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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 민간교류 암초 만났다

    “일본 음악은 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예정된 일본 현지 행사는 해야하는 건지….” 13일 한 방송계 인사는 최근 급속히 냉각된 한·일관계와 관련, 이같은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올해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연초부터 특별히 일본 음악 코너를 마련해 소개하는 등 관심을 가져왔는데, 갑자기 양국 관계가 이렇게 되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각종 문화계 인사들 가운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교과서 파동과 독도 문제가 한·일 민간 교류에 심각한 파장을 몰고오고 있다.‘2005 한·일우정의 해’는 파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일 우정의 해 행사는 이 두 문제와 무관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련 행사는 당장 3월만 해도 굵직굵직한 게 20여건이나 된다.‘한글체험 투어’ ‘국제교류사진전’ ‘한국의 일본어학교 방문여행’ ‘한국투자·비즈니스 미션’ ‘일·한 아동청소년 연극제’(도쿄·사이타마 등 일본 5개도시) ‘일·한 기타리스트 우정콘서트’(서울) ‘서울 홈스테이 투어’‘동아시아 현대미술전’(도쿄) ‘일·한 여류작가전’(도쿄) 등이 있다. 수개월짜리 행사도 많다.‘한류시네마 페스티벌 2005’ 등은 3월 하순∼5월 초순까지로 예정돼 있다. ‘한국투자·비즈니스 미션’은 일본 무역진흥기구와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주최하는 등 정부 또는 준정부 차원의 행사도 적지 않다. 관계자들은 “이같은 행사들은 일반 문화소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는 이름뿐인 행사로 전락하기 쉽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정부 차원이야 긴 안목으로 장기적인 것까지 고려해 ‘외교’를 하겠지만, 민간차원은 당장의 분위기에 훨씬 민감한 것 아니냐.”면서 “정부 차원보다는 민간쪽에서 훨씬 빠른 속도와 강도로 관계가 냉각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특히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간의 교류는 양국간 분위기가 호전되기 전까지는 거의 단절관계까지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일 냉각기가 자칫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갈수록 심화되는 일본사회의 우경화와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성 정무관 등 교과서 검정기관의 우익인사 포진 등 상황을 감안할 때 검정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아, 우리가 즐겨써 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 조차도 큐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지난 10일. 일본 시마네현의회 총무위원회가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다는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대통령과 한국 외무부가 아무리 ‘내 마누라론’을 주장하고, 침묵으로 묵살하고, 소극으로 일관해도 일은 끝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흥분할 것도 없다. 사태는 예정된 수순을 따랐을 뿐이므로. 주한 일본대사의 당당한 영유권 주장, 아사히신문 경비행기의 독도 진입작전, 게다가 한승조·지만원을 비롯한 국내 극우인사들의 맞불작전까지, 돌이켜 보면 우연은 하나도 없다. 영토분쟁을 표면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한 일본 지도부의 야욕이 마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9세기 에도막부, 홋카이도 식민화 ‘다케시마’ 주장은 망언이 아니며, 망언은 실제로 없으니 망언이란 말을 써서도 안된다. 체계적이며, 장기지속적인 심대한 해양정책에서 비롯된 국가의지의 또다른 표현일 뿐 결코 돌출발언은 아니다. 일본의 노골적인 행태는 가히 고삐 풀린 망아지 수준이되, 관·민 합동으로 질서정연하게 치고 빠지면서 주연·조연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화려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현의 조례 제정을 일본 정부가 만류했다고 하나 전혀 믿을 게 못된다. 양동작전일 뿐이다.‘식민지근대화론’의 미몽에 취해 선전·선동을 일삼던 지식인들을 비롯, 차제에 지난 수백년간 일본이 아시아 바다에 남긴 족적을 단계적으로 살펴 감고계금(鑑古戒今)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9세기에 에도(江戶) 막부는 ‘숲속의 사람들’ 아이누족의 영토였던 북해도, 즉 홋카이도를 식민화한다. 일단의 식민경영 세력이 ‘숲의 섬’을 치고 들어갔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난 오늘, 보호구역에 갇힌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아이누들은 박제화되어 일본에서도 차별받는 2만여명의 혼혈아로 잔존할 따름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이어 사할린으로 손길을 뻗친다.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반환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사실 러시아도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는 나라다. 차르 시절, 코사크 기병대를 앞세워 동진을 거듭해 사하·축치·에벤키·캄챠달 등이 살던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그들 아닌가. 일본은 이어 남쪽의 류쿠(우리측 사료에는 유구로 기록됨)를 병합한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붙인 이름이고 본래는 류쿠국이었다. 독립 왕국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과도 문물교류를 활발히 하며 조공·중계무역에 힘써 문화가 크게 번성한 나라였다. 무역선 활동 범주가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등 서남아시아까지 뻗친 해상국가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바쿠후 성립 6년째 되던 1609년 규슈 남부의 번주인 사쓰마한(薩摩藩)은 3000군사로 류쿠를 점령한다. 단, 정략적 입장을 취해 국제무역에서 엄청난 차익을 남기는 사탕수수 같은 경제적 수탈은 감행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방관·조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후 류쿠는 일면 일본에 수탈당하면서도 중국에 조공의 예를 갖추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다. 사실 사스마한의 점령 이전에도 류쿠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 왔으니, 류쿠와 일본의 악연은 해묵은 것이다. 그러던 일본은 1879년 드디어 ‘류쿠 처분’을 단행한다. 이로써 독립왕국 류쿠는 오키나와현으로 강등되어 일본에 병합된 이래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해양식민화 정책은 전략적 포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집요하게 기다리며 정확히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日정부, 남양군도 침략행위 전면 부정 1874년 청·일전쟁의 전후 보상으로 타이완을 챙긴 것은 교과서에 나온 상식.‘대륙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긴 셈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길 자격이 있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타이완에는 푸젠(福建) 등 남부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도 많았지만 이른바 타이완 원주민인 토착 타이완족이 살고 있었다. 일본의 타이완총독부가 설치되면서 그들의 운명 역시 아이누처럼 박제화되고 만다. 타이완총독부에서 갈고 닦은 식민경영의 노하우가 이후 고스란히 조선총독부로 전수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의 해양식민화가 홋카이도, 사할린, 류쿠, 타이완 같은 섬 정도에 그친 것은 아니다.1919년 파리강화회의 결과 일본은 사이판, 괌 등이 속한 이른바 남양군도를 자치령으로 분배받는다. 세계열강의 태평양 분할정책에서 그 지분을 챙긴 것. 남양군도는 서태평양 적도 이북의 작은 섬인 미크로네시아의 동쪽 끝 카리바시와 서쪽의 괌을 제외한 엄청나게 드넓은 바다.19세기말 이래로 독일이 지배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일본의 남양제도 위임통치령이 되었고,1947∼1986년에는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은 미국의 태평양 신탁통치제도가 되었으니, 태평양은 태평과는 무관한 격동의 바다였다. 일본인들은 남양군도로 들어가 설탕, 술, 수산가공품 같은 사업을 펼쳤으며 한때 사이판의 일본인이 10만을 헤아리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패전 후 최초로 오는 6월 극우인사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대동하고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을 찾아 일본군 전몰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남양군도에 대한 침략행위의 전면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일왕이 선 격이다. 당연히 대표적 극우언론인 산케이는 일왕의 사이판 방문 소식에 ‘감격해 하며’ 이를 전면에 도배하는 충성을 과시했다.‘위령의 여행’으로 묘사하면서 ‘남양군도’를 지배하던 향수를 노골적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팔라우의 수도인 코로(Koror) 외곽으로 빠지다 보면 코발트빛 바다 위에 ‘아이고 브리지’가 떠있다. 머나먼 팔라우까지 징용왔던 한국인들이 기아와 고통 속에 ‘아이고’를 연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죽하면 ‘아이고다리’로 명명되었겠는가. 정신대로 끌려온 나이 어린 여성들이 하루에 수십명씩의 일본군을 상대하며 피를 토하고 죽어간 남양군도로 ‘신의 아들’이 ‘위령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한 즉,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격을 높여 다시 대양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이른바 태평양전쟁이라 칭한 데서 알 수 있듯 세계대전의 본질은 해양패권의 각축이다. 일본은 실질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사이판과 괌은 물론 필리핀, 팔라우, 티니안, 얍, 뉴기니 같은 섬, 그리고 서진을 거듭하여 인도네시와, 말레이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식탐을 과시했다. 우리의 인식은 대륙 지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해양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영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기다리다 덮치기… 집요한 日 해양정책 일본은 세계열강의 해양 재편성에 기초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국제해양법 신질서에 매우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기왕에 문제가 되어온 조어도, 일명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과 심각한 해양분쟁을 일으킨지 오래다. 미래의 해양자원을 염두에 넣는다면 일본이 조어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너무도 확실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손톱만 한 바위에 불과한 오키노도리시마(沖鳥島)로 명명하고 자기 영토에 포함시켰다. 해양과학자들까지 동원해 섬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침대만 한 섬 하나에 290억엔을 퍼부었다. 이로써 자신의 영토(38만㎢)보다도 넓은 40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하게 된 것. 나아가서 태평양 복판에 떠있는 미나미도리까지 영토로 선포했다. 이렇듯 일본은 해양 영토에 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독도가 어찌 그들의 눈독에서 빠질 수 있었으랴. 이런 만행이 대중국 포위전략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 없이 가능할까. 미국 역시 ‘해양제국’이다. 일제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개입하는 단서가 마련되지만, 기실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테프트밀약을 통해 섬 국가인 필리핀과 반도국가인 한반도를 ‘빅딜’하는 국제적 공모에 가담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태평양의 섬은 거의 없다. 태평양은 공해가 분명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대주주’행세를 하고 있다. 오키노도리시마와 미나미도리는 남양군도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일본이 만들어낸 ‘바다 땅따먹기’의 야심작이 아니겠는가. 근래 일본 정부는 해양권 확보에 노골적이다. 경제산업성, 외무성, 국토교통성 등이 주동이 된 연락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린다. 숨길 게 없다는 식이다. 독도 영유권까지 인정받는다면 일본은 전체적으로 405만㎢의 배타적 경제수역, 즉 일본 영토의 10배를 뛰어넘는 방대한 해양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제주도 한경면에는 일본군이 옥쇄를 대비해 만든 거미줄처럼 얽힌 가마오름땅굴이 있다. 버려졌던 이 땅굴은 한 개인의 희생적 노력으로 현재 평화박물관이 되어 있다. 이곳 이영근 관장은 “현재 공개된 굴은 극히 일부로, 모두 바다를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땅굴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와 일본군 알트르비행장을 벗어난 송악산 해변에도 미군기를 겨냥했던 동굴들이 줄지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구체적인 해안진지가 한반도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 ‘평화’라도 韓·日 인식 달라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을 감행했던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란(指宿) 바닷가에도 같은 이름의 ‘평화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년병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모정을 빙자한 최루성 역사 회고만 존재할 뿐 전쟁 자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같은 ‘평화’를 거론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는 상상을 초월한다.‘제국의 바다’를 잊지 못하는 일본의 추억만들기가 계속되는 한 ‘현해탄’의 파고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아, 우리가 즐겨 써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조차도 규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해방 60주년, 일본은 20세기형 제국의 바다를 21세기에 다시 ‘신장개업’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청와대와 외무부의 공식 입장 및 향후 일정부터 듣고 싶다. 또 ‘내 마누라타령’으로 일관하면서 질질 끌려다니다 끝내 국제사법재판소 법정마당까지 끌려가 내 영토를 약취당하고 말 것인가.
  • [일본 교과서 왜곡 파장] 악화일로 치닫는 韓·日관계

