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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식의 천문학+] 태양계 행성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이광식의 천문학+] 태양계 행성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예로부터 인류와 가장 가까운 천체는 해와 달을 비롯,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었다. 옛사람들은 밤하늘이 통째로 바뀌더라도 별들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별은 영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류에게 각인되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 시대 이후부터 달을 포함해 이들 행성은 지구에서 가까운 쪽부터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이 차례로 늘어서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의 다섯 개 별들은 일정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별들 사이를 유랑하는 것을 보고, 떠돌이란 뜻의 그리스 어인 플라나타이(planetai), 곧 떠돌이별이라고 불렀다. ​바로 우리가 행성이라 부르는 천체들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행성은 별이 아니다. 별은 보통 붙박이별, 곧 항성을 일컫는 말이다. 서양에서 부르는 태양계 행성 이름들은 거의 로마 신화에서 따온 것이다. 물론 이 밝은 행성들은 눈에 띄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문명권마다 다른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로마 시대에 지어진 이름들이 점차 대세를 차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컨대, 빠른 속도로 태양 둘레를 도는 수성은 로마 신들 중 메신저 역할을 한 날개 날린 머큐리(Mercury)에서 따왔고, 새벽이나 초저녁 하늘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금성에는 로마 신 중 미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Venus)의 이름을 갖다붙였다. 화성에 마스(Mars)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화성 표면이 산화철로 인해 붉게 보이기 때문에 로마의 전쟁신 마스의 이름을 징발한 것이다. 태양계 행성 중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목성에 신들의 왕 주피터(Jupiter)를 가져온 것도 역시 그럴 듯하다. 토성은 주피터의 아버지인 농업의 신 새턴(Saturn)에서 따왔는데, 토성에 고리가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지구를 뜻하는 어스(Earth)만은 예외였는데, 그리스-로마 시대 이전부터 행성이란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중국과 극동 지역 역시 드넓은 밤하늘에서 수많은 별들 사이를 움직여 다니는 이 다섯 별들이 잘 알려져 있었다. 고대 동양인은 이 별들에게 음양오행설과 풍수설에 따라 ‘화(불), 수(물), 목(나무), 금(쇠), 토(흙)’이라는 특성을 각각 부여했고, 결국 이들은 별을 뜻하는 한자 별 성(星)자가 뒤에 붙여져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여기서도 지구는 역시 행성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어 ​‘흙의 공’이라는 뜻인 ‘지구(地球)’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요일 이름, 곧 일, 월, 화, 수, 목, 금, 토는 사실 천동설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망원경 발명 후에 발견된 행성들 지구가 행성으로 낙착된 것은 17세기 초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머리를 옥죄어온 천동설의 굴레가 벗겨지고 지동설이 확립된 이후의 일이다. 태양계의 개념이 인류에게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러니까 태양계라는 말의 역사가 겨우 40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토성까지 울타리 쳐진 이 아담한 태양계가 우주의 전부인 줄 알고 인류가 나름 평온하게 살았던 시간은 200년이 채 안된다. 인류의 이 평온한 꿈을 일거에 깨뜨린 사람은 탈영병 출신의 한 음악가였다. 유럽에서 터진 7년 전쟁에 종군하다가 영국으로 도망친 독일 출신의 윌리엄 허셜이 오르간 연주로 밥벌이하는 틈틈이 자작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열심히 쳐다보다가 그만 횡재를 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1781년의 천왕성 발견이다.이전에도 천왕성은 더러 사람의 눈에 띄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아무도 그것이 행성인 줄은 몰랐었다. 허셜이 최초로 자작 망원경으로 그 별이 보통 점상으로 보이는 여느 별과는 달리 원반형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비로소 행성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 행성은 토성 궤도의 거의 2배나 되는 아득한 변두리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토성 바깥으로 행성이 더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허셜은 이 행성을 당시 영국 국왕인 조지 3세를 따서 ‘조지 별’로 부르지만, 되도록이면 영국 왕을 입에 올리고 싶어하지 않은 프랑스에서는 그냥 ‘허셜’로 불리었다. 행성의 이름은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따라 이름을 짓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나중에 독일의 천문학자 보데가 1850년부터 로마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 우라누스(Uranus)를 천왕성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라누스는 제우스의 할아버지에 해당한다. 어쨌든, 천왕성의 발견이 당시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신대륙 발견 이상으로 엄청나게 컸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믿어온 아담하던 태양계의 크기가 갑자기 2배로 확장되는 바람에 세상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반세가 남짓 만인 1846년에 영국의 애덤스와 프랑스의 르베리에에 의해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발견은 망원경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천왕성의 움직임에 이상한 변화가 있는 것을 보고 애덤스와 르베리에가 미지의 행성에 관해 뉴턴 역학에 따라 질량과 궤도를 계산해본 결과, 그 뒤에 또 다른 행성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해왕성은 종이로 발견한 행성, 뉴턴 역학의 위대한 승리라는 화제를 낳았다.해왕성(海王星)의 이름 냅튠(Neptune)은 바다의 신 넵투누스(Neptunus)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해왕성에서 청록색 빛이 났기 때문에 바다를 상징하는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해왕성은 청록색의 진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다시 20세기에 들어선 1930년, 미지의 행성 X로 알려진 명왕성이 미국 로웰 천문대의 클라이드 톰보에 의해 발견되어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 되었다. 이 발견은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고, 이 새로운 별의 이름을 지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로웰 천문대는 전 세계에 이름을 공모한 결과, 영국 옥스포드에 사는 11살 소녀 베네티아 버니가 제안한 플루토(Pluto)로 명명하기로 결정했다. 플루토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저승신의 이름이다. 신화에 관심이 깊었던 베네티아는 춥고 어두울 거라고 생각되는 제9 행성에 이 이름이 적합할 거라고 보았던 것이다.가난한 고학생 출신의 톰보를 일약 천문학 교수로 만들어준 이 명왕성의 영광은 그러나 한 세기를 넘기지 못했다. 2006년 국제천문연맹이 행성의 정의를 새로이 함으로써 명왕성이 행성 반열에서 퇴출되어 ‘왜소행성 134340’으로 강등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의 미국인들이 명왕성은 행성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미국 프로야구팀 다저스의 에이스 투수인 커쇼는 톰보의 외손자다. 그래서 어느 TV쇼에 ‘명왕성은 행성이다’란 글이 씌어진 티셔츠를 입고 나온 적이 있다. 여덟 행성은 물리적 특성에 따라 지구형 행성과 목성형 행성으로 분류되는데, 전자는 암석형 행성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고, 후자는 가스형 행성으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다. 또한 지구를 기준으로 궤도가 안쪽이면 내행성, 바깥쪽이면 외행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토성까지는 우리 이름이지만 천왕성부터는 영어 이름을 그대로 번역했다. 천왕성부터는 망원경이 발달한 서양에서 먼저 발견해 자기네 식으로 이름을 붙였고, 동양에선 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의 이름들은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서양에 대해 가장 먼저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서양 천문학을 받아들이면서 이 세 행성의 이름을 자국어로 옮길 때, 우라누스가 하늘의 신이므로 천왕(天王), 포세이돈이 바다의 신이므로 해왕(海王), 플루토가 명계(冥界)의 신이므로 명왕(冥王)이라는 한자 이름을 만들어 붙였고, 한국에서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다. 태양계의 ‘운수납자’ 이들 행성은 그럼 어떻게 태양 둘레를 돌고 있을까? 8개의 행성은 대체로 궤도평면인 황도면을 따라 태양을 공전하는데, 태양에 가까운 운행성일수록 공전 속도가 빠르다. 수성의 공전속도가 초속 48km인 데 비해 지구는 초속 30km, 가장 바깥을 도는 해왕성은 초속 5km밖에 안된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만큼 태양의 중력이 약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금성의 공전주기가 약 3달인 데 비해, 지구는 1년, 목성은 13년, 토성은 한 세대인 30년, 천왕성은 사람 일생과 맞먹는 84년, 가장 바깥을 도는 해왕성은 164년이나 걸린다. 해왕성이 발견된 것이 1846년이니까, 발견 1주기가 조금 넘은 셈이다. 어쨌든 1주기 전 해왕성이 지구 행성 위에서 보았던 사람 중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기껏해야 천왕성 공전주기만큼 살 수 있을 뿐이다. 지금도 캄캄한 우주공간을 쉼없이 달리며 태양을 도는 이들 지구의 형제, 행성들을 생각하면 마치 운수납자(雲水衲子)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운수납자란 구름 가듯 물 흐르듯 떠돌면서 수행하는 스님을 일컫는 아름다운 말이다. 지구와 같은 궤도평면을 떠나지 않고 46억 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지구와 길동무 해서 우주의 길을 가고 있는 저 화성이나 천왕성 같은 행성이 바로 태양계의 운수납자가 아닐까?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유한재단, 제28회 유재라봉사상 수상자로 이정자 간호사 수녀 등 4명 선정

