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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중국의 ‘새로운 전통’ 한푸(漢服)

    [씨줄날줄] 중국의 ‘새로운 전통’ 한푸(漢服)

    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아Q정전’의 작가 루쉰은 1919년 단편소설 ‘쿵이지’(孔乙己)를 발표한다. 1905년 과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관리 지망생 선비가 몰락해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쿵이지는 언제나 장삼을 입는데 전통적 지식인 신분을 포기하지 못하는 구시대 인물을 상징한다.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 홍위병은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을 타파하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자는 파구입신(破舊立新)을 외쳤다. 당시에도 전통 복식은 이미 보기 어려웠지만 문화혁명을 거치며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한국에서 의례용으로 꾸준히 한복을 입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푸(漢服)는 21세기가 시작되며 새로 태어난다. ‘한족의 역사적 전통복식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복식 체계’라는 개념이 새로 정립됐다. 2002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민족 복식’(漢民族 服饰)에 관한 논의가 나타나고, 이듬해 한푸를 ‘한민족 복식’의 약칭으로 정한다. 중국에선 2003년을 ‘한푸 운동 원년’으로 본다. 한푸 운동은 전통문화에서 문화적 자신감을 찾아 중화민족 정체성을 살린다는 시진핑 정부의 애국주의와 결합해 가속도가 붙었다. 나아가 중국 정부는 2018년 한푸를 넘어 화푸(华服)라는 개념을 채택한다. 공산주의청년단은 중국화복일(中国华服日)을 지정해 국가주도문화운동으로 강화했다. 한족 의복으로 한정 짓지 않는 것은 물론 조선족을 포함한 소수민족 복식도 포괄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중국인이 많이 쓰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한복이 한푸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의 영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올라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한푸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중국 학자들도 공감한다. 2000년 역사가 아니라 2000년 이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복식이 한푸라는 것이다. 한푸가 21세기에 창조한 ‘새로운 전통’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서울시의회 “주택은 시민의 삶이고, 공간은 서울의 미래다”… ‘주택공간 혁신 세미나’ 개최

    서울시의회 “주택은 시민의 삶이고, 공간은 서울의 미래다”… ‘주택공간 혁신 세미나’ 개최

    제12대 서울시의회 전반기 주택공간위원회(위원장 박승진)가 전문성 함양과 집행기관과의 긴밀한 소통을 위해 지난 13기와 18일 양일간 ‘주택공간 혁신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시의회 별관 제2대회의실에서 진행됐으며, 위원회의 정책 역량을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세미나는 ▲소관 기관의 특성과 주요 사업에 대한 전문위원실 실무 브리핑(1일 차)과 ▲소관 기관의 주요 업무보고 및 질의응답(2일 차)으로 진행됐다. 위원들은 주택·부동산 관련 다양한 사업에 대한 이해와 행정사무감사의 실전 포인트부터 부서별 현안의 쟁점과 리스크까지 꼼꼼히 점검하며 “기본 지식과 현장을 모르고는 행정을 견제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주택, 공간, 디지털 등 전문 기술 분야의 특성을 살려, 2일 차에는 소관 부서인 주택실, 미래공간기획관, 디지털도시국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는 사업의 유형과 절차, 전문 용어의 개념, 주요 시정 현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세부적으로 ▲주택실로부터는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모아주택, 청년안심주택, 공공주택 및 주거복지 등 부동산·주택 관련 보고를 받고 현안 사항들을 점검했으며 ▲미래공간기획관과는 도시건축디자인혁신, 노들 글로벌 예술섬 조성, 도시계획변경 사전협상, 용산국제업무지구, 서울대관람차 등 진행 상황을 논의했다. ▲디지털도시국에게는 서울시 인공지능 행정혁신, 서울스마트라이프위크(SLW), 스마트 안전도시 등에 대한 사업 현황, 제도 절차 등에 대해 설명 듣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승진 위원장(중랑3, 더불어민주당)은 주택실의 보고를 받으면서 “집값과 전월세, 공급 속도 하나하나가 시민의 일상이고 청년의 꿈”이라며 “시민의 주거 안정과 서민 주거 사다리 복원, 주택 공급 확대와 주거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는 여야·예산을 가리지 않고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서울시가 원칙 없이 흔들릴 때는 가장 먼저 제동을 걸고, 정책이 시민 곁에 닿는지 끝까지 확인하는 것이 의회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한강변·역세권 등 주요 부지의 공공성 있는 개발과 서울의 미래 상징이 될 랜드마크 조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스마트도시 조성 등에도 집행부와 협력할 뜻을 내비치며 “서울을 세계적 도시로 도약시키는 일에 의회도 한 팀이 되겠다”며 “다만,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공공이 지켜야 할 가치의 우선순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번 세미나를 발판 삼아 제12대 전반기 주택공간위원회는 부동산 및 주택 정책 현장에서 철저한 감시와 견제, 전폭적인 지원을 양대 축으로 삼아 ‘시민 체감형 주거 안정’과 ‘서울의 미래 경쟁력 제고’를 동시에 실현해 나갈 방침이다. 세미나를 마치며 박 위원장은 “주택·도시계획·디지털 분야의 견제·협치 의정 실현에 있어 이번 세미나가 주택공간위원회와 집행기관 간 긴밀한 소통의 첫단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구속 혁명의 빛과 그늘...선발투수 이닝 소화력 뚝, 불펜 비중 높아져

    구속 혁명의 빛과 그늘...선발투수 이닝 소화력 뚝, 불펜 비중 높아져

    그야말로 구속혁명의 시대다. KBO리그 뿐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MLB)도, 일본 프로야구도 투수들의 구속이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이젠 선발투수들도 마무리 투수 이상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 동시에 선발투수들이 책임진 이닝수도 줄었다. 구속혁명이 만들어낸 그늘이다. 미국 스포츠 전문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대표 칼럼니스트인 톰 버두치는 11일(한국시간) 빅리그 선발투수들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했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지지만 투구 이닝과 투구수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버두치는 완투 경기가 크게 줄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빅리그에서 완투는 단 두 차례 뿐이었다. 역대 7월에 기록된 완투 가운데 가장 적었다. 딜런 시즈(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야마모토 요시노부(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각각 완봉, 완투승을 거둔 것이 전부다. 지난 3~4울에도 완투는 각 2회 뿐이었다. 2025년 8월에는 완투 경기가 단 한 차례였다. 내로라는 선발투수들이 즐비한 빅리그에서도 이젠 완투경기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버두치의 칼럼에 따르면 7월 빅리그 선발 투수들의 평균 투구이닝은 5.03이닝으로 역대 월간 수치 중 가장 적었다. 15년 전과 비교하면 선발 투수와 불펜 투수의 마운드 분담 비중이 선발 65%-불펜 35%(2011년)에서 57%-43%로 크게 달라졌다. 한계 투구수도 120개에서 110개로 줄었다. 올해 선발 투수가 110개 이상 던진 경기는 13회에 불과한데 그 중 4번을 시즈가 기록했다. 1회와 9회의 구속차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2011년엔 1회 시속 148km, 9회 시속 151km로 평균 구속차가 시속 3km였는데 최근엔 1회 152.6km, 9회 153.7km로 거의 구속차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판하자마자 전력 피칭으로 모든 힘을 쏟아부은 뒤 일찌감치 마운드를 불펜으로 넘기는 전략이 대세다. 선발투수라면 6이닝 이상을 던져야 한다는 전통적인 마운드 분업의 구조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후티, 결국 일냈나 “사우디 ‘440억’ 잿가루”…드론 격추설 중동하늘 새 변수 [배틀라인]

    후티, 결국 일냈나 “사우디 ‘440억’ 잿가루”…드론 격추설 중동하늘 새 변수 [배틀라인]

