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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쁘지 않은 걸 어쩝니까”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예쁘지 않은 걸 어쩝니까”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할리우드 스타 메릴 스트리프 일대기 다뤄1976년 영화 ‘킹콩’의 오디션장에서 생긴 일화다. 한 여배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영화 쪽에서 일한 경험은 전무했고, 미국 뉴욕의 연극 무대에서만 활동하던 그였기에 영화계에서는 사실상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외모 역시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었다. 금발이긴 했지만 도드라진 광대뼈와 매부리코의 조합은 당시 기준으로는 ‘여배우’란 찬사를 보내기에 부족한 것이었다.그를 본 이탈리아 출신의 제작자는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불평했다. “진짜 못생겼네. 뭘 ‘이런 걸’ 데려왔어!” 한데 공교롭게도 대학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그 여배우는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쏘아붙였다. “기대만큼 예쁘지 않아서 죄송한데요, 어쩝니까? 보시는 게 다인데.” 그러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가 바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 메릴 스트리프다.‘퀸 메릴’은 71세 고령에도 여전히 할리우드의 워너비 스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메릴 스트리프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연예 담당 기자 출신의 저자가 오롯이 연기에 천착해 온 메릴 스트리프의 생애를 다양한 출연작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영화에 얽힌 뒷이야기들, 감독이나 출연자들과의 에피소드, 여러 할리우드 스타들과의 친소 관계 등 삶의 여러 이야기들이 버무려져 있다. 그의 본명은 메리 루이즈 스트리프다. ‘메릴’은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 아빠가 붙여 준 별명이다. 어릴 때부터 연기에 재능을 보인 그는 대학 시절부터 줄곧 연극 무대 주변을 맴돌았다. 뉴욕 맨해튼에서 가난한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그가 영화배우로 데뷔한 건 1977년 ‘치명적 계절’이다. ‘이런 걸’이라는 대접을 받은 오디션 이후 1년 만이었다. 이후 40여년간 6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그는 흔히 ‘아카데미의 여왕’이라 불린다. 아카데미상 최다 노미네이트(21회)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상으로 이어진 건 3회다. ‘소피의 선택’(1982)과 ‘철의 여인’(2011)으로 여우주연상,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전초전 격인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된 횟수는 이보다 더 많다.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무례는 무례를 낳고, 폭력은 폭력을 선동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 당선인에게 직격탄을 날린 일화는 지금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회자된다. 대개의 배우들이 40대를 넘어서면 주연 자리에서 내려오기 마련이다. 한데 메릴은 여전히 주연이다. 말 많은 영화계에서 신념을 지키고 당당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적지 않은 재산까지 모았다. 성격파 배우로서는 보기 드문 경우다. 그러니 돈에 관해 유난히 집착이 심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여배우”라며 질시의 글을 날린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반핵, 환경, 여성 등의 분야에서도 정의로운 싸움을 벌였던 그는 2015년 한 여자대학 졸업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연기를 잘합니다. 왠지 아세요? 우리는 그래야만 하거든요.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이 생존해 온 방법이 있습니다. 여성들의 생존전략이란 바로 자기보다 힘이 센 남자들에게 그들이 관심 없어 하는 사실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연기는 열려 있는 가능성입니다. 가장(假裝), 혹은 연기는 사실상 아주 가치 있는 삶의 기술이고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유럽진출 1호·월북… 화가 배운성을 만나다

    유럽진출 1호·월북… 화가 배운성을 만나다

    등록문화재 ‘가족도’ 등 작품 한자리에2001년 48점 첫 공개 이후 19년 만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는 1909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한 고희동(1886~1965)이지만 서양화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유학하고, 현지 화단에서 활동한 1호 화가는 배운성(1901~1978)이다. 1922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40년 귀국 전까지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파리 ‘살롱 도톤느’ 등 여러 공모전에 입상했고, 수차례 개인전도 열었다. 귀국 후엔 홍익대 미술대 초대학장, 경주예술학교 명예학장으로 추대되며 한국 미술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6·25전쟁 직후 월북하면서 그에 대한 기록과 연구는 자취를 감췄다. 1988년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해금 조치 이후에도 배운성의 작품이 공개된 건 전무했다. 그러다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배운성이 유럽 체류 시절 완성한 작품 48점이 한꺼번에 공개됐다. 불문학자인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이 파리에 유학하던 1997~98년 골동품상에게 두 차례에 걸쳐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가 그해 귀국하면서 들여온 것이다. 한옥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는 듯한 대가족의 모습을 그린 ‘가족도’, 이국적인 외모의 여인을 그린 ‘화가의 아내’ 등 인물의 초상과 한국 전통민속을 그린 그림들은 동양적인 선과 서양 기법을 조화시킨 그의 초기 작품세계를 엿보게 했다.19년 만에 그의 작품 48점을 한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종로구 홍지동 웅갤러리·본갤러리·아트아리가 합심해 ‘배운성 전 1901-1978: 근대를 열다’를 기획했다. 작품 판매가 주업인 상업화랑에서 열리지만 순수하게 관람객 감상을 위한 전시다. “작품을 뿔뿔이 흩어지게 할 순 없다”(전창곤 원장)는 소장자의 신념과 “1년에 한 달 정도는 대중을 위한 전시를 하고 싶다”(최웅철 웅갤러리 대표)는 화랑주의 결단이 맞아떨어졌다. 한국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근대미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당대 주거와 복식 등을 생생하게 묘사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가족도’에는 화가 자신의 모습도 담겨 있다. 맨 왼쪽 수줍은 듯 다소곳하게 서 있는 젊은 남자가 배운성이다. 그림 속 가족은 가난 때문에 그가 열다섯 살에 서생으로 들어간 서울 갑부 백인기의 가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일본을 거쳐 독일로 떠난 것도 백인기의 아들 백명곤의 유학길에 동행한 것이었다. 남의 집 더부살이에서 유럽 진출 1호 화가로 명성을 떨치고, 이어 월북 화가로 금기시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배운성을 돌아보는 기회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입장료 3000원.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文 대통령 “청년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는 환경 구축해야”

    文 대통령 “청년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는 환경 구축해야”

    오늘부터 ‘청년기본법’ 시행...만19~34세가 청년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년기본법 시행에 맞춰 청년들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청년과 함께 꿈을 이루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날부터 시행되는 청년기본법에 대해 “청년 스스로 이겨내야 했던 어려움을 국가가 함께 나누겠다는 약속”이라며 “보다 자유롭게 삶의 경로를 선택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시대에 따라 청년들 어깨에 지워진 짐도 달라져 왔다. 어르신들이 청년이었을 때 식민지와 전쟁, 가난의 짐을 떠맡아야 했고,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에 청춘을 바친 세대도 있다”며 윗세대의 헌신에 공감을 보이는 동시에 달라진 시대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일자리, 주거, 소통, 참여, 복지, 삶의 질 문제를 비롯해 예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며 현재 청년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청년들이 겪는 주거, 금융, 일자리, 복지, 교육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며 “더 좋은 정책이 제때에 더 많은 청년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법적 기준을 만 19~34세로 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의 고용과 일자리 질 향상, 창업 지원, 주거 지원 등 청년을 위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北 역사 기록할수록 주변엔 민폐…그래도 1000권까지 꼭 쓸 겁니다”

