 국경과 맞닿은 프랑스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 루르드도 포함됐다. 루르드는 매년 6백만명 이상의 순례자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으로 기적의 땅이라 불리는 순례성지다. 1858년, 마사비엘 동굴에 가난하지만 신앙이 깊은 어린 소녀 베르나데트 앞에 아름다운 여인(사람들은 이 여인을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것이라고 여겼다)이 18회에 걸쳐 나타나 “샘에 가서 마시고 씻으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이 샘물을 마신 이들 중 몇몇은 불치병이 치료되었다. 이후 루르드는 치유의 샘물로 유명해졌고 1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자들의 갈증을 적시고 있다. 마사비엘 동굴 위에는 성모상이 신자들을 반기고 입구에는 신자들이 봉헌한 초들이 365일 내내 한시도 꺼짐 없이 불을 밝힌다. 동굴 안 반질반질하게 닳은 바위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루만지며 정성을 올린 증거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취재협조 트라팔가 한국 사무소 www.trafalgar.com, 02-777-6879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42. 시동생과 함께 남편 살해한 17세 신부의 패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2. 시동생과 함께 남편 살해한 17세 신부의 패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사람이 대체 어느 정도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보험금을 노려 두 명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독극물로 살해하고 자기 친딸까지 희생시키려 한 40대 주부가 온 국민을 전율케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래의 남편 살인 사건은 어떻습니까. 1970년 여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악녀와 시동생의 범행 일지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2. 시동생과 함께 남편 살해한 17세 신부의 패륜 (선데이서울 1970년 7월 2일자) 너무도 끔찍한 사건이 충남 금산의 어떤 외딴집에서 일어났다. 17세 짜리 형수와 19세 시동생이 28세의 친형을 살해하고 시신 옆에서 또 한번 불륜의 정을 통했다. 형수는 결혼 1개월도 못되어 시동생과 패륜에 빠지고 넉달만에 남편을 살해한 뒤 보따리를 들고 줄행랑을 쳤다가 드디어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가난한 신혼에 짜증내자 그때마다 시동생이 위로 김모(17)양은 전북에서 태어나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庶母·아버지의 첩) 밑에서 자랐다. 3년 전부터 전주, 광주 등지에서 식모살이를 해오던 김양은 서모도 세상을 떠나자 식모살이를 청산하고 지난 1월 서외삼촌인 전모(38)씨의 금산 집으로 갔다. 이것이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전씨는 2월 초 같은 마을에 사는 박모(28)씨와 생질녀 김양의 혼담을 진행시켰다. “두 집이 가난하니 서로 결혼시켜 알뜰히 살도록 해주자”고 했다. 혼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돼 박씨와 김양은 2월 24일 약혼식을, 이틀 뒤인 26일 결혼식을 올렸다. 김양이 금산으로 온 지 1개월여만이었다. 신랑 박씨는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았다. 젊은 신부에 마음이 온통 쏠려 3만원의 이잣돈과 장리쌀 2가마를 누이 박모(32) 여인을 통해 얻어 동네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을 불러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한 살림에 신혼여행을 갈 수 없었던 부부는 신랑집인 마을 맨끝 산마루집 흙담 2간의 아랫방에 신방을 차렸다. “내 비록 국민학교(초등학교)조차 못 나오고 가난하지만 몸뚱이 하나는 튼튼해. 젊은 몸뚱이니까 밥은 안 굶겨. 당신만은 꼭 행복하게 해줄게….” “재미있게 한번 살아보자고요. 저도 객지에서 식모살이 하다가 이렇게 시집을 오니 참 재미있고 즐겁네요.” 그런데 열일곱살 마누라는 싫증을 너무 빨리 느꼈다. 주된 이유는 남편이 촌스럽다는 것. 재산이라고는 겨우 인삼밭 3간(약 50평) 밖에 없고 남의 땅을 소작하고 있는 박씨. 게다가 남편은 왜 이렇게 촌스럽게 생겼는지. TV도 없고 전화도 없고. 도시에서 잘 사는 집 식모살이를 해봤던 김양은 시골에서의 이런 신혼생활에 며칠 못가 염증이 나고 말았다. 눈에 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 10일이 지날 무렵부터는 남편에게 “촌사람 같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았고 이는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시동생인 박모(19)군이 자기보다 두 살 어린 형수를 위로하며 싸움을 말리곤 했다. 