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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지키스탄 사이클 여행자 넷 차로 치여 숨지게 한 사건 발생

    타지키스탄 사이클 여행자 넷 차로 치여 숨지게 한 사건 발생

    중앙 아시아 타지키스탄을 사이클로 여행하던 외국인 넷이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미국인 둘과 스위스, 네덜란드 국적인 사이클 여행가 넷이 29일(현지시간) 타지키스탄 수도 듀산베에서 남동쪽으로 70㎞ 떨어진 당하라 지방에서 의도적으로 보이는 자동차의 급습을 받았다. 다른 3명의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국적자들도 자동차 공격을 받고 다쳤다. 하지만 자동차에 타고 있던 이들은 달아났다. 두 사람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았으나 나중에 풀려났다고 타지키스탄 관리들은 밝혔다. 내무부는 용의자들이 자신들을 검거하려는 특별 작전에 흉기들을 들고 저항하려 했다고 말했다. 다른 한 명이 파손된 차 때문에 검거됐는데 경찰은 이 차량이 관광객들을 의도적으로 공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에모말리 라크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은 30일 미국과 네덜란드, 스위스 정부에 사과 서한을 보냈다. 두샨베 주재 미국 대사관은 성명을 내고 “두 미국인 사이클리스트들이 7월 29일 당하라 지방에서 살해된 사실을 확인했다. 사생활 보호 때문에 더 이상 상세한 얘기를 공유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관리들은 아직까지 입장 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1991년 옛 소비에트연방에서 해체된 이후 가난과 사회 불안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야, 다문화”… 담임쌤은 내 친구를 이렇게 불러요

    “야, 다문화”… 담임쌤은 내 친구를 이렇게 불러요

    ‘대한민국은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2000년대 이후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은 여전히 ‘우리’가 아닌 ‘그들’이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또 다른 ‘낙인’이자 ‘차별’로 인식되고 있다. 서양인과의 결혼은 ‘글로벌 가정’으로, 아시아인과의 결혼은 ‘다문화 가정’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들은 “제도적인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게 인식의 차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무심결에 던진 편견과 차별은 송곳이 되어 그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학교는 차별 조장…어린이집은 문전박대 “야, 다문화!” 중학교 국어교사 A씨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얼마 전 전학 온 베트남 학생을 찾았다. 베트남 출신의 어머니를 둔 이 학생의 이름은 ‘김전일’이었지만 A교사는 항상 ‘다문화’라고 불렀다. 한국어가 서툴러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책상에 엎드려 있던 이 학생은 이유도 모른 채 앞으로 나갔다. A교사는 한국인 학생들 앞에서 “숙제를 엉터리로 해 오면 어떡하느냐”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인 김진영(15·가명)군은 역사 수업 시간마다 괴롭다고 했다. 역사 선생님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얘기하는데 김군에게는 ‘아빠 나라’, ‘엄마 나라’만 있을 뿐이어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같은 반 친구들의 눈치를 봤다. 친구들이 평소 “넌 한국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고 묻는 것도 남모를 괴로움이다. 이정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사무국장은 “화합과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우리’라는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소외감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로잡아 줘야 할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에게 보내는 가정통신문이 한글로만 쓰여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학부모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교사들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학생 어머니의 출신 국가를 공개하며 “서로 사이 좋게 지내라”고 했다가 오히려 아이를 놀림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다문화 가정과의 ‘만남의 장’이 ‘갈등의 장’이 돼 버리기도 한다. 충남 홍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최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고려인’이 부쩍 늘자 좋은 취지로 이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인 학부모들은 이주민 가정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호응하지 않았다. 자녀에게 “외국에서 온 친구랑 가까이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학부모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 메신저 방에 외국인 학부모를 초대하지 않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유치원, 어린이집 등 보육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이주민들은 보육교사와 한국인 자녀들에게 차별을 당해 자녀가 상처를 입을까 봐 어린이집에 선뜻 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 아이와 싸움이 나면 한국인 학부모들이 집단대응에 나서는 때도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온 초은레이(26)는 “어린이집에 모인 학부모들이 나를 곁눈질로 보더니 아예 말도 안 걸고 인사도 안 한다”고 호소했다.●병보다 의사 불친절에 더 아프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에리카(32·가명)는 최근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불친절한 행동에 몸서리를 쳤다. 서툰 한국어로 증상을 얘기한 뒤 의사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던 중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다시 한 번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다짜고짜 “다음요. 나가서 간호사한테 물어보세요”라며 진료실 밖으로 내쫓았다. 중국 출신 결혼 이주여성 이모씨는 장기간의 불임 끝에 산부인과를 찾아 시험관 아기 시술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어눌한 한국어 탓에 전달이 잘 안 됐는지 병원 직원은 “한국어 되는 사람 데리고 와”라고 쏘아붙였다. 이씨는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종이에 적어 다시 보여 줬다. 이에 직원은 “시험관 엄청 비싸요. 당신 돈 있어?”라고 말했다. 직원의 목소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외국인 차별 실태를 조사한 이경숙 경기외국인인권지원센터 팀장은 “병원에서 이주민에 대한 모욕과 불친절한 행위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일상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막을 법, 제도 정비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한 뒤 혼인신고까지 했는데도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이주여성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 남성들이 외국인 부인을 결혼비자 대신 관광비자로 한국에 데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체류 기간(3개월 이상)에 관계없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결혼비자와 달리 관광비자(C3)는 아예 건강보험 가입이 안 된다. 불법체류자 등 건강보험 자격에서 제외된 이주노동자들은 라파엘클리닉 등 무료 진료 봉사 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받기도 한다. 김창덕 라파엘클리닉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이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하다 보니 어깨, 허리 통증을 주로 호소한다”면서 “동남아에서 온 환자들은 과일을 많이 먹어서인지 당뇨도 꽤 많다”고 말했다.●비수로 꽂히는 말 “돈 때문에 결혼했냐” “형진이가 욕설을 많이 하고 친구들을 자주 때려요.” 9년 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면서 베트남에서 온 쯔엉(29)은 얼마 전 학교에서 “아들이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쯔엉도 집에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구타당하며 살았기에 더더욱 놀랐다. 아들이 아빠와 할머니의 폭력성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였다. 쯔엉은 술에 찌든 남편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주먹으로 맞는 일이 다반사였고 시어머니도 “너 돈 때문에 한국 왔지.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면 잔말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며 쯔엉을 하인처럼 여겼다. 쯔엉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직장 다니는 것 맞느냐.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며 근거 없는 의심을 보내기도 했다. 쯔엉은 결국 지난해 남편과 갈라섰다. 그는 “형진이의 장래 꿈이 경찰관이래요. 할머니, 아빠 같은 사람들을 잡고 싶다고 하네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남성, 외국인 여성’의 혼인 신고 건수는 1만 4869건으로 집계됐다. 2000년 6945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중매’ 역할을 하는 국제결혼 중개업체 수가 증가하면서 국제결혼 커플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인 남성들이 중개업체에 돈을 내고 개발도상국 등에서 부인을 데려오다 보니 그들을 ‘배우자’로 바라보기보다 ‘시부모를 모시면서 애를 낳고 키우는 여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결혼 이주여성들은 임신했을 때 그 서운함이 극에 달한다고 한다. “고향 음식이 먹고 싶다”, “과일이 당긴다”고 아무리 말해도 남편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이주민 친구나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뿐이다. ●외국인들은 왜 3D 업종에서만 일하나 세네갈 출신인 삼(40)은 모국에서 사업을 했지만 4개월 전 한국에 온 뒤로는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있다. 하루 11시간 일하고 월 170만원을 번다. 리본 제작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의 제릴린(34)은 월수입이 130만원에 불과하다. 그는 “모국에서 교육을 많이 받고 전문직으로 일했던 사람도 한국에만 오면 꿈을 펼칠 기회가 없어 일용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조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일해도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을 제대로 받는 이주노동자는 많지 않다.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4년 10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12시간씩 일한 이주노동자 B씨는 퇴직금을 못 받아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고용주의 불만도 만만찮다. 일을 제대로 하는 이들이 드물고 일 좀 할 만하면 떠난다는 것이다. 우다야라이 이주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생활과 노동 두 가지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고용허가제 안에서 허락된 4년 10개월 동안 생활과 노동에 동시에 적응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베트남 출신 한가은(본명 레티마이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직장에서 결정권을 지닌 이주민이 많지 않다 보니 한국인 팀장과 함께 밖에 나가면 한국인들은 일단 팀장하고만 얘기한다”면서 “이주민은 보조 역할만 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렸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뉴스를부탁해]옥탑방과 호프집…쇼일까, 진심일까

