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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스쿠니 대안 논의를” 日 유력언론 잇단 제기

    일본 언론이 한국, 중국과 외교 마찰을 벌이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 신사를 대신할 시설 건립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일본 내 최대 일간지인 보수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빗나간 중·한의 대일 비판’이라는 제목의 21일자 사설에서 “전몰자의 위령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일본 국내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으며 전쟁 지도자에 대한 비판도 뿌리 깊다”며 “누구든 거리낌없이 전몰자를 추도할 수 있는 국립시설의 건립에 대해 논의를 심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설은 또 지난 3일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2+2)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비종교적인 국립 추도시설인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방문한 것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요미우리는 이어 아베 총리가 한국,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기 위해 올해 춘·추계 예대제(제사)와 패전일(8·15)에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대신 공물봉납 등을 했음에도 한·중 양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적었다. 앞서 진보성향인 아사히신문이 지난 19일자 사설에서 “외교적인 마찰을 부르는 일이 없도록 새로운 전몰자 추도 방식을 생각할 수는 없겠는가”라며 같은 화두를 던졌다. 이틀 사이에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진보·보수지가 잇달아 야스쿠니의 대안을 거론한 것이다.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고통받은 한국과 중국이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곳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 6000여명이 합사돼 있다. 지난 17∼20일 열린 야스쿠니 추계 예대제 때 아베 총리는 신사제단에 바치는 화분 형태의 제구인 ‘마사카키’를 봉납하는 것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각료 중에는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과 후루야 게이지 납치문제 담당상 등 2명이 참배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北, 한·일 어민 납치부대 편성”

    북한이 1962~1985년 전담 부대까지 편성해 한국과 일본 어민을 납치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8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는 최근 조선인민군 전직 간부로 납치 작전에 가담했다고 주장하는 한 탈북자를 조사했다. 이 남성은 북한이 1962~1985년에 원산 부근에 약 120명 규모의 부대를 편성, 한국 어민을 납치하는 ‘대남어민작전’과 일본 어민을 납치하는 ‘대일어민작전’을 벌였다고 증언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원산 부근의 납치 전담 부대에 속해 있었고 1983년쯤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4~6명이 탄 일본 어선을 습격해 30대 남성을 납치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젊은 사람만 데려가고 다른 선원은 배와 함께 수장했다”고 설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는 또 북측이 중형 공작선에 공작원 10여명을 태워 4~10월에 2~5명이 탄 중소형 어선을 상대로 범행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많게는 연 3회, 적게는 2년에 1회 (납치를) 실행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일본 해상보안청(해경)을 인용해 1970~1980년대에 동해에서 행방불명된 일본 어선이 18척에 이르고, 이 남성이 증언한 시점과 비슷한 1980년 10월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30~70대 남성 6명이 탄 어선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은 납치한 젊은이들을 교육한 뒤 한국과 일본에 보내 정보를 수집할 예정이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조총련 도쿄본부 건물 계속 쓸 듯

    북한과 일본이 오는 7월쯤 재경매가 이뤄질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도쿄본부 건물을 조총련이 계속해서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일본 정부와 정보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4일 평양을 방문한 이지마 이사오 일본 내각관방 참여가 북한과의 납북자 문제 등에 대한 교섭 조건으로 조총련이 도쿄본부 건물을 앞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취지를 전달했다. 북한도 이지마 참여와 가진 회담에서 도쿄본부 건물의 계속 사용을 요청하고,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교도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조총련 산하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도쿄본부 건물과 토지가 경매에 넘어간 상태로, 경매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조총련이 건물을 비워 줘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북한과 일본 간 교섭이 급진전됨에 따라 도쿄본부 건물에는 앞으로도 조총련이 계속해서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과 토지는 지난달 가고시마의 사찰 사이후쿠사가 낙찰을 받았지만 대금 납부 기한인 지난 10일까지 낙찰 대금을 구하지 못해 매입을 포기했다. 한편 미얀마를 방문 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5일 “북·일 협의와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아직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일본인 납치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하시모토, 위안부 할머니 면담 무산 뒤 “日, 납치 안해” 망언

