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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완다 학살의 상처… 프랑스 파리에 새겼다

    르완다 학살의 상처… 프랑스 파리에 새겼다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르완다 대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프랑스 파리에 세워졌다. 2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 도심 센강변에서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과 함께 투치족 집단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제막했다.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가 주도해 세운 이 기념비의 명칭은 ‘아카이브’(기록관)로, 두 개의 검은색 황동 비석에는 희생자 수십만명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날 행사에서 카가메 대통령은 “프랑스가 자국의 역할을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도 “그러나 진실을 바로잡는 데 프랑스만큼 멀리 나아간 나라는 없다”고 평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1년 르완다 키갈리의 집단학살 기념관을 방문했던 일을 언급하며 “키갈리에서 나는 투치족 학살로 이어진 악순환 속에서 우리나라가 진 책임을 인정했다”고 상기했다. 이어 “우리가 역사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건 피해자와 생존자들에 대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르완다 대학살은 1994년 4월 다수 부족인 후투족 출신의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미사일에 격추돼 사망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대통령 경호부대는 소수파인 투치족 무장 조직을 배후로 지목하고, 이후 약 100일 동안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을 상대로 무차별 학살에 나섰다. 이 기간 희생된 이들은 80만~100만명에 달한다. 그간 르완다 정부는 당시 현지에 주둔했던 프랑스군이 학살 가담자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도피를 도왔다며 프랑스의 책임론을 제기해왔다. 프랑스는 자국의 학살 방조를 부인해왔으나, 마크롱 대통령 취임 후인 2019년 르완다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 바 있다.
  • ‘망명’ 카빌라 민주콩고 前대통령 사형 구형

    ‘망명’ 카빌라 민주콩고 前대통령 사형 구형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망명 중인 조제프 카빌라(54) 전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23일(현지시간) 알자지라방송은 민주콩고 군검찰이 전날 군사법원 법정에서 반역죄와 전쟁범죄 혐의 등으로 궐석재판을 받고 있는 카빌라 전 대통령을 사형에 처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카빌라 전 대통령은 올해 민주콩고 동부 최대 도시로 북키부주 주도인 고마, 남키부주 주도 부카부를 점령한 투치족 반군 M23을 지원하고 반란을 모의한 혐의를 받는다. 민주콩고 상원은 지난 5월 대통령 면책특권 해제를 의결했고, 지난 7월 검찰은 반역,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반란 가담 혐의로 카빌라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2001년 초 부친인 로랑 카빌라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카빌라는 부정선거 논란 속에 2006년과 2011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대통령직을 3번 연임했다. 재정과 치안 위기를 이유로 선거를 미루며 집권을 2년간 연장했다. 2018년 12월 대선에서 정권 교체에 성공한 펠릭스 치세케디 대통령과 관계가 악화됐고 카빌라 전 대통령은 2023년 남아공으로 망명했다. 
  • “당신 같은 사람 많았으면”…트럼프가 ‘아름답다’ 극찬한 여성 정체

    “당신 같은 사람 많았으면”…트럼프가 ‘아름답다’ 극찬한 여성 정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 출신 한 여성 기자의 외모를 극찬한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는 미국의 중재 아래 테레즈 카이쾀바 와그너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외무장관과 올리비에 은두훈기레헤 르완다 외무장관이 수십년간 이어진 유혈 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데일리비스트 등에 따르면 평화협정 서명식이 시작되자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행사 참석자들에게 민주콩고 출신 백악관 출입 기자 하리아나 베라스를 소개했다. 베라스는 평화협정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이 고국에서 본 모습을 트럼프에게 전했다. 그는 “나는 (민주콩고에서) 희망을 봤다. 사람들은 이제 더 나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하며 펠릭스 치세케디 콩고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베라스가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아름답게 말씀하셨다”고 화답했다. 이어 “이렇게 말하면 내 정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당신은 아름답다. 내면은 더 아름답다. 당신 같은 기자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베라스와 악수했다. 한편 코발트와 구리 등의 광물이 풍부한 민주콩고 동부에서는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투치족 반군 M23을 비롯한 100여개 무장단체의 준동으로 정세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M23은 지난 1월 말 동부 최대 도시인 북키부주 주도 고마를 장악한 데 이어 2월에는 동부 제2의 도시인 남키부주 주도 부카부도 점령했다. 민주콩고와 미국, 유엔 등은 르완다가 M23을 지원한다고 비난하지만 르완다는 이를 부인해왔다.
  • “딸 6명 차례로 성폭행당해, 막내 겨우 12살”…저주받은 ‘천국’ 실체

    “딸 6명 차례로 성폭행당해, 막내 겨우 12살”…저주받은 ‘천국’ 실체

    내전이 격화하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동부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멈추지 않고 있다. 교도소에서 탈출한 남성들이 여성 수감자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데 이어 아동 성폭력도 전례 없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캐서린 러셀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총재는 13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북키부와 남키부 지역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 보고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 지역 42개 보건 시설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2일까지 1주일간 보고된 강간 건수는 572건으로 전주보다 5배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170명의 피해자가 어린이라고 유니세프는 전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어머니는 “6명의 딸이 식량을 찾던 중 무장 괴한들에 붙잡혀 차례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막내딸은 겨우 12세”라고 유니세프 측에 말했다. 러셀 총재는 “투치족 반군 M23과 정부군 등이 성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된다”며 “이들은 아동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즉각 중단하고 예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투치족 반군 M23은 지난달 27~29일 대규모 공세로 동부 최대 도시인 북키부주 주도 고마를 장악했으며, 지난 17일 동부 제2의 도시인 남키부주 주도 부카부도 점령했다. 지난 3일 M23이 고마를 점령한 뒤 수백명의 수감자들이 교도소에서 탈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남성 수감자들은 약 165명에 달하는 여성 수감자를 성폭행했다. 유엔 내부 문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여성 수감자들은 남성 수감자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됐다. 세이프 마간고 유엔 인권사무소 대변인은 “탈옥하는 남성 수감자들에게 성폭행당한 여성 수감자 165명 대부분이 화재로 숨졌다. 단지 9~13명의 여성 수감자만이 화재에서 살아남았다”고 한 민주콩고 사법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금과 코발트 등 광물이 풍부해 ‘자원 천국’이라 불리는 민주콩고 동부에서는 M23, 민주군사동맹(ADF), 코데코 등 100여개 무장단체의 준동으로 심각한 정세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펠릭스 치세케디 민주콩고 대통령은 M23의 진격에 “필요한 건 이 사태의 진짜 주범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라며 르완다에 대한 국제 제재를 촉구했다. 민주콩고는 M23의 배후로 인접한 르완다를 지목하고 유엔과 서방 국가 등 국제사회도 이에 동의하지만, 르완다는 부인한다. 한편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주 민주콩고 동부 지역에서 정부군과 M23 반군이 저지른 즉결 처형과 강간, 살인 등 잔학 행위를 조사할 위원회를 출범했다.
  • 지옥 그 자체…여성 약 200명 강간당한 뒤 산 채로 불태워져 [포착]

    지옥 그 자체…여성 약 200명 강간당한 뒤 산 채로 불태워져 [포착]

