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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심 요청 대부분 약자… 사회 불평등이 법 불평등 이어져”

    “재심 요청 대부분 약자… 사회 불평등이 법 불평등 이어져”

    “재심 사건을 맡은 한 판사가 이렇게 말해요. ‘아직 진범이 잡힌 건 아니잖아요?…’ 이게 재심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태도입니다.” 지난 26일 사무실에서 만난 박준영(43·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거침이 없었다. 사법부가 자신들의 잘못된 판결을 뒤집는 데 얼마나 소극적인지를 꼬집었고, 선뜻 재심 청구권자로 나서는 검사가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재심 전문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은 박 변호사가 전국을 누비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박 변호사는 1991년 부산에서 일어난 ‘엄궁동 살인 사건’의 재심을 위해 이번 설 연휴도 일찌감치 반납했다고 말했다. 2007년 ‘수원 노숙소녀 사망 사건’을 시작으로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2000년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재심 결정과 무죄판결 모두 박 변호사의 작품이다. 일반 강력범죄의 경우 재심의 선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법리를 새로 써 나가는 셈이다. 실제 약촌 오거리 사건의 경우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간 옥살이를 한 30대 청년 최모(당시 15세)씨에게 지난해 10월 법원이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폭행이 자행되는 등 강압수사 사실이 밝혀졌고, 확정 판결 이후 진범이 드러나 부실 수사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재심’이 다음달 개봉한다.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결함이 새롭게 발견되면 재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재심(再審) 제도는 잘못된 판결에 따른 피해자들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꼽힌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심 형사공판 사건의 재심 접수는 3878건으로, 2014년 589건에 비해 6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2015년 2월 ‘간통죄 위헌 결정’ 등 외부 요인,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국가 차원의 재심 권고 사건을 제외하면 일반 사건에서 재심을 통해 판결이 번복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개인이 거대한 사법부를 상대로 판결을 뒤집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박 변호사는 “일반인이 누구의 조력도 없이 새롭고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단언했다. 과거 사건일수록 기록이 소실되는 데다 수사기관이 관련 자료를 쉽게 내주기 힘든 탓이다. 박 변호사는 “재심 사건의 주인공들은 가난하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등 재판 과정에서 자기주장을 다 할 수 없는 존재가 대다수였다”며 “사회적 불평등이 법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그에게 지난해 법조계를 휩쓴 전관 변호사 논란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의 죄를 줄이려는 시도가 있다면, 상반되는 곳에서는 누군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제 박 변호사가 재심 결정을 끌어낸 사건 모두 검·경 수사 당시 변호인의 제대로 된 도움 없이 피해자들이 자백을 강요당한 것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박 변호사는 “국가인권위원회 산하에 재심 관련 부서를 두는 등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며 “조사 권한을 가진 공권력의 도움이 있어야만 숨죽이고 있는 억울한 피해자들이 한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단독] [노력이 제값 받는 사회] 서울대 합격률 강남·강북 20배差… “부모 경제력 빼니 1.7배”

    [단독] [노력이 제값 받는 사회] 서울대 합격률 강남·강북 20배差… “부모 경제력 빼니 1.7배”

    대물림 통로로 변질된 ‘교육 사다리’ 교육이 더이상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세대 간에 경제력을 대물림하는 통로로 이용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상황이 됐다.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6배가 넘는 교육비를 투입하고 이 격차는 고스란히 학벌 격차로 이어지고, 미래 수입으로 연결된다. 전문가들은 ‘기회 평등’을 제공하던 교육의 기능이 회복되지 않으면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지난해 10월 국민대통합위원회 계층화합 분과회의에서 교육 분야의 기회 불균형이 심도 있게 논의된 바 있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행복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아버지와 본인 간 사회경제적 지위 수준의 상관관계가 0.449였지만 본인과 자식 간에는 0.600으로 강화됐다고 전했다. 교육 수준도 아버지와 본인 간의 상관관계는 0.165였으나 본인과 아들 간에서는 0.398로 높아졌다. 과거 아버지의 학력·자본·지위가 본인에게 전이된 것보다 현재와 미래에 자신의 학력·자본·지위가 자식에게 이어질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교육 분야 기회 불균형의 중심에는 사교육비가 있다. 지난해 통계청은 월평균 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구의 사교육비는 42만원 수준으로, 월평균 소득 100만원 이하 가구의 6만 6000원에 비해 6배 이상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소득 1분위(하위 20%)인 가정의 중학교 3학년생이 4년 뒤 4년제 대학에 진학한 비율은 39.8%에 불과했지만, 5분위(상위 20%)인 가정의 경우는 75.2%나 됐다. 상위 9개 대학 및 의대 진학률은 5분위 가정의 경우 10%로 1분위(0.4%) 가정의 25배였다. 대학 시절에도 고소득층 자녀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버는 대신 취업이나 학업 스펙을 쌓는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단법인 행복세상의 국가발전 정책토론회(2016년 6월)에서 ‘5분위 가구에서 대학생(4년제) 자녀를 위해 지출하는 교육비가 매월 약 70만원인 반면, 1분위는 40만원선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교육 기회의 불균형으로 재능 있는 인적 자원이 사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유아종단조사에 따르면 8~12개월 사이에 유아의 지능은 가정 배경과 무관하다. 하지만 영국의 한 연구(British cohort study·1970년)에 따르면 높은 지능을 타고 태어나도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면 7~8세부터 인지능력이 낮아진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류근관 교수의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2015년)’ 논문에 따르면 가정 배경을 배제하고 공부 노력과 타고난 잠재력으로만 측정할 때 강남구·강북구 일반고의 서울대 합격률은 각각 0.84%, 0.50%로 그 차이는 1.7배에 불과했다. 반면 2014년 입시에서 양측의 실제 서울대 합격률은 각각 2.07%, 0.11%로 약 20배 차이가 났다. 실제 2015년 서울대 수시 일반고 합격자를 서울 25개구별로 분석한 결과 여전히 강남·서초·송파구가 가장 많았다. 그간 교육은 사회 계층 이동의 통로였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상황이 악화될까 우려한다. 수능 성적, 출신고교 생활기록부 등은 사교육, 선행학습, 특수고 진학 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결과적으로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좋은 대학’이 곧 좋은 직장의 전제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인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졸자의 약 40%만이 사회적 네트워크(믿고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다)가 있다고 답해 대졸자(약 80%)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입시 제도의 개혁, 공교육 질 향상, 대학 외 선택권 강화 등을 대안으로 들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발달계좌(Child Development Account)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18세까지 축적된 자산은 성인기 초기의 귀중한 자산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아동발달계좌는 모든 국민이 18세가 됐을 때 적금을 찾아 학비, 창업비용 등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부유한 부모는 적립액 전액을 부담하고, 가난한 경우 정부가 매칭을 해 준다. 교육 평준화 정책을 대폭 수정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자율형 공립고를 도입하고 특성화고도 활성화하되 교육과정과 교원 현황, 예산, 학업성취도, 졸업생 진로와 같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공교육의 질적 개선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효율적인 공립학교 지원을 위해 교육자치와 지방자치를 일치시켜 지자체 간에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립대를 취업이 아닌 기초학문 연구를 위한 전당으로 탈바꿈시키고 대학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등 대학의 상향 평준화를 위해 국가 재정을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죽음 앞둔 10대 암환자가 세상에 퍼뜨린 ‘친절 메시지’

    죽음 앞둔 10대 암환자가 세상에 퍼뜨린 ‘친절 메시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마지막은 다가온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가 있다.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 베카는 자신의 죽음에 전전긍긍하기보다 진정한 친절의 의미를 알리는 중이다.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치 않음을, 친절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고 말이다. 지난주 23일(현지시간) 미국 NBC는 뇌종양 말기 진단을 받은 여성이 그녀에게 다가올 마지막 날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전 세계에 친절의 정의를 새롭게 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연 속 주인공은 캐나다 뉴브런스 윅주에 사는 베카 스코필드(17). 그녀는 2년 전 뇌종양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과 치료로 지난해 4월 암과의 싸움을 끝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종양이 재발견됐고, 의사에게 최소 3개월에서 최대 1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지상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는 죽기 전 훌륭한 일을 해내고 싶어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페이스북에 "당신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이 메시지를 본다면, 누군가를 위해 친절한 행동을 해달라"는 글을 적어 올렸다. 이어 "친절함의 규모가 클 수도 혹은 작을 수도 있다"며 "자선단체 기부, 자원봉사, 당신의 부모가 부탁하기 전에 설거지하기, 보도 쓸기, 이번 연휴에 혼자일거라 생각되는 이를 방문하는 일도 친절을 베푸는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으로 이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버킷 리스트 달성을 돕고 싶다 전했고, 이러한 호응에 힘입어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BeccaToldMeTo’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이 해시태그는 미국, 일본, 쿠웨이트, 호주 등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200만 명에게 전해졌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누군가를 위해 커피‧아침밥을 샀다’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푸드뱅크에 기부했다, 헌혈을 했다’는 글이 여전히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해시태그가 달린 티셔츠와 범퍼 스티커, 광고게시판 그리고 팔찌까지 등장했다. 한때 남을 신경 쓰지 않던 전형적인 10대 소녀였던 베카. 그녀는 병을 통해 다른 이의 고통과 고충을 이해하게 되면서 겸손함을 배웠다. 베카는 "친절을 베푸는 일은 놀라운 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며 "아빠는 항상 나에게 타인을 향한 친절을 가르쳤고 나 역시 그가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친절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한 베카는 "이 세계는 때론 잔혹할 수 있지만 나쁜 일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고,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들이 지금의 삶이 선물이란 사실을 깨닫고 매 순간을 소중히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베카의 친구와 가족들은 ‘고 펀드미’를 통해 성금도 모금하고 있는 중이다. 23개월 안에 5800만원을 목표로 550명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4000만원 가까이의 기금을 모은 상태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뽑기방·동전 노래방 열풍…청춘들의 ‘가난한 취향’

