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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난종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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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양주 봉선사 동종’ 63년 만에 국보 됐다

    ‘남양주 봉선사 동종’ 63년 만에 국보 됐다

    조선 전기 동종(銅鐘·구리로 만든 종)을 대표하는 경기 남양주시 봉선사 동종이 국보가 됐다. 국가유산청은 1963년 보물로 지정한 지 63년 만에 봉선사 동종을 국보로 승격했다고 23일 밝혔다. 봉선사 동종은 조선 제8대 임금인 예종(재위 1468~1469)이 아버지인 세조(재위 1455~1468)의 명복을 빌기 위해 광릉 인근에 봉선사를 조성하면서 함께 제작해 봉안했다. 중국 동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을 일부 수용하면서 한국 특유의 문양 요소를 더해 조선 전기 동종 양식을 완성한 대표 유물로 평가받는다. 당대 제일가는 문장가인 강희맹(1424~ 1483)이 종에 대한 글을 지었고, 정난종(1433 ~1489)이 글씨를 썼다. 국가유산청은 “제작 당시의 봉안처인 봉선사 종각에 그대로 있고, 균열이나 구조적 결함이 거의 없는 데다 보존 상태 또한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고려시대 상감 청자인 ‘청자 상감쌍룡국화문 반’은 보물로 지정됐다. 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물결 흐름을 형상화한 무늬와 두 마리 용이 안쪽 바닥에 새겨져 있다. 조형적으로도 탁월해 왕실용 청자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역장을 쓰면 역적이 난다?/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역장을 쓰면 역적이 난다?/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추석 성묘를 다녀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제 참석 연락이 온다. 보통 시제는 음력 시월에 많이 지낸다. 요즈음은 앞당겨 구월에 지내거나 아예 시제 날짜를 공휴일로 고정해 지내는 경우도 많다. 문중 시제에 참석하다 보면 선대 묘를 위에 쓰고 그 아래로 후손들의 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대인 경우를 종종 본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 군포시 속달동의 경기도 지정 문화재인 세조 때 명신 동래 정씨 정난종(1433~1489) 묘역이다. ‘동래정씨가묘’로 불리는 이 묘역은 능선 맨 아래에 정난종의 묘를 쓰고 그 위로 큰아들, 둘째 아들, 손자 순으로 안장한 특이한 형식이다. 후손이 조상보다 위에 앉아 있는 격이다. ‘군포시 속달동 동래 정씨 동래부원군 종가의 역사와 문화’에 의하면 조선시대 동래 정씨가 정승의 자리에 오른 17명 중 13인이 정난종과 그의 둘째 아들 영의정 정광필의 후손이다. 철종 때 강화도령을 모시고 온 영의정 정원용과 그의 아들 위당 정인보 선생도 이들 후손이다. 이처럼 선대보다 후대를 위에 묘 쓰는 양식은 역장(逆葬)이고 금기시했다. 이렇게 많은 정승과 명신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후손들과 호사가들은 선조 때 정여립 모반 사건을 두고 역장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역장을 하면 역적이 난다? 아니다. 율곡 이이(1536~1584)의 경기 파주시 자운서원 가족묘에는 아래에 부모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합장묘가, 그 위에 이이의 맏형 이선과 부인 곽씨 합장묘가, 맨 위에 이이와 부인묘가 있다. 조선 중기 대제학을 지낸 이정구(1564~1635) 묘역도 맨 위가 이정구의 장자이자 인조 때에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낸 이명한의 묘이고, 그 아래가 이정구의 장손으로 효종 때에 예조판서·대제학을 지낸 이상일의 묘이며, 그 아래가 이정구와 부인 권씨의 합장묘로 역장이다. 충남 논산시 고정리에 있는 예학의 거장 사계 김장생(1548~1631)의 묘도 광산 김씨 중흥의 조상인 7대조 조모 양촌 허씨의 묘소 위에 쓴 역장이다. 또 양천 허씨의 아들 김철산 묘도 남편이 아래에 있고, 부인 묘가 위에 있는 상하 쌍분이다. 이 외에도 역장을 쓴 예는 많다. 왜 선대를 아래에, 후대를 위에 쓰는 역장을 행한 것일까. 사실 조선 중기까지는 역장이란 의미가 없었다. 묏자리를 위쪽, 아래쪽보다는 좋은 자리인가 아닌가가 판단의 기준이 됐다. 먼저 좋은 자리에 부모를 모시고 그 위에 자신을 비롯해 순서에 따라 안장하였던 것이다. 즉 명당이란 풍수적 관념보다는 부모 곁에 묻히고자 하는 의식이 강했다. 원래 세종의 영릉도 신하들이 명당을 찾아 능을 쓰고자 했으나, 부모 곁에 묻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세종의 주장으로, 부왕 태종이 묻힌 헌릉 옆 능선 자락에 묻혔다. 이렇게 부모 묘 옆에 묘를 쓰다 보니 각기 떨어져 쓰는 별장(別葬)보다 자연스럽게 동일 지역 내 안장하는 족장을 행했다. 태종도 족장을 권장하려고 같은 혈 내에 안장하는 동혈장사법을 시행했다. 태조 이성계도 “고려의 능침을 각각 다른 지역에 써서 성묘가 불편하고, 관리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비가 많이 들며, 손이 미치지 않는 관계로 누구의 것인지 판명키 곤란하고, 또한 묘가 각지에 산재함으로써 국비가 많이 드니 일족의 사망자는 같은 산에 장사하라”며 족장을 권장했다. 이런 역장과 족장 풍습은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쇠퇴했다. 이는 17세기 후반까지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제사 지내는 윤회봉사와 아들·딸 구별 없이 똑같이 나누는 균등상속의 감소, 대신 장남 단독봉사와 재산상속도 장자에게 더 주는 차등상속제로의 변화, 여기에 장자 계승을 우선하는 종법제의 확립, 그리고 발복 풍수설의 영향으로 산 자는 군거해야 하지만, 사자는 독거가 가능하다는 논리로 족장이 아닌 각장(各葬)이 성행하면서 역장을 금기시해 후손을 조상의 묘 위쪽에 쓰는 것을 불경으로 여겼다.
