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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 日고교야구와 ‘3F’

    [특파원 칼럼] 日고교야구와 ‘3F’

    벚꽃 필 때 한 번, 매미 울 때 또 한 번. 일본은 해마다 두 번 고교야구 시즌을 맞는다. 올여름에도 지역 예선을 뚫은 49개 고교 야구팀이 효고현 니시노미야 고시엔구장에 모였다. 대대로 ‘성지’(聖地)로 불려온 구장이다. 서점에는 ‘고시엔 완벽가이드’ 같은 잡지까지 등장한다. 서툴어도 진심인 청춘에게 온 나라가 박수를 보내는 계절이다. “행운에도 교만하지 않고 불운에도 굴하지 않는다”. 고시엔의 정신을 상징하는 문구를 읊다보면 야구를 넘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큰 울림이 전해진다. 이겼다고 우쭐하지 말고 졌다고 무너지지 말라는 격려 내지 당부. 승패보다 태도가 먼저라는 말이다. 이런 고시엔의 철학은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일본고교야구연맹은 학생야구의 상징으로 ‘3F’를 내건다. 공정한 경기(Fair Play), 우정(Friendship), 투지(Fighting Spirit)를 뜻하는 말이다. 투지보다 우정이 먼저고, 공정이 이를 앞선다. 강한 선수 이전에 좋은 사람을 키우겠다는 선언이다. 전후 일본 학생야구가 교육의 장으로 다시 세워진 역사를 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현실은 이상만큼 단순하진 않다. 일본 학생 야구에서도 승리지상주의나 팀 내 폭력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발생한다. 그럼에도 일본 학생야구는 무엇을 지향하는지 숨기지 않는다. 대학과 고교야구를 관할하는 일본 학생야구협회는 헌법 격인 ‘학생야구헌장’에서 “학생야구는 일체의 폭력을 배제하고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경기장에서도 이 원칙은 엄격하게 적용된다. 상대를 조롱하는 야유는 제한된다. 과도한 세리머니도 금지한다. 2023년 봄 고시엔에서는 도호쿠고 선수가 상대 실책으로 출루한 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유행한 ‘후주 갈기’ 세리머니를 했다 주심 주의를 받았다. 연맹은 “퍼포먼스보다 플레이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상대의 실수 위에서 기뻐하는 법보다 경쟁의 품위를 지키라는 일침이다. 최근 한국 고교 야구의 ‘조롱 구호’가 논란이 됐다. 거센 비판이 일자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한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일고를 찾아 사과했다. 양교 선수들은 국립 5·18 묘지를 함께 참배해 고개를 숙였다. 괜찮다. 학생은 실수했으면 다시 배우면 된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학생체육 관련 자료에는 스포츠맨십, 인성교육, 학습권 보장 같은 말이 반복된다. 그러나 학생야구가 왜 존재하는지를 모두가 함께 외울 수 있는 한 문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3F를 그대로 가져오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 학생 야구는 한국 학생 야구만의 언어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단어가 아니다. 선수와 지도자, 학부모와 응원단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할 철학이다. 우승기는 한 학교만 가져간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해 배운 태도는 평생 남는다. 우리 학생야구에도 그런 문장이 하나쯤 필요하다. 명희진 도쿄 특파원
  • “따뜻한 남쪽으로 동계훈련 오세요”… 지자체 2년만에 체육시설 개방

    “따뜻한 남쪽으로 동계훈련 오세요”… 지자체 2년만에 체육시설 개방

