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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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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어떤 ‘크리처’ 되더라도… 사랑하는 이가 나를 찾기를”

    “내가 어떤 ‘크리처’ 되더라도… 사랑하는 이가 나를 찾기를”

    영어로 쓴 시 직접 한국어로 옮겨여성·유색인·이민자… 타자성 성찰 ‘시쓰기’는 시간의 흐름을 늦추는 행위다. 아니 정확히는 ‘존재하지 않던 시간’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온갖 자극이 빠르게 쏟아졌다가 사라지는 세계.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천천히’ 곱씹어 보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 ‘느림’이 인간을 구원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차 방한한 한국계 캐나다 시인 에밀리 정민 윤(35)을 지난 13일 만났다. 영어로 시를 발표하는 시인은 2020년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다룬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을 한국어로 출간하며 국내 독자와 접점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엔 한국에서의 두 번째 시집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부를 때’(자음과모음)를 펴냈다. 전작과 달리 영어로 쓴 시를 직접 한국어로 옮겼다. 그는 “시집을 아예 새로 쓴 기분”이라고 했다. “영어로 시를 쓸 때 더 편해요. 시 창작을 영어로 배운 만큼 영어 시의 전통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겠죠. 한국 문단과 교류도 자주 하면 한국어로 시를 쓰는 데도 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에밀리 정민 윤은 초등학생이던 2002년 캐나다에 이민했다. 일상에서는 영어와 한국어 모두 편하지만, 시를 쓸 땐 꼭 영어로만 쓴다. 지금은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며 하와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타자성’을 향한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아시아인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고통은 ‘크리처’(Creature)라는 단어에 집약돼 있다. “‘짐승’이라고 옮긴 크리처라는 단어가 제 정체성을 포괄하는 것 같아요.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 그런데 크리처는 그것만 의미하지 않죠. 동식물까지도 포함돼요. 크리처는 궁극의 타자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비유하기도 해요. 세계가 멸망하고 제가 어떤 크리처로 환생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저를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 세상을 견딜 수 있죠.“ 한국문화를 향한 세계적 관심은 시인에게 그리 달가운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또 다른 고정관념과 환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한, 시인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리와 사랑 사이의 관계와 경계를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 그게 시 쓰기의 전부다. “시는 어두운 곳에서 태어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첫 시집을 쓸 때 특히 그랬어요.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사랑으로 시를 끝맺고 싶죠. ‘다른 방향’으로, ‘다른 곳’으로 가보자고 하는 게 시니까요.”
  • 안녕달·편혜영 작가 책, 프랑스 독자들과 만난다

    안녕달·편혜영 작가 책, 프랑스 독자들과 만난다

    편혜영, 안녕달 등 한국 작가들의 책이 이달 5∼18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K-북 위크’(K-Book Week)를 통해 현지 독자들과 만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파리 마레 지구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조셉’ 등에서 한국 책 전시, 작가 낭독회, 출판인 교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7일 밝혔다. ‘연결: 책으로 잇다’를 주제로 열리는 행사는 한국 출판콘텐츠를 프랑스에 소개하고 유럽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행사 기간 갤러리 조셉에서 열리는 특별전시에서는 한국 대표 그림책 작가인 안녕달·이지현·밤코·김민우·김지윤 작가의 그림책 24종과 유영광·윤고은·편혜영·천선란·김차차 등 문학·웹소설 작가의 작품 21종을 소개한다. 또 프랑스에서 번역·출간된 한국도서 47종, 한국 유명 문화예술인들이 추천한 도서 22종, 출판 지식재산(IP)의 드라마·영화 등 2차 콘텐츠와 웹소설 10종 등 총 130종을 전시한다. 그림책 작가들 전시에서는 그림책에 나오는 원화와 일러스트, 입체 조형물을 만나볼 수 있다. 민화를 소재로 그림책 작업을 하는 ‘김지윤 작가의 방’을 재현한 공간도 소개된다. 프랑스에서는 다비드 포앙키노스, 마리티 게동, 오드리 플레네 등 유명 작가들을 비롯해 출판사·에이전시·한국문학 전문가 등이 참여해 한국 작가들과 대담을 나눈다. 15∼17일에는 한불 출판인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양국 출판 관계자가 참여하는 ‘케이-북의 밤’에서는 천선란 작가의 ‘모우어’ 도서 낭독회가 열린다. 유영광·김차차 작가와 프랑스 오드리 플레네 작가가 ‘인공지능(AI) 시대, 문학과 인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주제로 토의도 진행한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K-북 위크’는 양국의 독자와 작가, 출판인을 잇는 지속적인 교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문체부 내년 예산안 첫 9조원 돌파…청년에게 최대 15만원 문화비 준다

    문체부 내년 예산안 첫 9조원 돌파…청년에게 최대 15만원 문화비 준다

    19~34세 청년에게 연간 10~15만원의 문화비를 지원하는 ‘청년문화패스’ 관련 예산을 약 22배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문화체육관광부 내년 예산안이 발표됐다. 문체부는 2027년도 예산안이 9조 6345억원으로 올해 7조 8555억원보다 22.6% 늘었다고 4일 밝혔다. 내년 정부 전체 예산 증가율(12.6%)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수년간 넘지 못했던 8조원 ‘깔딱고개’를 넘어 단숨에 9조원대에 진입한 것으로 문체부 예산 증가율이 20%대를 기록한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김정훈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문화·체육·관광을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하겠다는 국민주권정부의 의지가 담긴 결과”라고 설명했다. 부문별로는 문화·예술 부문에 올해보다 44.6% 증가한 3조 8545억원을, 콘텐츠 부문에 9.5% 증가한 1조 7719억원을 책정했다. 관광 부문에는 18.8% 증가한 1조 7581억원을, 체육 부문에는 7.9% 증가한 1조 8333억원을 투입한다. 눈에 띄는 사업은 기존 청년문화예술패스를 확대한 ‘청년문화패스’다. 지원 대상을 현행 19∼20세에서 내년 19∼34세(청년기본법상 청년 대상)로 넓히고, 활용처도 공연·전시·영화·도서에서 체육까지 포함하도록 했다. 관련 예산은 361억원에서 7925억원으로 약 22배 상향됐다. 지원액은 연간 수도권 청년 1인당 10만원, 비수도권 청년 15만원이다. 김 실장은 이 사업에 대해 “단순하게 청년들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준다는 범위를 넘어 지역 문화 활성화, 기초 예술과 콘텐츠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인 사회안전망도 강화한다. 예술인 기초생활보장 지원 예산을 올해 15억원에서 내년 311억원으로 대폭 확대해 산재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을 늘리고, 건강검진 비용도 새로 지원한다. 예술인 생활안정자금의 경우 생활자금은 14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전세자금은 140억원에서 400억원으로 확대된다. 한국문학번역원 지원 예산도 249억원에서 344억원으로 늘었다. 지방공항 중심 관광권 조성을 위한 예산도 담겼다. 지방국제공항이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국비 659억원, 지방비 276억원 등 총 935억원을 투자해 인근에 특화 관광자원을 보유한 연계 도시를 연결하는 전략이다. 김해공항(부산시), 대구공항(대구시), 청주공항(청주시), 무안공항(무안군), 양양공항(양양군) 등 연내 5개 관광권을 설정해 집중 육성한다. 국민여행 지원도 확대한다. 농어촌 인구감소지역으로 떠날 경우 경비를 지원하는 ‘지역사랑 휴가지원’은 정부 지원 비율을 상향(보조율 30→50%)하고 혜택 인원도 20만명에서 40만명으로 늘린다. 체육 분야에서는 노후 공공체육시설의 개·보수 예산을 953억원에서 2558억원으로 확대 지원한다. 특히 안전과 직결되는 긴급 보수는 국고보조율을 50%에서 70%로 높였다. 전문체육 공정성 강화를 위해 국가대표 훈련 지원 예산(689억→788억원), 국가대표 선수촌 운영 예산(432억→571억원)도 반영됐다.
  • [열린세상] 난관에 부닥친 번역대학원 설립

