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뉴욕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4급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육도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유럽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540
  • ‘샌드위치’ 노다

    일본 제1야당인 자민당이 오는 29일 참의원(상원)에 노다 요시히코 총리 문책결의안을 제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다음 달 8일까지 정기국회 회기 안에 여당인 민주당을 압박해 중의원(하원) 해산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소야대’인 참의원에 총리 문책결의안을 제출할 뜻을 밝혔다. 문책결의안은 총리가 국회 해산이나 각료 총사퇴를 선택해야 하는 중의원의 내각 불신임 결의안과 달리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가결후 야당이 상원의 법안 심의를 거부하면 국회가 마비된다. 앞서 자민당은 홍콩 시위대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상륙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참의원과 중의원의 예산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노다 내각의 ‘외교 실패’를 국회에서 추궁한 뒤 문책결의안을 제출한다는 게 자민당의 복안이다. 반면 민주당은 중의원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을 방패 삼아 국회 해산 시점을 늦추겠다는 전략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 민주당은 전날 자민당에 “예산위 개최에 응할 테니 이번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법안을 심의하자.”고 제안했다. 자민당이 거부하자 민주당은 22일부터 단독으로 선거제도 개혁 법안을 심의하겠다고 통지하는 등 ‘시간끌기’에 나섰다. 이에 야당은 문책결의안 제출 시점을 앞당기겠다고 위협하며 맞서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한국학도서관 순천 이전

    日 한국학도서관 순천 이전

    재일동포 기업가가 일본에서 운영 중인 대표적 한국학도서관이 전남 순천으로 이전한다. 순천 청암대는 21일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1987년부터 운영되던 도서관 ‘금수문고’가 청암대 학술정보센터 6층으로 이전해 22일 개관한다고 밝혔다. 금수문고는 윤용길 대표와 박종명 고문을 중심으로 운영돼 온 대표적인 재일동포 도서관이다. 금수문고는 남북한과 일본에서 수집한 각종 도서와 자료 등 2만 3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재일동포와 관련된 도서를 비롯해 한국과 북한, 일본에서 간행한 단행본·신문·잡지·문학작품·도감 등이 있다. 일본 주요 대학에서 발간한 학술지와 각종 사전류 등을 포함한 역사·예술·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를 총망라한다. 특히 김달수, 김석범, 박경식, 이진희 등 대표적 재일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집대성돼 있다. ‘일본식민지교육정책사료집성’, ‘조선왕조실록’ 등과 ‘조선신보’, ‘통일조선신보’ 등을 비롯한 해방 후 발행한 신문 등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도자기, 공예품 등 200여점도 포함됐다. 일본에서 지식인들을 상대로 독도는 한국땅이란 강연을 해 화제를 모았던 강명운 청암대 총장은 “이번에 개관하는 금수문고는 앞으로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관심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日 500년 전통 마지막 닌자 “더이상 닌자는 없다”

    日 500년 전통 마지막 닌자 “더이상 닌자는 없다”

    주로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악당으로 등장하는 ‘암살의 달인’ 닌자가 실제로도 존재할까? 최근 한 해외매체가 일본의 ‘마지막 닌자’로 알려진 카와카미 진이치(63)를 인터뷰 해 눈길을 끌고있다. 진이치는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닌자 조직의 21대 수장으로 현지에서도 ‘마지막 닌자’로 통한다. 그가 마지막 닌자가 된 것은 암살, 독살, 은신, 정보 수집등의 전통 교육을 받은 마지막 인물이기 때문이다. 진이치는 “닌자 고유의 무기를 통한 암살 등 다양한 기술은 도제자에게 구전으로만 전승된다.” 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가 처음 닌자 교육을 받게된 것은 6살 때. 진이치는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고통을 참는 법을 배웠다.” 면서 “과정이 너무나 혹독해서 왜 내가 교육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내 삶의 일부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500년 닌자의 전통도 진이치를 마지막으로 종말을 고하게 됐다. 계승할 도제자를 두지 않았기 때문. 진이치는 “현대 시대에 닌자는 어울리지 않으며 존재할 필요도 없다.” 면서 “제자에게 살인과 독을 만들고 사용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진이치는 일본 미에대학의 특임교수로 닌자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닌자의 정보 수집과 분석 방법을 현대의 비즈니스에 응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인터넷뉴스팀
  • [한일 독도갈등] 할퀴려다 발톱 감추는 日의 속셈은

