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가난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45
  • 생계·의료·주거급여 차별받는 청춘들… 어른이면 청년을 품어라

    생계·의료·주거급여 차별받는 청춘들… 어른이면 청년을 품어라

    노인 빈곤·저출산 직결되는 청년 빈곤… 청년·기성세대·전문가 한자리에 모이다 청년 빈곤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의 독립이 늦어지면, 그 짐은 부모 세대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지난해 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 14% 이상)로 진입한 상황에서 ‘가난의 대올림’은 노인 빈곤의 확산을 가속화하는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 저출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불안한 일자리와 월세에 허덕이는 청년들은 이미 연애와 결혼, 출산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 2분기 합계출산율은 0.97명을 기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우리나라 저출산의 원인과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보면 출산율이 1.05명으로 유지될 때 2060년 국내총생산(GDP)은 3.3~5.0% 감소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앞면과 뒷면의 구분이 무의미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청년 빈곤은 노인 빈곤과 저출산으로 직결되고 결국 우리 사회의 활력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서울신문은 지난달 19일 광화문 본사에서 기현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장,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과 함께 대담을 진행했다. 청년은 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거급여 등 주요 복지 대상에서 차별받고 있는데, 이 지점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청년 빈곤 →우리 사회 청년 빈곤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 위원장 청년 빈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게 문제다.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보면 청년은 빈곤하지 않다. 단지 소득 빈곤으로 청년 빈곤을 얘기할 수 없다. 기성세대가 열심히 일해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지금은 불가능하다. 심리적 빈곤도 논의돼야 한다. 소득이 낮고, 저학력 청년일수록 사회적 관계 단절이 쉽다. 문화자본과 관계자본 등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소득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청년 세대 내에서도 빈곤 청년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의욕이 상실되며 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최 소장 과거가 성장시대였다면 지금은 성장이 거의 멈췄다. 청년 빈곤은 과거와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엔 열심히 일하면 월세, 전세, 자가로 한 걸음씩 상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거 사다리가 끊겼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부터 그랬다. 그때 가난한 청년은 지금 가난한 중년이 됐고, 그들의 자녀가 지금의 20대다. 지금의 중년들이 자녀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 오랜 시간 누적된 빈곤의 결과다. 문제는 다른 아동, 노인 빈곤과 달리 청년은 가정의 책임으로 여전히 두고 있다. 사회는 바뀌는데 기성세대 인식이 바뀌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기 센터장 청년 빈곤을 해석할 때 다차원이라는 키워드가 제일 중요하다. 소득 부족에서 발생하는 박탈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서울시 청년수당을 시작할 때 ‘청년에게 시간을 드립니다’라는 키워드를 사용했다. 청년들은 시간 빈곤을 느꼈고,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권이 없었다. 시간 빈곤에 처한 청년은 사회적 관계에 쏟을 여력이 없었다. 인적 자본도 굉장히 줄고, 자신의 선택지도 줄 수밖에 없었다. 악순환이 발생하는 구조다. 일본에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발생한 이후 최근 청년 나이를 40세로 본다. 우리 사회도 그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주거 빈곤 →가난한 청년이 독립해 처음 마주하는 건 주거 빈곤이다. 해결책이 있을까. -최 소장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1960년대 산업화 시대에 공장과 대학을 늘리면서 청년 주거 문제는 신경을 안 썼다. 미국 등 선진국은 대학을 만들면 기숙사는 의무로 지어야 한다. 주거 문제를 학생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의무가 없다. 주거 문제의 책임을 중앙정부와 지자체만 지면 안 된다. 대학과 기업 모두 나눠서 져야 한다. 교육부가 대학평가를 할 때 기숙사 수용률도 평가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국회의원과 시의회 의원, 구청장들도 나서야 한다. 청년 주거 지원 대상도 잘못됐다. 결혼한 지 5년이 안 된 신혼부부가 주요 대상인데, 이미 자기 집을 소유한 이들이 44.7%(2017년 주거실태조사·청년가구 19.2%)다. 전체 가구의 자가 점유율이 57.7%인 것을 고려하면 10% 올려 주려고 국가가 힘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고시원 사는 청년 지원책은 거의 없다. 주거급여도 이달부터 부양의무제가 폐지돼 본인이 가난하면 주거급여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지만, 청년은 대상이 아니다. 부모가 수급자면 독립한 청년은 수급 대상이 아니다. 청년은 주거 문제에서만큼은 사회적 왕따를 당하고 있다. -김 위원장 주거 빈곤 당사자로서 서울 와서 8년간 다섯 번 이사했다. 지금도 5평 원룸에 산다. 그런데 청년 주거 정책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걸 체감한다. 서울에서 안정된 공간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노동에 근로기준법이 있듯 주거에도 최저주거선에 대한 법 제도가 필요해 보인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기 센터장 서울시가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을 추진하다가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면에는 집값 문제가 있다. 청년들만 집단으로 살면 시끄러워서 주변 집값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주택 공급에서 청년만 따로 분리하면 안 된다. 청년, 노인, 장애인 분리하지 말고 통 합해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특정 세대만 공격받는다. 주거수당을 (일정 기준을 적용한) 급여 말고 전면적으로 도입했으면 좋겠다. 서울시가 청년을 대상으로 전세자금대출을 고민하고 있는데, 주택 공급 물량도 늘려야 월세 상승을 낮출 수 있다. -최 소장 전·월세 상한제가 조속히 도입돼야 한다. 특히 서울은 시급하다. 뉴욕도 민간임대주택의 3분의2가 상한제 규제를 받는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중심으로 주거 정책이 결정되는데, 지자체에도 정책의 권한을 줘야 한다. 서울시장에게 서울의 전·월세 임대료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 공공임대주택과 주거급여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임대시장 규제는 선진국에선 상식이다. #청년 실업 →청년실업이 문제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기 센터장 일자리의 질과 조직, 문화 모두 중요하다. 여성 청년은 성적 불평등을 겪을 때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6개월간 청년수당을 받는 청년들은 진로를 탐색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일자리 결정에서 자기결정권이 높아지면 청년 스스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힘이 커진다. 청년수당을 받는 청년이 점차 늘어나야 한다. -김 위원장 정권이 바뀌어도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그나마 전 정부처럼 중동에 가란 말을 안 하는 게 다행일 정도다. 고용보험제도를 고쳐야 한다. 지금 청년 세대에게 평생 직장은 무의미하다. 이직이 잦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게 청년 노동의 특성인데 자발적 이직에 따른 실업급여는 지급되지 않는다. 실업급여를 받은 청년이 10명 중 1명(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청년 실업자 가운데 수급 비율은 2014년 기준 3.1%)도 안 된다. 가난한 청년일수록 기술 발전으로 위협받을 확률이 높다. 직업훈련을 받기 어려워 단순노무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질 좋은 직업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공공정책이 필요하다. -최 소장 우리 때만 해도 석사만 따면 연구원에서 정규직 취직이 가능했다. 지금은 박사 학위를 받아도 안 된다. 예전엔 고등학교만 나와서 성실히 일하면 평생 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청년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판이 바뀐 것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본소득 보장 →청년 빈곤에서 기본소득 보장은 의미가 있을까. -최 소장 기본소득을 논의하기에 앞서 기존 복지 틀에서 청년을 배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새로운 논의도 좋지만 이 지점부터 우선 논의를 해야 한다. 청년들도 가난하면 연령 차별 없이 급여를 받아야 하는데, 청년 대부분은 가난해도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를 못 받는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청년은 부모와 함께 묶여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초 복지가 가난한 부모에게만 쏠려 지급되는 형태다. 시행령을 보면 30세 미만 년은 지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교육이나 취업준비 때문에 서울에 와서 따로 살아도 별도 가구로 집계가 안 된다. 통계청은 두 가구로 집계하면서 기초생활보장 대상으로는 한 가구로 분류한다. 서울에 사는 청년과 지방에 사는 부모가 동시에 기초급여를 신청하면 한 가구만 받을 수 있다. 불합리한 조항이어서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수정하지 않고 않다. -기 센터장 청년수당 도입 초기에 대상을 선정할 때 가구소득 기준을 두지 않았다. 미취업 기간만 뒀다. 낙인을 찍지 말자는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위소득 150% 이하로 기준으로 둔다. 청년 세대 안에서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청년끼리도 자산, 소득 격차가 심하다 보니 보편적 수당 지급에 대한 합의가 안 되고 있었다. 부모의 부가 청년에게 이어지고 있고, 청년 세대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있어 빈부격차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본소득으로 청년 빈곤 문제를 돌파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저소득 청년에게 실업수당과 주거수당 같은 다층적 지원을 해야 한다. -김 위원장 다양한 시도 차원에서 기본소득은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우선순위는 필요해 보인다. 청년 세대는 양극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격차를 줄이려면 다층적 복지 정책이 나와야 하고, 더 열악한 청년에게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청년수당은 전국적 확대가 필요하다. 서울시 모델이 바람직하다. 금전적 지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가난한 청년들의 사회적 관계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과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지원도 있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2007년 ‘88만원 세대론’이 등장했을 때 우석훈 박사는 ‘짱돌이라도 던져라’라고 충고했다. 지금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기 센터장 청년들이 이보다 얼마나 더 짱돌을 던져야 하나. 이미 온몸으로 던지고 있다. 사회 진입, 결혼, 출산을 거부하고 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던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청년들의 몸부림을 외면하고 있는 거다. 청년들은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사는 거다. 살기 위해 안 맞는 사회와 제도에 몸을 끼워 맞추고 각자도생하는 모습이다. 청년들이 각종 정책에 참여할 기회를 대폭 열어 줘야 한다. 각종 사회적 기구에 청년 참여를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짱돌을 던질 것만 요구하지 말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 줘야 한다. -김 위원장 짱돌은 혁명을 의미하는데, 1980년대 혁명 방식은 믿지 않는다.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청년에게 권한을 많이 줘야 그게 가능할 것 같다. -최 소장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기성세대가 알아줘야 한다. 어른이면 청년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20대 청년 중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이 생기고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 20대라고 주거급여를 안 주는 것도 문제다.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저같이 목소리를 내는 기성세대는 사회적 힘이 없다.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특별취재팀 이성원·홍인기·민나리 기자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 불평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불평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이 과거에 비해 심해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2017년 주식에 이어, 2018년 서울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산 불평등은 아마 과거보다 더 심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안은 ‘소득 재분배’ 정책이다. 간단하게 말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서 저소득층의 생계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의 실행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세금이 인상되면 인상될수록 부유층을 중심으로 ‘절세’를 위한 다양한 행동이 발생하며, 또 이를 과세하는 과정에서 큰 비용이 수반된다. 또 다른 대안은 ‘교육을 통한 기회의 평등’ 제공이다. 쉽게 이야기해, 부유층 자녀나 저소득층 자녀나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 정책은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 현상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를 억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력한 대안으로 지목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기술혁신으로 인해 전통적인 일자리들이 사라지지만, 정보통신 분야에서 새로운 산업이 흥기하면서 노동시장에 극심한 불평등이 출현했다. 예컨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으로 통칭되는 일부 전공자들은 높은 연봉을 누린다. 하지만, 타이프 라이터나 식자공에 대한 수요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제4차 산업혁명의 수혜가 집중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학벌’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학력별 가계 소득의 격차 확대 현상이다. 2017년 불변 가격 기준으로, 미국 대졸 가계의 연소득은 9만 달러를 넘어선 반면 고졸자 및 고졸 미만 학력 가계의 소득은 각각 4만 5000달러와 3만 달러에 불과하다. 참고로 1966년 대졸 가계 소득은 7만 6000달러, 고졸 및 고졸 미만 학력 가계의 소득은 5만 3000달러와 4만 5000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교육수준에 따른 소득불평등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전미 경제분석국(NBER)에서 발표한 논문 한편은 교육 불평등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1)학자들은 대학 졸업률과 연관을 맺은 유전자 암호(Genetic encodings)를 집계하여 이른바 ‘유전 스코어’를 작성했는데, 유전 스코어가 높은 학생일수록 대학 졸업에 필요한 지적 잠재력을 타고 난 것으로 간주된다.2)더 나아가 이 유전 스코어를 각 가정의 소득과 비교해보았더니, 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즉, 부유한 집의 자녀이거나 혹은 가난한 집의 자녀이거나 대학 졸업에 필요한 ‘타고난 잠재력’은 골고루 분산되어 있었던 셈이다. 연구자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각 가정을 소득 수준에 따라 4그룹으로 나누고, 각 소득 그룹 자녀들의 유전 스코어도 역시 4그룹으로 분류해 16개의 그룹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16개 그룹의 대학 졸업률을 추적하자 ‘불편한 진실’이 속속 드러났다. 먼저 소득이 가장 높은 25% 가정에 태어났지만, 유전스코어 하위 25% 아이의 대학졸업률은 27%였다. 그러나 소득 하위 25% 가정에 태어난 잠재력이 높은 아이의 대학 졸업률은 24%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말해, 가난한 집에 태어난 뛰어난 재능의 아이보다, 부잣집에 태어난 재능 없는 아이가 더 높은 대학 졸업률을 기록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대학 입학 쿼터를 대폭 확대하거나, 혹은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등 여러 대안이 떠오르지만 이게 어떤 결과를 낳고 또 얼마만 한 재원을 필요로 할지 계산이 서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중국에서 사업하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를 인용해 볼까 한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면, 인민은 대안을 만든다.” 정부의 교육 제도 변경에 가장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은 시간과 자금력을 갖춘 부유층일 것이며, 처음 기획했던 의도와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부디 최근 교육 및 경제학계에서 발표된 연구성과를 살려, 잘 설계된 제도를 마련하기를 당부해본다.글 그래프 제공: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 독일월드컵 우승 멤버 이아퀸타 마피아 재판서 3년형 선고

