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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귀화’ 북한 국적 재일동포 3세 백가화, 하르방 고향서 ‘통일 샷’ 날린다

    ‘한국 귀화’ 북한 국적 재일동포 3세 백가화, 하르방 고향서 ‘통일 샷’ 날린다

    일본의 성격파 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한 하드보일드 영화 ‘피와 뼈’는 한 재일동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 김준평은 청년 시절 배를 타고 고향 제주를 떠나 일본 오사카에 정착한 뒤 평생을 독선과 온갖 악행으로 살아간다. 몸과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김준평은 말년에 북한땅을 도피처로 택하지만 결국 그곳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영화 이면을 들춰보면, 해방 전후 일본 동포사회가 한국을 택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북한을 택한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눠지는 배경, 그리고 이후 세대들의 만만치 않은 삶들이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동포 3세들의 복잡다기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새삼스레 부각된 건 지난달 남북 축구가 열린 무렵 북한대표팀 정대세(24·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의해서였다. ●북한 골퍼 1호… 필드의 정대세 스포츠는 거짓이나 숨김 없이 진솔하다. 끊임없는 열정과 몸짓만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대세는 “국적은 한국이지만 내 마음의 고향은 조선”이라고 솔직하고 분명하게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정대세처럼 무 자르듯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인지 밝히는 동포3세들은 그리 흔치 않다. 할아버지의 고향 제주를 처음 밟은 ‘전 북한국적의 프로골퍼 1호’인 재일동포3세 백가화(29)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23일 비 내리는 제주의 세인트포골프장.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토마토저축은행오픈에 출전한 백가화는 프로암대회가 열리기 직전 제주에 남은 유일한 친척인 11촌 아저씨 백길호(61)씨와 처음 만났다. 백씨의 아저씨이자 백가화의 할아버지 백창식(81)옹은 한 살배기 때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제주를 떠나 오사카에서 지금껏 살아왔다. 백가화는 “처음 뵙는 아저씨지만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라고 어눌한 우리말로 더듬더듬 인사한 뒤 “어제 먹은 갈치국이며 다른 음식들도 일본에서 할머니가 해주신 것과 똑같아 먼 동네에 온 것 같지가 않습니다.”고 했다. 한 세대를 압축시킨 것 같은, 한 시간 남짓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백가화는 “‘핏줄의 인연’이 이렇게 강한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며 놀라워했다. 백가화는 지난 2006년 JGTO 던롭피닉스오픈 출전 당시 우연히 알게 된 토마토저축은행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고,2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한 해 초청 제한 횟수인 3회까지 한국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약속받았으니 오래 전부터 꿈꾸던 ‘코리안 드림’을 일군 것이나 다름없다.”고 기뻐했다. ●호주PGA 북한국적이라 비자 거부당해 그는 3년 전 북한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한창 공이 잘 맞았던 그 시절, 백가화는 미국프로골프(PGA) 2부투어(네이션와이드) 진출을 모색했었다. 호주PGA 대회에도 초청을 받았지만 북한 국적이라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 젊은 혈기에서였을까, 아니면 골프에 대한 열정에서였을까. 그는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직후 열린 던롭피닉스오픈 홈페이지 프로필난에 북한 국적으로 표기된 것을 보고는 “난 엄연히 한국사람이니, 내 이름 옆에 태극기가 나오도록 해달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그의 일본 이름은 요시카즈 하쿠. 한국 이름을 만든 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총련계 학교에서는 일본 이름을 쓰지 않기 때문에 ‘요시카즈’의 한자를 한글로 발음해 백가화(白佳和)라는, 다소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바꿨다. 그가 한국국적을 취득할 당시 그의 아버지 헌택(55)씨와 형 광영(33)씨 역시 한국 국적을 얻었다.“아버지는 ‘부친의 고향이 나의 고향’이라고 생각하셨다.”면서 “죽기 전에 고향의 국적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코리안 드림 위해 3년전 국적 바꿔 백가화는 “정대세는 분명 재일동포 사회의 자랑이자 새 ‘아이콘’임에 틀림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나처럼 고민이 많았을 청년”이라고도 했다. 둘은 2년 전 ‘조·일스포츠인 간친회’에서 처음 만났다.“키 크고 몸 좋고, 단단한 청년”으로 그는 정대세를 기억하고 있다. 각 종목 20여명과 총련 관계자 등 약 30명이 함께한 그 자리에서 둘은 “같은 동포 선수로서 동포들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되자.”고 굳은 악수를 나눴다. 둘은 모두 총련계 조선학교를 통칭하는 ‘우리학교’ 출신이다.“그러나 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들이 어디에 속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한국을 택하는 또래들이 많아졌다.”고 백가화는 전했다. 그러나, 국적은 바꿨지만 백가화 자신은 여전히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남아 있다. 그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 이념과 현실이 맞부딪치고 있는 땅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국적은 한국으로 바꿨지만 어찌 보면 재일교포로서의 존재가 더 편할 수도 있다.”고 그 또래들이 겪고 있는 혼란한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같은 ‘경계인’이었지만 그 틈바구니에서 ‘꽃’을 피워낸 정대세, 그리고 아직 피우지 못한 백가화. 그러나 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민족을 거부하고 엄혹한 현실에 쉽게 동화하는 세태에서 자신들의 생애를 관통하는, 그리고 오래도록 바뀌지 않을 그 무언가가 각자의 심장 속에 똑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주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백가화는 누구? 출생 1979년 11월15일 일본 오사카 학교 오카야마 조선초중급학교 히로시마조선학원 고등부 가족 부모 백헌택(55)·오영자(52)씨의 3남 중 둘째 골프입문 15살 때 프로데뷔 2001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특기 숏아이언, 퍼트 주요성적 카시오월드오픈 공동4위, 아콤인터내셔널 공동5위(2005년), 일본PGA챔피언십 공동5위, 카시오월드오픈 공동6위(2006년)