    뽑기방·동전 노래방 열풍…청춘들의 ‘가난한 취향’

    임현두(가명·28)씨는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한다. 마감이 끝나면 자정 즈음에야 퇴근한다. 이마저도 3교대 근무라 수시로 바뀐다. 생활이 불규칙하니 여가는 엄두도 못 낸다. 다만, 일주일에 서너 번 들르는 곳이 있다. 크레인을 이용해 인형을 뽑는 ‘뽑기방’. 임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보통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는데 피로만 쌓인다”면서 “인형 뽑기는 적은 돈으로도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어서 선호한다”고 말했다. 최근 임씨처럼 뽑기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5월 기준 전국 33개에 불과했던 뽑기방이 8월 147개, 12월 880개까지 폭증했다.상처받은 청춘들의 보상심리 뽑기를 한 번 하는 데는 보통 1000원 안팎이 든다. 임 씨는 갈 때마다 평균 1~2만원씩 쓴다. 4개월간 70만원을 쏟아부었다. 지금까지 40번 정도 성공했다. 절반은 허탕 치고 돌아선 셈이다. 2만원씩 날리는 건 예사다. 한꺼번에 35만원을 집어넣은 적도 있다. 도박하는 기분이 들어 찜찜하다고 했다. 실제 일부 기계는 성공 확률을 조작하기도 한다. 크레인 길이를 짧게 만들거나, 끌어올리는 힘을 약하게 만드는 식이다. 크레인 게임물 실태 조사 결과, 전국 144개 업소 중 12개가 개·변조로 적발됐다. 임씨도 이 사실을 알지만, 멈출 수 없다. 돈을 잃으면 잃을수록 승부욕은 더욱 타오른다.청년들이 뽑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적은 투자 대비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저비용 한탕주의’라고 해석한다. 곽 교수는 “청년실업률이 계속 치솟는 상태이므로 여가를 위한 놀이에서도 비용이 중요해졌다”면서 “결국 푼돈으로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밑바탕에 깔린 셈”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젊은이들 사이에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확산하면서 노력보다 운에 기대고 싶은 심리가 커졌는데 인형 뽑기도 그런 현상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계급사회에서 내몰린 청춘들은 손에 인형이라도 거머쥠으로써 좌절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것이다. 혼자 고립되어가는 ‘각자도생’의 시대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이소희(가명·28·여)씨는 서울의 도서관과 커피숍을 오가며 온종일 활자와 씨름한다. 적막한 공간에 오래 앉아있으면 수시로 잡념이 몰려온다. 그럴 때마다 달려가는 탈출구가 있다. 1000원에 4곡을 부르는 동전 노래방이다. 2명 남짓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방음 따윈 안 된다. 애창곡은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다. 고음을 시원하게 내지르자 옆 방 남자가 같은 노래를 이어서 부른다. 이씨도 맞은편 부스에서 들리는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따라 부른다. 각자 조그마한 방에서 부르는 노래가 돌림노래가 되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다.IT기업에 다니는 김효진(가명·27·여)씨의 취미는 ‘데스크 테리어’다. 데스크 테리어는 데스크와 인테리어를 합성한 신조어로, 사무실 책상 위를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는 걸 말한다. 김씨는 캐릭터 상품을 모아서 진열해놨다. 대부분 소소한 문구류다. 펜, 필통, 노트, 포스트잇 같은 것들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캐릭터는 필수다. 특히 라이언과 어피치를 좋아한다. 삭막한 사무실 풍경 사이로 보이는 밝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안락함을 준다. 어린 시절 갖고 싶지만 포기해야 했던 인형들도 떠오른다. 하나씩 모을 때마다 지난날 자신에게 선물하는 기분이 든다. 혼밥, 혼술, 혼놀이란 단어가 떠오른 지 오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논다는 뜻이다. 사회가 갈수록 파편화되고 있단 방증이다. 인형뽑기와 동전 노래방, 데스크 테리어도 모두 혼자 하는 취미다. 요즘 대학가에선 과거처럼 학생들이 우르르 함께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치열한 논쟁도 줄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집단적 연대를 구축하기 어려워하는 탓”이라고 봤다. 혼자 하는 취미에 열중하는 것에 대해선 “현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이 겪는 문제가 스스로 해결하기엔 너무 크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런 좌절감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헬조선 깰 망치는 결국 ‘연대’ 청년들은 왜 혼자가 되기를 택했을까.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12월 및 연간 고용 동향’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이 9.8%를 기록했다. 지난해 9.2%에 이어 또다시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극심한 실업 사태를 겪는 상황에서 여럿이 어울려 취미를 공유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돈이 있어야 다 같이 밥도 먹고 어울릴 수 있다. 선택의 폭 역시 좁아진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으면 재료비가 들고, 새로운 걸 배우기 위해선 수업료를 내야 한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청년들의 가난한 취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헬조선’이 가난한 청년을 만들고, 가난한 취향을 확산시키는 것”이라며 결국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 트윗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5000번 이상 리트윗됐다. 구조적 문제란 곧 정책 실패를 말한다. 정부와 국회가 청년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신규채용이 갈수록 줄어든다. 청년층 역시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조직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청년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라도 했다면 이 지경까지 이르진 않았으리란 자조가 쏟아진다. 현 상황을 극복할 방안은 청년의 연대라는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혼자이기를 원했지만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는 심리, 이는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하긴 했지만 뒤따르는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청년들이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으면서도, 한편으론 SNS를 통해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행태와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가 봐주기를 바라고, 또 함께 나누길 원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차기 대선 후보들의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것. 이 땅의 좌절한 청년들을 어루만져 줄 정치인과 청년 정책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는 동시에 청년의 연대가 거대한 힘을 발휘해 그들의 미래를 새로 그려 나가야 할 때가 왔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뽑기방·동전 노래방 열풍…청춘들의 ‘가난한 취향’

    뽑기방·동전 노래방 열풍…청춘들의 ‘가난한 취향’