    극심한 내전이 이어지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교도소 집단 탈옥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수감자 100여 명이 성폭행을 당한 뒤 끔찍하게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는 6일(현지시간) “유엔이 콩고민주공화국 탈옥 사건으로 여성 100여 명이 강간당하고 살아있는 채로 불태워진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7일,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최대 도시인 고마시에서는 ‘M23’으로 불리는 반군과 정부군이 통제권을 사이에 둔 무력 충돌을 벌였다. 당시 반군 단체가 먼저 도시를 점령했고, 이후 현지의 교도소에서 수감자 4000여 명이 집단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수감자 최소 165명이 탈출하던 남성 수감자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또 수감자들이 탈출하면서 교도소에 불을 지른 탓에, 성폭행을 당한 장소에 머물러 있던 여성 대부분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인권사무소 대변인 세이프 마간고는 “남성 수감자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 수감자 165명 중 대부분이 화재로 사망했다”면서 “화재에서 생존한 여성 수감자는 9~13명으로 이들 모두가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패트릭 무야야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대변인도 여성 수감자 165명에 대한 성폭행 사실을 확인하며 “정부는 이 야만적인 범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별개로 유엔은 콩고민주공화국 남키부에서 정부군이 여성 52명을 성폭행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조사 중이다. ‘지옥’ 따로 없는 콩고민주공화국 현재 상황인구 1억 명이 넘는 콩고민주공화국은 토지와 광물 자원을 둘러싸고 수십 년 간 내전이 이어져 왔다. 르완다가 지원하는 M23 반군은 2022년 투치족 등 소수민족의 이익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르완다와 우간다 국경을 접한 북키부 지역 일대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인구 100만 여 명의 대도시인 고마는 M23이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지역으로 진격하면서 순식간에 반군에게 점령됐다. 현재 이곳 거리에는 반군과 정부군의 충돌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널려 있고, 흉악범들이 탈옥하는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빠져있다. 유엔에 따르면 고마시 전투로 사망자 약 300명이 발생했으며, 남키부에서 양측의 무력충돌이 이어짐에 따라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女수감자들 집단 성폭행 후 불태워…165명 대부분 사망” 민주콩고 교도소 ‘야만 범죄’

    “女수감자들 집단 성폭행 후 불태워…165명 대부분 사망” 민주콩고 교도소 ‘야만 범죄’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중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의 한 교도소에서 최근 대규모 탈옥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이 과정에서 150명 이상의 여성 수감자들의 남성 수감자들로부터 성폭행당한 뒤 산 채로 불에 타 죽는 일이 벌어졌다. 6일(현지시간) CNN,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27일 민주콩고 동부 최대도시 고마에 위치한 문젠제 교도소에서 벌어졌다. 투치족 반군 M23이 고마를 점령한 뒤 수백명의 수감자들이 교도소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남성 수감자들은 165명에 달하는 여성 수감자들을 성폭행했다고 유엔 인권사무소가 사건 발생 나흘 뒤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세이프 마간고 유엔 인권사무소 대변인은 “탈옥하는 남성 수감자들에게 성폭행당한 여성 수감자 165명 대부분이 화재로 숨졌다. 단지 9~13명의 여성 수감자만이 화재에서 살아남았다”고 한 민주콩고 사법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법 당국의 보고서를 독자적으로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그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엔 평화유지군 부사령관인 비비안 반 드 페레는 “4000명에 이르는 남성 수감자들이 대규모 탈옥을 감행했다. 수감자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강간당했고, 여성 구역은 불에 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현재 교도소는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고마는 M23과 정부군의 교전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유엔은 고마에서 벌어진 교전으로 최소 290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유엔이 후원하는 라디오 오카피는 일부 남성 수감자들이 고마에서 M23과 정부군이 교전을 벌이는 혼란을 틈타 지난달 27일 집단 탈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고 전했다. 패트릭 무야야 민주콩고 통신부 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이 야만적인 범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 영웅에서 테러범으로 몰렸던 영화 ‘호텔 르완다’ 주인공 풀려난다