    유한재단은 제28회 ‘유재라 봉사상’ 수상자로 이정자 간호사 수녀(56·캄보디아 쩜나옴성당) 등 4명을 선정해 시상했다고 18일 밝혔다. 간호와 교육 부문에서는 1명씩, 복지 부문에서는 복수 선정돼 전체 수상자는 총 4명이다. 간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이 간호사 수녀는 1985년부터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노숙인, 무의탁자, 저소득층, 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해온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 간호사 수녀는 현재까지 캄보디아 쩜나옴성당에서 의료봉사를 해오고 있다. 이밖에 교육 부문에 박윤희 교사(39·예산군 수덕초등학교), 복지 부문에 김기화 봉사원(58·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포항중앙봉사회)과 김영미 봉사원(61·계명대 동산병원 호스피스)이 선정됐다. 이들은 교육, 복지 부문에서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 공로가 인정됐다. 유재라 봉사상은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장녀 유재라 여사의 사회공헌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제정됐다.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매년 수여된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살아 있는 가난’ 관심 필요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살아 있는 가난’ 관심 필요

    “탈북 모자·홈리스 죽음 후에 가난 조명 죽기 전 삶의 과정은 더 지난하고 복잡” 청년·여성 노숙인 등 다양한 경험 털어놔 가난 버티던 이들 생 마감 반복 안타까워“대형마트인 코스트코는 제게 미지의 세계였어요.” 유엔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날’(10월 17일)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극장 무대에 오른 새롬(여·가명)씨는 “학창 시절 내가 살 수 있는 간식은 겨우 (한 박스에 2000~3000원인) 초코파이였는데 친구들이 코스트코에서 머핀을 사서 나눠주면 멋져 보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3년 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벗어나 가족들의 부양의무자가 된 20대 청년이다. 새롬씨는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 오면 엄마가 항상 다른 지원은 더 없는지 선생님께 여쭤 보라고 했다”면서 “학생 때는 수급자인 나와 나머지 전부로 세상이 나뉘어져 있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가족 3명이 100만원으로 한 달 살이를 했지만 이제 혼자서 170만원을 번다”면서 “내년 1월까지 가족과 따로 살 집을 구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수급 자격이 박탈된다”고 토로했다. 아사 가능성이 제기됐던 서울 관악구 탈북 모자 사건 등 올해 가난 속에서 버티던 이들이 생을 마감하는 일이 반복되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가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날 시민단체인 빈곤사회연대가 가난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행사 ‘살아왔습니다’를 개최한 이유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죽음 이후에 가난한 삶이 조명받지만 죽기 전 삶의 과정은 더 지난하고 복잡하다”면서 “삶으로서의 가난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무능과 실패라는 딱지에 가려진 가난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취지다. 이날 경험을 풀어놓은 사람은 새롬씨 같은 청년부터 여성 노숙인, 형제복지원 생존자 등 다양했다. 60대 초반의 여성 노숙인 세화(가명)씨는 “7년 전 추운 겨울 살고 있던 봉천동 12-1번지 셋방이 재개발로 헐렸다”고 말했다. 이어 “불도 없고, 물도 끊기고 비도 새는 캄캄한 그 집에서 혼자 남아 버텼다”면서 “부서진 문을 사슬로 묶어두고 잠을 잤는데, 일어나 보니 문틈으로 똥이 잔뜩 발라져 있었다”면서 노숙에 나서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얼마 전에는 내가 밖에 둔 짐 앞에서 계속 날 기다리며 쫓아오는 남자가 있었다”며 여성 노숙인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가난 때문에 죽은 동료의 삶도 이야기됐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남대문 쪽방에서 살던 동료가 재개발로 쫓겨난 뒤 새로 구한 중림동 쪽방에서 두 달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면서 “동료가 살던 남대문 쪽방 자리에는 28층짜리 빌딩이 세워졌는데 서울시가 낙후된 도시 기능을 회복했다고 발표하더라”며 울먹였다. 분위기는 무거워졌고, 2층까지 가득 채운 50여명의 객석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날 행사는 사회자와 관객들의 마지막 외침으로 마무리됐다. 사회자는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고 먼저 외치자 50여명의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소리를 냈다. “계속 살아가 보겠습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무려 200명 성폭행한 英 범죄자, 감옥서 살해당해

    무려 200명 성폭행한 英 범죄자, 감옥서 살해당해

    무려 200명에 달하는 어린이를 학대한 혐의로 붙잡힌 남성이 감옥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BBC 등 현지 언론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켄트 출신의 리차드 허클(33)은 2016년 당시 71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시인했으며, 이중 22건의 성범죄와 관련한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2006년부터 8년에 걸쳐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러왔으며, 피해자들은 생후 6개월 된 신생아부터 12세까지의 말레이시아 아이들이었다.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해 온 그는 말레이시아의 아이들 약 200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그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사진과 영상만 2만 건이 넘었다. 이후 문제의 사진과 영상을 세계 곳곳의 소아성애자들이 방문하는 불법 웹사이트에 올려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또 불법 웹사이트에 “가난한 아이들은 서양의 중산층 아이들보다 유혹하기 쉽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지 8년이 지난 2014년 영국에서 체포됐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풀 서튼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현지시간으로 지난 13일, 허클은 쓰러진 상태로 교도소 관계자가 발견했으며 발견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그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흉기가 아닌 직접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흉기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보고 현재 용의자를 특정하고 있다. 현지 법무부 측은 “허클이 수감됐던 폴 서튼 교도소는 영국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모인 교도소로, 최고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사망한 허클은 성범죄를 저지르던 당시, 한 웹사이트에 “잭팟을 맞았다.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내게 개처럼 충성하고, 누구도 이러한 일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올린 사실이 드러나 더욱 공분을 산 바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다시 우금티에서

    [황규관의 고동소리] 다시 우금티에서

    지난 9월 28일 신동엽 시인 사후 50주기를 맞아 부여에서 문학인대회가 열렸다. 신동엽문학관 마당에서 있었던 문화행사에 이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본대회가 시작된 것인데, 나는 부여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신동엽 산문집’(창비)을 펴 ‘평론’ 부분만 먼저 골라 읽었다. 부여 방문 특집(?)으로 꺼내 든 책이다. 또 당분간 신동엽을 숙독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그의 문학정신을 보다 직접적으로 접해 보고 싶었다. 신동엽이 산문에서 한 말들은 여기저기서 파편적으로 얻었지만 막상 한 문장 한 문장 직접 읽다 보니 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다가왔다. 사실 신동엽은 김수영처럼 시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이야기에서 신동엽의 깊이를 느끼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통한 신동엽의 시에 대한 생각은 지금 읽어도 그 광휘가 바래지 않는다. ‘시인정신론’에 담겨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은 어떤가. “시란 바로 생명의 발현인 것이다. 시란 우리 인식의 전부이며 세계 인식의 통일적 표현이며 생명의 침투며 생명의 파괴며 생명의 조직인 것이다. 하여 그것은 항시 보다 광범위한 정신의 집단과 호혜적 통로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신동엽은 독특하게도 역사를 원수성(原數性), 차수성(次數性), 귀수성(歸數性)의 세계로 파악하는데, 쉽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 사는 문명 세계가 차수성의 세계이고, 이 문명 이전이 원수성의 세계이며, 우리가 다시 대지가 돼야 하는 세계가 귀수성의 세계다. 지금 살고 있는 문명 세계는 “새로운 우리의 생각을, 새로운 우리의 사상을, 새로운 우리의 수목을 가꿔 가려 할 때 세상에 즐비한 잡담들의 삼림은, 그리고 생경한 낯선 토양은 우리의 작업을 기계적으로 방해”한다는 그의 말은 지금도 여전히 생동감이 있다. 문명의 방해로 인해 시인은 사라지고, 그의 말에 따르면 시업가(詩業家)가 탄생한다. 시업가란 ‘생명의 발현’으로서의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라는 장르에 대한 전문가를 의미한다. 신동엽에게 시인이란 분업화된 현실과 그에 따르는 부분적인 인식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은 선지자여야 하며 우주지인이어야 하며 인류 발언의 선창자”다. 이번에 내게 가장 뜻깊었던 시간은 다시 우금티를 찾은 일이다. 소설가 김홍정은 국립공주병원 앞이 실제 동학농민군이 싸웠던 장소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일대가 결전이 벌어진 장소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례에서 2차로 봉기했던 농민군이 논산을 거쳐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로 진격하려면 계룡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동쪽에서 오는 농민군과 서쪽에서 오는 농민군을 먼저 차례로 제압한 일본군과 조선 관군 연합은 우금티 고개에 모든 전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지형을 보니 계룡에서 넘어온 농민군은 전방과 좌우가 산으로 막힌 좁은 들녘에 꼼짝없이 붙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아직도 계급적 시각으로만 봐서 동학과의 관련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 문제는 이미 학문적으로 적잖이 진척된 주제로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해월 최시형에 의해 전국적으로 조직된 동학의 포와 접이 농민군의 뼈대가 됐다는 점이다. 또 해월이 봉기에 소극적이었다는 주장도, 그 시대적 맥락에서 봐야 올바로 이해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19세기 조선의 현실을 동학이라는 사상으로 돌파하려 했던 수운 최제우의 간난신고는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지만, 사상으로 무장한 농민들의 봉기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만든 단초였던 점은 숙고할 가치가 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누구나 자기 안에 하늘이 있으니 사람을 대할 때는 하늘처럼 대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과 가진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함께 도와야 한다는 유무상자(有無相資) 정신이 농민들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신동엽이 말한 것도, 그리고 김수영이 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도 바로 ‘사상’이었다. 니체도 같은 말을 했다. “인간이 가진 예술 감각의 모든 산물 중에서 가장 영속적이고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은 사상이다.” 난감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의 복판에 서서 우리가 사상적으로 얼마나 빈약한지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우금티에서의 좌절과 통분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유세미의 인생수업] 인생은 모를 일이다

