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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채꽃 품은 무채색 도시

    유채꽃 품은 무채색 도시

    하노이는 고도다. 베트남의 고대 왕조들과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거쳐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된 하노이의 역사는 곧 베트남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덕에 고풍스러운 건물과 낡은 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보다 정확히는 낡은 건물 주변에 옛 건물들이 묻혀 있는 형국이다. 겉은 무채색이지만 세월과 가난의 때를 벗겨 내면 화려한 속 빛깔을 드러낸다. 그게 하노이다. ‘하노이’는 ‘강 안의 땅’이라는 뜻이다. 홍강(Red River)을 비롯한 크고 작은 강과 지류들이 하노이를 감싸며 흐르고 있다. 하노이를 돌다 보면 탕롱(Thang Long)이란 이름과 곧잘 마주하게 된다. 탕롱은 18세기까지 하노이를 일컫는 명칭이었다. 1010년 리 왕조를 세운 리타이토가 홍강에서 뱃놀이를 즐길 때 금빛의 용이 하늘로 올랐고, 이후 용이 하늘로 오른다는 뜻에서 탕롱(昇龍)이라 이름 짓고 도읍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옛 도시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추억의 환기다. 현지 가이드는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 볼 것을 권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지나는 너른 거리와 발품 팔아 돌아보는 골목은 전혀 다른 서정과 풍경을 담고 있다고 했다.롱비엔 시장으로 먼저 간다. 하노이의 본질적인 풍경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롱비엔 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롱비엔 철교다. 가난과 세월 탓에 붉게 녹슬었지만, 거대한 규모와 우아한 자태만큼은 단연 압권이다. 일부에선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철교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정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1899~1902년 프랑스의 건축가 손에 세워진 만큼 프랑스 식민 시대의 상징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리 길이는 2.3㎞ 정도. 하노이 중심부를 흐르는 홍강 위에 세워져 있다. 애초 자동차도 통행하던 다리였는데 월남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부서져 지금은 기차와 보행자, 오토바이 등만 오간다. 철교 아래는 롱비엔 시장이다. 베트남 최대 과일시장이다. 다른 품목도 팔지만 과일이 가장 많다. 시장은 새벽녘에 문을 연다. 출근 시간쯤이면 벌써 파장 분위기다. 악다구니와 거친 몸짓이 오가는 우리 시장과는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 저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바삐 오간다. 논(베트남 전통 모자)을 쓰고 어깨가 휘어지도록 누이 반 항 롱(물지게 비슷한 들것)을 진 이도 있다. 그 이미지가 더없이 강렬하다.롱비엔 시장에서 도로를 건너면 구시가 초입이다. 도로 위엔 육교가 세워져 있다. 육교 아래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 뒤엉켜 아침을 연다. 육교는 베트남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이른바 꽃자전거가 지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노이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과장 좀 보태 한 집 건너 꽃집이고, 시장에서 좌판을 편 과일장수와 꽃장수 숫자가 같을 정도다. 꽃장수들은 멀리 서호 옆의 꽝안 꽃시장에서 신선한 꽃을 산 뒤 저마다의 공간으로 가져와 판다. 이들이 꽝안시장에서 산 꽃을 자전거 뒤에 매달고 지나는 길목이 바로 이 육교 일대다. 새벽녘 육교에 서 있으면 꽃을 가득 실은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이 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삶의 무게를 싣고 지나는 이들의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강렬하다. 육교 너머는 꾸어오꽌쭈옹이다. 서울의 동대문처럼 하노이에도 성 안과 밖을 가르는 성문이 있다. 우리와 달리 크기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그중 하나가 하노이성 동쪽을 지키던 꾸어오꽌쭈옹이다. 오가는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성문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옛 성문을 지나면 무채색의 비좁고 어두운 길이 이어진다. 낡고 때 묻은 건물들은 음울한 풍경이 담긴 회화를 보는 듯하다. 골목을 나서면 동쑤언 시장이다. 베트남 북부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시장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건어물, 과일 등과 의류 등 온갖 생필품을 판다.동쑤언 시장 옆은 하노이 구시가다. 많은 여행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하노이 구시가는 서울 종로의 육의전처럼 베트남 조정에 바칠 공물을 제작하고 판매하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거리마다 취급하는 품목이 달랐고, 지금도 명칭과 특성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예컨대 항박 거리는 귀금속 상점, 항가이 거리는 비단 가게, 항찌에우는 돗자리 점포가 몰려 있는 식이다. 이런 상가 거리가 36개가 이어져 있다고 해서 ‘36거리’라고도 불린다. 하노이는 호수의 도시로 불린다. 300여개에 이른다는 크고 작은 호수가 밀집돼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건 구시가를 둘러싼 호안끼엠호(還劒湖)다. 이른바 ‘되돌려 준 칼의 호수’라 불리는 곳. 15세기 레 왕조를 세운 레 로이가 호수의 거북에게 받은 검으로 명나라를 물리친 뒤 다시 되돌려 줬다는 전설에서 이 같은 이름을 얻게 됐다. 호수 위쪽에 놓인 붉은색 나무다리를 건너면 응옥썬 사원이 나온다. 베트남의 전쟁 영웅, 학자, 의술의 신 등을 함께 모신 사당이다. 호수 북쪽으로는 수상 인형극장과 구시가지, 박물관, 대성당 등의 주요 명소가, 남쪽으로는 숙소와 음식점,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여행자 거리가 이어진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차량 통행이 금지돼 한결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밤엔 맥주거리를 찾는다. 최근 국내 한 TV에 소개되면서 한국인 방문객이 부쩍 늘고 있다는 곳이다.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구시가 인근에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하노이 외곽의 흥옌을 찾는 것도 좋겠다. 베트남 전통 어구인 대나무 통발로 이름난 도시다. 작은 골목길을 기웃대다 보면 쭈글쭈글한 손길로 통발을 만드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글·사진 하노이·흥옌(베트남)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양 배낭여행자들의 경쟁상대(?)는 동남아 구걸꾼

