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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후쿠시마 ‘방호복 소년’ 동상… 주민 반대로 된서리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가 난 일본 후쿠시마에 방호복을 입은 어린이상이 세워져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결국 작가가 공개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1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는 지난 3일 JR후쿠시마역에 ‘선 차일드’라는 이름의 어린이상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가졌다. 높이 6.2m의 어린이상은 현대미술가 야노베 겐지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소재로 만든 것으로, 방호복을 입은 어린이가 헬멧을 손에 들고 있는 형상이다. 방호복의 가슴 부위에 달린 방사선량 측정기에는 방사능이 없음을 뜻하는 ‘000’ 수치가 표시돼 있다. 야노베는 “원자력 재해가 없는 세상을 상징하는 작품”이라며 “재해 복구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와 달리 어린이상에 대해 지역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가뜩이나 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 수산물이 안 팔릴 정도로 이미지가 나쁜 상태에서 자칫 ‘후쿠시마는 방호복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방사선량이 제로(0)가 아니면 헬멧을 벗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져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거센 비난과 철거 요구가 이어지자 작가가 직접 사과를 했다. 야노베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불쾌한 생각이 들게 해버렸다. 방사능에 대한 지식의 정확성이 재해 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높게 요구되고 있는 점을 헤아렸어야 했다”며 앞으로 동상을 어떻게 할지 후쿠시마시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고하타 히로시 후쿠시마 시장은 트위터에 “현대 예술은 과학과 달리 추상화해서 표현한다”며 작가 편을 들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카스피해, 호수 아닌 특수지위 바다”… 22년 영유권 논쟁 끝냈다

    “카스피해, 호수 아닌 특수지위 바다”… 22년 영유권 논쟁 끝냈다

    日열도 크기 맞먹는 자원보고 탓 기싸움 51차례 회담… 공동이용 수역 관리 매듭 원유·천연가스 개발과 가스관 설치 가능 손해 큰 이란 “해저 영토분할 추가 합의”면적이 일본 열도 크기와 맞먹는 세계 최대 ‘내륙해’인 카스피해가 기존의 호수에서 ‘특수한 지위를 가진 바다’로 규정됐다.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이 영유권 및 자원 배분 문제로 22년간 논쟁해 온 카스피해의 법적 성격이 마침내 합의된 것이다. 러시아와 이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5개국 정상들은 12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아크타우에서 공동 정상회담을 열고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에 합의했다. AFP통신 등 외신들은 일제히 카스피해가 바다로 규정되는 특수한 법적 지위가 부여됐다고 보도했다. 카스피해 인접 5개국은 자국 연안에서 15해리(약 27.78㎞)까지를 ‘영해’로 삼고, 25해리(약 46.3㎞)까지 배타적 어업권을 설정하기로 했다. 또 해저 자원 소유권은 국제법에 따라 당사국 간 합의에 따라 확정하고, 연안국 외의 군대가 카스피해로 진입하는 건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 국가들은 1991년 12월 소련 붕괴 후 본격화된 카스피해의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996년부터 22년간 51차례 회담을 한 끝에 합의를 도출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합의에 따라 카스피해 지하에 매장된 원유·천연가스 개발과 가스관 설치가 가능해졌다”고 전했다.카스피해 논쟁의 핵심은 호수냐, 바다냐 하는 정체성이 가장 컸다. 카스피해를 바다로 볼 경우 유엔 해양법 조약을 적용해 각국이 해안과 인접한 영해가 아닌 부분은 공해로 남겨 놔야 하고, 호수로 본다면 인접국들이 호수 전체를 5등분해 차지하면 된다. 냉전 시기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해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카스피해는 육지에 갇혀 있고, 대양과 연결되지 않아 호수로 분류된다. 하지만 5000~6000만년 전 지각 변동 이전에는 대양과 연결돼 염수로 가득 찼고, 무엇보다 면적이 일본 크기와 맞먹는 37만 1000㎢의 자원 보고였기 때문에 모두가 욕심을 부리는 대상이 됐다. 카스피해는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각각 500억 배럴과 8조 4000억㎥로 추산되고, 고급 식재료인 철갑상어알(캐비아)의 산지이기도 하다. 협정 타결로 가장 손해를 본 국가는 해안선이 짧아 사실상 카스피해의 13%만 권리를 주장하게 된 이란이다. 가디언은 “미국의 제재로 고립 위기에 놓인 이란으로서는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협력이 절실해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카스피해 분쟁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또 다른 쟁점인 해저 영토 분할과 자원 개발 문제가 미완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번 협정은 법적 지위에 관한 합의일 뿐”이라며 “해저 영토 획정에는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쉽고 값싼 ‘살인 드론’… 전 세계로 공포 배달

    [글로벌 인사이트] 쉽고 값싼 ‘살인 드론’… 전 세계로 공포 배달

    값싸고 치명적인 ‘살인 드론’이 몰려온다. 드론은 인간 조종사가 기체에 탑승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전파로 조종하는 무인 항공기를 통칭한다. 미국 공군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RQ4), 무인정찰기 겸 공격기 프레데터(MQ1)가 모두 드론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군이 파키스탄, 예멘 등지에 실전 배치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전투용 드론이 1000회의 암살 작전을 수행해 3000여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원거리 조작으로 공격자 신원 알기 어려워 최근 레저 또는 상품 배달 등 업무용으로 각광받는 소형항공기 역시 드론이다. 이들 개인·사업용 드론은 휴대 가능한 수준의 크기에 3~8개의 프로펠러를 장착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제4형 복합 폭발물질’(C4)이 부착된 드론 2대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드론으로 국가원수를 암살하려 한 역사상 첫 사건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마두로 대통령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한다. 사건의 진위와 별개로 인간을 공격하는 ‘살인 드론’의 위험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분명하다. 드론은 재래식 무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대체로 살상 능력은 떨어지지만 상황에 따라 더 유용하다. 원거리에서 조작해 공격자의 신원을 은폐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드론을 활용한 요인 암살, 군사적 요충지 공격 등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전략·전술이 등장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같은 드론의 특징을 언급하면서 “드론은 가난한 자들의 첨단 무기”라고 평가했다. 또 “드론은 자살폭탄 테러와 같은 충격을 전달하면서도 공격자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드론 테러는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은 드론을 십분 활용했다. IS는 2016년 10월 이라크에서 처음으로 드론 테러를 자행했다. 이후 시리아 등지에 드론을 집중 배치해 공중을 배회하게 하는 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했다. 최근 지리적 거점을 잃고 지도부가 궤멸되면서 IS는 그 세력이 상당히 약화됐다. 이와 관련, 미 육군사관학교 대테러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IS가 드론을 사용한 방식이 다른 테러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면서 “다른 테러 집단에서도 드론 테러를 시도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온라인서 개조법 배워 수류탄 달면 테러 가능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 주말판 선데이익스프레스는 “드론 테러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마두로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에 쓰인 것과 같은 살인 드론을 만들려면 5000파운드(약 720만원)와 폭발물만 있으면 된다”고 평가했다. 인디펜던트는 “위협을 현실화하는 것은 능력과 의도다. 능력은 온라인에서 쉽게 살 수 있다”면서 “범행에 사용한 중국 드론 제조사 DJI의 M600 모델은 사진 촬영 전문 드론이지만 약간의 개조만으로 치명적인 폭발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M600은 약 시속 65㎞로 이동 가능하며 5㎞ 밖에서도 무선 조종이 가능하다. 단번에 드론 수백대를 띄울 수 있는 전술적 측면도 위협적이다. 현존 최다 드론 공중 동시 비행 기록은 1218대다. 지난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 드론쇼에서 인텔사의 드론 ‘슈팅스타’에 발광다이오드(LED)를 장착해 오륜기를 만드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한 명의 조종사가 컴퓨터로 1000대가 넘는 드론을 조작했다. 이외에도 2016년 독일에서 600대가 동시 비행한 기록 등이 있다. 마두로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세력이 2대의 드론을 썼기에 망정이지 폭탄을 장착한 드론 100대를 투입했다면 마두로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백악관·日총리관저 등 드론에 무방비 노출도 마두로 대통령 암살 시도 이전에도 드론 관련 사건 사고는 심심찮게 발생했다. 2015년 1월에는 고장 난 드론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잔디밭에 추락했다. 테러와는 무관한 상황이었지만 대통령 경호에 구멍이 뚫린 것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같은 해 4월 일본에서는 정부의 핵 정책에 반대하는 한 남성이 후쿠시마 원전 지역의 방사능 모래를 드론에 담아 총리관저에 떨어뜨렸다. 지난 4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왕궁 근처를 비행하던 드론을 보안군이 격추했다. 환경시민단체 그린피스는 지난달 프랑스 원자력 방어의 취약성을 보여 주겠다면서 슈퍼맨 모양의 드론을 원전 외벽에 충돌시켰다. 지난 6일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남부 지중해 연안 봄레미모사의 브레강송 요새 인근에 정체불명의 드론이 접근해 비상이 걸렸었다. 드론은 별장 앞바다에 빠졌다. 이 드론이 추락한 것인지 마크롱 대통령 경호실이 격추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연방항공국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개인용 드론은 2014년 50만대에서 지난해 300만대로 폭증했다. 커스틴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은 최근 WP 기고에서 “미국은 점차 커지는 드론의 위협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됐다”면서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섰다”고 토로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코퍼레이션의 분석가 콜린 클라크는 “세계 각국의 규제가 드론의 확산 및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서 “이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교란 주파수를 발사해 드론을 무력화하는 ‘드론건’을 생산하는 호주 업체 드론실드의 최고경영자(CEO) 올레그 보르닉은 “현재 2차원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모든 자산은 공중 공격에 대비한 3차원 보호가 필요할 것”이라면서 “0.5㎏짜리 저가 드론에 수류탄 하나만 장착하면 그게 바로 살인 드론”이라고 선데이익스프레스에 말했다. 미국의 유명 민간 정보기업 스트래포의 분석가 스콧 스튜어트는 “드론의 공격은 심리적 측면에서 물리적 피해를 훨씬 능가할 수 있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이 드론으로 대량학살을 저지를 수는 없지만 대중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사모펀드 KKR 산하의 지정학적 전략기관 KKR 글로벌 인스티튜트의 반스 세르추크 상무이사는 “현대 방공망은 비행기와 미사일에 대응해 제작됐다. 소형 드론은 작고 비행고도가 낮으며 느리다. 이를 막을 방공 체계는 아직 없다”고 평가했다. ●드론 등록·전파 방해 등 규제로는 안심 못 해 각국은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WP에 따르면 각국은 대개 400~500피트(154m)의 높이 제한, 인구 밀집 지역 또는 공항·군사시설 등 주변에서의 비행 금지, 드론 등록 및 면허 발급 등의 규제안을 내놨다. 미 정부는 주요 인사가 참석한 공식 행사장 주변에 전파를 쏴 드론의 공격을 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정부의 전파 장치는 테러범이 전화기 등을 이용해 원격으로 드론을 폭파시키는 것도 방해한다. ABC뉴스는 “전파 방해 등의 방법이 100%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무선 및 GPS 신호가 아니라 카메라 인식 및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목표를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또한 해변, 쇼핑몰, 스포츠 경기장에 모인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공격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해피투게더3’ 이정현 “日 교수에 공개사과 요구 위해 일본어 공부”

