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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문책안 의결… 노다 ‘식물총리’ 전락

    일본 야당이 29일 노다 요시히코 총리 문책 결의안을 의결, 정국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참의원은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제1 야당인 자민당과 국민생활제일당 등 7개 야당이 제출한 총리 문책 결의안을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표결 결과는 참의원 정원 242석 가운데 220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29표, 반대 91표였다. 역대 총리 가운데 문책 결의를 받은 총리는 자민당 정권 당시의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에 이어 세 번째다. 총리 문책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노다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을 경우 야권의 거센 반발로 국정 파행이 불가피하다. 다음 달 8일이 시한인 정기국회가 공전하면서 각종 법안 심의와 처리가 중단돼 노다 총리의 국정 운영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노다 총리는 올해 예산 확보에 필수적인 특별공채 발행 법안과 선거제도 개혁 법안 등 현안을 처리한 뒤 총선을 실시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도 중의원 해산 시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등 ‘시간 끌기’로 일관하다 결국 ‘식물 총리’로 전락한 꼴이 됐다. 참의원에서 문책을 당한 총리는 두세 달 안에 사퇴한 전례가 있는 만큼 민주당 내에서는 노다 총리를 당 대표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및 중국과의 외교분쟁에 더해 야당의 집중 공세와 당내 반발 기류 등 국내외적으로 노다 총리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내각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노다 총리가 다음 달 21일로 예정된 민주당 대표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당내 인기도가 높은 마에하라 세이지 정조회장이 지난달 노다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현재 노다 총리에게는 뚜렷한 경쟁 상대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 “노다 총리로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에 대적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항마’를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노다 재선’의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경선도 오리무중이다. 최근 우경화 분위기를 타고 대표적 보수 강경파 정치인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급부상하면서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총재의 입지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다음 달 26일쯤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자신이 속한 계파인 마치무라파의 전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에게 출마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대중적 인기가 제일 높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아베 전 총리와 총선에서 공동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일본은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우경화 길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고시 Q&A] 토플은 모든 국가, 토익은 日서 응시한 시험도 인정

    Q:5급 공채의 영어 과목이 토익, 토플 등 영어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해외 어학연수를 하며 영어능력검정시험을 보기도 하는데요. 외국에서 본 시험도 인정해 주는지 궁금합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A:5등급 외무공무원 공채시험(외무고시)은 2004년부터, 5급 공무원 공채시험(행정고시)은 2005년부터 각각 1차시험의 영어 과목을 토플, 토익, 텝스, 지텔프(G-TELP), 플렉스(FLEX) 등 5가지의 영어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해 실용적인 영어능력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중 외국 시험인 토플, 토익, 지텔프는 응시자의 편의 도모를 위해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응시한 시험도 일부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토플의 경우 모든 국가에서 응시한 시험을, 토익의 경우 일본에서 응시한 시험을, 지텔프는 미국에서 응시한 시험을 각각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영어능력검정시험의 성적은 응시원서 접수 시에 제출해야 합니다. 최종시험(통상 면접시험) 시행 예정일부터 거꾸로 계산해 2년이 되는 해의 1월 1일 이후에 실시한 시험에 한해 유효하게 인정됩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공무원 임용 시험이나 국가기관이 시행하는 각종 자격시험에 대해 궁금한 내용을 이메일(geo@seoul.co.kr)로 보내 주시면 매주 목요일자 ‘고시&취업’ 면에 답변을 게재하겠습니다.
  • 힐러리, 새달 동아시아 순방 때 한·일 제외… 韓·日갈등에 부담 느낀 듯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다음 달 초 중국 베이징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달아 방문하면서도 인접한 한국과 일본은 들르지 않기로 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지금까지 동아시아를 순방할 때 동맹국인 한·일을 잇따라 방문하거나 최소한 한 나라라도 들러 왔다. 또 시간이 없으면 당일치기로 반나절 일정이라도 소화하곤 했다. 미 국무부는 28일(현지시간) 클린턴 장관이 30일 워싱턴을 출발해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이 열리는 쿡 아일랜드로 출국하며 이후 인도네시아와 중국, 동티모르, 브루나이, 러시아를 순방한다고 발표했다. 베이징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멀지 않은 서울과 도쿄를 건너뛰는 것은 최근 영토와 과거사 문제로 갈등에 휩싸인 한·일 관계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국이나 일본 정부로부터 편을 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거나 시위대와 맞닥뜨리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계산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클린턴 장관이 이번 동아시아 순방에서 한·일을 건너뛰긴 하지만 다음 달 8∼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대선 선거운동으로 바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할 예정이고 이 회의에는 한·중·일 정상들이 자리를 함께한다는 점에서 그가 최근의 3국 간 외교 갈등에 대한 중재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日 IBM 전 회장, 지하철서 ‘몰카’ 찍다 덜미

