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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의 ‘총리 1년 11개월’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1년 11개월간의 직무를 마치고 오는 11일 자민련으로 돌아간다. 김총리는 국민회의-자민련 연합정권의 공동운영자로서 총리직에 올랐다.두개의 야당이 연합해 정권을 획득,유지해온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분열과투쟁으로 얼룩진 우리 정당사에서 공동정권은 성립 자체로서 정치사 발전에기여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실세총리로 불렸지만 김총리는 공동정권의 지분권을 문서에 약속한대로 행사하지는 않았다.그는 평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모시는’ 자세로 총리직을 수행했다.매주 화요일 주례보고를 하러 가기 앞서 실업률 통계와 지원예산 등의 구체적 수치까지 꼼꼼히 챙기는 모습에 총리실 직원들이 송구스러워 하기도 했다.국무조정실이 행정규제 50% 철폐라는 난제를 달성한 것은 김총리가 실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직원들은 말한다. 일부에서 ‘외유 총리’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이집트와 이스라엘,남아프리카공화국,남미 등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지역을 돌며 착실하게 국익을 다졌다.특히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역할을 분담해 한·일간의 신뢰관계를 돈독하게 한 것은 ‘정상외교의 극치’라고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평가했다. 그러나 김총리는 자민련의 대주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대통령과 긴장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지난해 7월 내각제 연내 개헌을 포기하는 과정에서는 김총리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양보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이에 앞서 내각제와 관련해 김총리의 심기를 건드린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과 설훈(薛勳)기조실장 등 국민회의 주요 당직자들이 줄줄이 사퇴했다. 불만족스러운 한·일 어업협상 때문에 물러난 김선길(金善吉)해양부장관의후임에 정상천(鄭相千)의원을 임명하거나,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문화관광부가 흡수하기로 했던 공보실을 국정홍보처로 확대한 것,국민연금을 전국민에게 확대하는 과정에서 업무를 장악하지 못한 김모임(金慕妊)전복지부장관을끝까지 두둔한 일 등은 자민련 출신인사들을 배려하기 위한 김총리의 불합리한 ‘몽니’로 기록될 것 같다.이와 함께 김총리는 옷로비 사건 등으로김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어해주는 ‘방탄총리’의역할도 불충분했다고 국민회의측에서는 불만을 갖고 있다. 이따금씩 불협화음이 표출되는 가운데서도 김대통령과 김총리의 신뢰관계를 확고하게 해준 요인 하나는 정보의 공유였다고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설명했다.국가정보원의 이종찬(李鍾贊)·천용택(千容宅)원장은 한달에 두번씩 김총리에게 때로는 기대이상의 고급정보를 전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국무조정실과 비서실에서는 김총리를 역대 최고의 총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는다.그러나 김총리의 본업은 행정이 아니라 정치다.김총리는 올해초 ‘양양천양(洋洋天壤) 유유고금(悠悠古今)’이라는 휘호를 썼다.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이같은 김총리의 선문답식 정치가 계속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이도운기자 * 김종필총리 일지 ●98년2월25일 총리 지명 ●8월17일 총리 인준 ●11월28∼30일 한·일 각료간담회 참석(가고시마) ●99년2월2∼12일 이집트·이스라엘·인도 순방 ●6월14∼25일 남아공·포르투갈·프랑스 순방 ●7월21일 내각제 연내개헌 유보 발표 ●8월13일 한나라당이 제출한 총리 해임안,투표 불성립으로 폐기 ●10월23∼24일 한·일 각료간담회 참석(제주도) ●12월7∼21일 아르헨티나·브라질 방문 ●12월19일 LA기자회견에서 합당 불가 발표 ●2000년 1월7일 후임총리에 박태준 자민련 총재 결정 ●1월11일 자민련 복귀
  • [의열 독립투쟁](7) 백정기 의사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은 한민족의 민족해방운동 방법론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투쟁방략 중 하나였다.그러나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백정기(白貞基·1896∼1934) 의사는 일찍이 무정부주의사상(아나키즘)을 수용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선각자였다. 일제하 한국인 무정부주의자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체제는 물론,소수의 특권계급(공산당 등)이나 일당독재,약탈적 경제제도,사회적 불평등,노예적 문화·사상 등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였다.따라서 이런 한국인들의 무정부주의운동은 독립운동의 주체가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이라고 설파하고,민중이주체가 된 암살·파괴·폭동 등 폭력혁명론적 투쟁방법론을 제창한 사실은주목된다.일제에 대항할만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조직적 기반 등이 별로 없는 식민지의 민중입장에서 자신의 희생을 무릅쓴 의·열투쟁은 오히려 정당한수단이 되는 것이다.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같은 곳에서 윤 의사와 거의 동시에일제 침략세력을 응징코자 한 영걸이 있었으니,그가 바로 백정기 의사이다.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백의사는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공원 출입증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도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백의사는 1896년 1월(음력)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본관은 수원으로 뒷날 호를 구파(鷗波)라 하여 ‘백구파’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고 활달하여 14세 전후에는 사서삼경에 통달할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또 신학문도 배워 정치·경제·사상사에 대한 식견을 갖추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서울을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의 진전상황을 목격하고 고향의 3·1운동을 주도하였다.이 해 8월 동지 4명과 함께 상경,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일제기관의 파괴를 꾀했으나,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 펑톈(奉天,현 瀋陽)으로 망명했다.