    [한일 독도갈등] 할퀴려다 발톱 감추는 日의 속셈은

    일본이 독도 문제와 관련, 강온(强穩)작전을 펼치고 있다.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결정했으나 한국에 대한 보복책에 대해서는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21일 오전 독도 관련 각료회의에서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결정했지만, 한국에 대한 보복책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구체적으로 결정한 사항은 독도 문제의 제소·조정 제안 외에 장·차관 등 각료급 접촉 중단, 이달 말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한·중·일’ 경제장관회의에서의 양자회담 유보 등이다. 하지만 경제보복책에 대해서는 논의만 했을 뿐 확정짓는 단계로는 나아가지 않았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촉발된 한·일 관계 근간을 해치는 수준을 피하는 것으로 동북아 역학관계를 고려한 발빼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겪는 상황에서 한국마저 적으로 돌리면 ‘고립무원’이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한·미·일 동맹을 통해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일본 정부가 보복책으로 맨 처음 거론했던 통화스와프 문제에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 내에서 영토 문제는 영토 문제로 대응해야 하며, 경제 보복으로 키우는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마쓰시타 다다히로 일본 금융상은 이날 각료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일 통화스와프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통화스와프 축소 문제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마쓰시타 금융상의 이런 언급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 이후 일본에서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중단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이 강하게 거론돼 온 것과는 상반되는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아즈미 준 재무상도 이날 별도 기자회견에서 통화스와프 협정의 중단이나 규모 축소에 대해 “백지상태”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당초 이날 중국 산둥(山東) 칭다오(靑島)에서 열린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2차 실무협의에 나가지 않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결국 참석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독도 ICJ제소 제안서… 韓 “수용 안해”

    일본이 21일 우리 정부에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제안하는 내용의 구상서(외교 서한)를 보내 왔다.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가 오후 외교부 청사를 방문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구상서를 전달했다고 외교통상부가 밝혔다. 앞서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독도 문제와 관련한 각료회의를 열어 한국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제안 등을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또 1965년 한·일협정의 교환 공문에 의거한 조정도 제안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의 제소나 조정 제안을 수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각료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에 대한 사죄 요구와 관련한 대응 조치를 논의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마쓰시타 다다히로 금융상은 보복 조치의 하나로 거론된 한·일 통화스와프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협정 중단이나 규모 축소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통화스와프 재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던 아즈미 준 재무상도 “백지상태”라며 한발 물러섰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각료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한국 측이 생각을 깊이 해 신중하게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노다 총리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의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 측에) 정정당당하게 제소에 응할 것을 요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제안과 관련,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독도는 우리 영토이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날 새누리당은 ‘일본의 독도 침탈 행위 및 역사 왜곡 중단 촉구 결의안’을, 민주통합당은 ‘일본방위백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철회 촉구 결의안’을 각각 발의하며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한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이날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 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며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해 또 다른 파장이 예상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오일만기자 jrlee@seoul.co.kr
  • 日여기자, 시리아 취재 중 총격 사망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에서 일본인 여기자가 사망하는 등 종군 기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1일 AP·AFP 등에 따르면 재팬 프레스사의 베테랑 종군 특파원인 야마모토 미카(45) 기자가 시리아 반군의 본거지인 북서부 도시 알레포에서 취재 도중 총격으로 숨졌다고 일본 외무성이 밝혔다. 영국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도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하고 있는 알레포 동쪽 술레이만 알 할라 비에서 일본 여기자 1명이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여기자의 시신은 일본 영사 담당 관리들이 있는 터키로 옮겨졌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는 일본 여기자의 시신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반군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동영상 속 여성 시신의 오른팔에는 큰 상처가 보였고, 동료로 보이는 아시아계 남성이 의료진의 도움을 청하는 장면도 있었다. 야마모토 기자와 일했던 AP 기자는 동영상을 본 뒤 이 여성이 야마모토 기자임을 확인했다. 동영상에서 반군 관계자는 친정부 민병대가 여기자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자의 죽음이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진하기를 희망한다.”며 시리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한일 독도갈등] 金외교 “日 추가도발 단호하게 대응할 것”

    정부는 21일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결정에 대해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일본의 의도적인 ‘독도 분쟁화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외교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명백백한 우리의 고유 영토로서 영토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독도를 ICJ에 회부하자는 일본 측의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일본 정부가 이날 구상서(외교 공한)를 우리 정부에 전달한 데 대해 조 대변인은 “우리도 외교 공한을 통해 우리의 기존 입장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ICJ에 회부하자고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은 1954년과 1962년 이후 50년 만이다. 주한 일본대사관의 오쓰키 고타로 참사관은 이날 오후 4시 54분께 외교부 청사를 방문, 구상서를 전달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독도 문제의 ICJ 제소 제안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앞으로도 일본 정부가 독도와 관련해 부당한 조치를 취할 경우 독도는 우리의 고유 영토라는 확고한 입장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한일 독도갈등] “한국, 日위안부 강제성 증거 내놔라” 日 차세대 총리감 역사인식마저…