    [유세미의 인생수업] 인생은 모를 일이다

    무난하고 심심하게 살자가 인생 목표였다. 워낙 ‘인생 한 방’을 가훈으로 삼고 사업을 벌였다 망하기를 무한 반복한 부모 덕에 질풍노도의 어린 시절을 보낸 미자씨. 결혼 상대를 고를 때도 어디서 본 듯한, 아주 밋밋한 타입을 덥석 고른 이유 역시 이런 그녀의 마음 때문이었다. 고맙게도 남편은 미자씨 집 근처 동사무소 직원이라 무난하게 살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싶었다. 그러나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그녀가 바라던 대로 심심하지만 원만한 세월은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 종지부를 찍었다. 사춘기가 뒤늦게 온 탓인가. 공부를 전폐하고 부모에게 반항하기 위해 태어난 애처럼 굴었다. 늘 반쯤 졸고 있는 듯한 집안 공기를 참을 수 없다나, 왜 자길 낳았냐고 하질 않나, 부모가 부자도 아닌데 자기의 미래도 이미 정해져 있는 거 아니냐고, 열심히 뭘 어떻게 하느냐며 급기야 학교도 자퇴하겠다고 속을 박박 긁어 댔다. 피시방, 찜질방을 밤새도록 질질 짜며 비련의 여주인공, 아줌마가 되어 가출한 아들 찾아 거리 헤매기를 꼬박 2년 넘게 겪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어찌어찌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을 때 미자씨는 더이상 소원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그뿐. 졸업 후에도 국가와 사회를 탓하며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아까운 젊은 날을 흘려보내더니 어느덧 3년이 흘러 아들은 사회복무요원으로 소방서 근무를 시작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과연 진리였다. 아들은 처음부터 소방관의 DNA라도 타고난 양 탁월하게 적응하는 듯했다. 119구급차 출동의 보조, 그러니까 짐 들고 구급대원을 따라 뛰는 것이 그의 업무였는데 결과적으로 소방서는 아들의 인생학교가 됐다.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며 119를 찾은 내 또래 남자 때문에 출동했거든. 처음에 뭘 먹었냐고 물어보잖아. 그저께 먹다 남긴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었대.” 퇴근해서 그 얘기를 한 이후부터였다. 아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 먹다 남은 라면 국물도 아까워 못 버리고 다시 먹는 사람들의 가난이 아직도 이 나라에 엄연히 존재한다. 돈 문제로 가족끼리 피 나도록 주먹다짐을 한 사람들이나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락스를 퍼마신 모녀를 응급실로 옮겼다고도 했다. 아들은 싫었던 자기 집이 ‘비둘기처럼 다정하고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이라는 사실을 그때마다 온 마음으로 느꼈는지 모르겠다. 장기 두던 할아버지들 몸싸움에 출동하기도 한다. 다툼을 말리며 귀가 잘 안 들리는 노인들에게 경찰과 구급대원이 양쪽에 매달린다. “집이 어디세요”를 수도 없이 외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어린 인내심은 폭풍 성장하리라. “왜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도로 한가운데에 누울까? 대체?” 라는 아들의 질문에 ‘젊은 네가 죽겠다고 술 마시고 8차선 도로를 뛰어다녔던 적이 엊그제다’는 말을 꿀꺽 삼킨 채 ‘그들을 도와주는 게 네 일’이라고 의젓하게 대답해 주며 미자씨는 성장하는 아들이 감사할 뿐이다. 불행을 그러려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순간의 사고로 생사를 오가는 이들을 아들은 매일 만난다. 생명의 귀함과 덧없음을 동시에 배운다. 그러면서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을 돕는 일은 특별 이벤트 아닌 누구에게나 일상이 돼야 한다고 중얼댄다. 살다 보면 삶이 상냥하지 않거나 유독 나에게만 불친절하다고 느껴지는 적이 때때로 있다. 미자씨는 하나뿐인 아들의 오랜 방황 시절을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나 인생, 더 가봐야 안다. 미리 실망하면 자기만 손해다. 오늘 속수무책으로 겪는 풍파지만 훗날 반전은 일어난다. 인생의 묘미다. 신께서 연약한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일지도 모른다.
  • 25년 방글라데시 의료 천사

    25년 방글라데시 의료 천사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제31회 아산상 대상 수상자로 25년간 방글라데시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열악한 의료환경 개선에 기여한 이석로(55) 방글라데시 코람톨라병원 원장을 선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원장은 전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을 딴 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결심해 1994년 방글라데시 코람톨라병원 의사 모집 공고에 지원했다. 당초 3년만 머물려고 했었지만 이 원장의 의료봉사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는 방글라데시 코람톨라병원이 외부 지원 없이 자립할 수 있도록 병원 체계를 갖추는 데 기여했고 저렴한 비용으로 매년 8만명 이상의 빈민을 치료하고 있다. 아산상 의료봉사상에는 소록도 한센인 의료봉사로 시작해 현재 아프리카 에스와티니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지 빈민층의 건강증진과 교육 등에 헌신한 김혜심(73) 박사가 선정됐다. 1976년 소록도병원에서 약사로 봉사하면서 한센인을 돌봤던 김 박사는 1995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스와티니에서 빈민 대상 보건·의료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사회봉사상에는 1973년부터 서울 강서구 등에서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선정됐다. 재단은 아산상 수상자에게 상금 3억원, 의료봉사상과 사회봉사상 수상자에게 각각 1억원 등 6개 부문 12명 수상자에게 7억 7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시상식은 다음달 2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벨기에 출신 ‘파란 눈의 사제’ 지정환 신부는 ‘임실치즈의 아버지’로 불린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던 1959년 낯선 땅을 밟은 이방인은 1964년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했다. 그는 굶주림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작은 산골을 보고 양이나 젖소를 키워 치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965년 산양 두 마리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 다음해는 임실산양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효소는 막걸리 누룩, 발효통은 약탕기로 대신해 치즈 생산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직접 치즈 제조기술을 배워와 1967년 대한민국 최초로 카망베르 치즈 개발에 성공했다. 1968년에는 정과 망치만으로 우리나라 최초 치즈공장을 설립했다. 1972년에는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해 조선호텔에 납품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후 임실치즈는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정환 신부는 1964년부터 현재까지 임실치즈 생산과정이 담긴 기록물을 임실군에 기증했다. 그는 지난 4월 “임실을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선종했다. 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시론] 국가 체육에서 시민의 스포츠로/정윤수 성공회대 교수·스포츠 평론가

