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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의 소리] 유명선수 軍복무기간 일반인과 형평 안맞아

    언론에서 국가대표급 운동선수들의 입대·퇴소 등 병역 관련 기사를 접할때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얼마 전 입대했다가 다시 해외로 나간 스타야구선수 B씨 복무기간도 겨우 6주에 불과했다.그 짧은 기간을 보내면서 국방의 의무에 충실함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다. 현역으로 제대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6주 만에 실질적인 군사훈련을 받기란 불가능한 일이다.군인 입장에서 볼 때 이런 기사는 차별 의식만조장한다. 운동선수들에 대한 확실한 군복무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명확성이 없기 때문에 운동선수들이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한 사례도 발생했다.군복무 문제에 대한 재고를 통해 형식적이 아닌 명백하고 투명한 군대문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노지호[충남 아산시 둔포면 둔포리]
  • [기고] 軍복무에 대한 국가적 예우

    지난해 12월23일 헌법재판소가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 장병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이후가산점 제도에 대한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 제도는 학업과 취업 준비에 한창 열중해야 할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군 복무를 수행하는 동안 불가피하게 받는 불이익을 국가적차원에서 보상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헌법 제 39조 2항에 명시된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지난 61년부터 시행돼왔다. 이 제도는 전역 장병인 남녀 모두에게 적용돼 왔으며 다소 유형은 다르지만 미국과 대만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분단되어 있고 남북한의 병력 185만여명이 대치하고 있는 안보위험지대다.국가를 보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적령기에 이른 심신이 건전한 청년들을 소집하여 국방의 임무를 전담시키고 있다. 장병들은 입대 후 전역 때까지 최소한 26개월 이상을 열악한 복무환경에도불구하고 부여된 임무 완수에 전념한다.복무기간 동안 생업과 학업이 일체중단될 뿐만 아니라 취업 준비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는 남녀의 성차별 관점이나 군에입대하지 못한 소수의 젊은이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라는 단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안보의 최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는 장병들의 사기고양 측면과 이들에 대한 국가적 보상,나아가 국가안보를 위한 국민들의 참여의식과 병역의무 수행의 중요성 인식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장기간의 군 복무가 전역 장병들의 취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가산점 제도 위헌판결 이후 실시된 지방공무원 시험에서 전역 장병 대다수가불합격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가산점 폐지 결정은 민주주의 원리에서 강조되고 있는 실질적 평등의 개념과 위배될 뿐만 아니라 현역 장병들에게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야기하며 군복무에 대한 자긍심을 상실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궁극적으로 국가안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또한 국방부의 병무비리 척결노력 및 병역실명제 실시 등 일련의 개혁조치로 성숙돼 가던 병역의무 이행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일거에 붕괴될 수도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같은 자식이라도 글공부를 하는 아들에게는 따뜻한 밥상을 받게하고 무술을 연마하는 아들에게는 마당을 쓸게 했다.무(武)를 천시하고 안보를 등한시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4,300여년의 역사 동안 930여차례의 외침을 받았다.특히 지난 100년간 청일전쟁,러일전쟁,한일합방,태평양전쟁,6·25전쟁 등 국가와 민족의 존망이 걸린 다섯번의 큰 전쟁을 겪었거나 직·간접적으로 그 전쟁의 중심에 위치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이같은 민족수난의 교훈을 되돌아보더라도 장병들의 복무의욕과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군필자에 대한 국가적 보상은 마땅히 배려돼야 한다. 강준권 국방부 정훈공보관