    [한일 독도갈등] “한국, 日위안부 강제성 증거 내놔라” 日 차세대 총리감 역사인식마저…

    일본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 전망이다. 21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시모토 시장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한 일본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면서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며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위안부 제도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도일지도 모른다.”라며 “한국 측의 주장을 전부 부정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폭행당해 끌려간 증거없다” 하시모토 시장은 또 “위안부라는 문제가 뿌리에 있다.”며 “일본의 입장뿐만 아니라 상대의 주장도 뿌리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시모토 시장의 이날 발언은 ‘고노 담화’의 의미를 축소하길 원하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에서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으로 설치됐고, 일본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와 위안부의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은 감언이나 강압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한 경우가 많았고, 관헌 등이 직접 가담한 적도 있었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 설치·운영이나 위안부 모집에 총체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정신대硏 “이미 충분” 특히 하시모토 시장은 차기 중의원(하원) 총선거에서 자신이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의 전국 정당화를 노리고 있어 보수 우익의 표를 의식해 위안부 관련 발언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시모토 시장은 지난해 8월 오사카의 고급 유흥 클럽에서 일하던 술집 여성과 온갖 변태적인 애정행각이 한 주간지에 보도될 정도로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각인되고 있어 여성계 등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국정신대연구소 윤정옥 고문은 “증거는 이미 충분하다. 우리 자료가 싫다면 일본인 요시미 요시야키가 쓴 ‘종군위안부’라는 책을 봐라. 한국의 소녀와 젊은 여자들이 어떻게 끌려갔는지 자세히 묘사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양노자 팀장은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지 어떤 사람의 발언 한마디에 일일이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 그들 수준에 맞출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조은지기자 jrlee@seoul.co.kr
  • 한·일 갈등 속 日관광객 증가…경제 영향 아직은 ‘미풍’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과 발언 이후 한·일 간에 외교갈등이 점증하는 가운데도 경제·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미미한 것으로 밝혀졌다. 20일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일본의 오본(음력 백중) 연휴를 이용해 한국에 간 일본인 관광객은 약 7만 8000명(추정치)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만 7000명에 비해 17% 증가했다. 비교 범위를 1∼15일로 넓히면 16만 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4만 6564명보다 14% 늘었다. 10일 이후 여행객 증가세가 그 전보다 훨씬 가파르다. 한·일 간 갈등이 고조됐는데도 한국을 찾는 여행객이 늘어난 이유는 일본인들이 양자를 별개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K팝이나 한류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주일 한국대사관 집계 결과 화장품과 한류상품 판매도 매출액 변화가 없으며 일부 회사는 지난달에 비해 약 5% 상승한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식업도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10일 전후 매출액 변화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사관 관계자는 “최근에 나타난 매출 증가는 일본의 전통명절인 오본 기간에 일본 소비자들이 한·일 간 외교 갈등과 상관없이 평소에 선호해 온 한국상품을 꾸준히 애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 내 한국인 상공인들은 한·일 간 긴장 관계가 장기화되면 상당한 매출변화가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주일 상공인단체인 재일본한국인연합회나 재일한국인음식업협회는 우익 단체의 시위나 한일 젊은이들 간 충돌 같은 돌발 사건을 걱정하고 있다. 도쿄의 한류 1번지인 신오쿠보에서 한국 식당 ‘한미리’를 운영하는 서보영(41)씨는 “이번 일로 당장 영향을 받는 건 아니지만, 장기화되면 매상에 지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규모가 큰 한국 기업도 민감하게 동향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별다른 영향은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일본법인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점검을 해 봤지만 최근 일로 매출 등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사설] 日 ‘독도 망동’에 실효적 지배 강화로 맞서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로 불거진 한·일 갈등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립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내각 전 부처에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오늘은 독도 각료회의를 주재하는 등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앞서 일본은 몇몇 각료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는가 하면 이 대통령에게 독도 방문에 유감을 표명한 총리서한을 보내면서 이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외교 결례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은 독도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와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재검토, 한국 국채 매입 철회 등 가용 수단을 총동원, 전방위 공세에 나서고 있다. 시마네현에서 해마다 열리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정부행사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벼랑 끝 전술을 연상케 하는 몰이성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로서는 바짝 긴장하고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할 엄중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 총리의 ‘항의서신’ 등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미적지근한 대변인 논평을 내놓았지만 과연 제대로 된 원칙과 기준에 따른 것인지는 의문이다. 도덕적 명분이 충분한 우리가 외려 수세에 몰리는 듯한 양상이다. 며칠 전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은 독도문제와 관련, ICJ로 가면 일본의 승산은 120%라고 호언했다. 한국이 ICJ행을 거부할 경우 조정절차를 밟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적반하장이다. 양국의 국민감정까지 가세한 첨예한 사안인 만큼 우리 정부가 불필요한 자극을 피하고 단호하되 차분한 대응기조를 유지하려는 배경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선린국으로서의 예의는 고사하고 양국의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무차별적 압박에 대해선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지난주 독도 동도에 ‘독도수호 표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실효적 지배 강화책의 일환이다. 일본이 독도 야욕을 노골화할수록 우리는 실효적 지배를 한층 가시화하는 구체적 조치들을 하나씩 속도감 있게 실천해 나가야 한다.
  • 위기의 日, 새달 韓·美·中대사 모두 교체

