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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시즌 번리 원정마다 달려가 응원, 마라톤 87차례 뛴 셈

    올 시즌 번리 원정마다 달려가 응원, 마라톤 87차례 뛴 셈

    세상에 ‘미친’ 축구 팬은 많다. 이런 사람도 다 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번리의 팬인 스콧 컨리프는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사우샘프턴과의 프리미어리그 25라운드를 1-1로 비긴 다음날 새벽 7시 눈 내리는 터프 무어 스타디움을 떠나 445㎞를 달려 10일 브라이턴과의 26라운드가 열려 3-1 승리를 거둔 아멕스 스타디움까지 달렸다. 자동차들이 달리며 내는 굉음이 싫어 부러 조용한 길을 택하느라 거리가 더 늘어났다. 마라톤 좋아하는 분들은 금세 눈치챘겠지만 열흘 동안 마라톤 풀코스를 이어 뛰면 되는 거리가 조금 넘는다. 때로는 자신처럼 번리를 응원하는데 멀고 낯선 곳에서 사는 이들의 환영과 응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올 시즌 번리의 모든 원정 경기를 뛰어서 보러 다니고 있다. 이유는? 션 다이치 감독의 “다리와 가슴, 마인드”를 대신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번 브라이턴 원정은 BBC에 보도됐는데 사실 그는 이번 시즌 모든 번리의 원정 경기를 달려서 쫓아다니고 있다. 엿새째 노샘프턴에서 레이턴 버자드까지 뛰면서 “7개월째 77일째, 마라톤 풀코스는 87차례 뛴 셈”이라고 스스로 털어놓았다. 동남아에서 20년 동안 자선단체 일을 하면서 그는 가난과 내전 등을 많이 목격했다. 우울증과 내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를 경험했다. 그래서 그는 달리며 이런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한 기금 모금 캠페인 ‘어웨이 데이즈-번리와 달리기’를 진행하고 있다. 기사를 옮기는 동안 내내 궁금했는데 홈으로 돌아갈 때는 달리지 않는다고 했다. 23일 손흥민이 미친 활약을 펼치고 해리 케인과 델리 알리가 돌아올 것으로 알려진 토트넘과 홈에서 27라운드를 벌인다. 물론 컨리프도 그날 관중석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반딧불이 / 안재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반딧불이 / 안재찬

    반딧불이 / 안재찬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려고당신을 처음 고향 마을에 데리고 간 날밤의 마당에 서 있을 때반딧불이 하나가당신 이마에 날아와 앉았지 그때 나는 가난한 문학청년나 자신도 이해 못할 난해한 시 몇 편과머뭇거림과그 반딧불이밖에는줄 것이 없었지 너무나 아름답다고두 눈을 반짝이며 말해 줘서그것이 고마웠지어머니는 햇감자밖에 내놓지 못했지만반딧불이로 별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반딧불이가 사람에 날아와 앉곤 했지그리고 당신 이마에도그래서 지금 그 얼굴은 희미해도그 이마만은환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 한때 나는 반딧불이가 색색의 별처럼 반짝이는 인도의 시골 마을에 살았다. 가로수들이 일렬로 선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밤길을 걷고 있으면 원주민 마을의 소녀가 캄캄한 풀숲 속에서 튀어나와 나마스테! 인사를 했다. 소녀의 눈도 반딧불이처럼 반짝였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벽에 걸어 둔 외투에 반딧불이가 앉아 반짝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이 이가 나를 따라왔을까. 밤은 동화처럼 푸르고 꿈길은 포근했다. 안재찬의 필명은 유시화다. 곽재구 시인
  •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노동 인권·민주화 등 현대사 질곡 관통 ‘세상 속 교회’ 기치로 민주적 가치 실현 분열된 사회, 자비·사랑으로 포용 실천 선종 후 ‘바보 정신’ 재단 통해 유지 이어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여야 4당이 문제 발언을 한 의원 제명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역사전쟁으로까지 치닫는 분위기다. 그 와중에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과 광주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정치적 입장을 앞세운 발언이라지만 민주화운동 폄훼와 왜곡은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5·18 민주화운동을 놓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어디 5·18 민주화운동뿐인가. 김 추기경은 생전 약자 편에 선 채 불의에 강하게 맞선 쓴소리와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1987년 1월 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중 일부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많은 이들은 김 추기경을 떠올린다. ‘김 추기경이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16일은 김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주기가 되는 날. 그날을 중심으로 추기경의 사랑과 배려 정신을 되새겨 실천으로 옮기자는 행사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추모 미사(16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추모 사진전(23일까지 명동성당 지하 1898광장), 유품 전시회(16일~6월 20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기념 음악회(18일 오후 8시 명동성당), ‘내 기억 속의 김수환 추기경’ 토크콘서트(17일 오후 5시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그런데 이어지는 그 추모의 몸짓들이 요란하지 않다. 천주교의 최대 지도자, 시대의 사표, 민족의 양심…. 그 막중한 수식어들만 보더라도 성대한 행사가 있을 법한데 영 딴판이다. 그 조용하고 잔잔한 추모 열기를 놓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들은 귀띔한다.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본받아 우리 삶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그분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김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30여년간 서울대교구는 48개 본당 신자 14만여명에서 197개 본당 신자 121만여명으로 무려 8배 넘게 교세가 불어났다. 그 종교적 위업에서 비롯된 존경과 추모만일까. 김 추기경의 어록을 다시 뒤져 보았다. “교회가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한다”(19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 미사), “항상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살았지만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추기경이란 직책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1998년 서울대교구장 퇴임 소견)김 추기경은 그랬다. 인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 편에 기꺼이 서야 한다고 믿었다. 단순히 종교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현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으며 각 개인의 양심을 일깨워 주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인권과 노동, 생명 사랑의 족적은 너무 혁혁하다. 경제성장이 지상의 과제였던 1960, 1970년대 추기경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1967년 5월 강화도 심도직물의 노조원 해고 사태 당시 김 추기경의 건의에 따라 주교회의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교단 공동 성명서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김 추기경이 처음으로 대사회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다. 이것 말고도 유사한 노동 탄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추기경은 노동자 인권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더 적극적인 사목을 펼쳐야 한다.’ 서울 상계동 철거 사태 등 정부 주도의 반강제적 철거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던 무렵 추기경은 스스로 빈민들의 삶의 현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직접 도시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에 참가해 당시 정부의 정책이 빈민을 양산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1987년 4월 28일 도시빈민사목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지금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바로 그 추기경의 의지를 담아 탄생한 단체다. 그렇게 현대 한국 천주교회를 이끈 주역이었지만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신독재,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외면하지 않고 한가운데서 뚫고 나갔다. 1987년 6월 13일 밤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명당성당에 들어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던진 말은 아직도 쩌렁쩌렁하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그런가 하면 1971년 12월 24일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에선 이렇게 소리쳤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또 1972년 10월 유신 개헌 소식을 로마에서 접하곤 큰소리로 외쳤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랬던 추기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기도를 남겼다.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서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면서 ‘밥이 되고 싶다’고 외쳤던 김 추기경의 아호는 옹기다.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는다. 우리 자신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웃었던 추기경의 유지와 정신을 이은 사랑과 봉사의 물결은 추기경 선종 이후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박신언 몬시뇰이 설립을 건의해 김 추기경이 사재를 털어 2002년 설립된 옹기장학회와 김 추기경의 바보 정신을 이어받아 2010년 설립된 (재)바보의나눔은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갈라지고 분열된 세상을 사랑과 자비로 포용하려는 김 추기경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옹기장학회는 통일 이후 북녘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제 양성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현재 북한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 선교에 뜻을 둔 신학생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 놓고 있다. (재)바보의나눔은 종교와 지역, 계층을 초월해 국내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원한다. 형편이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 돌봄이 필요한 노인, 편견에 휘청이는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등을 돕고 있다.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와 국민을 위해 눈물 흘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지도자.’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김 추기경이다. 물신주의 팽배와 경쟁 심화, 고통을 호소하는 가난한 사람들…. 그 어두운 모습 탓에 김 추기경이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파우아뉴기니 “APEC 정상회의 의전 차량 284대 돌려달라“