    [시론] 국가 체육에서 시민의 스포츠로/정윤수 성공회대 교수·스포츠 평론가

    제100회 전국체육대회가 막을 내렸다. 주최 도시인 서울시가 24년 만에 종합우승을 했고, ‘전국체전’이라는 별칭에 맞게 전국 각지에서 모인 출중한 선수들이 저마다의 꿈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관중석은 썰렁했다. 몇몇 종목의 경기장은 선수들만큼이나 관중들의 함성이 크게 울려 퍼졌지만 대개는 선수와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를 남겼다. 식민과 전쟁과 가난을 거치면서도 명맥을 유지한 100년 역사의 전국체육대회가 그 어느 시절보다 스포츠산업이 발달하고 레저 문화가 활발한 21세기 들어 오히려 극도의 침체를 보이고 있다. 같은 기간에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열렸고,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지역 예선전이 열렸으며, 저 멀리 카타르에서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 모든 경기들이 생중계되고 밤마다 몇 차례의 재방송에 하이라이트까지 편성됐으나 전국체전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저조했다. 문화가 되지 못하고, 산업이 되지 못하고, 그야말로 스포츠를 통한 전국적인 축제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니 미디어에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체전은 한편으로는 일본이 정교한 문화제국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장이었지만 동시에 식민지 조선인들이 대거 운집해 강력한 집단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이었다. 1938년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당하고 대회 또한 중단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방 직후의 혼란과 전쟁으로 인한 극도의 피폐함 속에서도 바로 그런 상황 때문에라도 전국체전은 신생 독립국의 일체감을 위해 지속될 수 있었다. 88올림픽을 정점으로 하는 개발독재 과정에서 전국체전은 국민 동원식 발전주의 국가 정책의 핵심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축사를 하고 시상을 했으며, ‘입장상’까지 제정해 ‘일치단결’의 문화 통치가 스펙터클로 확연하게 펼쳐지는 장이 됐다. 그 시절의 국가 이념이자 전국체전 구호이기도 한 “굳센 체력, 알찬 단결, 빛나는 전진”은 전국 각지의 체육 시설 강화와 체육인 우대 정책으로 이어졌다. 전국체전의 황금시대는 아쉽게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 과거보다 오히려 더 지속가능한 기회가 몇 차례 있었으나 다 놓쳤다. 1990년대 이후 스포츠레저 문화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참여가 늘어났으나 이른바 ‘체육인’들은 ‘체육’을 스포츠 문화로 사회화하는 데 실패했다. 스포츠 문화의 잠재력과 그 욕망을 읽지 못했으며 그에 내재된 엄청난 미디어적, 문화산업적 파급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전면적인 지방자치제 실시도 기회였다. 각 지자체는 전국체전 유치를 계기 삼아 스포츠 인프라를 확충하고 소속 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절반의 성공, 그러니까 절반은 실패했다. 전국체전 유치가 선거 전략이 되고 경기장 건설과 도로 확충을 ‘지역 발전’이라고 내세운 선거 공학에 의해 ‘체육’은 다시 한번 주민들의 일상 문화와 멀어졌다. 수많은 생활 스포츠 동호회와의 일상적인 결합, 크고 작은 대회의 지역 축제화를 도모했어야 했는데, 그 무슨 ‘경제 유발 효과’ 같은 숫자의 저주에 걸려들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국가의 체육 정책이 사회 전반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이 크다. 체육계도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스포츠 문화에 대한 시민의 문화적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치단체나 소속 학교의 ‘실적과 명예’에 종속되고 말았다. 시도 간 과열 경쟁, 정치적 이해에 따른 종목 채택, 과다한 비용으로 진부하게 진행하는 개폐회식, 대회 참가를 위해 급조된 팀, 종합 순위 점수제의 폐단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이제 더 큰 위기가 다가온다. 내년부터는 지자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할 수 없게 된다. 체육 예산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지자체가 운영하는 팀이 축소되거나 해체될 수도 있다. 지자체 팀에 근거해 치러지는 전국체전도 예산이 축소될 수 있다. 이제는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국가에 의한 국위선양 시대는 종막을 고했다. 지자체에 의한 동아줄도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중앙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거나 지자체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답이 없다.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도 체육인의 전문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체육인들이 경쟁과 갈등에 지친 이 세상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변모시킬 수도 있다. 스스로를 고립시킨 ‘체육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건강한 시민이 돼야 한다. 국가와 지방정부에 종속된 상태를 벗어나 자생해야 한다. 시민들의 삶이 새로운 터전이며 시장이다.
  • 갓난 딸아이 산 채로 매장, 죽은 딸 묻으려던 아빠가 구출

    갓난 딸아이 산 채로 매장, 죽은 딸 묻으려던 아빠가 구출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 무덤에 산 채로 묻힌 갓난 딸아이가 마을 주민의 눈에 띄어 구조됐다. 특히 구조한 주민은 미숙아로 태어난 지 몇 분 만에 숨진 딸의 주검을 묻으려고 저녁에 무덤에 갔던 아빠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영국 BBC가 14일 전했다. 딸을 묻으려고 흙을 삽으로 떴는데 토기(土器)에 부딪치자 이 남성은 지하 90㎝ 깊이에 파묻힌 토기 안에 갓난 아기가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아기를 구조한 남성은 경찰에 신고했고 아기는 바레일리 지구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는데 회복 중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경찰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부모를 찾고 있다. 부모의 동의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인도의 성비는 세계 최악의 남초(男超) 현상을 보인다. 2015∼17년 남자 1000명당 여자의 비율은 896명에 불과했다. 여성은 사회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으며 어린 소녀들은 시집 보낼 때 지참금(다우리)이 필요해 가계에 재정적 부담을 주는 존재로 취급된다. 특히 가난한 계층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사내 아이를 선호하는 관습 탓에 수백 만명의 여자 어린이들이 낙태와 유아 살해에 내몰리고 있다. 불법으로 성별을 감별하는 클리닉이 낙태를 돕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태어난 뒤에도 죽임을 당하는 일이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라고 방송은 전했다.불법 낙태와 여아 살해 등이 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아가 태어나면 아에 호적 신고를 안하는 일도 많다. AP통신이 지난해 초 인도 정부의 통계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인도에 호적이 없는 여성의 수는 6300만명에 이른다. 지난 7월에는 북부 우타라칸드주 우타르카시 지역의 132개 마을에서 3개월 동안 사내 아이 216명만 출생 등록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지독한 가뭄·굶주림·장애… 악전고투하는 인간 군상들

    지독한 가뭄·굶주림·장애… 악전고투하는 인간 군상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옌렌커가 직접 고른 작품 네 편이 실린 중·단편 모음집이다. 집필하는 작품마다 판매나 홍보가 금지되면서도, 중국 평단이나 대중은 물론 세계 문학계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작가다. ‘연월일’은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그의 중·단편집이다. 표제작 ‘연월일’은 ‘태고 이래 최악의 가뭄’에 사람들이 모두 떠난 마을을 눈먼 개와 함께 홀로 지키는 셴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특별한 줄거리 대신 이 고집 센 할아버지와 그 옆을 지키는 눈먼 개의 일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한 줄기 오줌도 옥수수 거름으로 주려고 아끼고 아끼는 할아버지와 개.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는 옥수수 이파리 표면에 웬걸, 짙은 갈색 반점이 생긴다. ‘가뭄 때문인가’ 하다가 할아버지는 언뜻 스치는 진실 앞에 대뜸 눈앞의 개를 걷어찬다. 사람보다 더 기름지고 뜨거운 개의 오줌 탓에, 거름이 지나쳐 생긴 반점이었다. 소설은 이처럼 지독한 가뭄과 굶주림, 장애와 가난 등 극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악전고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다. 소설의 특징인 ‘허구’에 환상적 요소가 결합되며 때로는 기담이나 설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죽은 인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 이제 막 죽어 저승으로 건너가려는 주인공이 자신의 생애를 영화 보듯 목격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현실적인 설정이 쌩뚱맞아 보이지 않는 까닭은 이들이 처한 극한 상황과 감정 변화를 워낙 세밀하게 써내려 가는 작가의 문체 덕이다. 옌렌커의 소설에서 인간과 자연,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남자와 여자는 ‘생생히’ 살아 있다. 거기에 옌렌커 특유의 흡인력 있는 묘사가 더해져 책은 뜻밖에 ‘페이지 터너’다. ‘태고 이래 최악의 가뭄이 덮쳤던 그해에는 세월도 타서 재가 되어 버렸다’(연월일)라든가 “낯짝이 있으면 가서 밭이나 갈아요. 가서 저 당나귀처럼 땅을 갈아 보라고요” 하는 아내의 일갈(골수)도 재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중국 최고의 풍자소설가. 현대 중국의 어두운 역사에 색다른 유머와 초현실적 이미지를 배치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그 녀석이 다가왔다… 바다는 동화가 됐다