    하시모토, 위안부 할머니 면담 무산 뒤 “日, 납치 안해” 망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명과 하시모토 도루 일본 유신회 공동대표(오사카 시장)의 면담이 취소됐다. 일본을 순회하며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7)·길원옥(84) 할머니는 24일 “하시모토 대표의 잘 짜인 사죄 퍼포먼스 시나리오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며 면담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본 순회 집회를 하면서 여러 일본 기자들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면담은 하시모토 시장이 심지어 무릎까지 꿇겠다는 등 사죄 퍼포먼스를 미리 짜 놓고 언론 플레이용으로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면담이 무산된 뒤 하시모토 대표는 오사카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이 국가의 의지로 위안부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한 증거는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하시모토 대표는 “일본 정부가 위안소의 관리와 위안부 모집·이송에 개입한 것은 틀림이 없다”며 위안부 운영에 일본 정부가 관여한 전반적인 책임은 인정했지만 “민간 업자에 의한 위안부 여성 강제연행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국가가 직접 하진 않았다”고 강변했다. 도쿄전범재판에서의 일본 군인 진술, 생존해 있는 일본 퇴역 군인들의 증언 등에 위안부 강제동원 사례가 명확히 확인됐음에도 그는 여전히 ‘물증’은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시모토 대표는 또 상당수 위안부 피해자들이 공장 등에서 취업하게 해 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위안부가 된 데 대해 “원래 소개받은 곳과 다른 곳에서 일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에 대해 일본인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한편 하시모토 대표의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발언에 대해 전 세계가 성명을 발표하고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비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23일(현지시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알렉산드르 루카셰비치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하시모토 대표의 발언은 파렴치했다”고 맹비난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하원도 23일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된 위안부들의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전 세계 비정부기구(NGO) 68개 단체도 하시모토 대표의 위안부 정당화 발언을 비난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오사카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北·日 협상재개 참의원 선거 이후 될 듯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양국 간 현안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일본에 특정 실종자 2명을 일본으로 귀환시킬 수도 있다는 제의를 한 사실이 알려질 정도다. 이 같은 변화는 이지마 이사오 일본 내각관방 참여가 지난 14~17일 평양을 방문한 뒤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지마 참여는 23일 기자들에게 자신의 이번 평양 방문과 관련, “사무적 협의는 전부 끝났으며 남은 것은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지마 참여의 이 같은 발언은 평양에서 북한 요인들과 회담을 가졌을 때 북·일 양측의 주장과 입장, 제안 등에 대한 의견 교환이 충분히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는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납북자뿐 아니라 납북된 것으로 의심되는 일본인 특정 실종자까지도 송환 요구 대상이라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 실종자란 일본 시민 단체 ‘특정 실종자문제 조사회’가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행방불명자 470명을 일컫는 말로, 단체 측은 이들 중 73명은 실제 납치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납치된 자국민이 공식적으로 17명이라고 밝혀왔고 이중 5명은 지난 2002년 귀국했다. 앞서 스가 관방장관도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작년 11월 이후 중단돼 온 북·일 정부 간 교섭 재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일 간 수교 교섭이 생각보다 빨리 재개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루야 게이지 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이 23일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통해 양국 간 수교를 도모하자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 것도 일본이 독자적으로 북한과 수교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최근 이지마 참여의 방북에 대해 한국, 미국 등에 사전 통지를 하지 않았고 이지마 참여가 귀환한 뒤에도 ‘납치 문제는 일본이 주도해야 한다’며 독자 행보를 계속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때문에 납북자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가진 아베 총리가 생존 납북자 송환, 양국 관계 정상화, 대북 식민지 배상 등을 아우르는 북한과의 ‘빅딜’을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과 북한의 당국 간 협상 재개 시기는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해 일본 당국자는 “한국도 일본 정부에 독자적인 대북 루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日에 실종자 2명 귀환 제안

    북한이 최근 방북했던 이지마 이사오 일본 내각관방 참여에게 특정 실종자 2명이 귀환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이 아베 신조 정권과 납북자 문제 등을 포함한 수교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돼 주목된다. 23일 일본 정부와 정보당국자에 따르면 이지마 참여는 지난 14~17일 평양 방문 기간 동안 북한 당국자들에게 납치 피해자 12명의 조속한 귀환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들 대부분을 납치하지 않았거나 이들이 사망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북한은 다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특정 실종자 2명을 일본에 보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日총리 자문역 평양 방문… 대북 독자교섭 가능성