    [일본 교과서 왜곡 파장] 악화일로 치닫는 韓·日관계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지난달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지정 조례안 상정에 이어 주한일본 대사의 독도 영유권 주장 망언, 일본 언론사 경비행기의 독도상공 진입시도, 일본 해경 초계기의 독도 근접 비행 등으로 국민 감정이 폭발 직전 상태다. 여기에 왜곡 교과서 문제까지 더해졌다. 정부는 지금까지는 냉정을 지키겠다는 자세였다. 일단 지난 11∼13일로 예정됐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방일 일정만 미뤄놓은 상태다. 그러나 ‘미온 대처’라는 비난 속에 정부도 마냥 차분함을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국 관계는 우선 오는 16일 ‘다케시마의 날’ 제정 여부가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국민 감정상 정부는 대사소환이라는 강경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반기문 외교장관은 최근 “영토문제는 한·일관계 보다 상위개념”이라고 강조해 놓았다. 이 문제를 잘 넘기더라도 2차로 교과서 문제가 남는다. 다음달 초 일본 문부성의 검정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다. 정부는 뜻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정책적 변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예컨대 각종 규제로 묶어 놓은 일반인의 독도 방문을 완전 개방하는 것을 포함, 좀 더 강경한 방안들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그간 나름대로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에 ‘경고’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교과서 문제는 공식적으로 수정을 요구하면 일본내 보수세력의 반발을 일으켜, 일본 정부의 발을 묶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비공식적으로 협조를 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두가지 당면 과제가 최상의 시나리오로 해결되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외교소식통은 11일 “향후 4∼5개월간은 일본 내에서 군국주의적 우익과 반대 진영간의 상당한 캠페인전이 예상된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치인의 망발 등 추가 악재의 돌출은 양국 정부의 입지를 더욱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한·일 우정의 해’는 사실상의 파탄을 맞을 수도 있다.180여건의 영화·스포츠·공연 청소년 및 지역·학술 교류 행사가 제대로 치러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행사가 열리더라도 참여 열기 부족으로 취지를 살리기 힘들어진다. 또한 정부로서는 많지도 않은 대일(對日) ‘지렛대’를 써야 하는 데다, 북핵 문제 등에서 3차 6자회담에서처럼 일본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현실적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한 일본 전문가는 “최근 일본의 지식인 역시 한국과 점차 거리감을 느끼는 등 양국이 멀어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일자 영자지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에는 ‘일본 국민은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연설에 대해 “동맹국인 한국이 북한·중국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섭섭함을 토로하는 일본 학자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일본 교과서 왜곡 파장] 韓 “민관이 함께 강경대응해야”

