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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로의 아침] AI 관련 논문 홍수 속에서 느낀 것들

    [세종로의 아침] AI 관련 논문 홍수 속에서 느낀 것들

    20세기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 중 한 명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의식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형성된 무의식이 어른이 된 뒤 인간의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프로이트 심리학의 주요 뼈대다. 정신분석학이 과학적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뒤로하더라도, 아동기에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는가가 성인이 된 후 행동과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80~90년대 어린 시절 즐겨 봤던 SF 영화들은 유독 디스토피아적인 내용과 소재들이 많았다. 지금 같으면 피지컬 인공지능(AI)이라고 불렀을 로봇과 군사 인공지능인 스카이넷이 인간과 전쟁을 벌이는 ‘터미네이터’와 사이보그 인간 경찰과 전투 로봇이 등장하는 ‘로보캅’이 그랬다. 인간이 인공지능 컴퓨터에 의해 양육되며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며 산다는 내용의 ‘매트릭스’도 빼놓을 수 없다. 청소년기에 이런 SF의 세례를 받은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어린아이들이 새 장난감을 만나는 것처럼 얼른 한번 써봐야겠다는 호기심, 조바심과 함께 ‘이 기술이 잘못 사용되면 어떻게 하지’를 걱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요즘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과학 분야 취재를 담당하고 있다 보니 매주 다양한 분야의 최신 과학기술 논문들을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분야를 막론하고 AI 관련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이전에는 AI를 이용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논문이 많았다면 최근 들어 인공지능과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지난주에 나온 논문들만 해도 그렇다. 미국 의학협회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에는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이 우울 증상 증가와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거주 성인 남녀 2만 8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성형 AI 사용 수준이 높을수록 우울 증상이 증가하는 경향이 발견됐으며, 특히 젊은 사용자 중 매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 중증도의 우울증 발생 확률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과학 저널 ‘사이언스’ 23일 자에는 한국, 미국, 영국, 노르웨이 공동 연구팀이 악의적 인공지능 군집이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대규모 조직적 허위 정보 유포에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논문이 발표됐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산업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부정적 면을 부각하는 것은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거나 “문제가 생기면 시장에서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곤 한다. 지난 22일 시행된 ‘AI 기본법’에 대해서도 산업계는 불만인 듯싶다. SF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기술만능주의, 시장만능주의의 전형적 모습을 보는 듯하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한다면 요즘 나오는 AI 관련 서적에서 예측되는 것 이상의 현실이 우리 앞에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을 지난 뒤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은 전문가들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막연히 낙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이언스 논문도 그렇고 지난해 국제 학술지 ‘위기 분석’에 실린 논문에서도 “인공지능은 반드시 발전과 규제가 함께 가야 하는 기술이며, 규제는 단순한 가이드라인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AI는 어느 순간이 지나면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적절한 규제 없는 기술 발전은 최악의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초래하는 부작용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일 수 있다.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었을 때가 될지 모른다. 유용하 문화체육부 과학전문기자
  • 관능, 저항, 장인 정신의 연금술… 캔버스에 새긴 ‘황금 혁명’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관능, 저항, 장인 정신의 연금술… 캔버스에 새긴 ‘황금 혁명’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구약 성서 ‘유디트’ 황홀경 재해석여성 탐구해 성적 본능 해방 묘사‘빈 분리파’ 만들고 자유 예술 주장반짝이는 금으로 ‘사랑’ 감정 강조그림 한 점 위해 수백 장 도면 남겨 실험 되풀이… ‘노동자 예술가’ 자칭정사각형 화면, 완벽한 균형·조화 시선 분산하며 자연 속 명상 유도황금 양식을 창조한 최고의 장식 화가, 여성의 신체를 통해 에로티시즘을 회화로 구현한 실험가, 아카데미의 규범에 맞서 예술의 자유를 선언한 혁명가. 이 모든 수식어는 오스트리아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가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했다. 그는 자화상 한 점 없이 평생을 보냈고 자신을 설명하는 글을 쓰는 것을 “배멀미처럼 두렵다”고 말할 만큼 꺼렸다. 그래서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말들은 그의 황금빛 그림만큼이나 소중한 가치가 있다. 이제 클림트의 짧은 말들을 단서로 삼아 캔버스 뒤에 숨겨진 그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첫 번째 명언 “나는 작품의 대상으로서의 나 자신에게는 흥미가 없고 다른 사람들, 특히 여성을 그리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이 말은 예술가 자신을 신화적 존재로 내세웠던 낭만주의 전통과의 결별 선언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실제로 단 한 점의 자화상도 남기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주의 깊게 보라”고 말했을 만큼 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떼어내 여성이라는 대상에게로 향하게 했다. 클림트는 여성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를 투사하고 반영해 낸 예술가였다.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여성에 대한 탐구는 미적 취향을 넘어 사랑과 죽음, 욕망과 불안, 생명의 원초적 힘을 탐색하는 통로였다. 그 탐구심의 정점에 놓인 작품이 바로 ‘유디트 I’이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유디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뒤 그의 목을 벤 여성 영웅이다. 전통적으로 많은 화가들이 유디트를 용감하고 도덕적인 구원의 상징으로 그렸다. 하지만 클림트의 작품에서 유디트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재탄생한다. 금빛 장식에 감싸인 반나체의 몸에 살짝 벌어진 입술, 반쯤 감긴 눈으로 관객을 유혹하듯 바라본다. 한 손에 남자의 잘린 머리를 쥐고 있지만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공포도, 죄의식도 없다. 적장을 처단한 후의 의로운 분노가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직후의 쾌락과 성적 황홀감, 승리감이 가득하다. 클림트는 이 작품에서 사랑과 욕망을 의미하는 에로스와 죽음과 파괴를 상징하는 타나토스를 한 여성 안에 결합시켰다. 황금빛 장식과 노출된 유디트의 가슴은 신성함과 에로티시즘, 영성과 육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당시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성스러운 유디트를 위험한 매력을 지닌 요부, 즉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팜파탈로 그린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영화(榮華)의 끝자락에서 급속히 무너져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도 빈이 겪었던 시대적 열병을 담아낸 사회적 자화상이기도 하다. 당시 빈 사회는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속으로는 붕괴 직전의 불안에 떨고 있었다. 시민들은 보수적인 관습에 짓눌려 있었고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됐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인물이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 속 성적 욕망이 인간 행동의 핵심이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클림트의 ‘유디트1’이 탄생한다. 그는 유디트의 몸을 빌려 억압된 본능의 해방을 외쳤고 여성의 관능미를 빌려 세기말의 불안과 욕망을 그려냈다. 유디트의 손에 들린 잘린 머리는 남성적 힘의 몰락을, 그녀의 관능미는 여성적 힘의 승리를 상징한다. 이 작품은 말해 준다. 클림트가 그린 여성들의 초상은 그가 남긴 가장 정직하고 진실한 자화상이라고. 두 번째 명언 “왜 우리는 과거의 역사만을 소재로 삼아야 하는가? 왜 화풍은 옛 전통을 따라야만 하는가.” 이 말은 클림트가 보수적인 미술 제도권에 던진 공개적인 도전장이었다. 당시 빈의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성서와 신화, 역사적 주제만이 고상한 예술로 인정받았고 전통적 사실주의 화풍을 따르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졌다. 새로운 시도나 개성은 억압받았다. 클림트는 낡은 규범에 정면으로 맞섰고 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1897년,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보수적인 미술가협회를 탈퇴한 뒤 새로운 전위 예술 그룹인 빈 분리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이 된다. 빈 분리파 전시관 입구에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문장이 황금으로 새겨진다. 낡은 전통이나 권위로부터 예술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강력한 독립선언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키스’(1907~1908)는 과거의 틀을 깨는 클림트 예술의 결정체로 탄생한다. 언뜻 보기에 이 작품은 저항 정신보다는 사랑의 황홀경을 찬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제와 표현 방식이 혁신적이다. 클림트는 ‘키스’에서 아카데미가 요구하는 과거의 서사를 과감히 배제했다. 대신 그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주제로 삼았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이 작품은 전통과 결별한다. 고전 회화에서 익숙하게 사용했던 원근법, 명암법, 사실적인 인물 묘사를 과감히 버렸다. 대신 화면을 채우는 건 장식적 패턴, 금박, 평면적 구성이다. 비잔틴 모자이크, 일본 판화, 상징주의까지 혼합한 새로운 화풍이다. 그가 황금 양식이라는 혁신적 화풍을 창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클림트는 금세공사였던 아버지가 금박을 다루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반짝이는 재료에 대한 친밀감이 그의 예술적 감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03년 라벤나 여행에서 찾아온다. 그는 산비탈레 성당에서 중세 비잔틴 미술의 모자이크를 마주하게 된다. 황금빛으로 가득한 호화로운 벽화들은 클림트에게 강렬한 영감을 줬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금속 장인의 감각, 비잔틴 미술에서 발견한 신비로운 상징성과 장식성, 동시대적 주제의식이 결합해 황금 양식이 태어난 것이다. 클림트는 중세 종교화에서 성인(聖人)을 그릴 때 사용하던 신성한 재료인 금을 동시대 연인들의 입맞춤이라는 세속적인 주제에 적용했다. 이를 통해 그는 사랑의 순간을 종교적 의식처럼 영원하고 신성한 지위로 격상시킨 것이다. 세 번째 명언 “나를 볼 때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없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황금빛의 화려한 화면, 수많은 여성들과의 염문, 미술의 혁명을 주도한 반항아인 클림트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 건 뜻밖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클림트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다. 그는 자신을 천재예술가가 아니라 매일 작업에 몰두하는 성실한 장인으로 정의했다. 이런 장인 정신은 ‘스토클레 프리즈를 위한 도안-생명의 나무’③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벨기에의 부유한 사업가 스토클레를 위해 지어진 저택의 식당 벽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대형 모자이크 중 한 점이다. 클림트는 ‘스토클레 프리즈’ 작업을 위해 수백 장의 스케치와 세밀한 도면을 남겼다. “이 부분은 자개로”, “이 장식은 밝은 금색으로” 같은 재료별 구체적인 지시까지 직접 작성했다. ‘스토클레 프리즈’의 중심 이미지인 생명의 나무를 보면 황금빛 나무의 나선형 가지와 가지를 감싸는 기하학 문양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장면은 수많은 시도와 수정,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는 종이를 오려 붙이는 수작업인 콜라주와 은박과 금박을 겹겹이 쌓는 실험을 하며 세부 묘사를 하나하나 완성했다. 무늬, 색감, 소용돌이 문양의 방향을 위해 수십 번 손을 움직이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반복해 그리고 다시 확인했다. 화려한 금빛 화면의 이면에는 치열한 반복의 시간과 수십 번의 손길이 깃든 장인의 손끝이 숨어 있는 것이다. ‘스토클레 프리즈’는 그가 스스로를 노동자 예술가라 부른 이유를 증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는 클림트를 화려한 인물화의 대가로 기억하지만 그의 예술 세계에는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이 있다. 바로 그가 여름마다 머물렀던 아름다운 아터제 호수에서 그린 풍경화들이다. 이 풍경화들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가 되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정사각형은 묘사 대상을 평화로운 분위기로 잠길 수 있게 만드는 최적의 형식이다. 정사각형을 통해 그림은 우주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배나무’는 그의 생각이 풍경화에 어떻게 구현됐는지 잘 보여 준다.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정사각형의 화면이다. 클림트는 의도적으로 이 형식을 선택했다. 가로나 세로로 긴 직사각형은 방향성을 암시하지만 정사각형은 상하좌우 어느 쪽도 강조하지 않는다. 관람자의 시선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고 그림 안에 머물게 만든다. 화면 전체는 무성한 배나무의 잎과 꽃, 햇빛에 반짝이는 자연의 입자들로 가득 차 있다. 현실세계의 생명력 넘치는 자연 풍경이 정사각형이라는 고요한 틀 안에서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화면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호흡과 생명의 리듬을 느끼게 된다. 클림트는 정사각형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연을 명상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클림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데생을 할 줄 안다. 나도 그렇다고 믿고 다른 몇몇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말은 세기의 걸작을 탄생시킨 화가가 평생 안고 살았던 두려움과 한계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 끝없는 자기 회의가 황금보다 더 빛나는 클림트의 예술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대의•협치 허울뿐… 시체를 연료 삼는 ‘증오의 민주주의’

