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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인생 3막/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지인이 신간 저서를 보내왔다.‘인생 3막’이 주제다. 인생이 4막의 드라마라면,3막은 자식 출가시킨 뒤 주도적인 삶을 가꾸는 시기란다. 그녀는 45세가 넘으면, 해마다 유서를 쓰라고 권한다.45세 이하면 가상 유서를 쓰란다. 가족과 주위에 덜 미안하고,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삶이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고 했다. 지인은 스피치컨설팅회사 대표다. 아나운서 출신이다. 그는 영상으로 유서를 남기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다고 했다. 가상이지만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순수’를 봤다고 했다. 베토벤은 32세때 두 아우에게 유서를 남겼다.(세상의 모든 지식, 김흥식 지음)“너희들은 나를 적의에 차고 사람을 혐오하는 고집쟁이로 여기지만, 그것이 얼마나 그른 일인지 모른다.”편견과 화해하려 한 연민이 엿보인다. 평소 우리는 주변을 배려하는 노력을 얼마나 하며 살아갈까.‘이 세상이 꽃다발과 같다면’ 솜사탕 같은 에릭 쿤츠의 가곡이 떠오른다. 꽃다발과 같은 세상, 지금 우리 마음 속에 있지 않은가.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클래식계 ‘원조 꽃미남’ 김정원 7일 서울 충무아트홀서 콘서트

    클래식계 ‘원조 꽃미남’ 김정원 7일 서울 충무아트홀서 콘서트

    ‘앙증맞은 화환이나 초콜릿을 들고 있는 소녀팬들이 100m도 넘게 줄지어 서 있다. 한참을 기다리다, 저 멀리서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면 상기된 표정으로 일제히 탄성을 지른다.’ ‘오빠부대’가 조금씩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유명 콘서트홀의 요즘 풍경이다. 하지만 대중가수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는 분명히 다른 무엇이 있다. 이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음악도 표준적인 클래시컬 레퍼토리가 주류. 아무리 뛰어난 외모를 지녔어도 해외 유명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국제적으로 공인된 수준이 아니면 ‘오빠’ 대열에 합류하기는 어렵다. ●섬세한 음색·화려한 테크닉과 카리스마 대중문화적 감수성에 세계 수준의 음악적 능력을 겸비한 젊은 세대 연주자가 몰려오고 있다. 반면 모자라는 연주능력을 덮어주었던 ‘크로스오버’는 국내 시장에서 퇴조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32)은 이런 분위기를 선도하는 클래식계의 원조 ‘꽃미남’. 여기에 섬세한 음색과 화려한 테크닉, 강렬한 카리스마가 더해져 어떤 대중문화의 스타도 부럽지 않을 만큼 많은 여성팬을 갖고 있다. 그가 ‘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7일 오후 5시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콘서트를 펼친다. 김정원이 불러모은 친구들은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첼리스트 최정은, 색소포니스트 손성제, 소프라노 기수연, 테너 정호윤, 싱어송라이터 하림, 베이시스트 정재일 등 각 자의 분야에서 ‘한 가닥’씩 하는 인물 7명이다. 이날의 음악적 모임에 붙여진 ‘Attraction(매력)’이라는 부제는 뚜렷한 개성과 조화로운 앙상블을 동시에 이루어 청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김정원은 지난해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피아니스트로 특별출연하여 대중문화 애호가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김정원의 어머니가 ‘은실이’ 등 히트작을 쓴 드라마작가 이금림이라는 것도 그가 대중문화 지향적일 것으로 선입견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의 대중문화적 감수성은 대중음악 지향성과는 다르다.‘호로비츠’에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클래식음악을 다룬 영화로 연주만 하면 된다고 해서 수락했던 것”이라고 술회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그의 경력과 활동상황도 이를 증명한다. 빈 국립음대에 최연소 입학한 뒤 파리 고등음악원 최고 연주자 과정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했다. 부조니 콩쿠르에 입상하고 뵈젠도르퍼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빈 심포니, 독일 하노버 방송 교향악단, 부다페스트 국립 교향악단 등과 협연한 정통파이다. 올해도 지난 1월 독일 뉘른베르크 심포니 및 폴란드 루토슬라브 필하모닉과 조금은 골치 아픈 바르토크의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6월29일과 7월1일에도 거장 엔리케 바티즈가 지휘하는 멕시코시티 국립교향악단과 슈만의 협주곡을 연주하고 난 참이다. ●대중문화스타 능가할 여성팬 확보 물론 ‘김정원과 친구들’은 내용이 훨씬 가볍다. 사라사테의 ‘카르만 환상곡’과 이탈리아 가곡 ‘아침의 노래’와 ‘물망초’, 베르디의 아리아, 이미 클래식음악회의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잡은 피아졸라의 탱고와 두 곡의 영화음악 등이다. 대중문화적 감수성을 ‘무기’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김정원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과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M.I.K 앙상블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독자적인 ‘오빠부대’를 이끌고 있는 이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때 정장차림에 점잔을 빼야 하는 우아한 장소의 대명사였던 콘서트홀의 이미지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2만∼6만원.(02)2230-789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공연, 경계가 허물어진다

    공연, 경계가 허물어진다

    공연계의 크로스오버 바람이 거세다. 연극, 뮤지컬, 무용, 콘서트 등 각각의 장르로 똑 떨어지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공연의 탈장르화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이들은 기존의 형식을 깨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험으로 새로운 형식의 진화를 부추긴다. 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란함만 남기고 사라지기도 한다. 최근 무대에서는 인접 장르와의 결합뿐 아니라 이종 장르와의 교접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카이스트 교수들이 제작에 나선 디지털 플레이 ‘신타지아’, 뮤지컬을 오페라와 섞은 ‘코로네이션 볼’을 비롯, 콘서트형 뮤지컬과 연극을 도입한 음악회, 회화와 영상, 무술과 무용까지 곁들인 멀티쇼 등 다채로운 공연들이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무대도, 관객도, 배우도 디지털로 서울 종로의 행인과 극 중의 소녀가 말을 주고받는다. 관객은 객석 위치에 따라 다른 소리를 듣고 다른 감정을 느낀다. 배우가 로봇이 천사 모양의 미완성 영상을 뿌리면 관객들이 휴대전화로 접속해 영상 조각을 맞춘다. 디지털 플레이 ‘신타지아’(6월23일∼7월15일, 고양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의 공연 내용이다. 융합과 환상이라는 뜻의 ‘신타지아’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들과 고양문화재단의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졌다. 소설가인 김탁환 교수의 ‘로봇 플라워’가 원작이다. 공연의 총괄을 맡은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장은 “기계가 인간을 얼마나 대신할 수 있는가, 기계가 공연에 얼마나 더 들어올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해 보는 것”이 공연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관객과 무대, 배우를 얼마나 더 디지털화할 수 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라는 것이다. ●음악, 회화, 영상 등 퍼포먼스의 뒤섞임 음악에 회화와 영상, 퍼포먼스와 드라마까지 섞는 ‘하이브리드’ 공연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28일부터 공연하는 ‘마담 드 모카’(7월1일까지,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는 가브리엘 포레의 연가곡 ‘이브의 노래’를 드라마와 노래로 소개한다. 노래하는 모카 부인과 연극하는 모카 부인의 에피소드가 클래식과 어우러진다. 영상과 미술, 무용 등 다양한 무대 언어가 쓰인다. 젊은 국악인들의 연주그룹 정가악회는 황해도 삼현육각과 창작국악 연주를 선보이면서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말과 음악’을 함께 올린다.‘말과 음악(7월5∼7일까지,LIG아트홀)’의 연출 김지후씨는 “낙후 대상으로 간주되는 전통음악에 거리감을 느끼는 관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연극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오페라 가수들이 부르는 뮤지컬 지난 15∼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코로네이션 볼(대관식 축하 연회라는 뜻)’도 새로운 시도였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와 ‘스타마니아’를 오페라 가수들이 부른 것.24곡의 뮤지컬 곡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협연으로 오케스트라 편곡을 거쳤다. 이번 공연은 맛보기 성격도 있다.‘노트르담 드 파리’는 10월23일부터 2주간 김해 문화의 전당에서 트라이아웃을 가진 뒤 내년 1월에 서울에서 공연할 예정이다.2009년에는 ‘스타마니아’ 오리지널 팀이 국내에 처음으로 상륙한다. ●탈장르화는 필연적인 추세 관객들 자체가 멀티화·디지털화 되고 있는 요즘, 장르의 경계 허물기는 필연적인 형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연극평론가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장르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연극과 다른 장르간의 상호 이해를 위해서도 소통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격적 시도는 좋지만 예술적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순천향대 원종원 교수는 “예술의 진보를 위해서는 뒤섞여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하고 진정한 미적 가치의 발굴이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탈장르화가 미래 예술의 한 방향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청강문화산업대 이유리 교수는 공연 현장의 본질을 지키면서 여러 메커니즘을 활용하면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Metro] 운현궁서 전통·현대음악 연주회