    [열린세상] 난관에 부닥친 번역대학원 설립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이 난관에 봉착했다. 기적 같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을 준비하고, 나아가 지속 가능한 K컬처의 원동력을 만들기 위한 핵심과제로 2027년 9월 개교를 목표로 준비되던 번역대학원 설립이 교육부의 완강한 입장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교육부 입장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서울은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에서부터 차관, 실·국장까지 교육부 설득에 나섰지만 진척이 없다고 한다. 또 대학설립계획심의위원회에 참여한 한 위원은 교육부가 처음부터 의견란에 부정적인 입장을 담고 있어 거스르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방 이전이 결정된 이후 지방에 설립하거나 아니면 지방 국립대학과 연계해 대학원 과정을 설치하라는 것이다. 전자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문화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리고 물리적으로 이번 정부 내 설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 후자가 교육부의 실제 방안으로 보이는데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실소를 자아낸다. 지금 지방대학의 어문학, 인문학 교육은 이미 상당 부분 폐과되었거나 소멸의 길로 가고 있다. 영어, 불어 등 주요 서구 언어 외에 튀르키예어, 베트남어 등 수요가 폭증한 다양한 언어로의 번역을 가르칠 인프라와 전문 인력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막에서 논농사를 지으라는 격이다. 더구나 번역대학원은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한국학(문학)을 전공한 학생이 절반 이상 될 것이고 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자국으로 돌아가 번역뿐만 아니라 자국의 대학이나 문화기관에서 민간 포스트로 활동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그런데 외국인 학생을 정원 외 수입의 관점으로 대해 왔을 뿐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본 경험이나 전문성이 없는 대학의 현실은 우려를 더한다. 특히 번역대학원은 신설이 아니라 한국문학번역원이 전문 번역가 양성을 위해 20년 가까이 전문성과 역량을 쌓아 온 번역아카데미를 대학원으로 전환하려는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K컬처를 더 많이 확장하는 한편 치열한 글로벌 문화전쟁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전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과 상황 그리고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잣대만 고집한다면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늘이거나 잘라 죽였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빛의 혁명에 앞장서고 이재명 정부의 탄생을 적극 지지했던 예술문화계가 얼마 전 전문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예술문화정책을 촉구하는 비판 성명을 낸 것도 바로 이러한 관료주의적 탁상행정 때문일 것이다. 청년과 국민은 양질의 일자리, 주거 안정을 원하는데 아르바이트성 일자리, 욕조를 들일 수 있는 고시원, 비거주 1주택 중과세, 부부 공동명의 1주택 다주택 간주 등 본질에서 벗어난 대응책을 내놓는 행태가 최근 눈에 띄게 하락하는 국정 지지율과 차갑게 식어 가는 민심의 원인임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못지않게 각각의 특수성을 살피고, 이것이 본질에 맞고 합목적적인지 그리고 전체를 위해 합당한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실용주의’일 것이다. 30여 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도 교육부의 대학정책이 아닌 문체부의 예술정책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그 결과 오늘날 K컬처의 산실이 만들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문화강국’과 ‘문화산업 400조원’은 K컬처의 미래에 기반을 두고 있고 번역대학원은 그 핵심 인프라를 놓는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번역대학원을 설립하고자 하는 본질을 우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제 9월이고, 새해 예산과 제도를 확정하기까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부디 이 과정이 번역대학원 설립의 산통이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곽효환 시인·경남대 교수
  • [이광호의 어찌보면] “그래미도 로컬이다”… BTS ‘그래미 보이콧’의 의미