  • [오늘의 눈] 미래 준비해야 할 국회의 舊態

    며칠새 국내 각 신문을 보면 한 인물이 눈에 띈다.손정의(孫正義)일본소프트뱅크 사장이 단연 화제다.정보통신분야에서 100여개 국내 벤처기업을 발굴·투자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최소한 1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을 계획이라고 한다.국내 인터넷업계는 ‘손정의바람’에 휩싸이고 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국내 업체를 외국기업에 팔아넘기면 어떻게 되느냐는 불안감을 깔고 있다.손씨가 재일동포3세이지만 외국기업의 오너이기 때문이다.이런 논쟁을 뒤로 하면 그가 부럽다. 무엇보다 멀리 내다보고 있다.‘밀레니엄인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손씨를 다룬 신문지면을 넘기면 짜증스런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정치면이 바로 그것이다.어제와 같은 소식들이 그대로 실려 있다.어제와 같은정쟁을 되풀이 하고 있는 탓이다.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밀레니엄정치’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임시국회는 21일 이틀째 파행됐다.이번에는 국정조사 공방으로 비롯됐다.한나라당은 ‘언론문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했다.국민회의는 ‘한나라당정형근(鄭亨根)의원 고문개입의혹’‘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의원의 발언’으로 맞대응했다.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어 옭아매려는 데 급급하고 있다. 신경전은 ‘시간논쟁’으로 이어졌다.국민회의는 ‘더이상 과거에 매달릴수 없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이제는 새 천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요체다.그러자 한나라당은 연말까지 매듭지어주겠다며 여권을 또 압박했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한 하나가 있다.이런 식의 논쟁은 소모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열하루짜리 임시국회 일정만 줄어든다.새 천년을 준비하는 시간만 빼앗길 뿐이다. 현안은 산적하다.선거구제가 핵심인 선거법 등 정치개혁입법,민생·개혁법안 등 한둘이 아니다.모두가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넘겨졌다.임시국회에서도 여야의 정쟁에 볼모로 잡혀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새천년 새정치’를 외치고 있다.그렇지만 행태를 보면 ‘밀레니엄정치’는 요원한 인상이다. 내년 총선이 정쟁을 가중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선다.시간이 없다.남은 열흘동안과거를 정리해야 한다.새천년에는 미래만 얘기해야 한다.손정의씨처럼. 박대출 정치팀기자dcpark@
  • 가깝고도 먼 이웃(한·일수교 30년)

    ◎수교 19년뒤에야 한국정상 “공식 방일”/66년 무역협정 서명… 경제협력 “물꼬”/빈번한 교류속 일 지도층 잇단 망언 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일 양국간에는 모두 17차례의 정상간 왕래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공식 방일이 추진된 것은 72년이다.박정희 대통령이 11월23일 공식 방일하기로 예정됐었으나,국내의 반일감정이 수그러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취소됐다.박대통령은 18년에 이르는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일본을 공식방문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의 공식 방일이 성사된 것은 12년 뒤인 84년에 이르러서였다.이 해 9월6일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히로히토 국왕을 만났다.이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90년과 94년 각각 일본을 방문했다. 수교전에도 대통령의 방일은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48년과 50·53년 등 세차례 일본을 비공식 방문,요시다 총리 등과 면담하기도 했다.또 61년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경로에 일본을 비공식 방문,이케다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일본 총리는 사토 총리로 67년 6월30일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공식방한한 첫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총리로 83년 1월11일 서울에 와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이후 88년 다케시타,91년 가이후,92년 미야자와,93년 호소카와 총리의 방한이 이어졌다. 비공식과 실무 방문을 포함하면,한국의 대통령은 모두 7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며,일본의 총리는 10차례 방한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6년 3월 한일간의 무역협정이 서명,발표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 관계도 시작됐다. 이 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장기영 전부총리와 후지야마 일 경제기획청장관이 참석하는 한일경제각료 간담회가 열렸다.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80년대 말까지 크게 확대되어 왔으나,90년대초에 들어 무역·투자·기술협력 등의 분야에서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역불균형 심화가 지속적으로 양국간 현안이 됐는데,65년 1억 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는 80년대 후반에 50억 달러를 초과하기 시작했으며,92년에는 79억 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67년 정기 각료회의가 시작된 뒤,양국 외무장관 회담,고위외교정책협의회,한·일 어업공동위원회,문화교류실무자회의 등의 한·일 정부간의 정기회담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한일협력위원회,한일경제협회,한일협회,한일여성친선협회,한일문화교류기금 등의 민간 친선단체가 발족되기도 했다. 65년 1만명에 불과하던 양국간 인적교류는 지난해 2백70만명으로 늘어났다.일본이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은 68만8천명이다.최근에는 재일교포와 일본인과의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90년 통계에 따르면,재일교포의 총혼인건수 1만3천9백34건 가운데 동포간 혼인은 15.8%에 불과하며,일본여자와 결혼한 교포남성이 19.5%,일본남자와 결혼한 교포여성이 64.2%였다.