    파우아뉴기니 “APEC 정상회의 의전 차량 284대 돌려달라“

    파푸아뉴기니 경찰이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각국 정상들이 이용한 의전 차량 300대 가까이가 반환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되찾지 못한 차량 중에는 랜드크루저, 포드, 마스다, 파예로 등 고급 차종들이 즐비하다. 승용차들이다. 다행히 대당 10만 달러(약 1억 1200만원) 이상 되는 가장 비싼 마세라티 차량들은 반환 받았다. 물론 이들 차량은 수입한 것들이다. 데니스 코코란 파푸아뉴기니 경찰청 총경은 12일(현지시간) 수도 포트 모레스비에서 이들 차량을 찾아내기 위한 특별 수사대를 소집한 뒤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APEC 회의 기간 각국 관료들에게 제공한 284대의 차량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세라티 40대와 벤틀리 3대가 최고의 차량들이었는데 경찰에 따르면 9대는 도둑질 당했고, 몇 대는부품 일부가 사라졌다. 나머지 차량들도 “상당히 파손된 채”로 반납됐다. 지난달 정부 관리들은 차량 대부분이 회수됐고 5대만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는데 축소 보고한 것이었다. 인구 730만명의 이 나라 지도자들은 정상회의를 유치하면 투자와 국제적 관심을 끌어모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회담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로부터 차관을 빌려야 했고, 보안을 강화한다며 호주와 미국, 뉴질랜드의 특수부대 병력을 제공받았다. 당시에도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이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이런 비중 있는 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심했다. 수백대의 관용 차량을 제공하는 것 역시 정부가 돈을 낭비하는 사례란 비난이 쏟아졌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서울광장] 2019년, 김남주를 다시 기억할 때/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2019년, 김남주를 다시 기억할 때/박록삼 논설위원

    1994년 유독 이름 짜한 이들이 많이 떠났다. 1월 문익환 목사가 황망히 떠나더니 다음달 시인 김남주가 떠났다. 그해 봄과 여름엔 얼터너티브 록밴드 ‘너바나’의 리드 보컬 커트 코베인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잇따라 갔다. 긍정·부정 평가를 떠나 각자 자리에서 한 시대의 굵은 획을 그은 거목들의 절명이었다. 상실의 시대였다. 한국사회 변혁을 꿈꾼 청년들에게 김남주(1946~1994)의 빈자리는 유독 컸다. 1980년대 청춘들은 그가 번역한 ‘네루다’를 읽으며 사랑을 배웠고, 그의 시에 담긴 혁명의 서슬 퍼런 결기를 따라하려 몸부림쳤다. 문청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1980~1990년대 그를 읽지 않고선 펄펄 끓던 스물 남짓의 삶을 건널 수 없었다. 학교와 공장의 정문 앞, 그리고 거리 곳곳의 불심검문을 피해 은밀히 김남주를 읽는 건 학살과 저항의 시대를 사는 청춘의 의무였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김남주는 거추장스러운 수사가 필요 없는 혁명가이자 시인 그 자체였다. 1972년 유신시대와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두 차례에 걸쳐 10년 넘도록 감옥을 집으로 삼았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치열하게 시를 썼다. 그가 남긴 시 500여편 중 400여편은 감옥에서 쓴 것들이다. 시집 ‘진혼가’(1984), ‘나의 칼 나의 피’(1987), ‘조국은 하나다’(1988) 등은 그렇게 빛을 봤고,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청년들의 가슴을 두방망이질치게 했다.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해야 한다. 김남주를 제대로 읽기에는, 김남주의 삶을 따라하기에는 몹시 버거웠다. 두려웠다. 많은 청춘들이 홍역을 겪듯 통과의례처럼 김남주를 거쳤고, 자신의 삶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 김남주 바깥으로 멀리 벗어나려 애썼다. 시인이 감옥에서 나왔을 때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붕괴했고, 혁명의 좌표는 사라졌다. 시의 시대는 끝났으며, 민중문학은 유행에 뒤처진 것으로 취급받았다. 그가 떠난 이후 한국 사회 전체가 그로부터 도망쳐 간 이유이기도 했다. 멀리 달음박질친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최근 정치인들 한 무리는 ‘전두환은 구국의 영웅’, ‘5·18 폭동’ 등 망언을 내뱉으며 ‘학살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고, 그 당의 대표라는 자 또한 “(5·18 망언과 관련) 역사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면서 그들을 사실상 두둔하고 동조했다. 군사독재 정권의 후예임을 남들이 몰라줄까 걱정스러웠나. 과감한 커밍아웃이다. 뿐만 아니다. 남북 정상이 만나 포옹하는 시대에 제 역할을 잃은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두 눈 부릅뜨고 있다. 그가 남겨 놓고 떠난 문학판은 또 어떤가. ‘문학의 위기’라는 명제가 무색하게 4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문학상이 범람하는 세상 속이지만 ‘김남주문학상’은 없다. 민중문학의 최정점에 있던 김남주는 가난한 몇몇 시인의 기억 속에만 머물며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고, 다양성을 표방하는 새로운 문학 사조에 떠밀려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에두름 없는 그의 시어들이 너무 거칠고, 너무 전투적이라는 상투적 비판과 함께였다. 출소 뒤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에 대해 “오늘의 현실이 어제와 다르다고 어제의 역사적인 실천과 문학적 대응을 오늘의 잣대로 재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어떤 저의마저 감지케 한다”고 직접 항변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음달 그의 모교 전남대에 김남주기념홀이 만들어진다. 그의 선후배 작가들과 그와 함께 혁명을 꿈꿨던 선후배들이 십시일반해서 4억원 가까운 돈을 만들었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여전히 허전하다. 김남주의 생애와 문학은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 더욱 주목해야 할 가치를 담고 있는 사회적 자산이다. 2019년 김남주를 호명하는 일을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김남주문학상’ 같은 것 하나 만들어서 민중시인 송경동에게 주거나, 거스를 수 없는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낸, 혹은 만들어 낼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는 것도 통일을 염원했던 김남주의 뜻과 맞을지 모르겠다. 김남주에게 부채를 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의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김남주기념사업회 김경윤 회장은 “문학상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오랜 바람이지만 현실적인 문제 탓에 아직까지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가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시 ‘사랑은’ 중) 2월 13일은 ‘사랑의 시인’ 김남주가 췌장암으로 떠난 지 25년 되는 날이다. 2019년 다시 그의 시를, 그의 삶을 기억할 때다. youngtan@seoul.co.kr
  • 꽃망울 터지듯 피어난 가슴 속 이야기… ‘순천 소녀시대’의 인생 그림일기