  • [문화 플러스]

    ‘베테랑’ 런던亞영화제 개막작에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이 2015 런던아시아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됐다. 류 감독과 강혜정 프로듀서는 오는 23일 영화 상영 후 크리스 후지와라 수석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런던 관객을 직접 만날 예정이다.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영국 런던 오데온 레스터스퀘어 극장에서 개막하며 아시아 5개국 7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동래정씨, 고전적 3500점 기증 위당 정인보 선생의 후손인 동래정씨 가문이 500여년간 내려온 고전적(고서적과 고문서) 약 3500점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증한다. 19일 연구원에 따르면 동래정씨 가문이 내놓은 고전적은 과거 합격증인 ‘홍패’, 17~20세기 초 역대 종가 인물들의 임명장인 ‘교지’, ‘동의보감’ 25책 완질본, 정난종의 묘역에 세워진 신도비문을 탁본해 앨범으로 구성한 ‘문익공신도비명’ 등 역사적 가치가 큰 자료들이다.
  • [씨줄날줄] 숭례문 현판/함혜리 논설위원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1394년 한양 천도 후 새 도읍지의 면모를 갖추는 역할을 맡았다. 종묘와 사직, 궁궐이 들어설 자리를 정했을 뿐 아니라 각종 궁궐 및 전각, 거리의 이름을 손수 지었다. 그는 1395년 도성축조도감 책임자가 되어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약 17㎞의 성벽도 쌓았다. 성곽의 4대문을 건설하면서 이름에는 유교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나타나도록 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북쪽의 관문은 홍지문(弘智門)이라 이름지었다. 풍수지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현판 글씨를 통해 보완했다. 숭례문의 경우 남쪽에 있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불로 다스리기 위해 다른 문과 다르게 세로로 쓰도록 했다. 숭(崇)자는 불꽃이 위로 타오르는 듯한 모양이고, 례(禮)자는 오행으로 화(火)이며 방위로는 남쪽을 가리킨다. 가로로 하면 불이 잘 타지 않기에 세로로 세워 불이 잘 타도록 비보(裨補)를 쓴 것이다. 숭례문 현판 글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오랜 논쟁거리다. 태종의 큰아들로 한때 세자였던 양녕대군이 썼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는 “양녕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으나 글을 알지 못하는 척했다. 지금 남대문의 숭례문 석자는 그가 쓴 글씨”라고 했다. 한편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숭례문 편액은 정난종이 쓴 것”이라고 했다. 정난종(1433~1489)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서예에 뛰어나 비석이나 종에 글을 새겼다. 추사 김정희는 ‘완당 전집’에서 “지금 숭례문 편액은 신장의 글씨”라고 적었다. 신장(1382~1433)은 대제학을 지냈으며 초서와 예서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장중하면서도 단아한 서체로 이름을 날린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썼다는 설도 있으나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1929년 9월호는 “안평대군의 글씨는 오해요, 중종 때 명필 유진동의 글씨”라고 기록했다. 옛 기록의 서술이 엇갈리는 것은 태조 7년(1398년) 준공된 숭례문이 크고 작은 화재로 손상되면서 세종 30년(1448년) 개축과 성종 10년(1479년) 중수를 거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장대함과 우아함을 갖춘 숭례문 서체의 수려함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화재 와중에도 현판을 구해낸 것은 천만다행이다. 현판은 2009년 7월 완전 복원됐다. 한국전쟁 이후 수리과정에서 일부 글자 획이 변형된 것은 19세기 탁본을 바탕으로 원형에 가깝게 살려냈다.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숭례문 현판이 공개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수리산 관통로 제2의 북한산?