    대의•협치 허울뿐… 시체를 연료 삼는 ‘증오의 민주주의’

    적(敵)의 절멸(絶滅)만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꿈이다. 대의(代議)나 협치(協治)와 같이 한때 민주주의의 이상이라고 여겨졌던 것은 사실 이 꿈을 감추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현대의 정치를 작동시키는 힘은 증오 그리고 그것의 결과인 ‘죽음’이다. 죽음은 결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존하고 있는 우리 몸의 소멸을 말한다. 지금 세계의 정치는 시체(屍體·necro)를 연료로 삼고 있다. 카메룬 출신 철학자 아쉴 음벰베(68)의 ‘죽음정치’는 탈식민주의 비평의 기념비적 저작이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아프리카 지성 음벰베의 저서가 한국어로 옮겨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정치철학, 비교문학 연구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줬던 음벰베의 통찰을 이제 일반 독자들도 음미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출간된 책의 원제는 ‘증오의 정치에 관하여’다. 총 4장으로 구성됐지만 음벰베의 요청에 따라 원서에는 없었던 논문 ‘죽음정치’(Necropolitics)를 한국어판에 삽입했다. 시(詩)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정교하고 탄탄한 음벰베의 문장은 정확히 서구 철학의 맹점을 타격하고 있다. 마치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지는 민주주의는 서구 근대의 발명품이다. 대화와 타협의 예술인 것처럼 포장되는 민주주의가 실은 강력한 적대(敵對) 위에 세워져 있음을 음벰베는 날카롭게 폭로한다. 음벰베는 현대의 민주주의가 단순히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타자는 적이 되고, 우리는 그 적을 완전히 멸종시키고자 한다. 음벰베는 이렇게 정리한다. “오늘날의 정치적 질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죽음을 위한 조직이라는 형태로 재편성된다.”(15쪽) 프랑스어로 글을 쓴 아프리카 철학자의 성찰이지만 왜인지 오늘날 한국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칠 정도다. ‘내란’과 ‘청산’이라는 극단의 ‘예외상태’가 반복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앞선 세대의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을 비롯해 지크문트 프로이트, 미셸 푸코 등의 사유를 통과한다. 주권과 예외상태, 적대 등의 개념으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지점에서는 책에 두 차례 정도 언급되는 독일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결론에서 음벰베는 ‘통행자의 윤리’를 강조한다. “세계를 횡단하며 우리가 태어난 곳이 지니는 우연성과 그것이 담고 있는 자의성과 제약의 무게를 가늠하는 것… 우리가 나그네라는 지위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298쪽)
  • 앵무새도 사람처럼 친구 보고 배운다 [달콤한 사이언스]

    앵무새도 사람처럼 친구 보고 배운다 [달콤한 사이언스]