이곳에서 후일 ‘육삼정 의거’에 같이 참여하게 되는 동지 이강훈(李康勳·전 광복회장)을 만났다. 1920년 겨울부터 1923년 후반기까지는 군자금 조달과 주요 기관·시설파괴등을 목적으로 국내와 일본 도쿄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1923년 말 우여곡절 끝에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간 백 의사는 그곳에서 신채호(申采浩)·이회영(李會榮)·김창숙(金昌淑) 등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큰 영향을 받았다.특히 이때 이들과 교유하면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그리하여 1924년 4월 이회영·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奎)·정화암(鄭華岩)·유자명(柳子明)등과 함께 재중 한인 최초의 무정부주의 조직 ‘재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게 된다.이 연맹은 중국·일본·대만·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참여한 조직이었다. 1930년 4월에는 유자명·정화암 등과 함께 역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조직했으며 그해 10월말 정화암 등과만주로 건너가 ‘한족총연합회’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특히 백 의사는 이곳에서 일부독립운동가들의 민중 억압을 비판하는연극을 공연하여 재만 한인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지병이 악화로 1931년 5월경 상하이로 돌아온 의사는 몸을 요양하는 한편,영국인 전차회사의 매표원으로 일하며 일정한 직업이 없이 독립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동지들을 부양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평소의 소신을 펼칠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하고 있던 백 의사는 마침 일본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가 항일투쟁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중국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有吉明)에게 4천만 엔(圓)이란 거액을 지원,중국정부의 고관들을 매수하기 위해 상하이의‘육삼정(六三亭)’이라는 요리집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백 의사를 비롯해 정화암·이강훈·원심창(元心昌)등 10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은 1933년 3월5일 상하이에 있는 백 의사의 아파트에 모여 거사를 논의했다.그런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의거에 나서겠다고 해 제비뽑기로 주동자를 뽑게 되었다.추첨결과 백정기와 이강훈이 결정되자 일본에서 건너온 무정부주의자 원심창도 동행을 자청,최종 3인이 선정되었다. 마침내 운명의 1933년 3월 17일.중국인 동지 왕야차오(王亞樵)로부터 입수한 권총과 수류탄,고성능 폭탄을 품에 간직한 백정기와 이강훈 등은 밤 8시경 육삼정 건너편 송강춘(松江春)이란 음식점에서 아리요시 등이 회합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의거를 눈앞에 둔 순간 미리 거사정보를 입수하고 대비하고 있던 일본·중국 관헌에게 세 사람 모두 붙잡혀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육삼정 의거’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거사 직후 ‘상하이시보(上海時報)’를 비롯해 중국 신문은 물론 국내의 주요신문들도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였다. 현장에서 피체된 백 의사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사하야(諫早)감옥에서 복역중 1934년 6월 5일 영양실조와 병고로향년 39세로 순국하였다.백 의사의 유해는 해방 이듬해 김구 선생의 지시로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다.그리고 1963년 3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장세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 운동사硏 연구원‘文博 *‘육삼정 의거' 나머지 2人은 ‘육삼정 의거’의 주역 3인 중 나머지 두 동지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우선 두 동지 가운데 청뢰(靑雷) 이강훈(李康勳) 선생은 아직 생존해 있는데 생존 애국지사 가운데 최고령자이다. 이 선생은 올해 96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애국선열 관련 행사에는 빠지지않고 참석하고 있다. 금년 백범 50주기 추도식에서도 자필로 쓴 추도문을 낭독했다.젊어서 백야김좌진(金佐鎭)장군을 곁에서 모셨으며 백 의사와 함께 체포된 후 15년형을선고받고 일본감옥에서 복역중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일본 현지에서 백의사등 3의사의 유해 봉환에 앞장섰으며 60년까지 재일거류민단에서 간부로 활동했다. 4·19혁명후 귀국해서는 혁신계 인사들과 함께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60년대말부터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 편찬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자서전 ‘민족해방운동과 나’를 비롯,독립운동 관련 저서도 여러권 남겼다.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과 광복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원심창(元心昌,일명 元勳) 선생 역시 백 의사와 같이 체포되어 무기징역을언도받고 복역중 8·15해방을 맞아 투옥 22년만에 일본 가고시마형무소에서석방됐다. 해방후 민단(民團)창립에 참가,11·12대 중앙단장을 지냈다.71년 7월 4일 일본에서 타계후 ‘의사’로 추존돼 재일한국인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두 사람 모두 77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백정기 의사 유족근황과 추모사업 백정기 의사는 의거 당시 기혼자였으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순국했다.현재 백 의사의 유족으로 등록된 백계현(白械鉉·65)씨는 백 의사의 동생 백진수(白珍守·46년 작고)씨의 아들로 백 의사에게 양자로 입양된 사람이다.백의사의 동생 진수씨도 국내 항일 공적으로 지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백 의사의 양자 계현씨는 한 때 공직생활과 개인사업을 하였으며 광복회 사무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백의사 추모사업은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주로 추진되고 있다.정읍시는 수년전부터 시 예산으로 백 의사의 사당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왔으나 IMF사태 이후 자금난으로 모두 중단된 실정이다.현재 정읍에는 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회장 朴在福·전 정읍시의회의장)가 구성돼 추모사업을 해오고 있으며매년 4월 13일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서 공동추모제가 열리고 있다.기념물로는 58년 전북도민의 성금으로 정읍에 세워진 ‘순국기념비’와 독립기념관경내의 ‘어록비’ 등이 있다. 정운현기자
  • 태풍 오늘 서귀포 영향…중부지방도 30㎜ 비