    [배틀라인 3줄 요약]● 후티가 사우디군 운용 추정 튀르키예산 아킨치(꼬리번호 20703)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최대 440억원 규모의 고고도 장기체공(HALE) 정보·감시·정찰(ISR) 플랫폼의 생존성과 사우디의 장거리 감시·정찰 운용개념(CONOPS)이 시험대에 오른다.● 후티가 동일한 방식으로 고가치 무인기를 반복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방공 전술을 확보했는지 여부가 중동 공중전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군이 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튀르키예산 바이락타르 아킨치 무인전투기(UCAV)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후티가 공개한 영상과 사진에서는 아킨치와 유사한 잔해와 꼬리번호 ‘20703’이 포착됐다. 사우디와 튀르키예 정부, 제작사 바이카르는 기체 손실을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영상만으로 지대공무기 피격 여부나 실제 운용 주체를 독립적으로 입증하기도 어렵다.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아킨치 한 대의 손실만으로 후티 방공망이 질적으로 도약했다거나 걸프 지역의 공중전 양상이 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사실이라면 후티가 사우디와 미국의 장기체공 무인기를 반복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전술을 확보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번 손실이 우발적 사고가 아닌 재현 가능한 격추 사례인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적절한 무기”로 격추 주장…추락 원인은 미확인후티군 대변인 야히야 사리는 26일(현지시간) “알자우프주 상공에서 적대적 임무를 수행하던 사우디군의 튀르키예산 아킨치를 적절한 무기로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후티 군사매체는 꼬리번호 ‘20703’이 보이는 잔해와 추락 장면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개했고, 이란 국영·혁명수비대 계열 매체들이 이를 재전파했다. 공개된 사진에서는 수직 꼬리 날개(수직미익)와 후방 동체, 날개 일부가 비교적 좁은 범위에 남아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중앙 동체는 상당 부분 불에 탔다. 다만 잔해의 상태만으로 격추 여부를 판정할 수는 없다. 지대공무기 피격 이후 비행제어 능력을 잃고 추락했을 가능성과 기계적 결함, 비상착륙 과정에서 파손됐을 가능성을 모두 열어둬야 한다. 지대공미사일에 맞은 항공기가 반드시 공중분해되거나 대형 충돌구를 남기는 것도 아니다. 원인을 좁히려면 기체 외피에서 탄두 파편의 관통 흔적과 폭발 잔류물을 분석하고, 비행기록 및 지상통제 자료를 분석해야 한다. 현재는 후티가 사용 무기를 ‘적절한 무기’라고만 밝혀 지대공미사일인지 대공포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센서·무장 1.5t 탑재…단순 정찰드론과 달라아킨치는 튀르키예 방산업체 바이카르(Baykar)가 개발한 고고도 장기체공(HALE) 무인전투기다. 최대이륙중량(MTOW)은 약 6t이며 24시간 이상 체공할 수 있다. 센서와 무장을 합해 최대 1500㎏급 임무장비를 운용할 수 있으며, 위성통신(SATCOM)을 이용한 비가시선(BLOS) 통제와 전자광학·적외선(EO/IR) 센서, 다중모드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 신호정보(SIGINT) 장비 등 다양한 ISR 패키지를 통합할 수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기체 가격을 약 2500만~3000만 달러(약 367억~440억원) 수준으로 추정한다. 단순 영상 정찰을 넘어 장거리 정보·감시·정찰(ISR), 이동표적 탐지(MTI), 표적획득, 표적지시, 정밀타격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수행할 수 있다. 적 방공망에 노출될 경우 단순히 기체 한 대를 잃는 데 그치지 않고 감시·표적화로 이어지는 ‘킬체인’의 일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우디는 2023년 바이카르와 아킨치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기술이전과 공동생산도 포함됐다. 국경 맞댄 알자우프…미사일·드론 추적 임무 가능성격추 주장이 나온 알자우프는 예멘 북부의 후티 통제지역으로, 사우디 국경과 맞닿아 있다. 예멘 북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전략적 통로이자 사우디·후티가 장기간 충돌해 온 접경 전선이다. 사우디가 이 지역에 아킨치를 투입했다면 후티의 미사일·무인기 발사 징후와 이동식 발사대, 보급로 등을 탐지하기 위한 ISR 임무였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후티가 사우디 선박 봉쇄와 본토 미사일 공격을 확대하고, 사우디가 호데이다의 후티 군사시설을 공습한 상황과도 맞물린다. 따라서 손실이 확인되면 사우디가 국경 인접 공역에서 장시간 감시하는 데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동일한 유형의 손실이 반복되는지, 그리고 고가치 ISR 플랫폼의 생존성이 구조적으로 저하되는지가 관건이다. ‘반복 가능한 전술’ 획득 여부 관심…장거리 감시전 시험대아킨치 한 대의 손실만으로 걸프지역의 무인기 운용개념(CONOPS)이 바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후티가 이달 중국산 다목적 군용 무인기 윙룽Ⅱ에 이어 아킨치까지 같은 종류의 대공체계나 유사한 교전 절차로 격추했다는 증거가 확보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우디는 비행고도와 접근축, 스탠드오프 센서 운용, 전자전 지원, SEAD·DEAD 연계를 포함한 ISR 운용개념(CONOPS)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 경우 후티는 첨단 통합방공망(IADS)을 구축하지 않고도 상대의 비행 방식과 작전비용을 바꾸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반대로 기체 외피에서 대공무기 피격 흔적이 발견되지 않거나 기계적 결함이 원인으로 확인되면, 후티가 상대의 기체 손실을 군사적 전과로 전환한 정보전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고 3000만 달러 규모의 HALE급 ISR 플랫폼이 반복적으로 손실되는 양상이 확인된다면, 고가치 감시자산의 생존성과 비용효율성, 장기체공 ISR 운용개념 전반으로 논점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 노벨상 수상자 등 200명 “AI 충격 대비 서둘러야”

    노벨상 수상자 16명을 포함해 200여 명의 전 세계 인사들이 인공지능(AI)이 몰고 올 급격한 변화를 경고하며 조속한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스탠퍼드디지털경제연구소는 13일(현지시간) AI 및 경제학 연구자 200여 명이 참여한 ‘지금 행동해야 한다’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공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AI는 향후 10년 동안 훨씬 급진적으로 강력해질 것”이라며 “산업혁명보다 더 빠르고 큰 규모로 우리 경제에 전례 없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일자리 대체 등 AI 전환의 위험에 제도 구축으로 대비하자고 제언했다. 참가자들은 “AI로 인한 변화는 대규모 일자리 감소 등 위험을 수반하지만, 생활 수준 발전 등 새로운 기회도 제공할 것”이라며 “AI의 경제적 가치를 이해하고 인간을 보완해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인센티브, 안전장치 등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성명은 앤트로픽의 경제 연구원인 앤톤 코리네크와 에릭 브린욜프손 스탠퍼드대 교수, 아제이 아그라왈 토론토대 교수 등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린욜프손 교수는 “다가오는 쓰나미에 우리가 준비하지 못하고 있을까 봐 걱정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성명이 AI로 인한 위험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성명에는 혼합현실(MR) 개념을 처음 도입한 폴 밀그램 스탠퍼드대 교수,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잭 클라크 앤트로픽 공동 창업자, 에릭 슈미트 구글 전 최고경영자(CEO) 등 빅테크 업계 거물들도 동참했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 MIT 교수는 AI 회의론자로 꼽혔지만 성명에 함께했다.
  • AI·신공항 투트랙… 경북 미래 대전환 청사진 제시