    행동주의 심리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의식, 내적 사고나 감정을 연구하는 대신 눈으로 볼 수 있는 행동의 결과와 보상에 대한 영향을 연구한다. 그중 타인의 행동을 관찰해 학습할 수 있다는 사회학습 이론이 있다. 사회학습은 인간과 영장류 등에서만 주로 관찰되는 학습 방법이다. 그런데, 독일 막스 플랑크 생물 지능 연구소, 뮌헨 루트비히 막스밀리안대, 튀빙겐대, 스페인 비교 인지 연구소, 덴마크 사우스덴마크대 공동 연구팀은 조류인 ‘푸른목 금강앵무’(Ara glaucogularis)가 사람처럼 다른 개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으로도 새로운 행동을 학습할 수 있다고 8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9월 5일 자에 실렸다. 동물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이렇게 다른 개체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것을 ‘제3자 모방’이라고 한다. 제3자 모방은 직접 지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두 개체 간의 상호작용을 관찰함으로써 학습하는 능력이다. 이는 인간의 경우, 문화적 관행과 사회적 규범의 전파와 관련이 있다. 직접 시연을 통해 학습하는 ‘제2자 모방’은 메추라기 같은 동물에서도 관찰됐지만,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서 제3자 모방 증거를 찾은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사람의 손동작에 따라 특정 행동을 하도록 훈련받은 푸른목 금강앵무 2마리와 훈련을 받지 않은 앵무새 11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푸른목 금강앵무 2마리는 두 번째 손가락 검지를 위로 올리면 다리를 들고, 엄지와 검지, 중지를 모아 아래로 돌리면 몸을 회전하는 식으로 반응하면 먹이를 보상으로 받았다. 11마리 중 6마리는 유리창 건너편에서 훈련받은 앵무새가 연구원의 손동작에 따라 한쪽 다리 들기, 회전하기, 날개 치기 등 다섯 가지 동작을 관찰했고, 5마리는 관찰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 동료 학습을 관찰한 앵무새는 다른 새보다 동작을 더 빨리 배웠다. 한쪽 다리 들기 같은 행동은 동료 행동을 관찰하지 않은 개체들보다 두 배나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했다. 일부 새들은 지시나 보상을 받기 전에 자발적으로 행동을 모방하기도 했다. 연구를 이끈 독일 막스 플랑크 생물 지능 연구소 아우구스트 폰 바이에른 교수는 “사람의 3자 모방 능력은 문화적 관행과 사회적 규범의 전파와 관련 있는데,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푸른목 금강앵무의 독특한 집단행동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천재’를 연출한 천재… 20세기 미술 ‘상상력’을 해방시켰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천재’를 연출한 천재… 20세기 미술 ‘상상력’을 해방시켰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타인의 생각에 영향 미치는 창조자”자신을 작품으로 만든 ‘위대한 쇼맨’꿈·무의식적 욕망을 캔버스 위로상식과 관습 깨고 영감 불어넣어 스페인이 낳은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천재성을 가장 성공적으로 상품화한 예술가였다. 그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불렀으며 수많은 인터뷰와 자서전, 일기를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찬양했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그의 요란한 자기 선전이 허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제로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천재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였던 그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천재성을 연기하고 광고해야만 했을까. 단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었을까, 아니면 기상천외한 초현실주의적 행위예술이었을까. 해답은 달리가 남긴 말과 기록 속에 있다. 달리의 언행과 저술을 따라가며 그가 스스로 창조한 천재 신화의 베일을 벗겨 보자. 첫 번째 명언,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이 말은 위대한 예술가란 영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인 창조자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여기서 달리의 대담한 자기 선전이 필승 전략으로 등장한다. 그는 저서 ‘어느 천재의 일기’를 통해 자칭 천재의 일기를 쓴 최초이자 유일한 인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나는 금세기 가장 폭넓은 정신세계를 가진 천재”라는 축사도 스스로에게 바쳤다.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기 위한 구체적 수행 방법도 이렇게 제시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오, 달리여, 진실을 알았구나! 천재인 척 행동하면 천재가 된다는 것을.” 달리는 천재의 외양, 태도, 말투, 패션, 생활 방식까지 설계하며 천재의 일상을 연기했다. 예를 들면 그는 매일 아침 표범고양이의 배설물을 수염에 발라 꼬아 올리는 의식을 치렀으며 자신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호명했다. 1936년 런던의 초현실주의 전시회 개막식에서는 잠수복과 납 단추가 달린 장화, 단검 두 자루를 벨트에 꽂은 채 흰색 그레이하운드 두 마리를 끌고 나타나 참석자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이 모든 것은 천재의 후광을 빌려 신화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장치였다. 그가 매일 새롭게 연출한 인물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그의 작품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달리의 가장 유명한 ‘작품 1’은 진정한 예술가란 관객에게 영감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명언을 예술로 구현한 걸작이다. 일명 ‘녹아내리는 시계’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한 대표적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달리는 평소 즐겨 먹던 카망베르 치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축 늘어진 시계를 창조했다. 치즈처럼 부드러운 시계는 “시간은 절대적이고 견고하다”라는 우리의 상식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그는 이 충격적인 이미지를 통해 감상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믿는 시간은 객관적인 실체인가, 아니면 심리 상태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주관적인 경험인가?’ 그는 답을 주는 대신 관객 스스로가 문제에 대해 사유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다. 즉 달리는 영감을 받은 결과물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고정관념을 깨고 상상력을 해방시켜 시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는 적극적 행위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위대함은 예술가가 무엇을 보았는가에 있지 않고, 감상자가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에 있다. 이것이 바로 능동적으로 영감을 주는 예술가의 역할이다. 달리는 “나는 늘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맹목적인 습성에 경악한다. 은행 직원이 수표를 먹지 않은 것에 놀라고, 나 이전에 어떤 화가도 흐물거리는 시계를 그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말했다. 달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상식과 관습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계는 단단하고 시간은 정확하다는 맹목적인 순응이야말로 그에게는 가장 비현실적이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인류의 가장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발명품인 기계식 시계를 녹아내리는 치즈처럼 부드럽고 감성적인 존재로 바꿔 버렸다. 흐물거리는 시계는 뉴턴의 절대적 시간 개념에 대한 도전이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시각화한 혁신적 결과물로 평가받으며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 명언, “환상은 실제보다 더 현실적이다. 내게 꿈과 현실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달리가 ‘어느 천재의 일기’에 적은 이 문장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이성과 질서에 대한 깊은 회의 속에서 등장한 초현실주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참혹한 전쟁의 경험으로 이성과 합리성에 의문을 품었고, 대신 무의식과 꿈을 통해 인간 내면의 숨겨진 영역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초현실주의는 억압된 무의식의 욕망과 공포가 꿈과 환상으로 나타난다는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달리는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해석’을 ‘인생 최고의 발견물’로 꼽을 정도로 깊이 매료됐다. 그는 꿈의 세계를 회화로 재현하기 위한 독창적 화법을 개발했고 이를 “손으로 그린 천연색 사진”이라고 불렀다. 천연색 사진이란 극도의 사실성과 정밀함을 의미한다. 달리는 비논리적이고 환상적인 장면을 그리기 위해 역설적으로 고전적이고 사실적인 화법을 사용했다. ‘작품 2’는 내용은 비현실적이지만 표현 방식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통제된 기술로 완성되었던 달리의 작업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이 그림은 달리의 아내 갈라가 잠든 채 누워 있을 때 벌 한 마리가 석류 주변을 날아다니는 장면에서 비롯된 기묘한 꿈의 연상을 보여 준다. 석류에서 튀어나온 물고기, 이어서 등장하는 두 마리 호랑이, 호랑이들의 돌진은 날카로운 총검으로 변모해 여성을 공격하려는 긴박한 순간을 묘사한다. 달리는 여성의 피부, 호랑이의 털과 무늬, 총검의 금속 질감,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까지를 고전적 회화 기법을 사용해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정교한 표현 방식 덕분에 관람자는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를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달리가 밝힌 작업 철학인 “작품들은 영혼에 불붙은 채로 잉태돼야 하지만 임상적으로 냉정하게 실행돼야 한다”는 원칙을 보여 준다. 뜨거운 감성과 냉철한 기술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조합이 관객을 달리가 창조한 경이로운 세계로 이끄는 요인이다. 세 번째 명언, “핵폭탄을 과학적 관점으로 보면, 삶의 진정한 신비에 접근할 수 있다.” 달리는 1951년에 발표한 ‘신비주의 선언’을 통해 자신의 예술이 핵 신비주의 시대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음을 선포했다. 핵 신비주의는 원자물리학의 발견과 신비주의적·종교적 개념이 융합된 독특한 예술철학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달리의 작품 세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핵폭탄의 파괴력은 그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안겨 주었고 동시에 새로운 예술철학을 탄생시키는 동기로 작용했다. 달리는 핵폭발이 “나를 지진처럼 뒤흔들었다. 그때부터 원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색의 양식이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달리는 자신의 지적 아버지를 교체했는데 이 극적인 전환은 ‘신비주의 선언’에서 드러난다. “초현실주의 시대에 나는 경이로운 내면세계와 나의 아버지인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도상학을 창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리학의 세계는 심리학의 세계를 초월했다. 오늘날 나의 아버지는 하이젠베르크다.” 달리는 양자물리학과 원자핵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 그는 물질의 해체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핵물리학의 개념에서 영적 통찰을 얻었으며, 과학적 사실을 통해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물질의 붕괴는 끝이 아니라 더 깊고 신비로운 영적인 실체의 계시였다. 특히 물질이 단단하고 연속적인 실체가 아니라 서로 접촉하지 않는 원자들의 집합이라는 물질의 불연속성 개념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작품 3’은 핵 신비주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입자들이 서로 접촉하지 않는다는 원자물리학의 원리를 그림으로 구현하려는 달리의 야심을 보여 준다. 달리는 루마니아 수학자 마틸라 기카의 저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황금 비율과 오각형 별 구조에 기반한 작품을 구성했다. 화면에 등장한 그리스 신화 속 여성인 레다를 비롯해 백조, 책, 삼각자, 바다 물결 등 모든 대상은 서로 조금씩 떨어진 채 허공에 정지해 있다. 이 부유하는 상태는 중력을 거스르는 신비로운 힘을 암시하는 동시에 원자 수준에서 입자들이 서로 반발하며 떨어져 있다는 과학 이론을 시각화한 것이다. 신성한 비례와 오각형에 따라 엄격하게 구조화된 이 그림은 신화적 주제와 수학적 질서의 융합을 보여 주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달리는 탁월한 자기 홍보 감각과 기발한 언행으로 20세기 미술계를 뒤흔든 위대한 쇼맨이었다. 그러나 그를 괴짜 예술가로 간주한다면 핵심을 놓친다. 천재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누구보다 명확한 철학과 치밀한 연출, 냉정한 전략이 숨어 있었다. 그는 꿈과 무의식·욕망을 캔버스 위로 끌어올린 20세기 미술계의 프로이트였다. 그의 삶과 예술, 스스로 연출한 모든 퍼포먼스는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다. 천재들은 죽지 않는다”라는 선언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죽지 않음은 육체의 영생이 아니라 그가 평생에 걸쳐 구축한 천재 신화의 영원한 생명력을 뜻한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라는 인물을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창조해 인류에게 남겼고, 그 덕분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화폭 속에, 문화 속에, 그리고 예술의 도발자로서.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프로이트는 알아도 나는 모른다고?… 나, 융이야! MBTI 아빠!