    일본 규슈섬 남서쪽 해상에서 북상중이던 열대성저기압(TD)이 16일 오전 제17호 태풍으로 발달하면서 17일 제주와 남해안 지방에 80㎜이상의 비를 뿌릴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16일 “태풍은 일본 규슈섬 가고시마 남서쪽 약 280㎞ 해상에서시속 24㎞의 속도로 북서진중이며 17일 오전 9시쯤 서귀포 남서쪽 190㎞ 해상까지 진출하겠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17일에는 전국이 태풍의 영향권에들면서 강한 바람과 함께 제주도와 남부지방은 20∼80㎜,중부지방에는 5∼30㎜이상의 비를 뿌릴 전망이다. 조현석기자 hyun68@
  • 金총리 訪日 첫날 표정

    [도쿄 이도운특파원]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1일 ‘가까운 나라’ 일본방문길에 올랐다.지난해 11월 가고시마(鹿兒島)에서 열린 한·일 각료간담회에 참석한 뒤 10개월 만이다.김 총리는 이번 방문에서도 경호와 의전면에서국가원수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있다. 오전 11시10분에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한 김 총리는 동포들과의 오찬부터 시작했다.김 총리는 “동포들이 보여준 눈물겨운 정성이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재일동포의 일본 지방자치단체 참정권 획득을 위해 정부가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김 총리는 저녁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칸 나오코 민주당대표,이케다 유키시코 자민당 정조회장 등 각계 지도자 120명을 초청,만찬을 함께하는자리에서 일본어로 연설을 했다.김 총리는 방문 중 11번의 연설 가운데 오부치 총리 주최의 만찬답사 등 일부 공식행사를 제외한 6번을 일본어로 한다. 한편 이날 김 총리의 서울공항 출국에는 총리비서실의 자제 당부에도 불구하고 박태준(朴泰俊)총재를 비롯, 50여명의 자민련 원내외 인사들이 대거 나와 모처럼 당의 단합을 과시했다. dawn@
  • 조선학도병 日人으로 둔갑 ‘충격’

    일제말 학도병으로 끌려가 특공대원으로 출전, 전사한 조선 청년의 위패와사진이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와 신사내 기념관인 유취관(遊就館)에 일본인으로 둔갑돼 일본인 전몰자들과 함께 버젓이 전시돼있어 충격을 던지고 있다. 최근 나고시 후타라노스케(名越二荒之助) 전 다카지호(高千穗)상과대 교수가 야스쿠니신사의 사보(社報)인 ‘정국(靖國)’(99년 7월호)에 기고한 글에따르면, 이 조선청년은 미쓰야마 후미히로(光山文博)로 본명은 탁경현(卓庚鉉)으로 밝혀졌다.탁씨는 1920년 경남 사천 태생으로 일본 교토(京都)약학전문학교 재학중 1944년 1월 학병으로 끌려간 것으로 나와있다.탁씨는 비행훈련을 마친 후 특공대원으로 선발돼 제51진무대(振武隊)에 배치됐는데 일제패망 직전인 1945년 5월 가고시마(鹿兒島) 인근 지랑(知覽)을 출발,오키나와전에 참전했다가 5월28일 현지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출격 당시 계급은 소위였으나 전사후 대위로 2계급 특진했다. 조선인 가운데 소위 가미가제(神風)로 불리는 특공대로 차출된사람은 모두15명. 이 가운데 학병 출신은 탁씨를 포함해 4명으로 이들은 모두 전사했다. 한편 전사후 그의 위패는 지랑지방에서 봉안해오다가 일본 당국의 전사자명단 파악작업이 끝난 후 야스쿠니신사로 옮겨져 합사됐다.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모두 2만1,181위(位)의 조선인 희생자 위패가 봉안돼 있다. 학병 출신자들의 모임인 1·20동지회의 정기영(鄭琪永·79)부회장은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조선 청년의 사진이 일제 군국주의 전쟁의 전몰자들과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전시돼 있는 것은 민족적 수치”라고 말했다. 탁씨의 사촌형 탁남현(卓南鉉·80·전 부산 초량중학교 교장)씨는 “동생이미혼으로 사망해 동생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면서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이유로 보상금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 동생 사진을 일본인들과 함께 걸어놓은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아시아통화기금 설립 일본과 본격 협의 예정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다음달 2일 도쿄에서 열리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아시아통화기금(AMF)설립 문제를 본격 협의할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총리는 최근 일본 방문을 앞두고 김도형(金都亨)KIET일본연구실장,신희석(申熙錫)아태정책연구원장 등 일본 전문가들을 공관으로 초청,방일 대책을협의하는 과정에서 AMF 설립 추진 문제를 검토했다고 정부 관계자가 8일 밝혔다. 정부는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AMF설립의 구체적추진 방안을 준비중이다. 정부는 특히 최근 태국측이 내년 2월 방콕에서 열리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10차 총회에서 AMF 설립을 공식 제안하겠다고 천명함에 따라 아시아지역 국가간에 AMF 설립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함께 정부는 지난해 12월 하노이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 7개국 및 한국·일본·중국의 정상이 참석한 ‘ASEAN+3’ 정상회의에서 제기된 아시아 단일통화 (Asian Monetary Unit) 추진 문제에 대해서도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당국자는 아시아 단일통화 문제도 김총리의 방일기간 중 협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총리는 지난해 11월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린 한일 각료간담회에서 오부치총리에게 “일본이 중심이 돼 3,00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 아시아지역의 외환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AMF를 설립하자”고 제안했었다. 김총리는 또 지난달 6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AMF 창설은 충분히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도운기자 dawn@
  • [이런 사람이 新지식인]日本系 한국인 網切一郞씨