    꽃망울 터지듯 피어난 가슴 속 이야기… ‘순천 소녀시대’의 인생 그림일기

    3년째 평생학습관서 한글 공부 삼매경 거침없는 리얼리즘… 伊·美 등서 전시회“내 친한 친구 백명자는 학교를 다녔지만 배운 티를 안 내고 나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친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오빠는 나와 사귀자고 연애편지를 줬습니다. 나는 친구를 배신할 수 없어 거절했습니다. (중략) 그런데 그 친구는 내 남편을 좋아했습니다.” (안안심 할머니·78) 핍진한 묘사에 거리낌이 없다. 50대 후반부터 내일모레면 아흔에 이르기까지, 늦은 나이에 글과 그림을 배운 전남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를 엮은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가 출간됐다. 2016년부터 3년째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반에서 공부한 할머니들이 저자다. ‘순천 소녀시대’로 불리는 할머니들은 글공부와 함께 그림책 작가에게서 동그라미, 네모를 그리는 것부터 배워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일기로 순천과 서울 등에서 원화 전시를 열었다. 곧 졸업을 앞둔 할머니들은 이제야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됐다.할머니들은 자기소개서부터 처절하게 가난했던 친정 살림, 시댁과 남편에게서 구박받았던 세월, 아들을 낳지 못해 겪은 설움, 글을 몰라 무시당했던 기억 등을 거침없는 리얼리즘으로 그렸다. 자신을 배신한 친구의 이름도 실명으로 등장할 정도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80년 이상 참았던 표현 욕구가 터져 나온 탓이다. 그 와중에도 엄마만 쳐다보는 금쪽같은 자식들, 시아버지에게 “그러려고 남의 집 딸을 데려왔냐”며 한마디했던 남편 덕에 거의 모든 일기는 ‘지금은 다 잘살고 있습니다’로 끝맺음한다. 할머니들의 인생 일기는 한국을 넘어 외국으로 진출한다. 올해 이탈리아 볼로냐 북페어, 미국 뉴욕,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등에서 전시회가 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초중고생 ‘북한은 적’ 1년 만에 41%→5%…‘전쟁’ 이미지는 여전

    초중고생 ‘북한은 적’ 1년 만에 41%→5%…‘전쟁’ 이미지는 여전

    초·중·고 학생들이 북한을 적이라기보다는 경계하면서도 협력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와 통일부는 지난해 10월 22일~12월 10일 전국 초중고 597곳의 학생 8만 2947명을 대상으로 학교 통일교육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이렇게 조사됐다고 12일 밝혔다. 두 부처는 2017년 548개 학교 학생 9만 1316명을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와 비교했을 때, 1년 전보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대상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답한 학생은 2017년 41%에 달했지만 작년에는 5.2%로 대폭 줄어들었다. 대신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새로 생긴 보기를 택한 학생이 28.2%를 차지했다. ‘협력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답은 41.3%에서 50.9%로 늘었다.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라는 답도 10.8%에서 12.1%로 증가했다. ‘북한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느냐’는 질문에는 ‘독재·인물’이라고 답한 학생이 2017년에는 참여 학생의 49.3%였지만, 2018년에는 26.7%로 대폭 줄어들었다. 반면 ‘한민족-통일’이라고 답한 학생은 8.6%에서 24.9%로 많이 늘어났다. ‘가난·빈곤’(7.2%)이나 ‘지원·협력’(1.7%)이라고 답한 학생도 전년보다 다소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답은 ‘전쟁·군사’(29.7%)였다. ‘통일이 된다면 언제쯤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2017년에는 ‘21년 이후’(31.2%)라는 답이 가장 많았지만, 작년에는 ‘6~10년 이내’(31.3%)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5년 이내’에 통일이 될 것 같다는 답도 2017년 5.1%에서 2018년 16.4%로 늘어났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통일에 대해 신중하거나 현실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은 73.9%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고등학생은 54.6%만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통일이 필요한 이유도 초등학생은 ‘역사적으로 같은 민족이라서’(27.4%)라고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아 ‘당위성’에 경도된 반면, 고등학생은 ‘우리나라의 힘이 더 강해질 수 있어서’(26%)라는 실용적인 이유를 답으로 드는 학생이 가장 많았다. 조사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 학교 내 통일교육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교육부와 통일부는 통일교육 자료 개발 및 교사 전문성 제고 등을 위해 협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여기는 중국] 아들이 설날 데려온 여친 알고보니 ‘보이스피싱’ 사기범

    [여기는 중국] 아들이 설날 데려온 여친 알고보니 ‘보이스피싱’ 사기범

    중국 광둥성 서남부에 위치한 마오밍시(茂名市)에 거주하는 60대 소 씨 부부는 최근 아들과 함께 고향을 찾은 20대 여성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깜짝놀랐다. 춘제(春节) 기간 동안 고향을 찾은 부부의 아들은 결혼할 사이라며 한 여성을 소개했다. 아들이 소개한 여성은 올해 24세의 대학교 3년생 류 양으로 노부부는 큰 눈의 앳된 얼굴을 가진 류 양이 마음에 들었다고 털어놨다. 부부는 곧장 아들과 류 양이 춘제 기간 동안 편안하게 거처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정돈된 방과 음식 등을 장만해 대접했다. 문제는 아들과 류 양이 고향을 찾은 이튿날 발생했다. 저녁 식사 후 소 씨 부부와 아들, 류 양 등 4명은 TV에서 방영되는 명절 프로그램 ‘판쟈제무(反诈节目)’를 시청하던 중 류 양의 사진이 게재된 방송을 시청하게 된 것. 해당 방송은 앞서 중국 각 지역에서 발생, 해결하지 못한 미제 사건을 춘제 기간 동안 특집으로 방영한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내용에 따르면 아들과 함께 찾아온 류 양은 지난 2017년 9월 허난성(河南省) 신야현(新野) 농촌에 거주하는 농민을 대상으로 약 1만 위안(약 165만 원)의 사기 행각을 벌인 보이스피싱 사기범이었다. 특히 방송에 출연한 사건 담당 공안 관계자는 류 양을 가리켜 ‘주도 면밀한 보이스 피싱 사기범’으로 지칭, 가난한 농가를 중심으로 가족을 사칭하는 방식을 통해 사기 행각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갈취한 류 양의 사기 행각은 점차 대범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 씨 부부가 시청한 방송에서는 류 양이 과거 공안국 관계자로 사칭, 평소 안면이 있던 지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8000위안(약 132만 원)을 편취한 사건도 공개됐다. 이 같은 류 양의 사기 행각에 의해 피해를 입은 보이스 피싱 피해자의 수는 집계된 수만 약 10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방송을 시청한 노부부는 곧장 인근에 거주하는 공안국 관계자에게 이 사실을 실토했다. 지역 공안국 관계자는 이후 노부부의 집을 방문, 류 양에게 ‘자수’할 것을 권고했다. 또, 공안국 측은 류 양에게 자수할 경우 형 집행 시 참작 사유가 될 것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양은 소 씨 부부의 지속적인 설득 끝에 자수를 결심, 최근 노부부가 거주하는 지역 공안국을 직접 찾아 자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수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류 양은 “지난 1년 동안 도주를 반복하면서 매일 밤 불편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면서 “정부가 예전과 다르게 정보 통신을 남용한 보이스 피싱 사기범 단속을 매우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다. 매일 조마조마하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자수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자수 후 광둥성 공안국에 인계 수감된 류 양에 대해 소 씨 부부는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테러리스트들의 화학무기 공격 완벽 방호한다

    테러리스트들의 화학무기 공격 완벽 방호한다

    화생방 무기 중 방사성물질로 만들어지는 핵무기는 국제적으로 제조와 생산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그렇지만 생물학 무기는 물론 화학무기도 ‘화학무기금지조약’으로 국제적으로 규제되고 있지만 핵무기에 비해 손쉽게 만들 수 있어 가난한 나라나 테러리스트들에게 활용될 가능성도 높아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고 불리고 있다. 실제로 광신적 종교집단이나 테러리스트들은 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를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무기에 대해 신속하고 효과가 높은 방호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연구진이 기존 제독 촉매보다 효과적인 제독제를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 백경열 박사팀은 지르코늄(Zr) 나노입자를 이용해 독성물질을 거의 완벽하게 제독할 수 있는 촉매 대량합성 기술을 개발했다고 12일 밝혔다. 민군융합기술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결과는 화학 분야 국제학술지 ‘응용 촉매 B:환경’ 최신호에 실렸다.현재 사용되고 있는 제독제는 활성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독성물질이 흡착된 제독제를 제거하는 재처리 과정에서 2차 오염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또 활성탄 기반 제독제는 복잡한 유기물 합성 과정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연구팀은 나노미터 수준의 지르코늄 입자로 구성된 ‘UiO-66’라는 소재를 이용해 100㎚(나노미터) 크기의 금속유기물 골격체(MOF)를 합성했다. 이번애 개발된 MOF 촉매는 기존 활성탄 촉매보다 부피는 6분의 1 수준이고 표면적은 넓어 반응효율은 100배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세계 최고 수준의 제독 성능을 보였다. 또 연구팀은 양자화학으로 계산해 촉매반응 메커니즘을 해석함으로써 기존 제독 촉매가 일회성 사용에 그쳤던 원인도 밝혀냈다. 백경열 박사는 “이번에 개발한 촉매는 화학물질의 독성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어 기존 활성탄 기반 제독제와 함께 사용할 경우 완벽에 가깝게 화학무기 독성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며 “실증화 작업을 거쳐 차세대 방호복, 방독면 개발은 물론 독성이 강한 산업폐기물 처리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보헤미안 랩소디에도 클래식 음악이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보헤미안 랩소디에도 클래식 음악이