    ‘해피투게더3’ 이정현 “日 교수에 공개사과 요구 위해 일본어 공부”

    ‘해피투게더3’ 이정현이 일본 유학 중 겪은 일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9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에서는 서효림, 강기영, 이시아, 이정현, 엄현경이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정현은 최근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악랄한 일본인 군인 역할을 맡아 얼굴을 알리고 있다. 외모 때문에 일본인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는 이정현은 “전 김제 사람이고,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1년간 유학했다”고 말했다. 이정현은 “유도를 전공해서 일본으로 유도를 배우러 갔다. 당시 특별히 일본에서 열심히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정현은 “일본 헌법 시간에 한 교수님이 ‘한국에는 이런 종교가 있는데, 여긴 한국인이 있으니 조심해라’고 하더라”고 했다. 그는 이어 “눈치로 그 교수님이 한국을 욕하는 걸 알게 됐다. 너무 화가 나서 서툰 일본어로 교수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저에게만 사과하시고, 끝까지 학생들 앞에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 분들이 있어서 일본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KBS2 ‘해피투게더3’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스포츠클라이밍 日 잡아야 金

    스포츠클라이밍 日 잡아야 金

    노나카·나라사키 등 日선수 넘어야 김자인·사솔·천종원 金 3개 이상 목표아시안게임을 넘어 도쿄올림픽 메달까지 가늠해 본다.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데뷔하는 스포츠클라이밍은 인공 암벽과 안전장치만 갖추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데다 전신 근육을 사용해 다이어트 운동으로도 인기를 끈다. 2년 뒤 도쿄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 데뷔를 앞두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남녀 스피드 개인과 릴레이, 콤바인드(스피드·리드·볼더링) 세 종목에 모두 6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스피드는 15m 높이의 인공암벽을 누가 더 빠르게 오르느냐를 따지고, 콤바인드는 스피드, 리드(정해진 시간 가장 높이 오르는 종목), 볼더링(4~5m 암벽 구조물을 로프 없이 오르며 과제를 해결하는 종목) 세 종목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정한다. 한국은 암벽 여제 김자인(30·스파이더코리아)과 차세대 유망주 사솔(24·노스페이스), 남자부 볼더링 간판 천종원(22·아디다스)을 앞세워 금메달 셋 이상을 노린다. 김자인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여자부 리드 종목을 통산 26차례 제패하며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고쳐 썼다. 리드 전문이지만 이번 대회에는 리드 종목이 따로 없어 콤바인드 종목에 출전한다. 김자인은 셋이 팀을 이루는 스피드 릴레이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지만 출전 가능성은 낮다. 사솔은 콤바인드, 스피드 개인과 릴레이까지 세 종목 모두 나선다. 남녀부를 통틀어도 그녀가 유일하다. 볼더링이 주 종목인 사솔은 지난 5월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을 겸한 제38회 전국선수권에서 볼더링(금메달), 스피드, 리드(이상 은메달) 등 모든 종목 시상대에 올랐다. 2015년과 지난해 볼더링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한 천종원은 남자부 콤바인드에 출전한다. 이들의 발목을 잡을 선수로는 일본 선수들이 꼽힌다. 여자부 볼더링 랭킹 9위 사솔은 1위 노나카 미호(21), 2위 노구치 아키요(29)를 넘어야 하고 남자부 볼더링 5위 천종원은 2위 나라사키 도모아(22)와 3위 스키모토 레이(27)를 거꾸러뜨려야 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일본에서 무역업을 하던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러일전쟁이었다. 고베에서 안정적 생활을 하던 베델은 돌연 영국 일간지의 특별통신원이 돼 한국에 왔다. 그가 훗날 항일 언론인으로 죽어가던 조선을 위해 싸우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베델이 잠시 사업을 접고 새로운 일을 모색하던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았다. 2월 8일 일본 함대가 중국 랴오닝성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시작됐다. 베델은 이때까지도 일본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당시 전쟁은 언론사들의 최고 인기 아이템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월드컵이나 미국 대선처럼 세계인이 큰 관심을 갖는 뉴스거리였다. 유명한 종군 기자는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종군기자로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와 같은 작품을 썼다.러일전쟁을 전후해 ‘로이터’를 비롯한 영국의 주요 매체들은 한국으로 특파원을 보냈다. 영국 총리를 역임한 윈스턴 처칠도 종군기자로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을 찾았다. ‘데일리 크로니클’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내는 전장을 하루라도 빨리 묘사하고자 우선 동북아 사정을 잘 아는 현지 통신원을 채용하기로 했다. 영국 런던에서 정식 특파원을 파견할 경우 물리적으로 한 달 가까이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일본이나 러시아 사정에 밝지 않아 배경지식이 풍부한 기사를 쓰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데일리 크로니클’은 전쟁 발발 직후 일본에 있던 토마스 코웬을 임시직인 특별 통신원에 임명해 조선에 보낸 뒤 베델을 두 번째로 파견했다. 3월 10일이었다. 일본 업체들의 소송과 형제 간 불화 등으로 고베 사업을 접었던 베델은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통신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조선행을 결심했던 것 같다. 지금도 영국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브리스톨 지역 최고 사립고교를 졸업한 베델 역시 기자로서의 바탕은 충분했다. 이때부터 그에게 언론인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한국 황궁의 화재’ 5면 톱기사로 실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 관련 기사가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들의 기사가 적국인 러시아에 들어가면 군사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이 사실을 모르던 외신기자들은 종군 취재 허가를 받으러 도쿄에 갔다가 4월 초순까지 발이 묶였다. 이들은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고베에서 16년을 살며 일본어에 능통했던 베델은 이들보다 한 달이나 앞서 조선에 들어왔다. 베델은 조선에 온 지 36일 만에 ‘특종’을 발굴했다. 4월 16일자 ‘한국 황궁의 화재’ 기사였다. 베델은 14일 저녁 고종이 머물던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 사건을 추적해 ‘일본군이 방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기사를 전송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이듬해부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 궁궐에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 중화전과 그곳에 있던 보물이 모두 탔다. 당시 ‘데일리 크로니클’은 그가 쓴 기사를 5면 톱기사로 편집해 전 세계에 타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델과 코웬은 이 기사 때문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친일 성향의 데일리 크로니클이 일본에 비판적 기사를 쓴 베델을 문책했다는 것과 전장인 한반도에 통신원을 두기보다 본지 기자들이 일본 정부에서 자료를 받아 기사를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데일리 크로니클, 일본에 우호적 기사 지시” 훗날 베델은 이 사건에 대해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일할 때 받은 지시는 ‘우리 신문은 일본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통신원이 쓰는 기사 역시 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또 동양에 간 특파원들이 전쟁터에서 얻는 정보보다는 영국 런던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듣는 사실이 더 많았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1872년 창간된 ‘데일리 크로니클’은 1930년 ‘데일리 뉴스’와 합병해 ‘뉴스 크로니클’로 바뀌었다. 