    망절일랑(網切一郞·57)씨는 26년 동안 버섯을 재배하며 독학으로 버섯에통달한 사람이다.전국 웬만한 버섯재배 농민들은 버섯달인·버섯박사로 불리는 그를 안다. 현재 경남 양산시 동면 내송리에서 부인,결혼한 두 아들 부부와 망절농원을운영하며 여러 종류의 버섯을 병에 재배하고 있다. 해방후 어린 나이에 홀로 한국에 남게 된 그는 ‘양승태’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병역까지 마쳤다.그뒤 원래 이름을 찾고 일본 규슈 가고시마에 살던 생부(生父)까지 만났으나 ‘한국인’으로 남아 양산에서 농사를 시작했다.처음에는 채소를 가꾸어 인근 부산 등 도시 재래시장에 내다팔았다.그러나 단순한 채소농사는 수익성이 떨어져 장래성이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선택한 대체 작목이 버섯이었다. “여러해 동안 버섯농사 실패를 거듭했습니다.그러면서 값진 지식을 터득하게 됐습니다.무슨 작목이든 생태를 철저하게 연구하면서 재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버섯은 원래 야생이기 때문에 얼마나 야생조건과 비슷한 상태에서 재배를하느냐가 품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오늘의 버섯재배 성공을 가져오게 됐다고 한다. 망절농원에서 생산된 병 버섯은 신선도·맛 등 품질이 전국 최고로 꼽힌다. 이 때문에 다른 농가에서 생산된 것보다 값이 20∼100% 비싼 데도 백화점 등 판매점에서 인기가 높다.오랜 재배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야생환경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 재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망절씨는 온·습도 조절장치를 비롯,재배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계나 시설은 재료만 사 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두 아들과 함께 손수 만들어 쓴다.여건에 맞게 제작해 설치하기 때문에 사용이 편리하고 성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제작비도 싸게 든다. 망절씨는 “무슨 작목이든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늘 관찰,연구하는 자세가중요하다”고 강조한다.양산시 농업기술센터의 박정근(朴正根·50) 경제작물 담당은 “망절씨는 버섯에 관한한 도가 통한 사람으로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다”며 “성실하고 욕심내지 않는 그의 생활자세가 오늘의 성공을 가져온 것으로 주변에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산 강원식기자 kws@
  • 韓-日정상회담 공동발표문

    1.98년 10월 8일 金大中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돼온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발전시켜 새 세기의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동의 결의를 ‘21세기의 새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서 발표했다. 2.한·일 공동선언 및 부속서인 ‘행동계획’의 추진현황을 점검했다. 3.한·일 공동선언이 서명된 후 약 5개월간‘양국간 대화채널의 확충’‘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협력’‘경제분야에서의 협력관계 강화’‘범세계적 문제에 관한 협력 강화’‘국민교류 및 문화교류의 증진’ 등 5개 전분야에 있어서 착실한 진전이 있었으며 미래지향적 한·일 파트너십이 확고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4.정상,각료 및 의원간 교류가 金대통령 방일 이후 빈번해지고 있는 것을환영하면서 가고시마 제1차 각료간담회에 이어 2차 회의를 올가을 한국에서개최할 것을 확인했다. 5.일본은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했으며 앞으로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한·일·미 3국의 긴밀한 협력이중요함을재확인했다.금년 6월 제2차 안보정책협의회 실시 준비와 방위교류 분야에서의 진전에 만족을 표명했다. 6.한·일 고위경제협의회 개최,일본의 대한(對韓) 경제지원,한·일 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협의의 가속화,노사정 교류단 방일,컴퓨터 2000년 문제에 관한 당국자간 협의 실시 등 경제 파트너십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전되고 있음을 확인했다.새 어업협정이 발효돼 양국간 200해리 시대의 새 어업질서가구축됐다.양국의 제반 규제의 존재,경제활동의 기반인 제도의 차이가 한·일간의 경제활동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일 경제협력의제 21’하에서 가능한한 제거해 나가기로 했다. 7.금년 1월 제1차 한·일·중 3국 환경장관회의가 개최된 것을 환영하면서범세계적인 환경문제에 적극 대처한다는 결의를 표명했다.마약·각성제 등국제조직범죄 문제에 관한 협력을 증진시키기로 의견일치를 봤다. 8.한국의 일본 공대 학부유학생 파견사업 추진,중·고생 교류사업의 진전,금년 4월부터 취업관광사증제도 실시를 비롯,청소년 교류분야에서큰 성과를 평가했다.폭넓은 한·일 문화교류를 구체적으로 추진한다는 관점에서 한·일 문화교류회의의 설치를 결정했다.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문화교류사업을 양국이 협력,추진키로 했다.일본은 작년 10월 한국정부의 일본대중문화 개방조치를 진정한 상호이해로 이어지는 것으로 환영했으며,한국정부는 금년내에 추가 개방조치를 취할 것임을 표명했다. 9.한·일 양국이 5개분야의 모든 항목에서 협력을 심화시켜 나가기로 의견일치를 봤다.양국은 적절한 기회에 ‘행동계획’을 재점검할 예정이다.‘공동선언’의 정신에 입각,정치·경제분야의 협력 뿐만 아니라 국민교류 및 문화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 파트너십의 구축·발전을 향한 공동작업에 참여할 것을 호소한다.
  • 호세 올시즌 ‘롯데의 희망’