  • 의원28%·장차관23% 軍면제

    국회의원은 10명 중 3명꼴로,장·차관은 10명 중 2명 정도가 질병이나 그밖의 사유로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일반인의 평균 병역면제율이 36.5%인 점을 감안하면 고위 공직자의 병역면제율은 상대적으로낮다. 병무청은 지난 5월 제정된 ‘공직자 등의 병역사항 신고 및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고대상자로 규정된 고위공직자 본인 및 직계비속 1만2,674명의 병역사항 신고내용을 건국 이후 처음으로 관보에 공개했다. 관보에 따르면 신고 및 공개대상 고위공직자 5,885명 가운데 현역 복무를마친 사람은 69.2%인 4,070명,방위소집 664명(11.3%),면제 1,027명(17.4%)이었으며 병역의무가 없는 여성은 124명(2.1%)이었다.신분별 면제비율은 국회의원이 28.2%(81명)로 가장 높고 ▲외무공무원 26.7%(31명) ▲장·차관 23.6%(21명) ▲1급 공무원 21.8%(45명) ▲검찰 18.7%(9명) ▲대통령 비서실(경호실 포함) 17.4%(4명) ▲시·도지사 12.5%(2명) 등의 순이다. 우득정기자 djwootk@
  • [21세기 여성시대](4)군인

    지난 97년 개봉됐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지 아이 제인(G.I.Jane)’은 오락물에 불과하다는 일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금녀(禁女)지대인 해군특수부대(SEAL)조차 이제는 벽을 허물어야 할 때가 왔음을 보여줬다.1차대전때 여성 군입대가 공식화되고 2차대전때 병과(兵科)확대가 이뤄진 이후 불과 50여년만에 여성의 군(軍)진출은 비약적인 속도로 이뤄져왔다.여성은 사병에서부터 장관까지,단순 사무직에서 전투기조종사에 이르는 거의 모든 병과에 진출,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이같은 개방화 속도로 미뤄볼때 21세기여군의 역할증대는 거역할수 없는 추세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사상 첫 여성 학과장직을 맡았던 실라 위드넬 박사는미 역사상 최초의 공군장관을 역임한 인물.그녀는 93년 30년간 몸담았던 강단을 떠나 현역군인만 38만명인 공군을 거느리고 군현대화,조달부문 개혁 등탁월한 업적을 쌓았다.97년 퇴임,강단으로 돌아간후 지금까지도 이름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예비역 해군소장인 로버트 해자드는 미군내 최고위 계급 여성으로 알려져있다.작전,훈련,인사 등 다양한 경험이 그녀를 해군 인사참모부장까지 이끌어갔다.이들은 현재 미군내 여성의 지위와 여군의 미래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역사상 여성의 군대 진출은 기록에 남아있는 것만도 기원전 1300년전 중국상왕조 우딩(武丁)의 푸하오 왕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그러나 정식 여군으로 복무하게 된것은 1차대전때부터.그 전까지 여성은 남자로 변장한 다음에야 군인이 될 수가 있었다.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던오를레앙의 처녀영웅 잔 다르크도 ‘남자’로서 프랑스 군대를 지휘했지 여군은 아니었다. 여성이 정식으로 군에 입대할 수 있었던 것은 1차대전때.물론 간호와 사무에 한정됐으나 대우는 ‘최고’였다.1차대전말 미 여군 간호장병만 총3만4,000명에 달했다.여군 병과확대가 이뤄진 것은 2차대전때로 수송,기계수리,항공,첩보 등에까지 진출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50만여명의 여성이 암호해독과 레이더기지 운용 등 지원업무는 물론 적지에 투입돼 정보수집과 후방교란업무를 수행하는 특수작전도벌였다.인도계 영국인 베굼 누르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낙하된 최초의 여성스파이였다.암호명 ‘메덜린’으로 암약하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앞서 1년여동안 정보를 보내다 독일군에 발각돼 44년 처형됐다. 유태계 폴란드인인 한나 세네쉬 역시 유고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23살의 나이에 총살된 비운의 주인공이다. 러시아 여군들은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80만명의 여군중 70%가 전방에서 독일군과 교전을 벌였다.티토의 빨치산 투쟁에는 200만명의 여성이 가담했다가28만2,000명이 처형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여성은 독립투쟁의 선봉장이었다.