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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강북에 살아 보니

    [열린세상] 강북에 살아 보니

    창경궁 홍화문을 지납니다. 이 문 앞에서 영조는 균역법의 시행을 두고 양반과 평민들로부터 의견을 들었지요. 조금 더 가면 선인문이 나옵니다. 연산군이 쫓겨나고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했던 곳이지요. 이어서 ‘김상옥로’가 나옵니다. 일본 경찰 간부들을 처단하고 1천여명의 일경에 맞서 세 시간을 싸우다가 자결하신 곳이지요. 청계천을 지나면 장충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을미사변과 임오군란으로 순직하신 충신과 열사의 제사를 모신 곳입니다. ‘긴또깡’(김두한)이 살던 수표교도 이곳에 남아 있지요. 터널을 지나면 소월로를 만나게 됩니다. 봄이면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곳이지요. 강남 개발의 신호탄이자 경부고속도로의 시발점인 한남대교를 건너 사무실에 도착하게 됩니다. 제가 만나는 출근길 풍경이지요. 퇴근길은 교통 상황에 따라 길이 달라지다 보니 좀더 다양한 풍경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다리도 만나고, 대한민국 보물의 상징인 흥인지문도 만나고, 젊은 지성과 고뇌의 상징이었던 대학로도 만나게 되지요. 운이 좋은 날에는 한국 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 앞을 지나기도 하고, BTS 공연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된 광화문을 지나기도 합니다. 조선 임금들의 최애 공간이었던 창덕궁과 그들의 신위를 모신 종묘를 지나기도 하지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에는 흥인지문에서 내려 낙산에 올라 석양을 보며 퇴근하기도 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인지 부쩍 외국인의 발길이 잦아졌습니다. 18년 전 서울에 정착할 당시 한강 이북에 조금 살다가 이남 지역으로 이사한 후 16년 만에 다시 강북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출퇴근길이 한없이 즐거웠지요. 보이는 곳마다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광화문으로 책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문득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기 오면 꼭 강남에 온 것 같아.” 순간 어리둥절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강남에 가면 차선이 넓고 반듯반듯하잖아. 강북에는 그런 곳이 없는데 여기는 꼭 강남처럼 길이 나 있거든.”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습니다. 강북에는 종로나 을지로 등을 제외하면 반듯한 길이 없는 데다 길 자체가 그다지 넓지 않습니다. 물론 강북은 구도심이어서 옛길 중심이고, 강남은 계획 도시이다 보니 처음부터 반듯하게 길을 내는 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산지와 평야라는 지형 차이가 더해졌겠지요. 그런데 강남과 강북의 차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선 지방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심 공동화 현상이 서울 강북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 도심인 종로와 중구는 밤이면 불이 꺼지는 지역입니다. 주거 환경이 노후화되다 보니 상주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때문에 초중고교 모두 소규모 학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지요. 심지어 폐교를 고민하는 학교마저 있을 지경입니다. 교육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진학률은 학부모에겐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지표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의학 계열이나 명문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강남북 간 최대 10배까지 벌어졌다는 통계도 있지요. 자치구별 재정자립도도 3배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복지나 공공서비스의 질이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한강은 이제 더이상 지리적 경계선에 그치지 않습니다. 경제와 교육, 공공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상징하는 뜻을 담은 경계이기도 하지요. 한강을 경계로 강북과 강남, 테헤란로를 경계로 테북과 테남, 양재천을 경계로 양북과 양남이라고 구분 짓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사람이 살아야 도시에 활력이 생기고 안전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결국 강북 발전의 최우선 과제는 밤에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드는 데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전 수원지검 1차장
  • 거리서 내가 완성하는 연극… 새롭게 발견한 서울

    거리서 내가 완성하는 연극… 새롭게 발견한 서울

    ‘리모트X’ 65개 도시 거쳐 서울 상륙헤드폰 속 목소리 따라 소소한 일탈 서울 지하철 동작역 안, 똑같은 헤드폰을 쓴 사람들 30여명이 개찰구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무대는 개찰구, 헤드폰을 쓴 이들은 관객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저 일상을 보내지만 헤드폰 속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이 순간은 한 편의 연극이 된다. 대화를 하거나 서둘러 걸어가거나 또는 이 무리를 의아해하며 바라보는 ‘각자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연극을 설명하던 목소리는 명령한다. “이제 너희가 인생의 무대에 등장할 차례야. 관객의 위치에서 벗어나 무대를 끝까지 가로질러.” 무리는 일제히 무대를 향해 걸어간다. 도시를 무대로 인공지능(AI) 음성을 따라 일상을 경험하는 참여형 공연 ‘리모트 서울’이 지난 3일 개막했다. 독일 창작집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대표작 ‘리모트 X’의 서울 버전이다. 2013년 베를린에서 첫선을 보인 ‘리모트 X’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중국 상하이 등 32개국 65개 도시를 거쳐 GS아트센터 기획 공연으로 서울에 상륙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헤드폰과 교통카드를 받으면 공연이 시작된다. 국군묘지에서 삶과 죽음을 사유한 뒤 지하철역을 거쳐 역삼동 GS아트센터까지 2시간 정도 이동한다. 목소리의 지시로 박수를 치고 발레 동작을 하거나 엘리베이터 한 줄 서기 같은 암묵적인 규율을 어겨보기도 한다. 헤드폰 속 여성 목소리는 ‘차를 조심하며 걸어가’라거나 ‘건강을 걱정한다면 계단으로 올라가도 돼’라며 섬세하고 다정하게 안내한다. ‘기계에게 운동은 시간 낭비일 뿐이야’, ‘이 사람들 중 누가 더 오래 살 거 같아?’, ‘집단지성이라는 건 집단어리석음도 가능하다는 뜻이야’라며 인간적인 삶, 민주주의나 사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시 도시로 섞여 들어갈 준비를 해’라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나고 거리에 나서면 삶과 사회에 대한 시선이 사뭇 달라진다. GS아트센터에서 만난 현지 연출 외르크 카렌바워는 “요즘 죽음과 삶에 대해서도 챗GPT나 AI에 묻고 의존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게 이런 것인지, 인간 흉내를 내는 AI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연대하고 의지하는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카렌바워 연출은 지난해 12월 방한해 경로를 고민했고 개막 3주 전부터 서울에 머무르며 사회문화적 배경, 공공장소에서 보인 시민들의 행동 등을 관찰하고 분석해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에게 서울은 “대중교통 시간도 비교적 정확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리모트 X’를 진행하기 좋은 도시”다. 다만 “시민 대부분 휴대폰을 보고 있어 참여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아” 아쉬웠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 공연에서는 자유와 개성을 존중할지 평등과 규범을 우선할지 묻는 질문을 별도로 넣었다고 했다. ‘리모트 서울’은 다음 달 10일까지 매주 금~일요일 진행된다.
  • 처형 직전 성폭행당하는 소녀들…이란 혁명수비대의 끔찍한 실체 공개 [핫이슈]

    처형 직전 성폭행당하는 소녀들…이란 혁명수비대의 끔찍한 실체 공개 [핫이슈]