    위기의 日, 새달 韓·美·中대사 모두 교체

    한국, 중국과의 외교갈등 국면에서 위기에 몰린 일본 정부가 다음 달 주요국 대사를 교체한다. ‘대화창구’ 등 분위기를 바꿔 갈등해소의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주한대사에 벳쇼 고로(59) 정무 담당 외무심의관이 내정됐다. 벳쇼 심의관은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장·국제협력국장·종합외교정책국장 등을 역임했고, 차기 외무차관과 주중대사 물망에도 올랐던 중량급 인사다. 언론들은 “냉각된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실제 벳쇼 내정자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 발언으로 급속히 냉각된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후지사키 이치로(65) 주미대사의 후임에는 사사에 겐이치로(60) 사무차관이 낙점됐다. 일본이 외무성 차관 경험자를 주미대사로 기용하는 것은 2001년 이후 11년 만이다. 아시아·대양주 국장 등을 지낸 사사에 사무차관이 후텐마 기지 이전이나 미군의 수직 이착륙기 오스프리 배치 등 미·일 간 현안에 정통하다는 점을 중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 출신인 니와 우이치로(73) 주중대사 후임에는 니시미야 신이치(60) 경제 담당 외무심의관을 내정했다. 일본 정부 내에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를 계기로 민간인의 주중대사 기용이 실패했다는 자성론이 많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21일 독도관련 각료회의

    일본 정부는 21일 독도 관련 각료회의를 열어 한국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복책을 협의한다. 각료회의에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를 비롯해 오카다 가쓰야 부총리,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이 참석한다. 후지무라 관방장관은 20일 기자회견에서 “향후 취할 정부 차원의 조치를 논의한다.”면서 “첫 회의인 만큼 특단의 결정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1일 각료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구체적 보복책이 확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한국에 제안할 방침이어서 이번 주 내 제안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날 집권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죄 요구 등에 대한 국회 비난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하고 결의안 원안을 결정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전미정, 日그린 통산 20승

    전미정, 日그린 통산 20승

    전미정(30·진로재팬)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개인 통산 2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전미정은 19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의 다이하코네 골프장(파73·6687야드)에서 열린 JLPGA 투어 CAT 레이디스(총상금 6000만엔)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몰아쳤다. 최종합계 13언더파 206타를 기록한 전미정은 공동 2위 이보미(24·정관장)와 모리타 리카코(일본)를 4타 차로 제치고 우승 상금 1080만엔(약 1억 55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6월 리조트 트러스트 레이디스, 7월 니치-이코 레이디스에서 우승한 전미정은 시즌 3승째를 거뒀고 일본 무대에서 통산 20승을 채웠다. 2005년부터 일본에서 활약한 전미정은 2006년 3승을 시작으로 2007년 4승, 2008년 2승, 2009년 4승, 2010년 3승, 2011년 1승 등 해마다 우승을 놓치지 않았고 올해 3승을 더해 20승을 달성했다. JLPGA 투어에서 20승 이상 거둔 것은 전미정이 통산 11번째다. 전미정은 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영구 시드를 확보했다. KLPGA에서는 투어에서 20승 이상을 거두거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JLPGA 투어, 유럽여자프로골프 투어에서 역시 20승 이상을 올린 선수, 국내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선수에게 영구 시드를 준다. 지금까지 국내 투어 영구 시드를 받은 선수는 구옥희, 박세리, 신지애에 이어 전미정이 네 번째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한·중 수교 20주년…상생의 미래를 열자] “1992년 베이징~서울 오가며 4차례 비밀회담, 日 우회·선글라스 위장… 피말렸던 007작전”