    경기 남부지역의 진산인 군포시 수리산을 관통하는 터널건설 계획이 알려지면서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자칫 사패산 터널 등과 관련해 공사가 장기간 중단되고 있는 서울외곽순환도로의 ‘북한산 터널반발 사태’가 재연될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의 터널은 민자유치 사업으로 오는 2005년 착공할 예정인 수원∼광명간 수도권 서부고속도로 노선의 일부로,산본신도시 인근의 수리산에 터널 7곳(4500m)과 교량 5곳을 건설하도록 설계돼 있다.특히 천년 고찰인 수리사 인근 주봉인 수암봉 구간에 4개의 터널(1770m)이 집중 건설된다. 건설교통부는 현재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광명시 소하동간 총연장 26.34㎞의 고속도로 신설노선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군포지역 주민과 시민·환경단체는 11일 수원∼광명간 고속도로 노선이 수리산을 관통하면 생태계 파괴는 물론 정난종·정광필 선생 묘역 등 각종 기념물의 훼손 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과 군포 YMCA 등 시민단체들은 12일대책위를 구성,종교단체들과 연대해 본격적인 반대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윤여창 푸른희망 군포21실천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날 “이 고속도로가 건설되면 수리사에서 발원돼 반월천을 거쳐 서해안으로 유입되는 거대한 물줄기가 끊기는 등 환경파괴가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서울외곽순환도로가 건설될 때도 이같은 환경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불교계도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수리사가 도로 예정지 인근에 자리하고 있어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이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대응방안을 모색한 뒤 수렴된 의견을 건교부 등에 제출하기로 했다.군포시도 지역 문화재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민간사업자인 고려산업개발측에 노선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의왕시 초평동 주민들은 인근 구봉산 훼손과 도립생태공원으로 지정될 왕송저수지의 환경 파괴를 우려하고 있다.주민들은 최근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고속도로 초평동 통과반대 이유서’ 등을 건교부에 제출했다.대책위 관계자는 “초평동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수십년 동안 각종 불이익을 감수하고 살아오다 최근 집단취락지구 중 우선해제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라며 “도로가 건설되면 환경이 파괴되고 마을이 분리되는 등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된다.”고 반발했다. 군포시 관계자는 “고속도로가 수리산을 피할 경우 도심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토지보상비가 늘어나게 돼 노선변경이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1번국도의 교통량을 흡수하기 위한 대체도로 건설이 시급하다.”며 “타당성 검토와 함께 지역 여론을 최대한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민자유치로 오는 2009년 완공될 예정인 서부고속도로는 의왕∼과천 고속도로,천안∼평택 고속도로와 연결돼 서울∼천안간 교통량을 분산할 새로운 축을 형성하게 된다. 수리산은 경기 군포시와 안산·안양시에 걸쳐 있는 해발 475m의 산으로 빼어난 경치에 정난종 선생의 묘 등 경기도 기념물과 수리사 등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군포시 쪽으로 인구 12만여명의 산본신도시가 들어서 있어 주민들의 삼림욕장으로 각광받고 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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