    일본의 유명 경제인이 지하철에서 몰카를 찍다 적발돼 경찰조사를 받는 망신을 당했다. 30일 요미우리 신문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일본 IBM의 전 회장이자 최고 고문인 오토시 다쿠마(63)가 최근 지하철에서 한 여성의 치마 안을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다쿠마 고문은 지난 22일 아침 8시경 도쿄 JR요츠야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중 앞에 있던 여성의 치마 안을 소지한 아이팟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피해 여성은 이같은 사실을 눈치채고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으며 경찰은 다쿠마 고문의 아이팟에 저장된 몰카 동영상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경찰은 “다쿠마 고문이 ‘몰카 촬영에 흥미가 있었다’고 자백했다.” 면서 “신분이 확실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어 불구속 조사를 했으며 조만간 관련 서류를 검찰에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 IBM 홍보실 측은 “사건 직후 다쿠마 고문은 사임했으며 자세한 사건 내용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다쿠마 고문은 지난 1999년 일본 IBM 사장에 취임했으며 이후 회장과 최고 고문을 거친 일본의 유명 경제인이다.     사진=자료사진 인터넷뉴스팀 
  • [위안부 증거 있다] “日, 위안부 증거 남겨둘 이유 없겠죠”

    [위안부 증거 있다] “日, 위안부 증거 남겨둘 이유 없겠죠”

    “일본으로선 나쁜 일이기 때문에 관련 자료들을 숨겨 입증자료가 적을 뿐입니다.” 평생 일본군 위안부 보상 활동에 전념해온 ‘전후 보상네트워크’의 아리미쓰 겐(61)은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등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발언한 것을 “말도 안 된다.”고 비난한 뒤 일본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자료은닉’ 가능성을 제기했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협조를 구하기보다는 피해자들이 직접 겪고 구술한 ‘피해자료’들을 이용해 일본 정부를 압박하라고 조언했다. 아리미쓰는 “이 문제는 피해자의 증명을 일본 국민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면서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산발적으로 제기할 게 아니라 다른 피해 국가들과 연계해 위안부들의 피해 자료를 일본 정부에 건네 지속적으로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초 교과서에 수록되는 등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며 “일본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해 국제적 이슈가 됐고, 결국 ‘고노 담화’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문제 재조사도 요구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8월에 3박 4일간 졸속으로 조사한 뒤 발표한 보고서를 근간으로 나왔기 때문에 불충분하고,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지식 나눔·채움’ 강남 평생학습 운영

    강남구는 주민들의 평생학습 참여 폭을 넓히기 위해 수준 높은 강남아카데미 프로그램 16개를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프로그램은 지난 5월 평생교육기관장위원회 소속 기관을 대상으로 공모를 했으며, 주민과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 선정했다. 구는 특히 평생학습기관 간 유사하거나 중복된 프로그램은 통합·조정했고, 프로그램 강사와 운영진 중 지식기부자를 30% 이상 구성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구는 다음 달 7일 강남청소년수련관에서 30~40대 여성을 대상으로 책을 읽고 소통하는 희망나눔프로젝트 ‘나는 책 읽어주는 여자’ 과정을 운영한다. 지난달부터 압구정노인복지센터에서는 지역에 사는 어르신 20명을 대상으로 전래놀이문화 알림이 지도자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또 구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는 ‘내일(日)은 청춘 바리스타’ 과정을 만들어 만 60세 이상 여성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실버 바리스타를 양성한다. 이 프로그램은 자격증 취득뿐만 아니라 지역 복지센터와 실버카페에 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교육을 원하는 주민은 구 평생학습 홈페이지(longlearn.go.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日참의원 “독도 불법점거 철회” 요구

    일본이 인터넷을 통해 독도 영유권 홍보에 나서고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독도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참의원(상원)은 29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및 일왕 사죄 요구와 관련, 비난 결의문을 상정해 민주당과 자민당, 공명당의 찬성으로 가결처리했다. 참의원은 결의문에서 독도를 “우리나라(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규정하며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면서 이를 조속히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일본 중의원 결의에 이어 참의원이 또다시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해 부당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결의를 채택한 것은 일제 식민 침탈의 잔재를 청산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겐바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다 총리의 일본군 위안부 발언에 대한 한국의 반발과 관련, “발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노다 총리는 지난 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반성한 1993년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에 대해 “강제 연행을 했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되지 않았고, 일본 측 증언도 없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오일만기자 jrlee@seoul.co.kr
  • 北·日회담, 납북자 문제 ‘기싸움’