    日총리 자문역 평양 방문… 대북 독자교섭 가능성

    일본의 이지마 이사오 특명 담당 내각관방 참여(총리 자문역)가 14일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1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지마 참여의 방북 목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북한 측에서는 김철호 외무성 아시아국 일본 담당 부국장이 평양 국제공항으로 나와 영접했다고 전했다. 이지마 참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당시 약 5년간 총리 비서관을 담당한 인사로 2002년과 2004년 평양에서 열린 1·2차 북·일 정상회담에 관여한 인물이어서 이번 방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지마 참여가 정체된 북·일 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 정부나 조선노동당 간부와 접촉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인 납치 문제도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일본은 납치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말 국장급 차원의 실무회담을 진행하다가 중단한 상태다. NHK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지마 참여가 이번 주말까지 평양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납북자 문제 해결을 명목으로 대북 독자 교섭에 시동을 건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이지마 참여의 방북은 한·미 양국과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은 독자적 행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외무성은 방북 인사가 총리 자문역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파악하지 못했다고 우리 측에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한 중인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이날 임성남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회담 후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밝혀 미·일 간에도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우리도 방북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연이은 역사 망언 도발을 감행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이 한국 정부에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불편한 심기도 표출됐다. 한·미·중 3국의 대북 공조 국면에서 소외되고 있는 일본이 북한과의 독자적인 대화 카드를 외교적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공개 방북한 것은 2011년 11월 월드컵축구 아시아 3차 예선 북·일전 당시 외무성 직원이 일본 응원단의 안전 확보차 북한에 간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북한과 일본은 지난해 8월 4년 만에 일본인 유골 반환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 간 협의를 재개했다가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후 중단했다.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는 공식 협상이 한 차례도 없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서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日유신회 대표, 아베 침략정의 지지… “전쟁 중 위안부 필요했다”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망언을 일삼은 일본유신회 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번에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주장을 두둔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13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시모토 시장은 오사카 시청에서 취재진에게 일본의 과거 전쟁에 대한 역사인식과 관련, “침략에 학술적인 정의는 없다는 것은 총리가 이야기한 그대로다”라고 강변했다. 그는 또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서도 “그 정도로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강자 집단에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망언을 되풀이했다. 그는 이어 “왜 일본의 종군 위안부 제도만 문제가 되느냐. 당시는 세계 각국이 (위안부 제도를) 갖고 있었다”면서 “폭행, 협박을 해서 납치한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했다. 앞서 하시모토 시장은 지난해 8월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며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반발을 샀다. 하시모토 시장은 또 아베 내각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정치인은 외교적 태도를 생각해야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등 역사 인식에 있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는 “전쟁 혹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여성이나 약자의 인권을 짓밟고 성노예화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며 “하시모토의 망언은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의 희생자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초 국가와 군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 같은 범죄를 자행했다고 스스로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며 “일본의 일부 우익 정치인들이 역사 문제에 대해 혼란스러워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 의회조사국이 미·일관계 보고서에서 자신을 ‘강경한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한 데 대해 “우리나라의 생각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점은 유감”이라며 “정확하게 이해되도록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일본의 입장을) 발신하겠다”고 밝혔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아베, 오바마에 줄 선물 푸짐… 美, 화답할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번 회담은 전통적으로 친미적 성향을 보여온 일본 자민당이 지난해 12월 집권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일본 민주당 정부 시절 소원했던 미·일 관계가 복원되는 수순을 밟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오바마는 지난달 재선 임기 취임식 이후 첫 정상회담 일정을 아베에게 내줌으로써 일본을 한껏 배려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오바마와 아베가 미·일 밀월의 절정기였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나카소네 야스히로’, 2000년대 ‘조지 W 부시-고이즈미 준이치로’ 시대에 버금가는 우호 관계를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양측의 현안인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아베 총리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밝힐 예정이다. 민주당 정권 시절 수립된 ‘2030년대까지 원전 제로’ 정책 수정과 ‘국제 아동 납치 민간 부문에 관한 헤이그 협약’ 가입 등 미국이 주장하는 이슈에 아베 총리가 동의할 것이란 전망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가장 민감한 이슈는 일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 참가 여부다. 무역장벽 철폐를 통해 미국산 제품의 수출을 확대하려는 오바마 입장에서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TPPA 참가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 아베는 지난 19일 의회에서 “TPPA에 우선 참가한 후 (구체적 내용을) 교섭하는 방법도 있다”며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 문제도 비중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3차 핵실험에 대해 과거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동결 방식의 고강도 제재 채택 여부 등 대북 제재 논의와 함께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 논의가 얼마나 진전될지 주목된다. 아베는 오바마에게 일본인 납북 피해자 문제에 대한 협력도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견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 등을 요구하는 아베에게 오바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관심이다. 오바마로서는 한국 및 중국의 반발이 딜레마이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 민주당 정부 시절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권 등을 따낸 것은 미·일 관계 경색에 따라 미국이 한국을 전폭 지원한 데 따른 반사적 이익의 성격도 있었다”면서 “미·일 관계의 복원은 한국의 국익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아베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을 위해 21일 나흘간 일정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편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곳곳에서 반일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日, 對北송금·도항 제재 강화 검토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논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독자 제재를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신조 내각은 북한으로의 도항(渡航)과 송금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최고위급 간부가 북한을 방문할 경우 일본 재입국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또 북한에 돈을 보낼 때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기준 금액을 현재 300만엔(약 3600만원)에서 더 끌어내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 압력 수위를 높여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의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편 북한 로켓 발사와 관련한 유엔의 대북 추가 제재 논의가 미국과 중국 간 물밑 협상에도 아직 가시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시그널?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시그널?

