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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장쩌민 첫 방한 앞두고… 北 “대만과 수교 검토” 반발했다

    1995년 장쩌민 첫 방한 앞두고… 北 “대만과 수교 검토” 반발했다

    中 내부도 “APEC 뒤 방한” 요청장 주석 “한국 발전경험 정리하라”삼풍 사고 직후 YS “공업화 과정”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1995년 중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할 당시 북한이 대만과의 수교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던 정황이 확인됐다. 외교부는 31일 비밀 해제 시한 30년이 지난 1995년 외교문서 총 2621권, 약 37만쪽 분량을 일반에 공개했다. 정부는 탈냉전 이후 외교 다변화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신외교’를 추진하고 있었다. 장 주석의 시장경제 개혁 움직임과 맞물려 1995년 11월 13일~17일 중국 정상의 첫 방한이 성사됐다. 북한은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1995년 5월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대표단은 북한 외무성 산하 군축 및 평화문제연구소와 회의를 했다. 북측은 “11월 장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대만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으며 대만과의 외교관계 수립까지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내의 우려도 있었다. 한국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1월 18~19일) 이전 장 주석의 방한을 요청했다. 중국 내에선 북한의 자극을 우려해 APEC 회의 이후 방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 경제에 대해 장 주석이 큰 관심을 보인 정황들도 파악됐다. 당시 중국 측은 장 주석의 엔지니어 경력을 거론하며 한국의 주요 산업시설 시찰과 경제인 면담을 먼저 요청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장 주석이 방한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이동하는 항공기 안에서 외교 당국에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정리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도 거론됐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는 1995년 10월 국회에서 “한국합방 조약은 당시의 국제관계 등 역사적 사정 속에서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돼 실시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토 다카미 총무처 장관도 같은 달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당시 한중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의제 관리 차원으로 제3국 관련 질문을 삼가기로 조율했었다. 하지만 한국 측 기자가 일본 관련 질문을 했고 여기에 장 주석이 “역사를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는 ‘극언’까지 했다. 정상회담 이후 중국 측은 정부에 강하게 항의했다. 정부는 ‘한국 언론의 특성’을 거론하며 달래기에 진땀을 뺐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혼란스러운 북한 문제도 의제에 올랐다. 장 주석은 북중 고위급 교류가 제한적이고 북한 사회의 폐쇄성이 높아 정세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도,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 밖에 총 144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관련해 방한한 막심 칼롯 코르만 바누아투 총리가 위로를 전하자 김 대통령이 “공업화로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며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게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가 발달돼 있어 언론들이 너무 많이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축소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1995년 장쩌민 첫 방한 앞두고… 北 “대만과 수교 검토” 반발했다

    1995년 장쩌민 첫 방한 앞두고… 北 “대만과 수교 검토” 반발했다

    中 내부도 “APEC 뒤 방한” 요청장 주석 “한국 발전경험 정리하라”삼풍 사고 직후 YS “공업화 과정”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1995년 중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할 당시 북한이 대만과의 수교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던 정황이 확인됐다. 외교부는 31일 비밀 해제 시한 30년이 지난 1995년 외교문서 총 2621권, 약 37만쪽 분량을 일반에 공개했다. 정부는 탈냉전 이후 외교 다변화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신외교’를 추진하고 있었다. 장 주석의 시장경제 개혁 움직임과 맞물려 1995년 11월 13일~17일 중국 정상의 첫 방한이 성사됐다. 북한은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1995년 5월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대표단은 북한 외무성 산하 군축 및 평화문제연구소와 회의를 했다. 북측은 “11월 장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대만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으며 대만과의 외교관계 수립까지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내의 우려도 있었다. 한국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1월 18~19일) 이전 장 주석의 방한을 요청했다. 중국 내에선 북한의 자극을 우려해 APEC 회의 이후 방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 경제에 대해 장 주석이 큰 관심을 보인 정황들도 파악됐다. 당시 중국 측은 장 주석의 엔지니어 경력을 거론하며 한국의 주요 산업시설 시찰과 경제인 면담을 먼저 요청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장 주석이 방한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이동하는 항공기 안에서 외교 당국에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정리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도 거론됐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는 1995년 10월 국회에서 “한국합방 조약은 당시의 국제관계 등 역사적 사정 속에서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돼 실시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토 다카미 총무처 장관도 같은 달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당시 한중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의제 관리 차원으로 제3국 관련 질문을 삼가기로 조율했었다. 하지만 한국 측 기자가 일본 관련 질문을 했고 여기에 장 주석이 “역사를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는 ‘극언’까지 했다. 정상회담 이후 중국 측은 정부에 강하게 항의했다. 정부는 ‘한국 언론의 특성’을 거론하며 달래기에 진땀을 뺐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혼란스러운 북한 문제도 의제에 올랐다. 장 주석은 북중 고위급 교류가 제한적이고 북한 사회의 폐쇄성이 높아 정세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도,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 밖에 총 144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관련해 방한한 막심 칼롯 코르만 바누아투 총리가 위로를 전하자 김 대통령이 “공업화로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며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게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가 발달돼 있어 언론들이 너무 많이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축소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박지원 “MB, 무슨 올림픽 나가는 것처럼…검찰 조사 기다려야”

