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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길리 대관식, 빙속 24년 만에 무관… 이젠 세대교체만이 답

    김길리 대관식, 빙속 24년 만에 무관… 이젠 세대교체만이 답

    쇼트트랙 메달 7개… 차세대 절실2관왕 김길리, 선수단 MVP 선정빙속 은퇴 이승훈 빈자리 못 메워女 하프파이프 최가온 설상 첫 金스노보드는 66년 만에 최고 성적 세대교체가 없으면 생존을 기약할 수 없다. 한국 동계스포츠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세대교체라는 무거운 숙제를 확인했다. 여자 쇼트트랙은 김길리(22·성남시청)가 2관왕에 오르며 메달 행진을 이어간 반면, 이승훈(38)이 은퇴한 빈자리를 메우지 못한 스피드스케이팅은 24년 만에 빈손으로 동계올림픽을 마쳤다. 최가온(18·세화여고)과 유승은(18·성복고) 등 황금세대가 등장한 스노보드는 한국의 주력 종목으로 떠올랐다. 한국 쇼트트랙은 23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동계올림픽에서 7개의 메달(금 2, 은 3, 동 2)을 따냈다. 여자부 에이스 김길리는 금메달 2개(3000m 계주·1500m), 동메달 1개(1000m)로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2관왕에 올랐고, 현지 취재기자단 투표에서 80% 이상의 득표율로 한국 선수단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최민정(28·성남시청)이 올림픽 은퇴를 선언했고, 노도희(31·화성시청), 이소연(33·스포츠토토), 심석희(29·서울시청) 역시 선수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김길리와 함께 금맥을 이어갈 차세대 발굴이 절실하다. 19세 임종언(고양시청)이 에이스를 맡은 남자부도 12년 만에 ‘노골드’로 물러났다. 스피드스케이팅은 22일 매스스타트에서 탈락하며 무관을 확정했다. 한국 빙속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24년 만이다. 기대를 모은 여자부 이나현(21·한국체대), 김민선(27·의정부시청)과 남자부 김준호(31·강원도청) 모두 쓴 잔을 삼켰다. 4년 전 베이징에서 은 2개, 동 2개를 따냈던 빙속 대표팀은 지난해 10월 이승훈이 은퇴한 뒤 길을 잃은 모양새다. 올림픽 메달 6개(금 2, 은 3, 동 1)를 보유한 이승훈은 “선수층이 두껍지 않아 위기를 맞았다. 신체 조건에 맞춘 훈련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노보드는 동계올림픽 출전 66년 만에 최고 성적을 거두며 희망의 등불을 비췄다. 여자 하프파이프 최가온이 한국 스노보드 종목 최초로 금메달을 품었고, 남자 평행대회전 김상겸(37·하이원)과 여자 빅에어 유승은이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더했다. 고등학생인 최가온, 유승은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국내에 에어매트 등 훈련장이 마련되지 않으면 반짝 활약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어매트는 실전 경기장과 유사한 형태의 시설로 눈 없이 공중 동작을 연습할 때 사용된다. 김수철 스노보드 대표팀 감독은 “환경이 곧 설상 종목 전체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 뇌에 들어찬 개구리, 버섯으로 변한 친구… 골때리는 시의 뒷맛

    뇌에 들어찬 개구리, 버섯으로 변한 친구… 골때리는 시의 뒷맛

    예측을 불허하는 55편의 시 수록하나의 연으로만 구성된 토막글넘쳐나는 언어유희에 웃다가도 책장을 덮으면 강렬한 잔상 남아 책을 읽는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무수한 ‘방해 공작’이 펼쳐진다. 성공적인 독서를 위해 수많은 ‘예측’과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글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하기,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믿기. 이것으로 독자는 무사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다. 시(詩)는 반대다. 시는 독자의 예측을 깨고 결단을 배반한다.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독자의 뇌리에 강한 잔상을 남긴다. 그리고 독자는 지금껏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세계를 의심하게 된다. 차성환(48)의 새 시집 ‘초절임 생강’이 그렇다. 시인과 독자가 공유한다고 생각됐던 현실의 법칙을 깨뜨린다. 속된 말로 ‘골 때리는’ 시집이다. 아니, 골(骨)을 때리는 걸 넘어 아예 골을 부숴버린다고 해야 할까. 어안이 벙벙해진 독자에게 다가가 시인은 자기만 알고 있던 비밀과 슬픔을 조용히 들려준다. “내가 소였을 때는 늘 딱딱한 발굽으로 대지를 딛고 서 있었지. 여물을 먹다가도 발굽을 땅에 구르고 주인이 부드럽게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도, 축사에 따스한 붉은빛이 기분좋게 번지는 황혼 무렵에도 나는 이 발굽으로 대지에 노크를 했지. 그땐 내 영혼이 살아 있는 것 같았어. 내 유일한 기쁨이었지. 그런데 죽어서 재킷이 되고 나니까 알량하고 경박하게 허공에 떠돌아다니고 있어. 나는 바닥이 없어. 질 좋은 가죽구두가 되고 싶었는데, 걸을 때마다 울려퍼지는 묵직한 굽소리와 대지의 감각에 마음껏 취해 이 굽이 닳아서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고 싶었는데.”(‘가죽 재킷’ 부분) 소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그 가죽은 인간을 위한 ‘가죽 재킷’이 된다. 그러나 소가 슬픈 건 단지 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딛고 서 있을 ‘바닥’이 사라져서다. 대지에 우뚝하게 서 있을 ‘가죽구두’가 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바닥에 발을 딛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가죽 재킷은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을 형상화하는 것 같다. ‘정처 없음’의 슬픔. 그는 땅에 힘껏 발을 구르던, 자기가 ‘소’였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때는 이 세상에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리로써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빵이다 선언을 하자 지나가던 제빵사가 뻥치지 말라며 내 몸에 식칼을 꽂았다 나는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다음날 나는 멀쩡한 빵으로 다시 태어났다 기뻐서 뛰어다니다가 막 오븐에서 나온 빵틀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두개골이 박살났다 그래서 죽었다 다음날 나는 진짜 빵이 되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만히 누워 누군가 날 먹어버리길 기다리는 조신한 빵이 되었다”(‘빵’ 전문) 이번 시집에 실린 55편의 시는 모두 하나의 연으로 구성됐다. 행갈이 없는 토막글은 저마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빵’과 같은 시를 읽고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주 난감하다. 화자는 왜 빵도 아니면서 왜 빵이라고 자처하는가.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해서 제빵사에게 죽임을 당하는가. 칼을 맞은 것도 서러운데 왜 죽지도 못하고 빵이 되는가. 이윽고 ‘진정한’ 빵이 됐을 때 그는 기쁜가, 슬픈가. 죽었나 살았나. 시인이 단단히 묶어놓은 매듭은 ‘정상인’(?)의 머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이다. 단칼에 베야 한다. 시인이 벌이는 게임에 놀아나지 마시라. 그저 빵과 뻥 사이에서 벌어지는 즐거운 언어유희를 만끽하면 된다. 가죽 소파에 앉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버섯으로 변해버리는 세계(‘버섯’), 머릿속에 뇌 대신 개구리가 들어차 있는 세계(‘개구리의 맛’)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그곳은 현실보다 더 살 만한 곳일까. 시인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온갖 잡동사니와 의미로 가득 차 있다. ‘뇌에 개구리가 들어있는 것’은 그걸 견딜 수 없는 상태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로 웅성거리는. 개구리가 뇌에 터질 듯이 차오르면 어느 순간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세상의 사물이 정해진 용도와 쓰임에서 풀려나 다른 것으로 변신하는. 그때가 바로 ‘친구가 갑자기 버섯으로 변할 때’다. 어디가 살 만하고 자시고도 없다. 어느 쪽도 다 견딜 수 없는 세계니까.”
  • “이민 가고 싶다” 황혼육아 고민 토로에 김영희 일침…실제 ‘이 질환’ 높인다 [라이프]