    [한·중 수교 20주년…상생의 미래를 열자] “1992년 베이징~서울 오가며 4차례 비밀회담, 日 우회·선글라스 위장… 피말렸던 007작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위해 피 말리는 ‘007작전’을 하며 비밀 협상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안타까운 것은, 한국은 아직도 중국을 너무 모른다는 거예요. 정부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1992년 8월 24일 이뤄진 한·중 수교 체결을 위해 그해 4월부터 시작된 양국 간 수차례 비밀 회담 등 수교 전 과정에 통역으로 참여했던 이영백(67)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 초빙교수는 1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통역으로서 입을 닫아야 했기 때문에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화교학교를 다닌 뒤 타이완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던 이 교수는 중국어 및 중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인정받아 한·중 관계가 무르익던 1991년 1월 당시 외무부 동북아2과에 통역 사무관으로 특채됐다. 한·중 수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주중 대사관에서 일하다가 2004년 퇴직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교수는 “1991년 11월 서울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 각료회의가 열렸을 때 중국 외교부장 등 각료 2명이 방한하면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수교 의지가 전달됐고, 1992년 4월 베이징에서 양국 외교장관이 만나 비밀리에 회의를 열었다.”며 “통역을 한 뒤 중국 상부 지침 내용을 적어 귀국,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역사적인 한·중 수교를 위한 비밀 회담은 1992년 5~7월 베이징과 서울을 오가며 4차례 열렸다. 이 교수는 “양국에서 각 6명이 회담에 참여했는데 보안을 위해 일부는 휴가를 냈고, 선글라스·모자 등으로 위장을 하고 일본 등을 우회해 베이징으로 갔다.”며 “당시 안기부 간부도 참여했는데 회담장에서 가방의 잠금장치를 누군가가 건드렸다고 항의해 한때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며, 중국 측의 사과가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MB 日王발언, 日민족주의 자극… 독도문제 등 다자외교로 풀어야”

    “MB 日王발언, 日민족주의 자극… 독도문제 등 다자외교로 풀어야”

    한국인 최초로 일본 도쿄대 교수에 임용된 강상중 교수는 지난 18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사과 요구 발언 뒤의 일본 사회 분위기에 대해 “80년 전 군국주의 대두 때와 유사한 고립감, 불안감, 공포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일교포 2세인 강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3주기인 이날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에서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이 주최한 ‘일본정치, 동아시아 평화, 탈핵’이라는 특강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역사적으로 낙관론이 갑자기 비관론으로 바뀐 적이 있다. 지금 양국 관계가 안 좋은데 시민사회가 안정적 관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 교수는 “일본에 평화 낙관론이 퍼져 있던 1919년 한국 3·1운동과 중국 5·4운동 등 동북아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일본 사회에 불안이 일었고, 간토대지진과 농민 소요까지 터져 불안이 확산됐다.”면서 “대공황 등을 거쳐 군국주의가 득세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낙관하면 안 된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그는 “물론 한·일 관계가 당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국력이 커졌고, 한국과 일본, 중국 3국의 민간 차원 풀뿌리 교류가 활발해졌다.”면서 “그럼에도 일본 사회에 깊은 불안이 퍼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깊은 그늘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한국과의 독도 분쟁에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영토분쟁, 미국과의 오키나와기지 논란 등이 겹쳐 “외부의 압박을 받는다는 피해의식과 고립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파워 엘리트 그룹 중에서도 안전 보장에 대한 불안감이 깊어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정치적으로는 해마다 총리가 바뀌는 등 독일 나치정권 출범 전 바이마르공화국과 유사하다고 경고했다. 일본 국민의 불안감 증가를 토양으로 강경 민족주의자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총리가 되려고 하고 있으며 “평화헌법 개정은 물론 총리권력을 대통령과 유사하게 강화, 강력한 민족주의 정책으로 ‘강한 일본’을 지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일 관계에 대해선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국제사회에 ‘한·일 간에 영토문제가 있다’고 비치게 한 전략적 실수라고 본다.”면서 “일왕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자와 좌파들조차 반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나 영토 분쟁 등의 문제에 있어 양국 간 해결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한·미·일·중·러·북) 회담 등 다국 간 외교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긴장 완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일 통화스와프와 관련, “단지 두 나라 간 문제가 아니고 아시아 경제위기를 막아주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동남아국가연합과 한국·중국·일본 등이 역내 외환위기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체결한 통화교환협정)의 틀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낙관론을 경계하고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노다, 전 부처에 韓 추가보복 지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및 일왕의 한국 방문을 둘러싼 이 대통령의 발언 등과 관련, 모든 정부 부처에 한국에 대한 추가 보복조치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노다 총리가 지난 17일 이 대통령에게 독도방문 유감 서한을 보내온 것과 관련, 이를 반박하는 서한을 보내기로 한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노다 총리는 21일 독도 관련 각료 회의를 열어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및 한국과의 통화 교환(스와프) 협정 규모 축소 등 대응책을 논의한다. 이와 관련해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전 부처를 대상으로 한·일 양국이 관여하는 회의 및 정책, 교류사업을 재검토해 20일까지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ICJ 제소 방침을 밝힌 데 이어 통화스와프 재검토, 한·일 재무장관 회담 연기, 한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 진출 저지 계획 등으로 강경 대응해 왔다. 또 한국 원화 표시 국채 매입 계획 철회, 독도 민간조사연구 지원,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를 정부 차원으로 격상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한·일 간의 차관급 이상 고위급 회담 중단이나 한국 정부 관계자 초청 중단 등도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금명간 독도 문제를 ICJ에 제소하자는 제안을 담은 구상서(외교서한)를 한국에 전달할 전망이다. 일본은 한국이 공동 제소를 거부할 경우 단독 제소, 1965년 한·일협정 당시의 교환 공문에 따른 조정 요구 등을 순차적으로 실행해 독도 문제의 장기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문화교류의 동결은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와 경제 분야 조치를 중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 관계자는 노다 총리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에 대해 유감을 밝힌 서한을 주일 한국대사관에 보내온 것과 관련, “반송 가능성도 남아 있긴 하지만 반박서한 발송이 적절하다고 본다.”면서 “명백히 잘못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김성수기자 jrlee@seoul.co.kr
  • UFO?…日해안서 원뿔형 미확인물체 발견

