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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별하지 않는다’ 속 4·3유적지 평화투어

    ‘주정공장에서 받았던 고문들에 대해서… 수건이 덮인 아버지 얼굴에 그 사람이 끝없이 물을 부었다고 했어… 산사람과 내통한 친구들의 이름을 대라고 그 사람이 속삭일 때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고 했어. 모루쿠다. 죄 어수다. 나 죄 어수다.’ 제주도는 지난 24일 오후 제주항 근처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에서 4·3희생자유족회, 도내 작가단체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3유적지에서 되살리는 문학과 기억의 대화’를 개최했다. 한강 소설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으로 그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4·3 유적지를 연계한 행사였다. 강덕환(63) 시인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피신동굴(큰넓궤), 표적학살(도령마루), 유해발굴(정뜨르비행장), P읍(표선명 추정), 백사장학살(한모살), 세천리(잃어버린 마을), 학살터(학교 운동장), 체포구금고문(주정공장), 잠복학살사건(무등이왓) 등 제주 곳곳에 남은 상흔을 전했다. 그는 현기영의 소설 ‘제주도우다’를 빌려 “4·3을 재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그 참혹함의 무게에 압도당해서 너무 진지하게 슬프면 안 된다. 큰 슬픔일수록 좀 가볍게 대해야 견딜 수 있다”고 권유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에서 시작해 중문동 일대 헛묘, 섯단마을, 시오름주둔소 등을 순회하며 소설 속 장면과 실제 역사적 현장을 대조했다.
  • 큰 슬픔일수록 가볍게…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 속 다크 투어, 평화투어가 되다

    큰 슬픔일수록 가볍게…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 속 다크 투어, 평화투어가 되다

    ‘주정공장에서 받았던 고문들에 대해서… 수건이 덮인 아버지 얼굴에 그 사람이 끝없이 물을 부었다고 했어… 산사람과 내통한 친구들의 이름을 대라고 그 사람이 속삭일 때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고 했어. 모루쿠다. 죄 어수다. 나 죄 어수다.’ 24일 오후 4시쯤. 제주항 근처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에서 4·3희생자유족회, 도내 작가단체 관계자 등 50여명이 한강 소설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작별하지 않는다’ 4·3유적지에서 되살리는 문학과 기억의 대화에서 강덕환 시인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 피신동굴(큰넓궤), 표적학살(도령마루), 유해발굴(정뜨르비행장), P읍(표선명 추정), 백사장학살(한모살), 세천리(잃어버린 마을), 학살터(학교운동장), 체포구금고문(주정공장), 흑백영상(오라리방화사건), 잠복학살사건(무등이왓) 등으로 추정되지만, 제주 곳곳에 비슷한 상흔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소설 속 치매를 겪는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마련한 콩죽, 위가 아프거나 두통의 기미가 있는 경하를 위해 콩죽을 쑤어줬다”며 “그 콩죽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깜짝 제안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현기영의 소설 ‘제주도우다’를 빌려 “4·3을 재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그 참혹함의 무게에 압도당해서 너무 진지하게 슬프면 안된다. 큰 슬픔일수록 좀 가볍게 대해야 견딜 수 있다”고 권유했다. 그는 1948년 11월 21일 토벌대에 의해 선흘리 마을이 불에 탈때 함께 ‘불카분낭(불 타 버린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 자라고 있는 그림을 보여주며 4·3의 흔적이 지워져가고 있지만 상처를 딛고 살아난 나무처럼 4·3의 아픔을 딛고 일어설 것을 주문했다. 이날 다크투어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4․3유적지를 연계해 문학적 시각에서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유적지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에서 시작해 중문동 일대 헛묘, 섯단마을, 시오름주둔소 등을 순회하며 소설 속 장면과 실제 역사적 현장을 대조했다. 소설을 통해 4·3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준 한강 작가에 대한 화답으로 ‘작별하지 않는다’에 남기고 간 흔적의 땅을 걸었다. 다크투어의 길이 아닌 평화투어의 길을 걸었다. 김창범 4·3유족회장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계기로 4·3의 역사적 진실이 대한민국 국민 뿐 아니라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역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며 “4·3이 진정 세계속 역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상범 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4·3 유적지를 문화적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문학을 통한 새로운 접근으로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저세상 아들에 편지 쓰려 한글 배웠소” 모친의 思子曲

    “저세상 아들에 편지 쓰려 한글 배웠소” 모친의 思子曲

    “나는 우리 아들이 사는 곳도 모르고 주소도 모른답니다.” 충남 청양군 정산면 역촌리 김종희(66) 할머니가 경찰관으로 일하다 4년여 전 숨진 장남에게 쓴 편지의 앞머리다. 까막눈이던 김 할머니가 한글을 겨우 깨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석 장짜리 글에는 장남을 잃은 슬픔이 오롯이 담겼다. ‘갈 수 없는 나라에 사는 내 아들’이란 제목의 이 편지는 지난 18일 열린 청양군 문해백일장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을 울렸고, 대상을 받았다. 김 할머니의 장남 표상선 경사는 2009년 6월 12일 오후 6시 18분쯤 청양군 장평면 미당삼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야간근무 출근길이었고, 나이는 45세였다. 김 할머니는 24일 “맛있는 거 사 드시라며 3만원을 주고 집을 나섰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들이자 딸이자 친구이자 신랑 같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17년간 경찰 생활을 한 표 경사는 어머니와 김장을 같이 하고, 동네 마실을 가거나 TV를 볼 때 항상 손을 잡아 줬다. 어머니가 밖에 나갔다 늦으면 밥을 해놓고 기다렸다. 표 경사는 경기 안양에서 맞벌이 하는 부인, 자녀와 떨어져 어렵게 사는 부모를 봉양하면서 살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언제나 다정다감하던 아들이 그 먼 길을 어떻게 떠났는지…. 어딜 가도 생각이 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아들이 세상을 뜨자 김 할머니는 못다 한 말을 편지로나마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그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장남이 가르쳐 줄 때 배우지 않은 게 한이 됐다”는 김 할머니는 지난 2월부터 군이 문맹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초롱불 문해교실’이 마을회관에서 열리자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매주 두 차례 2시간씩 열리는 수업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김 할머니를 가르친 표선명(54·여)씨는 “열의가 대단했고, 숙제도 꼬박꼬박 했다”면서 “지금은 초등학교 4∼5학년 이상 수준은 된다”고 전했다. 이번 편지는 김 할머니가 태어나서 처음 글로 아들을 추억한 것이다. 편지는 “경찰 정복을 입고 환하게 웃으면서 찍은 아들 사진을 보면 금방이라도 달려와 안길 것만 같다”면서 “먼 훗날 아들을 만나면 보고 싶고 그리워서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련다”고 끝을 맺는다. 김 할머니는 “글을 쓰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장남이 안장된 대전현충원을 찾아 대상 받은 편지를 읽어 주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청양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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