패륜은 우연히 시작되고 현장들키자 살해를 공모 결혼하고 만 1개월에서 하루가 모자라는 지난 3월 25일. 아침부터 사소한 일로 김양과 박씨는 언쟁을 했다. 박씨는 집을 나가 마을로 갔고, 홀로 있는 시어머니 홍모(51) 여인과 13살 된 시누이는 인삼밭에 가고 없었다. 오후 4시쯤. 그날따라 봄 기운은 고사하고 매섭게 추운 날씨였다. 시어머니와 남편을 비롯한 다섯 식구 중 세 명이 집을 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두 살 차이 나는 형수와 시동생뿐. 김양이 부엌일을 끝내고 박군이 누워있는 이불 속으로 몸을 녹이려 파고든 것이 불륜의 출발점이었다. 갑작스럽게 형수의 온기를 느낀 박군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형수를 부둥켜안았고, 김양도 순식간에 시동생에게 몸을 맡겼다. 남편에 불만이 있는 데다 박군이 항상 자기 편에서 두둔을 해주곤 했기에 호감이 가던 중 연령으로도 10여살 위인 남편보다 홀가분한 시동생의 품에 손쉽게 파고들고 말았다. 불륜은 거의 매일 같이 계속됐다. 식구들이 일하러 가거나 마을을 간 틈을 타 벼락같이 진행됐다. 이들은 남의 눈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인삼밭이 띄엄띄엄 있는 뒷산으로까지 장소를 옮겨 가며 불륜행각을 이어갔다. 그러던 지난 6월 5일 새벽 4시쯤. 논물을 보러 남편이 집을 나간 사이 시동생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가 그 사이에 돌아온 남편에게 2개월 10일간이나 비밀리에 지속해 온 부정의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그때부터 가정불화는 한층 심해졌다. ‘겨우 빚까지 얻어 맞아들인 아내를 쫓아버리자니 가난한 살림에 새로 장가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편 박씨의 고민은 깊어갔다. 결국 박씨는 부인과 함께 딴 집으로 이사를 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이사 준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김양의 생각은 달랐다. 부정이 탄로난 그날부터 남편을 살해할 결심을 하고 그 방법만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시동생과도 머리를 맞댔다. 결국 형수는 시동생을 시켜 금산 장날인 6월 12일 읍내에서 15원을 주고 극약 한알을 사도록 했다. 이어 15일 남의 집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 두어잔을 먹고 울적해진 박씨는 같은 마을에 있는 누나네 집을 찾아가 “내일 방을 얻어 이사를 갈 테니 독 2개와 잔그릇 몇개만 장만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날 자정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약 30분뒤 아내가 갖다주는 극약이 든 냉수를 아무 의심없이 벌컥벌컥 들이킨 박씨. 고통에 몸부림치는 형의 머리를 동생은 미리 준비한 몽둥이로 힘차게 내리쳤다. 박씨는 그 자리에서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는 13세 된 딸과 인삼밭을 지키러 나가고 없었다. 죽여놓고 자연사를 위장 장례 치르고 도망쳤으나 박씨를 살해한 이들은 자연사를 가장하기 위해 시신을 마당으로 굴러뜨려 얼굴에 상처를 입게 한 뒤 다시 방으로 끌어들이는 등 잔인한 살인 연극을 꾸몄다. 박군은 16일 새벽 4시 30분쯤 동이 트자 같은 마을에 살고있는 누이집으로 달려가 “형이 소변보러 간다고 밖에 나가다가 넘어져 죽었다”고 태연히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누나가 허겁지겁 뛰어왔지만 동생은 이미 뻣뻣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일단 자연사로 넘겨 날이 밝자 약 500m 떨어진 마을 뒤 밭에 시신을 묻었다. 이것으로 일단 사건은 일단락. 매장 다음날인 17일 낮 11시쯤 김양과 박군은 “남편과 형이 죽은 집에서는 살기 싫다”는 구실을 대며 옷가지를 싸들고 중매를 선 전씨 집에 들러 “집을 나간다”고 전한 뒤 자취를 감췄다. 뭔가 수상쩍다고 느끼고 있단 전씨는 의심이 깊어졌다. 박씨 어머니 홍 여인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들은 박씨의 6촌형은 홍 여인과 함께 경찰의 문을 두드렸다. 박씨의 사망이 석연치 않다고 했다. 경찰은 연고지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해 김양과 박군을 긴급수배했다. 박군과 김양은 금산읍의 한 하숙집에서 이틀 동안 단꿈을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자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고종사촌 형 황모(45)씨 집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 이들은 경찰 앞에서 박씨가 숨지고 난 다음 시신 옆에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천연덕스럽게 진술했다. “약간 겁은 났지만 마음놓고 즐길 수 있었다”고.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4300여명에게 새 희망… “여전히 벽에 부딪히는 이들 도와야”

    4300여명에게 새 희망… “여전히 벽에 부딪히는 이들 도와야”