    외국인선수 펠릭스 호세(34)가 꼴찌 롯데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호세는 21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지난해 우승팀 현대와의 시범경기에 우익수로 출장,홈런과 2루타 각 1개씩을 포함해 4타수 3안타 3타점의 맹타를 뿜어냈다. 특히 호세가 5회 1사에서 현대의 2번째 투수 최원호로부터 뽑아낸 좌중월 1점 홈런은 바깥쪽 커브를 힘으로 걷어올린 것으로 올시즌 홈런 레이스에 큰변수임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97년과 지난해 2년 연속 꼴찌의 수모를 당한 롯데는 이날 호세의 타격을 흐믓하게 지켜보며 부활의 휘파람을 불었다.지난해말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트라이아웃에서 호세를 1순위로 지명한 롯데는 일본 가고시마호세는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 투수들이 강하다”면서도 “3할대의 타격으로 팀 우승에보탬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프로야구 전적 ------------------ 쌍방울 7-1 삼성 ------------------ ▲21일(대구) 쌍방울 000 043 000 - 7 삼 성 001 000 000 - 1 △승리투수= 유현승 △패전투수= 김진웅 ------------------ 롯데 6-4 현대 ------------------ ▲21일(사직) 현대 300 001 000 - 4 롯데 004 110 00X - 6 △승리투수= 손민한 △세이브투수= 강상수 △패전투수= 임선동 △홈런= 피어슨(1회.2점,현대),김현민(3회),호세(5회,이상 롯데) ------------------ 한화 8-7 두산 ------------------ ▲21일(대전) 두산 311 000 011 - 7 한화 003 130 001 - 8 △승리투수= 이상열 △패전투수= 이혜천 △홈런= 김동주(1회.2점,3회,두산),로마이어(3회.2점), 송지만(5회),최익성(5회,이상 한화)
  • 소싸움 韓·日戰 열린다/99청도 소싸움 축제

    한국 소와 일본 소중 어느 쪽이 셀까.한국과 일본 소가 한판 맞붙는 이색행사가 펼쳐진다.오는 10일부터 15일까지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천 둔치에서 열리는 ‘99청도 소싸움축제’.지난해 청도 민속투우대회에서 우승한 한우 3마리와 일본 가고시마투우협회 소속 싸움소 3마리가 출전해 대결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끈다. 청도군이 주최하는 민속투우대회는 올해로 10번째를 맞는 청도의 명물.올해 문화관광부가 문화관광축제로 선정함에 따라 국제적 규모의 문화관광축제로 키운다는 뜻에 따라 이번 이벤트를 마련한 것.한국의 내로라는 소들이 참가해 일본 소와 힘을 겨루는 첫 행사란 점에서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것으로보인다. 한편 이번 소싸움 축제에는 전국에서 150여두의 한우가 참가해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총상금은 4,000만원.8일 3체급별로 대진표를 짜 11∼13일 토너먼트제로 진행되는데 14일 결승전이 열릴 예정이다. 소싸움은 통나무 목책이 둘러쳐진 원형경기장에 등장한 두마리의 소가 모래를 후벼파 공중으로 퍼올리는 준비동작후앞다리 근육을 푼뒤 머리를 앞으로 들이밀며 격돌한다.머리를 맞댄채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들리는 소들의 가쁜 숨소리와 관중들의 응원소리가 맞물려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대행사로 미국 카우보이협회의 로데오경기팀이 참석해 한우로데오 경기를 선보이며 청도 한우 ‘순덕이’를 타보는 황소타기 체험,소싸움촬영대회,정통한우요리 페스티벌 등도 열린다.
  • 美, 한반도 유사시 日공항 사용 요청