    이번 겨울 극장가를 가장 크게 달궜던 영화는 역시 ‘보헤미안 랩소디’다. 소싯적 제일 좋아했던 록그룹이 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주인공들의 탁월한 연기와 당시 공연의 세심한 재현이 인상적이었고, 프레디 머큐리에 집중된 줄거리 구성이 아쉽긴 했지만, 음악 제작과 콘서트에 큰 비중을 둔 배려가 반가웠다. 무엇보다 록 음악을 다룬 영화지만 제목부터 시작해 클래식 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숨어 있다. 우선 제목 ‘보헤미안’에 대해 알아보자. 원래 체코 서부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집시 민족들을 설명하는 말인데 자유분방한 생각과 습성으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도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 특히 예술가들을 일컫는 말이 됐다. 집시들이 주인공인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는 주인공 카르멘과 친구들이 춤추며 부르는 ‘보엠(떠돌이)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 단어가 오페라의 제목으로 쓰인 작품도 있는데,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다.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들의 생활’이 바탕으로 돼 있으며 시인, 화가, 음악가 등을 주인공으로 하여 파리의 가난한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랩소디’는 우리말로 광시곡이라 풀이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구성으로 된 음악 작품을 가리킨다. 고대 서사시의 한 부분을 지칭하는 의미로 시작돼서인지 이 제목이 붙은 작품들은 자유로움 가운데 장중하고 스케일이 큰 악상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리스트가 만든 헝가리안 랩소디는 작곡가의 고향인 헝가리에 거주하던 집시들의 멜로디와 리듬을 엮은 곡들로, 로맨틱하고 정열적인 분위기로 많은 팬을 갖고 있다. 브람스의 작품 ‘알토 랩소디’는 괴테의 시를 바탕으로 여성의 낮은 목소리인 알토가 솔로를 맡고 남성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장중한 분위기의 곡이다. 거슈윈이 만든 ‘랩소디 인 블루’는 피아노 협주곡 편성으로, 재즈풍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즉흥적인 악상을 전개하는 피아노의 화려한 연주가 하이라이트다. 영화 중 프레디 머큐리가 제작자들에게 오페라를 들려주며 자신도 이런 분위기의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약 네 부분으로 나뉘어진 작은 뮤지컬, 혹은 오페라 아리아에 가깝다.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그가 오페라의 마니아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좋아했지만, 머큐리가 제일 좋아했던 가수는 스페인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였다. 카바예의 공연장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자마자 사랑에 빠진 머큐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칭송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듀엣 ‘바르셀로나’는 1987년 녹음됐지만, 이 매력적인 콜라보의 구상은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머큐리가 잠시 그룹을 떠나 ‘미스터 배드 가이’라는 솔로 앨범을 만들 당시부터라고 하니,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장르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엿볼 수 있다. 동료끼리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나는 만약 그가 클래식 성악가가 됐다면 20세기 후반을 장식했던 테너 중 누군가 한 사람은 자기 자리를 잃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화려하고 밝으면서도 단단한 소리, 매혹적인 음색을 지녔던 머큐리의 목소리는 ‘불세출’이라는 조금 예스런 표현을 붙여도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부른 오페라 아리아를 살짝 들을 수 있는 곡도 있다. 1984년에 발표된 ‘It’s Hard Life’에서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에 나오는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의 멜로디가 등장한다. 세계에서도 두드러진 대한민국에서의 열풍을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모르는 세대들이 새롭게 받아들인 음악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천만이 감상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클래식에 낯설었던 사람들에게도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움켜 쥔 시신의 손엔 독립선언서… 아우내 만세운동 ‘진짜 주역’

    움켜 쥔 시신의 손엔 독립선언서… 아우내 만세운동 ‘진짜 주역’