이 매체는 1960년 ‘데일리 메일’에 흡수돼 지금도 운영 중이다. 학계에는 베델이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경운궁 화재 기사 한 건만 쓰고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말고도 그가 쓴 기사가 하나 더 있다는 주장이 있다. 서울신문이 취재도중 만난 영국 출신의 역사연구가 에이드리언 코웰(62·싱가포르 거주)에 따르면 베델은 경운궁 화재 기사보다 보름 앞서 4월 1일자에 조선의 전통놀이인 ‘석전’(두 편으로 나뉘어 돌팔매질로 승부를 겨루던 놀이)과 축구를 비교하는 글을 썼다. 해당 기사는 지금도 ‘데일리 크로니클’ 데이터베이스(DB)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베델은 통신원으로서 모두 2개의 기사를 쓴 것이 된다. 코웰은 “당시 통신원들은 자신이 쓴 기사를 다른 매체에도 팔 수 있었다. 이 글을 뉴질랜드 언론사에도 판매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그 기사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32세 나이에 3개월 만에 신보와 KDN 펴내 특종 기사를 남기고 회사를 떠나게 된 베델은 곧바로 자신이 이곳에서 직접 신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단 3개월 만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발행했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20년 가까이 무역 일만 하던 베델이 갑자기 일사천리로 언론사를 창간한 이유를 두고 지금까지도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우선 신문 발행은 당시로서는 첨단산업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종이 몇 장만 사면 알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정보화 혁명에 비견될 충격이었다. 19세기 말부터 동북아시아 지역은 영자신문 창간이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조선에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영어신문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에서는 1896년 서재필이 한글판 ‘독립신문’과 영문판 ‘인디펜던트’를 창간했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899년 12월 폐간했다.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호머 허버트(1863~1949)가 월간지로 발행하던 ‘코리아 리뷰’가 유일한 영어 간행물이었다. 베델은 이런 조선에서 하루빨리 영어신문을 창간해 시장을 선점하면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또 투자금을 모아 회사를 차리는 일은 베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본을 모으는 이른바 ‘펀딩’은 16년간 무역업을 하며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알던 베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여기에 그는 일본 시절부터 언론 친화적 모습을 보여줬다. 베델이 고베에 있을 때 발행되던 영어신문 ‘고베 크로니클’은 그가 활동하던 스포츠 클럽 고베 레가타 앤드 어슬래틱 클럽(KR&AC)이 주최하는 연례 총회와 스포츠 경기, 콘서트 등을 단골 기삿거리로 삼았다. 그 역시 여기에 수차례 기고글을 쓰며 논쟁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그가 영국에서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베델연구가 코웰은 “19세기 당시 영국 사정을 감안할 때 베델 정도면 (귀족이나 거대자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소규모 언론사를 운영하거나 기사를 쓰는 데 있어 기본적인 소양은 충분했다”고 말했다. 고베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유엔사무총장, 日피폭지 행사 현직 첫 참석

    유엔사무총장, 日피폭지 행사 현직 첫 참석

    안토니우 구테흐스(가운데) 유엔사무총장이 9일 일본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에서 지역 초등학생들과 함께 평화를 기원하면서 종이학을 만들고 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날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 및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나가사키 평화기념식’에 유엔사무총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했다. 나가사키 AP 연합뉴스
  • [월드 Zoom in] 日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갈등 2R

    후임선거 2개월 앞당겨져 새 국면으로 지지파 인물난… 정부 추모 장기화 우려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계속돼 온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현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기지 이전에 반대하며 정부와 대립해 온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현 지사가 지난 8일 갑자기 사망하면서 ‘조기 선거’라는 중대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오나가 지사는 미군기지 반대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회사원 출신으로 오키나와현 의원, 나하 시장 등을 거친 그는 2014년 11월 ‘미군기지의 헤노코 이전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지사에 당선됐다. 그러나 임기 만료를 석달 앞둔 6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일본은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다. 4만명의 미군이 113개 기지에 배치돼 있다. 주한미군의 1.4배 수준이다. 이 중 70%가 최남단인 오키나와에 집중돼 있다. ‘류큐’라는 이름의 왕국이었다가 1879년 일본에 식민지로 합병된 오키나와는 전후 미군의 극동 지역 군사거점으로 활용돼 왔다. 본토의 차별에 대한 반발은 물론이고 잇따른 미군 범죄와 항공기 사고 등으로 반미 정서도 강하다.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지역 이전 반대 투쟁은 그런 갈등의 꼭짓점이었고 그 위에 오나가 지사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시가지 한가운데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으로 불리는 후텐마 기지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자 1999년 이를 오키나와 내의 나고시 헤노코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헤노코 기지 역시 주민 안전에 위협이 되는 데다 환경 파괴가 심각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오나가 지사는 당선된 뒤 헤노코 기지 이전을 위한 정부의 부지 매립 승인을 철회했다. 그러나 2016년 12월 최고재판소는 이 조치가 위법이라고 판결했고, 기지 건설 공사는 강행됐다. 오나가 지사는 기지 이전 무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올 4월 췌장암이 발견됐다. 이제 관심은 당초 예정보다 2개월 앞당겨져 다음달 치러질 차기 지사 선거에 쏠리게 됐다. 오나가 지사를 다시 옹립해 11월 재선에 도전시키려던 지지파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오나가 지사만큼 존재감 있는 후보를 찾기란 현재로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 지사직을 탈환해 일사천리로 일을 추진하려던 정부·여당 또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오나가 지사에 대한 유권자들의 추모 열기가 길어질 경우 선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헤노코 이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오는 17일쯤 매립 해역에 토사를 투입할 예정이었지만, 오나가 지사의 사망에 따라 시기 변경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日 해변서 희귀 ‘대왕고래’ 죽은 채 발견…사인은?

