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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카이치 ‘아베 회귀’… 반성 지우고 야스쿠니 ‘원격 참배’

    다카이치 ‘아베 회귀’… 반성 지우고 야스쿠니 ‘원격 참배’

    이시바가 되살린 ‘반성’ 다시 삭제주변국 눈치에 직접 참배는 보류500m 밖에서 신사 향해 ‘요하이’만자민당 총재 명의로 공물 봉납도 일본 패전 81주년을 맞아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의 ‘아베 회귀’가 선명해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몰자 추도식에서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13년 만에 되살린 ‘반성’을 다시 지웠고, 500m 밖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향해 ‘원격’으로 참배했다. 16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이러한 단호한 맹세를 세대를 넘어 계승하고 관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시바 전 총리가 13년 만에 되살렸던 ‘반성’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 총리의 전몰자 추도식 식사에는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깊은 반성’과 ‘부전의 결의’를 언급한 이후 역대 총리들이 ‘반성’과 ‘부전의 맹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3년부터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시바 전 총리는 지난해 “그 전쟁에 대한 반성과 교훈을 지금 다시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한다”며 13년 만에 ‘반성’을 되살렸다. 다카이치 총리는 악화한 중일 관계와 비교적 양호한 한일 관계 등 주변국과의 외교를 고려해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직접 참배는 보류했다. 대신 스즈키 슌이치 자민당 간사장을 통해 ‘자민당 총재’ 명의로 사비로 다마구시료(玉串料·공물료)를 봉납했다. 그러나 전몰자 추도식 참석을 위해 찾은 일본무도관 주차장에서 약 500m 떨어진 야스쿠니신사 방향을 향해 신도식인 ‘2배2박수1배’를 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를 ‘요하이’(遥拝·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사 등을 향해 참배하는 것)라고 설명했다. 직접 참배에 따른 외교적 파장은 피하면서도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같은 날 고이즈미 방위상 등은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오노다 기미 경제안보담당상,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담당상, 기카와다 히토시 오키나와·북방담당상도 참배하면서 현직 각료 4명이 야스쿠니를 찾았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무조사회장 등 자민당 핵심 간부들도 잇따라 참배했다. 현직 각료의 패전일 야스쿠니 참배는 7년 연속이다. 현직 방위상의 패전일 야스쿠니 참배는 2024년 기하라 미노루 당시 방위상에 이어 두 번째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농림수산상과 환경상 재임 당시를 포함해 매년 8월 15일 야스쿠니를 찾아왔다. 그는 참배 후 엑스에 “부전의 맹세와 함께 전후 일본이 한결같이 평화국가의 길을 걸어온 책임을 앞으로도 다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했다”고 했다. 방위성은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육·해·공 자위대의 야스쿠니신사 ‘부대 참배’를 금지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이런 상황에서 자위대를 지휘·감독하는 방위성 수장이 직접 참배한 것은 사실상 자위관들의 참배를 부추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반성’ 지운 日다카이치…야스쿠니 안 가고 500m 밖서 ‘원격’ 참배