    미국·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자국의 깊은 시골 마을 훈련소에서 어린 소년·소녀들에게 훈련을 빌미로 끔찍한 폭행과 강간을 자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5일(현지시간) 혁명수비대 출신이자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을 위해 간첩으로 활동했던 레자 칼릴리(가명)의 인터뷰 및 자서전을 토대로 이란군의 실체를 폭로했다. 칼릴리는 “과거 혁명수비대 활동 당시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고문당한 후 처형되는 소년·소녀들을 봤다”면서 “특히 성관계 경험이 없는 여자아이들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슬람 신앙 때문에 처형되기 전 성폭행당하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란의 깊은 시골에는 수많은 군 훈련소가 있다. 13세 정도 되는 어린 소녀들은 냉혹하고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이란의 모든 적을 증오하도록 세뇌당한다”면서 “이러한 훈련소는 IRGC의 일반 병사들이 ‘죽음의 집단’에 합류하는 시작점”이라고 덧붙였다. 피해를 입은 소년·소녀들은 군 훈련소나 이와 연계된 시설에서 IRGC의 명령에 반하거나 이를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폭행과 폭행 등을 당한 뒤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창설된 IRGC의 조직 내부 증언은 매우 드물다. 칼릴리는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슬람을 비난하거나 샤리아법을 거부하는 이른바 ‘신의 적’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책임도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란 당국은 당신도 고문하고 죽일 수 있다”면서 “수많은 용감한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다 목숨을 잃었다. 동료가 겪는 끔찍한 고문을 목격한 뒤 나는 조국을 배신하고 CIA의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이 정권이 전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서 “이 정권은 이란 국민뿐 아니라 지역 전체의 안정에 위협이 되며, 만약 그들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이란인 수백만 명과 다른 국가의 사람들도 학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IRGC, 13세 어린이 대상으로 세뇌 캠프 운영”영국 싱크탱크 토니 블레어 연구소는 혁명수비대가 장교와 대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세뇌 교육이 매우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성격을 띤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시아파 이슬람주의 이면에 몰입하도록 하는 세뇌 교육은 성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IRGC는 13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세뇌 교육 여름 캠프’ 등의 운영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수적이고 편협한 세계관을 심어주고 TV나 인터넷 웹사이트와 같은 외국 문화적 영향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강요한다. 이러한 행사는 주로 시골 지역의 작은 마을에 설치한 캠프장에서 진행된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혁명수비대의 한 대령은 “2007년 길란주에만 160개의 수용소가 설치됐고 어린이 약 2만 명이 그곳에 수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혁명수비대에서 병사들이 탈영죄로 처형당하는 일은 끊임없이 벌어진다”면서 “그들은 명령 불복종의 이유로 부하들을 정기적으로 처형한다. 사임 요청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쟁 중에도 18세 소년 사형 집행한 당국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대이란 군사 공습을 시작한 뒤, 이란 당국과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줄곧 자국이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란 국민은 삶을 뒤흔드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이스라엘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자국 정부와 군도 믿지 못한다. 국가가 여전히 국민에게 폭압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사법부 관영 매체 미잔에 따르면 지난 2일 당국은 지난 1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 당시 체포된 아미르호세인 하타미(18)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아직 성인이 채 되지 않은 이 소년에게 씌워진 혐의는 군사시설 침입 및 방화였다. 미잔에 따르면 그는 심문 과정에서 혐의를 시인했다가 다시 항소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했다. 하타미는 나이가 어려 사면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일각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2일 결국 수도 외곽의 악명 높은 게젤 헤사르 교도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생전 그는 음악가를 꿈꾸는 기타리스트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이란 사법당국은 하타미에 대해 “‘신에 대한 적개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민생고와 독재 정권에 대한 어린 청년의 목소리가 신에 대한 적개심으로 둔갑됐고 결국 이는 사형 집행으로 이어졌다.
  • [데스크 시각] 신청주의 벽, 닿지 못한 다섯 생명

    [데스크 시각] 신청주의 벽, 닿지 못한 다섯 생명

    지난달 울산 울주군의 한 빌라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30대 아버지와 4명의 어린 자녀였다. 첫째가 사흘 연속 결석하자 이상히 여긴 담임교사의 신고로 비극이 드러났다. 공적 시스템은 이미 여러 차례 이 가정의 위기를 감지했다. 지난 1월과 3월 경찰이 현장을 확인했지만 아동 학대 정황이 없다는 이유로 개입은 종결됐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수급 신청을 권유했으나 가장은 응하지 않았다. 아내가 수감된 뒤 홀로 네 자녀를 돌보던 아버지는 생활고 끝에 자녀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는 징후를 읽고도 더 다가가지 못했고, 그는 끝내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다. 최근 전북 임실 등지에서 이어진 일가족의 죽음에는 공통된 그림자가 서려 있다. 위기 신호는 울렸지만 정작 구원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점이다. 촘촘하다고 여겼던 사회안전망이 멈춰 선 자리에는 ‘복지 신청주의’라는 벽이 있었다.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막기 위해 설계된 이 제도는 가장 절박한 순간 가장 가혹한 문턱이 된다. 국가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라’며 기다리는 사이 한 가족의 삶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부가 뒤늦게 이 벽을 허물겠다며 대책을 내놨다. 위기 징후가 뚜렷할 경우 당사자 동의 없이도 공무원이 금융 정보를 조회하고 직권으로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공무원의 책임을 면해 주는 ‘면책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신청주의라는 복지 행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손보겠다는 의미다. 분명 진일보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최소한의 정보 조회는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보호를 명분으로 개인의 금융 정보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 권한의 범위와 통제 장치는 더욱 엄정해야 한다.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사생활을 낱낱이 드러내야 하는 이들에게 국가의 개입은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청주의의 문턱을 낮추는 작업은 개인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정교한 설계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각지대의 본질은 단순히 신청 누락에만 있지 않다. 아무리 국가가 신청서를 대신 써 준들 현실과 동떨어진 선정 기준이 그대로라면 결과는 다시 ‘탈락’이다. 울주군 사건의 가정은 네 자녀를 홀로 돌보는 한부모가족이었지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수감된 아내의 복역 기간이 6개월을 넘지 않아 한부모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다자녀 가구나 교통 취약지 거주자에게 생계 수단과 다름없는 차량을 ‘재산’으로 묶어 기초생활수급 문턱을 높이는 낡은 산정 방식도 먼저 손봐야 할 과제다. 현장의 과부하를 덜어 줄 인력 확충도 필요하다. 사회복지 공무원 한 명이 수백 건의 잡무에 시달리는 구조에서 면책권은 허울 좋은 방패에 그칠 수 있다. 공무원이 서류 뭉치가 아닌 사람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직권 신청 제도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위기 가구가 맞닥뜨리는 가장 참혹한 결말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이다. 그동안 이를 ‘동반 자살’이라 불러 왔지만, 이는 독립된 인격체인 아동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명백한 아동 학대이자 살인이다. 부모의 절망이 자녀 살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비극은 복지의 영역을 넘어 ‘아동 보호’라는 국가적 책무의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 해소는 데이터 조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태로운 삶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데이터 뒤에 숨겨진 절규를 읽어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손을 내밀 힘조차 남지 않은 이들을 위해 국가는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한다. 복지 행정의 과정이 검열이 아닌 구원의 시간이 되도록 현장의 사다리를 다시 놓아야 한다. 그것이 울주군에서 멈춰 버린 다섯 생명 앞에 국가가 내놓아야 할 최소한의 답이다. 이현정 경제정책부 차장
  • 어머니 향한 그리움…몸짓으로 다독이네

    어머니 향한 그리움…몸짓으로 다독이네

    한국춤의 서정과 연극 서사 결합모자의 삶·이별·회복의 여정 그려김성옥의 동명 시 모티브로 창작 김종덕 감독 “근원적 감정 담아내” 황토색 저고리와 미색 치마를 입은 백발성성한 어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 허공 어딘가에 머무는 눈에 금세 눈물이 맺힌다. 먼 곳에 있는 아들이 떠오른 듯, 따뜻하고 행복했던 옛 감정을 되새긴 듯 반가움과 회한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뻗는 손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인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다가 천천히 가라앉듯 스러진다. 음악 하나 나오지 않는 정적 속에서 어머니의 흥얼거림만이 잔잔하게 퍼진다. 지난 3일 서울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국립무용단 신작 ‘귀향’의 장면을 보여주던 장현수 무용수는 내내 눈과 코가 붉어진 채였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춤을 췄다”는 그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봄날은 간다’를 읊조린 이유를 묻자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떠올리며 몰입한다”면서 북받치는 감정을 터뜨렸다. 오는 23~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올리는 ‘귀향’은 한국춤의 서정성에 연극적 서사를 결합한 무용극으로, 김종덕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의 두 번째 신작이다. 이전 작품에선 ‘사자의 서’(2024)처럼 죽음, 내세 같은 철학적인 주제에 집중했지만 이번엔 김성옥의 시 ‘귀향’을 모티브로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쌓인 내면의 기억과 감정을 펼쳐낸다. 김 감독은 연습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하는 가족 서사를 다루고자 했다”면서 “관객과 소통하려면 내 삶과 가장 가까운 주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근원적인 감정을 무대에 담아내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작품은 3장으로 구성됐다. 1장 ‘저무는 꽃잎’은 인생 끝자락에 선 어머니를, 2장 ‘귀향’은 어머니와 아들이 마주하는 말 못한 시간을, 3장 ‘꿈이런가’는 지난 세월과 사랑을 회고하며 삶과 이별, 회복과 위로의 여정을 그린다. 장현수와 함께 이석준(아들 역)이 작품의 주역을 맡았다. 국립무용단의 간판이자 훈련장인 두 무용수는 여러 작품에서 절제된 움직임으로도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관객을 몰입시켰다. 장현수는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하고자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석준은 “일을 핑계로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듯하다. 한번쯤 뒤돌아볼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 역을 맡은 장윤나 무용수를 포함해 29명이 무대에 오른다. 무대 디자이너 한정아는 ‘기억의 공간’으로 무대를 구현했다. 빛바랜 듯한 청동색 구조물을 활용해 과거와 현재, 내면과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음악감독 김태근은 전통의 선율과 현대적 사운드를 조화시켜 감정선을 끌고 간다. 국립무용단은 본 공연에 앞서 9일 안무가 해설과 장면 시연을 포함한 오픈 리허설을 진행한다. 선착순 40명을 대상으로 하며, 상세 내용은 국립극장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남김없이 타고 남은 뒤에 보였다… 탈출을 향한 고백