    임현두(가명·28)씨는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한다. 마감이 끝나면 자정 즈음에야 퇴근한다. 이마저도 3교대 근무라 수시로 바뀐다. 생활이 불규칙하니 여가는 엄두도 못 낸다. 다만 일주일에 서너 번 들르는 곳이 있다. 크레인을 이용해 인형을 뽑는 ‘뽑기방’. 임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보통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는데 피로만 쌓인다”면서 “인형 뽑기는 적은 돈으로도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어서 선호한다”고 말했다. 최근 임씨처럼 뽑기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5월 기준 전국 33개에 불과했던 뽑기방이 8월 147개, 12월 880개까지 폭증했다.상처받은 청춘들의 보상심리 뽑기를 한 번 하는 데는 보통 1000원 안팎이 든다. 임 씨는 갈 때마다 평균 1~2만원씩 쓴다. 4개월간 70만원을 쏟아부었다. 지금까지 40번 정도 성공했다. 절반은 허탕 치고 돌아선 셈이다. 2만원씩 날리는 건 예사다. 한꺼번에 35만원을 집어넣은 적도 있다. 도박하는 기분이 들어 찜찜하다고 했다. 실제 일부 기계는 성공 확률을 조작하기도 한다. 크레인 길이를 짧게 만들거나, 끌어올리는 힘을 약하게 만드는 식이다. 크레인 게임물 실태 조사 결과, 전국 144개 업소 중 12개가 개·변조로 적발됐다. 임씨도 이 사실을 알지만, 멈출 수 없다. 돈을 잃으면 잃을수록 승부욕은 더욱 타오른다.청년들이 뽑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적은 투자 대비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저비용 한탕주의’라고 해석한다. 곽 교수는 “청년실업률이 계속 치솟는 상태지만, 여가를 위한 놀이에서도 비용이 중요해졌다”면서 “결국 푼돈으로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밑바탕에 깔린 셈”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젊은이들 사이에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확산하면서 노력보다 운에 기대고 싶은 심리가 커졌는데 인형 뽑기도 그런 현상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계급사회에서 내몰린 청춘들은 손에 인형이라도 거머쥠으로써 좌절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것이다. 혼자 고립되어가는 ‘각자도생’의 시대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이소희(가명·28·여)씨는 서울의 도서관과 커피숍을 오가며 온종일 활자와 씨름한다. 적막한 공간에 오래 앉아있으면 수시로 잡념이 몰려온다. 그럴 때마다 달려가는 탈출구가 있다. 1000원에 4곡을 부르는 동전 노래방이다. 2명 남짓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방음 따윈 안 된다. 애창곡은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다. 고음을 시원하게 내지르자 옆 방 남자가 같은 노래를 이어서 부른다. 이씨도 맞은편 부스에서 들리는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따라 부른다. 각자 조그마한 방에서 부르는 노래가 돌림노래가 되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다.IT기업에 다니는 김효진(가명·27·여)씨의 취미는 ‘데스크 테리어’다. 데스크 테리어는 데스크와 인테리어를 합성한 신조어로, 사무실 책상 위를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는 걸 말한다. 김씨는 캐릭터 상품을 모아서 진열해놨다. 대부분 소소한 문구류다. 펜, 필통, 노트, 포스트잇 같은 것들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캐릭터는 필수다. 특히 라이언과 어피치를 좋아한다. 삭막한 사무실 풍경 사이로 보이는 밝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안락함을 준다. 어린 시절 갖고 싶지만 포기해야 했던 인형들도 떠오른다. 하나씩 모을 때마다 지난날 자신에게 선물하는 기분이 든다. 혼밥, 혼술, 혼놀이란 단어가 떠오른 지 오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논다는 뜻이다. 사회가 갈수록 파편화되고 있단 방증이다. 인형뽑기와 동전 노래방, 데스크 테리어도 모두 혼자 하는 취미다. 요즘 대학가에선 과거처럼 학생들이 우르르 함께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치열한 논쟁도 줄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집단적 연대를 구축하기 어려워하는 탓”이라고 봤다. 혼자 하는 취미에 열중하는 것에 대해선 “현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이 겪는 문제가 스스로 해결하기엔 너무 크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런 좌절감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헬조선 깰 망치는 결국 ‘연대’ 청년들은 왜 혼자가 되기를 택했을까.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12월 및 연간 고용 동향’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이 9.8%를 기록했다. 지난해 9.2%에 이어 또다시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극심한 실업 사태를 겪는 상황에서 여럿이 어울려 취미를 공유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돈이 있어야 다 같이 밥도 먹고 어울릴 수 있다. 선택의 폭 역시 좁아진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으면 재료비가 들고, 새로운 걸 배우기 위해선 수업료를 내야 한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청년들의 가난한 취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헬조선’이 가난한 청년을 만들고, 가난한 취향을 확산시키는 것”이라며 결국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 트윗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5000번 이상 리트윗됐다. 구조적 문제란 곧 정책 실패를 말한다. 정부와 국회가 청년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신규채용이 갈수록 줄어든다. 청년층 역시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조직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청년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라도 했다면 이 지경까지 이르진 않았으리란 자조가 쏟아진다. 현 상황을 극복할 방안은 결국 청년의 연대라는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혼자이기를 원했지만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는 심리, 이는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하긴 했지만 뒤따르는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청년들이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으면서도, 한편으론 SNS를 통해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행태와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가 봐주기를 바라고, 또 함께 나누길 원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차기 대선 후보들의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것. 이 땅의 좌절한 청년들을 어루만져 줄 정치인과 청년 정책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는 동시에 청년의 연대가 거대한 힘을 발휘해 그들의 미래를 새로 그려 나가야 할 때가 왔다. 곽혜진 인턴기자 demian@seoul.co.kr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유산을 남긴다. 특히 한국 부모들이 그러하다. 하다못해 숟가락 하나라도 전해 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한국 부모들의 마음이다. 이러한 한국 부모들의 유산상속 행위에 서구인들은 토큰상속(token heritage)이라는 재미있는 말을 붙인다. 재산을 흩지 않고 한쪽으로 몰아주는 서구인들이나 일본인들과 달리 한국 부모들은 예부터 장자든 차자든 자식이면 빠트리지 않고 재산을 나눠 줬다. 물론 균등하게는 아니라 해도 많이 주든 적게 주든 나눠 주는 관례 때문에 가난한 집의 여러 형제들은 겨우 토큰 하나 받는 정도의 유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유산 중에서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재산일까 권력일까. 재산은 많든 적든 유산으로 쉽게 남겨 줄 수 있는데, 권력은 어떻게 세습화될 수 있는가. 재산과 달리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 세습화란 상상할 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중동 아랍권이나 북한 그리고 현대 중국의 혁명 2세대처럼 지금도 권력이 재산처럼 세습되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권력 세습화는 전통사회에서 보는 양반 상놈 하는 신분(身分)을 통해서였다. 신분은 계급과 달리 획득하기도 어렵지만 한 번 획득하면 잃기도 어렵다. 양반은 권력은 물론 권리를 가진 양반으로서 계속 세습화되고, 상민·천민은 권력은 물론 권리가 전혀 없는, 오로지 의무만 있는 상민·천민으로 세습화됐다. 설혹 그렇다 해도 재산처럼 이 신분도 후손으로 계속 상속되고 지속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그것이고, 세불삼대(勢不三代)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또한 그것이다. 아무리 큰 부자도 손자 대까지 백 년을 넘기기 어렵고, 아무리 센 권(權)과 세(勢)도 길고 짧음에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날에는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재산과 권력은 유산으로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금수저’라 해도 허무하게, 그것도 조만간 끝나게 돼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재여권불구절(財與權不久折)이라는 말을 늘 써 왔다. 재산과 권력은 오래 못 가고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긴 오래오래 내려가는 유산은 없는가. 수수백 년을 내려가는 유산, 그 수수백 년 동안 수많은 후손들이 싸우지 않고 골고루 물려받아서 대대로 향유하고 만끽하는 유산, 그런 유산은 없는가. 그 유산이 바로 ‘위신’이다. 이 위신에는 근대 사회과학을 만든 독일의 막스 베버가 말하는 카리스마 저장량(stock of charisma)처럼 일정 ‘저장량’이 있다. 예컨대 석가, 공자, 예수는 카리스마 저장량이 많기 때문에 2천 수백 년이 지나도 그 저장량이 계속 유지돼 신도들이 줄을 잇는다. 위신도 그처럼 위신 저장량(stock of prestige)이라는 것이 있어 위 성인들만큼 오래가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수백 년은 갈 수 있다. # 영의정 셋보다 대제학 하나가 더 큰 가문의 영광 위신이 어떻게 권력 재산과 비교되지 않게 오래 남는 유산이 될 수 있는가. 구태여 따질 것 없이 실제 경험의 세계에서 보라. 세종대왕이나 세조대왕 혹은 영·정조대왕의 후손이면 왕손으로서 능히 자랑할 만도 하다. 그런데 지금 누가 “내가 그 대왕들의 후손이오” 하고 자랑하는가. 자랑 못할 바도 아니지만 자랑한다고 누가 칭송하고 부러워할 것인가. 누가 그 가문의 영예나 권위를 높이 인정하고 널리 선양(宣揚)해 줄 것인가. 삶이 아무리 어렵고 미천한 사람이라 해도 그 대왕들의 후손을 부러워하거나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지는 않는다. 반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퇴계(退溪) 이황(李滉),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이라 하면 은연중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부러움을 쌓는다. 어딘지 모르게 법도가 있고 예의가 바르고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손들의 현재 지위가 높든 낮든, 재산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일정 가치를 갖고 그들을 대한다. 이유는 선조들이 당대에 높이 쌓은, 많은 저장량의 위신 때문이다. 높은 학덕과 고매한 행적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부터 ‘이조판서 셋이 대사성 하나보다 못하다’(三吏判不如一大司成)는 말을 해 왔다. 이조판서는 6조(六曹) 중 인사를 맡은 최고의 벼슬이다. 품계도 정이품(正二品)이다. 반면 대사성은 성균관에서 유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정삼품(正三品) 벼슬이다. 비록 성균관 으뜸의 자리라 해도 권력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조판서보다 가문의 더 큰 영광이 될 수 있을까. 이뿐이 아니다. ‘영의정 셋보다 대제학 하나가 더 낫다’(三領議不如一大提學)는 말도 늘 해 왔다. 영의정은 내각을 총괄하는 정일품(正一品) 최고의 지위이고, 대제학은 경서와 문서, 문장을 관장하는 홍문관의 제일 윗자리다. 품계(정이품)나 지위, 권력이 영의정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어떻게 영의정 셋보다 대제학 하나가 가문의 더 큰 영광이 될 수 있을까. 더 기막힌 것은 ‘정승 열보다 왕비 하나가 더 낫고’(十政丞不如一王妃), ‘왕비 열보다 산림 하나가 더 낫다’(十王妃不如一山林)는 말이다. 왕비 하나가 정승 열보다 가문에 더 큰 힘이 되고 영광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산림(山林) 하나가 왕비 열보다 가문의 더 큰 영예라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도 인정하기도 어렵다. 산림은 학문이 최고 경지에 이른, 그러나 벼슬은 전혀 해 본 일이 없는, 글자 그대로 산림에 묻혀 있는 학자다. 이 학자가 어떻게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문제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이고, 또 ‘왜 그렇게 받아들였을까’이다. # 벼슬 사양한 최고의 학자 ‘산림’에 높은 가치 부여 이 역시 간단하다. 권력과 재산은 무상하다.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거기에 세인들의 지탄이 끊임없이 따른다. 당사자인 자기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이어 간다. 그 권력을 잡고 그 재산을 모을 때까지의 그 험난한 여정을 세인들은 잘 안다. 아무리 청렴하고 청부(淸富)했다 해도 권력 재산이 갖는 희소가치 때문에 세인들은 그들의 어두운 면만 보고, 역사는 그들의 부정한 면만 비추어 준다. 이는 오늘날의 최고 권력자나 최고 재산가 혹은 수많은 고위직자를 선조로 둔 100년 후의 자손들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신문을 보면 ‘당신 할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인물이더라.’ 혹은 ‘오만과 위선에 가득찬 이러이러한 정치인이더라’라고 한다면, 설혹 대통령을 할아버지로 둔 자손일지라도 그 옛날 어느 왕의 후예들처럼 얼굴이 뜨거워지고 고개를 바로 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존경도 없고 명예도 없다. 비록 치욕은 아니라 해도 자랑할 조상은 못 된다. 당시의 그 아들은 금수저를 물려받았다 해도 3대를 내려가지 못해 그 수저는 부끄러운 유물로 바뀐다. 그에 비하면 권력도 없고 재산도 없지만 널리널리 존경을 받고 깊이 감동을 준 인물들, 그 인물들이 쌓았다 물려준 ‘위신’이야말로 두고두고 후손들이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산림이 그러하다. 오직 벼슬하기 위해 공부하고 벼슬만이 최고의 길로 생각하던 그 시대, 어떻게 산림에 최고의 위신,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을까. 더구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갖기 위해 최고의 학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던 당시 권력층의 압력과 유혹 그리고 위협을 과감히 뿌리치고 어떻게 학문에 그 산림들은 독존(獨存)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정치권을 쉼 없이 기웃거리는 대학의 교수들을 보면, 그런 선조에 대해 갖는 자부심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긍지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것만큼 또한 누구에게나 모범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서나 존경과 찬사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후손에게 위신보다 더 큰 유산이 있을 수 있을까. 권력과 재산처럼 남과 다투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희소가치, 오직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만 달려 있는 최고의 유산,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자손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연세대 명예교수
  • [서울광장] 루스벨트, 그도 포퓰리스트였다/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루스벨트, 그도 포퓰리스트였다/오일만 논설위원

