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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감천문화마을, 세계 3대 우수교육도시에

    부산 사하구는 창조적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주목받은 감천문화마을이 지난 4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열린 국제교육도시연합(IAEC) 제14회 세계 총회에서 ‘우수교육도시상’을 받았다고 6일 밝혔다. 우수교육도시상은 ‘더불어 함께 사는 도시’라는 세계 총회 주제에 부합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킨 혁신 시책을 펼친 도시에 준다. 감천문화마을은 전 세계 45개 도시에서 응모한 57개 사례 가운데 에스포(핀란드), 로스피탈레트 데 요브레가트(스페인)와 함께 세계 3대 도시에 선정됐다. IAEC 사무국은 “문화와 예술로 가난한 마을을 재건한 감천문화마을 프로젝트는 마을 원래의 모습과 역사적 가치를 지키면서 주민들의 연대감과 소속감을 이끌어내 다른 도시들에 큰 영감을 줬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감천문화마을은 재개발이나 재건축과 같이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히고 원주민들이 살기 좋도록 ‘보존과 재생’에 맞춘 도시개발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이경훈 사하구청장은 세계 총회에 참석해 수상하고 성공사례를 발표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말레이시아서 200명 아동 성학대 영국인에 종신형

    말레이시아서 200명 아동 성학대 영국인에 종신형

     말레이시아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생후 6개월부터 12세까지 아동 200명 이상을 성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영국인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71개, 종신형 회수는 22회에 달한다.  영국 BBC 방송은 런던 중앙형사법원이 켄트 출신의 리처드 허클(30)에 대해 이같이 판결했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판사는 허클이 편집하던 60쪽의 소아성애 매뉴얼을 “매우 악마같은 문서”라고 비난하고, 그가 최소한 23년을 수감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클은 18세일 때 ‘갭이어’(gap year·대학 전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로 처음 말레이시아를 찾았다. 자신을 실천적으로 믿는 기독교라고 소개하고 자원봉사 일을 하면서 아동들을 상대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시작했다.  경찰은 허클이 2006~2014년 말레이시아에서 200여명을 성학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검색 엔진으로는 찾을 수 없는 ‘다크 웹’에서 아동들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를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2만여건을 찾아냈다.  허클은 온라인에 올린 글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중산층 서구 출신 아이들보다 유혹하기 훨씬 쉽다”고 하거나, 자신이 공격한 한 피해 아동을 지칭해 “3세 여아를 나의 충실한 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도 했다. 2014년 12월 체포 당시 그는 소아성애자들을 위한 매뉴얼을 편집하고 있었다.  검사 피처 룩은 “재판부가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성학대에 대해 이처럼 큰 징역형을 선고해야 하는 것은 정말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클의 인생을 두고 “아동 성학대를 통한 자신의 성적 만족 강박에 휩싸인 인생이었다”고 덧붙였다.  방청객에 앉아있던 한 여성은 “1000번 죽어 마땅하다”고 외쳤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창조적 도시재생 모범 감천문화마을 우수교육도시상 수상

    창조적 도시재생 모범 감천문화마을 우수교육도시상 수상

    감천문화마을이 국제교육도시연합(IAEC·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ducating Cities)이 주최한 세계총회에서 ‘우수교육도시상’을 받았다. 부산 사하구는 창조적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사례의 주목받은 감천문화마을이 지난 4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열린 국제교육도시연합 제14회 세계 총회에서 우수교육도시상을 받았다고 6일 밝혔다. 우수교육도시상은 ‘더불어 함께 사는 도시’라는 세계 총회 주제에 부합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킨 혁신 시책을 펼친 도시에 준다. 감천문화마을은 전 세계 45개 도시에서 응모한 57개 사례 가운데 에스포(핀란드), 로스피탈레트 데 요브레가트(스페인)와 함께 세계 3대 도시에 선정됐다. IAEC 사무국은 “문화와 예술로 가난한 마을을 재건한 감천문화마을 프로젝트는 마을 원래의 모습과 역사적 가치를 지키면서 주민들의 연대감과 소속감을 이끌어내 다른 도시들에 큰 영감을 줬다”고 수상 도시의 선정 배경을 밝혔다. 감천문화마을은 재개발이나 재건축과 같이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히고 원주민들이 살기 좋도록 ‘보존과 재생’에 맞춘 도시개발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이경훈 사하구청장은 세계 총회에 참석해 수상하고 성공사례를 발표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멍청한 금발? 시쓰는 좌파!

    멍청한 금발? 시쓰는 좌파!

    1일(현지시간)로 ‘섹시의 아이콘’ 메릴린 먼로(1926∼1962)가 태어난 지 90주년이 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영국 BBC 등은 그간 출간된 먼로의 전기와 일기 등을 통해 ‘멍청한 금발’이라는 이미지 혹은 복잡한 남자 관계 등에 묻혀 있던 그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조명했다. 타임은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역사 교수 출신이자 작가인 루이스 배너가 2012년에 쓴 먼로의 전기를 소개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먼로는 모친이 그를 돌봐줄 형편이 못 돼 여러 집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먼로는 몸을 의탁한 여러 가족 중에서도 유독 흑인 밀집 지역에 살던 볼런더스 가족을 좋아했다고 한다. 가난이라는 개인적 사정과 이때 경험한 다른 인종과의 유대 등으로 훗날 인종과 계층 문제를 바라보는 먼로의 시각이 진보 성향을 띠는 계기가 됐다. 당대의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한 1956년 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 분야에서 목소리를 냈다. 미사일 위기로 미국과 갈등을 빚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흑인 민권운동 세력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BBC 방송은 “2010년 출판된 먼로의 일기를 보면 그가 생각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시인의 소양도 갖췄음을 알 수 있다”고 소개했다. 16세이던 1942년 제임스 도허티와 첫 번째 결혼을 한 먼로는 “모든 생각과 글이 내 손을 떨리게 하지만 내 마음의 큰 단지가 안도감을 찾을 때까지 글을 계속 쓰겠다”고 적어 글쓰기로 위안을 삼고 있음을 시사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이중섭의 소 모두 모았소

    화가 이중섭(1916~1956)의 탄생 100년, 작고 60년을 기념한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3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이중섭은 ‘국민 작가’로 1970년대 이후 폭발적인 대중의 사랑을 받아 왔지만 오랫동안 가치평가는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작품의 시장 거래가 반복되면서 작품가는 천문학적으로 오르고 작품은 곳곳에 흩어진 상황이다. 미술관 측은 “산발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중섭의 원작을 최대한 한자리에 모아 대중이 감상하고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을 비롯해 삼성미술관 리움, 부암동 서울미술관 등 국내외 60개 소장처로부터 200여 점의 작품, 100여 점의 자료를 대여해 덕수궁관 4개의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전시는 식민, 해방, 전쟁을 관통해 정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이 거쳐 간 공간을 따라 전개된다. 1부(1916~50)에서는 일본 유학기 야마모토에게 보낸 엽서화, 해방 직후 원산 시기에 제작된 연필화 등이 전시된다. 2부(1950~53)는 가난했지만 가족들과 비교적 행복하게 보내면서 남긴 작품들로 구성된다. 3부는 은지화로 꾸며졌다. 이중섭은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 내는 방식으로 일종의 드로잉을 완성했다. 그는 300점 정도의 은지화를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번에 40점이 진열됐다. 4부(1953~54)는 이중섭이 통영 나전칠기전습소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친 시기의 작품들이다.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화, 서울 시절 그린 ‘길 떠나는 가족’(1954년)과 ‘투계’(1955년) 등이 5, 6부에 이어지고 7부에선 대구 시절 시인 구상의 집에 머무르며 요양 생활을 하던 때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딸이 돈 보내준 덕에 잔치 잘했죠”