    AI·신공항 투트랙… 경북 미래 대전환 청사진 제시

    경북도의 미래 청사진이 AI를 중심으로 한 산업혁신과 신공항·영일만항을 축으로 한 공간 재편 등으로 그려졌다. 경북도 대전환위원회는 6일 안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산업·공간·공동체·민생의 4대 대전환 전략을 발표하고 미래산업 육성과 저출생 대응, 민생경제 회복을 도정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대전환위원회는 민선 7·8기 도정의 성과를 토대로 민선 9기 경북 대전환의 방향을 구체화하고 현장 중심의 정책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달 15일 출범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각 분야 전문가와 기업인, 사회단체 관계자 등 300여명으로 구성됐다. 도는 이를 바탕으로 도정 핵심 정책을 더욱 구체화해나갈 계획이다. 산업 대전환 분야에서는 ‘P·AX(Physical AI 경북도 전환)’을 목표로 ‘5대 초격차 메가테크 경북’을 제시했다. 인공지능(AI)·로봇을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제조 대전환과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대전환, AI를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바이오 대전환과 항공·방위산업 대전환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이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전담할 경북투자청 설립과 자체 정책 펀드 조성도 정책에 포함했다. AI 혁명 이후의 전략산업으로는 식품·문화·관광을 아우르는 ‘K-푸드 산업’을 육성하고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독특한 음식문화가 결합한 세계적인 미식 관광 코스를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공간 대전환 분야에서는 대구경북신공항과 영일만항을 양대 축으로 하는 투 포트 경제 전략과 K-관광 활성화 전략을 발표했다. 신공항을 항공 물류와 비즈니스가 결합한 글로벌 공항으로 만들고 영일만항은 북극항로 시대의 에너지 전략 항만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신속한 공항 착공과 영일만항 확장에 정부 지원을 지속해 요청할 방침이다. 여기에 새만금에서 포항까지 국토의 동서를 관통하는 초광역 교통망도 함께 건설해 서남권 산업과 연계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적 물류망을 완성할 계획이다. 공항·항만 확충에 따른 접근성 개선을 통해 초광역 관광벨트와 체류형 관광 인프라를 확충해 경북을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로 육성하는 계획도 내놓았다. 저출생·고령화와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돌봄·복지 정책으로는 ‘다 함께 누리는 행복공동체’를 제안했다. 우선 ‘경북 첫걸음 연금’은 중도 인출 제한, 압류 방지 전용 계좌 지정 등으로 사업의 실효성을 높인다. 취약계층 어르신에게 식사를 지원하는 ‘어르신 건강밥상’은 안부 확인과 위기 발굴을 병행하고, 노인 일자리 창출과도 연계할 예정이다. 민선 8기의 공동육아 모델인 ‘K보듬6000’ 대상을 0세까지 확대하고, 초대형 산불 피해에 대한 실질적이고 신속한 지원에도 더욱 힘을 쏟는다. 어려운 민생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경북형 일자리 기본사회’ 개념을 도입해 도민 누구나 일할 기회를 보장받고 일자리를 통해 안정적 소득과 지역 정착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돕는다는 구상이다. 경북도와 대전환 위원회는 이날 보고회에서 4대 전환의 제도적 기반으로 신속한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 계류 중인 특별법안을 먼저 통과시킨 후 후속 입법과 행정적 조치로 보완하는 ‘선 통과 후 보완’을 현실적인 추진방안으로 꼽았다. 김성조 위원장은 “위원회의 제안이 도정에 깊이 스며들어 경북 발전과 도민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AI 시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활용하고 확산시키는 지식산업과 먹고 놀고 즐기는 문화·예술·관광산업이 경북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며 “위원회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자랑스러운 경북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 한국은 어떤 ‘AI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가 [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한국은 어떤 ‘AI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가 [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AI 생태계, 인프라·개발·전환 3단계AI 인프라 도시, 기반 시설에 집중광주·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해당AI 개발 도시, 새 기술·서비스 제공샌프란시스코·베이징 ‘막대한 투자’모든 지역이 따라갈 수는 없는 모델AI 전환 도시, 행정·산업·교육 적용새 크리에이터 브랜드와 문화 창조세계 어디에서도 본격 등장 안 해한국의 도시 발전 모델로 만들어야 이재명 정부가 광주에 제2의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해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투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반도체 산업단지를 과연 AI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근 한국에서는 AI 도시라는 용어가 매우 넓게 사용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는 물론 AI 스마트도시, AI 연구단지, AI 행정도시까지 모두 AI 도시라는 이름 아래 묶인다. AI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정작 어떤 도시를 의미하는지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같은 이름 아래 전혀 다른 정책이 공존하는 셈이다. AI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AI 산업의 구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시는 산업을 담는 그릇이며 산업의 변화는 도시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AI 산업의 구조를 이해하면 어떤 도시가 AI 도시인지도 훨씬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AI 생태계가 AI 도시를 결정한다 AI 생태계는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AI 인프라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클라우드처럼 AI가 작동하기 위한 기반 시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 세계 각국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을 벌이는 이유도 AI 경쟁의 출발점이 인프라에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AI 개발이다. 거대언어모델과 AI 에이전트, 로봇 지능처럼 새로운 AI 기술과 서비스를 만드는 단계다. 이 영역에서는 연구개발 역량과 최고 수준의 인재, 대학과 스타트업, 벤처투자 생태계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세 번째는 AI 전환(AIX)이다. 이미 개발된 AI를 산업과 도시, 개인의 삶에 적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단계다. 앞으로 대부분의 기업과 지역이 경쟁하게 될 영역도 바로 여기다. AI를 직접 개발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AI 생태계는 인프라, 개발, 전환이라는 서로 다른 단계로 이루어진다. 필요한 자원도 정책도 다르다. 도시 역시 어느 단계에 강점을 두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발전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AI 도시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AI 개발도시와 AI 인프라도시 AI 개발도시는 새로운 AI 기술과 서비스를 만드는 도시다. 경쟁력은 공장의 규모보다 연구개발 생태계에서 나온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AI 기업과 스타트업, 투자자,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으며 오늘날 AI 혁신의 상당수가 이 지역에서 시작된다. 중국에서는 베이징이 가장 가까운 사례다. 주요 AI 연구기관과 대학, 대형 AI 기업이 집중되어 있으며 거대언어모델과 기초 AI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가 샌프란시스코나 베이징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AI 개발도시는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와 최고 수준의 인재, 세계적인 대학과 벤처투자 시장을 동시에 갖춰야 가능한 모델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소수의 도시만 담당할 수 있는 전략이지 모든 지역의 발전 모델이 될 수는 없다. AI 인프라도시는 AI를 개발하기보다 그 기반을 구축하는 도시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 전력망과 용수 공급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AI 산업의 성장 자체를 뒷받침하는 기반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광주가 추진하는 AI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용인을 중심으로 조성되는 국가 반도체 클러스터가 이 전략에 해당한다. 미국과 중국도 대규모 반도체 생산과 데이터센터 투자를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AI 시대에도 산업 경쟁력의 출발점은 결국 안정적인 인프라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AI 인프라도시를 지향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자본과 전력, 용수, 글로벌 공급망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규모의 경제 산업이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몇 개의 거점을 육성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모든 도시가 같은 전략을 선택할 수는 없다. 결국 대부분의 도시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를 어디에서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 전환도시가 등장한다. ●일반 도시의 선택, AI 전환 도시 AI 개발도시와 AI 인프라도시는 국가 경쟁력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처럼 AI를 개발하거나, 광주와 용인처럼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반 도시의 경쟁력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AI 전환도시는 AI를 도시 전체에 확산시키는 도시다. AI를 행정과 산업, 교육과 문화, 창업과 일상에 적용해 새로운 생산성과 창의성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도시의 경쟁력은 자체적인 AI 모델을 보유했느냐보다 AI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 도시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AI 전략인 셈이다. AI 전환도시는 다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도시 운영을 혁신하는 AI 스마트도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AI 산업도시, 개인과 크리에이터를 중심에 두는 AI 크리에이터 타운이다. 이 세 모델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며 하나의 도시도 여건에 따라 세 가지 전략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 AI 스마트도시는 기존 스마트도시를 AI 시대에 맞게 발전시킨 모델이다.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도시 운영 자체를 지능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데이터 수집이 목적이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한 문제 해결이 목표다. 최근 하정우 전 AI미래기획수석이 제안한 AI 도시가 여기에 가장 가깝다. 그는 AI 신뢰성센터를 중심으로 연구·실증·인증 기능을 집적하고, 시민의 경험과 암묵지를 AI 시대의 데이터 자산으로 전환하는 생태계를 제안했다. 특히 지역의 문화와 음식, 역사와 스토리를 새로운 데이터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AI 산업도시는 기업과 산업의 AI 전환을 중심에 둔다. 도시 기반 시설보다 기업의 생산성과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춘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AI를 적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피지컬 AI와 산업용 로봇으로 산업 구조를 혁신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피츠버그는 로봇과 자율주행 기술로, 중국 선전은 AI와 하드웨어·제조업의 결합으로 이를 보여 준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의 산업도시 역시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바이오, 물류 등 주력 산업에 AI를 적극 도입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AI 크리에이터 타운은 기업보다 개인을, 생산보다 창의성을, 공장보다 창작을 중심에 두는 모델이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더 많은 시민이 창작과 창업에 도전하고, 더 많은 크리에이터 브랜드가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생성형 AI가 창작의 비용을 빠르게 낮추면서, 디자인·영상·번역·마케팅처럼 과거에는 기업만 수행할 수 있었던 일이 개인과 소규모 팀에게도 가능해지고 있다. AI는 대기업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개인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크게 높이는 기술이 되고 있다. 이 점에서 기존의 창조도시나 문화도시와도 차이가 있다. 문화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는 도시, 그리고 AI로 그 생산성을 높이는 도시가 AI 크리에이터 타운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도시 모델이 아직 세계 어디에도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도 중국도 AI 개발과 산업에서는 앞서 있지만 개인과 크리에이터의 AI 활용을 도시 전략의 중심에 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 점이 한국 도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이 먼저 만들어야 할 AI 도시 산업혁명 시대 도시의 경쟁력은 공장에 있었다. 정보화 시대에는 연구개발과 플랫폼이 도시 성장을 이끌었다. AI 시대에는 무엇이 도시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인가. 그 답은 AI를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도체도 중요하고 AI 모델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 도시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더 많은 시민이 AI를 활용해 창작하고 창업하며 새로운 크리에이터 브랜드와 문화를 만들어 내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AI는 도시를 대신 성장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창의성을 증폭시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AI 개발도시와 AI 인프라도시를 두고 경쟁하고 있지만 개인과 크리에이터의 AI 활용을 도시 전략의 중심에 둔 모델은 아직 뚜렷하게 등장하지 않았다. 미국은 AI를 개발하고, 중국은 AI를 산업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의 답은 AI를 가장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도시, AI 크리에이터 타운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미 문화와 기술을 함께 성장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 경험을 도시 전략으로 확장할 차례다. 문화와 기술이 결합한 AI 크리에이터 타운은 한국 지역 도시의 새로운 발전 모델이자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한국형 AI 도시의 비전이 될 것이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상식이라 믿었던 역사적 장면의 실체, 얼마나 진짜일까 [한ZOOM]

    상식이라 믿었던 역사적 장면의 실체, 얼마나 진짜일까 [한ZOOM]

