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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베스 대통령 묘소 폭격으로 쑥대밭? 가짜뉴스였다

    차베스 대통령 묘소 폭격으로 쑥대밭? 가짜뉴스였다

    미국이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공격한 뒤 소셜미디어(SNS)에 가짜 뉴스가 나돌고 있다. 현지 언론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가짜 뉴스를 유포해 혼란을 부추기는 사람에 대한 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8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SNS에는 폭격을 맞고 불에 타는 고(故)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묘소 사진이 올랐다. 사진에는 “폭군 차베스의 인형(방부 처리된 시신을 지칭)이 모셔져 있다는 묘소가 폭격을 맞고 이 꼴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감사합니다”라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게시물은 1000회 이상 공유되는 등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부 외신은 이를 근거로 베네수엘라 좌파의 성지로 불리는 차베스의 묘소가 미군의 폭격을 받고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2013년 3월 차베스 당시 대통령이 암으로 사망하자 베네수엘라는 시신을 방부 처리해 유리관에 보존하기로 했다. 이를 결정하고 지휘한 인물이 마두로 대통령이다. 그러나 사진은 가짜였다. 베네수엘라의 기자 세이르 콘트레라스는 지난 4일 오후 자신이 직접 촬영했다는 사진과 영상을 SNS에 게시하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묘소는 폭격을 받지 않았고 무너지거나 불타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인공지능(AI)로 제작한 가짜였다. 현지 언론은 “묘소 건물의 비율과 건축물 장식에 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며 “미국이 폭격한 시간은 어두운 3일 새벽이었는데 SNS에 퍼진 사진의 하늘을 보면 배경이 환한 낮이고 아직 불에 타고 있는 점도 조작의 증거”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마두로 대통령을 압송한 후 SNS에는 AI로 제작한 영상과 사진이 넘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수갑을 채우는 등 대부분은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부는 이번에 가짜로 확인된 사진은 달랐다. 현지 경찰이 조사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작된 사진으로 민심을 불안하게 하는 건 처벌이 가능한 범죄”라면서 금명간 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의 압송으로 최고권력 부재 상황이 발생한 베네수엘라에선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여)이 5일 임시대통령에 취임했다. 베네수엘라는 이날 전국에 외환으로 인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국의 공격을 미화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체포령을 발령했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에선 미국의 베네수엘라 카리브 해역 봉쇄나 폭격,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와 압송을 지지하면 바로 체포돼 구금된다. 경찰은 “이번에 나온 가짜 사진도 미국의 공격을 지지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충분히 조사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 차베스 대통령 묘소 폭격으로 쑥대밭? 가짜뉴스였다 [여기는 남미]

    차베스 대통령 묘소 폭격으로 쑥대밭? 가짜뉴스였다 [여기는 남미]

    미국이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공격한 뒤 소셜미디어(SNS)에 가짜 뉴스가 나돌고 있다. 현지 언론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가짜 뉴스를 유포해 혼란을 부추기는 사람에 대한 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8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SNS에는 폭격을 맞고 불에 타는 고(故)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묘소 사진이 올랐다. 사진에는 “폭군 차베스의 인형(방부 처리된 시신을 지칭)이 모셔져 있다는 묘소가 폭격을 맞고 이 꼴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감사합니다”라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게시물은 1000회 이상 공유되는 등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부 외신은 이를 근거로 베네수엘라 좌파의 성지로 불리는 차베스의 묘소가 미군의 폭격을 받고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2013년 3월 차베스 당시 대통령이 암으로 사망하자 베네수엘라는 시신을 방부 처리해 유리관에 보존하기로 했다. 이를 결정하고 지휘한 인물이 마두로 대통령이다. 그러나 사진은 가짜였다. 베네수엘라의 기자 세이르 콘트레라스는 지난 4일 오후 자신이 직접 촬영했다는 사진과 영상을 SNS에 게시하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묘소는 폭격을 받지 않았고 무너지거나 불타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인공지능(AI)로 제작한 가짜였다. 현지 언론은 “묘소 건물의 비율과 건축물 장식에 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며 “미국이 폭격한 시간은 어두운 3일 새벽이었는데 SNS에 퍼진 사진의 하늘을 보면 배경이 환한 낮이고 아직 불에 타고 있는 점도 조작의 증거”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마두로 대통령을 압송한 후 SNS에는 AI로 제작한 영상과 사진이 넘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수갑을 채우는 등 대부분은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부는 이번에 가짜로 확인된 사진은 달랐다. 현지 경찰이 조사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작된 사진으로 민심을 불안하게 하는 건 처벌이 가능한 범죄”라면서 금명간 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의 압송으로 최고권력 부재 상황이 발생한 베네수엘라에선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여)이 5일 임시대통령에 취임했다. 베네수엘라는 이날 전국에 외환으로 인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국의 공격을 미화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체포령을 발령했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에선 미국의 베네수엘라 카리브 해역 봉쇄나 폭격,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와 압송을 지지하면 바로 체포돼 구금된다. 경찰은 “이번에 나온 가짜 사진도 미국의 공격을 지지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충분히 조사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 가발 쓰고 목선 탑승… 마차도 목숨 건 탈출에 美 F-18 엄호

    가발 쓰고 목선 탑승… 마차도 목숨 건 탈출에 美 F-18 엄호

    노벨상 수상 위해 은신처에서 출발10시간 동안 10차례 軍검문소 통과미국 조력 속 배 타고 카리브해 건너 지인 제공한 전용기로 노르웨이行“마두로 상관없이 고국에 돌아갈 것”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시상식이 열린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해 11일(현지시간) 새벽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오슬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의 조국은 곧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이라면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집권 여부와 관계없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전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마차도는 고국에서 노르웨이까지 목숨을 걸고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국에서 체포령이 떨어진 마차도가 오슬로까지 오는 영화 같은 탈출기를 소개했다. 탈출 과정은 노벨위원회조차 시상식이 시작 전까지 알지 못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마차도는 지난 8일 시상식 참석을 위해 가발 변장을 하고 2년 가까이 숨어 지내던 은신처를 떠났다. 10시간 동안 10차례 군사 검문소를 통과하며 체포망을 피한 그는 한 해안마을에 도착해 작은 목선을 타고 카리브해의 네덜란드 자치령 퀴라소에 닿았다. 당시 목선은 거센 풍랑으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WSJ는 전했다. 이 바다는 최근 3달 동안 미군이 마약 밀수선을 단속하며 20여 척을 폭격해 80명이 사망한 위험 지역이기도 했다. 마차도가 해상을 건너던 시점에 미국은 F-18 전투기 두 대를 베네수엘라만에 투입해 약 40분간 근접 선회 비행을 하기도 했다. 9일 오후 3시쯤 퀴라소에 도착한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파견한 인사의 영접을 받았다. 퀴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미국 마이애미의 지인이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 오슬로로 향했다. 그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이번 여정에 ‘목숨을 걸고 애써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짧은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험난했던 여정은 악천후로 일정이 지연되면서 시상식에는 딸 아나 코리나 소사가 대신 참석했다. 이날 오슬로 시내의 한 호텔 앞에서 마차도는 “여러분 모두 베네수엘라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했고, 지지자들은 그의 오슬로 입성을 환영했다. 마차도가 대중 앞에 선 건 지난 1월 카라카스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후 11개월만이다. CNN이 이날 ‘마두로 정부가 어디에서 숨어 지냈는지 알고 있었냐’고 묻자 마차도는 “그들이 제 행방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만약 알았다면, 그들은 제가 여기 오는 걸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국을 직접 언급하거나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카리브해 지역에서의 행동에 대해 논평하지는 않았다.
  • 가발쓰고 검문소 10번 통과→목선→전용기…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목숨건 탈출기