    서양 배낭여행자들의 경쟁상대(?)는 동남아 구걸꾼

    가난, 질병, 생존. 이는 빈곤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돈을 구걸할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다. 그러나 단순히 여행자금을 마련하려 구걸하는 서양 배낭 여행객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빈민들이 설자리를 잃어간다면 이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11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이런 추세가 동남아시아인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동남아시아 현지인들은 자신에겐 ‘호사’라고 할 수 있는 생활방식을 선택한 관광객들이 여행자금 조달을 위해 정말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구걸하는 여행자들은 공개적으로 해당국의 엄격한 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고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에서는 취업비자를 가진 방문객들에게만 길거리 공연(busking)이 허용됨에도, 여행자들의 공연이 언제 어디서든 버젓이 행해지고 있어서다. 싱가포르 여성 마이사라 아부 사마라는 자신의 트위터에 엽서를 팔고 음악을 연주하며 구걸하는 한 커플의 사진을 ‘backpackers’가 아닌 ‘beg-packers’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그녀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 내 발길을 멈추게 했다”며 “싱가포르에서는 이런 활동들을 다스리는 엄한 규칙이 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은 장식품을 팔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거리에서 행상인이나 거리 연주자들을 보게 된다면 대개 도시 중심가에 있기 마련이다. 여행에 보탬이 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은 우리에게는 정말 이상하게 느껴진다. 거리에서 물건을 팔거나 동정을 구하는 일은 존중받을 수 있는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분노를 표했다. 이는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거나 무언가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사거나 아이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서 또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구걸하는 사람들처럼 정말 궁핍해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언론 매체 더 스타 역시 쿠알라룸프르에서 그림을 판매하는 젊은 남성의 영상을 공개하며 지역주민과 관광객 사이의 ‘불공정성’이 분노를 촉발시켰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여성 루이자는 프랑스 24와의 인터뷰에서 “여행객들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이국적인 장소에서 여행하는 동안에만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점이 아시아에서 벌이는 이런 행동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는지, 똑같은 행위를 왜 자신의 고향에서는 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고 의견을 전했다. 한편 이 같은 추세는 온라인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크라우펀딩이나 자선기부 사이트를 사용해 여행을 위한 기부금을 요청하기도 한다. ‘펀드마이트레블’(fundmytravel)이라는 전용 웹사이트에서는 ‘의미있는 여행 경험’만을 위해 기부를 호소할 수 있다. 최근 한 커플이 인터넷을 통해 ‘아주 별난 모험’, ‘벌레먹기’, ‘절벽 다이빙’, ‘스쿠버와 정글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 여행자금 기부를 호소했는데, 그들은 항공 운임, 숙박, 기타 비용을 합해 총 2850달러(약 326만원)를 요구했고, 이틀만에 20달러(약 2만2000원)를 벌었다. 빈곤국가에서의 인도주의적 활동처럼 가치있는 일에 기부를 호소하는 많은 사이트들이 있는 반면, 그런 자격이 덜한 곳들도 있다. 많은 아시아인들은 이처럼 '값비싼 여행 장비와 카메라, 기타 용품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돈을 구걸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99세 현역’ 최고령 시인 황금찬 별세

    ‘99세 현역’ 최고령 시인 황금찬 별세

    현역 문인 가운데 최고령으로 활동해온 황금찬 시인이 8일 강원도 횡성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9세. 1918년 속초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 다이도학원 유학 이후 강릉농고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1948년 월간 ‘새사람’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51년 강릉에서 ‘청포도’ 동인을 결성했고 1953년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5~1978)의 추천을 받아 ‘문예’로 등단했다. 1965년 ‘현장’을 시작으로 ‘오월나무’(1969), ‘나비와 분수’(1971), ‘오후의 한강’(1973), ‘추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2013) 등 39권의 시집을 펴냈다. 고인은 마흔 번째 시집을 엮어내는 게 소원이라며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했다고 제자와 유족이 전했다. 고인은 향토적 정서나 기독교 사상에 바탕을 둔 서정시부터 현실에 대한 지적 성찰이 담긴 작품까지 8000편이 넘는 시와 수필을 썼다. 특히 가난에 허덕이던 겨레의 슬픔을 형상화한 ‘보릿고개’가 널리 읽혔다. 유족으로 도정·도원·애경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9시 30분이다. 장지는 경기도 안성 초동교회묘지. (02)2258-5940. 연합뉴스
  • [길섶에서] 생명력/오일만 논설위원

    불암산 정상에서 본 소나무가 가끔 떠오른다. 도저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늠름하게 서 있다. 끈질긴 생명력이 주는 경이로운 아름다움 그 자체다.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이어 온 만큼 그 푸름이 값지다. 운이 좋아 양지바른 옥토에서 자란 나무처럼 쭉 뻗지는 못했지만 옹골진 기품이야 어디 비길 데가 있을까. 집안에서 키우는 양란이 최근 새싹을 틔웠다. 지난 가을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자태를 자랑하던 꽃들이 스러지고 덩그러니 줄기만 남아 허망했던 기억이 있다. 겨우내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지내면서 또 다른 생명력을 키웠다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은 인간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온실 속에서 자라 부모 덕에 초년 출세를 했다고 해도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모진 비바람을 헤치면서 단단히 뿌리를 내려가는 그 과정이 삶의 길이 아닌가 한다. 가난하던 과거와 달리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행복지수가 급락 직하하는 요즘 새삼 생명의 의미를 돌아본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장관의 책상] 의리 있는 대한민국/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장관의 책상] 의리 있는 대한민국/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몇 년 전 교육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공동으로 선정한 ‘국가연구개발 반세기의 10대 성과 사례’에서 통일벼 개발이 첫 번째 성과로 발표됐다. 볍씨 종자 개발이 뭐 그리 큰 기술이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통일벼 개발로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후 자동차, 선박, 건설 등 비농업 분야에 투자 지원을 집중시켜 세계 10위의 무역 대국을 만들었다. 세계 190여개 국가 중에서 자국민이 먹는 식량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많은 인구와 좁은 경지 면적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식량 자급을 이룩한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 공자는 정치의 기본을 ‘식량을 풍족히 하는 것’(足食)이라고 했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제일 중요하고 기본적인 임무라는 뜻이다.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는 “굶주림에 허덕일 때 가족, 종교, 예술, 애국심은 단지 그 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로 식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지구상에는 아직도 8억명에 가까운 인구가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50년 세계 인구를 90억명으로 전망하며, 식량생산 규모는 현재보다 60%가 늘어나야 할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 후반 통일벼를 개발해 식량 자급을 달성하는 데에는 농업투자 증대, 기술 개발, 농업인의 피땀 어린 노력이 뒷받침됐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외국의 식량 원조도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부족한 식량을 상당 부문 외국의 원조로 해결했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우리 나름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정부는 최근 ‘식량원조협약’(FAC)에 가입해 해외에 식량을 원조하기로 결정했다. FAC는 미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14개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조약으로 회원국들은 쌀을 포함한 곡물이나 현금, 긴급구호물품 등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국회 비준 동의 등 국내 절차를 즉시 추진하고 FAC 승인과 유엔 사무국 기탁 등을 거칠 계획이다. 한국의 FAC 가입과 식량 지원은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온다. 인도적 목적의 식량 지원은 글로벌 식량 안보에 기여하고 우리나라의 국격 제고에 부응할 것이다. 향후 국제사회의 식량 관련 논의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연간 460억원 규모의 식량 원조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5만t의 국내 쌀이 해외에 지원될 전망이다. FAC 가입을 통해 만성적 공급 과잉을 겪고 있는 국내 쌀 수급 문제가 어느 정도 완화되고, 쌀 가격도 안정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재고 관리 등에 따른 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1960년대 식량을 원조 받던 가난한 대한민국이 이제 원조를 주는 ‘의리 있는 대한민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식량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주는 국가로 지위가 바뀐 세계 최초의 국가다. 이번 FAC 가입을 통해 우리 농업이 ‘세계 속의 한국 농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온몸이 돌처럼 변하는 8세 소년의 기적 회복기