    독일월드컵 우승 멤버 이아퀸타 마피아 재판서 3년형 선고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이탈리아의 우승에 힘을 보탠 빈센초 이아퀸타(38)가 마피아 범죄에 연루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유벤투스 출신이기도 한 이아퀸타는 31일(현지시간) 무려 148명의 피고인이 함께 기립해 판사로부터 120명 이상이 유죄 판결을 들은 레지오 에밀리아 법원의 법정 안에 아버지와 나란히 섰다. 은드랑게타(‘Ndrangheta)란 이름의 이탈리아 남부에 거점을 둔 대형 마피아 조직을 단죄하는 재판이었다. 이아퀸타는 법원이 총기 소지를 불허한 아버지에게 총기 둘을 건넨 혐의가 인정됐다. 검찰은 6년형을 구형했지만 세 판사들은 2년형을 언도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유죄가 인정돼 19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아퀸타 부자는 선고를 들은 직후 “아둔하고 부끄럽다”고 절규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이탈리아 법률에는 피고가 두 차례 항소할 수 있으며 선고가 확정되더라도 이아퀸타가 실제로 감옥 살이를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은드랑게타는 무려 조직원이 6000명이었던 것으로 미연방수사국(FBI)은 추정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칼라브리아가 주 활동 무대였다. 이탈리아 마피아는 유럽 내 코카인 거래의 80%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아퀸타는 이탈리아 대표팀 경기에 40차례 출전해 6골을 기록했다. 2007년 유벤투스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전까지 우디네세에서 대부분 선수 생활을 했다. 2014년 은퇴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말빛 발견] 캐러밴/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캐러밴/이경우 어문팀장