    영웅에서 테러범으로 몰렸던 영화 ‘호텔 르완다’ 주인공 풀려난다

    2004년 할리우드 영화 ‘호텔 르완다’(2004)의 실제 주인공으로 영웅 얘기를 들었다가 나중에 테러범으로 몰린 폴 루세사바기나(68)가 25일(현지시간) 석방된다고 로이터 통신이 르완다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전날 보도했다. 테리 조지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 모티프를 제공한 루세사바기나는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무차별 학살이 벌어진 1994년 당시 수도 키갈리에 있는 밀 콜린스 호텔의 지배인이었다. 이 호텔은 후투족의 인테라함웨 민병대를 피해 달아나던 1268명의 후투족과 투치족 난민을 수용했고, 호텔에 체류하던 난민들은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수많은 목숨을 구해 명성을 얻은 루세사바기나는 투치족 반군 지도자 출신의 폴 카가메 대통령이 인권을 유린한다고 강력히 비판해 왔다. 그는 카가메 정권에 반대하는 테러 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2021년 9월 르완다 법정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르완다 정부의 거짓말에 속아 이웃 부룬디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납치돼 르완다 법정에 섰다. 르완다민주변혁운동(MRCD)의 무장조직인 국민해방전선(FNL)이 2018년과 2019년에 저지른 테러에 가담했다는 혐의였다. 영국 BBC에 따르면 1996년 벨기에로 망명한 뒤 브뤼셀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는 10년 동안 그가 수많은 인명을 구한 미담은 알려지지 않다가 필립 구레비치 기자가 1994년 4월부터 100일 남짓만에 80만명이 희생된 르완다 학살에 대해 쓴 책의 한 장에 실려 영화로 만들어졌고 배우 돈 치들이 그의 감동적인 헌신을 연기해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나중에 미국 영주권을 얻은 그는 당시 MRCD 활동은 인정하면서도 FLN의 테러에는 동참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고, 재판 출석도 거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두 단체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며 ‘MRCD-FNL’이라고 부르는 등 사실상 한 몸이라고 주장했고, 루세사바기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그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로 불법 구금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과도 교분이 있어 르완다 정부가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지난해 8월 르완다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카가메 대통령을 예방해 루세사바기나의 불법 구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정부 소식통은 루세사바기나가 카타르 도하를 거쳐 미국으로 갈 예정이라며 그가 폴 카가메 대통령에게 사면을 요청하는 편지를 쓴 뒤 석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14일에 발송한 편지에 “사면 받고 풀려난다면 남은 인생을 미국에서 조용히 반성하며 보내겠다”고 적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르완다 정부 대변인도 루세사바기나가 대통령 명령으로 감형받았다고 확인했다. 그의 가족들은 AFP 통신에 보낸 성명을 통해 “폴의 석방 소식을 듣고 기쁘다”며 “빨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루세사바기나가 석방되면 르완다와 미국의 긴장이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로이터는 전망했다. 미국은 이웃 나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활동하는 투치족 반군 M23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해 왔으나 르완다는 이를 줄곧 부인해 두 나라 관계가 편치 않았다. 한편 FNL 대변인 ‘산카라’로 알려진 칼릭스테 은사비마나를 비롯한 일부 수감자들도 루세사바기나와 함께 석방된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르완다 대학살 주범 6년 전 사망 뒤늦게 확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르완다 대학살 주범 6년 전 사망 뒤늦게 확인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의 주범으로 2002년 유엔에 기소되자 달아나 20년 동안 행적이 묘연했던 프로타이스 음피라냐가 지난 2016년 짐바브웨에서 사망해 가명으로 안장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유엔이 전쟁범죄 처리 등에 무능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지만 끈질긴 추적 끝에 그가 6년 전 세상을 떠난 사실을 뒤늦게라도 확인한 것이다. 르완다 대학살은 후투족인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여객기 추락으로 사망하자 대통령 경호부대가 배후로 소수인 투치족을 지목하고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 등 80만명을 도륙한 사건이다. 100일 동안 벌어진 끔찍한 전쟁범죄였다. 음피라냐는 당시 르완다 대통령 경호대장으로 죽여야 할 투치족 명단을 부하들에게 전달하고 그 가족까지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총리였던 아가테 우윌링이마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음피라냐의 부하들은 총리를 경호하던 벨기에 출신 유엔 평화유지군 10명도 살해했다. 그는 또 무차별 학살로 악명 높았던 후투 민병대 ‘인테라함웨’를 직접 훈련시키기도 했다. 유엔 산하로 임시 설립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는 음피라냐를 집단학살, 반인도주의 범죄 등 8개 혐의로 기소했지만 음피라냐는 카메룬으로 달아난 뒤였고, 결국 법정에 세우지 못했다.그런데 2015년 활동을 종료한 ICTR이 미처 단죄하지 못한 전쟁범죄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잔여업무기구’(IRMCT) 수사팀이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 남단의 묘지에 음피라냐가 묻혀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 방송 등이 12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그의 시신이 묻힌 곳에는 가명 ‘은두메 삼바오’라고 새겨진 묘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묘비에 적힌 생년월일이 1956년 5월 30일로 음피라냐와 똑같았다. 묘비엔 프랑스어로 “그의 조국, 국민, 가족을 자신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여기 잠들다”라고 적혀 있었다. IRMCT 수사팀은 지난 2월 이 묘지에 도착해 2시간 반의 수색 끝에 그의 묘비를 찾아냈다. 수사팀은 짐바브웨의 협조를 얻어 지난달 유해를 발굴해 DNA 분석을 거쳐 음피라냐의 것과 일치한다는 답을 지난 10일 들었다.  세르지 브램머츠 검사가 이끄는 수사팀은 목격자 조사와 데이터베이스 분석 등 다방면의 조사를 계속해 왔는데 지난해 9월 유럽에서 압수한 컴퓨터에서 발견된 단서가 결정적이었다. 컴퓨터에는 음피라냐로 보이는 시신과 장례식, 묘비 사진 의뢰 정황이 담겨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묘비와 음피라냐 시신이 걸친 옷가지 등이 모두 사진과 일치했다. 알고 보니 50세의 음피라냐는 결핵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숨진 날짜는 2016년 10월 5일로 확인됐다. 그는 제임스 카쿨레란 이름의 우간다 여권을 이용해 처형(또는 처제)과 함께 사업체를 운영했다. 아내와 딸들은 영국에 살고 있었는데 하라레로 찾아가 그를 만나곤 했다. 유족과 지인들은 유엔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그의 죽음을 비밀에 부쳐왔다. 음피라냐는 후투 정권이 무너진 뒤 카메룬, 콩고민주공화국 등을 전전하며 가명으로 행적을 숨겨왔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2차 콩고 전쟁에서는 르완다 군대에 맞서 후투족, 짐바브웨와 같은 편에서 싸웠다. 이 과정에 짐바브웨 관리들의 신뢰를 얻고 지휘관으로서의 실력을 인정 받아 그들의 도움을 얻어 짐바브웨로 달아날 수 있었다. 수사팀은 음피라냐가 ICTR에 기소된 전범 93명 중 마지막 중요 탈주자라고 설명했다. 브램머츠 검사는 아직도 잡히지 않은 5명을 계속 찾고 있다며 끈질긴 추적 끝에 음피라냐가 사망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 전범 탈주자들을 숨겨주는 정부에 부담을 주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 바랐다.
  • [씨줄날줄] 제노사이드/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제노사이드/임병선 논설위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 단언한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단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발을 뺐다. 제노사이드는 나치 독일이 1940년대 유대인에게 행한 것처럼 특정 집단을 없애 버릴 목적으로 저질러진 대량 살육을 의미하는데, 법적으로 파고들면 상당히 복잡하다. 1943년 폴란드계 유대인 변호사 라파엘 렘킨이 그리스 단어 ‘genos’(인종이나 종족)와 라틴 단어 ‘cide’(죽이다)를 조합했다.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형제만 빼고 온 가족이 홀로코스트에 스러지는 것을 목격한 렘킨이 국제법의 범죄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1948년 12월 유엔 제노사이드협약으로 채택돼 1951년 1월 발효됐다. 20세기의 제노사이드는 홀로코스트뿐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915~20년 오스만튀르크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80만명의 투치족과 후투족이 희생된 1994년 르완다 사태를 꼽는 이도 있다. 옛유고연방 국제형사재판소(ICTY)는 1995년 보스니아에서의 무슬림 7000명 학살도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옛소련이 1932~33년 우크라이나를 기근으로 몰아넣은 일, 19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 1970년대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170만명 살육을 꼽는 이도 있다. 협약에 의거해 단죄받은 이는 아주 적다. 1998년 르완다의 후투족 마을 대표 잔 폴 아카예수를 비롯해 85명, 2001년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장군이었던 라디슬라프 크르스티치, 6년 뒤 ‘발칸의 도살자’ 라트코 믈라디치 등이 있다. 크르스티치는 자신이 학살 명령을 내린 7000명이 제노사이드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하찮은” 숫자라고 항소했다. 1970년대 크메르루주 학살을 주도한 누온 체아와 키우 삼판이 단죄받은 것이 2018년이었을 정도로 정의는 늦게 구현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가장 빨리 확실하게 단죄할 수 있는 죄목은 80년 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전범들에게 적용된 ‘침략의 범죄’라고 지적하는 국제법 전문가도 있다. 카틴 숲의 학살 등 숱한 악행을 은폐한 옛소련이 이 법리를 수립하고 이를 관철시켜 심판 노릇을 했는데, 이제 푸틴을 겨냥해 쓰일지 모른다.
  • [STOP PUTIN] 우크라 당하는데 유엔 안보리 무력하다고? 비관과 낙관 사이