나이지리아에서1929년 일어난 ‘아바봉기’는 영국의 식민통치에 반기를 든 ‘여성의 전쟁’으로 유명하다.국민당과 싸웠던 중국공산당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장정에는 35명의 여성당원이 끝까지 길을 같이 했다. 현재 미군내 여군은 육군과 해병대만 각각 3만2,000명과 4만8,000명.공군장교의 15%,사병의 10%가 여성이다.아파치 공격헬리콥터를 몰며 탱크를 호위하는 여군의 모습은 이제 더이상 생소하지 않다.‘사막의 폭풍’작전때만 4만1,000명 여군이 참전했다. 박희준기자 pnb@ * 韓·日 여성지도자 세미나 개최 여성의 힘을 빌어 ‘21세기 한-일관계’를 새롭게 모색해보려는 대규모 한일(韓日) 교류행사가 열린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회장 이춘호)은 창립 30돌을 맞아 일본 여성 지도자 500여명을 초청,오는 24일∼26일까지 서울 힐튼 호텔에서 양국 여성지도자 세미나를 가진다. 세미나 주제는 ‘21세기 여성의 정치적 역할’.한일 여성국회의원을 비롯해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의 배우자,학계 및 여성단체 대표,여성 경제인,여성 언론인 등 한일 여성지도자 1,000여명이 참석하는 이번 세미나는 여성계최초의 대규모 한일 양국교류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세미나는 일본 자민당의 모리야마 마유미 의원을 비롯,양국 모두 초당적인 입장에서 여성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해 양국 여성정치발전에 관해 진지한토론을 열 예정이다. 구체적인 논의과제는 제1주제인 ‘새천년을 향한 여성의 정치세력화’와제2주제인 ‘21세기 여성의 가치변화를 주도할 주요 요인’.이중 제1주제에대해선 ▲21세기 정치세력으로서의 여성의원의 비전(김정숙 국회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정치인 배우자는 정치자원이 될 수 있는가(김정옥 이해찬 국회의원 배우자)▲여성지방의원과 생활정치의 이상(안상현 강원도 의원) 등의소주제로,제2주제와 관련해서는 ▲멀티미디어를 통한 여성의 가치변화(신낙균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한일대중문화와 여성(하윤금 방송진흥원 연구원)▲사이버시대의 여성경제활동에 대한 전망(최영희 내일신문 발행인)▲여성의 정보화와 정치세력화(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등의 소주제가 토론된다.일본측에서도 각 1인이 발표자로 나선다. 특별행사로는 참가비(각 10만원)로 마련한 장애인 전용버스 증서(1억2,000만원)를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 전달하는 뜻깊은 행사와 함께 이번 세미나를위해 일본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야시로 에이타(八代 英太) 일본 우정장관 등에 대한 공로패 수여식이 있을 예정이다. 연맹의 이춘호 회장은 “한일 여성지도자들의 잦은교류를 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양국 여성이 진정한 동반자로서 여성문제 뿐 아니라 제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2000년에는 일본 삿뽀르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한일 양국 여성지도자 교류세미나를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경옥기자 ok@ * 한국 女軍의 어제와 오늘 한국 여군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50년 9월 피난지 수도 부산에서 여자 의용군 491명으로 창설됐다.당시 여자 의용군은 정보수집,수색활동을 비롯,군가보급,간호활동을 벌였다.의용군은 곧 해체되고 51년 육군본부에 여군과가 설치돼 여군에 대한 인사행정업무를 처음으로 다루게 된다. 여군의 독자적 훈련기관인 여군 훈련소가 서울 서빙고에 창설된 것은 55년. 이후 여군은 여군처로 개편(59년)되고 70년대 들어 여군훈련소와 여군대대를예속부대로 한 여군단으로 확대되는등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기갑,포병을뺀 모든 병과에서 남자에 못지 않은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여군은 간호장교 800명을 포함,2,000명 가량.창설이후 2만명의 여군이배출됐다.엄옥순(嚴玉順·43)여군학교장과 민경자(閔慶子·47) 육군본부 여군담당관이 현역중 최고직위인 대령으로 재직하고 있다.예비역으로는 13대여군 병과장을 지낸 정영숙(鄭瑛淑) 여성단체협의회 수석부회장과 김화숙(金和淑) 재향군인회 여성회장이 사회에서 활동중이다. 여군의 최대숙원은 장군 배출.엄옥순·민경자 대령이 입대 26년이 되는 2001년 육사 31기와 함께 장군진급심사 대상에 들어간다.보수적인 군문에서 최초의 여성 장군이 탄생될지 관심을 끈다. 