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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을 품은 절집… 속세는 지워지고 산세만이 남았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세월을 품은 절집… 속세는 지워지고 산세만이 남았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여유로운 가난’이 머문 고찰본래의 고요함은 변함없어147개 철계단 하나하나에목탁 같은 울림이 번져온다화암사 경내 마당서 올려본네모난 하늘이 주는 평온함송광사 사천왕상 위엄 압도도예공방 봉강요 들러볼 만“절로 가는 길은 가난해야 제격이다. 상점도, 술집도, 모텔도 없고, 하다못해 가로도 중앙선도 없는 가난한 길……. 그래야 가는 사람도 가슴에 품었던 세간의 옥매듭을 풀어버리고 갈 것 아닌가?”심인보 ‘곱게 늙은 절집’ 중에서봄이 봄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세상 푸른 오뉴월의 초록이 그저 녹색으로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날 찾아가는 곳이 있는지? 팍팍한 마음에 여유가 되어주는 장소 말이다. 완주 화암사는 그런 절집이다. 누각 툇마루에 앉아 볕만 쬐다가 와도 족하다. 부처님의 자비는 한 걸음 더딘 이들을 위해 가난하게 존재하기도 한다. ●사찰과는 다른 ‘절집’ 절집은 사찰과 같은 말인데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심인보 작가의 책을 빌리면 화암사는 “여유로운 가난”이 있는 절집이다. “분칠인지 분장인지 알 수 없는 흉한 몰골”을 하고 있지 않다. 불심을 과시하지 않고 너그러이 보시한다. 그 무심한 다정과 묵묵한 환대야말로 부처의 자비이고 자애일 터. 그러므로 사찰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찰이 되지만 절집은 나이 먹어 그저 잘 늙은 절집으로 족하다. ‘곱게 늙은 절집’(지안출판사)은 2007년에 나온 책이다. 기업이미지통합(CI) 디자이너였던 심인보 작가는 이제 사진작가로 더 유명한데, 그가 찾은 전국 25개 절집의 글과 사진이 실렸다. 영주 부석사, 해남 미황사 같은 잘 알려진 절집도 있지만 포항의 오어사나 남원의 선국사 같은 숨은 절집도 있다. 그리고 화암사를 그 첫 번째 절집으로 소개한다. 내가 사랑한 절집을 말할 때 작가와 마찬가지로 화암사를 빼놓지 않는다. 그럼 “구례 화엄사?” 하는 답이 돌아온다. 완주 화암사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만큼이나 아름다운, 시(詩)적인 절집이다. 시인이 보증한다. 화암사를 세상에 알린 건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이다. 시집 ‘그리운 여우’(창비)에 수록된 시다. 시인은 화암사로 발을 들이는 순간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행에 이르러는 자신이 사랑하는 화암사 “잘 늙은 절 한 채…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며 마친다. 1997년 출간한 시집이니 스마트폰이 나오기 훨씬 전이다. 지도로 전국을 여행하던 시절(그런 시절이 있었다)이므로,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해도 큰 차이는 없었겠다. 아마 시를 읽고 처음 화암사를 찾은 이들은 꽤나 투덜거렸을지 모를 일이다. 고생 끝에서야 다다랐을 것이다. 하지만 화암사에 이르러서는 시인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채지 않았을까. ●모두의 ‘화암사 내 사랑’ 심인보 작가 역시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고 화암사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책이 나온 2007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안도현 시인이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를 선보인 지 10년 남짓 지난 후다. 그러므로 ‘곱게 늙은 절집’은 10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선 화암사에 대한 작가의 찬가다. 내가 처음 화암사를 찾았던 건 심인보 작가가 다녀가고 또 10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나 역시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을 읽고는 애가 닳았다. 시집이 나오고 약 20년이 지났으니 행여 그 모습이 변했을까 조급했다. 화암사에 다다라서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절집은 안도현 시인과 심인보 작가가 보았던 그대로 잘 늙어 가고 있었다. 10년, 20년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을 지켜가는 절집이 얼마나 다행하던지. 덕분에 낡고 바랜 툇마루에 앉아서는 잘 산다는 것 무엇일까, 잘 늙는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했다. 탐욕 없이 덤덤하게 제 몸 안에 세월을 녹이는 것일 텐데, 조금 더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겠거니 하며 화암사를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 찾은 화암사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이니 소란스러울 법도 하다만 화암사 가는 길은 한결같다. “봄날의 게으른 햇빛이 도로 위에 졸고” 좁은 시골길은 구불구불 흐른다. 싱그랭이마을의 500년 된 느티나무 고목 곁을 지나고 또 2㎞ 남짓을 올라가자 간신히 주차장에 이른다. 거기서부터 다시 불명산 계곡과 숲길을 걷는데, 곧 폭포와 기암 위로 놓인 147개의 철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목탁 같은 울림이 발끝에서 숲으로 번진다. ‘화암사중창기’에는 나무하는 아이나 사냥하는 남자 어른도 쉽게 가기 어려운 절이라고 했다. “고요하되 깊은 성”은 철계단이 없던 조선 시대에는 암벽 등반에 가까웠겠다. 안도현 시인이 사랑한 절집답게 시인의 글귀 또한 마중한다. 그는 ‘화암사 내 사랑’ 외에 ‘화암사, 깨끗한 개 두 마리’라는 시를 썼다. 또 ‘잘 늙은 절, 화암사’라는 산문에서 화암사를 알게 된 과정을 밝힌다. 시인은 누군가의 “귓속말”을 듣고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을 찾았는데 그 귓속말이 글이 된 셈이다. 시 속에는 혼자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역력했지만, 화암사 우화루가 보일 즈음에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고된 길을 알면 지레 포기할까 염려해 한 말은 아니었을까 싶다. 애초에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면 시를 짓지도 않았겠지. ●네모난 하늘을 천장 삼다 우화루(雨花樓)는 화암사의 첫인상이다. 2층처럼 보이지만 반대편에서는 단층으로 보인다. 그 이름은 꽃비를 바라보는 누각이란 뜻이다. 한없이 낭만적인 듯하지만 ‘불설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세계의 꽃비에 가까울 것이다. 여느 사찰이었다면 우화루 아래를 지나 경내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랬다면 꽃비를 맞으며 지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구현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화암사는 그 같은 ‘관례’를 따르지 않는다. 우화루 아래는 누각을 받치는 기둥과 차곡차곡 돌을 쌓아 올린 축대로 막혀 있다. 입구는 우화루 좌측에 있다. 숲을 일주문 삼고 계곡을 천왕문 삼는 절집은 작은 대문 하나가 출입의 의식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 하나가 걸려 있을 따름이다. 경내로 들어서자 다시 반전이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옹기종기한 전각에 반한다. 대문만큼이나 작은 마당 하나를 두고 국보 극락전과 보물 우화루가 남북으로 마주하고, 적묵당과 불명당이 동서로 얼굴을 맞댄다. ‘ㅁ’자형의 양반집처럼 네 채의 한옥이 마당을 두른 채다. 마당만 네모날까. 머리 위로 네모난 하늘이 합장하듯 펼쳐진다. 심인보 작가는 이 풍경을 “하늘이 천장이고 천장이 하늘”이라 표현했다. 작가의 말이 아니어도 누구든 화암사 경내에서는 적묵당 툇마루에 앉아 네모난 하늘과 네모난 땅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산중의 고요가 마치 야상곡처럼 흐르고 새들의 노래는 음표처럼 얹힌다. 그리 시간을 흩뿌린 뒤에야 극락전과 우화루를 번갈아 둘러본다. 우화루는 경내와 접한 쪽으로 벽과 문이 없다. 휑하니 기둥만 있어 전각 안쪽까지 마당이 확장되는 듯하다. 그 끝 외벽에 세 개의 창이 났는데 방금 지나온 산기슭의 초록이 어른댄다. 그래서 화암사의 품은 한층 깊게 아늑하다. 맞은편의 극락전은 반대다. 처마가 일반적인 맞배지붕보다 마당 쪽으로 조금 더 나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도리 밑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부재(하앙)를 설치해 처마를 길게 뻗을 수 있도록 해 그렇다. 이는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구조로 국보에 지정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화암사는 역시나 크게 뽐내지 않는다. 경내를 두루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는 우화루 목어와 눈이 마주친다. 목어는 부리부리한 눈에 반해 꼬리는 만들다 만 듯 뭉툭하게 끝이 나는데, 대신 나무의 결을 살려 정교한 비늘을 표현했다. 그마저 색 없이 소박하다. 목어마저도 참 잘 늙어가고 있는 절집이다 싶다. 화암사는 곱게 늙은 것이 아니라 잘 늙어 곱다는 걸 알겠다. ●산사를 닮은 도예가의 집 완주에는 들러볼 만한 절집이 또 있다. K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한 아원고택, 송소고택 등과 가까운 거리의 송광사다. 산사와 달리 평지의 가람은 접근이 편하고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이 일직선에 놓여 그 현판이 겹쳐 보이는 게 특징이다. 무엇보다 보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이 눈길을 끈다. 최명희 작가가 쓴 ‘혼불’에서 승려 도환은 완주 송광사 사천왕의 조형미가 조선에서 가장 빼어나다 말한다. “도무지 투박한 진흙을 주물러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네 명의 수호신은 위엄과 익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데 거대한 소조임에도 표정과 몸짓이 살아 있다. 범종루 역시 명성이 자자한데 지금은 보수 중이라 볼 수 없다. 대신 절집 안팎으로 꽃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운치가 남다르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구간부터 호젓한 정원을 걷는다. 옛 담과 나란한 길 끝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드리는데, 이 나무 한 그루만으로 ‘절집’이라 불릴 만하다. 수형에 비해 수고가 높고 수관이 너른 것이 여간 늠름하지 않다. 바람에 잔가지를 내어주어 가벼이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세상 시름이란 그렇게 흘려보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송광사 가까이에는 위봉사와 위봉산성이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화보 촬영을 한 위봉산성도 좋지만 위봉사 옆 봉강요에서 우리 도예의 멋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봉강요는 대한민국 명장 진정욱 작가가 꾸리는 공방이다. 진 작가는 봉강요와 함께 ‘잘 늙어가는’ 도예가다. 지금의 터에는 2000년 작업실을 열었고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시와 달항아리 등을 선보인다. 또한 그 자신이 도예에서 얻은 치유와 위안을 나누고픈 마음에 봉강요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그래서 여느 도예 공방과 다르게 카페와 전시관, 정원과 작업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초입에는 ‘산속 깊은 미술관’이 반긴다. 창과 문 없이 활짝 열린 작은 공간은 작품과 자연이 서로를 마주한다. 봉강요 안쪽은 입장권(1만원)을 구매한 후 돌아보는데 입장료는 음료와 소품 도자기 하나를 포함한다. 작가의 작업실과 도자기가 익어가는 전통가마 그리고 청초원과 소풍원 등 꽃과 나무가 울창한 길을 거닐어 봉강요전시관에 이르는 코스다. 카페는 잘 빚은 도자기가 공간과 어우러져 우아한 시간을 선물한다. 남쪽 너른 창으로는 산사처럼 푸른 자연이 펼쳐져 밝고 환하다. 우리가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는 동안 계절은 어느새 봄의 끝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 품에서 볕을 쬐며 가마 속 도자기처럼 익어가도 좋겠다. 그것만으로 봉강요에 머물 이유는 충분하다.
  • 검은 모래, 푸른 바다, 흰 산… 자연이 쌓아올린 성취

    검은 모래, 푸른 바다, 흰 산… 자연이 쌓아올린 성취

    일본 혼슈 중부, 후지산과 스루가만의 품에 안긴 도시가 있다.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다. 동쪽의 도쿄와 서쪽 나고야 등 일본을 대표하는 두 거대 도시 사이에서, 시즈오카는 양쪽 주민 모두의 탈출구가 돼 왔다.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 북풍을 막아주는 남알프스 산맥, 태평양과 맞닿은 드넓은 해안선 덕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의 존재감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밥을 먹다가도, 차를 마시다가도, 무심코 고개를 들면 그 산이 하늘을 채운다.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자가 선택한 땅도 시즈오카였다.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말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의 유년의 기억이 깃든 땅이었고, 권력의 심장인 에도(도쿄)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일본 한류의 원조’라 할 조선통신사가 최소 10번 이 도시에 발걸음했다. 지금도 시즈오카를 돌다 보면 조선의 선진 문물을 전하던 조선통신사의 흔적과 마주할 수 있다. 새벽녘, 미호노 마쓰바라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시즈오카 남쪽의 7㎞에 걸친 해안선을 따라 흑송 5만 4000여 그루가 검은 모래 위에 빽빽하게 들어찬 솔숲이다.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이를 ‘일본 3대 솔숲’ 중 하나로 꼽는다. ‘후지산 구성 자산’으로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미호노 마쓰바라의 풍모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곳은 사실 도심 건너의 니혼다이라 일대다. 후지산이 그렇듯, 미호노 마쓰바라 역시 조금 떨어져서 봐야 제대로 보인다. 우리 금강송 솔숲에 견줘 웅장한 느낌이 덜한 이 솔숲을 부러 새벽에 찾은 이유는 단 하나다. 검은 모래 해변 너머로 솟은 후지산이 동틀녘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드는 광경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이쯤 돼야 시즈오카 여정의 시작으로 제격이라 할 수 있겠다. 日 관광지 1위 니혼다이라솔밭 끝에 서면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검은 모래 해변이 펼쳐진다. 바다 너머로는 흰 눈을 인 후지산이 홀연히 솟았다. 검은 모래, 검푸른 바다, 흰 산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새벽 풍경은 어떤 그림보다 선명하게 눈에 새겨진다. 미호노 마쓰바라가 8세기부터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경승지였다는 사실이 이 순간만큼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솔숲 인근의 니혼다이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즈오카시 해안에 솟은 300m 높이의 야트막한 구릉이다. 현지 안내판은 “일본 관광지 100선 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시즈오카시의 대표 경승지”라 적고 있다. 승용차로 5분이면 정상까지 오를 곳이지만, 땅 아래 깃든 역사의 지층은 무척 깊다. 일본이 대부분 그렇듯, 시즈오카 일대도 4개의 지각판이 경계를 맞대고 있다.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 필리핀해판, 유라시아판이다. 이 가운데 필리핀해판이 누르는 힘에 의해 유라시아판이 서서히 솟구친다. 이 때문에 니혼다이라는 지금도 1년에 3㎜씩 융기하고 있다. 역산하면 현재의 해발 300m는 10만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자연의 성취인 셈이다. 지각의 융기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100만 년이 지나면 이 완만한 구릉은 일본의 명산 지대인 남알프스에 버금가는 3000m급 산으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니혼다이라의 핵심 관광시설은 유메테라스다. 꿈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는 테라스라는 의미다. 건물을 설계한 이는 쿠마 켄고(72)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2020 도쿄 올림픽 메인 경기장 등을 설계했다. 시즈오카현에서 생산되는 목재를 사용해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3층짜리 목조 건축물로 만들어 냈다. 전망층은 3층이다. 사방이 360도 형태의 유리 전망대다. 아래로 시즈미항과 스루가만이 펼쳐지고, 푸른 구릉 너머로는 후지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멀리 이즈 반도까지 아우르는 파노라마 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3층 회랑은 낮, 밤, 휴관 등과 관계없이 언제든 입장할 수 있다. 야간에 방문하면 2016년 일본 야경유산에 등재된 니혼다이라의 야경도 즐길 수 있다. 유메테라스에서 구노산(久能山)까지 로프웨이(케이블카)가 놓였다. 이 덕에 구노산 정상의 도쇼궁(국보)을 쉽게 돌아볼 수 있다. 도쇼궁은 원래 서기 600년경 백제계 도래인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자신을 이곳에 묻어달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에 따라 신사로 변했다. 도치기현의 닛코로 이장하기 전까지 도쿠가와가 묻혔던 묘역이 신사 뒤편에 남아 있다. 니혼다이라 호텔에서 보는 풍경도 놓쳐서는 안 된다. 거의 호텔 한 면에 달하는 거대한 유리 통창 너머로 후지산과 시즈오카 일대가 오롯이 담긴다. 조금만 입소문 나면 문 걸어 잠그고 돈 받는 우리 몇몇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과 달리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이 만든 풍경을 공유할 수 있다. 후지산을 그대로 품은 테라스이웃한 후지시에도 볼거리가 많다. 니혼다이라를 기준으로 좀 더 북쪽으로, 후지산에 가까운 지역이다. 그중 후지산 세계유산센터는 원픽이라 할 만하다. 후지산을 향한 일본인들의 경외심을 만나는 공간이다. 후지산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외관의 건축물로, 세계적인 건축가 반 시게루(69)가 2017년 설계했다. 내부 전시동은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오르도록 설계됐다. 벽면 가득 펼쳐지는 타임랩스 영상으로 후지산의 사계를 감상할 수 있다. 후지산의 진면목을 담은 고서적과 미술 작품, 수백 년에 걸쳐 이 산을 올랐던 순례자들의 기록까지 촘촘히 담겨 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이다. 최상층에 후지산을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다. 테라스 안쪽에서 보면 후지산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 듯한 차경(借景) 효과를 느낄 수 있다. 후지산을 향해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절경이 숨어 있다. 일본 폭포 100선에 선정된 시라이토(白糸) 폭포다. 후지산의 눈이 녹아 만들었다. 높이 20m, 폭 150m의 말발굽 모양 절벽 곳곳에서 크고 작은 수백 개의 물줄기가 흰 실처럼 흘러내린다. 2013년 후지산의 구성 자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함께 등재됐다. 폭포 초입에 찻집 치도리야가 있다. 1910년 문을 연 노포다. 커피와 소프트아이스크림으로 피로를 씻기 맞춤하다. 후지시 북쪽 경계엔 오부치 사사바가 있다. 2ha가 넘는 광활한 계단식 녹차밭 너머로 후지산이 솟아오르는, 시즈오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을 품은 곳이다. 이른바 ‘오선지’로 시야를 방해하는 전선 하나 없이 탁 트인 뷰가 자랑이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연중 개방된다. 현장에서 녹차 시음도 즐길 수 있다. 시즈오카 북쪽의 후지산 기슭에서 내려와 다시 남쪽 해안으로 향한다. 미호노 마쓰바라에서 해안을 짚어 올라가면 꽤 많은 볼거리와 만난다. 시미즈항은 스루가완 페리의 출항지다. 멀리 이즈 반도의 토이항을 잇는 페리다. 수심 2500m로 일본에서 가장 깊다는 스루가만 위에서 후지산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맛집과 놀거리가 널린 시미즈항을 지나 해안선을 따라 오르면 세이켄지(淸見寺)가 나온다. 옛 한일 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오래된 절집이다. 조선통신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남긴 흔적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유이항(由比港)이 멀지 않다. ‘벚꽃 새우’ 사쿠라에비의 고향 같은 곳이다. 우리 섬진강 하구의 벚굴처럼 선홍빛 투명한 몸체가 벚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쁜 외모처럼 맛도 섬세하다는 것이 일본 식객들의 상찬인데, 글쎄 한국 여행자의 식감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사쿠라에비는 유이항 근해에서만 나온다. 봄(3~6월)과 가을(10~12월)이 제철로 꼽힌다. 항구 인근 식당에서 갓 잡은 사쿠라에비를 바삭한 가키아게(작은 어패류에 반죽을 묻혀 기름에 튀긴 음식) 형태로 즐길 수 있다. 유이항 주차장에서 조금 떨어진 이스츠야가 맛집이다. 창업 100년을 넘긴 노포다. 최강 전투력 뽐내는 ‘스시 장인’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전망 포인트인 삿타토게 고개를 지나 더 올라가면 타고노우라항과 타고노우라 공원이 기다린다. 이른 아침 어선이 출항하는 풍경과 후지산이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조합으로 유명한 장소다. 무수한 연관 작품으로 이어진 괴수 영화 ‘고질라’가 최초로 명성을 얻은 장소이기도 하다. 1971년 공해 괴수 영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고질라 대 헤도라’의 무대가 바로 이 타고노우라항이다. 당시 항구 주변 제지 공장에서 배출된 오염물질이 공해 괴수 헤도라를 만들어냈다는 설정으로, 당대 일본에 충격파를 안겼다. 그간 꾸준한 환경 정화 노력이 이어져 현재는 주민 가족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됐다. 산책로와 놀이터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후지산 드래건’, ‘하지마리의 종(始まりの鐘)’ 등 조형물도 있다. 특히 ‘하지마리의 종’은 ‘후지산 루트 3776’ 등정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성지와도 같다. ‘루트 3776’은 해발 0m에서 후지산 3776m 정상까지 오직 자신의 발로 오르는 코스를 일컫는다. ‘하지마리의 종’ 소리는 그 여정의 출발과 응원을 알리는 소리로 여겨진다. 시즈오카 최고의 핫플은 사실 ‘인스타그램에 나왔던 곳’이다. 그중 하나가 ‘후지산 꿈의 대교’다. 이웃한 야마나시현의 ‘로손 편의점’과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선다. TV 외신 등에서도 화제가 됐던 곳으로, 육교 위에 올라 후지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물론 날씨 탓에 후지산이 가릴 경우 ‘폭망’하는 장소다. 후지산 세계유산센터에서 멀지 않다. 이제 바다와 땅이 차려낸 밥상 이야기를 할 차례다. 시미즈항 가시노이치 어시장은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해산물의 성지다. 냉동 참치 하적량 부문의 일본 1위 항구답게, 1500~2000엔대에 그릇 넘치도록 담긴 참치 덮밥을 맛볼 수 있다. 시즈오카 현민의 솔 푸드는 구로한펜이다. 색이 유난히 검은 빛이어서 ‘구로’다. 생선 뼈까지 통째 갈아 만든 오뎅으로,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시즈오카 도심에 두 곳의 ‘오뎅 거리’가 형성돼 있다. ‘거리’라기보다는 작은 ‘요코초’ 정도의 골목이다. 구로한펜이 안주로 쓰이는 술집들이 밀집한 거리여서 우리가 생각하는 ‘어묵’ 값보다는 훨씬 비싼 편이다. 어떤 관광 명소보다 시즈오카를 깊고 오래 기억하게 만든 곳은, 치열한 구글링 끝에 우연히 찾은 초밥집 스시야스(寿し安)다. 동향의 동갑내기 70대 노부부가 결혼 뒤 50년 넘게 지켜온 노포다. ‘영업력’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이는 역시 안주인이다. ‘특상’(特上) 초밥 세트를 앞세워 손님에게 끈질기게 잽을 넣는다. 무수한 잔펀치에 그로기(비틀거림) 상태까지 몰리지 않으려면 적당할 때 ‘상(上)급 스시’를 힘줘 주문해야 한다. 사실 이 정도로도 초밥 장인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스시야스는 니혼다이라와 시미즈항 사이쯤에 있다. 일단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면, 지갑 털릴 각오는 하는 게 좋다. 상급 스시의 경우 1인 5만원 정도다.
  • ‘파계의 씨앗’에서 비구니 최고 리더십까지…묘엄 스님 평전 출간