    [이광호의 어찌보면] “그래미도 로컬이다”… BTS ‘그래미 보이콧’의 의미

    방탄소년단(BTS)의 그래미 어워드 보이콧 선언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것은 ‘보편’의 가치를 독점해 온 미국 중심의 문화 제도가 비서구 문화를 어떻게 취급하는가를 보여 주며, 동시에 그 균열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래미 주최 측인 레코딩 아카데미는 ‘베스트 아시아 팝 뮤직 퍼포먼스’ 등 신설 부문을 발표하면서, 이 부문은 아시아 언어를 일정 수준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자격 기준을 만들었다. BTS는 멤버들의 명의로 2027년 그래미 출품을 거부한다고 밝히며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는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규 5집 ‘아리랑’이 빌보드 메인 싱글·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공의 정점에 있던 시점이었다. 이후 그래미는 제도 개선을 시사했지만, 8월 21일 출품 마감일이 지나버렸고 결과적으로 그래미는 BTS의 문제 제기에 응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시안 팝’ 부문의 신설이란, 비서구 음악에 출품의 자격을 부여하면서 ‘정통’과 ‘보편’의 본격 경쟁의 장에서는 배제하는 기만적인 전략이다. 그동안 그래미는 글로벌 팬덤을 가진 BTS를 시청률을 위한 공연 퍼포머로 소비하면서도 본상 경쟁에서는 배제해 왔다. 미국 음악의 하위 장르에는 세분화된 카테고리를 부여하면서, ‘아시안 팝’은 장르가 아닌 지역과 언어로 묶어내는 그래미의 분류법 자체가 이중적이다. 미국 음악은 미학적인 계보와 장르로, 비서구 음악은 지리적 언어적 속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BTS의 음악은 ‘한국음악’의 지역적 범주에 갇혀 있지 않으며, 하이브리드한 음악으로서의 세계성을 획득했는데도 말이다. 음악의 지역적 명명 행위 자체가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그래미의 지리적 상상력은 미국을 세계 음악 지형의 보편으로, 그 외의 모든 미국 밖의 세계는 ‘지역’이나 ‘기타’로 배치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를 보편으로, 비서구 문화를 이국적이고 특수한 타자로 보는 위계의 작동 방식이다. ‘아시안 팝’, ‘월드 뮤직’, ‘글로벌 뮤직’ 같은 음악 범주의 명명 방식도 마찬가지다. 서구 음악은 ‘음악 그 자체’이며 나머지는 다른 표식이 필요한 변두리 음악이다. 이런 미국식 보편주의에 대한 균열의 조짐은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를 받기 전 2019년 봉준호 감독은 미국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아카데미는 로컬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칸이나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비해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이라는 맥락이었다. 이후 ‘기생충’이 오스카의 ‘외국어 영화상’이 아닌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번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 발언은 처음에는 오스카의 미국 중심적 특수성을 지적하는 것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한국 영화가 지역성을 극복하는 서사의 상징이 되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을 때, 이 상은 영연방 지역 이외의 작가가 쓴 작품에 주는 상이었다. 2024년 한강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었을 때, 서구의 입장에서 ‘번역 소설’이라는 한국문학의 꼬리표는 극복되었다. 그해 12월 내가 참여했던 노벨상 시상식은, 무대와 객석에 단 한 명의 흑인도 찾기 힘든 연미복을 차려입은 백인들의 잔치였다. 수많은 백인 남성 수상자 사이로 단 한 명의 아시아-한국 여성이 앉아 있는 모습은, 노벨상이 이제 겨우 서구와 남성중심주의 보편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전후 용산 미군기지 무대에서 출발한 한국 대중음악의 소프트파워가 미국 대중문화의 표준과 권위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미의 제도적 권력은 세계적인 상징 자본인 BTS에게도 넘어야 할 벽이지만, 보이콧은 BTS의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시험하는 계기이다. 세계 곳곳의 ‘아미’(BTS 팬덤)는 ‘ArtHasNoAliens’란 해시태그(#)를 달아 지지를 보냈다. 수상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분류 규정과 경쟁의 규칙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 물론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가 완전히 해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아카데미는 아직도 비서구 영화를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비서구 콘텐츠들은 여전히 서구와 미국 소유의 플랫폼(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에 탑재되어야만 ‘지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나’와 ‘우리’를 보편으로 타자를 특수하고 비정상적으로 인식하는 우리 안의 ‘제국주의’는 혐오와 배제의 근원이다. ‘나-우리’는 보편적인 사람 자체이고 이질적인 타자들은 다른 표식이 필요하다는 분류법은 사람 사이 ‘식민’의 관계를 만든다. 이 태도는 ‘위치성’을 은폐하고, ‘나’의 특정 위치를 보편으로 위장한다. 보편은 어디에도 서 있지 않은 초월적 관점인데, 실제로는 언제나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위치에서 발화된다. 타자에게는 위치성이 과잉으로 부과되어, 그의 언어는 특수한 것으로 치부된다. 특정한 자리에 서 있는 개별적인 ‘나’는 이미 타자이고 이방인이다. 이 위치 때문에 ‘보편’이 되지 못하지만, ‘나’와 ‘당신’은 그래서 더없이 고유하고 매력적이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혼란과 고통 지나야 진리와 신비가 드러나죠”

    “혼란과 고통 지나야 진리와 신비가 드러나죠”

    산문집 펴낸 남상근 신부살며 겪어야 할 일은 겪을 수밖에환란 지나야 비로소 깨달음이 와은총, ‘참 좋은 것’에 수긍하는 힘출판사 대표 변신 김금희편집자로 창작 못잖은 희열 느껴남 신부 만난 덕에 깊은 신앙 얻어앞으로도 가톨릭 필자 발굴할 것 “살면서 책과 같은 삶의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시겠지만, 늘 신자가 강자고 사제가 약자니까요. 신부들이 큰소리치는 것 같지만 정반대죠. 하하!” ‘소설가 김금희’가 영성으로 충만한 책 ‘은총수업’(페퍼로니)으로 찾아왔다. 직접 쓴 건 아니다. 출판사 사장이자 책의 충실한 편집자로 만듦새를 책임졌다. 그가 한발 물러나며 앞세운 주인공은 남상근 라파엘 신부다. 두 사람을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성당에서 만났다. 남 신부는 스스로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밝혔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시종일관 유쾌한 에너지로 기자를 웃기고 울렸다. 김금희가 잠깐 펜을 내려놓고 편집자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보다 앞서 왜 지금 우리에게 ‘은총’이 필요한 것일까. “사람의 능력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요. ‘나’ 혹은 ‘우리’를 세상의 중심에 둘 때 여러 문제가 생기죠. 꼭 그런 게 아님을, 우리를 뛰어넘는 어떤 게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바로 은총을 받아들이는 시작이죠.” ‘은총수업’은 올해로 사제 서품 25주년을 뜻하는 ‘은경축’을 맞이한 남 신부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그동안 미사와 강론을 통해 신자들에게 전했던 이야기들을 단정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성경 속 구절이 일상의 고민과 어우러지는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삶이 결코 우리만의 힘으로 완성되는 게 아님을 넌지시 가르쳐 준다. 꼭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신앙심이 없어도 펼쳐볼 만하다. 신앙보다는 삶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서다. 김금희는 책 57쪽에 있는 ‘모든 불이 지나간 뒤’라는 제목의 글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해당 글에서 남 신부는 열왕기 상권 19장 12절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살면서 겪어야 할 것은 겪어야 합니다. 피할 도리가 없죠. 예언자 엘리야의 이야기인데요. 엄청난 혼란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들을 여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만약 그러면 우리가 이미 성인(聖人)이죠. 모든 환란이 다 지난 뒤에 비로소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의 진리일 수도 삶의 신비일 수도 있죠. 그런데 잘 생각해 보죠. 지진과 불과 바람이라는 혼란이 없었다면 진리나 신비가 우리 눈에 보일까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걸 지나와야 비로소 더 귀한 걸 발견하게 되죠.”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대온실 수리 보고서’ 등의 소설을 펴내며 동시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금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2023년에 세례를 받았으니, 생각보다 신자로 살아온 세월이 그리 길지는 않다. 짧은 세월에도 깊은 신앙심을 키울 수 있던 건 공덕동성당의 주임신부였던 남 신부와의 만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 이름을 내건 출판사 첫 책의 저자로 남 신부를 당당히 앞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페퍼로니라는 출판사 이름은 그의 소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서 따온 것이다. 남 신부의 책을 만들면서 김금희는 “창작 못지않은 희열감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가톨릭 관련 좋은 필자를 발굴해서 멋진 책을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 기자를 꿈꾸기도 했다는 남 신부는 서울대 신문학과에서 공부했다. 대학원 공부를 이어가던 중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성가복지병원에서 우연히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데 그 길로 신학을 공부하고 2001년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는 분명 교회 안에서 ‘대접받는’ 사람이다. 그 사실 때문에 의기양양하고 더러는 자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총은 자만심에 빠진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은총은 자기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잘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것이 ‘좋으신 분’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그렇게 되면 아무리 열악하고 불행한 상황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어요. 은총은 ‘참 좋은 것’을 ‘참 좋은 것’으로 수긍하게 하는 힘이에요.”
  • 인공지능에게 ‘소년이 온다’ 번역을 맡길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게 ‘소년이 온다’ 번역을 맡길 수 있을까?