    북한과 일본이 29일 중국 베이징의 일본대사관에서 정부 간 과장급 회담을 가졌다. 양측의 정부 간 교섭은 2008년 8월 일본인 납북자 문제 재조사 합의 이후 4년 만이다.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부터 2시간 45분 동안 이어진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에 있는 일본인 유골 반환과 일본인 유족의 북한 내 묘소 참배 허용 문제를 주로 논의했다. 일본 측은 최대 관심사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공식 의제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으나 북측이 반발하는 등 납북자 문제를 놓고 다소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납치 문제를 두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함에 따라 30일 오전 북한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겨 회담을 계속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 논의에 대해 그동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당초 사전 접촉 과정에서는 납치 문제 협의에 응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회담 계획이 공식 발표되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납치 문제를 앞세우는 것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태도를 바꿨다. 국장급에서 과장급으로 회담의 격을 낮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양측이 회담을 최장 2박 3일간 진행하기로 합의한 데다 최근 동북아 정세를 감안할 때 양측 모두 관계 개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으로서는 장기적으로 북·일 관계가 정상화되면 100억 달러(약 11조 3300억원)에 이르는 일제 통치 ‘배상금’을 확보해 경제 재건에 주력할 수 있고 한국, 중국 등과 갈등 상태인 일본도 북·일 관계 개선으로 돌파구를 만들려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위안부 증거 있다] “日, 국제법 위반 면하려 軍·경찰 관여 철저히 숨겼다”

    [위안부 증거 있다] “日, 국제법 위반 면하려 軍·경찰 관여 철저히 숨겼다”

    “강제동원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질문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경찰이나 군인이 강제로 끌고 간 적은 없지 않으냐, 국가총동원령 같은 법에 따라 징집하듯 끌고 간 적은 없지 않으냐는 겁니다. 그런데 거꾸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점령지가 아니라 식민지인 겁니다. 점령지라면 군대가 전면에 나서겠지만 식민지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식민지배 체제라는 큰 틀 아래에서 누가 위안소를 설치, 운영하고 위안부를 모집, 이송했느냐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맥락을 다 버린 채 ‘강제로 끌고 간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 것은 진실을 찾아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무시하겠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한·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마침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까지 나왔다. 한국은 고노 담화마저 뒤집느냐며 벌집을 쑤신 분위기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 연구자인 윤명숙(50) 박사에게 물었다. 윤 박사는 2000년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일본의 군 위안소제도와 조선인 군위안부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에 관여해 왔고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서 위안부조사팀장을 맡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일본군 위안부 전문가로 꼽힌다. 윤 박사는 고노 담화 자체도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외교적 수사에 가려 일본 정부나 군이 주동했다는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됐다고 본다. 잘못은 주로 민간에서 저질렀고 정부와 관련해서는 일부 불미스러운 사례가 있었다는 식의 언급으로 뭉뚱그려 놨다는 것이다. 윤 박사는 “1991년 일본 국회에서 위안부 관련 질문이 나왔을 때 당시 일본 정부 측 인사들의 답변 역시 총동원령 같은 명백한 법적 근거에 따라 시행된 게 아니니까 민간업자가 데려간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공창제를 법률적으로 인정했고 조선은 식민지로서 공창제가 연장된 것이 위안소라는 논리다. 윤 박사는 1938년 2월 23일 내무성 통첩과 3월 4일 육군성 통첩에 주목한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선이 확대되면서 위안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통첩에는 위안부를 모집하되 21세 이상 매춘 경험이 있는 자로 한정하고 매매나 유괴 같은 형태를 엄격히 단속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래놓고서는 위안부 모집은 헌병과 경찰이 밀접하게 연관지어 하도록 하고, 민간업자가 징집하도록 하되 경찰의 관여 사실은 되도록 숨기도록 했다. 또 근거자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진행상황 보고 같은 것을 문서가 아니라 전화로 하라는 지침(1938년 11월 8일 내무성 경보국 자료)을 내렸다. 윤 박사는 이를 두고 “1921년에 체결된 ‘부인 및 아동에 매춘을 금지하는 국제조약’ 등 성매매에 관련된 5~6개의 국제법이 있는데 일제도 이를 어기지 않기 위해 무척 노력한 증거”라면서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위안부 모집 과정이 국제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명백한 행정자료를 남기지 않으려 했던 증거”라고 말했다. 국제법에 따르면 성매매한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동의한 성인 여성만 합법적인 위안부라는 얘기다. 그렇게 못할 게 뻔한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의 민감성을 그 누구보다 일본이 더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극력 은폐하려 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도 있다. 1942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외무성과 타이완총독부 외사부장이 주고받은 문건이다. 태평양전쟁 발발로 전선이 더욱 확대되자 타이완총독부에서 위안부들의 여권 문제를 본국에 문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여권 발급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군 증명서를 갖고 군용선을 이용하라.”고 답했다. 정식으로 여권을 발급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일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조선과 관련해서 이런 문건이 나오지 않은 것은 조선총독부가 일왕 직할체제여서 위상이 높아 본국에 굳이 질의하지 않아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데다, 국제법에 따른 문제 소지를 없애기 위해 철저하게 없앴을 것이라는 게 윤 박사의 추정이다. 윤 박사는 “일본의 경우 오히려 위안부 모집 초기에는 일본 내에서 위안부를 모으면서 현 단위로 몇명씩 할당한다는 내용이 문서로 남아 있다.”면서 “그러나 조선에 이런 자료가 없는데 그것 자체가 식민지배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위안부 증거’ 이렇게 많은데…