    “이민 가고 싶다” 황혼육아 고민 토로에 김영희 일침…실제 ‘이 질환’ 높인다 [라이프]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24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손주를 정기적으로 돌보는 조부모들이 우울증 증상을 겪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조부모보다 유의미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란 테헤란에 위치한 샤히드 베헤슈티 의과대학 연구팀이 BMC 심리학 저널에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손주 돌봄이 조부모에게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주는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400쌍 이상의 노부부를 대상으로 손주들을 얼마나 자주 돌보는지, 우울감을 겪는지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50대 젊은 조부모들 사이에서는 손주 돌봄과 우울증과의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60대 연령층에서는 위험도가 크게 증가했다. 특히 손주가 6세 미만인 경우 우울증 위험이 더 높아졌다. 연구진은 “60대 이상 고령층이 어린 손주를 돌보는 것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해 정서적·육체적으로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노년층은 은퇴와 소득 감소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손주를 돌보면서 재정적 부담 또한 늘 수 있어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주 돌봄, 정신적 안정에 도움” 연구도일반적으로 손주를 돌보는 활동은 세대 간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긍정적 요인으로 여겨져 왔다. 국내외 일부 연구에서도 손주 돌봄이 노년기 사회적 교류 확대와 정신적 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결과가 있었다. 국내 연구진이 2019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45세 이상 478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우울증 유병률이 손주 육아 중인 사람은 25%,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40%로 나타났다. 영국 노인복지단체 에이지 UK는 “손주 돌봄이 노년 부부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하고 외로움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손주 돌봄이 오히려 조부모의 정신적 스트레스·우울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영희 “막연한 희생은 없어…돌봄 비용 드려야”지난달 2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말자쇼’에서 개그맨 김영희는 황혼 육아 등 가족에 대한 고민을 1000여명의 방청객들과 함께 나눴다. 이날 방송에서는 ‘워킹맘’인 딸을 대신해 3살 손주를 돌보고 있는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됐다. 사연자는 “딸이 둘째도 맡아달라는데 이민이라도 가야 할까”라며 황혼 육아의 부담을 호소했다. 이에 김영희는 방청객을 향해 “황혼 육아 하시는 분 있냐”고 질문했고, 많은 방청객들이 손을 들었다. 이어 김영희가 “돈을 받으시냐”고 묻자 대부분이 “받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영희는 “내 자식이 낳은 손주니 덜렁 안고 오면 안 봐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사실 황혼 육아를 하는 분들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다시 돌보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차라리 밖에서 더 위험하고 힘든 일 하는 게 낫다. 육아는 열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구박 받는다. 그것만큼 서러운 게 없다”면서 “그렇기에 돈을 받아야 한다. 그냥 ‘딸이니까, 아들이니까’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희는 자신도 친정엄마가 주양육자라고 털어놓으며 “양육 방식이 안 맞아 다투기도 하지만 돈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입이 없어 힘든 시기에 어머니께 돈을 30만원 덜 드려도 되냐고 양해를 구했던 일화도 공개했다. 김영희는 “어머니가 흔쾌히 ‘그래라’라고 하더니 ‘네 딸한테 30만원어치 사랑을 덜 주면 된다’고 하시더라”면서 “그때 엄마가 친모인 줄 알았다. 바로 30만원을 더 채워드렸다”고 말해 웃음을 유발했다. 또 다른 사연자는 “며느리가 셋이고 손주가 다섯명”이라며 “주말에는 쉬어야 하는데 맨날 호출을 당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김영희는 “그러면 안 된다. 매달 용돈을 받고 출장비까지 받아야 한다”며 부모 자식 간에도 막연한 희생은 없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유아교육 전문가는 “조부모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단순한 정서적 지원뿐 아니라 경제적 보상이 필요하다”며 조부모들의 육아 스트레스, 생활 부담, 경제적 압박과 같은 요인을 완화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아파트 관리실 직원들에게 호텔 식사 대접…” 故 안성기 생전 미담에 ‘뭉클’

    “아파트 관리실 직원들에게 호텔 식사 대접…” 故 안성기 생전 미담에 ‘뭉클’

    지난 5일 향년 74세로 별세한 ‘국민배우’ 고(故) 안성기가 생전 거주하던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극진히 챙겼다는 미담이 전해져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지난 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 안성기 배우님 인품’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네티즌 A씨는 “한남더힐에 거주할 당시, 1년에 한 번씩 힐튼호텔로 관리사무소 직원 모두를 초청하셔서 식사를 대접하셨다고 한다”며 “안성기 배우는 정장을, 배우자 분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직원 한 명 한 명과 사진 촬영까지 해주셨다고 한다”고 적었다. A씨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며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으로 추측된다. 작성자는 “유명 인사가 팁을 준 이야기, 선물 세트를 준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이렇게 별도의 자리를 만들어 챙겨 준 사연은 처음 듣는다”며 “고 안성기 배우님, 좋은 곳으로 가셔서 더 많은 사랑을 받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네티즌 B씨는 해당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 생전 안성기를 만났던 일화를 전했다. B씨는 “오래전 부산국제영화제 초기에 해운대에서 김해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는데, 안성기 배우님이 타고 계셨다”면서 평범한 정장 차림에 가방 하나 들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B씨는 “다른 배우들은 고급 밴에 매니저를 대동하고 다니던데, 정말 비교가 되더라”면서 “하늘나라에서도 좋은 배우로 활동하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야기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안성기의 소속사는 안성기에 대해 “배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책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안성기는 5일 오전 9시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30일 심정지 상태로 서울 순천향대병원 응급실에 이송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아왔다. 고인의 장례는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은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재발해 투병 중이었다. 투병 소식은 지난 2022년 한 행사에 그가 이전과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 뒤 알려졌다. 1952년 1월 1일생인 고인은 1957년 영화 ‘황혼열차’를 통해 아역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만다라’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어우동’ ‘황진이’ ‘남부군’ ‘하얀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미술관 옆 동물원’ ‘취화선’ ‘실미도’ ‘한반도’ ‘라디오스타’ ‘화려한 휴가’ ‘부러진 화살’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 등 수많은 대표작을 통해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정부는 고인에게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 국민커피 맥심 ‘38년 동행’…동서식품, 故 안성기 추모

    국민커피 맥심 ‘38년 동행’…동서식품, 故 안성기 추모

    별세한 배우 고(故) 안성기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동서식품이 추모의 뜻을 전했다. 동서식품은 6일 “안성기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안성기님은 커피 한 잔이 전하는 일상의 여유와 따뜻함을 소비자에게 전달해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함께해 주셨던 시간에 감사드리며 고인의 뜻을 오랫동안 기억하겠다”고 했다. 안성기와 동서식품간의 인연은 1983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졌다. 안성기는 38년 동안 동서식품 커피 브랜드 맥심 모델로 활동했는데, 국내 광고 단일 브랜드 최장수 모델이다. “커피, 이제는 향입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마시고 싶습니다” 등 맥심을 대표하는 광고 카피는 안성기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됐다. 안성기는 지난 5일 오전 9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아역 시절 포함 영화 200여편에 출연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깊고 푸른 밤’ ‘칠수와 만수’ ‘고래사냥’ ‘투캅스’ ‘실미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명작에 나왔다. 특히 놀라운 인품으로,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이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을그리다다.
  • ‘천의 얼굴’ 안성기, 시네마 천국으로 떠나다