    日 해변서 희귀 ‘대왕고래’ 죽은 채 발견…사인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 고래가 죽은 채 일본 해변에서 발견됐다.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 등 현지언론은 가나가와 현 가마쿠라 시 해변에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대왕고래가 사체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영어권에서는 ‘블루 웨일’(Blue Whale)로도 불리는 대왕고래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로 알려져 있다. 흰긴수염고래 또는 흰수염고래라고도 부르며,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온 몸이 청회색으로 보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체로 일본 해안에 떠밀려 온 대왕고래는 지난 5일 오전 발견됐으며 몸길이는 10.52m로 올해 태어난 수컷으로 보인다. 현지언론은 "일본에서 대왕고래가 발견된 것은 사상 처음"이라면서 "아직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현재 조사 중에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대왕고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특히 몸길이 30m, 몸무게 173t에 달하는 지구상 가장 큰 동물에 속하지만 20세기 초 중반 극심한 고래잡이로 멸종 위기에 놓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현대, 친환경차로 ‘사드 고전’ 中시장 회복 나선다

    수입차 관세 인하로 獨·日과 경쟁 치열 7월 판매량 40% 하락… 무역전쟁 ‘불똥’ 中 법인장 교체·하반기 신차로 승부수 현대자동차가 사드로 타격을 입었던 중국 시장에서 친환경차를 내세워 돌파구를 찾는다. 7일 자동차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현대차의 중국 법인 베이징현대는 이날 중국에서 쏘나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출시했다. 현대차는 2016년 중국에서 쏘나타 하이브리드(HEV), 지난해 순수 전기차인 신형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 EV를 출시한 데 이어 쏘나타 PHEV가 가세하면서 중국에서 친환경차 라인업을 강화하게 됐다. 중국의 친환경차 시장은 연간 50% 이상 고속 성장하며 올해 80만대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내년부터 연간 자동차 생산 및 수입량이 3만대 이상인 기업은 일정량의 친환경 자동차 생산을 의무화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량은 아직 미미하지만 중국 정부의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에서 연간 100만대 이상을 판매했으나 사드 갈등이 불거진 뒤 2017년 82만대로 줄었다. 지난 상반기에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6.2% 뛰어오른 38만대를 판매하면서 사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조짐이 보였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중국 매체들은 중국자동차유통협회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 6월 중국의 자동차 수입량이 1만 5000대로 전년 같은 달 대비 87.1% 급감하고 수입차 판매량도 6만 3000대로 21.2% 줄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지난 7월 1일자로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의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인하한다고 발표하면서 소비자들이 수입차 구매를 미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수입차 관세가 25%에서 15%로 인하되면서 중국에서 현지 생산하는 현대차는 관세 인하의 수혜는 비껴가면서 독일, 일본 등의 브랜드와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실제 지난달에는 상승세였던 판매량이 한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가 지난달 중국 시장에서 도매 기준 판매량이 3만대 초반으로 전년 같은 달 대비 40% 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 신차의 판매량이 주춤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달 25일 현대기아차의 중국 법인장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어 하반기에 중국 전용 스포티 세단인 라페스타로 신규 차종을 내놓는 한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선호도가 높아지는 중국 시장을 반영해 투싼 부분변경 모델과 신형 싼타페를 투입, 연간 판매량 90만대라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韓 제조업 환경 주요 19개국 중 7위, 기반시설·혁신 4위… 정책·규제 9위

    우리나라 제조업 환경이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주요 19개국 중 7위에 머물렀다. 조세와 규제 등 정부 정책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게 원인으로 꼽힌다.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등에 따르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글로벌 제조업 평가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는 한국과 미국 등 주요 19개국을 대상으로 정책·규제, 조세정책, 에너지·교통·의료비용, 노동력, 기반시설·혁신 등 5가지 제조업 환경 지표를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 영국과 스위스가 100점 만점 중 78점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이 77점, 일본·캐나다·네덜란드가 각각 74점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73점으로 7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이 51점으로 가장 낮았으며 인도네시아(53점), 멕시코(56점), 러시아(56점), 인도(57점) 등이 하위권을 형성했다. 한국은 기반시설·혁신(25점 중 18점) 분야에서 프랑스, 스위스, 중국과 함께 공동 4위를 차지했다. 노동력(25점 중 18점)도 네덜란드와 공동 5위에 올랐다. 반면 조세정책(15점 중 9점)은 미국(7점), 브라질(7점), 중국(8점) 다음으로 낮았다. 정책·규제(20점 중 18점)는 공동 9위, 에너지·교통·의료비용(15점 중 10점)은 공동 8위에 각각 그쳤다. 기업과 근로자보다는 정부의 분발이 더욱 요구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우수한 제조업 환경을 갖춘 국가들은 제조업에 유리한 세제, 환율 정책, 투명하고 공정한 정책 과정, 인적·물적 자원에 적극적인 투자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월드 Zoom in] “내년 새 연호 맞춰 아이 낳자”… 日 ‘원년 베이비붐’ 기대

    출산 이어 ‘원년 결혼’ 희망자도 늘어 ‘밀레니엄 베이비’, ‘황금돼지띠’, ‘백호띠’ 등 특정한 해를 맞아 사회적으로 출산 붐이 불붙을 때가 있다. 지금 일본에서 그런 기운이 나타나고 있다. 내년 5월 1일로 예정된 차기 일왕 즉위 이후 ‘원년(元年) 베이비’를 낳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요가학원 등에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고, 언제까지 임신하면 원년 베이비를 낳을 수 있을지 등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2009년 이후 9년 연속 인구 감소세를 보이는 일본 사회와 관련 업계 등도 내년 베이비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왕이 바뀌면 새로운 연호를 선포하고 이를 연도로 활용한다. 올해는 1989년 아키히토 현 일왕이 즉위하면서 선포한 ‘헤이세이’(平成) 연호에 따라 ‘헤이세이 30년’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2018년’과 같은 서기(西紀) 연도와 병용된다. 서기는 없이 연호의 연도만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연호는 통상 왕이 사망하고 왕세자가 즉위하면서 선포되기 때문에 이를 미리 예측하고 원년에 맞춰 출산하는 건 극히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헤이세이 연호는 내년 4월 30일로 막을 내리고 5월 1일부터 새 일왕의 즉위에 따라 새 연호가 사용된다. 이 때문에 아이의 출생년을 새 연호의 첫해로 만들어 주려면 내년 5월 1일 0시 이후부터 12월 31일 자정 이전까지 낳아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의 통상적인 출산 기간을 감안할 때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임신을 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 일본에서는 새 천년이 시작된 2000년에 ‘밀레니엄 베이비붐’이 일었다. 그해 출생아 수는 119만 1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3000명이 증가했다. 니혼게이자이는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를 희망할 때와 달리 지금은 소변을 통해 임신하기 쉬운 배란일을 미리 알아보는 검사약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출산 시기 조절이 수월해졌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불임 치료 차원에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이 약을 살 수 있었지만, 2016년 규제 완화로 지금은 처방전 없이도 구입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내년에 ‘원년 결혼’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결혼은 출산과 달리 시기 조절을 쉽게 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새 연호 원년에 많은 부부가 결혼해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이듬해에는 ‘올림픽 베이비붐’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대법원장 출신 의병장 허위… 日헌병사령관도 존경한 기개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대법원장 출신 의병장 허위… 日헌병사령관도 존경한 기개