    지난해 2월 26일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4300여명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구출됐다. 적극적인 기초생활수급자 발굴로 신규 수급자 수가 3년 연속 크게 감소하다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의 자살 소식이 들리고, 건강보험료 개혁은 비틀거리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에 등록된 신규 기초생활수급자는 2013년보다 4313명 늘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해마다 1만명 이상씩 줄어든 이래 처음으로 증가세로 전환됐다.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지자체들이 앞다퉈 취약계층을 발굴한 결과다. 서울 중랑구 관계자는 “시가 지난해 더함복지상담사를 채용토록 했고, 기초생활수급자 심사 때 돕지 않는 부양자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를 해소하기 위해 집중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간 자식이 있는 경우 도움을 주지 않아도 부양자가 있다는 이유로 가난한 이를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자식이 부양 의무를 하지 않거나 부양 능력이 없을 경우 이를 지자체가 나서 증명해 주고, 적극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하고 있다. 17개 시·도 중 경기도는 지난해 전년보다 1348명의 신규 기초생활수급자를 새로 발굴해 그 수가 가장 많았다. 이후 서울시(746명), 인천시(653명), 충남도(557명), 충북도(547명) 순이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는 중랑구가 229명으로 가장 많았고, 은평구(215명), 송파구(175명), 강서구(173명), 동작구(100명) 순이었다. 지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위한 소득 기준을 최저생계비의 80% 이하에서 100% 이하로 확대했고 생계 급여도 최대 2만원 올렸다. 서울 강남구는 복지재단을 출범시켰고, 용산구 등도 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성북·도봉·성동·금천구 등은 올해부터 찾아가는 복지플래너 활동을 시작한다. 국회는 지난해 말 ‘송파 세모녀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통과시켰고, 오는 7월 시행된다. 하지만 송파 세 모녀에게 월 5만원의 건보료가 부과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촉발된 건보료 개편은 백지화와 재추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고, 취약계층의 자살 소식은 여전히 들려온다. 홀로 장애 1급인 언니를 돌봐야 했던 류모(28)씨는 올해 초 대구의 한 주차장에서 승용차에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다. 그는 밀린 월세값 등을 남겼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다. 복지플래너 김모씨는 “근로 능력이 없는 이들도 당연히 도와야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스스로 살려 하지만 벽에 부딪히는 사람들도 많다”면서 “이들은 작은 도움만 있으면 가난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기 때문에 이를 구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문재인, 2002년 이회창과 판박이…다음 정권 잡을지 의문”

    “문재인, 2002년 이회창과 판박이…다음 정권 잡을지 의문”

    지난 3일 경남 창원에는 비가 내렸다. 눈송이도 섞여 있었다. 날씨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경남도청 2층의 집무실에서 기자를 맞는 홍준표 지사의 표정과 말이 이전보다 차분해 보였다. 재선된 지사의 여유일지도 모른다. 일단 인터뷰가 시작되자 홍 지사 특유의 ‘파이터’ 느낌이 되살아났다. 비와 눈은 이런저런 생각을 부른다. 홍 지사는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혔기 때문에 그 목표에 맞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목표를 성취하는 방법을 놓고는 생각이 무척 많은 듯했다. 홍 지사와의 인터뷰는 이도운 부국장 겸 정치부장의 대담으로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됐다. →도에서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예산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돈 많은 집 자녀에게 밥을 못 주겠다는 뜻인가. -두 가지 다 맞는다. 과연 무상급식이 옳은가? 무상급식은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의 문제다. 