    ‘천의 얼굴’ 안성기, 시네마 천국으로 떠나다

    1957년 ‘황혼열차’ 아역으로 데뷔‘바람불어 좋은날’로 존재감 알려거지부터 대통령까지 170편 열연1980년~2010년대 40여차례 수상李대통령 “품격 보여준 삶에 경의”영화산업 기여 금관문화훈장 추서 노숙인부터 대통령까지. 능글맞은 형사부터 고뇌에 찬 군인까지. 영화배우 안성기의 얼굴은 한국인의 ‘페르소나’ 그 자체였다. 지난 69년간 1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안성기는 ‘국민배우’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인생 대부분을 영화인으로 살며 한국 영화사를 관통했던 안성기가 생을 마쳤다. 74세. 병마와 싸우면서도 은막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놓지 않았던 안성기는 이제 하늘의 영화관에서 관객과 만나야 한다. 안성기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곧 재발해 투병 생활을 해 왔다. 회복에 전념하면서도 조만간 배우로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안성기의 연기 인생은 한국 영화사의 격동과 궤를 같이한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한국 영화사의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주연상을 받은 유일한 배우인 안성기는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을 40여 차례 수상했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부친 안화영씨가 영화감독 김기영과 친구였는데, 이 인연으로 ‘황혼열차’(1957)에 아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70여편의 영화에서 아역으로 활약했다. 김기영의 1959년작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받았다. 학업에 전념하고자 중학교 3학년 때 찍은 ‘젊은 느티나무’(1968)를 끝으로 연기를 그만뒀다. 동성고를 졸업한 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했다. 전공인 베트남어를 살려 취업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안성기는 연기를 그만둔 지 10년 만에 영화계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됐다. 김 감독의 1978년작 ‘병사와 아가씨들’에 출연했다. 아역의 이미지를 벗고 어엿한 영화인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날’(1980)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지방에서 상경해 말을 더듬는 중국집 배달부 덕배를 연기했는데 무기력한 침묵을 강요당하는 청춘을 대변했다. 그를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과장되거나 인위적이지 않은 절제되고 담백한 연기 덕분이었다. 또한 그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 승려(‘만다라’), 거지(‘고래사냥’), 일용직 노동자(‘칠수와 만수’), 뇌성마비 청년(‘안녕하세요 하나님’), 빨치산(‘남부군’), 베트남전 참전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소설가(‘하얀전쟁’), 소심한 샐러리맨(‘남자는 괴로워’), 대통령(‘피아노 치는 대통령’), 개그맨(‘개그맨’), 고려시대 무사(‘무사’), 육군 장교(‘실미도’), 매니저(‘라디오 스타’)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캐릭터를 연기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배창호 감독·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아 국민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운구는 배우 이병헌·이정재·정우성·박철민 등이 맡고, 조사는 배창호 감독과 정우성이 낭독한다.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이 대통령은 “‘영화를 꿈으로, 연기를 인생으로 살아왔다’는 말씀처럼 선생님께 연기는 곧 삶이었고, 그 삶은 수많은 이들의 위로와 기쁨 그리고 성찰의 시간이 돼 줬다”며 “화려함보다 겸손을, 경쟁보다 품격을 보여 주신 선생님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한국 영화 성장과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을 기려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 “영원히 기억할 것” 故 안성기에 금관문화훈장…정우성·이정재 직접 조문객 맞아

    “영원히 기억할 것” 故 안성기에 금관문화훈장…정우성·이정재 직접 조문객 맞아

    정부가 5일 별세한 배우 안성기에게 한국 영화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오후 6시 50분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훈장을 전달했다. 최 장관은 훈장 전달과 조문을 마친 뒤 “한국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배우 안성기 선생님께서 이렇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나신 데 대해 깊은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언제나 늘 낮은 곳부터 챙겨주셨던 우리들의 국민 배우 안성기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 ‘칠수와 만수’부터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우리 마음 속에 이렇게 기억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하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문체부는 “고인은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보여주며 한국영화와 생애를 함께해 온 ‘국민배우’로 평가받아 왔다”며 “1990∼2000년대 한국영화의 대중적 도약과 산업적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한국영화의 사회적·문화적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고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고인은 2013년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굿 다운로더 캠페인 위원장,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등의 활동을 하며 사회봉사와 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고인은 ‘고래사냥’, ‘투캅스’, ‘실미도’ 등 69년간 17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국민배우’라는 칭호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완치했지만, 암이 재발해 투병해왔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다가 이날 오전 별세했다. 안성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영정은 구본창 사진작가가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 당시 찍은 사진으로, 안성기의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인 것으로 전해졌다. 60년지기인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40년 연기 파트너 박중훈,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박정자, 태진아, 최수종, 이정재, 정우성, 박상원, 이기영, 권상우, 신현준, 송승헌, 김동현, 거룡, 이준익 감독, 임진모 평론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빈소를 직접 찾았다. 특히 안성기와 같은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서 가족처럼 함께해 온 이정재와 정우성은 이날 빈소를 찾은 조문객을 맞고 조문을 마친 이들을 배웅하며 상주와 다름 없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용필은 “지난번에 완쾌됐다고 전화가 와서 너무 좋았는데 또 이렇게 입원했다고 하니 심각하단 생각을 했다”며 “그땐 ‘용필아, 나 다 나았어’ 그랬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고인을 향해 “너무 아쉬움 갖지 말고 저 위에 가서라도 남은 연기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잘 가라고, 가서 편안히 쉬라고 얘기하고 싶다. 성기야, 또 만나자”고 전했다. 박중훈은 “40년 동안 선배님하고 같이 영화를 찍고 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자분과 함께 있으면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며 “선배님이 영화계에 끼친 영향 또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 주신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동호 전 위원장은 “안타깝고 슬프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부산국제영화제 1회 때부터 제가 한 1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석해줘서 신세를 많이 졌던 배우”라고 회상했다. 이어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스크린쿼터 등 때도 앞장서서 영화계를 위해 왔고, 신영균재단 이사장으로서 영화 영재를 키우는 데 힘을 보탰다”며 “하늘나라에서도 한국 영화를 보살펴 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임권택 감독은 “많이 아쉽고, 또 아쉽고 그렇다”며 “영정 보니 ‘내가 곧 따라갈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수만 프로듀서, 배우 이병헌, 전도연, 임하룡 등은 빈소에 근조화환을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이영애, 김혜수, 황신혜, 고현정, 배철수, 윤종신, 정보석, 고경표, 이시언, 변기수, 한지일 등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며 애도를 표했다.
  • 李 대통령 “안성기 선생님, 경쟁보다 품격 보여줘…경의 표한다”