    [일본 교과서 왜곡 파장] 韓 “민관이 함께 강경대응해야”

    일본 극우단체의 한층 왜곡된 역사 교과서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시대착오적 교과서는 일본 군국주의·제국주의의 일면”이라면서 “민관이 공동으로 강경 대응하고, 국사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역사교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교육개혁시민연대 등 90여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11일 오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 왜곡을 강력 규탄했다. 이들은 지방별로 교과서가 채택되는 오는 6∼8월 일본 전국을 순회하면서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의 도움을 받아 채택저지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또 한·중·일 시민단체가 우익교과서 채택이 예상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고,7월 갈등·분쟁 예방을 위한 유엔 국제회의에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 교수는 “일본의 우파는 애국이라는 명분 하에 강경으로 선회하고 있다.”면서 “더불어 살 수 있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관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같은 피해국이라고 믿었던 중국까지 우리나라의 고대사 빼앗기를 하고 있다.”면서 “우선 한·중·일 학자가 모여 사관을 공유한 뒤 같은 맥락의 교과서를 편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역사바로세우기시민연대 우대석 사무국장은 “역사는 한 나라의 정신이므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정부와 민간 모두 양보하지 말고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일본의 학자 등 양심세력도 응집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사찾기협의회장인 고준환 경기대 법학과 교수는 “일본의 역사 조작이나 독도에 대한 권리 주장 등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드러낸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정치지도자와 사학자의 역사 바로세우기 의식이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회장은 “‘한·일 우정의 해’라고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교과서를 왜곡하는 행태는 일본의 ‘두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성토했다. 독도향우회 최재익 회장은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주권 국가로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 결과”라고 비난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일본의 우경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므로, 이를 우리나라의 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대학입시에서 홀대당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슨 대응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주한미군 역할과 전략적 유연성] 韓 “동북아 제외” 美 “전세계 대상”