    [STOP PUTIN] 우크라 당하는데 유엔 안보리 무력하다고? 비관과 낙관 사이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호소하는 연설을 들었을 것이다. 그는 “유엔을 폐쇄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고 물은 뒤 “국제법이 먹히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라고 답하려면 즉각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BBC의 퍼갈 킨 기자는 과거를 들추거나 이번 전쟁을 멈추지 못해 벌써 1100만명 이상이 집을 버리고 피란 길에 나선 것을 봤을 때 국제사회가 대동단결할 수 있을지 9일(현지시간) 긴 글로 돌아봤다. 알파벳으로 200자 원고 100장을 훌쩍 넘겼다.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인연 등에 대한 감상 등을 건너 뛰고 최대한 줄였다. 결론부터 얘기할까. 우크라이나인들의 수많은 희생은 역사에 가장 커다란 약속 파기로 비롯된 일이다. 2차 세계대전의 충격파 속에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얘기에 뿌리를 둔 얘기다. 르비우는 킨 기자 본인에게 인류의 최악을 일깨울 뿐만 아니라 침략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일깨운다고 했다. 르비우 대학 법대 졸업생 라파엘 렘킨이 대량학살 제노사이드(genocide)란 단어를 창안했기 때문이다. 나치 홀로코스트에 질색해 1944년 이 말을 썼는데 4년 뒤 유엔이 국제법의 범죄로 규정했다. 렘킨의 동창 허시 라우터파흐트는 저유명한 1945~46년 뉘른베르크 재판 때 나치 지도자들을 기소하며 처음 이 단어를 인류애에 반한 범죄에 써먹었다. 둘 다 유대인이었으며 20세기 초반 몇십년 동안 르비우에서 공부했다. 당시 그 도시는 렘베르크로 불렸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해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제국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았다. 이 도시의 유대인이 모두 사라진 것은 우크라이나가 나치에 완벽하게 협력했기 때문이었다. 둘의 생각은 1945년 유엔 헌장의 문구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지금 르비우는 또다시 커다란 역사적 트라우마에 중심이 되고 있다. 킨 기자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하기 위해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 부차에서 처형되듯 살해된 민간인 시신들을 보면서 르비우에서 온 변호사들의 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고 털어놓았다.1994년 르완다에서 있었던 일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제노사이드 2주째에 유엔 안보리는 평화유지군 병력을 2000명에서 270명으로 줄여 버렸다. 벨기에 요원 10명이 르완다 군에 살해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달리 르완다는 지정학적 중요성도 없었다. 미국과 다른 열강들은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개입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만 낳게 된다며 거절했다. 그렇게 투치족 난민들은 남부 부타레에서 극렬 무장집단과 병사들에게 도륙 당했다.그로부터 일년 뒤인 1995년 7월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 휘하 보스니아 세르비아 병사들이 스레브레니차 마을에 진주한 뒤 8000명의 남성과 소년들을 사살했는데 네덜란드 유엔 평화유지군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두 제노사이드는 안보리가 유엔 헌장의 자구 해석에 매달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1945년의 약속은 정치적 의지 부족과 분열 때문에 지켜지지 않았다. 1990년대 겪은 끔찍한 일들은 국제법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노사이드를 막지 못하면 적어도 처벌할 수 있어야 했다. 해서 두 나라 문제로 법정이 세워졌다. 아울러 캄보디아와 시에라리온에서의 대규모 살인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다루는 재판도 열렸다. 시에라리온의 민간인 살해를 막기 위해 유엔이 군사작전을 펼쳤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알바니아 민족을 코소보에서 축출하는 일을 끝내기 위해 개입했다. 세계는 이제 제노사이드와 인류애에 반하는 범죄를 항시 다루는 법정을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1998년 세워져 심각한 인권 유린 사례들을 단죄했다. 유엔 산하는 아니었지만 회원국들의 손으로 긴밀히 협력해 창설됐다. 2009년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다르푸르 민간인 학살을 지시해 ICC에 제노사이드 혐의로 기소된 첫 번째 국가 원수란 오명을 얻었다.2차 대전이 끝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소로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는 것만 아니라 미래의 전쟁 지도자들이 민간인의 권리를 짓밟기 전에 다시 생각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 날부터 바로 문제가 생겼는데 현재 우크라이나 전범에 대한 최근 논쟁에도 그림자를 뻗치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로마조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세 나라는 법정을 세우지 않아 이들 나라는 ICC 사법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안보리가 표결해 승인하면 사법권이 인정되지만 비토권을 갖고 있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고위 참모들을 침략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기소하면 ICC가 힘을 못 쓰게 된다는 것이다. ICC가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주체들을 전범으로 수사하려 했을 때 일어난 일을 잘 기억할 가치가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미군을 단죄하려는 데 반대하는 신호로 ICC 수석검사를 제재하기로 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장 자치주에서 위구르족을 제노사이드한 혐의로 중국 관리들을 수사하려던 시도 역시 중국이 ICC 회원국이 아니란 이유로 무산됐다. 전범 변호사인 필립 샌즈 교수는 초강대국의 이런 태도는 “한 쪽으로 치우친 정의”를 빚어내는데 힘이 부족한 나라가 기소되더란 것이다. “약자에게 이런 규칙, 강자에게 이런 규칙이 주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법적 질서도, 심지어 진짜 법적 질서도 아니다.” 샌즈 교수의 할아버지도 르비우 출신이며, 증조모는 나치에 살해됐다. 그 역시 푸틴과 그의 장군들을 기소하는 특별국제법정을 세울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을 기소해야 한다고 찬동하는 이들은 미국과 영국의 이중 기준을 탓하고 있다. 샌즈 교수는 2003년 미국 주도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세계 여론이 양분됐음을 지적했다.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나중에야 침공이 불법임을 인정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 그리고 당신이 거둔 것에는 당신의 이중기준도 포함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과 영국을 반박하는 수사 장치로 이라크 예를 들었다. 그는 이라크 침공을 가리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특별한 장소”를 쳐들어갔다고 했다. 현실에서 국제 외교에 힘입어 전후 평화를 누린 황금기는 없었다. 열강들은 묵시록에서와 같은 핵전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 한반도와 알제리, 콩고,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앙골라,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야 등등이다. 일부는 부분적으로나마 열강들의 대리전이었다. 갖가지 분쟁 지역에서 민간인을 보호하고 완충 역할을 하는 중에 4000명 이상의 유엔 평화유지군 병력이 목숨을 잃었다. 샌즈 교수는 “부분적으로 두렵지만 부분적으로 낙관적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1945년 나치가 패함으로써 만들어진 법적 질서를 파괴할 수 있거나 어쩌면 발전시키고 강화할 수 있다. 난 후자의 견해에 더 기울어진다. 기나긴 게임이다. 이 보 진전하면 일 보 물러난 뒤 다시 나아간다. 그저 원칙을 믿고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유엔이 최근 달라졌다는 징후는 있다. 193개 회원국이 모두 모인 총회가 침공을 규탄했고, 러시아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탈퇴시켰다. 중국이 반대했고 인도가 기권했다. 유엔 회원들의 3분의 2는 도덕적 신호에 반응했다. 제노사이드와 전범 처리에 경험 있는 유엔 관리 출신은 열강들의 정치학 렌즈로만 현재 세계질서를 바라보면 실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맨체스터 대학의 무케시 카필라 교수인데 수단의 유엔대표부에서 일하며 다르푸르 살육을 제노사이드로 인식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주도했다.“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의 싸움에는 수많은 행동이 있기 마련이다. 나쁜 녀석 편에만 모두가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미얀마를 기소한 국제사법재판소(ICJ) 예를 들었다. 1945년 유엔 법정이 세워졌을 때만 해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기소해야 가능했다. 해서 미얀마는 서부 아프리카 국가 감비아가 로힝야족 무슬림을 박해했다는 이유로 기소하는 바람에 피고가 됐다. 카필라 교수는 최근 들어선 “보편적 사법권” 개념이 발전돼 자국 영토에서 피고를 체포하면 전범 피의자를 재판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독일 검찰이 시리아 장교를 살인 및 고문, 성폭행 혐의로 기소할 수 있었다. 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와 초강대국을 대변한다는비판을 받아왔다. 아프리카, 인도를 비롯한 남반구, 남미는 지금도 외면받고 있다. 안보리를 확대하는 것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카필라 교수는 비토권으로 인한 교착 상태를 뚫는 방편으로 총회의 권능을 강화하는 것을 들었다. “안보리가 교착되면, 왜 한 멤버가 더 큰 심판 노릇을 떠맡는 메카니즘을 만들면 되지 않나. 총회 말이다. 훨씬 민주적이며 안보리가 합의에 이르도록 압력을 높일 수도 있다.” 중국과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영원한 5강(Permanent Five)이 자신의 영향력을 지우는 데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카필라는 “칠면조들은 크리스마스에 한 표를 던지지 않는다”고 빗댔다. 하지만 그는 시민사회운동이 최근 기후변화 등에서 진전을 이루는 데 힘있는 압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도 현실이 되곤 한다.” 유엔 헌장이 건넨 약속의 중심에는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쳐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무력 분쟁이 일어나면 군대를 보내 평화를 지키고 세계는 인권 유린을 처벌할 것이란 믿음이었다. 정의를 찾게 하고 미래의 범죄를 예방한다는 뜻이었다.우크라이나 위기가 고도로 갈등을 증폭시켜 진솔하게 국제관계를 돌아보게 하고 변화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총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여러 국가의 일방적인 행위가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는 점을 슬프게 돌아봤다. 동독에서 자라나 초강대국들의 적대가 드리운 그늘을 잘 아는 그는 망각의 위험을 경고했는데 특히 2차 대전을 살아 경험한 이들이 세상을 등지는 일의 의미를 걱정했다. “우리가 지금 살펴야 하는 것은 역사의 중요한 교훈이 옅어져가는 역사의 한 국면에 들어서지 않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원화된 세계질서가 2차 대전의 교훈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상기시켜야 한다.”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기억하라는 것이 메시지이며 과거로 끌려가지 않게 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킨 기자는 결론 내렸다.
  • 美 첫 여성 국무장관이 된 난민 소녀, 올브라이트 별세