    문학의 언어는 다층적이고 복잡하며 또한 함축적이다. 사전에 있는 뜻을 토대로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원문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언어 기계’인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어떨까. 제미나이, 챗GPT, 클로드 등 AI도 문학을 번역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사이의 거리는 확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안고 20일 서울 연세대학교 AI혁신연구원 세미나실에서 ‘AI 번역의 문학 번역 성능 평가 및 메타 분석’ 세미나 제1차 워크숍이 열렸다.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불어불문학과·노어노문학과·한국학협동과정 BK21 예비교육연구단으로 구성된 ‘연세 AI 문학번역 연구단’ 주최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한 뒤 이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현정 연세대 불문과 교수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딥엘(DEEPL)로 번역한 뒤 결과를 비교했다. 한국어로 된 작품을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각각 옮겼으며 평가 점수는 언어마다 달랐다. 총 122점 만점으로 독일어 번역에서는 제미나이(85점)가 제일 높았고 클로드(57점)가 제일 낮았다. 프랑스어에서도 제미나이가 72점, 클로드가 55점으로 평가됐다. 러시아어에서도 제미나이가 100점으로 가장 높았고 클로드가 55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영어에서는 챗GPT가 85점으로 제일 높은 점수를, 딥엘이 72점으로 최저점을 받았다. 손 교수는 “문학 번역에서는 통계적 번역보다도 문학작품의 내용과 한국어의 특성 그리고 문학 관련 전문적 지식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영훈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한국 문학작품의 AI 번역 평가를 위한 제언’이라는 발표를 통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한 결과물을 놓고 오늘날 문학 번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했다. 특히 ‘채식주의자’로 한강이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뒤 불거졌던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을 둘러싼 논쟁을 지적하며 “번역가의 번역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보려는 관점이 중요하다”며 “번역 비평은 번역가의 기본 자질과 기획력 그리고 번역의 지평까지 들여다보고 엄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랑스의 번역 이론가 앙트완 베르만의 말을 빌려 원문과 번역을 대조할 때는 “번역자가 온전한 글쓰기를 실행하여 진정한 작품을 만들어 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또한 번역자가 자민족중심의 덮어씌우기식 번역을 하지 않고 원문을 존중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일선 연세대 문과대학장(독어독문학과 교수)은 “문학 번역에서는 인간 번역가가 시도하는 노력이 그만큼 성과를 내는지 확신할 수 없고 이는 AI 번역에도 해당된다”며 “이는 계량적인 유사성만으로는 문학의 심연을 온전히 옮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워크숍은 AI가 도달할 수 있는 효용을 살피는 동시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창의적 존엄을 우리가 과연 주장할 수 있는지 묻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은행원’ 박경리 추억하며… 우리은행 ‘토지’ 세계에 알린다

    ‘은행원’ 박경리 추억하며… 우리은행 ‘토지’ 세계에 알린다

    소설가 박경리가 등단 전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했던 인연을 바탕으로 우리은행이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에 나선다. 대표작 ‘토지’의 영문 번역·출판과 박경리문학상 특별상을 후원한다. 우리은행은 토지문화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19일 밝혔다. 박경리는 1954년 상업은행 용산지점에서 근무하며 사보 ‘천일’에 본명 ‘박금이’로 장편시 ‘바다와 하늘’을 발표했다. 퇴사 후에도 단편소설 ‘전생록’을 사보에 기고했다. 우리은행은 대하소설 ‘토지’의 영문 번역·출판 사업을 후원한다. 올해 박경리문학상에서는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특별상을 수여한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박경리 선생의 문학적 유산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본점 지하 역사관 ‘우리1899’에서는 다음달 18일까지 ‘박경리 특별 기획전’을 연다. 상업은행 근무 당시 사보에 발표한 초기 작품과 개인 소장품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90년 만에 고국 돌아온 심훈의 ‘상록수’ 친필원고