    ‘파계의 씨앗’에서 비구니 최고 리더십까지…묘엄 스님 평전 출간

    “재미가 옥살하다.” 가장 존경받는 한국 비구니 가운데 한 명인 묘엄 스님(1932∼2011년)이 평소 즐겨 쓰던 표현이다. 경남 진주 쪽 사투리로 ‘아주 재미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가 ‘옥살하다’고 표현한 건 불가의 생활이다. 세수 80세를 사는 동안 그는 법랍 67년을 절집에서 보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무엇에서 ‘옥살’을 느꼈을까. 이에 관한 답을 찾는 ‘묘엄 평전’(조계종출판사)이 최근 출간됐다. 소설처럼 쓰인 덕에 636쪽에 달하는 ‘벽돌책’이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묘엄 스님을 수식하는 대표적 표현은 ‘한국 불교 최초의 비구니 율사(불교 계율에 정통한 승려)’다. 숱한 난관을 헤치고 한국의 비구니 교육과 계율 제도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스승 또한 압도적이다.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에게 선을, ‘한국불교 계율의 중흥조’ 자운 스님에게 율을, ‘한글 불경 시대’를 연 운허 스님에게 경(교)을 사사했다. 성철 스님이 비구니를 제자로 둔 것도 처음이지만, 이런 고승들을 스승으로 뒀다는 것도 당시 비구니로선 극히 드문 수행 이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불교계 장자 종단인 조계종의 기틀을 확립한 청담 스님에게 생명을 받았다는 점이다. 청담 스님은 조계종의 초대 총무원장 등 총무원장과 종정을 각각 두 번 역임한 큰스님이다. 고승대덕 가운데 출가 전에 가족을 두는 경우는 흔하다. 한데 승문을 들어선 이후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 사연이 기막히다. 묘엄 스님은 1932년 경남 진주의 이찬호, 차점이 부부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찬호가 당대의 선지식 청담 스님이다. 청담 스님의 출가 전 가족은 노모와 아내, 큰딸 인자 등 셋뿐이었다. 어느 해 청담 스님이 불문의 일로 진주 인근에 왔을 때, 노모가 찾아가 대를 이어달라며 눈물로 애원했다. 이때 인연으로 태어난 이가 청담 스님이 “파계의 씨”라 했던 ‘인순’, 묘엄 스님이다. 진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1945년의 봄날, 청담 스님의 옛 아내는 인순에게 경북 문경의 대승사를 다녀오라며 보낸다. 돌아오는 대로 중학교에 입학하자며 손에 편지까지 한 통 쥐여줬다. 엄마는 이 편지에 “(청담) 스님이 잘 가르쳐서 출가시켰으면 한다”고 적었다. 본인은 몰랐지만, 인순이 집을 나서는 순간, 그는 이미 세속에서의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던 거다. 인순의 엄마가 딸을 출가시키려고 마음먹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청담 스님과 아내는 당시 호적상 남남이었다. 청담 스님은 출가 전 이혼 도장이 필요했고, 아내는 군말 없이 따랐다. 한데 일제강점기엔 호적에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는 사생아 취급을 받았다. 엄마는 대승사에 있는 아빠에게 다녀온 뒤 중학교에 입학하자고 했지만 사실 인순은 진학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재판을 거쳐 아버지의 성씨를 찾은 뒤 이듬해 다시 시험을 치러야 했다. 문제는 당시 태평양 전쟁 막바지까지 몰린 일제가 진학하지 않은 조선의 여자아이들을 차출해 정신대나 군수공장으로 보내곤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인순을 출가시킨 건 엄마의 고육책이었던 셈이다. 옛 아내의 편지를 읽은 청담 스님은 아우처럼 친하게 지내던 성철 스님에게 인순을 맡겼다. 열흘이 지나면서 인순의 마음이 움직였고 보름 만에 출가를 하게 된다. 1945년 음력 5월 5일 단옷날이다. 월혜 스님이 은사, 성철 스님이 계사였다. 성철 스님이 비구니를 출가시키고 제자로 둔 건 묘엄 스님이 유일하다. ‘묘엄’이란 법호도 성철 스님이 지어줬다. ‘묘엄 평전’은 그의 드문 수행 이력을 과대포장하지 않고, 치열한 노력과 시대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결과로 차분히 그려낸다. 묘엄 스님의 상좌이자 비구니 승가의 요람인 봉녕사 주지 진상 스님이 간행위원회를 꾸려 3년간의 자료조사와 연구, 지인들의 회고를 모은 끝에 이뤄졌다. 일제강점기에 출가한 뒤 겨우 한글을 떼고 경전 공부를 시작해 당대 최고의 강백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충남 공주 동학사와 경북 청도 운문사 강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경기 수원 봉녕사 강원과 금강율원을 창건해 비구니 승가를 반석 위에 세운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묘엄 스님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최초’, ‘최고’의 기록이 아니다. 지금도 비구니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수행과 교육의 전통이다. 묘엄 스님이 평생 입에 담은 말은 ‘마음공부’라고 한다. 그의 유훈도 이랬다.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 평전은 이를 “모두에게 부처의 성품이 갖춰져 있음을 철저히 믿고 생사발심해서 수행하라고 했던 평소의 당부가 고스란히 담긴 유훈”이라 해석한다.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알려준, 그러나 범부들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와닿지 않는 화두 ‘부처는 내 안에 있다’와 맥이 통하는 유훈이다. 평전을 쓴 박원자 작가는 최근 서울 종로구 조계종출판사 사무실에서 열린 출간간담회에서 “근현대 한국 비구니 가운데 선과 교 한 분야에 일로매진한 인물은 많다”며 “그러나 묘엄 스님처럼 당대 선지식들에게 선·교·율을 두루 배우고 철저히 실행해서 세 가지에 능통한 비구니 선지식은 드물다”고 밝혔다. 진상 스님도 “묘엄 스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한 아쉬움을 그의 치열한 일생이 담긴 평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묘엄 스님의 종단 내 법계는 ‘명사’다. 이 역시 최초다. 명사는 비구니에게 내리는 최고 법계다. 비구의 ‘대종사’와 같다. 묘엄 스님의 어머니도 1972년 봉녕사에서 ‘대도 스님’으로 출가했다. 청담 스님이 입적한 지 한 해 만이다. 청담 스님 가문의 네 식구 가운데 셋이 불문에 귀의한 것이다. 대도 스님은 묘엄 스님이 주석하던 봉녕사에서 1988년 입적했다. ‘묘엄 평전’ 봉정식은 오는 26일 경기 수원 봉녕사 대적광전에서 ‘묘엄 스님 14주기 추모 다례재’와 함께 봉행된다.
  • 겨울 여행지로 다시 찾는 선운산, 고요와 풍경의 완성

    겨울 여행지로 다시 찾는 선운산, 고요와 풍경의 완성

    전북특별 고창군에 자리한 선운산 도립공원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며 사계절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대표 명승지다. 해발 336m로 높지는 않지만, 천마봉·경수산·개이빨산·청룡산을 잇는 산줄기와 깊은 계곡, 유장한 기암의 조화가 아름답다. 공원은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1984년 국민관광지로 승격되며 지역을 대표하는 자연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선운산 일대(천마봉, 도솔암 마애봉, 용암돔, 진흥굴)는 백악기 화산 활동의 흔적이 잘 보존된 곳으로, 2017년 국내 10번째 국가 지질공원으로 인증됐고 202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며 국제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선운산은 원래 도솔산(兜率山)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선운(禪雲)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은 미륵불이 거하는 도솔천궁을 의미한다. 백제 때 고찰 선운사가 창건된 뒤부터 산 이름도 자연스레 선운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산 주변에는 선학암, 봉수암, 수리봉 등 신비로운 형상의 바위와 전설이 깃든 명소가 많다. 특히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칠산바다와 변산반도·곰소만의 풍경은 선운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다. 선운산의 중심에는 백제 시기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있다. 절 곳곳에는 전설이 스며 있다. 검단선사가 이무기가 살던 연못을 메우자 놀란 이무기가 도망치며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 이야기, 도둑들에게 천일염 제조법을 가르쳐 만든 ‘보은염’ 전설 등이 유명하다. 선운사에는 대웅전(보물 제290호), 금동보살좌상·지장보살좌상, 석씨원류(전북 유형문화재 제14호) 등 문화재가 풍부하다. 인근 참당암 대웅전(보물 제803호) 역시 선운사와 더불어 꼭 들러볼 명소다. 도솔암 절벽에 새겨진 미륵장륙마애불도 선운산 명승의 하나로 꼽힌다. 겨울이면 풍경이 한층 더 고요해지며 선운사는 그 매력을 더한다. 산사에 내려앉은 적막함 속에서 목조건물의 곡선미가 더욱 두드러지고 경내를 가득 메운 동백나무 숲은 한겨울에도 붉은 꽃을 피워 설경과 대비되는 특유의 색감을 선사한다. 특히 눈이 내린 날이면 대웅전과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길이 하얗게 덮여 천년 고찰의 시간성과 겨울의 정취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방문객들은 찬 바람을 가르는 풍경 소리와 함께 절집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며 겨울 선운사가 지닌 정적인 아름다움을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선운사 뒤편 5000여 평에 펼쳐진 동백 숲(천연기념물)은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3월부터 4월까지 붉은 꽃으로 물들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선운사 도솔암 일대에는 수령 600년 이상 된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과 북방 한계선에 위치한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이 자생한다. 또한 9월 중순이면 꽃무릇이 가득 피는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길은 걷기만 해도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그 외에도 선운사의 녹차밭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선운사의 대표 등산코스는 선운사 계곡을 출발하여 사자바위, 청룡산, 낙조대를 거쳐 도솔암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며 심심치 않게 보이는 장관이 산행을 지침 없이 이어지게 만든다. 칠산바다와 곰소만의 풍경과 선운산 기암의 풍광을 고스란히 눈에 담을 수 있는 코스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초목들의 색과 더불어 절경을 만들어주어 사랑받는 대표 코스다. 그 외에도 선운사를 둘러보고 낙조대 천마봉까지 다녀오는 짧은 코스로도 즐길 수 있다. 선운산 도립공원 주변은 먹거리도 풍부하다. 고창의 대표 특산물인 복분자와 풍천장어가 특히 유명하다. 계곡 주변에는 장어구이·복분자 삼계탕 전문점 등이 자리해 산행 뒤 허기를 채우기 좋다. 숙소는 선운사 입구 주변에 펜션·한옥체험관·소규모 리조트형 숙박시설이 골고루 자리하고 있으며, 고창읍이나 해리면까지 이동하면 더 다양한 객실 선택이 가능하다.
  • 겨울 여행지로 다시 찾는 선운산, 고요와 풍경의 완성 [두시기행문]

    겨울 여행지로 다시 찾는 선운산, 고요와 풍경의 완성 [두시기행문]

    전북특별 고창군에 자리한 선운산 도립공원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며 사계절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대표 명승지다. 해발 336m로 높지는 않지만, 천마봉·경수산·개이빨산·청룡산을 잇는 산줄기와 깊은 계곡, 유장한 기암의 조화가 아름답다. 공원은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1984년 국민관광지로 승격되며 지역을 대표하는 자연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선운산 일대(천마봉, 도솔암 마애봉, 용암돔, 진흥굴)는 백악기 화산 활동의 흔적이 잘 보존된 곳으로, 2017년 국내 10번째 국가 지질공원으로 인증됐고 202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며 국제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선운산은 원래 도솔산(兜率山)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선운(禪雲)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은 미륵불이 거하는 도솔천궁을 의미한다. 백제 때 고찰 선운사가 창건된 뒤부터 산 이름도 자연스레 선운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산 주변에는 선학암, 봉수암, 수리봉 등 신비로운 형상의 바위와 전설이 깃든 명소가 많다. 특히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칠산바다와 변산반도·곰소만의 풍경은 선운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다. 선운산의 중심에는 백제 시기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있다. 절 곳곳에는 전설이 스며 있다. 검단선사가 이무기가 살던 연못을 메우자 놀란 이무기가 도망치며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 이야기, 도둑들에게 천일염 제조법을 가르쳐 만든 ‘보은염’ 전설 등이 유명하다. 선운사에는 대웅전(보물 제290호), 금동보살좌상·지장보살좌상, 석씨원류(전북 유형문화재 제14호) 등 문화재가 풍부하다. 인근 참당암 대웅전(보물 제803호) 역시 선운사와 더불어 꼭 들러볼 명소다. 도솔암 절벽에 새겨진 미륵장륙마애불도 선운산 명승의 하나로 꼽힌다. 겨울이면 풍경이 한층 더 고요해지며 선운사는 그 매력을 더한다. 산사에 내려앉은 적막함 속에서 목조건물의 곡선미가 더욱 두드러지고 경내를 가득 메운 동백나무 숲은 한겨울에도 붉은 꽃을 피워 설경과 대비되는 특유의 색감을 선사한다. 특히 눈이 내린 날이면 대웅전과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길이 하얗게 덮여 천년 고찰의 시간성과 겨울의 정취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방문객들은 찬 바람을 가르는 풍경 소리와 함께 절집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며 겨울 선운사가 지닌 정적인 아름다움을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선운사 뒤편 5000여 평에 펼쳐진 동백 숲(천연기념물)은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3월부터 4월까지 붉은 꽃으로 물들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선운사 도솔암 일대에는 수령 600년 이상 된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과 북방 한계선에 위치한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이 자생한다. 또한 9월 중순이면 꽃무릇이 가득 피는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길은 걷기만 해도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그 외에도 선운사의 녹차밭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선운사의 대표 등산코스는 선운사 계곡을 출발하여 사자바위, 청룡산, 낙조대를 거쳐 도솔암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며 심심치 않게 보이는 장관이 산행을 지침 없이 이어지게 만든다. 칠산바다와 곰소만의 풍경과 선운산 기암의 풍광을 고스란히 눈에 담을 수 있는 코스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초목들의 색과 더불어 절경을 만들어주어 사랑받는 대표 코스다. 그 외에도 선운사를 둘러보고 낙조대 천마봉까지 다녀오는 짧은 코스로도 즐길 수 있다. 선운산 도립공원 주변은 먹거리도 풍부하다. 고창의 대표 특산물인 복분자와 풍천장어가 특히 유명하다. 계곡 주변에는 장어구이·복분자 삼계탕 전문점 등이 자리해 산행 뒤 허기를 채우기 좋다. 숙소는 선운사 입구 주변에 펜션·한옥체험관·소규모 리조트형 숙박시설이 골고루 자리하고 있으며, 고창읍이나 해리면까지 이동하면 더 다양한 객실 선택이 가능하다.
  • 늦가을 진미 찾으러 왔다가… 붉은빛 낭만에 취하고 가네