    1908년 10월 21일 정오. 허위 선생은 경성감옥의 교수대에 올라갔다. 안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고 태도는 당당했다. 왜승(倭僧)이 불경을 읽으며 명복을 빌어 주려 했다. 그러자 선생은 “충의(忠義)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로 올라갈 것이요, 혹 지옥으로 떨어진 대도 어찌 너희의 도움을 받아 복을 얻겠느냐”고 꾸짖었다. 검사가 시신을 거둘 친족이 있느냐고 물었다. 선생은 “죽은 뒤의 염시(斂屍)를 어찌 괘념하겠느냐. 옥중에서 썩어 문드러져도 좋으니 속히 형을 집행하라”고 일갈했다. 털끝만큼의 흔들림도 없었다. 곧 사형이 집행됐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내고 전국 의병을 총지휘해 서울 진격을 노렸던 13도 창의군 대장 허위의 최후였다. 나이 53세였다.대한매일신보는 ‘天日無光’(천일무광·하늘의 태양이 빛을 잃었다)이라며 선생의 죽음을 애도했다. 왕산은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였다. 선생은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國恥民辱 乃至於此 不死何爲 父葬未成 國權未復 不忠不孝 死何瞑目(국치민욕 내지어차 불사하위 부장미성 국권미복 불충불효 사하명목·국치민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하리오.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 불충불효한 몸이 죽은들 어찌 눈을 감으리오.)” 죄수들과 도성(都城) 안팎의 백성이 통곡했다. 시신을 수습한 사람은 제자 박상진이었다. 박상진은 하얀 천으로 시신을 감싸 안고 나와 금오산 아래에 묻고 장례를 치렀다. 상주인 장남 허학을 비롯한 유족들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있어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회유하는 이완용에게 “넌 죽일 것” 호통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을사늑약 직후 의병을 일으켰던 선생은 일제가 정미 7조약 체결을 강요하고 군대를 해산하자 세 번째로 의병을 일으켰다. 선생에게 거사 밀명을 내린 사람은 고종이었다. 강제로 퇴위당하기 직전인 1907년 4월 ‘거의’(擧義)라는 두 글자가 쓰인 의대조(衣帶詔·옷 속에 넣어 비밀리에 전하는 임금의 편지)가 선생에게 전달됐다. 을미의병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이인영도 다시 뛰어들었다. 이인영은 전국에 격문을 띄워 1907년 12월 각도의 의병부대를 경기도 양주에 집결토록 했다. 경기도에서 거병한 허위도 의병들을 이끌고 동참했다. 의병 총수가 1만명을 헤아렸다. 이인영을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하는 연합의병대(13도창의대진소)가 결성됐다. 1908년 1월 연합의병대는 서울진공작전을 개시했다. 그러나 화승총에 짚신을 신은 의병은 애초에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군(日軍)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더욱이 서울 진공 계획을 알아챈 일제는 동대문에 기관총을 설치하는 등 방어망을 펼치고 있었다. 선생은 선발대 격인 감사병(敢死兵) 300명을 지휘해 선두에 서서 서울로 진격했다. 동대문 밖 30리 지점에서 일본군과 마주쳤다. 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일본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패퇴하고 말았다. 이인영이 이끄는 본대도 뒤이어 1월 28일 동대문 밖에 도착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이인영에게 부친의 부음이 날아든 것이다. 이인영은 후사를 허위에게 맡기고 급히 경북 문경으로 돌아갔다. 서울진공작전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의병들은 부대별로 흩어져 유격전에 들어갔다. 선생은 주로 임진강 유역에서 일본군의 진지를 습격하고 관공서를 덮쳐 친일파들을 처단했다. 선생의 의병들이 수많은 전과를 올리자 이완용은 사람을 보내어 관찰사, 내부대신 직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그러나 선생은 “너(이완용)는 반드시 죽일 것이로되 심부름 온 놈이야 죽여서 뭐하겠느냐”고 크게 꾸짖어 돌려보냈다. 1908년 6월 11일 아침 오오타 기요마쓰 등 일본 헌병 수십 명이 영평군(지금의 포천) 서면 유동에 있던 선생의 은신처를 덮쳤다. 헌병들이 의병 한 사람을 붙잡아 회유와 협박을 해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 선생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체포에 응했다. 13년 의병투쟁은 그렇게 끝났다. 선생은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찌하랴. 지금 내가 죽을 곳을 얻었으니 너희 형제간이 와서 보도록 하라.” 선생은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군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의 심문을 받았다. 선생은 아카시에게 “일본이 한국의 보호를 부르짖는 것은 입뿐이요, 실상은 속으로 한국을 멸할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적은 힘으로나마 의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아카시가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것이 마치 병자 몸뚱이를 주무르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마침내는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자 선생은 책상 위의 연필을 가리키며 “이 연필은 붉은 빛깔이지만 내면은 남색이지 않은가. 귀국이 한국을 대하는 것도 껍질과 내면이 크게 다름은 다툴 것도 없이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아카시는 선생의 강직한 성품과 늠름한 태도에 감복하여 ‘국사’(國士)라고 칭하며 선생에게 존경을 표했다. 또 선생의 목숨을 구하려고 데라우치 통감에게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재판에서 일본 재판관이 “의병을 일으키게 한 것은 누구이며 대장은 누구냐”고 물었다. 선생은 웃으면서 “의병이 일어나게 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이며 대장은 바로 나다”라고 대답했다. “왜냐”고 묻자 “이토가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토가 아니고 누구겠느냐”고 반문했다.선생은 1855년(철종 6년) 경북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7세 때 “달은 대장이 되고 별들은 군사가 되어 따른다”(月爲大將軍 星爲萬兵隨·월위대장군 성위만병수)라는 글을 지을 만큼 한학에 능통했다. 관직에 나선 것은 44세의 늦은 나이였지만, 평리원 재판장(지금의 대법원장 격), 의정부 참찬, 칙임 비서원승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선생의 본관과 고향은 김해다. 임은동에는 낙동강 물길을 따라 김해에서 서울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허위의 증조부 허돈이 1807년에 정착했다고 한다. 임은동은 박정희 생가가 있는 상모동과 붙어 있다. 드넓던 평야는 구미산업공단으로 바뀌었고 공단 아래쪽 허씨 일가가 모여 살던 마을은 빌라와 주택이 들어서 고가(古家)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1962년 건국훈장 추서… 서울시 ‘왕산로’ 명명 다행히 생가터는 남아 있었다. 선생의 장손 허경성(91·둘째아들 허영의 장남)씨가 자신은 전세를 살면서도 큰돈을 대출받아 1990㎡의 터를 사들여 2005년 구미시에 기부했다. 생가 건물은 자료가 없어 복원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왕산허위선생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생가 건너 쪽 야산에는 선생의 묘소와 유허비가 있고 그 바로 옆에 2009년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이 세워졌다. 김교홍 기념관장은 “선생의 집안은 논 3000마지기(60만평)를 팔아 군자금으로 쓰는 등 의병투쟁과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고 말했다. 묘소 옆에 위패를 모실 사당 경인사(敬仁祠)가 조성되고 있지만, 예산 편성이 미뤄져 공사가 답보 상태다. 기념관 아래에 선생의 호를 딴 왕산초등학교가 있다. 선생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서울시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청량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가로를 ‘왕산로’라고 명명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난 한국인 피를 가진 일본인… 한·일 관계 작은 ‘키맨’ 될 것”

    [색다른 인터뷰] “난 한국인 피를 가진 일본인… 한·일 관계 작은 ‘키맨’ 될 것”