    90년 만에 고국 돌아온 심훈의 ‘상록수’ 친필원고

    “저는 해방을 절실하게 바랐던 할아버지의 시 ‘그날이 오면’을 좋아합니다. 할아버지가 만약 지금 살아 계셨다면 핍박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글을 쓰셨을 것 같아요. 가족으로서 할아버지의 이런 정신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작가 심훈의 손녀 심영주씨)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시 ‘그날이 오면’,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1901~1936)의 친필 원고가 작가 사후 9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지난 6월 심훈의 유가족에게서 심훈 관련 문학 자료 46건(59점)을 기탁받았다고 11일 밝혔다. 한국문학관은 광복절을 앞두고 ‘그날이 오면’이 수록된 ‘심훈시가집’, ‘상록수’ 친필 원고 등을 이날 공개했다. 심훈의 손녀 심영주, 심영민씨 등 유가족들이 한국문학관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 화상으로 함께했다. 이번 심훈의 자료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가족들이 소장하고 직접 관리해 온 것들이다. 심훈의 셋째 아들 심재호(1936~2021)씨가 아버지와 관련된 자료를 평생 수집·정리했다. 한국문학관은 법인이 설립된 직후인 2019년부터 당시 미국에 있던 심재호씨 자택을 방문하고 관련 자료를 한국에서 수집할 수 있는지 협의해 왔다. 무려 7년간 설득한 끝에 지난 6월 초 기탁약정서를 체결하며 자료가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한국문학관이 이날 공개한 자료 가운데 일제 치하 검열로 인해 책으로 간행되지 못한 시 ‘그날이 오면’이 눈길을 끌었다. 출판 허가를 위해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관에 제출한 원고 표지와 내지 등에는 일제의 검열 흔적인 붉은 선과 붉은 도장이 가득했다. 여기에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듣고 썼다고 알려진 ‘오오, 조선의 남아여!’, 공개 후 인기를 끌며 심훈이 직접 영화로 제작하려고 했던 소설 ‘상록수’ 원고 등도 포함됐다. 심훈의 손녀이자 심재호씨 딸인 심영민씨는 “할아버지 작품은 조국의 것이기에 당연히 조국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의 정신을 이어 갈 수 있는 곳에 보내고자 했기에 다소 늦어졌으나 한국문학관에서 잘 보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상록수’ 심훈 친필원고, 9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상록수’ 심훈 친필원고, 9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저는 해방을 절실하게 바랐던 할아버지의 시 ‘그날이 오면’을 좋아합니다. 할아버지가 만약 지금 살아 계셨다면 핍박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글을 쓰셨을 것 같아요. 가족으로서 할아버지의 이런 정신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작가 심훈의 손녀 심영주씨)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시 ‘그날이 오면’,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1901~1936)의 친필 원고가 작가 사후 9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지난 6월 심훈의 유가족으로부터 심훈 관련 문학 자료 46건(59점)을 기탁받았다고 11일 밝혔다. 한국문학관은 오는 15일 광복절을 맞아 ‘그날이 오면’이 수록된 ‘심훈시가집’, ‘상록수’ 친필 원고 등을 이날 공개했다. 이날 심훈의 손녀 심영주, 심영민씨 등 유가족들이 한국문학관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 화상으로 함께했다. 이번에 한국문학관이 기탁받은 심훈의 자료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가족들이 소장하며 직접 관리해 온 것들이다. 심훈의 셋째 아들 심재호(1936~2021)씨가 아버지와 관련된 자료를 평생 수집·정리해 왔다. 한국문학관은 법인이 설립된 직후인 2019년부터 당시 미국에 있던 심재호씨의 자택을 방문하고 관련 자료를 한국에서 수집할 수 있는지 협의했다. 무려 7년간 설득한 끝에 지난 6월 초 기탁약정서를 체결하며 심훈의 자료가 국내로 들어오게 됐다. 이날 공개된 자료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일제 치하 검열로 인해 책으로 간행되지 못한 시 ‘그날이 오면’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듣고 썼다고 알려진 ‘오오, 조선의 남아여!’, 공개 후 인기를 끌며 심훈이 직접 영화로도 제작하려고 했던 소설 ‘상록수’ 원고 등이다. 심훈의 손녀이자 심재호씨의 딸인 심영민씨는 “할아버지 작품은 조국의 것이기에 당연히 조국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곳에 보내고자 했기에 다소 늦어졌으나 한국문학관에서 잘 보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새도 인간도, 혼자선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

    새도 인간도, 혼자선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

    인간은 약하지만 살아가려 애써취약해서 서로 필요한 새와 닮아불안과 고립… 청년들의 삶 조명“사회적 존재 ‘증발’ 선택한 사람들도망치는 게 아닌 생존의 한 방식” 연약한 존재들은 서로 연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새들을 보라. 혼자서는 도저히 이 세계를 살아낼 수 없음을 알기에, 불안한 삶을 견디기 위해 기꺼이 여럿이 함께 거대한 하나로 뭉친다. 인간도 그럴 수 있을까. 신작 소설집 ‘새들의 사회성’(문학동네)으로 돌아온 소설가 편혜영(54)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한다. 작가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새든 인간이든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라는 점에서 닮은 것 같습니다. 취약하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약하지만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점도 같습니다.” 표제작 ‘새들의 사회성’은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어렵사리 구한 인턴 자리에 목매는 주인공과 소소하고 기묘한 사기 행각을 벌이며 살아가는 그의 고등학교 동창 신도의 이야기다. 작품에서 신도는 철새들이 브이자 형태로 늘어서서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약한 것들은 저렇게 몰려다녀야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죠.”(68쪽) 현실의 인간은 어떨까. 오히려 반대다. 강자들은 쉽게 패거리를 이루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낸다. 반면 약자들은 잘 뭉치지 못하고 각자의 삶 속에 고립된다. 그러나 편혜영의 소설은 비관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앞서 인간의 불안이나 고립, 삶의 취약성을 꾸준히 다뤘지만, 이번에는 그 취약함을 혼자 견디는 인물보다 서로를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존재들에게 관심을 뒀습니다. 삶의 조건이 크게 나아진 것도, 뚜렷한 희망이 제시된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살아가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실종’이란 이 세상에서 나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대단히 무서운 일이지만, 어떤 이는 스스로 실종되기를 원하기도 한다. 소설 ‘우리가 가는 곳’은 자발적 실종, 이른바 ‘증발’이라고 불리는 사회 현상을 다루고 있다. 세상에서 잊히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심정일까. 작가는 그것이 그저 ‘자포자기’는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증발을 꿈꾸는 사람들은 단순히 어디론가 도망치려는 게 아니라 지금의 자신으로는 더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이들입니다.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일이 너무 버겁거나 현재의 삶으로 자신이 소진됐다는 감각 때문에 증발을 선택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자포자기가 아닌,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의 한 방식으로 느껴졌습니다.” 편혜영은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26년간 독보적인 문체와 이야기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중견작가가 됐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뉴스는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한 청년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소설이라는 것은,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삶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사람 역시 쉽게 설명되지 않아서 등단 초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어디서부터 소설을 시작해야 할지 헤매고 있습니다. 다만 등단 초기에는 언젠가 쓸 이야기가 모두 사라질까 봐 조급하기도 했지만, 이젠 생활과 경험, 오래 품은 관심사들이 시간을 거치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조금 믿게 됐지요.”
  •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미국서 출간…안톤 허 번역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미국서 출간…안톤 허 번역

    이성복(74) 시인의 대표작 ‘그 여름의 끝’이 4일(현지시간) 미국 펭귄 랜덤하우스의 자회사 크노프에서 출간된다고 문학과지성사가 밝혔다. 번역은 안톤 허가 맡았다. 영문판 제목은 ‘댓 서머스 엔드’(That Summer’s End)로 영어로 옮긴 안톤 허는 앞서 이성복의 시론집 ‘무한화서’도 번역한 바 있다. 이성복 시인의 작품 외에도 안톤 허는 영국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번역으로 국내외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크노프는 1915년 설립된 출판사로 고전과 현대문학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룬 작품들을 골라 출간한다. 한국문학 중에서는 2011년 신경숙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됐다. ‘그 여름의 끝’은 한국문학 작품으로는 두 번째, 한국 시집으로는 첫 번째로 크노프에서 출간되는 책이다. 이성복과 안톤 허는 출간을 기념해 미국에서 독자들과 만난다. 오는 10월 16일 미국 보스턴 웨슬리 칼리지 강연을 시작으로 17일 보스턴 북 페스티벌에도 참석한다. 이후 미국 뉴욕에서 19일 포드햄 대학에서 대담을 진행한다.
  • 시각예술, 출판계 굵직한 인사들 한국 온다

