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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억의 여자’ 정웅인, 냉동창고 분노 폭발 “날 실망시키지 마..”

    ‘99억의 여자’ 정웅인, 냉동창고 분노 폭발 “날 실망시키지 마..”

    배우 정웅인의 존재감이 ‘99억의 여자’를 더욱 빛내고 있다. 지난 11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 5, 6회 방송에서는 열등감과 분노로 가득 찬 홍인표(정웅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먼저, 식자재 납품 계약건으로 이재훈(이지훈)에게 전화를 했다가 모욕적인 말을 들은 홍인표는 수치심을 참아내기 위해 모형 범선 조립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홍인표는 “대항해 시대에는 누구나 기회가 있었어요” “가난하고 비천했던 뱃사람이 화려하게 신분 상승할 수 있던 시절”이라며 정서연(조여정)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이에 정서연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아뇨. 아무 일도 없었어요. 없는 놈은 굽신거리고, 가진 놈은 거들먹거리고 평소랑 똑같아요”라고 말해 홍인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항해 시대와 비참한 현실이 대조적으로 표현되며 그가 모형 범선에 집착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이후 이재훈이 연락이 닿지 않자 홍인표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납품하지 못해 재고가 쌓여 있는 냉동창고 안에서 옷을 벗은 홍인표가 분노를 넘어 실성한 듯 웃는 모습은 시청자들을 일순간 얼어붙게 만들며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어 홍인표는 정서연에게 윤희주(오나라)를 만나 납품건을 해결하라고 지시한다. 납품건은 이재훈의 일이라며 정서연이 거부하려 하자 “당신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니까 날 실망시키지 말아요”라고 차분한 말투로 정서연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희주를 만난 정서연이 홍인표의 계획과는 반대로 일을 처리해 향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처럼 등장하는 장면마다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열연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정웅인은 매주 수, 목요일 밤 10시 KBS 2TV ‘99억의 여자’에서 만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교황청, 극빈자 성금으로 적자 메웠다”

    “교황청, 극빈자 성금으로 적자 메웠다”

    바티칸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부금 가운데 90%를 재정적자를 메꾸는데 전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로마 교황청에 보내지는 특별헌금인 ‘베드로의 성금’(Peter’s Pence)은 연평균 5000만 유로(약 660억원) 정도가 걷힌다. 하지만 베드로 성금 중 정작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들어가는 액수는 10%도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끄는 교황청의 불투명한 재정 관리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더하게 될 것으로 WSJ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황청 홍보 책임자는 ‘베드로의 성금’ 사용에 관한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교황 프란치스코가 2013년 즉위하기 훨씬 이전부터 베일에 싸인 재정관리 탓에 많은 스캔들에 휩싸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와 싸우고 있는 교황청은 최근에는 영국 런던의 부동산 투자를 둘러싼 스캔들로 조사까지 받고 있다. ‘베드로의 성금’은 교황의 자선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이다. 하지만 웹사이트에는 교황청의 활동을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 기금은 현재 6억 유로 규모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 초반 7억 유로에서 1억 유로 정도가 줄었다. 2018년 ‘베드로의 성금’ 모금액은 전년(6000만 유로)보다 감소한 5000만 유로로 알려졌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금 사용에 대해 정통한 소식통들은 “투자 실패 탓”이라고 기금 감소 이유를 설명했다. 교황청은 2018년에 3억 유로를 썼는데, 재정적자는 7000만 유로를 기록했다고 WSJ은 지적했다. 교황청 국무원은 지난 10월부터 재정관리와 관련한 조사를 받고 있는데, 문제의 런던 부동산 투자 자금 중 일부가 ‘베드로의 성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소식통은 주장하고 있다. 교황은 지난 11월 “‘베드로의 성금’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까? 옷장 안에 넣어둘까? 아니다. 그건 나쁜 관리이다. 투자를 해서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쓰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금을 유지하거나 약간 더 불리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식통들은 ‘베드로의 성금’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사용되는 액수가 극히 적다며 교황을 비판했지만, 일각에서는 성금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은 규모를 더 불려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한 정당한 ‘관리’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스물여덟인데 14조 재산 휴 그로스베너, 런던 타워 재개발로 입방아에