    아베 신조 정권이 출범한 이후 경색될 것으로 전망됐던 북·일 관계가 의외로 조심스럽게 차츰 접점을 찾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 출신 여성에게 친필 편지를 보내고, 아베 총리는 “반드시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교도통신은 30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김 제1위원장이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 출신 여성 림경심씨에게 친필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편지에서 “당원의 영예를 기뻐하는 모친의 기분을 알게 돼 나도 정말 기쁘다.”면서 “변함없이 우리 당에 보내는 신뢰에 감사한다.”고 정중하게 사의를 표명했다. ●‘아들 노동당 입당’ 감사 편지에 답장 림씨의 일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모가 모두 일본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송사업을 통해 북한 출신 남성과 함께 건너간 일본인 처의 딸일 가능성도 있다. 림씨는 장남의 조선노동당 입당과 관련, 김 제1위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편지를 지난 1일 보냈으며, 김 제1위원장이 26일 답장했다. 김 제1위원장이 북한 거주 일본 출신자에게 친필 편지를 보낸 사실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아직 일정이 잡히지 않은 북·일 정부 간 협의를 염두에 두고 북한 내 일본인 거주자의 존재를 다시 한번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베 총리도 지난 28일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회’ 이즈카 시게오 대표 등 납북자 가족 모임 관계자들과 총리 관저에서 만나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베 총리는 가족들에게 “속도를 내 빨리 납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며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日경찰 “납북 추정 실종자 868명” 일본 정부가 현재까지 공식 인정하고 있는 납북자는 17명이다. 북한은 2002년 이 가운데 13명에 대해서는 납치 사실을 인정했다. 4명은 북한에 온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북한은 직접 인정한 13명과 관련, 이미 사망한 8명을 제외한 5명과 가족을 2002년 일본에 돌려보냈다. 하지만 일본 경찰청 외사과는 이날 전국의 경찰이 납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조사 중인 실종자가 11월 1일 현재 868명이라고 밝혀 이 문제가 양국 간 새로운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일본 경찰청이 발표한 실종자는 상당수가 구체적 증거 없이 가족들의 신고 등을 토대로 납북 가능성을 추정한 것이어서 북한의 반발이 예상된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日차기정권과 수교협상 재개?

    북한이 일본의 차기 정권과 국교정상화 협상을 재개하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양측의 국장급 회담에서 진일보한 결과가 나온 것과 관련, “북한으로서는 미국,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대화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서도 당분간 일본과의 협의를 계속하겠다는 저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도 이날 “중의원 선거를 통해 누가 정권을 잡든 북·일 사이에 대화창구가 열리게 된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며 이번 협상의 의의를 강조했다. 앞서 북한과 일본은 지난 15일과 1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국장급 회담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의제화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측 대표인 스기야마 신스케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회담 후 “양측은 납치 문제도 포함해 협의를 계속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이날 교도통신에 따르면 북한 측 대표인 송일호 북·일 교섭 담당 대사도 “(회담에)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후속 회담을) 조기에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진전’이 있었던 의제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송 대사는 이번 회담과 관련, “납치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말했고, 깊은 논의를 했다.”고 말해 북한의 입장 변화가 주목된다. 기존에 북한은 “납치 문제는 2002년 9월 양국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5명의 납북자를 귀국시킨 것으로 완전히 종결됐기 때문에 협상 의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납치 문제를 계속 협의하기로 합의한 것은 일보 전진, 아니 이보 전진이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이번 북·일 국장급 회담은 당초 일본 측은 적극적이었던 반면 북한은 느긋한 자세여서 이달 개최가 불투명했으나 국회 해산을 앞두고 일본 총리실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이 향후 회담에서 납치문제 협의에 계속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외무성 일각에서도 이번 회담 결과만으로 북한이 ‘납치 문제는 해결이 끝났다’는 기존 입장을 바꿨다고 판단하기 이르다는 신중한 견해를 보였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납북자 41명 평양서 감금”

    일본인 납북자 41명이 현재 평양에 감금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산케이신문은 28일 북한을 탈출한 전 조선노동당 간부의 말을 인용해 평양에 일본인 납북자 41명이 감금돼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탈북한 이 북한 노동당 간부는 지난 27일 도쿄 메이지대에서 열린 ‘아시아 인도·인권학회 보고회’에 참석해 “남성 25명, 여성 16명의 일본인 납북자가 현재도 평양에 있는 격리시설인 초대소에 감금돼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직접 일본인 납치 피해자 관리에 관여하진 않았다.”고 전제하면서도 2002년 10월 5명의 일본인 납북자가 귀국한 이후에도 41명의 일본인 납북자가 초대소에 감금돼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 납북자는 모두 노동당의 공작기관인 작전부가 관할하고 있으며, 공작원이나 다른 납북자가 생활한 평양 용성지구의 초대소에 남녀가 별도로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본인은 한국에 자유롭게 입국할 수 있어 (납치를 통해) 대남 공작에 이용하려는 목적이었다.”면서 “이들이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으로서도 일본에 돌려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 납북자를 만난 적은 없으며 이름도 모른다.”며 “관련 얘기를 5년 전부터 여러 차례 들었다.”면서도 감금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일본인 납북자가 41명이라면 이는 일본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납북자보다 훨씬 많은 수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17명의 납북자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명은 2002년 양국 정상 합의에 따라 일본에 귀국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한가위 극장戰