    남김없이 타고 남은 뒤에 보였다… 탈출을 향한 고백

    불은 모든 것을 태운다. 남김없이. 한데 어떤 불은 파괴가 아니라 탈출이 되기도 한다. 연작소설 ‘용궁장의 고백’은 바로 그 불에서 시작한다.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여행하고 춤을 배우는 등 낯선 경험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조승리 작가가 썼다. 신도시 한복판, 낡은 모텔 ‘용궁장’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투숙객 전원이 참변을 당했다. 그중엔 주인공 5남매의 부모도 있다. 하지만 합동 장례식장에는 곡소리가 없다. 이 기이한 침묵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의 출발점이다. 누가 불을 질렀는가가 아니라, 왜 아무도 울지 않는가. 소설은 1부부터 5부까지, 각기 다른 인물의 고백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니까 하나의 사건을 피해자와 가해자, 설계자, 생존자, 조력자 등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런 연작 방식은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진실은 하나의 목소리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할 때 종종 쓰인다. 1부는 70년간 가정폭력과 형제 부양에 시달린 끝에 부모의 죽음을 바라는 자신을 고백하는 시각장애인 여성의 이야기다. 2부는 죽은 아버지의 편애와 형제들의 희생 위에 안락하게 살아온 ‘가해자’ 막내 남동생의 이야기다. 가부장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시절, 한 가족 안에서 누군가의 평화는 다른 누군가의 살을 깎아 만들어지기 일쑤였다. 이런 ‘폭력’은 늘 ‘사랑’과 ‘도리’의 이름으로 포장됐다. 작가는 그 포장지를 거침없이 벗겨내고 가족이란 성역에 불을 놓는다. 그는 ‘천륜’과 ‘인륜’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강요된 희생의 구조를 해부하면서도, 그 구조에 갇힌 인물들을 단지 피해자란 틀에 가두지 않는다.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공모하고, 때로는 또 다른 폭력의 공범이 된다. 3~5부도 형식은 비슷하다. 생존인지 복수인지 불분명한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에 대한 해석을 독자에게 맡긴다. 책이 불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유다. 용궁장이 전소된 뒤 남은 자들은 새 삶을 시작한다. 고백의 과정이 모두 끝나고, 마침내 “봄볕 아래” 모인 가족들. 하지만 비극을 양분 삼아 피워낸 해방감 뒤로, 이 행복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졌을지 모른다는 여운이 묵직하게 남는다. 작가는 “이 이야기는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던 어느 장례식장에서 구성됐다”며 “천륜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채 각자의 지옥을 버텨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고 했다.
  • ‘집단 성폭행 후 안락사 여성’에 트럼프와 스페인이 충돌한 이유 [핫이슈]

    ‘집단 성폭행 후 안락사 여성’에 트럼프와 스페인이 충돌한 이유 [핫이슈]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오랜 기간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안락사를 선택한 20대 스페인 여성 사례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페인 행정부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1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안락사를 선택한 노엘리아 카스티요 사례와 관련해 해명을 요구하자, 스페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지난달 31일 마드리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 카스티요 사건과 관련한 반복적인 성폭행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국무부는 외교 전문을 통해 “안락사한 카스티요가 국가의 보호 아래에 있는 동안에도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과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카스티요가 임종 직전 안락사 시행을 망설였음에도 이러한 의사가 무시되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은 특히 정신 질환 및 비말기적 고통(non-terminal suffering)에 있어서 스페인 정부의 안락사 법 적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모니카 가르시아 스페인 보건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하며 “그는 모든 곳에 간섭하며 지나치게 국제적인 의제로 부추기려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일축했다. 가르시아 장관은 자신의 엑스에 “스페인은 탄탄한 의료 시스템과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돌보는 권리 체계를 갖춘 국가”라고 강조하며 “여기에는 법적 규정 안에서 임상 위원회의 평가와 법원의 승인을 받아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관련한 사망 사건 등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도리어 가자지구와 이란에서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고 비난했다. 카스티요의 안락사가 시행된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의 주지사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조사 지시 소식에 반발하며 “우리는 의료 시스템 전문가들의 업무를 훼손하려는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전력을 다해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이자 안락사를 선택한 카스티요 사건을 둘러싼 미국과 스페인 당국의 충돌은 ‘존엄한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쪽과 종교적 이유 등으로 이를 반대하는 쪽의 팽팽한 갈등이 국가 간의 갈등으로 확산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끔찍한 사건, 오랜 법적 분쟁, 그 후 존엄한 죽음카스티요는 2022년 국가가 운영하는 취약 여성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던 중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극단 선택을 하기 위해 건물 5층에서 뛰어내려 하반신 마비가 됐다. 사고 후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린 그는 합법적인 안락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이후 존엄한 죽음을 원하는 그를 둘러싸고 여러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2024년 7월 카탈루냐 전문가 위원회는 그의 요청을 승인했지만, 아버지의 항소로 절차가 중단됐다. 카스티요는 자기 결정권을 인정받기 위해 스페인 헌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그의 손을 들어주며 기본권 침해는 없었고, 그가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안락사 하루 전 카스티요는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죽고 싶은지 가족들에게 말했다. 아름답게 죽고 싶다. 항상 아름답게 죽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제일 예쁜 드레스를 입고 머리도 예쁘게 할 거다. 간단하게 죽고 싶다. 이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 중 누구도 안락사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행복이 딸의 행복이나 딸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은 안락사 허용 범위를 둘러싼 법적·윤리적 논쟁을 다시 촉발시키고 있다. 카스티요는 말기 환자가 아닌 상태에서 20대에 안락사를 승인받았으며,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중요한 사유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반대하는 쪽은 정신적 고통을 근거로 한 안락사 허용이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으며, 치료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허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반박한다.
  • 진짜 권력은 수양대군에 줄선 엘리트들이었다

    진짜 권력은 수양대군에 줄선 엘리트들이었다

    단종·세조·안평대군 관료 인맥 분석쿠데타 후 차츰 인재 등용 체계 붕괴 1500만을 훌쩍 넘어 16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 첫 단계인 ‘계유정난’(1453년)과 단종의 죽음을 배경으로 한다. 계유정난 이후 조선의 엘리트집단의 운명은 어떻게 변했을까.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홍콩침례대, 홍콩대 공동 연구팀은 조선왕조실록과 과거 급제자 명단인 ‘문과방목’(文科榜目)을 디지털 인문학과 복잡계 방법론으로 분석해 조선 관료 1만 4600여명의 경력 패턴을 규명했다고 1일 밝혔다. 조선 관료 사회의 성공과 몰락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이번 연구 결과는 통계 물리학 분야 국제 학술지 ‘물리학 A: 통계적 메커니즘과 그 응용’ 4월호에 실렸다. 조선왕조실록은 600년 넘는 기간 동안 국가 운영 기록을 자세히 담고 있어 당시 정치·사회 구조를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우선 조선 초기 권력 구조가 극적으로 변동한 사건인 ‘계유정난’을 정량 분석했다. 실록 기록을 바탕으로 단종, 수양대군, 안평대군과 교류한 관료들의 관계망을 구축한 결과 수양대군과 가까웠던 인물들은 공신으로 부상하고 안평대군 측 인물들은 숙청되는 등 권력 변화가 데이터로 명확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총성공지표’를 개발해 개별 관료가 어떤 지위에서 얼마나 오래 활동했는지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분석 결과 조선 건국 이후 약 400년 동안은 일정 수준의 공정성과 사회적 이동성이 유지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특정 가문이 경쟁이 아닌 권세를 통해 과거에 급제하고 고위 관직을 독차지하면서 관료 사회의 불평등이 급격히 심해졌다. 이는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며, 실력 본위의 등용 시스템이 무너진 구조적 변동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조선이 쇠퇴와 멸망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를 이끈 박주용 카이스트 교수는 “국가의 흥망성쇠에 개인과 집단의 행위가 미치는 영향을 보여줌으로써 현대 사회의 공정성과 인재 등용 문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밝혔다.
  • 반복되는 얼굴, 사라지는 인간 [으른들의 미술사]