    코로나 사태로 2년간 중단됐던 스포츠 동계 전지훈련이 올해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된다. 울산을 비롯한 지자체들은 따뜻한 기후와 쾌적한 시설을 앞세워 전지훈련 유치에 나섰다. 23일 울산시에 따르면 프로야구와 축구, 아이스하키 등 20여개 팀이 올 겨울 울산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울산 간절곶 스포츠파크에서는 다음 달 17일부터 23일까지 전국 20개 중학교 축구팀이 참가하는 스토브리그가 열린다. 이어 내년 1~2월에는 초·중학교 아이스하키 5개 팀이 울산과학대 빙상장에서 전지훈련을 한다. 또 프로야구 2개 팀도 내년 초 문수야구장에서 동계 전지훈련을 가질 예정이다. 경남 남해군은 내년 1~2월 고등학교, 실업, 국가대표 등 축구 9개 팀과 중·고교 야구 3개 팀의 전지훈련을 유치했다. 국가대표팀과 고교 1개 팀, 실업 7개 팀은 내년 1월 1일부터 16일까지 남해스포츠파크 주경기장에서 훈련한다. 또 야구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1개 팀이 남해스포츠파크 야구장에서 전진훈련을 한다. 경남 김해시는 하키, 카누, 테니스, 야구장, 빙상 종목 전지훈련 유치를 위해 전국 500개 팀에 서한문을 보냈다. 경북 경주시는 축구, 야구, 태권도 3개 종목 150개 팀 유치 목표를 세우고 유치에 나섰다. 종목별로는 축구 초·중·고교 60개 팀, 야구 초·중학교 20개 팀, 태권도 초·중·고교 70개 팀이다. 동계훈련 최적지인 전남 순천시에는 종목별 전지훈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우선 제주유나이티드 프로축구팀 50명이 내년 1월 17일부터 30일까지 팔마경기장에서 전지훈련을 하기했다. 경기도 양평의 개군중 야구부 35명도 1월에 훈련을 온다. 홍익대 야구부 40명도 1월부터 2월까지 순천에 머문다. 또 내년 1월 팔마경기장에서는 전국 초·중·고 축구선수 300여명이 참가하는 스토브리그가 열린다. 2월 열리는 전국 학생야구대회에는 초·중·고·대학생 1200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전남 해남군도 골프, 배구, 육상, 축구 등 100여 개 팀 2000여명이 내년 2월까지 전지훈련 예약을 마친 상태다. 지난해 동계 훈련을 받지 않았던 여수시와 광양시도 올해부터는 겨울 전지훈련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방침으로 신청을 받고 있다. 지자체 한 관계자는 “각종 스포츠팀들이 겨울철 따뜻하고 시설이 좋은 울산과 순천 등에서 동계훈련을 많이 했으나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고 지난 2년간 체육시설을 폐쇄했다”면서 “단계적 일상회복에 맞춰 올해 겨울부터 체육시설 다시 개방하고, 동계 전지훈련을 유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영화 多樂房] ‘그라운드의 이방인’

    [영화 多樂房] ‘그라운드의 이방인’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는 2007년 개봉해 공동체 상영까지 약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작품이다. 이 영화는 그간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조선학교와 재일동포 2세들에 대한 정보와 감동을 전달함으로써 평단과 관객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김명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역시 재일동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이 깊게 깔려 있다. 이번에는 1982년 잠실야구장을 누볐던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의 추억이 새록새록 펼쳐진다.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1970~80년대 봉황대기 고교야구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연중 스포츠 행사였다. 82년 재일동포팀은 결승전까지 올라가 군산상고와 혈전을 치른 바 있다. 이 영화는 그 멤버들을 찾아내 다시 한번 잠실야구장에 세우겠다는 목표로부터 시작된다. 한때 재일동포와 맺었던 뜻깊은 교류가 역사 속에 잠들어 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과 작품에 대한 진정성이 30년 전 연락처로 사람을 찾아야 하는 험난한 과정, 의심의 시선 및 현실적 장벽 속에서도 이 다큐를 완성시킨 원동력이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야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다큐로서 야구팬들에게 한국 야구의 초기 역사를 훑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야구 원년의 야구장 풍경과 오래된 중계방송 화면을 보는 재미, 친숙한 야구인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기쁨도 크다. 때로는 유명 야구인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밝혀지면서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 주기도 한다. 