    [뉴스를부탁해]옥탑방과 호프집…쇼일까, 진심일까

    박원순 시장의 강북 옥탑방 한달살이문 대통령의 광화문 호프집 깜짝미팅선거철에 흔한 정치쇼와 비교되며 논란박 “보고서는 2차원 시민 삶은 3차원”시민들 “바보 아니다. 진심은 드러난다”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과 문재인 대통령의 광화문 호프집이 이번 주 많은 분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언제나처럼 부정적 평가와 긍정적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보여주기식 행정 아니냐는 마뜩찮은 시선도 있고, 책상을 떠나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의도를 높이 사는 쪽도 있습니다. 정치인의 민생행보는 서민 코스프레(흉내내기)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쉽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전통시장을 찾아가 꼬치어묵을 베어먹는다거나 상인이 건네주는 떡을 받아먹고 검은 봉지에 담긴 과일을 사는 일 말입니다. 지난해 대선도전을 시사했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은 서민체험에 나섰다가 호된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그는 개인차량 대신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승차권발매기의 지폐투입구에 1만원짜리 2장을 겹쳐 집어넣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국민적 비웃음을 샀습니다. 옆에 있던 측근이 지폐를 한 장씩 넣어주어 표를 살 수 있었습니다.며칠 뒤 벌어진 ‘턱받이’ 사건도 반 전 총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찾아간 반 전 총장은 누워 있는 노인에게 음식을 떠먹여줬습니다. 그런데 턱받이를 환자가 아니라 반 전 총장 부부가 하고 있었습니다. 반 전 총장 측은 꽃동네에서 앞치마 대신 내어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대중은 정치쇼, 서민 코스프레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 정치인의 민생행보가 비판받는 이유는 서민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필요가 있을 때 형식적으로 잠깐 하고 말기 때문일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박 시장의 옥탑방 한달살이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박 시장은 지난 22일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옥탑방에 입주했습니다. 30㎡ 크기의 2층 옥탑방은 침실과 집무실로 이뤄져 있습니다. 선풍기는 있고 에어컨은 없습니다. 박 시장에서 한달간 옥탑방에서 출퇴근하면서 실제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삶의 문제를 찾아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보여주기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무슨 옥탑방 달세가 200만원이냐’, ‘한달만 살 집을 뭐하러 수리했느냐’, ‘시민의 세금으로 정치쇼를 한다’, ‘진짜 거기에 살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는 등 가시돋친 말들이 나왔습니다.박 시장은 이런 논란을 알고 있다면서 보여주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는 지난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람들이 자꾸 체험하러 왔다 그러는데 체험이 아니라 생활”이라면서 그냥 지나가면 알 수 없고 살아봐야 보이는 문제를 찾겠다고 했습니다. 박 시장은 “과거 정치인들이 (서민)체험을 했다. 잠깐 체험해보고 떠났다”면서 “하지만 서울시장이 이 지역에 온다는 것은 서울시청이 옮겨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막강한 실행력과 집행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냥 놀러온 게 아니다”라는 겁니다. 박 시장은 삼양동으로 이사오면서 페이스북에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집무실 책상 위 보고서는 2차원이지만 시민 삶은 3차원이다. 절박한 민생, 시민의 삶 속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겠다. 오직 이것만이 제 진심이다.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해 시민의 일상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겠다는 제 의지는 폭염보다 더 강하다”박 시장의 옥탑방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뜻밖의 ‘불청객’ 덕에 한결 누그러졌습니다. 지난 26일 밤 옥탑방 밖을 서성이던 5명의 중학생이었습니다. 약속도 없이 찾아온 이들을 박 시장은 방에 들어 앉혔습니다. 자신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이거 실화냐?”라고 어리둥절해하는 소년들에게 박 시장은 “얘들아, 세상에 뭐든지 도전해야 해. (나를) 만날 줄 몰랐잖아. 오니까 딱 만났잖아. 물론 실패할 수도 있어. 내일 또 하면 되지”라고 얘기해줬습니다. ‘도전을 응원한다’는 주제로 즉석에서 붓펜으로 쓴 캘리그라피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영상을 본 네티즌은 “일부는 쇼라고 한다. 설령 쇼라고 하더라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그 진심을 드러나기 마련이다”라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응원의 뜻을 담아 박 시장에게 선풍기 한 대를 선물했습니다. 박 시장은 “문 대통령이 무더위에 수고한다고 보내셨다. 감사드린다”면서 “시민의 삶에 큰 변화를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하겠다. 신접살림에 전자제품 하나 장만한 것처럼 아내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고 전했습니다.문 대통령도 최근 ‘쇼통’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쇼와 소통, 대통령을 합친 말인데요. 지난 26일 광화문 호프집에서 시민들과 맥주를 마신 일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청 ‘쌍쌍호프’라는 술집에서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만났습니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체 사장, 청년구직자 등 18명과 100분간 호프타임을 가졌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와 만나는 자리로만 알았던 참석자들은 행사 시작 10분 전에야 문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에 대한 불만, 출산 후 경력단절, 버거운 취업비용 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그런데 참석자 중 한 명이 사전에 섭외된 인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어젯밤 호프집에서 만난 청년은 지난 겨울 시장통에서 문 대통령과 소주잔을 기울인 바로 그 청년”이라면서 “세상이 좁은 건지, 아니면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기획력이 탁월한 건지, 문 대통령이 언제까지 이런 쇼통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가져가려고 하는 건지 지켜보겠다”고 꼬집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지난해 3월 노량진 고시촌 빨래방에서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배준씨를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배씨의 합격을 바라며 즉석에서 넥타이를 풀러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김 원내대표의 의혹 제기에 “의전비서관실이 배씨에게 연락해 호프미팅에 참석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배씨가 대통령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온 유일한 참석자였으며 전에 만났던 국민을 다시 만나 사연과 의견을 경청하려 했다고 덧붙였습니다.이날의 호프미팅은 시기상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같은 시각 연세대 대강당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추도식이 열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는데, 타이밍과 정무적 판단 모두 미스였다”, “호프집은 좀 심했다. 5분 거리에 있는 빈소에나 한 번 들르셔야 하는 것 아닌가”, “쇼가 이제 우스워 보이기 시작한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런 반박도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서민, 상인, 노동자의 생생한 얘기를 직접 듣는 자리, 생전의 노회찬 의원이 보고 싶어하던 자리였다. 나는 확신한다. 노 의원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문 대통령이 서민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고충과 애환을 듣던 그 장면을 훨씬 더 기쁘게 여겼을 거라고…” 정치인의 민생행보가 ‘쇼’인지 ‘진심’인지는 목적과 결과를 헤아려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박 시장과 문 대통령은 표를 얻어야 할 선거 후보는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더 잘 살게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쇼’를 감행한 목적입니다. 이제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옥탑방 한달살이가 가난한 동네 사람들의 땀을 식혀줄지, 광화문 호프미팅이 실효성 있는 경제정책으로 이어질지 날카롭게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생고생쯤이야… 바다사자와 친구가 됐는걸

    생고생쯤이야… 바다사자와 친구가 됐는걸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 갈라파고스에서는 이런 ‘놀라움’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물가부터 놀라웠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한 병에 5달러짜리 맥주와 1박에 40달러짜리 방, 1인당 최소 150달러부터 시작하는 투어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밥값은 기본 15달러부터. 아끼고 아껴 써도 하루에 200달러 이상은 들어가는 셈이다.그래서 많은 이들이 갈라파고스를 여행할 때 크루즈를 선택하곤 한다. 매일매일 바다로 나가 투어를 하고 섬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 크루즈를 타고 일주일 혹은 열흘 동안 갈라파고스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투어를 하는 것이 훨씬 ‘가성비’가 좋다. 희귀 해양동물도 만날 수 있는데다 남들이 안 가본 데도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산타크루즈섬이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본부와 찰스 다윈의 연구센터, 자이언트거북 번식센터가 이곳에 있다. 자이언트거북은 사람들이 잡아 기름을 짜고 쥐와 개가 거북이 알을 깨트려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다. 비글호의 선원들도 자이언트거북 45마리를 항해용 식량으로 잡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노력으로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갈라파고’란 이름도 이 거북에서 나왔다. 옛 스페인어로 ‘말안장’이란 뜻인데, 1535년 에스파냐의 베를랑가가 이 섬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말안장 모양의 등딱지를 한 큰 거북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을 붙였다.푸른발 부비새도 갈라파고스를 여행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새다. 이름 그대로 발만 푸른색 장화를 신은 듯 푸른빛을 띤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짝짓기를 하거나 알을 품는다. 하지만 반드시, 반드시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보기만 해야 한다. 먹을 것도 주어선 안된다. 외부 음식물을 잘못 먹고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는 동물이 주인인 섬이다. 동물은 사람을 만질 수 있지만 사람은 절대 동물을 만질 수 없다. 검은 바위 위에 떼를 지어 일광욕을 하고 있는 바다 이구아나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괴수 영화에서 보던 괴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성질은 순하다. 이들이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됐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약 800만년 전 밀려온 도마뱀이 갈라파고스에 정착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짐작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해초를 먹으며 살아가는데, 바위에 붙은 초록색 해초를 뜯어먹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 크루즈 여행은 아침과 저녁에는 섬에 내려 동식물을 관찰하거나 섬을 트레킹하고, 낮에는 스노클링을 즐기거나 수영을 하며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스노클링이 필리핀이나 하와이 등에서 즐기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육지에서 지겹게 보던 바다사자들이 옆구리 가까이 다가와 바싹 붙는다. 가끔 툭 건드릴 때도 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힘겹게 쫓아가다 보면 기다려 주기도 한다. 이렇게 바다사자와 한참 동안 놀다 지쳐 해변으로 올라와 드러누우면 그 녀석도 따라와 옆에 벌러덩 눕는다. 그렇게 팔베개를 하고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골치 아픈 일이든지 우주의 미스터리 같은 건 그냥 내버려 두는거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튼 갈라파고스는 바다사자와 함께 해변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일주일 동안의 여행을 마친 후 크루즈는 산크리스토발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뱃머리를 돌렸다. 바다 위 우뚝 솟은 바위인 키커록 뒤로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펠리컨은 배와 나란히 날았다. 공기 속을 헤쳐 가는 펠리컨의 부드럽고 가벼운 날갯짓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행은 분명 좋은 일이고,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라파고스는 영원히 ‘갈라파고’인 채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글 최갑수 여행작가■여행수첩 에콰도르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미국을 거쳐 가는 것이 빠르다. 에콰도르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의 경우 관광 목적으로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에콰도르는 2002년부터 미국 화폐인 달러화를 사용하고 있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4시간 늦다. 여행 적기는 6월부터 9월까지. 시원하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 여행하기가 가장 좋다. 에콰도르 여행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주한에콰도르상무관실(02-738-0079, seoul@proecuador.gob.ec)을 통해 알아보자. 갈라파고스에서의 크루즈 여행은 일정에 따라 행선지와 요금이 다양하다. 메트로폴리탄 투어링(www.metropolitan-touring.com)에서 다양한 크루즈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일정과 예산에 맞춰 적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세로부르호와 푸에르토치노섬은 화산 협곡 사이로 난 트레킹 코스를 따라가며 갈라파고스의 희귀 동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 에스파뇰라섬의 푼타수아레스는 갈라파고스 앨버트로스와 바다 이구아나를 관찰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앨버트로스는 몸길이가 90㎝가 넘고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2m에 달한다. 푼타수아레스 반대편 가드너베이는 펠리컨과 바다사자의 섬이다. 해변에 떼를 지어 누워 잠자고 있는 바다사자들이 장관이다.
  • “자발적 성매매는 없습니다”

    “성매매 업계로 유인되는 나이는 평균 14세. 가난, 가정폭력, 학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성매매에 발을 들입니다. 자발적인 성매매는 없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필요합니다.”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으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감도가 한층 높아진 가운데 ‘2018 성매매방지 국민 생각 공모전’ 응모작 중 이런 내용의 한가연씨 포스터 ‘자발적 성매매는 없다’가 통념타파상(동상)를 수상했다. 이를 포함해 총 18편의 작품이 최종 선정됐다. 26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24일까지 진행된 이번 공모전엔 지난해 635명보다 27% 증가한 806명이 참가했으며, 응모작도 같은 기간 928편에서 1220편으로 32% 증가했다. ‘생각나눔상’(대상)을 수상한 유선지씨의 ‘얕은 심해’는 청소년 성매매 문제를 10대의 눈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주인공인 10대 여성을 통해 성매매가 가정 폭력 등 다른 폭력과 연결돼 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성매매 업계로 유인되는 나이 평균 14세…자발적인 성판매는 없다

