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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 삶도 예술이다

    당신 삶도 예술이다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영화와 사진 등 기술복제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술이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을 전복시킨다며 예술의 종말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람들이 현실을 지각하고, 예술작품의 대체불가능한 유일무이의 진품성을 담보하는 ‘아우라’의 기능 소멸을 우려하는 얘기다. 예술철학사적 흐름에서 일찍이 헤겔이 예술의 위기를 논한 바 있지만, 예술의 종언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을 던졌다. 몇 년 전 한국에서도 문단과 평단을 중심으로 떠들썩하게 논의가 오갔던 일본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74)의 ‘근대문학의 종언’ 화두 역시 근대적 예술 형태의 종말에 가까운 본질적 변화를 얘기했다. 또 아서 단토(1924~2013)는 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를 통해 탈역사의 시대이자 다원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진정한 미술이 무엇인가’ 류의 질문이 형해화됐음을 선언했다. 정치철학자이자 정치미학자인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최근 펴낸 ‘예술인간의 탄생’(갈무리)에서 “진지하게 제기된 어떤 예술종말론도 이러한 견해로 완전히 소진되지 않는다”면서 “예술종말론의 사유들이 예술이라고 불리는 행위가 지속되거나 양적으로 더 확산될 것을 예견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4년 전 자신의 독창적 사유를 담은 인지자본주의와 접목시킨다. 최근의 예술종말론들은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칼 마르크스나 헤겔이 예술 위기를 주장했던 내용의 반복일 따름이라고 비판한다. 조 대표는 최근 일련의 흐름을 예술의 종말이 아닌 예술의 변화, 즉 예술진화론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본주의 하 낡은 예술형태가 파괴되는 것은 맞지만, 새로운 예술주체의 등장과 함께 예술기법, 예술장르의 발생과 창조를 통해 예술 고유의 진화를 수행해나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안토니오 네그리(82), 조르조 아감벤(73) 등의 예술진화론의 고갱이인 예술과 삶, 삶과 정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예술주체로서 다중의 출현을 예상하는 이론들을 함께 소개한다. 실제 ‘누구나 예술가다’라는 표현처럼 예술의 형태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다만 매일매일 예술가처럼 창조적으로 기획하고, 창조적으로 노동하기를 강요받고 있다.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임금이 적거나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우세한 듯 보일 따름이다. 조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예술이 자본에 포섭된 운명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만이 아님을, 실제로 누구나 예술가라는 확신을 들게 하는 순간과 장면을 예시한다. 2008년 촛불시위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다중들의 참여에 의해 꾸며진 비디오아트이자 컴퓨터네트워크아트인 집체예술 에너지의 폭발이었으며, 2009년 7월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공장 안팎을 뒤덮었던 연설소리, 파업구호, 사측 선무방송, 헬리콥터 등 혼합된 소리의 동시성은 백남준의 어떤 작품과도 비견될 만하다고 말한다. 또한 지난해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가족대책위’가 보여준 각종 퍼포먼스들은 어떤 전업 작가들의 전통적 예술작품보다 더 큰 예술적 감응을 불러일으킨 다중예술의 한 사례로 꼽았다. 이 밖에 2011년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등은 위대한 예술작품의 하나가 된다. 그의 의도가 분명해진다. 책 제목이 보여주듯 ‘예술인간’은 이미 경제인간 속에 이미 잠재하고 있는 특성의 발현이며, 새로운 역사 조건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그리고 어떤 특권도 허용치 않는 보편인간으로서의 실천적 문제임을 드러낸다. 다만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예술인간이 탄생되는 방식으로 진화될 리는 없다. 그는 예술가들이 예술실험센터, 아트팩토리사업, 창작아케이드사업 등 국가의 토지, 건물의 화폐가치를 높이는 일련의 기획 속에 포섭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적 가치 관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위로부터 국가가 예술가들에게 시혜를 내리는 속에 다중들은 삶과 예술의 분리 및 소외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부정하라고? 아니다. 조 대표가 요구하는 것은 ‘예술가의 스파이화’다. 지배질서의 유통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예술계에서 예술수단과 예술능력을 훔쳐내 다중의 삶이라는 예술공간으로 이전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 예술가-다중으로 존재 이전하는 일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대한광장] 直指와 구텐베르크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싱거워져버린 지난 천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금속활자라고 한다.그런데 그 문명사적 의미는 독일 마인츠시의상인이자 발명가였던 구텐베르크에게 돌아가버렸다.이에 분노한 한국인들이 말하기를 어찌 1455년 간행된 구텐베르크 성서가 1377년 간행된 금속활자본 ‘직지(直指)’보다 의미가 있을까 보냐고 흥분을섞어서 강력한 항의를 보낸다.그렇다면 이 항의가 타당할까? 타당하기도 하고 타당하지 않기도 하다. 예로부터 고려의 금속활자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주조(鑄造)되어 쓰였다고 알려져 왔다.