    가발쓰고 검문소 10번 통과→목선→전용기…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목숨건 탈출기

    202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의 반체제 인사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의 목숨을 건 고국 탈출기가 화제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차도는 변장을 하고 10번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으며, 미군의 포격이 잦은 바다를 지나 전용기를 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 베네수엘라에서 체포령이 내려진 마차도가 가발을 쓰고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도착한 경로를 자세히 소개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맞선 야당 지도자 마차도는 이날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은신해 온 어촌 마을을 벗어났다. 10시간이 넘는 이동 중 10번의 군사 검문소를 통과한 끝에 자정 무렵 해안가에 닿을 수 있었다. 오전 5시에 나무 목선을 타고 강풍과 파도를 뚫은 뒤 카리브해의 네덜란드 자치령 퀴라소에 도착했다. 마차도가 배를 타고 건넌 바다는 지난 석달 동안 미군이 마약 밀수선을 단속한다며 20척의 선박을 폭격한 곳이다. 마차도 일행은 출항 전 미군에 연락했고, 미 해군 F-18 전투기 두 대가 베네수엘라만으로 진입하여 해안에서 퀴라소로 이어지는 항로 부근에서 약 40분간 근접 선회 비행을 하며 엄호했다. 9일 오후 3시쯤 퀴라소에 도착한 마차도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파견된 인사의 영접을 받았다. 여기서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지인이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 노르웨이 오슬로로 향했다. 미국의 엄호 속에 무사히 비행기는 탔지만 악천후로 일정이 지연되면서 노벨평화상 시상식에는 딸 아나 코리나 소사 마차도가 대신 참석했다. 딸이 대독한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을 통해 마차도는 “나를 움직이는 것은 자유로운 베네수엘라에서 살고자 하는 열망이며, 이 목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상식이 끝난 이후 11일 새벽 오슬로의 호텔 발코니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마차도는 “여러분 모두 베네수엘라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차도는 앞으로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퇴진 운동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하고 궁극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날 예정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차도에 대해 “수상자가 전화를 걸어와 ‘당신을 대신해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고 말했다”면서 “나는 ‘그럼 나에게 상을 돌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며 수상을 축하한 바 있다. 마차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위협을 늘린 것을 지지했으며, 마두로 정권 축출을 위해 무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마차도와 야당이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및 광물 자원을 약탈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며 비난했다.
  • [열린세상]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열린세상]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제1조 제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사실도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정체(democracy)를 규정하고 있는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다. 그런데 왜 제3항을 두어 공화국(republic)이 무엇인지를 규정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나라 국호가 영문으로 ‘Republic of Korea’임을 염두에 둔다면 가져봄 직한 의문이다. 철학자 한면희가 최근 저작 ‘공화주의와 위기의 한국’에서 제기하고 있다. 그는 이 질문을 통해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를 비롯한 여러 지식인들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위기가 민주주의만 알고 공화주의를 모르는 데에서 기인하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민주화운동의 꿈에서 아직 깨지 않은 듯, 민주주의에만 몰입하고 공화주의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공화주의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98년 만민공동회가 전개될 때였다. 1898년 11월 4일, 서울 거리에 벽보가 나붙었다. 그 내용은 독립협회가 입헌군주제가 아닌 공화제를 하려 한다며 황제를 몰아내고 대통령에 박정양, 부통령에 윤치호, 내부대신 이상재, 외무대신 정교 등으로 정권을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빌미로 고종은 독립협회 간부 체포령을 내렸다. 이튿날 새벽, 갑자기 들이닥친 순검들은 부회장 이상재를 비롯해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체포했다. 수구파의 반격에 맞서 이승만을 비롯한 젊은 지도자들은 박영효를 대통령으로 옹립하는 정변을 모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공화정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3ㆍ1운동이 일어난 후 1919년 4월 23일 서울에서 한성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독립운동가들이 가두시위의 현수막에 ‘공화국 만세!’라는 구호를 적는 데로 이어졌다. 또 그에 앞서 4월 10일 상하이에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채택한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였다. 군주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선언이자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공화국을 민국(民國)으로, 황제가 없는 나라로 이해했다. 하지만 공화국의 운영 원리는 보다 복잡하고 공화주의는 좀더 깊은 정치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민주정이 고대 아테네에서 실재했던 정치 체제를 가리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화정 또는 공화국 역시 관념과 이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실재했던 고대 로마 정치 체제에서 비롯됐다. 아테네 민주정치가 타락해 중우정치, 선동정치가 되고 나라가 쇠퇴해 마침내 신흥 제국 로마에 편입되면서, 그리스의 현인으로 불리던 철학자 폴리비오스는 로마로 압송돼 와서 귀족 가문의 교사 노릇을 하게 된다. 그는 이 신흥국의 정치 체제가 군주정과 귀족정, 민주정의 세 가지 요소가 혼합돼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균형을 이루어 날로 강성한 나라가 돼 가는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혼합정,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오늘날 현대 민주공화국들에서 삼권분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그가 로마에서 본 것은 법치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자발적 애국심과 공동선의 추구 등이었다. 이런 요소들 역시 미국을 비롯한 현대 민주공화국들이 더 발전시키려 애쓰는 덕목들이다. 왜 ‘민주주의’는 ‘공화주의’라는 더 큰 틀에 담겨야만 하는가, 왜 우리 조상들은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자 하였던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공화국을 단지 왕이 없는 나라로만 이해한다면 일당독재로서 시민의 자유가 제한적인 중화인민공화국도 ‘공화국’이라 할 수 있고, 심지어 세습 왕조가 돼 버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공화국’이라고 우길 수 있다.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
  • ‘체포령’ 김구 5년 은신 뒤엔… 中 임산부·여자 뱃사공 있었다[대한외국인]

    ‘체포령’ 김구 5년 은신 뒤엔… 中 임산부·여자 뱃사공 있었다[대한외국인]