    일본의 한 해안가에 원뿔 모양의 거대한 미확인물체가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19일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시즈오카현 오마에자키시 해안에서 발견된 미확인물체가 우주선 혹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에서 표류한 잔해인지를 두고 관심이 몰리고 있다. 오마에자키시에 따르면 이 물체의 하단부는 지름이 약 2m이고 높이도 약 2m인 원뿔형이다. 또 바닥 중심부에는 약 50cm의 구멍이 있으며 내부는 대부분 비어 있으며 표면은 플라스틱에 가까운 어두운 소재로 바지락 같은 소형 조개가 촘촘히 붙어 있다. 이 물체는 지난 12일께 해안 등대에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서 서퍼들이 발견하고 시에 신고했다. 오마에자키시 홍보과는 시 페이스북에 “우주선의 잔해 같은 물체가 발견됐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해안을 관리하는 시즈오카현 후쿠 토목사무소 측은 “부표로 보이나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전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19세기 후반 세계는 해양과 철도로 연결되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외압이 조선을 변화시켰다. 정치적·군사적 외압을 바탕으로 열강은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상호 연대와 대립을 반복하면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조선 측의 대응도 있었다. 외압에 대응해 조선 역시 열강과 외교라는 수단을 통해 국권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러시아는 극동지역에서 일본과 대립하는 하나의 축이자 조선과 국경을 맞댄 나라였다. 조선은 러시아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영국, 일본, 청국은 자국의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려는 전략으로 공러(恐)의식을 조작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원군과 명성황후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대원군, 러 견제위해 佛신부와 접촉도 1863년 12월 철종(哲宗)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에 봉작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섭정 초기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최고의 권력기구로서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는 기반이 되었던 비변사(備邊司)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복설하였다. 그리고 의정부와 동일한 위상을 갖는 최고의 군사기관으로 삼군부를 설치하였다. 을미사변의 주역인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는 “흥선대원군이 국제 정세만 정확히 파악하면 동양의 뛰어난 외교가로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1860~1870년대 서구열강과의 접촉에서 외세의 영향력을 직접 경험했고, 러시아 또는 미국 등 서구열강 일국에 편중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했다. 그 배경에는 흥선대원군이 외교관계의 미묘한 변화와 흐름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1860년 북경조약(北京條約)으로 연해주(沿海州)를 획득함으로써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과 새로 국경을 접한 러시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은 조선에 잠입해 있던 프랑스 신부들과 접촉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신부들과의 접촉은 프랑스 및 영국과의 제휴도 염두에 둔 파격적인 시도였다.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적 도발은 흥선대원군의 강렬한 척화정책을 북돋았다. 거기에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E. J. Oppert, 吳拜)가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南延君)묘를 도굴한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서양에 대한 적개심을 강화시켰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은 외세를 물리쳤다는 강한 자부심을 얻었으나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성은 정권 초기보다도 경직되었다. 두 차례의 양요(洋擾)를 겪으면서 흥선대원군정권은 강력한 군사력 편성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전국에 3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포군을 설치하였다. 그 후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에서는 청나라와, 갑오개혁 때는 일본과 각각 대립했다. 흥선대원군은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고종으로부터 사태수습을 위한 전권을 위임받고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톈진(天津)으로 납치되었고 1885년 겨우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대의 ‘경복궁침입사건’ 당시 흥선대원군은 주한 일본공사 오토리(大鳥圭介)와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의 개혁정책을 반대하다가 주한 일본공사 이노우에에 의해 정계 은퇴를 강요당했다. ●1895년 개국기원절 日인사 초청 놓고 반일친러 분위기 형성 명성황후는 외교 분야의 현안에 간접적으로 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록(行錄)을 살펴보면 “짐이 근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 풀어 주었다.”, “심지어 교섭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는 나를 권해서 먼 곳을 안정시키도록 했다.” 