    미국민들이 존경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그도 한때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의 신봉자로 공격받은 적이 있다. 대공황 와중인 1932년 재선에 도전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의 선거전에서다. 후버는 루스벨트가 내건 뉴딜 정책을 국가의 장래보다 민심을 선동하는 인기 정책으로 몰아쳤다. 자유방임경제 정책이 판치는 시대에 정부 개입과 자본 규제는 그 자체가 혁명적 사고였다. 사회안전망을 통한 복지 확대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정책이었다.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이 그를 사회주의·공산주의자, 심지어 빨갱이로 매도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1929년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 1932년 대선 당시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은 대공황 이전의 56%로 급락하면서 1300만명의 실업자들이 길거리 쏟아져 나왔다. 실업률은 25%에 달했고 미국 전체가 공포에 떨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승승장구하던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당시 미국은 탐욕스런 자본이 활개치면서 극도의 빈부 격차에 시달렸다. 빵과 일자리를 달라며 아우성치는 실업자들에게 후버 대통령은 자본주의 체제의 우수성을 자랑하며 경제 회복을 자신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치달았다. 루스벨트는 포퓰리스트로 공격을 받으면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나의 정치철학”이라고 일갈하고 타협하지 않았다. 미국민 역시 그 유명한 노변담화 등을 통해 직접 국민들에게 다가서는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미국 역사상 전무한 4선 대통령으로서 위기에 처한 미국을 살린 동시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정치적 토양이 됐다. 미국의 보수 세력들이 뉴딜 정책을 인기 영합 전략으로 공격한 것처럼 포퓰리즘 프레임은 기득권 세력이 즐겨 쓰는 정치 수법이다. 대중과 엘리트, 다수와 소수의 대결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방패막이인 셈이다. 권위 있는 웹스터사전도 포퓰리즘을 ‘민중의 필요나 소망을 대변하는 정치 사상이나 활동’으로 정의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파에 상관없이 일반 대중을 대변하려는 정치 소통인 것이다. 포퓰리즘의 비극으로 통용되는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파탄 낸 것은 퍼주기식 소득 보전 정책이나 복지 확대가 아니다. 3000명이 넘는 반대파를 살해한 군부 쿠데타 세력과 이에 기생한 엘리트 집단의 부정부패와 천문학적인 국부 유출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우리도 포퓰리즘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경제민주화라는 화두 속에서 기본소득 도입이나 군 복무 단축 등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는 분명 정치적 야망에서 비롯된 인기 영합 정책도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본질을 외면하고 현상을 왜곡해 포퓰리즘이란 정치적 주홍글씨로 낙인찍는 수법은 참으로 비겁한 행위다. 어설픈 서민 행보로 서민을 위한 지도자인 양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기 영합 전략이다. 뉴딜 정책이 포퓰리즘의 대명사에서 미국을 구해낸 구세주가 된 것은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직후 대량 실업의 두려움 때문에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정책으로 노동당이 승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당시 보수당은 노동당의 정책을 국가 재정을 거덜내는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했지만 이후 70여년간 영국과 유럽의 복지체제 근간을 이뤘다. 국민들이 시대마다 절실하게 열망하는 것,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이 도도한 흐름을 간파하고 인도하는 것이 제대로 된 리더십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우리 역시 소수 강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의미에서 70년 적폐와 불공정, 불평등을 청산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가치를 살리자는 열망은 거대한 시대정신을 이뤘다.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 뿌리내린 부패한 권력 고리를 끊어 내고 공정한 경제 정의를 세우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훌륭한 국가가 우연한 행운의 산물은 아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권리이자 의무인 정치 참여를 통해 잘못된 국가의 길을 바로잡아야 한다. 부당한 권력을 단죄한 우리 국민들이 이번 대선에서 시대정신을 구현할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트럼프 反소수자 정책 땐 美개신교도 거리 나설 것”

    “트럼프 反소수자 정책 땐 美개신교도 거리 나설 것”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려는 빈곤계층과 여성, 소수자, 이민자 홀대 정책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것들입니다. 기독교 차원에서 볼 때도 아주 심각합니다.” 오는 4월 ‘미국 교회 로비 주간’에 앞서 방한한 제임스 윙클러(59) 미국 그리스도교협의회(NCCUSA) 회장 겸 총무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 미국 교회, 특히 일치와 협력을 중시하는 개신교계에서 트럼프 정부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많다”며 분리 위주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막고 소통과 화합을 이루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NCCUSA는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에큐메니클 조직체. 38개 교단과 10만개 이상의 지역교회가 가입해 있으며 신자 수도 3000만명에 달한다. 윙클러 회장은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많은 이들이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저소득층 의료 혜택을 골자로 하는 ‘오바마 케어’의 폐기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지원 축소나 철폐 방지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촛불 평화시위를 놓고도 한마디를 보탰다. 이제 미국을 포함해 세계인들이 한국의 평화시위를 배울 때라는 윙클러 회장은 “일단 트럼프의 가슴과 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그러나 지금처럼 파괴적 정책을 계속한다면 미국 개신교회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3년 전 회장에 취임한 윙클러는 “그동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이란, 쿠바 문제에 비해 비교적 소홀히 취급돼 왔던 한반도 평화 문제 해결에 적극 관심을 갖고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방한 목적도 미국 교회 로비 주간 중 정부 고위 관리와 만나 한반도 평화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측과 북핵과 관련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미국의 선제공격에 관해 협의하기 위한 것이다. 윙클러 회장은 내년 초 남북한을 동시 방문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글·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살육·유린·고갈’ 등 선동적 단어… “분열만 조장”

    ‘살육·유린·고갈’ 등 선동적 단어… “분열만 조장”

    美사회 ‘암울한 도살장’으로 표현 “국가주의 원칙 날것 그대로 선언” WP “정치 캠페인 하듯” 평가절하 ‘살육(carnage)과 유린(ravage), 고갈(depletio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일(현지시간) 취임연설은 이 같은 어둡고 선동적 문구로 가득했다. 지난 18개월간 벌어졌던 미 대선 경선과 본선에서 자신의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층 등을 타깃으로 쏟아냈던 자극적 단어들이 16분 연설 내내 이어졌다. 미국의 미래 비전과 국정 과제를 제시해야 할 자리에서, 미국민의 분열만 다시 조장했다는 미 언론 등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기득권층만 이득을 챙기고 있고 사회가 만연하는 범죄와 만성적 가난, 부서진 학교, 빼앗긴 부, 묘비처럼 흩어진 녹슨 공장들로 가득하다”며 “미국의 ‘살육’은 당장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국 사회를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도살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어 워싱턴 엘리트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야 ‘살육의 시대’가 끝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나운 국가주의적 선언”이라며 “어두운 취임연설에서 트럼프는 오직 자신을 지지한 미국민에게만 충성서약을 함으로써 가장 추한 선거가 남긴 후유증과 분열을 치유하는 대신 계속 정치 캠페인을 하듯 국정을 운영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수십년간 우리는 미국의 산업을 희생해 외국의 산업을 배부르게 했고, 외국 군대에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우리 군대는 ‘고갈’됐다”고 했다. 우파 선동가로 연설문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고문역은 “트럼프 대통령은 포퓰리스트적이고 일종의 국가주의적 운동의 기본 원칙을 날것 그대로 선언한 것”이라며 “앤드루 잭슨 대통령 이래 이런 연설은 없었다. 매우 깊고 깊은 애국주의의 뿌리가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여성의 적은 여성’ 성형으로 예뻐진 친구 폭행