    산페드로술라. 온두라스 경제의 중심 도시지만, 마약 운반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각종 범죄와 폭력, 살인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거기에 가난이 있다. 사람들은 전쟁터를 제외하면 지구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라고 말한다.지난달 12일 160여명이 이곳 고향을 등지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탈출이었다. 목적지는 미국. 안전을 위해 무리를 이뤘고, 긴 행렬이 됐다. 도중에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합류해 몇천 명으로 불어났다. 뒤이어 2차, 3차 행렬까지 생겨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들에게 ‘캐러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캐러밴’은 이전에 사막을 가로지르던 상인 집단을 가리켰다. 낙타에 짐을 싣고 떼를 지어 다녔기에 ‘대상’(隊商)이라고 했다. 성지를 순례하던 이들도, 먼 곳을 여행하던 사람들도 집단과 행렬을 이루며 오고 갔다. 그래야 안전과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이들도 같이 ‘캐러밴’으로 불렸다. 무리, 행렬, 곧 캐러밴은 생존의 방패였다. 이런저런 캐러밴들이 한국어 가장자리에 가깝게 멀게 걸쳐 있다.
  • [사설] 뼈아픈 청년 빈곤, 더는 방치해선 안 돼

    이 시대에 ‘청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아픔이자 상처다. 20~30대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를 거쳐 집과 경력에 희망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칠포 세대’를 자처하고 있다. 청년 당사자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지 안타깝고 참담하다. 지난 21일부터 5회에 걸쳐 보도된 서울신문의 탐사기획 ‘청년 빈곤 리포트’는 우리 청년들의 아픈 현실을 다각도로 조명해 큰 반향을 불렀다.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다 개인회생·파산을 신청한 청년의 절반 이상은 월평균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쳤다. 취업이 힘든 청춘들의 삶에서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지난해 19~24세의 아르바이트 경험률은 76.8%로 알바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청년들로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시간과 기회를 상대적으로 뺏기는 셈이다. 청년 빈곤이 가난의 대물림으로 악순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빈말이 아닌 현실이다. 이런데도 청년들의 아우성에 우리 사회가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지 못하면서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라”는 말을 쉽게 던진다. 최근 정부는 공기관들을 동원해 단기 일자리를 무더기로 풀겠다지만, 제대로 된 일터가 간절한 청춘들에게는 되레 희망고문일 수도 있다. 청년 임대주택을 기피 시설로 몰아가는 이기적인 행태는 가뜩이나 주거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실의의 늪으로 밀어넣는다. 그러니 청년들은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라고 암울한 신세를 자조하며 기성세대에 반감을 쌓는 것이다. 홀로서기조차 어려운 청춘들에게 결혼과 출산의 미래를 설계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청년이 희망을 품지 못하는 국가의 미래는 암흑이나 마찬가지다. 일자리 대책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들의 고통을 우리 사회가 한마음으로 보듬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슬픔이 아름다움에게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슬픔이 아름다움에게

    마리안네 베레프킨은 18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서 네 살 아래인 알렉세이 야블렌스키를 만났다. 베레프킨은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가 일리야 레핀의 문하생 중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야블렌스키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부임했지만, 그림이 좋아 공부를 시작한 참이었다. 그에게 반한 베레프킨은 이 남자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결심했다. 오늘날에는 사랑만으로 자신의 목표를 간단히 포기한 그녀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여성 미술가가 드물었던 시대에 자신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작용했던 것 같다. 가난해서 결혼에 대한 희망을 접었던 야블렌스키는 베레프킨과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맹세했다.두 사람은 미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던 뮌헨으로 갔다. 아내는 전심전력을 다해 남편을 지원했다. 슈바빙 기젤라스트라세에 있던 두 사람의 집에는 여러 국적의 예술가들이 모여 북적거렸다. 아무 걱정 없이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남편은 아내의 기대만큼 빨리 발전하지 못했다. 베레프킨은 괴로워했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남편이 십대 하녀와 관계를 가져 아들을 낳았을 때 그녀는 고통과 함께 환상에서 깨어났다. 베레프킨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붓을 놓은 지 10년 만이었다.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강박적으로. 물감을 다루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심장을 갉아먹는다.” 베레프킨의 그림에는 격정과 공허함이 교차한다. 선명한 원색은 불안한 화음을 이루고, 움직이는 것 같은 굵은 선이 공간을 파격적으로 분할한다. 야블렌스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개성적 세계를 이루었으나 그녀가 두려워했던 대로 미술시장이나 비평계는 반응하지 않았다. 야블렌스키는 성공하자 아내를 떠나 아들의 생모에게 갔고, 빈털터리로 남겨진 베레프킨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여생을 마쳤다. ‘가을의 목가’는 뮌헨 인근 산악 지대에서 그린 것이다. 원경에는 가파른 산봉우리가 겹쳐 있고, 단풍나무들은 폭발한 것 같다. 아기를 어르는 부부는 세상 모르고 평화롭다. 이들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미술평론가
  • 고용 세습 다각 분석 돋보여… 경제 위기 깊게 다뤘으면

    고용 세습 다각 분석 돋보여… 경제 위기 깊게 다뤘으면

    서울신문은 남북, 북·미 관계 보도와 국회 국정감사, 가짜뉴스, 고용 세습 논란 등을 다룬 지난 한 달간의 보도 내용을 놓고 30일 제110차 독자권익위원회를 열었다. 청년 빈곤, 장애인 등 소수자 문제와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의혹 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제언이 이어졌다. 김광태(온전한 커뮤니케이션 회장) 위원장과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나해철(시인), 손정혜(법무법인 혜명 변호사), 심훈(한림대 언론학과 교수), 홍영만(서울여대 초빙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아래는 위원들의 의견이다. -소수자 문제를 다룬 기사들이 돋보였다. 15일자 1면 톱 청년 빈곤이 부양하는 부모에게도 이어진다는 ‘가난의 대올림’ 기사는 2030세대 10명 중 8명이 빈곤하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청년의 어려운 현실을 잘 보도했다. 또 ‘청년 빈곤리포트’ 기획에서는 기자가 직접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겪은 내용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했다. 29일자 마주보기에는 장애인 문화 투쟁기를 실었다.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장애인에겐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걸 잘 보여줬다. 법원의 시정명령이 있었는데도 바뀌지 않았다는 게 기사에 나오는데, 계속 취재해 후속 기사를 실으면 좋겠다.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의혹을 다각도에서 짚어주려는 시도가 좋았다. 25일자 교통공사 고용 세습 논란 기사에서는 직원의 친인척 비율이 높은 건 지하철 특성상 공채로 뽑는 사무직보다 안전업무 등 현장 노동자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보통 친인척 논란이 많으면 채용과정이 불투명하고 특혜가 있었다고만 생각하는데 그 외에도 여러 원인이 있다는 걸 짚는 등 균형 잡힌 시각이 돋보였다. 앞으로도 관련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해주면 좋겠다. -가짜뉴스 관련 심층 기획이 있으면 좋겠다. 과거 소셜미디어는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됐지만 최근엔 오히려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부분도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짜뉴스가 급속히 퍼지는 SNS 시대에 가짜뉴스를 어떻게 잘 거르고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9월 말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1면 전체를 사진으로 넣고 텍스트는 최소화하는 등 비중 있게 잘 다뤘다. 다만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는 점이 아쉽다. 당시 신문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보니 회담 내내 1면뿐 아니라 4~5면까지 계속 기사가 이어지는 등 너무 흥분한 것 같았다. 언론 10곳 중 9곳이 뛰어나가도 1곳은 뒤에서 냉철하게 지켜보면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서울신문이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은 무게감이 약해 아쉬웠다. 서울에서도 검은 연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큰불이었는데 8면에서 다뤄졌다. 2면 정도로 더 크게 다뤘다면 좋았겠다. -경제 문제 심각성을 더 깊이 다뤘으면 한다. 코스피 2000선이 무너졌고 김동연 부총리도 내년 국가 경제가 불확실하다고 전망했다. 반도체마저 무너지면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긴급 특별 진단을 내리고 문제를 제대로 짚어주면 좋겠다. -반복 지적되는 문제인데 제목에 큰따옴표, 작은따옴표, 말줄임표 등 인용부호가 너무 많다. 현장감을 살리는 멘트라면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인용만 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모호한 따옴표 대신 핵심을 풀어 설명하면 좋겠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2018 청년 빈곤 리포트-D급 청춘을 위하여] “청년실업 늘면 사회 불안정…국가는 정책 지원 강화해야”

    [2018 청년 빈곤 리포트-D급 청춘을 위하여] “청년실업 늘면 사회 불안정…국가는 정책 지원 강화해야”