    박지원 “MB, 무슨 올림픽 나가는 것처럼…검찰 조사 기다려야”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는 1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한 데 대해 “전직 대통령답게 반성하고 검찰 조사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비난했다.박 전 대표는 이날 불교방송 ‘전영신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숙하고 그런 말을 안 하시고 가는 것은 좋은데, 무슨 개선장군 올림픽 나가는 것처럼 나가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거 아닌가”라면서 “지금 뭐라고 하더라도 당신과 함께 일하던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등 여러 사람이 구속되고 있고, 그러한 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나”라고 이같이 말했다. 이어 “정치보복과 적폐청산은 구분되어야 된다. (MB) 당신 말씀은 적폐청산이 국론분열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당신처럼 적폐청산해야 국론 통합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속전속결로 적폐청산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YS정부 때 소위 말하는 적폐청산, 하나회 척결 같은 것을 해서 1년 동안 김영삼 대통령은 94% 지지도를 받았다. 고공행진을 했는데, 적폐청산 피로증이 온다. 그래가지고 너무 국민들이 싫어해서 그 지지도가 추락을 했다. 빨리 속전속결로 깃털은 그대로 두고, 몸통들을 빨리 척결해 줘야 된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박재호 의원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박재호 의원

    더불어민주당 박재호(57·부산 남을) 의원은 초선이지만 상당한 정치 경력을 갖고 있다. 1986년 상도동계인 고 서석재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외곽선거운동조직인 나라선거운동본부 부산지역 총책임자를 지냈고, YS정부 내내 청와대에 근무했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운명을 바꾸었다.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야권 불모지인 부산 남을을 계속 두드렸고, 4수 끝에 “딱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읍소가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Q. 상도동계에서 친노(친노무현)로 진로를 옮겨간 이유는. A. 기득권 해체에 공감. 2000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당시 국회의원(서울 종로구)이던 노 전 대통령과 점심을 먹었다. 그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보니 기득권 문제가 너무 심하다. 경기고·서울대를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정치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만난 지 30분 만에 반했다. 서 전 의원은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의원님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상위 1~2%이지만 밑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정치를 시작하려면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고, 노 전 대통령을 돕게 됐다. Q. 언제까지 정치할 것인가. A. 재선까지만. 부산 남을(감만·용당·용호·우암동)은 부산에서도 많이 낙후됐다. 저소득 노인 인구가 많다. 지역 발전을 위해 4년은 짧고 재선까지면 좀 낫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66살 넘으면 정치를 안 하겠다. Q. 대선 후보로 누굴 지지하나. A. 노 전 대통령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 친노(친노무현)냐 친문(친문재인)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불평등 해소와 청년 실업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사람을 지지하겠다. Q. 정치적 최대 관심사는. A. 서민의 억울함 해소. 서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억울하다”다. 다단계나 보험사기 같은 서민대상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데 처벌은 약하다. 서민을 위한 반사회범죄 가중처벌법 등을 준비 중이다. Q. 산업통상자원위 소속으로 국정감사 관심 분야는. A. 전기요금과 전력 수급. 한국전력 같은 공급자 중심에서 전력 계획을 세울 게 아니다. 전력 수급과 관련해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중단을 핵심으로 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프로필 ▲1959년 부산 출생 ▲부산외대 불어학과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 정무국장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나흘째 이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가거나 장남을 통해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적’을 배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후 4시쯤 굳은 표정으로 빈소에 들어섰다. 다소 야위었지만 몰려든 인파 속에서 혼자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눌러 적은 뒤 영정 앞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목례와 분향을 한 뒤에는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조의를 표했다. ●전 前대통령 유족들 위로 후 10분 뒤 떠나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35년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상도동에 가택 연금을 당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23일간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취임 이후에는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헌화 뒤 접객실에서 현철씨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건강 상태를 묻는 현철씨에게 “나이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하는 거다”라며 “이제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어 “임의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자다가 싹 가버리면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10분간의 짧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떠나던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향해 “수고들 하시라”라고 말했지만 ‘(조문을)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떠났다. 역시나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구속되는 악연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장남 재헌씨를 대신 보냈다. 재헌씨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고 한때 아버님과 국정도 같이 운영하셨고, 이어서 대통령도 되셨다”며 “정중히 조의를 드리는 것이 도의라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미소를 지으며 조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YS 막내딸 “부친의 過 부각돼 안타깝다” 재헌씨는 아버지가 특별히 전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거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서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전하셨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YS정부에서 겪은 ‘고초’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다”고 말했다. 83세인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연희동 자택에서 10년 넘게 투병하고 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빈소에는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간직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87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운동을 할 때 찾아뵙고 (단일화를) 요청드린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이) 그걸 못 해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15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YS키즈’ 정의화 국회의장도 독일 공식 일정을 일부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다 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가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는 유신독재로 다 망치는 거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인 혜숙씨도 기자들과 만나 “모든 지도자는 공과 과가 있다”며 “과가 부각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혼 후 미국 워싱턴 DC서 생활해 온 그는 “평소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며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야구선수 박찬호씨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면서,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국민에게 사랑 받는 선수로 성장하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LA 다저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박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올해 우리나라는 빛낸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칭찬했었다. ●신동빈·권오준·삼성 사장단 등 재계도 애도 서거 첫날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은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정병국 의원도 나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최상순 한화그룹 부회장,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을 준비하기 위해 문상객을 맞이하는 틈틈이 회의를 했다. 유족들은 2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 예배를 가진 뒤 영결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이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어 예배 형식으로 발인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난 뒤 운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오후 2시쯤 국회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국에 설치된 220여개 분향소에는 지금까지 15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여의도 국회에 설치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과 강신명 경찰청장,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주요 사장단 50여명 등이 방문하며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정상회담한 日 무라야마 전 총리도 분향소 찾아 해외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도쿄의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인연이 있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22일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그 시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비롯한 중국 정부 조문단도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류 부부장은 방명록에 “침통한 심정으로 애도를 표시한다”(沈痛悼念)는 글을 남겼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YS정부때 버금 정부 ‘4대 요직’ 포진… PK공화국 시대 오나