    스물여덟인데 14조 재산 휴 그로스베너, 런던 타워 재개발로 입방아에

    이 훈훈한 외모의 청년은 스물여덟 살인데 영국에서 세 번째 부자다. 웨스트민스터 7대 공작 휴 그로스베너다. 외모까지 갖춰 일등 신랑감으로 손꼽히는데 2016년 작위를 승계한 뒤 좀처럼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고 은인자중하고 있다. 그런데 그와 그로스베너 그룹이 런던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런던 타워 부근을 재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는 지난 10월 영국의 억만장자들을 싸잡아 공격하며 공작을 “사기꾼 지주”라고 표현했다. 런던 타워 부근의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그로스베너 그룹은 12일 총선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승리하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속도가 붙어 런던의 오래된 재산을 처분하는 일정도 앞당겨진다. 지난 8일 영국 신문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보수당이 상당한 폭으로 앞선다는 예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만약 노동당이 이겨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이 집안의 재산은 실제 위협에 맞닥뜨린다. 코빈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지주들의 재산권을 제한하며 그로스베너 가문과 같은 왕실 피붙이들의 재산을 신탁재단이 공시하게 하는 방안 등을 공약하고 있다. 그로스베너 가문은 노동당 정부의 가장 큰 타깃이 되고 있지만 전쟁과 정치적 격변의 와중에 어떤 역할을 했느냐를 둘러싼 논쟁에도 휩싸여 있다. 1066년 노르망디에서 잉글랜드를 침공한 정복왕 윌리엄의 친척들로 뿌리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가문의 초기 부는 탄광과 광물로 축적됐지만, 현대의 재산은 17세기 결혼에 터잡은 것이다. 1대 공작 토머스 그로스베너는 12세 신부를 데려오면서 그녀 부모로부터 지참금으로 런던 서부 500에이커(2.02㎢)의 습지와 과수원을 받아낸 것이 든든한 밑천이 됐다. 이곳이 지금 런던에서도 최고의 명품 가게들과 아트갤러리, 헤지펀드 사무실이 늘어선 메이페어와 벨그라비아로 떠오르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그로브베너 그룹은 전세계 60개 도시로 부동산 투자를 넓혔고, 지난해 말까지 123억 파운드의 자산으로 키웠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은 런던에 있다. 휴는 아버지 제럴드가 심장마비로 예순넷에 세상을 떠나자 이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유언장에 따르면 6대 공작인 제럴드는 빚 등을 제하고 6억 1600만 파운드를 그에게 물려주고, 세 딸에겐 그로스브너 가족 신탁재산을 통해 추가 수입이 있을 수 있다며 2만 파운드씩만 물려줬다. 제럴드의 총기와 낚시 장비와 차들도 휴에게 물림됐다. 영국 법은 아들에게 절대 유리한 상속 제도를 자랑한다.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휴의 개인 재산은 놀라지 마시라, 118억 달러(약 14조원)다. 런던에서도 가장 값비싼 동네 가운데 하나인 벨그라비아의 슬로안 스퀘어에서 몇 블록만 가면 되는 곳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점포와 레스토랑 등 주상복합으로 재건축하면 훨씬 수지가 맞다고 그로스브너 그룹은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회의 도움으로 임대료를 내고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2023년이 되면 임대차 계약이 만료돼 이곳을 떠날 때까지 재개발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노동당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반대 운동에 힘이 실리자 20만명 넘는 이들이 온라인 청원에 가세했다. 지난해에도 그로스베너 그룹이 런던 남동부 버몬세이에 1300 세대를 건축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집을 살 여력이 없는 노동자들을 너무 수입이 많아 사회적 주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로 바꾸겠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 지역의 노동당 지방 조직은 지난 2월 이런 계획을 거부하고 영세 가정들을 집밖으로 내모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그룹은 런던 시정부에 새로 신청서를 제출해 연말까지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계획이 관철되더라도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그의 왕국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납세 정의 네트워크의 존 크리스텐센 의장은 “막대한 부와 권력이 영국에는 집중돼 있으며 실제로 견제받지도 않는다. 소수의 엄청난 부자와 파워 엘리트와 나머지 사람들로 나라가 쪼개져 있다. 그리고 모든 조세체계는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 것을 가져다가 있는 자들의 탈세를 메우는 데 쓰고 있다. 완전히 뒤틀렸다”고 개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문화마당] 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2019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갈라진 벽의 틈새를 보듯, 2010년대도 훌쩍 지나갔다. 2009년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티브 잡스’가 열어젖힌 ‘제4차 산업혁명’의 봇물에 휩쓸려 그사이 삶의 전 영역이 ‘좋아요’와 ‘하트’ 놀이에 중독됐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우리는 어느새 정보와 상호작용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됐다. 머리 한쪽이 늘 멍한 산만함에서 우리 정신을 지켜 주는 것은 역시 호흡 긴 서사인 책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책의 대지에 핀 꽃들은 자주 불(不)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먼저,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유의 어둠 속에 찬란한 빛을 던졌다. 만연한 부정의에 경악한 독자들은 ‘분노하라’는 시대의 명령을 따랐다. 무엇에 분노했는가. 불공정이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라며 학자금 대출과 알바 인생에 절망하는데, 장학금 챙겨 가며 공부한 전직 법무부 장관의 딸이 보여 준 세상, 즉 특권을 통해 쌓은 스펙을 제 능력인 양 자부하는 ‘20 vs 80의 사회’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불평등이다. 부의 세습이 노골화돼 부익부빈익빈이 갈수록 심화되고, 성실한 노동을 통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진 ‘21세기 자본’의 사회는 문제의 실체가 불평등이라는 인식을 퍼뜨리는 중이다.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불평등 세대’ 등은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사회 전반의 구조를 바로잡지 못하면, ‘세대 전쟁’의 홍역이 덮쳐 올 것임을 우려하게 한다. 착취된 노동이다. 일이 행복을 주지 못하는데 왜 일해야 하는가. 적당히 일하고 작은 행복이라도 확실히 챙기는 쪽이 낫지 않은가. ‘피로사회’는 성과에 집착하면서 죽음에까지 자기를 몰아붙이는 ‘자기 착취’를 폭로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미생’인 세상인데, 자신을 고갈시키지 않는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다. 청년들은 ‘자존감 수업’을 받고 ‘미움받을 용기’를 행한다. 삶의 새로운 양식을 찾아 동네책방을 순례하고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는다’. 가부장제 가족주의다. ‘강남역 10번 출구’를 계기로 ‘페미니즘’이 일어섰다. 여성이 쉽게 살해되고 폭행당하며 차별받는 사회는 작동을 멈춰야 한다. 편견으로 점철된 세상을 살아가는 ‘82년생 김지영’이 더는 없어야 한다. 여성은 벌써 주체인데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고 일깨운다. 그래서 여성들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고 선언하고 ‘백래시’, ‘탈코르셋’ 등 해방의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 ‘이상한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가족 형태가 꾸준히 시도되고 ‘딸에 대하여’, ‘대도시의 사랑법’ 등 퀴어의 일상화도 이제 어색하지 않다. 언어의 소외다.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스러져 가는 이들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책의 입술은 목소리 없는 이들한테 열려야 한다. ‘소년이 온다’의 높은 문학적 성취도, ‘사당동 사람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고기로 태어나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 인간의 조건을 살피는 기록의 존엄성도 여기서 비롯된다. 정치는 난잡하고, 경제는 암울하고, 사회는 비참하다. 세상이 타락한 자들을 위한 숫자 놀이로 전락한 듯하다. 온통 이익(利)을 말할 뿐 아무도 의(義)를 묻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던 얼굴은 어용을 자부하고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를 성찰하던 마음은 위선이 됐다. 촛불과 함께 힘차게 타올랐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는 또다시 무릎이 꺾이는 중이다. ‘닥치고 정치’에 기대를 걸었지만, 현실은 ‘닥쳐라, 정치’로 변해 가고 있다. 불타 버린 이 자리에서 책은 다시 출발한다. 새해에는 어떤 책이 시대의 죽비가 될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 “톤즈 눈물 닦아준 이태석… 숭고한 삶 왜곡 말아달라”

    “톤즈 눈물 닦아준 이태석… 숭고한 삶 왜곡 말아달라”

    지인들 “상업적 이용 안 돼” 우려 목소리 부산 톤즈문화공원 ‘이태석 기념관’ 개관 새달 12일 추모미사… ‘울지마 톤즈2’도 “이태석 신부의 나눔은 그저 퍼 주는 나눔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좋은 나눔이었습니다. 이 신부가 더이상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수단 톤즈에서 아이들을 위해 몸 바쳤던 이태석 신부의 10주기(내년 1월 14일)를 준비하고 있는 그의 지인들은 1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신부의 사랑과 영성을 이세상에 더 많이, 더 깊게 알리겠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 ‘울지마 톤즈’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이 신부는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제의 길을 택해 남수단 오지 톤즈에서 사제이자 의사, 교사로 살다가 대장암 투병 끝에 2010년 선종했다. 미래가 보장됐던 의사를 포기하고 그 척박한 아프리카 오지로 간 이유를 이 신부는 ‘다이아몬드’에 빗댔다. 이 신부의 1년 후배인 김상윤 신부는 “‘돌을 들고 있는데, 다이아몬드가 보이면 돌을 버려야 하지 않겠니’라면서 사제의 길과, 청소년을 이끄는 일을 다이아몬드로 여겼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이 신부의 말도 얹었다. 청소년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살레시오수도회의 부관구장인 백광현 신부는 “이 신부가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고 음악을 하며 보냈던 시간을 가장 즐거워했다”고 전했다. 이 신부는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아이들로 구성된 브라스밴드를 조직하기도 했다. 살레시오회의 한 사제는 “악기도 못 다루던 밴드가 일주일 만에 합주를 했다면서 그는 ‘이 아이들의 피에는 악보가 흐른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고 떠올렸다. 이 신부의 선행과 희생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난 10년간 그에 대한 관심도 확산됐다. 그러나 때론 이 신부의 본뜻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일들이 생겨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선 이 신부의 행적을 과장해 법정소송까지 빚었고, 브라스밴드를 무리하게 초청하려는 시도 탓에 말썽이 일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9일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한국교구관에서 자제를 호소하는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태석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유명일 신부는 “수도회 차원에서는 10주기를 조용히 치르려 했으나 세상이 이태석 신부를 먼저 기억하려고 한다”며 “이 신부의 뜻을 기리고 올곧게 이어 가기 위한 다양한 일들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 신부의 기일에 맞춰 부산 서고 톤즈문화공원에 ‘이태석 기념관’이 개관하고, 그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울지마 톤즈2- 슈크란 바바’는 내년 1월 9일 개봉한다. 신부의 전기와 다큐멘터리 영화도 내년 말 선보일 예정이다. 기일을 이틀 앞둔 1월 12일에는 광주 살레시오 중·고교 성당에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주례로 추모미사를 봉헌한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겸재가 아낀 소악루 올라 옛 서울 정취를 읽다