국가 재정 능력이 따라갈 수 있으면 전 국민을 무상급식해야 한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헌법 조항을 들어서 얘기하는데, 판례를 보면 급식은 의무 교육에 포함되지 않는다. 2010년 전교조에서 무상급식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학교 시설자금, 교원 처우 개선, 학력향상 프로그램 지원에 예산이 40% 이상 줄었다. 학교에 공부하러 가야지 밥먹으러 가나. 이런 파행적 예산 집행은 더 이상 계속돼선 안 된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이어 계속 논란이 이어지는데.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힘을 가진 조직이 둘 있다. 하나가 민주노총이고, 또 하나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다. 두 조직은 집단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에 정치권도, 언론도 함부로 못할 만큼 강력하다. 내가 그 둘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진주의료원 노조는 민주노총의 핵심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민주노총 강성 귀족노조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무상급식은 전교조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일부 급진적이고 조직화된 집단이 겁이 난다고 해서 잘못된 정책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무상보육 정책은 어떻게 보나. -그것도 옳지 않은 정책이다. 요즘 일부 부유층에서 명품계가 유행하고 있다. 보육비 20만원을 모아서 한 사람한테 몰아주고, 그 사람이 그걸로 명품 가방을 사는 계다. 왜 명품계를 만드는 계층에도 돈을 주나. 차라리 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얹어서 50만원씩 주는 게 낫지 않나. 그러면 정말 가난한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육아도 할 거 아닌가. 무상시리즈는 북한의 배급제도와 다를 바 없다. 일종의 사회주의다. 북유럽 국가가 보편적 복지를 할 수 있는 것은 소득과 담세율이 높고 빈부 격차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은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는 보편적 복지가 어렵다.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결국 연금 총액의 이자율을 내리는 문제일 것이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재원 자체가 파산이 나니까 해야 한다. 4월까지 처리하기로 야당과 합의했는데, 4월에는 보궐선거가 있기 때문에 합의를 지키기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국가 백년대계이므로 끊임없이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야당도 대안정당으로 자리 잡으려면 욕먹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정치하는 분들이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눈치만 보니까 사회 문제가 풀리지 않고 혼란만 거듭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른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지지율도 비슷한가. -경남에도 박 대통령에 대해 실망하는 그룹이 늘었다. 측근 챙기기가 과도하다는 게 문제다. 국민들은 과도한 측근 정치를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정직하지 못한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연말정산 문제도 그 법을 통과시킬 때는 부담 안 된다 했는데 나중에 봉급 생활자들이 엄청난 재정 부담을 안게 되니까 분노를 한 것이다. 대통령은 단임제이기 때문에 지지율에 신경 쓰지 말고 소신대로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국정 추진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국정 추진력이 떨어지는 것은 국회에서 의원들이 정부 정책을 밀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인선은 어떻게 생각하나. -박 대통령은 집권 초반기에 여의도 정치를 멀리한다고 하면서 2년 동안 굉장히 어려웠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여의도를 멀리했지만, 그에게는 당을 이끌어줄 이재오와 이상득이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는 당을 관리할 대통령의 사람이 없다. 그래서 소위 비주류가 당을 장악한 것이다. 과거에 대통령의 국정 동력이 떨어지거나 여의도 정치가 대통령을 배척하면 대통령은 반드시 사정카드를 꺼내 들었었는데, 지금은 사정카드가 통하지 않는다. 이미 국민들이 보복 사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도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없는 조직이 됐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 여의도와의 공조체제 강화라고 본다. 