    美 첫 여성 국무장관이 된 난민 소녀, 올브라이트 별세

    1937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녀, 마리 야나 코르벨로바는 일찌감치 난민 신세가 됐다. 두 살 무렵 독일 나치의 눈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도망치고 천주교로 개종까지 했지만 불행은 이어졌다. 체코의 스탈린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반공산주의 외교관 아버지 요제프 코르벨은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탈출했다. 11살의 나이에 미국의 품에 안긴 소녀는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이런 생각을 키웠다. ‘강한 미국이 유럽을 해방시켰다. 미국은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국가다.’ ● 나치와 공산당 피해 미국으로 이주당차고 똑똑한 소녀는 1997년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됐다. 훗날 이름을 개명한 매들린 올브라이트다. 유리천장을 깨고 ‘금녀의 공간’에 들어가 미국 외교정책을 휘어잡은 그는 걸크러시의 원조였다. 악명 높은 독재자들을 적이자 친구로 두었던 올브라이트가 23일(현지시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한 달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써보낼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지만 지병인 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 외교계 거두 브레진스키의 제자로 백악관 입성명문 웰즐리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부유한 신문 상속인 조셉 메딜 패터슨 올브라이트와 결혼 후 성을 바꾼 그는 워싱턴 조지타운의 사교계에 영향력 있는 리더로 주목받았다.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외교계의 거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밑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땄다. 1976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브레진스키를 따라 백악관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빌 클린턴 행정부 1기 때 유엔 주재 대사를 지냈고, 2기 때 제64대 국무장관에 올랐다. 그의 인준안은 상원에서 99대 0,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동유럽 나토 가입 추진…서방의 동진 이끌어거침없는 말투와 저돌적인 외교 스타일은 올브라이트의 전매특허였다. 1999년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무슬림 인종청소를 저지하기 위해 클린턴을 강하게 압박해 참전을 이끌어냈다. 당시 미국 합참의장인 콜린 파월에게 “쓰지도 않을 거면 당신이 항상 강조하는 이 훌륭한 군대를 뭐하러 갖고 있나”라고 쏘아붙였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체코와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승인한 것은 올브라이트의 주요한 외교적 업적으로 꼽힌다.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이 된 나토의 동진, 즉 서방 동맹의 구소련 진출의 시작점에 그가 있었던 셈이다.● 미 장관으로 처음 북한 땅 밟아 올브라이트는 북미 관계 해빙기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했다. 2000년 10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비핵화를 논의했다.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브라이트는 1994년 르완다 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연합군 개입을 추진했지만 불과 1년 전 소말리아 내전 진압에 실패해 궁지에 몰린 클린턴 정부는 강하게 반대했다. 르완다의 소수 지배층인 투치족과 다수의 후투족 사이에 일어난 부족 갈등으로 1994년부터 2년간 80만명 이상 사망했다. 올브라이트는 훗날 르완다 집단학살을 막지 못한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북한은 포용, 이라크엔 제재…오락가락 외교 비판받기도 이 밖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중재하려 애썼지만 긴장을 완화하는 데 실패했고 대북 포용 정책을 발판으로 한 북한 비핵화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에는 포용적이고 이라크에는 제재를 주장하는 등 오락가락했던 올브라이트의 외교 전략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 국무장관직을 빼앗긴 오랜 라이벌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대사가 대표적이다. 비평가들은 올브라이트가 미국이 언제, 어느 지역의 문제에 관여해야 하는지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고 포린폴리시(FP)는 전했다. 그럼에도 올브라이트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갈등이 21세기 내내 계속 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고 FP는 평가했다.● 브로치에 담긴 외교 메시지 CNN은 올브라이트가 종종 브로치에 외교적 메시지를 담는 것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미국 국무부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올브라이트는 커다란 벌레 핀을 꼽았고,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자신을 뱀이라고 부르자 보란 듯이 금색 뱀 브로치를 가슴에 달았다. 마녀라고 불렸을 때는 작은 빗자루를, “자립할 수 있는 이민자들만 미국에서 환영받을 것”이라는 이민국 켄 쿠치넬리 국장의 발언에 반발해 자유의 여신상 브로치를 달았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일제히 애도성명을 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의 손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손이었다”며 “그녀의 열정적 믿음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향한 열정적인 힘”이라고 치켜세웠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다른 이의 그것을 실현하도록 도왔다”며 애석해했다. 유족으로는 앤, 앨리스, 케이티 등 3명의 딸과, 6명의 손자가 있다.
  • 佛 낭트대성당 방화범, 자신 돌봐준 신부 살해

    지난해 7월 프랑스 낭트대성당에 방화를 저질러 재판을 받던 르완다 출신 남성이 자신을 돌봐 주던 가톨릭 사제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AFP통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 법원이 이 남성을 강제 추방하려던 결정을 번복, 프랑스에 체류하게 했던 사정이 드러나며 극우 진영의 이민법 강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르완다 출신 용의자인 에마뉘엘 아바이셍가(40)는 전날 경찰서를 찾아 자신이 생로랑쉬르세브르의 몽포르탱 수도원장인 올리비에 메어(60) 신부를 살해했다고 자수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아바이셍가는 1994년 80만명이 희생된 르완다 투치족 대학살에 가담한 후투족 출신으로 2012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는 아버지가 고향에서 죽임을 당했다며 프랑스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2019년 프랑스는 아바이셍가에게 강제추방 명령을 내렸지만, 이듬해 낭트대성당 자원봉사자이던 아바이셍가가 이 대성당에 불을 지르면서 추방 결정이 번복됐다. 15세기 고딕 양식의 낭트대성당에 불을 질러 유서 깊은 오르간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훼손한 그에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느라 추방이 미뤄진 것이다. 방화 혐의로 수감됐던 아바이셍가는 지난 5월 법원의 감독하에 풀려나 몽포르탱 수도원에 머물렀다. 적응을 못 한 아바이셍가가 수도원 생활 한 달 만에 떠나겠다고 하자 메어 신부는 경찰에 연락해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했다. 아바이셍가가 퇴원한 지난달부터 메어 신부는 그를 관저에서 보살폈었다. 극우 진영은 관대한 이민정책이 참극을 불렀다고 성토했다.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표는 “프랑스에서는 불법 이민자가 낭트대성당에 불을 질러도 추방되지 않은 상태로 재판을 받으며 성직자 살해라는 재범을 저지를 수 있다”고 몰아붙였다.
  • 佛 낭트대성당 방화하고 신부 살해한 르완다인, 교황도 알현했다

