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금에 열광할 때 銀밀히 세상을 움직인 금속
화폐로 세계를 좌지우지한 ‘은’콜럼버스 이전엔 금보다 비싸현재는 55% 이상 산업서 사용은의 가치 결코 퇴색되지 않아
금목걸이를 차고 으스대는 사람은 있어도 은목걸이를 자랑하는 이는 드물다. 금값은 주목받지만 은값은 관심이 덜하다. 하지만 은이 금보다 훨씬 잘나가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은을 원했고, 그래서 많은 피가 흘렀다.
독일 역사학자 틸만 벤디코프스키는 수백 년 은의 역사를 따라간다. 은이 중세와 근대를 움직이고 무역과 경제를 뒤흔든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소개한다. 아니, 은이 도대체 어떤 금속이기에.
은은 금보다 단단하지만 구리보다 무르고 유연하다. 질기면서도 쉽게 늘리거나 펼 수 있다. 탄성력도 좋다. 이런 고유의 성질 덕에 은괴로 유통됐다. 배로 운반한 뒤 이를 받아 바로 은화로 주조하기 수월했다. 은은 화폐 역할을 부여받았다. 은이 금을 넘어 전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던 이유다.
은은 중세까지만 해도 사치품이었다. 실제로 손에 쥐어 본 사람은 극소수였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고 나서야 은은 세계로 뻗어 나간다. 은이 대량으로 채굴되면서 비극도 시작됐다. 스페인 병사들에 붙어 있던 병원체에 아메리카 원주민은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은에 혈안이었던 스페인의 무자비한 학살도 이어졌다. 짧은 기간 원주민들이 대거 목숨을 잃었다. 저자에 따르면 1500년경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 인구는 약 225만명이었지만 60년 만에 50만명으로 급감했다.
1542년 스페인령이 된 페루의 포토시는 막대한 은이 발견되면서 환락과 쾌락의 도시이자, 죽음의 도시가 됐다. 페루산 은의 90%, 한때는 전 세계 유통량의 40%에 이르는 은이 이곳에서 생산됐다. 수많은 이들이 한탕을 노리고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실버러시’였다. 은광석 채굴과 제련은 고된 노동이었다. 수은과 결합한 뒤 다시 분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유해한 증기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 좁은 탄광 속에서 은을 캐다 목숨을 잃는 광부들도 부지기수였다.
은이 넘쳐나면 물가는 크게 출렁였다. 1598년 6월 스페인에서 보낸 은괴 130만개와 함께 대량의 은화가 이탈리아 제노바에 도착했을 때가 그랬다. 시중에 현금이 넘쳐나고 돈의 가치가 대폭락했다. 물가가 크게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유럽 전역을 덮쳤다. 16세기 동안 유럽 물가는 400%나 상승했는데, 가장 큰 원인은 은의 공급과잉이었다.
그러나 은의 공로 또한 무시할 순 없다. 스페인은 1565년 마닐라를 식민지 삼고, 이를 교두보로 중국 시장에 접근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금보다 은이 더 비쌌다. 유럽에서 인기를 끌던 비단, 차 등이 은을 타고 건너갔다. 은은 이렇게 아시아와 아메리카, 유럽을 잇는 교역로를 놨다.
은의 역사를 따라가는 내내 저자는 은의 뒤에 숨은 인간의 탐욕을 짚어낸다. 은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었고, 장식품이자 사치품이었다. 노예의 몸값이었고, 노동자의 임금이었으며,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의 힘이었다.
공급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19세기 말에 은은 힘을 잃었다. 은이 넘쳐나자 인도는 1893년 법으로 루피화의 사적 주조를 금지했다. 이는 금본위제로 가는 발판이 됐다. 유럽과 미국도 이어 금본위제로 전환했다. 금과 은의 지위가 역전됐다. 더 이상 은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상황이어서 20세기 들어 은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꺾이면서 그 가치도 추락했지만, 은은 이제 다른 분야에서 각광받는다. 장신구나 은제품에 쓰이는 비율은 22% 정도이고, 절반 이상인 55%가 산업 쪽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은이 앞으로 산업 분야에서 더 주목받을지, 금과 암호화폐 등에 밀려 가치가 더 떨어질지 예측하긴 어렵다. 그러나 지난 수백년 동안 은의 역사를 돌아본 저자는 단언한다. “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