    李 대통령 “안성기 선생님, 경쟁보다 품격 보여줘…경의 표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향년 74세로 별세한 배우 안성기를 추모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 영화사와 문화예술 전반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안성기 선생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영화를 꿈으로, 연기를 인생으로 살아왔다’는 말씀처럼 선생님께 연기는 곧 삶이었고, 그 삶은 수많은 이들의 위로와 기쁨, 그리고 성찰의 시간이 되어주었다”고 고인을 돌이켰다. 이어 “‘관객과 시청자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는 소망처럼 ‘믿고 보는 배우’로,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배우로, 이웃 같은 친근한 배우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69년의 연기 인생 동안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던 선생님의 뜨거운 열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면서 “화려함보다 겸손을, 경쟁보다 품격을 보여주신 선생님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또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동과 울림으로 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시리라 굳게 믿는다”면서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벌써 그립다”라고 덧붙였다. 안성기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집중 치료를 받아왔으며, 입원한 지 6일 만인 이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서 아역배우로 데뷔한 고인은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간 1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인정사정 볼것 없다’, ‘투캅스’, ‘라디오스타’, ‘실미도’ 등을 흥행시키며 ‘국민 배우’로 사랑받았다. 안성기는 2019년부터 혈액암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 이 사실을 털어놨다.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암이 재발해 다시 치료받아왔다. 투병 중에도 영화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등에 출연했으며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등에 참석했다. 고인의 장례는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된다. 소속사는 “명예장례위원장은 신영균, 배창호 감독, 이강섭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신언식,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등 4인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면서 “이정재와 정우성 등 영화인들이 운구를 맡는다”고 설명했다. 안성기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 엄수된다.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 안성기의 얼굴은 한국인의 얼굴이었다…69년 ‘국민배우’, 하늘로

    안성기의 얼굴은 한국인의 얼굴이었다…69년 ‘국민배우’, 하늘로

    자유로운 영혼의 거지에서 준엄한 대통령까지. 능글맞은 형사에서 고뇌에 찬 군인까지. 영화배우 안성기의 얼굴은 한국인의 ‘페르소나’ 그 자체였다. 지난 69년간 170여편의 영화에서 우리를 울고 울렸던 안성기에게 ‘국민배우’라는 칭호는 절대로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인생 대부분을 영화인으로 살며 한국영화사를 관통했던 그가 생을 마쳤다. 74세. 병마와 싸우면서도 연기를 향한 의지를 놓지 않았던 안성기는 이제 하늘의 영화관에서 관객과 만나야 한다. 안성기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안성기는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재발이 확인됐다. 2022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회복에 전념하면서 최근까지도 조만간 배우로서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주변에 알리기도 했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부친 안화영씨가 영화감독 김기영과 친구였는데, 이 인연으로 ‘황혼열차’(1957)에 아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70여편의 영화에서 아역으로 활약했다. 김기영의 1959년작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받았다. 학업에 전념하고자 중학교 3학년 때 찍은 ‘젊은 느티나무’(1968)를 마지막으로 연기를 그만뒀다. 동성고를 졸업한 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했다. 전공인 베트남어를 살려 취업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안성기가 연기를 그만둔 지 10년 만에 영화계로 다시 눈을 돌린 계기였다. 김기 감독의 1978년작 ‘병사와 아가씨들’에 출연했다. 아역의 이미지를 벗고 어엿한 영화인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이다. 중국집 배달부로 힘들게 살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청년 덕배 역으로 당대 청춘들에게 큰 희망을 줬다. 이 작품으로 안성기는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받았다. 역할을 가리지 않는 ‘천의 얼굴’이었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에서는 승려로 분했다.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1984)에서는 거지를 연기하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과 ‘하얀전쟁’(1992)에서는 각각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베트남전 참전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소설가로 변신했다. 세월이 흐르고 중후한 매력이 더해지면서 두 차례나 대통령으로 분했다. 전만배 감독의 ‘피아노 치는 대통령’(2002),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2006)에서 각각 상반된 이미지의 대통령을 표현했다. 코미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에서는 부패에 찌든 조윤수 형사를 연기해 웃음을 줬다. 당시 콤비로 호흡을 맞춘 박중훈과의 인연은 이후로도 이어진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 형사 역을 맡은 박중훈과 벌인 액션은 한국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2006)에서 두 사람은 퇴물이 된 가수(박중훈)와 그의 곁을 지키는 매니저(안성기)로 다시 합을 맞췄다. 이 영화로 안성기와 박중훈은 함께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라디오 스타’는 안성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출연작이라고도 한다. 한국영화사 최초 ‘천만 영화’로 등극했던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2003)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북파 공작원을 양성하는 684부대의 지휘관 최재헌 준위를 연기했다. 그의 명대사 “날 쏘고 가라!”는 2000년대 초 방송가를 휘어잡은 명대사였다. 마지막 영화는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 당시 혈액암 투병 중이었음에도 혼을 실은 연기를 선보였다.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을 40여차례 받았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은 배우였다는 증거다.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과 ‘하얀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평생 구설수 없이 모범적인 모습으로 후배에게 귀감이 됐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도 힘썼다. 1992년부터 20년 넘도록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자살예방 캠페인 365생명사랑운동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2013년 대중예술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2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배창호 감독·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국민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운구는 배우 이병헌·이정재·정우성·박철민 등이 맡고, 조사는 배창호 감독과 정우성이 낭독한다. “배고픔은 변함이 없어요. 늘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싶고, 영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싶고, 또 그렇게 찍은 영화로 관객을 만나고 싶어요. 영화는 늘 새로움의 연속이라 설레고 기대됩니다.”(2016년 영화 ‘사냥’ 개봉 당시 한 인터뷰에서)
  • 안성기 떠난 뒤 올라온 한 장의 사진…큰아들 SNS에 쏠린 시선

    안성기 떠난 뒤 올라온 한 장의 사진…큰아들 SNS에 쏠린 시선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안성기(74)가 5일 별세한 가운데, 장남 A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물이 고인의 마지막 시간을 떠올리게 하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 서양화가이자 설치미술가인 A씨는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안성기의 주연작인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사진집 이미지를 게시했다. 별도의 글은 덧붙이지 않았지만, 사진 한 장만으로도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정서를 전하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A씨는 지난 2일 투병 중인 안성기의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해 아버지 곁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안성기는 생전 해당 영화와 관련해 1995년 12월 프리미어 창간호 인터뷰에서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아들의 아역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아이의 연기력이 걱정돼 처음에는 거절했다”며 “결국 한 번쯤은 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51년생인 안성기는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이후 ‘투캅스’ ‘퇴마록’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미도’ ‘라디오 스타’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60여년간 한국 영화의 중심을 지켜온 배우다.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거쳐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암이 재발해 최근까지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씨와 두 아들이 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회는 원로 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을 맡고,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배창호 감독, 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구성됐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이다.
  • ‘국민 배우’ 안성기, 혈액암 투병 중 74세로 별세…영화인장으로 배웅

    ‘국민 배우’ 안성기, 혈액암 투병 중 74세로 별세…영화인장으로 배웅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안성기의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안성기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안성기는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의식불명 상태로 집중 치료를 받아왔으며, 입원한 지 6일 만인 이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서 아역배우로 데뷔한 고인은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간 1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인정사정 볼것 없다’, ‘투캅스’, ‘라디오스타’, ‘실미도’ 등을 흥행시키며 ‘국민 배우’로 사랑받았다. 안성기는 2019년부터 혈액암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 이 사실을 털어놨다.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암이 재발해 다시 치료받아왔다. 투병 중에도 영화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등에 출연했으며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등에 참석했다. 소속사는 “안성기는 연기에 대한 깊은 사명감과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와 함께해왔다”면서 “그의 연기는 언제나 사람과 삶을 향해 있었으며, 수많은 작품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넘어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해줬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배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책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선후배 예술인들과 현장을 존중해 온 진정한 의미의 ‘국민배우’였다”며 “안성기가 남긴 작품과 정신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의 장례는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된다. 소속사는 “명예장례위원장은 신영균, 배창호 감독, 이강섭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신언식,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등 4인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면서 “이정재와 정우성 등 영화인들이 운구를 맡는다”고 설명했다. 안성기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 엄수된다.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 배우 안성기, 응급실 이송… 현재 중환자실 “상태 위중”