    시각예술, 출판계 굵직한 인사들 한국 온다

    시각예술과 출판계의 유명 인사들이 한국을 찾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해외 문화예술계 인사 10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국제협력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16일 밝혔다. 올해 18회째를 맞은 ‘해외 주요 인사 초청 사업’(K-Fellowship)의 일환이다. 지난해 공연예술 분야에 이어 올해 시각예술과 문학·출판 분야 인사들이 오는 11월까지 순차적으로 한국을 찾는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도서전의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총괄국장이 지난달 방한했다. 그는 서울국제도서전을 비롯해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을 방문했다. 202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도서전의 한국 주빈국 참여 가능성을 논의하는 등 한국 문학과 출판 콘텐츠의 중남미 확장 가능성을 모색했다. 하반기에도 시각예술과 문학·출판 분야 주요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콩 세라카이 스튜디오의 토비아스 베르거 전시총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미디어아트 분야 도시로 지정된 독일 칼스루에의 다니엘라 부르크하르트 사무국 협력 총괄, 솔베이그 외브스테뵈 노르웨이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 관장, 건축·디자인·예술 콘텐츠 플랫폼 스터월드 창립자 아미트 굽타 등이 한국 주요 전시와 행사, 기관을 찾을 예정이다. 이밖에 영국 문예지 그란타 부편집장 루크 네이마, 프랑스 파리1대학 현대미술 이론·역사 부교수 엘리차 둘게로바 등이 연내 방한한다. 문체부는 초청 인사들의 전문성과 국내 문화예술계 교류 수요를 반영해 기관 방문, 주요 행사 참여, 관계자 면담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실질적인 협력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한여름 밤에 만나는 서정의 울림… ‘가재미’ 시인 문태준, 제주 온다

    한여름 밤에 만나는 서정의 울림… ‘가재미’ 시인 문태준, 제주 온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문태준 시인의 대표 서정시 ‘가재미’가 한여름 밤 제주에서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난다. 육필문학관 제주는 오는 31일 오후 7시 문태준 시인을 초청해 ‘낭독 북토크’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문학이 주는 위로와 사유의 시간을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인의 육성으로 작품을 듣고, 창작의 배경과 문학 세계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다. 문 시인은 이날 대표작인 ‘맨발’, ‘항아리’, ‘가재미’, ‘무지개’를 비롯해 여름의 정취를 담은 ‘잎사귀에 여름비가 올 때’ 등을 직접 낭독한다. 절제된 언어와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로 사랑받아 온 그의 시 세계를 생생한 목소리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낭독이 끝난 뒤에는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창작 과정, 문학과 삶을 둘러싼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과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독자들은 시인과 가까이 호흡하며 작품에 담긴 의미를 함께 풀어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육필문학관 제주 관계자는 “문태준 시의 가장 큰 힘은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데 있다”며 “여름비처럼 잔잔하게 스며드는 시 낭독을 통해 문학이 전하는 위로를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는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 선착순 30명만 참여할 수 있다. 참가 신청과 자세한 안내는 국립한국문학관 홈페이지 ‘지역 문학 소식’ 게시판과 육필문학관 제주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페에서 확인하면 된다.
  • 서울 최초 3선 여성 구청장 김미경 “수첩 4권에 담긴 민심 지키겠다”

    서울 최초 3선 여성 구청장 김미경 “수첩 4권에 담긴 민심 지키겠다”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이 1일 녹번동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취임식을 갖고 민선 9기 구정 운영 방향인 ‘점·선·면’ 전략을 발표했다. 김 구청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선거 기간 은평 곳곳을 돌며 주민 목소리를 기록한 수첩 4권을 소개하며 “구민들의 불편과 바람, 은평의 미래가 담긴 그 기록 하나하나가 앞으로 4년 구정을 이끌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45만 구민의 믿음을 깊이 새기고, 더 낮은 자세와 뜨거운 열정으로 완성된 변화에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선 9기 은평구의 핵심 목표는 ‘누구든 나다운 삶을 온전히 누리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라며 “서울시 최초 여성 3선 구청장이라는 명예를 준 주민을 위해 앞으로의 4년 동안 확실한 성과와 변화로 보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민선 9기 구정의 핵심 발전 전략으로 ‘점(點)·선(線)·면(面)’ 비전을 제시했다. ‘점’은 주민 체감형 일상 복지, ‘선’은 광역 교통망 확충과 생활권역 개발, ‘면’은 인근 지자체와의 연대를 통해 은평을 서북권의 중심 허브로 도약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구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아이맘 택시’와 ‘백세콜’의 지원 대상을 늘린다. 보행 약자용 ‘효도의자’ 설치, ‘세대 공감형 놀이터’ 조성 등 현장형 복지도 확대한다. 신혼부부에게는 첫 살림 마련부터 주거 안정, 자산 형성까지 연계한 패키지 지원책을 가동하고 기존 ‘1동·1대학’ 사업을 ‘1동·다(多)대학’ 체제로 확장한다. 구는 관계기관과의 협의로 고양신사선, 서부선, 통일로 우회도로, 은평새길 등 핵심 교통 현안을 가시화한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5대 생활권역별 특화 전략도 본격화된다. ▲수색 권역은 수색·DMC역 일대 복합개발 ▲응암 권역은 녹번천 복원사업으로 불광천 연계 수변 감성 경제권 구축 ▲불광 권역은 서울혁신파크를 중심으로 미디어 공연장과 광장, 녹지공간 등 조성과 강북 최대 규모 민간도서관 유치 ▲연신내 권역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개통에 맞춰 역세권 정비와 창업 인프라 확충 ▲진관 권역은 국립한국문학관을 중심으로 예술마을과 한글테마공원을 묶어 한국 대표 한문화 중심지로 완성한다. 구는 인근 자치구인 마포·서대문·종로구, 경기 고양시와 손을 잡고 광역 교통망 구축 및 대규모 국책사업 등 당면 과제에도 공동 대응한다. 환경오염 대응과 도시 인프라 공유 등 복합적 행정 수요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 구가 앞장서서 ‘서북권 상생 발전’의 성공 모델을 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 한국·세계문학의 경계에서… 조국 향한 그리움이 흐른다