    ‘반성’ 지운 日다카이치…야스쿠니 안 가고 500m 밖서 ‘원격’ 참배

    야스쿠니 신사 500m 밖서 ‘요하이’고이즈미 방위상 등 각료 4명 참배 일본 패전 81주년을 맞아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의 ‘아베 회귀’가 선명해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몰자 추도식에서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13년 만에 되살린 ‘반성’을 다시 지웠다. 주변국을 의식해 야스쿠니신사 직접 참배는 피했지만 500m 밖에서 신사를 향해 참배했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 등 각료 4명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를 직접 찾았다. 16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이러한 단호한 맹세를 세대를 넘어 계승하고 관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이시바 전 총리가 13년 만에 되살렸던 ‘반성’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 총리의 전몰자 추도식 식사에는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깊은 반성’과 ‘부전의 결의’를 언급한 이후 역대 총리들이 ‘반성’과 ‘부전의 맹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3년부터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시바 전 총리는 지난해 “그 전쟁에 대한 반성과 교훈을 지금 다시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한다”며 13년 만에 ‘반성’을 되살렸다. 다카이치 총리는 악화한 중일 관계와 비교적 양호한 한일 관계 등 주변국과의 외교를 고려해 야스쿠니신사 직접 참배는 보류했다. 대신 스즈키 슌이치 자민당 간사장을 통해 ‘자민당 총재’ 명의로 사비로 다마구시료(玉串料·공물료)를 봉납했다. 이어 전몰자 추도식 참석을 위해 찾은 일본무도관 주차장에서 약 500m 떨어진 야스쿠니신사 방향을 향해 신도식인 ‘2배2박수1배’를 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를 ‘요하이’(遥拝·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사 등을 향해 참배하는 것)라고 설명했다. 직접 참배에 따른 외교적 파장은 피하면서도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같은 날 고이즈미 방위상은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오노다 기미 경제안보담당상,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담당상, 기카와다 히토시 오키나와·북방담당상도 참배하면서 현직 각료 4명이 야스쿠니를 찾았다. 자민당 간부들도 잇따라 참배했다. 현직 각료의 패전일 야스쿠니 참배는 7년 연속이다. 현직 방위상의 패전일 야스쿠니 참배는 2024년 기하라 미노루 당시 방위상에 이어 두 번째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농림수산상과 환경상 재임 당시를 포함해 매년 8월 15일 야스쿠니를 찾아왔다. 그는 참배 후 엑스에 “부전의 맹세와 함께 전후 일본이 한결같이 평화국가의 길을 걸어온 책임을 앞으로도 다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했다”고 했다. 방위성은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육·해·공 자위대의 야스쿠니신사 ‘부대 참배’를 금지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이런 상황에서 자위대를 지휘·감독하는 방위성 수장이 직접 참배한 것은 사실상 자위관들의 참배를 부추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정의 외칠 마지막 기회…가슴 뛴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새 옥중메모

    “정의 외칠 마지막 기회…가슴 뛴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새 옥중메모

    “전장 향하는 기분” 전쟁 정당화쇼와 일왕 전쟁 책임도 전면 부정 일본 패전 81주년을 앞두고 태평양전쟁을 이끈 A급 전범 도조 히데키가 옥중에서 쓴 메모가 새롭게 공개됐다.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도조는 법정 밖에서도 자신의 행동을 ‘정의’로 여기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보이지 않았다. 도쿄신문은 11일 도조가 옥중에서 작성한 자필 메모와 편지 등 약 300점의 자료가 친족에 의해 지난 5~6월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기증됐다고 보도했다. 새로 공개된 자료 가운데는 ‘마음 가는 대로’라는 제목의 메모 형식 일기가 포함됐다. 도쿄재판 후반부인 1948년 1월 2일부터 2월 14일까지 작성된 것으로, 도조는 일본의 패전을 ‘국가의 운명’으로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은 정당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도조는 당시 미국인 수석검사 조지프 베리 키넌의 신문을 앞두고 “일본은 전쟁에서 패했으니 그것은 국가의 운명인가”라고 썼다. 이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존과 권위의 정의에 기초한 것이었다는 점을 외칠 최후의 기회라고 생각하니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마치 전장으로 향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적었다. 재판 과정에서 연합군 측에 협조한 일본인들을 향해서는 노골적인 불만도 드러냈다. 한 인물이 국제법정에서 일본의 ‘군벌’을 인정한 것을 두고 “검사 측의 뜻에 영합했다”고 비판했고,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에 대해서도 “비위를 맞추는 태도”라고 적었다. 기증 자료에는 ‘전쟁과 천황의 책임에 대해’라는 제목의 수기도 포함됐다. 태평양전쟁 개전에 대한 쇼와 일왕의 책임을 전면 부정하는 내용으로, 도조가 면회 온 기요세 이치로 변호사에게 건넨 것으로 추정된다. 도조는 1948년 11월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 해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도조를 포함한 A급 전범 14명은 1978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 일본 보수·우익 진영에서는 이후에도 이른바 ‘승자의 재판’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도쿄재판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반복돼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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