웃음과 눈물의 완급 조절이 뛰어날 뿐 아니라 폭넓은 자료 수집 및 활용, 안정된 구성과 편집 등이 노련한 연출 감각을 보여 준다. 오랜 기다림과 노력 끝에 82년 멤버들이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낼수록 당시 그들이 가졌던 한국에서의 경험들은 점차 뚜렷해진다. 수십 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중년의 남성들에게서 고교생들의 개구진 눈빛과 표정이 역력하다. 좋은 경기로 큰 즐거움을 주었던 재일동포팀의 풋풋했던 시절 추억을 다시 맛보게 하고, 그 행복감을 카메라에 담아낸 것은 이 영화가 그들과 관객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인터뷰를 통해 밝히는 재일동포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살아왔다는 고백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조선학교 럭비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60만번의 트라이’(2013)에서 등장했던 부당한 차별의 국면들이 이 영화에서도 공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갈등이 빚어내는 긴장감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긴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이라는 쓸쓸한 제목은 재일동포들의 외로움과 애환에 공감하고 격려를 보내기 위한 것이리라. 절정과 결말부의 남다른 열기가 오랫동안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19일 개봉. 전체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저자와 차 한 잔] ‘동대문운동장’ 글 쓰고 사진 찍은 김은식·박준수

    [저자와 차 한 잔] ‘동대문운동장’ 글 쓰고 사진 찍은 김은식·박준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착공 3년 만에 가림막을 벗었다. 기하학적이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건물은 마치 언덕이나 파도 같다. 설계자 자하 하디드는 ‘환유의 풍경’(Metonymic Landscape)이라고 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곧 동대문을 상징하게 될 것이라는 말인데, 일단은 맞는 것 같다. 적어도 사람들의 관심은 끈다. 서울시가 투입한 사업비가 무려 4300여억원-초기 사업비는 2274억원이었고 관계자는 5000억원 가까이 추정한다-이고, 교통 불편을 감수하면서 3년을 기다렸던 곳이 세상에 나왔으니 관심을 끌 수밖에. 그런데 어째 방향이 이상하다. 대단히 훌륭하다거나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가능성을 떠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누구는 “미확인비행물체냐.”고 묻고, 또 누구는 “다 지어진 것이냐.”고 묻는다. 물론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프랑스 파리의 명소 퐁피두센터도 1977년 건립 당시에는 철골이 바깥으로 나와 흉측하다거나 버려진 공장 같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니까. ●한국야구사 고스란히 품은 동대문운동장 사라져 분명한 것은 하나다. 이 건축물을 갖기 위해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 야구사를 고스란히 품은 동대문운동장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대한 실망감은 동대문운동장의 상실감을 더욱 키운다. 그리고 때마침 그때 그 공간을 추억한 ‘동대문운동장’(브레인스토어 펴냄)이 나왔다. 18일 서울 서교동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작가들은 모두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추억을 한 아름 품고 있었다. 책을 기획한 사진작가 박준수(31)는 야구 명문인 신일중·고교를 나와 이곳에서 열띤 응원을 한 기억을 하고 있다. “이런 곳이 철거된다는 소리를 듣고 뭔가를 기록하고 싶었다.”는 그는 철거 직전에 열린 2007년 8월 제37회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를 사진기에 담았다. “기록이라는 것은 망각에 대한 저항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없어질 동대문운동장의 추억에 나름대로 저항을 하려는 것이었죠.” ●“이런 곳이 철거된다는 소리를 듣고 뭔가를 기록하고 싶었죠”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점점 모습을 갖춰갈 무렵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야구전문작가 김은식(39)을 찾았다. 