그런데 현재 세계문화사에서는 그런 역사적 사실을 공인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알고는 있으되 인정하지 않는 명확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여기에 함정이 있다.고려 금속활자를 서양문화사의 잣대로 바라보았을 때 생기는 필연적 함정이깊이 파여 있는 것이다. 문화나 예술은 고도의 정신적 산물이므로 애초부터 연대를 가지고다투거나 할 일이 아니다.문화예술이나 지식정보는 올림픽경기가 아니다.마찬가지로 직지를프랑스로부터 찾아와야 한다고 하는 흥분은시대착오적이다.프랑스인이 정당하게 구입해간 직지를 무슨 명목으로반환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오히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것이여러모로 의미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난 천년 인류문화사에서 금속활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인정받는 까닭은 지식정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기 때문이다.즉 지식정보의 독점을 해체하고 소통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상징이자 신호탄이기에 중요한 것이지 금속활자 주조(鑄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과학의 진보를 통해서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역으로 금속활자는 과학문명의 발달에 기여하는 상호작용의 근대화가 바로 금속활자의 문화사적 본질이다.여기에 인식의 착오가 있었다.왜냐하면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는 서구문명사적 관점이 아니라정신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의 금속활자는 산업과는 별개로 정신적인 차원에서 주조된 정신문화적인 측면이 강하다. ‘직지’는 지극한 정성,욕망의 절제로서의 보시(布施),경건함,기원,자비 그리고 깨달음 등의 정신문화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대량생산이라는 근현대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직지’는 존재하는 것이다.문화사적으로 보면 ‘직지’는 금속활자라는 진품성과 불교문화의 분위기(aura)가 그 정수(精髓)였다.그렇기때문에 서구문명사나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고려의 금속활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려 금속활자의 정신은 다량생산의 상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량생산과 정신문화에 있다.고려의 금속활자가 정신문화적 측면에서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은 ‘직지’의 뜻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곧바로 가르쳐주고 정확하게 깨닫도록 한다’라는 주제가 곧 직지의 정신이다.그러니까 자본주의의 상업화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이라는 각도에서 직지를 바라보지 말고,정신문화의 깨달음과 교육과 통합문화의각도에서 바라보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2000년 오늘이다. 바로 여기 21세기 빌 게이츠 패러다임의 사이버시대에 한국인이 가져야 하는 미래사적 전망이 놓여 있다.구텐베르크와 직지의 차이를정확하게 분석하는 한편 ‘직지’반환운동 역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것도 고통스럽지만 인정하면서 새로운 전망을 세워가야만 한다.그러므로 과거의 문화유산을 미래의 문화정보 자본으로 재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새 천년의 시대에 새로운 전망으로 새로운 틀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고려인들이 가졌던 도전과 용기의 정신이면서 민족문화의 저력이라고 믿는다. 고구려와 고려인들의 뜻을 이어 과거의 문화자산을 미래의 문화예술정보 자본으로 재창조하면서 세계문화사에 야심찬 도전을 감행해 보자. ■김 승 환 충북대 교수·국문학
  • 여성 판화작가 허은영展

    국내 판화계의 대표적 여성작가인 허은영(38·한성대 회화과 교수)의 목판화전이 9일까지 서울 갤러리 사비나(02-736-4371)에서 열린다.갤러리 사비나가 순수미술 기념품 사업의 하나로 기획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몽환의 뜨락’.파스텔톤의 목판화 작품 25점을 통해 판화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허은영은 10여년동안 미국 워싱턴 D.C.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유화와 판화수업을 마치고 지난 91년 귀국,활발히 활동해온 판화전문 작가.그는 섬세한 손맛과 회화적 상상력으로 한국인의 순수한 심상에 배어 있는 형상들을 즐겨다룬다.산·물고기·꽃·기와·구름 등이 그것이다.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물상들을 곧이곧대로 그리지 않는다.그가 화면 위에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은꿈결같은 서정이 향기를 발하는 몽환적 풍경이다.이를 위해 작가는 자연의이미지들을 양식화된 문양으로 제시하거나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는 대상으로 표현한다.또 원근법이나 명암법 등 기존의 보는 방식과 기술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작풍을 보여준다. 작가는 판화용 잉크대신 유화물감을 사용한다.보통 10도 안팎으로 올려진다색물감은 여러 층을 이루며 화면에 저부조(低浮彫)의 요철을 만들어낸다. 그런 만큼 그의 목판화는 판화가 빠지기 쉬운 소재주의나 색상표현의 한계에서 탈피,다양한 질감효과를 거두고 있다.이른바 소멸판법(消滅版法)을 사용하고 있는 점도 주목거리.최근 확산조짐을 보이고 있는 소멸판법은 한 점의판화를 생산하기 위해 판재 위의 형상을 단계적으로 소멸시켜가면서 그때그때 찍어내는 판화기법을 말한다.작품의 진품성 내지 원본성을 뚜렷이 살릴수 있는 이점이 있다.판화적 표현의 경계를 자유로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판화가 그저 ‘찍어내는 예술’이 아님을 웅변해 준다. 김종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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