    배우 안성기, 응급실 이송… 현재 중환자실 “상태 위중”

    배우 안성기(73)가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안성기의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안성기는 전날 오후 4시쯤 자택에서 음식물을 먹다가 목에 걸린 채로 쓰러졌으며,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자택 인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안성기는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며, 위중한 상태로 전해졌다. 소속사 측은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돼 현재 의료진의 조치 하에 치료를 받고 있다”며 “정확한 상태 및 향후 경과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판단을 토대로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배우와 가족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2020년대 초까지 60여년간 1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인정사정 볼것 없다’, ‘투캅스’, ‘라디오스타’, ‘실미도’ 등을 흥행시키며 ‘국민 배우’로 사랑받았다. 안성기는 2019년부터 혈액암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 이 사실을 털어놨다.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암이 재발해 다시 치료를 받아왔다.
  • 마지막 말은 “보고싶다 사랑한다”…故 김지미에 ‘금관문화훈장’

    마지막 말은 “보고싶다 사랑한다”…故 김지미에 ‘금관문화훈장’

    정부가 지난 7일 미국에서 별세한 고(故) 김지미 배우에게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4일 오후 2시 김지미의 추모 공간이 마련된 서울 충무로 서울영화센터를 찾아 고인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을 유족 대표에게 전달했다. 고인의 딸 최영숙씨는 현지에서 장례 절차 등을 밟고 있어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최씨는 고인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보고 싶다. 사랑한다”였다고 한국영화인협회를 통해 전했다. 문체부는 “고인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한 시대의 영화 문화를 상징하는 배우였다”며 “한국 영화 제작 기반 확충과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한국 영화 생태계 보호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은 “김지미 배우는 우리 영화계 후배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과감한 잔다르크였다”며 “한류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 한국 영화 산업의 토대를 만들어낸 선배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제작자, 아티스트였다”고 회고했다. 김지미는 지난 2016년 10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별세한 고(故) 이순재 배우에게도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이외에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배우로는 2021년 윤여정, 2022년 이정재가 있다. 김지미는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해 700여편의 작품을 남긴 한국 영화계 대표 스타 배우다. ‘토지’(1974), ‘길소뜸’(1985) 등 수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한국영화의 성장기를 이끌었다. 그는 멜로·사회극·문학 작품 영화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여성 중심 서사가 제한적이던 시기에도 그는 폭넓은 역할을 소화하며 스크린 속 여성 인물상의 지평을 넓혔다.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 주요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경력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인정받은 배우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기 활동을 넘어 제작 현장에서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김지미는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자로 나서 한국영화 제작 기반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탰다. 작품 선택과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배우와 제작자가 함께하는 모델을 보여줬고, 한국영화가 산업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체 활동과 제도 개선을 향한 역할도 이어졌다. 그는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맡아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스크린쿼터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해 자국 영화 보호 장치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아울러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정책 논의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영화 생태계 보호와 제도적 기반 강화에 실질적인 역할을 해왔다.
  • 통산 득점·블로킹 퀸… 19년 ‘원클럽맨’ 한길… 그가 곧 V리그 역사[스포츠 라운지]

    통산 득점·블로킹 퀸… 19년 ‘원클럽맨’ 한길… 그가 곧 V리그 역사[스포츠 라운지]

    초등 4년 때 배구 코트 입문통산 득점 8116점 ‘남녀 1위’3m 높이 블로킹 ‘통곡의 벽’은퇴 후 지도자의 삶 열어둬“김연경 언니에 얘기했더니더 많이 뛰어라고만 하네요” “제가 이렇게나 길게 프로배구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돌이켜보니 나름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은퇴하는 순간까지 즐기는, 즐거운 배구를 하고 싶어요.” 지난 10일 전화 통화로 만난 양효진(36·현대건설)은 전날 페퍼저축은행전 출전에 따른 피로를 호소하며 “경기 다음날엔 아무것도 안 하고 최대한 누워있는 게 회복을 위한 루틴”이라고 했지만, 지나온 현역 인생을 되돌아보고 은퇴 이후의 삶을 그릴 때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또박또박하게 말을 이어갔다. 지난해 프로배구 여자부 V리그가 ‘배구 여제’ 김연경(37)의 은퇴 투어로 주목받았다면, 올해 배구 팬들은 ‘블로퀸’ 양효진의 활약과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2007년 프로 코트에 혜성 같이 등장했던 대형 신인 양효진은 어느덧 프로 19년차, 선수로는 은퇴를 바라보는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190㎝ 신장에서 나오는 3m 높이 블로킹 벽은 상대 공격수에겐 ‘통곡의 벽’이 됐고, 양효진이 걸어온 길이 곧 남녀부를 통틀어 V리그의 역사가 됐다. 양효진은 지난달 8일 김천 도로공사 원정 경기 2세트에서 이날 8번째 득점에 성공하며 2005년 출범한 V리그에 통산 8000득점 시대를 열었다. 11일 기준 그의 개인 통산 득점은 8116점으로 여자부 득점 2위 박정아(페퍼저축은행·6320점)와 남자부 통산 1위 레오(현대캐피탈·6936점)의 기록을 압도한다. 박정아와 레오는 각 팀의 주공격수(아웃사이드 히터)인 반면 양효진은 네트 앞 수비가 주 임무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팀 공헌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통산 블로킹은 1674개로, 역시 남녀부 통합 1위를 달리고 있다. 양효진은 “데뷔하고 10년차 정도까지는 득점이나 블로킹 숫자에 의미를 두고, ‘올해는 몇 점은 넘겨야지’ 그러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만 집중하고 있다”면서 “8000 득점 돌파 때에도 새로운 기록까지 몇 점 남았는지 몰랐는데 팬들이 말해줘서 알았다. 경기 끝나고 숙소에서 후배들이 8000득점 기념 깜짝 케이크 파티를 해줘서 그때서야 실감이 나고 감동 받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어릴 때 꿈은 교사였다. 배구는 커녕 운동 자체에 관심이 없었고, 키는 또래보다 머리 하나 이상 컸지만 삐쩍 마른 허약체질이었다. 우월한 신체 조건에 눈여겨본 초등학교 선생님이 4학년 때 배구를 권하면서 처음 공을 만졌고, 중학교 때 운동을 접었지만 고교 시절 주변의 끈질긴 설득에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양효진은 은퇴 이후 ‘지도자의 삶’을 선택지에 올려뒀다. 그는 “선수로 잘하는 것과, 지도자로 선수를 잘 이끌어 내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 조심스럽다”면서도 “내가 선수들을 정말 잘 도와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 지도자에 도전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은퇴를 두고는 대표팀에서 여자 배구 황금기를 함께 견인했던 김연경과 자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김연경은 지난 4월 흥국생명의 통합우승(정규시즌·챔피언결정전)을 이끌고 코트를 떠났다. 양효진은 “(연경) 언니에게 은퇴 얘기를 하면 ‘넌 아직 쌩쌩한데 더 많이 뛰어라’는 대답만 한다”면서 “제가 언니보다 한 살 어린데도 그런다”며 웃었다. 말은 툭툭 하지만 가장 많은 고충을 들어주고, 마음에 힘을 주는 이가 김연경이라고 했다. 양효진은 각종 1위 기록보다는 ‘코트에서 참 열정적이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늘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들 덕분에 더 힘을 내고 행복하게 뛰고 있다. 팬들에게 받은 사랑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고 김지미 추모 공간, 서울영화센터에 마련…14일까지 운영