    온몸이 딱딱한 돌처럼 변하는 희귀병을 가진 한 소년이 특별한 치료없이 기적적으로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에 올랐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 등 해외언론은 방글라데시 나온가온구의 한 마을에 사는 메헨디 하산(8)의 기적같은 회복기를 전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인 하산은 안타깝게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심각한 질환을 갖고 있다. 몸이 돌처럼 변하는 심각한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것. 얼굴은 정상처럼 보이지만 비늘 모양의 피부가 전신을 덮은 하산은 작은 마찰에도 고통을 느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하산은 육체적인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까지 감당해야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친구들의 따돌림까지 받아야했기 때문. 엄마 자하나라 베굼은 “하산을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다른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고 돌아왔다"면서 "심지어 교사는 아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음식을 먹거나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안타깝게도 하산은 갓난아기 때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질환을 겪었다. 3.2kg로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12일이 지나서 몸에 작은 발진이 일더니 몇 개월 지나 온몸으로 번진 것이다. 이에 부모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지독한 가난과 무지가 지금까지 발목을 잡아왔다. 하산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은 이같은 사연이 올해 초 언론에 보도되면서다. 이에 각지에서 하산을 도와주겠다는 온정이 이어졌고 다행히 수도에 위치한 다카 대학병원의 진단을 받게 됐다. 정밀 검진을 통해 드러난 하산의 병명은 유전질환인 표피박리 각화과다증(선천성 수포성 비늘모양홍색피부증). 병명은 밝혀냈으나 문제는 쉽지 않은 치료였다. 그러나 얼마 후 기적이 일어났다. 하산의 피부가 빠른 속도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하산이 받은 처방이라고는 비타민과 수분 제공 크림 밖에 없어 주위를 더욱 놀라게 했다. 주치의 라스드 아흐메드 박사는 "4년 정도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할 것"이라면서 "지금까지의 치료 경과도 매우 좋은 편"이라고 밝혔다. 하산의 상태 호전이 누구보다 기쁜 것은 역시 가족이다. 엄마 자하나라 베굼은 "지금까지 아들은 동네 주민과 친구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면서 "이제 친구들과 함께 놀고 학교에도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며 기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기의 사랑’으로도 미화할 수 없는 비극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기의 사랑’으로도 미화할 수 없는 비극

    세월호가 304명의 생명은 바다에 버려두고 험한 몰골로 저 혼자만 돌아왔다. 가슴이 멍하고 짠하다 못해 쓰리다. 이렇게 허망하게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인간의 오만과 방종에 노여워진 신의 경고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신은 이렇게 엄청난 죽음을 허용한단 말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년)나 ‘타이타닉’(1997년)도 이런 질문인 동시에 재해로부터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 또는 교훈의 의미로 제작됐을 터이다.1912년 4월 14일 하느님도 가라앉히지 못할 배라고 불렸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첫 출항에서 빙산을 만나 두 동강이 났다. 배는 승선자 2200여명 중 1500여명을 4000m나 되는 깊고 어두운 대서양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73년이 지난 1985년 바닷속에서 선체가 발견됐고, 이를 계기로 영화화됐다. ‘비극 속에 침몰한 세기의 사랑’을 보태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이 엄청난 재난이 미화될 수는 없다.1908년 미국의 1만 5000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과 노동조합 결성,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일 정도로 열악했던 여성의 지위는 오히려 상류층으로 갈수록 더 남성 중심이었으며 여성은 종속적이었다. 이런 시대에 가부장적 질서에 숨막혀 하는 미국 상류층 로즈(케이트 윈즐릿)는 사교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와 권위적인 귀족 약혼자 칼(빌리 제인)과 함께 미국으로 향하는 타이타닉호 1등실에 타고 있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 부두의 선술집에서 도박으로 3등실 표를 얻은 가난한 화가 지망생 잭(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영화처럼 가까스로 배에 오른다. 우연하게 잭은 바다에 투신하려는 로즈를 구하고 지상의 천국 1등실에 초대를 받는다. 허위와 허영, 허세로 가득한 저녁식사가 역겨웠지만 무사히 넘긴다. 그리고 로즈를 현실 세계인 3등실로 초대해 자유롭고 거칠 것 없는 파티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고,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뱃머리 신으로 그들의 사랑과 운명을 암시한다. 이렇게 여객선이 아니라면 결코 한데 어울릴 수 없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배를 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축소판을 의미한다. 잭과 로즈, 칼은 전혀 만날 일조차 없는 사람들이지만 한배에서 만나 서로의 삶을 엿보게 된다. 잭은 가진 것 없지만 자유분방하다. 로즈는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칼은 물려받은 부와 권세로 세상을 조롱하고 거들먹거리는 재미로 산다. 그는 부자일지언정 교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영화에 등장하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년)은 이런 세상의 다양한 삶과 부류를 보여 주기에 아주 적합한 그림이다. 그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 소위 삐걱거리는 마루 때문에 세탁선이라 불렸던 작업실에서 제작한 이 그림은 5명의 벌거벗은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들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들이 한 화면을 이룬다. 배경을 분할하는 윤곽선이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다. 가운데 두 여인은 구상적이지만 얼굴과 몸은 보는 각도가 다르다. 양쪽의 세 여인은 오른쪽에서 본 모습과 왼쪽에서 본 모습이 섞여 있다. 또 왼쪽 눈은 정면을 보지만 오른쪽 눈은 옆을 쳐다본다. 앉아 있는 여인은 뒷모습이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한다. 이렇게 피카소는 다빈치가 발명해서 미술사를 바꾸어 놓은 원근법과 명암법을 무시하고 한 사람을 정면과 측면, 뒷면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한 그림 속에 그려넣어 마치 펼친그림처럼 조합해서 보여준다. 그의 유명세는 이렇게 한 방향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각각 보고 이를 조합해서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데서 기인한다. 타이타닉에 타고 있는 영화 속 사람들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의 세상을 그려낸다. 당시 부호들은 여행을 다닐 때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가지고 다녔고 자신이 묵는 호텔이나 선실에 소장품을 걸어 장식을 했다고 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부와 예술적 소양을 드러내려는 속물근성 때문이기도 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칼은 “피카소라니, 내 장담하지만 돈 한 푼 안 될 거요”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돈으로 보았다. 로즈의 어머니는 금광을 개발해서 갑작스레 큰돈을 번 몰리에게 ‘뉴 머니’라고 경멸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칼과 어머니의 그런 속성에서 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기시감 때문일까.하지만 이런 칼과는 달리 로즈는 피카소의 ‘볼라르의 초상’을 보며 “꼭 꿈속에 있는 것처럼 진실은 있지만 논리는 없지요”라고 말한다. 이는 현대미술을 보고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세상을 지탱하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은 유지된다. 끝까지 배를 지키는 스미스 선장이나 배를 설계한 토머스 그리고 선원 조지프 G 벨과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던 지휘자 월리스 하틀리,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페기 구겐하임의 아버지 벤저민 등이 그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참사 속에서도 세상의 도리와 원칙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인간에게 명예와 책임 그리고 도리라는 것을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돌아온 세월호가 우리에게 회한과 울분만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적어도 타이타닉에는 있었던 그들이 너무도 적었던 때문이다. 게다가 믿었던 국가가 개개인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믿기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는 피카소의 입체파풍의 그림처럼 우리 사회의 번지르르한 앞면보다 옆면과 뒷면을 우리에게 동시에 보여 주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아직도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처절한 결말은 결코 어떤 사건도 미화할 수 없다. 문득 “무엇을 더 원합니까? 여기까지 올 동안 당신 도움 받은 적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얼마나 더 목숨이 필요합니까? 이제 여기엔 겨우 일곱 명이 남았을 뿐이니, 그렇다면 내 목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저들은 살려주십시오”라던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스콧 목사의 절규가 떠오른다.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진정 차기 대통령감이 아닐까.
  • 운전하다 도로 복판에 차 세우고 아이 낳은 여성