황성기기자 marry01@ *역대 최고의 女戰士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여전사(女戰士)는 누구인가.미국의 인터넷 정보제공 업체인 ‘네트 사라소타’는 프랑스의 잔 다르크,중국의 화무란(花木蘭),미국의 몰리 피처,베트남의 트룽 자매를 꼽았다. 잔 다르크는 15세기 백년전쟁 때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험에 놓인 나라를구해낸 프랑스의 여걸.소작농의 딸로 군대를 이끌고 오를레앙 전투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둬 영국의 침략야욕을 분쇄했다. 1429년 영국군에 의해 포위된오를레앙에 군대를 이끌고지원을 나간 잔 다르크는 위험을 무릅쓰고 선두에서서 병사들을 독려,프랑스군의 사기를 높여 영국군의 항복을 받아냈다.1920년 5월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성인으로 추증됐다. 화무란은 5세기 중국 북위(北魏)시대때 흉노족의 침입으로 강제 징집령을받은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하고 전쟁터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미국의월트디즈니사가 화무란을 ‘뮬란’이라는 제목의 만화영화로 제작,98년 전세계에 개봉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특히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그해 중국 방문전 이 영화를 보고 동양적 충효사상에 감명을 받아 중국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미 독립전쟁 때 맹활약한 몰리 피처는 본명 메리 매컬리보다 별명 ‘몰리피처(물주전자 몰리)’로 더욱 유명하다.남편 헤이스와 함께 뉴저지의 몬머스 전투에 참가한 그녀는 쉴틈없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부상병과 갈증에허덕이던 병사들의 목을 축여줘 이 별명을 얻었다.포병인 남편이 쓰러지자자신이 직접 포수가 돼 싸움이 끝날 때까지 싸웠다. 베트남의 트룽 자매도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여전사들.트룽 트락과 트룽니 자매는 1세기 중국 후한(後漢)의 지배를 받고 있던 베트남의 공주들이다. 중국군이 트락을 성폭행하고 남편을 살해하자 8만명의 반군을 조직,거대 중국에 대항했다.뛰어난 게릴라 전으로 당시 중국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빼앗은 것은 물론 세력권을 중국 남부까지 확대했다. 김규환기자 khkim@
  • 민족문제연구소‘한국군과 식민유산’주제 학술회의 개최

    군(軍)이 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사회 곳곳엔 군사문화의 흔적이 배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가 지난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한국군과 식민유산’이란 학술회의는 군의 일제 잔재와 정치적 성향 등 그동안 논의되지 않은 사안을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학술회의에는 전문가등 100여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용원 한국교원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국군의 형성과정에서 일본군 출신의 리더십 장악과 그 영향’이란 발제문을 통해 “해방직후 미군은 남한에서 혁명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제에 복무했던 군인들을 군정기구인 경비대에 대거 충원했다”면서 “48년 창군때 이들은 상해 임시정부군인 광복군과 일제 괴뢰정부인 만주군과 함께 국군에 편입됐으며,만주군을합해 장군 이상만도 90%가 돼 군의 주류를 이뤘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수립 직후 광복군 출신들이 한때 군부에 중용됐지만 한국전쟁을계기로 노장 배제정책이 추진된 데다 미 군사고문단의 비호로 일본군 출신들의 영역은 넓어지고 리더십 또한 커져 70년대 말까지 이 현상은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또 “일본군 출신들이 군을 장악하는 동안 한국전에서 북한군을격퇴하고 조국 근대화와 자주국방의 기반구축을 했지만 5·16을 계기로 민족사적 정통성 훼손과 군내 파벌형성과 대립,엄벌주의의 지휘통솔문화 조장 등비민주적인 병영 문화를 확산시키는 역기능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제발표에 나선 양병기 청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국군부의 정치화 과정-신직업주의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란 주제논문에서 “국군 창군이후 군부내에는 군의 정치적 중립 및 대외적 안보를 중시하는‘구(舊)직업주의’ 세력과 군의 정치화 및 대내적 안보를 주장한‘신(新)직업주의’세력이 함께 존재했다”며 “당시 남북한간의 군사적 대치로 구직업주의 세력이힘을 얻었지만 좌익세력 진압과정에서 신직업주의 세력에 힘이 실리게 됐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이어 “50년대의 이승만정권때는 신직업주의의 세력이 더욱 커져정치적 중립을 견지한 구직업주의와 장면 민간정부를 전복하려는 신직업주의세력과는 극단적인 대립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61년 5·16 군부 쿠데타는 한국사회 곳곳에 군사문화를 덧칠하는계기도 됐지만 군사정권이 혁명공약에 신직업주의의 교리를 넣는 등 정치적군인에 힘이 실리는 계기를 줬다고 분석했다. 