    그 녀석이 다가왔다… 바다는 동화가 됐다

    물안경을 끼고 바닷속을 들여다봤다.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에, 연둣빛 바다 아래에서 거대한 생명체들이 유영하고 있다. 수족관에서나 보던 ‘그’ 고래상어다. 눈은 쟁반만큼 커지고, 가슴은 쿵쾅대며 뛰었다. 지구의 해양생물 가운데 가장 큰 축에 속한다는 녀석은 방향을 바꾸기 위해 거대한 꼬리지느러미를 천천히 휘감고 있었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비단옷처럼 말이다. 덩치는 제각각이었다. 큰 녀석은 10m를 족히 넘는 듯했고, 작은 녀석도 5~6m 정도는 돼 보였다. 필리핀 세부섬 남쪽의 오슬롭. 작은 어촌마을 앞바다에서 이 거대한 녀석들과 함께 헤엄쳤다. 고래상어와 사람 사이에 수족관 유리벽 같은 장애물은 없었다. 야생의 생명을 ‘직관’하며 행복을 느끼는 이라면 세상 이런 경험이 없지 싶다. 백일몽을 꾼 듯, 물속에서 보낸 30분이 3분처럼 흘렀다. 고래상어. 도무지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다. 포유류인 고래와 어류인 상어를 단순하게 나열했으니 말이다. 고래상어는 연골어류 수염상어목 고래상엇과에 속한 물고기다. 우리가 흔히 상어라 부르는 바로 그 종이다. 한데 먹이를 먹는 방식은 무시무시한 상어들과 아주 다르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새우류 등을 바닷물과 함께 빨아들인 뒤 걸러 먹는다. 이 모습이 수염고래류와 비슷하다 해서 상어 앞에 고래를 붙인 것이다. ●‘바다 초식동물’ 어린 고래상어 먼저 다가와 고래상어는 순하다. 바다의 초식동물 정도로 생각하면 맞을 듯하다. 수줍은 듯, 무관심한 듯, 사람이 다가가도 본체만체한다. ‘어린’ 녀석들은 종종 사람에게 달려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돌고래처럼 장난기가 발동해서 벌이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한데 덩치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그마저 무섭다. 이럴 때면 많은 사람들이 기함을 하며 허겁지겁 배로 돌아오곤 한다. 고래상어가 물을 빨아들이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섬뜩하다. 성체 고래상어가 한 번 입을 벌릴 때 빨아들이는 물의 양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다만 ‘대왕고래’로 불리는 24~25m짜리 흰수염고래 성체가 한 번 빨아들이는 바닷물의 양이 90t에 달한다는 연구결과 등에 비춰보면 10m가 넘는 오슬롭의 고래상어가 빨아들이는 바닷물 역시 얼추 30t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른 키만 한 꼬리지느러미도 그렇다. 바닷 속을 유영할 때는 더없이 우아한 곡선미를 보여주지만 사람에게 닿았을 때를 상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나마 고래상어가 여과섭식 어류로 진화했기 망정이지, 동족과 비슷한 형태로 진화했다면 어쩌면 범고래를 능가하는 지구상 최강의 해양 포식자가 됐을 것이다. 고래상어 투어는 사전교육 등 제법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등 제약도 많다. 특히 고래상어를 만지는 건 엄격히 금지된다. 다만 고래상어가 다가와 ‘만져지는’ 경우는 종종 생긴다. 녀석의 피부는 단단한 편이다. 한데 겉은 부드럽다. 단단한 골격을 값비싼 벨벳으로 장식하고 있는 듯하다. 고래상어 투어는 전통 목선(방카)을 타고 이뤄진다. 멀지도 않다. 해변에서 100m쯤 나가면 고래상어의 놀이터다. 너른 바다를 헤엄쳐야 할 녀석들이 사람 가까이 머무는 건 먹이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시간이면 주민 몇몇이 고래상어에게 곤쟁이 비슷한 먹이를 주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유도한다. 국제환경단체를 포함해 많은 이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장면이다. 수족관만 없을 뿐 ‘사육’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필리핀 관광부 관계자에 따르면 오슬롭의 고래상어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8년 전쯤이다. 오슬롭에서 다이빙숍을 운영하는 한국인이 우연히 조우한 고래상어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고, 아침마다 오슬롭 마을을 찾아오는 고래상어에 대한 소문을 들은 다이버들과 관광객이 늘면서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체험 관광지가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슬롭을 찾는 일부 고래상어의 생애에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 같은 먹이주기가 수많은 야생의 고래상어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아직 없는 듯하다. 세부 시내의 볼거리로는 마젤란의 십자가, 산 페드로 요새 등이 꼽힌다. 스페인의 탐험가 마젤란이 1521년에 이 지역에 상륙해 만든 십자가라고 전해진다. 이웃한 산 페드로 요새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1738년경 세워진 건물이다. 둘 다 세부항에서 가깝다.●‘예뻐서 더 서글픈’ 형형색색 수상가옥 사실 세부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고 가장 인상적인 곳은 수상가옥 마을이다. 세부와 막탄섬을 잇는 마르셀로 페르낭 브릿지 등 바다와 접한 곳에는 어김없이 수상가옥이 있다. 수상가옥은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다. 상하수도가 제공되지 않는다. 자기 땅도 아니다. 주민들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난한 이들이 사는 마을이지만 함석 지붕의 빛깔만큼은 형형색색이다. 열대어의 현란한 체색을 닮았다. 통속적 표현을 빌자면 ‘예뻐서 더 서글픈’ 풍경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봐도 좋고, 직접 마을 안으로 들어가 봐도 좋다. 치안이 염려된다면 잠깐 들여다보고 나오는 것도 방법이겠다. 재래시장 구경도 재밌다. 라푸라푸시 재래시장이 큰 편이다. 마르셀로 페르낭 대교에서 ‘퍼블릭 마켓’이라 적힌 이정표를 따라가면 나온다. 재래시장 역시 남루하기는 마찬가지다. ‘잘사는 나라’에서 온 여행자가 살 만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왁자한 생동감만큼은 어디나 같다.●한국인 많이 찾는 제이파크 아일랜드 리조트 세부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숙소는 제이파크 아일랜드 리조트다. 전체 투숙객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인, 특히 가족 여행객들이라고 한다. 제이파크 아일랜드가 올해 10주년을 기념해 ‘뽀로로 파크’를 새로 조성했다. ‘뽀통령’ 뽀로로 상표권을 갖고 있는 한국 기업 아이코닉스와 협업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다. ‘필리핀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라는 홍보 문구에 걸맞게 ‘뽀로로 파크’는 2개층 약 1440㎡(435평) 규모에 달한다. 이 안에 뽀로로 기차와 회전목마, 가상현실(VR) 라이더, 스윙카, 디지털 스케치 등 놀이시설을 갖춘 아케이드가 들어간다. 카페, 기념품숍 등도 마련돼 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길 만한 콘텐츠가 빼곡하다. 아이들을 ‘안달 나게 만들’ 콘텐츠는 또 있다. 막탄 스위트룸 객실 20개를 개보수해 조성한 ‘뽀로로 객실’이다. 엘리베이터는 뽀로로의 눈 덮인 마을 모습으로 연출했고, 객실이 있는 층의 복도 또한 뽀로로 캐릭터와 아트워크로 꾸몄다. 객실 안은 더하다. 뽀로로가 새겨진 침대부터 실내복, 가구, 어메니티 등이 죄다 뽀로로와 친구들 캐릭터 일색이다. 미니 볼풀장과 슬라이드, 디지털 스크린 등도 마련됐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최소한 객실에서는 ‘신경 끄고’ 쉬어도 되지 싶다. 요즘 유행이라는 ‘호캉스’를 즐길 수도 있다. 리조트 중앙의 워터파크는 슬라이드와 파도풀, 유수풀, 키즈풀 등을 갖췄다. 저녁에는 화려한 불쇼 등의 공연이 워터파크 주변에서 매일 열린다. 리조트 앞 프라이빗 비치에서는 해수욕과 스노클링, 패러 세일링 등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스노클링이 재밌다. 호핑 투어에 견주기는 어렵지만, 작고 앙증맞은 물고기들을 보는 소소한 재미는 충만하다. 글 사진 세부(필리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인천공항에서 세부까지는 4시간 30분쯤 소요된다. 리조트가 몰려 있는 막탄섬에 세부 국제공항이 있다.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는 보통 낮 12시 이전에 끝난다. 가급적 이른 시간에 찾는 걸 권한다. 오슬롭은 세부 서남쪽 끝에 있다. 막탄 섬에서는 편도 3시간 거리다. 세부 시내의 교통 정체를 감안하면 4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따라서 오슬롭만 다녀오기는 아쉽고, 수밀론섬 등 아일랜드 호핑투어나 투말록 폭포 등과 묶어 돌아보는 게 좋다. 현지 한인 여행사나 제이파크 리조트 등에서 데이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세부항에서 보홀섬까지는 직선거리로 32㎞ 정도로 가깝지만 쾌속선(슈퍼캣 기준)으로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보홀 남쪽의 타그빌라란항구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에서 오는 11월 21일 보홀 직항편을 취항할 예정이다. 인천 공항에서 매일 운항한다.
  • 젊은 샬라메 감성 연기에 매료… 佛과 전투장면은 사실감 넘쳐