    성매매 업계로 유인되는 나이 평균 14세…자발적인 성판매는 없다

    “성매매 업계로 유인되는 나이는 평균 14세. 가난, 가정폭력, 학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성매매에 발을 들입니다. 자발적인 성매매는 없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필요합니다.”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으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감도가 한층 높아진 가운데 ‘2018 성매매방지 국민 생각 공모전’ 응모작 중 이런 내용의 한가연씨 포스터 ‘자발적 성매매는 없다’가 통념타파상(동상)를 수상했다. 이를 포함해 총 18편의 작품이 최종 선정됐다. 26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24일까지 진행된 이번 공모전엔 지난해 635명보다 27% 증가한 806명이 참가했으며, 응모작도 같은 기간 928편에서 1220편으로 32% 증가했다. 남성 응모자가 전체의 44%였으며, 10대 응모자도 8%나 됐다.‘생각나눔상’(대상)을 수상한 유선지씨의 ‘얕은 심해’는 청소년 성매매 문제를 10대의 눈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주인공인 10대 여성을 통해 성매매가 가정 폭력 등 다른 폭력과 연결돼 있으며, 성을 파는 여성이 또래집단에서 고립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유씨는 소통과 공감, 인정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결말을 맺어 감동을 자아냈다는 평가다. ‘대중설득상’(금상)에는 우리 사회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성매매가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담은 박지원씨의 웹툰 ‘은밀한 영향력’과 채팅앱을 성매매 수단으로 악용하는 어른을 고발하는 흰돌캘리그라피 팀의 ‘채팅앱’이 선정됐다. 이밖에 ‘진정한 가해자는 이 사회입니다’(문우진·에세이), ‘방찾아 삼만리’(김정혜·웹툰), ‘이상한 가게의 채용공고’(김빛나리·에세이), ‘사시겠습니까?’(소희·웹툰), ‘인권의 불꽃’(고선영·캘리그라피) 등 5편의 작품이 ‘공감확대상’(은상)을 수상했으며, ‘통념타파상’에도 10편의 작품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 온라인 홍보관(www.stop.or.kr/info)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성매매 방지를 위한 공익 메시지로 다양하게 활용될 예정이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여기는 중국] 장애 아들 잃을까 팔에 전화번호 문신 새긴 엄마

    중국 동부의 한 도로를 따라 배회하고 있는 10대 소년의 모습이 포착됐는데, 소년의 팔에 전화번호로 보이는 문신이 새겨져 있어 논란이 벌어졌다. 25일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22일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시와 원저우를 연결하는 도로변에서 걷고 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이 발견됐다. 운전자들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원저우 경찰관 양 리샤오는 아이에게 이름과 사는 곳을 물었지만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질문에 우물쭈물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는 아이를 보며 심각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곤란해하던 차에 아이의 팔뚝에 번호가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부모의 연락처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해당 번호는 아이 엄마 쩌우씨의 휴대전화번호였다. 경찰의 연락을 받은 엄마는 아이를 데리러 곧장 달려왔다. 현지 언론은 “아이가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 빈곤 지역에 사는 이주 노동자 부부의 아들로, 엄마아빠가 잠을 자고 있는 사시 새벽 3시에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길을 잃고 배회하다 도로 위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길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 팔뚝에 전화번호를 새겼다. 아이를 발견하는 사람이 내게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한 것”이라며 “이전에도 여러 차례 집을 나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중국 본토에서는 미성년자들의 문신을 금지하는 법이 없어 문신 시술에 대해 부모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뉴스를 접한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의 반응은 “전화번호까지 적어 아이를 찾으려한 엄마의 모습에 감동받았다”라거나 “아무리 걱정이 됐어도 몸에 평생 남는 문신까지 했어야했나”로 나뉘었다. 이에 경찰은 “엄마의 전화번호가 바뀌었는지 처음 새겼던 번호가 두 줄로 그어져 있었다”면서 “가난한 부부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GPS기능을 가진 스마트 팔찌와 같은 추적 장치에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문소영 칼럼] 제우스의 번개와 노회찬

    [문소영 칼럼] 제우스의 번개와 노회찬

    올림포스 신전 제우스의 무기는 번개다. 범죄자를 응징할 때 이 번개를 쓴다. 잠깐 상상해 본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받았다는 4000만원을 기준으로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정치인에게 제우스가 번개를 때린다면, 서울 여의도 300명의 국회의원 중 몇 명이나 이 번개를 피할 것인가.현행 정치자금법은 일명 ‘오세훈법’이라고 부른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화두는 정치개혁이었다. 그 개혁 덕분에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 최초로 국회에 진출하고 노 의원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당투표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법 개정은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정치자금 차떼기’ 파문 극복용이었는데 당시 한나라당의 초선 오세훈 의원이 주도하고 본인은 불출마를 선언한 덕분에 국회를 통과했다. 주요 내용으로 개인의 소액 후원은 장려하고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제공은 금지했다. 후원 한도로 국회의원은 평년에는 1억 5000만원까지,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2004년 기준이 아니라 14년이 지난 지금도 평범한 직장인의 눈으로 1억 5000만원에서 3억원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돈 먹는 하마’ 수준이라 새 발의 피다. 한 원로 정치인은 총선에 최소 5억원 정도를 써야 했다고 한다. 2004년부터 득표율에 따라 국가가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지만, 서너 번 낙선하면 패가망신할 만한 비용이다. 또 지구당을 없앴지만, 편법으로 지역민의 민원을 들어주는 사무소를 내고 직원을 고용하면 매월 1000만~15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당내 선거도 맨입으로 할 수 없다. 기탁금을 수천만원을 내야 한다. 장소를 빌리고 행사를 하는 데 필요하다. 8월 2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등록비 500만원을 내고, 당대표 입후보자는 9000만원, 최고위원 후보자는 4000만원을 추가로 냈다. 진성 당원이 크게 늘어 1회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약 1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움직일 때마다 돈이다. 이 자금을 세비를 저금해서 마련할 수 있을까. 무리다. 그래서 “‘오세훈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검은돈 근절’과 ‘깨끗한 정치’라는 명분이 늘 여론을 얻어 좌절된다. 돌아보면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치인들은 돈 고생을 많이 했다. 경기고·서울대(KS) 상대 출신이지만, 오랜 재야 민주화 운동으로 ‘운동권의 대부’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근태 전 최고위원도 그랬다. 그는 2002년 대선 후보 경선 중에 ‘권노갑 고문에게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고백했다가 쏟아지는 비난에 크게 상심하고 경선을 접었다. 변호사였으나 상고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후원이 넉넉하지 않았다. 정치 낭인 시절 말 많고 탈 많은 물장사에 나섰던 이유는 ‘원수 같은 돈’을 마련하려 했던 탓이다. 그 가난 탓에 일부 보좌관은 한나라당에 몸을 의탁했다가 배신자라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서갑원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지방 출장에서 운전기사까지 세 명이 한방을 썼는데 돈이 없었던 탓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렇게 혹독한 시절을 겪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된 뒤 2004년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선거 120일 전부터 후원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제60조의3(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 신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평년 1억 5000만원에 묶인 한도는 그간 물가 상승률을 생각하면 2억원 이상으로 올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후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예비후보 자격을 현행 6개월보다 더 길게 해야 한다. 물론 평년에 1억 5000만원도 ‘만땅’으로 못 채우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어떻게 아느냐고? 연말에 몰아서 후원을 하는데, 한도가 차면 이체가 안 된다. 12월 31일 저녁에 존경하는 정치인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넣으면서 “쯧쯧! 아직도 한도를 못 채웠구먼” 하며 구시렁거리는 재미가 있다. 정치가 좋아지려면 좋은 정치인을 후원해야 한다. 이런 정치 현실을 외면한 채 당위로 ‘깨끗한 정치’만 주장하면 제2, 제3의 ‘노회찬의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도덕성을 기반으로 올바른 정치를 해보려는 정치인일수록 돈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지게 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는 윤동주의 서시를 좋은 정치인들은 이제 덜 사랑하기를 바란다. 이육사의 ‘광야의 초인’도 이젠 잊고 멀리하면 좋겠다. symun@seoul.co.kr
  • ‘위험한 수혜국’에서 ‘SNS 강국’으로...필리핀은 지금 변화 중