    옥중 투쟁을 하다 잔혹한 고문을 받고 순국한 유관순 열사가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대하다. 열사가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주역이었음도 분명하다. 유관순은 3·1운동과 동일시되고 있고 항일의 표상이다. 그러나 유독 유 열사만 부각된 데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연구 논문이 여러 편 있다. 친일·우익 인사들이 광복 직후 자신들의 과거를 정화하여 정치적·도덕적 권위를 찾으려고 열사를 ‘한국의 잔다르크’로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유관순의 항거는 이화여중 동문 박인덕과 교장 신봉조 등이 기념사업회를 발기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일제에 저항했다가 친일로 돌아선 인물로 광복이 되자 자신들의 행적을 덮으려고 유관순을 이용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우익 인사들의 유관순 기념사업이다. 미 군정하인 1947년 9월 결성된 유관순기념사업회는유관순 기념비, 영화를 만들고 ‘조선의 잔다르크’라는 제목의 전기를 간행했다(정상우, ‘3·1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그중에는 유관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맡은 조병옥이 있다. 조병옥은 광주학생운동 배후 조종 혐의로 3년 동안 복역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하지만 친일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조병옥은 유관순과 두 집 건너 살던 이웃으로 그의 아버지 조인원도 아우내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대한민국 정부 경무부장이던 조병옥은 정부의 정통성을 찾는 방편으로 유관순을 한국의 잔다르크, 해방의 여전사로 부각시켰다(전해주, ‘성공회 병천교회의 3·1 아우네 만세운동에 대한 기여’). 이런 연유로 아우내장터 시위를 주도한 다른 인물들의 공적은 거의 파묻혔다. 실제 주동자로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숨진 김구응 의사(義士)도 그런 사람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된 신한민보는 아우내 만세운동을 유관순이 아닌 김구응, 박종만이 주도했음을 밝히고 특히 모친까지 학살당한 김 의사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천안군 병천시(川市·아우내장터)에서 의사 김구응이 남녀 6천4백인을 소집하야 독립을 선언할 새 일경이 아민(我民)의 기수(旗手)를 자(刺)코져 하거늘 기수는 적수(赤手)로 검도(劍刀)를 집(執)하니 유혈이 임리(淋·뚝뚝 흘러 흥건하게 떨어짐)할 시에…” 김병조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사략’에 이렇게 씌어 있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도 거의 똑같이 서술하면서 주모자를 김구응이라고 했다.김 의사는 임진왜란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의 12대손으로 1887년 7월 27일 천안 병천면 가전리 9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한학을 깨우친 의사는 청신의숙, 장명학교를 거쳐 병천 진명학교 훈도(교사)로 일하며 제자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유관순의 오빠 유관옥과 조인원의 아들 조만형은 그의 제자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충청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김 의사는 서울 이화학당에 다니다 3월 13일 고향 병천에 내려온 유관순과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조인원 등과 만세운동을 벌일 계획을 치밀하게 짰다. 유관순과 지역의 학생, 교인들은 진명학교와 교회 등에서 밤낮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나이 어린 유관순에게 최일선 연락 책임을 맡긴 것도 김 의사였다. 그는 천안 동부 6개 면과 오창, 청주, 진천, 연기 등 각지와 비밀 연락망을 짜고 봉화 신호에 맞추어 일제히 총궐기하도록 밀령을 전달했다. 유관순이 연락과 봉화 책임자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의사는 전체 계획을 짠 리더였다. 조인원은 현장에서 군중을 이끈 행동대장 격이었다. 김 의사의 어머니 최정철 여사도 장년층과 노년층을 설득하고 부녀자를 동원하는 역할을 했다. 1919년 3월 그믐날 밤 유관순은 매봉산에 올라 봉화를 올렸다. 이를 필두로 천안 주변의 총 24개 봉우리에서 봉화가 타올랐다. 거사 일로 정한 4월 1일 아침 아우내장터에는 전날 밤 타오른 횃불을 보고 장꾼을 가장한 군중 3000여명이 모여들었다. 군중은 점점 불어나 오후 1시가 넘어가면서 6000명을 넘어섰다. 김 의사는 두루마리로 된 독립선언문을 펴 낭독했고 유관순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다. 불과 50보 거리의 지척에 헌병주재소가 있었다. 만세운동은 극히 평화적이었다. 군중이 점점 늘어나고 만세 소리는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커졌다. 오후 2시쯤 천안헌병분대에서 헌병들이 트럭을 타고 도착했다. 헌병들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고 칼을 휘둘렀다. 유중권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사망했다. 발포에 놀라 군중은 일단 흩어졌지만, 오후 4시쯤 발포와 살인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져 1500여명이 주재소로 몰려갔다. 김 의사는 독립선언문을 말아 들고 대열의 선두에 섰다. 헌병들은 깃발을 들고 있던 기수를 칼로 찌르려 했고 기수가 맨손으로 칼을 잡자 그대로 찔러 숨지게 했다. 의사는 그들의 잔인무도함을 비난하며 꾸짖었다. 황망한 중에도 정연한 논리로 대응했다. 일본 헌병은 논리에서 밀리자 김 의사를 총으로 쏴 쓰러뜨리고는 총검으로 머리를 짓이겼다. 의사는 시신이 되어서도 독립선언서를 손에 말아 쥐고 있었다. 오후 6시쯤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아들이 참살당한 말을 들은 의사의 어머니 최 여사가 달려왔다. 여사는 헌병의 멱살을 잡아채며 “이놈들아,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 나라 독립을 찾겠다고 만세를 부르는 것도 죄가 되느냐”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헌병은 사정없이 총을 쏘아 즉사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총검으로 마구 찔렀다. 김 의사의 나이 32세, 최 여사의 나이 66세였다. 아우내장터 시위로 김 의사 등 19명이 죽고 적어도 30명 이상이 크게 다쳤다.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병천면 가전리 뒷산에 의사의 시신을 묻었다. 김 의사의 사후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선생의 손자 김운식(70)씨에게 들은 가족사는 비극적이다. 김 의사는 아들 셋을 뒀는데 맏아들이 열 살이었다. 살길이 막막해지자 김 의사의 부인, 즉 김씨의 할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 안성 친정으로 갔다고 한다. 의사의 맏아들은 그 후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돌아와 인천에서 조선기계제작소라는 작은 공장에 취업했다. 광복 후에는 좌익 활동을 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친일파들은 위세를 떨치고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가는 도리어 빨갱이로 내몰리는 현실에 대한 저항감에 좌익 사상에 빠졌다”고 말했다. 맏아들은 6·25가 터진 후 공장 인민위원장이 됐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공산주의와는 다르다고 판단해 9·28 수복 후 국군에 자수했다. 자수했지만 방면되지 않고 인천감옥에 수감됐다. 몇 달 뒤 1·4후퇴 때 국군이 후퇴하면서 인천감옥의 좌익사범들을 총살했는데 그때 희생되고 말았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 다른 후손들도 천안을 떠나 곳곳을 전전하며 가난에 시달렸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날 아우내장터를 찾았다. 두 개의 내(川)를 아우른다(竝)는 뜻인 아우내를 일본인들이 병천(竝川)이라는 한자어로 지명을 바꿨다. 근처엔 유관순기념관도 있고 해마다 만세운동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만세운동 현장임을 알려주는 표지도 없고 순댓집 간판만 즐비했다. 단지 시장 입구 헌병주재소가 있던 곳엔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이 있다. “아우내에는 순대만 있고 역사는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여성 권리 지키는 싸움, 당신도 나처럼 할 수 있어”

    “여성 권리 지키는 싸움, 당신도 나처럼 할 수 있어”

    “킵 스마일링(keep smiling). 힘들어도 항상 웃음을 잃지 마세요.” 어린 소녀의 성기를 절제하는 악습 ‘할례’ 철폐에 앞장선 인권운동가 와리스 디리가 10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사막의 꽃’(섬앤섬) 사인회에서 던진 메시지다. 그는 자신의 책을 읽고 찾아온 한국의 10대 소녀들에게 “당신도 책에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당신도 책처럼 될 수 있다”며 어려운 일을 겪어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강조했다. 소말리아의 가난한 유목민으로 태어난 그는 낙타 다섯 마리에 예순 노인에게 신부로 팔려간다는 이야길 듣고 13살에 가출했다. 친척집과 공사장,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다 사진작가 테렌드 도노반의 눈에 띄어 패션잡지 표지 모델이 된다. 이후 로레알, 레블론 등 유명 화장품 모델로 활동하다 1997년 잡지 ‘마리클레르’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렸을 적 할례를 받았음을 고백했다. 와리스는 이후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유엔 최초로 여성 할례 철폐 특별대사로 활동했다. 이런 그녀의 삶은 ‘뉴욕의 유목민’으로 영국 BBC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렇게나 다른 사랑의 모양들… 밸런타인 데이, 달콤 쌉싸름한 사랑 영화 어때요