    역사는 ‘사실’로 기록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로 기억한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와 같은 이야기는 재미도 있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문제는 이렇게 사실로 믿고 기억하는 이야기의 상당수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내용을 단순화하고, 누군가는 인위적으로 가공하며, 또 누군가는 다른 이야기들을 섞어 놓았다. 그렇게 왜곡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면서 마치 사실처럼 굳어지게 된 것이다. 최근 역사학자들이 새롭게 조명하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잘못된 정보를 역사라고 오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은 키가 작지 않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혁명기에 뛰어난 전술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유럽의 판도를 바꾸었고, 근대 민법의 기틀이 된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하는 등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프랑스 혁명 정신을 유럽에 전파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지도자인 동시에, 독재를 일삼은 전쟁광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이런 나폴레옹에게 오랫동안 따라다닌 오해가 하나 있다. 바로 ‘키가 작은 왜소한 황제’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그의 실제 키는 약 168~170㎝로, 당시 프랑스 남성의 평균보다 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키가 작은 남자’로 기억한다. 이런 이미지가 고착된 배경에는 영국의 치밀한 정치적 선전이 있었다. 당시 영국 언론은 나폴레옹을 폄하하기 위해 그를 작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묘사했다. 여기에 프랑스와 영국의 도량형 차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프랑스는 ‘피에(pied)’를, 영국은 ‘피트(foot)’를 사용했다. 1피에는 약 32.5㎝인 반면, 1피트는 약 30.5㎝로 2㎝의 차이가 있었다. 나폴레옹의 키는 ‘5피에 2푸스’(약 169㎝)였는데, 이를 영국이 단위는 무시한 채 숫자만 가져와 ‘5피트 2인치’(약 157㎝)로 표기했다. 그 결과 나폴레옹은 한순간에 단신으로 박제되고 말았다. 나폴레옹에게는 ‘꼬마 부사관’(Le Petit Caporal)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이는 병사들이 그를 친근하게 부르던 애칭이었다. 영국은 이 별명을 교묘하게 이용해 그를 왜소하고 우스꽝스러운 독재자로 그려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키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는 현상을 뜻하는 ‘나폴레옹 콤플렉스’라는 말이 아직도 사용되는 것을 보면, 정치적 선전으로 인한 사실의 왜곡이 얼마나 오래,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갈릴레오는 화형을 당하지 않았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이 상식을 지배하던 시절,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관측과 연구를 통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우주의 중심에 인간과 신이 있다”고 믿었던 당대의 종교적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종교적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지동설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발아래 땅이 고요히 멈춰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자전하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주장은 감각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었다. 결국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종교재판을 받은 갈릴레오가 화형을 당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는 재판장에서 지동설을 철회했고, 구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법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고, 그 기간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 화형을 당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다. 브루노 역시 지동설을 지지했지만, 그가 처형된 진짜 이유는 삼위일체 부정, 예수 신성 부정, 윤회설 주장 등 복합적인 이단 혐의 때문이었다. 지동설이나 무한 우주론은 여러 이유 중 하나였을 뿐, 핵심은 기독교 교리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근대 과학과 종교 간의 대립 구도가 격화되었다. 이때 일부 사람들이 브루노에게 ‘과학의 순교자’라는 이미지를 덧씌웠고, 시간이 흐르며 갈릴레오의 이야기와 브루노의 처형이 뒤섞이며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다 화형을 당했다”는 허구적 신화가 탄생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보다 대중이 열망하는 ‘상징’이 어떻게 기록을 대체하고 강하게 살아남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콜럼버스가 증명한 것은 지구의 모양이 아니었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향하는 포르투갈 항로 대신, 대서양 서쪽으로 항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언젠가 인도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콜럼버스가 당시의 편견을 깨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위험한 항해를 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 학자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중세 대학에서도 이를 가르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세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이야기는 19세기 근대 이후 과학과 종교의 갈등 구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에 가깝다. 사실 콜럼버스 논쟁의 핵심은 지구가 둥그냐 아니냐 하는 ‘형태’가 아니라, 지구의 ‘크기’를 둘러싼 계산의 문제였다. 당시 콜럼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훨씬 적게 잡는 오류를 범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계산이 틀렸음을 지적하며 서쪽으로 향하는 항해는 보급 문제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다행히 항해 도중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만나면서 그의 항해는 성공할 수 있었다. 정리하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그의 과학적 증명의 성과가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었다. ●마녀사냥의 절정은 중세 시대가 아니었다 마녀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검은 옷을 입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며 악마를 숭배하는 여인’과 그 마녀를 불길 속에서 처단하는 화형 장면은 기독교적 세계관이 정점에 달했던 중세를 상징하는 이미지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실제로 마녀사냥이 집중되었던 시기는 중세가 아니라 근대로 넘어온 16~17세기였다. 종교개혁으로 인한 사회 분열, 교회가 지배하던 사회질서를 흔들어대는 자본주의,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부족, 전염병의 창궐. 이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의 원인을 마녀에게서 찾았고, 마녀사냥은 그렇게 사회 전체가 공포에 반응한 결과였다. ●모든 지식의 시작, “정말 그랬을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해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의 뇌는 자극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이야기를 선호한다. 나폴레옹이 난쟁이였다는 말이 기억하기 쉽고, 갈릴레오가 화형을 당했다는 말이 더 자극적이다. 그렇게 단순화된 이야기는 반복될수록 사실처럼 굳어진다. 그러므로 당연하다고 믿어온 상식에 대해 한 번 정도는 의심하고, 익숙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한 번 정도는 낯선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고정관념은 깨지고 상식과 지식이 새살처럼 돋아날 수 있다. 기억하자. 모든 지식의 첫걸음은 다음 질문에서 시작된다. “정말 그랬을까?”
  • 역사 교과서가 단순화한 사건들 [한ZOOM]

    역사 교과서가 단순화한 사건들 [한ZOOM]

    우선 제목에 담긴 오해부터 바로잡고자 한다. 역사 교과서도, 현장의 역사 교사들도 역사를 단 한 줄로 가르치지 않는다. 역사는 인간이 남긴 모든 기록과 흔적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를 맥락이 아닌 단편적인 문장으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물론 방대한 역사의 모든 맥락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압축된 형태’로 기억하려 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중세는 암흑기였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의 승리였다”, “산업혁명으로 인류는 풍요로워졌다”, “서로마제국은 476년에 멸망했다”와 같은 문장들이 그 예다. 이런 압축은 시험을 준비하거나 지식을 체계화하는 데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압축된 기억’이 ‘역사의 전부’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학교를 떠나 역사를 전공하거나 깊이 있는 교양서를 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역사는 박제된 문장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무수한 맥락의 그물망이기 때문이다. ●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말은 누구의 관점일까?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그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대항해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역사적 순간을 오랫동안 역사 교과서는 ‘신대륙 발견’이라고 설명해 왔고, 우리의 머릿속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에서는 이 표현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미 마야, 아즈텍, 잉카를 비롯한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고, 수천만 명의 원주민이 자신들만의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살던 땅을 누군가가 ‘발견했다’는 표현은 성립할 수 없다. 심지어 1960년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발견된 바이킹 정착지 유적은,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약 500년 먼저 북미에 도착했음을 증명하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명제를 완전히 뒤흔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콜럼버스가 세계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가 유럽과 아메리카를 지속적으로 연결했고, 이후 대항해 시대와 세계 무역, 그리고 식민지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누가 기록했는가에 따라 그 의미와 표현도 달라진다. ● 중세 시대는 정말 암흑기였을까? 중세 시대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짙은 회색이 가득한 어둡고 음산한 장면이 떠오른다. 중세 시대를 ‘암흑기’(Dark Ages)라는 강렬한 단어로 기억하고 있는 탓에, 우리는 여전히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중세 시대를 무지와 미신,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의 시대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역사학은 이 시기를 훨씬 입체적으로 바라본다. 중세에는 유럽 최초의 대학들이 세워졌다. 이때 탄생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프랑스 파리 대학, 영국 옥스퍼드 대학은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수학과 건축 기술의 결정체로 평가받는 ‘고딕 성당’도 이 시기에 건설됐다.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과 샤르트르 대성당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경이로운 건축적 진보를 보여준다. 농업 기술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철제 쟁기가 보급되고, 토지를 3년 주기로 돌려 경작하는 ‘삼포제’(三圃制)가 확산되며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풍차와 물레방아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며 사회의 동력이 됐다. 물론 흑사병, 종교 갈등, 십자군 전쟁과 같은 비극적 사건들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단편적인 사건 몇 가지로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암흑기’라는 단어 하나로 가두기에는 중세는 지나치게 길고 복잡한 시대였다. 일각에서는 ‘암흑기’라는 표현 자체가 르네상스 시기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대를 부각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적 개념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 프랑스 시민혁명은 정의가 승리한 이야기였을까? 1789년, 오랜 재정 위기와 흉작으로 폭발한 민중의 봉기가 도화선이 돼,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운 혁명이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국민주권에 기초한 근대적 정치 질서의 기틀을 세웠다. 역사는 이를 ‘시민혁명’(Bourgeois Revolution)으로 기록하고 있다. 시민혁명은 현대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혁명의 실제 과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적인 서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혁명 정부는 정치적 주도권을 쥔 뒤 체제 유지를 위해 ‘반혁명 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혁명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서로를 숙청하고 처형하기 일쑤였다. 공포 정치로 수천 명을 단두대에 세웠던 막시밀리엥 드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결국 두려움에 뭉친 동료들의 반격으로 같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혁명은 자유를 향한 시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고귀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권력을 향한 추악한 투쟁이 있었고, 희망의 시대과 공포의 시대가 동시에 열린 사건이기도 했다. 역사 교과서는 혁명의 의미를 설명하지만, 그 안에 담긴 복잡한 인간의 욕망과 갈등까지 오롯이 담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 산업혁명은 모두를 부자로 만든 사건이었을까?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경제적 전환점이었다. 그 상징성 덕분에 오늘날 인류 역사의 중대한 경제적 변화 시점마다 ‘산업혁명’이라는 명칭이 붙곤 한다. 21세기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것도 산업혁명이 가진 거대한 상징성을 활용한 같은 맥락이다. 제1차 산업혁명의 결과, 증기기관이 등장하고 대량생산 체계가 시작되면서 생산성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필요한 물건을 예전보다 싸고 빠르게 손에 쥘 수 있게 됐고, 서서히 현대적 자본주의의 기반이 확립됐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삶은 결코 풍요롭지 않았다.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은 흔한 일이었고,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위험한 탄광과 방직공장에 내몰렸다. 도시는 급속히 팽창했지만 위생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빈민가에서는 질병과 범죄가 난무했다. 오늘날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노동시간 제한, 산업재해 보상, 최저임금, 아동노동 금지 같은 제도들은 사실 산업혁명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발전은 언제나 혜택과 비용을 함께 가져온다는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바로 산업혁명이었다.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번 혁명이 우리 사회에 지불하게 할 비용이 무엇인지 두려움을 안고 지켜보고 있다. ●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냉전에 대한 편견 우리는 “서기 476년 로마 문명이 무너졌다”고 기억하지만, 사실 그해 그날 갑자기 문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동로마 제국은 이후로도 1453년까지 약 1000년을 더 이어갔고, 그곳에서 꽃핀 로마법은 현대 유럽 법률의 근간이 됐다. 로마인이 남긴 라틴어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의 뿌리가 됐으며, 로마가 구축한 도로망과 행정 체계 역시 중세 시대를 관통하며 이어졌다. 문명은 단절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대 역사학자들은 로마의 ‘멸망’이라는 단어 대신 ‘전환’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냉전(Cold War)에 대해서도 비슷한 오해가 존재한다. 우리는 냉전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91년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까지 이어진 미국과 소련 사이의 단순한 대립으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냉전은 단순히 두 초강대국의 경쟁을 넘어, 전 세계를 재편한 거대한 국제 질서의 변화였다. 그 영향력은 한반도와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벌어진 전쟁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의 수많은 분쟁으로 이어졌다. 새롭게 독립한 국가들은 어느 진영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았고, 스위스처럼 비동맹 노선을 택하며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한 국가들도 있었다. 역사 교과서에는 마치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거인의 대결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냉전은 수십억 명의 삶을 흔들어놓은 지구적 규모의 사건이었다. ● 역사 교과서는 결론이 아닌 출발점이다 역사 교과서는 역사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낸 완결된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 방대한 역사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지도에 가깝다. 지도는 단순할수록 직관적으로 길을 찾기 쉽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한 그림, 단편적인 문장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간단한 지도를 손에 들고 막상 길을 나서면, 실제로는 지도 너머에 더 많은 풍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도의 선으로 다 표현하지 못한 작은 골목길들,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풍경, 그 길을 둘러싼 자연이 사실은 역사라는 지도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 교과서는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 돼야 한다. 쉽게 단정 짓고 해석하고 외우려 하지 말고, 이 복잡하게 얽힌 세상을 선과 악, 아군과 적군이라는 흑백논리로 재단하지 않는 힘을 길러주는 이정표가 돼야 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박제된 사실과 연도를 외우는 데 피로감을 느끼는 우리 학생들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마녀사냥의 시대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마녀사냥의 시대

