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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헐벗은 산 어쩌나” 연탄서 시작된 친환경 에너지 철학…경동나비엔의 ‘푸른 혁신’ [창업주의 비밀노트]

    “저 헐벗은 산 어쩌나” 연탄서 시작된 친환경 에너지 철학…경동나비엔의 ‘푸른 혁신’ [창업주의 비밀노트]

    ‘저 민둥산들을 어쩌나.’ 오늘날 보일러 기업으로 익숙한 ‘경동나비엔’의 창업주 고 손도익 명예회장이 창업에 나서게 된 건, 다름 아닌 황폐해져 가는 산 때문이었습니다. 손 회장은 1950년 발발한 6·25전쟁과 땔감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의 무분별한 벌채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손 회장은 도처에 앙상해진 산이 다시 무성해지길 바랐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나무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직접 전환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손 회장의 시선은 연탄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취사용으로만 쓰이던 연탄도 난방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었죠. 집 부엌 아궁이에서 연탄과 씨름하던 손 회장은 숱한 실험 끝에 연탄아궁이 개발에 성공했고, 이는 1951년 경동나비엔의 모태인 ‘무산(茂山)연탄’ 설립의 발판이 됐습니다. 손 회장은 ‘산이 무성하다’는 의미의 무산(茂山)을 그대로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내화탄통’ 개발로 연탄 안전성 보장1921년 12월 25일 경북 월성군(현 경주시) 강동면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손 회장은 원래부터 사업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북 영일군 공립 기계보통학교를 졸업했던 손 회장은 20세에 신학문에 뜻을 두고 일본 오사카로 넘어가 서성공업고등학교에서 학문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1941년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대신 손 회장은 일본 전역을 누비며 견문을 넓히기로 마음먹습니다. 손 회장의 일대기를 기록한 동암기념관 사료에 따르면, 당시 손 회장은 “집안 형편을 돌아보면, 학문을 닦는 것보다 기업을 일궈 선조들 은혜에 보답하고 나라에 봉사하는 것이 맞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손 회장의 경영철학인 “기업의 발전이 곧 우리의 발전이고 우리의 발전이 국가에 봉사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발언입니다. 손 회장은 공존공영, 도전·개척, 사회적 책임경영 등을 늘 강조했습니다. 손 회장은 이 같은 신념으로 1959년 연탄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윤전식 제탄기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1967년 왕표연탄 설립 당시에는 해당 설비를 4대로 확충한 데 이어 자동화시스템까지 구축했습니다. 당시 손 회장은 빈번히 발생하는 연탄가스 중독 사고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에 일산화탄소를 재연소할 수 있는 내화탄통 개발로 연탄 사용의 안전성까지 보장했습니다. 아시아 최초 콘덴싱 보일러 개발… 배출가스 등 감축1970년대 접어들면서 손 회장은 에너지 소비 변화에 촉각을 세웠습니다. 머지않아 연탄이 아닌 액체나 기체 연료를 주 에너지원으로 하는 난방이 보편화될 거라 내다봤습니다. 오늘날의 보일러를 예견한 셈입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은 난방을 위해 신발을 신고 나가 연탄이나 아궁이에 불을 때야 했습니다. 기름이나 가스로 집 안을 데우는 일은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손 회장은 1978년 보일러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경동나비엔의 전신인 경동기계를 설립했습니다. 1988년 아시아 최초로 콘덴싱 보일러 개발로 친환경·고효율 난방 시대를 여는 등 기술 혁신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콘덴싱은 버려지는 배기가스의 열을 재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입니다. 일반 보일러 대비 에너지 사용량과 배출가스를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1998년에는 세계 최초 스테인리스 스틸 일체형 열교환기 상용화와 국내 최초 원격제어 보일러 출시 등의 성과도 냈습니다. 2020년 정부는 콘덴싱 보일러 의무화 정책을 펼쳤는데, 여기에는 경동나비엔의 기술력이 밑바탕이 된 셈입니다. 해외 매출 1조원 돌파… 신재생에너지 전환에도 앞장환경을 우선 생각하는 손 회장의 경영철학은 2000년대 접어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2006년 사명부터 바뀌었습니다. ‘에너지와 환경의 길잡이’라는 정체성을 담아 지금의 ‘경동나비엔’이 출범했습니다. 생활환경과 도시환경, 더 나아가 지구환경까지 더욱 쾌적하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담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경동나비엔은 생활 속 ‘쾌적함’의 근간인 공기 질 관리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2006년 환기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2019년 환기와 공기 청정을 동시에 구현하는 환기청정기를 출시했는데, 업계에선 공기 질 관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제습 기능을 결합한 제습 환기청정기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제습 환기청정기는 에너지 절감 성능 등을 인정받아 2025년 소비자시민모임이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한국에너지공단이 후원하는 ‘제28회 올해의 에너지위너상’에서 에너지기술상을 수상했습니다. 일련의 기술력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경동나비엔은 북미, 중앙아시아, 중남미, 유럽 등 47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에는 해외 매출 1조 438억원을 기록하며 해외 매출 1조원을 처음 돌파했습니다. 전체 매출로 따지면 69.5% 수준입니다. 경동나비엔은 난방(Heating), 환기(Ventilation), 공기조화(Air Conditioning)를 아우르는 글로벌 냉난방공조(HVAC)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대해 생활환경솔루션 기업으로의 진화를 가속화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미래 에너지 전환을 이끌 핵심 기술인 히트펌프 사업도 적극 확대하고 있습니다. 히트펌프는 전기를 활용해 공기 중의 열에너지를 끌어와 난방과 온수를 제공하는 솔루션입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탄소 배출 저감에 기여하는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동나비엔은 히트펌프와 히트펌프 온수기 등 제품으로 유럽과 북미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제주도에 개소한 ‘난방 전기화 센터’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 센터는 화석연료 중심의 난방 체계를 전기와 재생에너지 기반의 난방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951년 무산연탄에서 출발한 경동나비엔이 나무에서 연탄으로, 연탄에서 가스보일러로, 다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끌며 에너지 혁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업이 곧 사람… 사업 자체가 사회공헌 일환” 손 회장은 “기업이 곧 사람”이라며 회사 내 사원 복지 정책 강화는 물론 사회공헌 활동에도 앞장섰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저금리 회사 대출과 학자금 지원책 등으로 직원들의 생활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무주택 사원들에게는 주택도 보급했습니다. 손 회장이 환갑을 맞이하던 1981년 환갑잔치 대신 마을 노인들을 위해 후락정을 건립한 일화는 손 회장의 나눔 경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983년 탄광 작업 중 매몰 사고로 생을 마감한 광부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삼척시 도계읍에 사찰 도덕정사도 설립한 바 있습니다. 1978년 시작한 손 회장의 개인 장학사업은 1995년 재단법인 동암장학회 설립으로 이어져 매년 대학 신입생들 중심으로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경영진이 사회공헌 등 선의의 일은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꺼린다”며 “자사가 영위하는 사업들 자체를 사회 공헌 활동으로 봐달라”고 말했습니다.
  •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기업 유치… 고양 경제자유구역 현실화”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기업 유치… 고양 경제자유구역 현실화”