    ‘D급 청춘’의 현실은 잿빛이다. 학자금 대출로 생긴 부채는 늘어만 가지만 언제 직장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직장을 찾는다고 해도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색이다. 터무니없이 올라가기만 하는 주거비 부담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냉정히 앗아간다. 서울신문은 한국보다 앞서 저출산고령화와 청년실업 문제로 고민 중인 일본, 2012년 30.4%였던 청년실업률을 12.9%로 끌어내린 아일랜드, 비교적 청년 정책이 탄탄하다는 프랑스의 전문가들에게 청년빈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봤다. 특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청년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저임금 일자리의 증가 탓에 일하고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을 바꾸려면 주택과 교육 등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각국 청년빈곤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가상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청년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빈곤은 유독 개인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국가가 나서 정책을 만들어야 하나. 필립 오코넬 청년빈곤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이 빈곤한 상태가 지속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는다. 성인으로 가는 과정은 멈추고, 아이를 낳지 않아 저출산 문제로 이어진다. 일자리에 대한 해결 없이 한 달에 1000유로(약 130만원)를 청년 한 명에게 투자한다고 한들 그 청년이 부자가 될 수는 없다. 오니시 렌 일본은 빈곤의 대물림이 발생하고 있다. 가족이 가난해 교육부터 재정까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청년은 불안정하거나 저임금 일자리를 구하게 되고, 빈곤은 결국 자녀에게 전이된다. 열심히 일을 해 벌어들인 돈으로 가족의 생활이 지탱되지 않으면 사회가 이를 해결해 줘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와타나베 히로토 최근 일본이 ‘완전고용’이라고는 하지만 일을 해도 생활이 곤란한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최저임금으로 주 40시간을 근무하면 15만엔(약 150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 정부의 생활보조 기준 금액(13만엔)과 불과 2만엔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청년이 빈곤해지는 구조가 지속되면 일본은 무너질 것이다. #청년빈곤 해결 위한 정책 필요하다 →청년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보나. 오코넬 좋은 일자리가 가장 큰 복지다. 아일랜드의 실업률이 낮아지고 경기가 회복된 것은 외국인 투자와 수출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 법인세 감면도 외국 자본 유지를 위한 정책의 하나로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일자리는 늘었지만 청년층의 임시일용직이나 저임금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자리의 양적 확대만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시무스 맥기네스 아일랜드가 시행한 정책 중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평가되는 것은 청년이 노동시장에 곧장 투입될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인 인턴십이나 직업체험 정책이다. 대표적으로 ‘잡 브리지’라는 인턴십 프로그램이 있다. 회사와 정책에 참여하는 청년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6~12개월 동안 일하면서 경험과 기술을 쌓게 해 주는 제도다. 노동시장으로 곧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후지타 다카노리 요즘 일본 청년들은 3~4년마다 이직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근로빈곤층도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저출산 문제로 이어진다. 청년빈곤 문제가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세대를 유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첫 번째 목표가 돼야 한다. 니콜라 파르바크 프랑스는 청년에게 구직과 관련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가장 먼저 시행한 나라다. 하지만 보조금만 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증명하고 직업상담과 같은 동반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청년빈곤 핵심에 주거비 문제가 있다 →주거비 문제는 청년을 빈곤하게 만드는 한 축이다. 월급의 3분의1을 월세로 낼 정도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후지타 일본도 심각하다. 전체 임금의 절반 정도를 월세로 지출하다 보니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 주거지원금을 도입하고 공공임대주택을 더 확대해야 한다. 적어도 20대에 일을 하기 시작하면 10년 정도 뒤엔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일자리의 청년들은 은행에서 대출도 받지 못하는 처지다. 융자를 내 주는 방식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제임스 드레이 직장을 다녀도 거주할 곳이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이 많다. 가족을 꾸리는 시기가 늦어지고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하고도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도 늘고 있다. 주거·복지 지원금으로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기본소득 지급은 근본 대안이 아니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파르바크 기본소득의 하나인 청년 수당이 시행되기 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저 수당만 지급한다면 청년 취업이나 빈곤 탈출에 대한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본다. 주거 문제, 빈곤에 따른 사회적 비용에 대한 계산이 이뤄져야 한다. 또 상담이나 구직활동을 위한 인력과 재원이 충분히 확보돼 있지 않으면 실패 확률이 높아진다.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방식, 청년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상담을 해 주는 모든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오코넬 기본소득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게다가 한번 정책을 시행하면 거둬들이기가 쉽지 않다. 기본소득을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줘 버린다면 모두의 노동 의지를 꺾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청년빈곤 문제 민간 영역에 둬선 안 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청년빈곤은 청년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파르바크 프랑스는 청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을 만든다면 언제든지 청년들이 거리로 나와 집회를 열 수 있다. 청년에게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드레이 청년 실업자가 늘어나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사회가 된다. 하지만 청년들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쉽게 두드러지지 않고, 정치의 영역에서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하다 직업을 가지고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국가와 기성세대는 이런 삶의 궤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중년층이고, 청년들의 표에 큰 관심을 쏟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5월 낙태금지법 관련 국민투표를 보면 18세 이상 유권자가 지난 선거보다 23% 정도 증가했다. 예전과 비교하면 청년들의 정치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후지타 안타깝게도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사회에서 빈곤은 내전 중인 후진국에서나 겪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기성세대들은 “우리 젊은이들이 굶어 죽을 일은 없다”며 빈곤 문제를 외면한다. 청년빈곤을 비즈니스에 이용하는 아픈 현실도 속속 등장한다. 청년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자와 대부업체, 매우 좁은 공간을 제공하는 셰어하우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적어도 교육, 주택, 복지, 의료, 보육만큼은 민간의 영역에만 맡겨 놔서는 안 된다. 더블린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릴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도쿄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2018 청년 빈곤 리포트-D급 청춘을 위하여] 日 청년실업률 줄었지만… ‘넷카페 난민’ 10년째 그대로