    고 김지미 추모 공간, 서울영화센터에 마련…14일까지 운영

    지난 7일 별세한 원로 영화배우 고 김지미를 추모하는 공간이 충무로 서울영화센터에 마련됐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오는 14일까지를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서울영화센터에 관련 공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서울영화센터 1층 로비에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헌화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고 생전 고인의 모습을 담은 LED 화면이 설치됐다. 서울영화센터에서는 고인의 출연작을 상영한다. 김지미는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해 700여편의 작품을 남긴 한국 영화계 대표 스타 배우다. 영화 ‘토지’(1974), ‘길소뜸’(1985) 등으로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지난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저혈압 쇼크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측은 미국 현지에서 화장이 끝났고 12일 고인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될 것을 고려해 별도의 영화인장은 치르지 않기로 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유튜브 한국고전영화채널을 통해 영화 ‘불나비’, ‘장희빈’, ‘티켓’, ‘춘향전’ 등 고인의 대표작 8편을 공개하며 고인을 기렸다.
  • 연기도 사랑도 인생도 뜨거웠다…  하늘의 별이 된 ‘은막 스타’ 김지미

    연기도 사랑도 인생도 뜨거웠다…  하늘의 별이 된 ‘은막 스타’ 김지미

    60년 동안 700편이 넘는 작품으로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은막의 여왕’ 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하늘의 별이 됐다. 그렇게 한국 영화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지미 배우가 지난 7일(한국시간) 오전 4시 3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85세. 고인의 직접적 사인은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인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 측은 미국 현지에서 화장이 끝났고 12일 고인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될 것을 고려해 별도의 영화인장은 치르지 않기로 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유튜브 한국고전영화채널을 통해 ‘불나비’, ‘장희빈’, ‘티켓’, ‘춘향전’ 등 고인의 대표작 8편을 공개하며 고인을 기렸다. 고인은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와 주체적인 삶을 사는 ‘신여성’의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당대 최고 미모로 손꼽혔던 데다 연기력도 뛰어나 팬들이 기억하는 모습도 다채롭다. 대학생 미혜(별아 내 가슴에, 1958)나 대지주 가문을 이끌어 가는 안주인(토지, 1974)이 되기도 했고,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수난(명자 아끼꼬 소냐, 1992)을 표현하기도 했다. 복수를 위해 남자를 유혹하는 팜므파탈(불나비, 1965)이나 궁중암투의 주인공(장희빈, 1961)이 되기도 했다. 1940년 충남 대덕군(현 대전)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 우연히 김기영 감독을 만나 길거리 캐스팅되면서 영화 ‘황혼열차’(1957)를 통해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듬해 ‘별아 내 가슴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워낙 인기가 높아 1년에 많게는 34편의 영화를 촬영하며 하루에도 몇 편씩 ‘겹치기 촬영’을 했다는 뒷이야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영화계에 전해진다. ‘토지’(1974)로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길소뜸’(1985)으로 다시 한번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을 4차례 하는 등 거침없고 자유로운 행보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18세였던 1958년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다가 4년 만에 이혼했다. 인기 배우 최무룡과 이혼할 때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최무룡의 기자회견 발언이 장안의 화제가 됐다. 나훈아와의 결혼 발표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1982년 사실혼 관계를 정리하고 헤어졌다. 1991년 심장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결혼했으나 2002년 다시 이혼했다. 배창호 감독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1960~70년대에는 전형적인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80년대 이후에는 사실적인 연기로 끊임없이 변신했다”면서 “사석에서는 소탈하고 솔직담백했고, 제작자로서 영화 스태프들도 두루 챙기는 등 자상하고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여걸’이었다. 통이 크고, 영화인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앞장서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면서 “단순한 배우를 넘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존재로 한국 영화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배우 김지미 별세…향년 85세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배우 김지미 별세…향년 85세

    1960~70년대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별세했다.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영화인협회는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다. 아직 빈소는 전해지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 1957년 고등학생 시절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이후 7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활약했다. 빼어난 외모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그는 ‘토지’(1974·김수용), ‘길소뜸’(1985·임권택) 등을 통해 거장들과도 호흡하며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하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는 등 작품 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영화계를 지켜왔다.
  • 산이 빚은 절경에 속세를 털어내다