    佛 낭트대성당 방화하고 신부 살해한 르완다인, 교황도 알현했다

    지난해 7월 프랑스 북서부 낭트 대성당에 불을 지른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르완다인 방화범을 거둬 돌보던 가톨릭 신부가 그의 손에 살해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용의자가 은혜를 원수로 갚고 말았다. 방화를 저지르기 한참 전에 추방 명령이 떨어져 있었던 용의자가 어떻게 추방되지 않고 지금까지 프랑스에 머무르다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고 영국 BBC가 9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나이만 마흔 살로 알려진 용의자는 전날 경찰서를 찾아와 남서부 방데 지방의 생로랑쉬르세브르에서 올리비에 마이레(60) 신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고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내셔널 가톨릭 레지스터는 용의자 이름이 에마뉘엘 아바이셍가이며 2016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알현해 손을 맞잡은 적이 있다며 사진까지 실었다. 피살된 신부는 몽포르탱 수도원 원장으로 몇 달 전부터 오갈 데 없는 용의자를 수도원에서 지내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로선 테러 동기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낭트 대성당에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된 용의자는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다가 지난 5월 풀려났다. 15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낭트 대성당은 당시 화재로 오르간이 불타고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창문이 부서졌다. 재판을 기다리던 용의자는 지난 6월 말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7월 말 퇴원한 뒤 마이레 신부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장 카스텍스 총리,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 등은 숨진 마이레 신부가 관대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하며 안타깝다고 밝혔다. 도로시 하루쉬나나 수녀는 로이터 통신에 숨진 신부가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누구라도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1994년 8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르완다 투치족 대학살에 가담한 후투족 출신으로 2012년 프랑스로 넘어왔다. 아버지가 고향에서 죽임을 당하는 등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망명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프랑스 당국은 2019년 용의자에게 추방을 명령했으나 재판을 이유로 프랑스에 계속 머물렀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극우 정치인인 마리 르펜은 트위터에다 다르마냉 내무장관이 왜 여태껏 용의자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급히 현장을 찾은 다르마냉 장관은 정치적 망명이 거부된 용의자가 방화 혐의로 계속 수사를 받는 중이어서 추방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 영화 ‘호텔 르완다’ 실제 주인공… 망명 중 테러 혐의로 체포

    영화 ‘호텔 르완다’ 실제 주인공… 망명 중 테러 혐의로 체포

    1994년 80만명이 숨진 아프리카 르완다 대학살을 다룬 영화 ‘호텔 르완다’의 실제 주인공 폴 루세사바기나(66)가 르완다 경찰에 체포됐다. 르완다수사국은 31일(현지시간) 해외 망명 중인 루세사바기나를 모처에서 체포해 국내로 압송했다고 밝혔다. 그는 ‘테러·방화·납치·살인’ 등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다. 현지 경찰은 그가 망명 정치단체의 연합 세력인 ‘르완다 민주변혁 운동’(MRCD) 등과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MRCD는 반정부 무장단체를 거느리고 있으며, 남쪽 부룬디와의 접경지역에서 무장공격을 자행해 르완다 정부를 성가시게 해 왔다. 수사국은 이날 마스크를 쓰고 수갑을 찬 그를 본부 건물 앞에 세웠지만, 그는 언론을 향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앞서 2018년에도 그를 ‘민족해방전선’(FLN)의 반정부 폭력 활동 배후로 지목하고 계속 추적했으며, 이에 대해 루세사바기나는 ‘나는 정권의 희생양일 뿐’이라고 항변해 왔다. 루세사바기나는 2004년 개봉한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 배우 돈 체들레가 연기한 호텔 지배인의 실제 인물로 유명세를 탔다. 영화는 그가 수도 키갈리에 있는 밀콜린스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던 1994년 르완다 다수족인 후투족이 소수 투치족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호텔에서 1200명 이상의 투치족을 보호한 뒤 탈출을 도운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를 통해 활약상이 알려지며 그는 ‘르완다판 쉰들러’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영화 개봉 이듬해엔 미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 ‘자유의 메달’을 받았고, 다수의 국제 인권상을 수상했다. 최근까지도 루세사바기나는 투치족 반군과 손잡고 권력을 잡은 뒤 20년간 장기 집권해 온 폴 카가메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르완다 민주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해 왔다. 후투족 아버지와 투치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를 향해 현지 일각에서는 학살 사건을 상업적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영화 ‘호텔 르완다’ 실제 주인공… 망명 중 테러 혐의로 체포

    영화 ‘호텔 르완다’ 실제 주인공… 망명 중 테러 혐의로 체포

    1994년 80만명이 숨진 아프리카 르완다 대학살을 다룬 영화 ‘호텔 르완다’의 실제 주인공 폴 루세사바기나(66)가 르완다 경찰에 체포됐다. 르완다수사국은 31일(현지시간) 해외 망명 중인 루세사바기나를 모처에서 체포해 국내로 압송했다고 밝혔다. 그는 ‘테러·방화·납치·살인’ 등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다. 현지 경찰은 그가 망명 정치단체의 연합 세력인 ‘르완다 민주변혁 운동’(MRCD) 등과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MRCD는 반정부 무장단체를 거느리고 있으며, 남쪽 부룬디와의 접경지역에서 무장공격을 자행해 르완다 정부를 성가시게 해 왔다. 수사국은 이날 마스크를 쓰고 수갑을 찬 그를 본부 건물 앞에 세웠지만, 그는 언론을 향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앞서 2018년에도 그를 ‘민족해방전선’(FLN)의 반정부 폭력 활동 배후로 지목하고 계속 추적했으며, 이에 대해 루세사바기나는 ‘나는 정권의 희생양일 뿐’이라고 항변해 왔다. 루세사바기나는 2004년 개봉한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 배우 돈 체들레가 연기한 호텔 지배인의 실제 인물로 유명세를 탔다. 영화는 그가 수도 키갈리에 있는 밀콜린스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던 1994년 르완다 다수족인 후투족이 소수 투치족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호텔에서 1200명 이상의 투치족을 보호한 뒤 탈출을 도운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를 통해 활약상이 알려지며 그는 ‘르완다판 쉰들러’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영화 개봉 이듬해엔 미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 ‘자유의 메달’을 받았고, 다수의 국제 인권상을 수상했다. 최근까지도 루세사바기나는 투치족 반군과 손잡고 권력을 잡은 뒤 20년간 장기 집권해 온 폴 카가메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르완다 민주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해 왔다. 후투족 아버지와 투치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를 향해 현지 일각에서는 학살 사건을 상업적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호텔 르완다’의 영웅 루세사바기나, 테러 혐의로 전격 체포