등이 기록되었다. 1895년 9월 4일 왕실은 조선왕조 504년 건국 기념일인 ‘개국기원절’ 행사를 준비했다. 이날 행사의 준비위원회에서는 외국인 중 궁내부 고문관(宮內府 顧問官) 러젠드르 장군, 러시아공사 베베르의 부인의 자매이자 궁내부에 소속된 손탁 여사, 그리고 러시아 건축기사 사바친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러젠드르 장군은 사무장(事務長)이라는 명예위원으로 외국인들을 접대하였고, 손탁 여사는 음식과 식탁 준비를 담당했으며, 사바친은 식장의 장식 부분을 총괄했다. 당시 러시아공사 베베르는 조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손탁을 궁내부에 고용하도록 추천했다. 독일 엘자스(Elsass) 출신인 손탁은 궁궐에서 유럽식 향연을 준비하면서 명성황후를 자주 만나 2~3시간씩 연속으로 황후와 대화했다. 이날 회의에서 행사와 관련된 한 명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식탁 시중을 위해서 일본 급사를 초청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인들의 이름이 나오자, 손탁 여사는 얼굴을 찡그렸고, 일본인들 전체를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침까지 내뱉었다. 그러자 러젠드르 장군은 마치 귀부인에게 시중드는 유명한 기사처럼 웃으면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손탁 여사는 왕실로부터 자신의 개인 집을 짓기 위해 약 1만 달러를 받았고, 그녀의 지도 아래 조선 여인들이 다양한 수공예를 배울 수 있는 학교 설립을 약속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사바친은 일본공사관의 외교관 및 일본과 연대하고 있는 조선 관료들의 명성황후를 향한 적개심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때 사바친은 “이것이 언뜻 보기에는 별일 아닌 작은 사건 같지만, 이와 비슷한 작은 사건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어떤 음모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손탁과의 관계 속에서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지원을 예상하고 평소의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반일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명성황후는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둘러싸고 일본이 외교적으로 패배하자 조선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명성황후 주변의 미국인도 자국의 이권과 특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의 영향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만일 황후가 유럽인들로부터 보호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자신을 보호해 주겠다는 유럽인들의 약속을 받았고, 유럽인들이 궁궐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신뢰했다. 신은 조심하는 자를 보살필 뿐이었다. ●명성황후, 왕실 日세력 제거… 日 ‘친러’ 비판하며 을미사변 개국기원절 행사 이후 왕실은 1895년 9월 재정, 법률, 내각, 군대 등에 대한 조직 개편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주한 일본공사관과 연대하는 정치 세력을 점차 제거했다. 주한 일본 공사관의 서기관 스기무라도 공사 이노우에 공사가 9월 17일 귀국길에 오르자 왕실이 갑오개혁 이후 설치된 “신제도와 신군대의 파괴에 착수했다.”고 분노했다. 왕실은 1895년 9월 20일 기존 법률과 칙령 번호를 무시하고 새롭게 칙령 1호를 발표했다. 왕실은 궁내부의 핵심인물인 이범진을 농상공부 대신으로 임명하면서, 반대세력인 농상공부 대신 김가진을 파면하고 내무협판 유길준을 의주관찰사로 전출시켰다. 무엇보다도 왕실은 일본 장교에 의해 교육받은 훈련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왕실의 신임을 받고 있는 홍계훈을 훈련대의 연대장으로 임명했다. 명성황후는 훈련대를 해산, 김홍집 내각을 약화시켜 갑오개혁 이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우라 공사는 히로시마재판소에서 1895년 9월 1일 주한 일본공사로 부임한 이후 “궁중에 온전한 권세가 날로 심하여, 망령되게 나라 정사를 간섭했다.”며 왕실의 권력 장악을 비난했다. 그는 “훈련대를 흩어지게 하며 그 사관을 내치고자 하는 무리가 일본을 박대했다.”며 궁중의 일본 ‘박대론’을 주장했다. 그는 “독립의 실상을 실행하는 내각 관원들을 내치고, 혹 살육하여 정권을 궁중에 거두고자 하는 계교가 있었다.”며 궁중이 김홍집 내각을 제거하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해를 받음이 적지 아니하니, 일본의 위엄과 믿음을 보존할 것을 생각했다.”며 일본의 ‘국익’을 위한 정변 실행을 결심했다. 그는 ‘박대’와 ‘계교’라는 용어를 쓰면서 궁중을 비난하고 일본의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강변했다. 미우라 공사는 황후의 ‘친러정책’에서 일본의 ‘국익 보존’으로 을미사변 원인에 관한 초점을 옮겼다. 일본은 명성황후의 ‘친러정책’을 언급하면서 명성황후 암살을 변명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일본의 국익 보존이었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국제세력에 맞서 왕실 보호를 위해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상층부 두 인물의 핵심 세력은 각각 전주 이씨와 여흥 민씨로 갈렸다. 하지만 들판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는 법이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日의원 등 150명 센카쿠 위령제… 中 “日제품 불매” 전국서 시위