    ‘위안부 증거’ 이렇게 많은데…

    일본은 전·현직 총리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나타낸 한·일 간 공식문서가 없다.”며 식민지 시대의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공식문서’ 운운하는 일본 정부는 역사적 진실에 두 눈을 가리고 있다. ‘공식문서’만이 증거라면, 일본 역사학자는 물론 한국, 타이완,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및 위안소 설치와 관련해 쏟아진 증거들은 다 무엇인가. 이들은 일본에 강력한 법적 책임을 촉구하는 움직일 수 없는 지표들이다. 1938년 3월 4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북지방면군 및 중지주둔군 참모장에 보낸 통첩에는 ‘위안부 모집 관계자 단속에서 군의 위신을 지키고 사회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게끔 인선을 적절히 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1940년 9월 19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작성한 ‘군기진작대책’ 에서는 ‘위안 시설은 사기 진작, 군기강 유지, 범죄 및 성병 예방 등에 대한 영향이 크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교육지도 참고자료를 송부했다고 밝혔다. 일본 후생성이 해방 전후 위안부 신상기록을 담아 작성한 ‘유수명부’가 2005년 발견되기도 했다. 1994년 미군이 작성한 증인보고서에는 포로들이 증언한 일본군 위안부 모집·관리 실태가 담겨 있다.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는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책으로 써 ‘위안부는 없다’던 일본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한, 일본의 여성을 위한 평화기금에서는 ‘정부조사 종군위안부관계자료집성 전 5권’을 펴냈다. 한국 외교부는 1992년 7월 일본 정부의 조사를 근거로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 자료집을 냈고, 네덜란드 정부도 1994년 ‘일본 점령하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의 네덜란드인 여성에 대한 강제매춘’ 보고서를 발표했다. 쏟아지는 증거들 앞에서 물러설 곳이 없어진 일본은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명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살아 있는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꽃 같은 청춘을 위안부로 살며 인권을 유린당한 네덜란드 여성 세마랑, 베트남의 랑송, 중국 구리인, 한국의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 등이다. 유엔 보고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국제적인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여성폭력특별보고관 보고서가 1996년과 2003년 위안부 문제를 정식 거론한 이후 관련 유엔보고서만 10개나 된다. 유엔총회도 1992년을 시작으로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해 왔다.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강제성을 나타내는 공식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본정부와 군대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반인권적·반도덕적 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면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전후 배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소영·배경헌기자 symun@seoul.co.kr
  • 일본인이 ‘독도 한국땅’ 지도 공개[동영상]

    일본인이 ‘독도 한국땅’ 지도 공개[동영상]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고(古)지도 소장가인 한 일본인이 독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돼 있거나 일본 영토로 표기돼 있지 않은 고지도 여러 장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오사카의 공립학교 교사 출신으로 오래전부터 고지도를 수집해 온 구보이 노리오(69)는 28일 “더 이상 진실을 감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본인이지만 지도를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보이가 공개한 지도 중에는 ‘수정 소학일본지도’(修正 小學日本地圖)가 가장 의미가 크다. 국민에게 자국의 영토를 정확하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작성한 지리교과서에 게재돼 있는 지도로 문부성이 1901년에 발간했다. 문부성의 검정을 거친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담은 교과서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정영미 박사는 “이 지도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도에는 일본 영토를 상세하게 작은 섬까지 색칠로 표시해 놓았지만 당시 일본에서 부르던 마쓰시마(松嶋)로 표기한 울릉도는 색칠하지 않아 ‘조선’ 땅임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독도는 그려 놓지도 않아 당시만 해도 자국 영토로 주장하지 않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이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함께 공개한 ‘대일본국 전도’도 의미가 있다. 일본 내무성이 1880년 11월에 발간한 지도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본 영토를 표시한 지도다. 이 지도에는 오키나와와 오키섬 등을 상세히 그려넣었지만 독도와 울릉도는 싣지 않았다. 당시의 도쿄와 교토를 상세하게 표기할 정도로 정밀도가 뛰어난 지도인데도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점을 인정해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노기와 가오루가 1895년에 제작한 ‘일본 전도’에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시 일본이 복속시킨 타이완을 새 영토라고 표기했지만 독도는 표시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이 제작한 지도 이외에 구보이는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서양인들의 지도도 공개했다. 이탈리아인 시볼트가 1840년에 작성한 한국과 일본 지도에는 한국을 노란색으로 ‘2개’의 울릉도와 같은 색으로 칠했고, 일본은 갈색으로 표시해 구분했다. 울릉도를 두개 표시한 것은 프랑스 탐험선과 영국 탐험선이 각각 발견한 뒤 다른 이름을 붙여 별개의 섬인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한편 독립기념관도 이날 ‘독도는 한국 땅’임을 입증하는 근대 일본의 역사·지리교과서 7점을 공개했다. 일본 정부가 직접 제작한 초·중·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확인하는 최초의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사카 이종락특파원 서울 문소영기자 jrlee@seoul.co.kr
  • “우익 공격 각오…진실 감춰선 안돼”