사진을 찍었던 5년 전 기억을 채우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잘 풀어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야구 관련 책을 여러 권 쓴 김 작가는 “제안을 받았을 때 야구책이라는 게 그리 잘 팔리는 것이 아닌 데다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관심을 끌 것이라 낼만한가라는 생각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박 작가의 사진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가치가 있던 곳을 잃어버렸구나’라고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김 작가가 “책의 테마는 반성”이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만 취하려는 정책결정권자에 대한 비판이나 비아냥을 담아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또 우리가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추억이나 오랫동안 만들어온 역사를 심상하게 바라봤구나, 그래서 결국 잃어버렸구나 하는 반성이죠.” ●“누군가에게 아련한 추억이라도 됐으면…” 1925년 만들어진 동대문운동장은 9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이 추억을 켜켜이 쌓은 곳이다. 수많은 학생야구대회 본선이 대부분 열렸고, 1982년에는 프로야구 역사가 시작됐다. 해마다 경기는 800번 안팎으로 열렸고, 선수 수천 명과 수백만 명 관객들이 야구장 구석구석, 객석 틈새를 메웠다. 책에 담긴 것은 그 수많은 일의 일부이지만 동대문운동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대회를 알리는 커다란 현수막, 아직 남아있을까 싶은 고교야구대회 대진표, 아들을 응원하러 온 부모와 손자를 보러온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그저 야구가 좋아서 온 아저씨들과 지금 보면 촌스러운 응원단도 있다. 물론 치열하게 시합을 하는 야구선수들이 중심이다. 이제는 책을 보고서야 “아빠가 어렸을 때 여기서 응원을 했어.”라거나 “1976년 봉황기 대회 때 이곳에서 최동원이 20탈삼진을 기록했지.”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지만. “무조건 옛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을 한번 돌아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죠.”(박 작가) “동대문운동장이 없어도 우리 삶은 계속되겠죠. 동대문운동장 철거는 그만큼 초라한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이 초라한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은 충분히 의미를 갖게 될 겁니다.”(김 작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장훈과 모국색시 “몰랐지 3년”

    장훈과 모국색시 “몰랐지 3년”

    일본 「프로」야구 동영(東映)「플라이어즈」의 강타자 장훈(張勳)이 모국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아내로 맞기 위해 12월 3일 어머니 박분남(朴粉南) 여사와 함께 귀국했다. 3년 연속 일본 「패시픽·리그」수위타자로 동영(東映)「팀」의 「스타·플레이어」인 장훈(張勳)을 남편으로 맞게 된 행복한 아가씨는 67년도 준「미스·코리어」선(善)이었던 김영화(金英華)(23·제일은행 영업부 근무)양. 67년 11월초 어느 날 동영(東映) 「플라이어즈·팀」의 한국친선방문경기가 끝난 이틀 뒤였다. 실업야구 4차 「리그」기은(企銀)대 상은(商銀)의 「게임」이 한창 진행도중 노총각 장훈(張勳)은 아리따운 한국아가씨 2명을 동반하고 본부 귀빈석에 나타났다. 장훈(張勳) 바로 옆에 앉은 아가씨는 김영화(金英華)양, 그 옆엔 약간 나이가 든 아가씨가 일어(日語)를 모르는 김양을 위해 통역을 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나왔느냐는 질문에 장훈(張勳)은 기은(企銀) 선수중 「스카우트」해 갈 선수가 있어 보러 나왔노라고 했다.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니까 빙그레 웃기만 하고 옆에 앉은 김양을 돌아다 보았다. 