    반복되는 얼굴, 사라지는 인간 [으른들의 미술사]

    ●두 개의 화면 1962년 앤디 워홀(1928~1987)은 마릴린 먼로를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선택했다. 그것은 영화 ‘나이아가라’의 홍보 사진 속 얼굴이었다. 그는 이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반복 인쇄해 ‘마릴린 두폭화’를 제작했다. 두폭화(diptych)란 두 개의 패널로 연결된 형식을 의미하며, 중세 제단화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종교 회화 형식이다. 가톨릭 신자였던 워홀은 이 고전적 형식을 차용해 하나의 이미지를 좌우로 나누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각 화면에는 동일한 얼굴이 25번씩 50번 반복되지만, 왼쪽은 강렬한 색채로, 오른쪽은 점차 흐릿해지는 흑백으로 인쇄돼 있다. 이 작품은 먼로가 사망한 직후 제작됐으며, 하나의 이미지를 끝없이 복제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당대 대중문화의 구조를 드러낸다. 하나의 스타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비되는 대중들의 이미지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스타 이미지의 메커니즘 워홀이 만든 마릴린 초상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얼굴’이다. 그는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함으로써 할리우드가 스타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실제로 영화 산업은 배우를 하나의 상품처럼 포장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워홀은 이를 소비재 이미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스타를 탄생시켰다. 반복되는 얼굴은 친숙함을 강화하는 동시에 개별성을 지워버린다. 관객은 마릴린이라는 인물을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복제되는 이미지의 표면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스타를 숭배하면서도, 그 스타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동시에 폭로하는 이중 구조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사라지는 얼굴 더 중요한 것은 화면의 오른쪽이다. 색을 잃고 점차 흐릿해지는 얼굴들은 단순한 변주가 아니라 이미지의 소멸, 더 나아가 개인의 죽음을 암시한다. 선명하게 반복되는 왼쪽의 얼굴이 대중문화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반면, 오른쪽의 희미한 얼굴들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드러낸다. 일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이 작품은 화려한 스타 이미지 뒤에 가려진 개인의 소멸과 죽음을 동시에 드러낸다. 먼로의 죽음 이후 대중은 스타의 죽음을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이미지의 상실로 받아들인다. 애도는 실제 인물보다 매체 속 이미지에 집중되며, 죽음은 오히려 개인의 신화를 강화한다. 먼로는 사망했지만 먼로 이미지는 신문, 잡지, TV 등 대중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사라진 존재는 반복 소비되며, 먼로는 부재 속에서 더 강렬한 상징으로 남는다. 특히 먼로의 죽음 직후 제작됐다는 점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는 오히려 부재를 강조하는 역설적 장치로 작용한다. 이 작품은 화려한 스타 이미지 뒤에 가려진 스타의 탄생과 개인의 죽음을 동시에 드러낸다. 먼로는 죽었지만 먼로의 이미지는 살아남았다. 우리가 사랑한 것은 한 스타였는가 아니면 끝없이 복제된 이미지였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앤디 워홀도, 먼로도 모두 사라졌다. 끝없이 복제되던 얼굴도, 그것을 찍어내던 손도 멈췄다. 그러나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 우리를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가 소비해온 것은 영원한 스타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게 하는 기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미지는 살아남고 인간만이 유한하다는 이 아이러니야말로 워홀이 바란 결말일 것이다.
  • 13세 소녀 임신시킨 뒤 살해한 남성, 수감 2주 만에 숨졌다 [핫이슈]

    13세 소녀 임신시킨 뒤 살해한 남성, 수감 2주 만에 숨졌다 [핫이슈]

    미국 미시간주에서 13세 소녀를 숨지게 한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남성이 수감 2주 만에 교정시설에서 숨졌다. 그러나 피해 소녀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현지에서는 “가장 비겁한 결말”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유족은 피해자를 찾을 마지막 실마리가 더 멀어졌다고 보고 있다. CBS 뉴스와 피플 등 현지 보도에 따르면 디트로이트의 재비스 버츠(43)는 지난 3월 12일 13세 소녀 나지야 해리스 사건으로 35년에서 6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별도의 미성년자 대상 범죄 사건들로도 10년에서 15년형을 함께 선고받았으며 두 형은 동시에 적용됐다. 이후 버츠는 같은 달 26일 미시간주 잭슨의 찰스 이글러 수용·분류센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미시간 교정당국은 교정 직원들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더 큰 충격을 주는 이유는 가해자의 사망보다 피해자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리스는 2024년 1월 학교 버스에서 내린 뒤 실종됐다. 버츠는 올해 2월 여러 사건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여기에는 해리스를 숨지게 한 2급 살인 혐의도 포함됐다. 하지만 피해자 시신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기관과 검찰은 사건 전후 정황을 중요하게 봤다.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수사 과정에서 버츠가 오랜 기간 피해자에게 접근해 온 정황이 제기됐다. 실종 당시 피해자가 임신 상태였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검찰은 이런 사정을 근거로 사건의 중대성을 강조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지금도 남아 있다. 버츠는 유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수사당국에 시신 위치를 밝히기로 했지만 끝내 가족이 원하는 답을 남기지 못한 채 숨졌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그는 수사기관에 제한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 정보는 피해자를 찾을 결정적 단서가 되지 못했다. 유족이 판결이 나왔어도 사건이 끝났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 판결 끝났지만 가장 중요한 일 남았다 법원 판결로 형사 책임은 정리됐다. 하지만 유족이 원한 것은 판결문보다 피해자를 찾는 일이었다. 가해자가 숨지면서 추가 진술이나 새로운 단서가 나올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그래서 현지 언론도 이번 사건을 단순한 교도소 사망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으로 보고 있다. 디트로이트 경찰은 버츠의 사망 뒤에도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경찰은 법적 절차와 별개로 해리스의 시신을 찾기 위한 추적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사건의 초점도 이제는 가해자의 최후보다 피해자 수습과 남은 진실 확인으로 옮겨갔다. ◆ 현지서도 “끝까지 책임 피했다” 비판 현지 반응은 거셌다. 폭스2 디트로이트는 유족 측이 이번 죽음을 두고 “가장 비겁한 결말”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CBS 디트로이트도 가족과 주변 인사들이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더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법의 판단은 내려졌지만 가족이 기다린 것은 처벌 자체보다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었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은 중형 선고가 곧바로 유족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판결은 이미 나왔고 가해자도 숨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직 남아 있다. 피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현지 수사당국이 이 사건을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해자는 숨졌지만 유족이 가장 바랐던 피해자 수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지 경찰은 피해자를 찾기 위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
  • ‘아프리카의 세브란스’ MCM 세우고 의대까지… “무조건 퍼주기? 희생을 나누어서 가능했어요”[월요인터뷰]

    ‘아프리카의 세브란스’ MCM 세우고 의대까지… “무조건 퍼주기? 희생을 나누어서 가능했어요”[월요인터뷰]