    YS정부때 버금 정부 ‘4대 요직’ 포진… PK공화국 시대 오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부산·경남(PK) 출신 인사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김영삼 정부 때에 버금가는 PK 전성시대가 20년 만에 도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국가 의전 상위서열 직책이나 권력기관장뿐만 아니라 각 기관의 고위직과 중추직 등 PK 출신의 숨은 실세들이 적지 않다. PK 인맥의 대부는 김기춘(경남 거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꼽힌다. 지난 8월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후 같은 동향인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후보자 인선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실세로 꼽힌다. PK 인맥은 법조계에서도 두드러진다. 법원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외에도 서기석(경남 함양) 헌법재판소 재판관, 손왕석(경남 밀양) 대전가정법원 법원장, 윤인태(울산) 부산지방법원 법원장, 박효관(경남 진주) 부산가정법원 법원장, 박삼봉(부산) 대전고등법원 법원장, 박흥대(경남 창원) 부산고등법원 법원장 등이 두루 포진해 있다. 검찰에서는 김경수(경남 진주) 대전고검장 정도다. 법무부 강찬우 법무실장은 경남 하동 출신으로 진주고를 나왔고 정동민 출입국본부장은 부산 금성고를 나왔다. 안태근(경남 함안) 인권국장, 김태훈(경남 창녕) 교정본부장 등도 PK다. PK의 약진은 박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영남권인 데다 대구·경북(TK) 독식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권력실세, 청와대 2인자로 불리는 김 비서실장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 국감에서 여당 의원으로부터 “감사원장보다 더 큰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은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도 주목된다. 진주고 출신의 김 총장은 ‘사실상 감사원의 1인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운찬(경남 하동) 관세청장, 박창명(경남 사천) 병무청장, 김석균(경남 하동) 해양경찰청장, 제정부(경남 고성) 법제처장 등 처장·청장급에도 상당수 포진해 있다. 차관급으로는 기획재정부의 이석준(부산) 제2차관, 정연만(경남 산청) 환경부 차관, 손재학(부산) 해양수산부 차관 등이 있다. 청와대에는 홍경식(경남 마산) 민정수석을 비롯해 비서관, 수석행정관급에도 상당수가 있다. 국무총리실에서는 류충렬(경남 마산)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조경구(경남 진주) 사회조정실장, 권태성(부산)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장, 최병환(울산) 국무조정실 기획총괄정책관 등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권 초기에 이 정도면, 인위적인 조정이 시도되지 않는 한 정권 말기에는 PK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다”면서 “장·차관, 실·국장들이 국·과장급을 챙겨 주기 시작하면 충분히 그 같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세훈 기자·부처종합 shjang@seoul.co.kr
  • YS정부 이후 항명 없었던 정권 없어… “방탄총리 거부” 이회창 대선후보로

    YS정부 이후 항명 없었던 정권 없어… “방탄총리 거부” 이회창 대선후보로

    기초노령연금 공약 후퇴 논란과 관련,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군’인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반해 자리를 던진 것이 ‘항명성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치권에서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정권 초기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진 전 장관의 향후 정치적 입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우리 정치사에 종종 등장했던 ‘항명(성) 파동’이 그 운명을 내다보게 할지 모른다. ‘항명 파동’의 대표적 인물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총재가 꼽힌다. 1993년 2월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일면식도 없던 이회창 전 대법관을 감사원장에 앉힌 데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국무총리에 임명했다. 이 전 총리는 얼굴마담이나 방탄 총리의 역할이 아니라 총리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고 했다. YS의 핵심 측근들은 물론 YS와도 수시로 충돌했다. 결국 YS가 사임시키려 하자 이 전 총리는 취임 127일 만에 사표를 내면서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YS는 1996년 4월 총선 직전 이 전 총리를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으로 영입해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해 8월 이듬해의 대선을 앞두고 당내 9룡(龍)의 대권 경쟁에서도 마찰이 빚어졌고 YS는 이 전 총리를 겨냥해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다”고 경고했다. 이에 이 전 총리는 “비민주적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면서 다시 맞섰다. 결국 이듬해 YS는 탈당했고, 두 사람은 끝내 갈라섰다. 진 전 장관과 유사한 사례들도 있다. 2003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정부의 새만금 사업에 대한 집행정지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당시 김영진 농림부 장관은 “법원이 환경단체 등의 주장만을 근거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새만금 공사를 중단시켰다”며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제출했다. 행정부와 사법부 간의 대결 양상이 빚어지면서 삼권분립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공약 이행을 놓고 청와대와 여권의 갈등도 있었다. 2004년 6월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당의 총선 공약인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고 반대하자 직접 “공공주택 분양가 문제와 같은 중요한 문제들은 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는 성명을 내며 충돌했다.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일어난 이른바 ‘55인 항명 파동’은 정두언 전 의원이 주축이 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면서 빚어졌다. 55인 항명 파동은 결국 무위로 끝났지만, 정 전 의원은 그해 6월 다시 ‘권력 사유화’ 논란을 제기하는 등 ‘정권출범 1등 공신’에서 ‘여당 내 야당’으로 변신했다. 반면 2003년 9월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인적청산론’은 ‘60대 용퇴론’에서 출발, 결국 이듬해 17대 총선에서 최병렬 당시 당대표를 비롯한 현역 의원 60명 물갈이로 이어졌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정동영(당시 최고위원) 의원이 2000년 12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당 최고위원 만찬에 참석해 정권 실세인 권노갑 최고위원의 퇴진을 공개 요구했고, 초선 의원 모임인 ‘새벽21’도 당정쇄신 건의서를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권 최고위원은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항명 파동이 항명의 주체에게 어떤 정치적 영향을 끼쳤는지 계량화하기는 쉽지 않다. 장단기적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이후 엄청난 정치적 인기를 얻어 대선 후보로까지 나섰으나, 세 차례의 도전에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 YS는 ‘현역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만들 수는 없지만 못하게 할 수는 있다’는 취지의 말로, 자신이 돕지 않아 이 전 총재가 낙선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김근태 전 의장이 대선 후보 경쟁에서 막판 탈락한 것이 노 전 대통령과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많다. 정동영 의원도 권노갑 최고위원을 낙마시킨 이후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하기는 했지만 이후 당내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항명은 권력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권력 장악력이 여당 및 측근들에 대한 조율을 원활하게 이뤄내지 못할 때 이 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항명’을 규정했다. 이를 전제로 하면 진 전 장관의 ‘항명 드라마’ 피날레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상대적 빈곤율 20년새 두 배 늘었다