    한가위 극장戰

    명절이 되면 바빠지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극장가다. 올 추석엔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외화의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무장한 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막 오른 한가위 ‘극장전(戰)’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관전 포인트를 살펴본다. ■ 한국 영화 안방 내줄 수 없는 ‘광해’… ‘점쟁이들’ 신통력·‘간첩’ 작전 힘쓸까 상반기에 초강세를 보였던 한국 영화. 연휴 기간이 짧은 탓에 올 추석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의 수는 많지 않지만 다양한 장르로 관객들의 입맛을 공략한다. 본래 개봉일을 1주일 앞당겨 지난 13일 일찌감치 개봉한 팩션 사극 ‘광해:왕이 된 남자’가 관객 35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흥행 여파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미지수다. 개봉 2주째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내외 신작 영화가 대거 개봉했기 때문이다. 일단 20일 개봉한 한국 영화 ‘간첩’이 가장 큰 적수가 될 전망이다. 먹고살기 바쁜 생활형 간첩들의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풀어낸 이 영화는 명절 분위기에 어울리는 오락 영화라는 강점이 있다. 북에서 남파된 지 22년이 됐지만 불법 비아그라를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김 과장 역을 맡은 김명민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웃음기를 쫙 뺀 간첩 유해진의 카리스마 대결이 볼 만하다. 변희봉, 염정아, 정겨운이 각각 독특한 사연을 지닌 간첩 역으로 출연해 북에서 남으로 귀순한 고위 간부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뒤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코미디와 액션으로 풀어낸다. 연휴의 끝무렵인 새달 3일에 개봉하는 ‘점쟁이들’은 코믹 호러물을 표방한다. ‘점쟁이들’은 전국 팔도에서 모인 점쟁이들이 신들린 마을 울진리에서 수십년간 계속되고 있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해결한다는 이야기다. ‘시실리 2㎞’, ‘차우’ 등으로 코믹 호러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정원 감독의 신작으로 독특한 설정에 두 장르를 혼합한 이색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김수로, 이제훈, 곽도원, 강예원 등이 출연한다. 한편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긴 가운데 비상업영화로서 추석 연휴에 얼마만큼 파급력을 가질지 주목된다. 특히 김기덕 감독이 멀티플렉스의 극장 독점을 비판하며 새달 3일 종영을 선언해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 ■ 외국 영화 美·日·유럽 애니 주렁주렁… 아빠·엄마표 액션 시리즈 격돌 이번 추석 연휴에 외화는 애니메이션부터 화려한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로 여러 연령대의 관객들을 공략한다. 일단 두편의 할리우드 액션 시리즈물이 흥행 전면에 나섰다. 27일 개봉한 영화 ‘테이큰 2’는 뤼크 베송 사단이 만들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스릴러 액션 영화 ‘테이큰’의 속편이다. 1편에서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정보기관 출신의 아버지가 벌이는 추적극을 긴박감 넘치게 그려 국내에서도 성공을 거둔 바 있다. 4년 만에 돌아온 속편에서는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온 일당을 상대로 싸우는 가장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리엄 니슨을 비롯해 전편의 출연진이 그대로 출연한다. 한층 더 화려하고 풍부해진 볼거리로 무장한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레지던트 이블 5:최후의 심판 3D’도 추석 연휴의 강력한 경쟁자다. 그동안의 시리즈를 총망라한 규모를 자랑하며 지난 시리즈의 모든 주역들이 총출동한다. 지난 13일에 개봉했다. 영화 ‘도둑들’에 출연해 강한 남성미를 선보이며 국내 관객들에게 한층 친숙해진 중국 배우 런다화도 영화 ‘나이트폴’로 추석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졌다. ‘나이트폴’은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형사의 숨 막히는 대결로 홍콩판 ‘추격자’로 불리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이번 추석에는 가족 관객을 잡으려는 할리우드와 일본, 유럽 애니메이션의 경쟁이 특히 치열하다. 우선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 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가장 기대를 모은다. 스코틀랜드 왕국의 길들여지지 않은 말괄량이 공주 메리다와 전통을 강요하는 엄마(왕비)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캐릭터의 작은 표정 변화까지 섬세하게 묘사하는 등 픽사의 기술력이 돋보이는 영화로 27일 개봉한다. 13일에 개봉한 ‘늑대아이’는 늑대인간과의 사랑으로 두 아이를 낳게 된 여자와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따뜻한 모성애를 감성적으로 그린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으로 평단과 관객에게 모두 호평받았다. 20일 개봉한 스페인 애니메이션 ‘테드:황금도시 파이티티를 찾아서’는 고고학자를 꿈꾸던 평범한 벽돌공이 우연한 기회에 고대 잉카제국의 황금이 묻혔다는 파이티티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손에 넣고 페루에 가서 펼치는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北·日, 평화선언때 114억弗 배상 밀약설

