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이 늙어간다] ‘40대후반 연대장’ 수두룩
군 조직이 갈수록 늙어가는 현상은 심각한 인사적체 때문이다.계급별 진급 연령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1980년대 초에는 30대 중·후반에도 대령 계급장을 달고 연대장으로 일선에 나갔으나,지금은 턱도 없는 얘기다. 40대 중반이 돼야 겨우 대령 진급 대상에 오를 수 있을 정도다.일각에서는 어느 조직보다 젊은 패기로 뭉쳐야 할 군이 지금처럼 ‘늙다리 조직’으로 남는다면 정상적인 전투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군의 인사 적체는 전 계급에 걸쳐 골고루 나타나고 있다.장성과 영관급 장교의 적체가 특히 심각하다.군내 주류인 사관학교 출신도 예외가 아니다.적체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평균 진급 연령이다. 육사 출신을 기준으로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위 임관 후 대령까지 13∼16년이 걸렸으나,지금은 23년이 넘는다.국방부의 한 장교는 “요즘엔 40대 중반을 넘긴 ‘대머리’ 연대장이 많아 우리끼리는 ‘노인이 돼야 연대장에 나갈수 있다.’는 자조섞인 말을 종종 한다.”고 털어놨다.
소위 임관 후 대령에 얼마나 진급하지를 나타내는 ‘대령 진출률’도 이를 잘 반영한다.
1964년에 임관한 육사 20기의 대령 진출률은 65.4%였으나 23기때는 61.6%,28기때는 57.2%로 떨어졌다.이어 32기는 52.5%를,36기(1980년 임관)부터는 아예 50% 밑으로 내려갔다.
“육사 출신은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대령까지는 보장된다.”는 얘기는 이미 옛 말이 된 것이다.
●10년이상 대령계급장 단 ‘장포대’ 등장
이런 와중에 정년연장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도 군내에는 적지 않다.
예컨대 육군 모부대에 근무하는 육사 출신 A대령의 경우 장군 진급에서 탈락했지만,임관 후 16년만인 지난 91년 대령에 진급한 뒤 지금까지 13년째 대령 계급장을 달고 있다.군내에서는 A대령처럼 장군 진급을 포기한 고참 대령을 줄여서 ‘장포대’로 부르기도 한다.
합참에 근무하는 한 영관급 장교는 “요즘처럼 진급이 늦고 경쟁이 치열한 실정을 감안하면,정작 군에서 가장 행복한 이들은 바로 ‘장포대’”라고 말했다.장군 진급은 못했지만 53세에서 56세로 3년이나 연장된 연령 정년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해·공군의 인사 적체는 육군보다 더 심한 편이다.해사와 공사의 경우 대령 진급률이 오래 전부터 50%를 밑돌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령 이하 계급에서는 인사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군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 얘기만 나오면 내심 쾌재를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유신사무관제 폐지도 큰 원인
가장 큰 원인은 군 인사를 총괄하는 군 인사법이 수 차례 개정되면서,군인들의 직업성 보장 차원에서 지난 1993년 영관급 장교의 연령 정년을 연장하고 계급정년을 폐지한 것이다.
당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군에 대한 대대적인 숙정작업을 단행하던 시기로,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군 숙정에 대한 ‘당근책’으로 정년 연장과 계급정년제 폐지를 제공한 게 아니냐고 분석한다.
이처럼 장성 진급에서 탈락한 대령의 정년 연장은 심각한 인사 적체로 이어졌고,이는 곧바로 후배 기수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영관급 장교의 주축인 육사 38기부터는 초급장교 시절 5급 공무원으로 특채되던 이른바 ‘유신 사무관제’가 사라지면서 ‘제 살 뜯어먹기’ 식의 극심한 진급 경쟁을 치르고 있다.게다가 이들 기수는 사관학교 생도마저 선배 기수보다 많아 경쟁률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사 적체가 이처럼 악화일로를 걷자 국방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하지만 인사 적체 해소쪽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자칫 직업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방부는 전임 조영길 장관 시절 영관급 장교들에 대한 계급정년제(각 계급별 12년) 부활과 중령의 ‘연령정년 2년 단축’을 골자로 하는 군 인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까지 마쳤지만 윤광웅 현 장관의 취임 이후 보완 지시가 내려져 현재는 추진이 보류된 상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