일본에 귀한한 재일교포는 50년이래 17만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관계 발전의 한편에서는 일본측의 망언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일본의 고위각료급에서만도 해마다 일일이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망언을 쏟아냈다.대표적인 것이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그에 대한 86년 후지오 문부상의 망언으로 양국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다.정부는 이해 9월 예정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연기하며 후지오의 망언에 엄중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외상이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을 함으로써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도쿄의 평가와 과제/“국교정상화 한국발전에 크게 기여”/위안부 등 개인배상문제 불씨 잠복/재일동포3세 법적지위개선도 현안 한국과 일본은 22일로 한·일기본조약 서명 30주년을 맞는다. 국교가 정상화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한국에 대한 우월감이,한국은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또 「김대중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망언파동 등으로 한일관계는 곡절도 많이 겪었다. 한일관계는 양국 정치에 있어 「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정략적 카드」로 악용당한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한일국교정상화가 냉전체제하에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한국의 경제발전,일본의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안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양국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다는 데 대해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진다.특히 일본에서는 국교정상화가 한국에 보다 많은 플러스가 됐다고 말하는 학자,평론가들이 많다. 초대 주일대사를 지낸 김동조전외무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냉전구조하에서 정치적으로 아시아,넓게는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으로서도 피폐해진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조약체결로 얻은 자금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도쿄신문 20일자).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이 한국경제 발전에 대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일사학자 강재언교수도 높이 평가한다.하지만 강교수는 강조하는 점이 조금 다르다.그는 우선 일본으로부터 무상공여 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의 자금은 식민지 피해에 따라 당연히 받을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강교수는 또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배상을 받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특권층을살찌운 반면 한국은 깨끗하게 경제건설에 활용됐다』고 말해 자금이 들어온 일본보다는 활용한 한국의 노력에 비중을 두었다. 그는 반면 「식민지지배 책임문제」 등이 분명하게 밝혀진 위에 국교정상화가 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돈이 급하고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된채 기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여러가지 문제들이 남게 됐다고 말한다.남은 문제들 가운데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반성,한일기본조약의 해석,재일동포 3세이하의 법적 지위 문제,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배상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서명 이동원 전외무/“국력 길러 일 우월의식 극복을/과거에 매달려 역사흐름 놓치지 말길/패전 극복 일의 창조적 노력 본받을만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이동원 전외무장관(현 국제학술원이사장)은 21일 국교정상화 30주년에 즈음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말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인터뷰 내용.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당사자로서 30주년을 맞는 감회와 기본조약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은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전후 세계사에서 가장 길었던 외교협상이었습니다.그만큼 양국간의 적대감과 갈등이 깊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약에 서명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식민지지배에 대한 청산을 분명히 하지않고 경제협력을 우선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역사는 변화하는 것입니다.변화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한·일기본조약은 그 시대의 역사적 변화의 흐름을 활용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당시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한국도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과거의 역사는 물론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의원의 「전후50년국회결의」 채택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과거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독일과 같은 자세가 부족합니다.일본은 국수주의적 환상에서 깨어나 이웃국가들과 함께 공존·번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러나 불행히도 아시아의 후진성을 이용,우월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강합니다.공존의 시대에 배타주의적 우월의식을 고집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고 봅니다.일본도 중국·한국·아세안등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인식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국교정상화후에도 일본지도층의 망언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변국가를 멸시하는 일본의 배타주의적 우월의식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의 의식속에는 아시아를 깔보는 경향이 강하게 배어있습니다.