    서울시는 23일 오후 7시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전통 국악과 현대 음악이 어우러지는 ‘2007 운현궁의 향연’을 연다고 22일 밝혔다.개막 행사는 타악그룹 카타의 퓨전 타악 퍼포먼스, 메조소프라노 김수정씨와 테너 4명이 부르는 가곡 무대가 진행된다.또 여성 퓨전그룹 황진이의 ‘비창’‘오나라’‘헝가리 무곡’, 이치현과 벗님들의 ‘당신만이’‘다 가기 전에’, 미나 재즈댄스 그룹 등의 공연과 판굿 등도 펼쳐진다. 공연은 무료.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금석탁본·짚공예 직접 해보세요

    “천년고도 전주에서 전통 민속놀이를 만끽하세요.” 제49회 풍남제가 ‘맛과 멋의 고장’ 전북 전주시에서 16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 단오제를 겸한 풍남제는 전통문화행사와 민속행사, 체험마당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향토축제다. 기접놀이, 판소리 다섯바탕, 서화백일장, 시조가사가곡경창대회, 한시백일장 등 다른 고장에서 보기 힘든 전통문화행사가 펼쳐진다.민속씨름, 그네뛰기, 널뛰기, 줄타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단오부적 등 향토색 짙은 민속행사를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전통의상 체험, 차문화 체험, 금석탁본, 단오부채 만들기, 짚공예 등 현대인들이 접하기 힘든 체험도 축제기간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단오다리 건너기, 단오소원등 달기, 창포물맞이 등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다. 태껸, 단무도, 국선도, 태권도 등 전통무예시범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전주는 한옥촌, 덕진공원, 동물원 등 볼거리가 많고 비빔밥, 한정식, 콩나물국밥, 막걸리 등 먹거리가 풍성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On Stage] 도인(道人) 예술가 박상원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카네기홀은 15년이 넘은 전설적인 홀이다. 아직도 이곳은 세계의 난다하는 공연 예술가들이 한 번 서보고 싶어하는 무대이다. 큰 음악당이나 작은 리싸이틀 홀도 매한가지이다. 60년대 후반 링컨센터가 열리고 나서 그곳이 뉴욕공연예술의 중심인 듯했으나 카네기홀이 80년대 100주년을 계기로 대수리 작업을 감행 다시 영광을 되찾았다. 특히 음향이 줄고 접근성이 좋아 여전히 사랑받는 뉴욕의 명소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박상원이 주관하는 평화를 갈구하는 음악회가 열리었다. 때마침 내가 뉴욕에 도착한 날이었다. 카네기홀의 큰 홀에서는 세기의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뉴욕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지난 1월 20일)가 있었다. 나는 이 음악회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어쩐지 작은 홀에서 하는 한국사람의 음악회가 가고 싶었다. 음악회는 뉴욕의 평화통일자문회가 주최하는 어찌 보면은 정치성이 있는 듯한 행사였다. 청중들은 뉴욕 사회의 한국인들이 반 정도 자리를 차지했지만 반 정도는 뉴욕 백인사회의 상류층들이 모인 듯하였다. 한국가곡도 있고 민요도 있으며 가야금 독주도 있었다. 그런데 이 음악회를 끌고 가는 중심은 50대의 국악인 박상원이었다. 이날 박상원은 기획자이며 총연출자였고 그 날 음악회의 중심 프로그램을 맡아 출연했다. 뉴욕의 청중들은 그를 한국의 국악인으로 인식하지는 아니했다. 무엇인가 뉴욕이라는 곳의 풍토에 맞는 역동적이고 또 깊은 예술적 척도 속에서 높은 차원의 예술적 세계를 창조하는 구도적(求道的) 예술가로 치부하는 것 같았다. 일부에서는 백남준이 다시 살아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속삭임도 있었다. 이 무대는 1979년 그가 뉴욕에 처음 데뷔했을 때와 똑같은 곳이었다. 그때는 그가 한국의 가야금 주자로 한국 음악의 전통자로 그곳에 섰었으나, 지금은 뉴욕에서 새로운 음악의 창조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한국 국악기도 가야금 이외에 아쟁 그리고 장단을 잘 치는 전천후 연주가다. 서울음대 국악과를 나오고 대학원과 정신문화연구원 박사 과정도 이수한 학자이기도 한 박상원은 80년대 뉴욕의 첨단 예술인들과 함께 어울려 음반 출판은 물론 세계 여러 곳에 초청받아 새 시대 음악가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물론 그는 전업 음악가는 아니다. 뉴욕 렉싱톤가에 이름난 꽃집을 17년째 경영하며 한국음악의 혼을 세계 중심에 심는 선구적 예술가이다. 수염이 약간 길어 모습만 보아도 구도자이다. 이제 뉴욕에 산 지 그의 생애 절반.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한국인의 자랑이다.
  • 폐교를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충남지역의 자치단체들이 폐교를 사들여 지역 문화와 역사성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태안군은 24일 올해 말까지 11억여원을 들여 폐교인 근흥면 안흥초 가의도분교와 안면도의 창기초 황도분교를 각각 매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군은 가의도분교에 육쪽마늘 연구시설을, 황도분교에 충남도 무형문화재 12호인 ‘황도 붕기풍어제 전수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가의도는 서산·태안지역 특산물인 육쪽마늘 종구 생산지다. 태안군 관계자는 “예전 농어촌의 구심체였던 학교가 폐교됐지만 이를 새로운 문화·교육 공간으로 바꿔 주민들에게 되돌려주고 열악한 지역 교육재정을 돕기 위해 추진했다.”고 말했다. 홍성군은 올해 말까지 모두 15억원을 들여 갈산면 갈산초 가곡분교, 서부면 신당초 천수분교와 서부초 상황분교 등 폐교 3곳을 매입한다. 가곡분교에는 ‘한성준 민속무용전수관’이 세워진다. 한성준(1874∼1942) 선생은 이 지역 출신의 명고수로 근대전통춤을 집대성했다.또 천수분교는 ‘장애인복지타운’으로, 상황분교는 ‘갯마을체험장’으로 각각 활용한다는 게 군의 방침이다. 예산군도 올해 말까지 6억여원을 투입해 폐교인 오가면 양막초교를 매입해 ‘외국인 문화체험장’으로 만든다. 서산시는 지난 3월 폐교조치된 지곡면 산성초와 대성초를 사들여 각각 ‘농업박물관’과 주민들의 교육훈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녹색공간] 한강은 흐른다/이기영 호서대 식품미생물학 교수