    프로이트는 알아도 나는 모른다고?… 나, 융이야! MBTI 아빠!

    2025년 올해는 그야말로 ‘문화예술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문화예술인의 탄생과 서거 100주년, 150주년이 되는 때다.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이며 모리스 라벨과 프리츠 크라이슬러 탄생 150주년이다. 또 오페라 ‘카르멘’의 작곡자 조르주 비제의 서거 150주기, 에릭 사티 서거 100주기,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서거 5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150년 전에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태어났다.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이다. 융은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나 개인심리학을 만든 알프레트 아들러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가 제시한 콤플렉스나 MBTI의 기본 개념이 된 성격유형론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프로이트‘성욕 중심설’에 반발해 결별 융은 스위스 바젤대와 취리히대에서 의학을 전공해 정신과 의사가 됐다.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병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와 함께 실험심리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분트가 만든 ‘단어 연상 실험’을 더욱 발전시켰다. 사실 이 연상법은 성(性)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학계에서는 금기시됐다. 융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처음 발표했을 때는 그의 사상에 동의해 제자이자 동료로서 정신분석학 발전에 이바지했지만, 프로이트의 ‘성욕 중심설’에 반발해 결국 결별했다. 이후 아들러가 만든 개인심리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13년을 전후해 독자적으로 분석심리학 이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융은 무의식을 개인적, 집단적 무의식으로 나눠서 보고 콤플렉스, 아니마(남성의 무의식 속 여성성), 아니무스(여성의 무의식 속 남성성) 등의 개념으로 무의식을 해석했다. 인간 내면에는 의식과 무의식의 여러 층이 있는데, 자아가 무의식의 여러 측면을 발견하고 통합하는 무의식의 자기실현 과정, 즉 개성화 과정을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했다. ●외향·내향, 사고·감정, 감각·직관 분류 융은 1921년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그노시스주의와 교회 신학 논쟁, 유명론과 실재론, 중세 루터와 츠빙글리 사이에 벌어진 성찬식 논쟁까지 인간 유형에 대한 논쟁의 역사를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적 유형에 관해 논한 ‘심리 유형’이라는 책을 내놨다. 여기서 인간 심리유형은 크게 태도와 기능으로 나눠지며, 이것들이 다양한 비율로 결합해 몇 가지 유형의 성격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태도는 방향성을 나타내는데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나뉘며 기능은 사고, 감정, 감각, 직관으로 나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캐서린 브릭스와 그의 딸 이저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MBTI(마이어스브릭스 성격유형 지표)를 만들었다. MBTI는 처음에는 세계 대전으로 인해 군수 산업의 수요가 증가하고 징집으로 인해 부족한 남성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도 필요해지면서 적합한 직무 배치를 위해 활용됐다. 이후 개인의 선호가 인간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위해 성격검사 기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의식을 의식화해 ‘온전한 나’로 융의 이론 중 중요한 개념은 바로 ‘콤플렉스’다. 유아기에 감정적 충격을 받은 사건과 관련된 관념적 내용이 하나의 핵을 형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관련된 요소들이 동화되면서 더 큰 덩어리를 이뤄 콤플렉스가 형성된다. 적용 범위는 공통의 가치관이 통용되는 범위에 따라 개인에서 집단, 더 나아가 사회 콤플렉스로 확장될 수도 있다고 융은 주장한다. 콤플렉스는 상황을 왜곡해서 보게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상황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게 하지만, 삶의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융 심리학은 인간 무의식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발견함으로써 자기 안의 무의식을 의식화해 ‘완벽한 나’가 아닌 ‘온전한 나’가 되도록 해 준다는 측면에서 탄생 150주년을 맞아 재조명받고 있다.
  • 공포와 매혹 사이의 ‘죽음’…40년 만에 다시 읽는 ‘자살의 연구’

    공포와 매혹 사이의 ‘죽음’…40년 만에 다시 읽는 ‘자살의 연구’

    제목에서 공포와 매혹이 동시에 밀려온다. 영국의 문학평론가 앨 앨버레즈의 ‘자살의 연구’는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다. 1982년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판본이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을유문화사 암실문고에서 완역판이 출간됐다. 번역가 황은주가 기존 판본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고백하건대 이 책을 읽는 내내 주변에서 많은 걱정과 위로가 있었다. 한국에서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탓일 터다. 최근 공개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는 1만 4439명으로 전년(1만 3978명)보다 3.3% 증가했다.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수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자살률 통계가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지만 그때뿐이다. 뚜렷한 해결책도,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앨버레즈는 자살의 정치사, 사회사를 추적한 뒤 끝에서 ‘자살의 예술사’를 완성한다. 앞서 자살을 연구했던 에밀 뒤르켐과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도 거리를 둔다. 자살을 그저 세상에 굴복한 개인의 체념으로 보지 않으려 한 듯하다. 앨버레즈는 낙인과 찬양이 번갈아 가면서 반복됐던 자살의 역사를 탐구한다. 끝에서는 핵무기 사용을 비롯해 스스로 종말로 나아가고 있는 현대의 혼돈을 사유한다. 세계 전체가 거대한 자살을 수행하고 있는 것 아닐까. 20세기에 쓰인 글이지만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낡은 게 하나도 없다. 앨버레즈는 책에서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말을 두 번이나 인용한다. 흄은 이렇게 말한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생명이 굴의 생명보다 더 큰 중요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1980년대를 풍미한 시인이지만 같은 시기 번역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최승자의 번역이라는 점은 더 강렬한 매혹으로 다가온다. ‘이 시대의 사랑’을 비롯한 최승자의 시는 죽음과 고독의 이미지 안에도 처절한 생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어서다. 기존 국내 번역 판본에는 없던 제4장 ‘자살과 문학’의 챕터 1~3번을 이번에 새로 옮겼다. 국내 최초 완역판인 셈이다. 앨버레즈는 옥스퍼드대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잡지 ‘옵서버’의 시 평론가로 이름을 알렸다.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63)를 영국에 소개했다. 앨버레즈는 책에서 플라스의 생전 모습을 복원하며 그가 실제로는 죽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 경계를 탐구하는 안무… 꿈과 욕망 논하다

    경계를 탐구하는 안무… 꿈과 욕망 논하다

    예술가는 ‘경계’에 민감한 사람이다. 경계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맞붙는 지점. 그곳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어떤 예술가는 그 경계를 넘어서는 일탈을 감행키도 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이 경계는 누가 지어 놓았는가.’ 세계적인 안무가 호페시 셰흐터(50)는 경계를 탐구하는 예술가다. 장르 사이의 구분을 허무는 것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고 이를 위해 그는 꿈과 현실의 경계마저 무화(無化)한다. 비평가들은 이런 시도를 일삼는 셰흐터더러 ‘혁신가’라 부른다. 그의 최신작 ‘꿈의 극장’이 다음달 14~15일 경기 성남시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것으로 셰흐터의 예술철학이 집약된 현대무용 작품이다. 셰흐터와 23일 서면으로 만났다. “인생은 연극과 같고 우리는 특정한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삶은 아이디어로 가득한 극장, 다른 말로 ‘꿈의 극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대상들은 점차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우리가 속한 국가도 마찬가지. 우리는 어느 한곳에 속했다고 믿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러자고 ‘합의한 진실’일 뿐.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꿈의 극장’이라는 공연명에서 드러나듯 셰흐터는 인간의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욕망과 억압의 경계를 탐구한다.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의식, 무의식, 욕망, 억압 이 네 단어가 긴밀하게 연결됐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터다. 무의식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의식은 억압하고 통제한다. 하지만 찍어 누른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억압된 욕망이 폭발할 공간이 필요하다. 혹시 그곳이 ‘꿈의 극장’일까. “꿈의 세계란 무엇일까. 우리가 원하는 것 그리고 그걸 원하는 이유를 고민했다. 문화적 요소가 개인의 욕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생각했다. 공연에서 무대는 마치 인간의 뇌처럼 작동한다. 어떤 것은 드러내고 어떤 것은 감춘다. 그렇게 관객과 소통한다. 무대 안으로 들어갈수록 인간의 존재와 맞닿은 흥미로운 요소가 발견된다.” 무용수 13명과 연주자 3명이 함께하는 작품이다. 연주자도 무대에 올라 라이브 연주를 펼치는데 전자음과 목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다. 무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셰흐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라고 귀띔했다. 그는 안무를 구성할 때 기존 음악을 가져다 쓰지 않는다. 필요한 음악은 직접 작곡한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나 프레데리크 쇼팽 등 클래식 작곡가부터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까지 영향을 받은 음악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스탠리 큐브릭의 팬인 셰흐터는 영화에서도 안무의 영감을 얻는다. 직접 연출한 영화 ‘폴리티컬 마더: 더 파이널 컷’으로 2023년 칸영화제 최우수 무용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무용은 어렵고 현대무용은 더 어렵다. 하지만 셰흐터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춤과 음악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즉석에서 떠오르는 두 가지 질문. 진짜일까, 그리고 왜일까. 그는 “춤과 음악은 도구일 뿐 중요한 건 인간의 경험”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단서가 있다. “무용은 관객이 자신을 잊고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걸 느끼도록 한다. 무용은 화학적인 경험이다. 수천 명이 한 공간에 모여 함께 같은 순간을 경험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타인의 몸을 보면서 자기 몸을 감각하는 순간은 무용만이 줄 수 있는 매우 영적인 차원의 경험이다.”
  • 어젯밤 꿈 생생히 기억난다면 뒤척이며 얕은 잠 잤다는 신호 [유용하 과학전문기자의 사이언스 톡]