    “딸이 돈 보내준 덕에 잔치 잘했죠”

    “하믄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지. 내 딸이 상 받은 것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분 좋제.” 1일 오전 11시 30분 전남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만난 김상배(82·장흥군 회진면 장산리)씨는 “소설가 한승원씨는 내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인데 딸 한강이 아버지 재능을 물려받아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것 같다”면서 “동네 사람들 모두 축하하러 왔는데 대견해 죽겠다”며 활짝 웃었다. 프랑스의 공쿠르상, 노벨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평가받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46)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77) 씨가 지역민들과 함께 축하 군민잔치를 열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와 황주홍 국회의원, 김성 장흥군수, 군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낮 12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1인당 2만5000원짜리 뷔페 음식과 소주·맥주·막걸리가 곁들여진 잔칫상이 펼쳐졌다. 주인공인 한 작가는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축하 자리는 지난달 14일 석가탄신일날 장흥 천관사에서 한씨가 김 군수와 만나 “딸이 상 받으면 한턱 낸다”고 약속하면서 이뤄졌다. 어머니 임감오(76)씨는 “딸이 돈을 많이 보내 줬는데, 오늘 쓸 데까지 써 볼 생각”이라며 즐거워했다. 시종일관 흥겨운 가락과 국악 소리, 관현악단의 연주가 곁들여진 축하연에선 민요 ‘오늘같이 좋은 날’이 흘러나왔고, 군민들은 작가 한강이 장흥군을 세계에 알렸다고 대견해했다. 주민들은 “장흥군이 생긴 이래 최고로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며 떠들썩하게 기뻐했다. 국립한국문학관을 장흥이 유치할 호재라고 의미도 부여했다. 부친 한씨는 “소설가들은 다 가난한데 집사람은 아마 나를 존경했기 때문인지 ‘가난하게 살더라도 이름 하나 남기고 살면 됐다’면서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다”고 자랑했다. 한씨는 “신문사, 방송사에 전혀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이금호 문화원장님이 판을 벌여 놨다. 기자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동료 작가들 가운데 어렵게 사는 작가가 많고, 책이 안 팔려 어렵게 사는 분도 많다”면서 “너무 떠벌리는 거 아니냐는 빈축을 살 수 있어 한사코 조심스레 대처하려고 하는데 그런 작가들에게 미안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6월1일은 中아동절…IT기업 CEO의 어릴적 모습

    6월1일은 中아동절…IT기업 CEO의 어릴적 모습

    6월 1일은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서 지내는 '국제아동절'이다. 1949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민주여성연맹에서 매년 6월1일을 어린이들의 국제적 기념일로 제정한 데서 시작됐다. 1942년 6월 1일 나치가 체코 프라하 근처 마을에서 저지른 아동 학살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 학살을 잊지 않고 어린아이의 생존권, 보건권, 교육을 받을 권리와 어린이 생활의 개선을 위해 기념일이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회주의권의 명절 중 하나지만 공휴일은 아니다. 중국은 소학교 이하 어린이들만 학교를 쉰다. 가정과 학교 등에서 각종 행사가 펼쳐진다. 중국 신화왕(新华网)은 1일 국제아동절을 맞아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출신 세계적인 IT기업 대표들의 어린 시절의 사진과 함께 성장과정을 모아서 기획기사로 소개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马云)의 어린 모습은 전형적인 중국 가난한 농가의 소년이었다. 게다가 멍청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싸움박질이나 일삼았으며, 아버지에게 늘상 폭행을 당하곤 했다. 마윈이 수학 등 공부는 못했지만 유독 영어를 잘했던 이유도 아버지의 폭행에 있었다. 폭행을 당하는 동안 아버지가 못알아들을 말, 즉 영어로 말대꾸와 분풀이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최대검색포털엔진 바이두의 CEO 리옌홍(李彦宏)은 어릴 적 산시성(山西省) 양취안(阳泉) 전통극단 시험을 보러 갔는데 아무런 준비없었음에도 그의 밝고 수려한 얼굴을 본 선생이 덜컥 합격을 시켰다. 리옌홍은 한 번에 시험에 합격, 대학생이 된 누이를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며 부러워하는 것을 보며 뒤늦게 공부를 했다. 당시는 비웃음이 컸지만 지금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대단한 존재다. 1000억 달러 가치의 4만명에 가까운 직원을 거느린 IT기업인이 됐지만 말이다. 마화텅(马化腾) 텐센트(중국명 腾讯) CEO 또한 빠질 수 없다. 어렸을 적 내향적인 성격으로 별 보기를 좋아하던 소년이 중국인들의 모든 소통을 담당하는 QQ메신저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인터넷 제국의 최정점에 오른 것이다. 이밖에 구글차이나 대표이자 창신공장(创新工场) CEO인 리카이푸(李开复), 인터넷쇼핑업체 징동(京东)의 CEO 류치앙동(刘强东)의 사연 등도 함께 소개했다. 사진=바이두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소설가 한승원, 딸의 맨부커상 수상 축하 장흥군민잔치

    소설가 한승원, 딸의 맨부커상 수상 축하 장흥군민잔치

    “하믄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지. 내 딸이 상 받은 것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분 좋제.” 1일 오전 11시 30분 전남 장흥군민회관 앞에 만난 김상배(82·장흥읍 장산리)씨는 “소설가 한승원씨는 내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인데 딸 한강이가 아버지 재능을 물려받아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것 같다”며 “동네 사람들 모두 축하하러 왔는데 대견해 죽것다”고 활짝 웃었다. 프랑스의 공쿠르상, 노벨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평가받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46)의 부친 소설가 한승원(78) 씨가 지역민들에게 축하 군민잔치를 열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와 황주홍 국회의원, 김성 장흥군수, 군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낮 12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1인당 2만5000원짜리 뷔페 음식과 소주·맥주·막걸리가 곁들여진 잔칫상이 펼쳐졌다. 주인공 한 작가는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축하 자리는 지난달 14일 석가탄신일날 장흥 천관사에서 한씨가 김 군수와 만나 “딸이 상 받으면 한턱 낸다”고 약속하면서 이뤄졌다. 어머니 임감오(76)씨는 “딸이 돈을 많이 보내줬는제. 오늘 쓸데까지 써 볼 생각이다”고 즐거워했다. 시종일관 흥겨운 가락과 국악 소리, 관현악단의 연주가 곁들인 축하연은 민요 ‘오늘같이 좋은 날’의 노래가 흘러나온 것처럼 군민들은 작가 한강이 장흥군을 세계에 알렸다고 대견해했다. 주민들은 “지금껏 장흥군이 생긴 이래 최고로 권위있는 상을 받았다”고 떠들썩했다. 국립한국문학관을 장흥이 유치할 호재라고 의미도 부여했다. 부친 한씨는 “소설가들은 다 가난한데 집사람은 아마 나를 존경했기 때문인지 가난하게 살더라도 이름 하나 남기고 살면 됐지 하면서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했다”며 “아들 둘, 딸 하나 전부 소설과 문학 쪽으로 가고 있는데 오늘의 이 영광 마누라 덕택이다”고 자랑했다. 한씨는 “신문사, 방송사에 전혀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이금호 문화원장님이 판을 벌여놨다. 기자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동료 작가들 가운데 어렵게 사는 작가들이 많고, 책이 안팔려 어렵게 사는 분들도 많다”면서 “너무 떠벌리는거 아니냐는 빈축을 살 수 있어 한사코 조심스레 대처할려고 하는데 그런 작가들에게 미안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씨는 “앞으로 한강 이상으로 더 좋은 상을 후배 작가들이 타올 것으로 믿는다”며 “여기 오신 분들 음식이 떨어지면 내 앞으로 달아놓고 가고 가시라. 술이 부족하면 맥주소주회사 탱크로리 태워오도록 하겠다”고 흥겨워했다. 장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해외여행 | 타이완-당신이 타이동에 가면 좋겠다