    운전하다 도로 복판에 차 세우고 아이 낳은 여성

    뱃 속의 아이는 누구보다 세상 밖이 궁금했던 것 같다. 예정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운전하던 중인 엄마를 재촉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더썬은 태국의 한 여성이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태국 펫차부리 도로에서 픽업 트럭을 몰고 있던 임산부 핌파프하 쿠드더드(29)는 갑자기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아직 출산 예정일은 멀었지만 곧 아이가 나올 것만 같은 산통이 느껴져 길 한쪽에 차를 댔다. 참기 힘든 아픔에 비명을 질렀고, 이를 들은 행인이 그녀를 도우러 달려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역 '페카셈 재단'(Petchkasem Foundation)에 이 사실을 알렸다. 페카셈 재단은 응급상황시 종종 응급차를 대신하는 조직체로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 중 몸이 좋지 않은 환자나 사고가 발생할 때 출동한다. 재단 의료진들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출산을 도왔고, 엄마와 아이는 안전하게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핌파프하는 “주치의와의 진료가 잡혀 있어 차를 몰고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배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차를 세운 순간 내가 임신 중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사하게도 재단 의료팀 덕분에 차 안에서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었다”며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현지 언론은 미신을 믿는 지역 주민들이 핌파프하의 성공적인 출산을 행운의 징조로 여겨 서둘러 복권을 구매했고, 복권 번호로 그녀의 트럭 번호판 숫자를 이용했다고 전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洪 “내가 대통령되는 게 박근혜가 사는 길”

    洪 “내가 대통령되는 게 박근혜가 사는 길”

    “박정희는 5000년 가난 해소한 분… TK 위축되지 말고 다시 일어서자… 나와 싸워 패가망신한 사람 많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5월 9일 홍준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 민심을 자극했다.홍 후보는 4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선대위 발대식 겸 필승대회’에 참석해 박 전 대통령의 파면 뒤 구속과 관련, “왜 위축되어 있느냐. 대한민국을 세우고 산업화를 이뤘고 이만큼 살게 한 주축 세력이 TK가 아니냐”라며 “이제는 위축되지 말고 다시 가슴에 불을 질러 일어서자”고 역설했다. 그는 “정상적인 정치를 했다면 홍준표에게 기회가 안 왔다”면서 “이렇게 좌파 강성 시대가 되고 운동장이 기울어지고 우리 한국당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홍준표가 나서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야당과의 경쟁에 대해서는 “홍준표가 정치판의 최고의 싸움꾼”이라면서 “홍준표와 싸워서 패가망신한 사람이 그렇게 많다”며 자신의 ‘파이터’ 이미지를 부각했다. 이에 TK의 당원들은 홍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며 지지를 표시했다. 이날 행사에 친박 핵심으로 꼽히는 최경환 의원과 조원진 의원 등이 홍 후보를 돕기 위해 참석했다. 최 의원은 행사 전 기자들과 만나 “보수적자 후보인 홍 후보의 당선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왔다”고 말했다. 역시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윤상현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홍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사이의 ‘보수 적통’ 설전을 거론하면서 “여론조사 추이나 당세를 놓고 보더라도 홍 후보가 보수 적통 후보임은 누가 봐도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홍 후보는 경북 구미시 소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5000년 가난을 해소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치투쟁에서 졌다”며 “참 마음이 아프다”고 옹호했다. 홍 후보는 지난달 18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대구 서문시장을 또다시 방문, 일부 시장 상인들로부터 ‘꼭 대통령이 돼라’, ‘인물이 좋다’는 덕담을 받았고 이에 “고맙다”고 화답했다. 대구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87세 승객 화장실 막은 승무원, 할머니는 결국…

    87세 승객 화장실 막은 승무원, 할머니는 결국…

    80대 여성이 비행기를 탔다가 기내 좌석에 앉은 채 소변을 보는 당혹스러운 실수를 저질렀다. 승무원이 그녀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끝까지 막아섰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국적이 밝혀지지 않은 87세 여성 코사릭 차무지안은 지난해 12월 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는 영국항공(British Airways)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이 여성은 승무원에게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으나 당시 승무원은 “비행기가 곧 이륙할 예정이니 자리에 앉아 있어 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비행기 이륙이 90분 가량 지연되면서 시작됐다. 이 여성은 승무원에게 여러 차례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승무원은 안전상의 이유를 들며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결국 이 여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행기 좌석에 앉은 채 소변을 봤고, 13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 내내 옷을 갈아입거나 시트도 갈지 못한 채 축축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수치심이 든 87세 여성은 비행시간 내내 눈물을 쏟아야만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차무치안의 딸은 영국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노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처사였다. 매우 화가난다”면서 “어머니는 13시간 동안 옷이 젖은 상태로 앉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항공사는 보상금이라며 40파운드(약 5만 5000원)를 건넸다”고 분노했다. 이어 “어머니는 요실금과 같은 건강상의 문제가 전혀 없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항공사 측은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도 “안전과 보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네티즌 사이에서는 여전히 승무원의 태도를 비난하는 의견과, 안전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거친 그녀, 매력 돋네