    겸재가 아낀 소악루 올라 옛 서울 정취를 읽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3차 양천고성’ 편이 지난 7일 양천구 신정동과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양천구청역 1번 출구를 출발, 갈산공원 대삼각본점을 둘러봤다. 이날 서울미래유산은 갈산 대삼각본점이 유일하기 때문에 이곳을 거쳐서 궁산 양천고성 터로 가느라 이동시간이 오래 걸렸다. 모두 461개에 이르는 서울미래유산 대부분이 서울 중심부에 몰린 탓에 넓디넓은 강서구와 양천구에는 단 2건밖에 없어서 생긴 일이다. 일제강점기의 산물이지만 지금도 모든 지적의 기준점으로 쓰이는 대삼각본점을 보고 5호선과 9호선을 갈아타 양천향교역으로 이동했다. 양천향교 앞 하마비~궁산 땅굴~궁산 양천고성~소악루~양천향교를 차례로 탐방했다. 민둥산 양천고성터는 을씨년스러웠지만 소악루의 풍광은 일품이었다. 해설을 맡은 강영진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은 복잡한 코스를 잘 꾸렸다.지명은 지역의 내력과 곡절을 숨죽여 외친다. 삼국시대 이후 서해에서 강화도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려면 행주나루와 공암나루를 거쳐야 했다. 영화를 누리던 두 나루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았다. ‘임진왜란 3대첩’의 현장 덕양산 행주산성과 행주나루는 기능을 상실했다. 행주는 고려시대의 마을 지명이고, 덕양산의 덕양은 행주의 다른 이름 중 하나다. 행주대첩은 ‘행주치마’의 전설을 남겼으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행주치마와 관련한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1593년 선조실록에 “…그곳에 돌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군사들이 다투어 돌을 던져 싸움을 도왔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올 뿐이다. 공암나루는 삼국시대 지역명 재차파의에서 유래했다. 고려시대까지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 고량포를 거쳐 개성으로 가는 길목이던 공암나루는 고려의 멸망과 함께 쓸모를 잃었다. 재차파의현은 오늘의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를 이르던 우리말 지명이다. 이두로 재차란 구멍이고, 파의는 바위이므로 이른바 ‘구멍바위’다. 신라 경덕왕 때 모든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공암이 됐다. 양천 허씨의 발상지 허가바위(광주바위)가 공암이다. 양천관아와 양천향교 뒷산을 궁산, 성산, 파산, 관산, 진산이라고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이 중 파산은 재차파의에서 유래했고, 궁산은 공자를 모신 향교를 궁으로 본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동의보감’의 저자인 구암 허준의 이름을 딴 구암공원(허준근린공원) 안 호수 안에 공암이 남아 있는 까닭은 1980년대 한강 개발 과정에서 강 속 바위가 내륙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잠실 석촌호수와 똑같은 사례다. 가장 겸허한 모국어인 땅이름이 한자화한 뒤 제 이름과 기능을 차례로 상실한 것이다. 일제가 구멍바위의 유래가 깃든 궁산에 땅굴을 판 것도 괴이쩍다.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에서 서로 마주 보고 솟은 두 산이 덕양산(124m)과 궁산(74m)이다. 궁산 소악루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덕양산이나, 덕양산 행주산성에서 바라보는 궁산은 주변 지형이 낮아 꽤 높다는 인상을 준다. 두 산 모두 서울의 관문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다. 궁산에 오르면 강 건너 덕양산~안산~남산~북한산 줄기가 겹치듯 흐르고, 미사리까지 이어지는 강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적 372호 양천고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재축조된 백제 옛 성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양천현아와 향교의 뒷산으로 숭상됐으나 일제강점기 김포비행장 개설공사 때 일본군이 주둔한 데 이어 한국전쟁 이후 미군과 한국군이 주둔하면서 성곽은 허물어지고 민둥산으로 변했다. 궁산 양천고성 옛터에서 행주산성을 바라보노라면 겸재 정선(1676~1759)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진경산수화를 창시한 겸재가 남긴 ‘경교명승첩’은 서울 주변의 멋진 풍경을 그려 놓은 그림책이다. 그중 ‘행호관어’는 ‘행호에서 물고기 잡는 것을 구경한다’라는 뜻이다. 행주나루 앞 한강을 호수로 미화해 행호라고 했고, 음력 4~5월이면 행호에서 웅어잡이가 성행했기에 생긴 사자성어다. 그림 속 14척의 고깃배가 잡아 올리는 물고기가 진상품 웅어다. 또 행호 일원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양천팔경이 있어 예로부터 시인 묵객의 발길을 묶었다. ‘소악루의 맑은 바람’, ‘양화진의 고기잡이 불’, ‘목멱(남산)의 해돋이’, ‘계양산의 낙조’, ‘행주로 돌아드는 고깃배’, ‘개화산의 저녁봉화’, ‘겨울 저녁 산사(개화산 약사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안양천에 졸고 있는 갈매기’를 노래했다. 겸재는 65세(1740년)에 양천현감으로 부임, 70세까지 5년 동안 재임하면서 조선 고유의 진경산수화를 만개시켰다. 미술이란 역사의 표정이며, 역사를 담는 그릇이다. 겸재의 그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름다운 옛 서울의 모습을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사진이 없던 시절의 서울 풍광을 현대에 전한 사람이다. 겸재는 이때 평생 지기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이던 사천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맞바꾸는 ‘시화환상간’을 실행했다. 사천이 시를 짓고 겸재가 그린 이 그림에는 ‘천금을 주더라도 타인에게 양도하지 마라’는 ‘천금물전’이라는 글을 새길 정도로 소중하게 간직했다. ‘양천현아’와 ‘종해청조’는 겸재가 현감 재직 당시 그린 양천 관아 그대로다. 현감이 정무를 보던 동헌인 종해헌, 자치기구인 향청, ‘파릉관’이라고 불리던 객사가 등장한다. 양천현아가 관아를 정면에서 보고 그렸다면, 종해청조는 관아를 뒤에서 그렸다. 겸재미술관장을 지낸 이석우 전 중앙박물관장은 “흥원사라는 절과 연립주택이 종해헌이 있던 자리로 보이는데, 종해헌은 한국전쟁 후 다다미공장으로 사용하다가 개인에게 매각돼 훼철됐고 파릉관에는 양천초등학교가 들어섰다가 이전 후 사라졌다”고 저서 ‘겸재 정선’에서 아쉬워했다. 양천현감 시절 겸재는 걸작을 남겼지만 근무 실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조선시대 지방관은 직속상관으로부터 반년에 한 번씩 근무평가를 받았는데 하양현감(대구지역) 시절 극심한 흉년이 들어 환곡을 거둬들이지 못해 꼴찌의 성적을 얻은 뒤 의금부에 끌려가 구금됐다. 이어 청하현감(포항 인근) 때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양천현감으로 근무하던 마지막 해인 69세 때 환곡과 군량미 환수 평가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경기감영에 소환돼 곤장을 맞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고을 다스리기와 그림 그리기의 병행은 고단한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겸재는 도화원 출신의 중인화가인가 아니면 양반 출신 문인화가인가. 겸재의 출신 성분과 신분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가난 때문에 과거를 통한 벼슬길을 포기한 겸재는 장동 김씨 가문의 도움으로 40세가 넘은 나이에 관상감 천문학 겸교수(종6품), 종이 만드는 조지서 별제라는 잡직에 기용됐다. 또 이를 기반으로 사헌부 감찰이라는 정식 관문에 들어섰으니 쇠락한 사대부가의 문인화가라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그의 그림에는 도화서 출신에만 나타나는 표현이 뚜렷할뿐더러 이후 도화서 출신이라며 비하하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는 반박이 잇따랐다. 84세까지 수를 누리고, 종2품 당상관에 올랐으며, 400여점의 다작을 남겼고, 공재 윤두수를 능가한다는 당대의 평을 얻었다. 또 가장 비싼 그림값을 받았다. 겸재 사후 경화 사족들은 앞다퉈 겸재의 그림을 소장했는데 그림 한 폭이 한양의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하니 무려 10억원을 호가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화원 출신이면 어떻고, 문인화가면 또 어떤가.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34회 양재천 ■집결 장소: 12월 14일(토) 오전 10시 한티역(분당선) 4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희상 안 집어치워라…일본 사죄 받아야 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희상 안 집어치워라…일본 사죄 받아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할머니가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에 관한 정책 토론회’에서 “문희상 의장을 만나보니 영어로 원 플러스 원(1+1+α(알파))이라는 말을 하더라”라며 “들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국회의장 문희상은 그런 소리를 집어치우라고 분명히 하겠다”며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한다 해도, 일본한테 사죄를 받아야 한다.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문희상 안’은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1+1+α)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기억·화해·미래 재단’을 설립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또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이 안이 일본의 사죄·배상 책임을 면제해주고 피해자의 권한은 대폭 축소하는 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할머니는 “(문희상 안을) 뜯어보니 아무것도 없다”며 “원플러스원으로 해결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무얼 한다는 말인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나는 조선의 딸로 태어나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며 “가난한 사람들이 두 번 다시 (나와 같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든지 절대로 받지 말고 일본을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이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대통령이 국민을 다스려야 하는데 대통령이라고 하던 박근혜는 아주 나쁘다”며 “일본 안보국장이라는 사람과 청와대에서 주거니 받거니 의논한 것을 어떻게 협상이라고 하면서 10억엔을 받아먹고 나를 팔아먹는가”라고 당시 합의안을 질타했다. 이어 “무엇 때문에 10억엔에 나를, 우리 할머니들을 팔아먹는가”라며 “(수요 집회를 시작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도 조금도 변함없이 망언만 하는 일본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친일발언 보은군수 주민소환 본격화