    일본인들이 19일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위령제를 강행하자 중국에서는 반일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앞서 일본이 지난 15일 센카쿠열도에 상륙한 홍콩 시위대를 강제송환 형식으로 돌려 보내면서 일단락 조짐을 보였던 양국 간 충돌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일본의 초당파 의원으로 구성된 ‘일본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 연맹’ 소속 의원 8명과 지방의원, 유족 등 150여명은 선박 21척에 나눠 타고 이날 새벽 센카쿠열도 주변에 도착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센카쿠 해역에서 선박 침몰로 숨진 사람들의 해상 위령제를 올린다는 명목으로 현지로 향했지만, 사실은 중국과 타이완 등의 영유권 주장에 대항해 일본 땅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상륙을 불허한다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위령제 참가자 가운데 10명은 이날 오전 센카쿠열도에 상륙했다. 이에 반발해 중국에서는 이날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전날부터 위령제 소식이 전해지면서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반일 시위 참여 촉구문이 나돌았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병행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등 전방위적인 반일 운동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이다. 남부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번화가인 화상베이(華商北) 인근에서는 오전부터 2000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댜오위다오의 주권을 주장하며 거리시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가 격분해 일장기를 불태우는가 하면 주차된 일제 차량을 향해 돌멩이와 유리병을 투척했다고 중화권 언론들이 보도했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중심인 우린(武林)플라자 인근에서도 ‘댜오위다오를 돌려달라’, ‘일제 물건 사지 말자’ 등의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 수천명이 공안의 호위를 받으며 성 공산당위원회 건물까지 거리 행진을 벌였다. 광둥성 광저우(廣州)의 일본 총영사관 근처에도 시위대 수백명이 모여 ‘샤오(小)일본을 타도하자’며 반일 구호를 외쳤다. 이 밖에 전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薄)에는 이들 3개 도시 이외에도 닝보(寧波), 칭다오(靑島), 지난(濟南), 청두(成都), 원저우(溫州), 시안(西安), 간저우(?州), 우한(武漢), 정저우(鄭州), 옌타이(煙台), 구이저우(貴州) 등 10여개 도시에서 오전 10시부터 반일 시위를 벌이자는 촉구문이 나돌았다. 이들 도시에선 이미 지난 17일부터 반일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져왔다. 중국 외교부의 친강(秦剛) 대변인은 이날 일본인들의 센카쿠 열도 상륙과 관련, “일본 우익분자들의 불법 행위가 중국의 영토주권을 침범했다.”며 강력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니와 우이치로(73) 주중 일본대사를 또다시 초치해 엄중 항의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일본이 21일부터 37일간 괌과 티니안섬에서 미군의 도서 방어 훈련에 참여하는 것과 관련, “댜오위다오를 염두에 둔 훈련”이라면서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자극했다. 한편 홍콩과 타이완 시위대는 다시 댜오위다오 상륙을 시도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15일 댜오위다오에서 체포돼 강제송환된 홍콩 시위대가 오는 10월 댜오위다오에 다시 상륙하겠다고 공언한 데 이어 타이완 활동가들도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 및 홍콩 단체들과 공조해 댜오위다오 상륙을 시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내에서는 노다 정권의 유약한 대응을 질타하는 비난이 분출하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은 정기국회 회기(9월 8일) 내에 내각불신임결의안과 총리문책결의안을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니와 대사를 오는 10월 교체하기로 했다. 일종의 문책 성격이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대장균 오염 절임배추 먹고 6명 사망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병원성 대장균(E 콜리 박테리아)에 오염된 절임배추를 먹어 6명이 숨지고 최소 10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고 현지 보건당국이 18일 밝혔다. 당국 관계자들은 문제가 된 절임배추가 현지 회사 2곳에서 생산돼 홋카이도 전역으로 판매됐다고 밝혔다. 첫 감염사례는 10일 전에 보고됐다. 사망자 대부분은 양로원에서 생활하던 노인들이었으나, 지난주 삿포로에서는 4세 여아가 절임배추를 먹은 지 며칠 뒤 목숨을 잃었다. 일본에서 흔히 먹는 밑반찬인 절임배추를 통해 사망자가 발생하자 일본 전역을 충격에 휩싸였다. 과거 대부분의 식중독 사례는 육류나 해산물과 관련돼 있었다. 보건 당국은 불충분한 살균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