    거친 그녀, 매력 돋네

    안방극장에 걸크러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눈물을 참으며 왕자를 기다리던 신데렐라형 여주인공은 옛말. 최근 드라마 여주인공들은 사회 부조리를 바로잡고 정의의 사도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성 영웅’의 등장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멜로기 쏙 뺀 장르물이 대부분으로 직업군도 형사, 검사 등 다양하다.①‘귓속말’ 이보영 액션연기 눈길 걸크러시 여주인공 열풍을 주도하는 이는 SBS 월화 드라마 ‘귓속말’의 이보영이다. 전직 강력계 형사 신영주로 출연 중인 이보영은 첫 회부터 악당을 제압하는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주로 선 굵은 남성 드라마를 썼던 박경수 작가의 작품인 만큼 여주인공 캐릭터도 상당히 거칠다. 영주는 신념을 저버린 판사 이동준(이상윤)에게 동침 영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고 그의 비서로 등장해 그를 조종한다. 앞으로 영주는 적이었던 이동준과 손잡고 아버지의 복수는 물론 법을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법비’들을 응징하는 등 거대한 악에 맞서 법조계 비리를 파헤친다. 이보영은 제작발표회에서 “온몸이 멍투성이긴 하지만 조금 더 멋있게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 액션 연기에 욕심을 과하게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②김정은, 추격 스릴러 ‘듀얼’ 복귀 데뷔 이후 로맨틱 코미디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김정은도 결혼 후 컴백작으로 장르물을 선택했다. 김정은은 ‘터널’ 후속으로 오는 6월 방송될 예정인 OCN 드라마 ‘듀얼’로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추격 스릴러물인 ‘듀얼’은 선악으로 나뉜 두 명의 복제인간과 딸을 납치당한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김정은이 맡은 최조혜는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차기 부장검사 자리를 노리는 등 성공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다. 최조혜는 어린 시절 함께 나고 자란 형사 장득천(정재영)과 복제인간의 관계에 의문을 품고 진실을 파헤친다. 김정은은 “긴장감 넘치는 추격 스릴러 장르 가운데서도 사람과 사랑에 대한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어서 기대감이 크다”고 복귀 소감을 밝혔다.③‘파수꾼’ 이시영 전직 강력계형사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배우 이시영도 다음달 방송 예정인 MBC 새 월화 드라마 ‘파수꾼’(가제)에서 걸크러시 여주인공으로 나온다. 그가 맡은 조수지는 사격선수 출신의 전직 강력계 형사다. 시놉시스에 ‘나쁜 놈들에겐 저승사자요, 위험에 처한 이들에겐 수호천사인 액션 히로인’이라고 나와 있을 정도로 강한 캐릭터다. 딸을 지키기 위해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고 경찰이 됐지만 인질을 구하는 동안 딸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숨졌다. 조수지는 딸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거대한 권력을 배경으로 법망을 피해 가는 범인을 스스로 처단하는 ‘파수꾼’이라는 조직에 합류한다.④‘도봉순’ 박보영 범인과 한판승부 장르물은 아니지만 인기 드라마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여주인공 도봉순(박보영)은 귀여운 외모 뒤에 모계로부터 물려받은 괴력을 소유한 인물이다. 도봉순은 기존의 남녀 공식을 뒤집어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들을 보호하고 위기를 헤쳐 나간다. 동네 불량배나 비행 청소년을 혼내는 것은 물론 안민혁(박형식)을 노리는 백탁파 조직원을 제압하는가 하면 도봉동을 위협하고 있는 연쇄 납치 사건의 범인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 강한 걸크러시 여주인공을 앞세운 드라마가 뜨는 것은 남성 배우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계와 달리 여배우들의 운신의 폭이 넓기 때문.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시영의 소속사인 화이브라더스 관계자는 “걸크러시 드라마의 경우 여주인공이 원톱이거나 비중이 높은 경우가 많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면서 “여배우들도 예쁘게 나오기보다 자신의 연기 폭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인권변호사에서 ‘적폐청산 선봉’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인권변호사에서 ‘적폐청산 선봉’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문재인 후보가 3일 확정됐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대선 재수생’이다. 이날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문 후보는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서 분열과 갈등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선언한다”며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정의와 불의, 상식과 몰상식, 공정과 불공정, 미래개혁세력과 과거 적폐세력에 대한 선택이다. 적폐연대의 정권연장을 막고 위대한 국민의 나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인권변호사의 길, 정치 신인에서 ‘적폐청산 선봉’을 자임하는 현재까지 문 후보의 여정을 되짚어 봤다. ◆ 어머니 연탄배달 돕던 소년, ‘반유신’ 운동권으로 문 후보는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도 흥남이 고향이었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함정에 몸을 실으며 남한으로 정착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가난은 여전했다. 문 후보는 모친의 연탄 배달일을 돕다 리어카 채로 길가에 처박힌 일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공부만 했다. 명문 경남중·고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부유한 친구들을 보며 세상의 불공평을 느꼈다고 한다. 고3때는 술을 마시고 담배도 배웠다. 이름 탓에 ‘문제아’ 별명이 붙여졌다. 재수로 입학한 경희대 법대 시절에는 ‘반유신’ 운동권이었다. 1975년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의 사형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를 이끌다 구속됐고, 결국 학교에서 제적됐다. 석방과 동시에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 생활을 했다. 상병 때는 북한이 일으킨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대응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회한으로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다시 구속됐다. 그는 유치장 속에서 2차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다. ◆ 시위 전력으로 판사 지망 ‘좌절’…노무현과 운명적 만남 사시 합격으로 ‘평탄한 길’로 들어섰다. 7년 연애 끝에 부인 김정숙씨와도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고 조영래 변호사·박원순 서울시장·박시환 대법관·송두환 헌법재판관·고승덕 변호사 등 걸출한 동기들이 즐비한 가운데 차석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문 후보는 판사를 지망했다. 그러나 시위전력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는 대형로펌 스카우트를 거절하고 부산행을 택했다. 이는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 됐다. 의기투합한 노 전 대통령과 문 후보 두 사람에게 각종 인권·시국·노동 사건이 몰렸다. 문 후보는 ‘대한민국이 묻는다’ 저서를 통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간 이유는 변호사가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시 노 전 대통령이 상임집행위원장을 문 후보가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하며 정치권에 들어섰다. 반면 문 후보는 노동문제 변호사 길을 이어갔다. 2002년 대선 경선에서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 참여정부 ‘왕수석’…노 전 대통령 곁 지킨 ‘친노적자’로 문 후보는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이빨을 10개나 뽑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그러나 총선에 출마하라는 당의 요구를 거절하며 불편함이 커진 탓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1년도 못하고 물러났다. 문 후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향했던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노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들었다. 중도 귀국한 그는 변호인단을 꾸렸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던 문 후보는 이후 민정수석으로 옮겼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김해 봉하마을로 가면서 문재인도 인근 양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가끔 들르자고 했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문 후보는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적극 방어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고,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했다. ◆ ‘정치신인’ 대선후보에서 ‘적폐청산 기수’로 재도전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2009년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보선과 이듬해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현실정치와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정치참여 압박은 거셌다. 결국 문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 속에서 야권대통합 과정에 뛰어들었다.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된 뒤 대선후보로 나섰다. 안철수 후보와의 우여곡절 끝 단일화로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인고와 침잠의 세월을 보내던 그는 2014년 12월 당 대표에 출마했다. 당 대표가 되면서 쇄신을 거듭했지만 친문(친문재인) 프레임에 갇혔고, 이듬해 안 후보가 탈당하는 분당 사태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영입하며 지난해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문 후보를 향한 ‘패권주의’ 공세는 계속됐다. 작년 하반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문 후보가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바람을 타고 있다. 경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라이벌이던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보듬으며 그들로 향한 지지율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김종인 전 대표 등 문 전 대표와 한 때 당을 같이 했던 정치인들이 모두 등을 돌린 만큼 포용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반(反)문재인을 기저로 한 정치권의 연대 움직임도 돌파해야 한다. 반년 가까이 이어온 ‘대세론’을 문 후보가 대선 끝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이주의 문화 레시피]

    전시 ●리장뽈·이종희 조각전 두 작가는 각각 ‘파라다이스’와 ‘유토피아’라는 비슷한 주제로 자신들이 지향하는 낙원을 표현한 작업을 선보인다.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리장뽈은 부조 형식의 ‘플래닛’(작품) 등 신작을, 자본주의의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해 온 이종희는 그 연장선에서 제작한 조각작품을 선보인다. 16일까지. 서촌 팔레드서울. (02)730-7707. ●‘내가 사는 피부’전 인간의 실존과 은폐된 진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피부를 매개로 보여 준다. 노상균, 김일용, 한효석, 강우영, 조혜진, 김준, 오를랑, 김성수, 장숙, 김윤경, 정지필, 이원석, 배찬효 등 출품. 30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02)425-1077.대중음악 ●프렐류드 콘서트 유쾌하고 편안한 사운드로 재즈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프렐류드는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를 전공한 고희안(피아노), 최진배(베이스) 등을 주축으로 결성되어 2005년 데뷔했다. 지금까지 7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한국 재즈의 도약을 알리는 전주곡(프렐류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7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옥인동 서촌공간 서로. 3만 5000원. (02)730-2502. ●울림 콘서트 BTN불교라디오 ‘울림’의 개국 2주년 기념 공연. 힐링 멘토로 통하는 혜민 스님이 진행한다. 관록의 록 밴드 부활, 맨발의 디바 이은미, 감성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1960년대 콘셉트의 3인조 걸그룹 바버렛츠가 듣는 이에게 힘이 되어 주는 음악을 연주한다. 8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5만 5000~7만 7000원. (02)3270-3464연극·뮤지컬 ●연극 ‘목란언니’ 평양 예술학교에서 아코디언을 전공한 조목란이 뜻하지 않은 사고에 휘말려 한국에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분단된 남북처럼 갈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탈북 여성 조목란의 시각으로 담아 낸다.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 3만원. (02)708-5001. ●뮤지컬 ‘머더 포 투’ 당대 최고의 범죄 추리 소설가가 자신의 80번째 생일 파티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을 잡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경찰 ‘마커스’를 비롯해 다수의 용의자를 두 배우가 연기하는 코미디 뮤지컬이다. 5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3만~5만원. 1588-5212.클래식·무용 ●김재영&손열음 듀오 콘서트 2014년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자인 노부스콰르텟의 리더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한 무대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3번)을 연주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동창으로, 오랜 음악적 동반자인 클래식 스타들이 들려 주는 하모니가 기대된다. 8일 오후 5시, 경기 성남 티엘아이아트센터. 5만원. (031)779-1500.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 1869년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로 러시아에서 초연된 이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돈키호테’와 시종 ‘산초 판사’의 무용담이 중심인 소설 원작과 달리 가난하지만 재치 있는 이발사 ‘바질’과 매력 넘치는 ‘키트리’의 유쾌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5~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만~10만원. 1544-1555.
  • [월드피플+] 백혈병 아들 위해 곰 복장으로 구걸한 아빠 감동