    “北 역사 기록할수록 주변엔 민폐…그래도 1000권까지 꼭 쓸 겁니다”

    김광운(61)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는 북한이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을 방식으로 북한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에 5년째 매진해 오고 있다. 2018년 처음 출간돼 벌써 80권째 발간된 ‘북조선 실록’이 그 결과물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대한민국사를 연구하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북한을 포함한 한국 현대사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았던 그는 20여년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로서의 북한 역사를 재구성한 ‘지식 창고’를 짓고 있다. ‘승리와 영광’만을 기록하는 북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김 교수는 평소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월화수목금금금’을 보내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 사무실에서 지난 3일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완성된다면 우리 사회가 북한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처음 계획보다 방대해졌지만 힘이 닫는 데까지 계속 작업하겠다”고 했다.-다른 북한 역사서와 다른 점은. “북조선 실록은 1945년 8월 15일부터 하루하루 북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자료를 묶은 편년체 사료집이다. 직접 수집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북한 잡지 등을 선별했고, 해외 자료까지 번역해 당시를 살았던 인민의 흔적과 파편을 모았다. 또 자료의 신뢰성을 판단해 선별하고 경우에 따라 해설과 각주를 붙여 종합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1차적으로 자료에 근거하고 편집자의 해석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열린 텍스트가 될 수 있다. 대표적 편년체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도 데이터가 정리된 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창작물로 소화하지 않았나. 북조선 실록이 완성된다면 현대사의 새로운 논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왜 시작했나. “분단 체제가 70년이 넘은 마당에 북한 뉴스는 과잉이지만 역사적 지혜를 찾기 위한 접근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국책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에도 북한사 전공 연구원은 없을 정도다. 흐름과 맥락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우리 시각으로만 북한을 해석하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북한의 사료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고 그마저 빠르게 훼손되는 특징이 있다. 김일성 주석의 말을 담은 김일성 전집이라고 해도 간행 시기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해방 직후 김일성 당시 수상은 ‘소련 인민군이 조선을 해방했다’고 연설했지만 50년대 중반 이후 소련과의 관계가 틀어진 뒤에 나온 판본에는 ‘자력으로 해방했다’고 바뀌는 식이다. 돌이켜 보면 국사편찬위에서 근무하며 해외에서 한국 현대사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된 것 같다. 북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곳이 없다 보니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나라도 필생의 업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료는 어떻게 모았나.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을 가리지 않고 북한 자료가 있다고 하면 찾아갔다. 중국은 도서관 한쪽에서 책을 팔기도 했고, 러시아도 1980년대 말~90년대 초 구소련 해체기에 문서관에서 문서를 팔았다. 지금은 각국이 문화재라며 반출을 금지하는 문서들을 그 짧은 시기 동안 들고 올 수 있었다. 노동신문 등 주요 신문도 결호 없이 모았고, 몇십 권 정도밖에 인쇄되지 않은 당중앙조직위원회 결정집도 확보했다. 그중에는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국내 대학 도서관 등에 없는 자료도 있다.” -북조선 실록을 읽으면 무엇을 알 수 있나. “북한 역사를 들여다보면 뉴스가 만든 고정된 이미지를 깰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금도 북한이 기념하는 1946년 보통강 개수 공사 관련 자료를 검토하면서 북한 사회의 복잡성을 느끼기도 했다. 평양 한복판을 흐르는 보통강에 홍수가 나자 처음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일부 가구에서 참여하지 않자 규칙을 제정해 강제하는 것으로 바꿨다. 몇 달 뒤엔 주민들이 김 주석에게 서한을 보내 ‘생물로서 최저한의 생활 보장을 간언한다’고 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처음에는 자율적인 조직이었으나 타율적인 강제로 성격이 달라진 측면이 있다. 결국 북한 사회도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졌다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군 이후 38선 이북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척박했던 땅이다. 핵 개발도 가난하고 작은 나라가 비대칭적인 군사·경제 대결 속에서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통제 사회의 특성상 공적인 언어를 달리 해석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언제나 인민을 앞세우지만 들여다보면 인재를 중시해 온 사회다. 계급보다 민족에 천착해 왔다. 남북이 언어는 같지만 분단이 길어지다 보니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달라진 부분도 많다. 이 책이 통역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사료에서 새롭게 드러난 점은. “실록에 6·25 전쟁 시기 북한이 매일 발표한 ‘일일 전투 상보’를 모두 실었다. 이를 종합하고 우리 측 ‘전투 일지’와 비교한다면 6·25 전쟁에 대한 퍼즐 맞추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또 북한의 보도와 비교하다 보면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부분도 보인다. 예를 들면 6·25 전쟁에 참전한 미8군사령관 월튼 워커 장군의 사망과 관련된 것이다. 그의 사망을 기리는 ‘워커힐’이라는 지명으로 기억되는 전쟁 영웅이다. 미국은 워커 장군이 1950년 12월 23일 오전 서울과 경기 의정부시 사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는데, 막상 북한 노동신문은 23일자에 이미 워커 장군의 사망을 보도했다. 제작 절차를 고려하면 북한은 하루 전날에 이미 사망 사실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북한은 워커 장군이 열흘 전쯤 매복했던 부대에 의해 폭사당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선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논쟁이 될 수도 있다.” -북한에도 이런 책이 있을까. “이런 편년별 사료집은 없다. 앞으로도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노동신문에는 사건 사고 기사가 없지 않나. 물론 김일성 유일 체제가 제도화된 1967년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북한 학계는 승리와 영광만을 기억하고 대중적으로 공유하고자 했다.” -완성 후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작업량이 방대해 처음에 계획했던 김 주석 사후 시점까지는 직접 다 끝내지 못할 것 같다. 처음엔 100권 정도만 내려 했는데 이제 겨우 10여년치 사료를 모았는데도 100권이 넘는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되는 한 성실하게 작업해 1000권 정도 직접 정리했으면 한다. 이와 함께 국내외 협업을 통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려고 한다. 1차 작업이 북조선 실록 편찬 간행이었다면 이후 검색이 가능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해 누구나 북한과 관련해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쉽고 편하게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책 작업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빌붙어 살아간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젊어서 한때는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떤 시인이 ‘보학’(譜學)이라는 시에서 나에 대해 “칸트를 읽고도 운동권이 될 놈”이라고 했을 시절이다. 그 뒤엔 남들한테 신세나 덜 지고 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 북조선 실록을 간행하는 선인출판사와 민속원출판사는 매년 각각 5000만원씩은 손해를 본다. 자료집 특성상 많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5~6명의 직원들도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북한 연구에 권위 있는 기관인 경남대의 박재규 총장이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24억 짜리 보석 채굴한 ‘인생역전’ 광부…두 달 전에도 40억 캤다