    ‘아프리카 최고 수준’ 명성기독병원 “무조건 퍼주는 게 능사 아니야”지속 가능한 의료 서비스 구축6·25 참전용사·극빈자는 무료첫 비영리 민영교도소 ‘소망교도소’DJ 부탁 계기로 설립 산파 역할1000명 교인·전문가 수감자 교육“범죄자 변화, 기독교 접근 효과 입증”‘홀사모’ 울타리 되고 위기의 교민 지원목사 남편과 사별한 사모들 챙겨작년 미사일 쏟아지던 예루살렘서교회 네트워크 활용 교민 탈출 도와종교의 역할에 대하여“서로 공통분모 찾는 여유 필요양극화 해결 위한 첫걸음 될 것”출산 장려·미혼모 지원 활동도우리는 평생 달의 한 면만 보고 산다. 다른 면이 없는 건 아니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면의 모습까지 합쳐져야 달은 비로소 온전한 모습이 된다. 이제부터 전하려는 ‘사람 김삼환’ 이야기도 비슷하다. 우린 오랜 시간 동안 ‘목사 김삼환’만 봐왔다.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건 최근 출간된 ‘작은 파도가 물결이 되어’(은파기념사업회 지음, 현암사)란 책이다. 김삼환(81) 명성교회 원로목사의 아호 은파(恩波·은혜의 파도)를 모티프로 삼은 일종의 평전이다. 책이 전한 문자의 향기도 인상적이었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렵게 인터뷰가 성사됐고, 그의 입을 통해 지난한 삶을 건너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는 국내 최대 교회 중 하나다. 교인이 10만명에 가깝다. 한국 최대라는 건 곧 세계적으로도 그렇다는 것과 의미가 같다. 1980년 설립된 명성교회가 채 50년도 되기 전에 초대형 교회로 성장한 배경엔 김 목사가 있다. 그는 현재 담임목사가 아닌 원로목사로서 2선에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하순 명성교회에서 진행됐다. ●일어설 힘을 주는 ‘참도움’ “무조건 퍼주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당장 필요하다고 돈을 주는 것보다 일어설 힘을 주고 방책을 알려주는 게 ‘참도움’이지요.” 명성교회가 2004년 에티오피아에 설립한 명성기독병원(MCM)은 단순한 자선 병원이 아니다. 140년 전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 의료와 교육의 씨앗을 뿌렸듯, 그 은혜를 에티오피아에 돌려주겠다는 뜻에서 출발했다. 6·25전쟁 당시 군인 6000명을 보내 대한민국을 위해 싸워준 에티오피아에 대한 보은의 마음도 담았다. MCM은 처음부터 영리 병원으로 운영됐다. 극빈자와 6·25 참전용사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진료비를 받았다. 이 결정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중국을 비롯해 막강한 자본을 앞세운 서구의 비정부기구(NGO)들이 앞다퉈 에티오피아에 병원을 세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구 의료진은 자원봉사 형태로 근무하다 떠나갔고, 그들이 세운 병원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의연하게 남은 건 MCM 하나였다. 김 목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140여년 전 미국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우리나라에 광혜원(현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해 사람들을 치료하고 의료진을 양성한 것처럼, 단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을 고쳐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에티오피아에 지속 가능한 병원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그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 ‘아프리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MCM의 현주소다. ●명성의과대학(MMC) 설립 김 목사의 또 다른 목표는 의과대학 설립이었다. 에티오피아에 의대가 없던 건 아니었다. 졸업한 뒤 의료 인력 대부분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게 문제였다. 이 고질적인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12년 명성의과대학(MMC)이 첫발을 뗐다. “아프리카 최고의 병원이 있고, 최고의 의대가 있으니 이제 고급 의료 인력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일만은 막을 수 있게 됐어요.” 2018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MMC는 현재 연세대·한양대 등 국내 대학병원과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 의료 인재를 꾸준히 길러내고 있다. 김 목사는 MCM과 MMC를 에티오피아인들 손에 완전히 넘길 시점을 “2040년”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돈을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희생을 나누지는 못해요. 명성교회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예전 우리나라를 일으킨 선교사들처럼 희생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경기 여주시에 자리 잡은 소망교도소는 한국 최초의 비영리 민영교도소다. 재단법인 아가페가 2010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김 목사가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은 게 계기가 되어 산파역을 담당했다. 소망교도소는 일반 교도소와 달리 1000명 이상의 교인과 전문가들이 참여해 수감자 각자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김 목사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 확대를 촉구한다. “범죄자들을 변화시키는 데 기독교적 접근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게 입증됐어요. 민영교도소 확대, 민영 여성 교도소 신설 등을 국가와 사회가 좀 더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있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통일교·신천지, 교회와 한자리 안 돼”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 이 질문에 김 목사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성경 말씀과 기독교의 본질을 넘지 않는 한 교회가 과격해지는 건 삼가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다툼이 있지 않습니까. 서로 공통분모를 찾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함부로 서로에게 돌을 던지지도 말아야지요. 특히 목회자들은 종교 지도자의 언어로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종교 집단을 둘러싼 수사 논란과 관련해서는 단호했다. 말은 짧았지만 무게는 묵직했다. “통일교와 신천지는 교회가 아닙니다. 이들과 교회를 한자리에 세워선 안 됩니다.” ●홀로 남겨진 사모들을 위한 울타리 “하나님 나라에 낙오자가 없어야 한다”는 신념은 은파장학회와 복지재단으로도 이어졌다. 그가 주목한 또 다른 사각지대가 있었다. 바로 목사로 일하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아내, 이른바 ‘홀사모’들이다. ‘사모’는 겉으로는 모두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편이 세상을 뜨는 순간 상황은 급변한다. 살던 사택을 비워야 하고, 홀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 평생 목회자의 아내로만 살아온 탓에 세상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 홀사모들은 이제 서로서로 울타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한 홀사모는 말했다. “눈물 달고 살 때,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옆집에 가면 얘기가 다 되는 거예요. 이 자체가 울타리인데, 이게 진짜 귀한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미사일이 날아드는 예루살렘에서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이란의 미사일이 예루살렘 하늘로 날아들었다. 아이언 돔(단거리 지대공 미사일)이 예루살렘 상공을 방어하고 있다지만, 미사일 하나라도 뚫리면 생지옥이 펼쳐진다. 당시 김 목사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한국전쟁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 돈 좀 있다는 이들은 수억원짜리 개인 전세기로 가족 몇 명만 챙겨 탈출했다. 김 목사는 달랐다. 현지 교회 네트워크를 활용해 버스를 수배한 뒤 한국 교민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빠져나왔다. 탄도미사일과 요격미사일이 굉음을 내며 맞부딪치는 그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곁에 있는 이들을 향해 있었다. 국내에는 ‘교민들이 무사히 대피했다’는 결과만 전해졌을 뿐, 그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달의 이면이 살짝 드러난 셈이다. ●고난을 ‘삶의 나침반’으로 김 목사는 사실 무너질 이유가 누구보다 많은 사람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두 누이를 잃었고, 폐병으로 죽음 바로 앞까지 갔다 왔다. 곡괭이에 눈을 찔려 안구가 탈구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아이를 먼저 보내는 참척(慘慽)의 아픔이야 더 말할 게 없다. 하지만 고통은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낮은 곳을 향해 걸어가게 만드는 나침반이 됐다. “병에 걸렸다고 인생을 놓아버릴 수는 없지요. 하나님이 주신 목숨이니 하나님 뜻대로 하실 거라 믿고, 그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인 거지요.” 그의 삶은 낮은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용산참사, 근로정신대 등 사회·정치적 비탄의 자리에 그는 언제나 함께했다. 꼬박 20년 간 남모르게 이어온 출산 장려 지원, 수백명의 미혼모에게 출산 비용과 산후조리 비용을 대주는 일도 이제야 조금씩 알려졌다. 인터뷰는 끝났다. 끝내 묻지 못한 게 있다. 그의 사랑 이야기다. 책에도 ‘아내’의 이야기는 나오지만, ‘목사님 사모’로서의 이야기가 전부다. 둘만의 이야기는 언젠가 ‘아내’의 입을 통해 듣기로 한다. 달의 이면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
  • 매력적인 반전 스릴러… ‘씁쓸한 맛’ 인과응보

    매력적인 반전 스릴러… ‘씁쓸한 맛’ 인과응보

    독특한 설정과 짜임새 있는 플롯, 빠른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스릴러 문학계에 한 자리를 굳건히 차지한 정해연 작가가 신작 소설집을 내놨다. ‘장편에서는 못 할 법한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단편 쓰기를 좋아한다”는 작가는 “지난날의 사진을 붙여둔 앨범을 톺아보는 기분으로 즐겁게”(‘작가의 말’ 중) 작품을 직접 골라 담았다. 오늘이 어제와 똑같기를 바라면서 직장 후배에게는 경멸의 눈길을 보내는 공무원 재우(‘불빛 없는 밤의 도시’), 아버지의 죽음에 얽혀 죄책감에 갇혀 사는 종국(‘보름’), 자신의 미모와 능력을 과시하는 의사 수정(‘아름다운 괴물’), 자기 연민에 빠져 약자를 괴롭히는 전형적인 악당 준구(‘인생, 리셋’)까지, 네 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피하고 싶은 유형이다. 표제작 ‘불빛 없는 밤의 도시’에서 재우는 어쩌면 그중 가장 평범하다. 영인시청에 근무하는 재우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겨우 호흡만 유지하고 있는 아내를 돌보다 빚만 늘었다. 어쩌다 의무적으로 낸 기획안이 재선을 노리는 시장의 눈에 들어 버렸다. “아무 의미 없이 싸지른 정액이,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을 ‘아빠’라 부르며 검은 눈동자를 굴리는 자식이 된 걸 보는 기분”(15쪽)이라고 느끼며 ‘소등 행사’ 캠페인을 벌이게 됐다. 종합병원 하나 남긴 채 영인시 전체에 불이 꺼지며 ‘지구 환경을 지킨’ 다음 날, 변사체가 발견됐다. 아무 관련이 없던 소등 행사와 살인 사건이 어느 순간 접점에 닿는 흐름이 꽤 흥미롭다. 이어지는 ‘보름’ 역시 기묘한 이야기와 유쾌하지 않은 현실이 뒤섞이며 흥미를 유발한다. 종국은 갑작스럽게 마주한 가족의 비밀을 풀어나가다 ‘나름의 자유’를 찾게 된다. 개운함도 잠시, 홀로 남은 종국은 어떻게 상황을 마무리했을까 궁금증이 남는다. “보름에는 신발을 모두 숨겨야 해. 자정이 되면 귀신이 내려와 신발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가져가거든. 그럼 신발을 잃은 사람은 죽게 된단다”(132쪽)라는 옛이야기가 탈출구가 됐을까. 이들이 난관을 맞닥뜨리면서 나락으로 치닫는다. 해석에 따라서는 인과응보일 터인데 ‘그래서 이제 평안해질 수 있나’라는 질문이 남아 뒷맛이 씁쓸하다. 단편마다 다른 분위기를 풍기면서 뿌려놓은 단서를 놓치지 않고 거둬들여 반전을 선사하는 게 공통된 동력이자 매력이다.
  • ‘29금 영화’ 속 성관계 즐기던 아내의 반전 결말…남편이 법정에 선 이유 [핫이슈]