    악동들에게 한강의 봄은 칡뿌리 캐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양지바른 곳에 삼삼오오 모여 숫돌로 곡괭이와 삽을 갈아 날을 세운다. 꼬마대장은 행주산성 공동묘지에 겨우내 알배기로 뿌리를 내린 어른 다리통만한 칡을 캐올 전략을 세운다. 그러나 무서운 묘지기 아저씨가 망을 보고 있어 한강가의 이마모태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한강을 타고 올라온 왜군들이 까맣게 산성을 향해 기어오르다 부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날라온 돌벼락과 뜨거운 물세례를 받고 떨어져 강물에 빠져 죽은 곳이다. 절벽 아래는 덕양산을 휘돌아가는 물살이 가장 빠른 곳이라 고깃배들도 이곳을 피해 간다. 땅은 아직 얼어 단단하지만 조금만 파고 내려가면 부드러운 흙이 나온다. 무덤에 뿌리박은 칡뿌리를 한아름 캐 안고 돌아온 아이들은 개선장군처럼 뽐내며 계집애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준다. 며칠동안 입이 검게 물들도록 씹으며 미리 찾아온 봄의 단맛을 즐긴다. 날씨가 풀리면서 여자애들도 질세라 대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간다. 흙 속에는 거미줄곰팡이처럼 하얗게 퍼진 메가 가득하다. 메를 한 소쿠리 캐 밥을 지어 무친 냉이반찬과 함께 먹으면 메향기가 입 속 가득히 퍼지며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한강이 풀리면서 강에서 처음 잡히는 물고기가 황복이다. 한강 상류로 올라가서 알을 낳기 때문에 3월 초순부터 4월초까지 한 달만 잡히는 고급 매운탕감이다. 복어는 테트로도톡신이란 무서운 독을 갖고 있어 아가미와 알, 간, 피는 빼버리고 먹어야 한다. 이 독은 복이 만든 게 아니라 산란기에 복에 기생하는 미생물이 분비한 것이다. 간혹 버린 내장을 개나 닭이 먹고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워낙 맹독성이라 먹는 즉시 소리도 못 지르고 꼬꾸라진다. 새끼 황복은 잡히면 배에 바람을 불어넣어 몸 전체가 공처럼 부풀어 오르며 물에 둥둥 뜬다. 무서워서 죽은 것처럼 위장하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큼직한 황복의 노르스름한 뱃가죽을 잘라내 씻어 말린 뒤 양재기에 씌워 북을 만들어 주셨다. 나는 비린내 나는 복북을 두드리며 동네 아이들과 성당마당을 돌며 노래판을 벌였다. 봄 햇살을 흠뻑 받은 개나리 담장에 닥지닥지 붙은 꽃망울이 화사하게 터지고 연분홍 진달래는 앞산 자락을 붉게 물들인다. 뒷산 언덕이 복사꽃으로 점점이 채색되고 한강의 양수장에서 퍼올린 물이 수로를 따라 흐르며 논밭을 적시기 시작하면 일손이 달리는 농사일을 도우러 악동들도 논밭으로 불려나가야 했다. “한강은 흐른다. 산과 들 사잇길로 복숭아 진달래 꽃망울을 터뜨리며 오늘도 무지개로 소리없이 흐른다. 한강은 흐른다.…마을과 도시를 지나 저마다 생의 등불 환하게 밝히면서 오늘도 은하수로 묵묵히 흐른다.”(www.singreen.com) ‘자연사랑 음유시 한마당’을 함께 펼쳐왔던 서울대 오세영(한국시인협회회장) 교수가 주신 이 시에 곡을 부쳐 보았다. 때마침 세계적 생명평화운동가이자 대학시절 친구인 뉴욕유니언 신학대의 현경 교수가 생태명저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헬레네 노르베리 호지 여사와 한국을 방문해 생태공연을 요청해 왔다.2005년 봄 한강 하류의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이 노래를 초연했는데 뜻밖에도 너무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이 노래는 이제 수십여 차례에 걸친 음악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우리 한민족의 혼을 담은 국민영가로 자리잡았다. 바리톤 최현수가 신작 가곡음반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한강은 우리 한민족의 생명을 지탱하는 대동맥이다. 그런데 요즘 선거철을 맞아 공장 건설이니 운하개발이니 하며 한민족의 대동맥을 마구 더럽히고 끊어놓으려는 개발 광풍이 일고 있다. 이 노래를 널리 퍼뜨려 위기의 한강을 살리자. 이기영 호서대 식품미생물학 교수
  • ‘4월의 노래’ 작곡가 김순애씨 별세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되는 박목월의 시 ‘4월의 노래’를 가곡으로 만든 원로 작곡가 김순애(金順愛)씨가 6일 오전 6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는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예술원이 9일 전했다.87세.고인은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 1941년 이화여전 작곡과를 졸업한 뒤 대구와 서울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했다. 첫 창작곡은 1938년 이화여전 시절에 지은 자작시에 곡을 붙인 ‘네잎 클로버’로 알려져 있으며 ‘그대 있음에’ ‘첫사랑’ ‘꽃샘바람’ 등 다수의 가곡과 ‘오보에와 피아노 야상곡’(1956),‘바이올린 소나타’(1958),‘2악장의 교향곡’(1963),‘오보에를 위한 한국적 음율’(1968), 오페라 ‘직녀, 직녀여!’(1984) 등을 작곡했다. 미국 이스트만 음대 대학원 졸업 후 1953년부터 이화여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1989년 예술원 음악분과 회원이 됐다. 서울시 문화상(1964), 제1회 한국작곡상(1974), 보관문화훈장(1984), 대한민국예술원상(1986), 국민훈장 모란장(1986),3·1문화상(1993)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역사에 비친 음악가들’(박영출판사·1976)이 있다. 생전에 당뇨로 고생했던 고인은 2003년부터 세딸 김초은(중국학 연구가)·초영(성악가)·초진이 살고 있는 미국에 머물러 왔다.남편인 성악가 김형로 전 서울대 음대 교수는 한국전쟁 때 납북돼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빈소는 서울병원에 마련됐다.12일 오전 9시 영락교회 벧엘기도실에서 발인 예배가 거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진건면 영락교회 공원묘지.(02)3410-6918.연합뉴스
  • 그리운 얼굴,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얼굴, 그리운 사람들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던 ‘얼굴’” 글·사진 고은별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 빛 하늘 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 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던 얼굴 우리들의 마음속엔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는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할머니, 아버지, 선생님, 누나, 언니, 오빠, 동생, 어릴 적 친구…. 아아, 어머니. 첫눈처럼 아련하게 떠오르는 하얀 얼굴. 피아노를 치면서 <얼굴> 노래를 불러봅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 애절하게 다가오는 노랫말과 아름다운 멜로디. 이렇게 가슴 아리게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얼굴>의 실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작곡가 신귀복 선생님과 작사가 심봉석 선생님을 만나 <얼굴> 노래가 어떻게 이 세상에 울려 퍼지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들어보았습니다. 고은별 _ 시가 좋고 멜로디가 아름답습니다. 신귀복 _ 작사자가 애인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서 쓴 시입니다. 1967년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동도 중공업고등학교 교무실에서 같은 학교 생물 교사였던 심봉석 선생이 시를 쓰고 제가 작곡했습니다. 곡을 만들고 피아노로 연주하니까 선생님들이 참 좋아하셨어요. 그 당시 제가 KBS 라디오의 ‘노래 고개 세 고개’에서 노래 심사위원으로 있었는데 오용한 프로듀서에게 악보를 주었습니다. 성악가들이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했는데 방송에 나가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3000 통에 가까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고은별 _ 그렇게 많은 편지를 받으셨나요? 신귀복 _ 네, 답장도 일일이 다 써서 보냈습니다. 감정이 없는 노래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요. 노래는 불러서 좋고 들어서 좋은 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노래라는 것이 만들어서 부르라고 있는 것인데 클래식 음악을 하는 많은 음악가들이 한없이 수준을 높게 만들어서 저 산꼭대기에서 대중들에게 올라 오라 하는데 올라갈 수가 없잖아요. 나는 내가 내려가서 데리고 올라간다, 같이 올라가자 하는 마음으로 곡을 써 왔습니다. 고은별 _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신귀복 _ 제가 어려서 안성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 있는 풍금을 그냥 쳐보고 싶었어요. 손으로 눌러보니까 소리가 나지 않더라고요. 앉아서 발판을 누르면서 쳐보니까 그때 소리가 났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눌러보다가 <아리랑>을 치게 되었고 <도라지>를 치게 되고….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혼자 그렇게 풍금을 치면서 조금씩 화음의 원리를 깨닫게 되었고 누가 노래를 부르면 그 자리에서 반주를 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은별 _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신 경험이 많으시죠? 신귀복 _ 밴드 부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교사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지요. 혼자 독학을 해서 열아홉 살에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저는 교육이라는 것이 나이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지요. “ 배우는 것 자체가 교육이 아니라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고 정의한 존 러스킨의 말에 동감합니다. 음악 교육의 목적은 음악의 체험을 통해 아름다운 정서와 인격을 갖추고 교양을 높이는 데 있다고 가르치지만 무엇보다 음악은 쉽고 재미있는 것입니다. 고은별 _ 젊은 나이에 교사자격증을 취득하셨어요. 신귀복 _ 자격증을 받고 나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공군군악대에 들어갔을 때 제가 존경하는 홍난파 선생님의 생가를 방문했는데 그때 나도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고은별 _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 신귀복 _ 아내와 세 딸이 있는데 첫째는 피아노를 하고 둘째는 그림을 그리고 막내는 클라리넷을 전공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성당 성가대에서 부르는 합창곡도 작곡을 했는데 <풍악을 울려라>라는 곡입니다. 고은별 _ 노래를 듣고 있으면 시가 자연스럽게 노래가 된 것 같아요. 심봉석 _ 노랫말과 음악이 서로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노래라는 것이 부르면서 들으면서 생각을 하고 넘어가는 것인데 어려운 말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고 순수한 우리말을 쓰는 것이 좋지요. 시작하는 단어들이 노래를 이끌고 가는 계기를 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은별 _ <얼굴>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심봉석 _ 교육위원회에서 감사가 나와서 그것에 대비해 교무회의를 하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을 정말 오래 하셨습니다. 하신 말씀 또 하시고 해서 굉장히 지루했어요. 그래서 신귀복 선생님께 제가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시지요” 라고 말했고, “그럼 자네는 시를 쓰게” 해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대로 악상이 떠오른 것을 쓰시고 저는 저대로 생각나는 것을 몇 가지를 정리하다가 쓰게 되었어요. 첫 소절은 거의 서로 상관없이 쓰게 된 것 같아요. 뒷부분은 나중에 고쳤지만요. 교무회의가 끝나자마자 신귀복 선생님과 함께 음악실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곡은 그때 거의 완성이 되었는데 가사를 완성시키는 데 보름 정도 걸렸어요. ‘가화(嘉禾)’라고 하는 클래식 음악다방에서 2절의 마지막 소절을 완성했습니다. 고은별 _ 처음에 이 노래가 만들어졌을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줄 예감하셨나요? 심봉석 _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당시 저는 무명이었고 두 사람이 우연히 합작을 해서 노래를 하나 만든 것이지요. 라디오에서 방송해 준 것만도 너무 고마운 일이었는데 방송이 나가자마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고 악보를 보내달라는 부탁의 편지가 많이 왔습니다. 고은별 _ <얼굴>의 주인공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부인이신가요? 심봉석 _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고은별 _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심봉석 _ 김말순입니다. 저하고 대학 동기동창이에요. 덕수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있다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과만 다른데 서클에서 만났어요. 경상도가 고향이죠. 사귀다가 사소한 일로 틀어져서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낼 때 다른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상하게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찾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 같고. <얼굴>을 작사할 당시는 그녀와 헤어져 있었던 시기였고 노랫말을 지을 때 그런 기분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고 그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제 첫사랑인 셈이고 만난 지 9년 만에 결혼하게 되었어요. <얼굴>은 가곡이지만 대중가수들도 많이 불렀습니다. ‘윤연선’이라고 하는 가수가 이 노래를 불러 유명해졌지요. 대학 다닐 때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는데 남자 쪽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했대요.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윤연선 씨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혼자 지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의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 다시 만나 결혼을 했는데 첫사랑 남자의 딸이 아버지와 윤연선 씨의 애틋한 사연을 알게 되어 중매를 서서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얼굴>이라는 아름다운 시와 노래가 잃어버렸던 첫사랑을 찾아준 것일까요? 작곡가와 작사가 두 분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노래에 얽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며 헤어지면서 서로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없다며 상대를 헐뜯는 사람들이 있어 몹시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비록 떠나간 사람이지만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을 빌어주며 사랑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았던 어느 여가수가 오랜 세월을 기다려 잃었던 사랑을 되찾은 이야기는 제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는 마음. 우리 모두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히 노래를 불러봅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도는 얼굴이 있습니다. 아아, 어머니…. ‘박선봉’ 이름 석 자 남기고 돌아가신 그리운 나의 어머니. ※ 작곡가 신귀복 선생님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신 최현순(전 숲속음악원 원장, 피아노 개인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월간 <삶과꿈> 2007.03 구독문의:02-319-3791
  • [Metro] ‘1000원의 행복’ 관람신청 접수