    상대적 빈곤율 20년새 두 배 늘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를 못하긴 하지만 정권이 바뀔수록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가처분소득이 전체 평균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대적 빈곤율은 문민정부(YS정권) 시절 7.78%였다. 외환위기를 겪은 국민의정부(DJ정권)에서 10.31%로 늘어나더니 참여정부 시절에 11.68%, 현 정부 들어 12.63%로 계속 상승했다. 이 수치는 도시 2인 이상 가구 기준이다. 2인 이상 비농가 가구는 2003년부터, 전체 가구는 2006년부터 관련 통계가 작성돼 정권별 비교가 어렵다. 통계 가구 범위가 커질수록 빈곤율이 커지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빈곤율은 통계치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인 이상 비농가 가구의 참여정부 시절 상대적 빈곤율은 12.38%로 도시 2인 이상 가구 빈곤율(11.68%)보다 높다. 현 정부의 2인 이상 비농가 가구 빈곤율도 12.68%로 역시 도시 2인 이상 가구(12.63%)보다 높다. 농가가 포함된 전체 가구 기준으로 따지면 숫자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가 소득과 도시가구 소득의 격차는 꾸준히 벌어져 지난해 농가 소득이 도시가구 소득의 65% 수준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의 경제상황은 배가 아프다기보다는 배가 고픈 문제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여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배가 아픈 문제’가 나아진 것도 아니다.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지니계수는 YS정부 0.253에서 DJ정부 0.279, 참여정부 0.281, 현 정부 0.292로 더욱 악화됐다. 상위 소득 20%의 소득이 하위 소득 20% 소득의 몇배인지를 나타내는 소득5분위 배율도 YS정부 3.716배에서 DJ 정부 4.370배, 참여 정부 4.528배, 현 정부 4.873배로 꾸준히 악화됐다. 정부가 현금급여 등 공적 지출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여, 가처분 소득의 불평등이 정부의 공적 지원 없는 시장소득의 불평등보다는 낮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가처분소득의 불평등과 시장소득의 불평등 차이가 정권이 바뀔수록 커졌다는 점은 정부가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는 흐름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화와 정보통신(IT) 기술 발전 등으로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그 혜택이 전 계층에 골고루 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장은 “고용안정을 높이는 측면으로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에 대한 획기적 접근이 필요한 상태”라며 “현금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의 범위도 지금보다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서울광장] 14년전 북핵 왕따의 추억/박정현 논설위원

    [서울광장] 14년전 북핵 왕따의 추억/박정현 논설위원

    1994 년 제네바의 여름은 뜨거웠다.북한의 강석주와 미국의 로버트 갈루치가 참석한 고위급회담에서는 치열한 신경전 속에서 북핵 협상이 시작됐다.강석주와 갈루치는 북한대표부와 미국대표부를 번갈아 오가고,때로는 제네바 시내 음식점에서 머리를 맞댔다.회담장 주변에서 한국과 일본,외신기자 수십명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서울에서 날아온 한국의 국장급 외교부 간부의 주요역할은 미국과 회담 전략을 협의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었다.우리 측은 북·미 회담이 끝나면 밤에 미국대표부로 찾아가 회담 내용을 설명받았다.하루에 9시간 동안 진행된 회담 내용을 설명받는 시간은 고작 몇십분.간부는 기자들에게 선문답 같은 브리핑을 하고는 밤새워 서울로 회담 결과를 보고하는 일을 되풀이했다.북핵 협상의 특성상 좀체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만 같았던 회담은 가을로 접어들 무렵 대타협을 일궈냈다.북한이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고 중유를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합의 내용은 한국에 불만이었다.갈루치는 3년전 펴낸 ‘북핵위기의 전말’에서 회담 합의 이후 클린턴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YS)에게 전화를 걸어 YS를 달랬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청와대 대변인은 양국 정상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발표했지만,YS는 기자들에게 “한반도 상황이 불안한데 미국의 대화가 너무 빨리 간다.”고 클린턴에게 말했다고 한마디했다.YS식의 불만 표출이었다.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은 토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북·미관계 개선 속도가 빠르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한국은 북·미 제네바 회담에서 왕따였던 것이다.6자회담과 달리 북·미 직접협상은 한국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아이로니컬하게도 북·미 직접협상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YS정부였다.YS는 공로명 대사를 미국에 보내 북·미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 2008년 말의 상황은 14년 전과 흡사하다.YS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보수정권이고,클린턴 정부와 오바마 정부는 민주당 정권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집권 초반기이거나 취임을 눈앞에 두고 있다.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의 윤곽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집권초기에는 강력한 파워와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다.오바마 행정부 진용에는 클린턴 정부 인물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어 클린턴 행정부 정책과 연속성을 가질 것 같다. 갈루치의 회고록에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협상의 교훈과 과제를 제시한다.부시 행정부가 중국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긴 외교적 노력은 인정하지만,북·미 양자회담을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미국의 이익과 목적을 추구하려면 양자대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권고한다.한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들어졌고,과거처럼 한국의 의사를 존중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한마디로 6자회담은 폐기하고 북·미 직접협상을 추진해야 하며,직접 협상은 미국의 이익에 맞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갈루치의 주문을 얼마나 반영할지는 미지수다.하지만 현재 한반도 상황은 14년전 왕따의 추억을 되살아나게 한다.북핵과 한반도 문제에서 왕따가 되지 않고,우리 목소리를 내는 외교전략이 필요한 때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정치권 ‘오바마 인맥찾기’ 비상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정치권 ‘오바마 인맥찾기’ 비상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대권을 거머쥐면서 국내 정치권이 분주해지고 있다. 여야는 5일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등장을 환영하면서도 정권교체가 가져올 북핵문제, 한·미관계 등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물밑에선 어떻게든 백악관의 새 주인에게 줄을 대려는 ‘오바마 인맥찾기’도 한창이다. 한나라당은 “북핵폐기와 한반도 평화 등 미래지향적인 한·미 공조체제의 확대를 기대한다.”며 당선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민주당도 “미국인이 변화와 미래를 선택했다.”면서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중앙 정치무대 데뷔 4년차에 불과한 오바마 당선인과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YS정부 통역담당 비서관으로 일했던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오바마를 상원 외교위원회로 끌어들인 민주당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후보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수십차례 만나 의견을 나눴고 올 7월에도 한·미동맹과 대북정책 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정책팀장인 프랭크 자누지, 아시아정책 담당자 제프리 베이더와도 교류해 왔다. 차기 동아태담당차관보로 거론되는 자누지와는 10년 넘게 인연을 쌓아 왔다. 4년간 미국에서 근무한 황진하 의원은 국방분야 자문역인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 로버트 아인혼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등 민주당 국방 인맥과 탄탄한 관계를 자랑한다. 이밖에 한미의원외교협의회장인 정몽준 의원, 미국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윤상현 의원, 씨티은행 부행장 출신의 조윤선 의원, 하버드대 출신인 홍정욱 의원 등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민주당의 오바마 인맥은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하다.‘한국의 오바마’란 구호를 내걸었던 송영길 최고위원은 지난해 1월 미국 민주당 초청으로 상원 개원식에 참석해 오바마 당선인,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후보와 만났다. 이밖에 자유선진당은 이회창 총재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두터운 관계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상도 나길회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혁신 유죄?/우득정 논설위원