    ‘29금 영화’ 속 성관계 즐기던 아내의 반전 결말…남편이 법정에 선 이유 [핫이슈]

    아내에 성폭행과 학대를 지속하다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남편의 재판 내용이 공개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24일(현지시간) “잉글랜드 월트셔의 스윈던에 살던 크리스토퍼 트라이버스(43)가 2017년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 태린 베어드(사망 당시 34세)의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면서 “그는 통제적이고 강합적인 행동과 두 건의 강간 혐의로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업가인 트라이버스는 부부관계 중 아내의 목을 벨트와 밧줄로 조르거나 금속 막대로 때리는 등 가학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사건 당시 아내는 스윈던 자택의 차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편은 아내가 사망했을 당시 집에 없었다며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아내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주범으로 남편을 지목했다. 검찰은 평소 남편이 아내에게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성관계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낀 아내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열린 재판에서 트라이버스는 “우리 부부는 합의 하에 가죽 수갑과 밧줄, 채찍, 안대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했다. 때로는 엉덩이를 찰싹 때리다가 점차 매질로 이어졌지만 이는 그녀도 좋아한 행위”라면서 “우리는 대부분 관계에서 도구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는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면서 “아내가 도구를 사용한 부부관계 과정에서 다친 적도 있지만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5)는 매력적이고 부유한 사업가(그레이 역)가 순수한 대학생(스틸 역)의 권력과 욕망 및 성인 취향의 수위가 높은 로맨스를 다룬 영화다. 남편은 배심웜들에게 “아내를 매우 사랑했으며 평소 그녀는 착하고 평범한 여성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측은 “사망한 아내는 사망 직전 주치의와 가정폭력 상담사에게 학대 피해를 호소하며 남편이 성관계에 쓰던 밧줄로 자신을 목 졸라 죽이려 했다고 털어 놓았다”고 반박했다. 법정에 선 남편의 변호인은 “의뢰인의 아내는 지루한 일상에 싫증을 느껴 거짓 주장을 꾸며낸 것이며, 의뢰인은 아내를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통제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현재 남편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다음 재판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 봄, 죽음을 사색하기 좋은 계절…영생 아닌 순환의 섭리 속으로 [오경진의 폐허에서 무한으로]

    봄, 죽음을 사색하기 좋은 계절…영생 아닌 순환의 섭리 속으로 [오경진의 폐허에서 무한으로]

    영원히 죽거나 살아있는 것은 없어생과 사 아닌 ‘따스함’만 영원할 뿐오늘날 우리의 마법은 ‘과학 기술’인간이라는 종의 이기심 담겨 있어거대한 순환, 정복 대신 ‘수용’해야“지나치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 온 것은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숲은 죽고 또 죽음으로써 살아 있기에 영원하지요.”(어슐러 르 귄, ‘어스시 연대기’ 중 ‘아즈버’) 길었던 죽음도 종말을 맞는다. 봄은 그런 것이다. 죽어있던 것들이 깨어난다. 마치 누군가의 부름을 받은 것처럼. 생명은 경이로운 현상이다. 세계를 죽어있는 채로 놔두지 않는다. 폐허 가운데서 기어이 풀 한 포기를 틔워낸다. 도시를 빈틈없이 꽉 채우는 게 문명의 속성이라지만, 거기서도 물끄러미 피어난 풀과 꽃을 보라. 그렇게 순진하게 제 자리를 주장하는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그 풀과 꽃을 보며 죽음과 살아있음에 관한 생각에 잠긴다. 무엇도 영원히 살아있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도 영원히 죽어있지 않다. 정교하고도 거대한 순환. 솜씨 좋은 기계공의 작품일까. 여기서 그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우리의 몫이 아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힘, 바로 따스함. 그것만이 영원하다는 것. 이걸 알아채야 한다. 이렇게 봄은 죽음을 생각하기 좋은 계절로 변모한다. 무엇이 죽었나. 무엇이 죽었기에 이토록 찬란한 생명이 나의 눈앞에 펼쳐지는가. ‘세계 3대 판타지 소설가’라는 상찬이 어색하지 않은 거장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를 오랜만에 다시 펼친다. 마법을 잃어버린 시대에 마법사의 이야기를 읽는다. 무슨 의미일까. 다만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마법을 잃어버린 건, 우리의 이성이 마법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기술이 기적에 가까웠던 마법을 가능한 것으로 바꿔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기적도 마법도 없다. 르 귄이 소설로 펼치고 있는 마법과 환상은 이제 새롭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뼈저리게 새겨야 할 메시지는 따로 있다. 순환과 균형의 회복, 이것이 마법사의 책무라는 깊은 통찰이다. 종교의 본질이 개인의 복을 구하는 게 아니듯 마법 역시 마법사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게 아니다. 인간 때문에 어지러워진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 세계를 세계 그 자체로 두는 일. 거대한 순환과 균형을 ‘정복’하지 않고 그저 ‘수용’하는 태도. “나는 내가 죽을 때 다른 필멸의 존재들처럼 세상의 더 위대한 존재에 다시 합쳐지리라고 믿어요. 풀이나 나무나 짐승들처럼.” 긴 연대기의 끝에서 여주인공 테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과연 가능한 경지인가. “개나리/ 진달래/ 활짝 핀 날은 해마다/ 흐리고/ 바람불거나/ 비 나린다/ 꽃은 떨어져 짓밟히고/ 향기는 젖어 독가스처럼 퍼진다/ 날이 개면/ 봄은 이미 가 버리고/ 농약 뿌린 가지마다/ 똑같은 열매가 달린다/ 젊음을 놓치고/ 짓밟힌 꽃과 떨어진 열매는/ 썩어서 오히려/ 거름이 된다고 하자/ 가을에 익은 탐스런 열매는/ 그러나 누가 따먹느냐”(김광규, ‘꽃과 열매’ 전문) 생(生)이 약동하는 봄을 우리의 마음은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기어이 어깃장을 놓는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주는 기쁨을 그저 누려도 좋으련만. 흐리다고, 바람이 분다고, 비가 내린다고 아쉬워한다. 그런 마음은 꽃을 짓이기고 그것의 향기를 ‘독가스’로 치환한다. 꽃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똑같은 열매’가 자라나길 욕망한다. 모든 열매가 모양이 비슷하게 예뻤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당도도 균일했으면 좋을 것이다. ‘농약’은 그걸 가능케 하는 오늘날의 마법이다. 농약 덕분에 우리는 똑같은 열매를 똑같은 당도로 먹을 수 있다. 요즘에는 손가락 몇 번 까딱이면 집 앞까지 배달해 주니, 이것이 마법이 아니라고 말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게 과연 마법사가 할 일인지는 다시 생각할 문제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기꺼이 썩어서 거름이 된다. 인간은 어떤가. 죽을 준비가 돼 있는가. 죽음을 품고 더 큰 존재로 포섭될 수 있는가. 아니 그전에, 과연 풀과 나무와 짐승이 우리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 “극우 세력은 국가, 종교, 인종 같은 이데올로기의 깃발 아래 모여들지만, 그 깃발을 세우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자본주의 경제의 지지대가 필요하다. 유럽 극우 정당의 부상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 패권 전쟁의 배후에도, 자본주의 경제와 극우 이데올로기의 위험한 밀월 관계가 숨겨져 있다.”(박지형,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 김광규 시에서의 ‘농약’을 오늘날 우리가 의존하는 ‘화석연료’로 비약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매한가지로 인간이라는 종의 이기심이 담겨있다. 생태학자 박지형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부상하는 극우 정치가 왜 기후위기라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는지 그 구조를 폭로한다. 그들은 기후위기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낸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던 ‘달콤한 미래’를 포기하고 철회하는 일이라서다. 그리고 나아가 욕망만으로는 세계가 더는 작동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라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존엄하고 조용한 죽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가, 인간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활력이 넘치는 얼굴로 “드릴, 베이비 드릴”을 외치는 정치인의 얼굴을 본다. 끊임없이 죽음을 유예하는 우리가 과연 담담히 순환의 섭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영생을 탐한 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우리 문명의 끝은 어떨까.
  • [정은귀의 시선] 거짓말, 거짓말