    젊은 샬라메 감성 연기에 매료… 佛과 전투장면은 사실감 넘쳐

    짙은 눈썹 아래 우수에 젖은 눈, 오똑한 콧날에 앙다문 입술. 아름답고 지혜롭기까지 한 젊은 왕은 선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일군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리다. 영화 마지막까지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 마음도 그를 따라 흔들릴 법하다. ●넷플릭스 영화 첫 부산영화제 초청 역시 티모테 샬라메였다. 넷플릭스 영화 ‘더 킹: 헨리 5세’에서 그를 대체할 배우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앞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풋풋하고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여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은 그는 이번 영화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는 선대 왕들이 이루지 못한 프랑스 정복에 성공한 15세기 잉글랜드 왕 헨리 5세 이야기다. 잉글랜드 왕자 할(티모테 샬라메 분)은 소모적인 전쟁을 일삼는 아버지 헨리 4세에 대한 반발로 궁정을 떠나 가난한 동네 이스트칩에 머문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방황하는 왕자서 강한 왕으로 변모 프랑스가 그의 즉위식에 작은 공 하나를 선물로 보내 조롱하고, 프랑스 왕세제(로버트 패틴슨 분)가 도발을 하면서 할은 프랑스로 진군한다. 아버지를 미워하며 술과 주색에 빠진 방탕한 왕자가 왕이 됐으니 못마땅한 시선이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압박을 이겨내고 국민을 위한 왕이 되기로 했지만 전쟁이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방황하는 왕자에서 강한 왕으로 변모하는 스펙트럼 넓은 연기가 볼만하다. ●“어른에게 둘러싸이면 압박감 느껴” 샬라메는 지난 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처럼 어른들(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나도 압박감이 있다. 영화 속 할도 분명히 그랬을 것”이라면서 “어린 시절 주변에서 많은 압력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미쇼 감독은 그의 연기에 관해 “젊고 어린 배우가 이런 왕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 대단하다. 티모테처럼 감성이 풍부한 젊은 배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고 극찬했다. 할의 친구이자 백전노장 사령관 폴스타프(조엘 에저턴 분)가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대법관 윌리엄(숀 해리스 분)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다. 시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명대사의 향연도 이어진다. 넷플릭스 영화로는 올해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은 만큼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갖췄다. 일반 극장영화 못잖게 전투 장면의 규모가 큰데, 특히 프랑스와 싸우는 ‘아쟁쿠르 전투’ 장면은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오는 23일 일부 영화관에서 개봉하고, 다음달 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다. 133분.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16세 케냐 여성에게서 태어난 밝은 피부 소년의 비밀

    16세 케냐 여성에게서 태어난 밝은 피부 소년의 비밀

    아프리카 케냐의 한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가 16살이던 어머니를 임신시킨 이탈리아 선교 신부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교황청이 조사에 들어갔다. 아프리카에서 성적 학대와 신부를 아버지로 둔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AP통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케냐의 남성 제럴드 에레본은 그의 인생 30년동안 버려진 아들이었다. 키가 크고 피부가 밝으며 머리결은 구불굴한 그는 짙은 피부의 보통 케냐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출생신고서의 아버지와 흑인인 어머니, 다른 형제 자매들과도 다르다. 케냐의 외딴 마을 아처스 포스트에 사는 에레본과 그의 가족, 마을 사람들은 에르본이 1980년대 이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콘솔라타선교회 소속의 이탈리아 신부 마리오 라친(83)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다. 에레본은 아처스 포스트 및 나이로비에서 AP와의 인터뷰에서 “출생신고서에 따르면 나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며 “나의 정체성과 나의 역사를 찾고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라친 신부는 에레본의 아버지임을 부인하면서도 친생자 테스트는 거부했다. 바티칸이 개입해 지난 5월 사제의 자녀들을 옹호하는 빈센트 도일이 에레본의 주장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 도일은 에레본의 출생증명서를 확보했고,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어머니 사비나 로리칼레가 16세가 되는 1988년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케냐에서 법적 성관계 동의 나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18세다. 성적 학대 비난이 가톨릭 신부 사회를 뒤흔드는 가운데 불법적 행동에 의한 임신이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성직자가 아동들과 성관계를 가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유럽 호주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에서 교회의 우선 순위는 가난과의 싸움, 분쟁, 아이들을 전쟁이나 노동에 파는 인신매매 근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최근에서야 동아프리카 신부들이 아동 성적 학대를 예방하고자 지역 어린이 보호 기준 및 지침을 만들었다. 프랑스 문화권의 서부 아프리카 일부에서는 가톨릭 교회가 사회 보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구상들은 상대적으로 새롭고 마구잡이이며 자금이 부족하다. 라친 신부는 사비나 로시칼레가 이디오피아로 향하는 고속도 로 옆의 먼지 자욱한 마을인 아처스 포스트에 있는 기르기르 초등학교 학생일 때 만났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자란 로시칼레는 부모가 양들이 먹을 목초를 찾아 집에서 며칠씩 떠나 있는 바람에 집에 사촌들과 남아있곤 했다. 16세가 되기 이전 전 사비나는 방과후 학교를 빼먹고 라친 신부의 거처에서 요리와 청소 등의 일을 했다. 동생 스콜라스티카는 언니가 헤어질 때 문제의 신부와 허깅하는 것을 여러차례 봤다고 회상했다. 또 한번은 사비나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와 목욕하게 물을 길어오라고 요청했다고 스콜라스티카는 말했다. 어떤 밤은 언니가 집에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신부는 50대 초반이었다. 흙벽돌로 지은 집에서 가족 사진을 보던 스콜라스티카는 “내 생각에 마리오 신부가 언니를 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는 언니에게 선물과 음식, 옷으로 뇌물을 먹였다. 우리에게 책도 사줬다. 언니는 우리가 필요한 책과 펜을 갖고 오곤 했다”고도 했다. 어느날 밤 사비나가 구토를 했다. 그녀가 임신한 첫 암시였다. 라친 신부는 조용하게 다른 선교지로 옮겨갔다. 그의 운전기사이자 아처스 포스트의 교리문답 교사인 벤자민 에크왐이 사비나와 결혼하도록 선택됐다. 지역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아처스 포스트 사람들은 마리오 신부를 알고, 그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에레본이 태어났을 때 조차도 신부를 닯았다”고 에레본을 초등학교에서 가르친 알프레드 아두칸 루테가 말했다.2013년 중반 에레본은 라친 신부와 연결이 닿아서 엄마가 죽은 뒤 관계 회복을 바라면서 두달 이상 이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없자 그는 직접 만나기 위해 교회 관리인으로 일하는 케냐 북부의 마르사빗으로 갔다. 그곳에서 에레본은 라친 신부에게서 이야기의 서막을 들었다. 5년 뒤 에레본은 도일과 연락이 닿았다. 라친에게 DNA 검사를 강제할 수 없고, 화해 과정을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두사람은 키가 크고 마른데다 광대뼈가 나온 모습이 놀랍도록 닮았다. 에레본은 자신과 두 아이를 위해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라친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진실에 기반의 삶은 원한다. 에레본은 “나의 정체성과 역사를 갖고 싶다. 내 자녀들도 그들이 진정 누구인지 알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쿡 선장 뉴질랜드 상륙 250주년 “이게 기념할 만한 일인가”

    쿡 선장 뉴질랜드 상륙 250주년 “이게 기념할 만한 일인가”