    북한과 일본이 2002년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서명한 ‘북·일 평화선언’ 때 114억 달러(약 12조 7000억원)의 전후 보상 밀약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산케이신문은 18일 조선노동당 전 간부의 증언을 인용해 2002년 평양에서 김 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가 서명한 평화선언의 배경에는 북한 측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면 일본이 경제 협력 자금 114억 달러를 전후 보상으로 지급한다는 밀약이 있었을 가능성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배상 규모에 대해 협의하지 않았다고 밝혀 왔지만 교섭 당시의 기록 일부가 누락돼 협상 당시의 불투명성이 지적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과 일본의 전후 보상 밀약설은 북한 조선노동당 대남공작기관인 통일전선부 출신의 탈북자 장철현(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씨가 2008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면 일본이 100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처음 제기됐다. 북·일 평화선언 직후 ‘중앙당 특별강연자료’ ‘외무성 실무회담 성과·경험 자료’ 등을 열람했다는 장씨는 “중앙당 강연 자료에 ‘일본이 114억 달러를 약속했다’는 표현이 있었으며 ‘일본 측은 전쟁 배상이라는 표현을 쓰면 한국이 다시 배상 요구를 할 수 있다고 거듭 주장해 배상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고 기록돼 있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北·日 국장급 본회담 개최 합의

    북한과 일본이 4년 만의 첫 정부 간 회담을 마무리하고 납북자 문제 등을 논의할 국장급 본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31일 중국 베이징의 일본대사관에서 유성일 북한 외무성 일본과장과 오노 게이치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을 대표로 마지막 과장급 회담을 갖고 국장급 본회담을 열어 ‘관심사항’에 대해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본 언론은 북한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의제에 포함하는 것을 수용했다고 전했다. 국장급 회담은 이르면 이달 중 열릴 것으로 보인다. 본회담에는 송일호 외무성 북·일 교섭 담당 대사와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도통신은 납치 가능성이 있는 특정실종자 문제, 1959∼1984년 재일동포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인 처의 귀국 문제, 일항기 요도호 납치범 송환 문제 등이 국장급 회담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정부는 ‘상호 관심사항’을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비록 모호한 표현이지만 납치 문제에 관해 상당 부분 관철된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측 관심사에 납치 문제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양측은 지난 29일부터 열린 이번 회담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향후 본회담 의제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이날 합의로 오히려 북·일관계 개선의 여지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北·日회담, 납북자 문제 ‘기싸움’

    북한과 일본이 29일 중국 베이징의 일본대사관에서 정부 간 과장급 회담을 가졌다. 양측의 정부 간 교섭은 2008년 8월 일본인 납북자 문제 재조사 합의 이후 4년 만이다.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부터 2시간 45분 동안 이어진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에 있는 일본인 유골 반환과 일본인 유족의 북한 내 묘소 참배 허용 문제를 주로 논의했다. 일본 측은 최대 관심사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공식 의제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으나 북측이 반발하는 등 납북자 문제를 놓고 다소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납치 문제를 두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함에 따라 30일 오전 북한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겨 회담을 계속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 논의에 대해 그동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당초 사전 접촉 과정에서는 납치 문제 협의에 응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회담 계획이 공식 발표되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납치 문제를 앞세우는 것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태도를 바꿨다. 국장급에서 과장급으로 회담의 격을 낮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양측이 회담을 최장 2박 3일간 진행하기로 합의한 데다 최근 동북아 정세를 감안할 때 양측 모두 관계 개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으로서는 장기적으로 북·일 관계가 정상화되면 100억 달러(약 11조 3300억원)에 이르는 일제 통치 ‘배상금’을 확보해 경제 재건에 주력할 수 있고 한국, 중국 등과 갈등 상태인 일본도 북·일 관계 개선으로 돌파구를 만들려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北·日 29일 베이징서 정부교섭 재개