    [2018 청년 빈곤 리포트-D급 청춘을 위하여] 日 청년실업률 줄었지만… ‘넷카페 난민’ 10년째 그대로

    ‘D급 청춘’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었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던 선진국에도 가난한 청춘은 비정규직을 전전했고, 쪽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24년 만에 최고 고용률을 달성한 일본에선 여전히 가난한 청년들이 1평도 채 안 되는 넷카페를 옮겨다니며 하루 방값 1만 6000원을 내며 살고 있다. 일자리를 구해도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성에 시달리는 탓이다.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모범적으로 극복했다는 아일랜드 역시 청년들이 참다못해 거리로 나왔다. 살인적인 집값 상승에 월급의 절반을 월세로 내야 하는 현실에 청년은 “도시를 되돌려 달라”고 외치는 중이다. 프랑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의 자본이 자녀에게 세습되는 과정에서 계층 간 갈등은 굳어지는 모습이다. 청년실업률은 인근 독일, 영국의 2배나 됐다. 세계 곳곳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청년들의 현실을 보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일본, 아일랜드, 프랑스를 찾았다.지난 8월 23일 일본 도쿄 외곽에 있는 가마타역의 한 인터넷카페(넷카페). 1인실 문을 열자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컴퓨터 한 대와 얇은 매트리스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몸을 뒤척이면 팔과 다리가 벽면에 부딪힐 만큼 좁은 이곳의 하룻밤 이용료는 1600엔(약 1만 6300원)이다. 넷카페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PC방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하나둘씩 집 없는 일본 청년들이 이곳에서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넷카페 난민’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2007년 당시 경제 위기의 여파로 기업들이 파견 노동자로 일하던 청년들이 대량 해고되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청년들은 넷카페에 남은 것이다. 한국에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가 있다면, 일본에선 넷카페가 있었다.문제는 경기가 호전됐다는 지금도 일본의 청년들은 넷카페를 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실업률은 2007년 7.7%에서 지난 8월 4.1%까지 절반 가까이 내려갔지만, 청년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낮은 임금과 장기간 노동, 높은 고용 불안정성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개선하지 않는 한 청년의 주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울 거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도쿄만 놓고 보면 넷카페 난민은 증가하고 있다. 도쿄도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4000여명이 도쿄의 넷카페에서 살고 있었다. 2007년 일본 노동후생성이 집계한 2000명(도쿄 기준)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도쿄도 집계를 보면, 13.5%만이 실직 상태였고 나머진 86.5%는 직장이 있었다. 파견직(34.7%)과 아르바이트(35.5%), 계약직(4.4%) 등 비정규직이 74.6%였으며, 자영업자는 5.2%, 정규직은 4.5%였다. 연령대별로 보면, 30대 연령층이 39%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29%, 40대가 17% 순이었다. 39세 이하 청년은 50.8%였다. 청년들이 넷카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낮은 임금과 높은 집세 때문이다. 도쿄에서 4.5~7평 크기의 원룸을 구하려면 월평균 7만~8만엔(약 71만~82만원)이 필요하다. 넷카페 난민의 평균 소득은 11만 4000엔(약 116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수입의 80%를 월세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보증금도 문제다. 처음 집을 구할 때 보증금 등으로 최소 30만엔(약 306만원)이 필요한데, 도쿄의 비싼 물가를 고려하면 이 돈을 모으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도쿄도 집계에서 넷카페 난민의 62.8%가 초기 비용 마련이 어려워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도쿄도 차원에서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초기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쿄 챌린지넷을 운영 중이다. 6개월 이상 거주지 없이 도쿄에서 사는 주거 난민에게 3달간 저렴한 가격에 집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현지 시민단체인 도쿄챌린지넷 오다 도모오 소장은 “넷카페난민을 위해 도쿄 내 100개의 원룸에서 하루 500엔(약 5100원)으로 머물며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면서 “하루 평균 2000엔(약 2만 4000원)인 넷카페에 머물 때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물론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월 15만~16만엔·약 153만~163만원)을 올리거나 불안정한 일자리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청년 주거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주거 빈곤 지원 단체인 비영리법인 모야이의 오니시 렌 이사장은 “대기업과 탄탄한 중소기업은 정년보장과 복리후생을 점차 줄여 나가고 있으며, 최저임금(평균 874엔·약 8900원)을 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블랙기업은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 노동 지원단체인 비영리법인 포세의 와타나베 히로토 사무처장은 “일본 청년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데다 수당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블랙기업 때문에 청년층이 느끼는 노동의 질은 현저히 떨어져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려면 블랙기업에 대한 감시와 더불어 현재 평균 874엔(약 8900원) 수준인 최저임금을 1500엔(약 1만 5300원)까지 점차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 사진 도쿄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대부업 이용자 8명 중 1명은 20대…연체율은 가장 높아

    대부업 이용자 8명 중 1명은 20대…연체율은 가장 높아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20대 청년이 전체의 12.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연체율이 가장 높았다. 30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연령대별 대부업 개인신용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대부업체 상위 20개사에서 대출받은 20대는 22만 6915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대출잔액은 8321억원이었다. 1인당 평균 367만원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차주를 보면 20대는 12.4%, 30대 29.9%, 40대 33.1%, 50대 19.7%, 60대 이상 4.8%이었다. 연체율은 20대가 7.0%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6.6%로 뒤를 이었다. 40대는 5.7%,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5.2%였다. 아울러 법정 최고금리 24% 이상의 초고금리를 부담하고 있는 20대도 19만 5000명에 달했다. 전체 대출잔액(8321억) 가운데 초고금리에 해당하는 대출잔액이 7210억원이다. 대부업을 이용하는 20대 가운데 85.9%가 초고금리에 시달리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2018 청년 빈곤 리포트’ 시리즈를 통해 가난한 청년들이 학자금이나 생활비 때문에 제2금융권에 손을 내민 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서울신문 10월 24일자 1·8·9면> 김 의원은 “청년 실업 등으로 신용등급 낮은 20대가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고 금리가 높은 대부업체로 내몰리고 나서 상환능력이 떨어져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금리가 낮은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청년층 대상 저금리 대출제도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WHO 오염된 공기로 전 세계 수십 만명 사망

    WHO 오염된 공기로 전 세계 수십 만명 사망

    오염된 유해 공기로 인해 세계적으로 해마다 60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급성 하기도 감염 등으로 사망하고, 전 세계 어린이들의 93% 이상이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가할 수 있는 초미세먼지인 P.M 2.5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9일 보고서를 통해 오염된 유해 공기가 세계 수십 억 명의 어린이들의 지적 능력을 손상시키고 수 십만명의 사망을 초래한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는 “세계 아동의 90%인 18억명의 아이들이 유독한 공기를 호흡해 결국 다음 세대 공중보건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유해한 나쁜 공기 문제는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 모두에 걸쳐 있다”면서 “저체중, 신경 발달 부진, 천식 및 심장병 등을 유발시킨다”고 지적했다. 오염된 공기의 치명적인 부정적인 영향은 어린이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미친다. 오염된공기는 조숙아 및 미숙아 출산을 유발시키고, 나이 들어 각종 심장 질환의 발병을 일으킨다고 WHO 보고서는 밝혔다. 테드로스 아드하농 사무총장은 “모든 어린이들은 깨끗한 공기를 호흡해 제대로 성장하고 잠재력을 발휘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디언에 보낸 설명서를 통해 대기오염을 “신종 담배”라고 지칭했다. 오염된 유해 공기를 단순히 호흡하는 행위만으로도 1년에 700만명이 죽고 수십 억명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담배,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나쁜 공기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다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는 가난한 나라들에서 난방 및 취사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나무와 등유 등에서 나오는 악성 물질들이 어린이들에게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면서 각국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가디언은 이날 이 보고서를 인용해 “영국의 대다수의 도시들도 공기 오염에 있어서 법적 기준치에서 미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부 당국의 행동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각국 당국이 나빠진 공기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절감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국기로 환생한 제국의 영화, 앙코르와트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국기로 환생한 제국의 영화, 앙코르와트

    “식상하다, 겨우 앙코르와트라니”라고 생각할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만하다. 해마다 평균 2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중 한국인은 약 30만명 내외다. 어림잡아 한국인 500만명은 이제 앙코르와트를 다녀왔다고 봐야 한다. 캄보디아 열기라고나 할까. 앙코르와트는 마땅히 가봐야 하는 관광지가 된 지 오래다. 온몸이 녹을 듯한 열기 속에서 밀림 한가운데 우뚝 선 인류의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일은 새삼스럽지도 않다.그런데 앙코르와트가 늘 이런 관광 명소였던 것은 아니다. 앙코르와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캄보디아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의 힘이다. 정글에 버려져 폐허가 된 크메르의 유산을 프랑스 생물학자 앙리 무오가 ‘발견’해서 유명해졌다고 하지만, 이도 사실이 아니다. 17세기에 불교 성지를 찾아가던 일본 승려 겐료 시마노도, 샤를 에밀 부유보 같은 프랑스 선교사들도 앙코르와트를 갔다. 앙코르 포함해 캄보디아 전역을 조사하던 탐험대의 모험담이 출간되자 많은 자료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런 모험담과 개별 여행가들의 이야기가 ‘세계여행’(Le Tour du Monde·1892년 창간)이란 잡지에 소개되면서 그야말로 프랑스 전역에 캄보디아 여행 붐이 일었다. 제국주의자들이 지닌 ‘문명’이란 잣대로 보면 미개하고 가난한 자신들의 식민지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이 있다는 것은 자못 신기한 일로 여겨졌다. 오리엔탈리즘이 ‘관광’이라는 새로운 단계의 여행과 만나 서구에 만연하게 된 셈이다. 앙코르와트의 윤곽을 단순화해 캄보디아 국기의 도안으로 만든 것이 프랑스 식민주의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캄보디아 국기는 붉은색 바탕에 푸른색 띠를 가운데 두르고, 중앙에 앙코르와트 도안이 놓인 형태다. 앙코르와트는 중앙에 5개의 탑이 있지만, 국기에 표현된 건 3개의 탑인데 이는 정면에서 보이는 형상으로 도안한 탓이다. 국기의 색깔은 바뀌었어도 식민지 시절 프랑스가 만든 앙코르와트의 도안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식민지의 명성이 제국의 명성을 좌우한다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명제에 따르면 앙코르와트가 유명해질수록 프랑스 제국주의의 위세는 더 당당해졌을 것이다. 물론 제국의 명성과 식민지 수탈의 오명은 반비례했겠지만 말이다. 1907년 프랑스가 당시 태국령이던 앙코르 일대를 캄보디아에 돌려준 뒤 앙코르와트는 더욱 유명해졌다. 식민지가 되기 전 폐허로 방치했던 앙코르와트를 캄보디아 사람들이 국가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자신들의 빛나는 전통을 기억하기 위함일까? 식민의 유산일까? 어느 쪽이든 미술은 충분히 국가를 표상할 만하다. 앙코르와트는 본디 비슈누신에게 바치는 힌두사원이다. 수리야바르만 2세가 자신이 죽은 뒤 비슈누가 돼 머물 영혼의 집으로 앙코르와트를 세우면서 한 해 30만명의 한국인이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수리야바르만 2세의 사후(死後) 궁전이라는 원래의 건축 맥락은 끊겼지만,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의 깃발이 돼 창공에 펄럭인다.
  • [법인의 활발발] 교회와 절에 출입하지 마십시오