    백혈병 아들을 살리기 위해 곰 분장을 하고 길거리에서 ‘포옹 인사’를 하는 아빠의 사연이 중국사회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7일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의 한 광장에 곰 분장을 한 남성이 등장했다. ‘포옹 한 번에 10위안(1600원)’이라고 쓰인 팻말이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세 살 아들을 살리기 위한 아빠 펑카이(冯凯, 25)의 모습이다. 아들은 지난 2015년 12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전동차 수리로 생계를 유지해 오던 펑카이에게 아들의 치료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집안 식구들은 가난한 살림에 치료는 무리라며 병원 치료를 포기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입원 치료를 받게 했다. 지난 2년간 아들은 화학치료, 골수이식 등의 치료를 받았고, 치료비는 37만 위안을 넘어섰다. 그는 빚더미에 앉았고, 더는 손 벌릴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 1000위안이 넘는 비용 청구서는 나날이 쌓여갔다. 다행히 아들은 병원 치료로 8.4kg에 불과했던 몸무게가 12kg으로 늘었고,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지난 27일부터 길거리에서 곰 옷을 입고 나섰다.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것 같아 겸연쩍긴 했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걸인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두꺼운 곰 복장을 하고 서면 온몸이 땀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행인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3일간 겨우 7번의 포옹으로 100위안(1만6000원)을 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안타까운 소식이 29일 인터넷 매체 이투(乙图)에 소개되면서 놀라운 반전이 이루어졌다. 관련 기사는 하루 만에 100만 뷰를 훌쩍 넘었고,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루 사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진 모금액은 18만 위안(2900만원)이 넘었다. 그는 수많은 네티즌의 격려에 “아내와 아들 모두 힘을 내겠다”며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많은 사람의 온정이 희망의 빛 줄기가 되어 주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인류 구한 집요한 영웅들 ‘미생물 사냥꾼’

    인류 구한 집요한 영웅들 ‘미생물 사냥꾼’

    미생물 사냥꾼/폴 드 크루이프 지음/이미리나 옮김/반니/472쪽/2만원‘마법의 탄알’ 백신이 없었다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인간이 백신을 맞게 된 건 불과 300여년 전이다. 동물과 인간을 전염병의 굴레에서 구원한 이들은 미생물이라는 미지의 신세계를 탐험했던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균 연구로 전염병 굴레 벗긴 13명 다뤄 손수 현미경을 만들어 처음 미생물을 목도한 안톤 반 레벤후크부터 자연발생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 라자로 스팔란치니, 탄저병·결핵·콜레라를 일으키는 원인균을 캐낸 로베르트 코흐, 탄저병과 닭 콜레라·공수병의 전염을 막는 백신을 만들어내 의사들의 오랜 싸움을 백지로 만들어 버린 파스퇴르, 실험을 위해 기니피그 수천 마리를 대량 학살한 에밀 루, 에밀 베링까지…. 초기 미생물학자 13명의 집요하고 지독한 실험정신을 흥미진진하게 엮은 영웅담이자 미생물과학 발전의 연대기가 책으로 펴나왔다. 1926년 출간돼 전 세계 18개국 언어로 번역된 대중 과학도서의 스테디셀러 ‘미생물 사냥꾼’이다. ‘수많은 사이언스 키즈를 길러낸 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지 않은 것은 독자들이 이들의 실험실에 직접 들어가 현미경을 넘겨다보듯 생생하게 미생물과학사 절정의 순간들을 포착한 저자의 익살스럽고 열정적인 입담 때문이다. 미생물 사냥꾼들의 성취와 실패를 조명하며 과학과 과학자의 역할과 이상을 짚어내는 통찰도 의미 있지만 더욱 솔깃한 건 ‘뒷담화’다. 추앙받는 인물들의 추례한 면모도 발가벗기며 날카롭게 평가를 내리는 대목들은 소설을 읽는 듯 생동감 넘친다.●‘오만한 흥행사’ 파스퇴르·‘숭배 거부’ 코흐 대조 특히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와 독일의 시골 의사 로베르트 코흐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파스퇴르가 ‘현대의 기적을 행한 사람’으로 군중들에게 떠받들여진 대표적인 순간은 1881년 5월 31일 탄저균 백신 공개 실험으로 기록된다. 당시 파스퇴르는 이틀 뒤인 6월 2일 백신을 맞아 면역이 생긴 스물네 마리의 양들이 백신을 맞지 않아 탄저병에 집어삼켜진 다른 양들의 주검 사이를 뛰노는 불멸의 드라마를 지휘했다. 세계인들은 파스퇴르가 ‘인간이 진 모든 고통을 벗겨줄 메시아’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열정적인 만큼 그는 실수도 연발했다. 닭 콜레라 백신이 모든 종류의 질병을 막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일지 모른다고 자신의 은사인 뒤마 교수에게 편지를 썼던 것. 뒤마 교수는 이 편지를 과학협회 소식지에 발표하기까지 한다. 이는 파스퇴르의 업적에 ‘슬픈 기념비’로 남았지만 그는 자신의 오류를 철회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로 적도 많이 만들었다. 그의 모든 저술과 연설에는 ‘나는 이걸 찾아낼 정도로 똑똑한데 너희들은 이걸 믿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냐’는 말이 행간에 심겨져 있었다고. 이런 파스퇴르를 가리켜 저자는 ‘위대한 흥행사였고 가끔 작은 속임수를 쓸 때도 있었지만 엉터리 사기꾼은 아니었다’고 평한다. 반면 가난한 시골 의사로 진료 시간에 겨우 짬을 내어 실험을 하던 코흐는 파스퇴르와 정반대의 성격으로 인류를 구제한 인물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아내에게 스물여덟 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현미경이었다. 그 현미경에서 발견한 막대균이 탄저병의 원인임을 알아챈 그는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첫 연구자다. 이는 파스퇴르보다 먼저 세운 공이기도 했다. 철저함과 완벽주의로 무장한 코흐는 인간과 동물을 죽이는 탄저병과 콜레라, 결핵의 원인 미생물을 밝혀내 세상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파스퇴르와 달리 자신이 자연에 대항해 싸우는 짜릿한 전투의 지휘관이란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해 놓고서도 “내가 발견한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숭배자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연구에 골몰했다. 이런 그에 대해 저자는 ‘아직까지도 우리는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더 많은 실험실과 미생물 사냥꾼과 더 대우를 잘 받는 연구자들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발전을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로베르트 코흐와 같은 놀라운 연구자 몇 명을 더 우리에게 보내 주셔야 한다’고 일갈한다. ●순수하고 남모를 열정, 회의론 대신 낙관 선사 성격과 가치관은 천차만별이지만 미생물 사냥꾼들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모습은 특정 분야와 상관없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희망의 찬가’를 선사한다. 1892년 일흔 살 생일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메달을 받으며 한 파스퇴르의 연설은 이를 압축한다. “아무 쓸모도 없는 회의론에 빠져서 여러분 자신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전 인류에게 닥친 슬픔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낙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먼저 여러분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배움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여러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류의 발전과 복지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면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될 때까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성역 없는 수사로 ‘모래시계 검사’ 별칭…보궐선거로 재기 성공한 ‘정치 승부사’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인생은 ‘마이 웨이’ 그 자체다. 정의롭지 않은 일에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골 검사’였고, 정치적 코너에 몰릴 때마다 오뚝이처럼 기사회생한 ‘정치 승부사’였다. 그 고집 센 ‘검사의 전설’이 마침내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 자리에 올랐다. 홍 후보는 지독한 가난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합천에서 초등학교, 대구에서 중·고교를 다녔다. 고려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로 진학했으나 사법시험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자 군에 입대했다. 전북 부안에서 14개월간 단기 병사로 복무한 뒤 일병으로 전역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홍 후보는 사법연수원을 거쳐 1984년 청주지검 검사시보로 부임했다. 홍 후보는 청주지법 판사였던 한국당 이주영 의원의 권고로 ‘홍판표’라는 이름을 ‘홍준표’로 개명했다. 홍 후보는 검사 부임 초기 연 200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수완을 보였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외조카를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는 등 굵직굵직한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3년에는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6공화국’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의원 등 권력의 실세들을 여럿 구속기소했다. 아울러 검찰과 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에게까지 칼날을 들이대는 등 성역 없는 수사로 유명세를 탔다. 이어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 등장하는 ‘강우석 검사’의 모델로 알려지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도 생겼다. 홍 후보는 1995년 10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서울 송파갑에서 출마해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서울 동대문을에서 3선을 더했다. 그가 늘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 경선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패했다. 2007년 7월 전당대회에선 안상수 창원시장에게 석패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4위에 머물렀다. 홍 후보는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대표에 모두 올랐다. 그러나 2011년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사태로 지도부가 붕괴되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도 낙선했다. 그러나 홍 후보는 2012년 대선과 함께 치러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경남지사 취임 후 진주의료원 폐업을 추진하고, 전교조와 대립각을 세우는 등 노조 세력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이어 국고의 무분별한 지출을 막겠다며 무상급식 사업 지원을 중단해 경남도 교육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홍 후보는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 이름이 적혀 1억원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모래시계 검사→4선 의원→도지사→우파 스트롱맨