    공직사회 한 팀 돼 현안 추진용적률 조정해 노후주택 재건축GTX-A 노선 연계 교통망 확충신청사 건립 원안대로 신속 추진현장 중심 행정으로 문제 해결꽃박람회, 대표 브랜드로 만들고금정굴, 역사교육의 장으로 조성1층 시장실서 시민들과 직접 소통취임 한 달을 맞은 민경선(55) 고양시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원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며 “정부·경기도·한국토지주택공사(LH)·대학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현장 중심 행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민선 9기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와 기업 유치”라며 “항공우주와 의료·바이오 등 미래산업 육성과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 달간 고양시정을 맡아 본 소감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대외 협력 부족이었다. LH 사업을 총괄하는 시 간부가 LH 관계자를 한 차례밖에 만나지 않았거나 지역 대학이 먼저 협력을 제안했는데도 적극 응하지 않은 사례를 확인했다. 시장 혼자 뛰어선 한계가 있다. 앞으로는 모든 실·국장이 직접 현장을 누비며 정무와 정책을 함께 책임지는 행정을 펼쳐야 한다. 공업 물량 확보와 규제 개선 등 고양의 미래가 걸린 현안을 해결하는 데 공직사회가 한팀이 돼야 한다.” -전임 시장 때부터 추진한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입장은. “민선 9기 시정의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 창출과 기업 유치다. 경제자유구역은 중첩 규제를 완화할 중요한 기회다. 다만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동안 사업 면적이 걸림돌이었던 만큼 적정 규모로 1단계를 추진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경기도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해 지정 가능성을 높여 가겠다.” -가장 많은 요청이 있는 개발사업과 인허가 원칙은. “가장 큰 요구는 노후 공동주택 재건축이다. 현행 용적률로는 사업성이 부족해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주민 부담을 줄이고 사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용적률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 그러나 교통과 학교, 공원 등 기반 시설 대책 없이 개발이익만 극대화하려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평소 교통행정에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가장 시급한 현안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과 연계한 교통망 확충이다. GTX가 아무리 빠른 철도라 해도 집에서 역사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없다면 시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도시철도와 시내버스, 마을버스를 촘촘하게 연결해 GTX 개통 효과를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고양은평선 연장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에 사업 필요성을 계속 건의하고 있다.” -CJ라이브시티 정상화 방안은. “고양시 미래 성장의 핵심 프로젝트가 장기간 중단되면서 시민들의 실망도 큰만큼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는 민간사업자 공모를 통해 사업 재개를 추진하고 있으며 시도 실무 협의체에 참가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 올해 안에 기본협약이 체결되면 내년 재착공이 가능하도록 인허가 등 행정 절차를 신속 지원할 계획이다.” -전임 시장 때 신청사 건립이 중단됐는데. “신청사는 시민과의 약속이다. 선거 때부터 주교동 신청사를 원안대로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씀드렸고 지금도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우선 기존 설계업체와 협의를 재개해 법적 분쟁을 최소화하고 이미 축적된 설계 성과를 최대한 활용해 사업 기간을 단축하겠다. 최근 경기도에 신청사 원안 건립 의지를 전달하고 그린벨트 해제 등 주요 행정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현 시청사와 별관의 활용 계획은. “신청사 이전은 단순히 청사를 옮기는 사업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다. 백석업무빌딩은 첨단산업과 연구개발 기능을 집적하는 미래 성장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특히 한국항공대와 연계해 항공우주·도심항공교통(UAM) 분야 기업·연구기관을 유치하고 산학융합센터를 조성해 경기북부 항공산업의 중심축으로 키우겠다. 현재 시청사와 별관도 시민 편익을 높이고 원당 원도심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 방안을 마련하겠다.” -덕양권 재건축 재정비 추진 계획은. “덕양권 노후 아파트 주민들의 재건축 요구를 잘 알고 있다. 재건축은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과제다. 현재 성사·화정·능곡·행신 등 4개 택지지구를 대상으로 노후계획도시 정비기본계획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 주거환경과 교통,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 수용 능력을 종합 분석해 현실성 있는 계획을 마련하겠다. 용적률도 사업성과 기반 시설 여건을 함께 고려해 합리적으로 검토하겠다. 주민 부담을 줄이면서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기본계획을 조속히 수립하겠다.” -금정굴 평화공원 조성사업 추진 방향은. “금정굴은 6·25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의 아픔이 남아 있는 역사 현장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화해와 평화의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하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선 지구 지정 변경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과 LH, 국토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이어 가고 있으며 시 내부에서도 전담 협의체를 운영 중이다. 금정굴을 단순한 추모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인권, 평화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 가겠다.” -서삼릉 역사문화권 복원과 원당목장·젖소개량사업소 이전에 대한 입장은.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의 훼손된 역사 경관을 회복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원당목장과 젖소개량사업소 이전은 국가유산청과 농림축산식품부 등 중앙정부가 추진해야 할 사업으로, 고양시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유산청의 복원 계획에 적극 협력하고 토지 매입 등 국가 사업 추진 일정에 맞춰 역사 경관림 및 왕릉 숲길 조성 등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 -고양국제꽃박람회 발전 계획은. “지난 30여년간 지역을 대표해 온 문화 축제이자 화훼 산업을 이끌어 온 소중한 자산이다. 앞으로도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축제 기능은 더욱 강화하고 동시에 국제 화훼·원예산업 박람회로서 산업적 역할도 키우겠다. 국내외 기업과 바이어가 참여하는 비즈니스 프로그램과 국제교류, 산업전시를 확대해 축제성과 산업성을 함께 갖춘 고양 대표 브랜드로 발전시키겠다.” -시민과의 소통은. “취임 후 첫 결재가 ‘열린 고양 프로젝트’였다. 시장실을 1층으로 옮기고 시장 직통 문자폰을 운영하며, 시정 회의를 공개하는 등 시민과 행정의 거리를 좁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의견을 전달하고 시장이 직접 듣는 소통 구조를 만들겠다.” ■민경선 고양시장은 1971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해성고와 전북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의원 비서관·보좌관과 3선 경기도의원, 경기교통공사 사장 등을 거치며 교통·행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으며 2026년 7월 민선 9기 고양시장에 취임했다.
  • 北전승절 공연 보며 눈물 흘리는 김정은

    北전승절 공연 보며 눈물 흘리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인 지난 27일 평양에서 열린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 공연’을 딸 주애와 함께 관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TV 연합뉴스
  • “엄마 판박이네” 리설주보다 커진 김주애, 김정은 옆자리까지 차지했다[포착]

    “엄마 판박이네” 리설주보다 커진 김주애, 김정은 옆자리까지 차지했다[포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50여일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서 김주애는 어머니 리설주보다 훌쩍 커진 모습으로 김 위원장 옆에 나란히 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27일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북한이 ‘전승절’로 기념하는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3주년을 맞아 6·25전쟁 전사자 묘지를 찾았다. 이 자리에는 아내 리설주 여사와 딸 김주애가 동행했다.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는 김 위원장과 리설주, 김주애가 나란히 서서 경례하는 장면이 담겼다. 최근 공개석상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김주애는 50여 일 만에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주애는 리설주보다 큰 키로 포착돼 눈길을 끌었다. 검은색 원피스에 하이힐 차림의 김주애는 간부들은 물론 어머니 리설주까지 제치고 김 위원장의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김 위원장이 노병들과 인사를 나눌 때도 김주애가 바로 뒤에서 지켜보는 모습이 포착됐다. 리설주는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김주애의 공개 활동 ‘복귀 무대’가 한국전쟁에서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적지 중 하나인 참전용사묘 참배라는 점에서, 주애가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김 위원장과 주애가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모습을 당·정·군 고위급 간부와 평양 시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김주애의 위상을 자연스럽게 각인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한편 김주애는 올해 상반기에만 19차례, 한 달에 약 3번 정도 공개 활동에 나서며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주애의 공개 활동 횟수는 2023년 10회, 2024년 12회, 지난해엔 15회였는데,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이를 경신할 정도로 광폭 행보를 보였다. 국가정보원은 김주애를 김 위원장의 후계자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국정원이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봐도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최근 (주애가) 국방 분야 위주로 등장하고 있다”며 “김정은을 오마주한 형태인 탱크 조종 모습 등 여성 후계자에 대한 의구심을 희석시키고 후계 서사 구축을 가속화하려는 포석”이라고 전했다.
  • “우크라서 돌아온 북한군 김상사” 한국 어쩌나…곧 벌어질 일 [권윤희의 월드뷰]

    “우크라서 돌아온 북한군 김상사” 한국 어쩌나…곧 벌어질 일 [권윤희의 월드뷰]