    추푸청 며느리 친정서 반년 피신갓 출산한 주자루이 산 넘어 이동신분 감추려 뱃사공과 위장 결혼선상 생활하면서 독립운동 활동백범 “여비 100원밖에 못 줘 후회”독립기념관, 독립유공자 포상 추진 일제는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거에 이어 4월 29일 윤봉길 의거의 주동자가 백범 김구 선생이라 보고 수배망을 더욱 좁혀 왔다. 노동자 생활비가 월 30원쯤이던 때 김구 선생의 현상금은 20만원에서 60만원까지 올랐다.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5년 가까이 몸을 숨기며 지낼 수 있었던 데엔 많은 중국인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곁에서 그를 살뜰히 챙겼지만 아직 독립운동 지원 공로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인들이 있다. 윤봉길 의거 직후 김구는 엄항섭, 안중근 동생 안공근, 김철과 함께 미국 출신의 조지 애시모어 피치(1883~1979·독립장) 목사 집에서 한 달간 생활했다. 이후 은신처가 발각되자 장제스(蔣介石·1887~1975·대한민국장) 총사령의 지원으로 자싱(嘉興)으로 옮겨 동북의용군 후원회장인 추푸청(補成·1873~1948·건국훈장 독립장)의 도움을 받게 됐다. 김구는 당시 추푸청이 수양아들 집의 호숫가에 정교하게 지은 정자 한 곳을 침실로 내주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밀정도 늘고 감시망이 더욱 삼엄해지면서 김구는 또다시 몸을 피해야 했다. 추푸청은 며느리 주자루이(朱佳蘂)의 처가인 하이옌(海)으로 옮길 것을 권했다. 당시 주자루이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돼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몸으로 자연스럽게 외출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구두를 신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추씨 부인은 굽 높은 신을 신고 7~8월의 불볕더위에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산 고개를 넘었다”며 “추씨 부인의 친정 여자 하인 하나가 내가 먹을 식료·육류품을 들고 우리를 수행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나는 우리 일행이 이렇게 산을 넘어가는 모습을 활동 사진기로 생생하게 담아 영구 기념품으로 제작해 만대 자손에게 전해 줄 마음이 간절했다”며 주자루이의 용감한 행보와 친절에 고마움을 표했다. 김구는 주자루이의 친정 하이옌 재청 별장에서 반년간 머물렀고, 이때가 피난 생활 중 가장 평온한 때였다고 했다. 정부는 “체포될 위기에 놓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안위를 보전해 준 호의로 항일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추푸청에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주자루이에 대한 포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구 선생은 당시 광둥인 ‘장진구’로 신분을 숨기고 지냈지만 중국어가 어눌해 몇 번 정체가 탄로 날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선 더욱 철저하게 신분을 감출 수 있도록 중국인과 위장 결혼을 제안했고, 그렇게 만난 사람이 뱃사공 주아이바오(朱愛寶)였다. 37살의 나이 차이였던 두 사람은 부부로 위장하며 선상 생활을 했고 이후엔 난징 친화이허 화이칭교(淮淸橋) 인근에서 지냈다. 이때 김구는 장제스와 독립운동 활동을 꾸준히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37년 난징을 떠나며 주아이바오를 고향 자싱으로 돌려보냈다. 김구는 “그 후 종종 후회되는 것은 송별할 때 여비 100원밖에 주지 못했던 것”이라며 “나에 대한 공로가 없지 않은데 내가 뒷날을 기약할 수 있을 줄 알고 넉넉히 돕지 못한 것이 유감천만”이라며 백범일지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백범일지를 엮은 도진순 국립창원대 교수는 ‘백범의 길’에서 “중국과 한국, 남성과 여성, 영웅과 보통 사람의 차이를 넘어서는 이들의 동거는 김구가 난징에서 독립운동의 영수로 비상하는 용의 둥지와 같았다”며 “독립운동 활동이 이어지도록 삶의 밑바닥부터 힘써 준 주아이바오의 활약 역시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발굴 태스크포스(TF)는 두 여인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주자루이에 대한 보고서를 국가보훈부에 제출했고, 주아이바오에 대해서도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 히틀러도 못 뚫었던 모스크바 함락 가까스로 면했다

    히틀러도 못 뚫었던 모스크바 함락 가까스로 면했다

    러시아 용병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4일(현지시간) 애국집단을 자처하며 모스크바 진군을 감행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며 “가담자는 처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정부는 프리고진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고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악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파괴한다”면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그들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반란에 나선 바그너 그룹은 하룻밤 새 1000㎞ 거리를 내달렸다. 속도가 느린 장갑차는 트레일러에 싣고 전진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도 뚫지 못한 모스크바가 용병부대에 함락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러는 사이 러시아군은 방어선을 지켜내지 못하며 고전했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군과 간헐적 교전을 벌이면서도 순조롭게 북진했다. 바그너 그룹이 하루 만에 모스크바로 빠르게 접근해 오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붉은 광장 등 주요 시설이 폐쇄됐으며 시민들에겐 통행 자제령이 떨어지고 위험을 막기 위해 26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다. 용병 부대의 모스크바 진입을 앞두고 푸틴 측은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고, 최종적인 실력행사에선 밀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프리고진의 결단으로 파국을 면했다. 얻을 만큼 얻은 듯한 프리고진 역시 이미 영웅 대우를 받고 있다. 병력 철수를 발표한 뒤 처음 반란 거점으로 삼았던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사령부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는 다가선 시민들과 악수한 뒤 “행운을 빈다”고 외치며 전투원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한편 박진 외교부 장관은 “러시아에 있는 국민들이 안전한지를 긴급 점검한 결과 모두 무사한 상태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러시아 정세가 동북아에 미칠 파장이 클 수 있는 만큼 외교안보 당국의 면밀한 점검을 주문하며 상황을 살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 반란 막은 푸틴 vs 박수받고 떠난 프리고진…승자는 누구?

    반란 막은 푸틴 vs 박수받고 떠난 프리고진…승자는 누구?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점령 중이던 도시를 떠난 가운데, 이번 반란이 미칠 영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CNN은 24일(이하 현지시간) 프리고진이 차를 타고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프리고진은 검은색 승합차에 탑승한 채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차량 주변으로 몰려든 시민들과 악수를 하거나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해당 영상에 등장하는 현수막과 건물 외관을 자체 보유한 사진들과 대조한 결과, 바그너 그룹이 초기에 점령한 로스토프나도누라는 사실을 특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반란이 확인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리고진이 개인적 야망으로 러시아를 배반했다”면서 프리고진에 대해 체포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 프리고진과 합의를 진행했고, 이후 프리고진은 모스크바 입성을 200㎞ 앞두고 그야말로 ‘턱밑’에서 진격을 멈춘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측은 프리고진과 반란에 가담한 용병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프리고진은 벨라루스 대통령과의 합의 내용대로 러시아를 떠난다고 전했다.  반란 막은 푸틴과 반란 멈춘 프리고진 푸틴 대통령은 동맹국인 벨라루스를 동원해 반란을 진압했고, 프리고진의 반란은 결국 ‘일일천하’로 끝이 났다.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았고 고작 하루만에 일단락됐다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위기 사태를 넘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프리고진의 일격이 푸틴에게 타격을 미쳤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장 반란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반란 자체가 푸틴 대통령의 위기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BBC에 따르면, 믹 멀로이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이번 반란 사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해 용병에 의존해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면서 “이 쿠데타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의) 끔찍한 실수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그너 그룹이 푸틴의 국가 통제를 위협한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막는 것이 아닌 자국 보존을 위해 군사력을 재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反)푸틴 인사로 낙인찍힌 뒤 수년 동안 망명생활을 해온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도 자신의 텔레그램에 “프리고진의 반란은 준비 부족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명성에 가장 큰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CNN은 “푸틴이 그동안 유지해 온 독재 체제의 궁극적 장점인 완전한 통제력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평을 내놓았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 내륙 깊숙이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이 일상화하면서 푸틴이 공들여 쌓아온 강인한 이미지에 구멍이 뚫렸다”고 지적했다.  푸틴 정권 분열에도 영향 미칠까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이번 반란은 푸틴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으로 명명한 우크라이나 침공전쟁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부 권력과 정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마크 갈레오티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되든 푸틴의 신뢰성과 정당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러시아 고위 엘리트 사이에서 푸틴 대통령 정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가 10일 러시아 내부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엘리트 지도층들 사이에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서방 무기의 화력에 대한 긴장감이 있으며 러시아 본토와 러시아 점령지인 크림반도를 잇는 운송로(랜드브리지‧육해상 복합 운송로)가 끊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진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 엘리트 지도층들은 밀집 주거 지역에 이어진 드론 공격을 목도한 뒤 더욱 큰 불안감이 휩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모스크바에서는 대규모 드론 공격이 발생해 고층 아파트들이 일부 파손되고 부상자가 발생한 바 있다.  또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주에서는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민병대 ‘러시아자유군단’(FRL)과 ‘러시아의용군단’(RVC)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기습공격도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 내부에서 ‘특별군사작전’(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 대한 러시아식 표현)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한 가운데, 이번 반란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사실상 푸틴 대통령은 그의 정치 영역에 균열이 시작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러 쿠데타, ‘중재’로 봉합됐지만…푸틴 지도력에 큰 상처