    나리타·간사이·후쿠오카등 8곳 대상 6개항만 이용·대규모 기자재도 요구 [도쿄 黃性淇 특파원] 주일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전개를 위해 8개 공항과 6개 항만의 사용 협력을 일본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3일 미·일관계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소식통은 주일 미군은 지난 94년 ‘북한의 핵의혹’으로 한반도정세가 긴박해지고 있을 당시 비상사태가 빚어질 것을 가상,미군부대 전개 시작으로부터 ‘10일 이내’에 나리타(成田)등 8개 공항,고베(神戶)등 6개 항만의 사용과 대규모 기자재 및 요원 확보를 요구한 바 있다고 밝혔다. 미군은 특히 신지도세(新千歲),간사이(關西),후쿠오카(福岡),미야자키(宮崎),가고시마(鹿兒島),나하(那覇)공항 등을 물자수송 중계지점으로 활용하며그에따른 노무의 제공을,또 하치노헤(八戶),이와쿠니(岩國),나하 등 항공기지에 대해서는 초계기 P3C의 사용을 위한 경비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또 홋가이도(北海道)에서는 중화기 사격을 위한 훈련장 제공을,미군기지가있는 요코스카(橫須賀)와 사세보(佐世保)항에서는 함정 등 수리시설을 요구했다.이밖에 한국으로부터 미국인 철수에 대비,가데나(嘉手納)기지를 중심으로 3만세트의 간이침대와 담요 등을 준비하도록 했다. 일본 방위청은 미국측의 요청에 따라 관련법규의 완화,특례조치,운수성 및법무성 등 각 부처간 협의하에 검토했으나 미·북 핵합의로 긴장이 완화,최종적인 결론을 내지못했다는 것.이후 97년 신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제정 당시 일본측이 이같은 미군의 요청항목을 참고로 지원내용을 정리했다고 이신문은 전했다. marry01@
  • 각료간담회 이모저모/양국 총리 조손도공 후손 심수관씨 집 방문

    ◎김 총리 기자들에 ‘AMF’ 제안 입장 설명 【가고시마 李度運 특파원】 한·일 각료간담회는 양국의 고위관계자들이 처음으로 긴장을 늦추고 만난 자리였다.간담회가 열린 일본 규슈(九州) 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시도 공항에서부터 간담회장인 시로야마(城山)호텔에 이르는 모든 길을 환영 플래카드로 장식했다.또 마침 가고시마에서는 1598년 조선인 도공이 전래한 ‘사쓰마 도자기 4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환영분위기를 한층 돋우었다. ●金총리는 29일 오부치총리와 함께 가고시마 현 미야마(美山)에서 개최된 ‘사쓰마 도자기 전래 4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조선도공의 14대 후손인 沈壽官씨의 집과 전시실도 돌아봤다. 金총리와 오부치 총리는 沈壽官씨 조상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채화해 가로등으로 만든 ‘한·일 우호의 불꽃’을 시찰하고 뒷산에 각각 소나무와 벚나무를 기념식수했다. ●金총리는 이에 앞서 이날 아침 오부치 총리와의 조찬을 마친 뒤 수행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일 각료간담회에서 제안한 아시아통화기금(AMF)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金총리는 “金大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나카소네(中曾根康弘)·다케시타(竹下登) 전 일본총리가 그 필요성을 얘기하는 등 여러 곳에서 얘기가 나왔다”면서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연구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金총리는 그러나 전날 각료간담회에서 3,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일본이 러시아에 3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말을 해,‘0이 하나 빠진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아직은 기초적인 생각을 가볍게 말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金총리는 또 30일 규슈대에서 일본어로 연설하는데 대해서는 “학위를 주면 모교가 되니까,신분을 떠나서 모교 학생들과 복잡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주고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金鍾泌 총리를 비롯한 한국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한 기간은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중국의 최고통치자로는 처음 일본을 방문한 시기와 겹쳤다.장주석이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놓고 ‘아슬아슬한’ 발언을 계속했기 때문인지,일본의 언론은 상대적으로 장주석 방문보다 오부치총리와 경제각료들이 대거 참석한 한·일각료회담에 비중을 뒀다. ●金鍾泌 총리와 오부치 게이조(小淵慧三) 총리는 28일 만찬,29일 조찬·오찬 등 이틀동안 세끼 식사를 함께하는 등 우의를 다졌다.28일 만찬과 29일 조찬은 당초 예정에 없었지만,오부치 총리가 요청했다. 오부치 총리는 또 당초 각료간담회에 앞서 열린 金총리와의 단독회담 장소를 자신의 숙소에서 金총리의 숙소로 옮겼다.오부치 총리는 “손님의 방으로 가는 것이 예의”라며 장소변경을 요청했다고 한다.오부치 총리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기간중 이틀이나 金총리에게 할애한 것은 각별한 예우라고 주일대사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 한·일 첫 각료간담회 의미/양국 관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