    해외여행 | 타이완-당신이 타이동에 가면 좋겠다

    화려하지 않은 것들에게도 눈길을 주고, 아름다운 것을 잘 발견해 내는 사람. 그런 당신이라면 타이동을 쉽게 사랑하게 될 테니. 타이동은 타이베이 송산 공항에서 비행기로 50분, 타이베이 기차역에서 4시간 40분 소요된다. 평일의 경우 당일 예매가 가능하지만 사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타이동까지 가는 동안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보고 싶다면 항공은 오른쪽 창가에, 기차는 왼쪽 창가에 앉는 것이 좋다. 누가 타이동台東에 가야 할까?당신이면 좋겠다. 낮은 담 꽃길 사이로 걷는 오후의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 어린 고양이 앞에서 발걸음을 오래 멈추는 그대. 핸드폰으로도 예쁘게 사진을 찍고, 가이드북의 형식적 추천보다 골목의 우연한 발견을 더 사랑하는 사람. 야시장의 생기로움과 한 잔의 맥주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 늦은 아침의 자전거 여행을 사랑하고 두렵도록 푸른 바다 앞에 서면 어느 순간 가슴까지 함께 일렁이는 그대. 걸음을 멈추고 문득 누군가를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 물들어 가는 노을과 바람에 눈과 귀 기울이고, 흔들리는 수천 개 등불에 마음 빼앗기는 사람. 풍경은 쉽게 잊어도 사람은 오래 기억하는 그대. 그런 당신이 타이동에 가면 좋겠다. 그렇다면 당신도 나처럼 타이동을 쉽게 사랑하게 될 테니까.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만나기 전부터 사랑할 것 같은 느낌 기내식을 주식처럼 먹을 정도까지 자주는 아니어도, 여행 좀 다녀 봤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감이 있다. 풍경에 대한 감각이다. 이곳을 내가 사랑하게 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직관적 느낌. 공항 문을 열고 낯선 곳의 첫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택시 기사의 웃음과 마주쳤을 때, 햇살을 가리려고 경례하듯 손 그늘 만들며 도심 멀리 바라볼 때, 현지인의 그릇과 소품들에 마음 빼앗길 때, 그 느낌은 그냥 온다. 여행의 감이 오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감이 있다. 나의 경우 화려하고 높은 빌딩과 쇼윈도 속 명품 가방을 보고 감이 온 적은 없다. 호텔 앞 24시간 편의점을 보고 감이 온 적도 없다. 뉴요커와 파리지엥도 크게 나를 현혹시키진 못했다. 나의 감은 오히려 소박하고 사소한 것들에게서 왔다. 벽에 그려진 그림들. 아이들의 웃음소리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잎들. 작지만 예쁜 카페의 불빛들. 조금 쓴 커피와 부드럽고 달콤한 디저트들. 그런 것들에게서 나는 여행의 감을 얻었다. 하지만 타이동은 조금 특이한 경우다.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로펠러가 달린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타이베이 공항을 출발했을 때, 오른쪽 창가에 앉은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눈부신 해변이었다. 크기를 짐작할 수도 없는 태평양이었다. 아름다웠다. 파도의 흰 거품이 맥주처럼 해안에 밀려와 넘치는데, 목마른 모래톱이 그걸 다 받아 마시고 있었다. 멀리 생각보다 웅장한 타이완의 산맥과 그 중턱의 마을들. 한 뼘 위의 구름들.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면서 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곧 타이동을 사랑하게 될 것임을. 하늘로 오르는 등불 짐을 내리고 숙소를 나와 타이동의 길을 처음 걸을 때, 먼저 나를 반겨 준 것은 수천 개의 등불이었다. 멀리 하나씩 보이던 등불이, 광장 쪽으로 걸어 나오자 곧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다시 골목을 하나 더 돌아 티에화춘鐵花村에 들어서니, 그곳은 이미 등불의 군락이었다. 열기구 모양의 등불은 각각의 무늬와 색깔 속에서, 마치 티에화춘 전체를 공중으로 몇 미터쯤 들어 올린듯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폐허였던 기차역과 주변을 완벽하게 문화의 중심지로 변화시킨 곳. 금요일마다 예술가들의 수공예품 마켓이 열리고 또 어떤 요일엔 달콤한 음악 공연이 열리는 곳. 오후의 햇살이 길게 비출 때 선로 위를 가만히 걸어 보거나 오래된 역사의 나무의자에 앉아 오지 않을 기차를 조금 기다려 보는 일. 어느 담벼락의 무늬를 배경으로 찰칵 사진을 담아 보는 일. 티에화춘의 낮 시간은 그렇게 사소한 일들로 한적하게 흐르고, 드디어 밤이 오면 온통 등불과 사람들로 반짝인다. 당신이 언젠가 티에화춘에 간다면, 그저 그 등불 아래에서 마음이 쉽게 흔들릴 수 있도록 경계의 벨트를 가만히 풀어 두면 된다. 섬세하게 만든 은반지와 고양이 모양 조각 비누를 하나쯤 사고, 예쁜 엽서와 노트를 구경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를 배경음으로 다시 수천 개의 등불 아래 앉으면 그뿐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당신의 안쪽에서 등불처럼 빛나는 어떤 얼굴 하나를 떠올려 봐도 좋다. 그것은 그리움일까 연민일까 고민하다가 남아 있는 미련을 조금 덜어 내 등불과 함께 날려 보내면 어떨까. 늦은 밤 그 시간이 되면 어차피 등불이 티에화춘을 날아 오르게 할 테니까. 당신의 마음도 함께 날아가고 있을 테니까. 티에화춘鐵花村옛 철도 역사와 인근 부지를 예술촌으로 만들어 보존했다. 옛 역사와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철로를 걸어 볼 수도 있다. 매일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며 주말에는 예술 수공예품 마켓도 열린다. 밤에는 수천 개의 등불이 아름답게 불을 밝힌다. No. 26, Lane 135, Xinsheng Rd, Taitung City, Taitung County 비에 젖은 꽃잎, 맑은 웃음, 좁고 예쁜 골목 택시를 타고 갈 때 볼 수 없었던 풍경을, 걸으면서 다 보았다. 속도의 눈속임 속에 숨겨져 있던 타이동의 모습들이었다. 사람 손길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들은 구두 수선집 낮은 지붕 위에 자리를 잡았고, 과일 가게 옆에는 귀 접힌 어린 강아지가 졸고 있었다. 작은 카페들이 조화를 이루며 골목을 채웠다. 어디와 비슷하다고 말하면 좋을까. 북적이기 전의 서촌과 비슷하고 합정역 어느 골목과 닮았을까. 줄무늬 천막으로 비를 겨우 가린 노점의 작은 식당이 있고, 옆으로 간판이 예쁜 베이커리가 있는데 둘 다 각자의 모습 그대로 그곳에서 어울렸다. 오후의 소나기와 만나라고 화분을 밖으로 내어 놓은 상점들과 손으로 우산을 든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타이동의 풍경이었고, 길을 물으면 친절히 알려 주는 웃음들이 또한 그대로 타이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면 타이동과 어울릴 것이라고. 화려하지 않은 것들에게도 눈길을 주고, 아름다운 것을 잘 발견해 내는 사람. 공산품보다 수공예품을 더 좋아하며 일상에 아무리 바빠도 한나절의 여유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주말이면 가방에 책 한 권쯤 담고 떠나는 사람. 그저 사람들 몰려가는 곳보다, 내가 좋아하는 곳을 오래 지켜 가는 사람. 경주와 군산, 통영의 골목을 천천히 걷다 돌아와도 참 좋은 여행이었다고 추억하는 사람. 그날 오후에 걸었던 타이동의 거리는 내게도 충분히 그런 곳이었다. 무심코 찾아 들어간 카페에서 나눈 간단한 대화는 정겨웠고, 커피는 향긋했으며, 망고 케이크는 입에서 모음처럼 부드럽게 녹았다. 그날 짠맛 아이스바를 물고 투명한 햇살 아래서 걸을 때, 타이동이 내게 다시 한 번 알려 줬는지도 모른다. 바빠지려고 여행을 온 게 아니라,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여행을 온 것이라고. 그러니까 여행에선 바쁘지 않아야 하는 법이라고. 진팡빙청津芳冰城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타이완 전통 빙수집. 팥빙수를 닮은 다양한 빙수와 짠맛이 가미된 아이스바를 맛볼 수 있다. 타이동 야시장 입구 근처에 있다. No. 358, Zhengqi Rd, Taitung City, Taitung County +886 8 932 8023 아이스바 TWD35(한화 약 1,300원) 나무 그늘 아래 쌀국수 한 그릇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오후에 그냥 걷는 것. 두 번째 날의 전체 일정이었다. 타이동은 그렇게 느긋한 계획에 어울리는 여행지다. 좌표를 찍듯 어딘가를 찾아 가서 인증하고 높이와 면적을 자랑하는 건물에 줄 서서 들어가는 일은, 적어도 타이동에서는 필요 없는 일이었다. 멀리 시외로 나서면 계곡이 있고, 바람이 높게 불어 여름마다 열기구 축제가 열리는 언덕도 있다 했지만, 시내는 그저 낮고 한가로울 뿐이었다. 쌀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설명이 있었고 여행자라면 한 번쯤 들러 간다는 쌀국수집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보리수나무 아래 쌀국수집’. 우리말로 풀어 쓰면 그 정도 이름인 곳. 수십년 전 어느 나무 아래 노점의 작은 국수집으로 시작하여, 이제 번듯한 식당이 된 곳이다. 한적한 골목 사이로 걷고 도로를 두 개쯤 건너 식당에 도착했을 때, 조금 놀랐다. 오전 11시가 막 지났을 뿐인데, 이미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 쪽으로 주방의 풍경이 그대로 눈에 보였다. 바쁜 손놀림이었다. 성성한 흰쌀면을 다발처럼 담아 국물로 적신 후 싱싱한 가츠오부시를 가득 얹어 끝없이 식탁으로 날랐다. 쌀이 좋고, 가츠오부시가 좋아서 더 맛있는 쌀국수가 된다는 설명이다. 생각보다 국물이 시원했다. 식탁 위의 고추소스를 조금 덜어 국물에 풀자 매콤함이 면에 부드럽게 스몄다. 짧고 쉽게 부서지는 면은 숟가락으로 떠서 마시듯 먹기 좋았다. 한국인의 속도로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마의 땀을 닦고, 그제야 식당을 살펴보니, 현지인들은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천천히, 아이와 눈 맞추며 천천히,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이 타이동의 속도였다. 