    러 쿠데타, ‘중재’로 봉합됐지만…푸틴 지도력에 큰 상처

    무장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 코앞까지 진격했던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하루 만에 철수하기로 했다. 러시아 최고 수뇌부를 비판하며 쿠데타를 주도한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벨라루스의 중재 하에 진격을 멈추고 벨라루스로 떠나기로 했고, 러시아는 그와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러시아 최전선에 투입된 병력과 모스크바 간에 벌어진 갈등이 쿠데타 형태로 터져 나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이 큰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리고진 “유혈사태 피하고자 철수”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스푸트니크 등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이날 오디오 메시지를 통해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기지로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러시아 정부)은 바그너 그룹을 해체하려고 했고, 우리는 23일 ‘정의의 행진’을 시작했다”면서 “하루 만에 모스크바에서 거의 200㎞ 내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우리 전사들의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으나 이제는 피를 흘릴 수 있는 순간이 왔다”면서 “어느 한쪽 러시아인의 피를 흘리는 데 따르는 책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계획대로 병력을 되돌려 기지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벨라루스 대통령실도 “푸틴 대통령과 합의 하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협상했다”면서 “양측은 러시아 내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프리고진이 바그너 그룹의 이동을 중단하고, 상황 완화를 위한 조처를 하라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또 바그너 그룹 소속 병사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합의가 논의되고 있다고 벨라루스 대통령실은 덧붙였다. 합의가 도출된 후 바그너 그룹이 점령 중이던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이날 오전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다만 프리고진과 벨라루스 대통령실 모두 애초 바그너 그룹이 요구한 러시아군 수뇌부에 대한 처벌에 합의했는지 여부 등 상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후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고 협상 결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고 벨라루스 국영 벨타 통신이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협상 결과에 대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정상의 통화는 이날 저녁에만 두 번째였다. 크렘린 “프리고진 입건 취소…병사들도 기소 안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은 취소될 것이며 그는 벨라루스로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바그너 그룹 병사들도 전선에서 그들이 용감히 싸운 점을 고려해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 배경에 대해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추가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면서 “유혈사태를 피하는 게 책임자 처벌보다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사태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말도 안 된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러시아군, 항공기 다수 손실 추정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 그룹은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군 시설을 장악한 뒤 모스크바를 향해 북진 중이었다. 이들은 전날 러시아 국방부가 자신들의 후방 캠프를 미사일로 공격했다면서 군 수뇌부의 처벌을 요구하며 우크라이나 내 전선에서 벗어나 러시아로 진입했다. 이에 러시아는 프리고진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고 모스크바 등지에서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했다. 푸틴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반역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럼에도 프리고진은 투항을 거부하고 모스크바로 초고속 진격을 계속했다.반란 초기 러시아군이 거의 저항하지 못하면서 바그너 그룹은 빠르게 진격을 거듭했다. 이후 러시아가 대테러 작전 체제를 선포하면서 산발적으로 교전도 벌어졌다. 러시아 서남부 보로네시에서는 유류 저장고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고, 러시아군 헬리콥터가 이동 중인 바그너 그룹을 공격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수비에 나선 러시아군은 바그너 그룹의 공세에 상당한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벨라루스 텔레그램 미디어 넥스타는 이날 러시아군이 헬리콥터 6기와 항공관제기 1기 등 항공기 7기를 잃었다고 전했다. 특히 바그너 그룹은 하루 만에 로스토프나도누에서 1000㎞에 달하는 모스크바로 빠르게 접근했다. 전쟁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빠른 속도로 진군이 이뤄지자 모스크바의 긴장은 크게 고조됐다. 이날 붉은 광장과 시내 주요 박물관이 폐쇄됐으며, 시 당국은 도로 폐쇄 가능성에 따라 주민들의 통행 자제를 촉구했다. 26일 하루는 위험 최소화를 위해 모스크바에 휴무일이 지정됐다. 모스크바 남부 외곽 지역에는 장갑차와 병력이 주둔한 검문소가 설치됐고, 모스크바로 향하는 일부 도로에서는 바그너 그룹의 진격을 막기 위해 포크레인 등 중장비가 도로를 파헤쳐 끊는 모습도 포착됐다. 푸틴 지도력 타격…“23년 집권중 가장 심각한 위협” 벨라루스의 중재로 양측이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정면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푸틴 대통령으로선 이번 일로 정치적 리더십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됐다.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진행되는 가운데 자신이 믿고 쓴 바그너 그룹으로부터 발등을 찍힌 데다, 상황 수습도 결과적으론 자신이 부하처럼 대하던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손에 맡긴 셈이라 이래저래 면을 구기게 됐다. 뉴욕타임스(NYT), CNN 방송 등은 푸틴 대통령이 23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이래 가장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지난 몇 달간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 수뇌부를 공개 비판할 때 푸틴 대통령은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이를 두고 푸틴 대통령이 충성스러운 부하를 내세워 군 수뇌부를 견제하려는 ‘큰 그림’을 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까지 진격하며 크렘린궁을 위협하자 이런 분석은 무색해지고 푸틴 대통령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직후 직접 TV 연설에 나서 프리고진의 반란은 “반역”이라며 강경 대응에 나설 뜻을 밝히면서 상황은 더 명확해졌다. CNN은 “푸틴이 그동안 유지해 온 독재 체제의 궁극적 장점인 완전한 통제력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NYT도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임명된 이후 푸틴 대통령이 이처럼 극적인 도전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외신들은 이번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진압됐다 하더라도 그 여파가 당분간 지속돼 정치적 불안정을 조장하고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에 물음표를 제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리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해 인적·물적 피해와 내부 분열만 키웠다는 비판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마크 갈레오티는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되든 푸틴의 신뢰성과 정당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이 입증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루 만에 그들은 백만 단위의 도시 여러 개를 잃었고 모두에게 러시아 도시를 장악하고 무기고를 탈취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또 러시아인들을 향해 “여러분의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더 오래 있을수록 러시아는 더 황폐해질 것이다. 푸틴이 크렘린에 더 오래 있을수록 더 많은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푸틴, 바그너 무장반란 ‘배신’ 규정…내부 결속 다지기