    늦가을 진미 찾으러 왔다가… 붉은빛 낭만에 취하고 가네

    입에 넣는 순간 버터처럼 녹는 삼치양념장 찍어 김에 싸먹는 ‘회’ 일품흔한 구이 요리는 삼치 새끼 ‘고시’샛노랗게 익은 유자… 인생샷 맛집크고 작은 섬 사이 ‘중산 일몰’ 절경삼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남 고흥으로 갈 이유가 생겼다. 갯것들 가운데 몇몇은 꼭 제철을 따지는데, 삼치도 그중 하나다. 삼치가 나는 때에 유자도 난다. 사실 유자야 제철이 따로 없다. 대체로 2차 가공품 형태로 소비돼서다. 그래도 샛노랗게 익은 모습이 얼추 단풍만큼 보기 좋다. 오는 27일에는 2년 반 만에 누리호가 발사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고흥 전체가 부쩍 떠들썩해진 모습이다. ●기름지고 부드러운 삼치… 무조건 ‘회’로 삼치는 회다, 무조건. 여러 요리 방법이 있지만 회에 견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계절의 삼치는 기름지고 부드럽다. 씹을 것도 없다. 입안에 넣는 순간 버터처럼 녹는다. 갯것을 즐기는 한 요리 평론가가 ‘최고의 생선이 아니라면 차라리 소고기를 드시라’는 말을 남겼는데, 제철 삼치가 딱 이에 해당하지 싶다. 맛있다 맛있다 하다 보면 장삼이사들 울릴 만큼 가격이 오를 게 분명하지만, 어쩌랴, 아직 ‘곁’에 있을 때 부지런히 먹어 둘 수밖에. 삼치회는 갯가를 벗어나서는 맛보기 어렵다. 낚시에 걸려 뱃전에 끌어올려지면 곧바로 죽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건 궁벽한 두메건 마찬가지다. 선어회(활어를 잡은 즉시 냉장 보관·유통하는 회)로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를 두고 흔히 성질이 급하다거나 난폭하다 표현하는데, 살짝 비틀면 ‘자존심 센 녀석’이라 볼 여지도 있는 거 아닐까 싶다. 보관도 쉽지 않다. 갓 잡은 삼치를 얼음에 재워도(빙장) 이틀 안팎이 한계다. 참치처럼 급속 냉동한 뒤 해동해서 먹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현지에서는 거의 선어회로 낸다. 삼치 경매가 이뤄지는 나로도항 주변에 맛집이 많다. 삼치는 굵게 썬다. 임진강 황복처럼 찰진 육질이 아니어서 습자지처럼 얇게 썰었다가는(썰지도 못하겠지만), 흐물거려 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제맛도 나지 않을 것이다. 손암 정약전이 지은 저 유명한 ‘현산어보’(일반적으로 ‘자산어보’라 불리지만 여기선 ‘현산어보’가 맞다는 소수 의견에 따른다. 이하 삼치에 관한 내용은 어류생태학자 이태원의 책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참조했다)에도 물론 삼치 이야기가 나온다. 손암은 삼치를 구렁이를 닮은 생선이라 봤다. 등에 있는 검은 무늬 때문이다. “맛은 시고 텁텁하여 별로 좋지 않다”고 적었다. 일반적인 평가와 사뭇 다르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서는 “비늘은 기름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난다. 등 아래 좌우로 검은 반문이 있으며 배는 순백색이다. 맛이 극히 달고 좋다”고 썼다. 김려도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魚譜) ‘우해이어보’를 통해 삼치를 “진미”라 표현했다. 혹시 손암이 산란 이후 여름 무렵에 삼치를 먹었던 건 아닐까. 혹은 평소 즐기던 육고기와 달리 삼치가 입에 맞지 않았거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 주기 아깝다며 삼치를 잡는 족족 일본으로 실어 갔다. 삼치가 대량으로 어획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런 상황은 해방 후에도 한동안 계속됐다. ‘삼치 파시’로 유명했던 나로도에선 가을이 되면 수백 척의 삼치 배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뤘다. 덕분에 나로도는 ‘교복 단추를 금으로 하고 다닐’ 정도로 풍요를 누렸다. 넉넉한 삶을 살았던 마을 대부분에서 흔히 하는 ‘동네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표현과 달리 고흥에서는 사람의 입성에 비유했던 듯하다. 삼치는 사실 대중적인 물고기가 아니다. 무슨 소리냐, 서울 무교동 등의 생선구이 집에서 굽는 게 삼치가 아니면 뭐냐, 되물을 수도 있겠다. 그건 삼치가 아니라 ‘고시’다. 삼치의 새끼다. 노가리가 명태의 새끼인 것처럼 사실 삼치라 불리는 고시도 너무 많이 소비해서는 안 되는 생선이다. 흔히 대삼치라 불리는 삼치는 ‘구이’가 아니라 ‘스테이크’라 불러야 할 정도로 두껍다. 고흥에서 삼치회는 양념장에 찍어 김에 싸서 먹는다. 해남 등 남도 다른 지역에서 따뜻한 밥에 묵은지가 ‘디폴트값’처럼 따라붙는 것과 퍽 다르다. 이 양념장 맛이 일품이다. 선어회의 질감이 대체로 비슷할 거라 보면, 결국 양념장이 맛집을 가르는 관건이 되지 싶다. ●‘주렁주렁’ 고흥 대표 농산물 유자 삼치가 막 나기 시작할 무렵 유자도 절정의 수확철에 이른다. 두 식재료 간에 뚜렷한 연관성은 없다. 다만 요즘 젊은 세대 입맛에 맞춰 삼치구이 등에 유자청을 활용하는 조리법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유자는 고흥의 대표 농산물이다. 전국 유자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고흥에서 나온다고 한다. 고흥에서도 대표적인 유자 산지가 풍양면이다. 고흥 유자의 40% 정도가 풍양면에서 생산되는데, 11월 말까지는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유자를 볼 수 있다. 대규모 유자나무밭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풍양면 한동리의 ‘유자공원’이다. 해마다 늦가을에 유자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도로변 밭과 야산이 온통 유자나무로 가득하다. ‘공원’처럼 누구나 밭고랑을 따라 거닐며 사진을 찍거나 유자 향에 취할 수 있다. 이 풍경이 꽤 독특하다. ‘설정’만 잘하면 누구나 인생 사진 한 컷쯤 건질 수 있다. 단, 유자나무에는 가시가 많으므로 찔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관광안내소 등에 문의하면 유자 따기, 유자차 만들기 등 체험 행사를 진행하는 농가를 안내받을 수 있다. ‘유자 라면’도 체험해 볼 만하다. 올봄 서울 한강공원 시식 행사 때 많은 관심을 모았던 라면이다. 닭고기로 우려낸 육수에 유자를 넣어 끓여 내는데 보통 라면보다는 ‘상큼한’ 우동에 가깝다. 현지에 이렇다 할 유자 라면 맛집은 아직 없다. 저마다의 레시피로 유자 라면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아찔한 절경 금강죽봉·활개바위 고흥에는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드러내 자랑하고 싶은데도 군이 관광객의 안전을 담보할 방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곳이다. 금강죽봉(국가유산 명승)과 도화면 내촌마을 활개바위다. 예전에는 여느 도서처럼 해안 절경을 보는 유람선이 운영됐다. 한데 어느새인가 슬그머니 운영을 멈췄고 이제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만 찾고 있다. 며칠 전 고흥군이 배로 금강죽봉과 활개바위를 돌아보는 행사를 진행했다. 유람선 사업화 가능성을 다시 타진하려는 이 행사에 끼어 두 명소를 돌아봤다. 금강죽봉은 주상절리 하면 떠오르는 검은 현무암이 아닌 회백색의 응회암 주상절리다.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자태가 웅장하고 빼어나다. 2021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공식적으로는 출입 통제 지역이다. 위험 요소가 많아서다. 그래도 ‘목숨 걸고’ 독특한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는다. 고흥군 역시 탐방로를 조성하기 위해 국가유산청과 국립공원공단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는 없다. 활개바위는 커다란 문처럼 생긴 바위다. 흔히 독립문이나 남대문 등의 이름을 딴 바위처럼 가운데가 뻥 뚫렸다. 여느 ‘대문’ 바위들과 달리 육지 쪽은 궁형, 바다 쪽은 직각이다. 그러니까 ‘목숨만 건다면’ 오를 수도 있는 형태인 거다. 그 탓에 실제 많은 이들이 이 사진을 위한 ‘위험한 놀이’에 나서고 있다. 바로 옆에는 남근을 닮은 바위도 있다. 두 바위를 합쳐 ‘쌍주석’이라고도 부른다. 아마 수백, 수천년의 침식 과정을 겪고 나면 자연스레 가운데가 부서져 내릴 것이다. 그때는 어느 해안에나 있는 촛대바위, 선바위 등의 ‘흔한’ 이름을 갖게 될 터다. 고흥 바다의 진경은 산에 올라야 만날 수 있다. 여러 곳이 있는데, 시간이 여의찮은 관광객이라면 천등산을 권한다. 산행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천등산 철쭉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해 한두 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다. 천등산 정상은 풍경 전망대다. 남녘 바다 위로 물수제비 뜨듯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과 내륙에서 내달려온 산군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천등산 자락에는 고흥 내 다른 산들과 달리 활엽수가 제법 많다. 단풍 물든 풍경이 제법이다. 풍양읍 율치리 사동마을회관을 지나 5.5㎞ 남짓한 임도를 따라간다. 험한 구간이 있지만 승용차도 무난히 오를 수 있다. 도로 폭이 좁다. 안전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천등산 자락에 금탑사가 기대 있다. 여염집에 가까울 정도로 단아한 절집이다. 절집으로 드는 진입로와 절집 주변의 단풍이 곱다. 상록활엽수가 대부분인 고흥에서 드물게 단풍 명소라 할 만하다. 3300여 그루에 달하는 천연기념물 비자나무숲과 그 옆의 동백숲도 여전하다. 이른봄 동백꽃이 질 무렵 또 한 번 절경을 펼쳐 낼 터다. ●천경자 화백 추모 10주기 리마스터전 고흥은 화가 천경자(1924~2015)의 고향이다. 고흥 읍내 아트센터에서 ‘천경자 화백 추모 10주기 리마스터전 RE:Chun Kyung-Ja 환상여행’ 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대표작을 모사한 작품과 미디어아트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어느덧 저물녘, 기차 시간은 무정하게 다가오는데 ‘중산 일몰’이 발길을 잡는다. 저 하늘은 왜 하필 오늘 이 시간에 저리 요염한 건지. 당최 발을 뗄 수 없다. 어쩌랴, 렌터카 반납이 늦어져 초과 요금을 물지언정 이 풍경을 두고 돌아설 수는 없지 않은가. 중산 일몰은 고흥 8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예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중산리 국도변에 ‘중산일몰전망대’가 있다. 크고 작은 섬들 사이로 펼쳐지는 낙조가 아름답다. 인근 ‘레인보우교’는 요즘 새로 뜨는 일몰 명소다. 본섬과 외떨어진 작은 섬 우도를 잇는 1.32㎞의 국내 최장 연륙 인도교로 최근 완공됐다. 예전 우도는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만 오갈 수 있었는데, 이젠 무지개다리를 건너 언제나 마주할 수 있다. [여행수첩] -나로도항에 삼치 식당이 밀집해 있다. 서울식당이 알려져 있다. 해외로 유학 갔던 아들이 돌아와 삼치로 대를 잇고 있다. 포구 쪽에서 영업하다가 마을 뒤로 옮겨 널찍하게 자리잡았다. 삼치를 회, 조림, 탕수 등으로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고흥에는 ‘빵지 순례’를 해도 좋을 만큼 맛있는 빵집이 많다. 유자제빵소가 요즘 ‘핫플’이다. 도무지 ‘상권’이라 부를 수 없는 공간에 들어섰는데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 교통 요지인 과역면의 르와르 베이커리는 이미 한창 ‘떴고’ 하얀마을, 이로운곳간 등도 이름이 났다. -삼치 경매는 나로도항 수협에서 오전 8시, 오후 1시 30분을 전후해 열린다. 병어 등 다른 생선들도 싸게 살 수 있다.
  • 냠냠 제천… ‘맛강한’ 충북의 가스트로 투어 가볼까

    냠냠 제천… ‘맛강한’ 충북의 가스트로 투어 가볼까

    충북 하고도 제천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시골 도시다. 그런데 여기서 요즘 미식 여행(가스트로 투어)이 인기란다. 볼거리 제쳐두고 먹거리부터 찾는 여행법이야 이미 오래됐다. 하지만 제천과 미식의 조합이라니, 적잖이 생경하다. 사람 몸에 좋다는 약선을 앞세운 건강한 한 끼가 핵심인데, 약초 도시를 지향하는 제천으로서는 그럴싸한 선택지로 보인다. 개중에는 ‘깜놀’할 음식점도 있고. 입소문 난 몇몇 음식점은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성황이다. 소도시 제천의 변신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공식에 따라 제천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제천은 ‘깻잎 머리’ 여학생과 그 ‘깻잎 머리’들이 즐겨 먹는 ‘(볼) 빨간 오뎅’으로 한때 주목받았다. 반짝 관심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 ‘화력’이 좋았다. 그래서 내놓은 게 ‘가스트로 투어’다. 제천시가 2020년 출시한 가스트로 투어는 도심과 약선 음식거리 맛집들을 2시간 동안 돌아보는 미식관광 상품이다. 대구·영주와 함께 조선의 3대 약령시였다는 역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A, B 코스로 나눠 빨간 어묵 같은 길거리 음식에 대파불고기 같은 식사용 음식을 조합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덩실분식’이나 ‘마당갈비’ 등의 식당과 몇몇 커피숍은 예약이 밀릴 정도로 떴다. ●새로 생긴 의림지 코스 알뜰하게 여행 이번에 내놓은 건 제천의 명소인 ‘의림지 코스’다. 역시 A, B 코스로 나뉘는데, 참가비가 저렴한 대신 정량의 절반 정도만 제공한다. 한데 말이 절반이지, 사실상 1인분이나 다름없다. 각자 먹는 양을 조절하며 다니길 권한다. A코스 이름은 ‘제대로 미식 코스’다. 의림지떡갈비의 약선비빔밥, 낭만짜장의 생전 처음 보는 크림 탕수육에 매콤달콤한 쟁반짜장 세트, 18가지 재료로 끓여냈다는 다원애의 궁중 쌍화차, 은근한 단맛이 매력인 커피플러스 제이의 디저트와 커피 등을 맛볼 수 있다. ‘감성의 미식 카페 코스’로 불리는 B코스 역시 뽕잎비빔밥으로 배를 채운 뒤 의림지 주변의 카페에서 티그레(호랑이 무늬 과자)와 홍차, 오미자차, 커피, 궁중다과 등을 즐길 수 있다. 다만 현지 식당 사정에 따라 메뉴 구성에 다소 변경이 생기기도 한다. 의림지 가스트로 투어는 도보로 진행된다. 2시간 남짓 먹고, 마시고, 산책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견과류, 육류 등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사전에 가이드를 담당하는 문화관광해설사에게 알려 주는 게 좋다. 체험 중심의 가스트로 투어보다 제대로 된 건강 밥상을 맛보고 싶다면 ‘약채락’ 표시를 단 식당을 찾아가면 된다. 약채락은 제천의 통합 음식 브랜드다. 이른바 네 가지 ‘약념’(藥念)을 사용하는 식당들로 구성된 일종의 연합체라 보면 틀림없겠다. 네 가지 약념은 황기를 섞어 숙성한 간장, 제천 대표 약재인 당귀가 들어간 고추장, 초페스토(소스), 뽕잎으로 만든 초소금을 일컫는다. 약초 고추장의 경우 제천만의 ‘특허’를 확보했다고 한다. 청풍호 인근의 성현한정식은 맛과 관광지 접근성을 다 갖춘 집이다. 한우 떡갈비, 더덕구이, 된장찌개, 블루베리솥밥 등으로 구성된 세트를 낸다. 직접 구워 먹는 디저트 ‘군밤’도 맛있다. 바우본가, 예촌, 노다지맛집, 원뜰 등도 약채락 ‘동맹’ 식당이다. 새터오리촌 청전동 본점은 한방오리 수육과 누룽지백숙, 로스구이 등 오리 요리를 세트로 내는 전문집이다. 오리로 수육을 만들어 보쌈처럼 먹는 방식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미식 기행이 진행되는 의림지는 나라 안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저수지로 명승이다. 역사학계에선 축조 시기를 삼한시대나 신라 때로 보는 경향이 우세하다. 삼한은 기원전 제천 일대에 존속했던 국가다. 이를 기준 삼으면 의림지의 역사는 2000년을 훌쩍 넘긴다. 신라 때라 해도 1500년은 족히 된다. 의림지 풍광을 운치 있게 만드는 것은 제방의 숲, 제림이다. 저수지를 수호신처럼 지키고 선 소나무들은 허리가 굽고 비틀어진 채로 수백 년을 버텨 왔다. 제림 한쪽엔 신털이봉이 있다. 의림지 조성 당시, 인부들이 작업을 마치기 전 짚신에 묻은 진흙을 털었는데 그 흙이 오랜 시간 쌓여 이뤄졌다는 야트막한 산이다. 조선시대 제천 출신 오상렴의 시문집 ‘연초재유고’에 신털이봉이 “산림이 뻑뻑이 우거지고 풍요로워 경치가 빼어난 신월산(新月山)”으로 기록됐다고 한다. 제림 옆은 용추폭포다. 약 30m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용 울음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용폭포’라고도 한다. 폭포 위 유리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로 폭포가 보인다. 머리카락이 쭈뼛 솟을 만큼 짜릿하다. 의림지는 가야금을 창제했다는 우륵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 물을 마시던 우륵정 등이 남아 있다. 의림지역사박물관도 멋들어지다. 의림지 경관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바짝 몸을 낮춘 건물의 자태가 인상적이다. 전시관 곳곳에서 의림지의 역사·문화·생태적 가치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디지털 액자, 트릭 아트 등의 콘텐츠도 마주할 수 있다. ●곳곳에 솔탑공원 등 녹색길 호평 의림지 위엔 제2의림지가 있다. 흔히 ‘비룡담’이라 불린다. 저수지 주변에 물안개길이란 목재데크길이 조성돼 있다. 높낮이가 거의 없어 누구나 부담 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비룡담 가운데엔 쉼터, 동물 포토존 등이 마련돼 있다. 밤엔 경관조명이 켜지며 더욱 몽환적으로 변모한다. 의림지와 비룡담 사이엔 솔밭공원이 있다. 2008년 조성됐다. 솔숲과 잔디가 고즈넉하게 어우러졌다. 소나무는 모두 691그루다. 군데군데 조각상도 세워져 있다. 산책하기도 좋고, 쉬거나 인증사진을 찍기도 좋다. 의림지뜰엔 ‘삼한의 초록길’이 조성됐다. 의림지뜰은 의림지 아래로 펼쳐진 너른 들녘을 일컫는 표현이다. 도시화로 인해 옛날에 견줘 규모는 대폭 축소됐지만, 의림지뜰의 과학성과 상징성, 역사성 등을 고려해 더이상 개발하지 않고 현재 남은 형태만이라도 유지하겠다는 것이 제천시의 방침이다. 그 정책이 오래도록 유지됐으면 좋겠다. 삼한의 초록길은 의림지뜰을 관통하는 산책로다. 거리는 2㎞ 정도. 길 주변에 초목을 심어 분위기를 조성했고,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4차선 도로 위로 에코 브리지도 놓았다. 이 덕에 낮과 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어우러져 이 길을 걷는다. 삼한의 초록길 들머리엔 빛정원과 그네마당 등의 공간도 조성됐다. 연인들이 ‘낭만 샷’ 찍기에 딱 좋다. 경관조명까지 들어와 밤에 방문해도 문제없다. 주차장도 잘 갖춰졌다. 이제 제천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나간다. 제천까지 왔으니 청풍호 방문은 필수다. 제천의 연관검색어 같은 곳으로, 어느 계절에 찾아도 빼어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알려졌듯 청풍호는 제천 권역의 충주호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이 일대에서 눈치 없이 ‘충주호’를 입 밖에 냈다가는 눈총받는다. 충남 부여를 지나는 금강을 백마강, 경기 여주를 지나는 한강을 여강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충주댐에 수몰되기 전 이 일대의 지명도 ‘청풍’이었다. 그러니까 지역민의 기억과 자존심이 담긴 표현이 바로 ‘청풍호’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로 가을 맞이도 막 시작된 제천의 가을을 먼저 맞으려면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물태리 정류장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3㎞ 구간을 운행한다. 비봉산의 명성을 알리는 데 일등 공신 노릇을 한 모노레일도 여전히 운행 중이다. 다만 수송 인원이 적고 늘 예약이 밀리는 통에 요즘은 케이블카로 대체되는 추세다. 비봉산은 봉황이 비상하는 모습을 닮았다는 산이다. 해발 531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청풍호 중심에서 사방을 굽어볼 수 있어 풍경의 명산으로 꼽힌다. 케이블카는 강풍(초속 15m 이상), 낙뢰 발생 시 운행을 중단한다. 정방사는 금수산 신선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 자락에 터를 잡은 절집이다. 거대한 암벽에 안긴 절집의 자태도 좋지만 그 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훨씬 빼어나다. 대웅전 앞에 서면 멀리 월악산과 푸른 바람 일렁이는 청풍호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무암사도 찾을 만하다. 소(牛)의 사리가 담긴 부도와 1200년 된 싸리나무로 만든 대웅전 기둥이 유명한 절집이다. 경내에서 ‘한수 이남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동산 남근석의 머리 부분이 살짝 보인다. 배론성지는 가을이 깊어 갈수록 풍경도 농익어 가는 곳이다. 신유박해(1801) 때 많은 천주교인이 숨어 살던 성지다. ‘황사영 백서 사건’의 주인공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 상황을 적은 밀서를 집필한 토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 요셉 신학교 등의 자취가 남아 있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사제로 기록된 최양업 신부의 묘도 여기 있다. 배론은 골짜기가 배 밑바닥 모양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을이면 단풍나무 등 무수한 활엽수들이 농염한 풍경을 펼쳐낸다. 한옥 누각 형태인 배론본당,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 피정의 집, 조각공원 등 볼거리도 많다. 봉양읍에 있다. [여행수첩] -가스트로 투어는 예약제(citytour.jecheon.go.kr)로만 진행된다. 최저 4인 이상, 최대 15인 예약할 수 있다. 의림지권 코스 1인 2만 7500원. 커피의 경우 기본은 아메리카노이지만 1000원을 더 내면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수준급의 드립 커피로 바꿀 수 있다. -제천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디지털관광주민증을 운영하는 도시 중 하나다. 가입하면 혜택이 풍성하다. 힐링 스파로 소문난 포레스트 리솜이 30% 할인되고 청풍호 모노레일과 케이블카 각 2000원, 청풍나루와 제천 시티투어는 각 3000원 할인된다. -국립제천치유의숲에서 산림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상체질 차테라피, 퇴계 이황의 건강 비법이라는 활인심방 숲테라피 등으로 구성됐다. 1인 1시간에 6000원이다. ‘숲e랑’ 누리집에서 예약해야 한다. 단체는 전화 상담을 받는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관광객도 산책은 즐길 수 있다.
  • 희양산 정상 벼랑 끝에서… 불꽃같은 그의 삶을 되짚다