나는 그 속도로 천천히 오후의 골목을 걷기로 했다. 타이동에서는 타이동의 속도를 지키는 것이 도리이므로.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롱슈시아 쌀국수榕樹下米苔目· Rong Shu Xia Rice Noodles타이동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 중 하나. 맑은 국물과 가쓰오부시 속 희고 투박한 쌀국수면이 특징이다. 건면과 탕면이 있다. 탕면을 먹을 경우 식탁 위에 있는 고추소스와 식초를 적당히 넣으면 매콤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 No. 176, Datong Rd, Taitung City, Taitung County, 950 +886 963 148 519 09:30~15:00, 17:00~20:00 (15:00~17:00 Break Time) 탕면 기준 TWD40(한화 약 1,500원) 가난하지만 풍부한 사람들 얼마 전까지 타이동 아이들의 소원은 맥도날드를 먹어 보는 것이었다. 매일 바닷가재만 먹는 가난한 생활이 싫어 부모님께 투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타이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문명의 상점은 멀고 바다에서 오는 풍성한 선물은 가득하다. 물론 지금은 맥도날드와 나이키, 5층짜리 백화점도 들어와 있지만. 필리핀판과 유라시아판이 수백만년 동안 서로를 밀어내면서 저절로 깊은 계곡과 산맥이 형성된 곳. 울창한 삼림 아래로 모래 해변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어느 곳에서는 바위로 절경을 보여 주는 곳. 태평양과 가장 가깝게 닿은 기차역이 있고 빈랑槟榔 열매를 오래 씹어 이가 모두 붉게 물든 노인들이 많은 곳. 해안의 기괴한 바위들과 산호초들이 명품이며, 인근해의 난류 속에 어자원이 풍성하여 마치 줍듯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산에서 무너져 내려온 암석들에서 쉽게 옥과 보석이 발견되는 곳. 코로 피리를 연주하고, 꽃무늬 전통 의상을 입은 소수민족들이 고산지역에서 옛 풍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낙농업이 발달하여 전국의 우유를 책임지는 곳이 타이동이다. 타이완 일주여행의 마지막 코스. 휴가 때 정말 쉬려고 현지인들이 찾아오는 현지인의 여행지. 진한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의 땅. 부처의 머리 모양을 닮은 과일 석가로 유명하고 야자수 나무들이 인가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많고 태평양을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야시장에서 현지인들과 앉아 과일 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잊을 수 있는 곳이 타이동이다. 그리고 타이동은 자전거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도로들과 길고 먼 삼림과 호수, 멀리 바다로 고기잡이 떠난 남자를 기다리다 반쪽의 꽃이 됐다는 처녀의 전설이 있으며 그 꽃 뒤로 먼 수평선이 끝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내가 만난 타이동, 내가 들은 타이동은 그렇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방식으로 타이동을 만나게 될 터. 타이동에서 당신의 골목과 당신의 사람은 당신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당신도 쉽게 타이동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 일종의 확신으로 말하는 것이다. 자전거 하나로 행복한 길 숙소에서 전기 자전거를 빌려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보니, 좋았다. 어디선가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 보기로 결심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츠샹池上을 권했다. 기차와 버스로 쉽게 갈 수 있는 곳. 유명한 쌀 생산지로, 타이완 사람들이 쌀의 고향이라 부른다 했다. 아침을 먹은 후 출발하여 몇 시간쯤 자전거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치샹에 닿으니 역 앞으로 몇몇 자전거 대여점이 보였다. 3시간쯤 달릴 수 있다는 전기자전거를 택했다. 도시락도 구입했다. 그 지역 최고 품질의 쌀로 만든 도시락, ‘츠샹판바오’를 앞 바구니에 실었다. 달리다 느끼는 허기를 채워 줄 것이다. 목적지는 완안萬安 지역의 바이랑따다오伯朗大道로 정했다. 푸른 논 사이로 곧게 뻗은 도로가 아름답고, 영화배우 금성무가 광고를 찍은 덕으로, 타이완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지역이었다. 조금은 낯선 전기 자전거의 작동 방법을 시험해 본 후 지도를 보고 출발했다. 몇 미터쯤 비틀거렸다. 그러나 이내 나는 라이더가 되었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한참 달리니 온통 들판이었다. 푸른 논 사이사이로 잘 닦여진 도로가 곡선과 직선으로 길게 펼쳐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핸들로 그 사이를 달렸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니, 그저 풍경과 자유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많은 타이완 여행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나와 내가 탄 자전거 하나만 있는 듯 느껴졌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현실에서 멀리 떠나와 낯선 곳을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 여행이라는 자유와 자전거라는 자유가 함께 만나, 모든 것을 잠깐 잊게 해주는 것. 때마침 비도 내렸다. 비가 왜 두려우랴. 비닐 우비를 꺼내 입고 즐겁게 소리 지르며 달렸다. 자전거로 달렸다. 누군가가 그때 내게 물었다면 나는 대답했을 것이다. 최고의 순간이라고. 여행이 최고이며, 자전거가 최고라고. 만약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물었다면 답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들이 그곳에서 최고였다. 츠샹池上 자전거 도로 끝없이 펼쳐진 논 사이를 자전거로 달릴 수 있다. 츠샹역에 내려 바이랑따다오伯朗大道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계절에 따라 푸른 녹색과 황금들녘, 만발한 유채꽃이 펼쳐진다. 곧게 뻗은 일직선 도로와 ‘금성무 나무’로 불리는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타이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타이동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으며 반나절 코스로 선택하면 좋다. 도시락과 비닐 우비까지 챙겨 가면 완벽. No. 259, Zhongxiao Rd, Chishang Township,Taitung County 노랑 고양이의 하품, 옥빛 조약돌의 ‘샤르륵’ 뜻밖의 장소에서 기대하지 않던 최고의 순간을 만날 때도 있다. 그것이 여행이다. 가고 싶은 곳만 갔을 때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일. 타이동 여행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내키지 않은 채 출발했던 ‘샤오예류小野柳’와 ‘산시엔타이三仙台’에서 뜻밖의 선물을 만난 것. 모래 암석들이 경관을 이룬 샤오예류는 수만년의 시간이 응축된 곳이었다. 해안에 가득한 기묘한 바위들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감탄을 주진 않았다. 어느 나라에선가 더 큰 바위를 만났던 적도 있었고, 그런 풍경도 쉽게 잊힌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내가 그곳에서 받은 선물은 오후의 고양이었다. 지질학 체험관 뒤에서 늘어지게 한숨 자고 있던 타이동의 노란 고양이. 손으로 가만히 등을 쓸어 주니 친근한 태도로 내 손등에 머리를 비볐다. 온전한 기대와 신뢰의 표현이었다. 어느 날 당신 앞으로 그 고양이가 걸어와 손등에 머리를 기댈지도 모른다. 저 멀리 암석들과 열대의 나무들과 태평양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고양이와 나누는 잠깐 동안의 공감. 여행에 있어 그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산시엔타이는 오래된 전설이 드리운 곳이다.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가면 먼 태평양과 해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꼭 가보라 했다. 의미가 풍경을 형성하고, 전설이 더해질 때 더 아름다워지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내게는 오히려 와 닿지 않았다. 전설의 의미를 잘 알 수 없었고, 공감이 생기지 않았다. 실망하여 되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샤르륵샤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다운 소리였다. 해안에 수많은 옥빛 조약돌들을 태평양의 파도가 밀어서 적시고, 다시 되돌아갈 때 물과 돌이 서로 부딪히며 나는 소리였다. 파도가 한번 밀려오면 조약돌이 옥빛으로 물들고, 파도가 건너가면 일제히 ‘샤르륵’ 소리를 내는 것. 물속에서 수십만 개의 조약돌이 내는 합창, 아니 물과의 협연. 가만히 해안에 앉아 오래도록 그 소리를 들었다. 타이동에 오길 잘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느긋한 속도와 연한 간지러움 같은 기분들. 순박한 사람들. 초록의 잎과 붉은 꽃들. 물렁한 과일들. 풍성한 해산물과 정겨운 골목들. 지붕들. 타이동에 오길 잘했다. 나의 감이 적중한 것이다. 이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글·사진 Travie writer 최성규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타이완관광청 tourtaiwan.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캐머런 축출을”… 보수당 ‘브렉시트 내전’