    푸틴, 바그너 무장반란 ‘배신’ 규정…내부 결속 다지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민간용병기업(PMC)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을 조국에 대한 배신 행위로 규정하고 가혹한 대응을 예고했다. 또한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야욕으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난하고 원치 않게 사태에 휘말린 이들은 더 이상 반역에 가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에서 “우리는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며 “어떤 내부 혼란도 국가에 치명적 위협이자, 러시아와 국민에 대한 타격”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우리의 대응은 가혹할 것이다. 반역 가담자는 처벌될 것”이라며 “군을 상대로 무기를 든 모든 이들은 반역자다. 러시아군은 반역을 모의한 이들을 무력화하도록 필요한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바그너그룹이 장악한 남부도시 로스토프나도누와 관련해선 “행정기구 작동이 실질적으로 중단됐다. 상황이 어렵다”며 “상황 안정을 위해 단호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개인적 야망이 러시아에 대한 배반으로 이어졌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과도한 야망과 사욕이 반역이자 조국과 국민에 대한 배반으로 이어졌다”며 “조국과 국민이야말로 바그너 그룹의 군인들과 지휘관들이 우리 군과 나란히 싸우고 죽어간 목표”라고 지적했다. 이어 “솔레다르와 아르툐몹스크(우크라이나명 바흐무트), 돈바스의 도시와 마을을 해방한 영웅들은 러시아 세계의 단결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바쳤다”며 “이들의 이름과 영광이 반란을 꾀하고 국가를 무정부상태와 동족상잔, 패배, 궁극적으로 항복으로 몰아가려는 이들에 의해 배신당했다”고 비난했다.아울러 이번 반란 가담자들이 원치 않게 사태에 휘말린 것을 안다며 이들을 설득했다. 푸틴 대통령은 “속임수나 위협으로 인해 범죄적 모험에 휘말리고 무장반란이라는 중대 범죄의 길로 내몰린 이들에게도 호소한다”며 “국민의 운명이 결정되는 이 전투에서는 모든 군의 단결이 필요하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속고 있는 이들에게 호소한다. 어떤 차이점도 특별군사작전 중에는 덮어둬야 한다”며 “이 범죄에 휘말린 이들은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옳은 선택을 내려 범죄 행위 가담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벌어진 10월 혁명과 이어진 러시아 내전을 언급하며 “우리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또 다른 분열이 생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국민과 조국을 지킬 것”이라고도 했다. 아울러 “우리는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승리하고 더 강해질 것”이라며 “고의로 반역의 길을 택한 자들, 무장반란을 모의한 자들, 협박과 테러 수단을 선택한 자들은 처벌이 불가피하다. 법과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앞서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군이 자신들을 공격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벗어나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로 진입해 군 시설을 장악했다.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 처벌을 요구하는 한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모스크바로 진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바그너 그룹은 로스토프나도누에 이어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00㎞ 거리에 있는 보로네즈도 접수했다. 러시아는 프리고진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는 한편 모스크바와 보로네즈 지역에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했다. 한편 벨라루스 대통령실은 이날 텔레그램에서 푸틴 대통령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통화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해 알렸다고 밝혔다.
  • 바그너, 우크라 아닌 러시아로 총 돌린 이유...푸틴 “이건 반역이다” [핫이슈]

    바그너, 우크라 아닌 러시아로 총 돌린 이유...푸틴 “이건 반역이다” [핫이슈]

    러시아의 내분이 격화하면서 최악의 자중지란에 빠졌다. 24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에 대해 "내부에서 우리를 전복시키려는 시도"로 규정하며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반역"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앞서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이날 자신의 부하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진입했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프리고진은 이날 텔레그램에 올린 음성 메시지를 통해 "바그너 용병들이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에 진입했다. 방해가 되는 누구든 파괴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끝까지 싸울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프리고진의 행동이 선을 넘은 것은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군 수뇌부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원래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과 동향이라는 인연으로 시작해, 러시아 정부 부처와 행사에 음식을 공급하는 급식업체를 운영하며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다. 이후 그는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을 이끌면서 ‘푸틴의 살인병기’, ‘푸틴의 투견’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주로 비선으로 활동해왔다.프리고진의 이같은 발언과 행동은 앞서 전날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 그룹의 후방 캠프를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밝힌 뒤 나왔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 용병들이 큰 인명 피해를 입었고 이를 지시한 러시아군 지도자를 처벌하기 위해 자신의 군대가 러시아로 건너갔다는 주장이다. 이후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쪽이 아닌 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곧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노두로 진입해 군 시설을 장악했다. 또한 로스토프나노두에 이어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00km 떨어진 보로네즈도 접수한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프리고진은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 처벌을 요구하는 한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모스크바로 진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는 한편 모스크바와 보로네즈 지역에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해 ‘무장반란’ 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곧바로 TV 연설에 나선 것은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직접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의 대응은 가혹할 것이다. 반역 가담자는 처벌될 것"이라면서 "군을 상대로 무기를 든 모든 이들은 반역자"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장반란이라는 중대 범죄의 길로 내몰린 이들에게도 호소한다"며 "지금은 전체 군의 단결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와의 개전 이후 바그너 용병을 최전선에 투입하며 러시아 권력의 실세로 부상했으며 실제로 큰 활약도 펼쳤다. 특히 지난달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도네츠크주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큰 성과를 냈지만 그 과정에서 러시아군 수뇌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대해 서구언론에서는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으로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됐지만 쇼이구 국방장관 등 러시아 군부와의 마찰로 그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곧 푸틴 대통령의 눈 밖으로 멀어지자 러시아 군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이어가다가 급기야 무력 행동에 나선 것으로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 여친 휘발유로 불질러 살해…페루 최악의 데이트 폭력사건 [여기는 남미]

    여친 휘발유로 불질러 살해…페루 최악의 데이트 폭력사건 [여기는 남미]

    페루에서 끔찍한 데이트폭력이 발생해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현지 언론은 “심각한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캐서린 고메스(여, 18)가 24일(이하 현지 시간) 숨졌다”고 보도했다. 고메스가 입원해 있던 페루 리마의 아르소비스포 로라이사 병원은 “고메스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고메스 자신도 사투를 벌였지만 전신 60%에 화상을 입어 상태가 워낙 위중했다”고 밝혔다. 고메스는 지난 18일 병원으로 실려 갔다. 리마의 한 공원에서 온몸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고메스를 그 지경으로 만든 건 그의 남자친구 세르히오 타라체 파라(19)였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리마의 한 공원에서 만나 심한 말다툼을 했다. 잔뜩 화가 난 남자친구 파라는 씩씩대며 인근의 주유소로 달려가 휘발유를 샀다. 다시 공원으로 돌아간 파라는 여자친구 고메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공격을 당한 고메스가 불길에 휘말리자 공원에선 난리가 났다. 공원에 있던 주민들은 불을 끄려 달려들었다. 공원에 설치된 CCTV에는 주민 수십 명이 벗어 든 옷으로 고메스의 몸에 붙은 불을 끄는 모습이 포착돼 있다. 하지만 만행을 저지른 남자친구는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 목격자 가브리엘라(여)는 “여자친구가 불에 타고 있는데 남자는 그냥 걸어서 사라졌다”며 “다급한 상황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 누구도 남자를 잡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은 공개된 장소에서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감행됐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고메스가 입원하자 페루의 인권단체들과 여자 주민들은 용의자인 남자친구를 신속히 검거에 법정에 세우라며 여성부 청사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열었다. 경찰의 대응에도 사회는 분노했다. 페루 경찰이 용의자 남자친구에 체포령을 발령한 건 사건 발생 5일 후였다. 시위에 참여한 주민 카를라는 “신원이 특정돼 있고 증거와 증인도 넘치는데 체포령을 미룬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렇지는 않겠지만) 마치 경찰이 도망가라고 충분한 시간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뒤늦게 체포령을 발령한 페루 경찰은 수사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포상금 5만 솔(약 173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난시 톨렌티노 여성부장관은 “여성들이 남자친구를 사귈 때 정말 신중해야 한다”며 “여자를 존중하지 않는 남자, 여자의 권리를 우습게 여기는 남자라면 절대 만나지 말라”고 말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페루에선 2020년 138건, 2021년 146건, 2022년 136건 등 해마다 페미사이드(여성을 살해함)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 [여기는 남미] 성폭행으로 임신·출산한 10살 소녀…양육권 분쟁 휘말려