    [법인의 활발발] 교회와 절에 출입하지 마십시오

    근자에 들어 강의장에서 공개적으로 곤혹스러운 질문을 자주 받는다. 종단과 대형 사찰에서 온갖 추문이 끊이지 않는데 과연 시주를 하는 게 맞느냐고 묻는다. 방송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보고 받았을 깊은 상심이 목소리에 묻어 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단호하고 간명하다. “그런 곳에 돈을 보시하는 일은 불법에 어긋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청정하지 못한 승가에 재가불자는 두 가지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그곳에 가서 법문을 듣지 않을 것, 그리고 공양을 올리지 말라는 것이다. 상식과 도덕에 크게 벗어나 세간의 지탄을 받는 그런 절에는 아예 발길을 끊으라는 당부라고 할 수 있다.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말조차 진부한 세상이 됐다. 청정과 헌신은 종교 본연의 빛이다. 그 순결한 빛이 돈과 권력으로 바래고 오염되면 우리 사회의 정신 건강 지수도 그만큼 위험해진다. 고위 성직자들의 추문과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가 말해 주듯이 그만큼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 낸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곪을 대로 곪아 있다. 더이상 신성과 존엄이라는 그럴듯한 외피로 감출 수가 없게 됐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한 치의 오차가 있을 수 없는 법이어서 이 땅의 성직자들은 신자들의 신뢰와 존경을 잃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요 종단의 고위층과 대형 교회와 사찰의 영향력은 여전한 것 같다. 오차 없는 인과응보의 법칙에 아직도 시차는 존재하는가 보다. 아직도 그들의 성소에서 많은 중생과 어린 양들이 출입하면서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찰과 교회의 문제가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 나는 댓글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많은 이들이 성직자들에게 분노하면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토록 사찰과 교회가 심하게 문제가 있으면 발길을 끊으면 될 터인데, 왜 우리 스님, 우리 교회를 외치면서 비호하고 열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런 신자들이 있으니 옳지 못한 성직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질타한다. 맞는 말이다. 그들에게 신자들의 숫자는 곧 돈이고 권력이다. 이미 그들은 부처님과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오직 신자들의 출입만을 염두에 두고 있을 뿐이다. 왜 그런가? 신자들의 숫자가 그들의 재력이 되고, 재력과 숫자는 표가 돼 정치인을 은근히 압박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신자들은 교회와 사찰의 특별한 자본이 됐다. 다시 한번 청정하지 못한 승가에 ‘출입’하지 말라는 석가모니의 단호한 결의를 새긴다. 그러나 현실은 큰 움직임이 없는 듯하다. 왜 그런지 이웃 종교의 도반들과 대화를 나눴다. 먼저 신자들이 스님과 목사들의 말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는다고 한다. 외부의 지적은 우리 절, 우리 교회를 음해하는 사탄과 마군의 소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들에게 성직자는 부처님과 하나님의 대리자다. 그런 신자들에게 의심은 곧 시험에 드는 일이다. “오! 우리를 사탄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진지한 성찰과 합리적 질문을 하지 못한 자에게 믿음은 무지가 되고 기도는 맹목이 된다. 다음으로 매우 우려되는 신자들의 행태는 또 있다. 사회적 지위도 있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부당한 사찰과 대형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예배 공간이 주는 ‘재미’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지위와 돈과 학벌이 높은 사람들끼리 존재를 인정해 주고 인정받는, 존재 증명의 분위기에 중독된 신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평범한 사람들은 유명한 아무개를 볼 수가 있어 그걸 자랑스러워한다는 말도 들린다. 종교의 성소에서 연줄을 맺고 건강하지 못한 사업과 사교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 내면에 스민 허위의식을 보는 거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건강한 종교를 위해 이제 신자들이 촛불을 들어야 한다. 종교혁명의 촛불은 광화문광장이 아니다. 먼저 부처와 예수의 뜻을 저버린 성소에 밝힌 촛불을 꺼야 한다. 그리고 가난하고 겸손하고 자애가 넘치는 성소에 촛불을 밝혀야 한다. 종교를 걱정하시는 시민들이여, 부디 예수와 부처가 없는 교회와 사찰에 출입하지 마십시오.
  • 특별재판부·채용비리 국조 해법커녕 여야 원내 수장들 만나자마자 ‘말폭탄’

    특별재판부·채용비리 국조 해법커녕 여야 원내 수장들 만나자마자 ‘말폭탄’

    홍영표 “野 정부 비난… 품격 의심” 선공 김성태 “용비어천가 외치면 되나” 맞불 한국당, 평양선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文의장 “남북 국회회담에 野 참여 의사”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9일 문희상 국회의장 면전에서 원색적인 설전을 벌였다. 두 원내대표는 국정감사로 한 달여 만에 열린 국회의장 주재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구성, 채용비리 국정조사 등의 현안을 놓고 그동안 쌓인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홍 원내대표다. 회동마다 야당에 발언권을 양보했던 그는 작심한 듯 “최근 보면 국회가 넘어선 안 될 금도를 넘어서서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국회 품격까지 의심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원내대표는 9월 평양공동선언 관보 게재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제왕적 대통령제 수준을 넘어서 황제 폐하 수준의 통치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헌법재판소에 평양공동선언 및 남북군사분야합의서 비준과 공포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김 원내대표는 또 “내가 문 대통령 용비어천가를 외치면 홍 원내대표가 나한테 품격을 주시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지켜보던 문 의장이 “심판이 한마디 하겠다”며 나섰다. 문 의장은 홍 원내대표에게 “여당에 제일 중요한 것은 야당을 욕하면 안 된다”며 “여당은 가난한 집의 맏아들 같아서 동생들을 잘 포용하고 모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에게는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 딴죽 걸기, 말도 안 되는 논리와 막말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해대면 국민이 짜증난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조속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 추천과 조명래 환경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한국당은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요구 전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 촉구 결의안 처리를 주장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한편 문 의장은 지난 15일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의회연맹(IPU) 기간 중 북측 리종혁 단장(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한국당의 남북 국회 회담 참여 여부를 물었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김 원내대표가 회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문 의장 측이 전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완전 무상교육땐 1인당 年240만원 절감… 문제는 ‘재원 3조’

    완전 무상교육땐 1인당 年240만원 절감… 문제는 ‘재원 3조’