    “캐머런 축출을”… 보수당 ‘브렉시트 내전’

    고용장관도 “이민정책 잘못” 반기 잔류파 “경제타격 해법 있나” 반박 국민투표 후에도 분열 계속될 듯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가 3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집권 보수당의 EU 탈퇴파가 잔류파의 리더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으면서 당내 분열이 ‘내전’으로 격화되는 모습이다. 당 일각에서는 캐머런 총리를 축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와 국민투표 후에도 두 세력 간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당 유력 하원의원인 앤드루 브리젠은 29일(현지시간) BBC와의 인터뷰에서 “캐머런이 EU 잔류 캠페인을 이끌면서 (탈퇴를 지지하는) 소속 의원 50% 및 당원 70%와 대립하게 됐다”며 “국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캐머런의 총리 자리는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당이 양분된 상황에서 캐머런이 내분을 수습하고 정부를 이끌기 어려울 것”이라며 “크리스마스 이전에 조기 총선을 실시해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브리젠은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기 위해 필요한 하원의원 50명 이상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같은 당의 네이딘 도리스 하원의원도 ITV와의 인터뷰에서 “보수당 평의원위원회에 총리 불신임 건의서를 제출했다”며 “캐머런이 국민투표에서 지거나, 이기더라도 근소한 차이로 이긴다면 선거 후 며칠 내에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원의원이 브렉시트와 관련해 총리의 사임 또는 불신임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EU 탈퇴 운동을 주도하는 당내 유력인사들도 캐머런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프리티 파텔 고용장관은 이날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칼럼에서 “EU 잔류에 따른 이민자 급증으로 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만 캐머런과 같은 부유한 사람들은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EU 잔류를 고수한다”며 “이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EU 탈퇴파의 리더 격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도 이날 공개서한에서 캐머런이 이민 통제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캐머런은 영국이 EU에 잔류해도 순이민을 10만명 아래로 유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별됐다”며 “공약을 어긴 캐머런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EU 출신 순이민자 수는 전년 대비 1만명이 증가한 18만 4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영국에 이민 온 EU 시민이 영국을 떠난 EU 시민보다 18만 4000명 많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EU 잔류파는 탈퇴파가 브렉시트에 따른 경제 타격에 대해 제대로 방어를 못 하자 전선을 이민 문제로 옮긴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캐머런의 측근은 가디언에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 경제가 심각한 쇼크를 받을 것이라는 증거는 수없이 많다”며 “이민 문제를 다루기 위해 경제를 망치자는 주장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재무부는 영국이 EU를 탈퇴할 경우 경제 성장률이 2년간 애초 전망치보다 3.6% 포인트 낮은 0.6%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디언은 “EU 탈퇴파가 캐머런을 직접 공격하면서 보수당이 내전에 빠지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EU 탈퇴파인 크리스 그레일링 하원 원내대표의 말을 인용해 탈퇴파든 잔류파든 보수당 의원 대다수가 조기 총선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내각 불신임 투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보수당이 현재 하원에서 과반(326석)보다 단 4석 더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EU 탈퇴파 중 일부 강경 세력이 캐머런에게 반기를 들면 캐머런 정권은 사실상 소수 정부로 전락해 당내 이전투구는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공무원이 말하는 정책이야기] 이재용 복지부 과장에게 들어본 ‘도시형 노인 공동생활홈’

    [공무원이 말하는 정책이야기] 이재용 복지부 과장에게 들어본 ‘도시형 노인 공동생활홈’