    ‘여성의 적은 여성’ 성형으로 예뻐진 친구 폭행

    여성의 적은 정말 여성일까요? 20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15일 중국 항저우에 사는 젊은 여성 티엔(Tian)이 성형수술로 예뻐진 얼굴 탓에 절친인 친구 후(Hu)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약 6만 위안(한화 약 1천29만 원)의 거액을 들여 얼굴 성형수술을 한 티엔. 수술로 얻은 하얀 피부, 큰 눈, 높은 코로 ‘미인’으로 재탄생 한 그녀를 폭행한 사람은 5년 동안 한집에서 동거한 절친 후였다. 예뻐진 티엔을 후가 질투한 것이다. 성형 이후 티엔의 외모를 부러워하던 후가 싸움을 걸어온 날은 지난 15일 밤. 후의 폭행으로 시작된 싸움은 3차례나 계속됐고 티엔의 얼굴은 피범벅이 됐다. 얼굴 부위를 집중적으로 폭행당한 티엔은 절강TV와의 인터뷰에서 친구 후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그녀는 올드하고 못생겼다”며 “그녀는 ‘너는 성형수술을 한 번 더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의도적으로 내 얼굴을 손상시켰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후도 “그녀 또한 나를 폭행했다. 얼굴과 목, 가슴에 여러 상처를 입었다”며 “나도 얼굴 성형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싸움으로 난) 흉터를 고쳐야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싸움은 티엔이 나의 가난한 재정적 상황을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후는 티엔의 얼굴을 고의적으로 손상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편 항저우 경찰 측은 티엔과 후 싸움에 대해 조사 중에 있다. 사진= Zhajiang Television Station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입에 풀칠’도 힘든 삶은 왜 안 바뀔까

    ‘입에 풀칠’도 힘든 삶은 왜 안 바뀔까

    ‘빈곤층은 무절제·무계획’ 편견 맞서 가난이 가난을 부르는 현실 항변가난한 자의 잘못된 결정 이유 조명도 핸드 투 마우스/린다 티라도 지음/김민수 옮김/클/256쪽/1만 3000원 옛말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머리가 나쁘거나 혹은 의지가 약해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가난은 머릿속에서부터 작동되는 강력한 편견을 동원한다. 빈곤층은 부주의하고 비도덕적이며,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것으로 여겨지고 남의 소유물에 손댈 잠재적 용의자로 종종 취급된다. 이 책의 저자 린다 티라도는 그런 편견에 맞서 ‘가난이 가난하게 만드는’ 현실을 솔직하게 풀어 나간다. 두 딸을 양육하면서, 두세 개의 파트타임을 뛰고 담배로 스트레스를 달래며 종일 일하고도 가난한 미국 저임금 노동자가 저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입에 풀칠하기’ 정도인 ‘핸드 투 마우스’(Hand to Mouth)라는 책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가난한 저자의 고군분투기이자 “이미 가난하기에, 가난하지 않을 일이 절대 없을 것임이 확실한” 사람들을 위한 변론문이다. 패스트푸드 종업원과 바텐더 등 임시직으로 입에 풀칠이나 하던 저자가 책까지 내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2013년 10월 한 인터넷 포럼 게시판에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파괴적 행동을 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이를 본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을 가난한 자신이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왜 나는 끔찍한 결정을 내리는가, 또는 ‘빈곤’에 관한 생각’이라는 장문의 답글을 올렸다. 사람들이 글을 공유해 퍼날랐고, 그녀는 일주일 새 2만여개의 메일을 받았다. 허핑턴포스트, 포브스 등 언론사도 글을 게재하면서 600만명 넘게 읽었다. 그녀에게는 어떤 학자도, 언론인도 설명하지 못했던 가난의 실체를 알렸다는 찬사와 ‘모든 게 가난 탓이냐’는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그녀의 삶은 고달프고 취약하다. 집에서 한 시간을 운전해 가는 파트타임 두 개를 끝내면 집에서 두 딸을 돌본다. 밤에도 온라인 교육을 수강하느라 평균 수면은 3시간에 불과하다. 그녀의 계획적인 삶은 파트타임 교대 시간이 엇나가거나 자동차가 견인되는 것과 같은 작은 불운 하나에도 뒤틀린다. 소망했던 안정적이고 괜찮은 일자리는 그녀를 거부했다. 여러 차레 로펌 비서직을 지원했지만 ‘로펌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번번이 탈락했다. 그녀는 좋은 일자리를 가질 만큼 예쁘지 않았고, 연줄도 없다. 싸게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2달러짜리 열두 개 묶음의 냉동 부리토로 끼니를 때우는 그녀와 같은 가난뱅이를 고용할 이유는 없다. 현실은 그녀에게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은 두세 가지의 일만 허용한다. 그러고도 최저임금 소득을 겨우 웃도는 연 소득 2만 달러의 벽을 넘지 못한다. 미국 인구의 3분의1이 이 수준으로 산다. 그녀는 지출을 줄이느라 치과 치료 등 병원 진료를 포기하거나 미룬다. 하지만 오늘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웬디스 햄버거와 피로와 긴장을 해소해 주는 흡연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폭발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안전 장치’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저축을 하거나 계획적으로 돈을 쓰지 못한다는 편견에 대해 저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기도 한 저자는 현재 작가 겸 저널리스트로 살고 있다. 저자는 “빈곤은 장기적인 일을 계획할 수 없게 하며,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며 “냉혹한 빈곤은 뇌의 장기적 사고 기능을 중단시킨다”고 말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잘못된 결정을 하는지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공예 장인 모십니다” 노인이 행복한 용산

    “공예 장인 모십니다” 노인이 행복한 용산

    ‘노인 10명 중 6명 이상이 가난하다’는 통계는 더이상 낯설지 않다.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 뒤 마땅한 벌이가 없어 생계를 걱정하는 노인이 많다. 서울 용산구가 노인들이 경험과 재능을 살려 다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색 일자리 사업을 벌인다. 구는 65세 이상 서울시민 중 전통 공예품을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을 상시 모집한다고 19일 밝혔다. 모집 분야는 ▲죽공예(연·부채 등) ▲금속공예(은장도 등) ▲도자공예 ▲목공예(하회탈·소목 등) ▲짚풀공예(짚신) 등이다. 채용된 노인들은 오는 11월 한남동에 들어설 ‘전통공예문화체험관’(조감도·지하3층, 지상4층)의 작업공간에서 공예품을 만들고 현장에서 내·외국인 관광객에게 판매할 예정이다. 전통공예문화체험관은 한남동에서 대형 빵집인 ‘패션파이브’ 매장을 운영 중인 파리크라상이 건축비 51억원을 모두 부담해 민관 협력으로 지으며 공방 형태의 작업장과 상설전시관, 공예품 판매장 등이 들어선다. 대신 파리크라상 측이 지하 주차장을 무료로 사용한다. 구는 체험관이 문 열면 이태원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예품 제작 참여를 원하면 구청 일자리경제과 또는 동 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팩스(02-2199-5590)·이메일(jwa77@yongsan.go.kr)로 신청하면 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연간 1000만명이 찾는 관광지로서 용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노인 복지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이재용 영장 기각] “유전무죄 결정” vs “특검 짜깁기 수사 결과”

    [이재용 영장 기각] “유전무죄 결정” vs “특검 짜깁기 수사 결과”

    재계 “큰 고비 넘겼다”…수사 방향에 촉각 법원이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 가운데 정·재계와 시민단체 등의 반응이 크게 엇갈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법원의 결정을 크게 반겼다. 경총은 이날 “이 부회장에 대한 불구속 결정은 법원이 사실관계를 신중히 살펴 법리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해석한다”며 “삼성그룹과 관련해 제기된 많은 의혹과 오해가 앞으로 사법 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해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요 대기업들도 공식 언급은 삼가면서도 “큰 고비는 넘겼다”며 다소간 안도하는 가운데 향후 특검의 수사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향후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도주 우려,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으로 영장을 기각한 점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바람직한 처사”라며 “불구속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수사 협조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반응은 갈렸다. 촛불집회를 주도해 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은 성명서를 내고 “사법부가 그간 돈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 관대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지탄을 많이 받아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며 “범죄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 사안까지 기각했다는 점에서 사법부는 전 국민의 원성을 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정유라에 대한 불법 지원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기각 결정이 됐다”며 “기각 결정은 유전무죄의 계기가 된다. 법원이 현명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회원들은 “조의연 판사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했다”고 이 부회장 영장 기각을 크게 반겼다.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이사장도 “특검의 ‘짜깁기 수사’에 대해 법원이 공정하게 판결해 나온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둘로 갈렸다. 자영업자 김모(59)씨는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국가 경제를 고려한다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잘된 일”이라며 “무조건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것은 개인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이모(31)씨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삼성가에 대해 삼대에 걸쳐 국가 기관이 특별히 봐 준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i.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화기애애한 이명박-반기문, 무슨 얘기 했나 보니