    2011년 11월 시장 당선 뒤 처음 결재한 서류가 초교 무상급식 예산안이었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와 서울교육청 등이 ‘고교·사립초 친환경 무상급식 계획’을 발표한 29일 시청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무상급식은 ‘정치인 박원순’을 만든 단초였다. 그는 전임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직을 걸었다가 사퇴한 뒤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해 대선주자급이 됐다. 이날 발표대로 2021년부터 서울 모든 고교에서 무상급식이 시행된다면 도입 이후 10년 만에 ‘완전 무상급식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박 시장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고교·사립초 전면 무상급식 카드를 빼든 건 “고교 급식도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넘어갈 때가 됐다”고 판단해서다. 교육부가 당장 내년부터 고교생의 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교과서값 등을 지원하는 무상교육을 단계 도입하기로 했는데 ‘밥값’만 따로 받는 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이미 강원·광주·세종·인천·전남·전북·제주·울산 등 8개 시·도가 초·중·고교 무상급식을 도입했는데 ‘상징성이 큰 서울이 더 밀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했다. 특히 지난 6월 교육감 선거 때 무상 공약 바람이 불면서 울산·인천 등은 무상교복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조 교육감은 “고교·사립초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은 지난 교육감 선거 공약이었기 때문에 (당선됨으로써) 시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무상급식이 시행되면 고교생 자녀를 1명 둔 학부모는 연간 약 79만원쯤 급식비 절약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내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이 도입되면 고교생 1명을 키우는 가구당 가처분소득이 1년에 155만~160만원쯤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고교 무상교육과 급식이 안착한다면 연간 가계 지출을 240만원 정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조 교육감은 “무상급식을 하면 (가계 지출을 줄여 줘) 사실상 ‘서민 감세’ 정책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 교육당국은 무상급식을 통해 급식의 질을 상향 평준화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서울 내 고교의 평균 급식단가는 4699원으로 중학교 무상급식 단가(5058원)보다도 적다. 또 학부모 의견을 반영해 급식비를 정하다 보니 학교별 급식 한끼당 가격이 최대 2000원 이상 차이 나기도 했다. 시와 교육청은 내년 고교 무상급식 단가를 5058원으로 올해보다 약 400원 올릴 예정이다. 취약계층 학생이 급식비를 지원받기 위해 가난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도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 고교생 15.3%(3만 9354명)가 급식비를 지원받는다. 문제는 재원이다. 내년 동대문구 등 시내 9개 자치구에서 고교 무상급식을 시범실시하면 315억 7700만원 정도가 든다. 또 2020년 1582억 2300만원, 2021년 2208억 7200만원 정도 들 것으로 추산된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전국 고교에서 무상급식을 하면 지금보다 연간 9000억~1조원가량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고교 무상교육 예산이 연간 2조원 정도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향후 ‘무상 공교육’에 3조원 정도가 매년 더 든다고 볼 수 있다. 세금을 더 걷지 않는다면 교육과정 개발이나 학교 안전 등 교육 분야의 다른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생긴다. ‘나라에 돈도 없는데 연간 학비가 1000만원 넘는 사립초 급식까지 지원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또 학부모 부담금을 늘리더라도 좋은 식재료로 급식하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고교 무상급식이 도입되면 지원금 내에서 급식을 운영해야 하며 학부모 분담금을 더해 급식 단가를 높이는 행위는 할 수 없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예산은 제로섬 구조인데 무상급식을 우선순위 정책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데는 의문이 있다”면서 “무상급식을 한다면 교육 재정 대신 지자체의 일반 재정을 투입해 다른 교육 정책에는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WHO 사무총장 “대기오염은 담배와 마찬가지…전세계 90% 고통”

    WHO 사무총장 “대기오염은 담배와 마찬가지…전세계 90% 고통”

    “대기오염은 새로운 담배나 마찬가지”라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사무총장이 지적하고 나섰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단순한 호흡으로 매년 700만 명이 사망하고 수십억 명이 해를 입고 있다. 하지만 현 상태에 안주한 스모그가 지구상에 만연해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각종 연구에서 대기오염이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90% 이상이 유독한 공기로 고통을 받고 있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전 세계가 담배와의 싸움에서 한고비를 넘겼듯이 이제 유독한 공기라는 새로운 담배에 관심을 둬야 한다”면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유독한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대기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이는 공중보건의 소리 없는 비상사태”라고 덧붙였다. 또한 WHO의 마리아 네이라 박사는 “개발 도상국의 영유아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다”면서 “3억 명의 사람들이 유독한 가스가 6배 이상인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독한 공기가 손상된 지능과 호흡기 질환, 그리고 암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이들의 미래가 오염되고 있으므로 매우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상태인 것이다. 한편 WHO는 오는 30일부터 내달 1일까지 제네바 본부에서 대기오염과 보건에 관한 첫 번째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각국과 도시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약속할 것이다. 사진=EPA 연합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 캐러밴/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캐러밴/이순녀 논설위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표적인 무역로였던 실크로드는 중국의 옛 수도인 시안에서 시작해 지중해 연안까지 7000여㎞에 이르는 장대한 길이었다. 가장 상징적이었던 교역 품목에서 따와 ‘비단길’이라 이름 붙였지만, 끝없는 모래사막과 거친 초원 등 실제 길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길을 오가며 동서양 무역과 문명교류의 꽃을 피운 이들이 캐러밴(隊商·caravan)이었다.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상인의 행렬을 뜻하는 캐러밴의 유래는 구약성서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됐지만, 그 규모나 유산에서 캐러밴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실크로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21세기 캐러밴’도 존재한다. 고국의 가난과 폭력, 범죄 등을 피해 도보나 차량으로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이민자 행렬을 그렇게 부른다. 2000년대 중반부터 결성된 캐러밴은 멕시코나 미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초기엔 소그룹으로 이동하다 점점 숫자가 늘어나 행렬 규모가 수천명에 이르면서 언론의 관심과 정치권의 주목을 끌게 됐다. 소규모 이민자들이 국경 밀수업자의 트럭을 타고 은밀하게 이동하는 것과 달리 집단을 형성한 캐러밴은 한낮에 공개적으로 움직인다. 지난 12일 온두라스 북부 산데프로술라시를 출발한 캐러밴에 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경 폐쇄와 군병력 배치 등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한때 7000여명에 달했던 행렬은 멕시코 망명 신청과 고국으로의 귀환 등 중도 이탈자가 늘면서 26일(현지시간) 현재 3500명으로 절반가량 감소했지만, 북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날 멕시코 남부의 아리아가에 도착한 이들은 미국 텍사스주 국경지대 매캘런까지 1537㎞를 남겨 두고 있다. 오는 11월 6일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캐러밴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 그는 지난 22일 트위터에 “캐러밴 문제는 국가적 위급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캐러밴을 막지 못한 나라들에 원조 중단을 압박하는가 하면 캐러밴에 신원 미상의 중동인들이 섞여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캐러밴을 막기 위해 반이민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있으며, 멕시코 국경에 현역 군인 1000여명을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엔난민기구 등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교류와 협력의 중개자였던 실크로드 캐러밴과 달리 생존을 건 탈출 행렬인 현대판 캐러밴의 숙명이 안타깝다.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무교동의 밤/손성진 논설고문

    네온사인이 찬란했던 무교동의 밤은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가 넘쳐 났었다. 땅거미가 내리면서 모여든 주당(酒黨)들의 소곤소곤한 정담이 흘러나오던 골목골목…. 40여 년 전 이야기다. 재개발 바람은 대폿잔을 놓고 인생을 논했던 허름한 술집들과 함께 그 시절의 애틋했던 낭만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도록 멀리 날려 보내 버렸다. 제집처럼 드나들던 다방, 포장마차, 낙지골목과 그 속에서 옹기종기 기대며 살던 군밤장수, 구두수선공, 연통수리공…. 잘 있으란 말도 없이 그들은 떠나고 번듯하지만, 도무지 정이 들지 않는 고층빌딩들이 그 자리를 점령했다. 기억마저 희미해져 궁금했던 그때의 무교동 밤거리를 촬영한 진귀한 동영상을 접한 것은 행운이었다.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시계를 잡히고 술을 먹을 만큼 가난했던 때였지만 표정에선 살가움이 넘친다. 대화가 끊겨 가는 사람과 사람, 정은 타 놓은 지 오래된 찻잔처럼 식어 가고, 서푼어치 낭만조차 찾을 길 없이 삭막한 지금. 과연 현재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통속’할 뿐인데 주변과 단절된 채 이익만을 따지며 웃음마저 잃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sonsj@seoul.co.kr
  • 속도 내는 캐러밴… 트럼프 “美 국경에 軍 1000여명 배치” 경고