정기홍기자 hong@
  • 모든 군 의문사 철저규명을(사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소대장 金勳 중위 사망사건을 계기로 80년대 이후 군(軍)내에서 일어난 모든 의문사도 재조사키로 한 것은 당연하고 잘한 결정이다. 金중위의 경우뿐만 아니라 그동안 군이 밝힌 사망원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유가족들이 많은데다 자식을 군복무중 잃은 유가족에게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려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군은 한창 혈기가 왕성한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특수집단이다. 게다가 개인화기와 폭발물등 위험한 장비들을 가지고 각종 훈련과 작전을 해야하는 군에서 갖가지 사고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애통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죽음의 원인이 석연치 않을때 유가족들의 안타까움과 억울함은 대단할 것이다.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사고사의 경우 부대 밖에서는 구체적인 사고 내용이나 원인을 알 길이 없다. 군에서 통보해주는 대로 믿을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사고 경위나 사망원인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의 사망사고가 적지않아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이나 재조사를 탄원하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양쪽 가슴과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숨진 병사나 머리의 함몰상으로 과다한 출혈때문에 숨진 하사관을 자살이라고 하는 군의 처리를 믿을 유가족이 어디에 있겠는가. 육군 중장출신의 金중위 아버지가 30여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상대로 그토록 애타게 타살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끝내 외면당했을 정도이니 다른 경우는 오죽하겠는가. 군에 따르면 매년 각종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400여명에 이르며 이들 대부분이 자살로 처리되고 있다. 자살의 경우 유가족들은 대개 사고 경위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견디기 어려운데 재조사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려고 몇년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생까지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군 의문사에 대한 이번 재조사로 유가족들의 의혹이 명백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군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자식들을 군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사의 조사에는 민간 전문가와 유가족대표를 참여시켜 한점 의혹이 없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하기 바란다. 지금처럼 사고조사를 군에게만 맡긴다면 문책이나 복잡해질 뒤처리를 피하기 위해 손쉽게 적당히 처리하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軍 복무기간 호봉·승진에 반영 안한다/규제개혁위