    마케팅 이론에서 브랜드는 ‘자식’에 비유된다. 그래서 잘 키운 브랜드 하나는 열 자식 부럽지 않다고 한다. 브랜드, 다시 말하면 이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이름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한순간 ‘뺑덕어미’가 되고 중국 전국시대 제1의 추녀 ‘무염녀’가 되기도 한다. 이름을 오·남용해 민족문화의 가치를 훼손한 주범을 꼽으라면 단연 한국담배인삼공사(KT&G의 전신)가 될 것 같다. 지금은 외국산 담배의 공세에 맞서 품질과 디자인 등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과거 담배인삼공사의 마케팅 전략은 애국심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산 담배 이름에 ‘청자’‘한강’‘한산도’‘거북선’‘새마을’ 등 민족의 자존과 관련된 최고의 단어를 갖다 붙였다. 그러나 가격 인상의 방편으로 수시로 품질을 떨어뜨리며 새로운 이름의 담배를 내놓다 보니 최고의 문화유산인 ‘청자’는 군인에게 무료로 나눠 주는 싸구려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YS정부와 DJ정부가 애용한 ‘개혁’이나 참여정부가 최고의 가치로 삼은 ‘혁신’도 마찬가지다.YS·DJ정부 시절 개혁은 내편, 네편을 가르는 잣대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누군가 ‘반개혁적’이라고 매도해 버리면 그날로 끝장이었다. 당사자에게는 무엇이 반개혁적인지 항변하거나 반론을 제기할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YS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첫 국빈방문에서 외교관례상 융숭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문민정부의 개혁성에 그 나라가 탄복한 것이라고 YS의 한 측근은 읊조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혁신 전도사’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참여정부에서 고관대작을 지낸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병준, 오영교, 이용섭, 윤성식, 변양균….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새해 벽두에 ‘혁신의 교주’임을 선포한 뒤 ‘혁신’을 밑천 삼아 한자리씩 한 인물들이다. 하긴 대통령이 자다가 ‘혁신’ 단어만 들어도 벌떡 일어난다고 했으니 어느 누구 수저를 들고 덤벼들지 않았겠나. 정부 각 부처가 ‘노무현 색깔 지우기’ 경쟁에 나선 가운데 ‘혁신’ 단어를 놓고 고민하는 모양이다.‘혁신’조차 어느 정권의 전유물로 치부되는 현실이 부끄럽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진보 싱크탱크 ‘공공성’ 파고든다

    “YS정부가 처음엔 이런저런 사회단체들을 관변단체라면서 전부 다 없애려 했어요. 그런데 그걸 없애려니까 하다못해 초등학교 등굣길에서 교통지도라도 해주려는 사람도 없다는 겁니다. 결국 포기했지요.” 지금도 장관직에 있는 한 고위공무원의 경험담이다. 민중운동의 대체재로 1990년대 급속히 팽창했던 시민운동이 낙천·낙선운동 형태로 구체적 행동에 돌입하자,‘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금도 시민단체가 정부 지원금은 왜 받느냐는 비난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이게 꼭 시민단체만의 책임일까. 물론, 공적인 이익에 대해 설득력있는 대안과 실천을 내놓지 못한 책임도 크다. 그러나 노조지도부나 시민운동가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공적인 이익을 고민하는 시민’은 존재하는 것일까. 바로 이 ‘공적인 이익’에 대해 진보진영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민주정부 이후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는 공적인 이익, 공공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가 지난달 창립10주년 심포지엄에서 공공성을 화두로 던진 이래 진보의 싱크탱크들이 잇따라 이 문제를 다룬다.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 등 3대 대학이 뭉쳐 결성한 민주사회정책연구원도 10일 오후2시부터 열리는 결성 6주년 기념 심포지엄 주제를 ‘공공성과 민주주의’로 정했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가 ‘민주화 이후 사회체제 변동과 공공성’을, 김윤자 민사연 원장이 ‘공공성과 21세기 한국 경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다. 학술단체협의회도 11일 ‘한·미 FTA, 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대안적 발전전략’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가장 잘못된 대응은 파편화돼서 각자의 이익만 좇는 행태다. 정규직·비정규직 문제에다 산별노조, 사회적 타협 문제를 두고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 노조는 이미 거대한 이익집단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심포지엄은 이를 ‘시장의 도전’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기 위한 카드로 ‘연대’를 내걸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YS정부시절 미림팀 도청정보 대통령에 주례보고