통역을 맡고 있던 아가씨가 『일본에 계신 어머님의 최종 승낙을 맡아야 한다나 봐요』하고 귀띔을 해 주었다. 김양은 야구 「룰」에 전혀 백지인 모양이어서 「스퀴즈·플레이」가 벌어지자 장훈(張勳)은 그 요령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당시 장훈(張勳)은 이미 김양을 일생의 반려로 점 찍어 놓았던 모양. 두사람이 처음 사귀게 된건 67년 11월이었다. 역시 동영(東映)「팀」의 한 사람으로 친선방한(親善訪韓) 경기에 출전하고 있던 장훈(張勳)이 제일은행 야구부감독인 박현식(朴賢植)씨를 만나 농반 진반으로 『중매 좀 서라』는 말에서 시작, 朴감독이 『마침 우리 은행에 새로 들어온 행원중 「미스·코리어」가 있는데 만나 보겠느냐?』고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朴감독의 안내로 장훈(張勳)은 손님을 가장, 창구에 앉아있는 김양을 보 수 있었다. 호쾌한 「홈·런」왕(王) 장훈(張勳)도 미녀앞엔 약했다. 첫눈에 반해 버렸다. 결혼할 의사를 밝히자 박감독의 주선으로 그해 12월말 반도「호텔」에서 김양과 김양의 아버지 김상택(金尙澤)(55)씨와 공식적인 첫 선을 보았다. 김양의 집안에서도 「프로」야구의 「스타·플레이어」이자 백만장자인 장훈(張勳)을 사위감으로 마다 할 리가 없었다. 이래서 장훈(張勳)과 김양의 현해탄을 넘나드는 사랑의 편지는 한 주일도 거르지 않게 되었다. 올 해 다시 동영(東映)「팀」이 내한했을 때는 김양의 온가족이 총출동, 장래의 사위 장훈(張勳)이 호쾌한 「홈·런」을 날리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장훈(張勳)이 이번 어머니를 모시고 모국에 나온 것은 김양의 부모와 최종 협의 확실한 약혼날짜나 결혼날짜를 정하기 위한 것으로 이번 방한(訪韓)길에 최소한 약혼은 끝낼 모양이다. 양가 부모들이 합의한다면 결혼식까지 끝낼지도 모른다. 경남(慶南) 창녕(昌寧)이 고향인 장훈(張勳)은 1958년 8월 「오사까」대판(大阪) 랑화상고(浪華商高)의 학생으로 제3회 제일교포학생야구단의 일원으로 그리던 모국에 첫발을 디뎠다. 장훈(張勳)의 어머니 朴여사는 장훈(張勳)이 4세때 남편을 여의고 홀몸으로 3남매를 기르면서 「히로시마」서 한국음식점을 경영해왔다. 朴여사는 3남매에게 늘 배필은 한국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해 왔으며 큰 아들 세치(世治)(40)씨는 이징자(李澄子) 양에게, 또 사위도 한국인인 민대기(閔大基)씨를 맞았다. 그러니까 장훈(張勳)마저 金양에게 장가 들면 朴여사의 숙원은 모두 이루어 지는 셈. 장훈(張勳)이 일약 인기상승의 「스타·플레이어」가 되자 그의 주위엔 숱한 염문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인기여배우 김지미(金芝美), TV 「탤런트」선우용녀(鮮于龍女)등이 장훈(張勳)의 이름과 함께 화제를 뿌리기도 했었다. 또 현재 장훈(張勳)의 소유로 되어있는 「도꾜」명치신관(明治神官)앞 6층짜리 「맨션·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는 모 일본여인이 장훈(張勳)과 동거중이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장훈(張勳)은 이런 지난 일들을 깨끗이 씻고 모국아가씨를 조강지처로 맞게 된 것이다. 3년 연속 수위타자도 결혼에 관한한 몇차례 범타(凡打)끝에 회심의 「홈·런」을 때리게 된 것. 張군의 신부가 될 金양의 집안은 원해 평북(平北) 철산(鐵山) 출신. 8·15해방후 월남, 아버지는 서울 용산(龍山)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다가 현재는 동두천(東頭川)에서 미곡상을 차리고 있다. 4남매의 외동딸이자 맏딸인 金양은 서울서 상명여고(祥明女高)를 졸업, 경희대(慶凞大) 사학과(史學科)에 진학했으며 대학(大學) 2학년이던 67년 「미스·코리어」에 출전, 준「미스·코리어」 선(善)으로 뽑히고 이 때문에 제일은행에 특채되었다. 지금은 서울 용산(龍山)구 신계(新契)동 25의 9에서 남동생 셋과 함께 자취생활. 장훈(張勳)이 3일, 어머니 朴여사와 함께 귀국하기전만 해도 金양의 어머니 원정숙(元貞淑)(47)여사는 『전혀 사전에 알지도 못했으며 더군다나 12월 10일 결혼식 얘기는 터무니 없는 얘기』 라고 펄쩍 뛰었다. 실상 신계(新契)동 김양의 집은 결혼을 1주일 앞둔 신부의 집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준비가 없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金양은 『곧 어머니와 함께 귀국한다는 소식은 전해왔어요』라면서 그동안 계속 장훈(張勳)과 사랑의 편지가 오고 간 사실은 시인. 