    희양산 정상 벼랑 끝에서… 불꽃같은 그의 삶을 되짚다

    일제 멸망 꾀한 아나키스트 가네코양녀로 고초 겪다 3·1운동 뒤 급변평생 같았던 4년 독립투쟁 끝 옥사박열의 흔적 따라 문경 자락에 영면찾는 이 적은 백두대간 내륙의 명산 불교의 성지이자 희양산문의 장소오르기 힘든 만큼 빼어난 풍경 자랑이름값에 견줘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산이 있다. ‘백두대간의 화강암 돔’ 희양산이다.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이 경계를 이룬 산. 명불허전이라 할 희양산의 풍경도 빼어났지만 그보다 마음을 빼앗은 건 자신을 사랑하고, 또 그만큼이나 조선의 남자를 사랑했던 일제강점기의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 이야기였다. 힘들게 희양산에 오를 때에도 그의 이야기는 머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문경의 박열 의사 생가 옆에 홀로 잠든 그의 묘를 보고, 그의 일생을 정리한 글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희양산에 앞서 가네코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건 이 때문이다. ‘불량스러운 조선의 아나키스트’ 독립지사 박열(1902~1974)은 지난 2017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통해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한데 그의 첫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1904~1926·대부분의 검색 사이트가 1903년 출생이라 적고 있지만 여기선 한국의 공훈전자사료관과 일본 국회도서관 기록에 따른다)는 당최 생경했다. 영화에선 꽤 비중 있게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열(이제훈)의 사상적 동지, 혹은 죽음도 가르지 못한 연인 정도로 그려져 그의 진면목을 알기엔 역부족이다. 영화에서 말하지 않은 가네코(최희서)의 어린 시절, 교도소에서의 극단적 선택(타살 의혹도 여전하다) 이후 처리 과정, 사형 선고 이후 박열의 행보 등까지 살펴야 비로소 그들의 삶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그 마지막 퍼즐이 있는 곳이 문경의 박열의사기념관이다. 기념관에 들면 왼쪽으로 묘지가 나온다. 묘비에 “이곳은 일본인으로서 일제의 멸망과 일왕 폭살의 필요성을 주장한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이명 朴文子)의 묘”라고 적혀 있다. ‘박문자’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일본의 관습에 따른 이름이다. 묘역은 봉분 크기에 견줘 전체 면적이 어색할 정도로 넓다. 물론 북한에 잠들어 있는 박열의 유해가 봉환되는 상황을 상정해 넓게 조성한 것이다. 먼저 알아야 할 건 가네코는 조선 독립운동가의 일본인 아내이기 이전에 이미 군주제와 군국주의, 남성 우월주의 등 폭력적 이데올로기들에 맞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혁명가였다는 것이다. 영화로 잠시 돌아가자. 교도소 간수가 가네코에게 말한다. “조선에서의 7년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가네코는 이렇게 응수한다. “그래서 깨어 있는 거다.” 조선에서의 경험이 그의 삶에서 무척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이 대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가네코는 옥중 자서전을 통해서도 “3·1 독립운동을 목격했을 때 나에게도 권력에 대한 반역 정신이 일기 시작했으며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감격이 가슴에 용솟음쳤다”고 했다. “그(박열)와 동지로서 투쟁했던 4년만이 진정한 나의 삶이었다”고도 했다. ●무적자에서 독립투사로 다시 태어나 가네코가 영화에서 독백처럼 읊은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면 이렇다. 그의 친할머니는 그를 “무적자”(無籍者)라고 불렀다.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자, 호적에 오르지 못한 자를 뜻하는 말이다. 가네코가 태어난 곳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다. 하지만 처제와 살림을 차릴 정도로 난봉꾼이었던 아버지와, 재혼을 거듭하던 부창부수의 어머니는 그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무적자’인 탓에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가네코는 친척 집에 얹혀살다 1912년 충북 청주 부강면(현 세종시)에 살던 고모의 양녀가 돼 조선으로 건너간다. 기대와 달리 곧장 식모로 전락한 가네코는 극단적 선택까지 결심할 정도로 할머니와 고모에게 가혹한 학대를 받는다. 그는 부강역 앞 철길로 뛰어들려다 멈추는 일을 거의 매일 반복한다. 그가 이를 멈춘 건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목격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가네코는 도쿄에서 박열을 만나면서 급진적인 아나키즘에 심취하게 된다. ●박열에 대한 연모 갖게 된 시의 첫 문장 “나는 개××로소이다.” 박열이란 이름을 세상에 깊이 각인시킨 문장이다. 가네코에게서 박열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싹트게 된 것도 ‘나는 개××로소이다’라는 시의 이 첫 문장이었다. 둘은 1922년 동지로서의 동거 서약을 맺고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일왕 암살을 계획했다는 대역죄로 체포돼 1926년 사형선고를 받고, 이 과정에서 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도움으로 옥중 결혼식을 올리고, 당시 일본 내각 총사퇴를 불러온 ‘괴사진’을 촬영하는 등의 내용은 널리 알려진 바다.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이후 둘의 행보는 갈린다. 무기징역으로 감형한다는 일왕의 ‘은사장’을 발기발기 찢은 가네코는 도치기현의 우쓰노미야 여자교도소로 이감된 뒤 그해 옥사했다. 그의 죽음이 본인 의지였는지, 타살이었는지에 관해선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박열은 감옥에서 22년을 복역한 뒤 재일본조선거류민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다 6·25전쟁 때 납북돼 평양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죽어서 다시 돌아왔지만 빈자리 남아 교도소 인근 공동묘지에 묻힌 가네코의 유골은 우여곡절 끝에 그해 조선으로 돌아왔고, 11월 5일 박열 집안의 선산인 문경읍 팔령리에 묻혔다. 그의 소원대로 “박열의 고향마을”에 묻힌 건 2003년 박열의사기념관 조성 당시다. 다만 “박열과 나란히 묻어 달라”는 바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가네코는 꽃보다 상록수를 좋아했다. 그는 작성 연월일 불명의 옥중편지에서 자신의 묘를 찾는 이들에게 “새싹을 피워 올리고 있는 상록수 한 가지를” 올려 달라고 했다. 피었다가 시드는 꽃보다 “언제나 푸르게 하늘을 향해 활짝 피어나는 상록수의 새싹을 나는 끝없이 사랑”해서다. 죽음의 원인은 불명이지만 그가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사족 하나 덧붙이자. 일본인으로 한국 독립유공자에 헌정된 인물이 둘이다. 한 명은 가네코, 또 한 명은 박열 부부를 변호한 후세다. 가네코는 2018년 애국장, 후세는 2004년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 그중 가네코에 관한 일본 내 재평가 움직임은 1972년 그의 일대기를 그린 ‘여백의 봄’ 출간 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1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개막한 제30회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도 그의 옥중 자서전과 이름이 같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다. 박열과 교도소를 달리한 이후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 그린 영화로 올 초에 개봉했다. 영화를 통해 100년 전 국가권력에 항거한 여성 아나키스트의 마지막 길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 ‘박열’은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이제 희양산으로 간다. 희양산은 중부 내륙의 명산이면서도 찾는 이들이 적다. 산객들이 방문하기에 무척 불편해서다. 들머리는 괴산과 문경 두 곳이다. 한데 문경 쪽은 사실상 막혔다. 산 아래 봉암사가 조계종에서 지정한 특별수도원이라 연중 산문을 걸어 잠근다. 일 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절집 문과 등산로를 연다. 조계종이 워낙 강력하게 보호하는 곳이라 그날 외엔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 괴산 쪽에선 연풍면 은티마을이 들머리다. 일반인이 희양산에 오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곳이다. 한데 여기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마을 아래 주차장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거리가 1㎞를 훌쩍 넘긴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30분 가까이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이를 알고 있는 등산객들은 어떻게든 산행 입구까지 차를 가져가려고 하지만, 이를 막는 주민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한쪽은 봉쇄, 한쪽은 눈칫밥이니 아예 희양산을 패스하는 이도 없지 않다. 명산이면서도 찾는 이가 드문 이유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이 남녘을 향해 치닫다가 중부 내륙에서 우지끈 솟아오른 돌산이다. 괴산 연풍면과 문경 가은읍이 이 산에서 경계를 이룬다. 높이는 999.4m.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화강암 암벽이다. 맑은 날 암벽이 볕을 받으면 환하게 빛을 낸다. 한자 이름을 ‘햇볕 희’(曦) 자에 ‘볕 양’(陽) 자로 쓴 이유다. 불교계에선 희양산을 성지처럼 여긴다. 통일신라시대의 선종을 대표하는 아홉 곳의 불교 성지, 이른바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문이 문을 연 곳이라서다. 은티마을 초입에 금줄로 동여맨 돌탑이 있다. 남근을 상징하는 돌무더기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풍수지리상 은티마을은 여근곡 형상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이 마을에 은거한 백제군을 신통력으로 꿰뚫어 보고 병력을 투입해 전멸시킨 뒤 ‘남근입어여근즉필사의’(男根入於女根則必死矣)라는 표현으로 마을 지세를 설명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담긴 내용이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대놓고 남녀상열지사에 비유한 것인데, 마을 입구의 남근석은 그러니까 풍수지리상 비보(도와서 보충함)의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은티마을에서 희양산 정상까지는 편도 4.5㎞다. 마을 주차장에서 걷는 구간을 포함하면 거리는 좀더 늘어난다. 각종 온라인 게시물은 소요 시간을 편도 3시간~3시간 30분 정도라 적고 있다. 이는 전문 산꾼 기준이다. 일반 등산객이라면 최소 편도 4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하산길에서 소요 시간이 준다고 해도 최소 왕복 6시간,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7시간 이상 걸린다. 물론 ‘등린이’(등산 초보)를 기준으로 삼으면 소요 시간은 더 늘어난다. ●식수는커녕 화장실도 없는 오지 등산 희양산 정상까지는 지름티재를 거쳐 직벽 구간으로 오르는 코스와 희양산 성터를 거쳐 ‘상대적’ 완경사 구간으로 오르는 코스로 나뉜다. 전자가 거리는 짧되 매우 거칠고 힘들다면, 후자는 다소 길어도 덜 거칠다. 등산로에 계곡물은 거의 없다. 산짐승들이 마실 물 정도만 드문드문 고여 있을 뿐이다. 당연히 식수는 단단히 챙겨 가야 한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없다. 그저 정상부 일대에 최소한의 생명줄인 로프가 매어져 있는 게 전부다. 지름티재까지 3㎞ 구간은 된비알이 별로 없다. 이후 1.5㎞의 직벽 구간이 문제다. 특히 정상의 암반부에선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써야 간신히 오를 수 있다. 내려올 땐 더 위험하다. ‘등린이’라면 가급적 성터 코스로 오르길 권한다. ●봉암사 너머 굽이굽이 산세도 일품 정상에서 맞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이다. 특히 문경 쪽이 빼어나다. 봉암사와 그 너머 경북 일대의 산들, 조령천과 합류해 남녘으로 굽이쳐 흐르는 영강 등이 절경을 펼쳐내고 있다. 희양산이 깃든 괴산 연풍과 문경 가은 쪽에 가볼 만한 여행지가 많다. 괴산 연풍면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후기 순교자들의 유적지다. 너른 잔디밭과 아름드리나무들이 어우러져 쉬어 가기 딱 좋다. 문경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다. 그가 태어나자 금빛 안개가 피어올랐다는 금하굴 등의 견훤유적지, 그의 아버지 아자개를 모티브로 삼은 아자개 장터 벽화 거리 등 볼거리가 있다. 등록문화재인 가은역, 석탄박물관과 가은오픈세트장 등으로 구성된 문경 에코월드도 가은읍 내에 있다. 산행의 피로는 온천으로 푼다. 문경새재 아래 온천단지가 조성돼 있다. ‘왕의 온천’이라 불리는 충북 충주 수안보도 희양산에서 멀지 않다.
  • 夜! 어서와, ‘낭만 산사’로