    [월드뷰 3줄 요약]● 러시아가 북한군 3만명의 추가 투입을 준비한다는 우크라이나 측 정보 판단이 제기됐다. 파병과 교대가 이어지면 러시아 전장을 거친 북한군은 실제 주둔 규모보다 계속 늘어날 수 있다.● 귀환한 장교·부사관과 드론·포병 요원이 교관이나 교리 개발 인력으로 배치될 경우, 무인기·포병 운용과 병력 분산 전술이 북한군 훈련에 빠르게 반영될 수 있다.● 한국군은 북한의 드론·전자전·장사정포·미사일이 결합된 공격에 대비해 표적정보와 화력의 연결 속도, 지휘통신망 생존성, 저비용 대드론 방어 능력을 실기동훈련에서 검증해야 한다. 러시아가 북한군 3만명을 추가로 불러들이려 한다는 우크라이나의 정보 판단이 나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남서부 보로네시주에서 북한군 수용을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대를 추가로 러시아에 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러 군사협력이 북한에 실전 경험과 무기 개량 자료를 제공해 아시아 국가들의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평가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젤렌스키가 러시아의 계획을 말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27일 “북러 군사협력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관련 정보는 확인하지 않았다. 이번 주장은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전략대화를 한 직후 나왔다. 외교가에서는 최 외무상의 방러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향후 러시아 방문과 병력 증파 문제가 함께 논의됐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북한군 3만명 추가설…실전 경험자 누적 확대우크라이나 측은 최초 파병 병력과 보충병을 합쳐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을 약 1만 4000명으로 추산한다. 여기에 3만명이 추가되고 교대가 이어지면 러시아 전장을 거친 누적 인원은 10만명을 넘어설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귀환 병력이 맡을 보직이다. 쿠르스크에서 살아 돌아온 북한군 ‘김상사’가 일선 부대나 군사학교의 교관으로 배치되면 개인의 전투 경험은 북한군의 전술과 교육훈련으로 옮겨 간다. 장교와 부사관, 드론·통신·포병 요원이 교리 연구와 교육을 맡으면 전훈은 한 부대에 머물지 않는다. 교범과 부대 편성, 훈련평가 기준을 바꾸는 자료가 된다. 드론·포병에 당한 북한군, 병력 분산 전술 습득북한군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고강도 국가 간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다. 포병과 무인기, 전자전이 연결된 전장에서 장기간 작전한 경험은 북한군이 과거 해외 분쟁에서 얻은 제한적인 참전 경험과 성격이 다르다. 러시아군은 북한군에 기본 보병전술과 포병·무인기 운용, 진지 소탕 등 전선 투입에 필요한 훈련을 실시했다. 북한군은 위성항법과 통신이 교란되는 전장에서 정찰·공격용 드론과 포병이 연계되는 전투를 경험했다. 보병은 드론 감시를 피해 병력을 분산·은폐하는 방법을 익혔다. 포병과 무인기 요원은 표적 탐지와 좌표 전송, 사격보정 절차를 접했다. 지휘관에게는 통신 장애와 대규모 손실, 병력 보충을 처리한 전시 지휘 경험이 쌓였다. 초기 병력 4분의 1 손실…소부대·드론 전술로 전환북한군은 초기 전투에서 중대·대대급 병력을 한 축선에 밀집시켰다가 우크라이나군의 포병과 무인기에 큰 피해를 봤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북한군이 초기 투입 병력의 약 4분의 1을 잃은 뒤 러시아식 소부대 전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은 소수 보병을 반복 투입해 상대의 사격 위치와 방어선의 빈틈을 드러낸 뒤 포병과 FPV 드론을 집중한다. 공격 병력이 정찰 임무와 소모전의 선봉을 동시에 맡는 고손실 전술이다. 북한군은 대규모 대형을 소부대로 쪼개 노출을 줄이는 방법뿐 아니라 인명 손실을 감수하며 상대 방어진지를 찾아내는 러시아식 소모전도 익혔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드론을 운용하는 방법과 함께 드론의 감시망에서 살아남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있다. 귀환 간부 교관 투입…쿠르스크 전훈 전군 확산북한군이 귀환자의 전투 경험을 전군 능력으로 바꾸려면 전훈을 보고서와 교범으로 정리하고 장교·부사관을 군사학교와 일선 부대의 교관으로 보내야 한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 파병에서 얻은 전훈이 북한군 교리와 북러 상호운용성 강화에 활용될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군의 중앙집권적 지휘체계는 전장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드론이 상시 감시하는 전장에서는 소부대 지휘관이 병력을 즉시 분산하고 화력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상급부대의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표적 탐지와 타격이 끝날 수 있다. 반면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전군에 일괄 적용하는 데는 유리하다. 김 위원장이 무인기·전자전 전술 도입과 부대 개편을 명령하면 교육과 훈련체계도 빠르게 바뀔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무인기와 인공지능의 군사적 결합을 국방 현대화의 핵심 과제로 강조해 왔다. 귀환 간부가 교관으로 배치되고 북한군 훈련에 드론 회피와 분산 기동, 포병 사격보정이 확대된다면 쿠르스크의 전훈이 북한군 조직에 흡수됐다는 신호다. 드론으로 좌표 잡고 전자전 교란…포병·미사일 집중타격북한 장사정포에 정찰드론이 결합하면 표적 탐지와 사격보정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노후 포신과 탄약 품질의 한계는 남아 있지만, 드론으로 탄착점을 실시간 확인하면 수도권과 전방 지휘시설에 대한 초기 집중타격의 효율은 높아진다. 북한이 러시아식 복합공격 방식을 받아들이면 정찰드론으로 표적을 찾고, 저가형 자폭드론과 전자전으로 레이더·통신망을 교란한 뒤 장사정포와 탄도미사일을 집중하는 공격을 구사할 수 있다. 한반도는 우크라이나 동부보다 산악이 많고 군사분계선 일대에 감시자산과 방어시설이 밀집해 있다. 그러나 짧은 작전거리와 높은 포병 밀도는 북한에 유리하다. 드론 정찰과 사격보정, 병력 분산, 전자전 대응만 접목해도 기존 전력의 운용 효과는 달라진다. 탄도미사일 방어와 대드론 작전, 대화력전, 전자전 대응, 기지 방호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한국군의 지휘 판단과 탐지·타격 자원을 분산시킨다. 북한이 저가형 드론으로 레이더를 작동시켜 위치를 노출하고 요격탄을 소모시킨 뒤 탄도미사일과 장사정포를 투입하면 한국군은 서로 다른 방어체계를 한꺼번에 가동해야 한다. 표적정보·화력 연계, 대드론 방어, 통신 복원력 검증한국군은 드론 보유 대수보다 표적 발견에서 타격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파 교란 상황에서도 드론이 확보한 좌표가 우회 통신망을 거쳐 포병·항공·미사일 부대에 전달되는지 실기동훈련에서 검증해야 한다. 대드론 방어는 전자전 장비와 기관포, 요격드론, 레이저를 결합한 다층체계로 구축해야 한다. 광섬유 유도·자율항법 드론은 전파방해만으로 막기 어렵다. 값싼 드론을 값비싼 방공유도탄으로만 요격하는 방식도 장기전에서는 버티기 어렵다. 지휘통신망과 핵심시설의 생존성도 높여야 한다. 지휘소와 레이더, 탄약·연료시설을 분산·위장하고 통신망이 끊겼을 때 가동할 우회·복구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 장사정포를 신속히 탐지·제압하는 대화력전 능력도 같은 훈련에서 시험해야 한다. 전장을 거친 장교와 부사관이 일선 부대와 군사학교의 교관으로 배치되고 북한군 교범과 드론·포병 훈련이 바뀐다면, 쿠르스크의 경험은 이미 북한군 전체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은 통신이 끊기고 레이더가 공격받는 상황에서도 표적정보가 화력으로 이어지는지, 값싼 드론을 값비싼 유도탄 없이 막아낼 수 있는지를 훈련장에서 입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올 ‘김상사’를 상대하는 준비는 거기서 시작된다.
  • ‘국민 볼펜’이 쓴 韓문구 역사…“우리들 모두의 모나미” 15원으로 시작됐다 [창업주의 비밀노트]

    ‘국민 볼펜’이 쓴 韓문구 역사…“우리들 모두의 모나미” 15원으로 시작됐다 [창업주의 비밀노트]