    ‘호텔 르완다’의 영웅 루세사바기나, 테러 혐의로 전격 체포

    할리우드 영화 ‘호텔 르완다’(2006년 개봉)의 실제 주인공인 폴 루세사바기나(66)가 르완다 당국에 전격 체포됐다고 영국 BBC가 31일(현지시간) 전했다. 루세사바기나는 후투족 출신으로 1994년 80만명의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이 도륙당했던 르완다 대학살 때 수도 키갈리에서 자신이 운영하던 밀 콜린스 호텔로 원수처럼 지내던 투치족 1268명을 피신시킨 뒤 대학살 100일 동안 보호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학살은 그해 4월 6일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키갈리 상공에서 격추돼 사망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은 후투족 출신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에 1만명, 한 시간에 400여명, 1분에 7명 넘게 죽었다. 전쟁이나 재앙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이웃에 멀쩡히 살던 이들을 공격해 목숨을 빼앗는 참혹한 일을 저질렀다. 루세사바기나는 아내가 투치족 출신이란 이유도 있었지만 이웃의 고난을 외면할 수 없다며 투치족 사람들이 호텔로 피신해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줬다. 그리고 군부 지도자들에게 뇌물을 줘 눈감아 달라고 하는 등 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르완다의 쉰들러’로 불리며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은 것도 이런 공로와 평화를 위한 노력 덕분이었다. 그런데 르완다 당국이 국제 체포영장에 의거해 그를 키갈리에서 체포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수갑을 찬 그가 호송차에서 내려 르완다수사국(RIB) 본부에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BBC는 전했다. 다만 그를 어디에서 체포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는 2011년에도 정적인 폴 카가메 대통령 정부로부터 테러조직에 뒷돈을 댔다는 이유로 체포될 위기에 몰렸으나 벨기에 망명 중이어서 기소되지 않았다. 물론 그는 당시에도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2000년 취임한 카가메 대통령이 자신을 모략을 빠뜨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르완다 학살 생존자들의 모임인 이부카는 과거에도 대학살 기간에 난민들을 피신시킨 루세사바기나의 선행에 부풀려진 대목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루사세바기나는 야당을 결성해 콩고민주공화국에 무장조직을 키운다는 의심이 줄곧 제기됐다. 최근에도 민족해방전선(FLN)이란 반군 조직이 에드가 룽구 잠비아 대통령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재판이 진행 중인데 룽구 대통령은 루세사바기나와 막역한 사이다. 물론 룽구 대통령의 대변인은 혐의 사실을 일절 부인했다. 카가메 대통령은 학살의 후유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등 긍정적 역할도 했지만 야당 인사를 감옥으로 보내거나 망명하게 만드는 등 강압적인 통치 스타일로 악명 높다. 2007년 루세사바기나는 대학살에 가담한 투치족 반군 조직인 르완다 애국전선(RPF) 일부 성원을 유엔 전범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난 그저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난 늘 인권을 옹호해 왔다. 누구도 그들을 대변할 이들이 없는 수백만명의 르완다 사람들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RPF는 카가메 대통령이 창설해 후투족 정부군과 1990년부터 내전을 벌여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80만명 희생 르완다 대학살 ‘배후’ 카부가 25년 만에 체포

    80만명 희생 르완다 대학살 ‘배후’ 카부가 25년 만에 체포

    1994년 80만명 이상이 희생된 르완다 대학살의 배후이자 자금원이었던 펠리시앙 카부가(84)가 도피 25년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체포됐다. 그의 체포에 대해 반인륜 범죄와 관련해 수년간 계속된 국제 공조의 개가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평가했다. 프랑스 법무부는 16일(현지시간) 파리 인근 아니에르쉬르센의 한 아파트에서 경찰이 카부가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프랑스, 벨기에 등 9개국으로부터 25년간 지명수배를 받아 온 카부가는 위조된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1994년 4월 6일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르완다 당시 대통령이 탑승한 항공기가 미사일에 격추되면서 촉발된 대학살에 불과 100여일 만에 소수족인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 등 80만여명이 희생됐다. 식민지 독립 이후 아프리카에서 가장 잔혹한 범죄로 기록됐다. 카부가는 후투족 출신의 부유한 사업가이자 사망한 하비아리마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면서 투치족과 그들을 보호하는 온건 후투족에 대한 증오와 살해를 부추겼다. 또 당시 대학살 과정에서 훈련과 장비 지원 등의 자금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카부가에게 현상금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내걸기도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그의 체포와 관련해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정의를 피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살 직후 르완다와 프랑스는 긴장 관계였다. 프랑스 정부는 학살을 자행한 당시 르완다 임시 정부를 도왔고, 카부가 등 범죄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아 왔다. 정치 평론가 곤자 무가무가나는 “수년 동안 프랑스 보수집단이 카부가를 보호했겠지만 신세대는 나이 든 도망자에 대한 보호 관심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집단 대학살의 상흔…아프리카 부룬디서 유골 6000여구 발굴

    집단 대학살의 상흔…아프리카 부룬디서 유골 6000여구 발굴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두달 새 총 6000여 구의 유골이 발굴됐다. 총 6곳의 대규모 무덤에서 발굴한 유골의 주인들은 모두 오랫동안 지속됐던 내전 당시 벌어진 대학살의 피해자들이다. 로이터의 15일 보도에 따르면 부룬디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월부터 내전 당시 학살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을 발굴하고 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유골 발굴 작업을 실시해 왔다. 부룬디 중부 카루시에서 진행된 유골 발굴 작업은 총 6곳의 대규모 무덤을 파헤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진실화해위원회 측에 따르면 1월부터 시작된 발굴작업으로 발굴해 낸 유골의 수는 6000여 구가 넘으며, 유골의 상당수에서는 총에 맞은 흔적이 발견됐다. 위원회 측은 현재 옷이나 안경, 묵주 등 소지품을 통해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공화국인 부룬디는 오랫동안 부족 간 항쟁이 격화되는 등 불안상태가 이어져 왔다. 대체로 후투(Hutu)족과 투치(Thtsi)족 사이의 갈등이 심각했는데, 이번 유골의 주인들이 희생된 대학살 역시 후투-투치족의 대립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962년 부룬디가 벨기에 식민지배에서 독립하자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권력다툼이 시작됐고, 이후 정권이 바뀌는 등 정변이 발생할 때마다 수천-수만 명 규모의 대규모 집단 학살사태가 벌어졌다. 이번에 발굴되고 있는 유골들은 대체로 1970년대 초반에 발생한 학살사태의 희생자들이며, 부룬디 정부는 당시 내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2005년까지 총 3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부룬디는 1991년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아프리카 국가로, 규모는 한국의 경상도와 비슷하다. 부룬디의 아이들은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으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알바그다디 사후 ‘공공의 적 no.1’은