    어젯밤 꿈 생생히 기억난다면 뒤척이며 얕은 잠 잤다는 신호 [유용하 과학전문기자의 사이언스 톡]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은 인간의 의식이 조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이라는 정신활동을 무의식으로 설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꿈은 잠잘 때 경험하는 일련의 영상, 소리, 생각, 감정 등의 느낌으로 정의합니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종종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것들이며, 꿈꾸는 사람이 제어하기도 어렵습니다.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사람은 꿈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정확히 묘사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꿈을 꾼 것은 알지만 내용이나 세부 사항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IMT 루카 고등과학연구원, 카메리노대 공동 연구팀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꿈을 기억하는 능력인 ‘꿈 회상’은 개인의 특성과 수면 패턴에 좌우된다고 19일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심리학 분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즈 심리학’ 2월 18일 자에 실렸습니다. 연구팀은 18~70세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15일 동안 수면 상태와 인지 능력을 측정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잠에서 깨어난 직후 꿈의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는 음성 녹음기가 제공됐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꿈을 꾸었는지, 꿈을 꾸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지, 기억난다면 어떤 내용인지 상세히 녹음해야 했습니다. 또 수면 시간, 수면 효율, 수면 장애를 감지하는 손목시계 형태의 수면 모니터링 기기 액티그래프를 보름 동안 착용해야 했습니다. 이와 함께 실험을 시작하는 날과 마지막 날에 불안 수준, 꿈에 관한 관심도, 집중력, 기억력, 선택적 주의력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심리 검사와 설문조사도 실시했습니다. 연구 결과 꿈에 대한 인상과 기억을 갖고 아침에 깰 확률을 말하는 ‘꿈 회상’은 개인마다 편차가 컸으며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꿈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하고, 고민이 많은 사람이 꿈을 정확히 기억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옅은 수면 시간이 길수록 꿈에 대한 기억을 갖고 아침에 깨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 젊을수록 꿈을 기억하는 비율이 높았고 나이가 많을수록 세부 사항은 기억하지 못하고 꿈을 꾼 듯한 느낌인 백일몽을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다른 계절보다 겨울에 꿈 회상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환경적 또는 일주기적 요인도 큰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연구를 이끈 줄리오 베르나르디 IMT 교수(신경과학)는 “이번 연구는 꿈에 대한 메커니즘의 이해를 높일 뿐만 아니라 꿈을 통해 정신 건강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 과잉 생산·과잉 축적의 시대… 정신병적 시설 쇼핑몰을 낳다

    과잉 생산·과잉 축적의 시대… 정신병적 시설 쇼핑몰을 낳다

    ‘자연 정복’ 꿈꾼 인간의 팽창의식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도시 형성정크푸드같이 소비되는 공간 늘어현대인 우울증·번아웃 시달릴 수도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의식할 수 없는 억압된 감정과 욕망,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 틀을 도시나 건축에 적용할 수 있을까. 정신의학자들은 항상 분주하고 수선스러운 도시 환경에서 사는 사람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에 정신질환에 걸리기 쉽다고 말한다. 뇌과학자들도 도시화가 뇌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홍익대 건축학부 장용순 교수는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의 팽창의식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도시를 형성했고 과잉 생산과 과잉 축적에 직면해 여러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장 교수는 이런 분석을 근거로 ‘라캉, 들뢰즈, 바디우와 함께하는 도시의 정신분석’(전 3권)을 출간했다. 장 교수는 프랑스 베르사유 건축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가 공인 건축사(DPLG) 자격을 갖고 있으며, 파리 8대학 생드니 철학과에서 프랑스 철학의 거장 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철학, 수학, 과학, 공학 구분 없이 연구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나 르네상스 시대 사상가들처럼 장 교수는 ‘도시의 정신분석’에서 자크 라캉, 질 들뢰즈, 바디우, 조르주 바타유, 미셸 푸코, 이마누엘 칸트, 쿠르트 괴델, 카를 마르크스, 슬라보이 지제크 등 근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를 끌어와 도시와 정신분석을 씨줄 날줄로 엮어 낸다. ‘과잉 도시’, ‘환상 도시’, ‘사건 도시’로 구성된 시리즈는 철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영화, 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사례와 각양각색의 특징적인 도시 사진, 건축물, 설계도 이미지를 곁들여 정신 병리 현상, 도시 현상, 경제 현상을 설명한다.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학교, 공장, 감옥은 근대에 생긴 대표적인 건물이다. 장 교수는 이런 근대의 건물들은 무한한 세계를 유한 안에 재현하고, 시공간을 분절하고, 규율을 만드는 통제 시설이라고 말한다. 정신 병리 관점에서 보면 강박증과 히스테리 성격을 갖는 신경증적 시설들이다. 그런가 하면 대표적인 현대 시설인 편의점, 지하철, 은행, 패스트푸드점, 쇼핑몰, 터미널, 공항은 모두 실용적이지만 특별히 기억되지도 않고 고유한 정체성도 없는 장소다. 장소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비(非)장소’라고 장 교수는 정의한다. 비장소의 대표적인 예는 쇼핑몰로, 정크푸드처럼 손쉽게 소비되고 의미 없이 잊히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정크 스페이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 교수는 최근 공연장이나 학교, 관공서, 심지어 교회 같은 종교 시설조차 쇼핑몰처럼 변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근대 건물과 달리 무한한 세계를 무한 속에 배열하고 단절된 시공간을 연결하는 과도한 흐름에 놓인 현대 도시는 정신병 성격을 갖는다. 이런 공간에서 사는 현대인은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불리는 소진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고 진단한다. 장 교수는 “정신, 기술이나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흐름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흐름을 넘어서면 주체와 대상 자체가 변화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며 “현대 도시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이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 사회와 도시를 생태적 흐름과 물질 대사의 관점에서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흉흉해진 세상에 프로이트 오신다

    흉흉해진 세상에 프로이트 오신다

    조용하고 평안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과거처럼 믿고 따를 어른이 없는 세상, 무엇에 기대야 하나 고민스러운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학책이나 심리학책을 들춰 보지만, 속 시원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프레트 아들러의 심리학이 주목받았다면, 이제는 정신분석학의 원조이자 행복의 지름길로 무의식을 강조한 지크문트 프로이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프로이트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자 정신분석 발전에 공헌한 현대의 고전으로 불리는 ‘정신분석 사전’(열린책들)은 정신분석의 개념적 도구인 용어를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들은 “정신분석에 대한 반감은 그 어휘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동안 오해를 받고 잘못 쓰인 정신분석 관련 개념과 용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용어 설명만 한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방대한 저작과 관련한 연대표를 만들어 개념들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이해를 돕는다. 정신분석 치료법에 대한 프로이트의 미출간 원고들을 모은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도서출판b) 역시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하는 독자를 위한 책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질문을 했으며, 어떤 확신과 회의를 가졌는지 보여 준다.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면 국내 정신 분석가들이 풀어 쓴 책을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이들 책은 실제 상담 사례와 저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서른에 읽는 프로이트’(유노북스)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초조하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우울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흔들리는 서른의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자기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서른에 반드시 무의식을 들여다보라”는 프로이트의 조언을 전한다. ‘잠 못 드는 오십, 프로이트를 만나다’(문학동네)는 일과 가족에 매달려 잊고 있었던 감정, 자신조차 잘 몰랐던 진짜 마음을 직면하는 때가 다름 아닌 50대임을 지적하며 “방어기제가 무의식으로 눌러 왔던 억압된 마음을 직면하는 나이이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우울, 소외감, 분노, 외로움, 상실 등 감정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의 실체를 똑바로 직시할 때만이 건강한 두 번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책들은 공통으로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강조하고 무의식과 당당하게 대면하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의식이야말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이 돼 주는 존재이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를 알려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모든 인생은 지식의 축적으로 만들어진다