    ◎성과급추세 역행·남녀 고용평등 위배/취업때 가산점 부여 등 전면 재검토 방침 규제개혁위원회(공동위원장 金鍾泌 국무총리·李鎭卨 안동대총장)는 19일 군복무기간을 기업체 근무자의 호봉과 승진에 확대 반영시키려던 방침을 유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병역법개정안에는 ‘군 복무로 인해 휴직 후 복직한 직원은 승진시에 의무복무기간을 실제근무기간으로 산정한다’는 현행 규정이 계속 유지된다. 이에 앞서 병무청이 제시한 개정안은 ‘복직자 및 신규채용자의 군 의무복무 기간을 실제근무 기간으로 인정해 호봉산정 및 승진시에 반영한다’고 군복무 적용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위반시에는 3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강행규정까지 포함됐었다. 규제개혁위는 “연공서열제가 무너지고 능력·성과급 제도가 확산되는 민간 기업의 추세에 역행되고,여성계가 남녀 고용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제시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개정안을 계속 추진할 경우 호봉승급 혜택을받는 인원이 130만명으로,그 비용이 연간 6,300억원에 달해 기업의 부담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그러나 “추후에 이 문제를 ▲취업시 제대군인에 대한 가산점 제도 ▲2000년까지 공직의 20%를 여성에 할당하기로 한 여성할당제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 軍복무자 호봉가산 의무화/위반땐 최고 3천만원 벌금

    ◎공익근무도 공무원시험 5% 가산점/병무청,법개정안 입법예고 앞으로 공공기관은 물론 일반 기업체의 사용자가 근로자의 병역의무 복무기간을 실제 근무기간으로 인정,호봉 승급에 반영해 주지 않으면 3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28개월의 공익근무을 마친 복무자도 현역 근무자와 마찬가지로 6급 이하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총점의 5%를 가산점으로 받는다. 병무청은 20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관계부처 등과의 협의 및 국회 의결과정 등을 거쳐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된다. 병무청 관계자는 “현행 병역법에도 군 복무기간을 호봉 승급에 반영해야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위반 업체에 대한 법적 제재조치가 없어 대부분의 기업체들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의무규정을 이행하지 않는 고용주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 처벌조항을 신설한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또 유학이나 해외 취업 등으로 일정기간 병역의무를 연기한 뒤 귀국하지 않는 경우 귀국보증인에게 물리는 과태료를 현행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다. 공사상자 가족의 범위도 현행 ‘아버지 또는 형제’에서 ‘부 모 또는 형제 자매’로 확대,모 또는 자매가 여군으로 자원 입대해 복무 중 사망하거나 다친 경우에도 가족 중 한사람은 보충역에 편입돼 6개월간의 공익근무만으로 병역의무를 마칠 수 있도록 했다. 공익근무 요원이 복무 중 정당한 이유없이 출근하지 않는 경우 경고조치와 함께 결근 일수의 5배를 연장 복무하고 4회 이상 경고 조치를 받으면 형사고발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도록 했다.현재는 공익요원이 복무 중 정당한 직무명령을 어길 경우 현역으로 입대하게 돼있다. 징병검사나 병역 복무기간 중 질병이나 심신장애로 인해 병역 감면처분을 받은 경우 질병 등이 치유되거나 호전돼 본인이 희망하면 재검을 실시해 현역으로 입영할 수 있다. 개정안은 이밖에 지방병무청이 복무기관과 복무분야를 미리 결정해 공익요원을 소집하던 것을 앞으로는 복무기관만 먼저 정하고 구체적인 복무분야는 복무기관이 결정하도록 했다.복무기관이 업무 수요에 따라 공익근무 요원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軍복무중 학위 딸 수 있다/하사관 전문대·영관급 대학원

    ◎64개대와 제휴… 특별전형 혜택 앞으로 군복무 중인 하사관은 야간 전문대학,영관급 장교는 야간 대학원에 다니며 학위를 딸 수 있다. 육군은 1일 고려대 연세대 등 전국 64개 대학 및 전문대와 ‘학·군 제휴 협정’을 체결하고 2학기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부대 인근에 전문대학이나 대학교가 없으면 부대 안에 제휴대학의 분교를 6월말까지 설치키로 했다. 이에 따라 부대별로 선발된 하사관이나 영관급장교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제휴 대학이나 대학원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다. 학비의 절반은 국고로 지원한다. 학위를 따면 진급심사의 기준요소인 잠재역량평가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 軍사령관 아들 ‘특기병’ 부탁/드러난 병무비리·청탁 유형