    멕시코 대통령, 합법적 망명 신청 독려 트럼프, 국경폐쇄 등 초강경 대응 예고 중미 출신의 이민자 행렬인 캐러밴이 미국 텍사스주 국경지대 매캘런까지 1537㎞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000명 규모의 군을 국경에 배치해 이민자 대열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캐러밴은 이날 오후 멕시코 남부의 아리아가에 도착했다. 미 매캘런까지 24시간을 꼬박 걷는다고 가정하면 15일 정도 걸리는 거리다. 캐러밴 본진은 대규모 무리를 이뤄 단속·체포 우려 없이 공개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캐러밴의 강행군에 미 국경은 가까워지고 있지만, 고된 여정 탓에 이탈자가 늘어나면서 캐러밴의 규모는 점차 줄고 있다. 유엔이 지난 22일 국제이주기구(IOM) 보고서를 토대로 추산한 7200여명에서 현재는 3500명으로 감소했다. 멕시코 정부는 이들 이민자들에 대한 합법적 망명 신청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사전 녹화된 담화를 통해 캐러밴이 멕시코 이민 당국에 망명 신청을 한다면 임시 신분 증명 서류와 직업 기회를 주고 이민자 자녀들에게 교육 서비스도 제공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에스타스 엔 투 카사’(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있으세요)로 불리는 이 계획은 우리의 법을 준수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응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러밴의 망명 신청권을 거부하고 국경 폐쇄도 공언하기 시작했다. 또 캐러밴의 미국 입국을 막기 위해 최대 1000명에 이르는 현역 군인을 남부 멕시코 국경지대에 배치하기로 했다. 현역 군인이 남부 국경지대에 배치되는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정부의 고위 관리는 이날 ABC뉴스에 “정부는 대규모 불법 이민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범위한 행정적·법적·입법적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러밴은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온두라스를 비롯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국가에서 폭력과 가난, 정치적 불안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 행렬을 가리킨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2018 청년 빈곤 리포트-D급 청춘을 위하여] 취업난에 눈높이 높다며, 샤워실 온수는 사치라며, 공감 못 얻는 ‘젊은 가난’

    [2018 청년 빈곤 리포트-D급 청춘을 위하여] 취업난에 눈높이 높다며, 샤워실 온수는 사치라며, 공감 못 얻는 ‘젊은 가난’

    서울신문·엠브레인 ‘청년빈곤 인식’ 설문조사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가 발표된 게 1988년이다. 고향을 떠나 도시 노동자로 어렵게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단한 삶을 그린 그의 시집은 시집을 쥔 청년들의 마음 한켠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청년은 청년의 아빠가 또는 엄마가 됐다. 기성세대는 지금의 청년빈곤을 어떻게 생각할까. 젊은 가난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1950~70년대 모두가 가난했던 시대를 넘은 후 고도성장을 경험했고, 1997년 국제통화기구(IMF) 구제금융 사태 등을 극복한 기성세대에게 청년의 빈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세상 탓만 한다는 판단이다. 기존세대의 눈엔 젊은 세대가 고생을 견디거나 이겨내기보다는 회피로만 찾으려는 듯 보인다. 청년의 가난은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며, 그 가난조차도 자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서울신문이 지난달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0대 이상 국민은 가장 빈곤이 심각한 세대로 ‘70대 이상’을 꼽았다. 20~30대가 자신들을 가장 빈곤한 세대로 꼽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청년 빈곤 문제는 늘 후순위로 밀리기 마련이다. 청년 빈곤의 원인 중 하나인 취업난에 대한 세대별 인식 차이는 뚜렷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월 기준으로 8.8%다. 청년(20~30대)은 설문조사에서 자신들의 취업난의 가장 큰 이유를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 등 질 나쁜 일자리가 많아서’라고 답했다. 20대는 질 나쁜 일자리(61.0%)와 불합리한 채용구조(52.8%)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고, 30대는 질 나쁜 일자리(59.0%)를 가장 큰 원인으로 봤다. 취업준비생 김도진(24)씨는 “인턴이나 계약직을 전전하다 결국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중소기업이라도 ‘앞으로 조금씩 나아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반면 40대 이상 국민 10명 중 6명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선호하는 등 청년들의 높은 눈높이’를 취업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40대는 62.7%가, 50대 62.7%, 60대 이상은 60.7%가 높은 눈높이에 취업난의 이유가 있다고 봤다. ‘질 나쁜 일자리’를 원인으로 본 경우는 40대가 36.6%, 50대 31.9%, 60대 이상은 22.6%이었다. 이런 인식 차이는 “중소기업은 사람은 구하지 못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다”, “눈높이를 낮추거나 지방으로 가면 일자리는 널려 있다”, “편한 일만 찾기 때문에 실업난이 심각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년 빈곤층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모든 연령대가 동의했지만, 정도를 두고는 차이를 보였다. 20대는 5점 만점 기준으로 4.56점 정도로 증가한다고 봤지만, 30대는 4.45점, 40대 4.36점, 50대 4.44점, 60대 이상 4.33점이었다. 또 ‘청년 빈곤층의 생활수준이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보나’라는 질문에는 5점 만점 기준으로 20대가 1.92점, 30대 2.00점, 40대 2.23점, 50대 2.21점, 60대 이상 2.28점으로 집계됐다. 세대간 빈부의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 주거 문제와 관련해 ‘미취업 청년은 최저주거기준 이하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이상이 청년(20~30대)보다 2배가량 높았다. 미취업 청년이 사는 곳의 크기가 14㎡(4.3평) 이하여도 괜찮다는 응답은 40대가 8.2%, 50대 6.7%, 60대 이상은 13.1%으로 나타났다. 20대 응답자는 4.1%, 30대는 5.0%만이 4.3평 이하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미취업 청년이 사는 곳에 목욕시설이나 온수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응답도 20대는 전체의 0.9%에 그친 반면 30대는 5.9%, 40대 6.7%, 50대 7.4%, 60대 이상 8.9%이었다. 1인 가구 기준 면적 14㎡(약 4.3평)보다 작은 경우, 전용 입식 부엌과 수세식 화장실, 목욕시설 중 하나라도 없다면 최저주거기준 미달이다. 고시원, 옥탑방, 쪽방, 비닐하우스 등 주택 이외의 거처가 이에 해당한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를 겪고 나서 자리잡은 기성세대는 청년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 정도 상황은 나도 겪어 봤다. 하지만 모두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년 빈곤층을 돕기 위한 책임은 정부(39.7%)에게 있다는 대답이 많았지만, 추가로 재원을 투입하거나 수당을 신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46.1%는 청년 빈곤층을 돕기 위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에 반대했다. 찬반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경우가 35.3%, 찬성한 응답자가 18.6%였다. 반대 의견을 살펴보면, 20대가 35.8%, 30대 47.7%, 40대 46.3%, 50대 51.9%, 60대 이상 60.1%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비율이 높아졌다. 청년 수당이나 급여 등으로 구직 청년을 돕는 정책에 대해서도 전체 응답자의 59.1%가 반대했다. 20대는 45.5%, 30대 59.5%, 40대 61.9%, 50대 71.1%, 60대 이상은 74.4%였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청년 빈곤은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지만, 기성세대와 청년 모두 각자의 시각으로만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며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청년을 돕는 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설문조사 어떻게 서울신문은 청년 빈곤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9월 3~14일 설문조사 전문업체 엠브레인에 의뢰해 온라인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진행됐으며, 신뢰수준은 95.0%, 표본오차는 ±3.1%다. 전체 응답자 중 남성은 506명, 여성은 494명이다. 청년 당사자와 다른 세대의 인식 차이를 들여다보기 위해 20~30대와 40대 이상 응답자 비율을 비슷하게 조정했다. 연령별 응답자 수는 20대 341명, 30대 222명을, 40대 134명, 50대 135명, 60대 이상 168명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