    한·미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의는 다음달쯤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9일 알려졌다. 미국은 가능한 한 올해 안에 마무리 지으려는 방침으로, 서둘러 논의하자고 재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되도록 충분한 시간을 갖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주한미군 재배치, 용산기지 이전, 연합토지관리계획(LPP) 등 협상을 하면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2005년으로 넘기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협상은 시작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만큼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 분쟁 참여를 어떻게 반대할 것인가가 핵심이다.‘과연 협상문 조항에 특정지역을 적시해 명문화할 수 있겠느냐.’는 데 벌써부터 회의가 제기된다. 주한미군 이동배치시 미국과의 ‘사전협의’ 문제도 주요 이슈다. 미국이 일본과 사전협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당초 우리도 이를 추진하려 했으나, 미군이 사실상 수시로 드나들고 있고 이동 정도나 내역이 제대로 파악도 안돼 거의 유명무실해졌다는 점을 알고는 일단 논의를 보류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한 당국자는 “우리 입장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합의 이후 어떻게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 사전협의의 효율적 관리 장치를 연구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우리측은 외교통상부 김숙 북미국장이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동맹보다는 ‘협상’ 측면에 비중을 두어 논의 주체를 국방부가 아닌 외교부로 넘겼다.”고 말했다. 미국측 수석대표는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다. 주한 미국 대사로도 강력 거론됐던 지한파 인물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오른팔로 꼽힌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韓·中 환경마크 상호인정협정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한국과 중국은 환경마크 상호 인정 협정을 체결했다. 환경마크협회(회장 이상은)는 1일 중국 국가환경보호총국에서 환경표지제도 인증기관인 중국환경연합인증센터와 환경마크 상호인정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우리와 환경마크 상호 인정 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호주, 타이완, 태국, 일본에 이어 5개국으로 늘어났다. 한국기업이 중국 환경마크를 얻으려면 우리나라 환경마크협회의 적합성을 검증받은 뒤 협회가 그 결과를 중국에 통보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난다. 중국의 환경표지제도는 1994년 도입, 지난해 말 현재 800여개 업체의 1만 2000여개 제품에 인증을 부여했다. oilman@seoul.co.kr
  • [시론] ‘韓·日 우정의 해’ 유감/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시론] ‘韓·日 우정의 해’ 유감/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작년 한해 일본에서는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덕택에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한·일 관계의 오래된 비유는 이제 사어(死語)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이며 ‘한·일 우정의 해’다. 문화·예술·관광·스포츠 등 다채로운 분야의 한·일교류 행사가 1년 내내 풍성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경제·외교 면에서의 협력 또한 순조롭다. 이미 김포와 하네다 간의 도심 직항편도 생겼고 자유무역협정(FTA)도 추진 중이며 입국비자 문제도 순탄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국교수립 40년 만에 한·일 관계는 신기원(新紀元)을 맞고 있는가? 그러나 2005년은 한·일관계를 축제와 친선의 무드로만 보내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해다. 이상하게도 한·일국교수립 40주년만 강조되고 있지만, 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시해서 기념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우선 올해가 광복 60주년이며,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사적으로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포츠머스조약 100주년이며, 청·일전쟁의 승전을 마무리한 시모노세키조약 110주년이면서, 동시에 국제연합 창설 60주년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난 세기에 있었던 전쟁의 상처를 되새기고 평화의 가치를 음미하는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줄을 이을 전망이다. 우선 유엔총회는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올해 5월8일과 9일을 ‘기억과 화해의 시간’으로 지정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러시아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행사는 같은 5월 러시아 국내에서 열리는 ‘반 나치스독일 승리 60주년 기념식’과 함께 2차대전 승리에 기여한 러시아의 역할이 강조될 전망이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蘆溝橋)에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리모델링하고 국제적인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11월21일자 북경일보에 따르면 “항일전쟁의 위대한 과정을 전면적으로 반영하고, 일본군국주의에 의한 인민학살, 식민통치 등의 범죄를 뿌리째 폭로함으로써 지난 전쟁에서 행한 중국의 중요한 역할과 큰 희생을 충분히 알리기”위해서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5년’이라는 역사적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승전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과시하면서 일본을 압박하는 외교적 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광복 60주년, 국권찬탈 100주년이라는 귀중한 역사자원을 ‘한·일 우정의 해’로 소비하고 국내용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낭비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 선조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잔악한 식민 지배 하에서 가혹한 억압을 감내하면서 반인류적 침략세력에 끝까지 저항했다. 이는 민족의 긍지라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정신적 자산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올해를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반파시즘을 대표하는 진영의 핵심적인 일원임을 확실히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우정’에 잠시 취해있는 동안에도 일본은 할 일 다 하고 할 말도 다 하고 있다.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에는 소위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위한 조례안이 제출되었다. 또 23일에는 주한일본대사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독도는 명백한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든 독도문제를 쟁점화하여 외교현안으로 끄집어내려는 의도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외교적으로는 정답인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우정’을 내세우고 속으로는 허튼 수작을 거는 그 씀씀이가 고약하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허튼 장난을 길게 끌면 ‘한·일 우정의 해’도 재고해볼 일이다. 올해는 2005년. 명성황후가 시해 된 지 1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신문방송학
  • 韓流 韓도 日도 아닌 잡종문화?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싱겁게도 ‘한류(韓流)’에 ‘한(韓)’은 없다. 그래서인지 호들갑스러운 외국의 반응에 우리 스스로가 당혹스럽다. 어쩌면 당혹스러워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이미 한류 뒤에 숨어 있는 무차별적인 자본의 욕망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한국문화의 자부심 운운하는 한류 ‘생산자’들의 합창과는 상관없이. 최근 몇 년간 아시아권을 휩쓸었다는 한류의 의미를 짚어 보는 학술대회가 열린다.24일 예정된 광주 ‘아시아문화심포지엄’의 ‘글로컬시대 아시아문화연구의 쟁점’이 그것. 여기서는 한류를 포함한 아시아의 문화교류에 대해 비판적 의견들이 쏟아질 전망이다. ●“아시아 국가간 친근감은 소수의 것” 아시아 영화 발전을 분석한 필리핀 국립대 롤랜드 톨렌티노 교수는 아예 “아시아영화 발전이 아시아에서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고 주장했다.50년대 필리핀 영화의 황금기,60년대 일본의 뉴웨이브,75년 필리핀의 뉴시네마,80년대 초 홍콩의 뉴시네마,90년대 후반 한국의 뉴시네마 그리고 2000년대 태국의 뉴시네마로 이어지는 아시아영화의 긴 흐름은 사실 미국의 일본 재건, 대공산 우방으로서 필리핀의 특권화, 홍콩·타이완의 금융중심지 부상,IMF위기 뒤 한국과 태국의 부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영화에서 관철되고 있는 할리우드 규범성이 그 증거다. 규범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다큐멘터리 영화집단’ 같은 독립집단이다. 일본 와세다대 이와부치 고이치 교수도 비슷하게 접근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끼리 느끼는 친근함은 공간적으로 가깝다는 것뿐 아니라 “유사한 부의 수준, 세계화된 소비문화와 생활양식을 공유한다는 동시대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류니 뭐니 해도 아시아에서 대중문화의 교류는 다국적 기업의 자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의 절대적 군사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적 틀을 넘는 것 같지만 혜택은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제공된다.” ●일본에게 한류는 ‘세련된 향수’ 성공회대 백원담 교수는 한류를 비롯한 아시아 문화교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백 교수는 한류가 일본에서는 ‘세련된 향수’, 동남아 등 개도국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선험”이기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로서는 긍정적이지만 “중화민족주의나 대동아공영권 같은 아시아블록화로 재영토화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일 미디어 합작품으로 끝날 수도 한류가 아시아의 진정한 소통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서 22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아시아 대중문화연구 국제 세미나’에서도 제기됐다. 성공회대 신현준 교수는 한국가요 ‘K-pop’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문화연구자 모리 요시타카의 ‘일식 한류’ 개념을 빌려 왔다. 일본문화도, 한국문화도 아니고 한·일 공동문화도 아닌 성립과 기원부터 잡종적 문화가 한류다. 문제는 뿌리가 없기에 아시아의 소통을 겉돌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신 교수는 “일식 한류는 역사에 대한 기억을 소거하는 양국 국영 미디어의 합작품으로 끝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비록 “진부하고 지루한 미학적 품질이 수치스럽더라도” 아시아의 역사를 다시 기억토록 한다면 한류를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북한核 해법 놓고 美·日 vs 韓·中 편갈리나

    북한核 해법 놓고 美·日 vs 韓·中 편갈리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이 지난 10일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중단을 선언한 이후 6자회담 참가국들은 열흘 동안의 초기 대응을 통해 크고 작은 입장 차이를 노출했다.‘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에는 모두가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특히 이같은 이견은 각 국의 기본적인 대북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해준다. ●‘냉전적’ 구도에서 출발 지난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첫 회의가 열릴 당시 6자회담은 한·미·일과 북·중·러가 마주보는 ‘냉전적’ 구도로 출발했다.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병행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한·미·일 3각 공조의 기본틀은 유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해 1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시점을 전후해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이 북한을 ‘포위’하는 ‘6-1’, 즉 5자회담 구도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자 5개국이 북한의 회담 복귀를 위해 강력한 압박을 가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양자회담 등 북한의 다른 요구에는 일절 응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19일 미국과의 외교·국방장관 합동회의를 통해 북핵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으며 공동 대응 방침도 재천명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인 한국 한국과 미국도 지난 14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장관간의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의 협력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비료지원 등 남북경협을 둘러싸고 입장차를 노출했다.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의 병행이란 원칙이 미국의 대북 압박 기류와 충돌한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또 북한에 얼마나 강한 압력을 행사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북한의 붕괴로 남한이 흡수통일을 하게 되면 미국 군 기지와 국경이 맞닿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북한 체제를 유지하려 하고, 그런 맥락에서 경제 제재나 강력한 외교적 압박을 가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미국보다는 북한 쪽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콘스탄틴 코사체프 두마(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18일 노보스티 통신과의 회견에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은 아무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현재의 구도로는 6자회담의 표류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본다.”면서 “대척점에 서있는 미국과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국들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6자회담 재개 등 북핵문제 해결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dawn@seoul.co.kr
  • 本社후원 韓·日수교 40주년 세미나