    “우리 모두의 모나미를 멋지게 키워라.” 2022년 작고한 고 송삼석 모나미 명예회장의 유언에는 한평생 모나미를 ‘국민 볼펜’으로 키워낸 자부심과 ‘모나미는 나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생전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1963년 첫 국내산 볼펜의 시대를 열었던 모나미는 한국인의 필기 문화를 바꾸고 대한민국 문구 산업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최근 상장 폐지 위기를 맞았던 모나미에 ‘애국매수’ 열풍이 분 것도 모나미를 일개 문구회사가 아닌 한국 문구 산업의 역사와 상징으로 여기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죠. 송 명예회장의 손자인 송재화 모나미 사장은 “모나미가 걸어온 60여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자필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에 엉망된 경제 살려야” 父 뜻 거스르고 상경대로일제강점기가 한창이던 1928년 전북 군산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송 명예회장은 약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전북 삼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보수적인 시대상에도 6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낼 정도로 개방적이었지만, 송 명예회장을 포함해 아들들을 무조건 의대에 보내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연이어 의대에 진학하며 의료를 통해 조국에 봉사하고 일제에 맞서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랐지만 송 명예회장은 남몰래 다른 생각을 품었습니다. 상경대에 진학해 엉망이 된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고 싶다는 것이었죠. 송 명예회장은 회고록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서 당시 어둑한 방 안에서 서울대 상경대(경제학과)에 가겠다는 선언에 할 말을 잃은 아버지의 망연한 표정을 떠올리며 “그때 내 기분은 차라리 늘씬하게 매라도 맞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광복과 함께 서울대 상경대에 진학한 송 명예회장은 6·25전쟁으로 경제가 황폐해지고 실업자가 쏟아지던 해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취직을 못 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송 명예회장은 그길로 지금의 산업통상부 격인 상공부로 향합니다. 약속도 잡지 않고 장관실로 들어간 송 명예회장의 기개에 고 이교선 당시 상공부 장관은 무역회사인 ‘삼흥사’를 연결해 줬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삼흥사는 불과 2년 6개월 만에 파산했지만, 그 당시 배운 무역회사의 면면은 송 명예회장이 이후 자신의 회사를 열 수 있게 해준 기틀이 됐습니다. ‘나의 친구’ 모나미의 시작송 명예회장이 본격적으로 문구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55년 일본에서 문구류를 수입하던 이용섭 당시 광신산업 사장에게 지분 10%를 투자해 공동경영을 시작하면서입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물감과 크레파스를 만들던 공장을 인수한 광신산업은 1960년 광신화학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고 문구류 생산에 돌입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광신화학공업주식회사의 이름으로 처음 세상에 나오게 된 제품이 ‘모나미 물감’과 ‘왕자 파스’(크레파스)입니다. 불어로 ‘나의 친구’라는 뜻의 모나미는 경리부에서 일하던 단기 아르바이트생이 낸 의견이었습니다. 뜻도 좋고 부르기도 편한 이름에 아이디어 회의에서 단번에 발탁됐는데, 며칠간 잠깐 경리 일을 돕다 간 사람이라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게 됐습니다. 추후 회사가 성장하고 모나미가 정식 사명으로 변경된 뒤 송 명예회장이 수소문해 보았으나 결국 실패했다고 합니다. 첫 과제는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송 명예회장은 직접 초등학교 앞으로 나가 모나미 물감과 왕자 파스의 로고가 새겨진 시간표를 나눠주고, 사생대회를 열었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구 도매상을 찾아 ‘모나미회’라는 조직으로 묶고 야유회를 열며 도소매 생태계를 장악했습니다. ‘볼펜’의 자유로움에 매료되다1962년 경복궁에서 열린 국제박람회 참가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모나미를 포함해 아직 국내에서 자체 생산하는 문구가 많지 않았기에 일본에서 가장 큰 문구 도매상인 우치다 요오코 상사와 함께 박람회 부스를 차리게 됐습니다. 바로 그 박람회장에서 송 명예회장은 ‘볼펜’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잉크로 써지면서도 새거나 흐르지 않고, 자유자재로 옷에 꽂았다가 귀에도 꽂는 볼펜의 존재에 송 명예회장은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온통 볼펜에 마음을 뺏긴 송 명예회장은 일본의 ‘오토 볼펜 주식회사’와 접촉해 기술을 전수받습니다. 송 명예회장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사장의 입에서 기술이전을 허용한다는 얘기가 떨어지는 순간 사장도, 직원도 사무실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 눈앞에 떠오른 것은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은행에서, 관공서에서 손에 볼펜을 들고 자유롭게 쓰고 그리는 학생들과 사무원들의 모습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이듬해 탄생한 것이 흰 몸체에 검은 머리, 한국 볼펜의 대명사가 된 ‘모나미 153’ 볼펜입니다. 한 자루의 가격은 15원. 당시 버스 1구간 요금, 또 신문 한 부의 가격과 같았습니다. 주 소비층인 학생들과 사무원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 결정이었습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획기적인 필기구를 버스 한 번 탈 가격으로 온 국민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송 명예회장의 신념이 모나미를 국민볼펜으로 세운 것입니다. 세금 추징·화재 파고 넘어 ‘국민 볼펜’으로모나미 153이 불티나듯 팔리자 광신화학주식회사는 모나미화학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꿨습니다. 사세가 확장되며 기업공개도 단행했으나 위기도 있었습니다. 비상장기업이던 시기부터 관행처럼 해오던 무자료 거래에 국세청이 탈세 혐의로 7억 5000만 원을 추징한 것입니다. 주요 간부들과 사재를 모으고 징수 유예를 통해 파고를 넘겼지만 이 여파로 이 전 사장이 공동경영에서 물러나며 송 명예회장이 유일한 대표이사가 됐습니다. 성수동에 공장 두 채와 1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국내 최고의 문구 기업으로 성장했던 1978년에는 공장에 큰 화재가 나며 폐허가 되기도 했습니다. 송 명예회장은 당시 직원들과 함께 잔해를 정리하고 기계 분해와 조립을 다시 하며 화재 사건을 극복합니다. 송 명예회장은 회고록을 통해 “모나미가 공중분해 돼버렸을지도 모를 커다란 위기를 몇 번이나 겪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 벗고 뛰는 사람들을 보고도 어찌 모나미를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회사가 커진 뒤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렸다고 털어놨습니다. 애국매수로 이어진 인간 중심 경영송 명예회장이 강조한 경영 원칙은 ‘인간 중심의 경영’입니다. 제품 품질에 대한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소비자 중심의 경영’, 판촉부터 위기 극복까지 함께 몸을 던진 ‘직원 중심의 경영’이 핵심 축입니다. 편법을 쓰지 않고 소비자와 직원 중심 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업의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모나미”라는 송 명예회장의 유언은 상폐 위기 앞에 선 모나미를 구사일생으로 살리기도 했습니다. 한국거래소가 7월부터 자본시장 건전성 강화를 위해 코스피 상장 유지 요건을 ‘시가총액 300억원’으로 상향하자 국내 투자자들이 애국 매수에 나선 것입니다. 문구류의 수요가 줄어드는 정보기술(IT) 시대 모나미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이를 위해 모나미는 문구류를 넘어 색조 분야 강점을 살린 화장품 사업과 학원 및 문화예술 서비스업, 부동산 개발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신산업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 “1등 아닌 꼴찌에 박수”...아시아 최초 대전서 열리는 ‘인빅터스 게임’은 무엇?[외안대전]

    “1등 아닌 꼴찌에 박수”...아시아 최초 대전서 열리는 ‘인빅터스 게임’은 무엇?[외안대전]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고,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아시아 최초 개최지가 대한민국 대전으로 선정돼 화제인 ‘인빅터스 게임’의 상징 로고 속 ‘I am’의 모토가 된 시 구절이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는 어릴 적 결핵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나머지 다리까지 절단할 위기 속에서도 병상에서 인간의 의지와 존엄성을 담은 이 시를 썼다. 인빅터스 게임은 영국 인빅터스 게임 재단이 주관하는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다. 오는 2029년 10월 9회째를 맞는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20일 “대한민국 대전은 경쟁 도시였던 미국 샌디에이고와 덴마크 올로브와의 치열한 경합 끝에 아시아 최초로 인빅터스 게임을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재단은 대전을 개최지로 선정한 이유로 “특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상이군인 사회가 상이군인 회복과 재활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긴밀한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대회 준비를 체계적으로 추진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인빅터스 게임은 영국 해리 왕자가 지난 2014년 창설했다. 해리 왕자는 2005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약 10년간 군인으로 복무했다. 국가적 위기나 전쟁 시 왕족이 직접 참전하는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전통 속에서 해리 왕자는 남다른 사명감을 보였다. 그는 “나만 안전한 곳에 머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2007년 아프가니스탄 전선에 비밀리에 배치돼 복무하기도 했다. 게임 창설의 직접적 계기는 아프가니스탄 복무를 마치고 기밀 이송되던 귀국길에 발생했다. 당시 해리 왕자는 수송기 안에서 영국군 시신과 폭발물 등으로 부상을 입은 동료들을 본 뒤, 2013년 미국 상이군인 체육대회 ‘워리어 게임’ 참관에서 영감을 받아 이듬해 전 세계 상이군인 스포츠 대회로 확대해 제1회 인빅터스 게임을 창설했다. 특히 승패보다 연대 과정에 핵심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등에게 가장 큰 환호가 쏟아지는 일반 스포츠와 달리, 인빅터스 게임에서는 ‘꼴등’ 선수에게 가장 큰 환호와 기립박수가 쏟아진다. 경기 도중 장비 문제가 생긴 선수들에게 상대 선수들이 다가와 격려하는 모습도 자주 있다. 선수의 가족도 치유 대상으로 본다는 점도 인빅터스 게임만의 특징이다. 참전 군인의 고통을 곁에 있는 가족도 함께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인빅터스 게임을 유치하려는 곳은 선수 1인당 2명 이상의 가족 경비 일체를 지원해야 한다. 2029년 대전 인빅터스 게임에는 26개국이 참여한다. 10월 6~15일 9박 10일간 상이군인 선수 550명 등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이클, 양궁 등 12개 종목에서 연대를 기반으로 한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현재 대회 참가국 중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12개국은 6·25전쟁 참전국으로 6·25전쟁 80주년을 1년 앞두고 개최된다는 의미도 있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정부는 대전광역시, 대한민국상이군경회와 긴밀히 협력해 역대 최고의 대회를 준비할 것”이라며 “전 세계 상이군인들의 재활과 회복, 그리고 연대와 화합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 대전 ‘세계상이군인체육대회’ 2029년 유치