    모든 인생은 지식의 축적으로 만들어진다

    발전 원동력 지식, 배움 통해 전수정보 수집·보관·전달의 진화 소개 걸프전쟁 등 지식 왜곡·오용 지적역사 속 ‘지혜’ 필요한 순간 조명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포털 검색창에 단어 몇 개만 넣으면 된다.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알아서 척척 정리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이 우리 머릿속에 모두 저장되지는 않는다. 넘쳐나는 정보가 지식이 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가 고대부터 내려온 지식이란 무엇인지 알려 준다. 정보와 지식의 차이는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지식이 전수되고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리고 수천년간 지식의 전달 수단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소개한다. 저자는 지식에 대한 정의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에 언급된 ‘정당화된 참된 믿음’에서 찾는다. 소크라테스와 수학자 테아이테토스의 대화에서 나온 이 개념은 인식론의 밑바탕이 됐다. 지식은 배움을 통해 전수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2003년 인도 중남부 도시 벵갈루루에서 중년 여성 슈클라 보스가 빈민 지역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지식을 흡수했고 자기 부모와 가정을 변화시켰다. 지식을 담는 도구에 대한 역사를 살피는 일도 흥미롭다. 인간은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고 보호할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책이 탄생하고 이를 보관하는 도서관이 지어졌다. 지식은 무엇보다 강하기에 침략자들은 이를 우선 말살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파괴한 모술도서관이 그렇고 스리랑카 자프나도서관, 폴란드 국립도서관 등이 비극을 겪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식은 때론 왜곡되기도 한다. 이라크를 세계의 적으로 만든 걸프전쟁을 확전시킨 것은 쿠웨이트의 가짜 피해자인 나이라의 증언을 기획한 미국의 힐앤놀턴이라는 홍보 대행사였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삼촌의 지위와 정신분석 이론을 이용, 흡연을 여성해방과 관련지어 큰돈을 벌었다. 지식은 잘못 사용되기도 한다. 민간인 7만명과 군인 2만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원자폭탄이 대표적이다. 헝가리의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가 1933년의 어느 날 핵분열 연쇄반응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후부터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되기까지 저자는 폭력을 멈출 수 있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고 강조한다. 당시는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고 꼬집는다. 지식의 탄생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여러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 저자는 “앞으로는 지식마저 머릿속에 담아 둘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실제 ‘아는 것’뿐만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까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 밝힌 저자는 지식을 넘어 지혜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강조한다.
  • 과학도 종교도 인간의 일… 신은 왜 惡을 창조했을까[영화 프리뷰]

    과학도 종교도 인간의 일… 신은 왜 惡을 창조했을까[영화 프리뷰]

    정신분석학자와 영문학자 ‘신’ 논쟁할리우드식 영화로 세련되게 담아치열하게 싸우던 중 전쟁 다가오자“죽음 앞 모두가 겁쟁이” 결국 공감 선하고 전지전능한 신은 어째서 세상의 악과 고통까지 창조했는가. 풀리지 않는 종교적 딜레마다. 이를 해결하려는 신학적 시도를 신정론(神正論)이라 한다. 지극히 사변적인 논담을 영화는 ‘할리우드적’으로 세련되게 풀어냈다. 섣부른 종합이나 결론은 도출하지 않는다. 과학도 종교도 결국은 나약한 ‘인간의 일’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 줄 뿐이다. 지적 허영에 목마른 현대인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줄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이 오는 21일 개봉한다.늙고 까칠한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과학의 논리로 무장한 무신론자다. 반면 젊고 온화한 영문학자 클라이브 스테이플스(C S) 루이스(1898~1963)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다. 거칠 것이 없는 프로이트는 도발적으로 신성모독을 감행한다. 루이스는 초반에는 쩔쩔매다가도 이내 차분한 태도를 되찾고 프로이트 논리의 허점을 짚어 낸다. 어느 한쪽이 승리할 수도 없고 승리해서도 안 되는 지루한 싸움이 이어진다.20세기 초 서구 지성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영화에 다가갈 수 있다. 저서 ‘꿈의 해석’으로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의 중요한 동인(動因)으로서 ‘성욕’의 역할을 확인하고 긍정했다. 성에 대한 금기와 억압으로 가득했던 당대 분위기를 크게 뒤집는, 지성사에 몇 안 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가운데 하나다. 그를 ‘섹스 박사’라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프로이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성은 모든 행복의 원천”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루이스는 여기에 맞선다. “성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많은 행복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성욕의 만족은 짧게 지속되는 것으로 진정한 행복은 그것을 넘어선다고 강조한다.신이 선할진대 어째서 고통받는 인간을 내버려두는지 이해하지 못한 프로이트는 결국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루이스가 신을 믿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고통 앞에 한없이 나약하기에 신에게 귀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영국 런던 프로이트의 집 바깥으로는 쉴 새 없이 공습경보가 울린다. 전쟁의 올가미가 두 사람을 깊숙이 조이고 나서야 결국 공감대를 이룬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겁쟁이죠.”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배우 신구, 남명렬 등이 분했던 연극으로 더 익숙하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희대의 사이코패스를 연기하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할리우드의 전설’ 앤서니 홉킨스가 프로이트를 연기한다. 영화인데도 왜인지 두툼하고 어려운 책을 독파했을 때의 쾌감을 준다.
  • ‘생각’을 채우는 영화 한 편 어때

    ‘생각’을 채우는 영화 한 편 어때

    극장가가 연중 최대 성수기를 맞은 여름철에 온갖 상업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관객몰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진지하고도 아름다운 예술·철학 영화들이 속속 개봉을 앞둬 역설적으로 관심을 끈다. 블록버스터의 홍수를 피해 잠시 사색과 탐미의 세계로 떠나 볼까.●앤서니 홉킨스 ‘프로이트…’ 21일 개봉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소설가·영문학자 C S 루이스.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지성이 삶과 죽음, 종교에 관해 나누는 진지한 토론을 담은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이 오는 21일 개봉한다.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 원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배우 신구가 프로이트로 분했던 연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꿈의 해석’을 비롯한 저서로 무의식 탐구의 지평을 연 프로이트와 판타지 걸작 ‘나니아 연대기’ 창작뿐만 아니라 현대 기독교 철학의 기틀을 세운 루이스의 대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한 것 같지만 거기서 오는 지적인 쾌락도 확실할 듯하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로 출연했던 영화계의 전설 앤서니 홉킨스가 노년의 프로이트를, 매튜 구드가 젊은 루이스를 각각 연기한다.●거장 타르콥스키 ‘희생’ 고화질 재개봉 세계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러시아 거장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희생’이 오는 21일 고화질(4K 리마스터링)로 재개봉하는 것도 시네필들이 귀담아들을 소식이다. 종교와 예술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며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와도 종종 비견되는 타르콥스키 감독의 생전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예술세계가 응축돼 있다.●日문학상 1위 ‘52헤르츠 고래들’ 영화로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예술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던 ‘52헤르츠 고래들’은 다음달 4일 국내 개봉을 앞뒀다. 2021년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서점대상’ 1위를 차지했던 마치다 소노코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52헤르츠 고래들’이란 다른 고래들은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인 ‘52헤르츠’로 소통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도시라는 외로운 바다에서 영혼의 짝을 찾아 나서는 이들의 주파수를 아름답게 포착한다.●번아웃 직장인 위한 힐링 무비 ‘문경’ 한국 영화 중에는 신동일 감독의 ‘문경’이 오는 12일부터 관객과 만난다. 쉼 없이 달려오다 ‘번아웃’ 상태가 된 직장인 문경은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지역인 경북 문경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서 비구니 스님 가은과 강아지 길순을 만난다. 문경 산골의 초록빛 풍광과 깨끗한 계곡물이 필름에 오롯이 담겼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휴식이자 정신없던 일상을 돌아보는 성찰이 되겠다.
  • [이효근의 파란 코끼리] 오늘 우리의 선택은