    本社후원 韓·日수교 40주년 세미나

    지난 19일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는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을 기획테마로 토론회가 열렸다. 서울신문이 후원하고 한국일본학회가 주최한 제70회 학술대회의 역사문화 파트 가운데 하나였다. 그동안 어학·문학 위주의 연구를 진행해오던 한국일본학회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일본학회는 1600명을 넘는 규모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일본학 연구자 모임이다. 그러나 그동안 제대로 된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일감정 탓에 일본을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일부 작용했다. 이번 역사문화 토론회의 좌장이자 새 학회장에 선출된 성균관대 구태훈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일본학을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봐야 한다.”면서 “한·일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겠다.”고 밝혔다. 2001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후쇼샤(扶桑社)교과서 파문은 여러 결과를 낳았다. 일본 우익에 대한 비판은 물론, 우리의 근현대사 연구성과와 역사교과서에 대한 자성론까지 낳았다. 그러나 올해 3∼4월로 예정된 일본 문부성의 역사교과서 검정 때 이런 파문은 또다시 재연될 조짐이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일본학회가 마련한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 토론회가 19일 오후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 앞선 주제 발표에서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는 0.039%의 채택률에 그친 후쇼샤 교과서 대신 50%이상의 채택률을 기록한 도쿄교과서를 분석, 도쿄교과서도 후쇼사 못지않다는 결론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경기대 김기봉 교수는 미조구치 유조의 ‘인식의 공유’에 빗댄 ‘문맥의 공유’를 내세워 한국적인 대응을 비판, 참가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종대 오성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이외에도 고려대 최덕수 교수, 경복고 현명철 교사, 경기대 남상호 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김종식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순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이신철 연구원이 참가했다. 김기봉 역사교과서에 대해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운동’으로서가 아니라 ‘학술’로 접근해야 한다. 정재정 냉전 이후 유일하게 동아시아에서만 내셔널리즘이 강고하다. 더구나 관련 나라가 모두 연동되어 있어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교과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단, 문제를 볼 때는 일본 교과서 시장의 경쟁관계라는 자본의 논리와 납치·수교·미국의 압박으로 얽힌 대북관계문제 같은 정치적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 남상호 후쇼샤 교과서 처음에 나오는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이라는 글이 문제다. 역사상대주의를 천명하고 있는데 굉장히 기술(테크닉)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편의적으로 적용한다는 데 있다. 오성 개인적으로 보편주의를 내세워 일본을 비판했더니 일본학자들이 굉장히 냉소적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역사에서 보편적 인식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김기봉 사실과 해석을 나눠 생각해야 한다. 사실은 연구해서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해석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후쇼샤 서문은 랑케의 역사주의 입장과도 비슷한데 아주 훌륭한 문장이다. 우리 역사책은 그렇지 않다. 우리 역사책은 객관성을 전제로 두는, 신(神)의 사관을 내세우고 있다. 주입식 역사교육은 비판받아야 한다. 김종식 기본적으로 일본역사 해석은 문부성 편수관들이 맡고 있다. 신의 관점을 비판했는데 행정관료인 편수관이 일본에서는 신이다. 좋은 지적이지만 일본 역사교과서 역시 편수관이 짜준 틀 내에서만 움직인다는 게 문제다. 정영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필리핀에는 후쇼샤 내용이 그대로 실린 교과서를 쓴다. 인도네시아 학자들은 아예 ‘역사학 자체가 해석학’이라면서 ‘우리는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일본연구자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지 않나 하는 고민이 앞선다. 이신철 운동과 학술의 병행을 얘기했는데 물론 학문적 접근도 중요하다. 그러나 홀로 서있는 학문은 없다. 강제동원의 경우 피해자는 해마다 죽어가고 일본은 자료를 숨긴 채 죽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뛰어넘어 인식을 공유하자는 것인가? 보편주의도 마찬가지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보편주의는 다르다. 이라크전을 보면 잘 드러난다. 그 대신 ‘평화공존’을 내세워야 한다. 지금 일본측과 접촉해보면 머리 좋은 청년들은 우익단체에 다 가고 진보단체에는 노인들밖에 없다. 진보진영이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서다. 반면 피스보트 같은 평화단체에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이들은 동남아 각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와중에 일제시대 피해자들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한다. 우리도 이런 걸 제시하지 못한 채 반일만 내세우다가는 자멸할 수 있다. 김기봉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민족주의는 포기해야 한다. 일본도 여러 측면이 있다. 일본 우익이면서도 욘사마에 열광하는, 그런 복합적인 존재다. 이런 사람들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해야 한다. 오성 예전에 후쇼샤 서문을 보고 개인적으로 역사학 훈련이 덜 됐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하니 당혹스럽다. 최덕수 내세우는 명분·이론과 드러나는 사실·역사상을 구분해야 한다.2001년 후쇼샤 교과서를 보고 일본 우익이 굉장히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받아 안심한 적이 있는데 계속 그렇게 간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정재정 학자들이 흔히 접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사회의 비주류이고 별종이며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없다. 그걸 알아야 한다. 보통의 일본인은 내셔널리즘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 여기에다 천황제 얘기까지 나오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 몸담고 있는데 이 모임의 일본 학자들은 그래도 중도쪽을 택한 ‘국제파’들인데도 대화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역지사지는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국제사회의 여건도 좋지 않다. 김종식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일본은 지역운동이 굉장히 발전해 있다.2001년도 지역운동과의 연계가 상당히 힘을 발휘했다. 이들과 밀착해야 한다. 이신철 두 개의 칼을 떠올렸다. 시민·지역단체와는 ‘평화공존’으로 연대를 이끌어내야겠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달려들어야 한다. 어떤 장기적인 방향성으로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자는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지만 현실 운동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근대화 이론가 후쿠자와 유키치 ‘동아시아와의 연대’ 사상가 아니다” 한국일본학회 비판 일찍이 근대를 향한 욕망에 경도된 춘원 이광수가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셔서 이러한 위인을 내리셨다.”고 평가했던 일본 근대화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메이지시대 사상가임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일본의 미래를 제시했던 계몽사상가이자, 게이오 대학을 설립한 교육가로서 이름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 후쿠자와는 ‘탈아론(脫亞論)’으로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고 비판받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 후쿠자와에 대한 이런 평가를 달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후쿠자와의 제국주의적 측면은 비판하되 그의 사상사에서 ‘동아시아와의 연대’ 부분을 부각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찬미했던 후쿠자와의 메이지의 중·후기 글들이 후쿠자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일본 우익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도 한몫했다. 