    친일발언 보은군수 주민소환 본격화

    이장단 워크숍에서 친일 발언을 쏟아낸 자유한국당 정상혁(78·3선) 보은군수에 대한 주민소환이 본격 추진된다. 정 군수가 주민소환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6일 보은지역 시민사회단체들에 따르면 오는 10일 오전 10시 보은읍 중앙사거리에서 관내 시민단체와 민주노총 충북본부 등이 정 군수 주민소환 선포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보은군선거관리위원회에 주민소환 청구인대표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보은지역에서 활동중인 시인 서성수씨가 대표를 맡기로 했다. 선관위는 신청서 접수 후 7일 이내에 청구인대표 증명원을 발부해야 한다. 주민서명은 증명원 발부 이후 본격 시작된다. 정 군수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되려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보은지역 19세이상 인구 2만9534명 가운데 15%인 4431명 이상이 찬성 서명을 해야 한다. 서명은 선관위의 청구인대표자 공표일로부터 60일 안에 받아야 한다. 서명은 청구인대표자가 위임한 사람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서명을 받을수 있는 수임자 인원 제한은 없다. 호별방문을 통한 서명은 안된다.문제가 된 친일발언은 지난 8월 울산에서 열린 이장단 워크숍에서 나왔다. 당시 정 군수는 특강 도중 “가난한 시절 한·일협정때 일본이 준 돈으로 한국이 발전했다. 중국, 필리핀도 위안부로 끌려갔지만 보상금을 받은 것은 한국뿐이다. 대통령이 사인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데 그것을 무효화 하고 ‘돈 가져와라’ 그러면 약속을 안 지킨다고 일본사람들이 그런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면 우리가 손해라고 대학교수가 말했다”고 이장들에게 전했다. 이후 자진사퇴 촉구가 이어지자 정 군수는 사과문만 발표했다. 보은민들레 희망연대 김원만 사무국장은 “발전소 유치가 물거품 되면서 주민소환이 없던 일이 됐지만 2013년 정 군수의 LNG발전소 유치를 막기위한 주민소환을 추진해 4500명 이상 서명을 받았었다”며 “이번에는 더 많은 주민들이 서명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건이 갖춰져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될 경우 투표권자 3분의 1이상 투표에 과반수 이상 찬성이면 단체장은 직위를 상실한다. 2007년 주민소환법이 시행된 후 우리나라에선 총 93건의 주민소환이 추진됐다. 이 가운데 8건이 투표까지 갔고, 하남시 의원 2명이 주민소환으로 직위를 잃었다. 보은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돌아온 나의 제제

    [그 책속 이미지] 돌아온 나의 제제

    “재밌는데 이상하게 눈물 나는 만화.” 이희재 화백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가장 잘 설명한 표현일 듯하다. 못 말리는 악동이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다섯 살 꼬마 제제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는 1986년 만화잡지 ‘보물섬’ 연재 당시 많은 이들을 웃고 울게 했다. J M 바스콘셀로스 원작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제제가 벌이는 엉뚱한 일들, 가난과 가족의 학대, 그리고 아빠 같았던 뽀르뚜가 아저씨와의 우정과 그의 죽음 등 어린 시절 성장통을 섬세하게 담았다. 이 화백은 원작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해석과 연출력으로 한국의 어느 달동네 이야기처럼 그렸다. 소박하면서 따스한 그림체이지만, 사회문제 역시 날카롭게 담아내 한국만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1988년 미래미디어에서 2권까지 흑백만화를 냈고, 2003년 청년사에서 컬러로 출간됐다가 절판됐다. 이번에 양장판으로 복간한 양철북 출판사 측은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며 재출간 요청을 많이 해 판권을 샀다”고 설명했다. 세대를 불문하고 추천하는 책, 특히 ‘보물섬’을 기억하는 세대에겐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마법 같은 책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중국에 팔려간 파키스탄 소녀들의 비참한 생활상