    [이효근의 파란 코끼리] 오늘 우리의 선택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한다. 선택은 중요하다. ‘여지껏 내린 선택의 총합이 곧 나’라는 말도 있다. 확신에 찬 단호한 선택도 있고, 우물쭈물 엉겁결에 한 선택도 있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선택도,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선택도 있다. 때론 무심코 내린 선택이 뜻하지 않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황야의 헌책방’은 일본 도쿄의 작은 헌책방 주인인 모리오카 요시유키가 8년을 일하던 고서점에서 독립해 자기 서점을 차리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부제는 ‘모리오카 서점 분투기’.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에 잇세이도 서점에서 독립한 저는 1927년에 지은 가에바초의 한 건물에 ‘모리오카 서점’을 열었습니다. 원래 독립해 개업한다는 선택지는 없었지만, 그 건물의 모습에 끌려 결단한 일이었습니다.” 저자는 원래 독립이나 개업은커녕 취직 자체에도 회의적이었다는데, 대체 그 낡은 건물의 무엇에 마음이 흔들려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우리도 때론 모리오카처럼 홀리기라도 한 듯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직업 선택이나 결혼 상대 결정도 그 결심의 원인을 100% 명확히 대답하진 못한다. 이 ‘알 수 없는 선택’의 이유가 궁금했던 사람들은 오랜 세월 여러 설명을 찾아 왔다. 사주에 타고났다느니, 별자리에 의한 운명이라느니, 조상의 묫자리 때문이라느니. 정신의학의 답변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찾아낸 ‘무의식’이다. 표면적으론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의식하지 못할 뿐 그 선택에는 다 이유가 있고,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에 들어 있다는 것. 이것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택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해석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무의식은 일종의 숨겨진 창고다. 의식 선상에 떠오르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여러 가지 갈등을 의식의 수면 아래로 깊이 감추어 둔 곳. 함부로 꺼내거나 헤집으면 안 되기 때문에 창고 앞엔 무서운 문지기도 서 있다. 그래서 그곳에 감춰진 마음의 전모를 일상 속의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가끔 별 이유 없이 마음이 아플 때, 이해가 되지 않는 실수를 했을 때, 혹은 (모리오카의 경우처럼) 뭔가 난데없는 선택을 할 때 막연히 그 무의식의 일면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뭔가를 선택하고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것은 정신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오래 일하던 병원을 사직하고 작은 개인 의원을 열었다. 인테리어를 하고 관공서 인허가를 받는 등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들이 흘러 드디어 개업 전날이 됐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개업을 하는 거지?’ 물론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는 ‘공식적인 개업의 이유’는 있지만 왠지 그건 사실이 아닌 것 같았다. 문득 오래전 읽은 모리오카 서점의 개업 분투기가 떠올랐다. 건물의 모습에 마음이 끌려서 개업했다는 그의 무의식 속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한 나의 무의식에도 그런 것이 있었을 것이다. 혹시 뭔가를 선택한 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다.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같이 한번 생각해 볼까요? 이효근 정신과의사
  • “내 춤이 당신을 흥분시켰나요?”…막장이 주는 짜릿함, 이토록 치명적인 오페라라니

    “내 춤이 당신을 흥분시켰나요?”…막장이 주는 짜릿함, 이토록 치명적인 오페라라니

    “나 예쁘지 않아? 젊은 내 팔다리가 얼마나 탱탱하냐구?” 짜릿하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전개와 대사가 넘쳐난다. 대체로 지고지순하고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다른 오페라 작품의 여자 주인공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신 못 차리는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게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마냥 허무맹랑한 막장이냐고 하면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통찰력까지 담겨 있어 작품을 쓴 이의 만만치 않은 내공까지 느끼게 한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하는 ‘죽음의 도시’가 기존 오페라와는 다른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있다. 조르주 로덴바흐(1855~1898)의 소설 ‘죽음의 브뤼주’가 원작으로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가 23세에 작곡한 작품이다. 1920년 초연작임에도 후기 낭만주의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유려한 멜로디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를 연상시키는 3관 편성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음향이 장점인 오페라다.‘죽음의 도시’는 죽은 아내 마리를 그리워하는 파울의 이야기다. 파울은 아내의 머리카락을 비롯해 유품들을 그대로 보관하며 과거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인물이다. 전형적인 순정남인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아내와 닮은 마리에타를 보게 되고 집으로 초대한다. 유랑극단의 무용수이자 다른 어지간한 팜 파탈(femme fatale·남성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여성을 이르는 말)보다 더 치명적인 마리에타가 파울의 위선과 욕망을 드러나게 하면서 파울이 무너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남자와 여자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사랑의 위기가 찾아와도 여자는 남자를 믿고 의지하며 결국 사랑을 이뤄내는 고전 오페라의 전형적인 전개 구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마리에타부터가 욕망에 솔직하고 스스로의 매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여자가 남자에 의존하는 관계도 역전돼 파울이 마리에타의 말과 행동에 쩔쩔맨다. “내 춤이 우울한 당신을 그렇게 흥분시켰나요?”, “나한테 키스해도 돼”, “손만 흔들면 다들 달려온다니까”, “당신은 내 몸의 향기에 취했고 내 머리칼을 애무했잖아”, “내 품이 여전히 그립지 않아?” 등 마리에타의 대사는 기존 오페라 여주인공에서 볼 수 없는 자신감이 넘친다. 고전 오페라 작곡가라면 이런 말을 하는 여성을 마녀로 몰아 종교재판에 올렸겠지만 코른골트는 남자들이 마리에타의 매력에 허우적대도록 그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리에타 덕분에 ‘죽음의 도시’는 시종일관 다음 전개가 어떻게 이뤄질지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이 압도적이다.20세기로 넘어오면서 오페라 음악이 듣기에 난해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죽음의 도시’는 낭만적인 선율이 가득하다. 20세기 초 나온 실험적인 음악에 어려움을 느낀 청중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당대 작곡가들이 고전주의 음악양식을 현대음악에 접목해 아름다운 현대음악을 시도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연주자에게도, 오페라 가수에게도 난이도가 상당하지만 관객들에게는 듣기 편하고 매력적이라는 점은 ‘죽음의 도시’의 작품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빛나는 연주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막장 드라마 같은 서사의 끝에는 인생을 통찰하는 반전이 기다리면서 ‘죽음의 도시’는 지금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당대 유럽을 강타한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꿈의 해석’이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한다. 섬뜩한 제목과 달리 반전의 결말을 보고 나면 코른골트가 원래 이 작품의 제목을 ‘삶의 승리’로 정하려고 했던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전개에 성(聖)과 속(俗)의 선명한 대비는 어지간한 영화나 뮤지컬보다도 재밌는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초연작이라 난해한 연출 대신 배경을 충실히 반영한 무대로 이해하기 쉽게 꾸몄고 죽은 아내의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이야기의 핵심 감정이 관객들에게 잘 와닿을 수 있게 했다. 마음을 훔치는 아름다운 노래까지 가득 있어 오페라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국내 오페라 공연 최고의 조합인 국립심포니, 국립합창단, 국립오페라단이 모처럼 모여 역량을 뽐내 명불허전의 클래스를 자랑한다.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현장에 못 가는 관객들은 25일 오후 3시 크노마이오페라 또는 네이버tv를 통해 만날 수 있다.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시절과 형식(김형중 지음, 문학과지성사) “혹독했던 상처에 과거형은 없다. 이는 마치 프로이트가 외상적 사건의 위력을 ‘반복’으로 설명할 때와 같은 이치여서, 5·18을 겪은 우리는 이한열의 죽음을 광주와 겹쳐서 다시 경험했고,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과 촛불시위를 1987년 6월의 광장 위에 서서 다시 경험했다.” 요즘 한국 문단에서 끊임없이 호명되는 ‘현장비평가’ 김형중의 여섯 번째 비평집이다. 스스로를 “광주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 규정하는 그는 조선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첫 비평집에서 해마다 5·18에 관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약속을 20년 넘은 지금도 지키고 있다. 440쪽, 2만 6000원.대지극장에서 나는, 검은 책을 읽었다(한우진 지음, 시인동네) “먼발치에서 사랑하다가 같이 죽는 ‘내 나무’/태어남과 죽음의 동시상영관/대지극장에서 나는, 검은 책을 읽었다./불꽃에 밑줄을 치면서,//너를 사랑하다 죽은 ‘내 나무’는 대지극장에 있었다.” 2005년 계간 ‘시인세계’로 데뷔한 한우진 시인의 시집이다. 경쾌하면서도 감각적인 사유를 통해 벼린 문장들로 가득하다. 문학평론가 임지훈은 “고유의 부피와 깊이, 물성을 그 안에 숨기고 있다”고 평했다. 120쪽, 1만 2000원.기리네 집에 다리가 왔다(강인송 글, 소복이 그림, 노란상상) “단짝 친구 기리네 집에 강아지가 왔다. 난 이제 걔네 집에 놀러갈 수 없다. 왜냐고? 난 강아지가 너무…무서우니까!” 누군가는 강아지를 세상 무엇보다 아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둘은 영영 친구가 될 수 없을까. 아니다.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맞닿는 날이 올 것이다.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기리와 다리는 기다리는 거 잘해!” 48쪽, 1만 4000원.
  • 과학, 종교가 함께 창조했다