이런 관점은 아시아주의 혹은 아시아연대 문제를 고민하는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때’에 불과했더라도 후쿠자와는 정말 일본과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했을까. 고려대 일본학 연구센터 박삼헌 연구원은 ‘근대 일본의 대외관과 위기론의 구조’라는 글을 통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후쿠자와 사상사에 대한 기존 연구가 아시아와의 ‘연대-개혁-탈출’로 변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정리한 뒤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서구열강의 압도적인 힘 앞에 노출된 상황에서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순차적으로 변해갈 수는 없다.”면서 “후쿠자와의 연대는 진정한 연대라기보다 불쌍하다는 연민과 우리도 저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후쿠자와 논의의 출발점은 강대한 서양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하지만 내용은 중국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었고, 동아시아의 개혁 대상은 조선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의 조선개혁이 실패하자 터진 청·일전쟁을 후쿠자와가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규정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의 탈아론은 서구문명을 따라잡자는 것만이 아니라 아시아 침략을 당위로 삼는 논리인 셈이다. 박 연구원은 특히 “이미 메이지 초기 문헌에서 이런 논리가 등장했다.”고 말해 후쿠자와 저작의 진위논란과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서울대 최장근 교수 역시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은 홋카이도와 유구(오키나와)를 통합했고 이것이 제국주의 팽창으로 이어졌다.”면서 “후쿠자와의 논리는 팽창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균관대 구태훈 교수는 “개항 직후 일본은 교린하는 아시아의 소국이냐, 아니면 대국지향이냐 하는 국가 진로를 두고 심각히 고심했다.”면서 “결국 일본은 대국지향을 선택했는데 이런 근대국가설계 논란과 함께 묶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韓·美외교라인 난청 딴청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한국과 미국 정부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양국간의 의사소통 장애는 대북 정책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구조적인 현상이어서 단기적인 치유가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직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반 장관은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및 폴 울포위츠 부장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나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재확인했다. ●美언론 거듭확인에 또 부인 그러나 반 장관이 워싱턴에 머무는 기간부터 양국 사이의 이상 기류는 감지되기 시작했다.11일 체니 부통령이 “북한에 비료를 주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반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그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반 장관이 14일 귀국한 직후 다시 울포위츠 부장관이 같은 요구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외교부는 “사실과 다르다.”며 다시 부인하다가 마지못해 “공식적으로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꼬리를 내렸다. 왜 이같은 상황이 벌어졌을까. ●“美우회적 요구 한국측 흘려들어” 한·미 양국의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두가지 해석을 제시했다. 첫번째는 한·미간 커뮤니케이션 자체의 문제이다. 미국측에서 우회적이고 완곡한 용어(Under-reaction)로 그같은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한국측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교에서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고 이를 각자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일반론을 전제로 “다른 언어,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다보면 각자 ‘자기 인식의 포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라이스 장관이 반 장관과의 회담에서 대북정책의 세가지 원칙을 제시했으나 회담 뒤 반 장관이 브리핑한 원칙과 미국측이 추후에 밝힌 원칙에는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내정간섭등 비난우려 공개 거부” 두번째 분석은 국내정치 및 남북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미국측이 분명히 비료 지원 반대의사를 전달했고, 한국측도 이를 접수했지만 그 파장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았다는 관측이다. 미국의 비료 지원 반대 사실이 공개될 경우 한국내 일각에서 “내정간섭이냐?”는 비난이 제기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북핵 문제보다는 반미가 이슈화되는 엉뚱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요청에 따라 비료지원이 중단된다면 북한의 반응이 어떨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헤리티지 재단의 발비나 황 동북아정책 분석관은 “한·미간 커뮤니케이션에도 큰 문제가 있지만 이번 일은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황 분석관은 “한국은 대북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바꾸라고 요구할수록 양국간의 오해와 긴장은 커질 것”이라면서 “양측 모두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韓·美, 외교 해결 합의 대북 경제제재엔 이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워싱턴 방문 시기는 묘하게도 북한의 핵 보유 선언과 맞아 떨어졌다. 북한은 시간을 재기라도 한 듯 지난 10일 반 장관이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 보유 및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반 장관의 워싱턴 방문은 꼭 필요한 시기에 미국의 고위 외교정책 담당자들과 직접 만나 북핵 문제를 협의하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미국측의 대응방향도 가늠해 보는 기회가 됐다. 한·미 양국은 일단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외교적 해결이라는 기본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에 따라 앞으로 단기적, 중·장기적으로 어떤 대응을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 견해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등 압력 문제이다. 반 장관은 딕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대북 경제협력 상황을 먼저 설명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묻지도 않은 경협 문제를 굳이 우리측이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것이 남북교류에 대한 양측의 미묘한 시각차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최근 뉴욕타임스가 북한의 6불화우라늄 수출과 미 정부의 대북 제재 방안 등을 잇따라 보도하는 것이 강경파들의 의도된 ‘흘리기’는 아니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의 6불화우라늄 수출 기사를 당분간 게재하지 말도록 취재기자에게 요청까지 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한 평가 및 대응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1,2기 보유보다는 핵 물질 수출을 막는 데 더욱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 핵 물질 유출보다는 핵무기 보유를 막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양국의 전략적 목표가 다른 상황에서 전술적 대응의 차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주미대사관 고위관계자는 오는 5월로 예정된 핵확산금지조약(NPT) 총회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총회에서 북핵 문제가 보고되면 프랑스와 영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중국도 국제사회가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할 경우 혼자서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dawn@seoul.co.kr
  • 韓·美 전문가 올여름 더위 논쟁