    24억 짜리 보석 채굴한 ‘인생역전’ 광부…두 달 전에도 40억 캤다

    탄자니아의 가난했던 광부가 ‘돌’ 만으로 또 한 번 일확천금의 기회를 맞았다고 BBC 등 해외 언론이 3일 보도했다. 사니니우 라이저라는 이름의 52세 탄자니아 남성은 지난 6월 탄자니아 북부에 있는 광산에서 6.3㎏의 탄자나이트를 발견했다. 탄자나이트는 규산염광물의 일종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탄자니아에서만 산출되는 보석이다. 세계 4대 보석에 준하는 가치를 지닌 탄자나이트는 단단한 암석 속에 매우 드물게 박혀있으며 ‘아프리카의 푸른 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엄청난 희소가치를 자랑하는 만큼 20년 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에 대형 탄자나이트를 발견한 라이저는 이를 경매시장에 내놓았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2일 열린 경매에서 라이저가 캐낸 6.3㎏의 탄자나이트는 200만 달러(한화 약 24억 원)에 최종 낙찰됐다. 놀라운 것은 돌 하나로 일확천금을 얻은 이 남성이 두 달 전에도 탄자나이트 두 개를 캐내 거액을 받고 경매로 매각한 인생역전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6월 라이저는 각각 9.2㎏, 5.8㎏의 탄자나이트를 캐낸 뒤 이를 340만 달러(한화 약 40억 6000만 원)에 매각했다.불과 두 달 새 억만장자가 된 그는 소감을 묻는 주민들에게 “북부 만야라 지방에 공동체를 위한 보건 시설과 학교를 짓겠다”고 공언했다. 또 “큰돈을 벌게 됐다고 해서 내 생활이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소 2000마리를 돌보며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4명의 아내에게서 낳은 자녀 30명을 양육하는 아버지이도 한 라이저는 채굴 비결을 묻는 동료들에게 “정부와 함께 하라”고 조언했다. 또 “정부에 매각하는 일은 그 어떤 부정없이 투명하다”고 전했다. 한편 BBC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탄자니아의 광부들은 라이저와 마찬가지로 탄자나이트를 채굴할 수 있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뒤 활동하는데, 일부 대기업이 소유한 광산 근처에서는 탄자나이트를 노린 불법 채광이 성행하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두 달 전 탄자나이트 원석 둘 캔 광부, 또 캐내 23억원 돈벼락

    두 달 전 탄자나이트 원석 둘 캔 광부, 또 캐내 23억원 돈벼락

    지난 6월 희귀 광물인 탄자나이트 원석을 둘이나 캐내 340만 달러(약 40억 6500만원)를 횡재했던 탄자니아 광부가 세 번째 탄자나이트 돌을 캐냈다. 이번에 캐낸 것은 무게 6.3㎏이나 나가 200만 달러(약 23억 9100만원)를 손에 쥘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BBC가 3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북부 미레라니 광산을 주 무대로 일하는 사니니우 라이저. 두 달 전에 캐내 경매로 매각한 원석의 무게는 각각 9.2㎏과 5.8㎏이었다. 문제는 이미 자녀만 서른 명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횡재를 했다고 해서 생활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00마리의 소들을 돌보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고 했다. 벼락부자가 됐다고 해서 경호원을 고용한다든가 하는 조치도 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당시 그는 우선 파티부터 열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북부 만야라 지방에 있는 시만지로 지구 공동체를 위한 보건 시설과 학교를 짓는 데 돈을 쓰겠다고 말했다. 탄자나이트는 탄자니아 북부에서만 발견되며 장신구로 주로 이용된다. 지구 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류 가운데 하나이며 현지 지리학자는 앞으로 20년 안에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추측한다. 이 광물이 특별한 이유는 녹색, 붉은색, 자주색, 푸른색이 어우러져 휘황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색깔이 밝고 분명할 수록 값을 높게 받을 수 있다.예전의 라이저처럼 가난한 광부들은 정부 면허증을 받고 탄자나이트를 채굴하는데 대기업이 소유한 광산 근처에는 불법 채광이 성행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2017년 마구풀리 대통령은 메렐라니 광산 근처에 24㎞ 길이의 장벽을 세우라고 명령할 울 정도였다. 이 영향 덕분으로 정부는 일년 뒤 광산 수입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라이저는 동료 광부들에게 조언해달라는 주문에 자신의 경험이 좋은 예라며 정부와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정부에 원석을 넘기는 것을 축하하는 행사 도중 “정부에 매각하는 것은 아무런 부정이 끼어들지 않는다. 정부는 투명하다”고 말했다. 채굴 기능 보유자들은 종종 광산 주인들이 제때 광물 가격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터뜨리곤 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기고] 서민금융에서 새마을금고의 역할/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기고] 서민금융에서 새마을금고의 역할/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가난한 사람을 위한 소액대출 금융(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창립자로 칭송받던 ‘그라민은행’의 설립자 무함마드 유누스 총재는 2006년 10월 서울평화상, 같은 해 11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은 한국의 새마을금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새마을금고는 고금리 사채, 도박 등이 만연했던 농촌의 사회적·경제적 폐해를 막기 위해 1963년 시작됐다. 계, 두레, 향악, 품앗이 등 고유의 상부상조 협동정신에 협동조합 원리를 결합한 것이었다. 현재 MG새마을금고는 1315개로 거대한 서민 밀착형 금융기관으로 발전했다. 낮은 신용등급과 담보가 부족한 지역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대상으로 예금·대출·공제 등 금융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과거 새마을금고는 임직원들과 고객인 지역 소상공인, 서민들이 서로 잘 아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각 금고가 담당하는 지역이 넓어지면서 과거보다 더 높은 신뢰와 역량이 필요해졌다. 새마을금고도 은행과 같은 엄격한 금융 감독 기준의 적용을 받는 이유다. 다만 이러한 이유로 열정 있는 소상공인이나 서민에게 관계 금융을 통해 저리로 빌려줄 수 있었던 전통을 살리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미국에서는 상호금융이 은행과 다른 신용협동조합의 감독 기준을 적용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새마을금고의 감독 기준은 은행과 큰 차이가 없다. 감독 기관인 행정안전부가 금고 감독을 위임하면서 발생한 문제를 반면교사로 삼아 발전한 감독 체계를 구상해 엄격하게 실행하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라민은행’은 단순하게 부자가 투자한 돈을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하도록 대출해 주는 구조다. 반면 새마을금고는 회원들의 저축을 통해 자금을 조성하게 된다. 새마을금고는 그동안 양호한 자금 운용 실적을 거두고 있다. 또 총자산의 약 8%에 달하는 자기자본으로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전체 예적금의 74%를 대출채권으로 운용해 지역 밀착형 금융기관으로 역할하고 있다. 자립과 협동의 철학, 독창적 운영 방식으로 농촌과 도시 서민 삶의 수준, 지역 발전 향상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이동성이 축소되면서 비대면 거래, 근거리 소비와 금융활동으로 경제활동이 전환하고 있다. 정부의 소상공인·서민 지원 정책 자금이 성공하려면 은행뿐만 아니라 소상공인과 서민에 밀착된 새마을금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 [근대광고 엿보기] 제화업계의 ‘대왕’ 박덕유