    한국·세계문학의 경계에서… 조국 향한 그리움이 흐른다

    1946년 독일서 독일어로 펴낸 소설초판 매진에 현지 교과서 실리기도日 피해 망명한 작가의 자전적 얘기20세기 이주자 문학 고전 반열 올라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번째 책새로운 번역으로 한국 독자에 선봬 한국인의 기억과 정서가 한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품어져 있다면, 이것은 한국문학일까 독일문학일까. 낯선 당혹감을 안긴 채 60년간 도도하게 흘러왔던 이미륵(1899~1950)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새 번역으로 우리에게 도착했다. 한국문학의 세계적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새삼스러운 질문 몇 가지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세계는 무엇이며 그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디인가. 문학에 ‘국경’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다른 시대가 도래한 거야’라고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가 어두운 잠을 자고 나니 더 밝은 시대가 온 거지. 새로운 바람이 잠자던 우리를 깨웠어. 긴 겨울이 지나고 지금은 봄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고 있어.’”(‘시계’ 부분·92쪽) 소설에는 작가의 생애가 그대로 담겨있다. 이미륵의 본명은 이의경이고, 미륵이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붙여준 아명(兒名)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미륵은 엄격한 유교적 가정환경에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그러다 신식 교육을 접하고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한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20년 압록강을 건너 망명한다. 작품은 이미륵이 중국 상하이를 거쳐 독일에 도착한 직후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신문물 사이에서 개인이 겪는 혼란과 고뇌를 담담한 문장으로 포착한다. 둘의 차이를 숙고할 틈 없이 강제로 밀고 들어오는 일제의 탄압은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성찰할 기회를 놓치도록 만들었다. 작가는 거기에 대한 분노도 빼놓지 않는다. “아, 처참한 시절, 더러운 세상이로다!”(‘옥계천변에서’ 부분·111쪽) 작품은 1946년 독일 피퍼출판사에서 독일어로 간행됐다. 초판이 매진될 만큼 독일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으며,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독문학자이자 수필가였던 전혜린의 번역으로 한국에 1959년 처음 소개됐다. 독일에서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한국전쟁 발발 직전 독일에서 세상을 떠났던 이미륵은 2024년 11월에 유해가 봉환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소설이 이번에 새로 번역된 건 올해 민음사의 창립 60주년과 맞물리면서다. 민음사는 회사의 대표 브랜드 ‘세계문학전집’의 100번째 책마다 중요한 한국문학 작품을 선정해 재발간한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500번째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작품을 옮긴 안삼환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는 “요즘도 나는 이따금 이미륵의 순수한 영혼이 나를 감싸 주는 듯한 행복한 환각에 빠지곤 한다”며 “번역을 통해 비로소 나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혁명에서 숨져 간 선열들의 인고와 슬픔을 추체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세기 디아스포라 문학의 고전으로 남은 이미륵의 소설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사이의 경계가 어디에 놓여있는지 질문한다. 한국어로 번역돼 독자들에게 여운과 감동을 주고 있는 세계문학의 여러 정전은 세계문학인가, 한국문학인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로 읽히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문학인가 아닌가. 굳이 구분한다는 게 과연 의미는 있는 것인가. 민음사 편집자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민족과 국가를 문학보다 크게 생각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미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형식적으로 이 작품은 독문학에 속한다. 현실의 국적을 따지자면 이미륵은 독일인이었고 작품 또한 독일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들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문학이란 읽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륵의 진짜 국적이 노스탤지어라고 생각한다.”(‘수암, 떠도는 우리의 마음’ 부분)
  • 문학 창작 지원금 세분화…대중성 낮은 ‘걸작 고전’도 해외 소개

    문학 창작 지원금 세분화…대중성 낮은 ‘걸작 고전’도 해외 소개

    중견 작가 위주로 지원했던 문학 창작지원금을 신진, 유망, 중견으로 세분화해 맞춤 지원한다. ‘문학 상주 작가’ 사업 지원 인원과 근무 기간도 확대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5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문학분과 제3차 회의를 열고 문학계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최휘영 장관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분과위원인 소설가 은희경·방현석, 시인 곽효환, 번역가 정은귀·얀 디륵스, 출판사 읻다의 김현우 대표가 참석했다. 창작지원금 경력 단계별 세분화와 ‘문학 상주 작가’ 사업 지원 인원 확대 등을 통해 안정적인 한국문학 창작 기반을 다진다. 사실상 작가들의 수입원이 되는 문예지에 대한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한국문학 번역과 해외 진출 지원도 확대·개편한다. 문학적 가치가 높지만 대중성이 낮아 번역, 출판되지 않은 ‘한국 고전과 근현대 걸작 기획 번역’ 사업도 새롭게 추진한다. 2027년 9월 개교하는 번역대학원대학을 통해 한국문화예술 전반에서 전문성을 갖춘 번역 인력을 양성한다. 국립한국문학관도 2027년 상반기 중 개관하며 지역 문학관 지원도 늘릴 방침이다. 방현석 소설가는 “예술 생태계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며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선정 기준 완화와 지원 확대, 공공대출보상권 등의 도입을 강조했다. 공공대출보상권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작가와 출판사에도 정부가 일정 부분 혜택을 주는 제도다.
  • “봉주르, 삼국유사!”…파리에서 K고전·K그림책 소개한다

    “봉주르, 삼국유사!”…파리에서 K고전·K그림책 소개한다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프랑스의 문학이 한데 모인다. 한국문학번역원은 다음 달 2일부터 5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문학 행사 ‘시간 너머의 한국문학’을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고전문학, 공상과학(SF) 소설, 힐링 소설, 그림책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문학을 현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다. 행사 첫날인 2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현대문학 행사에는 소설가 김초엽(33)·김호연(52)·황보름(46), 그림책 작가 이지은(49)이 국내 대표로 참여한다. 프랑스 대표 작가로는 실비 드니(63)·다비드 포앙키노스(52)·아드리앵 파를랑주(43)가 나선다. 참여자들은 서로 창작 경험을 나누며 교류할 예정이다.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한불 작가 대담 3회와 작가와의 만남 1회, 이씨레물리노 미디어테크에서 그림책 창작 워크숍이 1회 개최된다. 고전문학 행사도 준비돼 있다. ‘삼국유사’, ‘창본 춘향가’, ‘현의 노래’ 프랑스어 출판기념 강연을 비롯해 학술 대담, 판소리 공연·낭독, 워크숍 등 프로그램이 열린다. 4일 소르본대에서는 한국 고전문학 번역과 편집 및 전승의 의미를 살펴본 뒤, 고향임(69) 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의 판소리 공연이 이어진다. 이튿날 기메 박물관에서는 신라 역사와 전설을 다루는 강연이, 주프랑스대사관에서는 춘향가 번역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전수용 번역원장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프랑스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한불 문학 교류를 계속 확대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민중 시인’ 신경림 산문에서 찾은 시의 길