    韓·美 전문가 올여름 더위 논쟁

    1880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올해가 가장 무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전망을 놓고 한국과 미국의 두 NASA 출신 기상학자 사이에 이메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NASA의 고다르우주항공센터(GIFC)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기상청 기후예측과장 박정규 박사는 14일 미국 뉴욕 고다르우주연구소(GISS) 제임스 한센 박사의 올해 기상 예측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센 박사는 최근 온실가스와 수증기 증가, 엘니뇨 현상 등으로 올해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적도 부근 태평양상에서 발생하는 엘니뇨로 지구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 온실효과 때문에 지구에 흡수된 태양복사에너지가 제대로 방출되지 못해 지구의 온도가 가장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과장은 지난 11일 한센 박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메일을 그에게 보냈다. 박 과장은 “당신이 발표한 보고서는 한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한국의 언론이 제기하는 많은 의문에 대해 대답할 위치에 있어 메일을 보내게 됐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현재 대부분의 우수한 엘니뇨 예측모델들은 올해 6월까지 엘니뇨가 크게 발달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7월 이후 엘니뇨 예측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2005년 기온을 전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난 10년 동안 지구로 유입되는 태양복사에너지가 거의 일정하거나 다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 상황에서 2005년 기온이 상승한다는 상관관계를 찾기는 어렵다.”면서 “당신의 견해인 2005년 지구기온의 상승은 지구에너지 불균형 이론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불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한센 박사는 13일 보내온 답신 메일에서 박 과장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더 강력히 반박했다. 한센 박사는 “20세기에 강력했던 엘니뇨가 나타난 1998년 기온을 깨기는 어려울지 모르며 태양복사에너지가 감소 추세에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최소한 2005년이 1998년 다음으로 지구기온이 높아질 것으로 보며 최근 지구기온의 상승 경향을 보면 2005년 기온이 98년 기록을 깨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태양복사에너지의 감소 추세를 매년 증가하는 이산화탄소량이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이며 지구에너지의 불균형은 기온상승을 초래하고 거대한 화산에 의해 지구가 냉각되는 효과를 능가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결국 두 학자는 이산화탄소와 지구기온의 상관관계, 엘니뇨 예측, 전 지구적 기온상승의 영향 등 핵심 쟁점에서 모두 상반된 견해를 펴고 있는 셈이다. 박 과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구가 가장 더울 때에도 한반도는 오히려 추운 여름인 ‘냉하’(冷夏)인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지구 연평균 기온이 역대 2위와 3위를 기록한 2002년과 2003년 우리나라 여름 평균기온은 각각 23.1도와 22.4도로 예년보다 1∼2도씩 낮았다. 연 평균기온도 각각 12.7도와 12.6도로 가장 높았던 1998년 13.3도보다 낮았다. 이는 여름철 기온이 상승할수록 오히려 수증기 증발량이 늘어나 강수량이 많아지고, 구름이 태양열을 차단하면서 기온과 강수가 서로 상쇄작용을 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박 과장은 “올해 덥다는 것을 사상 최대의 폭염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北 核보유 공식선언 파장] 韓·美 남북경협 시각차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워싱턴을 방문중인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딕 체니 부통령을 면담한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체니 부통령이 대북 비료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물론 면담 당사자인 반 장관도 즉각 이를 부인했다. 반 장관은 12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체니 부통령뿐만 아니라 이번 워싱턴 방문에서 만난 미국 정부 관계자 가운데 누구도 비료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 장관을 만난 미 정부 인사들이 비료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고 해서 대북 비료 지원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미 정부 관계자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북 지원과 남북 경제협력이 북핵문제 해결의 걸림돌”이라는 말까지 해왔다. 중국이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하고, 한국 정부가 남북경협을 통해 ‘현금’을 주기 때문에 북한이 경제적으로 지탱하고 있으며, 대북 압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체니 부통령이 반 장관과의 면담에서 비료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남북 경협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반 장관은 11일 면담 직후 결과를 설명하면서 체니 부통령이 남북경협 현황에 대해 질문했다고 소개했다. 특파원들이 “체니 부통령이 어떤 맥락에서 남북경협에 대해 물었느냐.”고 묻자 반 장관은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한 것”이라면서 “상황평가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더 이상 답변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미간에 남북 경협에 관한 시각차가 크다.”면서 “개성공단 문제가 한·미 갈등의 한 요소”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과는 별개로 정부 내에서도 북한의 핵개발과 경협의 ‘상관성’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실제로 확인되는 상황에서도 남북 경협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남북 협력관계와 북핵문제를 연계하지는 않지만 상호 균형을 맞춰 추진해 나간다고 밝혀 왔다. 따라서 북한의 핵보유 선언에 대한 정부와 미국 등 관계국간의 정보 교환 및 평가가 마무리되면 대북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우선적으로는 북한이 요청한 50만t의 비료 지원 여부가 주목된다. 또 대표적인 경협 사업인 개성공단 조성과 금강산 관광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 재처리 힘든 핵연료 韓·美 공동개발 추진

    우리나라와 미국이 핵무기로 쓸 수 없는 핵연료 공동개발에 나선다. 과학기술부는 미 에너지부와 최근 이같은 내용으로 ‘한·미 원자력 연구협력 약정부속서’를 수정했다고 13일 밝혔다. 과기부 관계자는 “기존 중수로 및 경수로형 원자로의 핵연료는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어 핵 비확산 정책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면서 “이번 부속서 수정을 통해 한·미 양국은 핵 확산에 저항성을 가진 신형 핵연료를 공동개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중수로의 경우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저렴한 비용으로도 핵무기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경수로도 천연 우라늄(U235 함유율 0.71%)이 아닌 농축 우라늄(〃 3∼5%)을 사용, 농축률을 90% 이상으로 높일 경우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 즉 이같은 재처리 또는 농축과정이 불필요하거나 쉽지 않은 핵연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北 核보유 공식선언 파장] 담담한 美… 속타는 韓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의 갑작스러운 핵 무기 보유 선언으로 14일(현지시간)로 예정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회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조기 개최 방안을 협의하려던 이번 만남은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 따른 대응책을 협의하는 자리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 자리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양국과 6자회담 참가국들의 보다 중·장기적인 대응 전략이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조지 부시 대통령 재선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관계의 구도는 부시 1기와는 그림이 달라졌다. 미국의 대북 강경대응을 한국이 말리는 것이 부시 1기 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부시 2기에서는 오히려 북핵문제 해결을 미루려는 미국 정부를 한국 정부가 잡아당기려는 쪽에 가깝다. 미국은 북핵문제와 관련, 현상유지만 해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지만 한국으로서는 북핵문제로 인한 정치·경제·사회적 기회비용이 산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해결을 (지난해 말 한·미 정상회담의 합의대로) 부시 행정부의 최우선 정책으로 삼을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느냐가 한국측으로서는 중요한 과제다. 일단 부시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둔다면 북·미 양자회담 개최나 고위급 특사 파견과 같은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두번째는 북핵문제에 대한 양자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한국과 핵 비확산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반드시 일치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양국간에는 이견 표출이 너무 잦고 거칠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계속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다. 그럴 경우 미국은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이 모여 회의를 여는 이른바 ‘6-1’ 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11일 “6자 회담에 나갈 수 있는 명분과 조건이 조성된다면 나가겠다.”면서 “미국이 우리와 직접대화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변화의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 차석대사는 이날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빌 클린턴 전임 미 행정부에선 북·미 직접대화 통로였던 ‘뉴욕채널’이 부시 행정부에선 거의 가동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래선 우리와 공존하려는 의사가 있는 걸로 볼 수가 없다.”고 미국과의 양자 대화 재개 의사를 다시 확인했다. dawn@seoul.co.kr
  • 韓·美 “6者 조속개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조속히 개최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45분쯤 부시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10여분 동안 북핵문제, 이라크 총선결과 등의 상호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통화는 부시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정상의 통화는 지난해 11월5일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의 재선 축하전화 이후 3개월여만이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10여 차례의 통화가 이뤄졌다.”고 두 정상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돼야 하며, 한·미간 협력을 포함해 모든 참여국들이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에 동의를 표시하면서 “세계평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밝혔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김효석의원 입각제의 파문] 盧 “韓대표도 대통합 정치 조언”