    “우익 공격 각오…진실 감춰선 안돼”

    일본 우익들의 공격을 각오하고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사실이 수록된 지도들을 공개한 구보이 노리오(69)는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한국과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놓고 외교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면서 “더 이상 영토와 관련된 진실을 감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본인이지만 지도를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사카에서 교사로서 재직하는 동안 고지도를 수집해 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한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을 어떻게 보나.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로 선린외교를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토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승부가 나지 않고 양쪽의 감정만 상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를 바로 보고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진실을 규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내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을 공개했다.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의 근원은 무엇인가. -지난 1905년 러·일전쟁 전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 지도에서는 독도와 울릉도를 한국 땅으로 표기한 지도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독도의 군사 전략적인 중요성을 깨닫고 당시 일본 군부가 시마네현을 내세워 독도를 편입하는 형식으로 각종 지도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독도를 둘러싼 양국의 영유권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자세히 말하면 1904년 11월 20일에 일본 해군 군령부가 군함 쓰시마를 이용해 독도 상륙조사를 실시했다. 1905년 1월 5일에 정찰 결과를 해군성 수로부장에게 보고했다. 독도에 거주자가 없다는 사실과 일거에 독도 영유화를 꾀하자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비을 337호-무인도 소속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로 정리됐다. 이것을 계기로 독도를 영토에 편입하고 다케시마라고 이름을 짓는 한편 시마네현 소속 오키섬 소관으로 결정했다. →일본 내무성이 발간한 대일본국 전도에도 독도는 기재돼 있지 않은데. -그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대일본 제국의 내무성은 당시 정부를 말한다. 지리국, 지지과에서 작성된 것인데 일본의 국토의 범위를 이 정도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수많은 작은 섬도 전부 포함했는데 독도가 이 지도에 빠진 것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지도에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북방영토(쿠릴열도) 전체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고 있는데 독도를 뺀 사실은 한국 영토라고 인정한 사실이 명확하다. 당시 일본의 ‘자연지도’, ‘교통지도’에는 일본 영토에는 색칠을 했지만 한국 영토인 독도에는 무색으로 기재해 구별했다. 오사카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아베 “집권땐 고노담화 수정” 韓 “스스로 한 반성을 부정”