    이렇게나 다른 사랑의 모양들… 밸런타인 데이, 달콤 쌉싸름한 사랑 영화 어때요

    밸런타인 데이를 앞두고 데이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달콤 쌉싸름한 사랑 영화는 어떨까. 시간이 지나도 끝내 잊지 못하는 사랑, 힘든 시간 끝에 서로를 알아보게 된 사랑, 섬뜩한 현실 속에서도 지켜내야 하는 사랑. 사랑의 모양이 각기 다른만큼 작품이 전하는 여운 역시 다채롭다. 영화 ‘콜드 워’는 냉전 시대, 사랑만이 전부였던 줄라(요안나 쿨릭)와 빅토르(토마즈 코트)가 나눈 뜨거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1949년부터 1964년까지 폴란드, 독일, 프랑스 등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도시 빈민가 출신인 줄라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폴란드 민속음악단에 입단한다. 음악단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빅토르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줄라가 정치적 사상을 의심받는 빅토르에 대한 정보를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빅토르에게 고백하자, 빅토르는 폴란드를 떠나자고 제안한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앞선 줄라는 빅토르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운명은 두 사람을 쉽게 갈라놓지 않는다. 작품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궁금해하는 오래된 질문, ‘사랑은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름없다. ‘콜드 워’는 ‘이다’(2015)로 제87회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의 신작이다.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폴란드 발레단 무용수 출신의 어머니와 의사였던 아버지의 복잡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사랑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살면서 많은 것을 보았지만 부모님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다”고. 극적인 사건이 없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지 10년에 걸쳐 숙고한 끝에 이번 작품이 탄생했다고 한다. 4:3 비율의 흑백 화면에 담긴 영상과 영화에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은 슬프고도 강렬한 두 사람의 사랑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오는 24일(현지시간) 열리는 제91회 아카데미시상식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부문에도 이름을 올렸다. 영화 ‘아이스’는 지난해 러시아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오프닝 최고 기록을 세우는 등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뮤직비디오와 CF를 연출한 올레그 트로핌 감독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작품은 어린 시절 구부정한 몸, 휜 다리 등 신체적인 결함을 극복해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된 나디아(아글라야 타라소바)의 꿈을 향한 도전과 좌절, 그 과정에서 마주한 사랑을 이야기한다.최고 권위의 피겨스케이팅 대회인 아이스컵 진출을 앞두고 심각한 부상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나디아는 아이스하키 선수 사샤(알렉산더 페트로브)를 재활 파트너로 만나게 된다. 삶의 의지를 잃은 나디아는 긍정 에너지로 충만한 사샤를 보며 서서히 몸과 마음 상태를 회복하게 되고, 다시 아이스컵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맞는다.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등장 인물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나 실제 아이스쇼를 보는 듯한 경기 장면은 이 영화의 볼거리다. 뮤지컬을 보는 듯 다양한 노래가 장면 곳곳에 어우러져 듣는 재미도 살렸다. 14일 개봉하는 영화 ‘험악한 꿈’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가벼운 로맨스물은 아니다. 캐나다의 작은 농촌에 이사 온 소녀 케이시(소피 넬리스)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소년 조나스(조쉬 위긴스)가 케이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관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던 중 그의 트럭에서 100만 달러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조나스는 케이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어른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스스로 케이시를 지키기로 한다. 고향과 가족의 곁을 떠나는 큰 결심을 할 만큼 케이시에 대한 마음이 커진 까닭이다. 케이시는 폭력적인 자신의 아버지가 조나스에게 보복할 것이 두려운데다 자신 역시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조나스와 동행한다. 두 사람은 막상 집을 떠나긴 했지만 생각보다 차가운 현실을 피부로 느낄 때마다 불안함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온다. 나단 몰랜도 감독은 “아직 10대인 소년과 소녀가 어른들이 주도하는 세상에 발을 딛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이러한 고난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광활한 캐나다 온타리오를 배경으로 소년과 소녀의 복잡다단한 삶을 감성적이면서 강렬하게 그려냈다. 제69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이후 제4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리젠테이션 부문에도 초청된 작품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부위별로 12가지 맛, 내맘대로 오만 가지 조리법, 그 신비한 것이 있다는데…‘고래?’

    부위별로 12가지 맛, 내맘대로 오만 가지 조리법, 그 신비한 것이 있다는데…‘고래?’

    고래고기 맛은 부위별로 12가지나 된다고 한다. 최고의 맛과 영양을 자랑한다. 수육, 회, 튀김, 전골, 찌개, 초밥, 스테이크 등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고래고기의 참맛을 즐기려는 미식가들은 소금이나 멸치젓갈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고래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7일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 따르면 고래는 세계적으로 90여종에 이른다. 돌고래나 긴수염고래처럼 멸종 위기에 놓인 고래도 15종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도 30여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밍크고래·참고래 등 수염고래류가 식용으로 인기 우리나라와 일본·노르웨이 사람, 에스키모 등이 대표적으로 고래고기를 즐긴다. 밍크고래와 참고래 등 수염고래류가 식용 고래로 인기를 끈다. 이빨고래류는 특유의 짙은 체취 때문에 꺼려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울산 장생포와 포항 죽도시장, 부산 자갈치시장 등에서 고래고기를 많이 취급한다. 장생포에는 현재 25개 정도의 고래고기 전문음식점이 영업하고 있다. 죽도시장과 자갈치시장에서도 고래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을 쉽게 볼 수 있다.박태균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는 “수염고래는 이빨고래에 비해 맛이 좋고 수은 오염도가 적어 식용으로 인기고, 수염고래 중에서도 밍크고래를 최고로 친다”며 “밍크고래는 동해에서 자주 출현했고, 이 때문에 동해안 지방에서는 고래고기를 제물로 많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래고기는 고단백·저열량·저지방 식품이고, 칼슘·철분·칼륨 등 미네랄과 비타민 A·비타민 B1·비타민 B2·나이아신 등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 있다”며 “살코기의 단백질 함량은 100g당 26.5g(꼬리 28.4g)으로 소고기·돼지고기에 못지않고, 콜레스테롤 함량은 소고기의 3분의2 정도이고, 오메가3 지방인 EPA·DHA 등도 많아 영양 만점”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고래고기에는 철분이 많아 빈혈을 호소하는 임산부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래고기는 바다에서 살아 육질은 생선회처럼 부드럽고, 포유류여서 소고기와 비슷한 맛도 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말고기를 고래고기로 속여 팔다가 붙잡힌 사례도 있다. 살코기뿐 아니라 껍질, 혓바닥, 내장, 목살, 꼬리, 지느러미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 콩팥·지느러미는 대개 수육을 해 먹는다. 고래고기 육회는 소고기 육회와 비슷하다. 고래고기는 콜레스테롤이 없는 불포화 지방산을 다량 함유해 노화를 방지하고 피부를 부드럽게 하는 등 건강장수 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음식이기도 하다.우리나라의 근대 포경은 일본, 러시아 등 서구 열강들에 의해 이뤄졌다. 해방 후에는 울산 장생포를 중심으로 한 근해 포경업이 성업하면서 한 달에 1000여 마리가 잡힐 정도였다. 하지만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된 이후부터는 연안에 설치된 그물에 잡힌 혼획 고래와 선박과 부딪혀 좌초한 고래를 해경에 신고 후 식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급이 불안정하고 수요에 크게 미치지 못해 꽤 비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고래고기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었다. 소고기처럼 한 근 두 근씩 팔았을 정도로 포획량이 많아 서민들도 쉽게 사먹을 수 있었다. 동해안의 웬만한 시장에서는 고래고기를 파는 좌판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고래고기는 가난했던 서민들에게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래서 당시 고래고기를 새끼 끈에 묶거나 신문지에 둘둘 말아 집으로 가던 모습은 흔했다.●껍질·꼬리도 즐겨… 특유의 냄새로 호불호 갈리기도 무를 넣고 소고깃국처럼 끓여 먹거나 기름기 있는 부위로는 두루치기 하듯이 볶아 먹기도 했다. 고래 수육은 소금이나 젓갈에 찍어 먹는다.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는 말로 맛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고기와 비슷한 맛이라 소고기 대신 많은 음식을 조리해 먹었다. 고래고기는 부드러워 입에서 살살 녹는 ‘뱃살’(우네), 쫄깃쫄깃 오돌오돌 씹는 맛이 일품인 꼬리와 지느러미인 ‘오베기’, 살코기가 잘 배합된 ‘등살’(바가지), 짙은 체취를 내는 대창·콩팥·허파 등 ‘내장’, 생고기를 손가락 마디 크기로 토막을 낸 ‘막찍개’, 생고기와 과일 배를 채 썰어 양념에 무친 ‘육회’ 등으로 맛을 구분한다. 곁들여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참맛을 보려면 소금에 찍어 먹고, 진한 맛을 좋아하면 오래 삭힌 멸치젓국에 찍어 먹는다. 역한 냄새가 싫으면 묵은지에 싸서 먹어도 좋다.●고단백 저지방 식품… 택배로 즐기기도 고래도시 울산 남구 장생포 해안을 따라 2㎞여 구간에 들어선 고래고기 전문점이 눈길을 끈다. 현재 25개 전문점이 영업 중이다. 대부분 고랫배를 탔거나 포경산업 종사자의 자녀가 고래고깃집을 운영한다. 수십년째 서로 어울려 장사하고 있어서 딱히 어디를 원조라고 꼽기도 힘들 정도다. 모두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고래고기 박사급이다.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1980년대 이전의 장생포는 지금과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사람과 현금이 넘쳤다. 고랫배를 맞을 때면 장생포는 늘 기대감으로 들떴다. 먼바다로 나갔던 고래배가 돌아올 땐 먼저 뱃고동을 울린다고 했다. 고래가 들어가니 알아서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만선 여부를 알리는 뱃고동이 울리면 상인과 주민들도 바빠진다. 평소와 다른 긴 뱃고동 소리가 들리면 큰 고래로 만선이라는 의미다. 긴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낮잠을 자던 할머니도,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도 뛰어나와 배를 맞았다고 한다. 큰 고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생포에서 3대째 ‘고래고기 원조 할매집’을 운영하고 있는 신수민(50·여) 대표는 “고래고기는 영양이나 맛에서 최고의 식품”이라며 “울산에 와서 고래고기를 처음 먹어본 뒤 맛에 반해 택배로 주문하는 고객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고래고기 맛에 한번 빠지면 계속 찾게 된다”며 “예전에는 고래배가 들어오면 좋은 고기를 받으려고 상인과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잔치가 벌어졌다”고 추억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금요칼럼] 선비타령/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금요칼럼] 선비타령/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설 연휴에는 서재에서 조용히 옛 선비들의 글을 읽었다. 글은 옛글이라도 느낌은 더욱 새로웠다. 어수선한 시절 탓이리라. 옛날의 유학자는 기득권층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안하무인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소문은 서양에까지 널리 퍼졌다. “가난한 사람은 감히 부자와 다투지 못하는 법인데, 엔간한 부자라도 중국의 유학자와는 다투지 않는다.” 이런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선비의 나라 조선에서도 부정부패의 장본은 글 읽은 선비였다. 명종 때 남명 조식이 쓴 상소문이 생각난다. 남명은 경상도 단성현감에 임명됐으나, 부패한 세상을 비판하며 사직을 고집했다. 그가 올린 상소문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하급 관리들은 시시덕거리며 주색을 즐기고, 벼슬 높은 고관들은 제 일은 하지 않고 뇌물을 모으느라 여념이 없었단다. 요샛말로 누구도 나라의 적폐를 청산할 마음이 없으니, 이거 참 큰 문제라는 것이었다. 정승판서들은 부하들을 요로에 낙하산으로 앉혀 놓고, 이익을 독점하느라 부산했단다. 그러는 사이 지방관들은 성난 이리떼처럼 백성의 재산을 빼앗는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앞장서 세상을 망가뜨리는 축은 책권이나 읽었다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공개 석상에서는 위선을 떨고 체면을 차리지만, 이권 앞에서는 품위고 신념이고 따질 겨를이 없다. 모두가 도둑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때로 진지한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는 법이다. 18세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선비의 올바른 행실, 요즘 식으로 말해 지식인의 자세를 걱정했다. ‘배웠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간사한 말, 거짓말을 하는 데 이골이 나 있다. 여간 꿋꿋하고 방정한 이가 아니고서는 줏대를 가지고 똑바로 살기가 어렵다. 이름만 선비일 뿐 바람에 나부끼는 풀잎 같은 사람이 많다. 모름지기 내 마음을 굳게 지켜야겠다. 그래야만 세상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시절에도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정조 때 영의정이었던 채제공의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진주목사 정재원에 관한 일화였다. 목사는 임지에서 병으로 갑자기 숨졌다. 비보를 들은 그의 아들들이 달려가 통곡했다. 그들이 아전들이 가지고 있는 장부를 살펴보았더니 고을의 회계가 엉망이었다. 그런데 숨진 아버지의 머리맡에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다. 아들들이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아버지가 평소에 기록한 기다란 문서 한 장이 나왔다. 관청의 재무 상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 문서를 바탕으로 아들들은 진주 관아의 회계장부를 완벽하게 정리했다. 채제공은 그 일을 낱낱이 기록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도 남거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이 선비는 마지막까지 벼슬살이하는 법도가 이처럼 삼가고 정밀했던가. 진주목사는 다산 정약용의 아버지였다. 그래서였을까. ‘목민심서’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글귀가 있다. “지혜로운 선비는 평소에 서류를 잘 정리해 둔다. 임기가 끝난 그 다음날 소리 없이 관아를 떠나는 것은 맑은 선비의 법도다. 모든 장부를 투명하고 바르게 마감하여 절대 이러쿵저러쿵 잡음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지혜 있는 선비가 할 일이다.” 오늘날이라고 다르겠는가. 배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위를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결코 타인의 하수인이 돼서는 안 된다. 세상의 평판이나 돈에 휘둘려서도 곤란하다. 그런 독립적인 인간이 참된 지식인이다. 이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낭보를 알리는 기해년이 됐으면 좋겠다.
  • [여기는 중국] 춘절, 독거노인은 왜 홀로 기차에 오를까?