    [여기는 남미] 성폭행으로 임신·출산한 10살 소녀…양육권 분쟁 휘말려

    고작 10살 여자 아이가 아기를 출산하고 엄마가 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된 아이는 아기를 낳자마자 양육권 분쟁에 휘말려 "어른들이 아이에게 또 상처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소녀는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투쿠만 마테르니닷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의료진은 "여자어린이가 병원에 왔을 땐 이미 임신 7개월이었다"면서 "생명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 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토록 했다"고 밝혔다.  출산 후 조사 결과, 성폭행범은 소녀를 딸처럼 돌봐줬던 이웃 여성의 동거남이었다. 쌍둥이로 태어난 소녀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2살 때부터 이웃 여성의 손에 자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가 출산하자 범행이 들통난 동거남은 도주했고,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수배령을 발동하고 추적에 나섰지만 아직 검거하지 못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타국으로 도주할 가능성도 국제체포령을 발동했다"면서 "곧 인터폴에도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출산을 한 소녀는 양육권 분쟁에 휘말렸다. 소녀의 친모와 소녀를 딸처럼 키워 온 이웃 여성이 각각 양육권을 주장하며 대립하면서다.  13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딸의 출산 소식을 접한 그의 친모는 "아이를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면서 양육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소녀의 친모는 딸이 2살 되던 2014년 당시 딸과 쌍둥이인 아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자 아들을 돌보기 위해 딸을 이웃 여성에게 맡겼다.  딸을 남에게 넘기면서까지 정성을 다했지만 약하게 태어난 아들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들은 잃은 친모는 딸을 데려가려 했지만 이웃 여성은 딸을 내주지 않았다. 사실상 자신이 입양한 아이라는 게 이웃 여성의 주장이었다.  당시 친모는 소송까지 냈지만 패소했다. 친모의 변호인은 "당시 법원이 경제적 형편과 주거환경 등을 이유로 아이를 친모에게 돌려보내지 않았다"면서 "법원의 오판이 결국 오늘과 같은 비극의 화근이 됐다"고 말했다.  소녀를 키운 이웃 여성은 여전히 소녀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동거남의 죄로 아이가 아기까지 낳게 됐지만) 배가 불러오는 걸 보고 병원에 데려간 건 나였다"면서 "지금까지 아이를 친딸처럼 키웠고, 친모에게 돌려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투쿠만 가정법원 관계자는 "친모가 또 다시 딸을 돌려달라고 양육권 소송을 냈다"면서 "끔찍한 일을 겪은 아이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아이의 입장에서 고려해 가장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건에 대해 네티즌들은 "어른들이 아이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 "차라리 국가가 아이를 책임져라. 친모나 이웃여자나 다 밑기 어렵겠다"는 등 안타까움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작은사진=경찰이 공개한 용의자 사진 (출처=투쿠만 경찰) 
  • 세계 최고가 3248만원짜리 ‘미얀마의 우쿨렐레’

    세계 최고가 3248만원짜리 ‘미얀마의 우쿨렐레’

    미얀마 군부를 피해 도피 중인 록 밴드 멤버의 우쿨렐레가 온라인 경매에서 2만 7500달러(약 3248만원)에 팔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쿨렐레에 등극했다고 현지 매체 이라와디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수익금은 반군부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에 전액 기부한다. 미얀마의 인기 록 밴드 빅 백의 리드싱어 차 파욱이 디자인한 우쿨렐레가 온라인 경매에 나온 건 지난 16일이다.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다 지난 4월 발부된 체포영장 집행을 피해 도망 중인 차 파욱의 악기는 처음에 1000달러(약 118만원) 가격표를 달고 경매에 등장했는데, 하루를 넘겨 다음날 밤까지 이어진 입찰 결과 시작가의 27배가 넘는 가격에 최종 낙찰됐다. 결국 1930년대 생산된 ‘엘리자 우쿨렐레’가 2007년 이베이에서 세웠던 우쿨렐레 최고가인 2만 6000달러를 넘긴 것이다. 이라와디는 차 파욱뿐 아니라 경매 관련자들이 모두 반군부 민주진영 관련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경매를 주관한 반 셀 로는 미얀마의 유명한 반체제 작가다. 우쿨렐레를 낙찰받은 인물에 대해 반 셀 로는 “신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해외에서 활동하는 미얀마인”이라고 밝혔다. 이번 우쿨렐레 경매로 지난 2월에 있었던 군부 쿠데타 이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저항의 명맥이 끊기지 않았음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 파욱은 최근 이라와디와의 인터뷰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해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무대에서 노래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상관없다. 우리 목소리를 낼 플랫폼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 NUG는 경매뿐 아니라 인터넷 복권 발행, 기금 마련 행사를 이어 가며 미얀마 시민들이 참여할 방안들을 모색해 가고 있다.
  • [여기는 중국] 中 역사상 가장 큰 공금 횡령…17년 만에 송환된 남성의 최후

    [여기는 중국] 中 역사상 가장 큰 공금 횡령…17년 만에 송환된 남성의 최후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은행 자금 횡령 혐의를 받은 쉬차오판 전 중국은행 광둥지점장에게 법원이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을 횡령한 뒤 미국으로 도주한 쉬 전 지점장 사건에 대해 광둥성 장먼시 중국인민법원은 ‘지난 2001년 중국은행 카이펑지점 관리자였던 쉬 전 지점장에 대해 공금횡령 혐의로 징역 13년과 벌금 200만 위안(약 3억 7000만 원) 등을 부과했다’고 18일 밝혔다. 쉬 전 지점장은 사건 당시 무려 4억8500만 달러(약 5737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1949년 신중국 수립 이후 최대 규모의 은행자금 절도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는 주변인들로부터 공금 횡령 의심을 받기 시작했던 지난 2001년 곧장 미국으로 도주, 총 17년 동안의 긴 도피행각을 벌인 인물이다. 이날 공개된 판결문에 따르면, 쉬 전 지점장은 그가 17세 무렵 은행 대출계원으로 은행에 취업한 뒤 30세에 지점장으로 고속 승진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무렵부터 그의 공금 횡령은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1993년 중국은행 카이펑 지점의 지점장으로 승진한 그는 곧장 자신의 직무를 남용, 가짜 대출로 은행 자금을 몰래 빼돌린 뒤 회사 차관 상환 및 이체 등의 방법으로 거액의 자금을 횡령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평소 신임했던 부하 직원 여진동과 허국준 등과 결탁해 은행 계좌에서 대량의 자금을 차용, 홍콩의 담강실업유한회사 등으로 불법 이체하는데 성공했다. 이들 3인이 쉬 전 지점장을 중심으로 약 10년 동안 홍콩과 미국 등지의 외국 계좌에 은닉한 재산은 무려 4억8500만 달러에 달했다. 그의 범죄 행각은 점차 대담해졌는데, 평소 도박을 즐겼던 쉬 전 지점장은 마카오 방문 중 단 4시간 만에 6000만 위안을 잃은 뒤에도 표정 한 번 바뀌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또, 평소 그의 운전 기사로 근무했던 직원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그는 미안하다는 이유로 66만 위안(약 1억2000만원) 상당의 축하금을 전달한 사건은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불법 행각은 지난 2001년 온라인 업무 검사 중 무려 4억 8000만 달러가 유출된 것이 의심을 받으면서 끝이 났다. 사건 당시 책임자였던 쉬 전 지점장은 그와 사건을 모의했던 2명의 부하 직원과 함께 미국으로 도피, 무려 17년 간의 도주 행각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쉬 전 지점장과 부하 직원 2인은 이미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상태였다. 그는 1994년 당시 자신의 아내와 이혼한 뒤 미국인과 가짜 결혼식을 치러 미국 영주권을 획득했다. 이후 2년 뒤 미국인과 이혼한 아내와 재결합한 쉬 전 지점장은 이를 이용해 홍콩행 위조 여권을 발급,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들이 미국으로 도주한 이후 중국 당국은 미국 사법기관과 공조, 미국과 캐나다, 홍콩 등에 은닉된 그의 은행 계좌를 모두 동결시켰다. 이듬해에는 미국 연방 검찰사무관 측은 쉬 전 지점장과 일당에 대해 체포령을 내려 이들을 추적했다. 이후 지난 2018년 7월 쉬 전 지점장은 미국으로 도주한 지 17년 만에 중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이번 사건을 관할했던 중급인민법원은 쉬 전 지점장 사건에 대해 중국 국가감찰위원회가 구성된 뒤 해외에서 송환된 첫 번째 직무 관련 범죄 용의자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자백했지만, 관할 법원 측은 그의 행위가 중국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는 점에서 징역 13년, 벌금 200만 위안, 범죄 소득금 전액 추징 등의 판결을 내렸다.
  • 미 의회서 마스크 미착용 체포하려다가…