    서양사의 어두운 부분 중 한 페이지인 마녀사냥에는 흔히 그 앞에 ‘중세’라는 시기를 덧붙인다. 이는 오해다. 마녀로 몰린 여성에 대한 ‘사냥’이 일어난 시기는 5~15세기에 이르는 중세가 아니라 16세기 이후 근대 사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녀’라는 말은 유럽뿐 아니라 고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며, 마녀사냥이 지칭하는 마녀 개념은 중세에 형성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중세에는 잔 다르크의 사례가 보여 주듯 오히려 나름대로 엄격한 심문 과정을 거쳐 마녀 여부를 가려내는 재판이 이루어졌다. 대중의 충동과 군중심리에 이끌려 무고한 여성을 무분별하게 마녀로 몰아가는 광적인 행태는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정점을 이루었다. 놀랍게도 이 시기는 서유럽이 본격적으로 근대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고전으로의 복귀를 명분으로 내세운 르네상스도 지나가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유럽을 뒤흔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100여년 전 이미 시작된 신항로 개척으로 유럽 각국은 대서양과 인도양 교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갈릴레이와 케플러 같은 과학혁명의 주역들이 본격적으로 우주의 질서를 수학적으로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실로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기존의 관점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관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는 당대인들에게 절망과 좌절의 시기이기도 했다. 보편적인 기독교 세계는 다양한 종파에 따라 분열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에 대한 극단적 혐오를 드러냈고 이는 종교전쟁과 무자비한 대학살극으로 이어졌다. 삶의 질서는 보편적 교회가 아닌 국지적인 국가권력에 의해 재편되었고, 각 종파의 신앙을 정치적 정당성으로 삼은 국가권력은 종교전쟁에 뛰어들며 가혹한 과세를 실시했다. 당대 유럽인들의 눈에 기존의 진리와 질서는 무너지고 전대미문의 질서가 새롭게, 그러나 폭력적으로 수립되고 있었다. 새로운 진리인 과학은 아직 확고하지 않았고 오래된 진리인 신앙은 부서져 내렸다. 새로운 질서인 국가는 삶을 보호하기보다 착취했고 오래된 질서인 보편교회와 지역 공동체는 무기력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삶은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동시에 타 신앙에 대한 배척과 증오는 내 신앙에 대한 집착과 맹신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었다. 마녀사냥은 이러한 맹신과 삶의 고통이 빚는 부조리에서 터져 나왔다. 이렇게 열심히 믿는데 왜 구원받지 못하는가? 누가 신을 노하게 했는가? 마녀사냥은 가치관의 혼동과 ‘과학의 진보’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나타나는 듯하다. 과학과 기술은 전례 없이 발전하고 있지만, 기존의 질서 및 세계관의 혼동 속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을 특정한 누구의 탓으로 단순화해 몰아가는 세태. 그리고 그 누군가를 멸(滅)하면 다 해결된다는 극단적인 생각의 발호. 하지만 이 또한 마녀사냥과 같이 무너져간 역사의 파편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 방성환 경기도의원, 농업은 국가와 도민 삶의 기반… 미래농업 투자 더욱 확대해야

    방성환 경기도의원, 농업은 국가와 도민 삶의 기반… 미래농업 투자 더욱 확대해야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 방성환 위원장(국민의힘, 성남5)이 기후 위기와 이상기후 등 다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농정 분야 예산의 적기 투입을 촉구하며, 첨단기술을 접목한 미래 농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투자 확대를 강력히 제안했다. 방 위원장은 지난 11일 열린 제391회 정례회 축산동물복지국과 농업기술원 소관 2025회계연도 결산심의 상임위 회의에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환기시키고 경기 농정의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이날 결산심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민의 먹거리와 삶을 책임지는 가장 기본적인 분야”라며 “기후 위기와 가축 질병, 이상기후 등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 중심 재정 운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예산의 적시성을 강조했다. 방 위원장은 “농정 예산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농업인과 축산농가, 농촌 현장에서 매우 소중한 예산”이라며 “특히 질병 대응, 축산 환경 개선, 기후 변화 대응과 같은 분야는 적기에 충분한 예산이 투입되지 않으면 결국 현장 공무원과 농업인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농업기술원의 연구 역량 강화와 관련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결합한 지식 기반 농업으로의 확장을 주문했다. 그는 “농업은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 치유, 체험, 도시농업, 푸드테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며 “AI와 첨단기술을 접목한 미래 농업 시대에 농업기술원이 연구와 기술 보급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농업의 개념도 이제 전통적인 생산 중심을 넘어 AI, 스마트 농업, 푸드테크와 같은 미래 산업 영역까지 포괄해야 한다”며 “경기도가 대한민국 농업의 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농업기술원과 농정 분야가 함께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방 위원장은 경기 농정이 나아갈 지향점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농업은 가장 기본적인 산업이지만 동시에 미래 산업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분야”라며 “AI와 첨단기술, 기후 변화 대응 등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농업이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농업기술원과 농정 분야가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방 위원장은 행정 실무를 담당해 온 공직자들을 향한 감사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결산과 사업 추진을 위해 애써주신 축산동물복지국과 농업기술원 공직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특히 최일선 현장에서 고생하고 계신 팀장님들과 주무관님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격려하며 심의를 마쳤다.
  • “시민 뜻으로 세운 조선대… AI 시대 ‘윤리적 나침반’ 될 것”

    “시민 뜻으로 세운 조선대… AI 시대 ‘윤리적 나침반’ 될 것”