    산이 빚은 절경에 속세를 털어내다

    험산 너머 평야와 바다벽지서 풍요가 느껴져하구로산 삼나무 숲엔천연기념물 500여 그루가모수족관도 가 볼 만해파리떼 유영이 장관만추 끝자락 보내면서모가미강서 뱃놀이도일본 야마가타현 두 번째 이야기, 쓰루오카시다. 야마가타시에 이어 야마가타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그래봐야 작은 소도시다. 그런데 희한하기도 하지. 일본의 벽지이면서도 못 먹고 못 산다는, ‘가련형’이란 느낌은 주지 않는다. 아마 험산 너머로 광활한 평야와 풍요로운 바다를 숨겨 놓은 덕이지 싶다. 첫 번째 목적지는 ‘일본 갈 결심’을 굳히도록 이끈 하구로산(羽黑山) 고주노토(五重塔)다. 이어 일본 토속 신앙 슈겐도의 본산인 산진고사이덴(三神合祭殿), 세계 최대 해파리 전시장인 가모수족관 등 쓰루오카 구석구석을 돌아볼 참이다. 몇 해 전, 한 외국 방송에서 본 기억 속 영상이다. 오층 목탑 위로 눈발이 날리고 있다. 단청은 없지만 그렇다고 수수한 것도 아니다. 날카롭게 솟은 처마 위로 하늘거리는 눈, 사위를 둘러싼 검푸른 삼나무 숲, 어딘가 일본스러운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느낌이었다. 요즘 흥행을 이어가는 일본 영화 ‘국보’의 여장남자 ‘온나가타’의 손사위를 닮았달까. ‘광클’ 끝에 찾아낸 하구로산의 고주노토. 지금 그 목탑을 보기 위해 ‘일본의 강원도’라는 야마가타의 산자락을 넘어가는 중이다. 야마가타현이 속한 도호쿠(東北) 지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홋카이도 바로 아래, 그러니까 혼슈 동북쪽 끄트머리 6개 현 중 하나다. 도호쿠엔 무려 500㎞에 달하는 오우(奧羽)산맥이 뻗어있다. 여기에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데와산잔(出羽三山)이 있다. 갓산(月山)과 유도노산(湯殿山), 그리고 하구로산으로 이뤄졌다. 일본 전통 토속 신앙인 신도에서 갓산은 전세, 유도노산은 내세, 하구로산은 현세를 관장하는 신이 머무는 곳이다. 일본의 다른 지역처럼 신도와 불교가 합쳐지는 신불습합(神佛習合)이 강했지만 19세기 들어 메이지 유신 이후 신불분리(神佛分離) 등을 거쳐 현재의 형태에 이른다. 불교 건물이 명백한데도 신사라 불리는 건 이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데와산잔을 도는 걸 ‘환생 여행’이라 부른다. ‘서쪽은 이세(일본 최고 권위의 신사) 참배, 동쪽은 오쿠(데와산잔) 참배’라며 평생에 한 번은 참배해야 할 장소로 꼽는다. 특히 토속 산악신앙과 도교, 불교 등이 혼합된 슈겐도(修験道) 신도에겐 성지 중의 성지다. 하구로산 참배길은 들머리인 즈이신몬(隨神門)에서 하구로산 정상 언저리의 산진고사이덴까지 약 1.7㎞다. 관광객의 경우 고주노토까지만 돌아보고 이후 2446개나 되는 계단은 건너뛰는 게 보통이다. 산진고사이덴까지 차로 갈 수 있어서다. 즈이신몬에서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삼나무숲은 ‘미슐랭 그린가이드 재팬’에서 별 3개 ‘만점’을 받은 곳이다. 수령 350년~500년을 헤아리는 삼나무 500여 그루가 늘어서 있다. 한 그루 한 그루가 일본 천연기념물이다. 이 삼나무 숲 한 가운데에 할아버지 삼나무 ‘지지스기’(爺杉)가 있다. 1000년 넘게 살아왔다는 신목이다. 나무 둘레만 8.5m가 넘는다. 지지스기 너머로 고주노토가 보인다. 937년에 처음 세워졌고, 1372년(1608년이란 주장도 있다) 개축해 현재에 이른다. ‘당연히’ 일본의 국보이고, 수없이 많은 일본 오층탑 중에서도 ‘3대 오층탑’으로 꼽힌다. 우리 목조 건축 양식인 결구법처럼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세워 올린 자태가 장엄하다. 높이는 29m. 이 지역 특산인 감나무를 건축자재로 썼다. 내부 중심엔 거대한 심주석(心柱石)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지진에도 끄떡없이 탑의 중심을 잡아준다. 일본인들이 기를 쓰고 눈 덮인 고주노토를 보러 오는 이유가 헤아려진다. 고주노토 뒤로 산진고사이덴에 이르는 2446개의 돌계단이 펼쳐진다. 산진고사이덴은 데와산잔의 삼신을 함께 모신 전각이다. 2.1m 두께의 초가지붕과 옻칠로 장식된 내부가 장관이다. 세 산신이 가장 낮은 하구로산(414m)에 모인 까닭이 현실적이다. 눈 때문이다. 야마가타는 겨울이면 4m까지 눈이 쌓인다. 고도 1984m의 갓산, 1504m의 유도노산은 겨울에 출입 불가다. 민가와 가깝고, 한겨울에도 눈이 그나마 덜 쌓이는 하구로산이 신들의 모임 장소가 된 이유다. 하구로산은 이 덕에 겨울에도 폐쇄되지 않는다. 바다 쪽에선 가모(加茂)수족관이 가볼 만하다. 세계 최대 해파리 전문 수족관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곳이다. 미슐랭 그린 가이드에서도 별 1개를 받았다. 해파리 하나로 승부를 보겠다는 시골 도시의 자신감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내부 전시도 알차다. 천천히 유영하는 60여 종의 진귀한 해파리들이 인증샷을 부른다. 수족관의 꽃은 ‘해파리 드림 시어터’란 거대한 원형 수조다. 지름 5m의 수조 안에 1만 마리가 넘는 해파리가 유영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해파리 라면, 해파리 아이스크림 등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쓰루오카 시내 관광은 쓰루오카 공원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에도막부 시절 쓰루오카성이 있던 곳을 공원으로 꾸몄다. 쓰루오카성은 일본 내 다른 성과 달리 천수각이 없다. 이유를 물으니 전쟁, 권력 투쟁과 거리가 멀었으니 유사시에 대비한 천수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쯤에서 메이지 유신 이전 야마가타가 속했던 ‘쇼나이번’의 역사를 살펴보자. 12세기 가마쿠라 막부(幕府)부터 일본이 다시 통일되는 16세기까지, 일본도는 권력을 세우고 백성을 지배하는 수단이었다. 한데 야마가타 일대를 다스린 쇼나이번 번주(다이묘)는 독특했다. 사무라이들에게 일본도 대신 낚싯대를 들게 했다. 쇼나이 8대 번주 사카이 다다아키는 7m가 넘는 긴 낚싯대를 만들었는데, 당시로선 획기적인 발명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낚싯대를 만드는 장인이 남아 있다. 쇼나이번의 사무라이들은 산과 들을 지나 해안까지 긴 낚싯대를 메고 절도 있게 이동해야 했다. 바다에 도착하면 칼싸움 대신 낚시로 고기를 얼마나 낚았는지 따져 ‘쇼부’(승부)를 봤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심신을 단련했다. 쇼나이번이 정치 중심지였던 에도(도쿄)와 교토의 권력 투쟁을 외면하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온 배경엔 이런 사연이 깔려있다. 그렇다고 쇼나이번 사람들이 무른 것만은 아니다. 사무라이 시대가 사실상 끝장난 계기가 됐던 보신전쟁 때, 에도막부 편에 선 쇼나이번은 신식 장비로 무장한 정부군에 맞서 일본도를 들고 끝까지 싸웠다. 지금도 ‘황혼의 사무라이’(2007) 같은 시대물 영화가 쓰루오카 일대를 즐겨 촬영지로 삼는다. 공원 옆에는 치도(致道) 박물관이 있다. 마지막 쇼나이 번주였던 사카이 가문이 기증한 저택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1950년에 설립됐다. 입장료가 1000엔이라 무척 비싼 편이지만, 볼거리 풍성하다. 눈의 고장 야마가타를 엿볼 수 있는 산악지역의 다층 민가, 최초의 현대식 건물인 옛 쓰루오카 경찰서, 일본식 전통 정원, 낚싯대와 어선 등 국가 중요민속문화재 5350점과 만날 수 있다. 이제 모가미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다. 도자와무라(戸沢村)의 고라이칸(고려관, 高麗館)을 찾아가는 길이다. 모가미강은 야마가타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단풍 뱃놀이로 입소문 난 강이다. 날이 추워지면 고타츠(일본식 난방기구)를 배 안에 들여 ‘고타츠 보트’로 운영하기도 한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과 만추의 산자락이 어우러진 풍경이 인상적이다. 도자와무라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벌였던 곳이다. 1990년대 이후, 이 일대에 한국에서 건너온 신부가 많이 정착한 건 이 때문이다. 일본에선 새색시를 하나요메(花嫁)라고 부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007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야마가타에 한국인 ‘하나요메’가 몰려든 건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다. 먹고 사는 것이 그리 급하지 않은 시절이었을 텐데, 한국 여성이 대거 일본에 진출한 것이 다소 의외다. 당시 인구 6500명 정도의 시골에 수십 명의 한국 여성이 쏟아져 들어온 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 ‘하나요메’ 대부분은 여러 어려움을 딛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지금도 김치 등의 식품업, 료칸 같은 숙박업을 경영하는 한국 ‘하나요메’들이 간혹 우리 언론에 소개되곤 한다. 이들의 구심점 구실을 하는 공간이 고라이칸이다. 1997년 조성됐다. 한국인의 시선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래도 ‘이 구역’에선 제법 명소 소리 듣는 관광지다. 물산관, 식문화관, 놀이마당, 정원 등으로 구성됐다. 휴게소에 소규모 테마파크의 기능이 결합한 곳이라고 보면 틀림없겠다. [여행수첩] -‘일본 100대 명폭’ 중 하나인 모가미강의 시라이토 폭포는 123m 높이의 물줄기와 붉은 도리이가 인상적이다. 강 반대쪽의 ‘시라이토 폭포 드라이브인’이라는 휴게소에서 봐야 한다. -하구로산 등산로 인근에 고려에서 건너온 스님이 세웠다는 교쿠센지(玉泉寺)가 있다. 봄에 매화 등 수많은 꽃이 만개해 ‘꽃의 절’이라 불린다. 일본 국가 지정 명승정원이다. -하구로산 들머리의 ‘이데와 문화기념관’에선 야마부시(슈겐도 수행자) 지팡이, 겨울 부츠 등을 유료로 빌려준다. 야마부시의 역사와 유물도 살펴볼 수 있다. 소라고둥 나팔을 멘 지도자 ‘쇼분’을 따라 하구로산 참배길을 걷는 야마부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야마가타는 설국(雪國)으로 유명한 니가타현 못지않게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봄이 시작되는 4월까지 문을 닫는 관광지가 무척 많다. 가모수족관도 그중 하나.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내년 4월 개장 예정이다.
  • “은퇴 후 맘먹고 간 크루즈여행, 후회는 없지만”…日노부부의 탄식