    미 의회서 마스크 미착용 체포하려다가…

    미국 연방의회 경찰이 마스크 착용 지시를 거부하는 의회 보좌진과 의사당 방문자들에 대해 ‘체포령’을 내렸다. 29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의회 경찰 책임자는 전날 직원들에게 의회 내 새 마스크 지침 시행을 전달하고, 하원 회의장과 그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하원 건물 출입이 거부될 것이고,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거나 물러서지 않으면 누구든지 불법 출입으로 체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원들은 체포 대상은 아니지만 역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마스크 착용 요구에 불응하는 의원들은 상부에 보고하도록 했다.그러자 여야를 막론하고 반발이 일었다. 민주당 소속 낸시 메이스 하원의원은 회의실 밖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진을 올리며 “나는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가 아니라 과학을 따른다. 실외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와서 나를 잡아가라”고 했다. 공화당 캣 캐맥 하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펠로시를 겨냥, “현대판 권력남용의 현대판”이라고 비난했다. 반발이 거세자 의회 경찰은 “마스크 의무 착용은 건강과 안전을 위한 것이고 규칙을 따르고 마스크를 쓴다면 아무도 체포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앞서 미국 당국은 코로나19 전파 위험이 큰 지역에 대해 백신 접종자라도 실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새로 내놓으면서 ‘마스크 논쟁’이 재점화됐다. 미 하원도 지난 28일 의사당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한 달여 만에 복원했다. 미 의회 주치의는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 없이 의사당 모든 건물과 홀, 회의실 등에서 다시 마스크를 쓰라고 공지하면서도 상원엔 적용하지 않았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는 “여기는 펠로시의 하원이 아니라 국민의 하원”이라면서 “과학에 기반한 게 아니라 영원한 팬데믹 상태에서 살기를 바라는 진보 당국자들이 만들어낸 결정”이라 비난했다. 그러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완전 멍청이”라고 되받았다.
  • [여기는 남미] 여친에게 에이즈 감염 숨긴 남자, 교도소행...인권침해 논란

    [여기는 남미] 여친에게 에이즈 감염 숨긴 남자, 교도소행...인권침해 논란

    에이즈(AIDS) 최초 사례가 보고된 지 올해로 40주년이 된 가운데 멕시코에서 HIV 보균자의 인권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에이즈 감염자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멕시코의 민간단체 '자유로운 HIV 보균자'는 최근 멕시코시티 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열고 인권 탄압을 규탄했다. 단체는 "에이즈에 걸린 게 죄가 될 수는 없다"면서 "HIV 보균자를 잡아들이겠다면 우리 모두를 잡아가라"고 주장했다. 검찰청 건물 외벽에 규탄 문구로 페인팅을 하던 한 회원은 "바이러스가 날 범죄자로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HIV 보균자들을 격노하게 한 건 최근 멕시코시티 검찰이 집행한 법원의 체포명령이다. 멕시코 검찰은 법원이 뒤늦게 발부한 체포령을 집행, 한 남자를 체포했다. 성은 공개되지 않고 후안이라는 이름만 공개된 이 남자는 HIV 보균자로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긴 혐의로 고발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체포된 남자의 여자친구는 2019년 8월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에이즈 치료제를 우연히 목격했다. 남자친구가 HIV 보균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그는 자신을 에이즈 감염 위험에 노출시켰다며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긴 남자친구를 검찰에 고발했다. 1년 넘게 시간을 끌던 사건은 최근 법원이 체포영장을 내주면서 남자친구의 체포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체포된 남자친구는 멕시코시티 노르테 교도소에 수감됐다. 사건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HIV 보균자의 인권 논란으로 비화됐다. HIV 보균자들은 "검찰과 사법부가 에이즈 감염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발끈하고 나섰다. HIV 보균자 마르티네스는 "멕시코 검찰이 인권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이번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사건은 인터넷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온라인에선 타인을 감염 위험에 노출시킨 건 명백한 범법행위라는 의견과 HIV 보균자를 범법자 취급하는 건 인권 침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다빗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네티즌은 "이제는 치료를 받고 있는 HIV 보균자도 감옥에 가는 세상이 되었는가. 충격적이다"라고 검찰을 비난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여기는 남미] 10살 성폭행 피해자에게 출산하라는 브라질 극우파 논란

    [여기는 남미] 10살 성폭행 피해자에게 출산하라는 브라질 극우파 논란

    어린 소녀의 임신으로 남미 브라질에서 낙태금지 둘러싼 논란에 또 불이 붙고 있다. 브라질 북동부의 지방도시 레시페에선 16일 저녁(현지시간) 10살 여자어린이가 낙태수술을 받았다.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사법부가 허락까지 내린 수술이었다. 하지만 병원 주변에선 이날 혼란이 발생했다. 낙태에 반대하는 일단의 극우파 주민들이 몰려든 때문이다. 병원으로 몰려간 주민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라"며 낙태에 반대했다. 현지 언론은 "반대시위에 집권여당 소속 의원들까지 참여해 10살 여자아이의 낙태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낙태에 찬성하는 주민들과 함께 병원 주변에서 맞불집회를 열었다. 활동가들은 "극우파 세력이 의사들을 공격하려 한다"며 인간띠를 두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논란이 된 사건은 성폭행에 의한 임신이다. 문제의 10살 여자어린이는 심한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아기의 아빠는 33살 삼촌이었다. 인면수심 삼촌의 성폭행은 피해자가 6살이었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삼촌에겐 긴급체포령이 내려졌지만 그는 이미 도주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여자어린이는 사법부에 낙태수술을 허락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브라질에선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사법부의 승인이 있어야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다. 판사 앞에 선 피해자 어린이는 "아기를 출산하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판사는 피해자의 건강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확인하라며 즉각적인 의학적 검사를 명령했다. 의사들이 낙태를 권하는 소견을 내자 판사는 "비록 미성년이지만 피해자 본인이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고, 건강을 위해서도 낙태가 필요하다는 과학적 검사결과도 확인됐다"며 낙태수술을 승인했다. 하지만 보수 쪽 일각에선 판사가 살인허가를 내준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병원 주변에서의 시위는 이런 여론의 연장선상에서 열린 것이다. 현지 언론은 "병원 주변에서 찬성파와 반대파가 시위를 벌일 정도로 낙태를 둘러싼 국론이 분열돼 있다"며 앞으로 더욱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한편 브라질은 강력히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남미국가다. 브라질에선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나 태아의 무뇌증이 확인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한다. 사건마다 사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이슬람 성지’ 노래한 여성 체포령…빛바랜 사우디 여자축구리그 출범