    [근대광고 엿보기] 제화업계의 ‘대왕’ 박덕유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 짚신과 미투리가 서민이나 천민의 신발이었다면 양반은 어떤 신발을 신었을까. 흑피혜(黑皮鞋)는 가죽, 목화(木靴)는 나무와 천, 태사혜(太史鞋)는 가죽과 헝겊으로 만들었고 남성의 신발이었다. 당혜(唐鞋), 운혜(雲鞋), 수혜(繡鞋) 등은 비단과 천으로 만든 양반 여성의 신발이었다. 가죽신을 만드는 사람을 갖바치라고 했는데 소를 잡고 벗겨 낸 가죽을 받아 신발을 만들었으므로 백정과 같이 천민 취급을 받았다. 구두는 청일전쟁 때 조선 군인들이 가죽 군화를 신으면서 처음 국내에 소개됐다. 지금의 서울대병원 자리에 구한말의 군화창이 있었다고 한다. 서양 옷은 양복이라고 하는데 신발은 왜 구두라는 말을 쓸까. 구두의 어원은 놀랍게도 일본어라고 한다. 일본어의 ‘구쓰’(靴)가 구두로 변했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구두와 고무신이 전통적인 신발을 급격히 대체했다. 양화점이 우후죽순 생기고 구두가 광고면의 단골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구두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10년대 초에 동광양화점(임상호), 순창양화점(신윤범), 신흥양화점(이환일), 광신양화점(김영배), 창흥양화점(송필진) 등의 양화점 광고가 거의 매일 신문에 실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양화점 광고가 박덕유양화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화점은 1898년 서울 황토마루(광화문 네거리)에서 이규익이라는 사람이 열었다고 한다. 이것을 박덕유가 인수해서 수십 년 동안 운영했다. 박덕유양화점의 위치는 처음에 대사동(지금의 종로2가에서 인사동에 이르는 지역)이었다가 행정구역 변경으로 관훈동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매일신보에는 박덕유에 관한 기사가 여러 건 있다. 기사에 따르면 박덕유는 몹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곡물상을 하다 파산하고 경부철도보호 순검(巡檢·조선 말기의 경찰)으로 일했지만 또 일자리를 잃고 광화문의 양화점에서 구두 수선 일을 했다. 그러다 제화 기술을 배워 양화점을 열었다고 한다. 처음에 친구 둘과 양화점을 열었는데 손님이 없어 적자가 계속 나자 둘은 그만두고 홀로 운영했다. 그러다 점차 구두를 신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업이 번창해 종업원을 60여 명이나 거느린 양화계의 ‘대왕’이 됐다. 지방에서도 하루에 50여 켤레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고객은 점포에 방문할 필요가 없었다. 서울에서는 연락을 하면 직원을 보내 발 크기와 모양을 재서 제작해 주었고 지방 사람들은 발 모양을 종이에 그려 돈과 함께 보내면 구두를 만들어 부쳐 줬다. 초기에 구두 한 켤레 값은 9원이었는데 쌀 한 가마 값이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대선보다 부엌 일이 좋은” 전업주부가 26년 독재 타도 맨앞에