    [정은귀의 시선] 거짓말, 거짓말

    우리는 늙은 거지처럼 구부정하게 자루를 메고 쿨럭이며 진창을 걸었다 따라오는 섬광을 등지고 절뚝이며 먼 쉼터를 향해 힘겹게 걸어갔다 졸며 행군했다 군화도 없이. 피 묻은 발로 절뚝이며, 모두 눈먼 절름발이 피로에 취해 뒤에서 조용히 떨어지는 가스탄 소리도 못 들었다. 가스다! 가스다! 서둘러! 허둥지둥 황홀경, 서툰 방독면을 겨우 쓰는데 (중략) 희미한 창문 너머 짙은 초록빛 초록바다 속인 듯 그가 익사하는 걸 봤다 -W 오언, ‘Dulce et Decorum Est’ 중 영국 시인 윌프레드 오언의 시다. 오언은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시를 많이 썼는데 부상에서 복귀한 후 프랑스 전선에서 사망한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1차 세계대전이 휴전협정을 맺기 1주일 전이었다. 오언의 어머니는 아들 사망 소식과 전쟁 종식 소식을 같은 날 받는다. 참호전이 벌어지던 당시 전장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해 주는 시를 읽어 본다. 졸며 행군하다 염소가스 공격을 받은 병사들, 서둘러 방독면을 쓰지만 치명적인 독가스는 이미 폐에 심각한 출혈을 일으켰다. 시 말미에 시인은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선전가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이 전장의 현장을 보고 들어보면 젊은이들에게 ‘그 오래된 거짓말’을 못할 거라고. 시인은 호라티우스의 시 구절을 라틴어 그대로 인용해 제목으로 삼는다.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달콤하고 명예롭다”라는 뜻. 오언이 이 시를 어머니께 편지에 동봉해 보내고 세상을 떠났기에 전장의 참상은 이렇게 기적적으로 세상에 남아 전해진다. 전쟁을 미화하는 목소리 속에서 전쟁은 미치광이들의 오래된 거짓말이라고 시인은 비스듬히 폭로한다. 애국적인 수사는 죽은 이의 사후에 덧씌워지는 것이니 믿지 말라고. 우리가 잊고 있던 전쟁의 고통스러운 감각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시를 아프게 읽으며 지금의 전쟁을 바라본다. 비디오게임처럼 인공지능(AI)이 타격점을 맞히는 현대의 전쟁은 고통스러운 감각이 소거되었다. 현실은 이미지로 축소된다. 사람들은 죽어 가지만 고통스러운 몸은 재현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죽음은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지운다. 오늘날 전쟁의 언어는 경험에서 감각을 지운다. 군사작전 중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이 ‘부수적 피해’라니, 개인의 고통은 입력되지 않는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AI라는 기술에 의지해 드론과 원격 타격 중심으로 돌아가는 전쟁은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그 책임소재를 분산시킨다. 알고리즘을 설계한 사람인지, 공격 명령을 내린 사람인지, 알고리즘 자체인지, 추적 불가능한 구조 안에서 책임과 윤리의 자리는 증발한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 가는데도 고통이 입력되지 않는 기이한 시절에 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오언을 다시 읽는 것은 그런 이유다. 지워진 감각을 호출하면서 보이지 않는 죽음, 들리지 않는 비명, 기록되지 않는 시간을 일깨우는 일. 오언이 그 옛날, 질척이는 참호에서 피를 토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쓴 이 시는 전쟁을 부추기는 ‘오래된 거짓말’을 폭로했다. 오늘의 시인은 기술적으로 완곡하게 표현되는 기만의 언어를 해체하고 감각을 일깨우는 시를 써야 한다. 누가 죽였고 왜 죽어야 하는지, 인간이라면 마땅히 져야 하는 책임의 자리를 다시 묻고 기입하고 숫자와 알고리즘에 가려진 고통의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감각이 둔해지면 쉽게 잊는다. 지워진 진실을 복원하는 문학의 자리, 상실의 고통을 몸으로 앓는 시의 언어는 그래서 지금 더 절실하다. 죽음과 데이터 사이, 타격과 성공률 사이, 인간과 공격 목표 사이, 연산으로 소거되지 않는 이 세계의 구체적인 몸을 응시하는 일, 시의 언어는 거기서 나와야 한다. 곧 열리는 DMZ세계문학페스타에 초대된 한 작가의 여정을 그려 본다. 팔레스타인 서안 지역을 나와 포탄 떨어지는 오만공항과 두바이공항을 거쳐 그녀가 우리 곁에 무사히 올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나 고통의 감각을 나누며 평화와 희망의 연대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때쯤엔 거짓말처럼 전쟁이 끝나 있길 바라 본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 ‘충성’의 끝은 정신병원?…푸틴 지지하던 친정부 활동가의 최후 [월드피플+]

    ‘충성’의 끝은 정신병원?…푸틴 지지하던 친정부 활동가의 최후 [월드피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던 친정부 인사가 돌연 변심한 후 정신병원에 갇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러시아의 변호사이자 블로거인 일리야 레메슬로(42)가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정신병원에 수용됐다고 보도했다. 오랜 기간 친정부 인사로 활동해온 그는 푸틴 정부를 비판하는 인물들을 목표로 법적, 여론으로 공격하는 역할로 명성을 얻어왔다. 특히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힌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공격하는 데 앞장서며 여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까지 했다. 나발니는 극단주의 단체 조직 및 자금 지원 등 여러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하던 중 2024년 2월 옥중에서 의문사했다. 이처럼 오랜 시간 푸틴 대통령의 나팔수이자 공격수를 자처하던 그가 돌연 지지를 철회하고 변심했다. 레메슬로는 지난 17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블라디미르 푸틴 지지를 그만둔 다섯 가지 이유’라는 글을 올려 입장을 밝혔다. 그는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막다른 길에 놓인 전쟁으로 러시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경제를 파탄시키고 인터넷과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부패가 만연하도록 방치했다”면서 “푸틴은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며 사임하고 전쟁 범죄자로 재판받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러시아 온라인상에서 큰 파장이 일었으며 초기에는 그의 계정이 해킹당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레메슬로는 영상과 영국 언론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일축했다. 그는 “나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았으며 그저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푸틴의 이익은 러시아와 우리 모두의 이익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나는 어떤 재판에도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이 악순환을 끊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왔다. 현 정권을 지지하고 일조한 사람으로서 나에게는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레메슬로의 비판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온 것을 깨뜨린 드문 사례”라면서 “러시아 당국은 과거에도 저명한 민족주의자들을 포함한 내부 갈등에 대해 가차 없이 대처해 왔다”고 짚었다.
  • “엄흥도 할아버지 충절 이제라도 알려져 다행”

    “엄흥도 할아버지 충절 이제라도 알려져 다행”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묘소“많은 사람들 관심 가져줘 감사종친들 모여 성역화 추진 계획” “영월 엄씨 선조 엄흥도의 충절이 이제라도 빛을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역사박물관 인근에서 19일 만난 영월 엄씨 충의공계 20대손 엄근수(61)씨. 37년째 포스코에 재직 중인 그는 누적 관객 1400만명 돌파를 앞두는 등 흥행몰이 중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캐릭터 ‘엄흥도’ 가문의 종손이다. 엄씨는 선조인 엄흥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엄흥도는 왕위를 빼앗긴 뒤 강원 영월로 유배된 조선 6대 임금 단종(1441~1457)이 숨지자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치된 단종의 주검을 수습한 인물이다. 엄씨는 “영화를 통해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행적이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 기쁘다”며 “다만 실제 할아버지의 묘는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소재하고 있어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자 일가 친척들과 뜻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인기를 얻으며 강원 영월 소재 묘로 발길이 몰리고 있지만 엄흥도의 후손들은 ‘진묘’ 소재지를 군위라고 밝히고 있다. 김광순 택민국학연구원장 연구팀은 앞서 2009년 영월 엄씨 족보 및 기록물, 탐문을 통해 엄흥도 묘 소재지로 군위를 꼽았다. 엄씨는 어릴 적부터 성묘와 벌초 등을 할 때면 할아버지 사연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유배 시절 단종과 할아버지 사이의 관계와 단종 죽음 이후 시신 수습까지 아버지께 들었던 그대로 영화에 나왔다”며 “‘먹을 건 못 챙겨도 족보는 챙겨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이제서야 가슴에 와닿는다”고 말했다. 영월 엄씨 충의공계 종친들은 오는 20일 군위에 모여 엄흥도 진묘 성역화를 위한 제안에 나설 계획이다. 이제라도 묘 소재지를 정확히 밝히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조상을 모시기 위해서다. 끝으로 엄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조상을 알린 것이 영화 제작자의 몫이었다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것은 후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 고용 유연성 꺼낸 李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 옳지 않아”