    ‘100세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그만큼 오랜 세월을 가난과 질병, 외로움 속에 살아야 하는 독거노인 입장에선 달가운 일이 아니다. ‘숨진 지 몇 달이 지나서야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가 새로울 게 없을 정도로 독거노인의 고독사는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노인 돌봄을 강화하고 있지만 독거노인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어 자세히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이웃과의 왕래가 끊겨 더 외로워진 도시 지역의 독거노인이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도시형 공동생활홈을 만들기로 했다. 내년에 시범 사업을 시행해 전국 도시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재용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장에게 도시형 공동생활홈에 대한 구상을 들었다. 얼마 전 충남 금산군의 독거노인 공동생활홈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빈집을 개조해 독거노인 세 분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주거 공간을 마련했죠. 공동생활홈에 사시는 한 어르신이 차를 내오셨는데, 알고 보니 3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 온 분이셨어요. 치매에 걸린 지 3년 정도 되면 증상이 갑자기 악화하기도 하는데, 이분은 누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치매 환자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건강하셨어요. 세 분이 함께 살며 자주 대화하고 인간관계를 맺다 보니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금산군을 다녀오고서 ‘도시에도 이런 공동생활홈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농촌의 독거노인은 마을회관에도 자주 가고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기 때문에 고독감이 도시보다는 덜해요. 하지만 도시의 독거노인은 반지하 방에 사는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지역공동체가 붕괴돼 이웃과의 왕래가 거의 없습니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상태입니다. 생활관리사들이 직접 집을 방문해 말동무도 해 드리고 주 2~3회 전화해 안전을 확인하고 있지만 고독사 위험은 여전합니다. 한정된 정부 예산으로는 모든 노인을 돌보기에 한계가 있어 보건의료·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흩어져 있는 독거노인을 공동생활홈으로 모은다면 생활관리사가 안부를 확인하기도, 운동 프로그램과 건강서비스를 제공하기도 수월해지겠죠. 어르신들은 숙식을 함께하며 말벗할 새로운 식구가 생기게 되고요. 미국은 이미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이런 공동생활홈을 만들었어요. 취지는 좋았지만 지역사회의 반대에 부딪혔죠. 그래서 우리는 공동생활홈이 기피 시설이 되지 않도록 ‘단지형’이 아닌 독립 주거 공간 형태로 만들기로 했어요. 지자체가 지역의 빈집을 사들이면 정부가 국고를 들여 리모델링하고 주거가 특히 열악한 독거노인들을 입주시키는 방식입니다. 대상은 전국 도시의 독거노인 10만여명인데, 이 중 희망자를 받다 보면 규모는 이보다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공동생활홈에 입주하는 독거노인들이 갈등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읍·면·동 주민센터 등에 한집에 같이 살 독거노인을 선정하는 작업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공동생활홈에 집중적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 이분들의 건강도 증진될 테고, 결과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도 상당 부분 절감될 것입니다. 노인 정책의 패러다임도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로 진입하면 복지에 대한 요구도 지금보다는 높아질 거예요. 내년에 노인 실태조사를 하고 나서 ‘미래의 노인’에 대한 정책 구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우상호 “반기문, 노무현 추억 간직한채 여당으로…안철수 가장 피해”

    우상호 “반기문, 노무현 추억 간직한채 여당으로…안철수 가장 피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국내 방한 행보와 관련 “본격적으로 (대권 행보에) 나선다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피해를 가장 크게 볼 것”이라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추측건대 안 대표의 중도적 이미지(를 선호하는 지지층), 충청권 지지만 빼서 (반 총장이) 가져가도 지지율이 몇 퍼센트는 빠지지 않겠나”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여당이 싫어서 총선에서 안 대표를 지지한 일부가 반 총장에게 간다고 봐야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 총장이 현실정치에 들어오면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말 실수는 절대 안 하실 분이다. 외교 공무원으로서 훌륭한 분이고 사람 좋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더민주의 대권주자로 데려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저 분이 우리당에 와서 대선을 하겠느냐”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간직한 채 여당으로 가실 것”이라고 답했다. 우 원내대표는 “반 총장은 노 전 대통령도 좋아했다”며 “성향이 안맞아도 잘 하셨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 대선 구도에 대해서는 “안 대표도 끝까지 할 것이고 1대 1 구도가 되면 좋지만 쉽지 않다”면서 “3자구도로 가도 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내다봤다. 여당에 비해 야당의 대선주자 자원이 많다는 데 대해서는 “흐뭇하다. 집안이 가난해도 인재가 넘치면 기분 좋지 않나”라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또 청와대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와 관련“행태가 졸렬해 (거부권 행사 직후에는) 지적은 했지만, 일부러 국회법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고 있다”며 “정쟁으로 시작하는 국회라고 비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은 상시청문회 조항을 제거한 수정안을 가져오라 하길래, 우리도 여기에 합의를 했다. 우리가 상시청문회를 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새누리당이 이 안까지 부결시키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볼 때는 무슨 ‘생쇼’를 하고 있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번 국회법이 유승민법, 정의화법이라 하기 싫은 것 아니냐”며 “정쟁을 하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피란수도 밤을 누비다…새달 3·4일 ‘부산 야행’

    부산 피란수도 밤을 누비다…새달 3·4일 ‘부산 야행’

    부산 피란수도 건축·문화 자산을 탐방하고 피란민들의 생활상을 재조명하는 ‘밤여행’(夜行)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부산시는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상반기 ‘피란수도 부산 야행(夜行)’을 다음 달 3일과 4일 이틀간 서구 일대에서 진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서구에는 임시수도 정부청사(현 동아대 석당박물관)와 대통령 관저(현 임시수도기념관), 피란민 이주지역인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등 부산만의 특별한 건축·문화 자산이 있다. 이번 행사는 야경(夜景, 야간개방 시설 관람 및 야간 경관 조망), 야로(夜路, 피란수도 역사 투어), 야사(夜史, 피란수도의 과거·현재·미래 이야기), 야화(夜畵, 그림 속 피란 시절), 야설(夜設, 밤에 하는 공연), 야식(夜食, 피란 시절 음식체험) 등 6가지 테마로 이뤄진다. 다음 달 3일 오후 7시 임시수도 정부청사 특설무대에서 개막식이 열린다. 야경과 야로는 다음 달 3, 4일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임시수도 정부청사, 대통령 관저,비석문화마을 등 당시의 건축·문화 자산을 둘러본다. 문화해설사가 흥미로운 당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야사는 실제 운행했던 부산의 마지막 전차인 부산전차 탑승과 피란 시절 거리 재현 퍼포먼스, 육군 헌병 재현 및 교대식 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된다. 야화는 한국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서구 출신의 임응식과 우리나라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을 전시해 전쟁과 가난, 재건의 사회 분위기를 살펴본다. 야설은 피란 시절 노래 경연대회와 비보이 댄스 경연대회, 천마산 에코하우스 단편영화 상영 등이다. 야식 행사에서는 주먹밥, 보리개떡 등 피란 시절 음식을 직접 시식하게 된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번 피란수도 부산 야행은 올해 처음 시도하는 문화재를 활용한 야간 문화 향유 프로그램”이라며 “피란수도 부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월드피플+] 美웨스트포인트 졸업한 최빈국 출신 흑인생도의 사연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 촬영된 한 장의 사진이 현지 언론들의 주요뉴스를 장식했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서있는 다른 백인 생도들과는 달리 이 흑인 생도는 두 볼에 진한 눈물을 흘리며 졸업식 행사에 참가했다. 이날 촬영된 이 사진은 페이스북에 게시된 후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갔고 곧 CNN, 워싱턴포스트 등이 이에 얽힌 사연을 보도했다. 이제는 미 육군 소위(second lieutenant)로 장교된 그의 이름은 알릭스 이드라체. 그는 중미 도미니카 공화국에 인접해 있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아이티 공화국 출신이다. 인구 대부분이 흑인으로 구성돼 있는 아이티 공화국은 정치적 불안과 지난 2010년 대지진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기도 했다. 상상하기 힘든 지독한 가난에서 성장한 그는 지난 2009년 미국으로 건너오며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이후 주방위군에서 2년간 복무해 시민권을 얻은 그는 아이비리그 못지않게 들어가기 힘들다는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알릭스는 이날 1000명 가까운 졸업생 중 탑 25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다. 그간 알릭스가 얼마나 어려운 역경을 헤쳐왔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셈. 미 언론들은 일제히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상징으로 알릭스를 치켜세우고 있지만 의외로 그는 담담하다. 알릭스는 "당시 순간적으로 감정이 복받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면서 "아이티 출신인 내가 이런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미국민들을 놀라게 한 그의 다음 행보도 정해진 상태다. 알릭스는 "앞으로 포트 러커 비행학교에 입학해 조종사 교육을 받게 될 예정"이라면서 "나에게 기회를 준 소중한 이 나라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가수 이난영 탄생 100주년… 목포의 눈물에서 희망으로