    ◎“육참총장 부탁” 속여 자기문제 해결 압력/직속상관 직위이용 친구아들 입대 연기/부관처장 통해 아들 입대일 조정하기도/前 국회의원 등 민간인중 다수는 ‘돈제공’ 병무청탁 비리의 유형은 다양했다. ‘아들이 군대를 갈 나이인데…. 중국어도 잘하고…’. 3군사령관 吉亨寶 대장(당시 육군 참모차장)의 한마디를 대령 보좌관은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부관장교를 통해 元龍洙 준위에게 어학 특기병 선발을 청탁했고 성사됐다. 한 행정장교는 육군 참모총장의 청탁이라고 속여 元준위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사병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부관병과의 총수 河永浦 육본 부관감(준장)은 병과장의 명예와 체면도 아랑곳 않고 직속 하급자인 元준위에게 친구 아들의 입대 연기를 부탁했다. 朴豫東 준장(군수학교 군수관리학부장)은 부관장교를 통해 아들의 특기병학원 안내를 부탁해 현재 서울지역 부대 경리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李正秀 준장(조달본부 외자부장)은 元준위에게 직접 장남의 역종 분류내용과 차남의 입대일자를 문의했으며 현재 장남은 공익요원으로,차남은 육군사관학교 사병으로 복무하고 있다. 金承烈 소장(56사단장)은 아들을 빨리 입대시켜 군인정신을 함양시키기를 희망하였으나 정상 입대,레이다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논산훈련소 소장인 鄭和彦 소장은 부관처장을 통해 아들의 입대일을 조정하도록 元준위에게 청탁,현재 입대가 늦춰진 상태다. 기무사령관 李南信 중장은 군단장 재직때 옛부하로부터 아들의 입영절차를 문의받고 부관과장을 통해 元준위에게 문의토록 소개했다. 22일 공개된 국방부 병무 부조리 수사발표에 따르면 군 고위 장성들은 이렇게 병무 청탁을 했다. 그러나 이들 장성들은 아들의 입대일자를 조정해 달라며 사무장을 통해 元준위에게 거액을 건넨 변호사나 대학교수,기업인 등 민간인과는 달리 청탁과정에서 금품을 주고 받지 않았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군 검찰부는 이와 관련,돈을 주고 받은 사람의 경우 이름 아래 ‘15日(1,500만원)’ 또는 ‘금5(500만원)’ 등으로 적힌 문제의 元준위 수첩을 공해했다. 장성 7명의 이름에는 이같은 표시가 없고 돈을 건넨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 장성 7명 이외 元준위의 수첩에 오른 현역 군인은 126명.대령 48명,중·소령 32명,위관장교 1명,준위 32명,하사관 13명 등이다. 예비역으로는 장군 6명,대령 2명,중·소령 12명,하사관 8명 등 40명이 元준위에게 20만∼350만원을 주고 병역면제를 비롯,부대배치 및 입영일자 확인 등을 청탁했다. 병무청 직원 가운데는 지방청장급 2명,국장급 1명,과장급 5명,실무자 12명 등 금품관련 청탁자 20명을 비롯,모두 60명이 귀향조치,카투사선발,부대배치,행정병보직 등을 元준위에게 청탁했다. 이중 8명은 700만원 이상씩 건넸다. 민간인 청탁자는 전 국회의원 1명,대학교수와 변호사 각 1명,중하위직 공무원 2명 등 185명이며 이중 102명이 10만∼4,200만원의 돈을 건넨 것이 확인됐다. 청탁 유형은 병역면제 16건,카투사입대 41건,부대배치 42건,특기병학원 소개 14건,입대일조정 43건,단순 확인 24건 등이다. □병무청탁 장성 명단 및 내용 吉亨寶 대장(제3군사령관):참모차장 재직시 보좌관 통해 아들을 모부대 어학병으로 근무토록 부탁 李南信 중장(기무사령관):군단장 재직시 부관을 통해 옛 부하의 아들 입영절차를 문의 鄭和彦 소장(논산훈련소장):부관처장을 통해 아들의 ROTC 지원을 위해 입대일자를 연기 金承烈 소장(56사단장):건설피부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제2훈련소에 조기입대 시켜줄 것을 부탁 河永浦 준장(부관감):친구 아들 2명의 입대연기를 부탁 朴豫東 준장(군수학교 군수관리학부장):아들의 특기병 학원 안내를 부탁 李正秀 준장(조달본부 외자부장):장남의 역종 분류내용과 차남의 입대일자를 문의
  • 曺升玉 육사교수 군대문화 발전적 정립 세미나 주제발표

    ◎직업정신 무장 신뢰받는 軍 돼야 육군사관학교는 5일 본교 화랑대 연구소에서 건군 50주년을 맞아 ‘한국군 군대문화의 회고와 발전적 정립’이란 주제로 군사연구 세미나를 개최했다.曺升玉 육사교수(육군 대령)가 발표한 ‘한국군 군대문화 조형방향’이란 제목의 주제 발표문을 요약·소개한다. 한국군 군대문화는 지금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건군의 민주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민주 군대상을 정립해야 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국민주의 이념을 계승해야 한다.직업주의 이념도 정착시켜야 한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를 돌이켜 볼때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군인의 정치적 개입으로 군의 고유한 직업주의가 후퇴되고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됐다.