    화기애애한 이명박-반기문, 무슨 얘기 했나 보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가 30분간 면담했다. 두 사람 사이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며 정치권의 이목이 쏠렸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4시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이 전 대통령 사무실을 찾았다. 반 전 총장이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안내를 받으며 사무실로 들어서자 이 전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려 반 전 총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이후 면담은 약 30분간 비공개로 진행됐다. 면담에서 이 전 대통령은 반 전 총장에게 “지난 10년간 세계평화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오셨다”며 “그 경험을 살려서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달라”고 덕담을 건넸다고 김 전 수석이 면담 직후 기자들에게 전했다. 반 전 총장은 “이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녹색성장 정책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해오신 점을 잘 알고 있다.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김 전 수석은 “녹색성장에 대해서는 반 전 총장이 중요한 국가적·세계적 어젠다인 만큼 그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 전 대통령은 반 전 총장의 주요 업적 중 하나인 기후변화협약에 대해 “196개 당사국의 합의를 이끌어 타결한 것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라 치켜세웠고 반 전 총장은 “이 대통령의 자서전 영문판과 중문판이 나온다 들었다. 잘 되길 바란다”고 덕담으로 화답했다고 반 총장 측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양측은 “두 사람 사이에 정치적 얘기가 없었다”며 선을 그었지만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특히 반 전 총장이 면담 후 이 전 대통령의 사무실을 나올 때는 이 전 대통령이 반 전 총장과 악수를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반 전 총장의 팔을 다독이며 “화이팅”을 외쳤다. 반 전 총장은 이에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레바논의 기이한 거리, ‘시리아 스트리트’ 웹사이트 오픈

    레바논의 기이한 거리, ‘시리아 스트리트’ 웹사이트 오픈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최근 레바논 트리폴리에 위치한 시리아 스트리트(Syria Street)의 특수한 분쟁 상황과 이 거리의 양쪽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해 화제가 되고 있다.(사이트 URL: http://syriastreet.com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로 제공) 시리아 스트리트는 그 명칭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달리 시리아가 아닌 레바논 제2의 도시인 트리폴리에 있는 거리로 시리아 정부를 지지하는 동네 자발 모센(Jabal Mohsen)과 반대하는 동네 바브 알 타바네(Bab al-Tabbaneh)가 서로 마주보며 대립하고 있다. 언제부터 시리아 스트리트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약 8년 전부터 종교 분파 및 정치적 견해 차이 등으로 인해 무장 단체, 범죄 조직 등을 포함한 여러 단체들 간의 충돌이 산발적으로 일어났고, 이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더욱 악화되어 왔다. ICRC는 시리아 스트리트처럼 오랜 기간 동안 산발적으로 분쟁이 발생하는 지역의 사람들도 여느 대규모 분쟁과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시리아 스트리트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GIF(움직이는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를 함께 이용해 몰입도를 높이고 인터랙티브한 면을 강조해 사이트를 제작했다. 시리아 스트리트 웹사이트의 감독을 맡은 브랜든 타우직(Brandon Tauszik)은GIF를 이용한 인터랙티브 예술로 정평 나 있는 예술가 겸 영화 제작자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ICRC 레바논 대표단 직원들과 함께 일주일간 시리아 스트리트에 머물며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ICRC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시리아 스트리트를 포함한 무수한 도시 분쟁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지만 그 피해는 대규모 분쟁 못지않게 잔혹하고 분열적이며 지역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ICRC는 폭력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시리아 스트리트 주민들을 돕기 위해 2014년도부터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해오고 있다. 한편 ICRC는 1863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국제 인도주의 기구로, 80여 개국에서 분쟁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동안 인도주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총 4회 수상한 비영리 단체다. 사진= ICRC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이호준의 시간여행] 굴뚝이 상징하던 것들

    [이호준의 시간여행] 굴뚝이 상징하던 것들

    할머니는 땅거미가 마당을 서성거릴 무렵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땟거리가 떨어져 빈속에 물을 채우고 잠들어야 하는 날에도 건너뛰는 법이 없었다. 가마솥의 물이 와글거리며 끓어오를 때까지, 땔감을 밀어 넣고는 했다. 그 순간, 당신의 표정은 황산벌로 떠나는 계백마냥 무겁고 경건했다. 겨울에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온기가 필요 없는 계절에도 불을 지피는 건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남의 산에서 ‘도둑나무’를 해 와야 하는 어린 손자에게는 속 터지는 일이었다. 왜 불을 때느냐고 물으면 “허리가 아파서”라거나 “방이 눅눅해서”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는 했지만, 둘러대는 말이라는 것 정도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아프다고 함부로 눕는 법이 없는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불을 지피는 걸로 그날의 ‘의식’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바깥마당 감나무 아래 서서 굴뚝마다 연기가 오르는 양짓말, 아니 그보다 먼 볏고개에 시선을 얹는 게 부엌에서 나온 할머니가 하는 일이었다. 작은 몸피가 어둠 속으로 조금씩 녹아들어가 어둠과 하나가 될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그 ‘이상행동’을 이해하게 된 건 세월이 한참 지난 뒤였다. 당신은 소년 적에 집을 떠난 아들, 즉 내 삼촌을 기다린 것이었다. 객지를 떠돌던 아들이 지친 몸으로 돌아와 고갯마루에 섰을 때, 자기 집 굴뚝에서 연기라도 나야 한 달음에 달려올 거라 믿었던 것이다. 봉화를 올리듯, 아들을 부르기 위해 굴뚝에 연기를 피워 올렸던 것이다. 민초들에게 굴뚝은 연기를 배출하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내 할머니가 ‘봉화’로 삼았던 것처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들판에서 놀던 아이들은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굴뚝의 연기는 ‘그리움’이라는 화인(火印)으로 찍히기 마련이었다. 굴뚝의 기억은 아이들이 자라 객지로 나간 뒤에도 고향을 상징하는 깃발로 가슴마다 펄럭거렸다.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어귀에 섰을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이면 느닷없이 안도감에 휩싸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아궁이에 묻어 두고 떠난 감자 익는 냄새라도 맡은 듯, 괜히 목이 메고 눈물마저 찔끔거렸던 것이다. 굴뚝에는 가난한 민초들의 삶이 투영되기도 했다. ‘굴뚝 보고 절한다’는 말은 빚에 쪼들려 야반도주하는 사람이 이웃에게 인사할 수 없어서 굴뚝을 보고 절을 한 뒤 떠난다는 데서 나왔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그 집의 상황을 판단하기도 했다. 연기가 난다는 것은 그 집이 끼니를 해결했다는 뜻이었다.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난장이와 대비되는 거대한 굴뚝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벽돌공장 굴뚝에 올라가 고단했던 삶을 마감함으로써 굴뚝으로 상징되는 산업화시대의 비극을 보여 준다. 시간은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서 굴뚝을 지워 버리기 시작했다. 난방과 취사 연료가 바뀌면서 굴뚝에서 오르던 연기도 사라졌다. 설이 가까워져 오면서 기억 저편에 물러서 있던 ‘할머니의 굴뚝’이 생각난다. 객지를 떠돌다가 돌아와 고갯마루에 선 아들은 이제 무엇으로 어머니의 기다림을 확인할까? 굴뚝도 연기도 없는 고향 집을 바라보다 쓸쓸히 발길을 돌리지는 않을까.
  • [新전원일기] “농촌 마을 주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 그 자체로 의미 있죠”

    [新전원일기] “농촌 마을 주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 그 자체로 의미 있죠”