    고용 유연성 꺼낸 李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 옳지 않아”

    “‘해고는 죽음’ 노동계 불안 없애려면수혜 기업이 사회안전망 비용 부담”채용 공고 때 임금 정보 제공 추진수보회의선 ‘경제 전시 상황’ 강조 이재명 대통령은 19일 기업이 원하는 ‘고용 유연성’ 확대와 관련해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일방적 적용보다는 노사를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된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새 정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1기 출범을 맞아 토론회를 주재하며 노사간 현안인 고용 유연성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사측에서는 고용의 경직성을 많이 지적한다”며 “노동자 입장에선 ‘해고는 죽음이다, 고용 유연성은 일획이라도 양보할 수 없다’고 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다만 “노동계 측에 힘이 충분히 확보되지도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하는 건 옳지 않다”며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 중 하나는 ‘해고가 죽음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 즉 사회 안전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사회 안전망 강화에는 비용이 든다”며 “고용 유연화에 따라 혜택을 보는 기업 측에 상응하는 부담을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고용 유연성 등 노사 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신뢰 회복의) 첫 출발이 상대의 상황이 어떤지, 서로 마주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이라며, 경사노위 위원들을 향해 “초기에 결과물에 너무 연연하지는 말자. 신뢰를 회복하는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김지형 경사노위 위원장을 향해서는 그동안 노동계는 경사노위 등 기구를 만들어 강제로 의결을 해 온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는 점을 거론하며 “이번에는 의결을 하지 말자. 누군가를 압박하거나 하지 말고 일단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선 기업 채용 공고 시에 임금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점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한다스리 국제의료재단노조 위원장은 “수많은 채용 공고에서 임금에 대한 부분은 ‘회사 내규에 따름’, ‘면접 후 협의’라고 표기돼 지원자들이 쉽게 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아주 일리 있는 말”이라며 “예를 들면 10%를 벗어나지 않는 평균 정도는 (공개가) 필요한 것 같다”고 호응했다. 이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업별 임금 정보 제공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우리나라는 기업별로 교섭하고, 일종의 기업 영업 비밀 문제가 있다”며 “정부에서 임금 정보를 취합해 산업별로 표준적인 임금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노사 협상을 촉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동 상황과 관련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청와대와 모든 정부 부처는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점을 엄중한 자세로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지금은 속도가 생명”이라며 “사실상 ‘전쟁 추경’이라고 할 이번 추경도 민생 경제의 충격을 덜고, 경기 회복의 동력을 계속 살려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편성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 삶과 죽음의 ‘강박적 집착’… 허스트, 인간의 욕망을 묻다

    삶과 죽음의 ‘강박적 집착’… 허스트, 인간의 욕망을 묻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등 50여점40년 작품 세계 폭넓게 보여줘英 ‘리버 스튜디오’ 재구성 공간미완의 작업… 과정 자체에 주목 절단된 소머리와 파리들,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해골,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박제된 상어…. 매번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자극을 극대화한 전시로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1)가 서울에 상륙했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은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전시를 20일부터 선보인다. 지난해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의 전시로 94일간 53만 3000여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던 현대미술관이 야심 차게 내놓은 블록버스터급 해외 작가 전시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허스트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약 40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한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 그 틈에서 발현되는 강박을 진열장에 풀어놓는다. 전시는 영원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와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의 조합으로 화제가 된 ‘신의 사랑을 위하여’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오브제를 콜라주한 초기 작품 ‘작고 붉은 바퀴로부터의 확장’, 회전하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부어 제작해 우연과 무작위성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 ‘스핀 페인팅’ 연작, 삶과 죽음을 처절하게 직면하게 하는 상어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등도 만날 수 있다. 또 인간의 생명을 지속해 주리라는 과학적 믿음을 상징하는 약장이 마치 종교적 성물처럼 전시되는가 하면, 박제된 나비를 사용한 삼면화를 통해 아름다움의 잔혹한 실체를 마주하게 만들기도 한다. 허스트는 골드스미스 대학교 재학 중이던 23세에 직접 기획한 그룹전 ‘프리즈’(1988)를 통해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전시는 낡고 방치된 부두의 창고에서 개최됐는데, 참여 학생들이 공간을 직접 연출하고 기업 후원으로 도록을 만들어 홍보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때 모인 작가들이 ‘YBA’라 불리는 새로운 예술가 세대의 주축으로 떠오르면서, 이 전시는 영국 산업의 폐허 위에서 영국 미술의 지형을 바꾼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꾸준히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과 욕망에 주목했다. 인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영생을 향한 욕망,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 의학과 과학에 대한 맹신, 수집과 통제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갖기도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사빈 학예연구관은 “죽음 자체를 전시함으로써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재정의한 작가”라며 “종교를 대체한 과학, 과학과 결탁한 자본 등을 숨기지 않고 직접 예술의 소재로 내세운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행보에 있어서도 금기와 관례를 깨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음반을 낸 이력도 있다. 18일 검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기자간담회 현장을 찾은 허스트는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제가 쌓아온 내용이 굉장히 잘 전시됐다”며 “작품에 제가 하고픈 메시지가 다 담겼다”고 말했다. 전시장 말미에는 런던에 위치한 허스트의 작업실 ‘리버 스튜디오’를 재구성한 공간이 꾸려졌다. 이 공간은 미완의 작업들이 전시돼 있으며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는 전시장과는 달리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그 현장을 본다면 “세상에, 다음엔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새로운 작품 계획을 들을 때 종종 했던 말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 중재자 잃은 이란 ‘가혹한 복수’ 다짐… 강경파 더 득세할 듯

    중재자 잃은 이란 ‘가혹한 복수’ 다짐… 강경파 더 득세할 듯

    ‘안보수장’ 라리자니 사망 공식 확인페제시키안은 성명 내고 보복 천명사전 검증 안 된 강경파 등장 가능성이스라엘 “정보장관도 제거 완료” 이란이 안보 수장인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의 사망을 공식 확인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가혹한 복수’를 다짐했다. 알리 하메네이 사후 전시 이란의 안보·군사라인을 총괄하던 실권자가 제거되면서 강경파가 더욱 득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라리자니 사망 발표 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성스러운 이란 땅에서 억압받았지만 용감했던 순교자들의 피로 자신의 손을 물들인 테러리스트 범죄자들을 기다리는 건 가혹한 복수”라며 보복을 천명했다. 이스라엘군이 라리자니와 함께 제거했다고 밝힌 골람레자 솔레이마니 바시즈 민병대 총지휘관의 사망 사실도 혁명수비대(IRGC)가 확인했다. 라리자니는 강경파이면서도 이란 내부에서 중재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외교 소통 창구 역할을 했던 그가 사망하면서 전쟁의 외교적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CBS뉴스는 라리자니가 전쟁 와중에도 외부와 소통을 유지한 몇 안 되는 지도부 인사로 전쟁 자체와 전쟁을 둘러싼 정치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CBS는 그가 “이란에서 위기의 양면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사였는데 그가 없다면 그런 능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리자니 사망으로 이란의 전쟁 수행 능력이 당장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무엇보다 지도부 내 온건파와 강경파를 중재할 수 있었던 ‘균형추’가 사라지면서 군부에 더욱 힘이 실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NYT는 IRGC 전 사령관이자 국회의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같은 강경파가 득세할 수 있다고 짚었다.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책임자인 사남 바킬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라리자니의 죽음으로 검증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강경파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18일 전날 공습으로 에스마일 카티브 이란 정보부 장관를 제거했다고 밝히며 주요 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을 이어갔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인 에피 데프린 준장은 “누구든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며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도 제거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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