    독도 파문에 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를 비롯한 일본 여야 수뇌부들이 연일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 반성한 ‘고노담화’ 수정을 공식화하면서 노골적인 과거사 왜곡에 착수한 것이다. 급격하게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강경 외교노선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당분간 양국 관계가 급격히 냉각될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노다 총리에 이어 아베 신조 전 총리도 28일 위안부 공세에 가세했다. 그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고, 내가 총리가 된다면 미야자와 담화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담은 그동안의 일본 정부 입장을 모두 고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야자와 담화는 1982년 역사교과서 파동시 미야자와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 정부가 책임지고 교과서 기술을 시정하겠다.”고 밝힌 내용으로 일본은 이에 근거해 교과서 검정 기준에 ‘근린 제국 (배려) 조항’을 집어넣었다. 1993년 고노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하는 내용이고, 1995년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이 전후 50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총체적인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것이다. 오는 10월이나 11월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서 자민당이 2009년 민주당에 내준 정권을 되찾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다음 정권에서 실제로 과거사 사죄 담화가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에 조태용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전시 여성 인권을 유린한 중대 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것은 과거 사과의 반성을 무효화하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 쟁점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양국의 시각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법적인 책임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1996년과 2003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보고서와 1998년 맥두걸 유엔 인권소위 보고관 보고서 등에 적시된 것처럼 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보편적 인권의 문제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 외에 법적 책임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우리 정부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은 이 협정으로 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1주년(30일)을 맞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역시 일본의 ‘법적 책임’과 관련이 있다. 헌재 판결의 핵심은 청구권 협정에 대한 양국 간 해석이 엇갈린다면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결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앞으로 일본 정부에 강한 압박과 국제 외교전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세웠다. 일본과 양자 차원의 협상을 계속하면서 유엔 총회나 인권이사회 등을 무대로 국제사회를 향해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협상의 출발점”이라며 “지난 1년간 두 차례의 양자회의를 제안하는 등 모든 외교채널을 동원해 200차례 가까이 일본과 접촉했지만 성과가 없었다.”며 일본의 무성의를 지적했다. 한편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도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죄 및 피해배상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성노예 착취를 자행한 것은 인류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범죄 행위임을 강조하고, 일본 정부에 책임 인정과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 사죄와 법적 피해배상을 촉구했다. 서울 오일만·김효섭기자 도쿄 이종락특파원 oilman@seoul.co.kr
  • ‘말뚝테러’ 용의자는 日남성 2명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독도연구소 건물 앞에 최근 ‘말뚝 테러’를 한 일본인 남성 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말뚝 테러를 위해 입국한 이들은 범행 직후 곧바로 출국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 22일 두 건물 앞에 말뚝과 전단 등을 부착한 용의자가 일본인 무라타 하루키(61)와 사쿠라이 데쓰로(38)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무라타와 사쿠라이는 범행 전날인 지난 21일 일본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오전 11시 51분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서울 중구의 L 호텔과 K 호텔에 나눠 투숙한 이들은 다음 날인 22일 오전 5시 독도연구소가 있는 임광빌딩 앞에서 만나 건물 앞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적힌 말뚝을 부착했다. 이어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으로 이동해 같은 말뚝과 위안부를 비하하는 내용의 전단을 부착했다. 범행을 마친 두 사람은 같은 날 오전 각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일본 하네다로 도주했다. 한편 경기 광주시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노다 요시히코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에게 초청장을 발송했다. 초청장에는 최근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위안부 강제동원 부인 발언과 관련, 나눔의 집과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해 진실을 알기 바라는 할머니들의 마음이 담겼다. 엽서 형태이며 한 면에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인쇄돼 있고 다른 면에 초청문과 주소가 일본어로 적혀 있다. 유대근·장충식기자 dynamic@seoul.co.kr
  • [동아시아 영토분쟁 새 국면 예고] 日·中, 센카쿠 숨고르기?

    일본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빚고 있는 중국에 대해 유화 제스처를 취하면서 양국 간 충돌이 숨고르기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28일 방중한 야마구치 쓰요시 외무 부상(차관)을 통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친서를 보냈다. 노다 총리는 친서에서 센카쿠 열도 문제로 양국 관계가 긴장 상태에 놓인 데 대해 우려 입장을 밝히고 오는 9월 중·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전략적 호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양국이 냉정을 되찾고 고위급 대화를 전개하자고 촉구했다. 이번 친서 전달은 일본 정부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방침, 센카쿠 열도 상륙 홍콩 시위대 체포, 주중 일본대사 차량 피습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중·일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져 중국 측 대응이 주목된다. 니와 우이치로 일본대사 차량 피습 사건과 관련해 베이징시 공안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으며, 공안 수십명을 일본 대사관에 파견해 경계에 나서는 등 중국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고 홍콩 봉황TV가 이날 보도했다.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매우 유감”이라면서도 중국 측에 절제된 외교 용어로 공정한 수사를 요청하는 등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한편 중국은 센카쿠 열도 문제의 현상 유지를 위해 일본에 ▲상륙하지 않는다 ▲자원·환경 조사를 하지 않는다 ▲건조물 설치 및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3개 조건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센카쿠 국유화 문제는 요구 사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는 센카쿠 국유화를 사실상 묵인하겠다는 유연한 자세를 내보인 것이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1887년 日 교과서도 “독도는 한국땅”

    1887년 日 교과서도 “독도는 한국땅”