    [여기는 중국] 춘절, 독거노인은 왜 홀로 기차에 오를까?

    30억 명이 가족의 품을 찾아 이동하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구정), 하지만 홀로 티베트 ‘라싸(拉萨)’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은 독거노인이 있다.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 정작 독거노인에게는 일 년 중 가장 외로운 날이다. 최근 중국 동영상 사이트 리슈핀(梨视频)은 허난성 정저우에서 티베트 남부의 라싸로 향한 리 씨(57)의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달 23일 새벽 2시, 허난 정저우의 기차역 대기실에는 고향길로 향하는 사람들이 들뜬 표정으로 앉아 있다. 하지만 유독 아무 감흥 없이 의자에 홀로 몸을 누이고 있는 노인이 눈에 띈다. 부모도 세상을 떠났고, 결혼도 하지 않은 리 씨는 독거노인이다. 그는 “춘절이면 다른 사람들이 외로운 나를 보고 비웃을까 두렵다”면서 “라싸로 가는 기차를 타면 멋진 풍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어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생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그에게 춘절은 가장 외롭고, 두려운 날이다. 그는 “매년 사람들이 가족과 둘러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생전의 부모님과 함께했던 그 시절이 눈물 나게 그리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춘절을 피하고자 라싸행을 택한 것이다. 라싸로 가는 기차비가 모자라 이웃에게 돈을 빌렸다. 그의 처지를 잘 아는 이웃은 기차에서 먹을 음식과 간식거리도 챙겨 주었다. 이틀을 꼬박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하지만, 아무도 찾을 사람 없는 그에게 때 묻지 않은 자연풍경은 위로로 다가온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무지개색 염색만 했을 뿐인데…’ 인스타그램 30만명 폭풍 흡입

    ‘무지개색 염색만 했을 뿐인데…’ 인스타그램 30만명 폭풍 흡입

    정말로 세상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그 변화의 속도 또한 너무 빠르다. 과거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유행한 적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경을 극복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판검사 등 사회 지도층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라는, 성공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희망의 메시지’와도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다시 한 번 변했다. ‘개천에서 용날 수 없다’, 즉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기득권이 가지고 있는 부(富)에 기반한 뒷바라지와 고급 정보를 따라 갈 엄두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도, 적용 할 수도 없겠지만 큰 틀에선 틀린 말이 아닐게다.  하지만, 세상은 또 다시 변하고 있는 중이다. 공부 외에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매력적이고 독특한 재주 하나만 있으면 혼자서도 아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국내에만 국한 된 얘기는 아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이어진 첨단 기기들이 판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외신 케터스 클립스에 소개된,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노스요크셔주 미들즈브러에 살고 있는 ‘염색의 달인’ 에이미 위담(23)이란 젊은 여성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휘황찬란한 ‘무지개색 염색’ 기술 덕에 3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끌어들였다. 11살에 처음으로 머리 염색을 시도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헤어관련 콘텐츠를 블로그에 소개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헤어 스타일과 염색에 관한 다양한 시도들과 그 최종 모습들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왔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무지개색으로 염색하는 것을 가장 선호하게 됐고 이것이 수 천명의 사람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대박’을 친 것이다.  물론 그녀를 향한 많은 응원 댓글들과 달리 상처를 주는 악플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악플들에 대해 하나하나 대꾸할 생각이 없다. 자신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고 험담할 수도 있다는 것 조차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그렇게 염색을 하나요?’라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들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모습들을 꾸준히 보여주기 위해 번거로운 일들도 참아내야 한다. 2주마다 색이 변하게 되는 머리 뿌리 부분을 염색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병의 대형 샴푸와 헤어컨디셔너를 소비하게 됐다.  지금은 그녀가 개발한 인어 헤어스타일을 기반으로 헤어 뿐 아니라 메이크업과 패션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사진 영상=케터스클립스/유튜브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 고기 어느 나라가 가장 많이 먹나? 일년에 한 사람이 소 반 마리?