    YS정부시절 미림팀 도청정보 대통령에 주례보고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비밀도청조직인 ‘미림팀’의 도청 정보가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 안기부장의 주례보고에도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도청 정보가 YS 차남 현철씨와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 정권 핵심 실세에게도 보고됐고, 이들은 도청 정보를 정치에 활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림팀장 공운영(58·수감)씨에게서 압수한 도청 테이프 274개의 내용 수사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14일 이같은 내용의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지난 7월25일 시작한 143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등 97년 삼성그룹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에 연루된 피고발인 모두를 불기소 처분, 논란이 예상된다. 검찰이 공씨 자택에서 압수한 도청 테이프 274개 등을 분석한 결과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재건된 2차 미림팀은 3년간 서울시내 한정식집과 특급호텔 음식점, 골프장 등에서 주요 인사 646명의 대화 내용을 도청했다. 도청 대상자는 정치인이 273명, 고위공무원 84명, 언론인 75명, 경제인 57명 순이다. 미림팀은 또 3년여간 연인원 5400여명의 접촉 동향 등을 밀착 감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의 97년 불법 정치자금 제공의혹과 관련해서는 “삼성 구조조정본부 당시 재무팀장 김인주씨가 이학수 당시 비서실장의 지시로 1997년 9∼10월 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에게 40억∼50억원을 전달했다.”는 삼성측의 진술을 받아냈지만 이 돈이 ‘이건희 회장의 개인재산’이라는 주장을 뒤집을 증거가 없어 이 회장과 홍 전 대사, 이 부회장 등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미국에 체류중인 이 회장에 대해 85개 항목을 담은 서면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삼성의 기아차 인수로비 의혹, 검사들에 대한 떡값제공 의혹 등도 무혐의로 결론냈다. 하지만 ‘X파일’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효섭 박지윤기자 newworld@seoul.co.kr
  • [불법도청 수사결과] ‘X파일’ 政官言 646명 554회 도청

    [불법도청 수사결과] ‘X파일’ 政官言 646명 554회 도청

    검찰 수사결과 1994년 6월∼2002년 3월은 안기부와 국정원의 ‘도청 천국’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 시절 ‘미림팀’은 연인원 5400여명을 감시했고, 국정원 시절 ‘R2 수집팀’은 1800여명의 휴대전화를 상시도청했다. ●2차 미림팀, 도청테이프 1000개 이번 수사의 성과 중 하나는 미림팀의 활동 전모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김현철, 이원종씨 등에게 도청정보가 유출됐고, 심지어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안기부장의 주례보고에도 도청정보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도청의 불법성에 대한 YS 정부의 무감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2차 미림팀(94년 6월∼97년 11월)은 1차 미림팀(91년 9월∼92년 12월)과는 양적·질적으로 다른 도청을 했다. 서동권 안기부장 등의 ‘정보수집의 과학화’ 지시에 따라 결성된 1차 미림팀은 테이프 40∼50개를 생산하는 데 그쳤지만 2차 미림팀은 하루 1개, 총 1000여개의 도청 테이프를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미림팀장 공운영(58·수감)씨 집에서 압수한 테이프 274개와 13개의 녹취 보고서는 모두 554차례에 걸친 도청의 결과물이었다.2차 미림팀 전체 도청 규모의 55%에 해당한다. ●정치권 동향 최다… 사생활도 무차별 도청 확인된 도청 대상자는 정치인 273명, 고위공직자 84명, 언론인 75명, 경제인 57명, 법조인 27명 등 모두 646명으로 이들이 서울시내 특급호텔 식당과 유명 한정식집 등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 도청이 이뤄졌다. 정당 대표와 국무총리, 청와대 비서실장·수석비서관, 경찰청장 등은 상시 감시망에 포착됐다. 이와는 별도로 공씨 자택에서는 공씨가 94년 7월∼97년 9월 한정식집 등의 ‘망원’들로부터 보고받은 주요인사 5400여명의 접촉동향, 특이사항 등을 정리한 300쪽 분량의 ‘주요 인물 접촉 동향’ 보고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2차 미림팀이 도청한 내용은 대통령선거 동향(106건)과 정당활동(206건) 등 정치권 동향이 가장 많지만 개인 사생활(41건)도 무차별적으로 도청했다. 지방 선거가 있었던 95년 159차례, 대선이 치러졌던 97년 170차례 등 선거가 있던 해에 도청이 집중된 점도 특징이다. 당시 안기부는 97년 대선 직전까지 유선전화도 집중도청했다. 법원 허가 없이 주요 전화국에 매주 1∼2차례씩 1차례에 2∼3개 유선 전화번호를 특정해 안기부 회선에 연결하도록 요구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수사 당시 관련자들과 변호사들의 통화 내용을 도청한 것을 비롯,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 관련 통화내용,96년 총선 당시 정국 관련 통화내용 등을 도청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은 YS정부 시절의 원시적인 현장 도청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CAS)를 개발, 도청 대상자의 전화를 24시간 도청했다. ●DJ정부 도청대상 1800명의 절반은 정치인 검찰은 국정원이 주요 전화국의 유선중계통신망을 통째로 국정원내 R2와 연결시켜 도청했다는 점에서 ‘조직적·계획적’이었다고 결론냈다. 임동원 전 원장 시절 1200명의 전화번호를 입력해 도청했고, 신건 전 원장 시절 600명을 추가해 도청이 중단된 2002년 3월까지 모두 1800명을 상대로 상시 도청이 이뤄졌다.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조사에서 확인된 1800여명은 정치인이 55%, 언론인과 경제인이 각각 15%, 고위공직자 5%, 시민·사회단체와 노조 간부가 각각 5%씩이다.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대북사업, 의약분업, 금융노조 파업, 각종 권력형 게이트 등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자들을 집중적으로 도청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YS 시절과 달리 DJ에 대한 보고나 권노갑씨 등 실세들에 대한 외부유출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YS정부 도청도 공개”