    독립기념관이 28일 공개한 일본 근대 역사·지리 교과서는 ‘독도는 한국땅’이란 ‘확실한’ 증거들처럼 보인다. 그간 일본이 주장해 온 ‘독도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논거를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구체적으로 이번에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일본의 근대지도 제작자인 오카무라 마쓰타로가 문부성의 출판허가를 받아 1887년에 편찬한 지리 교과서 ‘신찬지지’(新撰地誌)가 흥미롭다. 신찬지지에 실린 ‘일본총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에 속한 섬이라는 의미로 가로줄이 표기돼 있다. 독도에서 157㎞ 떨어진 오키 섬을 포함한 나머지 일본 영토에는 별도의 가로줄이 그어져 있어, 독도의 영유권이 한국에 속해 있음을 명확히 보여 준다. 1900년 문부성이 검정한 ‘소학지리(小學地理) 1·2권’에 수록된 일본 전도에는 일본 영토가 붉은색으로 표시돼 있는데, 오키 섬 외에 1894년 청·일전쟁으로 식민지화한 타이완을 붉은색으로 칠해 자신들의 영토임을 강조했지만, 독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없고 색깔로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이보다 앞서 발행된 1886년 ‘일본사요(日本史要) 상권’에도 대마도와 오키나와 등 주변 군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기하고 설명했으나, 독도는 표기하지도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1888년 아오키 쓰네사부로가 지은 ‘분방상밀 일본지도’(分邦詳密日本地圖)에서도 오키 섬까지만 영토로 표시해 놓았을 뿐이다. 정영미 동북아역사재단 산하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1905년 러·일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일본은 러시아 함정의 남하 여부를 감시하고자 울릉도와 독도를 점령한 것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17세기부터 실효지배를 해 왔다는 일본의 역사적 고유영토론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北·日 29일 베이징서 정부교섭 재개

    북한과 일본이 29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정부 간 교섭을 재개한다. 북·일 간 교섭은 지난 2008년 8월 일본인 납북자 문제 재조사 합의 이후 4년 만이다. 북·일 정부 간 교섭은 북한에 있는 일본인 유골 반환 협의를 위한 것이 주목적이지만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논의 여부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양국 적십자 대표가 지난 9~10일 일본인 유골 반환 문제를 협의함에 따라 이번 교섭의 의제는 일단 유골 반환과 유족의 참배 문제 등이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교착상태에 빠진 납북자 문제의 논의를 기대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이를 거론할 경우 교섭 전망은 밝지 않다. 북한은 앞서 지난 16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일본 정부가 유골 반환 문제보다 납북자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는 데 대해 “일본이 유골 문제와 납치 문제를 뒤섞어 회담을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한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은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합의로 5명의 납북자를 귀국시킨 것을 끝으로 문제가 종결됐다는 입장인 반면 일본은 납북자가 17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일은 이번 교섭을 당초 국장급으로 합의했다가 북한의 요구에 따라 과장급으로 격을 낮췄다. 일본은 교섭 후 대화의 격을 국장급으로 높여 북한과의 현안 협의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일본통신] 日프로야구, 과연 WBC대회 출전할까?

    [일본통신] 日프로야구, 과연 WBC대회 출전할까?