    [김효석의원 입각제의 파문] 盧 “韓대표도 대통합 정치 조언”

    ‘김효석 교육부총리 입각 파문’이 정치쟁점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노 대통령은 23일 오전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을 찾아 30분 동안 합당용이 아니라는 점을 집중 해명했다. ●‘수도이전’후 첫번째 춘추관 방문 노 대통령이 춘추관을 찾은 것은 지난해 6월18일 행정수도이전 국민투표 실시문제가 핫이슈로 떠올랐을 당시에 이어 두번째다.‘김효석 파문’이 심상치 않다는 청와대의 진단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나는 선의로 한 일인데 교육부총리 인사를 두고 이런 저런 오해들이 있는 것같아 해명좀 해드리러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합당용·공작이란 야당반발에 대한 해명, 김효석 의원에게 교육부총리를 타진한 배경, 인사검증의 어려움 등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교육부총리를 타진한 이유로 대략 다섯가지를 들었다.“김 의원하고 정책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잘 안다.”면서 개인적인 인연을 설명하고, 산업적 측면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경제통’인 김 의원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장관은 전문가를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역시 장관은 정치인 장관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정책활동 많이해… 적절한 인물” “교육부총리를 경제계에서 찾으라.”는 일부 언론의 조언을 참고했고, 포용하는 대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조언도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인재들을 놓고 검증을 해보면 걸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면서 인력운용의 한계와 인사검증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검증과정에서 정보가 나가니까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아 취재를 하고 어떤 사람은 취재에서 빠져 여러분들 신경이 좀 날카롭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인사문제가 특종이 되고 오보가 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도 협력할 수 있도록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언론과의 협력관계를 강조해 주목된다. 한편 간담회 일정은 이날 오전에 갑자기 잡혀, 근무조가 아닌 청와대 참모들은 휴식을 취하다가 부랴부랴 출근했다. 청와대는 간담회 시작 50분전인 오전 10시10분쯤에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간담회를 알렸고, 일부 기자들은 뒤늦게 연락을 받고 춘추관으로 나왔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韓日 한달간의 외교 냉전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韓日 한달간의 외교 냉전

    ‘문세광 사건’은 한·일 관계를 단교 직전 상황까지 내몰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 일본의 미온적인 수사협조 등 ‘성의 부족’에 분개했다.8월29일자 외무부 정보보고는 “일본 경시청은 육영수 여사의 저격이 ‘과실 살인’인데도 한국 수사당국이 짜맞추기 수사로 무리한 법 적용을 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日, 對韓접촉 중단 게다가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일감정으로 양국관계가 최악의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도 대(對) 한국 상담(商談)을 유보했다. 외무부는 “일본의 지원없이 한국경제가 지탱하기 곤란할 것이라는 오만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외교부는 “외교 최우선 과제로서 (주재국에) 일본을 압박해줄 것을 요청하라.”고 재외공관에 전문을 보낸다. 앞서 주일 한국대사는 8월24일 다나카 총리를 찾아가 일본의 적극적 수사협조 등을 촉구하는 김종필 국무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정부는 다나카 총리의 답신에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조총련에 대한 철저한 수사 등의 언급이 포함될 것을 기대했다. ●韓, 美에 압력행사 요구 그러나 주한 일본대사는 9월8일 외교부 장관을 예방,“특사를 보내면 사죄 사절이란 인상을 주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9월9일 김종필 총리에게는 “사죄특사의 파견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친서에 다른 현안을 언급하는 것이 어떠냐.”고 ‘황당한’ 안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없자 9월4일 함병춘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 하비브 차관보를 비밀리에 만난 데 이어 김동조 외교부장관도 5일 에릭슨 주한미국 대사대리를 만나, 일본에 영향력 행사를 부탁한다. 한국 정부의 태도가 강경하자 미측은 우려를 표시했다. 하비브 차관보는 “포드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한국정부 입장을 브리핑하겠다.”면서도 “미국은 모두 우방인 두 나라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조용히 일본측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9월10일 유정회 소속 최영철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 일본정부로부터 11일까지 아무 회답이 없으면 12일에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최후 경고를 일본에 발한 뒤 주일대사와 외무장관의 사표를 받든가 하는 조치를 하고, 다음에 단교조치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美 “단교땐 한국 안보 위험” 이에 주미대사관 박근 공사는 12일 하비브 차관보를 만나 거듭 같은 요청을 하지만, 하비브는 격앙된 어조로 “미국은 할 만큼 했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박 공사는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정부는 다시 하비브에게 전화를 걸어 “몇시간 내에 요구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예정된 코스’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한국의 방위는 일본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만큼 한·일 관계가 깨지면 한국 방위도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가 돌아왔다. 하비브는 한국의 조총련 규제요구는 비합리적이라며 일본의 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고, 결국 한·일협정의 주역이었던 시나 특사 일행이 방한해 답신을 전달하면서 한달 가까이 지속된 한·일 외교갈등이 봉합된다. 역시 이 과정에도 한·일협정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의 중재가 있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韓·日협정 공개 대책 논의 민관공동위원회 구성 착수

    정부는 19일 한·일협정 관련문서 공개에 따른 종합대책을 논의할 ‘민·관 공동위원회’를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발족시키기로 하고 인선에 착수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대책 민·관 공동위원회’는 재경부·외교부 등 관계부처 장관과 법률전문가·사학자·사회지도급 인사 20명 안팎이 참여, 피해자 보상 여부를 포함한 후속대책을 논의하게 된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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