    세종문화회관은 정통 클래식을 내용으로 한 ‘천원의 행복’ 5월 공연의 관람 신청을 받고 있다. 오는 21일 공연에는 지휘자 장윤성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소프라노 박정원, 테너 김영환이 출연한다. 요한스트라우스 오페라 ‘박쥐’의 서곡, 이탈리아 가곡 ‘마티나타’,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지아니 스키키)와 ‘별은 빛나건만’(토스카) 등을 연주한다.5∼7일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www.sejongpac.or,kr)로 접수하면, 컴퓨터 추첨을 통해 관람자를 선정한다. 당첨자는 9일 오후 3시에 발표한다. 공연기획팀 (02)399-1616.
  • [재경부 선정 8개 지역특구 탐방] (8) 경북 영양 고추산업 특구

    [재경부 선정 8개 지역특구 탐방] (8) 경북 영양 고추산업 특구

    경북 ‘영양 고추’가 명품으로 육성된다. 영양군은 3일 청정지역이자 영양 고추 친환경 재배단지인 일월·수비면 일원 57만 2310㎡(17만 3123평)가 ‘고추산업 특구’로 지정됨에 따라 고추 명품화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군은 2011년까지 5년에 걸쳐 모두 351억 1000만원을 투입,▲고추산업 기반시설(181억 3000만원) 확충 ▲영양고추 및 전통문화 체험관광지 조성(93억 4000만원) ▲영양고추 명품 브랜드화(8억 1000만원) ▲토종고추 복원사업(68억 3000만원) 등의 사업을 펼친다. 우선 농가로부터 수매한 생고추를 세척·절단·건조·가공·저장하는 일괄 처리 시스템을 갖춘 일월면 가곡리 고추종합처리장을 증축해 처리용량을 현재 연간 6000t에서 1만t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또 일월산 등지에서 자생하는 각종 산나물과 영양 고추를 원료로 김치를 생산하는 김치공장과 전통장류생산단지를 조성한다. 영양고추의 소비촉진과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영양고추와 연계한 체험관광 상품도 개발한다. 특구지역과 인접한 전통마을인 주실마을과 반딧불이 생태마을 특구(수비면 수하리), 고추박물관이 관광벨트로 이어진다. 특히 고추 체험관광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고추 심기 및 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황토방과 야영장 등 숙박시설과 수질정화 습지 공원, 야영 교육장 등이 함께 들어선다. 군은 또 영양고추 명품 브랜드화 사업을 위해 공동 브랜드 및 CI(이미지 통합)를 개발하고 품질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토종고추 복원사업에 나선다. 지금은 소멸된 고추 재래종인 ‘칠성초’를 복원해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이 고추는 1970년대 후반 다수확을 목적으로 보급된 육종회사의 시판종에 밀려났다. 일월면 일대에서 재배된 칠성초는 과육이 두껍고 색깔이 좋으며 높은 고춧가루 수율(제분율) 등으로 명성이 높았다. 군은 특구사업이 마무리되면 연간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액이 487억원에 달하고 58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양군은 전체 농가의 81%인 3020여가구가 2134㏊에서 5719t의 고추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비타민 A와 C, 캡사이신 함량과 색도가 높고 맛이 뛰어난 영양고추는 전국 단위 각종 농산물 품평대회에서 으뜸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권영택 영양군수는 “특구지정을 계기로 영양의 생명산업인 고추산업을 더욱 육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영양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Seoul In]

    광진구(구청장 정송학) 26일 오전 10시∼오후 5시 지하철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 있는 광진광장에서 7개 자치단체가 참여하는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를 연다. 인제·철원군에서는 감자·황태·산나물 등을 판다. 인제·영광군에서는 굴비 소금 복분자주를, 문경시와 보은군은 사과 친환경쌀 고구마 등을 판다. 보령시는 머드화장품을 내놓았다. 새마을부녀회는 재활용 의류와 저공해 비누 등을 선보였다. 가정복지과 450-1490. 마포구(구청장 신영섭) 성산2동 주민자치센터에 작은 공부방을 개설해 25일 공개한다. 유아방과 다목적실이 효율적으로 이용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열람실로 개조하고,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9시, 토요일은 오전 10시∼오후 4시이다. 성산2동사무소 375-3271∼5.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홍제3동, 홍은1·2동 등의 주민자치센터에서 각각 운영하던 주민건강관리 강좌를 서울여자간호대학과 연계한 ‘홍은권역 주민건강대학’으로 통합 개설했다.6월7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서울여자간호대학 지역간호사업소 김경희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서 대화기술법, 손·발 마사지 등을 강의한다. 주민자치과 330-1046. 동대문구(구청장 홍사립) 주민 민원서비스를 고객의 입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팀별 ‘업무 매뉴얼’을 작성하고 이를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업무 매뉴얼은 기존의 업무편람보다 업무 추진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되 모든 처리를 수요자 위주로 하도록 만들었다. 업무의 세부 내용, 첨부물의 서식 등은 팀장 책임 아래 자율적으로 가감하도록 했다. 기획예산과 2127-4315. 종로구(구청장 김충용) 간선도로 옆에 있는 가로가판대에 공공용 홍보물을 붙이기로 했다. 가판대의 빈 공간에 공익성이 강한 홍보를 하고 무분별한 상업용 광고물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홍보물은 구청이 직접 제작을 하거나 심의를 강화해 규격과 색상, 그림 등을 통일하고 품격을 높이기로 했다. 도시계획과 731-1530. 강북구(구청장 김현풍) 19일 오후 2시30분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제11회 ‘소귀골 음악회’를 연다.4·19민주화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회는 1부는 ‘진혼’을 주제로 구립청소년교향악단과 소프라노 이연화, 베이스바리톤 이혁 등이 출연해 귀에 익은 클래식과 가곡을 들려준다.‘화합’을 주제로 한 2부는 여성타악 퍼포먼스, 가수 권진원·박강성·김수희 등이 나오고 ‘통기타를 사랑하는 모임’ 등이 연주를 선보인다. 강북문화원 999-8109.
  • 서울숲은 ‘문화숲’