    夜! 어서와, ‘낭만 산사’로

    3년째 한여름 야간 개장 ‘문화 사찰’범종 타종 뒤 절 한 바퀴 돌며 힐링사사자삼층석탑 등 곳곳 문화유산연기암 이르면 대형 마니차에 시선600여점 압화박물관 관람도 매력섬진강 대숲서 바람 맞으며 ‘죽멍’산사가 외부인에게 깊은 밤을 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저녁이 시나브로 시작되면 객들은 산문을 내려가야 한다. 해 질 무렵 울리는 범종 소리가 사실상의 축객령이다. 한데 전남 구례의 대가람 화엄사는 독특하게 여름밤에 산문을 연다. 벌써 3년째다. 올해는 예년보다 한 달을 당겨 7월과 8월, 무려 두 달을 온전히 야간 개장했다. 지나간 8월의 끝자락에 ‘지리산의 꽃’ 화엄사를 다녀왔다. 봄꽃은 이미 졌고, 단풍은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한여름의 밤이라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한 스님의 표현처럼 말이다. 범종 소리를 들으며 산사에 앉아 있는 느낌은 아주 독특하다. 타종이 끝날 때까지 떠밀리듯 절집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밤의 절집을 오롯이 엿볼 수 있다는 기대감만으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물론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면 밤에도 산사에 머물 수 있다. 한데 일정표에 따라야 하는 게 다소 부담이다. 절집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을 따르는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엔가 얽매이지 않은 채 여기저기 기웃대는 재미도 남다르다. 여름밤의 화엄사에선 그게 가능하다. 오픈 15초 만에 매진된다는 ‘모기장 음악회’나 ‘화야몽’ 등의 인기 이벤트 참가는 언감생심이지만, 수많은 문화유산에다 배롱나무 등 소박한 여름꽃을 보며 괜스레 ‘센치멘털’해 지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이런 행사를 통해 화엄사가 지향하는 건 문화 사찰로의 자리매김이다. 문화는 어우러질 때 형성된다. 공부와 수행이 최고의 목표인 스님들에게 대중과의 어울림은 사실 여러모로 귀찮은 일일 수 있다. 그러니까 문화 사찰을 지향한다는 건 이런 문제들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대중 곁으로 바짝 다가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기록으로만 보면 화엄사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고찰이다. 화엄사 사적기 등에 따르면 544년 인도 승려인 연기 대사가 창건한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오래된 문화유산도 많다. 국가 지정 유산만 해도 국보가 다섯 점에 보물이 열 점이다. 이 가운데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범종 타종이 끝난 뒤 절집 구경에 나선다.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 천왕문(보물)을 차례로 나서면 보제루다. 법요식 등 주요 불교 의식이 열리는 누각이다. 단청 없이 소박하다. 무엇보다 외벽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이채롭다. 하나같이 이리저리 휘고 굽었다. 보제루는 어느 절집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개는 보제루 밑을 통과해 본전으로 가는 구조다. 한데 화엄사 보제루는 약간 다르다. 1층 기둥을 낮춰 방문자들이 건물 옆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 이유는 보제루를 돌아서는 순간 단박에 깨닫는다. 중심 영역인 각황전과 대웅전(이상 국보) 그리고 두 기의 석탑(보물)이 지리산 품에 안겨 장엄한 자태를 펼쳐 내고 있다. 그러니까 보제루를 우회하도록 한 건 절집의 내밀한 공간을 가벼이 드러내지 않고 보다 극적으로 드러내려는 심모원려(深謀遠慮)였던 거다. 화엄사는 각황전과 대웅전 등 주불전이 두 곳이다. 동쪽 탑 너머는 대웅전, 서쪽 탑 위엔 각황전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각황전은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물 가운데 최대 규모다. 외형은 2층이지만 내부는 통층으로 트였다. 정면에 매달린 ‘각황전’ 현판은 1702년 중건 당시 숙종이 이름을 지어 하사한 것이다. 각황전 앞은 국가 지정 유산이 한가득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국보, 그 옆의 사자탑은 보물이다. 각황전 옆엔 늙은 홍매가 한 그루 서 있다. 봄에 선홍빛 꽃잎을 낼 때면 나라 안팎에서 무수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늙은 매화다.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화엄사 화엄매’란 공식 이름도 얻었다. 원래 화엄매는 산내 암자인 길상암 앞에 있는 천연기념물 백매를 이르는 표현이었다. 한데 각황전 옆 홍매가 ‘전국구 스타’로 떠오르면서 지위가 슬그머니 역전된 느낌이다. 홍매가 만개할 무렵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데, 이맘때 각황전 뒤란은 거의 발 디딜 틈 없는 ‘국민 포인트’가 된다. 초가을로 접어든 요즘 홍매 이파리 몇 장은 벌써 누런 빛을 띠기 시작했다. 각황전 뒤엔 국보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상을 기둥처럼 배치한 구조로 유명하다. 탑 가운데엔 합장한 스님이, 맞은편 석등엔 절하는 스님이 각각 조각돼 있다. 마치 석등의 스님이 석탑의 인물에게 절을 하는 듯한 모양새다. 화엄사에선 이를 어머니에게 절하는 연기 대사의 효심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한다. 보제루, 화엄사 처마 밑엔 양비둘기가 서식한다. 예전엔 집비둘기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었으나 현재는 구례 화엄사, 고흥 등 일부 지역에서만 관찰되는 희귀 텃새다. 개체 수가 100여마리 정도에 불과해 국립생태원이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화엄사 주변에는 가볼 만한 산내 암자도 몇 곳 있다. 불자와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연기암이다. 섬진강과 구례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다. 구례 문척면 사성암 옆의 오산활공장과 더불어 구례를 대표하는 풍경 전망대로 꼽을 만하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는 2㎞ 정도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족히 닿는다. 차로 갈 수도 있지만 화엄사 옆으로 난 ‘어머니의 길’을 따라 자박자박 걸어 보길 권한다. 늙은 나무들이 짙은 숲 그늘을 펼쳐 내는 길이다. 연기암에 이르기까지 줄곧 산책로 수준의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연기암에 들면 황금색의 대형 마니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티베트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행 도구다. 마니차 안에는 불교 경전이 들어 있다. 화엄사 스님의 말에 따르면 이를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으로 간주한단다. 글을 읽지 못하거나 시간이 없어 경전을 읽기 어려운 신도들을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연기암에서 화엄사로 내려오는 차도 옆엔 금정암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금정암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했다고 밝히면서 반짝 관심을 끌었던 암자다. 위쪽의 연기암엔 지혜를 상징하는 국내 최대(13m) 문수보살상이 서 있고, 그 아래 암자에선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그저 심상한 공간은 아닌 듯싶다. 구층암도 가볼 만하다. 화엄사 대웅전 뒤로 1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암자 마당에 들면 요사채가 먼저 객을 맞는다. 가운데 방을 두고 양쪽으로 문과 마루를 낸 특이한 건물이다. 무엇보다 독특한 건 기둥이다. 죽은 모과나무를 최소한의 손질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기둥으로 썼다. 갈라진 곳은 갈라진 대로, 골과 결이 파인 곳은 파인 그대로다. 검이불루(儉而不陋)란 표현처럼 소박하되 절대 누추하지 않은 모습이란 바로 이런 것일 터다. 이번 구례 여정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압화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압화의 순우리말 이름이 더 예쁘다. 꽃누르미, 누르미꽃, 꽃누름 등으로 불린다. 꽃누르미는 누구나 한 번쯤 만들어 본 기억이 있을 터다. 낙엽 지는 가을날, 공연히 ‘센티해져’서 단풍잎 주워다 책갈피에 꽂아 본 기억 말이다. 이게 예술로 확장된 것이 꽃누르미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오래전부터 꽃누르미 예술가였던 셈이다. 꽃누르미는 생화를 말려 수분과 공기를 제거한 뒤 색감을 유지한 말린 꽃을 회화, 공예, 가구 제작 등에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무엇을 만들 건 하나밖에 없는 생화로 만들기 때문에 작품 역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구례 외곽에 한국압화박물관이 있다. 공공기관에서 조성한 압화박물관으로는 전국 유일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압화 전시장이 몇 곳 있지만 구례 압화박물관은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다. 역대 대한민국 압화대전 대상 등 수상작을 비롯해 600여점의 꽃누르미 작품이 전시돼 있다. 국내뿐 아니라 압화 선진국으로 꼽히는 일본, 러시아 등의 작품도 전시됐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이다. 작가들이 꽃을 채집하고 이를 그림이나 공예 작품으로 만들어 낸 과정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돈도 아니다. 압화박물관 옆에는 지리산 일대의 야생화 표본을 전시한 식물표본전시관, 식물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 낸 식물세밀화전시관 등이 있다. 이를 모두 찬찬히 둘러보자면 반나절로도 모자란다. 여기는 모두 무료다. 압화박물관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섬진강어류생태관과 만난다. 섬진강의 민물고기를 보전, 전시하는 공간이다. 여기도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라면 필수 방문 코스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다. 내부에 크고 작은 수조 등 다양한 어류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야외에도 민물고기 먹이 주기 체험장 등이 조성됐다. 어류생태관 맞은편은 천연기념물인 수달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만날 수 있는 수달생태공원이다. 이제 대숲에 이는 바람을 만나러 섬진강으로 간다. 구례가 숨겨 둔 비밀 정원 같은 곳. 벚꽃 흩날리는 초봄의 섬진강을 뇌리에서 지우지 않으면 절대 만나지지 않을 공간이다. 섬진강 대숲은 개발론자에 앞서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깨달은 한 주민의 지혜로 조성됐다. 섬진강 일대에서 진행된 사금 채취로 모래밭이 유실되자 이를 막기 위해 한 주민이 강변에 대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대숲은 일종의 방파제 구실을 했고, 점점 규모를 늘려 지금과 같은 무성한 대숲으로 자랐다. “대나무 한두 그루는 성글지만/무리 지은 대숲은 조밀하고 단단해서/여름 볕을 거뜬히 피할 수 있다.” 섬진강 대숲에 내걸린 신석정 시인의 시 가운데 일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이 자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알려 주는 사례이지 싶다. 대숲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죽멍’도 하고, 섬진강 쪽 샛길 그네에서 인증샷도 찍는다. 밤에도 경관 조명이 들어온다. 구례의 저물녘은 오산활공장에서 맞는다. 사성암 바로 아래 있는 레저 시설로, 패러글라이딩 등을 위해 조성됐다. 너른 풀밭에 서면 구례와 지리산이 한눈에 담긴다. 바로 뒤 사성암은 오산(531m)의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절집이다. 경내 풍경도 곱지만 무엇보다 절에서 굽어보는 풍경이 시원하다. 오산활공장과 섬진강어류생태관 사이에 구안실(苟安室)이란 마을이 있다. 매천 황현(1855~1910)이 1886년 낙향해 살았던 사적지다. 매천은 절명시를 남기고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열혈 선비다. 현 간전면 수평리에 ‘구차하지만 그런대로 살 만하다’는 뜻의 구안실을 짓고 16년 동안 생활했다. 그의 시와 기록 대부분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집 앞에는 샘도 팠다. 그의 호 ‘매천’은 이 샘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 아이돌 닮은 불상, 갤러리 품은 법당… 이토록 힙한 불교[마음의 쉼자리]

    아이돌 닮은 불상, 갤러리 품은 법당… 이토록 힙한 불교[마음의 쉼자리]

    ‘탈권위’ 나선 우리나라 최고 사찰법당 출입문엔 동화 속 ‘어린 왕자’내부엔 금빛 대신 무광택 흰색 불상한쪽 벽면에 그림 전시까지 열려 요즘 불교계 화두 중 하나가 ‘엄숙주의를 내려놓는 것’ 아닐까 싶다. 얕고 가벼워지는 것에 대한 불교계 일부의 우려가 분명히 있지만 주류적 지향점은 여전히 ‘힙하고 핫한’ 불교인 듯하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사찰이라는 인천 강화 전등사에도 이런 탈권위의 흐름을 목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무설전(無說殿)이 그곳이다. 법당 내부에 신진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도 있다. ‘예술 품은 법당’인 셈이다. 불교에 무지한 이에게 무설전이 가진 뜻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심오하다. 전등사 스님 등에게서 귀동냥한 내용을 요약하면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은 언어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는 의미다. 묵직한 이름과 달리 무설전은 안팎으로 가볍고 경쾌하다. 법당 출입문 위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앉아 있다. ‘악착 보살’ 같은 조형물은 봤어도 국내 법당에서 외국 동화의 주인공은 처음 본다. 젊은이들에게 절집 문턱을 낮추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법당 내부도 마찬가지다.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지장·보현·문수·관세음보살상이 모두 흰색이다. 여느 절집처럼 개금(改金·금칠을 입히는 것)한 불상이 아니다. 광택이 없는 흰 폴리우레탄 도료를 칠해 꼭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거부감을 덜어 주기 위해 문수보살에 남자 아이돌 이미지를, 보현보살에는 걸그룹 이미지를 담아냈다. 무설전 중앙의 석가모니불 좌상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을 모티브로 한다. 주불 뒤는 돔 형태로 파였다. 물론 광배를 형상화했을 터다. 돔 주변을 장식한 그림 역시 전통 탱화가 아닌 프레스코(회벽에 수용성 물감으로 그린 그림) 벽화다. 법당 프레스코화는 무설전이 국내 처음이다. 탱화에서는 보통 부처 주변에 보살들을 배치한다. 물론 무설전은 다르다. 부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 등을 부처 가까이에 그려 넣었고 바이올린을 켜는 선녀상도 등장한다. 천장에는 닫집이나 단청 대신 보랏빛 전등을 달았다. 연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모두 999개다. 천장 전체의 큰 사각형은 마지막 1000개째 연등을 상징한다. 법당 한쪽 벽면을 따라 만들어진 서운갤러리에서는 이유지 작가의 개인전 ‘KARMADISE’(카르마다이스)가 열리고 있다. 카르마다이스는 ‘Karma’(카르마·업)와 ‘Paradise’(파라다이스·낙원)를 조합한 단어다. 좋은 카르마를 통해 이상적인 삶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담았다. 전시는 30일 종료한다. 무설전이 깃든 전등사는 기록상 창건일이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까지 거슬러 오른다. 대웅전과 철종 등 국가유산 보물이 적지 않다. 철종은 중국 북송 시대 때 제작된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병기로 쓰기 위해 부평 병기창에 가져다 놓은 것을 광복 후 전등사로 옮겼다고 한다. 다른 나라 유물이 우리 국가유산에 선정된 것은 드문 경우다. 대웅전 처마 네 곳에는 나부상(裸婦像)이 있다. 벌거벗은 여인을 조각한 것인데, 여기에 담긴 전설이 재밌다. 조선 광해군 연간에 전등사 조성을 맡은 도편수가 주막집 주모와 사랑에 빠졌단다. 한데 도편수의 몸과 마음에다 돈까지 살뜰하게 챙긴 주모가 이를 홀라당 들고 튀었다. 이후 도편수가 평생 지붕을 인 채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살라고 처마에 주모의 형상을 새겼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이 전등사 주지로 있던 1957년에 지은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라는 시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네 곳의 나부상은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주의 깊게 살펴보시길. 여성이라기보다 야차나 원숭이를 조각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 ‘2025 순천세계유산축전’ 선암사·순천만갯벌서 9월 12일 개막…22일 동안 개최

    ‘2025 순천세계유산축전’ 선암사·순천만갯벌서 9월 12일 개막…22일 동안 개최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가치와 매력을 알리는 ‘2025 세계유산축전’이 오는 9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22일 동안 선암사와 순천갯벌을 무대로 개최된다. 고즈넉한 산사와 드넓은 습지 위에서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이 어우러지고,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연결되는 축제로 진행된다. 특히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 실감형 콘텐츠를 통해 관람객이 유산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하는 등 세대와 국적을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참여형 문화축제로 기획됐다. 세계유산축전은 각 지역 세계유산의 가치를 체험하는 행사로 올해는 순천, 제주, 경북 경주, 전북 고창에서 열린다. 순천 행사는 국가유산청, 전남도, 순천시가 주최하고 국가유산진흥원, 순천시 세계유산보존협의회가 주관한다. 축전 개막식은 ‘생명의 유산, 정원의 무대’를 주제로 다음달 12일 그린아일랜드에서 열린다. 판소리와 대금합주, 전통무용, 합창, 드론쇼까지 이어지는 장엄한 연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만들어 온 순천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디지털로 걷는 천년 사찰 선암사 ‘만일(萬日)의 수행’은 사찰 순례와 실감형 공연이 결합된 대표 체험 프로그램이다. 관람객은 선암사 일주문에서 시작해 대웅전, 불조전, 응향각, 설선당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가며 각 구간에서 AR·VR영상을 차례로 만날수 있다. 고요한 산사의 공기와 절집의 향, 종소리와 꽃잎 날림이 어우러져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순천만습지 무진교 일원에서는 AR영상을 통해 사계절 갯벌의 변화와 생명 활동을 감상할 수 있다. 봄의 갯벌 속 새싹, 여름의 풍요로운 생명, 가을의 황금빛 빛깔, 겨울의 고요함이 AR영상 및 퍼펫 공연, 음악극과 결합해 관람객을 매료시킨다. 예술성과 교육성을 동시에 갖춘 이 무대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몰입할 수 있는 복합공연으로 환경 보전의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순천만에서도 평소에는 백패킹이 허용되지 않는 안풍습지가 축전 기간 동안에만 특별히 개방된다. 고즈넉한 갈대숲과 바람결에 일렁이는 습지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갈대 백패킹’은 9월 13~14일, 20~21일, 27~28일 총 3회에 걸쳐 회당 40명씩만 참여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 ‘산사에서의 하룻밤- 산사에서 나를 찾다’는 국가유산진흥원의 국가유산 방문캠페인과 협업으로 마련된 한정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는 고즈넉한 산사에서의 1박 2일 동안 참선, 발우공양, 전통 예불 등을 체험한다. 세계유산축전은 관람만 하는 행사가 아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 순천 시민에서 해외 방문객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축제로 마련됐다. ‘세계유산 스탬프 투어’를 통해 선암사와 갯벌을 누비며 미션을 완수하고, 어린이 해설투어와 디지털 아카이빙을 통해 미래 세대의 시선으로 유산을 기록할 수 있다. 또 지역 주민이 기획에 직접 참여하는 시민공모 프로그램과 마을축제는 생활 속에서 세계유산을 함께 지키고 가꾸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세계유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며 “이번 축전이 세대와 문화, 지역과 세계를 잇는 소통의 장이자 유산의 현재를 누리고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길섶에서] 비 구경

    [길섶에서] 비 구경

    빗줄기 하고만 눈을 맞추고 하루를 보내 보고 싶다. 비에 갇혀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비 구경뿐. 심심하고 심심해져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종일 해 보고만 싶다. 긴 비가 오시는 날, 하필 절집 쪽마루에 나는 앉았으면. 산구름이 아래로 아래로, 굵은비는 묻어오고. 이를 어쩌나, 난감한 척 비 구경을 시작했으면. 장대비를 보고 또 보다가 이러다 하늘 주저앉겠네, 쓰잘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심심하고 심심한 빗소리에 깜빡 졸고 났더니 비는 그치고. 어라, 누렁개 녀석이 내 신발을 물어가 버렸네. 이를 어쩌나, 난감한 척 또 발이 묶였으면. 처마 밑 파초잎에 듣는 낙숫물을 하나, 둘, 백, 천, 만. 손가락셈을 배우는 아이처럼 세월아 네월아 세어 봤으면. 스님도 비 구경을 하시는지 종내 보이지 않고. 누렁개 녀석은 내 신발을 갖다주지도 않고. 하루를 발이 묶여 한 백 년을 보낸 것처럼 비 구경. 비 갠 절마당에 낮꿈을 꾸다 나온 두꺼비 한 마리. 하세월 그 꽁무니를 따라 하세월 산길을 내려왔으면. 느린 발자국들을 생각할 때마다 어쩐지 웃음이 나서 환하게 마음이 갰으면.
  • 깨지고, 그을리고, 희미해져도… 숲과 계곡은 결국 버텨내리