    ◎북한 핵의혹시설 검증 협조·경제난 극복 등/한·일 총리·경제장관들 솔직한 의견교환 【가고시마 李度運 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첫 각료간담회는 적어도 양국 정부간의 관계는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 것 같다.간담회에 참석한 양국 총리와 경제장관들은 미리 구체적인 의제를 정하지는 않았다.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자유로운 상태에서 외교 및 경제 현안을 놓고 비교적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우선 金鍾泌 총리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에게 제안한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설립은 일본 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중국 등 주요국의 반대로 단기간 내에 AMF가 설립되기는 어렵지만,양국이 아시아 문제해결을 위해 하나의 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洪淳瑛 외교통상장관과 고무라(高村正彦) 외무장관은 북한 금창리의 지하 의혹시설에 대한 현장 검증을 위해 한·미·일 3국간에 긴밀한 협조를 해나가기로 했다.李揆成 재경장관과 요사노(與謝野馨) 통산장관과의회동에서는 다음달 5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일 민관 합동투자촉진회의에 요사노 장관이 직접 참가하기로 합의했다. 이어진 李장관과 사카이야(堺屋太一) 경제기획청장관과의 회담에서는 양국이 최근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자국의 노력을 상대방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기회를 가졌다.李장관은 또 다나가키(谷垣禎一) 대장성 정무차관과의 회담에서 미야자와 플랜에 대한 양국 의견을 교환했다.李장관은 일본이 300억달러를 조성,단기자금으로 150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에 관심을 표명했다.이에 대해 다나가키 차관은 미야자와 플랜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위해 다음달 2일 대장성 대표단을 한국에 보내 협의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朴泰榮 산업자원장관과 요사노 통산장관은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에 대규모의 ‘한·일 산업교류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로 했다.金善吉 해양수산장관과 나카가와(中川昭一) 농림수산장관은 28일 서명한 양국간 어업협정의 국회 비준을 차질없이 진행시켜 내년 1월23일 새 협정을 발효시키기로 했다.
  • ‘亞洲통화기금’ 창설 검토/對韓단기채권 중·장기전환 노력키로

    ◎韓·日 각료간담회 【가고시마 李度運 특파원】 한국과 일본은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국가를 지원하기 위한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설립을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金鍾泌 국무총리는 28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에서 열린 한·일 각료간담회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에게 “아시아지역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MF와 같은 AMF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의했으며,오부치 총리는 “잘 알았다”고 답변했다. 두 총리는 또 일본 금융기관의 대한(對韓) 단기 지원금을 중·장기로 전환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노력키로 의견을 모았으며 북한 미사일개발 및 지하의혹시설 건설 등에 대한 한·미·일 3국 공조 강화를 재확인했다. 金총리는 일황(日皇)의 방한과 관련,“오는 2000년까지 성사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金총리는 29일 수행기자간담회에서 “한·일에 이어 한·중간의 각료간담회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韓·日 자유무역협정 추진/金 총리 오늘 訪日… 오부치와 회담

    한일 각료간담회가 28일 金鍾泌국무총리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및 양국 경제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고시마 시로야마 관광호텔에서 열린다. 양국은 이번 각료간담회에서 대북 정책 공조,경제·통상 협력 확대 등 양국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한다.양국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금창리 지하 의혹시설 건설 등에 대한 우려를 공동으로 표명하고,대북 정보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합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특히 ‘21세기 한·일 경제관계연구회’를 통해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체결 문제를 계속 검토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을 것으로 알려졌다. 金총리는 각료간담회에 앞서 열리는 오부치 총리와의 단독회담에서 대북 정책 공조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각료간담회가 끝난 뒤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과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무장관은 양국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일어업협정에 서명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간담회 내용을 발표한다. 이에 앞서 金총리는 이날 아침 서울공항에서 특별전용기편으로 일본으로 출발한다.
  • 金 총리의 日語 연설/李度運 기자·정치팀(오늘의 눈)

    金鍾泌 국무총리의 일본어 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8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에서 열리는 한일 각료간담회에 참석하는 金총리는 30일 큐슈(九州)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일관계의 어제와 내일’이라는 주제의 연설을 일본어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총리가 왜 일본말로 연설을?”이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그럴 수도 있다는 옹호론과 용납할 수 없다는 반대론이 함께 뒤따른다. 우선 金총리측의 설명을 들어보자. 공보실은 시간 제약을 형식적인 이유로 내세운다.한시간의 연설을 순차통역하려면 두시간이 넘게 걸린다.지방의 작은 대학에서 동시통역은 시설과 비용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또다른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의 극대화.일본학생들과는 일본말로 대화해야 설득력이 생긴다는 것이다.일본인의 ‘다테마에(建前)’를 뚫고 ‘혼네(本音)’에 접근하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金총리는 한일간에 가로놓인 심리적 장벽을 한번 건드려보고 싶은 것 같다.우리에게는 ‘한국 대통령이 영어로연설할 수는 있지만,한국 총리가 일본어로 연설하면 안된다’는 이중심리가 존재하는 듯 하다.어쩔 수 없는 역사적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으로만 21세기의 동반자 관계를 외쳐서는 안되고,관행처럼 굳어져가는 반목의 금기를 깨야한다는 것이 金총리측의 논리다. 金총리의 일본어 연설을 결정하고,이를 뒷받침할 논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총리실 내에서도 열띤 토론이 있었다.그러나 金총리는 처음부터 일본어 연설을 고집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번 문제는 연설의 주인공이 金총리였기 때문에 크게 부각됐을 수 도 있다.金총리가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는 62∼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다는 金총리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일단 노정객(老政客)의 충정을 받아들이고 싶다.어쩌면 그것이 일본측에 전하는 우리측의 성의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일본측의 반응이다.한국 총리의 일본어 연설을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태도가 金총리의 선택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것 같다.
  • 韓·日 새 어업협정 조인/이달말 외무장관회담서