그러면서 金양은 『그이가 하도 효자라서 자기 자신의 의사는 결정되지만 최종결정은 어머님 朴여사가 하게 될 것이라고 했어요』하며 朴여사가 金양을 만나보고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12월3일 「노스웨스트」편으로 어머니와 함께 입국한 장훈(張勳)선수는 그의 반도(半島)「호텔」 840호실에 투숙, 약 20일간 머무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귀국한 표면상의 이유는 이모를 만난다는 것. 그는 반도(半島)「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김영화(金英華)양과의 약혼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인 김영화(金英華)양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됐다. 나는 金양의 이름을 입밖에 낸 일조차 없다. 金양은 내가 만난 몇몇 여성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혼은 내 한 사람의 의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단계니만큼 긍정도 부정도 하기 싫다. 金양에 대해서는 이 이상 물어주지 말아달라. 나도 빨리 결혼을 하고싶은 것은 사실이다』 [선데이서울 69년 12/7 제2권 49호 통권 제 63호]
  • 프로같은 ‘아마’들의 대결

    프로같은 ‘아마’들의 대결

    제7회 서울시장배 국민생활체육야구대회에서 JNS(Joy & Sports)와 IES가 각각 1부와 2부 우승을 차지했다. 1부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프로야구 등에서 활동한 ‘선수출신’이 3명까지 뛸 수 있는 경기며,2부는 ‘선수출신’은 출전할 수 없고 순수 아마추어 동호인만 참여할 수 있는 경기다. 올해 대회 1부에는 20개팀이,2부에는 28개팀이 출전했다. ●JNS, 대륙상사1 잡고 우승 지난 25일 동대문야구장에서 펼쳐진 1부 결승에서 JNS는 대륙상사1을 11대 7로 제압하고 창단 이후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JNS와 대륙상사1은 모두 시장배대회 결승에 처음 올랐다. 양팀 모두 소속된 리그에서는 최상위권이지만 이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 경기 전 우승컵의 향방에 대해 대회 관계자들은 백중세를 점치면서도 나이제한을 넘긴 선수출신이 많은 대륙상사1의 우세를 예견했다. 1부 경기에는 선수출신이 3명까지 출전할 수 있지만, 선수출신이라 하더라도 1965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만 40세)는 비선수로 구분하는 예외조항이 있다. 그런데 대륙상사1에는 롯데 출신 차영석을 비롯, 태평양 출신 노민승·정인조 등 선수들이 6명이나 있다. 그러나 ‘노장의 기량’은 ‘신예의 패기’를 넘지 못했다. ●초반 대량득점 JNS는 2회초 공격에서 최현석의 3점 홈런을 포함해 장단 7안타 6득점하며 승기를 잡았다.JNS 타선은 첫타자로 나선 김현수가 중견수 앞 안타를 뽑아낸 데 이어 다섯타자가 연속으로 안타를 뽑아내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이어 4회에 상대방의 실책으로 1점을 더하고,6회와 7회 각각 2점씩을 보탠 JNS는 막판까지 이신택, 장기석의 홈런 등으로 추격한 대륙상사1을 11대 7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JNS의 임종재(38)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평소 기량 이상의 실력을 보여줘 승리할 수 있었다.”면서 “특히 포수 김현수와 투수 손의랑 배터리가 잘해줬다.”고 말했다. ●‘창對창’승부 IES 승리 2부 결승에서는 IES가 대륙상사2를 9대 4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에 오른 두 팀은 각각 준결승 상대를 모두 콜드게임으로 이길 정도로 강한 공격력을 갖췄다. 특히 대륙상사2는 결승에 오르기까지 전 경기를 콜드게임으로 승리한 강팀 중의 강팀. 그러나 ‘창과 창’의 대결에서 IES는 노련한 경기운영을 통해 대륙상사2를 가볍게 따돌렸다. 이 대회 1부와 2부에 동시 출전한 유일한 팀인 대륙상사는 1·2팀이 모두 결승에 올라 시장배대회 최초로 1·2부 동반우승을 노렸으나 아쉽게 실패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결승경기 이모저모 이번 서울시장배 국민생활체육야구대회에서 많은 관계자들의 눈과 귀가 대륙상사에 쏠렸다. 48개 출전팀 가운데 유일하게 1·2부에 모두 참가했으며, 또 참가한 두 팀이 모두 결승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 대회 역사상 최초로 동반우승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륙상사는 1·2부 모두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비록 ‘대기록’은 세우지 못했지만 대륙상사는 자기 존재를 사회인 야구계에 깊이 각인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대륙상사는 팀 이름이 암시하듯 ‘대륙상사’라는 회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다.