    ‘위험한 수혜국’에서 ‘SNS 강국’으로...필리핀은 지금 변화 중

    ‘대기업 총수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필리핀 여행하던 한국인 피살’, ‘태풍이 할퀴고 지나 폐허가 된 필리핀 현지’. 아시아 대륙 남동쪽에 있는 섬나라 필리핀에 대해 언론이 수시로 조명하는 부정적 단면이다. 이런 단면은 마치 필리핀의 전부인 것처럼 낙인이 됐다. 많은 사람이 필리핀을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로 인식했다. 그러나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한·중·일 그리고 10개국 아세안 청년들과 함께 직접 방문해 목격한 2018년의 필리핀은 알려진 것과 전혀 달랐다. “이번 주 태풍 소식이 있지만, 이렇게 좋은 손님들이 필리핀을 방문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참 기쁩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필리핀 사람들의 미소는 화사했다.자연재해와 가난으로 드리운 그늘 대신, 글로벌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려 달리고 있는 필리핀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필리피노들의 긍정이 도심 곳곳에 가득했다. 국제기구 한-아세안 센터는 지난 7일부터 5일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중·일 그리고 아세안 청년 70명과 함께 ‘글로벌 디지털 시대의 한-아세안 청년’을 주제로 한 아세안 청년 네트워크 워크숍을 진행했다. 아시아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과 함께 찾은 마닐라는 평소 언론을 통해 태풍으로 무너진 건물 사진으로 많이 접했던 필리핀의 모습과는 달랐다. 도심에는 한참을 올려봐야 할 높이의 고층 빌딩이 즐비했다. 또 최근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던 ‘스몸비(스마트폰 좀비)’ 현상도 시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필리핀 시민들은 걸으면서도 손에 든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었다.인터넷 이용률도 높았다. 워크숍에 참가한 필리피노는 대화를 나누다 말문이 막히자 곧장 “구글에 검색해보겠다”며 검색한 내용을 들이밀었다. 한 필리피노는 “SNS 팔로워 해도 될까요?”라고 묻더니 “인스타그램이면 더 좋겠어요. 최근에 페이스북은 ‘눈팅’만 하거든요”라고 덧붙였다. 한국 젊은이들의 디지털 문화와 영락없이 닮아 있었다.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에 따르면 필리핀은 지난해 기준 인구 중위연령 23세(한국 42세)의 ‘젊은 국가’다. 젊은 인구가 많은 까닭에 필리피노들은 ‘해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유저’로 유명하다. 지난해 영국 SNS 자문회사 ‘WEARESOCIAL’이 발표한 집계에서 필리핀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접속 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으로 이용자 평균시간 중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넷 테스트 전문 기업 Ookla의 Speed Test Index에 따르면 필리핀의 인터넷 속도는 지난 2014년 3.5Mbps에서 올해 17.62Mbps로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아세안 10개국 중 상승률 1위였다. 필리핀 정부는 최근 디지털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마닐라에 새로 개발된 지역인 마카티, BGC 등 신도시 지역 주민의 IT기술 활용도는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또 필리핀 내 각종 인프라 구축을 위한 사업 계획을 집대성한 ‘Build-Build-Build’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지난 10일 한-아세안 센터 관계자들과 만난 BBB 위원회 관계자들은 “첫 사업은 마닐라의 골칫덩이인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한 지하철 건설로 2020년 1호 지하철이 운영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문화의 약진과 더불어 시민참여도 늘고 있다. 참가자들이 마닐라 본사를 방문한 온라인 언론사 래플러(Rappler)는 최근 시민들의 큰 지지를 받으며 필리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래플러는 처음 페이스북 페이지로 시작했지만,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2012년 개별 언론사로 독립했다. 기사의 형식이나 게재 방식 등이 전통적인 언론의 모습과 사뭇 다르나 대통령과 신경전까지 벌일만한 위치까지 올라섰다. 특히 최근에는 두테르테 정부의 강력한 정책을 비판한 기사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1일 “외국인이 국내 언론사를 소유할 수 없다는 국내법에 반해 래플러의 지분 일부가 외국펀드에 속해 있다”면서 래플러의 법인 등록을 취소했다. 이에 래플러측은 “경영과 무관한 외국인의 재무 투자에 불과한데 이를 트집 잡은 것은 정부 비판적인 언론 길들이기”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제소해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최근 필리핀 정부는 그간 성장의 발목을 잡던 ‘위험한 나라’ 오명을 벗고자 치안 개선 노력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필리핀 방문 외국인 수 1위에 달하는 한국인을 고려해 한국 경찰과의 협력 사업이 한창이다. 지난 2016년부터 ‘필리핀 경찰 수사 역량 강화사업’을 통해 필리핀 경찰의 초동조치 역량을 강화하고자 경찰청에서 전문가 파견, 한국연수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코리안 데스크’ 제도를 도입해 6명의 한국 경찰청 소속 경찰관이 필리핀 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며 한국인 보호에 힘쓰고 있다. 이에 따라 평균 10명에 달하던 한국인 범죄 피살 사망자 수는 지난해 기준 1명으로 크게 줄었다. 한동만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 등 범죄억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더불어 대사관과 한인 사회의 합동 노력으로 최근 한인 피살 사건이 크게 줄었다”면서 “한국인 방문객과 교민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사건 사고도 잦지만, 카지노나 불법 안마소 등을 이용하지 않고 기본적인 수칙만 잘 지켜도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닐라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동상이몽2’ 손병호 집공개, 평창동 2층 저택 ‘마당+고급 인테리어’

    ‘동상이몽2’ 손병호 집공개, 평창동 2층 저택 ‘마당+고급 인테리어’

    ‘동상이몽2’ 배우 손병호-최지연 부부 집이 공개돼 시청자 이목을 집중시켰다. 23일 방송된 SBS 예능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이하 ‘동상이몽2’)에서는 배우 손병호, 무용가 최지연 부부 일상이 공개됐다. 25년 전 무대에서 만난 손병호와 최지연은 8년 열애 끝에 결혼, 두 딸과 함께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살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네 가족이 사는 평창동 집이 공개됐다. 특히 푸르른 정원과 넓은 거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인테리어가 눈길을 끌었다. 손병호는 “자가가 아니라 전세”라면서 “내가 안동 출신이라 평창동 집을 보자마자 ‘내 가족을 위해 저질러 보자’라고 생각했다”고 해당 집에 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밤낮으로 일하며 꿈에 그리던 마당 있는 집에 산다”고 덧붙였다. 아내 최지연 역시 “초인종을 누르면 몇 발자국 걸어가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에 손병호는 “지금은 수백 자국 걸어야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손병호는 이날 가난한 시절 만난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싶다”라며 “가난한 연극배우가 이대 나온 여자를 잡았다니, 놓치면 안 되겠다 싶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25년째 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손병호-최지연 부부가 출연하는 ‘동상이몽2’는 매주 월요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된다. 사진=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셋집도 내 집” 역발상… 런던 빈민굴, 사람 사는 동네로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셋집도 내 집” 역발상… 런던 빈민굴, 사람 사는 동네로