    이름·역사 함께 물려받는건 숙명·사명심수관요전 열고 한·일 문화교류 앞장“日, 한국 이해·관심 서서히 개선될 것”“서른 살쯤에 김칫독 만드는 걸 배우러 경기도 여주에 갔습니다. 가자마자 어떤 분이 저에게 ‘400년 된 일본의 때를 벗겨 내고 한국의 혼을 품으라’고 하시더군요. 일본에서는 조선의 성(청송 심씨)을 쓴다고 ‘조센징’으로 불렸는데, 한국에선 제가 나고 자란 일본을 부정하라고 하니 이걸 어쩌나요. 우리(심수관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저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답하지요. ‘아니요, 저는 분명히 일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피는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기록적인 무더위가 찾아온 올여름을 제15대 심수관(59·본명 심일휘)은 여느 해보다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3주년을 기념해 지난 6~7월 ‘사쓰마도기 420년: 심수관요(窯)전’을 개최했고, 오는 10일에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구성되는 일본 내 전문가 모임 ‘일·한 문화인적 교류를 추진하는 심의회’에 참여한다. 그를 만난 것은 심수관요전 마지막 날인 지난달 12일 도쿄 신주쿠의 한국문화원에서였다. ‘일본에 뿌리내린 조선 도공의 제15대 적자’이자 ‘일본의 3대 도자기를 대표하는 장인’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타이틀과 달리 그는 ‘큰형님’과 같은 호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습명(이름을 물려받음)을 한 지 내년이면 20년.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과 안목, 그리고 자신이 부여받은 ‘숙명’과 ‘사명’을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요즘 한·일 관련 기념 행사와 모임으로 바쁘신 것 같다. 두 나라 사이에서 ‘심수관’이라는 존재는 어디쯤에 있나. -어떤 신문에서 내가 한국을 모국으로 생각한다고 했던데 그건 잘못 쓴 것이다. 한국은 할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다. 모국, 즉 어머니의 나라는 일본이다. →그러면 심수관가의 도자기는 어떠한가. -자주 듣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심수관 가문의 도자기는 훌륭하다. 그런데 그 도자기는 한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것은 훌륭하다.’ 그러면 이런 논법은 어떤가. ‘한국의 도자기는 훌륭하다. 그런데 그 도자기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의 것은 훌륭하다.’ 거기에 동의할 한국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문화는 이동하는 것이다.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420년 전 이곳에 온 조선 문화가 일본의 사회와 풍토에서 적응한 모습이 우리 심수관가의 사쓰마도기다. ‘진화론’을 인용하자면 강하니까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한국의 씨앗이 일본의 토양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두 나라 사이를 좀더 좋게 만들기 위해 고민도 크시겠다. -옛날 에도시대 나카쓰(오이타현)에 미우라 바이엔이라는 학자가 살았다. 한번은 그가 항구에 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바다에 물 한 국자를 부어 넣고 바닷물이 늘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늘어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중요한 것은 바다에 한 국자의 물을 추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을 위한 나의 노력도 그런 것이다. 내가 하는 소소한 일들이 두 나라의 관계를 개선시킬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갖고 활동을 이어 가는 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이해와 관심은, 설령 당장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개선되는 쪽으로 갈 것으로 믿고 있다. →상대방 지방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강조해 왔는데. -틈만 나면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서울 같은 대도시 말고 한국의 지방을 여행해 보라고 권한다. 지방의 다양성과 매력을 알고 느끼게 되면 그 나라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가을에는 많은 인원의 일본인을 데리고 한국의 통영, 하동, 삼천포, 남해, 청송 등을 둘러볼 계획이다. →원래 도자기를 좋아했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았다면 15대 심수관이 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도 같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숙명이었다. 대학(와세다대 사회학과)을 졸업할 때까지도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대학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명문이었던 교토대 법학부를 나온 할아버지(13대)도,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나온 아버지(14대)도 작은 고향 마을로 돌아와 가문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그분들을 보고 자란 내가 다른 일을 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대학 졸업 후 도쿄를 떠나 고향으로 갔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이다. 나의 장래가 다른 무언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우리 회사(심수관요)에 25명의 장인이 있는데, 그중에 도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그게 누구냐면 나다(웃음). 농담으로 가끔 하는 말이긴 하지만 같이 일하는 다른 24명은 무수한 직업 중에서 도자기 만드는 게 제일 좋아서 이걸 택한 사람들이고, 나는 집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게 됐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나와 다르게 우리 아들은 가업을 즐겁게 이어받기로 해 안심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예술의 영역이어서 적성에 부합하는지도 고민이 많았겠다. -심수관이 되기로 결정하면서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표현’이라는 말을 해석하고 이해함으로써 내 안에서 떨쳐 낼 수 있었다. 다소 어려운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 표현의 ‘표’(表)와 ‘현’(現)은 둘 다 뭔가를 ‘나타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 ‘현’에는 인간 내면의 생각, 감격, 불안 등이 관련되는데 여기에는 형태가 없다. 이걸 눈에 보이도록 형체화하는 것이 ‘표’다. 결국 형태가 없는 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표현’인 셈이다. 나는 내 안의 생각과 감정에 해당하는 ‘현’을 도자기라고 하는 ‘표’를 통해 형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 면에서 적성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차(茶)의 종가나 가부키의 종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두 가지 고민 중 다른 하나는. -‘심수관’이라는 이름 석 자에 대한 중압감이었다. 가문의 뿌리가 조선임을 숨기지 않았던 우리 집안은 420년 역사에서 여러 어려운 일들을 겪어 왔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일본이 제국주의로 갔던 시기였다. 그때 조선에 뿌리를 둔 많은 가문들이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지만 우리 심수관가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심수관의 이름을 계승한다는 것은 그런 무겁고 엄중한 역사도 함께 물려받는다는 것인데, 나에게 더없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15대 심수관의 작품세계는 어떤 것인가. -전통이란 지층과 같은 것이다. 가장 밑에 있는 초대를 기반으로 그 위에 2대, 3대, 4대 순으로 켜켜이 쌓이게 된다. 각각의 세대들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한다. 14대인 우리 아버지(92·본명 심혜길)의 세계는 역대로 가장 독특하고 화려했다. 전에 ‘우리 가문을 망가뜨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님밖에 없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었다(웃음). 나도 내 세대의 색을 만들어야 한다. 그 토대는 ‘로컬’과 ‘아날로그’다. 세상이 글로벌화·디지털화하고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가고시마의 원료와 가고시마의 기술로 구현되는 가고시마의 미(美)의식 구현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다. 글 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심수관家는 어떤 곳인가 정유재란 때인 1598년 왜군에 의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온 남원(전북) 도공 심당길의 후손으로 ‘사쓰마(薩摩·가고시마의 옛 지명)도기’를 발전시켜 온 심수관 가문을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청송 심씨의 성을 따르는 한국식 이름을 받는다. 사쓰마도기는 1873년 12대 심수관이 오스트리아만국박람회에 도자기를 출품해 정교한 기술과 색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성을 인정받으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제15대 심수관은 누구 -1959년 일본 가고시마현 출생 (본명 심일휘) - 1983년 와세다대 졸업 -1985년 교토부립 도공고등기술전문교 수료 -1988년 이탈리아 국립미술관 도예학교 졸업 -1990년 경기 여주 김일만토기공장 연수 -1999년 제15대 심수관 습명
  • 뜨거운 ‘고시엔’의 여름이 시작됐다…日고교야구 최대 축제 개막

    뜨거운 ‘고시엔’의 여름이 시작됐다…日고교야구 최대 축제 개막

    일본 고교 스포츠의 최대 축제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가 5일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100회째의 막을 올렸다.고시엔 대회는 마이니치신문이 주최하는 3월의 ‘봄 고시엔(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과 아사히신문 주최의 8월 ‘여름 고시엔’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여름 고시엔은 각 지역 예선 우승팀이 모여 경쟁하는 대회로 전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올해 지역 예선에 참가한 학교는 모두 3781개로, 이 중 56개 학교가 본선에 진출했다. NHK에 따르면 첫날인 이날 티켓 4만 8000석이 오전 9시 개막식이 시작되기 1시간 20분 전에 매진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반영했다. 대회 본부는 “대회 첫날에 표가 매진된 적은 최근에 없었다”며 “특별한 100회째 대회라는 점에서 올해 대회는 유독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막식에는 내년 즉위를 앞둔 나루히토(58) 일본 왕세자 부부가 참석했으며 첫 시합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스타 마쓰이 히데키가 시구를 했다. 1915년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로 시작해 올해 100회까지 이어온 이 대회는 아마추어 고교 대회임에도 경기가 TV 생중계되는 등 프로 스포츠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식물도 낮과 밤 뒤집히면 폭삭 늙는다

    식물도 낮과 밤 뒤집히면 폭삭 늙는다

    며칠 동안 야근을 하거나 밤샘작업을 하고 나면 주변 사람들은 “며칠 사이에 확 늙어버린 것 같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건내는 경우가 많다. 밤과 낮이 뒤바뀌면 신체 내 생체시계가 교란되면서 실제로 세포 노화는 빨라진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사람 뿐만 아니라 식물도 낮과 밤이 뒤집히면 빨리 늙는다는 사실을 국내 연구진이 밝혀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은 식물이 하루 24시간을 인지하도록 하는 일(日)주기 생체시계 유전자가 잎의 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최신호에 실렸다. 식물의 일주기 생체시계 시스템은 언제 잎을 펼칠지, 꽃을 피울지 등 식물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를 결정한다. 일주기 생체시계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잎이나 꽃이 나오는 시기가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해 열매를 채취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식물 노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일주기 리듬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정확한 둘 사이 상관관계가 규명되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애기장대라는 식물을 활용해 식물 노화와 관련된 3개의 핵심 유전자 중 하나인 ‘오래사라1’이 식물 일주기 시스템에 따라 잎의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오래사라1은 2009년 남홍길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장팀이 발견한 식물 노화 주요 3개 유전자 중 하나다. 연구팀은 일주기 생체시계를 담당하는 여러 유전자 중에서 아침에 활성화되는 ‘PRR9’이라는 유전자가 오래사라1 유전자 발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PRR9이 오래사라1 유전자를 직접 활성화시키거나 발현을 억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잎의 노화에 관여한다는 설명이다. 남홍길(대구경북과학기술원 펠로우) 단장은 “이번 연구결과는 단순히 일주기 시스템이 노화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 식물 노화에 일주기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분자단위로 분석해 냈다는데 의미가 크다”며 “이번에 밝혀낸 생치시계 회로를 이용해 식물의 노화를 보다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日군함도, 강제노역 설명 없어“…유네스코 문화유산 삭제 움직임