    안기부와 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통신비밀보호법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지만 김영삼 정부시절 안기부의 도청 실태도 수사 발표 때 공개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23일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 중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은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적절한 방법으로 공개하겠다.”면서 “어떤 내용을 포함시킬지 구체적으로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사법처리가 안된 부분 중 포함될 것이 많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14일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공소시효가 경과해서 부득이 처벌할 수 없는 전직 국정원장, 안기부장들도 역사적, 도의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이날 광주에서 고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의 발인식이 있는 점을 감안해 전날과 마찬가지로 수사를 중단했다. 그러나 검찰은 임씨와 신씨의 구속시한이 2주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조사 시간이 촉박한 현실을 고려, 이르면 이번주 중 수사를 재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편 이씨의 자살소식을 접한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은 구치소에서 신경안정제 등을 처방받아 수시로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측 변호인은 “김씨가 신경안정제 등을 5∼6등분으로 나눠 10∼15분에 하나씩 먹으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구치소측 역시 김씨와 전 원장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전언이다. 김씨는 전직 국정원장들과의 병합재판을 거부한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전 상관의 면전에서 다른 진술을 하는 것은 김씨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이지만 검찰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김효섭 홍희경기자 newworld@seoul.co.kr
  • “YS때 유선전화도 도청”

    안기부와 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24일 김영삼 정부시절 안기부가 유선전화를 도청했다는 단서를 확보,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국정원과 안기부 전·현직 직원,KT지국(옛 전화국) 직원들의 조사에서 YS시절 안기부가 일반전화를 조직적으로 도청했다는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주로 문민정부 시절 안기부가 일반 유선전화를 도청해왔다는 단서가 있어 그동안 내사를 했다.”면서 “앞으로 본격적인 조사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정원의 과학보안국과 같은 감청 관련 부서가 YS정부 때도 있었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96∼97년 이전 아날로그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통화를 감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부서는 음식점 등에서 주요 인사의 대화 내용을 감청장비를 이용해 직접 도청한 미림팀과는 다른 별도의 감청부서다. 검찰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국정원이 유선전화에 대한 도청을 계속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할 방침이다.검찰은 유선전화 도청 실태가 드러나면 안기부 국내담당 차장과 안기부장 등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미 김덕·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황창평·오정소·박일룡 전 안기부 차장 등을 소환 조사했다. 한편 검찰은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에 대해 구속기한이 끝나는 26일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김효섭 박지윤기자 newworld@seoul.co.kr
  • 문민·국민·참여정부 ‘정책브레인’ 토론회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를 꼽으라면 ‘양극화’가 1순위다. 양극화는 사회불안의 원인이자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런데 한국의 양극화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바로 논리적으로 억압적 군부독재보다 민(民)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는 민간정부에서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박세일·최장집·이정우 3인이 만난다.29일 서울 올림피아호텔에서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민주화, 세계화 시대의 양극화’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다. ●3人 3色 이들 3인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핵심 브레인이자 학문적으로도 ‘일가’를 이룬 이론가다. 그러나 강조점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들의 논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먼저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시장을 옹호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에 가깝다.YS정부에서 정책기획수석·사회복지수석 등을 역임하면서 세계화에 개입했고 지금의 노동·교육·사법개혁 등의 단초를 마련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구호에 그칠 뿐, 내용은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떠올려보면 된다. 이에 반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시장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최 교수는 대표적인 시카고학파 정치학자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을 적극 옹호한다.DJ정부 초기 ‘민주적 코포라티즘(조합주의)’ 개념으로 ‘민주적 시장경제’와 ‘노사정위원회’의 근거를 제공했다. 이 교수는 정당한 노동 없이 불로소득을 얻는 행위(지대추구행위·rent-seeking)를 정부가 없애야 한다는 데 강조점을 둔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최 교수와 이 교수 간에도 차이는 있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 이 교수는 부족하더라도 주요 정책들이 하나둘씩 마련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토론회에 앞서 배포된 자료에서 이들의 개성은 도드라졌다. ●박세일 “교육·복지·노동 연계 필요” 박 교수는 시장주의자답게 양극화의 원인에서 세계화는 제외한다. 이는 자유무역에 대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이론적으로 볼 때 자유무역 그 자체는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말한다. 해결책도 시장주의적이다. 교육·복지·노동이 연계된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을 언급하지만 방점은 ▲높은 성장률 ▲개방경제 ▲세계최고의 대학·연구소에다 찍는다. 한마디로 경쟁체제의 도입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 그럼에도 관건은 국가의 대응이라 한다. 박 교수가 여기서 비관적으로 변한다.“새로운 비전과 발상을 가지고 동시에 효과적인 정책추진력을 가진 새 역사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최장집 “노조는 더 강화돼야 한다” 민주적 코포라티즘은 노사정이 세금·임금·고용 등에 대해 정치적 대타결을 통해 사회적 협약을 체결한다는 의미다. 이는 참가자들의 힘이 균등할 때 성립한다. 힘이 비슷해야 타협할 공간이 생기고 이 공간에서 정치력은 작동한다. 그래서 최 교수는 ‘귀족노조’라는 말에 강하게 반발한다. 대기업 노조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약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가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북돋워줘야 한다는 것. 최 교수는 되묻는다.“노조 없이 누가 노동자·노동운동을 대표하고, 대표 없이 사회협약, 또는 산업 내, 부문간 코포라티즘적 협약이 가능한가?” ●이정우 “성장과 분배는 동행해야 한다” 이 교수는 ‘성장과 분배의 동행’이라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자세히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대한 토로도 일부 옅보인다.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소득 재분배 정책을 언급하면서 “2005년 2월 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를 보면 복지증가와 추가적 세부담에 대한 동의는 18.9%에 그치고 있다. 미국의 59.9%, 영국의 72.6%, 스웨덴의 44%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고 밝힌 것이 한 단면이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최 교수의 민주적 코포라티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1920∼30년대 일부 유럽에서 이미 성공했는데 한국의 노사관계나 대화의 문화가 80년전 유럽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지나친 자기비하가 아닐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오정소씨 “김현철씨에 도청보고 안해”