    고기 어느 나라가 가장 많이 먹나? 일년에 한 사람이 소 반 마리?

    설 연휴를 맞아 고기들 많이 들고 있나요? 늘 새해를 앞두고 고기 좀 적게 먹자고 허튼 맹세를 하곤 하지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고기 좀 덜 먹자고 맹세를 하지만 영국 BBC가 4일 전한 그래픽과 기사는 조금 놀랍기도 하다. 우선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육류 소비는 가파르게 늘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7000만 톤에 그치던 고기 생산이 2017년에는 3억 3000만 톤으로 거의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 물론 50년 전에는 세계 인구가 30억명이었는데 지금은 67억명이니 그만큼 먹여야 할 입이 는 것이 이유일 수 있다.그런데 문제는 왜 다섯 배 가까이로 늘었느냐는 것이다. 역시나 소득 향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50년 전에 견줘 세계인의 평균 수입은 세 배 정도가 됐다.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고기를 사먹게 된다.가장 근접한 과거 통계를 보면 2013년 미국과 호주가 가장 육류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였다. 연간 일인당 100㎏을 먹어치웠으니 닭고기 50마리나 소 한마리의 절반을 없앴다. 뉴질랜드와 아르헨티나도 막상막하였다. 서유럽인은 80~90㎏로 엇비슷했다. 반대로 가난한 나라들, 에티오피아는 7㎏, 르완다는 8㎏, 나이지리아는 9㎏만 먹으면 끝이었다. 육류 소비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것은 중국과 브라질 같은 나라들이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1960년대 연간 일인당 5㎏ 미만이던 것이 1980년대 말 20㎏으로 치솟은 다음 30년 조금 넘어 세 배인 60㎏으로 늘었다. 브라질은 1990년대 육류 소비량의 곱절로 늘어 서구 국가 대부분을 앞질렀다. 소를 숭상하고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힌두교 영향으로 인도는 1990년 이후 평균 수입이 세 배로 치솟았지만 육류 소비는 전혀 늘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인도인 대다수가 채식주의자란 그릇된 믿음이 있지만 3분의2는 약간의 육류를 소비하는데 지금도 일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4㎏이 안돼 세계 최저 수준이다.그렇다고 미국과 유럽의 육류 소비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도 아니었다. 견고하게 유지하거나 조금 늘었다. 다만 소와 돼지보다 닭 등 가금류를 선호하는 쪽으로 취향이 바뀌고 있다. 1970년대 육류 소비 가운데 가금류 비중이 4분의 1에서 지금은 절반이 됐다. 붉은 살코기를 피하고 가금류 소비를 늘리는 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줄여주니 여러 모로 좋은 일이라고 방송은 지적했다. 닭은 같은 양의 고기를 얻기 위해 소를 기르는 데 필요한 면적의 10분이면 충분하고 물 오염, 온실가스 배출, 까다로운 사육 여건 등 여러 점에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방송은 앞으로 육류 소비는 훨씬 더 사치스러운 방향으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고, BBC에 도움 준 이들. Hannah Ritchie is an Oxford Martin fellow, and is currently working as a researcher at OurWorldinData.org. This is a joint project between Oxford Martin and non-profit organisation Global Change Data Lab, which aims to present research on how the world is changing through interactive visualisations.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다시 되새기는 그 말씀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다시 되새기는 그 말씀

    오는 16일 선종 10주기를 맞아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평전과 잠언집이 나왔다. 문학평론가 구중서 수원대 명예교수는 ‘김수환 추기경 행복한 고난’(사람이야기 펴냄)을 출간했다. 추기경이 선종한 2009년 펴낸 평전을 손봐 10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책이다. 구 명예교수는 김 추기경과 40년 이상된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 평전은 순교자 집안에서 자라 1969년 당시 세계 최연소이자 한국 최초 추기경이 된 김 추기경의 삶과 신앙을 조명한다.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역임한 저자는 1971년 가톨릭 잡지 ‘창조’를 창간할 당시 편집주간을 맡아 발행인이었던 김 추기경과 만났다. 구 명예교수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 회복의 정신으로 이 땅의 진실된 역사 창조에 우리 모두가 이바지해야 한다”는 김 추기경의 ‘창조’ 창간사를 언급하며 “당신에 대해 큰 강처럼 끝없이 이어진 추모 행렬의 기운이 과연 온 누리를 새롭게 창조해갈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바보가 바보들에게 1·2’(산호와진주)는 김 추기경의 잠언집이다. ‘거룩한 바보’ 김 추기경이 ‘겉으론 잘난 척 하지만 외로운 바보들’, ‘매일매일 정신없이 달리고 있지만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미련한 바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채워져 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의 삶이 겸손하고 가난해야 합니다.‘ 그 뜻을 헤아리기가 어려워 절레절레 하다가도, 어느덧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말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2030 세대] 희소성과 재개발의 가치/김영준 작가

    [2030 세대] 희소성과 재개발의 가치/김영준 작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알루미늄 사랑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식기를 쓰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왕관을 머리에 쓰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겐 금식기나 은식기로 식사를 하게 했다. 알루미늄이 너무 흔해서 쿠킹호일과 음료수 캔으로 낭비 중인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무척이나 검소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딱히 그가 검소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당시까지만 해도 알루미늄을 정련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그만큼 알루미늄 제품이 매우 귀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금보다 더 귀하고 귀금속 위의 귀금속이란 평가를 받던 알루미늄은 전기분해법의 등장으로 흔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누구도 귀금속으로 여기지 않는다. 희소성이 사람들의 선호를 뒤바꾼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건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희소성은 무언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나 여기엔 부작용도 있어서 때론 흔한 것을 지나치게 저평가하고 희소한 것을 지나치게 고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희소성에 따른 선호의 변화는 단지 상품에 끝나지 않는다. 낡은 공장지대와 낡은 건물에 대한 선호 또한 희소성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건물과 지역이 만드는 분위기는 불과 2000년대 중반까지 별달리 선호하지 않던 것이었다. 이렇게 낡고 더러운, 가난한 시절의 흔적으로 취급하던 공간은 아파트라는 주거방식이 대중화되고 노동환경이 개선되면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되었고 특색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파트란 주거공간에 대한 과소평가도 이러한 희소성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와 역사, 재개발 논란이 엮인 주제들이 최근에 큰 화젯거리다. 아마 앞으로 더 많은 논란들이 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고 아닌 것일지를 앞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라는 격언처럼 오래되었다고 모두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량생산에 대한 과소평가와 수제에 대한 과대평가는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는 저급 수제품이 시장에 넘쳐나는 결과를 만들었다. 적어도 그런 결과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희소성을 확보하여 현대인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변한 낡고 오래된 곳들은 현대인의 도심 관광용으로 선호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곳을 주거나 업무라는 생활공간으로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을 누구를 위한 공간으로 쓸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이 보존이냐 재개발이냐를 정하는 데 좋은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알루미늄은 전기분해법의 등장으로 흔한 금속이 되고 귀금속의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대신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금속으로 활용되고 있다. 만약 산업용으로 가치가 없고 정말로 희소했다면 알루미늄은 여전히 귀금속에 머물렀을 것이다. 공간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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