    중국에 팔려간 파키스탄 소녀들의 비참한 생활상

    수사보고서 입수 “1년에 629명 인신매매… 조직적”장기적출에 강제 개종도…中‘1자녀 정책’에 여성 부족지난 1년간 중국으로 팔려간 파키스탄 여성이 약 630명에 이르며, 이들은 비참한 환경에 놓있다고 AP통신이 4일(현지시간) 단독 보도했다.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한 중국이 시행했던 ‘1자녀 정책’ 후유증으로 결혼 및 출산 적령기에 이른 여성이 크게 부족하기에 가난한 나라에서 신부를 인신매매해 오고 있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파키스탄 수사 당국은 지난 10월 중국 국적자 31명을 북동부 펀자브 지방에 있는 파이살라바드 법원에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했다. AP는 파키스탄 수사 당국이 임란 칸 총리에게 보낸 ‘중국인 결혼 사기 사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적자 52명, 파키스탄인 20명이 수도 이슬라마바드 뿐 아니라 파이살라바드에서 활동한다고 적혀 있었다. 수사 당국은 공항을 통한 여행 정보를 통해 여성 629명의 명단과 이들의 중국인 남편, 결혼날짜를 확보하기도 했다.그러나 파키스탄에서 이슈화가 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로 정부 당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디어는 보도를 하지 않는 등 어느 누구도 이들을 돕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 수사 당국은 인신매매 네트워크의 수사 중단을 압박했다. 중국으로부터 소녀을 구출하는 부모들을 돕는 기독교 활동가인 살렘 이크발은 “정부가 엄청난 압력을 넣는다”며 “어느 누구도 인신매매 여성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당수는 10대인 중국으로 간 여성들은 고립되거 있거나 학대받고 강제 매춘에 동원되고 있다. 중국은 무슬림 나라 파키스탄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인 기독교 소녀들을 인신매매 표적으로 삼고 있다. 2018년부터 지난 4월까지 중국에 팔려간 여성은 629명이 넘는다고 수사에 참여한 이가 전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과 파키스탄 브로커는 신부 한명에 2만 5000달러(3000만원 상당)에서 6만 5000달러(7700만원 상당)를 받지만 신부 가족에겐 1500달러(178만원)만 돌아간다. 인신매매에는 파키스탄과 중국인 중개인 외에도 기독교 목사들, 이슬람 교회 지도자 등도 포함돼 있었다.이들은 중국에서 강제 임신 및 불임 치료, 육체적·성적 학대를 당하며, 일부는 매춘에 동원된다. 심지어 중국에 보내진 여성들의 장기들을 적출한다는 수사 보고서도 있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인지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인권감시(HRW)가 이달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 뿐만 아니라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네팔, 북한, 베트남이 잔혹한 인신매매 사업의 대상지가 된 국가들이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남아시아 담당 오마르 와리아치는 “무슬림 파키스탄 여성은 남편에게 떨어져 위구르의 재교육캠프로 보내진다”며 “이슬람 종교를 버리도록 강제 세뇌를 당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 신부 수요가 높다. 35년간 시행하다 2015년에 폐지된 ‘1자녀 정책’ 후유증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대략 3400만명 더 많다. 압도적인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여아 낙태와 여자 영아 살해사건이 많았던 탓이라고 AP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모패’ 박해미, 구리 대저택 처분 “빚 청산”..황성재와 갈등

    ‘모패’ 박해미, 구리 대저택 처분 “빚 청산”..황성재와 갈등

    박해미 황성재 모자가 10여년간 정들었던 ‘구리 단독주택’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공개한다. 6일 밤 11시 방송하는 MBN ‘모던 패밀리’(기획 제작 MBN, 연출 송성찬) 41회에서는 박해미와 아들 황성재가 가족의 추억이 깃든 구리 집을 정리하고, 이사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앞서 박해미는 ‘모던 패밀리’에 새롭게 합류하면서 이사 결정을 공개한 바 있다. 10년 전 직접 설계해 지은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애정이 각별한 곳이지만, 개인사로 인한 집을 처분하기로 한 것. 이날 방송에서 박해미는 “싹 다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며 “(집을 팔아서) 깔끔하게 빚 청산한다”고 덤덤히 밝힌다. 이후 이삿짐 정리에 나선 두 모자는 새로 이사갈 집이 지금보다 작은 관계로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기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박해미는 대부분을 “가져가자”라고 주장하고, 황성재는 “버리자”라고 팽팽히 맞선다. 또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을 두고서도 “먹겠다”는 박해미와 이를 말리는 황성재의 ‘현실 모자’ 케미가 폭발해 ‘짠내’ 나는 웃음을 선사한다. 짐 정리 중 발견한 가족 앨범을 보고서는 옛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딸처럼 예쁜 아기였던 황성재, 화려하고 젊었던 30대 시절의 박해미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 황성재는 “이때 고시텔 살았나?”라고 묻는다. 박해미는 “여관에서 살았던 적도 있었지”라며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을 잠시 추억한다. 제작진은 “안타까운 개인사로 인해 집을 정리하면서도, 티격태격 싸우는가 하면 이내 웃고 풀어지는 박해미 모자의 모습이 반전 웃음과 희망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MBN ‘모던 패밀리’ 41회는 6일 금요일 밤 11시 방송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호준 시간여행] 멍석, 그 정겨운 이름