    가수 이난영 탄생 100주년… 목포의 눈물에서 희망으로

    “대중가요 통해 목포 역사 되짚는 기회”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1916~1965)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인 전남 목포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목포의눈물 기념사업회는 오는 30일부터 다음달까지 ‘목포의 눈물에서 희망으로’란 주제로 이난영 탄생 100주년 행사를 갖는다고 25일 밝혔다. 기념행사는 30일 오후 오거리문화센터에서 토론회와 전시회로 막을 올린다. 토론회에는 장유정 대중음악평론가와 이윤선·고석규 목포대 교수 등이 참여해 ‘목포의 눈물’의 근현대적 의미를 되짚는다.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이난영이 즐겨 입었던 한복과 양장, 신발 등 유품을 비롯해 김시스터즈 기증품, 유달산 노래비 역사 사진 등이 전시된다. 31일 오후 갓바위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는 이난영의 딸이자 한류스타 1호인 ‘김시스터즈’ 멤버 김숙자씨가 어머니에 대한 못다 한 이야기와 노래로 진행하는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생가터와 유달산 노래비, 삼학도 수목장 등 이난영의 흔적을 찾는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이난영은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 시절에 학교를 그만두고 악극단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가 막간 가수로 발탁돼 가수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35년 ‘목포의 눈물’이 발표된 후 인기스타가 됐다. 목포의눈물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수많은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목포’를 통해 지역의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기회를 갖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돈 많은 남자, 여자 외모 더 본다”(연구)

    “돈 많은 남자, 여자 외모 더 본다”(연구)

    남녀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데는 느낌·감정과 같은 정서적 교감 외에도 ‘돈’이라는 요소는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이를 체감하기도 했겠지만, 학문적 연구 방법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중국 사범대와 홍콩대 공동 연구진은 장기간 교제 중인 대학생 커플들을 모집해 이들의 이성 교제 행동 유형을 조사하기 위해 무작위로 부유한 집단과 가난한 집단으로 나눴다. 첫 실험에서는 자신을 부유하다고 생각한 남성들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 남성들보다 현재 여자친구의 외모에 덜 만족감을 느꼈고 교제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신이 부유하거나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현재 남자친구의 외모에 대한 만족감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그다음 실험에서는 다시 이들 참가자에게 각자 매력적인 한 이성과 가상으로 만나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결과, 자신이 부유하다고 생각한 남녀 모두는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매력적인 이성과 쉽게 관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부(富)의 소유 등에 따라 관계를 끊거나 맺는 ‘조건부의 이성교제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연구는 어느 정도 특정 문화로 제한될 수 있지만, 연구팀은 이런 성향은 인간의 이성교제 전반에 걸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심리학 프론티어’(Frontiers in psychology)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목포의 눈물’ 이난영 탄생 100주년 기념 ‘다채’

    ‘목포의 눈물’ 이난영 탄생 100주년 기념 ‘다채’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1916~1965)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인 목포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목포의눈물 기념사업회는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까지 ‘목포의 눈물에서 희망으로’란 주제로 가수 이난영 탄생 100주년 행사를 갖는다고 25일 밝혔다. 기념행사는 30일 오후 오거리문화센터에서 토론회와 전시회로 막을 올린다. 토론회에는 장유정 대중음악평론가와 이윤선·고석규 목포대 교수 등이 참여해 ‘목포의 눈물’의 근·현대적 의미를 되짚는다. 다음 달 4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이난영이 즐겨 입었던 한복과 양장, 신발 등 유품을 비롯해 김시스터즈 기증품, 유달산 노래비 역사 사진 등이 전시된다. 31일 오후 갓바위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는 이난영의 딸이자 한류스타 1호인 ‘김시스터즈’ 멤버 김숙자씨가 어머니에 대한 못다 한 이야기와 노래로 진행하는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생가터와 유달산 노래비, 삼학도 수목장 등 이난영의 흔적을 찾는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이난영은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시절에 학교를 그만두고 악극단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가 막간 가수로 발탁돼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35년 ‘목포의 눈물’이 발표된 후 인기스타 정상에 올랐다. 목포의눈물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수많은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목포’를 통해 지역의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기회를 갖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사설] 개발경험 전수 뛰어넘는 대아프리카 외교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1~2015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상위 10개 국가 가운데 7개가 아프리카 국가였다. 에티오피아가 8.1%로 선두를 달렸고, 모잠비크가 7.7%, 탄자니아가 7.2%, 콩고와 가나가 각각 7.0%, 잠비아가 6.9%, 나이지리아가 6.8%로 뒤를 이었다. 가파른 경제성장은 당연히 구성원들의 의지에 힘입었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경제 원조가 상당한 힘이 됐다. 특히 중국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중국이 2001년 2억 달러를 들여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아프리카연합(AU) 건물을 지어 기증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도로와 건물 등 각종 인프라를 제공했고, 그 과실을 이제 본격 수확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지난해 교역량은 전체의 34%를 대(對)중국 무역이 차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부터 동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한다.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가 대상국이다. 한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는 것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케냐를 방문하는 것은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우간다는 우리 대통령이 방문한 기록이 없다. 박 대통령은 세 나라 순방에서 그동안 전개한 아프리카 외교에 상생 협력과 문화 교류를 추가한 대(對)아프리카 정책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단기간에 산업국가로 변신한 한국은 아프리카 각국의 중요한 발전 모델이었다. 우리도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개발 경험을 전수하면서 교류 협력의 폭을 넓혀 왔다. 하지만 원조 차원에 머물렀을 뿐 자원 부국이자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상품 시장인 아프리카와 본격적인 경제 협력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박 대통령의 동아프리카 순방은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는 대기업 14개사를 비롯해 모두 166개사가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한다는 소식이다. 적지 않은 수출 기업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과감하고도 지속적인 투자의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지역 국가들은 북한과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북핵 문제의 공조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디스아바바의 AU 본부에서 상생 협력의 정책 비전을 담은 특별 연설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중국이 기증한 건물에서 중국과는 다른 한국의 역할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 상하이 고층빌딩 속… ‘세상에서 가장 비싼 폐허촌’

    상하이 고층빌딩 속… ‘세상에서 가장 비싼 폐허촌’