    “은퇴 후 맘먹고 간 크루즈여행, 후회는 없지만”…日노부부의 탄식

    은퇴 후 ‘일생에서 단 한번뿐인 사치’를 누리고자 세계일주 유람선 여행을 떠났던 일본의 한 노부부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일본의 자산관리 뉴스매체 골드 온라인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해외여행이나 취미에 적지 않은 돈을 썼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가 있다며 가나가와현에 사는 한 60대 부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사이토 가쓰히코(68·가명)씨와 아내 하루에(65·가명)씨는 정년퇴직 후 세계일주 유람선 여행을 떠났다. 약 3개월 동안 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유럽과 미국까지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여행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가 제공되고, 선내에는 풀코스 식사와 쇼가 준비되며 기항지 관광까지 포함된 크루즈 여행상품이었다. 그야말로 ‘일생에 한번뿐인 사치’였다고 사이토 부부는 전했다. 가쓰히코씨는 “현역에서 일할 때는 여행할 처지가 아니었다. 자녀에게 돈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주택담보대출도 다 갚았고, 노후자금이 3000만엔(약 2억 8373만원) 정도 있어 세계일주의 꿈을 이룰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행 비용은 부부 합쳐 950만엔(약 8985만원)가량이었다. 연금도 나오겠다, 저축도 어느 정도 있는 가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범위’라고 생각해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나 크루즈 여행에서 돌아온 지 반년 뒤, 사이토 부부는 생각지 못한 ‘현실의 벽’을 맞닥뜨려야 했다. 아내 하루에씨는 “처음에는 어찌어찌 꾸려 나갔지만, 예상치 못한 병원비나 약값이 늘어나면서 매달 의료비가 5만엔(약 47만원) 가까이 됐다”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택시비나 식비 지출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거기에다 살던 집이 노후화하면서 수도 설비 수리, 보일러 온수 설비 교체, 장기요양보험을 위한 주택 수리까지 필요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다. 더욱이 2024년부터 줄곧 이어진 물가 급등이 생활비를 강타했다. 하루에씨는 “물가가 이렇게 금방 오를 줄은 몰랐어요. 전기요금, 가스요금도 너무 비싸요”라면서 “월 20만엔(약 189만원) 넘는 연금으로는 금방 적자예요”라고 토로했다. 사이토씨 부부가 가입한 공적연금은 부부 합산 월 21만 5000엔(약 203만원). 골드 온라인은 이 정도 액수가 일본에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민세와 건강보험료, 의료비에 더해 고정자산세나 관리비, 게다가 물가 상승에 의한 지출 증가까지 고려하면 사이토씨 부부의 수중에 남는 돈은 빠듯한 상황이다. 일본의 금융홍보중앙위원회의 2023년 가계 금융 행동에 관한 여론조사 내용을 보면 ‘60대·2인 이상’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은 2026만엔(약 1억 9155만원)이다. 그러나 중간값은 700만엔(약 6618만원)으로 가구별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유 있는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연금 외에 월 5만~10만엔(약 47만~94만원)의 또다른 수입원이 있어야 한다고 골드 온라인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이토씨 부부의 경우 3000만엔의 노후자금이 있었다 하더라도 10~15년 내에 고갈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세계일주는 정말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무슨 일이 생겨 간병이 필요해진다면 솔직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쓰히코씨는 “절대 후회는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이렇게 귀띔했다. “여행 도중에 알게 된 다른 부부는 세 번째 세계일주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따로 부동산 수입이 있다든지 해서 우리 부부와는 토대부터 달랐습니다. 우리 부부는 ‘사치’했다기보다는 ‘한번에 탕진하기’였던 셈이에요.” 현재는 생활비에 조금이나마 보태려고 하루에씨가 인근의 요양시설에서 주 3일 시간제근무를 시작했다. 골드 온라인은 한번뿐인 인생에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연금 생활은 ‘수입이 늘지 않는 기간’이기 때문에 지출의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료·돌봄비용 견적 ▲물가상승률 ▲세금·사회보험료 부담 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전원주 “여관갈 돈 없어 북한산에서…” 파출소 끌려간 사연

    전원주 “여관갈 돈 없어 북한산에서…” 파출소 끌려간 사연

    최근 황혼 열애를 밝힌 배우 전원주(86)가 과거 ‘입산금지 구역 데이트’로 파출소에 끌려갔던 일화를 공개했다. 3일 유튜브 채널 ‘노빠꾸 탁재훈’에는 “전원주, 아직 남자 냄새가 좋은 나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방송에서 신규진이 “전 남편분과 연애할 때 입산금지 구역에 갔다던데…”라고 묻자, 전원주는 “호텔은 고사하고 여관도 갈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데를 좋아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전원주는 “북한산에 금지 구역이 있다. 철망을 뚫고 남자와 둘이 들어갔다가 데이트 중 미끄러져 굴러내려왔다. 그때 경찰이 와서 파출소에 갔다”고 회상했다. 탁재훈이 “남편분과 같이 끌려간 거냐”고 묻자, 그는 “남편 아니다. 딴 사람이다. 그 사람은 도망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엄마가 경찰서로 와서 나를 확 벗겼다. 온몸에서 모래가 떨어졌다. 모래밭에서 난리를 치다가 그런 일이 생긴 거다. 이후 엄마가 나를 40일 외출 금지시켰다”고 덧붙였다. 전원주는 최근에도 연애담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 ‘클레먹타임’에서 “남자친구가 있다. 나보다 5~6살 어린 80대다. 건강하고 활력소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손잡고 산에도 가고, 노래방·나이트클럽도 간다. 젊은 남자와 다니니 얼굴도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39년생인 전원주는 1963년 동아방송 1기 공채 성우로 데뷔했다. 연극 무대를 거쳐 ‘청춘의 덫’ ‘야인시대’ ‘불량가족’ ‘왕가네 식구들’ 등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로 사랑받았다. 현재 유튜브 채널 ‘전원주인공’을 운영하며 활동 중이다. 그는 첫 남편과 결혼 3년 만에 사별했고, 재혼한 남편과도 2013년 이별했다.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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