    서울숲은 ‘문화숲’

    매월 둘째주 토요일이면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 문화의 선율이 흐른다. 서울시는 18일 시민들이 문화를 접하는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이달부터 10월까지 둘째주 토요일에 ‘자연과 함께하는 문화공연, 서울숲 정기공연’을 무료로 연다고 밝혔다. 첫 정기공연인 4월 음악회는 밤공기가 쌀쌀한 날씨를 감안해 셋째주인 21일에 마련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시민에게 드리는 봄의 교향곡’을 주제로 한 고전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과 ‘봄의 소리’ 왈츠 연주, 테너 김영환과 소프라노 박정원이 함께하는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의 향연 등을 준비했다. 시 관계자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 콘서트나 베를린의 발트뷔네 콘서트처럼 자연 속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15)가객 박효관의 활약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15)가객 박효관의 활약

    ‘공산에 우는 접동 너는 어이 우짓는다. 너도 나와 같이 무슨 이별 하였느냐. 아무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한양 인왕산 필운대의 마지막 주인은 문화관광부에서 지난 2002년 8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가객(歌客) 박효관(朴孝寬·1800∼1880?)이다. 호는 운애(雲崖)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이 일대에서 몇십년 풍류를 즐기다 세상을 떠난 뒤 그가 활동하던 운애산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운애산방은 배화학당이 들어섰던 자리이다. ●대원군이 후원한 당대 가객 박효관의 인적사항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그가 과연 중인 출신인지도 확실치 않다. 유봉학 교수가 ‘공사기고(公私記攷)’를 소개한 글에 의하면, 박영원 대감의 겸인으로 일했던 서리 이윤선이 1863년에 재종매를 혼인시키면서 박효관을 동원했는데 수군(守軍)이라는 직함으로 불렀다. 그렇다면 그가 오군영(五軍營)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악원의 악공들은 노비 출신이지만, 오군영의 세악수(細樂手)들은 노비가 아니다. 오랫동안 연주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했고, 최소한의 한문도 쓸 수 있어야 했다. 그가 가곡(歌曲)의 정통성에 대해 자부심이 높았던 것을 보면, 최소한 중간계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군영 세악수들은 18세기 이래 민간의 가곡 연행(연회연)에 점점 더 깊이 개입해, 군인 봉급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 잔치에 불려나가 연주하고 받는 돈으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장악원 악공들은 고유업무가 있기 때문에, 두가지 일을 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다. ‘만기요람’을 찾아보면 오군영에 배속된 군사들의 급료미는 매삭 9두이고, 세악수는 6두로 되어 있다. 국가에서는 낮은 보수를 주는 대신, 군악 연주 외에 민간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 듯하다. 용호영의 군악대와 이패두가 거지들의 풍류잔치에 억지로 불려나갔다가 행하(출연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4회에서 소개했다. 구포동인(안민영)은 춤을 추고 운애옹(박효관)은 소리한다. 벽강은 고금(鼓琴)하고 천흥손은 피리한다. 정약대·박용근 해금 적(笛) 소리에 화기융농하더라. 박효관의 연행에 참여한 기악연주자들은 대부분 오군영 세악수였다. 신경숙 교수가 ‘고취수군안(鼓吹手軍案)’ 등을 분석해 세악수 명단을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금옥총부’ 92번 시조에 활동모습이 담긴 천흥손·정약대·박용근 등은 오군영 소속의 세악수임이 밝혀졌다. 군안(軍案)에는 세악수의 인적사항에 부(父)를 밝혔는데, 친아버지뿐만 아니라 보호자나 스승 역할을 하는 사람 이름도 썼다. 피리를 전공했던 용호영의 군악수 천흥손이 대금 이귀성·윤의성, 피리 김득완의 부(父)로 올라 있었다. 정형의 세악편성에서 세피리는 두명이 필요했으니, 천흥손은 하나의 악반을 주도하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포동인은 대원군이 안민영에게 내린 호인데, 여든이 된 스승은 노래하고 환갑이 지난 제자는 춤을 추었으며, 후배들은 반주했다. 안민영이 사십년 배웠다고 했으니, 제자의 제자들까지 박효관을 찾아 모인 셈이다. 인왕산하 필운대는 운애선생 은거지라. 풍류재사와 야유 사내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날마다 풍악이요 때마다 술이로다.(‘금옥총부’ 165번) ●운애산방서 승평계와 노인계 주도 그가 필운대에 풍류방을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즐기자, 대원군이 그에게 운애(雲崖)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안민영은 그를 운애선생이라 불렀으며, 풍류재사와 야유 사내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박선생’이라 불렀다. 위항시인들이 시사(詩社)를 형성한 것 같이, 풍류 예인들은 계( )를 만들어 모였다. 안민영은 ‘금옥총부’ 서문에서 그 모임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때 우대(友臺)에 아무개 아무개 같은 여러 노인들이 있었는데, 모두 당시에 이름 있는 호걸지사들이라, 계를 맺어 노인계(老人 )라 하였다. 또 호화부귀자와 유일풍소인(遺逸風騷人)들이 있어 계를 맺고는 승평계(昇平 )라 했는데, 오직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즐기는 게 일이었으니 선생이 바로 그 맹주(盟主)였다.” 안민영은 ‘금옥총부’ 68번에서 “우대의 노인들이 필운대와 삼청동 사이에서 계를 맺었다.”고 분명한 장소까지 밝혔다. 유일풍소인은 세상사를 잊고 시와 노래를 벗삼은 사람이다. 벼슬한 관원은 유일(遺逸)이 될 수 없고, 풍류를 모르면 풍소인(風騷人)이 될 수 없다. 경제적인 여유를 지닌 중간층이 풍류를 즐겼던 모임이 바로 승평계이고, 평생 연주를 즐겼던 원로 음악인들의 모임이 바로 노인계이다. 성무경 선생은 “박효관의 운애산방은 19세기 중후반 가곡 예술의 마지막 보루”라고 표현했다. 가곡은 운애산방을 중심으로 세련된 성악장르로 거듭나기 위해 치열한 자기연마의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러한 결과를 스승 박효관과 제자 안민영이 ‘가곡원류’로 편찬하였다. ●안민영과 편찬한 ‘가곡원류’ 음악에 여러 갈래가 있지만, 박효관과 안민영의 관심은 가곡에 있었다. 문학작품인 시조를 노래하는 방식은 시조창(時調唱)과 가곡창(歌曲唱)이 있다. 시조창은 대개 장고 반주 하나로 부를 수 있고, 장고마저 없으면 무릎 장단만으로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가곡창은 거문고·가야금·피리·대금·해금·장고 등으로 편성되는 관현반주를 갖춰야 하는 전문가 수준의 음악이다. 오랫동안 연습해야 하고, 연창자와 반주자가 호흡도 맞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객을 전문적인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전문적인 가객을 키우려면 우선 가곡의 텍스트를 모은 가보(歌譜)가 정리되고, 스승이 있어야 하며, 가곡을 즐길 줄 아는 후원자가 있어야 했다. 박효관과 안민영은 사십년 넘게 사제지간이었으며, 대원군같이 막강한 후원자를 만나 가곡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10년 섭정을 마치고 2선으로 물러서자 이들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언젠가는 천박한 후원자들에 의해 가곡이 잡스러워질 것을 염려한 것이다. ●전통음악 가곡 보전 박효관이 1876년 안민영과 함께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하면서 덧붙인 발문에 그 사연이 실렸다. “근래 세속의 녹록한 모리배들이 날마다 서로 어울려 더럽고 천한 습속에 동화되고, 한가로운 틈을 타 즐기는 자는 뿌리없이 잡된 노래로 농짓거리와 해괴한 장난질을 해대는데, 귀한 자고 천한 자고 다투어 행하를 던져 준다.(줄임) 내가 정음(正音)이 없어져 가는 것을 보며 저절로 탄식이 나와, 노래들을 대략 뽑아서 가보(歌譜) 한권을 만들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정음(正音) 정가(正歌)의식을 밝힌 것이 아니라, 창작으로도 실천했다. 안민영은 사설시조도 많이 지었는데, 박효관이 ‘가곡원류’에 자신의 작품으로 평시조 15수만 실은 것은 정음지향적 시가관과 관련이 있다. 님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실솔(·귀뚜라미)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사설시조는 듣기 좋아도 외우기는 힘든데, 훌륭한 평시조는 저절로 외워진다. 박효관의 시조는 당시에 널리 외워졌다. 위 시조는 고교 교과서에 실려 지금도 널리 외워지고 있다. 님 그리다 죽으면 귀뚜라미라도 되어 기나긴 가을 밤 님의 방에 들어가 못다 한 사랑노래를 부르겠다고 구구절절이 사랑을 고백할 정도로, 그의 시조는 양반 사대부의 시조에 비해 직설적이다. 고종의 등극과 장수를 노래한 송축류, 효와 충의 윤리가 무너지는 세태에 대한 경계, 애정과 풍류, 인생무상, 별리의 슬픔 등으로 주제가 다양하다. 삼대 가집으로는 ‘청구영언’과 ‘해동가요’ ‘가곡원류’를 든다. 가곡원류는 다른 가집들과 달리, 구절의 고저와 장단의 점수를 매화점으로 하나하나 기록해 실제로 부르기 쉽도록 했다. 남창 665수, 여창 191수, 합계 856수를 실었는데, 곡조에 따라 30항목으로 나눠 편찬하였다. 몇 곡조는 존쟈즌한닙, 듕허리드는쟈즌한닙 등의 우리말로 곡조를 풀어써, 가객들이 찾아보기도 편했다. 그랬기에 가장 후대에 나왔으면서도 10여종의 이본이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어 신문학과 신음악이 들어오면서 이 책은 전통음악의 총결산 보고서가 되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만능 엔터테이너 조영남(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만능 엔터테이너 조영남(1)