    몇 백년 동안 마오리족이 거주해왔는데 제임스 쿡(1728~1779년) 선장이 발견했다고 하고, 뉴질랜드 정부가 쿡 발견 25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1769년 10월 8일 영국인 탐험가 쿡 선장 일행이 HMS 엔데버 호를 타고 기스번 해안에 첫발을 내디뎌 식민 통치의 시작을 알린 날이다. 하지만 마오리 말로 아오테아로아로 불리는 뉴질랜드는 마오리족이 이미 뿌리를 내린 곳이었다. 마오리 공동체에 끼친 해악을 감안해서라도 쿡의 발견 250주년은 기념할 만한 일이 아니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고 영국 BBC는 7일(현지시간) 전했다. 250년 전의 엔데버 호를 본뜬 HM 뱅크 엔데버 호가 기스번 항구에 도착한 순간 환영 인파와 반대 시위대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25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한 제니 시플리는 쿡의 상륙이 “사회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비극적 개입”이라고 생각한다며 같은 뉴질랜드인으로서 다름을 표출하고 싶어하는 것은 성장하는 데 나쁜 요소가 결코 아니“라고 라디오 뉴질랜드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지난주 영국 인권판무관 로라 클라크는 성명을 발표해 쿡 선장이 이 섬에 첫발을 내디뎌 처음 만난 이위(iwi) 부족민 아홉 명을 살해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지만 사실상 사과와는 거리가 있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쿡 선장이 지금의 기스번인 투랑가누이 강에 도착했을 때 부하들과 마오리 주민들이 처음 마주쳤는데 은가티 원원 그룹이 베푼 전례 의식을 쿡의 부하들은 자신을 위협한다고 착각해 지도자를 비롯해 아홉 명을 살해했다. 많은 마오리족 인권 단체들은 쿡의 도착 후 며칠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아직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원주민 인권 운동가인 티나 은가타는 이번 기념 행사가 “침략과 제국주의 팽창을 기념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위대는 식민지 시절에 마오리 조상들이 공정하지 못하게 다뤄졌으며 오늘날도 가난과 범죄, 차별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기스번에 있는 쿡 선장 동상이 낙서로 훼손되거나 파괴되는 일이 되풀이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욱이 쿡보다 먼저 뉴질랜드에 발을 디딘 유럽인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네덜란드 항해사 아벨 타스만이 80여년이 훨씬 앞선 1642년에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이다. 물론 폴리네시아 제도의 마오리족은 타스만보다 몇 백년 전에 이미 뉴질랜드에 당도했다.해서 뉴질랜드는 기념 행사의 명분을 조금 다르게 설정했다. 마오리족과 유럽인의 첫 만남 250주년이라고 표현해 이날 엔데버 호를 본뜬 배 등이 북섬의 동쪽 해안에 있는 도시 기스번에 당도하는 재현 행사를 펼친다. 뉴질랜드 의원인 켈빈 데이비스와 키리타푸 앨런이 선상에 올라 승무원들을 맞는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마오리 말로 투랑가 누이 아 키와라고 불리는 기스번 시내에서 시위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도 지난 5일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행사에 참석해 뉴질랜드 역사에 관한 논쟁을 더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던 총리는 “우리는 진실되게 말하고 있지만, 내 믿음에 그 얘기의 50%는, 잘 얘기되고 있지 않다”며 뉴질랜드인들은 과거의 얘기 전체를 배우고 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하루 숙박료 단돈 100원, 가난한 이들의 안식처가 된 호텔

    [여기는 베트남] 하루 숙박료 단돈 100원, 가난한 이들의 안식처가 된 호텔

    베트남 남부 껀토시의 닝끼우에는 매우 특별한 레지던트 호텔이 있다. 오직 가난하거나 병들어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데, 하루 숙박료가 단돈 1500동(한화 77원)~2만2000동(한화 1135원)에 불과하다. 갈 곳 없는 가난한 이들의 ‘성소’로 알려진 끼엔 안 레지던트 호텔, 이곳의 사장은 호치민에서 사업을 하는 응웬 탄 응웬 씨로 알려졌다. 매니저 탄 린 씨의 소개에 따르면, “사장님이 우연히 껀토를 방문했다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지낼 곳이 없어 병원 복도와 벤치에서 지내는 것을 보고,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라고 전했다. 응웬 씨는 이곳을 월 1000만 동(한화 51만6000원)에 임대한 뒤 7억 5000만 동(한화 3870만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마쳤다. 총 13개 룸, 각 방에는 4개의 침대와 에어컨 및 선풍기가 배치되어 있다. 무료 와이파이 사용도 가능하다. 덥고 습한 베트남 날씨에 누구라도 편안히 지내다 갈 수 있도록 깔끔한 편의시설을 두루 갖췄다. 여기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기 질병을 앓거나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이다. 상황이 어려운 노동자, 지방에서 올라온 가난한 청년, 암 환자들도 이곳을 찾는다. 호텔 인근에 대형 병원이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리 낌 로안(41, 여)씨는 “껀토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가까운 곳에 이렇게 쾌적하고 저렴한 숙소가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고 행복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한 달을 머물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은 “이곳에 머무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한다”고 말했다. 탄 린 매니저는 “이곳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확신한다”면서 “대도시 한복판에도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에 우리의 지원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 통신원 jongsil74@naver.com 
  • [김금숙의 만화경]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김금숙의 만화경]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식당은 만원이었고, 나는 혼자 찌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 테이블엔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온 듯한 다섯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밥을 막 먹으려던 참이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가장자리에 불편하게 앉은 아줌마에게 내 쪽으로 오셔서 드시라고 했다. 그녀는 조금 놀란 듯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왜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땅을 떠날까? 아니 떠날 수밖에 없는 걸까? 이유야 다르겠지만 나는 화가로서의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22살에 고향과 가족을 떠났었다.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큰물에서 놀겠다고 돈도 없으면서 야심 차게 파리로 올라왔다. 창작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가 당장 급했다. 파리 보자르를 졸업한 한 프랑스 친구는 퐁피두센터에서 전시 지킴이를 했다. 말 그대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지키는 그 일은 어두운 설치나 괴상한 음향의 작품일 경우엔 곤욕이었다. 비슷한 연령의 유명 예술가와 유명 예술가를 꿈꾸는 무명 예술가가 같은 공간에 빛과 그림자의 차이로 공존했지만 페이는 괜찮은 편이었고 점심 티켓까지 나오니 자리만 있다면 얼씨구나 달려들 참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마저도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나는 퐁피두 미술관 광장 앞에 있는 체인점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유학생 자격으로 일주일에 20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했다. 가게에는 나 외에 세 명의 정직원과 한 명의 책임자가 있었다. 나를 제외한 그들은 모두 20살에서 23살. 파리 외곽 지역인 방리유에 살았다. 그녀들 사이엔 서열이 있었는데 가게 안에서 힘들고 귀찮은 일들은 무고건 내 차지였다. 나도 외국인이요, 본인들의 부모도 이주민이었다. 이주자 2세인 그녀들 또한 프랑스 사회에서 소외 계급이었지만 그녀들은 나를 더 낮은 서열로 보았다. 내가 청소기를 들고 1, 2층을 도는 동안 그녀들은 음악을 틀고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사장의 아들이 느닷없이 가게에서 긴급 회의를 열었다. 수익금이 자꾸 사라진다는 이유였다. 누가 도둑인지 안다고 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라지는 돈에 관한 이야기 대신 가게 안에서 보이지 않은 권력 행사와 부당함, 차별에 예를 들어 가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를 제일 괴롭히던 판매원이 울음을 터트리며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기가 막혔다. 정작 피해자는 나인데 왜 자기가 우는지. 돈을 훔치고 옷을 훔치고 날 못살게 괴롭히던 그녀는 해고되지 않았다. 그만둔 건 오히려 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울고 나간 그 판매원은 사장의 조카라고 했다.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 옷가게를 나와 퐁피두센터를 뒤로하고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겨울바람이 매섭게 내 볼을 쳤다. 잔뜩 웅크리고 걷는데 누군가 나를 팍 민다. “랑트레 셰 투아.”(Rentre chez toiㆍ너희 집에 가) 웬 젊은 남자가 날 보며 소리 질렀다. 옆에 있던 그의 친구들이 놀라는 내 표정을 보고 킬킬대고 웃으며 지나갔다. 보통 때 같으면 욕이라도 해줬을 텐데. 내 모럴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고 약할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나는 왜 이 먼 땅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가? 예술가가 되겠다고 어렵게 공부해 졸업까지 해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가난이 죄냐? 외국인인 게 죄냐? 여자인 게 죄냐? 여자로 흙수저로 외국에선 동양인으로 살면서 차별 때문에 화가 날 때마다 욱 튀어나오려던 이 문장들을 속으로만 곱씹었다.오랜 외국 생활 속에서 얻어진 나의 이 소중한 경험은 국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소극적 관심과 이해에 도움을 준다. 내 나라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멸시하고 차별하는 태도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얼마 전 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죽은 이주노동자의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어디 이주노동자들뿐이랴. 우리는 고 김용균을 기억해야 한다. 미술관 지킴이처럼 그늘 속에 가려진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마당의 감나무에 태풍이 지나고 붙어 있는 감들이 주홍빛을 띠기 시작한다. 저 붉어지는 감처럼 온 힘을 다해 매달려야만 살아지는 삶이 아닌 조금 덜 애써도 행복감을 느끼며 살기 좋은 사회면 좋겠다.
  • [강남순의 낮꿈꾸기] ‘차별금지법’, 예수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강남순의 낮꿈꾸기] ‘차별금지법’, 예수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하는 차별금지법 개신교 보수단체 ‘동성애’ 이유 줄곧 반대 예수가 말한 ‘서로 사랑’은 원수까지 포함 연대 않고 ‘혐오’ 강화는 예수 정신에 위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 중요 ‘예수 믿는다’는 기독교인들 입법 앞장을2007년 이후 ‘차별금지법’ 입법이 여러 차례 시도되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입법이 시도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언제 입법이 가능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가장 큰 반대 세력은 개신교 그룹이다. ‘차별금지법’ 입법을 반대하는 개신교 그룹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차별금지법’ 통과는 ‘하나님이 반대’하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에이즈가 폭증’할 것이며, 따라서 이 ‘사회와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이유이다. 이러한 개신교 보수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은 물론 ‘학생인권조례’ 제정까지 전국 곳곳에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주요 관심은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 금지 항목이다. 그런데 이들이 ‘동성애 반대’의 근거로 삼고 있는 성서에서, 정작 예수의 가르침에 관한 인용은 없다. 기독교를 태어나게 한 중심인물인 예수의 가르침에서 이러한 ‘동성애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과연 있느냐는 물음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적 지향’을 근거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반(反)성서적’이고 ‘반기독교적’인 것인가. 1896년 미국 캔자스주 한 교회의 담임목사인 찰스 셸던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예수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설교집을 출판한다. 이 책은 셸던 목사가 매주 흥미로운 연속극처럼 쓴 설교 모음집이다. 이 책은 5000만 권 이상이 팔려서,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책의 부제인 ‘예수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What Would Jesus Do)의 약자인 ‘WWJD’는 티셔츠, 팔찌, 스티커 등의 상품으로 등장했고 ‘WWJD 산업’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이 WWJD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예수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예수는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둘째, 예수는 종교적 배경이나 성별 또는 장애 여부 등에 근거한 차별이나 혐오가 아닌, ‘모든’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가르친다. 예수는 ‘제자됨’의 증표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이다. 예수는 ‘당신들이 나의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증표는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요한복음 13장 34~35)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인이라면 그들의 중대한 책임적 과제는 혐오가 아닌 ‘사랑의 원’을 구체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은 물론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와 책임임을 역설한다. 그에게 ‘이웃과 원수 사랑’의 가르침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무조건적 사랑’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서로 사랑’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안에서 이 ‘서로 사랑’이라는 가르침은 식상할 정도로 상투화된 구호가 돼 버렸다. 교회에서 기도로, 예문으로, 설교로 이 가르침은 반복되고 암송되지만 정작 이 가르침이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어떠한 구체적이고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과 성찰은 부재하다. 책임적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 예수가 ‘서로 사랑’을 예수의 제자됨의 증표라고 할 때, 이 ‘서로’는 누구인가. 이 ‘서로’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기독교인 또는 이성애자뿐인가. 아니면 이슬람교, 불교 등 기독교가 아닌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성소수자들, 장애인, 여성, 고아,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도 포함되는가. 예수가 ‘이웃 사랑’만이 아니라 소위 ‘원수 사랑’도 해야 함을 가르칠 때, 이 ‘서로’란 결국 ‘모든’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 둘째, ‘사랑한다’란 무슨 의미일까. 사랑의 행위는 낭만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정황과 연계돼 있다. 이 사회의 주변부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조건이나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소수자’(the Least)들에게 환대와 책임적 돌봄을 하는 것을 예수는 소위 ‘최후심판’의 ‘기준’으로 제시한다(마태복음 25장).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에 근거한 그 어떤 차별도 금한다는 것이 그 주요 정신이다. 이 ‘차별금지법’의 정신은 예수의 ‘서로 사랑’의 정신, 그리고 ‘이웃은 물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의 정신을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회정치적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도록 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사람과 연대하지 않고, 오히려 혐오를 강화하는 것은 예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이다. 성서는 ‘모든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존재론적 평등성’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창세기 1장 27절). 이러한 ‘모든 인간의 평등성’에 대한 이해는 ‘존재’라는 현대의 인권 사상을 실천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다. 지난 7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가 있는 건물 옆 공터에서 한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국가인권위 해체를 주장하며 시위를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시위는 단상과 의자들이 놓여 있는 매우 계획적이고 조직화된 시위였다. 단상의 배경 플래카드에는 시위의 목표를 “대한민국 갉아먹는 국가인권위 즉각 해체하라”라고 집약해 놓았다. 주변에 놓인 플래카드나 피켓들을 통해 이들이 국가인권위 해체를 주요한 사명으로 생각하며 열성을 다해 매일 시위하는 기독교 단체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시위장면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이날 시위현장에서 이들이 국가인권위 해체를 주장하는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인권위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부추김으로써 국가 안보를 무너뜨리고 둘째, ‘맹목적 동성애를 옹호’함으로서 ‘청소년 에이즈 폭증’을 가져오며 셋째, ‘불법체류 난민 인권에는 버선발,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가 하는 일들은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 용어로 하자면 대한민국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유, 평등,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일들이다. 기독교의 중심에 있는 예수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며 정의, 사랑, 환대, 책임의 삶을 살아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인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떻게 타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가’가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차별금지법’, 예수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예수는 ‘모든’ 사람이 귀한 사람으로 존중되며, ‘모든’ 사람들의 삶에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세상을 위하여 소위 ‘죄인들과 다양한 소수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하는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아주 작은 출발점이다.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 정신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한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이야말로 이 ‘차별금지법’ 입법에 앞장서야 한다. 오직 그러한 ‘서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예수 믿는 이들을 보면서, 이 사회는 비로소 그들이 ‘예수의 진정한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기초연금 받을 수 있는데 신청안한 빈곤노인 5만명

