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허튼 “레클리스는 한·미 잇는 신뢰의 다리”… 제주서 평화·협력 상징으로 부활하다
“대포가 우릴 향할때, 그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몸을 바싹 숙였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목숨을 교감하고 지켰던 가장 든든한 해병대 전우이자 소중한 가족이었습니다.”(포화속에서 레클리스의 은혜를 입었던 미 해병 참전용사들의 다정한 회고중에서)
제주마 혈통을 이어받은 한국전쟁 영웅마 ‘레클리스(Reckless)’가 제주포럼에서 협력의 상징으로 다시 살아났다.
6·25전쟁을 하루 앞둔 24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린 ‘아침해, 제주마 레클리스와 김만일’ 포럼에서 미국 작가이자 레클리스 연구자인 로빈 허튼(Robin Hutton)은 기조발제를 통해 “레클리스는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을 잇는 신뢰와 협력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허튼은 “처음 레클리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검색 결과가 몇 개 되지 않을 정도로 잊혀진 존재였다”며 “이 위대한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해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레클리스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1953년 네바다 전초전투에서 하루 51차례나 탄약을 운반했고, 두 차례 부상을 당하고도 임무를 포기하지 않았다”며 “레클리스는 단순한 군마가 아니라 해병대원들의 가족이자 전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노병들은 인터뷰에서 레클리스 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면서 “평생 군인들 마음속에 각인됐으며 구글에서 4개만 달랑 검색되던 레클리스는 150만개 이상 검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허튼은 레클리스가 오늘날 세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교와 안보, 경제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커지고 세계가 분열되고 있는 지금, 레클리스는 협력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며 “특히 협력은 신뢰에서 시작되고, 신뢰는 오랜 시간 함께 견디고 희생하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교훈은 공동의 희생”이라며 “분절된 세계에서 어느 한 국가만 희생을 감당할 수 없으며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세 번째는 인간다움”이라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해병대원들과 레클리스 사이에는 사랑과 연민, 우정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허튼은 “레클리스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거대한 고통 속에서도 연대와 우정이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기후위기와 갈등 같은 글로벌 문제 역시 한 나라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함께 짐을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레클리스의 뿌리가 제주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레클리스는 제주마의 강인한 혈통을 이어받았다. 제주의 군마 문화는 이제 국제 우정과 평화의 상징으로 확장될 수 있다”며 “레클리스는 한국과 미국을 넘어 세계를 연결하는 평화의 다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포럼에 참석한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은 “레클리스는 인간과 동물이 대등한 존엄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준 존재”라며 “생명공존과 제주 평화 공공외교, 그리고 문화예술을 통한 소통이라는 가치를 담아 영화 제작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과의 교감은 인류의 미래이며, 레클리스는 제주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에 참여한 우희종 한국마사회장도 “레클리스는 전쟁 영웅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을 넘어 인간 중심 문명이 초래한 생태위기를 되돌아보게 하는 존재”라며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가치의 상징으로 기억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레클리스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로 태어났지만, 경주마로 살아보지 못했다.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누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한 한국청년이 레클리스를 250달러를 받고 미 해병대로 보낸 것이다.
레클리스는 1953년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경기 연천에서 있었던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연천은 6·25 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레클리스는 탄약(4t 이상)을 총 51회에 걸쳐 나르고 약 56㎞를 달렸다. 두차례 부상 속에서 해병대와 동고동락했으며 군마로서 처음으로 두 번씩이나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특히 1954년 3월 31일에는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아 병장에서 하사로 진급했다. 1997년 미국 시사주간지 ‘라이프’는 특별판 ‘우리의 영웅들을 기리며’를 통해 미국을 빛낸 100인의 영웅을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