    가수인 동시에 MC 그리고 화가,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가수 조영남(62). 스스로 ‘변변한 히트곡 하나 없는 가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의외로 히트곡이 많은 가수다. 가수로서 수명 또한 길다.1966년, 서울대 음대 1학년 때 첫 음반 취입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도 여전히 마이크 앞에 서고 있을 만큼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심지어 군 복무 3년 동안에도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는 특혜까지 누렸다. ‘보리밭’ ‘마지막 편지’ ‘이일병과 이쁜이’ ‘불 꺼진 창’을 비롯해 ‘동해의 태양’ ‘옛 생각’ 등이 모두 이때 취입한 노래들이다.1973년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하던 8년간의 체류기간 동안에도 틈틈이 귀국해 음반 취입은 물론 귀국공연을 수시로 가졌기 때문에 긴 외유에도 불구하고 가수로서의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제비’ ‘사랑이란’ 등을 이때 발표했다. 방송 진행자로도 여전히 바쁜 그는 가수로서 트로트와 록은 물론 팝과 옛 노래, 민요나 가스펠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이를테면 ‘크로스 오버 맨’인 셈. 또한 ‘애드리브의 귀재’이기도 하다. 원작곡자 입장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새삼 궁금할 정도로 무대마다 노래를 제각각 다르게 구사한다. 심지어 민요를 재즈로, 또 트로트를 타령조로, 심지어 동요를 솔로 변화시킨다. 때로는 같은 노래를 저렇게 부를 수도 있구나 싶어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드는데 특히 ‘최진사댁 셋째 딸’ ‘물레방아 인생’ ‘내 고향 충청도’ 등은 번안곡임에도 우리 노래보다 더 우리 노래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 정도다. 사회 통념을 초월한 듯 보이는 그의 돌발 언행과 돌출 행동으로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탓에 인터넷에서는 팬클럽과 동시에 안티클럽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조영남씨는 1968년, 번안곡 ‘딜라일라’로 처음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본인 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2년 전인 1966년, 그의 목소리를 담은 첫 음반이 발표됐다. 서울대 음대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고철(高哲)’이라는 예명을 쓰며 작사가로도 활동을 시작했지만 당시 자신의 노래가 음반으로까지 발매된 것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라 했다. “학비 때문에 미8군 무대에 섰지요. 전공인 성악과 팝 사이에서, 순수 음악과 8군 쇼의 틈바구니에서 고민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이 무렵 무대에 함께 섰던 여가수 박일양씨 소개로 작곡가 박선길씨를 만나 아르바이트 삼아 번안곡 몇개를 개사해 건네주었고 또 테스트 삼아 마이크 앞에서 몇곡 불렀던 것 같아요.” 여기에 등장하는 박선길-박일양 부부는 1990년대 ‘오늘 같은 밤이면’의 주인공인 가수 박정운씨의 부모들이다. 성악과 학생이었지만 ‘오페라나 가곡은 재미없어’ 팝을 더 좋아했다는 그는 성악을 기초로 한 가창력으로 1968년, 번안곡 ‘딜라일라’를 비롯해 ‘내 생애 단 한번만’ ‘고향의 푸른 잔디’ ‘물레방아 인생’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인기가수로 급부상한다. 아울러 Bus Stop,Our Town(서울대), 돈키호테(실험극장)의 무대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내 생애 단 한번만’ ‘푸른 사과’ 등에 출연함과 동시에 TV 드라마 ‘너무하셨어’에서도 열연, 탤런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69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가졌던 리사이틀 무대에서 그는 자유분방함과 다재다능한 실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에는 무대에서 안경을 착용하는 걸 금기시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조영남은 큼지막한 검은 뿔테 안경을 보란 듯이 쓰고 나와 넥타이마저 풀어헤친 채 무대에서 이탈리아 칸초네 ‘카사 비안카(Casa Bianca)’를 ‘하얀 집’이란 제목으로 즉흥적 가사로 바꿔 부르는데 가히 노랫말이 압권이다. ‘시커먼 하얀 집/어쨌든 하얀 집/누가 뭐래도 하얀 집/좌우지간 하얀 집/불이 나면 빨간 집/꺼지면 까만 집/빌려주면 전셋집/팔면은 남의 집/(중략)/닉슨이 사는 The White House.’ 처음엔 지나치게 장난스러운 가사로 시작되지만 끝까지 듣고 나면 그가 지칭하는 ‘하얀 집’은 다름 아닌 당시 ‘미 닉슨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이었다는 익살로 마무리한다. 일종의 풍자송이었던 셈이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4) 서예가 마성린의 일생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4) 서예가 마성린의 일생