    ‘민중 시인’ 신경림 산문에서 찾은 시의 길

    두 해 전 우리 곁을 떠난 ‘민중 시인’ 신경림은 시인인 동시에 엄정한 산문가이기도 했다. 동국대 국문과에서 석좌교수를 지낸 그는 비평을 비롯한 에세이를 통해서도 엄혹한 시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오는 22일 시인의 2주기를 앞두고 출간된 산문집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는 그의 평론가로서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책이다. “언어가 공동체적 삶의 결정물인 이상 언어를 제재로 하는 시가 공동체적 담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는데도 아직도 사회적 상상력의 시 하면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담론에 머물러 있다면 그 시는 제대로 된 사회적 상상력의 시라고 말할 수가 없다. … 더 중요한 것은 언어는 공동체적 성격도 가지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점이다.”(‘광주항쟁에서 6월항쟁까지’ 부분) 신경림이 ‘민중 시인’으로 불리는 건 그가 늘 가난한 민중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산문에서도 그런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부에서는 광복과 6·25 전쟁,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을 차례로 톺으며 시와 공동체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고찰한다. 그중 ‘광주항쟁에서 6월항쟁까지’에서는 김준태 시인을 시작으로 김남주, 황지우, 이성복의 시를 차례로 호명하며 한국문학이 독재와 탄압 속에서도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비평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시를 쓰는 일은 늘 내 시로부터 도망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그 도망은 완벽한 것은 되지 못했다. 내가 뿌리박고 사는 땅, 나와 함께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부터까지 도망칠 수가 없었으니까.”(‘내 시로부터의 도망’ 부분) 자기 안의 언어가 다 떨어졌다고 느낄 때, 시 쓰기의 한계에 부닥쳤다고 느낄 때 신경림은 어떻게 돌파했을까. 2부에서는 시인의 내밀한 고백이 이어진다. ‘시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글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고 있다. “시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영혼의 여행일 수밖에 없다. 길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 어쩌면 이것이 나의 시가 영원히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 보면 시인의 결론은 다소 분명해 보인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 한계를 마주한 문학의 돌파구는 거기에 있다. 자연과 일상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며 성찰한 글들을 모은 3부는 저널리스트의 칼럼집처럼 읽힌다. 교육, 환경, 통일 등 신경림이 생전 마주했던 문제들은 그가 떠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 [이광호의 어찌보면] 독서국가는 어떻게 오는가

    [이광호의 어찌보면] 독서국가는 어떻게 오는가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지금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급박하고 현실적인 이유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상실과 실패, 병과 죽음 앞에서 근원적으로 취약하다. 그 취약함과 함께 살면서 무너지지 않을 내면을 만드는 것은 독서라고, 절망하지 않고 맹목이 되지 않으려면 읽어야 한다고. 작가 알베르토 망겔은 인간을 ‘독서하는 동물’로 규정하면서, 독서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서 온 메시지를 되살리고,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창조하며, 한 페이지의 힘만으로 우주를 재정의하고 불공정함에 저항할 수 있다.” ‘한 페이지의 힘’은 한 사람이 우주를 재정의할 수 있게 한다. 한국 사회의 독서율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3월에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 동안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의 비율은 38.5%였다. 2023년보다 4.5% 포인트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월간 독서율 평균은 4.6권인데, 한국은 0.8권이다. 부끄러운 최하위권이다. 독서율 하락에는 복합적이고 문명사적인 요인이 있다. 검색 엔진과 인공지능(AI)의 활성화, 쇼츠 시청 등 정보와 교양의 습득이 디지털 콘텐츠 중심으로 변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독서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디지털과 AI 영역에서 한국이 보여 주는 약진은 세계 최하위 독서율이라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 시대는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고 내재화하는 비평적 사고 능력이 필수적이다. 디지털과 AI가 만드는 범람하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인 독해력은 독서를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텍스트힙’이 한국문학과 독서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린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이 한국문학 독서의 다양성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텍스트힙도 젊은 세대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지만, 근본적으로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이른바 ‘셀럽’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현상은 독서계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셀럽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배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건강한 독서 생태계라고 볼 수 없고, 출판계가 얼마나 내구성이 약한지 보여 줄 뿐이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에는 한국어 독서 시장 자체의 협소함이 있다.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단행본 시장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은 고갈되고, 하나의 이슈에 쏠리면 양극화는 심화된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독서국가 선포식’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민들의 문해력 수준은 한 국가의 문화적·사회적 역량의 핵심적인 기반이다. 지식과 창의성은 국가의 핵심 자본이며, 독서력은 그 나라 소프트파워의 원천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뭔가를 ‘선포’한다고 해서 목표가 자동으로 이뤄지진 않는다. 독서를 국가와 사회가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업이다. ‘독서권’은 문화적 기본권의 하나이기 때문에, 국가는 독서와 출판을 시장의 논리에 따라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반도체나 AI 산업에 지원하는 규모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독서 생태계를 위해 지원한다면 ‘독서국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초중고 교육과 연계한 독서교육의 제도화를 채택하고 독서 진흥 프로그램, 지역 서점과 공공도서관에 대해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출판계의 오랜 숙원인 제작비 세제 지원 혜택에 아직도 출판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은 독서국가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에 대한 몰이해를 증명할 뿐이다. 작은 지역서점에서만 통용되는 도서 바우처 사업이나 문화 소외계층과 젊은이를 위한 도서 구입비 지원 사업, 도서관 대출 시 저자와 출판사에 보상이 갈 수 있는 ‘공공대출보상권’을 위해 도서관 예산을 확충하는 것 등은 정책 의지만 있다면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국가가 독서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시민들의 교양 수준을 올리는 명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 지능은 독서를 통해서만 길러진다. 독서 생태계가 무너지면 AI 역량과 K콘텐츠 산업의 기반 자체가 힘을 잃는다. 독서는 다양한 타자의 목소리들을 환대하는 훈련이고 민주주의적 다원성을 배우는 공간이다. 독서 공동체의 소멸은 민주적 소통 문화의 종언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극심한 혐오와 적대는 독서를 통해 이념의 맹목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타인의 언어와 사유를 통해 삶을 디자인해 나가는 내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원하던 것만을 보여 주지만, 독서는 지금과는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독서는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고요하고 고독한 행위다. 세상은 다정하지도 않으며, 때로 무의미하고 잔인하고 덧없다. 어떤 가족도 친구도 유용한 정보도, 내 삶의 고독한 시간 자체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어떤 절망적인 순간이 오면 인간은 결국 ‘혼자’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독서는 일인칭의 내적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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