    과학, 종교가 함께 창조했다

    얽히고설킨 과학과 종교사 ‘사실’ ‘가치’ 라는 다른 대표 영역역사적 양립 가능하게 해각각의 가르침은 다르지만 ‘인간’이란 중첩된 부분도 왜곡된 과학·종교의 충돌 사례갈릴레이의 종교재판 지동설 아닌 교황 모욕 탓과학혁명 이끈 각종 실험신자들이 주도하기도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따랐다며 종교재판에 넘기는 등 박해했던 것에 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1996년에는 “다윈의 진화론은 가톨릭 교의에 모순되지 않는다”며 로마 교황청 사상 처음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진화론은 거짓, 인간은 신이 창조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종교인이 있는가 하면, ‘종교는 정신의 바이러스’라고 말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인류 문화의 중요한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과 종교가 사이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을까.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갖고 ‘과학과 종교가 얽히고설킨 2000년 동안의 역사’를 조심스럽게 살펴본다.일단 책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지스테리아’라니. 마지스테리아는 스승을 뜻하는 라틴어 ‘마지스테르’에서 나온 것으로 ‘교도권’을 의미하는 마지스테리움의 복수형이다. 교도권은 가톨릭교회에서 복음 선포와 관련된 교황과 주교들의 권위 있는 가르침이나 가르치는 권한을 뜻한다. 미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마지스테리움의 개념으로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해석하고 정리하려 했다. 과학과 종교는 각각 사실과 가치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대표하는, 겹치지 않는 마지스테리아이기 때문에 서로를 쓰러뜨리지 않고도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굴드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과연 종교와 과학이 전혀 다른 영역이어서 한 번도 겹치지 않았었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과학과 종교 모두 ‘인간’이라는 중첩된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수많은 과학과 종교의 충돌 사례는 침소봉대되고 왜곡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서 처벌받은 것은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논쟁을 좋아하는 다혈질 성격 탓에 토론 중에 교황을 모욕했기 때문이란다. 그에 앞서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간해 지동설을 주장했던 1543년이 ‘과학혁명의 시작’으로 인식된 것도 프로이트가 과학이 종교에 박해받은 첫 번째 사례로 지동설을 들며 ‘혁명’이라고 주장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주장은 자기의 정신분석학이 폄하당하는 것을 반박하기 위해 만든 논리였다는 것이다.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와 근대 초기까지도 신학과 많은 그리스도교인의 보호와 연구 덕분에 과학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이 귀납법을 체계화하면서 과학이 발달할 수 있었다는 식이다. 또 과학혁명 시기에 많은 과학실험이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기획되고 진행됐다는 점, 근대과학의 아버지 뉴턴, 전자기학의 아버지 패러데이, 맥스웰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 등을 과학과 종교의 조화 사례로 들고 있다. 종교학자로서 저자가 과학사의 수많은 사례를 흥미 있게 재해석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한때 과학을 공부했던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면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해 논리의 비약을 한 것도 많이 눈에 띈다. 어쨌든 저자의 말처럼 종교와 과학은 앞으로도 대화하든지 충돌을 하든지 간에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화를 통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과연 한국 사회의 종교인들은 과학과 대화할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는지 의문이다.
  • 우영우 실제 모델 ‘템플’ 말하지 않아도 전해오는 감동

    우영우 실제 모델 ‘템플’ 말하지 않아도 전해오는 감동

    무대 위의 여주인공은 예쁘지 않다. 분장도 예쁘지 않은데 얼굴을 막 쓰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예쁘지 않음을 뛰어넘는 숭고한 아름다움과 감동이 있다. 마음이 불안한지 쉴 새 없이 자기 손을 두드리는 손짓, 더듬거리는 말투로 겨우 내뱉는 한마디가 이 사람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저는 기적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며 이뤄내는 인간승리에는 완벽한 형태의 특별한 환희가 있다. 18일 마지막 공연을 마친 연극 ‘템플’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미국의 동물학자 메리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주년을 맞은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올해 첫 작품으로 자폐를 딛고 세계적인 동물학자가 된 그의 삶을 감동적인 서사로 담았다. 템플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나 장애를 딛고 세계적인 동물학자가 된 인물이다. 우영우가 그랬듯, 또한 세상의 수많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그러했듯 템플 역시 세상의 편견에 맞서며 겪어야 했던 고통이 만만치 않다. 여러 의사가 각자의 진단을 내놓지만 무엇 하나 시원한 답이 없다. 프로이트 정신 분석학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잘못된 관계에서 온다고 봤고 자식의 장애는 부모가 잘 보살펴주지 못한 탓으로 여겼다.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템플은 끊임없이 친구들에게 놀림당하며 혹독한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장애인을 소재로 한 여느 작품과 ‘템플’이 다른 점은 피지컬 시어터(신체극)이라는 점이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템플의 마음과 감정은 극대화된 신체 움직임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여기에 템플이 사춘기 호르몬 분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조명, 소품, 음악 등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등 연출의 힘도 돋보인다. “템플, 넌 잘못 없어. 당당해도 돼”라고 용기를 북돋는 칼락 선생 덕분에 템플은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되고 유능한 동물학자로 성장한다. 템플이 “난 정말 특별해요”라며 자신을 막아 세우던 문턱을 넘어서는 장면에서는 거대한 파도 같은 감동이 밀려오기도 한다. 작은 무대를 알차게 꽉 채운 연출, 실화여서 더 크게 오는 감동적인 서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템플의 내면을 몸짓으로 담아낸 독창적인 표현력까지. ‘템플’은 하나의 연극작품이 감동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두루 갖춰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전한다.특히 템플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명연기는 ‘템플’을 명품 연극으로 만드는 요소다. 세밀함이 요구되는 장애인 연기임에도 배우들은 조금의 틈도 없이,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훌륭하게 연기해낸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템플의 마음에 공감하게 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템플이 발명한 가축 시설은 미국 농장의 60% 이상이 채택했을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누구보다 뒤처질 수 있는 인생이었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인생을 사는 그를 보며 관객들은 자신들이 넘어야 할 세상의 문턱은 무엇일지 생각하고 큰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된다.
  • 카프카 삶의 ‘죽음충동’, 그것을 견뎌 낸 건 ‘사랑’

    카프카 삶의 ‘죽음충동’, 그것을 견뎌 낸 건 ‘사랑’

    한글로 첫 번역된 카프카 詩전집새로운 독특한 드로잉 60점 수록“명랑·경쾌한 압도적인 봄의 정취또 다른 카프카가 말하는 것 같아” 프란츠 카프카는 악몽으로 삶의 부조리를 현상한다. 잘 알려진 ‘변신’을 비롯한 소설로 이름을 떨쳤지만 감각적인 시도 여럿 남겼다. 죽음을 향한 원초적 충동과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힘으로서의 사랑. 문학은 이를 표현하는 수단일 뿐 산문이니 운문이니 구별하는 건 카프카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은 한국어로는 처음 번역된 카프카의 시 전집이다. 카프카 사후 100주년을 맞아 그의 일기와 편지 등에서 시 또는 ‘시적인 것’으로 보이는 116편의 글을 따로 떼어 우리말로 옮겼다. 막스브로트재단 아카이브에 최근 새롭게 공개된 카프카의 독특한 드로잉 60점도 시집에 수록됐다. “내 인생을 / 나는 보냈다 / 삶을 끝내고 싶은 / 욕구에 / 저항하는 것으로.” (80번) 카프카의 시는 그의 소설처럼 고독, 불안, 공포 등 인간의 실존을 위태롭게 그려 낸다. 시를 읽고 있으면 일찍이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던 ‘죽음충동’이 떠오른다. 인간에게는 생명이라는 긴장이 발생하기 이전의 무(無)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게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삶을 영위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해체하고자 하는 이런 욕구를 완벽히 배반하는 행위다. “항상 죽고 싶은 / 욕망뿐이지만 / 그래도 견뎌 내는 것, / 그것이 유일하게 사랑이다.”(67번 일부) 병약했던 카프카의 삶은 항상 불안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는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카프카는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내기 어려운 파혼을 세 번이나 했다. 펠리체 바우어라는 여성하고만 두 번의 약혼과 파혼을 한다. 이후 율리에 보리체크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지만 그녀와도 결실을 맺진 못했다. 마지막 연인은 밀레나 예젠스카다. 그는 카프카의 소설 ‘화부’를 체코어로도 옮긴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 “작은 영혼이여, / 그대는 춤을 추며 / 뛰어오르고, / 따스한 공기 속에 / 머리를 드리우고, / 바람에 거칠게 흔들리는 / 반짝이는 풀밭에서, / 두 발을 쳐드는구나.”(99번)시집을 번역한 국내 카프카 연구 권위자인 편영수 전주대 명예교수는 1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시를 추천했다. 편 교수는 “카프카의 시 대부분은 폐허의 세계를 목격하고 살아남은 자의 기록인데 이 시는 아주 명랑하고 해방된, 춤추는 듯한 움직임의 경쾌함, 압도적인 봄의 정취를 보여 준다”며 “양가적 감정도, 어두운 죽음의 전조도 없어 ‘또 다른 카프카’가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본격적인 시인은 아니었던 카프카의 시를 두고 호평과 혹평이 엇갈린다. 카프카의 산문에는 고유한 음악성이 있는데 이것이 시에서는 산문에서만큼 충분히 발휘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데도 이 시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의 불안과 동경을 동시에 그리지만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카프카적 인간’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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