    “대선보다 부엌 일이 좋은” 전업주부가 26년 독재 타도 맨앞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일보다 부엌에서 음식 만들고 싶었어요.” 오는 9일(이하 현지시간)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6) 대통령의 26년 장기 집권을 끝장낼 유력 후보로 떠오른 스베틀라나 티카노브스카야(37)는 전업주부다. 최근 대선 유세 도중 앞의 발언을 농처럼 했지만 루카셴코의 독재를 끝내는 일이 거부할 수 없는 사명이 됐다고 강조하는 당찬 면모도 갖췄다고 영국 BBC가 지난 31일 전했다. 남편 세르게이가 지난 5월 체포돼 후보 등록조차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출마를 결심했다. 두 번째로 정적이 될 만한 인물도 감옥에 갇혔고, 세 번째 유력 인사까지 외국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렇게 되자 두 자녀를 안전 때문에 외국으로 보낸 엄마는 벨라루스의 변화를 주도할 깜짝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유력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으나 역시 당국의 방해 공작 탓에 후보 등록이 거부된 전 미국 주재 대사인 발레리 쳅칼로의 부인인 베로니카, 다른 후보 캠프 대변인인 마리아 콜레스니코바와 더불어 전국을 돌며 군중 동원 기록을 써가며 바람몰이를 하는 중이다. 발레리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BBC와 인터뷰를 갖고 “이들 세 여성은 정치에 온 생애를 투자한 마거릿 대처 같은 유형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진지하다”며 “이전 선거 때는 루카셴코가 정말 대중적 인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그것이 그가 신경을 바짝 쓰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러 소식통들로부터” 자신을 체포하는 작전이 임박했다는 제보를 받고 피신했다고 설명했다. 변화의 조짐을 가장 먼저 포착한 이는 스베틀라나의 남편 세르게이였다. 유명 비디오 블로거였는데 그는 여러 달 동안 전국을 돌며 농민들부터 은퇴 생활자까지 다양하게 만나 귀를 기울였다. 일종의 민심 투어였다. 국민들은 만연한 부패와 가난, 기회의 결핍, 낮은 임금 등을 볼멘 소리로 들려줬다. 블라디미르의 한 남성은 비디오 인터뷰를 통해 세르게이가 루카셴코에 붙여준 별명을 들먹이며 “‘바퀴벌레’가 권력을 쥐었을 때 난 두 살이었는데 이제 두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이제 뭔가 바뀌길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남성은 “우리는 독재를 끝장 내기 위해 여기 왔다”고 동조했다. 당국이 야당 인사들의 후보 등록을 잇따라 막자 시민들이 가두로 쏟아져나왔다. 인권단체 비아스나(Viasna)는 올 여름에만 1000명 이상의 평화 시위 참가자들이 구금돼 200명 가까운 이들이 보름이나 갇혀 지냈다고 주장했다. 민스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치 해설가 아르티옴 슈라이브만은 당국의 강경한 탄압에 “대중이 공공연하게 반기를 들고 시위가 확산되고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드높아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경제 침체와 코로나19 대처 등에서 루카셴코가 점수를 많이 잃었다고 분석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밑바닥 민심을 훑는 스베틀라나 팀과 정반대로 연일 폭동 진압에 동원되는 보안군의 훈련을 참관하고 격려하거나 나라의 안정을 해치려는 외국들의 기도를 규탄하는 데 열중했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러시아를 겨냥하는 듯하다.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 소속 요원 33명을 체포하는 과정에 속옷 차림의 그들을 거칠게 체포하는 동영상을 국영 매체에서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그들이 쿠데타를 획책했다며 세르게이를 연결시켜 “대중 소요”를 일으키려 했다는 식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걱정을 낳고 있다. 스베틀라나는 유세 도중 가끔 한숨을 쉬며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딴일이라고 털어놓곤 한다. 발렌키아는 남편도 해외로 피신한 뒤 스베틀라나를 돕기 위해 남아 있다며 “지금은 두려운 시간인데 국민들이 엄청난 지지를 보내주는 것 같다”며 “우리는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처럼 벨라루스의 변화가 오고 있다고 믿는다. 가급적 빨리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여성들에게 특별한 정치 프로그램이 있을 수 없다. 우선 스베틀라나가 집권해 루카셴코를 몰아내는 게 급선무고, 그 뒤 공정한 선거 일정을 발표하고 정치범들을 모두 풀어줘 자유롭게 선거를 치르자는 것이다. 그녀는 한 집회 도중 한 남성이 계속 일해달라고 외치자 웃으며 “내 임무만 완수하면 조용히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여성들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오지만 여전히 공식 여론조사는 루카셴코가 70% 정도로 높게 나온다. 그는 30년 가까이 집권하며 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왔다. 이에 따라 야권에서는 부정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슈라이브만은 “투표 날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가 중요하다. 보안군은 언제든 뭔가를 꾸며낼 수 있다. 과거에도 그들은 쓸 수 있는 카드의 10%도 쓰지 않았다. 내 생각에 이제 문제는 보안군이 얼마나 잔인하게 짓누르냐와 얼마나 시위 규모가 크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2030 세대]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휴가차 인적이 드문 어느 고택에 머물렀다. 조선 철종 때 지었다는 이 고택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었는데, 이 문화재를 지키는 분은 어느 연로한 부부셨다. 교수에서 은퇴한 남편분과 대화를 잠시 나눴는데, 그는 고택에서 태어나 그 오랜 세월 주변이 변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고 하셨다. 고택에서 멀찍이 보이는 국도는 일제강점기 조성된 신작로였는데, 아스팔트로 포장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1960년대 말 인근에 경부고속도로가 지어질 때 친구들이 공사현장에 가서 많이 일했는데,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나서 친구들이 와서 자동차에 물컵을 올려놓고 가는데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고, 세상에 이런 신기한 도로가 생겼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르신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못했고, 정말 고속도로에 가 보고는 전에 없던 새로운 광경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집에서, 반백년가량 된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아스팔트 도로가 당연하다 느끼는 것도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니다. 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시골 신작로에 차량 한 대만 왔다 가도 온 동네가 흙먼지로 가득했던 것이 우리나라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통계상 도로의 분류 중 시·군도의 경우는 2000년까지도 포장률이 60.4%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이제 거의 90%에 가까워졌는데, 덕분에 도서·산간 지역으로의 접근성은 훨씬 높아졌다. 몇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포장되지 않은 길을 가다 보니 100㎞를 가는 데 세 시간이 넘게 걸린 적이 있었다. 포장된 도로는 여전히 선진국이 아닌 지구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일상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20세기 초 참혹한 암흑의 도시였던 런던이나 파리, 베를린, 뉴욕과 같은 도시들은 고속도로, 철도와 같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혼잡과 과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런던은 질병, 범죄, 궁핍이 만연한 도시였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자리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더 좁은 면적에서 한데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많은 자료를 통해 당시 런던에서는 한 가구가 한 방에서 거주했고, 그 가족의 수는 8명에 이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인당 주거면적은 26.2㎡였는데 2019년에는 32.9㎡로 더 늘어났다고 한다. 3인 이상 단칸방 거주 가구 비율도 같은 기간 0.7%에서 0.1%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당장 부동산 관련 뉴스를 보면 한숨만 나올 수 있다. 그래도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한 것들이 외곽순환도로나 1기 신도시, 신분당선 같은 혁신적인 정책들이었다. 부디 현재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런 훌륭한 대안이 탄생해 궁극적인 우리 삶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 코로나 백신 ‘가격 전쟁’에 존재감 없는 WHO

    코로나 백신 ‘가격 전쟁’에 존재감 없는 WHO

    거대 제약회사들이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예상 접종 가격이 선진국들의 백신 쟁탈 경쟁과 맞물리며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백신을 ‘공공재’로 개발하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으며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이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사태에서 또다시 소외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바이오업체 모더나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가격을 50~60달러(약 6만~7만 2000원·1인당 2회분 투약 기준)로 책정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가격은 미국과 다른 부자 국가들에 적용될 것”이라며 “각국과 조달 계약을 체결한 다른 백신보다는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가격 전망은 전날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주도하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이 코로나19 백신의 최고액을 40달러 수준으로 예상한 가운데 나왔다. WHO와 GAVI 등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공정한 접근권 보장을 위한 전 세계 백신공급 메커니즘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설치해 이끌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제약사들은 백신을 공공재처럼 여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FT는 모더나가 유럽연합(EU) 등과의 가격 협상에서 달러 기준 두 자릿수 후반대 가격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화이자도 다른 선진국들에 미국보다 싼 가격에 백신을 팔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화이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서명한 약값 인하를 위한 행정명령에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할 만큼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백신 개발이 최종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가며 전 세계 ‘백신 전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지만 WHO가 제대로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로이터통신은 EU가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백신 확보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WHO가 주도하는 백신 개발·공급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여기는 남미] 마약카르텔서 알바하는 청소년들, 희생자인가 범죄자인가?

    [여기는 남미] 마약카르텔서 알바하는 청소년들, 희생자인가 범죄자인가?

    브라질 청소년들이 마약카르텔에 고용돼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치안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브라질의 민간단체 '시민치안연구센터'(CESeC)는 최근 보고서에서 "12~17살 청소년들이 마약카르텔에 고용돼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약카르텔 밑으로 들어가는 청소년들은 주 6일, 하루 최고 14시간 노동을 한다. 하는 일은 주로 마약카르텔이 넘겨주는 '물건'을 판매하는 일이다. 신변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언젠간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는, 미래를 담보로 하는 일이지만 청소년들은 제대로 월급조차 받지 못한다. 마약카르텔이 주는 '물건'을 팔면 손에 쥐는 건 마약카르텔이 커미션 명목으로 던져주는 푼돈이 전부다. 시민치안연구센터는 "형편없이 적은 돈을 받으면서도 청소년들이 마약카르텔 밑으로 들어가는 건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을 돕거나 돈을 모아 또래가 열망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아동노동의 희생자로 봐야할지, 잠재적 범죄자로 봐야할지도 애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브라질 전역에서 마약카르텔 밑으로 들어간 청소년들이 몇 명인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수는 수만 명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리우데자네이루 소년원에는 마약카르텔 휘하에 있다가 입소한 청소년이 약 2500명에 이른다. 브라질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인 상파울로의 소년원에는 청소년 1만여 명이 비슷한 혐의로 갇혀 지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로에서만 청소년 수만 명이 마약카르텔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청소년들이 마약카르텔의 유혹에 넘어가는 데는 지독한 가난과 교육의 공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 5위 인구대국인 브라질에선 전체인구 2억1000만의 6.5%에 달하는 1350만여 명이 하루 1.9달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혹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극빈가정의 자녀들은 일찍 돈벌이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번듯한 아르바이트는 꿈도 꾸기 힘들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교육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25세 이상 성인 중 40%는 초등교육을 받지 못한 저학력자다. 문맹률도 6.8%로 심각한 수준이다. 현지 언론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번듯한 일자리도 찾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미는 건 범죄세계뿐"이라며 국가의 역할이 아쉽다고 꼬집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검찰에 대한 야유·선동 넘쳐” 떠나는 윤석열 총장 동기들