    내년 3월에 열리는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 일본의 대회 출전 여부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당초 일본은 8월이 지나기 전에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다는 방침이었으나 대회 수익 배분 문제 등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 한 선수회의 의지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 일본의 WBC 참가 여부는 선수회의 결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궁극적으로는 선수회가 수익 배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회에 불참 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미 일본야구기구(NPB)는 WBC 참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WBC 운영 회사인 WBCI 역시 “대회 참가 여부는 일본야구기구(NPB)의 권한 이라며 이미 대회에 참가하기로(NPB) 약속한 것과 선수회의 의견은 별개의 문제” 라며 언급한바 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선수회의 WBC 불참 의사가 꼭 수익 배분의 문제에만 국한 돼 있느냐다. 26일 와타나베 쓰네오(86) 요미우리 회장은 일본의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차기 WBC 일본 대표팀 감독에 오치아이 히로미츠(전 주니치 감독)를 지목했다. 단지 오치아이가 적임자라는 와타나베 회장의 언급 한마디에 국내 언론에서는 마치 오치아이가 WBC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것처럼 보도했지만 이것 역시 확실한게 아니다. 일본 야구계에서 와타나베 회장의 말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무게감이 있는 발언이었지만 그렇다고 오치아이로 확정된게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일본은 다가오는 WBC 대회에 현역 감독들을 제외한 외부에서 감독감을 찾고 있는건 사실이다. 그동안 거론됐던 하라 타츠노리(요미우리 감독)나, 아키야마 코지(소프트뱅크 감독)는 일찌감치 감독직을 고사한 바 있어서 오치아이 만한 적임자도 없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 선수회의 대회 불참 의지는 과거의 사례를 들춰보면 수익 배분 문제 외에 그와 연관성이 있는 불참의 이유가 있다. 2009년 2회 대회가 열리기 전 일본은 대표팀 차출 문제 때문에 엄청난 고민을 한적이 있다. 다름 아닌 주니치 드래곤스 구단이 소속팀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도 깊은 연관이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에 두번씩이나 패하는 등 체면을 구겼던 일본은 대회가 끝난 후 일부 선수들 사이에서는 “다시는 대표팀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선수들이 상당수였다. 가장 손사레를 친 선수들의 대부분은 주니치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결국 주니치 구단은 일본 야구팬들의 엄청난 비판 속에서도 이듬해 열린 WBC 대회에 선수들을 참가시키지 않았다. 이기적이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주니치 구단의 행동은 WBC 대회가 마치 전쟁에 참가한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격렬했던 국가주의에 몰입하는 걸 반대했다는게 옳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던 주니치 소속 선수들(이와세, 카와카미, 모리노 등)은 대회가 끝난 후 그해 후반기에서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해 팀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하물며 올림픽 보다 명분이 떨어지는, 즉 이벤트 대회 성격이 짙은 WBC와 같은 대회에서 팀 동계훈련에 불참하면서까지 국제대회에 참가 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WBC가 끝난 후 우승팀 일본은 대회 수익금의 13%를 가져 가는데 그쳤다. 메이저리그가 66%의 수익금을 독점한 것과 비교하면 대회 성적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수익 배분이었다. 지금 선수회에서 3회 대회 보이콧을 선언한 것도 성적에 따른 수익 배분 때문인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WBC가 3월에 열리는 까닭에 다른 시즌보다 일찍 몸을 만들어야 하고 그렇기에 소속 팀의 합동 훈련 역시 불가능하다. 올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선 그만한 보상(수익 배분)이 없으면 그만큼 대회에 참가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선수의 이기주의와는 별개의 문제다. 프로 선수는 소속팀이 있고 그 소속팀에서 연봉을 받으며 소속팀을 위해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게 야구 선수의 운명이다. 무엇 때문에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지가 불분명 하다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 대한 값어치에 따른 보상은 그만큼 뒤 따라야 한다. 일본은 29일 도쿄에서 12개 구단의 대표와 선수회, 그리고 일본야구기구(NPB)가 만나 WBC 참가 여부를 논의 한다. WBC 운영회사인 WBCI가 8월 중으로 일본의 WBC 참가 여부를 통보하라고 밝혔기에 이번 선수회와 일본야구기구의 만남에서 과연 어떠한 결정이 내려질지 궁금하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베이징서 주중 日대사 차량 피습”

    중국 베이징에서 주중 일본 대사가 탑승한 차량이 한 중국 남성으로부터 습격받았다고 환구시보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환구망이 일본 교도통신을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니와 우이치로(73) 중국 주재 일본 대사의 차량에 꽂혀 있던 일장기를 탈취당했으며 니와 대사의 신변에는 이상이 없다고 전했다. 일본 대사관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에 따른 반일 행동으로 보고 중국 외무부에 엄중하게 항의했다. 중국에서는 홍콩 시위대가 센카쿠열도에 상륙한 지난 15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반일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26일엔 광둥성과 저장성 등 5개 도시에서 반일 시위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관영 언론을 통해 한국의 ‘독도 수호 역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서 한국을 ‘롤모델’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관영 신화통신은 27일 ‘한국 국민들은 일본으로부터 어떻게 독도를 되찾아 왔는가’란 제목으로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의 일대기를 사진과 함께 상세히 소개했다. 베이징시 기관지인 베이징만보도 이날 ‘한국 독도 수호의 저력은 무엇인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독도 수호 전략을 소개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독도지킴이’ 부산공무원 회원 日영사관 앞 릴레이 1인 시위

    ‘독도지킴이’ 부산공무원 회원 日영사관 앞 릴레이 1인 시위

    부산시 공무원으로 구성된 ‘독도지킴이’ 회원들이 일본의 독도와 관련한 만행 등을 규탄하는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다. 독도지킴이 회원들은 27일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동구 초량동 일본 영사관 정문 앞에서 규탄 시위를 했다. 공무원독도지킴이회는 역사에 대한 죄의식도 없이 독도에 대한 그릇된 야욕을 품고 있는 일본에 대해 더는 참을 수 없어 1인 릴레이 시위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날 첫 릴레이 시위 주자로 나선 황주석(55·부산 건설본부 보상팀장) 회장은 ‘일본 독도 야만행위 규탄’, ‘적반하장도 유분수’ 등의 글귀가 적힌 현판을 앞세우고 시위를 벌였다. 황씨는 “독도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주권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우리 역사의 땅이며 일본의 독도와 관련한 도발적 행보는 인류 역사 앞에 용납할 수 없는 행동으로, 국민에 봉사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영토를 수호하고자 나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오는 31일까지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릴레이 시위를 할 예정이다. 이처럼 일본의 독도 망언과 관련, 공무원이 항의 시위에 나선 것은 부산시 공무원이 전국 처음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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