그래서 총리도 의원, 국무위원도 의원, 특보도 의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병기 실장은 검사 시절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 파견됐을 때 2차장이었는데, 능력 있는 분이었다. 여의도 정치를 아는 분을 비서실장으로 앉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가피한 조치였다. →정무특보 인선은 문제 없나.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내각책임제 요소가 강하다. 국회 독립성을 강조할 거라면 헌법에다 의원이 장관 겸직을 못하도록 규정을 뒀어야 한다. 따라서 의원이 정무특보로 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각책임제 요소가 다 가미돼 있기 때문에 장관으로 가는 건 괜찮고, 정무특보로 가는 건 안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새누리당 김무성·유승민 체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나. -지금은 당보다 국회를 잘 이끌어야 하는데 선진화법 때문에 되는 게 없다. 다수결이 통하지 않는 국회가 됐기 때문에, 야당과 협력하고 야당을 잘 설득해서 정책을 통과시켜야 한다. 내가 원내대표, 당 대표를 했을 때에는 야당 설득이 안 되면 소위 날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청관계는 어떻게 될까. -당·청은 한몸이다. 청와대를 비판하고 정책을 뒤집어 엎는다고 해서 당이 살아나는 게 아니다. 내년 총선이 있기 때문에 당·청이 한마음이 돼서 정책을 추진하고 협력관계로 가야 한다. 당은 일방적으로 청와대나 정부를 끌고 갈 능력도, 전문성도 없다. 행정부에 전문가들이 많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꼬집어서 고치고 가야 한다. 당이 정부를 밟는 모습으로는 당·청을 끌고 가기 어렵다.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 내년 총선에서 같이 망한다. →연초에 2017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뭐가 그리 급했나. -출마 선언을 한 게 아니고, 천천히 준비하겠다는 얘기다.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은 물론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10년 이상 준비했다. 나는 계파 없이 원내대표, 당 대표 다 했고, 도지사도 두 번이나 했다. 국가 경영의 꿈이 왜 없겠나. 기자들이 묻길래 3년이 남았으니까 차분히 준비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당내 라이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나는 정치할 때 라이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할 일만 한다. 내가 국민으로부터 인정 못 받으면 소용이 없다. →여권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줄곧 선호도 1위를 기록 중이다. -반 총장도 당에 들어와서 경선을 해야 한다. 우리는 10년을 집권했기 때문에 재집권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2017년 경선에서 후보들끼리 진짜 국민들 관심을 끄는 쟁투를 벌여야 한다. 혼전으로 몰고 가야 재집권의 길이 보인다. 그렇게 보면 반 총장이 들어와서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옛날처럼 추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독주하는 듯하다. -친노(친노무현)는 한국 정치사의 마지막 이념집단이라고 본다. 보수 우파는 파벌성이 다 사라졌고, 사실상 소멸됐다고 봐야 한다. 친노 좌파의 중심인 문 대표가 다음에 정권을 잡을지는 의문스럽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의 대립 시대가 가고 있다. 국민들이 마지막 남은 이념 집단을, 노무현 노선을 또다시 선택할까. 지금 문 대표는 2002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라고 보면 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 전 총재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7년 대통령’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래도 결국 대선에서 낙선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요즘 문 대표에게서 본다. 세 아들 부정사건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쳤을 때 이 전 총재가 대안이 된 거였다. 현재 문 대표가 바로 그때의 이 전 총재라는 것이다. 2017년에 국민들이 노무현의 분신을 선택할지는 가 봐야 안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장 정리 창원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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