    대전이 아시아 국가 도시 최초로 ‘세계상이군인체육대회’(인빅터스 게임)를 개최한다. 20일 국가보훈부와 대전시 등에 따르면 영국 인빅터스 게임재단은 이날 이사회 만장일치로 2029년 대회 개최지로 대한민국 대전시를 선정했다. 재단은 지난 2월 현지 실사와 5월 유치신청서 심사, 6월 영국 런던 최종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종합 평가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덴마크 올보르 등의 도시들과 유치 경쟁을 벌여 대전이 최종 후보지로 선택됐다. 대전은 국립대전현충원과 대전보훈병원 등이 있는 국내 대표 보훈 도시다. 상이군인에 대한 예우와 회복의 상징성을 동시에 갖춘 점이 강점으로 평가받았다. 시는 인빅터스 게임 참가국 중 미국과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12개국이 6·25전쟁 참전국이라는 점에서 보훈 외교 측면의 높은 상징성도 기대한다. 인빅터스 게임은 2014년 영국의 해리 왕자가 창설한 상이군인 대상 국제 스포츠 대회로, 그동안 영국·미국·캐나다·독일 등에서 개최됐다. 2029년 대회는 10월 6~15일 육상·양궁·수영 등 9개 기본 종목과 e스포츠·레이저 사격·파크골프 등 3개 추가 종목이 진행된다. 세계 25개국에서 3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시는 정부와 조직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대회 운영체계와 재원 분담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인빅터스 게임은 스포츠를 통해 상이군인이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플랫폼”이라며 “상이군인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문화가 대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전역으로 보다 확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상한가 세번에 240% 폭등한 ‘애국주’, 돌연 17% 급락 [내가샀다]

    상한가 세번에 240% 폭등한 ‘애국주’, 돌연 17% 급락 [내가샀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애국 테마주’로 주목받으며 불과 8거래일 동안 240% 급등한 수산물 가공업체 한성기업이 거래정지 이후 첫 거래일인 17일 19% 급등했다 돌연 하락 전환해 17%까지 급락했다. 2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성기업은 전 거래일 대비 2%대 상승해 장 초반 19.42% 오른 1만 734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개장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하락 전환해 17.49% 하락한 1만 1980원까지 밀려났다. 한성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급등락을 이어간 이달 들어 ‘애국 테마주’로 회자되며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렸다. 금융위원회가 시가총액 300억원 이하인 코스피 상장사를 상장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가총액 200억원대인 한성기업도 상폐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한성기업이 25년째 6·25전쟁 UN 참전용사를 후원해왔다는 사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알려지면서 “한성기업의 상폐를 막자”는 여론이 일었다. 이에 투자자들이 한성기업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고, 지난 3일 4230원이었던 주가는 8일 5000원대를 넘어선 데 이어 9일과 10일, 15일 세 차례에 걸쳐 상한가를 기록하며 1만 4520원까지 치솟았다. 해당 기간 동안의 주가 상승률은 약 243%에 달한다. 단기간 내 주가가 급등하면서 한성기업은 지난 16일 하루 동안 거래정지됐다. 한성기업과 함께 “국가유공자를 후원한다”, “일본 불매운동 수혜주” 등의 이유로 모나미, 손오공, 에넥스 등 몇몇 종목들이 ‘애국주’로 묶여 덩달아 급등했지만 코스피가 3%대 하락하는 이날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지난 5거래일 동안 3배 급등했던 에넥스는 이날 하한가를 기록했고, 손오공은 16일 상한가를 기록한 데 이어 이날도 장중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16일 상한가였던 좋은사람들은 이날 27%대 급락했다._
  • 무급 항해사에서 참치캔 기업 인수까지…동원그룹 김재철의 ‘열성과 도전’ [창업주의 비밀노트]

    무급 항해사에서 참치캔 기업 인수까지…동원그룹 김재철의 ‘열성과 도전’ [창업주의 비밀노트]

    ‘참치 잡다 재벌이 된 할아버지’, ‘어부’….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일군 김재철(92) 명예회장은 지난해 펴낸 자서전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에서 자신을 이렇게 칭했습니다. 젊은 시절 대한민국 최초의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던 김 회장은 한국무역협회장, 한국수산회 초대 회장 등을 지낸 한국 원양어업사의 개척자로 통합니다. 김 회장은 1934년 전남 강진군 내동마을에서 11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빠듯했던 형편과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말고, 스스로 삶을 일으켜 세우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은 그의 삶과 경영 전반을 관통하는 원칙으로 남게 되죠. 강진농고 때는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농대에 입학하기로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를 뒤집은 것은 고3 담임교사의 한마디였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가 세계 1등 국가가 되고 못 되고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바다 개척에 뛰어드는가에 달려 있다”는 조언에 김 회장은 진로를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어로학과로 바꿨습니다. 당시 어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던 만큼 김 회장의 결정은 집안의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6·25전쟁 직후 피난민으로 붐비던 부산은 가정교사 자리조차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는 온갖 허드렛일로 학비를 대며 학업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목숨을 잃어도 좋다’…바다로 나간 20대 청년 1958년 대학을 갓 졸업한 김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를 타고 바다로 나갑니다. 험한 바닷일, 경험이 없던 그는 회사에 ‘죽어도 상관없다’는 각서를 쓰고 무급 실습 항해사로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18명 선원 중 최연소였던 그는 ‘학생’으로 불리며 청소와 잔심부름까지 도맡았습니다. 꼬박 3주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남태평양 사모아에서 53척의 일본 어선과 경쟁하며 참치를 잡았고, 이듬해 그는 월급 200달러의 일등항해사로 재승선했습니다. 긴 항해 시간, 그는 책을 파고들며 틈틈이 일본어와 어류도감을 독학했습니다. 참치잡이는 당시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으로 떠올랐습니다. 김 회장은 1961년 지남2호 선장으로 발탁되는 등 이후에도 여러 회사에 스카우트되며 ‘캡틴J.C. Kim’이란 별칭으로 원양업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1965년 인도양에서 10항차 만에 수출 117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125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업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실적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35세이던 1969년 ‘동원산업’을 설립하며 창업에 나섰습니다. 선장 출신으로는 처음 어업 회사를 차린 그는 신용으로 중고 원양어선을 도입해야 할 정도로 자본은 많지 않았지만 현장경험과 도전정신으로 사세를 불려 나갔습니다. 당시 일본 선원들이 위험하다며 꺼리던 탑재모선식(본선이 소형 어선을 싣고 다니며 조업하는 방식) 어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도, 이후 1979년 국내 최초로 고급 어법인 참치 선망업에 뛰어든 것도 김 회장입니다. 동원산업은 1·2차 오일쇼크 등 시련을 헤쳐 나가며 선단을 꾸준히 늘려 나갔습니다. 지금은 참치 선망·연승·트롤·운반선단을 합쳐 총 40척의 선단을 운영하며 국내 원양어업을 이끄는 최대 기업입니다. ‘호기심이 없으면 쇠퇴한다’…‘다음 어장’ 찾는 동원 정신지금의 동원그룹은 수산업, 식품업뿐 아니라 컨테이너 터미널 같은 물류 사업, 2차전지 소재·부품까지 다방면의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입니다. 이런 확장의 배경에는 항상 ‘다음 어장’을 찾았던 김 회장의 경영 기조가 놓여 있습니다. ‘열성과 도전’을 동원정신으로 꼽습니다. 1981년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참여한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연수에서도 두 가지 수확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증권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귀국길에 들른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타키스트 통조림 공장에서 얻은 참치캔 사업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듬해인 1982년 그는 한신증권(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금융업에 진출하는 동시에 동원참치캔을 국내 최초로 출시했습니다. 한국투자금융그룹과 동원 식품사업의 뿌리를 같은 해에 함께 심은 셈입니다. 섬유·모피 산업, 국산 카메라 사업, 정보통신업 등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려다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김 회장은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새롭게 도전하지 않으면 개인이든 사회든 쇠퇴한다”라며 젊은 세대에게 “가슴 뛰는 도전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다양한 관심사를 바탕으로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신사업 아이디어를 내놓거나 AI 트렌드 등을 앞서가기도 합니다. 현재 동원그룹이 신사업으로 추진 중인 육상연어양식 사업도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에서 비롯됐습니다. 또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AI) 분야에 관심을 갖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인공지능 교육과 연구를 위해 써달라며 개인 재산 544억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해마다 동원 사내 AI 경진대회도 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정도경영…2·3세도 원양어선부터 경영 승계 과정에서 정도경영에 대한 김 회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91년 장남인 김남구 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일본에서 MBA 과정을 밟던 무렵, 동원산업 주식 55만 주를 미리 증여하면서 62억 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 신고했습니다. 당시 자진 신고 증여세로는 사상 최대 금액이었습니다. “세금을 다 내면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는 것이 당시 재계의 일반적 정서였지만, 김 회장은 훗날 “회사 규모에 비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절세를 가장한 탈세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 온 그는 “편안하게 호강한 사람은 저항력, 인내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자녀 교육에도 엄격했습니다. 실제 김 회장의 두 아들은 모두 배를 타거나 시장에서 일하는 등 현장을 알아가는 것으로 경영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장남인 김 회장은 대학 시절인 1986년 4개월간 원양어선을 탔습니다. 차남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은 참치캔 공장 생산직으로 회사에 입사한 후 서울 경동시장과 청과물시장 등에서 2년 넘게 영업을 했습니다. 손자도 예외는 없습니다. 지난해 동원산업에 사원으로 입사한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 장남 김동찬 씨도 원양어선에 승선해 한 달간 어획 전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 NLL 황금어장 싹쓸이 하는 중국어선 새 대책 나온다