    “日군함도, 강제노역 설명 없어“…유네스코 문화유산 삭제 움직임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국회와 공론화 논의 중”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일명 군함도) 등 ‘일본 메이지시기 세계 산업유산’에 대해 유네스코(UNESCO) 등재 삭제를 추진하자는 의견이 국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등재 당시 일본이 약속했던 ‘조선인 강제 노역’ 설명이 등재 3년이 지나도록 지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들 시설은 유네스코가 지정 기준으로 삼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산업시설, 전쟁과 연결된 군수공장, 유네스코 가치와 배치” 앞서 일본은 2015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일본은 각 유적지의 전체 역사를 이해시킬 수 있도록, ‘설명 전략’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유네스코의 권고에 응하겠다“면서 ”많은 한국인 및 기타 인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불려와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일했고, 또한 일본정부는 징용정책을 실시했음을 이해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일본은 설명전략에 정보센터 설치와 같은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적절한 조치를 포함시킬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당시 총회에서 유네스코는 이에 대한 이행상황을 지난해 12월 1일까지 세계유산위원회의 점검을 위해 보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본이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자 지난 6월 바레인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일본에 이행 촉구를 다시 결의했다.●“현장서 유적 실물 대신 VR로 봐···관광목적 돈벌이 냄새”  실제로 지난달 23일부터 4일간 현장을 답사한 ‘일본 메이지 시기 세계산업유산 모니터링 조사단’ 조사 결과 일본의 약속과는 달리 여전히 “조선인 강제 노동”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센터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조사단에는 문화유산회복재단과 한일미래재단,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단체가 참여했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3일 “이것을 보존하고, 미래 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느냐는 회의가 많이 들었다”며 “관광 목적 돈벌이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났다”고 말했다. 군함도에 들어가는 데 입장료와 뱃삯을 포함해 한 사람에 6만원가량 든다. 이 이사장은 “유네스코는 전 기간에 걸쳐 전부를 보여주라고 권고했는데, 일본은 역사를 1850~1910년 임의적으로 잘라서 보여주고, 시설 유산도 발췌해서 보이고 싶은 것만 일부 공개한다”고 말했다. 서용석 한일미래재단 사무국장은 “과거의 시설에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시설들이 섞여 있었다”며 “조선인 강제노역 안내판은 물론이고, 이 유산이 어떻게 형성됐고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매립지 바닥에 사진을 설치하고서는 유적지라고 했다”고도 했다. 사가현 조선소 현장에서도 유적을 보지 못하고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현실(VR)을 봐야 했다. 조사단에 동행한 최나래 연구원은 “일본인 가이드는 나무로 된 도크는 땅에 파묻혀 있다고 하더라”며 “VR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고, VR을 보기 위해 유적 현장까지 찾아야 하나”고 반문했다.●“日안내원, 한국인이 ‘도와줬다‘ 설명···안내판 설치 없어” 이번 모니터링단이 방문한 미이케 탄광·미에츠 해군소·나가사키 조선소·군함도 등에서는 조선인 강제징용이나 노역 등을 설명한 안내판이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스미요시 터널 공장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이 터널 공장에는 “거주자 대다수는 조선인 노동자였고, 그중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을 하였다”는 취지의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최 연구원은 “미야노하라갱 일본 안내원이 설명할 때 ‘이걸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어보니 한국인과 중국인이 ‘도와줬다’는 뉘앙스로 말했다”며 분개했다. 이와 관련해 하시마 시설물 소유주인 미쓰비시중공업 관계자는 “(강제동원 정보센터 설립은) 애초에 검토한 적이 없으며, 정부에서 아직 아무 지시도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특히 하시마를 비롯한 일본 산업혁명 유적지는 유네스코의 기본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각국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유산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강제노동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연결된 군수공장이라는 역사적 인과관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야히타제철소는 청일 전쟁에서 이긴 배상금으로 만들어졌고, 미쓰비스 나가사키 조선소는 어뢰와 군함을 생산했던 곳이다.●“유네스코 총회에 정식 삭제요청 할 터···국회서 공론화도” 이런 연유로 이들 유적을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하자는 운동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상근 이사장은 “차기 유네스코 총회에 하시마를 비롯한 일본 산업시설의 삭제 요청을 정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일부 국회의원들과는 우리 국회에서 이를 먼저 공론화하자는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유네스코에서는 2건의 등재취소 요청이 있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 제116조와 제192조는 ‘세계유산목록 최종삭제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제192조 b항은 “등재신청 당시 이미 세계유산의 본질적인 특징이 인간의 행위로 인해 위협받고 있었던 경우, 그리고 신청 당시 당사국이 제안한 필요한 시정조치가 제시된 기한 내에 이행되지 않은 경우”라고 못박고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사업 실패·소송, 형제들 불화 얽힌 베델… 한국행 배에 오르다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사업 실패·소송, 형제들 불화 얽힌 베델… 한국행 배에 오르다