    임준원과 홍세태, 유찬홍 등의 낙사(洛社) 동인들 이후에도 인왕산과 필운대는 여전히 중인문화의 중심지였다. 위항시인들이 대개 한양성의 서쪽 인왕산에 많이 모여 서사(西社)라는 이름을 썼지만,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막연한 지칭이다. 최윤창이 ‘이른 봄 서사에서 두보 시에 차운하여(早春西社次杜詩韻)’라는 시에서 “백사에 한가한 사람들이 있어/술을 가지고 와서 안부를 묻네.”라고 한 것처럼 백사(白社)라는 이름을 즐겨 썼다. 최윤창이 지은 시 ‘서사에서 주인 엄숙일에게 지어주다(西社贈主人嚴叔一)’라는 시를 보면, 명필 엄한붕의 아들인 엄계흥의 집에서 한동안 서사가 모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 그 집터는 없어지고, 필운대 옆의 누상동 활터에 엄한붕이 ‘백호정(白虎亭)´이라고 쓴 글씨만 바위에 새겨져 있다. ●중인의 일대기 평생우락총록(平生憂樂總錄) 백사의 동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자 모임의 장소가 자연히 김성달의 함취원(涵翠園)으로 바뀌면서 구로회(九老會)로 발전하였다. 마성린(馬聖麟·1727∼1798)과 최윤창·김순간을 중심으로 한 이 모임도 주로 인왕산에서 모였다. 마성린은 대대로 호조와 내수사의 아전을 해오던 집안에 태어나, 넉넉한 살림으로 위항시인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의 문집인 ‘안화당사집(安和堂私集)’ 뒷부분에는 그 자신이 엮은 연보 ‘평생우락총록(平生憂樂總錄)’이 실려 있어 보기 드물게 위항시인의 생장지와 교육, 교유관계, 모임터를 찾아볼 수 있다. 마성린은 1727년 3월28일 서울 황화방 대정동(大貞洞·지금의 중구 정동) 외가에서 태어나, 외가와 두석동 본가 및 다방동 외종가를 다니면서 자랐다.11세에 동네 친구인 김순간·정택주 등과 함께 인왕산 누각동 김첨지 집에서 글을 배웠다.12세에는 김팽령·원덕홍과 함께 두석동 고동지 집에서 글을 읽었다. 이즈음 문덕겸·최윤벽·최윤창·김순간·김봉현 등의 중인 자제들과 더불어 글을 지으며 놀았다. 이들은 평생 글친구가 되었으며, 나중에 백사와 구로회의 동인이 되었다. 15세에는 첨지 한성만의 여섯째 딸과 혼인한 뒤에 육조동 어귀에 있는 친구 김봉현의 집에서 함께 글을 읽었다.16세에는 유세통 형제와 더불어 유괴정사(柳槐精舍)에서 글씨 공부를 했다. 유괴정사는 필운대 아래 적취대(積翠臺) 동쪽, 첨지 박영이 살던 곳이다. 위항의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활동을 하던 곳으로 마성린은 어린 나이에 선배들과 함께 어울리던 기억을 이렇게 기록했다. 매번 꽃이 피고 꾀꼴새가 우는 날이거나 국화가 피는 중양절이면 이 일대의 시인·묵객·금우(琴友)·가옹(歌翁)들이 이곳에 모여 거문고를 뜯고 피리를 불거나, 시를 짓고 글씨를 썼다. 그중에서도 여러 노장들 즉 동지 엄한붕, 사알 나석중, 선생 임성원, 별장 이성봉, 동지 문기중, 동지 송규징, 첨정 김성진, 동지 홍우택, 첨지 김우규, 주부 문한규, 첨지 이덕만, 동지 고시걸·홍우필·오만진·김효갑 등이 매번 시회(詩會) 때마다 나에게 시초(詩草)를 쓰게 하였다. ●겸재 정선에 산수화 배워 선배들이 흥겹게 시를 읊으면, 나이 어린 마성린은 옆에서 받아 썼다. 십여년 글씨공부 끝에 마성린은 명필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중인 예술가들은 꽃이 피거나 꾀꼴새가 울거나 국화가 피면 그 핑계로 모여 시를 지었다. 수십명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제목으로 시를 짓다 보니 아름다운 자연과 즐거운 인생을 노래하는 시들이 수백편씩 쏟아지게 되었다. 필운대풍월이라는 말이 천편일률적인 유흥시라는 뜻으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직을 통해 안정된 수입을 얻은 데다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는 신분적 제한 때문에 유흥에 빠지기 쉬웠던 것이다. 그는 18세에는 필운동으로 이사했으며, 인왕산 언저리에 살던 겸재 정선의 문하에 드나들며 산수화를 배웠다.19세에는 한의학 서적을 보면서 몸조리를 하는 틈틈이 필운동 어귀에 있는 처갓집 노조헌(老棗軒)에서 글과 글씨로 나날을 보냈다. 이때 유세통 형제와 김순간·최윤창·최윤벽 등 여러 친구들이 날마다 이 집에 모여서 시를 지으며 노닐었는데 이 모임이 7∼8년 계속되었다. 24세에는 봄과 여름 동안 여러 친구들과 더불어 인왕산의 명승지인 곡성(曲城)·갓바위·필운대·적취대 등을 찾아다니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다.43세에는 필운대 아래 북동으로 이사하였다. 집안에 정원이 있었으며, 정원 아래에는 초가 삼간이 있었다. 안화당(安和堂)이라고 이름 지은 이 초당에는 시인·가객(歌客)·화사(畵師)·서동(書童)들이 날마다 모여들었다. 48세에는 인왕산의 청풍계·도화동·무계동에서 노닐었으며,49세에는 누각동에 있는 직장 권군겸의 집인 만향각이나 옥류동에서 모였다. 51세에는 신윤복의 아버지인 신한평이나 김홍도 같은 화가들과 함께 중부동에 살던 강희언의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거나 화제(畵題)를 써주었다. ●시·노래·글씨·그림의 유산 ‘청유첩’ 그는 52세 되는 1778년 9월14일에 이효원·최윤창과 함께 김순간의 집인 시한재(是閑齋)에 모여 국화꽃을 구경하며 시를 지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문고를 타는 이휘선과 가객 김시경, 화원 윤도행이 약속도 없이 찾아오자 밤새도록 촛불을 밝혀 놓고 시와 노래, 글씨와 그림을 즐겼다. 이날의 모임을 기록한 시첩이 바로 ‘청유첩(淸遊帖)’이다. 마성린은 그 모임을 이렇게 그렸다. 주인옹(김순간)은 왼쪽에 그림, 오른쪽에 글씨를 걸고 중당에 앉았는데, 맛있는 안주와 술을 차리고 손님들에게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마루에 올라 안부 인사를 마친 뒤에 술잔을 잡고 좌우를 살펴보니, 대나무 침상 부들자리 위에 두 사람이 앉아서 바둑을 두는데, 바둑돌을 놓는 소리가 똑똑 들렸다. 왼쪽에 용모가 단정한 사람은 이효원이고, 오른쪽에 점잖게 차려입은 사람은 최윤창이다. 술동이 앞에 한 사람이 있는데, 떠돌아 다니는 분위기로 걱정스럽게 앉아서 춤추는 듯한 손으로 거문고를 탔다. 거문고 소리가 고요하고도 맑았는데, 은연 중에 높은 하늘 신선들의 패옥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이 바로 세상에 이름난 금객(琴客) 이휘선이다. 그 곁에 한 소년이 또한 거문고를 껴안고 마주 앉아, 그 곡조와 어울리게 함께 연주하였다. 소리소리 가락가락이 손 가는 대로 서로 어울렸다. 길고 짧고 높고 낮은 가락이 마치 둘로 쪼갠 대쪽이 하나로 합치듯 하였으니, 묘한 솜씨가 아니라면 어찌 이같이 할 수 있으랴. 이 사람이 바로 전 사알(司謁) 지대원이다. ●늘그막에 소장품 팔아 위항시인 후원 두 거문고 사이에 한 사람이 의젓하게 앉아서 신나게 무릎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가 어울려서 그 소리가 구름 끝까지 꿰뚫었으니,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손발이 춤추게 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당시에 노래를 가장 잘 부르던 김시경이다. 창가에서는 한 사람이 호탕하고 노숙한 자세로 술에 몹시 취해 상에 기대어 앉았는데, 거문고 가락과 가곡을 평론하던 이 사람은 전회(典會) 유천수였다. 책상 위에 붓과 벼루를 마련하고 그 곁에다 한 폭의 커다란 종이를 펼친 채, 하얀 얼굴의 소년이 베옷에 가죽띠 차림으로 붓을 쥐었다. 이 자리의 모습을 그리는 이 사람은 윤숙관이다. 사알은 액정서의 정6품 잡직인데, 왕의 명령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회는 내수사의 종7품 관직으로 수입이 많은 경아전이다. 중인 신분의 시인·음악가·미술가·서예가들의 이 모임은 그뒤에도 봄가을마다 시한재에서 자주 모였다. 이듬해인 1779년 3월에는 필운대 아래에 있는 오씨의 화원에서 모였다. 이날의 모임도 역시 청유첩으로 엮어졌다.(필운대 화원 이야기는 9회에 소개) 마성린은 58세에 다시 승문원 서리로 들어갔다. 늘그막에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져서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명필들의 작품을 재상 집안에 팔아넘겼다. 가난한 위항시인들의 후원자 노릇을 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옥류동에 사는 천수경이 1791년에 위항시인 70∼80명을 불러 왕희지의 난정고사(蘭亭故事)를 본받아 풍류 모임을 열자, 마성린도 초청을 받고 나아가 시축에 시를 써주었다. 이때부터 최윤창·김순간 등 서사(백사) 동인들도 자주 옥류동 송석원으로 찾아가 후배들과 어울리면서 위항시사의 주축이 서사에서 옥계사 쪽으로 넘어갔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다음 주에는 대원군시대 가객으로 필운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박효관 이야기를 소개한다.
  • [문화마당] 전통예술의 힘/한명희 예술원 회원