    우리나라 도시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전체 인구의 90%를 넘겼습니다. 한국 사람 열 명 중 아홉은 도시에서 살고, 40대 이하의 반 이상은 고향마저 도시입니다. 우리가 나고 함께 살아가는 도시란 무엇일까요? 근대는 도시의 고민에서 출발했으며, 그 근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서울신문은 출판사 수류산방과 함께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의 합창’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조성룡(74) 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와 심세중(44) 수류산방 편집장의 대담을 지면으로 옮기는 형식으로 이어 갑니다. 근대 이후 세계의 도시를 만들어 온 역사적 인물과 흐름들, 당시 중요하게 대두됐던 가치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입니다. 그 과정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질문인데도 우리가 너무 몰랐던, 타율적이고 일방적인 도시 개발 과정에서 간과했던 모더니즘의 근본 고민들을 들춰 보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시리즈 제목은 1949년 출간된 모더니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서 따 왔음을 밝힙니다.)“나이팅게일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쉽겠어요. 영국의 간호사 나이팅게일(1820~1910)이라고 아시죠? 우리나라에서도 백의의 천사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씩씩한 사람이었대요. 우리나라에서는 위인전을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생애 한 시절에 공이 있으면 그것만 띄우죠. 사실 나이팅게일이 전장에서 간호한 건 잠깐이거든요. 물론 나이팅게일은 그 시대 영국 사회를 개혁하는 일을 남자도 못할 만큼 해냈죠.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옥타비아 힐(Octavia Hill·1838~1912) 이라는 여성은 우리한테 그만큼 안 알려졌어요. 부잣집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집이 갑자기 망했어요. 그래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게 되죠. 그러다가 15살 때쯤에 당대의 인물인 존 러스킨(John Ruskin·1819~1900)이라는 사상가를 만나요. 그 양반이 미학 얘기도 했고 고딕건축에 대해서 연구도 많이 했지요. 1900년에 죽은 사람이니까 빅토리아 시대 사람인데, 이 시대가 영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어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했잖아요.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무슨 문제가 일어났냐면, 주택 말입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해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지니까 집이 부족해서 집을 짓는데, 너무 엉망인 집을 마구 지어요. 그걸 봤겠죠. 나름대로 문제라고 생각했겠죠. 옥타비아 힐이 사실 러스킨하고 몇 살 차이가 안 나요. 러스킨 밑에서 그림 필사해서 그리는 일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이 사람이 20대에 자기 선생한테 도움을 받아서 집 세 채를 사요.”1887년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 행사에 남성의 동반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참여한 여성은 단 세 명이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조지핀 버틀러(Josephine Butler·1827~1906), 그리고 옥타비아 힐이다. 나이팅게일은 국가를 위한 전쟁에 나가 근대 의학의 개가를 알렸기 때문인지 세계적으로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조지핀 버틀러는 여성운동가였다. 옥타비아 힐은 우리에게 가장 이름이 덜 알려진 인물이다. 그나마 알려졌다면 문화재 보호 운동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의 창립자로서지만, 옥타비아 힐이 평생을 바친 주제는 도시 빈민들의 주거 문제였다. 그의 부모와 외조부도 박애주의를 실천하던 부유한 사회 사업가 집안이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병환 이후 어린 시절 런던 외곽에서 성장하면서 런던 빈민의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절대적 빈곤 계층은 근대화와 도시화의 산물이었다. 처음에는 최악의 주택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더 컸다. 옥타비아 힐도 그런 생각이었고, 나은 집을 얻어서 거기에 빈민들을 살게 하려고 계획했다. 정작 그 구상을 듣자 어떤 집주인도 선뜻 집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더럽고 위험할 것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세입자로 들이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진 청년 빅토리아 힐을, 마침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은 스승 존 러스킨이 도왔다. 좋은 집이 아니라 이미 빈민들이 살고 있던 최악의 주택을 겨우 몇 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러스킨의 조건은 매년 5%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임대주택 지저분하게 방치하는 게 문제 “옥타비아 힐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임대 아파트가 좋아지려면 뭘 해야 하는가를 연구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아예 집주인이 된 거지. 런던의 매릴번이라는 동네인데, 집을 산 다음에 이 여자가 하는 일이 뭐였나면, 매주 임대료를 받으러 가요. 꼬박꼬박. 그런데 돈 벌려는 것보다는 연구를 하는 거예요. 임차인이 어떡하면 행복해지느냐. 가서 주민들한테 뭐가 문제인지 묻고, 어떻게 사는지 관찰하고, 옆집하고 계단을 같이 쓰려면 청소를 해야지 하고 알려 주기도 했어요. 처음에 3채에서 시작했는데 18년이 지나니까 이 사람이 관리하는 임차인이 3000명이 된 거예요.이 사람의 주장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거예요. 집하고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그러니까 세입자가 행복해지려면, 삶이 고귀해지려면, 집이 그렇게 좋아져야 한다. 아름답죠. 집주인으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를 고민했어요. 살아가면서 옆집하고 공유하는 부분을 어떡해야 하는가를 공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학생들하고 공공 임대 주택에 관찰하러 답사를 나가 보면, 임대 주택 사는 빈민들이 단지를 너무 지저분하게 방치한다고 관리인들이 불평하거든요. 바로 그 문제예요.” 옥타비아 힐의 빈민 주택에 대한 방법론은 깔끔한 새 집을 지어 빈민들을 이사시켜 주는 것이 아니었다. 매주 세를 걷으러 직접 다녔다. 체납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니 집세를 내려면 일을 해야 했다. 자신이 사는 집을 수선하고 가꾸는 일거리를 주었다. 집세도 낼 수 있었고 살림도 나아졌으며 주거 환경도 나아졌다. 야학이나 어린이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러스킨의 투자를 받았던 최악의 빈민굴이 몇 년이 지나자 번듯한 사람 사는 동네로 바뀌어 갔다. 주민들은 도시 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한 재개발에 밀려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됐고 공동체도 깨지지 않았다. 게으르고 술만 마시고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사람들이 빈민이 될 거라는 낙인을 찍지 말고, 자립심과 자존감을 가지도록 북돋아 주고 대화해 주자는 것이 힐의 방법론이었다. 그들은 퍼 주기 식으로 부양해야 할 불쌍한 사람이 아니며, 세 들어 사는 집은 세만 내면 그만인 남의 집이 아니다. ●난개발 반대… ‘그린벨트’ 용어 첫 사용 옥타비아 힐은 국가에서 보조금 주택을 분양하는 방식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대 주택이 수익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입주자 가족의 규모와 성격, 집의 입지를 고려해서 가구 배치를 섬세하게 정했다. 애초에 제대로 집행되지 못할 규칙은 제정하지 않았다. 집주인은 세를 과도하게 올리지 않고 장기적이지만 적절한 이윤에 만족하되 집의 상태를 좋게 유지하고, 세입자는 감당할 만한 집세로 떠돌지 않고 정착해서 살면서 일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세상에 보이려고 했다. 그녀가 관리하기 시작한 집들은 그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런던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내내 놀랍게도 100년이 넘게 신자유주의 시대를 견디며 지금까지 같은 방식으로 관리되며 수익을 내는 단지들이 남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하고 같이 책을 보다가 옥타비아 힐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이 사람이 누구지? 찾아보니까 우리말 자료가 너무 없어요. 처음에 나는 왜 집주인이 되었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주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체험했다는 것이 좋은 방법 같아요. 집주인으로서 끊임없이 세입자와 친구처럼 얘기했대요. 그런데 철칙이 뭐냐면, 그 집 관리인을 전부 여성으로 고용해요. 그러니까 여성의 사회 진출하고도 관련이 있죠. 이 여성들이 몇십년 같이 일하면서 이런 일을 전파하는 전문인이 된 거죠. 그러다가 이 사람이 또 뭘 하냐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만 아니라 집 근처에 공원이나 정자 나무 그늘 같은 곳이 필요하다, 도시나 건축에서 오픈 스페이스라고 하는 공간인데, 그 중요성을 처음 말한 사람이에요. 지주는 땅이 있으니 오픈 스페이스를 가지죠. 지주가 아니어도 시골에 살 때는 오픈 스페이스가 어디에나 있지. 그런데 고향을 떠나 도시에 오면 그런 공간이 없단 말이에요. 주말이나 저녁에 가족들하고 나갈 곳이 있어야 하잖아요. 정말 중요한 겁니다.”옥타비아 힐은 실외에 ‘앉아 있을 장소, 놀이할 장소, 산책할 장소, 그리고 여가를 보낼 장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고궁이나 교외로 놀러 갈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외곽으로 놀러 간다는 것은 여행 경비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하루치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외 녹지의 난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옥타비아 힐은 ‘그린벨트’라는 말을 처음 쓴 인물 중 한 명이다. 도시민들에게 근교의 공원과 녹지를 선사하기 위해서 시작한 난개발 반대 운동이 결국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으로 성장했다. 또한 옥타비아 힐의 사업은 세틀먼트 운동(Settlement Movement)을 낳았는데, 이는 중산층이 빈민과 같은 구역에 함께 거주하면서 생활 문화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주택 관리,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게 해야 “요즘 임대 주택 한다지만, 아, 서울에 비싼 아파트에 임대 주택 넣으라고 하니까 단지 한쪽 구석에 몰아 놓고, 그 집 아이들 학교 가면 놀림 받잖아요. 그때 런던이나 지금 서울이나, 다 시골 사람들이 올라와서 노동자가 되면서 만들어진 도시예요. 산업화를 이뤘으면서, 그 노동자에 대한 생각을 사회적으로 돈 있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요. 150년 전 런던에 비교하면 서울에는 훨씬 집이 많잖아요. 그런데도 그 고민이 너무 적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될 리가 없었겠지만 해방 후에는 돼야 할 건데 5년 있다가 전쟁 나고, 또 몇 년 있다가 군사독재 시작해서 1988년까지 군사정권이었잖아요. 그런 시대 속에서 집을 지었다고요. 그러니까 이 집이 노동자를 위한 집이 아니에요. 내가 70대가 되고 보니까, 도대체 내가 사람들을 위해서 한 게 뭐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집 짓는 사람인데, 건축가들이 돈 있는 사람 집만 지어 줬단 말이지. 돈 없는 사람이 자기 집을 맡길 리가 없고, 국가의 임대 주택은 오로지 중산층을 위한 거였어요. 그런데 건축가들이 이런 내용을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저 임대 놓기 좋은 집이 아니라 세입자들이 품위 있게 살도록 설계할 수도 있단 말이에요. 좋은 단지는 예쁜 집, 잘 지은 집이 있는 단지가 아니라 거기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단지예요. 그러려면 설계와 관리가 서로 이어져야 하는 거예요.”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18 56~1925)가 그린 옥타비아 힐의 초상화는 1898년에 동료 노동자들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 무렵 이미 옥타비아 힐은 서방 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었지만, 국가나 정부에서는 그녀의 방식을 끝까지 반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딴 여러 단체가 생겼고, 그중에는 부작용도 많았다. 지금 서울에서 집주인이라는 이유로 세를 받으려고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가정 방문을 한다고 하면 누구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옥타비아 힐은 무상 복지나 보조금에 완강히 반대했다. 엘리트주의에 기반해 근면이나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전파하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5%의 수익률도 악용되기 십상이다. 집값이 오르면 그에 따라 세도 올려 두 배의 수익이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초상화를 선물받았을 때 힐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벗들이 특별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지도 말고, 내가 갔던 길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말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대 환경은 또 다른 노력을 요구할 것이므로 우리가 끝없이 추구해야 할 것은 굳은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다. … 어떤 주택은 잘 수선하는 것이 낫고, 어떤 주택은 새로 짓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려 깊고 사랑을 담은 관리를 충분히 기울여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다가올 새롭고 더 나은 날들의 가장 큰 과제를 간파하는 것이다. 더 큰 이상, 더 큰 희망, 그리고 그 둘을 실현시킬 인내력”을 품고 서로의 집과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 여름밤, 에어컨 아래에서나, 맞바람이 들지 않는 대학가의 원룸이나 땡볕을 피할 길 없는 옥탑방에서나, 잠들기 어려운 도시의 밤에 말이다. 기획 수류산방
  • 폭염이 키운 ‘빈부격차’...밖으로 뛰쳐나온 쪽방촌 주민들

    폭염이 키운 ‘빈부격차’...밖으로 뛰쳐나온 쪽방촌 주민들

    “등이 뜨거워 방에 누워 있을 수가 없잖아.” 20일 낮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의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뛰쳐 나왔다. 땡볕에서 농사 일을 하다 온 것처럼 땀이 범벅이 된 오모(69)씨는 대뜸 “마을에 목욕탕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욕탕이 들어섰으면 하는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 오르면서 방 안이 후끈후끈 달아오르자 머릿 속을 맴돌던 ‘본능적인’ 요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이렇듯 폭염은 가난한 이들에게 잔인했다. 더위를 이겨내는 것도 ‘빈익빈 부익부’ 법칙이 적용되는 것일까. 열기는 어느새 건물 사이 좁은 골목 틈새까지 스며들면서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그늘의 크기만큼 쉼터를 갖는 쪽방 사람들 이날 오후 쪽방촌의 그늘은 시시각각 변했다. 주민들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나무 그늘은 이들의 유일한 쉼터였다. 늦잠을 자 뒤늦게 일어난 사람들도 밖으로 나서면 자연스레 이곳으로 모였다. 15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쪽방촌 건물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늘로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일부는 윗옷을 벗어 던졌다.가파른 쪽방촌 뒤쪽은 높은 벽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주민들은 낮 동안이라도 최대한 답답하지 않은 풍경을 담아두려는 듯 보였다. 그늘의 경계선에 자리한 사람들은 그늘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의자의 위치를 바꿨다. 쪽방촌에 찾아온 햇볕은 달갑지 않은 손님같았다. 주민들은 연신 “어유, 덥다”는 말만 내뱉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존해 더위를 식히며 낮잠을 청했다. 술 한 잔에 무더위를 잊어보지만...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모(56)씨가 기자에게 자신의 방을 공개했다. 이씨의 한 평짜리 반지하 쪽방에 들어서자 낡은 선풍기와 작은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벽에 걸어 놓은 두꺼운 점퍼는 좁은 방을 더 답답하게 했다. 작게 난 창문 밖으로는 바로 옆 건물의 회색 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풍기에서는 이내 더운 바람이 나왔다.이씨는 “더워서 어찌 지내느냐”고 묻는 기자를 향해 “날이 더우니 자꾸 밖에 나간다. 밖이 그나마 더 시원하다”고 말했다. 쪽방촌 센터에서 일주일에 물을 10병씩 나눠주는데 이씨는 하루에 5병씩 마신다고 했다.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로 약을 복용하면서다. 이씨는 “약을 먹다 보니 독을 빼려고 많이 마신다”고 말했다. 부족한 물은 이웃 쪽방촌 사람들이 나눠준다고 했다. 선풍기만 없었다면 순간 계절을 착각할 정도로 방 안에는 이씨의 사계절 생필품이 모두 자리 잡고 있었다.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두꺼운 이불이 깔려 있는 이유를 묻자 이씨는 “몸이 아파서 푹신한 데 누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술 한 잔 먹고 자야겠다”며 술병을 찾았다. 이들에게 술은 한여름 쪽방촌에서 숨 막히는 무더위를 잊게 하는 수단이었다. 이씨의 방을 나서 쪽방촌 입구에 위치한 남대문 쪽방 상담소로 향했다. 600명가량 되는 쪽방촌 주민들을 관리하는 상담소 직원은 고작 5명뿐이었다. 직원들은 직접 동네 곳곳의 주민들을 상대하느라 하루에도 수십 번 상담소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린다고 했다. 이 곳에서 만난 정민수 사무국장은 “어르신들이 혼자 지내다 보니 외로움을 많이 호소한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사생활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더위를 이겨낼 마땅한 방법도 없는 서울의 한 쪽방촌은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유시민 “대기업 2·3세 경영인 중 김정은만한 사람 있나”