    [이호준 시간여행] 멍석, 그 정겨운 이름

    어느 늦가을 축제를 찾았다가 떡메 치는 체험장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 찐 찹쌀을 떡메로 쳐서 적당한 크기로 썰고 고물을 묻혀 인절미를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지문처럼 배어 있었다. 특히 내 눈을 끈 건 널찍한 떡판 아래 깔아 놓은 멍석이었다. 멍석!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지. 얼마나 오랜만에 불러 보는 이름인지. 멍석은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 도구였다. 놀이나 굿판을 벌이기 위해 가장 먼저 깔았던 게 멍석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 노는 곳이라면 어디든 멍석이 있었다. 생활에 가까운 만큼 얽힌 속담도 많았다.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놓으면 안 한다’, ‘강아지에게 메주멍석 맡긴 셈’, ‘앉을 자리를 보고 멍석을 깔아라’, ‘멍석구멍에 새앙쥐 눈 뜨듯’, ‘덕석이 멍석이라고 우긴다’. 잔치가 있거나 상(喪)을 당했을 때는 먼저 동네의 멍석부터 모았다. 마당 가득히 깔고 그 위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상을 놓았다. 혼례 때는 마당에 차려지는 혼례청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머리 위에는 차일, 땅에는 멍석이 기본이었다. 윷놀이 판에도 멍석은 꼭 필요한 사물이었다. 멍석은 두껍고 탄력성이 좋아서 윷가락이 튀거나 제멋대로 구르지 않았다. 농사에도 멍석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고추나 알곡을 널어 말릴 때나 콩이나 깨를 터는 데도 필수품이었다. 추운 겨울이면 작은 멍석(덕석)을 소 잔등이에 덮어서 춥지 않게 해 주었다. 장판을 깔 만한 여력이 없는 가난한 집에서는 맨흙 위에 장판 대신 멍석을 깔기도 했으며, 뒷간에 걸어 놓으면 문 대역을 했다. 멍석이 반드시 좋은 일에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서민들의 애환과 서글픈 사연도 많이 품고 있었다. 옛날에는 소위 양반이라는 권세가들이 자행한 사형(私刑), 멍석말이에도 멍석은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멍석말이는 한집안뿐이 아니라 마을 전체 단위로 이뤄지기도 했다. 마을의 규약을 어기거나 어지럽힌 사람을 벌하는 집단구타가 다름아닌 멍석말이였다. 거기에 왜 억울한 사연이 없으랴. 사람을 멍석에 말아서 때렸던 이유는 외상(外傷)이나 뼈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즉, 골병이 들거나 불구가 되는 것을 막아야 노동력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멍석말이를 당하면 뼈가 부러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고 한다. 그 고통 또한 말도 못하게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멍석은 또 죄를 지은 자가 엎드려 임금의 처분을 청하는 석고대죄에도 쓰였다. 그때 바닥에 까는 것이 멍석이었다. 멍석은 대개 장방형으로 짜는데 길이는 약 3m, 폭은 보통 1.8m 정도였다. 네 귀퉁이에 손잡이 모양의 고리를 만들기도 했다. 꽤 굵은 새끼줄을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 뒤 가로로 볏짚을 넣어가며 촘촘하게 엮는다. 그 작업이 쉽지는 않아서 능숙한 사람일지라도 한 장을 완성하려면 여러 날이 걸리기도 했다. 때로는 둥근 형태의 멍석을 짜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작은 것은 맷방석이라고 하여 맷돌질을 할 때 주로 썼다. 농촌에서조차 우리 고유의 것들이 거의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는 지금도 멍석은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조차 그리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이 울음이 그친 지 오래인 농촌에서 멍석을 짤 이는 누구며, 쓸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멍석 위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존재처럼, 갈수록 기억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 “공권력에 가정 파괴됐지만… 노동운동 밀알 된 누나 자랑스러워”

    “공권력에 가정 파괴됐지만… 노동운동 밀알 된 누나 자랑스러워”

    “누가 그러더라고요. 70년대 노동 운동의 시작은 전태일 열사, 끝은 김경숙 열사라고. 자랑스럽지만, 그래도 언제나 누나 생각이 납니다.”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 서울 마포구 신민당사 옥상에서 생존권 보장을 부르짖으며 경찰 진압에 저항하던 한 여성 노동자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스물한 살, 김경숙 열사다. 한때 국내 최대 가발수출업체였던 YH무역의 부당 폐업에 맞서 벌이던 농성 과정에서 발생한 첫 희생이었다. 서슬 퍼런 유신 정권은 ‘경찰 진압과 무관하게 스스로 동맥을 절단한 후 투신 자살했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믿지 않았다. 김경숙 열사의 죽음은 ‘나비 효과’처럼 같은 해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졌고, 10·26 사건이 일어나 유신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40년이 흐른 지난달 28일 서울신문은 김 열사가 가족 생활비와 하나뿐인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떠나온 고향인 광주를 찾아 동생 준곤(58)씨를 만났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평범한 가장인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했다. 또 “누나의 뜻을 이어가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라고, 경찰의 방해를 받으며 누나를 제대로 떠나보내지도 못했다며 지금도 누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말했다. -1979년 8월, 당시 상황이 듣고 싶습니다. “전 고3이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형사들이 집에 찾아와선 누나가 죽었다면서 당장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더라고요. 형사과장이라는 사람이 경황이 없는 어머니와 외삼촌, 저를 차에 태워 무조건 이동했어요. 그런데 바로 병원에 가지 않고 수원의 한 여관으로 데려가더라고요. 누나를 보지도 못하고 3~4일 동안 수원에 머물렀어요. 숙소도 4~5번은 옮겼어요. 제대로 이유는 말해 주지 않고 ‘누나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만 댔어요. 어린 나이에 제대로 대꾸도 못했어요. 경찰이 멋대로 결정해서 누나가 화장되기 직전에야 시립병원으로 가 누나를 처음 볼 수 있었지요. 화장이 끝나자마자 다시 경찰차에 실려 광주로 돌아갔습니다.” -경찰이 가족을 감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죠. 나중에 병원에서 마주친 기자가 ‘그동안 대체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더라고요. 알고 보니 이미 누나 사건을 알고 있던 기자들이 광주에서 서울로 오는 톨게이트 길목을 무작정 지키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를 알아챈 경찰이 일부러 수원으로 경유한 것이죠. 누나를 화장한 직후에 병원 앞에서 잠깐 기자들과 공식 만남을 가졌지만 주변에 경찰 간부들이 포진해 있어서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어요.” 당시 경찰은 ‘경찰 진압과 무관하게 스스로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가 이후 ‘경찰이 진입하기 30분 전 추락해 사망했다’고 정정했다. 모두 거짓 발표였다. 시신을 화장해버렸기 때문에 사인(死因)을 규명할 수도 없었다. 진실이 밝혀진 것은 30년 가까이 흐른 2008년 3월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하면서다. 위원회는 “주검에 동맥 절단 흔적이 없고, 손등에 쇠파이프로 가격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가 있다. 후두정부에서는 모서리진 물체로 가격당한 치명적인 상처가 있다. 김경숙은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경찰 발표를 믿었나요? “전혀 믿지 않았죠. 누나 친구도 그러더군요. ‘경숙이가 무슨 자살을 하냐. 스스로 뛰어내릴 사람이 아니다.’ 저도 동의했어요. 삶의 의욕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제가 아는 누나는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고3이었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어요. 사건 때 붙잡혔다가 이듬해 출소한 누나 동료들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 1979년 YH무역 투쟁을 이끈 최순영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김경숙 열사가 화장되던 순간도 지켜보지 못했다고 한다. 1980년 1월 출소한 최 지부장은 곧장 광주로 향해 김경숙 열사의 가족을 만났고, 지금까지도 준곤씨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렸을 때 김경숙 열사는 어떤 누나였나요. “지지 않으려는 성격이었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는 장사를 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누나가 절 업어 키웠죠. 동네 형들한테 맞아 코피라도 흘리고 오는 날엔 먼저 찾아가서 싸워주곤 했어요.” -상경은 언제 했나요. “누나는 초등학교만 나오고, 중학교에 다닐 나이에 봉제 공장이나 누에고치 농장을 다녔어요. 그러다 돈을 더 벌려고 서울로 옮겼어요. 누나가 없었다면 전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을 거예요.” -상경한 누나는 자주 보았는지요. “거의 보지 못했어요. 서울에 있는 3~4년 동안 한두 번 봤나 싶어요. 워낙 쉬기도 어렵고, 차비도 비쌌던 시절이니까요. 아버지 기일에도 거의 내려오지 못하고, 두 달에 한 번씩 편지만 오갔어요. 편지에서도 일이나 서울 생활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가족 얘기만 가득 적었습니다. 미주알고주알 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깐요.” -마지막으로 누나를 만난 게 언제였나요. “사건 넉 달 전인 1979년 4월에 오랜만에 집에 내려와 이틀 정도 머물렀어요. 평소 자기 얘기를 안 하던 누나인데, 야학을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한문이 어렵다며 저랑 같이 한자 공부도 하던 기억이 나요. 원래 공부를 하고 싶어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일찍 일을 시작한 거라 미안한 마음이 컸지요.” -누나가 노동 운동을 한다는 사실은 알았나요. “어렴풋이 알았어요. 집에 내려왔을 때 YH무역 노동자들의 호소문을 가져와서 보여줬어요. 사장이 돈을 가지고 도망쳐 버리고, 공장 문은 강제로 닫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8월 10일 집에 누나 편지가 도착했어요.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 회사 정상화를 외치며 싸우고 있다고. 또 저를 대학까지 보내는 게 본인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누나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찰이 사과를 한 적은 없었죠? ”전혀 없었죠. 공권력이 우리 가족의 행복을 파괴했지만 아무런 사과도 없었습니다. 저희 가족을 서울로 데려갔던 형사과장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고, 다른 경찰들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공권력 때문에 우리 누나가 세상을 떠난 건데.” -누나가 많이 그립겠습니다. “누나가 살아 있었다면 제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미안해요. 조금 적게 먹고, 더 가난하게 살더라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을 텐데. 아옹다옹 잘살아갔을 텐데. 늘 누나가 맴돌고, 언제나 아른거려요. 누나 때문에 결국 대학교에도 진학했어요. 원래 공고만 마치고 취업할 생각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서 제가 대학에 가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해서….” -최근 들어 김경숙 열사가 다시 알려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당시 누나와 YH무역만 있던 것은 아니에요. 이전에도 핍박받은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YH무역과 함께 활동하던 동일방직 노동조합이 있죠. 그분들도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열심히 싸워나갔어요. 모두 기억되길 바랍니다.” -누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노동 환경이 지금보다 더 열악했을 시절 조그만 밀알이 됐던 사람이에요. 모든 것은 씨앗에서부터 시작하니깐요. 우리 노동사에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사진 광주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안녕? 자연] 2100년,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대란 올 것 (연구)