    지난 1990년대 말의 일이었다. 프랑스 아비뇽축제의 총감독 다르시에가 당시 필자가 책임자로 있던 국립국악원장 방을 찾아왔다. 아비뇽축제기간에 한국의 전통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그 대상을 물색하러 온 것이다. 접견실에서 전통음악과 춤에 대한 몇몇 비디오테이프를 보여 줬다. 고백하건대 비디오를 보여 주는 당시 필자의 심중은 겸연쩍은 듯 당당하지가 못했었다. 현대문명의 주류이자 첨병임을 자처하는 저들의 눈에 한국의 전통예술은 역시 한참 후진 변방의 예술로 비쳐질 게 뻔하다는 통상적 예측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적어도 그때 필자가 느낀 충격은 그랬다. 전통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전통예술의 진가를 저들의 시각처럼 바라보는 심미안이나 가치의 준거를 갖추지 못한 외눈박이 세상보기가 우선 부끄러워 충격이었다. 저들의 시각을 통해서나마 그 동안 일상성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던 전통예술의 진수를 전광석화처럼 ‘돈오(頓悟)’할 수 있었던 게 더 큰 놀라움이었다. 당시 다르시에는 이매방의 승무를 보며, 이것이 어떻게 ‘전통’이냐고 놀라워하며, 머스 커닝엄(미국의 전위무용가로 백남준과도 활동)의 춤을 능가하는 현대성이 있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식상하리만큼 천편일률로 접해 그 진가조차 실감하지 못하는 승무를 두고, 저들은 첨단적 전위무용을 능가하는 현대성을 느끼다니! 지난해 연말이었다. 나는 짐짓 판소리와 전통가곡만을 들고 파리공연을 추진했다. 시조시 한 수 부르는데 10분이 소요될 정도로 느리기 짝이 없는 음악, 그래서 정상적(?)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외면하는 전통가곡을 가지고 파리공연을 기획하다니. 그것도 전광판의 자막 해설은 물론 무대에서 흔히 쓰는 마이크도 일절 배제한 채. 그때 관계자 대부분이 우려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다르시에와 같은 예를 수시로 겪으면서 내심 확신하는 게 있었다. 우리가 우리 것을 보는 감각과 남이 우리 것을 보는 감각은 현저하게 다를 수 있다는 평범한 믿음이 곧 그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통가곡과 판소리, 두 가지 레퍼토리만으로 단순하게 꾸민 음악회는 기메박물관 400석을 이틀 모두 만석으로 매진시켰으며, 르몽드 문화면은 이 공연을 중심으로 한국예술 전반을 전면으로 다뤘다. 결론은 자명하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인 전통문화의 육성에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정책을 결집시켜야 마땅하다. 분석적 서구문화의 여파로 종합예술적 성격이 짙은 우리의 전통은 갈기갈기 분화되어 각자의 장르 속에 편입되어 왜소해졌다. 전통음악만 해도 서양 음악과 함께 음악이라는 장르로 간주되며, 그 입지가 좁아졌다.‘전통’의 넓이와 무게보다도 장르개념이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실효성 있는 문화 계발정책을 위해서는 장르개념에 앞서 전통예술 대 현대예술이라는 이분법적 발상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전통의 범주 속에도 음악, 미술, 무용 등이 있고, 서구문화와 혼재된 현대 속에도 각종 예술이 있다는 대칭적 경계선을 분명히 인지하는 일이 곧 그것이다. 문화발전의 대원칙은 온고(溫故)하고 법고(法古)해서 창신(創新)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애정어린 온고는 하지 않은 채 지신(知新)만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거목으로 자랄 문화나무의 실뿌리가 내리지 못했다. 때마침 문화지형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전통문화를 비중 있게 키우려는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의 문화정책이 그러하고, 국회 강혜숙 의원이 앞장선 전통문화진흥법의 발의가 곧 그것이다. 역시 문화현장에 밝은 현역들이기에 문화발전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문화중흥을 고대하는 국민의 염원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한명희 예술원 회원
  • 세상으로 唱을 열다

    민주화운동 시대에만 재야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21세기 국악계에도 재야인사들이 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흐름을 타기보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법통을 올곧게 지켜가면서 제 갈길을 가는 명인·명창들이다.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일컬어지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라는 ‘제도권’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음악사를 쓰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이런 ‘거물급 재야명창’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 주인공은 바로 판소리의 박초선과 시조의 서현숙, 경서도소리의 남혜숙. 이들은 3월15∼1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3인의 가인(歌人)’에서 만날 수 있다. 재능을 묻고 살아온 명창들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여 우리 소리의 다양성을 보여주자는 것이 국립국악원의 기획 취지이다. 이른바 주류 소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같고도 다른 멋과 깊이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세 사람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질 두 차례 공연에서 각자의 장기를 펼쳐놓게 된다. 특히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정선아리랑을 판소리, 경서도소리, 시조의 세 명인이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박초선(76)을 재야인사로 분류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다. ‘애기명창’으로 자라 김소희, 박록주, 김여란 등 당대 명창에게 두루 배운 뒤 탁월한 기량으로 소리판을 주름잡은 대표적 명창의 한 사람이기 때문. 그는 1960년대 완창 판소리를 음반으로 내자는 제의에 “전통예술을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며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국극이 관객을 불러모을 때도 “판소리 대중화에는 기여할 수 있겠지만, 쉽게 소리를 하는 탓에 목 쓰임새와 타는 길이 변질된다.”고 주장해 논쟁을 불렀다. “소리꾼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면서 “권력주변을 기웃거리며 아부하지 말고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후배들을 다그친다. 그는 정정렬제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아닌 보유자 후보로 22년을 보내고 있다. 남혜숙(65)은 경기민요의 전설적인 명창 김옥심의 제자이다. 김옥심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에서 탈락한 뒤 제자들의 ‘줄서기’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다른 욕심 없이 그저 선생님의 소리가 좋아 배웠을 뿐인데 왜 떠나겠느냐.”며 곁을 지켰다. 남혜숙은 크고 높은 소리를 배에서 바로 위로 뽑아내는 덜미청과 비단실을 뽑아내듯 가느다란 속청이 뛰어나고 방울목으로 소리를 굴려서 내는 김옥심의 기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남혜숙의 경서도잡가와 민요가 중요성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현숙(67)은 임춘앵 일행의 여성국극 ‘열녀화’를 보고 국악에 입문한 뒤 23세에 마산 전국시조경창대회 명인부에서 1등을 차지했다. 같은 해 전국의 시조경창대회를 모조리 휩쓸다시피 했다. 이듬해에는 스승인 유종구와 가곡·시조를 담은 음반을 펴냈다. 하지만 단시간에 명창의 반열에 오른 것이 부담이었는지, 한동안 경남 남해에서 두문불출했다.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1985년에는 부여백제문화제 시조가곡 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정경태와 유종구를 거쳐 서현숙에게 이어진 향제 시조는 아기자기한 맛이 매력이다. 서현숙의 타고난 성음은 편안하고 단아함을 느끼게 한다. 공연시작은 오후 7시30분.1만∼2만원.(02)580-3333.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변역(變域)/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연전에 문화계 인사 몇몇과 저녁 자리를 가졌다. 신인가수 한 명을 초대했다. 목소리가 시원했다. 그는 앙코르곡으로 가곡 ‘향수’를 불렀다.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의 음역을 넘나들었다.1인2역의 ‘크로스오버’였다. 재주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사는 그러나 “목을 상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세계 3테너 가운데 배역 소화의 폭이 가장 크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로 치면 로버트 드 니로나 앨릭 기니스에 비유된다고 할까. 그가 바리톤으로 무대에 선다고 외신이 전했다.66의 나이에, 새로운 실험이 놀랍다. 국내에도 소프라노를 넘나드는 메조소프라노 가수가 있다. 그녀는 하지만 메조소프라노에 더 집착한다. 귀엽게 토를 단다.“오페라에서 주연(소프라노)은 잘 죽는데, 조연은 안 그래도 되잖아요.”메조소프라노가 만만하다는 뜻일 게다. 프로답다. 신세대 노래 한 곡을 배우는 ‘넘나들기’도 부담스러운 범인으로선, 상상조차 어려운 경이로움이 아닐 수 없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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