    북한과 일본이 29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정부 간 교섭을 재개한다. 북·일 간 교섭은 지난 2008년 8월 일본인 납북자 문제 재조사 합의 이후 4년 만이다. 북·일 정부 간 교섭은 북한에 있는 일본인 유골 반환 협의를 위한 것이 주목적이지만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논의 여부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양국 적십자 대표가 지난 9~10일 일본인 유골 반환 문제를 협의함에 따라 이번 교섭의 의제는 일단 유골 반환과 유족의 참배 문제 등이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교착상태에 빠진 납북자 문제의 논의를 기대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이를 거론할 경우 교섭 전망은 밝지 않다. 북한은 앞서 지난 16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일본 정부가 유골 반환 문제보다 납북자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는 데 대해 “일본이 유골 문제와 납치 문제를 뒤섞어 회담을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한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은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합의로 5명의 납북자를 귀국시킨 것을 끝으로 문제가 종결됐다는 입장인 반면 일본은 납북자가 17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일은 이번 교섭을 당초 국장급으로 합의했다가 북한의 요구에 따라 과장급으로 격을 낮췄다. 일본은 교섭 후 대화의 격을 국장급으로 높여 북한과의 현안 협의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19세기 후반 세계는 해양과 철도로 연결되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외압이 조선을 변화시켰다. 정치적·군사적 외압을 바탕으로 열강은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상호 연대와 대립을 반복하면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조선 측의 대응도 있었다. 외압에 대응해 조선 역시 열강과 외교라는 수단을 통해 국권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러시아는 극동지역에서 일본과 대립하는 하나의 축이자 조선과 국경을 맞댄 나라였다. 조선은 러시아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영국, 일본, 청국은 자국의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려는 전략으로 공러(恐)의식을 조작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원군과 명성황후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대원군, 러 견제위해 佛신부와 접촉도 1863년 12월 철종(哲宗)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에 봉작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섭정 초기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최고의 권력기구로서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는 기반이 되었던 비변사(備邊司)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복설하였다. 그리고 의정부와 동일한 위상을 갖는 최고의 군사기관으로 삼군부를 설치하였다. 을미사변의 주역인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는 “흥선대원군이 국제 정세만 정확히 파악하면 동양의 뛰어난 외교가로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1860~1870년대 서구열강과의 접촉에서 외세의 영향력을 직접 경험했고, 러시아 또는 미국 등 서구열강 일국에 편중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했다. 그 배경에는 흥선대원군이 외교관계의 미묘한 변화와 흐름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1860년 북경조약(北京條約)으로 연해주(沿海州)를 획득함으로써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과 새로 국경을 접한 러시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은 조선에 잠입해 있던 프랑스 신부들과 접촉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신부들과의 접촉은 프랑스 및 영국과의 제휴도 염두에 둔 파격적인 시도였다.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적 도발은 흥선대원군의 강렬한 척화정책을 북돋았다. 거기에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E. J. Oppert, 吳拜)가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南延君)묘를 도굴한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서양에 대한 적개심을 강화시켰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은 외세를 물리쳤다는 강한 자부심을 얻었으나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성은 정권 초기보다도 경직되었다. 두 차례의 양요(洋擾)를 겪으면서 흥선대원군정권은 강력한 군사력 편성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전국에 3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포군을 설치하였다. 그 후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에서는 청나라와, 갑오개혁 때는 일본과 각각 대립했다. 흥선대원군은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고종으로부터 사태수습을 위한 전권을 위임받고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톈진(天津)으로 납치되었고 1885년 겨우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대의 ‘경복궁침입사건’ 당시 흥선대원군은 주한 일본공사 오토리(大鳥圭介)와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의 개혁정책을 반대하다가 주한 일본공사 이노우에에 의해 정계 은퇴를 강요당했다. ●1895년 개국기원절 日인사 초청 놓고 반일친러 분위기 형성 명성황후는 외교 분야의 현안에 간접적으로 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록(行錄)을 살펴보면 “짐이 근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 풀어 주었다.”, “심지어 교섭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는 나를 권해서 먼 곳을 안정시키도록 했다.” 등이 기록되었다. 1895년 9월 4일 왕실은 조선왕조 504년 건국 기념일인 ‘개국기원절’ 행사를 준비했다. 이날 행사의 준비위원회에서는 외국인 중 궁내부 고문관(宮內府 顧問官) 러젠드르 장군, 러시아공사 베베르의 부인의 자매이자 궁내부에 소속된 손탁 여사, 그리고 러시아 건축기사 사바친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러젠드르 장군은 사무장(事務長)이라는 명예위원으로 외국인들을 접대하였고, 손탁 여사는 음식과 식탁 준비를 담당했으며, 사바친은 식장의 장식 부분을 총괄했다. 당시 러시아공사 베베르는 조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손탁을 궁내부에 고용하도록 추천했다. 독일 엘자스(Elsass) 출신인 손탁은 궁궐에서 유럽식 향연을 준비하면서 명성황후를 자주 만나 2~3시간씩 연속으로 황후와 대화했다. 이날 회의에서 행사와 관련된 한 명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식탁 시중을 위해서 일본 급사를 초청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인들의 이름이 나오자, 손탁 여사는 얼굴을 찡그렸고, 일본인들 전체를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침까지 내뱉었다. 그러자 러젠드르 장군은 마치 귀부인에게 시중드는 유명한 기사처럼 웃으면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손탁 여사는 왕실로부터 자신의 개인 집을 짓기 위해 약 1만 달러를 받았고, 그녀의 지도 아래 조선 여인들이 다양한 수공예를 배울 수 있는 학교 설립을 약속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사바친은 일본공사관의 외교관 및 일본과 연대하고 있는 조선 관료들의 명성황후를 향한 적개심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때 사바친은 “이것이 언뜻 보기에는 별일 아닌 작은 사건 같지만, 이와 비슷한 작은 사건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어떤 음모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손탁과의 관계 속에서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지원을 예상하고 평소의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반일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명성황후는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둘러싸고 일본이 외교적으로 패배하자 조선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명성황후 주변의 미국인도 자국의 이권과 특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의 영향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만일 황후가 유럽인들로부터 보호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자신을 보호해 주겠다는 유럽인들의 약속을 받았고, 유럽인들이 궁궐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신뢰했다. 신은 조심하는 자를 보살필 뿐이었다. ●명성황후, 왕실 日세력 제거… 日 ‘친러’ 비판하며 을미사변 개국기원절 행사 이후 왕실은 1895년 9월 재정, 법률, 내각, 군대 등에 대한 조직 개편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주한 일본공사관과 연대하는 정치 세력을 점차 제거했다. 주한 일본 공사관의 서기관 스기무라도 공사 이노우에 공사가 9월 17일 귀국길에 오르자 왕실이 갑오개혁 이후 설치된 “신제도와 신군대의 파괴에 착수했다.”고 분노했다. 왕실은 1895년 9월 20일 기존 법률과 칙령 번호를 무시하고 새롭게 칙령 1호를 발표했다. 왕실은 궁내부의 핵심인물인 이범진을 농상공부 대신으로 임명하면서, 반대세력인 농상공부 대신 김가진을 파면하고 내무협판 유길준을 의주관찰사로 전출시켰다. 무엇보다도 왕실은 일본 장교에 의해 교육받은 훈련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왕실의 신임을 받고 있는 홍계훈을 훈련대의 연대장으로 임명했다. 명성황후는 훈련대를 해산, 김홍집 내각을 약화시켜 갑오개혁 이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우라 공사는 히로시마재판소에서 1895년 9월 1일 주한 일본공사로 부임한 이후 “궁중에 온전한 권세가 날로 심하여, 망령되게 나라 정사를 간섭했다.”며 왕실의 권력 장악을 비난했다. 그는 “훈련대를 흩어지게 하며 그 사관을 내치고자 하는 무리가 일본을 박대했다.”며 궁중의 일본 ‘박대론’을 주장했다. 그는 “독립의 실상을 실행하는 내각 관원들을 내치고, 혹 살육하여 정권을 궁중에 거두고자 하는 계교가 있었다.”며 궁중이 김홍집 내각을 제거하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해를 받음이 적지 아니하니, 일본의 위엄과 믿음을 보존할 것을 생각했다.”며 일본의 ‘국익’을 위한 정변 실행을 결심했다. 그는 ‘박대’와 ‘계교’라는 용어를 쓰면서 궁중을 비난하고 일본의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강변했다. 미우라 공사는 황후의 ‘친러정책’에서 일본의 ‘국익 보존’으로 을미사변 원인에 관한 초점을 옮겼다. 일본은 명성황후의 ‘친러정책’을 언급하면서 명성황후 암살을 변명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일본의 국익 보존이었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국제세력에 맞서 왕실 보호를 위해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상층부 두 인물의 핵심 세력은 각각 전주 이씨와 여흥 민씨로 갈렸다. 하지만 들판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는 법이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광복절 67돌] 日 민주 각료 2명 야스쿠니 첫 참배