    유시민 “대기업 2·3세 경영인 중 김정은만한 사람 있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를 국내 기업 2·3세 경영자들과 비교했다. 유 전 장관은 19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초대받아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기업인들이 남북교류에 앞장설 필요성을 강조하는 하면서 대기업 세습 경영자들의 혁신적 행보를 촉구하기도 했다. 유 전 장관은 “북한과의 교류는 산림녹화 사업과 산업 등 두 측면에서 이뤄질 것으로 본다. 이 가운데 산림녹화는 지금처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지원해도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기업인들의 적극적 참여를 주문했다. 이어 “북한이 개방하면 북측 경제개발구역에 우리 자본이 들어가야 한다. 그 좋은 것을 왜 다른 나라에 뺏기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기업인들이 당장 노동당 간부 등도 만나게 될 것이고, 산업 쪽에서 넓고 깊은 남북간 소통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큰 기업의 2·3세 경영자들 가운데 김정은 만한 사람이 있느냐”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절대권력을 다르게 써서 바꾸려고 하지 않느냐. 그게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이후에도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더 혁신하려는 2·3세 경영자가 얼마나 되느냐”며, 거듭 국내 대기업 세습 경영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유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배경으로 어린 시절 유럽에서 교육받은 경험 등을 들었다. 또 “핵을 끌어안은 채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길과, 핵을 버리고 좀더 행복하게 사는 길 사이에서 고민해서 후자를 택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남북교류에 기업인들이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유 전 장관은 “북한과의 교류는 산림녹화 사업과 산업 등 두 측면에서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산림녹화는 지금처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원해도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000원 지폐속 이황 초상의 ‘허상’

    1000원 지폐속 이황 초상의 ‘허상’

    조선의 잡지/진경환 지음/소소의책/396쪽/2만 3000원‘양반은 가는 데마다 상이요 상놈은 가는 데마다 일이라’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 ‘가난한 양반 씨나락 주무르듯 한다’…. 조선시대의 지배계층, 즉 양반에 얽힌 비아냥의 말들이다. 상투를 틀어 갓 쓰고, 서책만 끼고 앉아 아랫사람 호통치기 일쑤이고, 끼니 간 곳은 없어도 꼿꼿하기만 하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갖는 양반의 대표 이미지는 여전히 권위와 격식, 체면이다. 양반은 언제나 현실과 동떨어진 채 뜬구름처럼 살아간 이상주의자였을까. 책은 그런 면모와는 영 딴판인 양반들의 민낯을 생생하게 들춰내 흥미롭다. 조선시대 최초의 세시풍속지로 알려진 유득공(1748~1807)의 ‘경도잡지’(京都雜志)를 새롭게 해석해 파헤친 양반의 실상이 색다르다. 18~19세기라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과도기.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경도잡지’는 그 무렵 조선의 중심지였던 서울 지역 풍속과 양반 생활상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으로 점차 실용과 효용, 유행을 따라갔던 양반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원전 텍스트를 풀어내 보여주는 양반들의 삶과 그에 연관된 것들의 유래며 취향은 백면서생이나 딸깍발이와는 전혀 다르다. 놀랄 만큼 현실적이고 여유롭다. 심지어는 과도한 사치며 낭비벽까지 물씬 묻어난다. 신분제 사회의 붕괴와 함께 닥친 근대사회는 개인의 행복을 더 중시하게 마련. 조선의 양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리개나 패물, 말, 집, 혼례, 담배, 문방사우, 꽃과 나무 등 명품 선호와 유행 좇기, 사치 풍조가 절정에 다다랐다. 남들에게 가문을 과시하기 위해 대문을 크고 높게 만들고 처마를 노송취병(老松翠屛·오래된 소나무나 꽃나무 가지를 틀어서 문이나 병풍 모양으로 만든 물건)으로 치장하기는 다반사였다. 서울의 호사가들은 여덟 칸짜리 비둘기집(용대장)을 갖춰 희귀하고 값비싼 비둘기를 더 많이 사들이려 경쟁했다. 쇠로 만든 담배합에 은으로 매화나 대나무를 장식하고 사슴가죽으로 끈을 달아 담뱃대와 함께 말꽁무니에 달고 다니면서 멋을 부렸다. ‘거덜 났다’는 말을 낳게 한 견마잡이(말고삐를 잡아 양반의 행차를 인도하는 사람)의 사치는 또 어떤가. 양반처럼 덩달아 허세를 부려 더 좋은 고삐를 만들어 ‘거들먹’거리고 다닌 결과 알량한 재산이며 살림이 여지없이 허물어졌다.사는 곳에 따라 먹고 마시는 풍속도 갈렸다고 한다. 부귀한 집이 많은 북촌에는 음식 사치가 심했는데 ‘갖은 편’이라 불리는 떡 만드는 솜씨가 발달했다. 그런가 하면 구차한 샌님과 형편이 넉넉지 않은 무반들이 주로 살았던 남산 밑에는 술 빚는 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책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잘못 알려진 오류 바로잡기이다. 1000원권 지폐속 퇴계 이황의 복건과 ‘천자문’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된다. 복건은 양반들이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한가로이 노닐 때 착용한 쓰개로 통한다. 퇴계 이황은 복건을 중들이 쓰는 두건과 같아서 선비나 학인이 쓰기에 적절치 않다며 대신 정자관을 썼지만 1000원권 지폐엔 복건 차림을 한 이황의 초상이 버젓이 들어있다. 한자학습용 으뜸 교재로 통하는 천자문의 오류도 흥미롭다. 천자문은 문장 구성이 시적이고 역사, 천문, 지리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초학자들에게 다양한 교양지식과 표현법을 익히게 할 수 있지만 학동들이 읽기엔 어렵다는 주장이다. 양반의 색다른 민낯과 오류들을 세세하게 풀어헤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왕조시대의 종말과 양반의 몰락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은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일상적인 변화와 함께 서서히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인의 눈물 역사를 바꿨다

    한국인의 눈물 역사를 바꿨다

    한국인 식민지배·전쟁·배고픔 등 경험 독재 시절·경제 성장 땐 눈물의 전성기 권력자 위기감 선호 ‘신파적 눈물’ 이용 대중 동원하고 억압성 감추며 폭력정치 이산 상봉·세월호 참사·박근혜 퇴진 등 역사의 변곡점마다 ‘거대한 눈물’ 존재 우리는 이제 어떤 의미의 눈물 흘리나 한국인은 유독 눈물이 많다. 올림픽 시상대에 선 운동선수들은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약속한 듯 눈물을 흘린다. ‘목포의 눈물’, ‘사랑은 눈물의 씨앗’, ‘난 바람 넌 눈물’ 등 ‘눈물’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대중가요가 차고 넘친다. 1983년 KBS 1TV가 기획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당시에는 전국이 눈물바다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동체 구성원이 단기간에 이토록 많은 눈물을 함께 흘린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야말로 ‘눈물의 민족’이라 할 만하다.신간 ‘눈물과 정치´의 저자 이호걸은 한국인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거대한 눈물의 파도’를 찾았다. 저자는 이를 ‘신파’(新派)라 명했다. 개화기에 상연됐던 신극 이전의 연극을 의미하는 ‘신파극’의 바로 그 ‘신파’다. 저자는 20세기 초반의 신파가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강한 흐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재 시절, 경제성장 때마다 큰 파도가 됐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196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경제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눈물이 철철 흘렀던 이른바 ‘눈물의 전성기’다. 이 시기를 담아낸 윤제균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가 대표적인 사례다. 덕수는 일터에서는 근면 성실, 가족에게는 희생적인 존재다. 흥남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휴전으로 막내를 다시 볼 수 없어 파독 광부 지원을 결심한다. 그곳에서 간호사 영자를 만나고 갱도에 갇혀 생사의 기로를 오간다. 귀국해 가족과 상봉하고, 해양대 입학을 포기하고 베트남에 간다. 인생을 회고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덕수는 말한다. “산다는 게 참 힘이 듭니다”라고. 저자는 우리가 눈물의 민족이 됐던 이유를 ‘결핍’에서 찾는다. 일제 식민 지배와 전쟁과 분단의 경험, 그리고 배고픔의 경험이다. 눈여겨볼 점은 저자가 눈물을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꼽은 사실이다. 한국인의 눈물을 쥐어짰던 신파가 언제, 어떻게 등장했는지 살펴보니 결과적으로 정치와 연결이 되더란 뜻이다.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들은 위기감을 선호한다. 위기감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면 대중을 선동하기 쉬워진다. 눈물이 한국인의 삶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부적절한 정치적 실천을 유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박정희 시대 파시즘을 설명한 부분이 좋은 사례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신파적 눈물을 강력하게 환기하며 파시즘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폭력정치를 밀어붙이며, 한편으로는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억압성을 감추고자 눈물을 이용했다. 국민은 ‘조국 근대화의 눈물’로 이에 응답했다. 수령을 ‘어버이’로 칭하고 압제를 정당화한 북한도 비슷한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눈물로 가득한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민족주의, 파시즘, 사회주의, 자유주의를 풀어낸 저자는 “1990년대 들면서 고생의 시대가 막을 내렸고, 눈물도 마르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중문화가 성공 강박증에 빠져 메마른 긴장감을 재현하는 이유다. 2007년 MBC 드라마 ‘하얀거탑’ 주인공 장준혁(김명민 분)이 그런 사례다. 유명 대학병원 외과의사인 그는 가난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최근 방영한 tvN의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는 바뀐 신파를 여실히 보여 준다. 어린 시절 뇌수술로 감정을 잃고 살아가는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는 감정이 제거된 인물이다. 눈물보다는 공평무사한 법의 집행이 더 중요함을 역설한다. 한국의 근대를 눈물로 읽어낸 저자의 관점은 굉장히 신선하며, 사례로 든 대중문화도 적절하다. 저자는 ‘우리가 한(恨)의 민족이라서’라든가 ‘고생을 많이 해서’와 같은 이유 대신 정치에 따라 시대별로 나타났던 신파를 설명한다. 역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거대한 눈물의 파도가 있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거대한 눈물을 불렀던 세월호 참사, 그리고 감정을 절제한 채 광장에서 외쳤던 박근혜 퇴진을 지나, 이제 우리에게 어떤 신파가 덮쳐올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작은 실수로 인류의 역사가 바뀐다면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작은 실수로 인류의 역사가 바뀐다면