‘대륙상사’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수산물 유통업을 하는 회사로, 야구팀은 ‘대륙상사’에서 근무하는 사원 이외에도 주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유통업자들이 소속돼 있다. 그야말로 ‘짠물야구팀’인 셈. 박병선(35) 대륙상사 2부팀 감독은 “주로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낮에 연습할 기회가 많아 실력이 크게 향상됐던 것 같다.”면서 “같은 계통에서 일하다 보니 야구 외에도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일이 많다.”고 말했다. 처음엔 야구를 하기 위해 뭉쳤지만 운동을 하면서 서로가 끈끈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업쪽으로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박씨는 야구팀 후배가 사업을 시작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경험을 이야기 하며 “함께 부딪치고 땀을 흘려봤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륙상사가 조금 특별한 형태로 구성된 야구팀이라면, 대회 우승을 차지한 JNS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순수한 동호회다. 당초 ‘에이스’란 이름으로 출발한 팀이었지만 지난해 팀을 전체적으로 정비하면서 스포츠를 즐기자는 의미의 ‘Joy & Sports’에서 딴 JNS로 이름을 바꿨다. 동호회원 수는 전체 27명이며, 해태 출신으로 이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한 김현수 씨를 비롯, 선수출신이 6명 포진해 있다(www.acebaseball.co.kr). JNS팀은 팀 이름만큼이나 야구를 즐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시장배대회 결승전이 벌어지던 지난 25일에는 동대문야구장에 가족들이 총출동해 덕아웃에서 줄지어 아빠와 남편 혹은 애인을 응원하는 남다른 열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공부도 야구도 1등 학생야구 뜬다 ‘학야’(학생 야구)가 뜬다. 직장인들을 바탕으로 한 ‘사야’(사회인 야구)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청소년 축구의 저변에 맞서 고등학생 조직이 생겼다.‘학생야구협회’(KSBO=Korea Student Baseball Organization)가 그것이다. 누가 협회를 공인한 것도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야구를 위해 뭉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울지역 고교생들로 이뤄진 야구 동아리 ‘힛앤런’이 최근 KSBO 발기를 주도했다. 현재 160여명이 가입했으며, 직장인들도 KSBO의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이 내건 출사표부터가 올해로 출범 100년을 맞이한 한국 야구에 씁쓸하면서도 매운 뒷맛을 안겨주는 듯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KSBO 운영자인 홍태호(18·서울 노원구 중계동 재현고 3년)군은 야구와 관련한 동아리 모임에 올린 소개 글을 통해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살펴보자며 KSBO 창설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주말이면 근처 운동장에선 조기축구가 활발한 반면, 야구를 즐기는 학생들은 한쪽 구석에서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뛰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축구계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붐 조성에 앞장서 순수 아마추어 동아리가 아주 활성화돼 있습니다.” 그의 글에서 야구에 대한 안타까움과 축구에 대한 부러움을 읽을 수 있다. 이번 KSBO 창설이 자신의 경우처럼 야구를 하고 싶어도 여러가지 이유로 못하는 또래들을 위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곁들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 선수가 되려고 했으나 부모님 반대와 집안 형편 등 장벽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한 뒤 열정을 버리지 않았는데…. 