    “검찰에 대한 야유·선동 넘쳐” 떠나는 윤석열 총장 동기들

    윤석열 총장 사법연수원 동기 2명 검찰 떠나 윤석열 검찰총장(60·사법연수원 23기)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최근 사의를 밝힌 송삼현 서울남부지검장(58·23기)과 이정회 인천지검장(54·23기)이 검찰내부 인터넷 게시판에 검찰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를 남겼다. 이 지검장은 27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사직인사’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오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검찰에서의 삶은 즐거움과 보람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역경과 고난도 적지 않았다”며 “어려운 과정들을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함께 했던 많은 선배나 동료, 후배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검찰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을 넘어 맹목적인 선동과 야유가 넘치고, 검찰의 본질적인 기능과 역할이 위협받는 이때에 무거운 숙제만을 후배들에게 남기고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검찰 현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구름 뒤에 빛나는 태양이 있고, 밝은 빛이 오듯이 함께 지혜를 모아 지금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검찰 본연의 모습을 잘 찾아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송 지검장도 내부망에서 “정든 검찰을 떠나고자 한다. 26년의 세월이 꿈같이 흘렀다”며 “반도 남단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소 먹이는 아이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운 좋게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었다”고 운을 뗐다. 송 지검장은 두보의 시 ‘동고’의 한 구절인 ‘끝없이 지는 나뭇잎은 쓸쓸히 멀어지고’를 언급했다.그는 “이 구절은 요즘 우리 검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며 “내가 몸담고 사랑했던 우리 검찰이 오늘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답답하고 먹먹한 느낌만 들뿐이다”고 전했다. 이와함께 송 지검장은 중국의 작가 ‘당년명월’이 쓴 역사책인 ‘명나라 때 있었던 일’에 나오는 구절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작가는 책에서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며 “이는 그 전의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범할 잘못은 여전히 범하는 등 역사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욕망과 약점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아서 검찰을 지키는 동료, 후배 여러분께서 더 큰 지혜를 발휘하여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가길 기원한다”며 “곤궁했을 때도 늘 뜻을 잃지 않았는지,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정한 마음으로 대했는지, 포용력 있게 행동했는지 반성해본다”고 글을 마쳤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나뭇가지로 찌르며 지뢰밭 건너”…월북 20대가 밝힌 탈북 과정

    “나뭇가지로 찌르며 지뢰밭 건너”…월북 20대가 밝힌 탈북 과정

    ‘월북’ 김씨, 유튜브서 2017년 탈북 생생히 묘사 최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3년 전 헤엄을 쳐서 탈북했던 과정을 최근 유튜브를 통해 밝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 귀가 좋지 않았다는 그는 “한국에 와서 귀를 고쳐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탈북민 김모(24)씨는 다른 탈북민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지난달 23일과 25~26일 출연해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개성공단 깨지면서 장사 안 돼 가난 심해져” 김씨는 영상에서 “탈북을 결심한 것은 첫째 살기가 힘들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개성공단이 깨지면서(폐쇄되면서) 저도 장사가 안 되다보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쌀장사를 하던 고모네가 잘 살아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개성공단이 깨지고 나서 고모도 시골 쪽으로 내려갔다”면서 “제가 어릴 때부터 귀도 좋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백마산에 올라갔다”고 했다. 김씨는 개성시 해평리에 있는 백마산에서 웅덩이 물을 마시고, 먹으려고 가져갔다가 맛이 없어 버렸던 효모빵을 개미를 털어내고 먹으며 사흘을 지냈다. 그러던 중 초저녁쯤 불빛이 가득한 남측을 보고 ‘이렇게 죽는 것보다 (남한에) 한번 가보고 죽자’라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버려진 스티로폼과 밧줄로 만든 구명대 입고 헤엄쳐” 김씨는 “다음날 오후 3시쯤 분계선 고압선과 가시철조망을 2차례 넘어서 지뢰밭을 건넜다”며 “지뢰밭에서는 나뭇가지를 꺾어 밟는 자리마다 찌르면서 건넌 뒤 한강 옆 갈대밭에서 낮 동안 3시간을 숨어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갈대밭에서 버려진 스티로폼과 밧줄로 구명대를 만들어 착용한 그는 강화도 쪽 불빛을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김씨는 “불빛만 보고 수영을 한참 하다가 ‘유도섬’을 지나는데 불빛이 멀어지고 체온이 떨어져 ‘죽겠구나’ 싶었다”면서 “물살에 자꾸 방향을 잃어 다시 헤엄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그는 “분계선이 좀 가까워졌을 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면서 “땅을 밟고 올라갔는데 분계선 문을 열고 군인 8명 정도가 나왔고, 나는 나가자마자 쓰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출발할 때 남한까지 1시간 정도면 가겠다 싶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7시간 30분가량 걸렸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지 않던 두 귀 고쳐서 감사” 김씨는 “한국에 와서 두 귀를 고쳐서 잘 듣고 있는데 이게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며 “어머니나 형제들한테 알려주고 싶은 설움에 병원에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한국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오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가 열린 사실을 전하면서 “개성시에서 악성비루스(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7월 19일 귀향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김씨가 출연했던 유튜브를 운영하는 탈북민은 지난 18일 새벽 김씨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으며, 그의 월북 정황을 알아채고 당일 저녁 경찰에 알렸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달 지인 여성을 자택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도 발부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美고교생에 잇따라 망신당하는 주류 언론들… “둘 해치우고, 여섯 남아”