    알바그다디 사후 ‘공공의 적 no.1’은

    가디언 국제 긴급수배 10명 선정보코하람 리더 아부바카 셰카우IS 후게자, 뭄바이 테러 다우드도 국제 긴급 수배자 명단 맨 위에 있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사망했다. 한 때 영국 땅만한 크기의 ‘테러 제국’을 거느리고 약 40개 국가에서 인신매매, 고문, 끔찍한 학살을 저지르고 이런 장면을 전 세계에 방송했던 그를 ‘공공의 적 1번’으로 선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디언은 2일(현지시간) 알바그다디는 죽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국제 긴급수배 대상 1호 자리를 대체할 흉악범들이 부족하지 않을 뿐더러 저마다 악랄하고 흉포해 순위를 매기기가 쉽지 않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곳곳에서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긴급수배자 명단을 예로 들며, 가디언이 선정한 10명의 명단을 선보였다. 앞서 포브스는 2011년까지 당국과 협력해 세계의 악인 명단을 발표했는데 오사마 빈라덴이 제거된 이후에 나온 마지막 명단의 최상위엔 2016년 체포된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엘 차포(땅딸보)’ 구즈만이 있었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약 70년 동안 10명의 최고 긴급수배자 명단을 관리하고 있다. 세계 인구 2위인 인도의 대테러 기구의 수배자 명단엔 258개 이상의 이름이 등재돼 있다. 중국의 최고 지명수배자 명단은 100명짜리다. 유럽연합(EU) 사법 협력기관인 유로폴은 여성 범죄자 명단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 아래는 가디언의 긴급 수배자 명단이다.1. 아부바카 셰카우 아프리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지도자. 2009년부터 나이지리아에서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학살 사건을 지휘했다. 2014년 나이지리아 보르노주 치복 마을의 기독교계 중학교를 습격, 여학생 276명 납치해 인신매매를 했다. 2.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 IS가 알바그다디의 후계자로 가장 최근 지목한 자.3. 아이만 알자와히리 빈라덴과 함께 알카에다를 창시한 인물. 빈라덴 사후 알카에다 지휘봉을 잡았다.4. 이브라힘 다우드 인도 최악의 지명수배자로 파키스탄 갱단 두목. 마약, 강탈, 승부조작 등으로 수백만 달러 규모 범죄 제국을 건설한 뒤 1993년 250명 이상이 숨진 뭄바이 연쇄 폭탄테러 주모자로 지목됐다. 5. 오비디오 구스만 멕시코 마약왕 구즈만의 아들로 ‘리틀 차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아버지의 시날로아 카르텔을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가업’에 충실히 종사해 쿨리아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마약 밀매상이 됐다. 최근 멕시코 경찰이 그를 붙잡으려다 카르텔의 엄청난 공격을 받고 풀어준 뒤로 명단에 오르게 됐다. 6. 츠치롭 아시아 최악의 지명수배자. 중국계 캐나다인으로 삼합회 계열 국제 마약조직을 이끌며 일본에서 헤로인 등 엄청난 양의 마약을 뉴질랜드로 밀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태국 킥복서들을 경호원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7. 바실리스 팔레오코스타스 유럽에서 가장 높은 현상금이 걸린 절도, 납치범이다. 그는 체포된 적 있지만 2006년, 2009년에 각각 헬리콥터를 이용해 탈옥했다. ‘붙잡을 수 없는 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스 당국은 그의 앞에 100만 유로(약 13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다.8.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 ‘옛 마피아의 마지막 모히칸’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탈리아 시실리 마피아 두목. 1993년부터 숨어 지낸 세계 가장 악명 높은 수배자 중 하나. 그는 스스로 “내가 공동묘지 하나를 다 채웠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그가 일부 정치인, 사업가, 은행원 덕분에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밝혔다. 9. ‘구시퍼 2.0’ 2016년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서버에 침투해 문서와 전자우편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해커 개인 혹은 해커 조직. 미 법무부는 지난해 해킹 혐의로 러시아 국민 12명을 기소했는데 모두 러시아 군사정보국 소속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들 중 누구도 미국 사법 당국에 넘겨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10. 펠리시엥 카부가 1994년 80만명 이상을 학살한 르완다 인종청소 배후로 지목된 인물. 그는 자신의 라디오 방송국을 이용해 소수 민족 투치족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고 학살에 사용된 마체테(날이 넓고 무거운 칼)와 괭이 등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은밀하게 위험하게… 암살, 세계사를 뒤집다

    [글로벌 인사이트] 은밀하게 위험하게… 암살, 세계사를 뒤집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을 계기로 ‘암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정인을 살해한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는 테러의 범주에 들지만, 은밀하게 이뤄지기에 따로 암살로 분류한다. 암살은 종종 나라 간, 종족 간 전쟁이나 대학살을 불러오면서 격동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된 사라예보 사건은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또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암살은 대통령 암살이라는 흑역사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반면 40가지 이상의 암살 계획에서 살아남은 아돌프 히틀러, 638번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피델 카스트로도 있다. 르완다 대학살의 불씨가 된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 암살과 의문투성이인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탈레반의 수장인 오사마 빈라덴의 암살 등도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의 흐름을 바꾼 ‘암살’ 사건을 알아봤다.●링컨 저격 배후, 아직도 설왕설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국민을 위한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의 정부’라는 짧은 말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던 대통령이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평등과 화합을 위해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알리며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며칠 뒤인 1865년 4월 14일 오후 10시 12분 포드극장 특별석에서 존 윌크스 부스가 뒤에서 쏜 총을 맞고 9시간 후 생을 마감했다. 미국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암살로 숨진 첫 미국 대통령이라는 아이러니한 역사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암살자는 존 윌크스 부스란 배우였지만 배후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왕설래하고 있다. ●100일간 80만명 목숨 앗아간 세계사의 오점 1994년 4월 한 사람의 암살로 촉발된 르완다 대학살은 100여일 동안 8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우리 세계사의 오점 중 하나로 기록됐다. 르완다의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미사일에 격추된 것이 원인이었다. 후투족 출신인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은 당시 탄자니아에서 반군과 평화협상을 마친 뒤 귀국하다 변을 당했다. 르완다의 다수족인 후투족은 이를 빌미로 소수 투치족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그야말로 보이는 대로 죽인 것이다. 100일여 동안 공식적으로 80여만명, 비공식적으로 117만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에 1만명, 1시간당 400명, 1분당 7명이 살해당한 것이다.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라예보의 총성, 4년간 전쟁 소용돌이 암살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이다. 1914년 6월 28일 오전 10시 50분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당시 19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후계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태운 차 앞으로 튀어나와 차 안을 향해 총을 쐈다. 페르디난트 대공은 목에, 부인 조피는 복부에 총에 맞고 두 사람 다 즉사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암살의 책임을 세르비아 정부에 돌리며 최후통첩했고, 7월 28일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4년여 동안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40번의 암살 계획에서도 살아남은 히틀러 나치 독일의 독재자이며 공포정치의 대가였던 아돌프 히틀러는 40번의 암살 계획에서 모두 살아남았다. 2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달으며 독일에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독일군의 일부 핵심 관계자가 히틀러를 없애고 미국과 손을 잡을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시도된 크고 작은 암살이 알려진 것만 40번이나 된다. 히틀러는 운이 좋게 모든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는다. 특히 영화 ‘작전명 발키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944년 7월 20일의 폭탄 암살 시도가 대표적이다. 베를린 출신의 참모장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가지고 갔던 서류가방 폭탄이 라슈텐베르크 지하벙커에서 터지면서 개혁파의 성공을 예고했다. 그러나 당시 히틀러는 평소와 달리 지하벙커가 아닌 지상 참모본부 오두막에서 회의를 하는 바람에 목숨을 건지고 암살에 참여한 수백 명의 독일 장교와 가족들을 처형했다. 이 사건이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대표격이다. 만약 히틀러 암살이 성공했다면 지금의 세계사가 어떻게 변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 ●암살 올림픽의 금메달, 피델 카스트로 미국의 눈엣가시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한 다큐멘터리에서 “638번의 암살을 피한 나는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는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을 땄을 것”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59년 쿠바의 친미정권을 몰아내고 공산화를 이룬 카스트로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등 각종 정보기관으로부터 다양한 암살 공격을 받았다. 독약이 묻거나 폭탄이 장착된 시가를 이용한 암살 계획부터 김정남 암살처럼 독약이 묻은 천이나 독펜, 스프레이 등 모든 암살 도구가 동원되기도 했다. 수백 번의 암살 고비를 넘겼던 카스트로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2016년 11월 25일 90세의 나이로 숨졌다. 2015년 미국과 쿠바는 50년 만에 수교를 재개했다. 카스트로 암살이 성공했다면 쿠바 역사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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