    시민 창학정신 담긴 국내 첫 민립대1987년 1·8항쟁은 정체성 회복 운동AI 종착지도 결국 ‘사람 위한 기술’기술 격변기 속 인본주의 강조해야의·치·약·간호대 보건 인프라 강점AI 활용해 ‘웰에이징 플랫폼’ 구축우주항공 분야 지역 상생 산업 주도미래 세대로 민주·인권의 가치 계승 광주시 동구 필문대로 언덕길을 따라 오르자 초여름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백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일 건물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조선대학교 본관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함선이 대양을 향해 닻을 올린 듯한 위용을 품고 있다. 1946년.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가난과 혼란이 짙게 드리웠던 시절이었다. 당시 호남 시민 7만 2000여명은 “황토로 담을 쌓고 창호지로 문을 발라서라도 대학을 세우자”며 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탄생한 대학이 조선대다. 국가도, 종교도, 거대 자본도 아닌 시민의 힘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최초의 민립대학이다. 올해 개교 80주년을 맞은 조선대는 다시 새로운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혁명, 학령인구 감소, 지방 소멸, 초고령 사회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조선대는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김춘성(58) 조선대 총장은 인터뷰 내내 뜻밖에도 첨단 기술보다 ‘사람’을 이야기했다. 개교 80주년을 맞은 조선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100년의 청사진을 들어봤다. -80년 전 가난했던 시절, 시민 손으로 세워진 대학이 이제는 지역의 거목이 됐다. 개교 80주년을 맞은 소회는. “조선대는 태생부터가 한 편의 대서사시다. 국가나 거대 자본, 혹은 특정 종교 재단이 세운 여타 대학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광복 직후 배움에 목말랐던 지역민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일궈낸 ‘민초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설립동지회 권유문에 담긴 절박한 호소는 학교 하나를 짓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교육을 통해 지역과 국가의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시민적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 의지가 80년을 이어왔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구성원과 지역사회가 함께 대학을 지켜냈다. 시민이 세우고, 시민이 지킨 대학, 그것이 조선대의 가장 큰 정체성이자 자산이다.” -조선대 하면 1987년 1·8항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학 민주화의 상징적 사건인데. “조선대 역사에서 가장 아픈 기억이면서 동시에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다. 민립대학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사유화의 질곡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113일간 이어진 처절한 투쟁은 단순히 권력자를 바꾸는 싸움이 아니라 시민이 세운 대학을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는 ‘정체성 회복 운동’이었다. 그 결과 1988년 대학 개혁 운동 끝에 조선대는 대학자치운영협의회를 출범시켰고, 이듬해 전국 대학 최초로 예·결산 집행 내역을 전면 공개했다. 시민이 세운 대학을 시민에게 열어 보인 것이다. 조선대는 민주주의를 배우며 실제로 민주주의와 함께 살아온 대학이다. 그 역사의 무게를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대학의 공공성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1·8항쟁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80주년 슬로건이 ‘휴머니티 비욘드 더 퓨처(Humanity Beyond the Future)’다.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시점에 왜 다시 ‘인본주의’인가.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휴머니티를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빠르게 대체할수록 우리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조선대가 추진하는 AI, 바이오, 우주항공, 웰에이징((Well-aging) 전략의 종착지는 결국 ‘사람을 위한 기술’이어야 한다. 기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대학은 기술 발전의 맹목적 속도전에서 벗어나 사회적 가치를 지키는 ‘윤리적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80년 전 선배들이 교육을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꿈꿨듯이 우리는 기술이 사람을 향하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대학이 되겠다.” -글로컬대학 사업의 핵심으로 웰에이징을 제시했다. 단순한 의료 서비스를 넘어선 개념 같은데. “그렇다. 웰에이징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건강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초고령 사회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맞이하게 될 미래다. 결국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미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조선대는 의·치·약·간호대학이라는 강력한 보건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와 함께 삶을 해석하는 인문학, 삶을 채우는 문화예술, 삶을 편리하게 하는 공학이 한 캠퍼스 안에 함께 있는 종합대학이다. 여기에 AI와 빅데이터를 결합해 생애 전반을 관리하는 ‘웰에이징 플랫폼’을 구축하려 한다. 그러기에 조선간호대학교와의 통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국 3위 규모의 우수한 간호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하게 됐고, 의료와 돌봄, AI가 융합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지방대의 위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라는 파고를 넘기 위한 조선대만의 전략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위기를 돌파할 방향은 있다. 지역 문제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대학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조선대는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조선대는 치매 정밀의료 빅데이터, 펩타이드 신약 연구, 해양 바이오, 구강 미생물 연구 등 미래 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지방대 최초로 누리호 큐브위성 탑재 성공과 이어지는 도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성과들 앞에서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기술이 지역 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라고 말이다. 연구가 기술이 되고 기술이 창업과 일자리가 되고 그것이 지역의 삶을 바꾸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실용적 혁신’이다. 당면하는 사회 문제의 해법을 만드는 대학,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플랫폼 대학, 그리고 사람의 가치를 지키는 AI 시대의 대학 모델을 조선대가 제시하겠다.” -80주년 기념 학술·문화사업이 풍성하다던데. “대학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민립대학 정신과 민주·인권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계승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핵심은 ‘조선대 80년사’를 편찬 사업이다.본관 로비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CSU 명예의 전당 & 히스토리월’이 조성된다. 대학의 상징인 108계단에는 개교 90주년과 100주년을 기약하는 연혁 동판을 설치한다. CSU 어게인 7만2000 발전기금 캠페인’ 등 민립대학 설립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나눔 사업도 추진된다. 기부자 이름을 새긴 기념 블록을 설치하는 ‘장미로드’ 사업과 함께 민주·인권·희망의 가치를 담은 ‘CSU 휴머니티 로즈가든’도 조성된다. 지역 작가와 미술대학 학생들이 참여하는 어반스케치 프로젝트 ‘조선대를 그려봄’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최근 조성된 민주인권동산은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는데. “조선대 캠퍼스는 시민의 공간이다. 최근 조성한 민주인권동산은 그 의미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다. 장미원 곁에 5·18민주동산, 민주열사동산, 소녀동산을 배치했다. 화려한 꽃길 옆에 기억의 공간을 둔 이유는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휴머니티의 출발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유와 민주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고귀한 가치다. 꽃이 피는 자리 곁에 그들의 헌신을 함께 두는 것, 민주인권동산은 미래 세대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살아있는 교육 공간이다. 또한 6·25전쟁 당시 조선대는 전시연합대학의 한 축으로 학문의 명맥을 이어갔다. 지난해 조성한 호국영웅 명비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조선인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민주와 인권, 그리고 호국의 정신이 함께 숨 쉬는 캠퍼스. 그것이 조선대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다.” -조선대의 미래, 다음 100년의 비전은 무엇인지. “80년 전 나라를 되찾은 이 땅의 사람들이 국가의 부강을 위해 열망한 교육, 조선대는 그 열망으로 태어났다. 지금 시대는 이렇게 묻고 있다. 지역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이 존엄하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기술이 사람을 밀어내지 않도록 하려면 어떠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가. 조선대는 이 질문들에 답하는 대학이 되고자 한다. 웰에이징, 우주항공, 바이오, AI 융합은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이다. 100년의 조선대가 어떤 대학으로 기억될지는, 지금 이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성실하게 답했는가에 달려 있다.” -학교 구성원들과 지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조선대 캠퍼스는 시민의 정원과 같다. 장미원에는 가족, 학생, 시민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 풍경이 바로 조선대 80년 역사의 축소판입니다. 80년 전 황무지에 뿌려진 배움의 씨앗은 이제 지역을 지탱하는 뿌리가 됐다. 우리는 그 뿌리 위에서 시민과 함께 다음 100년을 써 내려가겠다.”
  • 중국 화웨이가 제시한 단 한글자 τ, 반도체 산업 뒤흔들어

    중국 화웨이가 제시한 단 한글자 τ, 반도체 산업 뒤흔들어

    중국이 반도체 자급자족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는 가운데, 화웨이가 기존 산업계 통념을 뒤엎는 ‘타우(τ)의 법칙’을 제시하자 베이징대는 이를 뒷받침할 설계 소프트웨어 기술 진전을 이뤄냈다. 화웨이는 지난 25일 기존의 ‘무어의 법칙’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으로 ‘타우의 법칙’을 제시했다. ‘타우’는 회로 내에서 신호가 안정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가리킨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집적도가 약 1~2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이지만, 화웨이는 미세공정 경쟁 대신 신호 최적화를 통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새로운 반도체 개발 패러다임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첨단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 상황에서 나온 중국 측의 돌파구로 평가된다. 노광장비는 반도체 칩의 미세 회로 패턴을 실리콘 웨이퍼에 새겨 넣는 핵심 장비다. 베이징대는 27일 마이크로칩 설계 소프트웨어인 전자설계자동화(EDA)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화웨이가 오는 2031년까지 1.4나노미터 공정 칩 생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베이징대의 EDA 소프트웨어가 지원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에는 노광장비 없이 3나노미터 이하 칩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는데 화웨이는 반도체 크기를 줄이는 대신 속도에 초점을 맞췄다. 저항을 줄이고 내부 배선을 더욱 긴밀하게 하여 칩을 통과하는 전기 신호의 전달 속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개선한 것이다. ‘타우의 법칙’을 발표한 허팅보 화웨이 반도체 사업부 사장은 “‘타우의 법칙’을 구현하면 더 이상 노광장비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칩의 속도 개선을 위해서는 엔지니어들이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EDA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는데 베이징대의 혁신이 다층 칩의 수직 구조를 최적화할 전망이다. 베이징대는 새로운 EDA는 칩 내부의 총 배선 길이를 30% 줄였을 뿐만 아니라 성능과 열 관리 측면에서도 향상된 결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 EDA 소프트웨어에도 판매 제한 조치를 부과했으나 중국의 자급자족 추진에 수출 금지를 풀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화웨이의 ‘타우 법칙’을 두고 공산당 혁명 당시 마오쩌둥 주석의 대장정에 빗대 ‘용감한 장정’이라고 평가했다. 화웨이의 획기적인 진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중 수출 금지를 풀어줬음에도 H200칩을 중국에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엔비디아에 타격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일부 우려에도 엔비디아 칩을 중국 10개 회사가 구매할 수 있도록 했지만, 중국 당국은 자국산 칩을 권장하며 엔비디아 칩 수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화웨이가 기존 60년간 반도체 업계를 지배해온 통념을 깨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면서, 앞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역시 이 같은 접근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병철 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첨단 노광장비를 사용하더라도 칩을 계속 미세화하는 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며 “중국이 방대한 엔지니어 풀을 투입하면 타우의 법칙을 구현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AI 시대에는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방식이 트랜지스터를 집적하는 ‘무어의 법칙’에서 벗어나 전력 효율과 데이터 전송 최적화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화웨이의 ‘타우의 법칙’도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 저항권, 프랑스 대혁명·미국 독립혁명 근간… 민주주의 지키는 ‘양날의 칼’