    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모래시계 검사→4선 의원→도지사→우파 스트롱맨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모래시계 검사에서 우파의 스트롱맨을 추구하게 됐다. 한국당은 31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1차 전당대회를 열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대선후보로 홍 지사를 선출했다. 전당대회에서 홍 지사는 책임당원 현장투표(50%)와 일반국민 여론조사(50%)에서 1위에 올랐다. 홍 후보는 책임당원 투표에서 61.9%, 국민 여론조사에서 46.7%를 각각 얻어 합계 54.2%의 과반 득표를 얻으면서 김진태 의원(19.3%), 이인제 전 최고위원(14.9%), 김관용 경상북도지사(11.8%) 등 경쟁자를 따돌렸다. 원내교섭단체 가운데 대선 후보를 확정한 것은 지난 28일 유승민 후보를 선출한 바른정당에 이어 한국당이 두 번째다. 홍 후보는 어린시절 가난과 싸웠다. 홍 후보는 부친은 학교에 다니지 않은 무학(無學), 모친은 글자도 모르는 문맹(文盲)이었다고 말했다. 7살 때 가세가 기울자 홍 후보 가족은 고향인 경남 창녕을 떠나 대구로 이사했다. 손수레에 세간을 싣고 이틀 동안 걸었다. 월세가 싼 곳으로 옮겨 다니느라 초등학생 때 5차례 전학했다. 도시락을 싸지 못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랜 때가 많았다. 장마에 낙동강이 범람, 강 옆에 일구던 땅콩밭과 집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고리 사채로 머리채가 잡혀 끌려다니던 어머니”를 봤다고 기억하는 장소는 지난 18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대구 서문시장이다. 직물공장에 취직한 작은누나의 월세방에 얹혀 지낸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밤 10시 전 무조건 소등하라는 집주인의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공부했다. 그는 의사가 되려 했지만, 돈이 덜 드는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합격했다. 부친이 누명을 쓴 사건을 목격하고 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빚을 내 마련한 등록금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홍 후보는 전북 부안에서 방위 복무를 마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울산 조선소 바닷가에서 일당 800원을 받고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부친이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하고 암으로 별세한 뒤였다. 검사가 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사건을 1993년 서울중앙지검에서 맡았다. 슬롯머신 사건이다. 당시 ‘6공화국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의원을 비롯해 고검장 등 검찰 간부들과 경찰청장, 병무청장까지 줄줄이 구속됐다. 조직폭력배도 등장한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로 제작됐다. 드라마 속 강우석 검사의 모델이 바로 홍 후보였다. 검찰 조직이 뿌리째 흔들렸다. 조직의 ‘이단아’ 취급을 받던 그는 버티지 못하고 사직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홍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연락을 받았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 ‘개혁공천’ 사례로 초선 의원이 됐다. 그는 “광주지검 강력부 때 잡아넣었던 깡패들이 출소해서 검사 그만둔 나와 가족을 슬렁슬렁 겁주더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 보호를 위해 정치판에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홍 후보는 제18대 총선까지 서울에서 내리 4차례 당선됐다.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는 계파가 없었다. 스스로 “친이(친이명박)도 친박(친박근혜)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계파 정치를 혐오한 측면도 있었지만, 계파에서도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계파가 없으니 혼자였고, 정치적 입지가 튼튼하지 못했다. ‘디도스 사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론에 휩싸여 5개월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몫이 됐다. 2009년 펴낸 자서전 제목은 ‘변방’이다. 늘 ‘변방의 검사’였고, ‘변방의 정치인’이었다는 의미다. 길들이기 쉬운 성격이 아닌 탓이다. 그러다 보니 견제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때만 해도 “홍준표는 끝났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였다. 그는 “검사 시절 남을 처벌하며 저지른 업보”라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지난달 2심에서 무죄로 반전됐다. 법률심인 3심에서 무죄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작다. 자신의 무죄 판결과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시기적으로 공교롭게 일치한다고 홍 후보는 여긴다. 홍 후보에 붙는 수식어는 ‘막말’이다. 실제로 그의 표현은 거침없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말을 많이 한다. 거친 말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한 최근 사례를 비롯해 예전에도 “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고 하거나 야당 도의원을 ‘쓰레기’로 비유해 구설에 휘말렸다. 자신은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막말보다 그를 어렵게 만들 요인은 이번 대선의 구도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은 시기다. 자신은 성완종 리스트의 위기를 벗어났지만, 후보로 나선 당은 대선 참패의 위기에 놓여 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주자들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자신에게도 가장 힘든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좌우의 대결 구도로 보면서 ‘우파 스트롱맨’을 자처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국정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얼마나 ‘강력한 동남풍’이 불어줄지 주목된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하야와 망명, 피살과 자살, 비리와 구속…역대 대통령 ‘마지막’ 모습은