    [광복절 67돌] 日 민주 각료 2명 야스쿠니 첫 참배

    일본의 민주당 정권에서 처음으로 각료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이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일인 15일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지난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이 출범한 이후 2차 세계대전 종전일에 각료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쓰바라 공안위원장은 “개인적 참배”라면서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스스로의 신조에 따라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하타 국토교통상도 “각료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참배했다.”고 말했다. ● 총리 자제 요청에도 강행 ‘논란’ 초당파 의원연맹인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소속된 여야 국회의원(참의원과 중의원) 약 50명도 이날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또 국회의원 약 40명은 대리인을 보내 참배했다. 하지만 노다 요시히코 총리를 포함한 다른 각료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민주당 정권은 출범 이후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자제해 왔다.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는 총리의 의향을 무시한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노다 총리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각료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함으로써 노다 총리 구심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우리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현직 각료를 포함, 일본의 책임 있는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당한 국가와 국민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행위”라며 “지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도쿄 주일대사관 우익시위 ‘몸살’ 한편 도쿄 요쓰야에 있는 주일 한국대사관은 이날 하루 종일 일본 우익단체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이날 오전 8시쯤부터 ‘일본청년사’와 ‘민족동맹’ 등 일본 우익단체들이 차량 50여대에 나눠타고 몰려왔다. 이들은 한때 대사관 앞 편도 4차로 중 2개 차선을 점거한 채 “이명박 대통령은 천황(일왕)에게 사과하라.”, “미나미 조센진은 일본에서 나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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