    【도쿄=黃性淇 특파원】 한·일 양국은 이달 28일부터 이틀간 가고시마(鹿兒島)에서 개최되는 한·일 각료회의 중에 있을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새 어업협정에 조인하기로 했다고 일본 정부 소식통이 4일 밝혔다. 일본 정부는 협정이 조인되는 대로 이달 말 소집될 예정인 임시국회에 제출,비준을 받아 내년 1월23일 기존 협정이 만료되는 즉시 발효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새 어업협정은 지난달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때 양국간에 가조인된 뒤 현재 양국정부간에 세부 내용을 협의중인데,조인시기와 국회비준 전망이 밝아짐에 따라 현행협정 효력 정지후에 있을지도 모를 일시적인 무협정 상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金 대통령 訪日 결산­정부 후속대책

    ◎對日 문화 개방 단계별 예고제/양국 월드컵협의체 설치 추진 정부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대한 후속대책 마련에 착수했다.정부는 12일 오전 국무회의를 열어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평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 부처별로 후속대책 마련에 들어갈 예정이다. 상당수의 현안들은 이미 공동선언 발표 직후부터 세부사항 협의가 진척되고 있다.우선 양국정부간 대화 창구로 마련된 한·일 각료간담회는 다음달 하순 일본 가고시마에서 첫 회의를 개최하기로 양국이 잠정합의했다.여기에는 양국 총리와 경제부처 등 현안 관련부처 장관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를 위해 양국간 월드컵협의체의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이를 통해 양국은 경비와 출입국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 문화행사 협력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한·일 어업협정은 현재 양국이 금년말 정식서명 목표로 후속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내년 1월 정식발효될 예정인데 양국 모두 국회 비준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교과서 개정은 한·일역사연구촉진공동위를 통해 논의하게 된다.정부는 양국정부 사료를 공개한 뒤 역사적 쟁점에 대한 서로간의 해석차를 줄이고 이어 양국 역사교과서를 개정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아직은 일본측이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관련,우리 정부는 단계별 예고제를 통해 빠른 속도로 개방해나간다는 방침이다.우선 한·일 합작영화나 국제영화제 수상 일본영화 수입이 허용될 전망이다.
  • 새달 韓·日 각료회담/양측 총리가 대표로

    【도쿄=黃性淇 특파원】 한국과 일본 각료들이 다음달 일본에서 경제 등 각종 현안에 관해 회담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 외상이 9일 밝혔다. 고무라 외상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 두나라 정부가 11월 일본 남부 가고시마(鹿兒島)현에서 각료급 회담을 개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회담에는 우리 측에서 金鍾泌 국무총리가,일본측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각각 대표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 ‘라니냐’ 징표 사진 찍었다/日 우주개발硏 공개

    ◎폐루근해 4∼5℃ 낮은 띠모양 해역 포착/지구촌 기상이변 파급 효과에 깊은 관심 【도쿄 교도 연합】 일본 우주개발연구소(NASDA)는 올해 페루 근해의 해수온도가 정상기온 보다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인공위성 사진을 6일 공개했다. 우주개발연구소는 ‘엘 니뇨’가 물러나면서 나타난 ‘라 니냐’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이변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또 앞으로의 기상이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개된 사진은 지난해 11월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가고시마(鹿兒島)현 다네가시마(種子島)에서 발사한 기상관측 위성으로부터 수신한 자료를 이용한 것이다. 올들어 고온 해역이 점차 축소되면서 지난 6월초에는 평균 해수온도 보다 섭씨 4∼5도가 낮은 좁은 띠 모양의 해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관계자들은 밝혔다. 한편 지구촌에서는 기상이변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혹서로 8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일사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양쯔강 유역을 중심으로 사상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46명이 숨지고 37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더구나 범람위기를 맞고 수백만명이 홍수방지 작업에 나섰다. 이밖에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는 연일 계속된 혹서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고온 건조한 날씨로 산불이 5주이상 계속돼 큰 피해를 냈다. ▷라니냐◁ 남미 페루 부근의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급격히 식으면서 평소의 23∼27도 밑으로 낮아지는 현상. 반면 서쪽인 인도네시아 부근의 태평양 수온은 상대적으로 올라가 불균형을 이루며 가뭄과 폭우,혹서 등 갖가지 기상이변을 낳는다. 페루 부근 태평양의 수온이 크게 올라가면서 역시 기상이변을 가져오는 ‘엘 니뇨’현상의 상대 개념이다. ‘라 니냐’는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라는 뜻이고 ‘엘 니뇨’는 ‘아기예수’ 또는 ‘사내아이’라는 뜻. 16세기부터 페루 어민들 사이에서 사용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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