    저항권(right of resistance)은 단순히 ‘정부를 비판할 자유’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 권력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파괴한다면 시민이나 공동체가 그 권력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으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맞설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는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묵시적으로 근대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근간에 자리잡고 있는 관점이다. 저항권은 사회계약론이 서구의 지적 테마로 부상한 17세기 이후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국민에게 부당한 권력을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논했고, 영국의 로크는 ‘정부론’에서 자연권을 파괴하는 정부에 맞서는 시민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은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 혁명의 근간이 되었다. 이후 여러 국가가 헌법을 제정하고 근대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헌법을 참고하거나 영국의 입헌군주정을 모방했다. 저항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근대 정치 질서의 바탕에 저항권의 논리가 깔리게 된 이유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전후로 식민지 해방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저항권의 논리는 서구를 넘어 세계 보편의 것이 되어 갔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은 그러한 변화의 정점을 이루었다. 미국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저항권을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 논리로 도입했다. 저항권의 문제의식은 서양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에도 유사한 전통이 존재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왕도정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백성을 학대하는 군주는 군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맹자의 역성혁명론이다. 민심과 도덕성을 상실한 지배 권력은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저항권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기틀이지만, 자칫하면 국가 전체를 뒤흔드는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 보다 열린 자세로 더욱 진지한 논의가 오가야 하는 이유다.
  •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동학농민혁명과 세계사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동학농민혁명과 세계사

    지난 11일은 132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은 명칭이나 역사적 해석에 대해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조선이 서양의 여러 영향을 받기 시작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인 만큼 서양의 주요 사건과 비교하는 게 정당한지, 또는 서양사 중심의 역사적 해석을 적용하는 게 적절한지가 주를 이룬다. 그런 차원에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과연 ‘혁명’(revolution)이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때 혁명이라는 말은 기존 체제와 질서를 전복시키고 급진적으로 새로운 체제와 질서를 세운다는 뜻을 함축한다. 정치, 사회, 경제 등 어느 분야에서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용어의 구분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바라볼 때는 언제나 단선적인 진보사관이 전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프랑스혁명’의 경우 ‘레볼뤼시옹’(révolution)이라는 말은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는 두 가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하나는 그의 저서만큼이나 세상을 뒤바꾸는 사건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제목 그 자체로 회전, 즉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는 운동’을 의미한다. 실제로 프랑스혁명 초기에 많은 지식인은 인민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아 예전의 자연 상태를 회복하는 것으로 이해하곤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혁명’이라는 표현을 단선적이고 근대적인 진보관에 입각한 급진적 행위로 보기 이전에 보다 장기적인 유럽의 민중운동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실제로 유럽에서 본격적인 농민 봉기가 발생하는 시기는 14세기이며 그 배경은 봉건사회에서 정치사회로의 이행, 즉 지방분권적인 영주-농노의 관계가 쇠퇴하고 국가 체제에 의한 전국적인 과세가 시행되는 것과 맞물린다. 이는 과세를 통해 중앙의 국가 재정에 참여하는 농민들이 스스로를 국가 정치의 주체로 자각하는 과정, 하지만 신분제에 의해 이러한 의식이 경멸받았을 때 느꼈던 울분과 부당함, 나아가 과세의 불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수반한다. 이러한 봉기들을 바라볼 때 민주 지향성이나 근대성을 얼마나 함유하고 있었는가라는 기준을 성급하게 적용할 필요는 없다. 모든 봉기는 어느 정도 당시의 왕정 체제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세기 말에야 확고해지는 민주정을 이전의 봉기들이 명확한 계획표로 먼저 제시했을 리도 만무하다. 중요한 점은 ‘지금, 여기에서’ 부당하게 억압받는 자들이 인간으로서의 평등함을 내세우며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철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서양사의 개념을 꼭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세계사적인 전망에서 평가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때 경직된 개념틀보다는 유연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비교·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 ‘사랑 부르는 평화·평화 부르는 사랑’…강북문화재단, 4·19 특별전

    ‘사랑 부르는 평화·평화 부르는 사랑’…강북문화재단, 4·19 특별전

    서울 강북문화재단은 이달 22일까지 강북문화예술회관 강북진달래홀 갤러리에서 윤호섭 작가의 ‘사랑 부르는 평화’ 4·19 특별전을 선보인다고 13일 밝혔다. 지난 5일부터 개최한 전시는 휴관일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 전시는 4·19 혁명의 자유·민주정신을 오늘날의 시대적 가치인 ‘평화’와 ‘공존’으로 확장해 조명하는 특별기획전이다. 국내 최초로 ‘그린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환경 예술가이자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인 윤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구 대표 시각예술인인 그는 오랜 시간 자연과 인간, 생명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며 ‘그린캔버스’, ‘녹색평론’, 환경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윤 작가는 이 전시에서 자연과 생명,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최근 국제사회 곳곳에서 이어지는 갈등과 분열 가운데 예술이 건네는 치유와 화합의 메시지를 통해 관람객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전시 기간 헌 옷을 가져오면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려 주는 특별한 이벤트도 준비됐다. 재단 관계자는 “4·19 혁명의 정신은 단순한 역사적 기억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와 평화, 공존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며 “지역에서 50년 넘게 살아온 유명 작가와 주민이 만나 예술로 위로와 희망을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사회과학은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회과학은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10년 전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맞붙은 세기의 대국은 알파고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인간과 AI의 진검승부 이후 AI의 발전 속도는 놀랍기만 하다. 인공지능이 사주를 봐주고 인생 상담을 하는 등 AI가 쓰이지 않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질 정도다. 심지어 AI는 연구자들의 연구 방법에도 영향을 미치며 학문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한국사회학회가 기획한 학술서 ‘인공지능 시대의 사회과학’(동아시아)은 AI 등장으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변하고 있는 시대에 사회과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사회과학은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진단한 9편의 논문과 기획 대담을 실었다. 9명의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실에서 ‘AI 시대를 정확하게 읽어야 할 사회과학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했다. 이들이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은 AI가 가져오는 가늠하기 어려운 사회적 변화는 모두 이 시대 사회과학이 새롭게 감당해야 할 과제라는 점이다. 마치 200년 전 산업혁명 때 이전의 사유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을 해석하기 위해 칼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 에밀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 막스 베버의 ‘사회적 행위 개념’ 등 다양한 도구, 바로 사회과학이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AI는 계급 경계를 흐리고, 사회적 사실의 보편성을 의심하게 하며 사회적 행위의 의미를 재규정하고 있다. 요즘 사회과학은 과거의 해석 도구를 고집하며 적응하고 변하지 못하면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병규 미국 뉴욕대 교수는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게 사회과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연구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며 “인공지능과 인간이 어떻게 사회와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장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학과 사회과학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와 사람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관찰하고 그걸 바탕으로 기존 사회에 대한 이론, 인간 행위나 결정 행동에 대한 이론 같은 것들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AI를 거론할 때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일자리의 변화다. 논문 저자들은 AI는 단순히 노동을 대체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 지성과 문명 자체에 더 근본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전의 일자리 변화 요인들과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조원광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AI로 인해 변화한 사회의 일자리 증감보다는 전보다 좋은 일자리일지 그렇지 않을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며 “언제나 그랬듯이 일자리가 있냐 없느냐만큼 중요한 문제가 안정성이나 임금, 스트레스 같은 면에서 좋은 일자리냐 그렇지 않은 일자리냐이다”라고 강조했다.
  • 서울 찾아온 붉은 테이블… 김기민표 ‘발레 혁명’ 날다