    ‘이슬람 성지’ 노래한 여성 체포령…빛바랜 사우디 여자축구리그 출범

    사우디아라비아가 서방 세계와 여성을 향한 유화적 제스처로 다음달 여성 축구대회를 처음 시작한다. 그러나 노래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넣었다는 이유로 여성 래퍼 체포에 나서면서 여성을 향한 차별 폐지 정책이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5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사우디스포츠연맹(SFA) 회장인 칼리드 빈 알왈리드 왕자는 이날 “여자축구리그(WFL)는 건강하고 활기찬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비전 2030의 전략이자 역사적인 발걸음”이라고 밝혔다. 총상금은 50만 리알(약 1억 6000만원)이다. 여성 축구 리그는 지역 챔피언을 결정하는 예선 라운드를 거친 팀들이 토너먼트를 통해 WFL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회는 리야드, 제다, 담만 등에서 열린다. 사우디가 여성 축구대회를 출범한 것은 여성 평등권 확장의 연장선이다. 지난해 12월 음식점에서 성별 분리정책을 종식했고, 8월에는 남성 후견인의 동의 없는 여성 해외여행 금지를 철폐했다. 2017년에 여성에게 운전할 권리를 부여, 2018년에 여성에게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이 발급됐다. 그러나 여성 차별은 여전하다. 사우디 여성은 결혼하거나 이혼할 때, 사업을 시작할 때, 심지어 건강보험에 접근할 때 남성 후견인의 허락이 필요하다. 법정에서 여성의 증언은 남성보다 무게가 덜 실린다고 CNN이 전했다. 유엔 전문가들은 “(사우디에서) 독립된 인간으로서 여성의 기본 인권과 존엄이 부정되고 있다”며 “정치·경제·사회 문제에서 여성의 평등한 참여와 의사 결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차별 논란을 달군 것은 아사옐 슬레이라는 사우디 여성 래퍼가 지난주 메카에서 부른 ‘메카 걸’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다. 히잡을 쓰고 카페 안에서 영어와 아랍어로 “메카가 강력하고 아름답다”고 노래했지만 체포 위기에 몰렸다. 메카 통치자인 할레드 알 파이잘 왕자는 이날 “메카의 관습과 전통을 모독했다”며 체포를 지시했다. 여성 래퍼가 체포되면 ‘신성모독’을 이유로 극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가 전했다. 그의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삭제됐지만 트위터에는 남아 있다. 반면 강간 혐의로 기소된 모르코 남성 팝가수 사드 람자레드 공연은 허용됐다. 이를 두고 소셜미디어에는 “사우디 당국이 위선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그분을 상면하니 저런 분이 어찌 왜놈의 군인과 맞서 선두 지휘를 하시며 혈전을 하셨나 할 정도로 외모가 잘생기셨고 그 풍채가 관후 유덕하시며 인자한 풍기가 주위 사람에게 호감을 주실 뿐 아니라 인정이 철철 넘쳐 흐른다. 그분이 무기형을 받고 마포로 수감된 후 왜놈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하나 불허하므로 단식투쟁을 선포하고 단식에 돌입하였다. 처음 15일간은 물도 한 잔 안 먹었다. 소장이 병동에다 수감하고 왜놈 간수에게 감시를 하게 하고 조선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매일 변기를 검사하였다. 물 한 모금도 안 먹었으니 소변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창(이회영의 아들)은 회고록에서 서울 마포형무소(경성감옥)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한 오동진 선생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좌진, 김동삼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계의 3대 맹장으로 평가받는 오동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건국훈장 다섯 가지 가운데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30명인데 오동진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김구, 안창호, 안중근, 윤봉길에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변변한 연구 논문 한 편 없다. 옥중에서 선생은 일제에 저항해 여러 번 단식투쟁을 했다. 마포형무소에서 한 단식 기간은 무려 48일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악랄한 일본인 형무소장도 그런 선생에게는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으며 ‘가미사마’(神)라고 부르기도 했다.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태어난 선생은 생후 반년 만에 생모를 잃고 후모(後母) 백씨의 손에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온후하고 정의감이 남다르게 강했던 선생은 기쁨과 슬픔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9세에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선생은 고향에 일신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1919년 3월 기미독립만세운동은 선생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포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3월 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安子溝)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평생 온몸을 내던진 선생의 무장독립투쟁이 시작됐다. 선생은 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는 한편 의용대를 편성해 군자금을 모금했다. 이듬해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만주에 이탁을 파견해 광복군총영을 조직했는데 선생은 총영장(總營長)이 됐다. 광복군총영은 임시정부에서 장총 240여정과 탄약을 입수해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마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상원의원 일행이 1920년 8월 14일 서울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총영은 결사대원을 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어 미 의원단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파괴 공작을 펴 이목을 끌기로 했다. 안경신 일행은 안주경찰서의 일제 경찰과 친일 조선인 경찰을 사살했으며 평양의 경찰서 신축 건물을 폭파했다. 신의주 철도호텔에 폭탄을 투척했고 선천경찰서도 파괴했다. 이 사건 이후 일제는 선생을 체포하느라 혈안이 됐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의 동삼성(東三省) 독립운동단체 통합 제안으로 발족한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이 돼 독립군을 지휘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 와해 후 새로 통합된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가 출범했는데 선생은 군사위원장과 총사령을 겸임했다. 선생이 이끌던 무장 독립군은 국내에 침투해 일제와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압록강 일대 삭주, 벽동, 후창, 초산, 무산 등의 경찰 주재소와 관공서를 습격했다. 독립군 결사대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일제 평북경찰부의 통계에 따르면 선생은 1927년까지 부하 1만 4149명을 지휘해 일제 관공서를 143회 습격하고, 일제 관리 149명과 밀정 765명을 살상했다.그러나 무장 항쟁을 이끌던 선생은 밀정의 덫에 걸려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독립군 부하들의 양식 조달을 위해 지린에 농업공사를 만들었는데 운영난으로 그와 부하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이를 본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三成) 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믿은 선생은 1927년 12월 16일 창춘 시내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일제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로 변신한 김에게 유인당한 선생은 잠복해 있던 신의주 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김덕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선생은 일제의 취조에 자신이 지휘한 무장 투쟁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고문을 당하면서도 부하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 선생의 활동만큼 일제가 붙인 죄목은 방대했고 수사·재판 기록은 쌓아두었을 때 높이가 5m가 넘어 3·1운동 이후의 만주 독립운동사와 같았다. 선생은 광인(狂人) 행세를 하고 1929년 11월부터 33일이나 단식을 하는 등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 “한번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 개인의 집안일을 돌보고 걱정하고 그리워할 수는 없다”며 아내는 물론 어떤 면회도 거절했다. 부인과 아들은 옥 밖에서 통곡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1928년 4월에는 부하 2명이 선생을 구하려고 경찰서로 잠입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재판이 열린 신의주 지방법원 법정에는 선생의 모습을 보려는 방청객들이 쇄도했다. 선생은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독립만세”라고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 또 “하느님의 명령”이라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선생의 광적인 행동은 일부러 미친 척함으로써 일제와 일인(日人)의 재판에 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인 의사는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였다. 하지만 선생은 정신을 차려서는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징역살이를 하며 또한 설혹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희 일본놈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1932년 3월 9일 선생은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 선고도 무기징역이었다. 선생은 상고를 포기했으며 장기수를 수감하던 마포형무소로 이감됐다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던 공주형무소로 다시 옮겨졌다. 한 달이 넘는 단식도 이겨냈던 선생은 17년이 넘는 세월의 모진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광복을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그해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선생의 나이 55세였다. 선생을 체포하고 옥사하게 한 김덕기는 노덕술, 하판락과 함께 조선인 3대 악질 형사였다. 김은 16년 동안 일제 경찰로 일했고 평북경찰부 고등형사과장 자리에 올라 수많은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그가 검거해 송치한 독립군이 1000명이 넘었고 그중 20%가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광복 후 김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로서는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반민특위 해체로 감형된 뒤 6·25전쟁 중에 횡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오동진이 숨을 거둔 땅 충남 공주의 공산성 주차장 한쪽에 선생의 추모비가 덩그렇게 서 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순국선열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30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데 선생의 위패도 있다. 선생의 묘소가 없는 것은 아니고 북한 애국열사릉에 있다. 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한 선생의 유해가 왜 북한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선생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어린 나이에 만주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부인의 행적도 알 길이 없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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