    NLL 황금어장 싹쓸이 하는 중국어선 새 대책 나온다

    해양경찰청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우리 황금어장을 싹쓸이하는 중국 불법조업 어선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17일 해경에 따르면 지난 6일 관계부처 합동 화상회의를 연 데 이어 10일 장인식 해양경찰청장 직무대행이 연평도를 찾아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해경은 현재 단속 방식에 변화를 주고, 불법조업 어선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 당국과 협력을 확대하는 등 세 가지 방향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해군과 합동 단속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도 진행 중이다. 장 직무대행은 지난 15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관계기관 협의가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인 단속 방안을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은 코로나19 이후 한동안 감소했다가 최근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NLL 해역의 하루 평균 불법조업 어선은 2023년 94척, 2024년 90척, 2025년 97척이었으며, 지난 15일에도 84척이 확인됐다. 특히 백령·대청·연평도 해역에 꽃게 어장이 형성되는 봄과 가을이면 꽃게와 까나리, 조개류 등을 무분별하게 잡아들이고 있다. NLL은 남북 어선 모두 조업할 수 없는 사실상의 ‘바다 휴전선’이다. 중국어선은 이 틈을 이용해 NLL을 넘나들며 불법조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를 원천 차단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연평도에서 NLL까지는 1.4~2.5㎞에 불과하다. 중국어선은 해경의 단속이 시작되면 3~30분 만에 NLL을 넘어 북한 해역으로 달아난다. NLL에서는 해경이 단독으로 나포 작전을 펼칠 수 없어 해군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규모 단속 과정에서 NLL에 지나치게 접근하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이 때문에 NLL 해역의 중국어선 나포 실적은 2023년 12척, 2024년 1척, 2025년 4척, 올해는 2척에 그치는 등 서해 다른 해역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불법 중국어선 대응 기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의 연평도 방문 이후다. 이 대통령은 6·25전쟁 76주년을 하루 앞두고 해병대 연평부대를 찾아 평화전망대에서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 현장을 직접 확인한 뒤 관계기관에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 [세종로의 아침] 낙인의 문법을 넘어서

    [세종로의 아침] 낙인의 문법을 넘어서

    사투리 한마디가 이념 감별의 리트머스가 되는 시대다. 걸그룹 리센느의 원이가 유튜브 영상에서 한 “무섭노”라는 말에 ‘일베 낙인’이 찍혔다. 언어학자들이 경상 지역 방언의 유형이라고 설명하면서 잠잠해진 이 현상은 낙인의 생리를 보여 준다. 원이가 경남 거제 출신이라거나 사투리에 ‘-노’를 붙여 말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소비’가 중요하다. 최초 문제 제기자나 가세한 정치인은 계정을 닫거나 침묵 중이고, 여전히 원이 이름 앞에 ‘일베 논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언론이 있다. ‘과잉 경계’라는 트라우마 반응이 허공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지난달 고교야구장에서 배재고 선수들은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합창해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대표 해임과 본사 사과까지 부른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를 그대로 흉내 낸 조롱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호남 혐오를 밈처럼 소비해 온 일부 청년층에게 광주는 애도의 장소가 아니라 놀이의 소재였다. 물론 같은 세대의 다른 한쪽은 불매 운동을 이끌었다.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혐오를 정체성 놀이로 삼는 문화다. 이중 잣대는 더 뼈아프다. ‘무섭노’에는 사투리의 맥락을 따지라던 목소리 중 일부는 광주의 상처 앞에서 맥락을 지운 채 침묵하거나 조롱에 가세한다. 더 참담한 것은 그 뒤의 풍경이다. 징계받은 학교 앞에 ‘자랑스러운 애국청년들’이라 적힌 축하화환과 비난 문구를 쓴 근조화환이 늘어섰다. 아이들의 조롱 뒤에 그것을 부추기는 어른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 ‘어른’들은 5·18민주화운동을 성역화하면서 왜 6·25전쟁은 방치하느냐는 식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면서 아이들을 옹호한다. 이 문법의 원형은 국가가 만들었다. 반공을 도구 삼은 이승만 정권은 ‘빨갱이’ 프레임으로 정권을 유지했고, 신군부 세력은 1980년 광주 시민에게 ‘폭도’ 낙인을 찍어 학살을 정당화했다. 지역감정을 통치 연료로 삼은 정치가 낙인을 연명시켰고, 법원이 위법으로 단죄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낙인을 문화계까지 끌어들였다. 정권이 바뀌어도 문법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배제 명단이 우대 명단으로 뒤집힌들 사람을 편으로 분류하는 문법은 같다. 실존하는 혐오가 경계심을 올리고, 과잉 경계는 무고한 이를 낙인찍는다. 극우에게는 ‘검열사회’ 항변의 먹잇감을 준다. 역시 교육이 첫 자리다. 아이들은 5·18민주화운동을 교과서보다 조롱 섞인 밈으로 먼저 만난다. 배재고 학생 일부는 5·18 관련 표현인지 몰랐다고 했다. 몰랐다는 말은 면죄부가 아니라 교육 실패의 증거다. 그 말이 누구의 상처 위에 서 있는지 묻는 맥락 교육, 밈과 숏폼을 해독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혐오 표현 대응 연수가 필요하다. 사회의 몫도 있다. 조롱과 모욕은 비켜 가는 5·18특별법의 공백을 메울 개정안에는 표현의 자유 안에 ‘혐오할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려줄 정교한 설계가 전제돼야 한다. 언론은 ‘논란’이라는 포장 대신 혐오와 억울한 낙인을 구별해 명명하고, 공공기관장 인사는 기준과 검증을 공개해 전문성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 품격 있는 답의 하나는 광주가 보여 줬다. 지난 6일 배재고 선수단이 광주일고를 찾아 고개 숙이자 광주일고 교장은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두 학교 선수들은 함께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조롱을 낙인으로 갚지 않은, 회복의 모범 같은 장면이다. 광주의 용서를 사회의 면죄부로 오독해선 안 된다. 광주가 용서한 것은 뉘우친 아이들이지 혐오라는 병폐가 아니다. 배재고 안에는 주도한 선수와 가담한 선수, 말리던 선수가 있었기에 모두를 단체 징계로 묶는 데는 고민이 필요하다. 응징의 언어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작동하는 기준의 언어가 필요하다. 용서가 값싸지지 않으려면 사회는 더 엄정해져야 한다. 낙인 없이 판단하는 일과 혐오에 단호한 일은 그렇게 함께 간다. 최여경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후손 ‘강뉴합창단’, 부산 유엔평화기념관 방문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후손 ‘강뉴합창단’, 부산 유엔평화기념관 방문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참전용사 후손 34명으로 구성된 강뉴합창단이 16일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을 방문했다. 이들은 따뜻한 하루와 한국전쟁참전국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와 LG가 후원한 초청사업의 일환으로 기념관을 찾았다. 이날 강뉴합창단은 유엔평화오케스트라의 한국 가곡 고향의 봄, 아리랑과 에티오피아 국가 연주 등 환영 공연에 즉석에서 함께 노래하며 감동을 더했다. 이들은 환영공연 참석에 이어 기념관 전시해설과 함께 6·25 전쟁실 및 유엔참전 기념실을 관람하며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의 참전 역사와 활약상을 살펴봤다. 특히 참전용사 희생과 헌신이 담긴 전시 앞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며 참전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기념관 측은 전했다. 허재택 유엔평화기념관장은 “참전용사 후손들이 역사를 직접 살펴보고 평화의 가치를 함께 나눈 이번 방문이 한국과 에티오피아의 우호와 연대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강뉴부대는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에티오피아의 정예부대이다. 참전 기간 253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기록을 남겼다. 강뉴(Kagnew)는 에티오피아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취약층·문화·보훈… ‘나눔’으로 함께하는 효성