    서울 찾아온 붉은 테이블… 김기민표 ‘발레 혁명’ 날다

    ‘발레 혁명가’ 모리스 베자르의 유산15년 만 방한 ‘볼레로’ 파브로 감독“무용수가 여행하듯 만드는 작품”김 “동작 하나하나에 비밀의 열쇠어린 무용수들 더 큰 꿈 키웠으면” 커다란 붉은색 원형 테이블 위에 홀로 서 있는 무용수.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볼레로’(1928)가 흘러나오면서 무용수가 조금씩 리듬을 탄다. 스페인풍 볼레로 리듬 위에 플루트, 바순, 오보에, 트롬본, 팀파니, 베이스드럼, 탐탐이 추가되고 무용수들도 서넛씩 테이블 주변에 모여 동작을 반복한다.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에너지가 객석까지 빨아들이며 집단적 몰입을 완성하면 무용수는 끝내 쓰러진다. 라벨이 쓴 발레곡은 ‘발레 혁명가’로 불리는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1927~ 2007)를 거치며 또 다른 기념비로 다시 태어났다. 서사 대신 리듬이 축적돼 드라마를 만드는 ‘볼레로’(1961)는 조르주 돈, 마야 플리세츠카야, 실비 기옘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거쳐 간 ‘꿈의 무대’로 통한다. 23~26일 서울 GS아트센터 ‘베자르 발레 로잔 위드 김기민’ 공연에 앞서 만난 줄리앙 파브로(49) 베자르 발레 로잔(BBL) 예술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모든 감정을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움직임으로 응축시켜 무대 위에 생동감을 만든다”고 밝혔다. “단순한 개념을 무대 위의 마법으로 승화시키고, 신체와 음악이 하나의 보편적 언어로 어우러지는 순간을 선사하는 베자르의 유산”이라고 부연했다. 2011년 대전 공연 이후 15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파브로 감독은 이어 “그때는 무용수였지만 이제는 감독으로 만나게 돼 감동”이라면서 “한국 관객들에게 빨리 무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볼레로’에서 테이블 위에 선율 그 자체를 구현하는 ‘라 멜로디’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34)이 맡는다. 김기민은 ‘볼레로’라는 작품이 오랜 꿈이라면서 “긴장돼서 비행기에서 잠도 자지 못했지만 좋은 공연으로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분 좋다”고 소감을 건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절 스승 블라디미르 김이 아르헨티나 출신 무용수 조르주 돈의 영상을 권하며 “프로 무용수가 돼서 많은 경험을 쌓은 뒤에 이 춤을 꼭 춰야 한다”고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조르주 돈은 영화 ‘사랑의 슬픔의 볼레로’(Les Uns et Les Autres·1981)에서 ‘볼레로’를 추며 마지막 장면을 강렬하게 장식한 인물이다. “‘볼레로’ 음악이 시작될 때 음표 하나가 머리로 떨어져서 손끝까지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며 짜릿함을 말했던 김기민은 “로잔에 세 번 방문해 연습했고, 한 번 연습할 때마다 3시간 동안 화장실도 안 가고 몰두했더니 파브로 감독이 ‘너 괜찮아?’라고 묻기도 했다”며 웃었다. “진지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고 감독님도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가르쳤다”면서 “감독님이나 작품 모두 힘들어도 더 춤추고 싶을 만큼 ‘사람을 홀리게’ 만들었다”고 했다. ‘라 멜로디’는 체력과 정확성, 무대 전체 에너지를 붙드는 능력을 요구하는 ‘극한의 배역’이다. 파브로 감독은 “나는 작품의 틀을 제공해줄 뿐, ‘볼레로’는 무용수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생각하며 여행하듯 완성한다”면서 “기민도 두 번의 공연에서 다른 기분을 느끼고 다르게 표현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기민은 ‘라 멜로디’가 쓰러지는 작품의 끝이 여러 가지 의미를 품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은 죽음으로 표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음악에) 집중하다 보면 눈물 날 것 같기도 하고 소름도 돋는다”면서 “첫 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며 춤을 추려고 한다”고 부연했다. 이번 공연에선 ‘볼레로’와 함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토대로 한 ‘불새’, 셰익스피어 비극을 재해석한 ‘햄릿’(23·25일)과 조니 캐시의 음악으로 존재의 여운을 시적으로 풀어낸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24·26일)를 올린다. 아시아 초연으로 공연하는 ‘햄릿’에서 오필리어를 연기하는 이민경은 “입단한 지 6년 동안 일본 공연을 하면서도 한국엔 오지 못했는데, 이번에 한국 무대에 올라 정말 감격스럽다”면서 “작품 속 동작의 이유와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면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앞선 줌 인터뷰에서 “BBL 동작 하나하나에 ‘비밀의 열쇠’가 있다”고 했던 김기민은 “30년을 춤춰도 그 열쇠를 찾지는 못하겠지만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 같긴 하다”는 말을 덧댔다. 이어 “이 위대한 유산을 보면서 한국의 어린 무용수들이 더 큰 꿈을 키웠으면 한다”며 “관객들은 왜 이 작품에 열광하는지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이광호의 어찌보면] ‘K’와 콘텐츠 사이에서

    [이광호의 어찌보면] ‘K’와 콘텐츠 사이에서

    ‘왕의 길’을 따라온 ‘왕의 귀환’은 강렬했다. 지난달 21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은 새로운 문화적 의미로 거듭났다. 서울을 상징하는 문화재와 ‘빛의 혁명’의 현장이라는 이미지에 더해 전 세계적인 K팝 문화의 상징이 됐다.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의 무대 프레임은 ‘개선문’을 연상시켰는데, 군 복무를 마치고 완전체로 돌아오는 방탄소년단(BTS)은 개선의 영웅이었다. 경복궁의 역사적 상징성과 겹쳐 ‘왕의 귀환’이라는 서사적 이미지를 얻었다. 이벤트는 전 세계 190개국에 넷플릭스로 생중계됐다. 드론 카메라로 경복궁의 전체적인 구조미를 드러내고 ‘왕의 길’을 따라 멤버들이 귀환하는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보여 준 연출은 매력적이었다. 무대 장소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였고 메시지였다. 경복궁이라는 문화재를 거대한 캔버스로 설정했다. 광화문을 디지털 액자 안에 담는 디자인과 개방된 ‘오픈형 큐브’라는 설계는 전통 건축물과 현대적 무대가 겹쳐지는 시각적 효과를 만들었다. 이 공연은 국가 브랜드 이벤트가 됐고, 서구 중심의 문화 제국주의에 균열을 만드는 사건이기도 했다. ‘K-콘텐츠’라는 용어에서 ‘K’와 콘텐츠 사이에는 ‘하이픈’이 있다. ‘K’가 국적을 의미한다면 콘텐츠는 국적 너머의 유동성을 갖는다. 이 조합은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국적의 정체성과 콘텐츠의 무국적 유동성은 동거할 수 있을까. BTS 공연도 기획은 하이브였지만, 부가가치는 넷플릭스라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가져갔다. 무대 연출자는 외국인이며 앨범에는 ‘다국적 초호화 프로듀싱 라인업’이 참여했다. 외국 프로듀서들이 한국의 ‘아리랑’이라는 테마를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해냈다. 멤버들은 외국 프로듀서들이 제안한 비트에 한국어 가사와 멜로디를 입혔다. BTS의 다국적 음악성은 단일 장르로 환원되지 않는 혼종성을 가지며 세계 음악 지형도를 다시 만들고 있다. 이 혼종성은 세계의 다양한 청자들이 각기 다른 지점에서 BTS 음악과 접속할 수 있게 한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도 그렇다. 케데헌은 기본적으로 영어 영화이고,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세계에 퍼졌다. 제작사인 미국 자본 소니 픽처스 역시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상업적 성공은 ‘K’ 자본과 저작권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케데헌을 ‘K-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는 존재한다. 총감독인 매기 강은 한국계 캐나다 감독이고 한국적인 문화 요소들이 서사에 드러나 있다. 걸그룹 퇴마사들이 저승사자 보이그룹에 맞선다는 이야기는 한국적인 서사와 세계관의 반영이다. 외국 플랫폼 혹은 자본과 한국적인 콘텐츠의 결합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유력한 모델이 됐다. 콘텐츠의 수익과 저작권이 한국에 귀속되지 않는 문제는 근본적인 것이다. 저작권 자체가 ‘K’로 귀속되는 플랫폼의 개발과 더불어 IP를 활용한 지속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K-콘텐츠’의 소비자가 한국인들만이 아니기 때문에 수용자들의 글로벌한 요구가 ‘K-콘텐츠’의 생산 과정에 이미 개입될 수밖에 없다. ‘K’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K’는 국적과 자본의 순혈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K’는 이제 문화적 혼종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문화적 교섭과 확산의 결과다. 한국적인 감정 구조는 글로벌 감수성으로 번역되고, 동시에 그 내부적 특성들은 세계적인 맥락에서 변형을 겪는다. 거대 문화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K-콘텐츠가 지속적인 창조성을 보여 주는가는 성찰의 대상이다. 거대 자본에 의한 K-콘텐츠의 성공 사례들을 모방 재생산한다면 K-콘텐츠는 획일화된다. 오히려 아래로부터 분출되는 독립적인 예술들의 에너지가 한국 문화를 변화시키고 세계 문화의 위계에 충격을 가할 수 있을까. 그런 도발적인 작은 움직임들이 없다면 K-콘텐츠의 창조성은 고갈된다. 당장의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의 예술적·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지원하는 국가 시스템과 문화 생태계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낯선 예술적 실험이 만드는 문화적 역동성은 젊은 예술가들한테서 나온다. 지금도 그들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맞서 자신의 예술 작업을 위해 최소한의 의식주로 버티고 있다. K팝 연습생들, 웹툰 작가들, 촬영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보이지 않는 눈물은 ‘K’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는 이유는 로컬 콘텐츠의 신선함 때문만이 아니라 할리우드 대비 저렴한 제작비 때문이다. 한국 콘텐츠 제작 경쟁력에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와 무거운 노동 강도가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열린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예술 노동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K 문화강국’의 토대는 약화된다.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예술적 열망을 포기하고 ‘생활’에 굴복하는 순간 한국 문화의 소프트파워는 소중한 자산들을 잃는 것이다. ‘K’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희망의 이름이어야 한다. ‘K’는 이제 다르게 꿈꾸어야 한다. ‘K’는 국적이 아니라 다른 문화적 잠재성의 이름이다. 또 다른 ‘K’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정청래 “李대통령 기본소득 정책은 대한민국 미래 방향…혜안 놀라워”

    정청래 “李대통령 기본소득 정책은 대한민국 미래 방향…혜안 놀라워”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이재명 대통령이 높이 깃발을 든 기본소득 정책은 헌법에 매우 부합할 뿐 아니라 헌법에 나온 기본권을 구체화해 대한민국이 나아갈 미래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3기 출범식에 참석해 이같이 언급한 뒤 “이 대통령의 혜안에 매우 놀랐다. 이런 훌륭하고 좋은 정책은 계속 배턴을 이어받아서 달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본 사회를 원한다’고 명시한 당 강령을 언급하며 “우리가 이것을 써놓고 잘 모르고 간과하고 지나온 것이 사실이다.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린 것이 이재명 대표 때였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인공지능(AI)의 문명사적 대전환을 앞두고 양극화의 양면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산업혁명, 인터넷 혁명, AI 혁명이 지나간 자리에선 소외당하고 힘없는 사람이 직업을 잃고 더 고통받는 양극화의 양면을 띠게 된다”고 진단한 뒤 “당 기본사회위원회가 청년기본사회위원회를 신설하고, 청년의 삶과 기본권 과제를 차차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기본소득 정책 개념이 확대 적용된 기본사회 실현을 공약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기본사회를 “국민의 기본적인 삶은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라고 규정하면서 “단편적인 복지정책이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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