    美고교생에 잇따라 망신당하는 주류 언론들… “둘 해치우고, 여섯 남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CNN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주류 언론들이 지난해 소셜미디어에서 집중적 비판을 받던 10대 고교생에게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있다. 대학 진학도 어려울 것이란 이 학생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가게 됐다. 미국 켄터키주 코빙턴 가톨릭고교 3학년 니콜라스 샌드만(18)은 트위터에서 “지난해 2월 19일 WP를 상대로 제기한 2억 5000만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나는 오늘 WP와 화해로 해결했다”며 “나를 지지해준 가족과 수백만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힌 것으로 USA투데이와 더힐 등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화해의 구체적인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가 WP에 청구한 2억 5000만 달러는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2013년 10월 WP를 인수할 때와 같은 금액이다. 샌드만은 이날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둘을 해치웠고, 여섯이 남았다”는 트윗을 올렸다. 샌드만은 앞서 지난 1월 케이블 뉴스방송인 CNN에 2억 7500만 달러를 청구하는 소송을 화해로 해결했다. 역시 화해의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소송의 발단은 이렇다. 샌드만은 지난해 1월 워싱턴DC에서 열린 낙태 반대 운동인 ‘생명권 거리 행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적힌 빨간 모자를 쓰고 참가했다.옆에서는 또 다른 시위인 원주민 인권보호가 벌어졌다. 샌드만은 웃음을 띠고 오마하 부족 장로이자 원주민 인권활동가인 네이선 필립스와 가까이에서 2분 넘게 서로 쳐다봤다. 이들 주변에서는 “(국경) 장벽을 설치하라”는 구호가 들렸다. 이런 모습의 짧은 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면서 샌드만이 원주민을 비난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는 동영상 속의 10대가 자신이라고 밝히면서 필립스가 자신과 다른 학생들에게 접근한 이유는 모른다면서 긴장된 상황을 완화시키려고 애썼다고 주장했다. 샌드만 변호인들은 당시 WP가 샌드만이 공격을 가했고, 필립스를 육체적으로 겁박했고, 인종차별적으로 행동했다는 보도는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WP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확대하기 위해 샌드만을 희생양 삼았으며, 언론 보도로 “목표물이 돼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WP는 “오늘의 매카시즘”과 같다고 보도했다. 샌드만의 억울함으로 새로운 동영상으로 풀렸다. 새 영상에는 흑인 히브리인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무리가 원주민들을 향해 ‘잘못된 신을 섬겨서 자신들의 땅을 빼앗겼다’고 조롱하고, 샌드먼 등 학생들에게도 ‘크래커’(cracker·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백인)라고 외치는 모습이 담겼다. 이에 흥분한 이에 학생들이 웃통을 벗고 이들과 대치하자 참전용사 출신인 필립스가 북을 두드리며 끼어들었다. 코빙턴 가톨릭 교구가 진행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샌드만은 앞서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것이고, 인생이 끝났다고 들었지만, 장학금을 받고 놀라운 대학에 진학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학교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샌드만 변호인은 아울러 NYT와 함께 지상파 방송인 NBC, ABC 뉴스, CBS 뉴스, 연예 전문매체인 롤링스톤, 대중지 USA투데이를 소유한 개닛 등 8개 매체에 대해 “자신과 가족이 시달렸던 감정적 고통”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을 상대로 청구한 소송금액은 12억 5000만 달러에 이른다. 샌드만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거나 남은 인생이 끝났다는 소리도 들었다. 샌드만은 자신의 동영상을 내보낸 트위터에 대해서도 소송을 시사했다. 그는 이날 트위터 최고경영자인 잭 도시를 태그하면서 “안심하지 마라. 잭”이라고 올렸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원주민 모욕” 오보에 당한 18세, CNN 이어 WP에도 사실상 승소

    “원주민 모욕” 오보에 당한 18세, CNN 이어 WP에도 사실상 승소

    미국 고교생이 18세 생일 날에 손꼽히는 유력 언론 워싱턴 포스트(WP)에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 배상 소송에서 사실상 백기 투항을 의미하는 법정 밖 화해를 이끌어냈다. 돈을 받고 소송을 끝내는 데 합의한 것이다. 지난 1월 CNN과 법정 밖 화해에 이어 연타석 안타를 날린 셈이다. 주인공은 지난해 1월 워싱턴 DC에서 미국 원주민 인권활동가를 모욕하는 듯한 동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되고 언론에 보도돼 곤욕을 치른 켄터키주 코빙턴 가톨릭고교 재학생인 니콜라스 샌드만(18). 그는 WP에 2억 5000만 달러(약 3010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가 합의했다. WP도 자사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24일(현지시간)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측 모두 합의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반년 전 샌드만이 CNN과 합의했을 때도 역시 구체적인 합의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샌드만은 이날 트위터로 WP와의 합의 사실을 알리고 “날 계속 지지해준 수백 만명과 가족에게 감사하다”며 변호사인 토드 맥머트리와 린 우드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말한 그는 “둘은 끝났고, 여섯은 이제 시작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가 남은 할 일이란 NBC, ABC 뉴스, CBS 뉴스, 뉴욕 타임스(NYT), 롤링 스톤, USA 투데이를 소유한 가넷 등 언론사 여섯 군데를 상대로 한 소송을 가리킨다. WP를 상대로 한 소송액 2억 5000만 달러(약 3010억원)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2013년 신문을 인수했을 때 지불한 비용과 맞먹는다. 여덟 언론사에 제기한 소송 가액의 총액은 무려 12억 5000만 달러(약 1조 5050억원)라고 신시내티 인콰이어러가 전했다. 18세 고교생이 이만한 손해배상 액수를 요구한 전례가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변호사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유력 언론사들이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잘못 때문에 어린 고교생에게 호되게 당하는 것이다. 논란이 된 동영상은 샌드먼과 학우들이 지난해 1월 워싱턴DC에서 열린 낙태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가 같은 곳에서 시위하던 원주민들과 조우한 순간이 담겼다. 영상을 보면 샌드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슬로건이 적힌 빨간 모자를 쓰고 웃음을 띤 채 원주민 인권활동가이자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인 네이선 필립스와 30㎝ 정도 거리를 두고 2분 넘게 서로 마주본다. 샌드먼의 학우들이 둘러서서 웃고 떠들며 “(국경)장벽을 건설하라”고 외쳐댄다. 해당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여러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샌드먼과 학생들이 원주민을 모욕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그 뒤 다른 동영상이 공개되며 생각보다 복잡한 전말이 드러났다. 새 영상에는 자신들이 흑인 히브리인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무리가 원주민들을 향해 ‘잘못된 신을 섬겨서 자신들의 땅을 빼앗겼다’고 조롱하고, 샌드먼 등 학생들에게도 ‘크래커’(cracker·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백인)라고 외치는 모습이 담겼다. 학생들이 웃옷을 벗고 연호하며 이들과 대치하자 인권 운동가인 필립스가 북을 두드리며 끼어들었다. 학생들은 처음엔 북소리에 흥겹게 반응하는 듯하다가 결국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돌아가라” 등을 외쳤다. 그러나 샌드만은 시종 느물대지만 인종차별적이거나 필립스를 자극할 어떤 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코빙턴 가톨릭 교구가 사립 조사기관을 고용해 진행한 자체 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론이었다. 샌드만은 WP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확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 삼았으며 언론 보도로 “목표물이 돼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그들을 무찔러라, 닉. 가짜뉴스!”라며 샌드만을 응원해 논란을 부채질했다. 샌드만의 트위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주니어와 함께 찍힌 사진이 프로필 사진으로 게재돼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조정훈, 한국판뉴딜에 “쓰레기 일자리…일 없으니 이거라도 하라는 것”

    조정훈, 한국판뉴딜에 “쓰레기 일자리…일 없으니 이거라도 하라는 것”