    취약층·문화·보훈… ‘나눔’으로 함께하는 효성

    효성은 ‘나눔으로 함께 하겠습니다’를 사회공헌 슬로건으로 내걸고 취약계층 지원, 문화예술 후원, 호국보훈 등 3대 분야를 중심으로 나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16일 밝혔다. “기업의 성장은 지역사회와 함께할 때 더 의미가 있다”며 소외계층에 대한 나눔을 강조해온 조현준 효성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고 함께 실천하기 위해서다. 효성의 나눔 활동은 생활수준 개선을 넘어 의료와 교육까지 취약계층의 삶 전반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08년부터 임직원이 참여하는 ‘사랑의 헌혈’ 행사를 꾸준히 열었고 지난 2월에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소아암 환아 지원금 3000만원과 헌혈증 322장을 전달했다. 2013년부터는 푸르메재단과 협력해 저소득층 장애아동의 재활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매년 배리어프리 영화를 지원하고,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를 후원하고 있다. 후원금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비와 전시 기획, 홍보 지원에 사용되며 이는 장애 예술인이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돼 왔다. 해외에서는 2018년부터 플랜인터내셔널코리아와 함께 베트남 꽝응아이성에서 교육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1월에는 베트남 망덴 기숙형 초등학교에 현대식 주방과 식당을 완공했으며 지금까지 10여개 학교를 지원해 총 1672명의 아동이 교육환경 개선의 혜택을 받았다. 이 사업은 임직원 기부금에 회사가 같은 금액을 보태는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운영된다. 호국보훈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효성은 2010년 육군 1군단 광개토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이후 위문금 전달과 복지시설 지원, 독서카페 조성 등으로 장병 복지 향상에 기여했다. 2012년부터는 ‘나라사랑 보금자리’ 사업을 후원해 6·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 국가유공자의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묘역 가꾸기 등 임직원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보훈 활동도 진행 중이다.
  • (사)따뜻한하루·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강뉴합창단에 장학금 전달

    (사)따뜻한하루·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강뉴합창단에 장학금 전달

    외교부 소관 NGO 단체 사단법인 ‘따뜻한하루’(이사장 김광일)는 지난 7월 14일 경기도 과천시 시민회관에서 ‘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단장 윤학수)과 함께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후손들로 구성된 ‘강뉴합창단’을 위한 장학금 전달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의 학업을 돕고 안정적인 미래 설계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달 열린 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 제6회 정기연주회를 통해 첫 인연을 맺었던 두 합창단은 이번 행사를 통해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은 직접 마련한 후원금을 강뉴합창단에 전달하며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함께 나누었다. 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은 2011년 KBS 2TV ‘남자의 자격’을 통해 전 국민적인 합창 신드롬을 일으키며 탄생했다. 이후 시니어들의 도전 정신과 화합의 가치를 전파하며, 현재는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고 ‘GO Global’의 가치를 높이는 대표적인 합창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학수 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 단장은 “강뉴합창단 아이들이 꿈을 키워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어 매우 기쁘다”며,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 영웅들의 후손인 아이들이 앞으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각자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꾸준히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따뜻한하루 김광일 이사장은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며, “뜻깊은 나눔에 앞장서 주신 남자의자격 청춘합창단에 감사드린다. 아이들이 에티오피아의 미래를 밝히는 인재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에티오피아 강뉴합창단의 방한은 국가보훈부의 후원과 더불어, 항공권 및 숙박비 등 체류 비용 전반을 전액 지원한 LG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성사될 수 있었다. 사단법인 따뜻한하루는 외교부 소관의 비영리 NGO 단체로, 국내외 소외계층 및 6·25 참전용사 후손 지원, 취약계층 아동 지원, 긴급구호 등 나눔의 진정성을 전하는 다양한 인도주의적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 영국 공주가 울산에 간 이유…‘500원’으로 시작된 한영 방산 협력 스토리 [밀리터리+]

    영국 공주가 울산에 간 이유…‘500원’으로 시작된 한영 방산 협력 스토리 [밀리터리+]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동생 앤 공주가 방한 이틀째인 14일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를 찾았다. HD현대중공업은 14일 “앤 공주와 남편 티머시 로런스 경,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가 이날 울산 본사를 찾아 정기선 HD현대 회장,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부회장, 주원호 사장 등 경영진을 만났다”고 전했다. 앤 공주 일행은 선박 건조 현장과 엔진 공장 등지를 둘러보고 HD현대중공업과 여러 영국 방산기업의 협력 현황에 대해서도 직접 설명을 들었다. ‘500원권 지폐’가 보여준 자신감이번 영국 로열패밀리의 HD현대중공업 본사 방문 배경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HD현대중공업과 영국의 인연이 있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1970년대 초 영국 바클레이 은행을 비롯해 유럽 각지로부터 도입한 차관으로 울산 조선소를 지었다. 당시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영국의 조선 컨설팅 회사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텀 회장을 찾아가 500원권의 거북선 도안을 보여주며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정 명예회장은 울산에 세계적인 조선소를 짓기 위해 해외 차관과 기술 지원을 동시에 확보해야 했지만 배를 단 한 척도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회사였던 현대는 해외에서 신뢰도가 높지 않았다. 특히 롱바텀 회장은 “25만t급 초대형 유조선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런 배를 직접 본 적은 있느냐”며 현대의 계획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정 명예회장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그려진 당시 500원권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16세기에 만든 거북선이다. 영국이 철선(鐵船)을 만든 것은 19세기이지만 우리는 그보다 약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며 “우리 민족에게는 배를 만드는 기술과 저력이 있다”고 말했다. 또 “조선소를 지을 자금을 빌려주면 반드시 배를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차관을 갚겠다”고 자신 있게 약속했고, 롱바텀 회장은 이러한 자신감과 추진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A&P 애플도어는 현대 울산조선소의 기본 설계와 기술 자문을 맡았고 롱바텀 회장은 영국 금융권이 현대의 조선소 건설 계획을 신뢰하도록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울산 미포만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가 들어섰다. 정 명예회장은 1983년 영국 런던에서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홍보 활동 중에 앤 공주를 만나기도 했다. K조선과 함께 하는 영국의 ‘국가조선전략’앤 공주의 방한 일정 중 한국 민간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HD현대중공업을 찾은 주된 배경에는 영국의 ‘국가조선전략’(National Shipbuilding Strategy, NSS)이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급격한 조선업의 쇠퇴를 겪었던 영국은 정부가 주도해 조선업 인력과 자산에 중·장기적 투자를 단행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영국 정부는 2017년 국가조선전략을 처음 발표한 데 이어 2022년 이를 전면 개편한 ‘국가조선전략 리프레시’(Refresh)를 내놓았다. 정부는 군함뿐 아니라 상선과 친환경 선박을 포함한 산업 전반을 육성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고 혁신적이며 지속 가능한 조선 산업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을 보유한 한국을 핵심 협력국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 조선업체들은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MRO), 친환경 선박 기술, 공급망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했다. 영국 방산기업 뷰포트는 HD현대중공업이 건조 중인 필리핀 해군 원해경비함(OPV)에 승조원 생존장비, 또 다른 영국 방산기업 밥콕은 HD현대중공업 잠수함에 무장 취급·발사 체계를 공급하고 있다. 또 롤스로이스는 2012년 한국 해군 호위함 사업을 계기로 HD현대중공업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롤스로이스가 핵심 추진 장비인 MT30 가스터빈을 공급하고 이를 HD현대중공업이 추진 패키지로 통합·공급하는 협력이다. 정기선 회장은 이날 접견에서 “영국은 단순 협력 국가가 아닌 HD현대의 시작을 함께한 특별한 파트너”라며 “HD현대가 가진 최고의 기술력과 선박 건조 능력을 바탕으로 영국 조선·해양 산업 발전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방한한 앤 공주는 이날 오전 남편 팀 로렌스경과 함께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영국 왕실의 유엔기념공원 방문은 2013년 7월 리처드 왕자(글로스터 공작) 이후 13년 만이다. 서정인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은 “올해 유엔기념공원 조성 75주년을 맞아 영국 왕실을 대표해 앤 공주가 참배한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영국은 6·25전쟁 당시 전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해 국제사회의 연대와 평화 수호에 앞장섰던 핵심 국가였던 만큼, 오늘의 방문은 매우 뜻깊은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 ‘크리스마스의 기적’ 품은 거제 흥남철수기념공원 관람객 발길 이어져