    하야와 망명, 피살과 자살, 비리와 구속…역대 대통령 ‘마지막’ 모습은

    청와대를 향한 ‘장미대선’이 한창인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구속됐다. 이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당한 첫 대통령이란 이름에 이어 세 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지난 2013년 2월 박 전 대통령은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며 청와대에 입성했다. 취임사에서 ‘국민’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그는 역설적이게도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사에서 이처럼 ‘끝’이 불명예스러운 전직 대통령은 비단 박 전 대통령만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의 복리를 위해서 내 성심과 능력을 다하겠다”(이승만), “가난을 몰아내고 통일조국을 건설하겠다”(박정희), “구시대의 잔재를 추방하고 참다운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기초작업에 착수하겠다”(전두환), “정직과 진실의 수범을 보이겠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노태우), “정의와 화해로 새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 나가겠다”(김영삼),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김대중),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들자”(노무현),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는 늘 당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취임사에 비해 이들은 대체로 비극적 말로를 맞았다. 초대 대통령으로 정부 수립을 주도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끝은 하야와 망명이었다. 사사오입 개헌과 부정선거 등으로 4·19혁명이 일어나자 1960년 반강제로 하야한 그는 곧바로 미국 망명을 택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도 하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 주도의 5·16 군사 정변이 발생하자 윤 전 대통령은 5월 19일 하야를 선언했다. 군부 요청으로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하기도 했지만, 이로부터 10개월 뒤인 3월 22일 두 번째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1963~1979년까지 18년간 장기집권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부하에게 피살당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서울 종로구 궁정동 만찬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권총으로 사살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대통령직에 오른 최규하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단기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 세력의 반란에 힘을 쓰지 못했던 최 전 대통령은 취임 8개월 만인 1980년 8월 하야했다. 세 번째 하야 대통령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제13대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나란히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16일 거액 수뢰혐의로, 전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3일 12·12군사반란과 비자금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모두 가족 비리에 휘말렸다. 이로 인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됐다. 일가가 거액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5월 10일부터 업무를 시작하게 될 차기 대통령은 이런 불행의 전철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저렇게 뒤끝이 좋지 않은 대통령 자리에 기를 쓰고 갈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백혈병 아들 위해 곰 복장으로 구걸 나선 아빠 감동

    백혈병 아들을 살리기 위해 곰 분장을 하고 길거리에서 ‘포옹 인사’를 하는 아빠의 사연이 중국사회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7일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의 한 광장에 곰 분장을 한 남성이 등장했다. ‘포옹 한 번에 10위안(1600원)’이라고 쓰인 팻말이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세 살 아들을 살리기 위한 아빠 펑카이(冯凯, 25)의 모습이다. 아들은 지난 2015년 12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전동차 수리로 생계를 유지해 오던 펑카이에게 아들의 치료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집안 식구들은 가난한 살림에 치료는 무리라며 병원 치료를 포기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입원 치료를 받게 했다. 지난 2년간 아들은 화학치료, 골수이식 등의 치료를 받았고, 치료비는 37만 위안을 넘어섰다. 그는 빚더미에 앉았고, 더는 손 벌릴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 1000위안이 넘는 비용 청구서는 나날이 쌓여갔다. 다행히 아들은 병원 치료로 8.4kg에 불과했던 몸무게가 12kg으로 늘었고,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지난 27일부터 길거리에서 곰 옷을 입고 나섰다.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것 같아 겸연쩍긴 했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걸인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두꺼운 곰 복장을 하고 서면 온몸이 땀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행인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3일간 겨우 7번의 포옹으로 100위안(1만6000원)을 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안타까운 소식이 29일 인터넷 매체 이투(乙图)에 소개되면서 놀라운 반전이 이루어졌다. 관련 기사는 하루 만에 100만 뷰를 훌쩍 넘었고,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루 사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진 모금액은 18만 위안(2900만원)이 넘었다. 그는 수많은 네티즌의 격려에 “아내와 아들 모두 힘을 내겠다”며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많은 사람의 온정이 희망의 빛 줄기가 되어 주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데스크 시각] 그는 라면을 먹고 싶었다/송한수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그는 라면을 먹고 싶었다/송한수 체육부장

    2001년 10월 언제였던가. 한·일 공동 월드컵을 여덟 달쯤 앞둔 때다. 한강변엔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지구촌 ‘축구 변두리’에 월드컵을 미리 알리는 듯한 바람이었다. 대한민국에게 세계 4강이란 언감생심 꿈조차 버겁기만 한 무렵이다. 글자 그대로 신화였지 않았을까. 축구 국가대표 전용 훈련장이 있는 경기 하남시 미사리가 난데없는 인파로 북적였다. 현재 경기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에 자리잡은 깔끔한 새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가 들어서기 직전이다. 얼떨결에 월드컵 대회를 유치해 모두가 살짝 들떠 있었던 게 틀림없던 시절이었다. 물론 너나 나나 부대끼는 부담을 떠안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라를 걸고 그라운드에서 싸울 대표 선수들이 청백전을 벌였다. 분위기가 뜨거웠다. 모두들 금세 땀에 젖었다. 그러나 구경꾼들에겐 사뭇 달랐다. 어느덧 실바람은 차가워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했다. 여기저기서 몸을 웅크릴 즈음이다. 옆에서 누가 쑥 내뱉었다. “밥 먹고 공만 차는 녀석들이….” “아니, 저것밖에 못하다니 원….” 주인공은 선배 축구인이었다. 열심히 뛰지 않는다는 채찍이었다. 자신들이 겪은 시절에 견줘서다. 그는 이른바 ‘원조 헝그리 세대’였다. 가난을 얼른 벗어나는 게 큰 바람이었다. 운동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들에겐 절실했다. 그만큼 뚜렷한 목표가 필요했다. 돈을 벌자는 게다. ‘집안을 일으키자’는 쪽도 있었다. 가난이 뼛속까지 사무쳐 평생 축구공만 찼다. “마음만은 그대로야.” 저마다 나름껏 그렇게 여긴다. 투정은 당연지사다. ‘헝그리 정신’을 찾을 수 없단다. 너무 배가 불렀단다. 그래서 안 뛴단다. 결코 바람직한 소통법이 아니다. 한데 어우러져 애쓰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될 것도 안 된다. 세월은 흘러 8년 뒤였다. 엇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어느 프로팀 훈련장이다. 감독이 외쳤다. “겨우 저것밖에 못하냐, 내가 들어가고 싶다.” 다시 8년을 보낸 최근 월드컵 예선에서 뼈아픈 말을 들었다. 너무 초라해 국가 망신이란다. 더구나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도 전혀 다르지 않다. “대체 연봉이 얼만데…”란 말도 터졌다. 그렇다. ‘헝그리 정신’이란 게 배고픈 데서 출발했다. 말 그대로다. 물로 배를 채워야 할 판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면 행복하다. 16년 전으로 돌아가자. 거스 히딩크(71) 감독은 “난 아직도 배고프다”고 되뇌었다. 그렇다고 그가 라면으로라도 끼니를 거를 처지라고 읽는 이는 아무도 없다. 도리어 반대다. 이룰 게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국 해냈다. 스코틀랜드에서 조선소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스 퍼거슨(76), 포르투갈 빈민가에서 불행하게 자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2)도 그랬다. 세월을 거슬러 헝그리 정신을 요구할 수도, 요구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각오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성취욕에 배고픔을 잃지 말아야 한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뛰던 좋은(?) 경험을 돌아보는 게 좋다. 배가 부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스스로가 지켜야 할 명예를 어깨에 짊어졌기 때문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이기는 판이어도, 설령 지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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