    깨지고, 그을리고, 희미해져도… 숲과 계곡은 결국 버텨내리

    범종은 갈라지고 그을렸다. 아름다웠던 옛 건물은 토대만 남기고 전소됐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선 채 숯이 됐다. 경북 의성의 옛 절집 고운사 일대 모습이다. 지난봄 경북 일대를 강타한 산불은 의성을 지나 안동, 영양, 청송, 영덕 등지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 흔적이 여태 처연하다. 반면 산불의 아가리에서 앙버틴 곳들도 많다. 이번 여정은 화마가 스친 경북 북부 특별재난지역의 숲과 계곡, 문화유산을 찾아간다. 재난 지역으로의 여행은 곧 기부다. 행동거지 잘 다스리고 쓸 곳에 돈을 쓰는 게 지역 주민들을 돕는 일이다. 의성 고운사는 신라의 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의 호를 딴 절집이다. 들머리에 들자마자 전소된 건물이 객을 맞는다. 최치원문학관이다. 현대식 건물이지만 ‘괴물 산불’ 앞에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게다. 바로 옆은 법계도림이다. 의상대사(625~702)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엄일승법계도(華巖一乘法界圖)를 토대로 만든 미로다. 화엄사상의 요체를 210개 글자의 간결한 시로 축약한 뒤 이를 54개 굽이(角)의 사각형 미로로 만들었다. ●법계도림에서 고운사까지 천년숲길 해마다 초봄이면 법계도림은 꽃잔디로 장식된다. 지난봄에 이 분홍 꽃길을 찾아 걸을 예정이었다. 화엄에 대해서는 단 ‘1’도 모르지만, 걷다 보면 뭐라도 하나는 건지지 싶었다. 소박한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산불은 참 많은 것을 앗아갔다. 법계도림에서 고운사까지는 ‘천년숲길’이 펼쳐져 있다. 늙은 소나무와 굴참나무 등이 1㎞쯤 어우러진 길이다. 화마에 그을려 산 채 숯이 된 노거수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숲길 끝에서 고즈넉한 자태로 객을 맞던 가운루, 연수전 등 늙은 건물들도 토대와 기와 몇 장만 남기고 사라졌다. 범종은 깨진 채 서 있다. 법고, 목어, 운판 등 범종각의 법구사물(法具四物)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세상 모든 생명을 소리로 구원한다는 법구사물이 화마에 스러져 갈 때 절집 납자들의 가슴도 덩달아 ‘숯검뎅이’가 됐을 터다. 그나마 일주문과 사천왕문, 대웅전 등이 살아남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해마다 의성 사람들의 천연 물놀이터가 돼 줬던 점곡 사촌빙벽물놀이장도 올해는 열지 않는다. 산불이 절벽을 훑고 간 뒤 낙석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웃한 사촌가로숲(천연기념물)은 온전히 살아남았다. 1390년쯤 기와집들이 숲을 이루던 사촌마을 주변에 조성된 비보림(기가 약한 곳에 조성한 숲)이다. 현지 주민들은 ‘가리쑤’라 부른다. 바람을 가리는 ‘쑤’(숲)라는 뜻이다. 아름드리나무들이 800m가량 밀집돼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사촌마을에서는 1582년 지은 만취당(보물) 등의 고택과 만날 수 있다. 의성, 화엄사상 담긴 미로 법계도림내년 봄 분홍 꽃잔디 다시 만나길안동, 병산서원 배롱나무꽃 절정영양, 검마산 자작나무숲 입소문●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언다더니 의성 남쪽의 빙계(氷溪)계곡은 과장 좀 보태 ‘여름에도 개울에 얼음이 언다’는 계곡이다. 계곡 안쪽의 수심 깊은 곳은 대부분 출입 금지다. 여름철 안전사고를 의식한 탓인지 곳곳에서 안전요원이 눈을 부라리고 서 있다. 그래도 빙계계곡의 대표 스타인 얼음 동굴 빙혈과 바람 풍혈, 빙산사지오층석탑(보물)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빙혈에 들면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스친다. 땀이 순식간에 마르고 한기마저 느껴진다. 벽에 걸린 온도계는 영상 5도를 가리키고 있다. 에어컨보다 낮은 온도다. 주변의 풍혈들에서도 에어컨 같은 바람이 쉼 없이 나온다.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언다’더니, 피서지로 딱이다. 풍혈 앞 빙산사지오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부터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빙계계곡의 웅숭깊은 풍경과 퍽 잘 어우러진다. 안동에서는 아슬아슬하게 화마를 피한 문화유산들을 찾는다. 드라마 제작진의 못질로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유네스코 유산 병산서원도,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인 봉정사 극락전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특히 병산서원의 경우 요즘 주변의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향해 가는 중이어서 방문하기 딱 좋다. 병산서원 만대루에 오르면 굽이치는 낙동강과 병산 앞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덟 기둥 한 칸 한 칸은 그대로 병풍이 되고 풍경화가 된다. 애초 전소가 예상됐던 만휴정도 방염포로 덮는 등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덕에 살아남았다. 만휴정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유진 초이(이병헌)가 고애신(김태리)에게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라고 말한 뒤 악수하는 장면이 촬영됐다. 이 장면 하나로 만휴정이 깃든 ‘조용한 계곡’ 묵계(默溪)는 단박에 소셜미디어(SNS) 성지로 떠올랐다. 다만 지난 산불 이후 기약 없이 출입 통제 중이어서 아쉽다. 안동 선유줄불놀이도 시작됐다. 원래 음력 7월 16일 부용대 절벽 아래로 흐르는 강 위에서 열던 시회 겸 불꽃놀이인데, 요즘은 상설 공연화됐다. 6~11월 사이 한 달에 두 차례 토요일에만 열린다. 공연 일정은 안동시청 누리집 참조. 영양은 경북 오지의 대명사 ‘BYC’(봉화·영양·청송) 중 한 곳이다. 한여름에는 ‘오지의 끝판왕’이라 할 수비면이 방문 0순위다. 6·25전쟁 당시 수비면 끝자락의 오무마을 사람들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살았을 정도였다니 말 다 했다. 요즘 자작나무숲으로 ‘핫 플레이스’가 된 죽파리가 바로 그 수비면에 속한 마을 중 하나다. 검마산의 능선 두어개가 온통 자작나무 일색이다. 영양군에 따르면 면적은 약 31㏊다. 산자락에 축구장 40개 크기 정도의 자작나무숲이 펼쳐져 있는 셈이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1993년 조성됐다. 이 일대가 솔잎혹파리 공격을 받아 황폐해지자 대안으로 자작나무를 심었다. 이후 나이(평균 수령 30년)도, 크기(평균 높이 20m)도 비슷한 자작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게 됐다. 들머리에서 자작나무 군락지까지는 2㎞ 정도 숲길이 이어진다. 산책로 수준의 완만한 숲길이다. 길 아래 계곡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시원의 골짜기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즐기기 좋다. 계곡 끝에 있는 자작나무숲은 차분하면서도 화사하다. ‘자작자작’한 하얀 수피와 ‘초록초록’한 이파리들이 동화 속 세계를 펼쳐 놓았다. 주변에 검마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반려견과 함께 묵을 숙소도 마련돼 있다. 다만 자연휴양림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조금 더 어렵다는 것은 ‘아는 비밀’이다. 인근에 백암온천도 있다. 온천욕을 즐기는 이라면 부러 찾을 만하다. 자작나무숲에서 수하계곡 쪽으로 가면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이 나온다. 별 관측이 취미인 이들에게 이 일대는 ‘별들의 고향’이다. 오지라서 빛 공해가 거의 없다. 게다가 ‘밤하늘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조명이 낮게 땅을 비춘다. 여름철은 은하수의 시간이다. 뜨는 시간이 빨라져 관측하기가 한결 편하다. 밤하늘보호공원 가운데에 반딧불이천문대가 있다. 우리 은하계 행성은 물론 멀리 심연의 ‘딥 스카이’까지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을 갖췄다. 물론 장비 없이 그저 근처 풀밭에 누워 봐도 된다. ●여름밤 또 하나의 선물 ‘반딧불이’ 영양의 밤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선물은 반딧불이다. 소리 없이, 연둣빛 불빛을 반짝이며 제 반쪽을 찾아 혼인 비행하는 녀석들의 모습이 강렬하다. 초여름의 애반딧불이 시즌은 지났다. 8월 중순~9월 중순에 출현하는 늦반딧불이를 기대해야 한다. 천문대 바로 앞의 반딧불이 생태공원 일대가 널리 알려진 반딧불이 관찰 포인트다. 천문대 앞으로는 수하계곡이 흐른다. 수하계곡 끝자락에 전쟁도 모르고 지냈다는 ‘그’ 오무마을이 있다. 고립무원의 마을로 사람도 차도 이 마을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수하계곡 맑은 물은 산자락을 몇 굽이 돌아 울진 땅의 왕피천과 연결된다. 예전에는 사륜구동 지프로 물길을 몇 번 건너야 마을에 이를 수 있었다. 요즘은 오무마을 앞까지 도로가 나 있다. 영양읍에서 가까운 삼지마을은 비단조개를 닮은 독특한 형태가 일품인 마을이다. 옛 삼지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돌이동이었다. 한데 물길이 변경되면서 더이상 물이 돌지 않게 됐고 습지를 거쳐 서서히 육지가 됐다. 이를 ‘우각호’라 부른다. 8월이 되면 삼지마을 연못에 법수홍련이 핀다. 가야 시대부터 전해져 온 토종 연꽃이다. 3㎞ 길이의 탐방로를 따라 연꽃을 감상할 수 있다. 이웃한 청송도 예전에는 대표적 오지였다. 요즘에는 ‘산소 카페’라는 별칭으로 더 잘 불린다. 청송에서 영덕 방향으로 가다가 부남면에서 남관생활문화센터와 만났다. 청송 출신으로 한국의 1세대 추상화가로 꼽히는 남관(1911~1990)의 이름을 딴 복합문화공간이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2020년 문을 열었다. 실감형 미디어 아트홀이 주요 시설이다. 오는 11월 30일까지 ‘상상, 그 너머의 세계’ 특별전이 진행된다. 본관 뒤 부속 건물은 카페, 체험장이 됐다. 나무로 장식된 카페에서 커피 한잔 홀짝대는 재미가 각별하다. ●옥 같은 물, 쉼 없이 솟아 흐르다 이제 여정의 하이라이트, 계곡과 만날 차례다. 청송과 영덕 경계 어름에 팔각산(628m)이 솟았다. 뾰족한 8개의 암봉이 이어져 있다는 산이다. 팔각산은 아래로 멋들어진 계곡을 만들어 뒀다. 그게 영덕 옥계계곡이다. 계곡이 많은 경북 북부에서도 옥계계곡은 늘 수위로 꼽히는 곳이다. 옥 같은 물이 흐른다는 이름만큼이나 맑은 물이 쉼 없이 솟아 흐른다. 청송과 영덕, 그리고 포항이 이 물줄기에서 한데 만난다. 청송 주왕산 남쪽 자락에서 발원한 물과 저 유명한 포항의 하옥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옥계리 침수정 앞에서 합쳐진 뒤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으로 흘러간다. 이처럼 자연은 늘 하나다. 청송 얼음골, 영덕 옥계계곡, 포항 하옥계곡 등 사람이 정한 경계가 있을 뿐이다. 영덕 침수정은 ‘베개 침’(枕)자와 ‘양치질할 수’(漱) 자를 쓴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뜻의 ‘침류수석’(枕流漱石)에서 따온 이름이다. 시루떡 같은 절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너른 너럭바위를 타고 앉아 비췻빛 옥계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청송과 영덕 경계 뾰족한 8개 암봉팔각산 ‘옥계계곡’ 물 맑기로 유명지품면 일대 다디단 ‘복숭아’ 산지한여름 다 자란 ‘은어’ 이방인맞이침수정 주변에 옥계 37경이 펼쳐져 있다. 피서철에는 수심이 깊은 일부 명소들의 출입이 통제된다. 침수정에서 포항 하옥계곡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옥녀교가 나온다. 풍경도 좋고 물놀이하기 좋은 공간도 많다. 다만 주차 공간이 협소하고 화장실이 없는 게 흠이다. 1㎞ 정도 떨어진 옥계계곡 야영장에는 주차장, 매점,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다. 스노클링을 즐겨도 좋을 만큼 물이 맑고 절벽과 어우러진 풍경도 빼어나다. ●자연의 시계는 어김이 없다 영덕 지품면 일대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복숭아 산지다. 이른봄, 선남선녀 달뜨게 했던 화사한 복사꽃이 수밀도의 다디단 복숭아가 돼 이방인을 맞고 있다. 복숭아와 함께 자라는 게 오십천 은어다. 살에서 은은한 수박 향이 난다는 녀석. 복사꽃이 필 때쯤 민물에 올라와 치어로 살다 한여름 무렵이면 성어로 자란다. 해마다 8월 초에 은어 축제가 열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화마가 할퀴긴 했어도 자연의 시계는 어김없다.
  • ‘노잼 도시’ 충주의 꿀잼 도시로의 젊은 변신

    ‘노잼 도시’ 충주의 꿀잼 도시로의 젊은 변신

    알려지기로 충북은 ‘노잼’ 이미지가 강한 지역이다. 사는 이들은 엉뚱하면서도 재밌는데 풍경은 그네들 표현으로 ‘영 거시기’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어딘가 사람들을 잡아끄는 강렬함이 덜하다는 표현이겠다. 그 충북에서도 ‘노잼 도시’ 수위를 오르내리는 충주에 요즘 ‘MZ’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악어봉 같은 걸출한 인증샷 명소가 개방됐고, ‘단군 이래 처음으로’ 충주와 괴산, 경북 문경 등 내륙의 오지를 잇는 철도가 개설됐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충주엔 근사한 여행지가 꽤 많다. 좀처럼 하나로 꿰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수도권에서 충주 가기가 한결 수월해졌으니 곳곳이 명소로 발돋움할 일만 남았다. ●충주호 악어섬 보이는 인증샷 명소 북적 요즘 인증샷 좀 찍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핫스폿으로 꼽히는 곳이 있다. 충주의 악어봉이다. 충주호 조성 당시, 물에 잠긴 산자락이 꼭 먹이를 쫓아 물로 뛰어드는 악어를 닮았다고 해서 악어섬, 그 섬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해서 악어봉이라 불렀다. 악어봉을 사진으로 처음 접한 건 2011년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국적 항공사의 ‘대한민국 어디까지 가 봤니’라는 광고 시리즈에 등장하면서다. 물론 그 장소를 발견한 건 그 이전이다. 수몰민인 이 지역 출신 사진가가 2000년대 초반 물에 잠긴 고향 언저리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한 이후 항공사의 TV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역시 사진은 힘이 세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 악어봉은 예부터 출입 금지 지역이었다. 당시 악어봉으로 오르는 들머리엔 출입 금지, 과태료 부과 등 엄포성 문구를 적은 현수막이 요란하게 내걸렸었다. 이는 그만큼 알음알음 찾는 이들이 많았다는 방증일 테다. 관광안내책자에 나오는 명소이면서도 실제 들어가 볼 순 없는 모순적인 상황은 한동안 이어졌다. 악어봉의 문이 열린 건 지난해 9월이다. 공식 개방돼 이제 누구나 떳떳하게 악어봉을 오갈 수 있다. 지역 주민 신모씨에 따르면 “개장식 날에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도 주말이면 주차 장소가 부족해 인근 호반 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충주시에 따르면 올가을쯤 임시 주차장부터 조성할 예정이라니 조만간 주차 숨통이 트일 수도 있겠다. 악어봉 탐방로는 편도 900m다. 오를 때는 줄곧 오르막, 내려올 땐 줄곧 내리막이다. 들머리는 ‘게으른악어’라는 카페다. 현재는 이 카페 주차장이 사실상 악어봉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주차장에서 악어 모양의 육교를 건너면 곧바로 등산로다. 악어봉엔 작은 악어봉(448m)과 큰 악어봉(559m)이 있다. 탐방로 중 전망이 트인 장소에 이름을 붙인 건데, 사실 작은 악어봉은 쉼터 구실만 할 뿐 전망으로는 큰 악어봉에 견주기 어렵다. 악어봉의 위치가 절묘하다. 보통은 새의 눈으로 보는 풍경, 그러니까 ‘항공뷰’가 멋지기 마련이다. 악어봉은 다르다. 조금 고도가 높으면 ‘악어섬’의 모양새가 흐트러지고, 낮으면 주변 풍경에 가린다. 그러니까 악어 형상이 제대로 드러나는 위치에 정확히 자리잡은 거다. 악어봉은 이른 오전에 방문하길 권한다. 불볕더위 탓에 낮엔 움직이기가 버겁다. 무엇보다 아침 8시쯤만 돼도 충주호에 물결이 일기 시작한다. 탐방로는 악어봉에서 끝난다. 그 너머는 여전히 출입 금지 지역이다. 그러니 오로지 악어봉만을 위해 이 산길이 조성된 셈이다.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탐방로 곳곳에 바위, 노출된 나무뿌리 등 위험 요소들이 많으니 꼭 등산화를 착용하길 권한다. 아울러 살모사 같은 뱀을 봤다는 목격담이 자주 들리는 곳이니만큼 늘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충주~괴산~문경 철도 생겨 관심 급증 충주는 내륙의 분지다. 사방을 준수한 산들이 둘러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계립령) 등 유명한 고갯길이 충주 경계에 몰려 있는 이유다. ‘기차’라는 개념이 낯선 동네이기도 하다. 단군 이래로 충주에서 괴산을 지나 새재를 관통해 경북 문경까지 가는 기찻길은 없었다. 그 오지를 넘는 철길이 지난해 말 개통한 중부내륙선이다. KTX이음이 이 노선에 본격 투입되면서 경기 판교에서 문경까지 1시간 30분 만에 닿게 됐다. 그 덕에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웠거나, 한물간 여행지 취급을 받던 여행지들이 속속 다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조선시대 왕의 온천이었다는 수안보 온천,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연풍현감으로 재직하며 ‘모정풍류’라는 그림을 남긴 괴산 수옥정과 수옥폭포 등이 대표적이다. 각각 수안보온천역, 연풍역이 생기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중부내륙선은 하루에 편도 네 번 운행한다. 기차 시간에 맞춰 각 지역의 시내버스가 각 역에서 수안보 온천, 수옥폭포 등 대표 관광지까지 연결한다. 하지만 그 외 여행자가 원하는 여행지까지 돌아보기는 사실상 어렵다. 가장 좋은 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관광재단에서 운영하는 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충주의 경우 충주문화관광재단에서 ‘감성 시티 투어’를 운용하고 있다. 매주 금, 토요일에 관광버스를 타고 각각 수안보온천역과 충주역을 출발해 중앙탑 공원, 수안보 온천, 미륵대원지 등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새로 역이 생긴 수안보 온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용출 온천이다. 별다른 시추 과정 없이도 지하 250m에서 온천수가 펑펑 솟는다. 수안보 온천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자체가 온천수를 관리하는 중앙 집중 방식을 고집한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온천 구역 내 어디서나 양질의 온천수를 즐길 수 있다. 성봉채플 등 사진 찍기 좋은 명소도 수안보 온천 내에 있고, 수주팔봉 같은 캠핑 명소도 지척이다.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전략 요충지였다. 잠자고 나면 땅의 주인이 바뀌었다. 뭐, 그 정도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대립했다는 뜻이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중앙탑), 고구려비(이상 국보) 등 당시 유산이 꽤 많이 남아 있다. 탄금호 하류 쪽의 중앙탑사적공원은 ‘중원문화의 꽃’ 중앙탑을 중심으로 조성된 복합 공원이다. 탄금호를 따라 중앙탑과 조각 작품, 조형미술 작품 등이 어우러져 있다. 중앙탑공원은 밤에 찾으면 더 좋다. 경관 조명이 켜지면서 낮과는 사뭇 다른 별세계가 펼쳐진다. 고구려비 전시관도 멀지 않다. 미륵대원지와 하늘재, 월악산 송계계곡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 묶어서 돌아보면 된다. 미륵대원지는 흥미로운 절터다. 미륵대원처럼 이름 뒤에 ‘원’자가 붙은 곳은 대개 여행자가 숙식을 해결하던 곳, 즉 역원의 역할을 담당하던 절집이다. 조선시대엔 국가가 역원을 운영했지만 고려 때는 절에서 담당했다. 이런 절집엔 대개 ‘기골이 장대한’ 불상이 서 있기 마련인데 미륵대원지에도 10.6m에 달하는 미륵불(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보물)이 조성돼 있다. 10년간의 보수 정비를 마치고 2023년 8월부터 다시 홍진의 인간들을 맞고 있다. 하늘재로 불리는 계립령(鷄立嶺, 525m)은 충주와 경북 상주를 잇는 고개다. 삼국사기에 이름이 등장하는 ‘우리나라 제1호 고개’다. 저 유명한 문경새재보다 무려 1000년이나 먼저 조성됐다. 짙은 숲 그늘을 따라 자박자박 산책하기 좋다. 충주는 ‘반려동물 친화’를 표방한 도시다. 이 덕에 충주 도심에 ‘피카디리 애견호텔’ 등 반려동물을 돌보는 공간들이 꽤 늘었다. 피카디리 애견호텔의 경우 반려동물만 남긴 채 퇴근하지 않고 직원이 야근하며 돌보는 것으로 알려진 업체다.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이들이 많다. 충주 도심 ‘관아골 저잣거리’ 앞에 있다. 숙소는 수안보 온천 일대에 무수히 많다. 요즘엔 충주역 쪽에 젊은층을 겨냥한 깔끔하고 가성비 좋은 숙소가 많이 들어섰다. 중부내륙선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가을호텔’ 등이 알려졌다. 수안보 온천 일대에는 먹거리도 풍성하다. 대표적인 건 꿩 요리다. 이 일대 어딜 가더라도 꿩 조형물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지자체에서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감나무집, 대장군 등이 알려졌다.
  • 100년 만에 사라진 도시 ‘마산’…태양처럼 빛나던 인물은 남았네