    ‘크리스마스의 기적’ 품은 거제 흥남철수기념공원 관람객 발길 이어져

    경남 거제 흥남철수기념공원이 개관 13일 만에 누적 관람객 1만명을 돌파하며 지역의 새로운 역사·평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거제시는 지난 11일 오후 2시 35분 기준 흥남철수기념공원 누적 관람객이 1만명을 넘어섰다고 14일 밝혔다. 지난 6월 27일 정식 개관한 흥남철수기념공원은 전국 각지에서 시민과 관광객, 학생,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기 휴관일인 월요일 두 차례를 제외하면 실제 운영 일수는 13일에 불과하지만 짧은 기간 1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흥남철수기념공원은 6·25전쟁 당시 약 10만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흥남철수작전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1950년 12월 24일 1만 4000여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거제 장승포항에 무사히 입항한 이른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기억하고자 조성됐다. 흥남철수작전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개입으로 함경남도 흥남 일대에 고립된 민간인과 국군, 유엔군을 해상으로 철수시킨 작전이다. 당시 정원 60여명 규모의 화물선이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정원의 수백 배에 달하는 피란민을 태우고도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장승포항에 도착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인도주의적 구출 작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승포동 옛 여객선터미널 부지에 조성된 기념공원은 전체면적 2771㎡ 규모의 2층 전시관과 기념광장, 휴게시설 등을 갖췄다. 이 중 전시관은 한국전쟁 발발부터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작전, 거제 정착 과정까지를 담은 11개 전시공간으로 구성됐다. 첨단 미디어아트와 체험형 콘텐츠를 활용해 관람객들이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피란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의 역사,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항해 과정, 피란민들의 삶과 희망을 담은 전시를 둘러보며 자유와 평화,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흥남철수기념공원이 개관 초기부터 많은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단순한 전시공간을 넘어 자유와 평화, 인도주의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하는 대한민국 대표 역사문화공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6일 열린 개관식에는 국가유공자와 참전용사, 흥남철수작전 피란민과 후손, 기관·단체장,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해 기념공원의 개관을 축하했다.
  • ‘호남학도병 6·25 출전 76주년 기념식’ 여수서 열려

    ‘호남학도병 6·25 출전 76주년 기념식’ 여수서 열려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는 13일 오후 2시 여수시민회관에서 ‘전국 최초 혈서지원 호남학도병 6·25 출전 76주년 기념식’을 열고 어린 나이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선 학도병들의 희생을 기렸다. 이번 기념식은 1950년 7월 13일 오후 2시 호남지역 학도병 183명이 국군 제15연대에 입대하기 위해 순천역에 집결한 날과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열리고 있다. 당시 여수중학교와 여수수산중학교, 순천매산중학교 등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은 혈서를 쓰고 자원입대했다. 이들은 7월 25일 하동 화개 전투를 시작으로 진주 촉석루 전투와 진동사수 전투 등에 투입돼 낙동강 최후 방어선 구축과 전쟁 국면 전환에 힘을 보탰다. 서영학 여수시장과 주철현 국회의원, 서정미 전남동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해 생존 학도병과 유가족 등이 참석한 기념식은 전몰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과 ‘군번 없는 어린 용사’ 영상 상영, 경과보고, 학도병과 유가족에 대한 감사 경례, ‘6·25참전 학도병의 날’ 지정 촉구 청원서 채택, 추모 공연과 헌시 낭송 순으로 진행됐다. 또 순천매산중학교 2학년 재학 중 혈서로 자원입대해 6·25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최은오 예비역 육군 대령과 10년째 학도병 충혼선양사업에 참여한 우동식 예비군 지휘관에 대한 감사패 전달식이 열렸다. 학도병 고병현씨를 비롯한 전사 학도병 유가족에게도 꽃다발과 기념품이 전달됐다. 특히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학도병과 유가족, 참전 노병을 향해 “충성”을 외치며 감사의 경례를 올리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이어 학도병들만으로 치른 첫 전투인 하동 화개전투가 벌어진 7월 25일을 정부 기념일인 ‘6·25 참전 학도병의 날’로 지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박수로 채택했다. 서 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으며,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의 기념사와 주 의원, 서 지청장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한편 이날 시민회관 1층 로비에는 전남학도병의 출전 기록과 사진, 관련 자료가 전시돼 학생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효주 회장은 “학도병들의 피와 땀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며 “이 정신이 정부 기념일로 제정돼 후대에 길이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한파에 균열’ 낭원대사탑비, 보존처리 첫 공개

    ‘한파에 균열’ 낭원대사탑비, 보존처리 첫 공개

    기후변화로 인한 한파로 심각한 균열이 발생해 지난달 해체에 들어간 보물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의 보존처리 과정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다음달 4~5일 문화유산 보존처리 현장을 개방하는 ‘생생보존처리데이’를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한파로 균열이 발생해 지난달 해체된 보물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의 보존처리 과정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이번 행사에는 2023년 대관령 일대에 닥친 한파로 몸돌 내부의 수분이 얼어 팽창해 균열이 발생한 ‘낭원대사탑비’의 복원이 진행된다. 6·25전쟁 전사자 유품의 보존처리 현장도 공개된다. 최근 배우 신현준이 특별출연한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유튜브 콘텐츠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신현준은 6·25전쟁 참전용사인 고 신인균 대령의 아들이다. 이외에도 국가민속문화유산 ‘김흠조 부부 묘 출토 도자기’와 조선시대 화포, 양주 대모산성 출토 목간 등이 공개된다.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과학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참가자들은 문화유산 표면의 오염물을 비접촉 방식으로 제거하는 레이저 세척과 3차원 스캐닝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실제 보존처리에 사용하는 장비와 재료를 소개하는 전시도 함께 진행된다. 일반 참가 신청은 14~21일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회차별 인원은 30명이며, 일반 관람은 다음달 4일 오후 3시와 5일 오후 1시 30분에 진행된다. 내달 4일 오후 1시 30분과 5일 오후 3시는 각각 대전 아동복지시설 천양원 학생들과 17개국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특별초청 회차로 운영된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관계자는 “미래세대와 세계인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낙동강 방어 영웅’ 백선엽 장군 6주기, 다부동서 추모

    ‘낙동강 방어 영웅’ 백선엽 장군 6주기, 다부동서 추모

    고(故) 백선엽 장군 6주기 추모식(사진)이 10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이철우(앞줄 왼쪽에서 일곱번째) 경북도지사, 김호복 제2작전사 사령관, 미19지원사령관, 연합사 부사령관, 유족, 참전용사, 김관진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장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기념관 경내에 있는 구국용사충혼비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고 백 장군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렸다. 이 지사는 추모사에서 “백선엽 장군의 삶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던 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역사였으며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의 단단한 초석이 되셨다”고 말했다. 추모식이 열린 다부동은 6·25전쟁 당시 백 장군이 사단장으로 지휘했던 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을 격파하며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곳이다. 국군은 다부동 전투에서 1사단의 승리로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편 백 장군은 1952년 7월 최연소(32세)로 제7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이듬해 1월엔 만 33세에 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다. 정전회담 땐 국군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2020년 7월 10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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