    그녀는 제주 한림(翰林)에 산다. 그녀가 사는 집 마당엔 동백나무와 블루베리나무가 있다. 주먹만 한 열매를 단 하귤나무는 뒤란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마루에 앉아 동백꽃과 담장 너머 마을을 한참 쳐다봤다. 육지에서 보지 못한 홑겹의 동백꽃이 바람에 흔들렸다. 공항에서 한림으로 올 때 갤 듯한 날씨는 어느새 흐릿해졌고 제법 바람도 불고 있었다. 5년 전 이선자(37)·윤민상(38) 부부는 이 집에 정착했다. 그녀는 충북 오창과학도시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계획도시답게 오창은 잘 정리되어 있었고 호수가 있는 공원도 있었다. 녹지도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인공적인 그 공간이 그녀에겐 답답했다.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하는 전세살이도 힘들었다. 그녀는 자연과 더 가깝게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꼭 농부가 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귀농학교에 다니면서, 생명평화결사 운동을 하면서 농촌에서 사는 것이 꼭 농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 농촌 마을의 구성원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고, 생활 방식을 바꾼다면 적게 벌어도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하지만 제주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연고도 없고, 큰 자본도 없는 그녀에게 제주는 그저 낯선 땅에 불과했다. 돈벌이는 날품팔이일 뿐이었다.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태풍으로 양철지붕 반쪽이 날아갔다. 어마어마한 제주의 바람을 실감했다. 집안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지네도 낯설고 무서웠다. 기름값이 아까워 세 식구는 방 하나에서 먹고 놀고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에게 힘들었던 것은 육아였다. 제주로 들어올 때엔 세 식구였지만 이듬해 쌍둥이가 태어났다. 세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바다 저편 섬에 와 있었던 것이다. ●첫해에 흙살림 회원에게서 귤밭 500평 임대 받아 그러던 중 흙살림 제주도지부 회원에게서 500평 규모의 귤밭을 임대받았다. 또 그 집에서 농업 인턴을 하면서 고정 수입도 생겼다. 그 후 그녀는 금악리 마을문고에서 저녁에 문고지기 아르바이트도 하고, 비상근직이지만 ‘제주 식생활 교육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도 일했다. 남편도 마을 정미소로, 콩나물 공장으로 일을 나갔다. 생활비도 벌어야 했지만 육아 시간도 확보해야 했다. 밤 시간과 새벽 시간을 나눠 가며 부부는 일과 육아에 매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농사는 점점 자리가 잡혀 갔다. 첫해에 500평이던 귤밭은 지난해 6500평으로 늘었다. 그사이 남편 윤씨가 후계농업인 교육을 받고 일부 자금을 융자받아 1000평 규모의 밭도 장만했다. 그녀가 엄마로부터 백과사전 한 질을 선물받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지구와 우주’를 읽던 밤 광활한 우주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때 시작된 우주와 별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천문 동아리 활동도 하고, 천체에 관한 책도 읽으며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키웠다. 그러다 서울대 농대에 들어가 생물학이나 유전학을 배우면서 미시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신비에 매료됐다. 대학 3학년, 농대 불교동아리 친구들과 인도로 성지순례 배낭 여행을 갔다. 여행 도중 친구가 발을 다쳐서 일주일 정도 한 마을의 스리랑카 절에 머물게 되었다. ‘불가촉천민’(인도의 최하층 신분)들이 사는 아주 가난한 마을이었다. 때아닌 혹한으로 마을에서는 매일 노인과 아이들이 몇 명씩 얼어 죽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당장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부질없어 보였다.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런 삶은 어리석고, 한 생명으로써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 속에서 농사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스물세 살, 불교귀농학교 다니면서 본격 준비 스물세 살, 인드라망 불교귀농학교에 다니면서 본격적인 귀농을 준비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귀농이 어려웠는데 그때 ‘한살림’과 ‘흙살림’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부터 3일은 학교에 다니고 3일은 청주 흙살림으로 출근했다. 흙살림에서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과 친환경 농업 교육, 친환경 농자재 영업관리 등의 일을 했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 일을 하면서 비무장지대(DMZ) 안의 벼농가들로부터 제주도 귤농장까지 전국의 농가들을 돌아다녔다. 현장을 둘러보고 농민들을 인터뷰하고 영농일지와 생산 계획서들을 검토하면서 농대 4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농업 지식을 쌓았다. 출산과 육아로 그만두기까지 5년 동안 흙살림에서의 경험은 농사를 시작한 제주 살이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녀가 흑보리밭 구경을 제안했다. 밭은 겨울 억새가 둘러싸인 언덕에 있었다. 검은 화산회토 사이로 초록빛 보리싹이 올라와 있었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실같이 가느다란 싹이었다. 흑보리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손 덜 가며 직거래 가능한 작물로 흑보리 골라” “농사와 육아를 같이 하다 보니 이래저래 손이 덜 가면서 직거래를 통해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작물로 4년 전에 고른 것이 흑보리예요. 일반 보리보다 수확이 좀 적긴 하지만 맛이 좋아서 먹어 본 사람들은 거의 매년 재구매를 하거든요.” 2000평이라는 흑보리밭을 보면서 그 크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아파트 평수에만 익숙해 밭이나 논의 크기를 말하면 상상하기 어려웠다. 억새가 시작되는 밭의 끝지점을 보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잇는다. “농사라는 게 아주 창의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 보고 성공시킬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은 주변의 농사를 따라 배우는 거지요. 제주에서도 우리 동네는 양채류와 보리, 콩 농사가 많아요. 반대편 구좌 쪽은 당근과 무를 주로 심고, 대정은 감자와 마늘. 이런 식으로 농사가 나뉘어요. 제주라고 해도 토질이나 기후조건이 서로 많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 많이 하는 농사를 기준으로 생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주변에서는 맥주보리를 많이 심어요. 그런데 맥주보리는 수매값이 너무 싸서 트랙터, 씨, 비료, 수확 비용 이런 거를 따지고 나면 몇 만평 하지 않는 이상 거의 남는 게 없어요. 조금이라도 소득을 높이기 위해 흑보리를 선택하게 된 거죠. 콩이나 보리 농사는 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으니까 크게 부담이 없어요. 대신 큰 돈도 못 벌지요.” 감귤농장은 지난해 6500평으로 늘었지만 수확량은 2015년 4000평 때보다도 줄었다. 택배로 보낸 게 1600박스다. 지난해 10월 태풍에 떨어진 것도 많고, 노린재의 피해도 큰 탓이다. 겨우내 귤을 먹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 천혜향이나 한라봉 같은 다른 품종 귤들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시설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그녀에겐 아직 그럴 여력이 없다. 또 귤시장 자체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국제 무역 체제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것 같아 섣부르게 투자하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단순 가공·추가 비용 안 드는 귤칩도 택해” ‘요보록소보록’ 상표로 올해 새롭게 시작한 것이 귤칩이다. 귤칩은 품위를 맞추지 못한 귤을 가공해서 만든다. 귤잼, 귤주스, 귤정과도 시도해 봤지만 가공 과정이 복잡하고 병이나 설탕, 포장재 등 추가 비용이 들어서 포기했다. 귤칩은 단순 가공이면서 추가 비용도 들지 않고 직거래하기도 좋다. 8000평 규모의 농사와 흑보리, 콩농사, 귤칩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다른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집은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공동체 형태를 띠고 있다. 일당도 계산하고, 소득도 나눈다. 연매출은 4000만~5000만원에 불과하다. 아직 농사만으로 두 집이 먹고살 만큼 수익이 충분하지 않아서 품을 팔러 가야 한다. 그러나 농사를 매개로 한 공동체적 삶을 실험해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귤 수입이 많으면 요보록소보록 농장 이름으로 목돈을 넣어 놓고 모든 영농자금 지출도 일원화하고 각자 기본소득 형태로 급여를 가져가는 실험을 해 보려고 한다. 이번 겨울엔 귤 판매 수익이 생각보다 적어 일단 그 실험은 어렵게 됐다. 기본소득은 귀농귀촌 적응을 위해서도, 농촌에서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제주 생활이 안정되기까지 고정 수입을 가질 수 있었던 농업 인턴제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그녀로서는 그런 신념이 더 확고해졌다. 네다섯 명이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이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로 좋은 모양이다. “그게 품앗이든 두레 형태든 함께 해 볼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좀 더 큰 규모의 농사도 가능하고, 일도 더 재밌게 할 수 있어요. 혼자 땡볕에서 풀 깎고 약 치는 것과 두어 명이 같이 일하는 것은 효율 측면에서 달라요. 심적으로 의지되는 부분도 크고. 그런 면에서 서로 마음에 담아 두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많이 얘기하고 어떤 일이든 구체적으로 정해 놓으려고 해요. 일을 할 때 그 친구들의 상황과 마음을 배려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어서 좋아요. 그럼으로써 함께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어릴 적 그녀가 되고 싶었던 몇몇 직업에는 분명 농부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농부가 됐다. 대학 동기 중 농사짓는 사람은 그녀뿐이라고 한다. 친구들이 ‘행복해 보인다, 멋있다’고 말해 주면 우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게도 된다. 다른 직업을 택할 걸 그랬나, 수백 번 생각해 봤다.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아직은 잘 가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농부는 사람보다 자연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농부가 좋은 것은 비록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어디 구속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얽매임도 없고, 무엇보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거죠.” 한림, 그녀의 집 마당엔 아직도 동백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그 동백 꽃잎을 닮았다. 자신의 신념을 좇아 한 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깔이다. 순수하고 단단한 시간이 묻어 있다. 홑겹이지만 선명하고 붉다. ■글쓴이 소설가 강진 2007년 ‘현대문학’을 통해 단편소설 ‘건조주의보’로 등단. 소설집 ‘너는, 나의 꽃’, ‘피크’(공저), ‘캣캣캣’(공저) 등.
  • 개그맨 박수홍, 반전 · 꽃길 · 결혼