    100년 만에 사라진 도시 ‘마산’…태양처럼 빛나던 인물은 남았네

    공기 좋고 물 좋아 ‘결핵 치료’ 메카김춘수·구상·서정주 등 명사 거쳐 가 불종거리엔 남겨진 사랑 이야기들골목골목마다 예술의 흔적도 가득일제강점기 광복·해방 흔적부터시·노래·건축 켜켜이 쌓인 역사들근현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딱 100년간 존속했던 도시가 있다. 경남 ‘마산시’다. 1910년부터 2010년 6월 30일까지 ‘마산시’였고, 그해 7월 1일부터는 창원시에 속한 ‘구’가 됐다. 마산엔 세월의 층위가 여러 겹이다. 근현대를 빛낸 인물들의 궤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다른 도시라고 그렇지 않을까마는 마산은 남다르다. 신병 치료를 위해, 사랑을 찾기 위해, 일제강점기 조국 광복을 위해 여러 분야의 명사들이 마산의 거리를 오갔다. 그 흔적을 찾아간다. 짧지만 강렬했던 도시, 마산의 인물들을 톺아보는 여정이다. 노사연, 이만기, 황정민, 강호동 같은 내로라하는 현역 스타들 이전의 마산엔 바로 그들이 있었다.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찾는 과정에 ‘도시의 얼굴들’(허정도 지음·지앤유 펴냄)이란 책이 많은 의지처가 됐음을 앞서 밝힌다. ●결핵이 만들어낸 히트곡 ‘산장의 여인’ 레트로는 힘이 세다. 쇠잔하면서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마산이란 옛 도시에 급격히 관심이 쏠린 건 ‘하얀 나비’의 가수 김정호 때문이다. 광주에서 태어나 1970~1980년대를 풍미하다 마산에서 숨을 거둔 가수다. 결핵으로 서른셋 나이에 요절한 그의 생애를 따르다 보니 그 끝자락에서 마산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와 만났다. 한데 김정호뿐이 아니었다. 그 자리를 거쳐 간 당대의 스타들은 무수히 많았다. 마산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결핵 치료의 메카’였다. 변변한 약이 없던 시절, 폐결핵에는 맑은 공기가 최고의 치료제였다. 물 좋고 공기 좋은 마산에 결핵 환자를 위한 병원, 요양소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나도향, 구상, 김지하, 서정주, 김춘수 등 문인과 계훈제, 함석헌 같은 사회운동가, 음악인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이 병원을 거쳐 갔다. ‘산장의 여인’이란 당대의 히트곡도 이 병원에서 탄생했다. 결핵 환자를 위한 위문 공연에 동행한 전설적인 작사가 반야월이 인근 요양소에 머물던 한 여인을 보며 한 편의 가사를 남겼다. 이 글에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의 명곡을 만든 작곡가 이태호가 곡을 붙인 게 ‘산장의 여인’이다. 사연 많은 공간이긴 하나 여전히 결핵 환자를 돌보는 곳에 관광객까지 발걸음할 필요는 없지 싶다. 중요한 건 그들이 마산에 남긴 이야기니 말이다. ●옛 마산 명소들 모여 있는 ‘불종거리’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불종거리로 먼저 가야 한다. 마산의 주요 도로 중 하나다. 창동예술촌, 상상길, 250년 골목길 등 옛 마산을 기억하는 여러 명소들이 불종거리를 중심으로 얽혀 있다. ‘불종’은 예전에 불이 난 것을 알리기 위해 친 종이다. 1977년 사라졌지만 이름만은 길 위에 고스란히 남았다. 마산이란 지명을 키워드 삼을 때 가장 앞줄에 세워야 할 이는 노산 이은상이다. ‘그리운 금강산’과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가곡 ‘가고파’를 쓴 시조 시인이다. 불종거리 옆 상남동에서 태어난 그가 29세 때인 1932년에 고향을 그리며 쓴 시에 곡을 붙인 게 ‘가고파’다. ‘노산’이란 그의 호도 생가 뒤의 노비산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정치 지형에 따라 극단으로 나뉘어져 아쉽다. 독립유공자이면서 한편으로 친일, 반민주 인사다. 이처럼 사뭇 다른 평가를 받는 이들은 마산에서 교편을 잡았던 시인 김춘수, 요양차 마산에 머물렀던 시인 서정주 등 꽤 많다. ●나도향의 작품‘물레방아’ ‘뽕’의 탄생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나도향도 폐결핵 치료차 마산에 머물렀다. 경성의전(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으나 의사의 길을 거부하고 ‘글쟁이’가 된 그가 마산에 온 건 1925년 여름이다. 그는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 등 자신의 대표작을 모두 그해 마산에서 발표했다. 나도향의 원래 이름은 ‘경사스러운 손자’라는 뜻의 경손이다. ‘벼꽃 향기’란 뜻의 도향이란 이름은 월탄 박종화가 지어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나도향의 집안에선 이 이름을 싫어했다고 한다. 잠시 떠돌다 사라지는 ‘향기 향(香) 자’가 싫어서다. 가족들의 우려가 맞았던 걸까. 그는 파릇한 나이에 너무도 허무하게 세상을 떴다. 그가 마산에서 만났다는 ‘영옥’이란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도 애틋하다. 그의 소설 ‘피 묻은 편지 몇 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무서운 행복’은 영옥과 만나는 것입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나의 가슴 속에는 오뇌와 번민이 고조될 뿐입니다. 아아! 안 만나겠습니다. 다시는 안 만나겠습니다./ 내가 참으로 영옥을 사랑하니까 그와 만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가지고 가지요. 나의 관 뚜껑을 덮을 때 나의 가슴에는 그의 사랑을 가지고 가렵니다.” 이는 실제 작가의 이야기다. 그가 내려올 때처럼 구마산역(현 육호광장)을 통해 마산을 떠날 때 영옥이란 여인이 남몰래 눈물로 배웅했다지.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삼류 신파극 같은 문장도 연원을 따지면 이처럼 기막힌 사연이 있다. 불종거리에 맺힌 사랑 이야기는 또 있다. ‘조선의 루돌프 발렌티노’(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미남 배우)라 불리던 임화와 마산 지역 유지의 딸 지하련이 주인공이다. 둘의 이야기는 임화의 마산행에서 시작된다. 임화는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문학단체인 ‘카프’를 이끌던 인물이다. 결핵에 걸린 그는 자신보다 과격한 사회주의자인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치료차 내려간 마산에서 지하련을 만난다. 지하련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고 회복한 임화는 그와 결혼해 현 산호공원 아래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가 이른바 ‘지하련 주택’이다. 둘이 살던 집은 당시 최고급 주택이었다. 지금도 남아 있긴 한데 돌보는 이가 없어 거의 무너질 지경이다. 둘의 사랑 이야기도 해피 엔딩은 아니다. 임화는 6·25전쟁 뒤 북한에서 처형됐고, 그의 시신을 찾아 평양 거리를 헤매던 지하련도 평안북도 어디선가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남에선 월북한 빨갱이로, 북에선 반동분자로 둘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셈이다. ●통영 사는 여인 찾아 헤매던 시인 백석 예전 불종거리는 마산 바다에서 잡은 대구 등 해산물을 내륙으로 옮기는 중요한 통로였다. 싱싱한 해산물을 가득 실은 리어카가 신바람을 내며 해산물을 쏟아 내면 기차가 팔도로 실어 날랐다. 그 길 끝에 구마산역이 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구마산역에 내려 불종거리를 걸으며 사랑을 찾아 헤맨 이 중엔 시인 백석도 있다. 1936년 백석은 통영에 사는 ‘천희’(‘처녀’의 사투리) 란을 찾아 불종거리를 걸었다. 당시 경성에서 통영까지 가려면 부산이나 마산을 거쳐야 했다. 부산은 한 번, 마산은 세 번 내려왔다는데 결국 그는 란을 만나지 못했고 결혼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가 조선일보 평기자로 일하던 시절, 노산 이은상이 같은 신문의 주간이었다니 인연의 얽힘은 참 상상을 뛰어넘는 듯하다. 그의 이름을 담은 ‘백석이 다녀간 작은 책방’이란 북카페가 육호광장 인근(천하장사로 109)에 있다. 북카페 뒤는 ‘노산동 문학마을’, 더 뒤는 마산문학관이다. 북카페에서 냉커피 한 잔 사 들고 백석을 생각하며 동네를 헤매는 맛이 각별하다. 1945년 해방 무렵, 마산엔 ‘귀환동포촌’이 폭넓게 형성됐다. 일본에 살던 동포들이 귀환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지상으로 소풍 온’ 시인 천상병도 이 무렵 마산에 정착했다. 오동동에 정착한 천상병은 6년제였던 마산공립중학교 2학년에 편입해 1951년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로는 오직 시로만 고향을 그리워했을 뿐 마산과 별다른 인연을 맺지 못한다. 사실 마산 사람들조차 천상병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독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그날은’) 고문을 당하고, 행려병자로 정신병원에 갇혔을 때도 그를 동향이라 여긴 이는 별로 없었다. 그나마 그가 다닌 중학교 후배들이 학교 담장 옆길을 그의 호를 따 ‘심온길’이라 부르고, 벚꽃 필 무렵에 그를 기리는 골목 음악회를 연다니 천상으로 돌아간 그가 흐뭇해하려는지. 천상병이 시인의 길을 걷게 된 데는 ‘꽃의 시인’ 김춘수의 역할이 컸다. 당시 국어 선생이자 천상병의 담임이었던 김춘수가 “모든 것이 그러하듯, 네가 그것에 닿아야만 네 것이 될 수 있다. 김춘수”라 적은 글이 담긴 ‘구름과 장미’라는 시집을 선물했고 이때의 감동이 천상병을 평생 시인으로 살게 했다고 한다. 김춘수는 통영 사람이지만 20대에서 30대 후반까지 마산에서 생활했다. 마산을 대표하는 독립지사 허당 명도석의 딸과 1944년 결혼해 살았다. 해방도 마산에서 맞았다. 당시 그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불종거리를 쏘다니며 해방감을 만끽했다고 한다. 그의 대표 시 ‘꽃’ 역시 1952년 6·25전쟁 당시 마산에 머물 때 썼다고 한다. ●마산의 긴자… 가요 오동동타령의 고향 불종거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다. 창동예술촌, 상상길, 250년 골목길 등 이름도 다양하다. 창동예술촌은 ‘에꼴드 창동 거리’, ‘마산예술흔적 거리’, ‘문신예술 거리’ 등 세 테마로 나뉘어 있다. 조성된 지 오래돼 쇠락한 느낌도 있지만 차분히 둘러볼 만하다. 불종거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오동동 문화의 거리다. 오동동은 대중가요 ‘오동동타령’이 태어난 곳. 통술집 골목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부터 ‘마산의 긴자’라 불릴 만큼 화려했다니 통술 거리의 역사도 그리 짧지만은 않은 듯하다. 거리 안에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있다. 집안과 불화하면서도 한국 무용계의 태두가 된 김해랑, 동요 ‘고향의 봄’의 가사를 쓴 이원수 등도 오동동 일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원수가 상업학교 2학년이던 1929년, 일본에서 건너온 아이 하나가 마산보통학교(성호초등교)에 입학한다. 그가 마산이 낳은 세계적인 시머트리(좌우대칭) 조각가 문신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돌아온 그가 추산 아래 정착해 조성한 공간이 현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이다. 올해 타계 30주년을 맞아 그림, 조각 등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그의 묘도 미술관 안에 있다. 문신미술관 아래엔 추산야외조각미술관이 있다. 각국 조각가 10명의 작품이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감춰져 있다. ●건축 거장 김수근의 벽돌 건축의 시작 양덕성당은 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 김수근이 붉은 벽돌로 상징되는 종교 건축 시대의 서막을 연 공간이다. 서울의 불광동성당, 경동교회와 함께 그의 3대 종교 건축물로 꼽힌다. 양덕동은 197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셋방을 얻거나 기숙 시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동네였다. 이들을 위해 지은 곳이 양덕성당이다. 당시 김수근이 책임 건축가로 지목한 이가 승효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전설로 남은 건축가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가 함께 만든 건축물인 셈이다. 양덕성당의 모티브는 ‘바위산에 핀 수정꽃’이다. 성당 꼭대기에 꽃봉오리가 있고 건물이 그 주변을 감싸는 형상이다. 마산역에서 10분 거리다. 마산은 언덕이 많은 해안 도시인데도 시원하게 바다가 조망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접근성에선 문신미술관과 산호공원이 좋다. 다만 문신미술관은 오후 6시 이후 문을 닫아 야경을 볼 수 없는 게 흠이다. 문신미술관 뒤 회원현 성터의 정자에선 마산항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문신미술관에서 10여분 정도 걸어 올라야 한다. 술이 유명했던 마산에는 국내 최대 주류 박물관이 있다. 향토 주류업체 무학이 2015년 개관한 ‘굿데이뮤지엄’이다. 다양한 술을 대륙별로 나눠 전시했다. 장수암은 요즘 ‘신상’ 여행지로 주목받는 절집이다. 번다한 마산 도심에서 벗어나 적요한 남해를 응시할 수 있다.
  • 비·안개에 가리나 했더니…오롯이 드러난 시간의 깊이

    비·안개에 가리나 했더니…오롯이 드러난 시간의 깊이

    고흥 최남단 바위 절벽 ‘금강죽봉’출입이 통제돼 쉽게 못 보는 풍경300살 ‘훌쩍’ 금탑사 비자림 걷고나로도 해안도로 따라 달려가면나로우주센터와 우주과학관까지분청문화박물관도 필수로 들러야비와 안개. 여행의 난적이다. 정 없이 내리는 비, 시야를 가리는 안개. 하나도 버거운데 둘이 동시에 들이닥치면 ‘대략 난감’이다. 이번 전남 고흥 여정이 그랬다. ‘폭망’의 검은 기운이 드리워질 무렵,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연기법’을 떠올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이 종종 쓰는 표현이다. ‘연기법’은 불교의 정수를 담은 단어다. 극단적으로 축약하면 ‘이것이 있으면 그것도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도 생긴다’는 뜻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경망스럽게 입에 올릴 표현은 아니지만 이를 ‘우수마발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이렇다. ‘고락 불변의 법칙’. 고락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 괴로움 너머엔 즐거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극단의 아름다움은 대개 극단적 환경에서 잉태되지 않던가. 비와 안개가 선사하는 근사한 풍경과 마주하게 될지 누가 알겠나. 먼저 금강죽봉 이야기부터 하려 한다. 알면서도 말 못 했던 비경. 여전히 사람의 발걸음은 통제되고 있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은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방식으로든 개방돼야 한다는 바람도 물론 있고. 금강죽봉은 고흥 최남단의 섬 지죽도 끝자락에 있는 바위 절벽이다. 국가유산청 누리집에선 이를 “지죽도 남쪽 해안의 주상절리로, 높이가 100m에 달해 웅장하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특히 흰색의 응회암에 발달한 주상절리로 다른 지역의 주상절리와 차별성을 가짐. 바다에서 바라볼 때 높이 솟아오른 바위가 매우 아름다우며 금강죽봉에서 다도해를 조망하는 경관은 주변의 해안 절벽과 함께 아름다운 모습을 보임”이라 소개하고 있다. 딱 그대로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말도 못 하게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는 것. 개방감과 전율이 그만이다. 주상절리 꼭대기의 평탄한 공간이 바다 쪽으로 확 열린 덕이다. 2021년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은 금강죽봉을 대한민국 명승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다도해국립공원사무소는 금강죽봉 일대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그러니까 ‘명승’이란 각별한 지위를 얻었으면서도 사실상 ‘비법정 탐방로’여서 들어가 볼 수 없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 거다. 한 국적 항공사의 광고 영상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으나 정작 탐방로는 없었던 충북 충주 월악산국립공원의 악어봉과 비슷한 사례다. 고흥군에서 법정 탐방로를 조성해 달라며 지속적으로 다도해국립공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금강죽봉에 법정 탐방로가 나지 않은 건 위험해서다. 금강죽봉의 주상절리는 기반이 응회암이다. 제주, 강원 철원 등에서 보던 거뭇한 현무암 주상절리와 달리 흰빛이다. 절리 부분의 강도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언제, 어느 부분이 잘려 떨어질지 알 수 없다. 사실 금강죽봉은 예전부터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던 곳이다. 한데 ‘위험한 사진 놀이터’라는 게 문제였다. 소셜미디어(SNS)에 스릴 넘치는 사진을 올리려는 이들 사이에 금강죽봉의 일부인 송곳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고 급기야 심각한 인명 사고로 이어졌다. 이후 출입 통제가 한층 강화된 상황이다. 이제 비와 안개가 전한 고흥의 풍경을 말할 차례다. 같은 풍경이라도 비와 안개가 촉촉이 감싸고 있을 때면 전혀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숲이 그렇다. 맑은 날에 견줘 한결 웅숭깊다. 고흥에 아름다운 비자나무 숲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파리 모양이 아닐 비(非) 자를 닮았다는 나무.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에 돌을 놓으면 그때마다 향기가 올라온다지. 과장 섞인 표현이겠지만 나무의 향이 그만큼 짙다는 뜻일 터다. 금탑사 뒤란에 오래 묵은 비자나무 숲이 있다. 비가 듣는 날, 비자나무 숲은 어떤 풍경과 향기를 선사할까. 포두면 봉림리에서 금탑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숲길이 이어진다. 푸조나무, 굴참나무 등 늙은 나무들이 짙은 초록빛 숲 그늘을 펼쳐 내고 있다. ‘나대던’ 심장이 금세 잠잠해질 만큼 깊고 서늘한 자태다. 금탑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도량이다. 그네들의 꼼꼼한 손길이 닿았을 장독대와 담장이 정갈한 자태로 객을 맞고 있다. 금탑사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이다. 3300여그루에 달하는 비자나무들이 절집 들머리와 주변을 빼곡하게 감쌌다. 금탑사 비자나무는 1700년대쯤부터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령 300년을 훌쩍 넘긴 나무들은 높이가 9~14m, 둘레가 1m가 넘는 거목으로 자랐다. 그중 웅숭깊은 풍경을 선사하는 건 절집 뒤란의 숲이다. 수백년은 족히 넘었을 늙은 동백과 비자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한국, 일본 등에 자생하는 비자나무는 여느 산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나무가 아니다. 난대성 수종이라서다. 남도, 그것도 절집 주변에 많다. 비자나무 이파리는 바늘잎이다. 납작하고 날카롭다. 외모와 달리 성질은 느긋한 편. 나무 둘레가 한 뼘 정도 되려면 무려 100년을 기다려야 한단다. 비자나무 숲 주변으로 푸른 기운이 둘러친 듯하다. 비와 안개 덕에 더 신비롭다. 둘레가 어린아이 몸통만 한 저 비자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비밀을 품고 있을까. 고흥 끝자락, 나로도의 해안가를 따라 드라이브에 나선다. 비 오는 날 차분하게 돌아보는 남도 바다의 자태는 정말 아름답다. 나로도는 내, 외나로도로 나뉜다. 우리가 우주 시대의 문을 활짝 연 뒤 외나로도로 가는 발길은 꾸준히 늘었다. 그 끝자락에 우주센터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한데 내나로도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한적하다. 특히 섭정삼거리에서 국립청소년우주센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빼어나다. 외나로도의 끝은 나로우주센터다. 나로호와 누리호가 발사된 곳. 누구나 실제 로켓 발사장을 보고 싶어 하지만 평소엔 볼 수 없다. 이른 봄, 고흥우주항공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잠깐 공개되는데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고 한다. 아쉬움은 우주과학관이 대신한다. 돔영상관에선 우주를 테마로 한 영상물이 180도 대형 스크린에 펼쳐진다. 하루 3~5차례 상영된다. 1, 2층은 상설전시관이다. 우주 탄생을 형상화한 ‘호버만의 구’ 등 볼거리가 많다. 야외에는 실물 크기로 만든 나로호와 과학 로켓 모형이 있다. 금세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자세가 당당하다. 여수와 경계를 이룬 영남면 쪽도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이 많다. 우미산 중턱의 도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눈부시다. 절반은 하늘, 또 절반은 은빛 갯벌이다. 이 도로 중간쯤에 작약꽃밭이 있다. 고흥 안에 경관을 위해 조성한 작약꽃밭이 몇 곳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크다. 무엇보다 배경이 예쁘다. 멀리 여수 낭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앵글만 잘 잡으면 곳곳이 ‘인생샷’ 자리다. 우미산 아래는 용암마을이다. 저 유명한 영남 용바위(고흥 8경)를 품었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은 필수 방문 코스다. “가까이 뜯어보는 아름다움보다 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아름다움을, 당장에서 느끼는 아름다움보다는 돌아서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가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밝힌 ‘분청사기의 멋’이다. 이 분청사기의 모든 것을 낱낱이 엿볼 수 있는 공간이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이다.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약칭이다. 회색이나 회흑색 태토(胎土·도자기를 만드는 흙)에 하얀 흙으로 분장한 자기를 이른다.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잇는 연결고리다. 시대로는 조선 전기에 해당한다. 분청문화박물관이 ‘가락진 멋과 싱싱한 아름다움, 분청사기’를 주제로 국보순회전 특별전을 열고 있다. 국보급 분청사기 가운데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오는 8월 10일까지 선보인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분청사기도 만날 수 있다. 문화관 뒤엔 수도암이란 절집이 있다. 문화관 앞에 전시된 조각상의 모티브가 된 뱀 전설이 깃든 곳이다. 1㎞ 정도 산길을 올라야 하는데 승용차로 2~3분이면 닿는다. 천등산 일대의 철쭉공원은 이맘때 꼭 찾길 권한다. 진홍빛 철쭉꽃이 산 사면 전체를 붉게 물들인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철쭉공원까지 임도가 나 있다. 드문드문 비포장 구간이 있긴 하지만 승용차도 너끈히 오를 수 있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독특한 식당 한 곳 덧붙이자. 풍양면의 죽시식당이다. 한정식 백반집인데 민물장어가 장기다. 소금구이처럼 슴슴하게 내는데 푸짐한 살점과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반찬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린다. 다소 짜다는 평가가 있는 편. 속을 하나하나 발라낸 뒤 조린 멸치조림은 개별 ‘요리’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맛깔스럽다.
  • 절집에서 단옷날 소금을 묻는 이유…해인사서 31일 ‘단오 소금 묻기’