    기초연금 받을 수 있는데 신청안한 빈곤노인 5만명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도 신청하지 않아 받지 못한 노인이 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는 45만 5000명인데, 이중 기초연금을 받는 인원은 40만5000명으로 4만9000명이 연령, 소득기준을 충족하지만 기초연금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연금액만큼 생계급여에서 공제되어 아무런 혜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처분 소득이 증가해 기초생활 수급에서 탈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윤 의원은 분석했다. 이렇게 기초연금 수급 권리를 포기한 노인은 2017년 4만2905명에서 2018년 4만7526명, 2019년 4만9232명으로 2017년 보다 14.7%늘었다. 이들뿐 아니라 실제로 기초연금을 신청해서 받는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 40만5천명도 사실상 기초연금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정한 생계급여 기준액보다 모자라는 금액만 보충해서 지원해준다는 보충성 원리에 따라 기초연금을 받으면 생계급여를 받는 기준이 되는 소득인정액이 올라가 기초연금을 받은 액수만큼 생계급여 지원액이 삭감된다. 한편, 연도별 65세 이상 기초생활 수급자의 생계급여액을 보면, 2017년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수급자의 경우 2017년12월 1인 가구 26만4670원에서 2019년6월 현재 21만1174원으로 5만3496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2인 가구는 50만9264원에서 44만9530원으로 5만 9734원 감소했다. 윤 의원은 “노후 빈곤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된 기초연금제도가 정작 가장 가난한 노인은 외면하고 있다”며 “시급히 제도를 개선해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도 기초연금을 온전히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울산문예회관 4~5일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다룬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4~5일 이틀간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무대에 오른다. 이 뮤지컬은 가난하지만,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조력자인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900통에 달하는 편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공연은 최첨단 영상기술과 접목한 고흐의 그림을 무대에 펼치고, 그가 남긴 수많은 명작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고흐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한다.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방’, ‘꽃핀 아몬드 나무’ 등 고흐 명작이 무대와 공연장 전면에 살아 움직이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또 배우들의 손 터치만으로 하얀 캔버스 위에 그림이 펼쳐졌다가 사라진다. 인물화 속 모델은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고 무대 배경 같았던 소품들은 그의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 된다. 여기에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의 서정적인 음악이 더 해져 삶의 전부가 그림이었던 고흐 인생을 그대로 담아낸다. 그림을 사랑한 빈센트 반 고흐 역은 배우 이준혁이, 동생 테오 반 고흐 역은 박유덕이 맡는다. 이 공연은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 공감 사업’으로 기획됐다. 유료 관람객 외에도 교육복지 대상자 가족과 지역아동센터, 복지관 이용자 등 평소 공연 관람이 쉽지 않은 시민 200여 명은 무료 관람한다. 공연은 4일 오후 8시, 5일 오후 2시와 6시 등 총 3회 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다. 전석 2만 5000원이고, 12세 이상 관람할 수 있다. 공연 문의 및 예매는 울산문화예술회관으로 하면 된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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