    일본에서 무역 일을 하던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한동안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으나 오래지 않아 악재가 겹쳐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본 업체들의 담합·소송에 휘말리고 형제들과도 관계가 나빠져 결국 일본 사업을 포기했다.●9개나 되는 공장 차렸다가 못 버티고 폐업 1888년 고베에 와 아버지와 이모부 밑에서 무역 일을 배운 베델은 1899년 ‘베델 브러더스’를 세워 독자 사업에 나섰다. 일본의 골동품을 영국에 내다파는 중개업에 자신감이 붙은 베델은 한발 더 나아가 일본에서 직접 물건을 만들어 영국에 수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베델 브러더스’가 생산하기로 한 첫 제품은 바로 러그였다. 러그는 바닥깔개나 무릎덮개 용도로 쓰는 직물제품을 말한다. 베델은 형제들과 1901년 7월 오사카 남부 사카이 지역에 소규모 러그 제조 공장 9개를 차렸다. 당시 사카이에는 일본인들이 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러그 공장이 많았다. 한때 이곳은 지역 주민의 70%가 러그 생산에 매달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베델 브러더스’는 이런 사카이에 공장을 차린 첫 외국인 업체였다. 이들이 만든 러그는 품질도 꽤 좋았던 것 같다. 영자지 ‘재팬 크로니클’은 기자가 사카이 공장을 직접 방문하고 쓴 르포 기사에서 “베델의 러그는 터키에서 생산된 최고급 제품과 차이가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조업을 처음 해 보는 베델이 한꺼번에 9개나 되는 공장을 무리하게 운영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일본에서는 1899년 외국인에 대한 치외법권이 마무리돼 이들에 대한 소송이 급증했는데 ‘베델 브러더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품질 좋은 러그를 만들기 위해 주변 공장에서 일하던 일꾼들을 대거 스카우트한 것이 일본업체들을 자극했다. 공장을 9개나 돌리다 보니 경쟁회사에서 데려 온 장인의 수도 상당했을 것이다. 이 지역 카르텔은 ‘베델 브러더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영업을 방해했다. 결국 베델 형제들은 이들의 보이콧을 버티지 못하고 얼마 안 가 러그 사업을 접었다.●3억원대 러그 납품 분쟁… 日반감도 커져 베델은 이 시기 최소 3건의 소송에 휘말렸다. 사업과 관련된 것으로는 ‘수세미 사건’과 ‘러그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세미 사건’은 주방용품이나 목욕용품으로 쓰는 수세미의 납품을 둘러싼 분쟁이었다. 1902년 2월 고베 상인 나리타 세이사부로는 “‘베델 브러더스’가 수세미 3만 6942개를 주문했지만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며 1567.31엔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905년 7월까지 3년 반 동안 재판이 이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결론은 알려지지 않았다. ‘러그 사건’은 러그 납품 대금 관련 소송이었다. 베델이 조선에 온 뒤인 1904년 10월 러그 상인 도이 젠노스케는 베델을 상대로 대금 5026.73엔과 6%의 이자를 별도로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에서 거래된 엔화의 평균가를 고려하면 5026.73엔은 지금 가치로 27만 4870달러(약 3억 700만원)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베델은 이 시기 조선에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활동하고 있었다. 원고(도이)와 피고(베델)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자 손해배상 청구가 자연스레 기각돼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도이가 이듬해 2월 베델을 상대로 또 한 번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 금액도 처음보다 11% 늘어난 5795.73엔으로 책정했다. 고베 지역 영자지 ‘고베 크로니클’은 이 사건의 첫 공판이 있었던 1904년 10월부터 1905년 2월까지 네 차례의 공판을 기사로 다뤘다. 이 역시도 재판 결과는 기록이 없다. 사업과 관련한 두 가지 분쟁 사이에 작은 소송 하나가 더 있었다. 1903년 초 고베에 살던 히로시마 수마라는 여성이 “1902년 베델의 부인 메리 모드 게일(1873~1965)과 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이 영국에 갔을 때 이들을 수행하고 96.91엔을 받기로 했지만 실제 대가는 40엔이 전부였다”며 재판을 걸었다. 비록 수세미나 러그 대금처럼 큰돈은 아니었지만 베델 입장에서는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렇다할 합의 노력 없이 소송부터 하고 보는 일부 일본인들의 행태에 상당히 실망했던 것 같다. 영국 런던에서 만난 베델의 손자 토머스 오언 베델(59)은 “할아버지(베델)가 자신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한국을 돕기 위해 나선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일본인들의 줄소송으로 인한 반일 감정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한다”고 전했다.●日사업하던 형제들 항일 신문 만든 베델 내쳐 베델은 매사 솔직하고 직설적이었다. 베델의 후손들은 그가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1901년 8월 베델은 고베의 인력거꾼들과 요금을 놓고 시비를 벌이다가 싸움이 나서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를 두고 당시 ‘고베 크로니클’은 “외국인을 집단 폭행한 인력거꾼들의 잘못이 크지만 인력거 면허번호를 떼어 내는 등 불필요한 행동으로 이들을 자극한 베델도 생각이 모자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베델은 형제들과도 사이가 나빠져 결국 동업을 정리하게 된다. 아마도 이들은 일본인들과의 소송 과정에서 관계가 더욱 악화됐을 것으로 보인다. 베델이 한국에서 신보와 KDN을 발행하던 1905년 ‘고베유신일보’ 11월 27일자에는 ‘베델 브러더스’ 고베 지사에서 일하던 S E 길스가 신문사로 찾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는 “베델은 한때 ‘베델 브러더스’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술고래였고 결근도 잦았다. 급기야 회사를 내팽개치고 한국으로 건너갔다. 이제 이 회사는 베델과 아무 관계도 없다. 우리는 이 내용을 신문에 광고도 했다”고 밝혔다. 길스를 대리인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베델을 과음과 근무태만, 무책임 등의 단어로 묘사한 것을 볼 때 (사실 여부를 떠나) 그를 바라보는 남동생 허버트(1875~1939)와 아서 퍼시(1877~1947)의 감정이 부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본 영자신문에 베델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광고까지 한 것을 보면 한국에서 항일신문을 발간한 큰 형(베델)을 이렇게라도 내치치 않을 경우 ‘베델 브러더스’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형제들의 복잡한 속내가 읽혀지기는 한다.앞서 ‘고베유신일보’는 11월 26일자 기사에 “베델은 1899년 ‘베델 브러더스’를 설립해 지난해(1904년)까지 도자기업을 운영하다가 (사업) 실패로 야반도주하다시피 한국으로 건너간 러시아 스파이”라고 비난했다. 베델이 러시아 스파이라는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가 사업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러그 사업이 실패한 뒤 도자기 판매로 활로를 모색했지만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베델은 사업 실패와 잇따른 소송, 형제와의 불화 등으로 16년간 살던 고베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1904년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영국 일간지 ‘데일리 크로니클’의 조선 특파원에 지원해 언론인으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가 일본에서 사업에 실패한 것이 조선에는 되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고베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단독] 소녀상 설전 뒤끝?… 한국 온 日자민당 간사장 ‘민주당 패싱’

    [단독] 소녀상 설전 뒤끝?… 한국 온 日자민당 간사장 ‘민주당 패싱’

    野대표·국회의장·이낙연 총리 만나지난달 31일부터 하계 연수차 방한 중인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이 유독 더불어민주당만 만나지 않아 궁금증이 일고 있다. 니카이 간사장은 2일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등 보수 야당 대표들을 잇따라 방문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만났다. 전날에는 서울의 한 호텔로 문희상 국회의장을 초청해 만찬을 함께 했다. 반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추미애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만나지 않았다.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는 “니카이 간사장 측의 접견 요청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정당 대표가 방한해 여당 지도부를 만나지 않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일본 정계의 대표적 지한파인 니카이 간사장은 앞서 지난해 6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특사 자격으로 방한했을 때는 추 대표를 만난 바 있다. 당시 두 사람은 한·일 역사 문제와 관련해 약간의 설전을 벌였다. 이번 방한에서 니카이 간사장이 민주당을 ‘패싱’한 이유는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철거 요청 등과 관련해 민주당의 단호한 자세가 ‘불편’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추 대표가 지난 5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소녀상 철거 가능성을 일축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게 유튜브 등에 퍼져 일본 내에서 논란이 컸었다”면서 “이 때문에 니카이 간사장이 굳이 추 대표를 만나서 또 불편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 역사 문제에 잘못된 시각을 보이는 자민당 측을 우리가 먼저 요청해 만날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당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 니카이 간사장을 만나 “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당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니카이 간사장은 “자민당도 정권을 잃은 적이 있는데 반드시 되찾으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에어컨 아낌없이 틀라는 日… 블랙아웃 걱정없는 까닭

    동일본 지진 후 절전 생활화로 수급 여유 태양광 발전 확대… 여름 수요 27% 충당 한국보다 누진 폭 작아 전기료 폭탄 없어 일본에서도 기록적인 더위가 이어지면서 재난 주관 방송사 NHK는 방송 화면의 일부를 항상 폭염특보 자막에 할애하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실내에서는 주저 없이 냉방(에어컨)을 가동하라’는 문구다. 후생노동성은 “절전보다 열사병 등에 더 주의하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기업에 배포했다. 전력 수요 폭증에 따른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를 우려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일본에서는 올여름 기온이 기상 관측 사상 최고인 41.1.도(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까지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력난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 않고 있다. 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올 들어 가장 기온이 높았던 지난달 23일 오후 2~3시 도쿄전력 관내의 전력수요는 올해 최고인 5653만㎾로 뛰었지만, 전력예비율(공급여력)은 7.7%로 여유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같은 날 오사카, 교토, 기후 등 지역을 관할하는 중부전력도 올여름 최고인 2607만㎾를 기록했지만 예비율은 12.0%나 됐다. 아사히는 “8월에도 전국적으로 기온이 높을 것으로 예상돼 전력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전력난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전력 예비율에 여유가 있는 이유로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속돼 온 절전 노력이 첫머리에 꼽힌다. 도쿄전력의 경우 동일본 대지진 재해 이전에는 최대 전력수요가 6000만㎾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500만㎾가량 감소한 상태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가정과 공장에서 절전이 당연한 것으로 정착됐다”고 말했다.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 보급도 공급 여력 확대에 기여했다. 후쿠오카 등을 관할하는 규슈전력의 경우 지난달 26일 오후 2~3시에 기록한 올여름 최대수요 1601만㎾ 중 27%인 432만㎾를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했다. 전력회사끼리 남는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력융통제’, 전력회사가 요금을 깎아 주고 그 대신에 전력이 부족할 때 공장 등에 전력 사용을 줄이거나 자가발전을 이용하도록 요청하는 ‘네가와트 할인제’ 등을 도입한 것도 크게 도움이 됐다. 일본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전력 사용량에 비례해 적용되는 요금 누진의 폭이 한국보다 작다는 점이 상대적으로 에어컨 등을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일본의 전기요금 누진제는 우리나라와 같이 3단계이지만, 1~3단계의 최대 요금격차가 1.5배에 불과하다. 도쿄전력을 기준으로 120㎾h까지는 ㎾h당 19.52엔(약 195원), 120~300㎾h는 26엔(약 260원), 300㎾h 이상은 30.02엔(약 300원)이 적용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1단계와 3단계 사이에 3배 정도의 요금 차이가 난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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