    절집에서 단옷날 소금을 묻는 이유…해인사서 31일 ‘단오 소금 묻기’

    경남 합천 해인사가 단오 전통 행사의 하나로 오는 31일 ‘을사년 소금 묻기’ 행사를 벌인다. ‘소금 묻기’는 화마와 악한 기운으로부터 팔만대장경과 도량을 보호하려는 의미를 담은 전통문화 이벤트다. 해마다 양기가 가장 강해진다는 음력 5월 5일 단옷날에 진행한다. 지난 3월에 영남 일대를 휩쓴 화마 탓에 의미가 한층 각별해졌다. 소금 묻기는 오전 6시 30분부터 사찰 경내와 인근 매화산 등에서 진행된다. 헌공다례 등 전통 의례도 함께 베풀어질 예정이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해인사 내 운동장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문화체육행사가 진행된다. 기관별로 팀을 꾸려 3인 4각 경기, 줄다리기, 족구, 노래 장기 자랑, OX 퀴즈, 미니 게임 등 다양한 전통 경기가 열린다. 국악인 김주영의 특별 문화 공연도 진행된다. 주지인 혜일 스님은 “이번 단오 행사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대형 산불과 같은 재난을 막고 화재 예방에 앞장서며 지역 안전을 위한 공동체적 실천의 장으로서도 그 의미를 더한다”며 “해인사는 이번 단오 전통 문화체육행사를 통해 이 도량에 발 딛고 사는 우리 모든 대중이 화마의 부림으로부터 벗어나길 기원하며, 단오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자연재해와 재난으로부터의 평안을 발원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 유산으로 깨닫는 불법…시공을 초월하는 울림[마음의 쉼자리]

    유산으로 깨닫는 불법…시공을 초월하는 울림[마음의 쉼자리]

    시계추를 18세기로 돌린다.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가 통치하던 때다. 임진왜란 등으로 바닥을 친 조선이 비로소 흥하던 시기다. ‘벨 에포크’라 해야 할까. 문화의 힘을 재는 척도가 있다면 아마 ‘문화력’도 이때 최고조에 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재력이 뒷받침되니 대형 불화(佛畵) 제작도 봇물 터지듯 터졌다. 불화는 절에 갈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왕, 고관대작 등이나 즐길 수 있었던 산수화와 같은 큰 폭의 그림과는 달랐다. 당시 성가가 높았던 화승(畵僧)이 의겸 스님(1713~1757)이다. 사찰서 보관 어려운 문화재 관리전시 통해 불교문화 알리기 앞장앞머리에 의겸 스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건 그의 불화가 전시 중인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의 불교중앙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름에서 보듯 불교중앙박물관은 국내 불교계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다. 2007년 한국 불교의 장자 종단인 조계종에서 세웠다. 불교중앙박물관은 문화유산을 통해 불법의 세계를 깨달을 수 있는 공간이다. 각 지역의 사찰에서 보관하기 어려운 성보문화재를 보존·관리·전시해 좀더 많은 이들이 불교의 역사와 문화에 쉽게 접근하도록 이끈다. 접근성도 좋다. 한국 불교의 중심 사찰인 조계사, 경복궁과 창덕궁, 청계천, 한국 미술 문화의 중심지인 인사동 등과 바짝 붙어 있다. 한 언론사의 전시 기사 제목처럼 “내로라하는 성보문화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총출동’”하는 경우도 잦다. 언제 찾아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데 아는 이들이 적다. 두어 걸음 앞인 조계사에는 사람이 붐벼도 박물관까지 발걸음하는 이는 드물다. 사실 누구라도 현대식 건물 지하 1층에 불교박물관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조계종을 이끄는 행정기관인 총무원이 들어선 건물이라는 무게감도 사람들의 발길을 막는다. 무엇보다 전형적인 박스형 오피스 건물이라는 점이 아쉽다. 한국 불교 유산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공간답게 빼어난 건축물로 지을 수는 없었을까. 다시 의겸 스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의겸 스님은 그 자신이 국보 같은 이다. 당대에 ‘진경산수화는 겸재, 불화는 의겸’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탁월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조계종에 따르면 그가 남긴 불화 가운데 현재 4점이 국보, 13점이 보물이다. 일반에 미친 영향도 강력했다. 18세기를 살던 우리 할머니·할아버지 가운데 겸재나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본 이들보다 의겸의 그림을 본 이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설령 조선의 장삼이사들이 의겸을 알지는 못했다 해도 그들의 시각 이미지를 지배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18세기 불화 부흥 이끈 의겸 소개‘영산회상도’ 등 작품 47점 선보여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의 이름은 ‘호선(毫仙) 의겸(義謙): 붓끝에 나투신 부처님’이다. ‘호선’은 ‘붓의 신선’, ‘나투다’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의겸 스님의 유산 가운데 총 20건 47점(국보 3건, 보물 7건, 유형 1건 등 문화재 포함)이 전시 중이다. 전시작은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특히 전남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의 경우 국보 지정 이후 첫 서울 전시다. 5월 20일~6월 29일 공개된다. 전시장 들머리에서 만나는 조선시대 관음보살도의 정수인 전남 여수 흥국사 ‘관음보살도’(보물)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도’(보물) 역시 최초 전시다. 전시는 6월 29일까지이며 관람은 무료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문을 연다. 5월 5일 오후 2시에는 전시 기획자가 직접 안내자로 나서는 이벤트도 벌인다. 절집이 가장 화사할 때는 대체로 부처님오신날 전후다. 곳곳에 매달린 연등 덕에 벚꽃 구경이 안 부럽다. 박물관에서 부처님 그림을 본 것에 더해 조계사 앞 뜨락에 매달린 연등의 그림 같은 풍경까지 마주한다면 이보다 더한 봄날의 호사는 없겠다.
  • 서울 연화사, ‘부처님 생신 카페’…수익금 전액 산불 이재민에 기부

    서울 연화사, ‘부처님 생신 카페’…수익금 전액 산불 이재민에 기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연화사가 5일까지 경내에서 ‘부처님 생신 카페’를 운영한다. 아이돌과 연예인 팬덤 문화에서 착안한 생일 카페 형식으로 진행된다. 소원 성취 부적 카드, 치유 의미를 담은 일회용 밴드인 ‘약사여래부처 밴드붙여’, ‘한정판’ 연꽃 초코 라떼 등 불교 문화를 친근하게 체험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한다. 스님이 참가자의 ‘부캐’(법명)를 지어주는 작명소, 이른바 ‘스부작’ 이벤트가 특히 인기다. 연화사는 “지난해에도 성황을 이룬 이벤트로, 단순히 부캐 법명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법명의 의미를 설명하고 삶을 방향성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화사는 경희대 인근에 있는 절집이다. 주지인 묘장스님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로, ‘나는 절로’와 ‘청년밥心’ 등 독특한 불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묘장스님은 “MZ세대는 물론 모든 세대가 부처님의 자비와 치유의 의미를 즐겁게 경험하고,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부처님 생신 카페’ 운영을 통해 얻은 수익은 전액 산불 피해 이재민을 위해 기부된다.
  • 시샘하는 추위에도 지지 않고… 찬란한 희망 피우는 꽃망울

    시샘하는 추위에도 지지 않고… 찬란한 희망 피우는 꽃망울

    380년간 통도사에 봄 알린 ‘자장매’ 흐드러지게 군락 이룬 ‘순매원’ 절경환상 궁합 미나리·삼겹살도 맛봐야김해건설공고 교정 물들인 ‘와룡매’꿈틀거리며 뻗어 있는 용 형상 닮아인근 김해박물관엔 가야 유물 가득지리산 근방에서 이름난 ‘산청 삼매’선비들의 기개 담아 수백년 싹 틔워고풍스러운 한옥과 어우러져 절경매화가 피다 말고 꽃망울을 닫았다. 철없이 쏟아진 눈과 유독 심했던 2월 추위가 행티를 부린 탓이다. 매화가 꽃잎 여닫기를 여러 차례. 이제 남녘의 늙은 매화나무들이 본격적으로 꽃등불을 내걸기 시작하나 싶더니만, 이번엔 화마가 나무들의 생멸을 위협할 지경이 됐다. 그래도 고매(古梅)의 시간은 바야흐로 시작됐다. 제아무리 꽃을 시샘하는 추위와 난관이 닥쳐도 이를 거스를 순 없다. 이맘때라면 남도 쪽에 탐매객의 발길이 잦을 터다. 전남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홍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등을 ‘알현’하기 위해서다. 경남에도 못지않게 늙은 매화들이 있다. 지금부터 전하려는 건 양산과 김해를 거쳐 산청까지, 발품 팔아 만난 경남의 늙은 매화 탐매기다. 사실 매화라고 다 같지는 않다. 열매 수확을 목적으로 대량 식재했다면 매실나무라 불러야 옳다. 늙은 매화는 다르다. 늙고 검게 탄 가지 끝에 운치 있게 꽃잎 몇 장 내건다. 게다가 품은 향기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향수로도 이길 수 없을 만큼 곱고 짙다. 고매의 향기와 견줄 수 있는 건, 고매뿐이지 싶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로 먼저 간다. 이 절집의 ‘자장매’(慈臧梅) 개화 소식에 멀고 먼 서울까지 들떴다. 자장매는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법명을 딴 매화다. 통도사 역대 조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영각(影閣) 처마 아래 있다. 수령은 얼추 380년쯤 됐다. 1650년쯤 통도사 스님들이 자장율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2월 하순쯤 꽃잎을 매달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보름 이상 늦어졌다. ●천년 고찰 처마 아래 진분홍빛 안개 처마 아래로 진분홍 안개가 내려앉은 듯하다. 보통은 봄의 절집을 찾은 흥분에 소란을 떨기 마련인데, 자장매 앞에 선 탐화객 대부분이 평온하고 조용하다.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매화의 기운이, 봄의 기적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감동이 말을 잃게 만든 것일 테다. 자장매 맞은편엔 키 낮은 청매가 한 그루 있다. 이 녀석은 여태 꽃망울도 맺지 않았다. 가뜩이나 눈에 띄지 않는데, 여태 겨울 모습 그대로니, 이 봄이 지나기 전 사람들의 주목을 한 번이라도 받을는지 모르겠다. 극락보전 옆에도 이름난 홍매 두 그루가 있다. 각각 만첩홍매와 분홍매로 불린다. 수령은 300년 정도라 전한다. 통도사는 꽃만큼 고운 절집이다. 국보, 보물 등 웅숭깊은 당우들을 돌아보기만 해도 한나절이 후딱 지난다. 통도사는 법당을 중심으로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곧 하로전이다. 중심 건물인 영산전(보물)을 비롯해 홍매 두 그루가 인상적인 극락보전, 범종루 등의 당우가 밀집돼 있다. 영산전은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다보탑을 그린 ‘견보탑품도’ 등 진귀한 벽화들(보물)이 즐비하다. 영산전 앞 삼층석탑도 보물이다. 중로전 구역에는 고려 말 건물인 대광명전(보물)과 용화전, 개산조당 등이 있다. 봉발탑(보물)도 독특하다. 부처님의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밥그릇에 뚜껑이 덮인 형상을 하고 있다. 발우는 스님들이 밥을 먹을 때 쓰는 그릇이다. 상로전에도 꼭 찾아야 할 문화유산이 한가득이다.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웅전 및 금강계단’(국보)이다. 대웅전은 사면이 한 건물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다.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대웅전 안에는 불상이 없다. 건물 뒤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대방광전 앞의 구룡지는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담긴 연못이다. 그 너머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석조물이 있다. 응진전 앞 바닥의 호혈석(虎血石), 대웅전 지붕 위의 찰주, 그 아래 기와 자락 끝에 가지런한 백자연봉 등도 빼놓지 말고 감상하길 권한다. 당우마다 걸린 현판들도 하나같이 당대 명필들의 글씨다. ●낙동강·경부선 철길 따라 매화향 물씬 원동면의 순매원도 널리 알려진 매화 명소다. 낙동강, 경부선 철길과 어우러진 매화 사진으로 이름을 얻었다. 늙은 매화보다는 일반 매실농원처럼 여러 그루의 매화가 군락을 이뤄 화사하다. 원동면엔 순매원 외에도 영포마을 등 매화 농가가 많다. 1022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매화 흐드러진 근사한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사실 이즈음 원동면에선 매화보다 미나리가 더 ‘효자 관광 상품’이다. 제철 ‘원동 미나리’가 출하되기 때문이다. 이 일대에선 경북 청도처럼 미나리와 삼겹살을 함께 먹는다. 미나리의 순한 향과 고소한 삼겹살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과장 좀 보태 이 일대 가게란 가게는 죄다 미나리 삼겹살집이다. ‘한 집 건너 한 집’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닥다닥 붙어 미나리 삼겹살을 판다. 이웃한 김해에선 와룡매가 일품이다. 이름에서 어딘가 근대풍의 느낌이 드는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교정에 있다. 이맘때 김해 주민 붙잡고 물어보면 아마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하지 싶다. “하이고마, 말 마소. 마 학생보다 찍사(사진사)들이 더 많아예.” ●관광객 발길 붙잡는 고매 81그루 김해건설공고 교문을 들어서면 길 양옆으로 늙은 매화들이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도열해 있다. 매화마다 사진작가며 관광객들이 매달려 있는데, 그 숫자가 꽃가루 따는 벌보다 많아 보인다. 길 이름도 ‘매화로’다. 와룡매(臥龍梅)는 늙고 거무튀튀한 가지가 용처럼 꿈틀거리며 뻗어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특정한 한 그루의 나무를 일컫는 게 아니라 매화로 일대의 나무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심은 지 80~90년 된 고매가 81그루나 늘어섰다. 어쩌면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꼬부라졌는지, 그것도 신기하다. 그저 나뭇가지가 연출하는 춤사위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와룡매가 정확히 언제 심어졌는지는 불분명하다. 널리 알려진 건 일제강점기인 1927년 김해농업고등학교가 문을 열 때 일본인 교사가 심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기준 삼으면 와룡매의 수령은 얼추 100년에 가깝다. 재일교포가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외에서 어렵게 성공한 교포들이 국내 독립에 힘쓴 사례가 여럿인 걸 보면 그 가능성도 낮지는 않다. 김해농고 이전 뒤 1977년 개교한 김해건설공고도 내년 봄이면 이전을 하게 된다. 이후 81그루의 매화는 어떻게 될까. 김해시가 관리 보호수로 지정했다니 별 탈이야 없겠지만, 시절이 하 수상해 그것도 장담할 건 못 되지 싶다. 부디 올해가 와룡매와 만나는 마지막 봄이 아니길 빈다. 김해건설공고에서 국립김해박물관이 멀지 않다. 김해 여정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다. 김해는 2000년 전 가야의 시간이 새겨진 도시다. 최근에도 새로 가야 유물이 공개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해박물관에 가면 그 기억의 편린들과 오롯이 만날 수 있다. 게다가 무료다. 옛 가락국의 수도였던 김해에선 물고기 조각상이 종종 눈에 띈다. 이른바 신어(神魚) 신앙을 상징하는 조각들이다. 박물관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고기는 인도 드라비다어로 ‘가야’, ‘가라’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500년 동안이나 실재했으나 역사 속에선 완벽하게 사라진 나라 가야의 국호 또한 이 단어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박물관에 전시된 건 주로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부장품들이다. ‘큰 항아리’가 특히 인상적이다. 아라가야의 왕들이 묻힌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나온 항아리다. 넉넉하고 꾸밈없는 형태와 물 흐르듯 우아한 곡선은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를 보는 듯하다.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을 담았던 제기, 영혼의 전달자라는 새 모양의 토기 등도 독특하다. ●후계목으로 명맥 잇는 명매들 이웃한 산청으로 넘어간다. 지리산 근동의 경남에서 매화마을로 명자깨나 날리는 곳이다. 절집이 아닌 꼬장꼬장한 선비의 집 담장에서 고졸한 매화와 만날 수 있다. 이른바 ‘산청 삼매’다. 고려말 강회백이 심었다는 단속사 절터의 ‘정당매’(政堂梅), ‘칼 찬 선비’ 조식의 서릿발 기개 서린 산천재 ‘남명매’(南冥梅), 단성 남사예담촌 ‘원정매’(元正梅, 분양매(汾陽梅)라고도 불린다)가 주인공이다. 산청 삼매 가운데 원정매와 정당매는 고사해 후계목이 대를 이었고, 온전히 제 몸으로 꽃을 피우는 건 남명매가 유일하다. 단성면 남사마을은 500여년 역사를 헤아리는 양반 마을이다. 전통 한옥과 토담, 돌담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긴다. 특히 ‘X자’ 형태로 교차한 회화나무는 이 마을의 상징이다. 오래된 양반가가 많은 만큼이나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매화도 많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매화가 원정매다. 고려말 문신 하즙(1303~1380)이 자기 집 마당에 심은 매화로, 원정이란 그의 시호를 따 원정매라 불린다. 수령이 최소 700년에 달해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로 꼽혔다. 2007년 고사한 이후 바로 옆에서 후계목이 대를 이어 홍매를 틔워 내고 있다. 남사마을엔 원정매 외에도 이씨매, 최씨매, 정씨매 등 늙은 매화들이 많다. 정당매는 옛 단속사 절터에 남은 백매(白梅)다. 수령은 650년을 헤아린다. 여말선초에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 벼슬을 지낸 통정 강회백(1357~ 1402)이 고향의 고찰인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 원정매보다 지리산 자락으로 더 들어가야 해선지, 정당매는 늘 개화가 더디다. 원목은 2012년께 고사했고 후계목이 대를 잇고 있다. 단속사지엔 두 기의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탑으로, 둘 다 국가유산 보물이다. 이제 하이라이트 남명매 차례다. 서슬 퍼런 조선 중기의 학자 조식(1501~1572)이 말년을 보내며 후학을 가르치던 산천재에 있다. 남명매란 이름은 조식의 호 ‘남명’에서 따왔다. 남명이 환갑 이후에 산청에 정착한 걸 감안해 역산하면, 남명매의 수령은 460여년 정도로 추정된다. 남명매는 수형도 빼어나지만 앉은 자리도 일품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곳이다. 그러니까 지리산을 병풍 삼은 셈이다. 매화가 필 무렵 천왕봉이 정수리에 눈이라도 이고 있으면 그야말로 선경이다. 산천재 맞은편은 남명기념관이다. 남명과 부인의 위패를 모신 여재실 앞의 매화도 장하다. 비록 산청 삼매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담장 너머로 큰 가지를 늘어뜨린 품새가 꽤 인상적이다. 수선사는 요즘 산청에서 뜨고 있는 절집 중 하나다. 고색창연한 고찰과 달리 잘 다듬은 예쁜 정원을 보는 듯하다. 둔철산 아래의 정취암도 가볼 만하다. 절집에서 굽어보는 경치가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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