선수 유니폼 입는 일을 포기한 뒤에도 야구를 하려면 인원을 맞추고 값비싼 장비를 갖추는 등 조건이 많아 4명 정도가 모여 맨손에, 그것도 테니스 볼로 운동을 하는 게 고작이었지요.” 그토록 야구를 좋아하면서도 주변 사정이 따라오지 못해 서운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던 홍군은 고교에 들어가 동아리 활동이라는 것을 접하고 2학년 때인 지난해 말 ‘힛앤런’을 창설했다.1∼2학년이 팀 주축이다. 홍군은 “KSBO 운영을 통해 각 동호회 선수 모집과 친선경기 주선 등 학생 야구를 위해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며 관심을 당부했다. 현재 서울 700여개, 경기도 300여개 등 수도권에만 1000여개로 추산되는 야구 동아리가 있지만 고교생 리그는 따로 없다.‘힛앤런’과 같이 유니폼 등 최소한의 장비를 갖춘 그럴 듯한 동아리는 그나마 드물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안전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KSBO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크게는 국내 야구의 저변확대에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한국야구 100주년 공로패 질레트·이영민등 10명 선정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 산하 ‘한국야구 100주년 공로상위원회’는 21일 한국야구의 대부 필립 질레트와 홈런왕 이영민 등 작고한 10명을 100주년 기념 공로패 수상자로 확정, 발표했다. 수상자로는 이들 외에 금철(학생야구선수권대회 효시) 김선웅(인천야구 보급) 김영조(일본 와세다대 주전) 박현덕(국내 최장수 감독) 유억겸(전 대한체육회장) 이원용(전 조선야구협회 창립 발기인) 이효(전 육군야구단장·한국올림픽조직위원장) 허성(전 조선야구심판협회장)씨 등이다. 공로상위원회는 오는 31일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식에서 이들 유족에게 공로패를 전달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청각장애 학생야구단 첫 창단, 충주 성심학교 고등부

    국내 첫 청각장애 학생 야구단이 창단된다. 충북 충주시 교현동 충주 성심학교(교장 金信子·57)는 고등부 청각장애 학생 18명으로 구성된 야구단 창단식을 9일 오전 11시 충주 여성회관에서 갖는다고 6일 밝혔다. 이 학교가 야구단을 창단하게 된 것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언어 발달에 장애가 있을 뿐 다른 운동 기능은 일반인과 전혀 다를 게 없고 특히 시각적인 기능은 더 뛰어나 야구 등의 종목에 강하기 때문이다.일본에는 청각장애 고교야구팀이 있고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청각장애 선수가 등록돼 있다. 이에 따라 최근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야구단 육성 건의가 잇따르자 학교측은 지난 4월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야구단 육성을 결정했고,5월초부터 탄금야구장에서 매주 4차례 훈련해오다 이번에 창단식을 갖게 됐다. 학교측은 내년 2월 대한야구협회에 선수 등록을 마치고,내년 하반기 고교 야구대회부터 출전시킬 계획이다.일본의 니가타 농학교 야구단과 친선 교환 경기도 열어 양국의 사회·문화교류에도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학교측은 지역 독지가와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 등으로부터 기본 장비 등을 지원받았으나 야구단 운영을 위한 경비가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감독은 없고 김인태씨를 순회코치로 영입,기술지도를 받지만 보수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김 교장은 “어려운 여건이지만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뭉친 선수들을 훌륭한 야구선수로 키우겠다.”면서 “이 선수들이 성장해 우리나라 프로야구계에도 진출,다른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겠다.”고 말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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