    범여권 정당인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정부의 ‘한국판 뉴딜’의 일자리 창출 방안과 관련해 “쓰레기 일자리”라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24일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서 “계산해보니 정부가 2년 동안 만들겠다고 하는 일자리에 들어간 예산이 일자리당 5500만원이고 1년으로 나누면 2000만원 조금 넘는 돈”이라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최저임금을 주는 일을 자제에게 진심으로 권장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쉽게 얘기해서 최저임금을 주겠다는 것”이라며 “‘일없으니까 이거라도 하는 게 어때?’ 정도의 일자리를 두고 일자리 생산이라고 하는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 청년들은 이런 것을 ‘쓰레기 일자리’라고 한다”며 “과연 이런 일자리에 귀한 청년의 시간을 쓰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은 전날 홍 부총리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기본소득보다 ‘저소득층의 선별적 복지’를 강조한 데 대해서도 “정부가 국민의 비참함을 봐야 돈을 주겠다는 생각이라서 저는 매우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난하고, 내가 일자리에서 잘렸고, 내가 고아임을 국가에 증명해야 국가가 조금씩 돈을 주는 이런 선별적 복지는 우리 국민에게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일침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여한의사회와 뜻 모아… 미혼한부모가정 지원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여한의사회와 뜻 모아… 미혼한부모가정 지원

    홀트아동복지회(회장 김호현)는 지난 23일 대한여한의사회(회장 김영선)와 함께 미혼한부모가정 지원에 대해 약속하는 사회공헌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미혼한부모가정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마련된 이번 협약식에는 홀트아동복지회 김호현 회장과 대한여한의사회 김영선 회장, 조영도 부회장을 포함한 임직원 11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대한여한의사회는 다문화가정 여성, 가족폭력 피해 여성, 이주여성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진 이들을 위해 현재까지 약 6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의료봉사를 이어가고 있다.홀트아동복지회는 이러한 대한여한의사회에 뜻을 모아 함께 나눔을 실천하고자 이번 협약을 체결했다. 시설 및 재가 미혼한부모가정을 위한 의료봉사를 진행하는 것이 골자이며, 나아가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후원함으로써 수혜의 범위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홀트아동복지회 김호현 회장은 “여성의 권익향상과 건강한 삶 영위를 위해 의료인의 사명을 다하는 대한여한의사회를 보며 많은 것을 느낀다”며 “미혼한부모가정을 기여하는 데에 대한여한의사회와 동행하게 됨에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편, 창립 65주년을 맞이하는 홀트아동복지회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에 시작된 비영리단체이다. 전쟁과 가난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는 입양복지를 시작으로 아동의 행복을 위한 아동 중심의 사회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없는 자와 약한 자는 외면하는… ‘인맥공장’ 된 대형교회

    없는 자와 약한 자는 외면하는… ‘인맥공장’ 된 대형교회

    한국 개신교의 성장세는 1990년대 중반을 분기점으로 급격히 꺾인다. 새 신자의 교회 유입이 줄면서 기성 교회에 실망한 채 떠도는 신자들을 교회로 불러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많은 교회가 문화 선교 등 기존과 다른 목회와 예배 방식을 시도했고 일부는 대형교회로 성장해 교계며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워집단으로 우뚝 섰다. 이른바 후발 대형교회의 출현이다. 민중신학자 김진호 목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외형적으로 성공(?)한 서울 강남과 강동, 분당의 후발 대형교회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웰빙보수주의´의 폐단을 지적한다. 영락교회나 순복음교회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1인 목사에게 의존하던 이전 대형교회와 달리 재력, 인맥을 갖춘 유력 신자들과 함께 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남의 S교회나 O교회 같은 후발 대형교회를 정색하고 들여다본다. 웰빙보수주의에 빠진 후발 대형교회들이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약한 신자와 이주민 등 소외계층을 홀대하고 외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에서 정의하는 웰빙보수주의는 품격 있는 라이프스타일, 즉 웰빙적 문화 실천이 대형교회의 보수성과 결합해 형성된 계급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중상위 계층이 거대한 친밀성의 공간이자 `인맥 공장´인 후발 대형교회에 집중되면서 웰빙보수주의라는 그들 특유의 계급문화를 형성했다고 말한다. 이들 후발 대형교회에서 신자들은 담임목사에게 충성심을 갖는 추종자가 아니라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협력자’이자 ‘동역자’라는 점에서 ‘주권신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많은 교회에서 주권신자의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권 밖으로 내몰린 대중에 대해서는 여전히 배타주의가 공공연히 혹은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국립공원의 아버지 존 뮈어 인종차별 전력 고백한 시에라 클럽

    국립공원의 아버지 존 뮈어 인종차별 전력 고백한 시에라 클럽

    산정 호숫가 바윗돌에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는 이 사람, 국립공원의 이상을 전 세계에 뿌리내리게 만든 존 뮈어(1838∼1914년)다. 아마도 미국 사우스다코다주의 러시모어 산에 전직 대통령 4명의 얼굴을 새긴 것처럼 환경보호와 아웃도어 분야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인물들을 새긴다면 반드시 그의 얼굴이 들어갈 것이라고 아웃도어 전문 매체 기어정키 닷컴이 22일(현지시간) 단언한 것은 결코 과장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전직 대통령들과 똑같이 그 역시 마주하기 어려운 진실을 얘기해야 할 시점이다. 그가 창립해 128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가장 권위있는 환경보존 단체 시에라 클럽이 이날 장문의 성명을 발표하고 “의미심장하고 측정하기 어려운 손실을 역사에 끼쳤음”을 인정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창립자 중 한 명인 뮈어가 “흑인과 아메리칸 원주민들을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으며”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 조지프 르콩트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 등 초기 지도자들 가운데 몇몇이 백인 우월주의와 우생학(eugenics)에 동조했으며 나중에 나치 독일이 채택한 운동들을 도왔다고 털어놓았다. 나치의 운동이란 흑인, 중남미인의 후손(Latinx), 아메리칸 원주민, 가난한 여성, 장애나 정신이 시원치 않은 이들에게 불임 시술을 강제하는 일도 포함돼 있었다. 마이클 브룬 시에라 클럽 사무총장은 성명에 우리 클럽이 흑인과 원주민, 유색 인종들에 초래한 모든 해악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적고 “변화를 실행하는 일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번 사과가 공허해진다는 것을 잘 안다. 당장 공개적으로 맹세한다. 아울러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능동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클럽 지도자들, 직원들, 자원봉사자들과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이에 따라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방편으로 클럽 지도부에 흑인, 원주민. 유색인종들이 포진할 수 있도록 인종 평등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나아가 내년에는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그 뒤 더 많이 유색인종 직원을 선발하고 교육시키는 데 투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역사를 면밀히 살펴 초기 지도자들의 이름을 딴 기념물이나 조형물들의 이름을 바꾸거나 하는 등의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웃도어라고 해서 인간사와 동떨어질 수 없으며 우리가 사랑하고 국립공원으로 만들기 전의 이 거친 장소들이 원래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고향이었음을 모르는 건 현실에 눈감는 행동이라고 설파했다. 기어정키 닷컴은 마지막으로 시에라 클럽이 인종, 사회 정의, 그리고 조직의 미래를 계속 새롭게 정리하는 일련의 시리 중 첫 발을 뗀 것이란 클럽의 설명을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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