    화려한 상하이 시내 중심가 수십억 짜리 아파트 뒤편에는 세계 최고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폐허촌'이 있다. 호화로운 고층빌딩 숲 속에 자리잡은 초라하기 그지 없는 고독한 섬과 같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폐허촌’이라는 불리는 이 곳은 부동산 투자회사들이 눈독 들이는 ‘꿈의 땅’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부동산시장의 중심부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상하이 우닝루(武宁路) 근처의 광푸리(光复里), 이곳은 상하이 정부가 지난 16년 간 정비와 재건축을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부족한 보상금으로 갈 곳이 없어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땅에 살고 있는 폐허촌 사람들의 사연이 생겨난 배경이다. 현재 남은 20여 가구의 주민들은 기와벽돌과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야채를 키우며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나고 있다. ‘집’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주택들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허름한 집 창문에는 유리도 없고, 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다. 이곳에 사는 뤄(罗)씨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3층짜리 건물에서 가족 및 형제들과 살고 있다. 그는 “부동산 개발상에게 집값으로 420만 위안(한화 7억5000만원)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한다. 현재 인근 지역의 집값은 1㎡ 당 8만 위안(한화 1445만원)을 웃돈다. 상하이의 집값 광풍으로 지난 3월에는 연초 대비 집값이 25%나 올랐다. 뤄씨의 요구 금액으로도 그 근처 50㎡(약 15평) 짜리 집을 겨우 구할 수 있을 정도다. 부동산개발상은 주민들에게 적정수준의 보상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철거민들과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상은 주민들에게 상하이 교외 북서쪽에 위치한 쟈딩(嘉定)지역에 집을 제공해 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고, 이조차 추가 부담금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32년간 살아온 한 주민은 집문서를 잃어버려 아무 보상도 없이 쫓겨날 처지라 무작정 버티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현금’과 ‘부동산’은 부의 상징이다. 유달리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5월 첫 주 상하이의 집값 평균 거래가격은 1㎡당 4만 위안(721만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0년 간 상하이 집값은 5배가 올랐고, 집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쪽 편은 20억 짜리 아파트에 살고, 이쪽 편은 월세 9만원의 폐허에 산다. ‘부’와 ‘가난’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상하이, 화려한 도시 이면에는 단절된 세계의 음영이 가리워져 있다. 사진= 东方IC 이종실 상하이(중국) 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자치단체장 25시] 빈민에겐 ‘엄마’… 軍 통합훈련장 건립 반대엔 ‘전사’

    [자치단체장 25시] 빈민에겐 ‘엄마’… 軍 통합훈련장 건립 반대엔 ‘전사’

    홍미영(61) 인천 부평구청장의 삶은 ‘소외된 사람들과 동행’으로 집약된다. 정치인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을 보란 듯이 드러내지만 ‘말의 향연’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홍 구청장은 살아온 과정으로 얼마나 치열하고 한결같이 약자의 편에서 실재했는지를 증빙하고 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사업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그는 1학년 때 서울 중랑천 뚝방촌에 빈민 봉사활동을 나갔다가 큰 충격을 받는다. 지저분한 공동 화장실은 물론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 아이들은 신발도 없이 맨발로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사회구조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금수저’로 태어나 ‘흙수저’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꾸는 계기가 됐다. “다들 부모 덕에 어느 정도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철없음을 절감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받은 몫이 이 사회에서 덜 가진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그 인식은 더 받은 몫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성찰로 이어졌고, 60이 넘어선 지금까지 이를 실천하는 삶이 됐다. 육아와 노동을 병행하는 빈민 여성들에게서 한국사회의 모순이 집약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1983년 일곱 살, 다섯 살배기 딸 둘을 데리고 인천 동구 만석동으로 이사 왔다. 서울토박이가 서울을 떠나 인천 부둣가 판자촌에 살기로 한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후 인천 최초 비영리 공부방인 ‘큰물공부방’을 차렸다. 엄마들이 조개·굴을 캐거나 공장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지저분한 골목과 어두운 방에 방치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그의 차지였다. 모든 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공부방이 자리를 잡아가던 중 만석동 판자촌이 철거되자 인천의 또 다른 달동네인 부평구 십정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 두 칸짜리 전셋집을 얻어 한 방은 유아놀이방, 다른 방은 초등학생 공부방을 운영했다. 도시빈민과 같은 삶을 살아야 그들을 주체로 세우는 빈민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방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공장을 다니거나 우유 배달, 가내 부업을 하는 평범한 아줌마로 변신했다.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보다 더 치열한 ‘운동권’이었던 셈이다. 주민들과 지역모임을 만들어 산동네 쓰레기수거, 가로등·공중전화 설치, 상하수도 정비 등을 논의하는 한편 동네신문을 찍고 주민자치회, 바자회 등을 주도하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던 그에게 ‘정치’는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자 주민들과 공부방 교사들, 자원봉사자들이 구의원 출마를 권유했다. 낙후된 십정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네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며 등을 떠밀었다. 그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신뢰에 힘입어 십정동으로 이사 온 지 5년 만에 당시 인천 최다 득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인천 북구(현 부평구) 의원에 당선된다. 한국여성운동의 대모였던 고(故)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초대 기초의원선거 유세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당시의 감동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구체적인 문제를 소상하게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실천방안을 또박또박 제시함으로써 유권자의 갈채를 받았다. 참다운 의미에서의 생활정치인 탄생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홍 구청장의 구의원 활동이 소외된 자들을 대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음은 물론이다. 역량과 진정성을 인정받은 그는 재선 인천시의원과 17대 국회의원을 거쳐 재선 구청장이 됐다. 그래서 지방자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는 여전히 가난한 자들의 이웃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체급(?)이 올라가면 초심을 벗어나기가 다반사지만, 홍 구청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등식이다. “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생활자치’ 영역이란 철학을 가지고 주민들의 일상적인 문제를 세심하게 살피고 해결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부평구는 요즘 통합예비군훈련장 문제로 시끄럽다. 국방부가 산곡동에 통합훈련장을 만들어 인천 주안·계양·공촌·신공촌훈련장은 물론 경기 부천과 김포에 있는 훈련장까지 합치는 방안을 추진하자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통합훈련장 예정지 반경 3㎞ 이내에 20여만명이 거주하고 31개의 유치원 및 초·중·고가 밀집해 있다. 주민들은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벌여 지금까지 24만명이 서명을 했다. 부평구는 인천시에 대체부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마땅한 대체부지를 찾기 어려운 데다 부지를 확보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예상된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 역시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홍 구청장은 “현재 14개의 군부대가 부평지역 330만㎡를 점유해 군부대 이전이 시급한 상황에서 통합예비군훈련장까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부평4동에 있는 미군부대 ‘캠프 마켓’ 이전을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대가 경기 평택으로 이전하는 방안은 수년 전 결정됐으나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홍 구청장의 마음은 다급하다. 홍 구청장은 부대가 이전하면 공원 외에 풍물전시관 등 문화역사공연장을 만들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캠프 마켓은 일반 군부대가 아니라 빵을 만들어 전국 미군부대에 공급하는 일종의 군수기지인데 예정보다 이전이 늦어져 2018년쯤 이전이 완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승만의 독재정치에서 희생된 ‘1950년대 진보정치’의 대명사 조봉암 선생의 동상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조봉암은 부평을 기반으로 했던 정치인으로 이곳에서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다. 부평을 가로지르는 굴포천과 그 주변을 생태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도 홍 구청장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굴포천은 인천가족공원(부평동)에서 시작해 계양구, 경기 부천·김포를 거쳐 한강까지 흐르는 서부 수도권의 대표적인 하천이다. 구는 인천가족공원부터 부평구청까지 3.4㎞에 대한 단계적 개발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굴포천 복원과 연계되는 국비사업에 응모, 3개 분야에서 870억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홍 구청장은 “사람 사는 곳에 물길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라며 “굴포천 복원으로 30여 전 물놀이를 하고 물고기를 잡던 시냇물을 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낙후지역이 많은 부평에서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수많은 재개발사업이 부동산경기 침체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뉴스테이는 사업 속도가 빠르고 재정착 주민들에게 혜택이 많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청천2구역과 십정2구역인데 2019년 말쯤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홍 구청장의 행정 화두는 단연 서민경제 활성화다.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의 자치단체장으로서의 운명이기도 하겠지만, 평생을 약자의 편에서 살아온 만큼 당연한 행정철학이기도 하다. 홍 구청장은 “부평은 대체로 못사는 지역이지만 소통을 잘하는 공동체이고, 역동적이면서 민주주의적 자질이 강한 시민들로 가득하다”면서 “단체장이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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