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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한테 왜 그랬어’… ‘가족’을 돌아보게 하는 한뼘 성장기

    ‘나한테 왜 그랬어’… ‘가족’을 돌아보게 하는 한뼘 성장기

    “좌절과 절망을 쉽게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에게 세상은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지만, 나보다 더 많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 역시 아직도 인격을 완성해 가야 할 미성숙한 개체이지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25년 전 남편따라 제주 서귀포에 터를 잡고 창작활동을 해온 장수명 작가가 최근 ‘나한테 왜 그랬어(도서출판 답게)’라는 청소년 성장소설을 펴냈다. ‘나한테 왜 그랬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버림받고 운명의 뒤바뀐 주인공 지아의 성장 이야기다. 게다가 한 고개를 간신히 넘기고 나면 또 다른 비탈지고 가파른 오르막과 맞닥뜨리게 되는 주인공 지아의 아픈 성장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온몸으로 이입해 함께 겪느라 몸무게가 39kg까지 빠졌다”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살아내야 하는 찬란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매순간, 찰나마다 누구나 자신을 지켜주는 귀인(貴人)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소설은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딩크족이 늘어나는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는 “가족이 있어도 ‘외롭고 고독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곧잘 듣는다”면서 “다시 한번 가족의 품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 작가는 제주살이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그림 그리는 남편을 믿고 내려왔다가 인간관계에서 혹독한 시련을 만나고 한마디로 인생 탈탈 털렸다. 생전 처음으로 쌀이 떨어져 밥을 굶은 적도 있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난민 아닌 난민이 되어 1년에 이사를 두 번이나 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고, 보일러를 틀지 못해 종아리 아래쪽은 차가운데 노출되어 동상에 걸린 증세를 달고 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당선상금이 있다는 문학상 공모를 보고 덜컥 냈고, 동화작가로 등단까지 하게 됐다. 그는 “무엇보다 이처럼 낯선 땅 제주에서 25년을 거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제주 땅이 품어 준 덕분이고 제주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신이 보호해준 덕분이라 굳게 믿는다”면서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간단한 차례 음식을 챙겨서 ‘하원동 탐라왕자묘’로 성묘 간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제주도 탄생설화와 제주의 신화에 관심이 많다. 후속작도 제주의 신화를 그려낼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하원 탐라왕자묘 내년 정밀조사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하원 탐라왕자묘 내년 정밀조사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에 위치한 ‘탐라왕자묘’(耽羅王子墓)에 대한 정밀조사가 내년부터 이뤄진다. 26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하원동 ‘탐라왕자묘’의 정밀조사(발굴조사)가 빠르면 1월말부터 진행된다. 예산은 2000만원으로, 올해 제2회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됐다. 현재 서귀포시 하원동 해발 224m 능선에 위치한 ‘탐라왕자묘역’에는 3기의 분묘가 자리하고 있다. 2m 높이의 축대가 만들어져 있어 밖에서 보면 위세를 갖춘 묘역을 연상케 한다. 제주에서 발견된 무덤 중 가장 오래된 분묘이며, 제주목사 이원조의 ‘탐라지초본’과 ‘대정군읍지’ 및 김약익의 ‘심재집’과 같은 문헌기록과 구전 등을 통해 탐라국의 왕자 묘로 추정된다. 잘 다듬어진 석재 등을 활용해 축조된 사각형 형태의 돌덧널무덤으로 최초로 발굴된 것은 일제시대인 1914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발굴에서도 이미 무덤이 도굴돼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무덤에 대해선 1998년부터 1999년에 걸쳐 두 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 당시 각종 석물과 축대 등을 통해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무덤이 만들어진 고위층의 무덤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수차례에 걸친 도굴 등으로 이 무덤이 정확히 누구의 무덤인지는 특정하기 힘들었다. 이 때문에 무덤은 ‘탐라왕자묘’로 불리지만 실제 왕자의 묘인지, 아니면 단순한 고위층의 무덤인지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다만 제주 무덤 변천과정 연구 등과 관련해 높은 학술적 및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인정되면서 2000년 6월21일 제주도 지정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앞서 지난 10월 이 곳에 대한 지표투과레이더(Ground-penetrating radar) 방식의 지표조사에 나섰다. 지표투과레이더 방식은 일반적으로 1~1000㎒ 주파수 범위의 전파를 사용해 땅 속에 묻혀 있는 물체 및 구조물을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 세계유산본부는 문화재로 지정된 6662㎡ 탐라왕자묘 일대 7곳에서 이상 신호를 파악했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묘·돌무더기 추정 1개소, 장방형 석재 추정 2개소, 석물 추정 4개소 등이다. 김희찬 세계유산본부장은 “예전에는 무덤 안에만 조사가 이뤄졌으나 이번에는 묘역 일대를 GPR로 조사가 이뤄졌다”면서 “내년 정밀조사로 비석 같은 것이 나오면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남평문씨 일가의 조상묘라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로선 고증이 안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문씨가 본래 복성현 사람이었는데, 탐라에 들어와 고(高)씨의 사위가 되었다고 나오는데 그 자손들이 고씨의 왕자직을 세습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문씨가 바로 남평문씨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내년 정밀조사를 통해 저장물의 실체가 파악된다면 문화사적으로 재조명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이날 오전 도정현안 공유 티타임에서 “서귀포시 하원 탐라왕자묘는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아 면밀한 고증이 필요하다”며 “탐라사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인 만큼 차질 없이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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