    [안녕? 자연] 2100년,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대란 올 것 (연구)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지구에 사는 사람 10명 중 9명이 식량부족으로 인해 배를 굶주리며 살아야 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측이 나왔다.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진 현실은 SF 영화에서 종종 등장해 왔다.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미국 SF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2014) 역시 식량위기로 옥수수 밭만 즐비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프랑스 파리 과학인문대학교(PSL) 연구진은 기후 및 작물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 두 가지를 만들고, 여기에 2100년의 전 세계 인구분포 데이터를 대입했다. 그 결과 기후변화가 최악으로 진행될 경우, 전 세계 인구의 약 90%가 식량이 부족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기후상태가 양호하고 식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사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의 3% 미만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후변화가 최악의 수준으로 진행된다면 2100년에는 농업 생산성이 25%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생산성 감소는 5%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업의 경우 타격이 더 크다. 역시 기후변화가 최악의 수준으로 진행될 경우 2100년에는 어업 생산성이 60%까지 감소할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봤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경우 어업 생산성 감소는 10% 정도 수준으로 예상됐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생산성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 적응력이 가장 낮은 열대지역의 가난한 국가의 경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면서 “온실가스 배출 등을 줄이는 노력을 한다면, 인도 등지의 농부들이 내열성 작물로 전환해 재배하며 식량 위기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IPCC)는 지난 8월,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과 홍수, 폭염이 더욱 빈번하고 극심하게 발생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결국 식량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식량 공급 불안정으로 2050년에는 주요 곡물 가격이 최대 23%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인류가 조속히 토지 사용 및 식량 생산 방식을 바꾸고 육류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면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농장에 나무를 심는 혼농임업을 확산시키고 토질 관리를 개선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면 토지 생산성도 높아지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세계적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Science)의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최신호(27일자)에 게재됐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달콤한 사이언스]가난이 장내미생물까지 빈곤하게 만든다

    [달콤한 사이언스]가난이 장내미생물까지 빈곤하게 만든다

    사회경제적 빈곤이 생물학적 빈곤의 원인 공중보건, 사회적 불균형 해결 차원에서도 빈곤해결 필요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옛 말이 있다. 과거를 현재와 같은 잣대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옛 말에만 의지해 빈곤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방기한다면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재산 소유 상위집단과 중산층과 하위계층의 격차가 커지면 커질 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많은 국가들은 빈곤층도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그런데 인문사회학자와 도시학자, 생물학자들이 함께 빈곤이 사회적 불안전성과 갈등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건강과 공중 보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오레곤대 내에 있는 생물학및환경센터, 클라크오너스 교양대학, 인간생리학과, 경영대학원,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스쿨, 조경건축학과, 교육대 상담심리학및복지학과, 생태·진화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빈곤층의 장내미생물은 숫자와 종류가 턱없이 적고 유익한 장내미생물도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공공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생물학’ 27일자에 실렸다. 일반적으로 빈곤층은 건강하고 균형잡힌 식단과 깨끗한 환경를 제공받지 못하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차원의 스트레스 때문에 수많은 질병에 노출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연구팀은 빈곤이 유익한 장내미생물에 대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빈곤층이 쉽게 질병에 노출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장내미생물은 보통 장에서 소화를 돕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장내미생물은 비만, 당뇨, 고혈압과 같은 대사질환은 물론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다발성 신경질환, 각종 정신질환, 체내 염증으로 인한 각종 자가면역질환, 심지어는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중산층 이상과 빈곤층의 장내미생물 종류와 숫자를 비교해본 결과 빈곤층의 장내미생물 균총의 종류와 숫자가 눈에 띄게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유익한 장내미생물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런 유익한 장내미생물의 부족 때문에 비만과 관련한 대사질환, 우울증과 알콜중독,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에 취약하게 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사회경제적 불균형이 건강의 불균형과 격차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연구팀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의 산전, 산후관리를 통해 산모들부터 유익한 장내미생물을 확보하도록 하고 이것이 영유아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학교 급식에서 균형잡힌 식단을 제공하고 학내에 정크푸드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빈곤층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정기적인 방역과 충분한 녹지지대 확보로 깨끗한 공기와 보건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수잔 이스햅 오레곤대 생물학및환경센터 연구원이자 메인대 교수(동물학·수의과학)는 “미생물은 사람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그 미생물이 사회적 균형에도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스햅 교수는 “유익한 장내미생물에 대한 접근은 개인은 물론 공중보건차원에서 중요한 인간의 권리라고 봐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라며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호혜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균형이나 건강권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울지마 톤즈’가 못 담은… 故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울지마 톤즈’가 못 담은… 故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남수단 톤즈에서 사랑을 실천하다 암으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살레시오회)의 10주기(2020년 1월 14일)를 맞아 이 신부를 다시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펼쳐진다. 의대를 졸업한 이태석 신부는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고 곧바로 톤즈로 떠나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던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사제. 톤즈의 아이들에게 의사이자 선생님이었고 사제이자 친구였지만 암 투병 끝에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우선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를 기념해 제작된 ‘울지마 톤즈: 슈크란바바’가 내년 1월 초 극장가에 선보인다. ‘울지마 톤즈: 슈크란바바’는 KBS미디어가 제작하고, 살레시오회 한국관구가 제작 지원 및 감수한 다큐멘터리 영화. 2010년 개봉 이후 44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울지마 톤즈’의 후속편으로 전편에 미처 담지 못한 이 신부의 인터뷰와 마지막 모습이 공개된다.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를 발족, 이 신부의 10주기 미사와 함께 1962~2010년 이 신부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10주기 미사는 2020년 1월 12일 오전 11시 광주 살레시오중·고교 성당에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된다. 미사 참가자들은 담양천주교공원묘원의 이 신부 묘소도 함께 참배한다. 한편 기념사업회는 이 신부의 생애를 담은 영상물을 내년 상반기 공개하고, 전기도 내년 말쯤 발간할 계획이다. ‘이 신부의 나눔 정신’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전도 마련한다. 2007년 발족한 수단어린이장학회는 톤즈에서 사목 활동을 하는 이 신부를 돕기 위해 소규모 후원을 시작했으며 이 신부가 선종한 뒤인 2013년부터는 후원국을 확대해 동티모르, 말라위, 몽골, 방글라데시, 잠비아, 캄보디아, 필리핀, 에티오피아, 인도, 파푸아뉴기니 등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배고픔 더는 없기를… 탈북 모자 빈소에 조문행렬