    개는 말할 것도 없고 1·2 코니 윌리스 지음/최용준 옮김/아작/각 권 400·416쪽/각 권 1만 4800원시간 여행은 늘 인기 있는 이야기다. 1949년 수학자 쿠르트 괴델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연구하다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우주 모형을 고안해 낸다.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는 시간 여행을 진지하게 다룬 논문이 물리학 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언뜻 이상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가정을 논리적으로 탐구해 나가는 일 역시 과학이기 때문일까. 과학소설에서도 시간 여행은 가장 사랑받는 소재다. 오늘도 과학소설 속 많은 주인공들이 과거로 떠나 시간모순을 바로잡느라 바쁘다.과학소설의 그랜드마스터 코니 윌리스도 여러 편의 시간 여행 소설을 썼다.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는 옥스퍼드 역사학과 시간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세계에서 시간 여행은 복잡한 계산과 준비 과정을 거쳐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강하’하는 기술이다. 놀라운 기술이지만 현실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늘 돈이 문제다. 시간모순을 허용하지 않는 자연법칙 때문에 과거에서 현재로 무언가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것이 알려지자 시간 여행의 상업적 가능성에 주목하던 기업들은 흥미를 잃는다. 가난한 역사학자와 과학자들에게는 연구비가 필요하다. 사건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부유한 슈라프넬 여사의 ‘코번트리 성당의 완벽한 복원’ 의뢰를 수행하던 시간 여행자들이 과로에 시달린 끝에 작은 실수를 저지르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실수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바뀔지도 모르는 위기가 발생한다. 윌리스 특유의 스타일은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인물들은 끊임없이 떠들고, 주인공은 얼떨결에 사건에 휘말리며,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전개로 흘러간다. 책장을 넘기는 우리는 시차증후군에 걸린 네드만큼이나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건 현실의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그러니 쏟아지는 세부사항들 속에서 굳이 핵심을 발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생생한 역사의 사건 현장을 그냥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시간 여행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읽기만 해도 귀가 따가운 대화들을 쫓아가다 보면 19세기 템스강의 풍경이 눈앞에 선명히 펼쳐지고, 어느새 당신도 보트 위에서 네드와 함께 팔 아프게 노를 젓고 있을 것이다. 말마따나, ‘신은 디테일에 있으니까’.
  • [단독인터뷰]장하준 교수 “최저임금은 운전면허증…사회안전망 강화해야”

    [단독인터뷰]장하준 교수 “최저임금은 운전면허증…사회안전망 강화해야”

    “구조개혁 지지부진한데 최저임금 올리니 반발 살 수밖에”“경제관료들이 규제완화만 외치는 건 한국경제를 망치는 길”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한국경제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회안전망 강화와 산업정책”이라면서 “경제관료들이 서비스업만 강조하고 규제완화만 외치는 건 한국경제를 망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쓴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장 교수는 19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단독인터뷰를 갖고 한국경제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터놓았다. 장 교수는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이 잘 되도록 목소리를 높이는건 하나도 문제될 게 없다”면서도 “기업지배구조가 아니라 얼마나 한국경제에 이바지하도록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대기업정책을 재구성할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거세다. -최저임금은 일종의 운전면허증이다. 최저임금만큼 월급 줄 능력 안되면 구조조정해야 한다. 운전할 능력이 안되는데도 운전하고 다니다가 운전면허증 자격조건 강화한다고 하니까 반발하는 형국이다.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을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구조적인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니까 저임금 노동자와 생계형 자영업자가 다투는 이른바 ‘을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이 25.5%(2016년 기준)다. 독일은 10.4%, 미국은 6.4%밖에 안된다. 생계형 자영업자가 지나치게 많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한 산업정책, 그리고 굳이 해고나 명예퇴직 뒤 굳이 생계형 자영업자가 되지 않아도 되는 복지정책이 같이 가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복지예산을 늘려서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천명했지만 최저임금 말고는 눈에 띄는 정책이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장기적으로는 산업정책이나 복지정책 등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정책과 결합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큰 퍼즐의 하나일 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2016년에 10.4%로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였다. OECD 평균(21.0%)의 절반도 안된다. 정부에서 일자리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하지만 늘릴 수 있는 복지 관련 일자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복지에 과감하게 투자할 생각을 안하고 ‘삼성 아니면 편의점’ 식으로 가니까 일자리가 부족한 것 아닌가. 복지가 잘되어 있는 덴마크 같은 나라에서는 부모와 자녀세대의 소득 상관관계가 20%정도 밖에 안되는데, 미국이나 영국은 그것이 80%나 된다. 부모가 금수저면 십중팔구 자녀도 금수저인 셈이다. 한국도 그런 사회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선 혁신도 없고 발전도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그 중심은 제조업이 되어야 한다. 제조업이 약한 나라치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가 없다. 미국만 해도 제조업 비중이 GDP 대비 10% 부근이지만, 여전히 연구개발의 6-70%를 제조업에서 한다. 한국은외환위기 전 14~16%에 달하던 GDP 대비 설비 투자가 이후 7~8%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 1990년대 이후 새로 키운 산업이 없다. 반도체만 해도 중국이 반도체 국책사업으로 키우고 한국 기술자들 영입하고 있다. 사실 중국 추격은 오래 전부터 나왔던 얘기였다. 정부가 신경 안쓰다가 여기까지 왔다. 많은 경제관료들이 서비스업만 강조하는데 이해를 못하겠다. 중국이 쫓아오니까 서비스업 한다? 서비스업 강국인 미국이나 영국이 그냥 자리 내주겠나. 서비스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왜 중국 쫓아오는 것만 생각하고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쫓아갈 건 생각 안하나.⇒기획재정부 등에선 여전히 의료산업에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의료산업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하지 않은 산업이다. 세계에서 의료로 무역흑자를 제일 많이 내는게 체코조차 의료 부문 국제수지 흑자가 GDP 대비 0.15%가 안된다. 한국은 0.003% 가량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반도체와 자동차에서 거두는 무역흑자가 약 5%다. 의료분야를 지금보다 1000배 이상 키워도 반도체와 자동차 수준이 안된다.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소재산업 등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가령 반도체 만드는 기계는 독일과 일본에서 수입하는데 그걸 국산화할 노력을 해야지 성형관광 얘기나 하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차라리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OECD 꼴찌인 인구 1000명당 2.2명(2015년 기준)이니까 의료접근권 강화에 더 신경쓰길 바란다. ⇒최근 규제완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규제란 기본적으로 기업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조화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기업인들에게 독일에 투자할지 알바니아에 공장 세울지 물어보면 십중팔구 독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독일은 기업관련 규제가 매우 강력한데 왜 그럴까. 규제가 모든 걸 결정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규제를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 말하는건 말이 안된다. 때로는 규제가 새로운 산업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북유럽은 강력한 환경규제를 실시한 덕분에 대체에너지 산업이 발달했다.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을 계기로 주주자본주의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망치는 자본주의의 적이다. 주주들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단기 이윤과 배당만 신경쓴다. 주주자본주의 극단인 미국을 보자. 미국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이윤유보율이 45~55%였는데 지금은 기업 이윤의 90~95%를 배당하고 자사주매입으로 갖다 바친다. 우리나라도 은행자유화와 외국인주주 확대 등으로 장기투자를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느냐. 그게 중소기업 투자 악화와 연관된다 . ⇒문재인 정부 재벌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재벌정책 우선순위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일자리 늘리고 노조 인정하고 갑질 그만하고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걸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그걸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에 무슨 정답이 있느냐. 지배구조는 수단일 뿐이다. 자동차 경주에 비유한다면 중요한건 자동차 경주를 잘하는 것이지 자동차 모양이 아니다. 한국은 미국에서 경영학 공부하고 온 교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각화는 나쁘고 사외이사제는 좋다는 이분법이 횡행한다. 하지만 구글이나 페이스북조차도 차등의결권을 운영한다. 포드는 가족경영회사다. 폭스바겐을 보자. 폭스바겐은 창업자 가족이 대주주이지만 주정부 역시 20% 지분을 갖고 있고 법을 통해 공장폐쇄나 인수합병을 규제한다. 거기다 감독이사회에 노동조합 추천 이사가 절반이다. 폭스바겐의 장기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이해관계자들이 권한을 갖지 않으면 기업이 주주들의 현금인출기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라는 스웨덴에서 발렌베리같은 재벌 가문을 용인하는 이유가 뭐겠느냐. 지금이라도 정부가 차등의결권, 장기 주주 가중의결권, 노동이사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국민연금을 두고 연금사회주의 혹은 관치금융 비판이 나오는데. -노동자들이 낸 돈으로 모은 기금으로 정부가 자본주의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자본가가 주주권을 행사하면 자본주의고 노동자가 주주권을 행사하면 사회주의다? 이중잣대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비싼 식당 오면 부자가 왜 그리 사치스럽게 사느냐고 타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한국은 오랫동안 긴축과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재정정책을 펴왔다.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더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해야 한다.한국처럼 재정 여력이 많은 나라가 없다. 재정적자를 죄악시할 필요가 없다. 재정준칙도 금과옥조가 아니다. 집안살림에서도 빚을 내는게 미래를 위해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가령 병이 났는데 돈 없다고 병을 키우는 것보다는 돈을 빌려서라도 빨리 치료받고 일을 하는게 더 좋을 수 있다. 재정전략만 확실하다면 몇 년 정도 재정적자 감수하고 돈을 풀어서 생산성 높이고 일자리 늘려야 한다.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도 말이 안된다. 국채 상환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국채를 구입하면 그건 자산이 되고 자식들에게 상속도 할 수 있다. 그런 논리라면 대출 받아서 집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식들에게 못할 짓 하는 것인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지 않겠나. -세금을 바라보는 담론 자체를 바꿔야 한다. 세금은 공동구매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국가가 서비스를 공동구매해주는 것이다. 세금이 있기에 고속도로도 있고 철도도 있고 학교도 있고 국방도 있다. 북유럽은 소득세도 많이 내지만 부가가치세도 20~25%까지 낸다. 모두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국민 모두를 위한 복지와 안전, 환경을 추구하는 것이다. 대담 전경하 경제부장 lark3@seoul.co.kr정리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英항구도시 브리스톨서 유년 보내며 전문대 수준의 교육 받아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英항구도시 브리스톨서 유년 보내며 전문대 수준의 교육 받아