    개그맨 박수홍, 반전 · 꽃길 · 결혼

    클럽·탈색… 반듯한 이미지 벗고 매력 대방출밀려드는 섭외에 행복… 어머니 덕에 더 인기 아직 자유 원해… 운명의 짝 만나면 언제든 콜 “제가 나이도 많고 인기도 없어서 마지막 패를 까는 느낌으로 클럽 출입기를 보여 드렸는데 그게 터질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누구나 인생의 파도가 있는데 제게는 지금이 좋은 일이 밀려드는 때인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연예인다운 과로는 해본 적이 없거든요. 너무 행복하죠. 다 어머니 덕인 것 같아요.”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개그맨 박수홍(47). 반짝 그칠 것 같았던 그의 인기는 새해에도 굳건하다. 10년 만에 지상파 MC로 복귀한 것을 비롯해 한때 총 9개까지 진행 프로그램이 늘어났고 신규 프로의 출연 제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두세 시간밖에 잠을 못 잤다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가 인기를 얻게 된 건 ‘개그계의 신사’로 불릴 만큼 반듯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불혹이 넘는 나이에 클럽을 출입하고 머리를 탈색하는 등 반전 매력을 보여 주면서부터다. 그의 어머니 지인숙 여사가 아들의 일탈을 보면서 연신 내뱉는 “쟤가 왜 그럴까앙”이란 말은 어느덧 유행어가 됐다. “원래 저희 어머니가 부끄러움도 많고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신데 지금 보니 방송이 아주 적성에 딱 맞으신 것 같아요. 제가 십수년을 해도 안 되던 유행어를 여럿 만드셨으니까요. 첫 녹화 날 어머니가 긴장해서 멘트를 몇 번씩 NG를 내시는 바람에 손을 꼭 잡아 드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식당에서 어머니를 알아보고 밥을 그냥 주시는 분도 있고 목욕탕에서도 어머니를 안아 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으시대요. 그동안 자식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오신 게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뻐요.” 처음 아들의 일탈을 마주한 어머니의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냐, 반항하는 거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아들은 “어머니가 사실적인 얘기도 재미있게 잘하고 애교도 많으신데,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는 면이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면서 웃었다.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콘테스트 동상을 받으며 데뷔한 그는 공개 코미디 ‘유머 1번지’, ‘한바탕 웃음으로’, ‘코미디 전망대’ 등에 출연했지만 주로 반듯한 교양 MC로 활동했다. “개그맨이 되고 나서도 스물아홉 살까지 온 가족이 단칸방에서 모여 살았고, 27년 동안 일주일 이상 놀아본 적이 없어요. 비정규직이라서 방송 출연이 끊어지는 것이 걱정도 됐고 빚을 갚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절벽 위에 서서 일하는 심정으로 살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노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고 배부른 행동 같았죠. 그러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회의가 들었고 클럽에도 가고 음악 페스티벌에도 가면서 새로운 놀이문화를 접하고 또 다른 제 모습을 보게 된 거죠.” 이제 형은 매니저로, 동생은 어엿한 방송 작가로 자리를 잡은 만큼 희생이라는 굴레를 벗고 자신의 행복을 고민하게 됐다는 박수홍. 하지만 치솟는 인기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클럽에 가도 예전처럼 편하게 즐길 수 없고 인터넷에서 악플을 볼 때면 마음이 괴롭다. 특히 최근 MBC 라디오(95.9㎒) ‘최유라, 박수홍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하차한 배경을 둘러싸고 TV 출연이나 돈 때문에 그만뒀다는, 사실과는 다른 오해가 불거져 힘든 시간을 겪기도 했다. “인기가 없을 때는 저를 무시하는 사람이 보였는데, 잘되니까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하지만 제 주변을 더 잘 챙기는 계기로 삼아야죠. 저희 어머니의 철학이 ‘후회하고 살지 마라’, ‘세상엔 공짜가 없다’예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스스로 더 행복해지려구요.” 그에게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결혼’이다. 김국진, 김용만 등 선배 개그맨들이 일하는 사람과는 사적인 관계를 맺지 말라고 한 충고를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그는 그간 단 한번의 스캔들도 없었다. 웨딩업체를 운영하다 지난해 사업을 접었다는 그는 “사랑이 결혼이 아닌 전쟁으로 가는 경우를 종종 봤다”면서 “배려심이 많고 함께 있으면 편하고 착한 여성이 이상형이지만 자유롭게 살다가 운명적인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취미든 인간관계든 풍요롭게 하고 싶다는 그의 요즘 화두는 자유다. “다트 게임 기계를 사고 어디로 여행을 갈지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지금이 좋아요. 내 삶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전자음악(EDM) ‘쏘리 맘’ 앨범도 내고 싶고, 연기도 해 보고 싶고, 오디션 프로그램 MC도 해 보고 싶구요. 인기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한 경험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국립발레단, 웅장한 스케일에 창조적 시도 눈길…유니버설발레단, 모던·드라마 발레 등 선택폭 확대

    국립발레단, 웅장한 스케일에 창조적 시도 눈길…유니버설발레단, 모던·드라마 발레 등 선택폭 확대

    국내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올해 라인업이 모두 공개됐다. 올해도 무용팬들을 설레게 하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두 발레단의 서로 다른 작품의 매력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강수진 단장이 3년간 더 이끌게 된 국립발레단은 장대한 스케일의 드라마 발레, 창조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신작, 대중성 높은 인기작을 두루 선보인다. 세 편의 신작 중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안나 카레니나’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 11월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토대로 안무가 크리스티안 슈푸크가 발레 작품으로 그려냈다. 비극적 운명을 짊어진 주인공의 이야기와 함께 아름답고 슬픈 선율의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감상 포인트다. 5월 무대에 오르는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의 세 번째 안무작 ‘허난설헌-수월경화’도 기대작이다. 조선 중기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시 ‘감우’, ‘몽유광상산’을 소재로 불행하고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고 27세에 세상을 떠난 그녀의 삶을 담았다. 6월 선보이는 ‘발레 갈라’ 레퍼토리 중 ‘트로이 게임’도 초연작이다. 발레를 기본으로 태극권, 합기도, 브라질 전통무술 카포에이라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힘을 과시하며 서로 경쟁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은연중 남성우월주의를 비꼬는 것이 특징이다. 기계 체조를 하는 듯한 고난도의 기교와 기술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그 외에도 발레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스파르타쿠스’ ‘호두까기 인형’이 무대에 오른다. 유니버설발레단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레퍼토리를 클래식·모던·드라마 발레 등으로 다양화해 아직 많은 작품을 접하지 못한 대중들을 위한 선택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올해 주목할 만한 작품은 개막작이자 5년 만에 선보이는 정통 희극발레 ‘돈키호테’다. 스페인의 극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와 루드비히 밍쿠스의 경쾌한 음악이 극의 매력을 더한다. 186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소설과는 달리 가난한 이발사 바질과 매력적인 선술집 딸 키트리의 유쾌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모던 발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디스 이즈 모던’도 6월 제7회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만날 수 있다. 모던 발레의 거장 이어리 킬리언의 ‘프티 모르’ ‘젝스 텐체’, 오하드 나하린의 ‘마이너스7’을 비롯해 독일 출신 신예 안무가 레이몬도 레베크의 신작도 만날 수 있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11월 드라마 발레 ‘오네긴’을 주목할 만하다. 극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발레 버전으로 만든 이 작품은 젊은 귀족 오네긴과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처참히 거절당한 타티아나의 어긋난 사랑을 그린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潘 “설 연휴 이후 입당 가닥 잡힐 것”

    潘 “설 연휴 이후 입당 가닥 잡힐 것”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6일 “종국적으론 어느 쪽이든 정당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경남 거제와 부산을 방문한 뒤 경남 김해로 이동한 반 전 총장은 김해시청 인근의 한 치킨집에서 기자들과 만나 “설 이후에는 정책적인 면에서도 구체적으로 나갈 것이고, 입당의 방향에 대한 가닥도 잡힐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이 멀쩡했으면 들어가서 경쟁도 하고 했을텐데 둘로 쪼개지고 해서…”라고 덧붙였다. 반 전 총장은 또 “정당 없이 홀로 하려니까 힘이 든다”면서 “캠프 사무실 두 곳 모두 사비로 얻었고, 차량·운전기사·비서 지원, 여기저기 오가는 교통비까지 모두 내 돈으로 한다”고 털어 놓았다. 반 전 총장은 헌법 개정에 대해 “대선 전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국민 분열을 막기 위해선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는 “분권형 대통령제도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양원제는 의회가 번번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기 때문에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다. 사회 갈등만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 ‘다수결’이 아닌 합의 정신을 우선시하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반 전 총장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내가 단돈 1원이라도 받았다면 설사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그만두겠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조언 그룹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서 언론중재위에만 제소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에 대해서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지율이 떨어졌다”면서 “국민들이 다 똑같다고 보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기문 턱받이’, 프랑스산 생수 ‘에비앙’ 구입 논란 등 대해선 “오해를 자꾸 받게 되는데 트집잡기 수준 아닌가”라고 속내를 털어 놨다. 그러면서 “귀국했을 때 입이 말라 떨어지지 않아 물을 사러 갔는데,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게 에비앙이었고, 유엔 사무총장 하면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에비앙’을 먹으면 배탈이 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반 전 총장은 3박 4일간의 ‘민심 투어’ 첫 방문지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고향인 부산·경남(PK)을 택했다. 경남 거제는 문 전 대표의 ‘태생적’ 고향, 부산은 그의 ‘정치적’ 고향이다. 대선 출마 시 문 전 대표와 정면 승부를 겨뤄 보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보로 풀이된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부산 유엔 기념공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 전 대표가 대담집을 통해 “마른자리만 딛고 다닌 사람은 국민의 슬픔과 고통이 뭔지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비판한 데 대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땅바닥에 앉아 공부했고, 열심히 노력해 외교관이 됐고 계속 기회가 열렸다”면서 “제가 호강해서 남의 고통을 모른다는 건 너무 일방적인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제가 문 전 대표보다는 더 오래 살았고, 한국의 변혁도 더 많이 겪었다”면서 “제가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많이 해 왔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좀…”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김해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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