이는 그렇게 비판했던 선배 장교들 못지 않게 후배 장교들이 부패의 수렁으로 빠져든 요인이 되기도 했다. 군의 정치적 개입은 장교단을 분열시키고 정치에 물들게 함으로써 장교문화를 천박하게 만들었다. 5·16에 반대했던 李翰林 장군은 “군의 정치개입으로 12·12 사태 등 연이은 쿠데타가 일어나 이 나라 헌정이 32년이란 긴 세월동안 군부 통치하에 있었다는 것은 근대사의 큰 비극”이라고 개탄하면서 “그로부터 군의 생명인 위계질서의 상실 내지는 문란의 출발점이 되었고 가치관의 전도현상으로 우리 국민의 도덕수준을 후진국형으로 퇴보시켰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우리 군은 박봉과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오직 사명감과 강한 정신력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며 군을 지탱하고 나라를 지켜냈다. 직업군인인 장교는 보수가 좋은 곳을 옮겨다니는 용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한 애국심과 의무감에서 단기적으로 복무하는 의무복무 군인도 아니다.직업군인인 장교는 개인의 이익을 초월해 직무에 헌신해야 한다.이런 군대만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군은 앞으로 직업정신이 투철한 군인을 양성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그래서 진정 국방의 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건군 50주년을 맞아 우리는 한국군 군대문화가 걸어 온 지난 반세기의 발자취를 거울 삼아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에 부합한 민주군대로,그리고 직업주의를 신봉하는 장교단이 지휘하는 능률적이고 강한 군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이를 위해 군대문화의 일대 혁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軍 징계기록 말소 완료/5,312명 인사 불이익 없애

    장교 및 하사관,군무원 등 군 장기 복무자 5,312명이 한때의 잘못으로 인한 징계 기록 때문에 두고 두고 진급 누락 등의 불이익을 당했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다. 국방부가 80년 7월 1일부터 올해 2월24일 사이에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받았던 장교(준사관 포함) 2,513명 하사관 2,065명 군무원 734명 등 총 5,312명에 대한 징계 기록을 29일자로 말끔히 정리했기 때문이다.사면 대상자의 징계 종류별 인원은 정직 89명,감봉 428명,근신 901명,견책 1,952명,경고 1,942명 등이다.
  • 공무원시험 軍복무 가산점/현역 5%·비현역 3%

    ◎6급 이하 내년부터… 高試는 적용 유보 군필자가 6급 이하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때 받는 가산점 비율이 복무 형태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현재는 복무 형태에 상관 없이 2년 이상 복무자에게는 5%,2년 미만 복무자에게는 3%의 가산점을 주고 있으나 내년부터는 현역 복무자에게 5%,비현역 복무자에게는 3%를 준다. 현역 복무자는 병영이나 내무생활을 한 사람으로 현역병을 비롯,전투경찰대,교정시설 경비교도대,상근예비역 등이다. 비현역 복무자는 공익근무요원(28∼36개월),전문연구요원(5년),산업기능요원(28∼36개월),공익법무관(32개월) 등이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이달 초 입법예고된 제대군인지원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하고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와 협의에 들어갔다고 27일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복무기간보다는 복무형태를 따지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는 지적에 따라 현역 복무자에게 가산점을 더 주기로 했다“면서 “그러나자원 입대하는 여자하사관 등은 직업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가산점을 주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군필자가 행정고시 등 5급 국가고시에 응시하면 1차시험에서 5%,또는 3%의 가산점을 주려던 방침에 대한 반대 여론을 감안해 추후 재검토,시행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군 미필자와 여성 등은 가산점이 합격에 지나치게 영향을 미친다며 반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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