    1살 많은 누나와 두 명의 남동생과 자라 생가는 단독주택 두 채 붙인 ‘땅콩주택’ 지금도 英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형태 베델 할아버지는 바지선 운항하던 선주 어려서부터 일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아 사립학교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서 공부 지역 상인조합 ‘기술인력 양성’ 위해 운영 1904년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삶을 정리한 최초의 기록인 신보 1909년 5월 7·8일자 ‘배설공(公)의 약전(略傳)’ 기사와 베델 연구 1인자로 불리는 정진석(79)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의 자료, 수전 제인 블랙(62)과 토머스 오언 베델(59) 등 베델 후손들의 증언, 서울신문 취재 결과 등을 모아 연대기순으로 소개한다.베델은 1872년 11월 3일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1873년에 출간된 ‘1872년 브리스톨 인명록’에는 그의 출생지가 ‘Egerton villa, Egerton Road, Horfield’로 돼 있다. 우리 식으로 읽으면 ‘호필드 지역 에저턴 거리에 있는 에저턴 빌라’다. 호필드는 브리스톨 중심에서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150년 전 주소를 지금 영국 행정구역에 맞춰 분석해 보니 ‘에저턴 로드’는 현재 비숍스톤에 편입됐고, ‘에저턴 빌라’는 주소명에서 빠져 있다. 서울신문은 베델 후손들의 조언을 토대로 브리스톨시 아카이브(기록보관소)를 찾아가 150년 가까운 주소 변경 과정을 추적해 그가 태어난 곳이 현재 ‘비숍스톤 에저턴 거리 54번지’임을 확인했다. 지금 주소로는 ‘54 Egerton Road, Bishopston, Bristol’이다.1860년대 지어진 베델의 생가는 단독주택 두 채를 붙여서 지은 ‘세미디태치트 하우스’로, 우리로 따지면 ‘땅콩주택’에 해당한다. 한 집은 2층으로 돼 있고 방 세 개에 거실 두 개 정도를 갖췄다. 지금도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형태인데, 경제적으로 중산층 가족이 산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만난 한 마을 주민은 “(베델 생가를 포함한) 에저턴 거리의 주택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60년대에 빠르게 늘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말했다. 베델의 할아버지인 토머스 베델은 브리스톨 인근 소도시 클리브덴에서 바지선(단거리를 다니는 화물 운반선)을 운항하던 선주였다. 그는 아들 토머스 행콕 베델(1849~1912)이 8살 때인 1857년 사망했다. 토머스 행콕은 21살이던 1870년 영국 성공회 전도사인 존 홀름의 딸 마사 제인 홀름(1848~?)과 결혼했는데, 당시 그는 맥주회사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토머스 행콕은 브리스톨에 살면서 네 차례 주소지를 옮겼지만 비숍스톤 일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다니던 회사가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등에는 ‘베델이 유대인이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 교수는 “19세기 유럽 내 유대인들의 생활상을 감안할 때 그의 할아버지가 바지선 선주였다거나 외할아버지가 기독교 전도사였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도 “할아버지(베델)는 일본 고베의 기독교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고, 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의 삶과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토머스 행콕은 슬하에 네 명의 자녀를 뒀다. 첫째가 장녀 미니(1871~?), 둘째가 장남 어니스트 토머스(베델), 셋째가 차남 허버트(1875~1939), 넷째가 삼남 아서 퍼시(1877~1947)였다. ‘배설공의 약전’은 베델에게 두 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다고 했고, 지금도 국내 자료 상당수에는 베델이 ‘3남 2녀 가운데 장남’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토머스 행콕의 유언장이나 베델 후손의 증언을 살펴볼 때 그에게 여자 형제는 미니 한 명 뿐이었다. 토머스 행콕이 1870년 결혼 당시 작성한 신고서에는 그의 직업이 ‘회계원’으로 기재돼 있다. 2년 뒤 베델이 태어났을 때 제출한 출생신고서에는 ‘맥주회사 서기’로, 셋째 허버트가 태어났을 때는 ‘상업 서기’로, 넷째 아서 퍼시 때는 다시 ‘회계원’으로 쓰여 있다. 그가 맥주회사에서 금전 관련 업무를 도맡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1881년 영국에서 실시된 인구 센서스와 베델이 학교에 들어간 1885년 9월 작성된 생활기록부에는 토머스 행콕의 직업이 ‘맥주회사 지방순회 영업사원’으로 바뀌어 있다. 이때는 사무실에서 회계 일만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주변 지역을 돌며 펍(영국식 맥줏집)을 관리했던 것 같다. 약전에는 베델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마지못해 사업에 나섰다고 돼 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배델의 할아버지인 토머스는 선박 소유주로 일종의 자본가였다. 최소한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신문이 찾아낸 베델 생가를 보더라도 그가 어린 나이에 장사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가정 형편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베델의 손자 토머스 오언은 “19세기 영국에서 (베델처럼) 사립학교 교육을 받거나 사업차 일본에 건너갈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면서 “할아버지(베델)는 일본에 가서도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즐겼다고 들었다.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라고 전했다.베델은 시내 중심부의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에서 공부했다. 이 학교는 1856년 ‘브리스톨 무역·광산학교’로 문을 열었다. 이름이 말해 주듯 실업학교였다. 하지만 1885년 브리스톨 지역 상인들의 길드(동업조합)였던 ‘벤처상업협회’가 이 학교를 인수해 시설과 교육 과정을 고치고 교명도 바꿨다. 약전에는 베델이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런던으로 옮긴 뒤 거기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영국에 사는 동안 브리스톨을 떠나지 않았다. 벤처상업협회는 브리스톨 지역 상인들을 대표하는 이익단체로, 1551년 영국왕 에드워드 6세에게 특허를 받아 법인 조직이 됐다. 영국은 17세기부터 글로벌 무역과 상업을 거머쥐며 ‘대영제국’으로 번영했는데, 벤처상업협회도 나날이 커지는 국력에 편승해 장사일로 큰 자본을 모았다. 이 길드는 유럽 각지 명문 대학들을 돌며 우수 시설과 커리큘럼을 벤치마킹한 뒤 브리스톨 시청 맞은편에 새 건물을 지었다. 당시 베델이 살던 지역에서 유일한 학교였다. 1885년 9월 신학기부터 신청사에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베델은 이때 입학했다. 이 학교는 현장 기술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지금의 전문대학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다. 시 교육위원회가 작성한 학업 성취도 평가 자료를 보면 베델은 1885~1886년 학기 시험에서 수학 등 세 과목을 통과한 것으로 나온다. 이 학교는 베델이 졸업한 지 6년 뒤인 1894년 ‘머천트 벤처러스 공업대학’으로 또 한 번 명칭을 바꿨다. 이후 브리스톨대학과 서잉글랜드대학, 시티오브브리스톨 칼리지 등으로 나뉘어졌다. 이 가운데 브리스톨대학은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지역 최고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베델이 다녔던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 건물은 지금도 브리스톨시 청사 옆에 남아있다. 지금은 내부를 리모델링해 주거 시설과 오피스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글 사진 런던·브리스톨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여기는 중국] 불우한 가정 도와주려다 절도사건 범인 잡은 경찰

    불우한 이웃을 도우려 가난한 가정집을 방문한 경찰이 그곳에서 도리어 장기간 미해결인 채로 남았던 형사사건을 해결했다. 16일 중국 지역 신문 양쯔 이브닝 뉴스에 따르면, 장쑤성 롄윈강시 경찰들은 지난 6일 선물과 현금을 들고 남성 루씨의 집을 찾았다. 루씨는 심각한 간 질환으로 수년 동안 몸져 누워있었고, 그 여파로 가족들도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때 집안을 살피던 경찰 한 명이 깜짝 놀랐다. 루씨 집에서 유명 브랜드의 신발 여러 켤레가 눈에 띈 것이다. 경찰이 신발 주인이 누구인지 묻자 루씨는 자신의 아들 것이라 답했다. 그러나 무언가 미심쩍었던 다른 경찰은 관할 지역 식당 주인 러우씨가 가게에서 비슷한 신발들을 도난당했다고 신고한 사실을 기억해냈다. 경찰에게 연락을 받고 루씨 집에 도착한 식당 주인은 “신발 3켤레를 잃었는데 그 중 나이키 신발 2켤레가 경찰이 루씨 집에서 발견한 신발과 똑같았다”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은 러우씨의 말을 인용해 “지난해 말부터 그는 음료수병, 신발, 현금 등 1만 위안(약 168만원) 상당의 절도사건을 5차례 신고했다”고 전했다. 한편 루씨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추가로 신발 3켤레, 20개가 넘는 핸드폰, 칼 몇 자루와 루씨 소유가 아닌 지갑 여러 개를 발견했다. 이후 루씨의 아들을 심문한 경찰은 물건들이 모두 훔친 것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현재 루씨의 아들은 추가 조사를 위해 형사 구금됐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공연리뷰] 빅토르 위고 원작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리뷰] 빅토르 위고 원작 뮤지컬 ‘웃는 남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 ‘낙원’과 ‘지옥’이 동시에 문을 열었다. 같은 건물의 CJ토월극장에서는 화려한 군무로 유명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지난달부터 공연 중이고, 한층 아래 위치한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부자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외치는 뮤지컬 ‘웃는 남자’가 지난 10일부터 공연을 시작했다. 상반된 이미지의 두 작품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대형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더욱 부각됐다.하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다. 17세기 영국,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을 만드는 인신매매단에 의해 기이하게 찢긴 입을 갖게 된 주인공 ‘그윈플렌’(박효신·박강현·수호 분)을 통해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존엄성을 조명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박효신·박강현·수호… 3인 3색 ‘웃는 남자’는 ‘브로드웨이 42번가’와도 견줄 수 있는 화려한 연출을 선보이며 175억원의 제작비와 5년여의 제작과정을 실감하게 했다. 1부 시작과 함께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가 그윈플렌을 버리고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는 장면이나 귀족들의 가든파티 등은 뮤지컬이 선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빈민 유랑단과 귀족사회의 무대는 밤낮이 바뀌듯 절묘하게 전환되며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앤 여왕’(이소유·김나윤 분) 등 조연들의 코믹 연기도 분위기를 한층 더 띄운다. 이야기의 전환점은 1부 마지막에서 그윈플렌의 출생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이다. 2부는 자신의 출생 비화를 알게 된 그윈플렌이 귀족사회에 저항하며 이야기 전체를 주도하게 된다. 1부에서 예상보다 일찍 작품의 중요한 비밀이 밝혀지는 만큼 관객으로서는 2부에서 반전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2부에서 그윈플렌에게 모든 포커스가 집중되는 이유다. 관객 입장에서는 박효신과 박강현, 아이돌 그룹 EXO의 수호가 각각 다른 매력의 ‘그윈플렌’을 선보인다는 점이 또 다른 관람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10일 초연에서 무대를 이끈 박효신은 정상급 가수다운 가창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너무 많은 이야기… 완급 조절 필요 하지만 1·2부 전체를 조명해보면 무대 위의 긴장감을 적절히 풀고 조일 수 있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웬만한 영화제작비를 넘는 물량이 투입됐고, 향후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대형 뮤지컬답게 무대 위에 모든 것을 쏟아 낸 작품이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관객으로서는 다소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윈플렌이 부르는 ‘캔 잇 비’(Can it be), ‘나무 위의 천사’ 등이 뮤지컬의 흥행공식과도 같은 ‘넘버’(곡)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지도 관건으로 보인다. 공연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작품을 알리는 과정에서 뮤지컬 곡들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8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날 수 있고, 9월 4일~10월 28일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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