    배고픔 더는 없기를… 탈북 모자 빈소에 조문행렬

    서울 관악구에 살다가 가난 때문에 숨진 탈북자 한상옥씨 모자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26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경기서북부하나센터에 마련됐다. 하나재단은 28일까지 수도권 6곳에 분향소를 마련해 조문을 받는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낙태 못한 케냐 여성, 모유 대신 콜라 먹여 아기 살해”

    “낙태 못한 케냐 여성, 모유 대신 콜라 먹여 아기 살해”

    낙태를 하지 못한 케냐 여성들이 갓 태어난 아기에게 모유 대신 콜라를 먹여 살해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최근 케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영아 살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가 키베라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빈센트 오드히암보는 텔레그래프에 “가정을 꾸릴 처지가 아닌 여성들이 신생아에게 콜라를 먹이고 있다. 모유 대신 콜라를 마신 아기는 3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시신은 쓰레기장이나 강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다”라고 설명했다. 콜라 외에 진저비어(소량의 알코올을 함유한 생강맛 탄산음료)도 영아 살해에 자주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키베라에서는 지난 5월에도 단 7일 동안 8명의 영아가 쓰레기로 뒤덮인 강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키베라정의센터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 없지만, 영아 살해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쓰레기 처리업을 하고 있는 한 남성은 1년에 15구 정도의 영아 시신을 목격한다고 말했다.현지 인권운동가들은 이 같은 영아 살해가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케냐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낙태법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응급치료가 필요하거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에만 임신 중절을 허용한다. 문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케냐 여성들이다. UN에 따르면 케냐 임산부의 49%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한다. 특히 하루 생활비 1달러 수준의 극빈층은 먹을 것이 없어 성매매에 나섰다가 임신에 이른다. 텔레그래프는 극심한 가난 속에 가뭄과 홍수까지 겹치면서 농사를 망친 케냐인들이 딸과 식량을 교환하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루스 시디(17) 역시 지난 5월 음식을 대가로 식당 주인과 성관계를 가졌다가 임신을 하고 말았다. 케냐에서는 10대 소녀 5명 중 1명이 임신했을 정도로 10대 임신률이 높다. 하지만 이들에게 낙태는 허락되지 않는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거나 아기를 양육할 여력이 없는 여성들은 알음알음 뒷골목의 돌팔이 의사를 찾는다. 하지만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낙태는 임산부의 목숨도 위협한다.세탁일을 하는 메리(26)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초 그녀는 임신 4개월 차에 불법 낙태 시술을 받았다. 보잘것 없는 수입으로 10살짜리 아들과 어머니, 세 명의 여동생을 홀로 부양하고 있는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아기의 아버지도 임신 후 곁을 떠났다.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 진료소를 받은 그녀는 낙태에는 성공했지만 자궁 손상으로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메리는 “손가락만한 태아가 뱃속에서 빠져나간 뒤 심한 하혈에 시달렸다”면서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어디에 물을 곳도 없었다. 친구가 추천한 돌팔이 의사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피임 및 낙태 관련 비정부기구 ‘마리 스톱스 인터내셔널’은 매일 7명의 케냐 여성이 불법낙태수술로 사망하며, 연간 35만 명이 불법 시술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낙태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여성도 매년 12만 명에 이른다. 산모 사망에서 불법 낙태가 차지하는 비율은 35%로, 전 세계 평균 13%의 3배 가까운 수치다. 이 때문에 여성인권운동가들은 낙태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인권운동가 캐롤라인 음와타(당시 37세)가 불법 임신중절 수술 도중 사망하면서 이들의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음와타는 임신 5개월 차에 불법 진료소를 찾았다가 자궁 파열로 사망했으며, 경찰은 불법 진료소 주인과 아들, 무면허 의료인과 택시기사 등 6명을 구속했다. 그러나 케냐 종교계는 도덕적 이유를 들어 낙태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이달 12일 나이로비에서 열린 인구와 발전에 관한 국제회의(ICPD)에서 여성의 성적 권리와 출산 권리에 낙태권도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나오자 케냐 주교단은 “아프리카와 개발도상국에 낙태 및 동성애를 도입하려는 술책”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히로시마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손잡은 교황

    히로시마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손잡은 교황

    프란치스코(왼쪽) 교황이 지난 24일 일본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평화기원 행사에서 재일한국인 피폭자 박남주(가운데)씨와 만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박씨가 이 자리에서 ‘전후 가난한 생활에도 긍정적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교황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교황은 2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만남에서 원폭에 의한 파괴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민족 간, 국가 간 분쟁은 가장 심각한 경우라도 대화를 통해서만 유효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히로시마 EPA 연합뉴스
  • 제 31회 아산상에 이석로 병원장…25년 방글라데시 의료 환경 개선

    제 31회 아산상에 이석로 병원장…25년 방글라데시 의료 환경 개선

    아산사회복지재단은 2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31회 아산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지난 25년간 방글라데시에서 열악한 의료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 이석로 방글라데시 코람톨라병원장이 대상인 아산상을 수상했다. 이 원장은 1994년부터 연간 8만명의 저소득 환자들의 질병치료와 병원 자립을 위한 체계를 갖췄다. 또 방글라데시 여성을 위해 간호학교를 설립해 자립을 돕고 장학사업, 임산부 대상 진찰 등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아산상의 상금은 3억원이다. 의료봉사상 수상자로는 소록도 한센인 의료봉사로 시작해 아프리카 에스와티니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지 주민들의 질병치료와 교육, 지역개발을 위해 42년간 헌신한 김혜심 약학박사가 선정됐다. 사회봉사상은 46년간 무의탁 노인들의 편안한 생활과 임종, 장례를 책임진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대표 이상옥 헬레나 수녀)가 수상했다. 의료봉사상과 사회봉사상의 상금은 각각 1억원이다. 아산재단은 복지실천상, 자원봉사상, 효행·가족상 3개 부문 수상자 9명에게 각각 상금 3000만원을 시상하는 등 총 6개 부문에서 12명(단체 포함)을 선정해 총 7억 7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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