    안기부·국정원의 도청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24일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이 감청장비를 이용해 도청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또 미림팀 재건과 도청 내용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오정소(61) 전 안기부 1차장도 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김대중 정부 시절 감청장비를 다뤘던 전·현직 국정원 실무자 등 3명을 불렀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과거 휴대전화 도청 실태를 확인하는 한편, 영장 발부 등 적법 절차 없이 유선 감청장비로 전화를 도청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캐물었다. 검찰은 오씨를 상대로는 누구의 지시로, 왜 미림팀 재건을 지시했는지, 또 미림팀이 어떻게 운영됐고 보고받은 내용을 외부에 전달했는지 추궁했다. 특히 검찰은 미림팀이 오씨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같은 과 후배인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를 위한 사조직 성격을 띠고 있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오씨는 검찰 조사에서 YS정부 출범 이후 기관출입 금지 등으로 정보수집이 어려워지자 미림팀을 재건했을 뿐이라며 대부분 의혹에 대해 부인과 함구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씨는 이날 밤귀가하면서 현철씨 등에게 도청 내용을 보고했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검찰은 오씨에 앞서 안기부 1차장을 지낸 황창평씨를 25일 소환, 미림팀 재건을 알고 있었는지, 도청 내용을 보고 받았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또 전날 출두했던 천용택 전 국정원장을 이르면 다음주 재소환할 계획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철언 “3당합당후 YS에 40억 전달”

    지난 90년 3당합당을 전후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에게 ‘40억원+α’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태우 대통령의 정책보좌관이었던 박철언 전 의원은 11일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5공,6공,3김시대의 정치비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전 의원은 “89년 6월 김영삼 총재의 소련 방문을 앞둔 시점에 노 대통령의 지시로 김 총재에게 20억원과 여비 2만달러를 전달한 것을 비롯해 그해 연말에 10억원,90년 3당 합당 직후 설을 앞두고 10억원 등 3차례에 걸쳐 40억원 이상을 직접 김 총재에게 전달했다.”고 공개했다. 박 전 의원은 지난 89년 3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중간평가 유보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지금까지 알려져온 것과는 달리 김영삼 총재가 적극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측은 “금시초문이다. 전혀 거기에 대해 아는 바 없다.”면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앙심을 품어온 박 전 의원의 말을 어떻게 신뢰하느냐. 정치적 음해다. 현역 정치인 때부터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박 전 의원은 지난 87년 6월항쟁의 분수령이 됐던 ‘6·29 선언’과 관련,“이는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게 먼저 제의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박 전 의원측은 “회고록은 지난 80년 5공때부터 6공,YS정부,DJ정부에 이르기까지 20년간에 걸쳐 정치인으로 직접 겪었던 일들을 기록해뒀던 20여권의 다이어리와 120여권의 수첩, 방대한 사진 등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千법무 “국정원 철저 수사”

    千법무 “국정원 철저 수사”

    안기부 및 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8일 특수1부 유재만 부장검사와 특수부 2명, 공안부 2명, 외사부 1명 등 검사 5명을 수사팀에 보강, 수사팀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이번 사건 수사팀 규모는 황교안 2차장 검사를 포함, 총 14명으로 늘어나 사실상 특별수사본부 수준으로 격상됐다. 검찰은 공안2부(부장 서창희)를 중심으로 한 기존 수사팀은 녹음기를 설치해 도청한 미림팀 등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고, 보강된 새 수사팀은 국정원이 자체 개발한 감청장비를 이용한 도청행위 등에 대한 수사를 맡기로 했다. 이는 사실상 YS정부 당시의 도청과 DJ정부 당시의 도청을 구분해 수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은 이날 미림팀 소속이었던 현 국정원 직원 2명을 소환, 미림팀 부활 배경 및 활동 내역 등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검찰은 또 9일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참고인 겸 피고발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다. 한편 천정배 법무장관은 이날 압수수색 등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도청 사건을 철저히 수사할 것을 검찰에 지시했다. 천 장관은 주례 간부회의에서 “이번 사건은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국민의 인권 및 사생활 침해 사례인 만큼 한 점 의혹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지시했다. 천 장관은 “검찰 수사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투명해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서 “김승규 국정원장이 검찰의 강제 수사에 응하고 공조수사도 하겠다고 밝힌 만큼 공조할 것은 하고 필요한 경우 강제 처분을 포함해 한 점 의혹도 없이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부고발자는 최대한 보호하고 선처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의 수사 협조를 촉구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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