그러나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창조적 노력과 국력배양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2차대전후 일본은 전쟁폐허의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일본은 그러나 미국에 머리숙이며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경제부흥을 위해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특히 선진기술을 그대로 모방하지않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본적인 알파」를 추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러한 「창조적」 노력이 오늘과 같은 경제대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일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그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점점 깊어져왔습니다.작은 것이라도 「한국적 알파」를 추가하려는 창조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의 시각이 변했다고 봅니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한국을 얕보는 본질적인 인식은 크게 변하지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지배를 배경으로 한 한·일간의 특수관계에서 이제는 보통의 이웃국가관계로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과거가 미래를 구속하는 상황이 더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광복 50주년이 됐습니다.일본에도 한국에도 식민지이후 세대가 중심이 되고 있기때문에 한국도 이제는 냉정한국제정치논리에 대비하여야합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양국은 경제뿐만아니라 정치·문화등 각분야에서 더욱 밀접하고 복잡한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그러나 한국은 반일감정을 극복하고 기술·정보등 경제분야의 발전을 통해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야합니다.물론 일본과는 경제규모에서 대등할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질적인 대등함을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합니다.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력이 뒷받침되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스포츠한국 당당히 과시하라(사설)

    「아시아인의 화합과 평화」를 주제로 내건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우리선수단에게 격려를 보내며 정정당당한 승부와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2일 개막식에 이어 오는 16일까지 15일간 열리는 이번대회에는 42개국 7천3백여명의 임원·선수들이 참가,사상최대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북한이 정치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불참했지만 구소련연방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등 중앙아시아 5개국이 첫선을 보이고 캄보디아가 74년이후 20년만에 선수단을 파견함으로써 90년 북경대회 때보다 5개국이 늘어났다. 히로시마대회는 아시아경기대회사상 처음으로 개최국의 수도가 아닌 지방도시에서 열린다는 점,또 이곳이 원폭투하의 비극을 겪었던 도시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대회와는 다른 감회를 안겨주기도 한다.이번대회의 최대관심은 86년 서울대회와 90년 북경대회에 이어 3회연속 2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과 홈그라운드에서 한국을 제치고 2위를 탈환하려 하고있는 일본과의 격돌에 있다.스포츠전문가들은 3백37개의 금메달중 중국이 1백80여개를 휩쓸고 한국과 일본이 각각 60∼65개를 따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한국선수단은 일본보다 5개정도의 금메달을 더 따내 종합전적 2위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일본의 텃세,북한의 불참,중앙아시아 5개국의 전과등이 변수이긴 하지만 우리선수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목표달성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스포츠의 궁극적 목표가 승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살고있는 재일동포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서도 한국선수단은 일본을 제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 한가지 반가운 소식은 재일동포3세들이 주축이 된 4천3백여명의 응원단이 한국선수들이 출전하는 각 경기장을 찾아다니며 펼칠 응원 계획이다.이 응원단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조총련계학생들도 많다고 한다.우리는 이념을 떠나 조국의 선수들을 함께 응원하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작은 통일」의 본보기이며 재일동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데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 선수들이 기대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두어 최근 갖가지 사건으로 암울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기 바란다.우리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려줄 것은 물론 정정당당한 대결과 깨끗한 매너로 선수로서의 품위를 지켜줄 것도 아울러 당부한다. 국토와 인구면에서 우리는 중국에 크게 못미친다.그러나 경기에서 2위에 그치더라도 매너등 그밖의 모든 면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능가할수 있다.그것이 1위가 아니겠는가.아시아에서는 역시 한국이 제일임을 마음껏 과시해 주었으면 한다.
  •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사설)

    과거가 지나간 현재이고 미래가 앞으로의 현재라면 우리에게 있어 과거 현재 미래는 언제나 소중한 것이다. 특히 미래가 소중하다면 과거는 그만큼 의미가 더 크고 더욱 교훈적일 것이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따라서 과거도 깨끗해야 하지만 현재도 맑아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일본과 한국이 지금 그런 계제에 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은 그런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한일국교정상화이후 국가원수로는 두번째이지만 그 이후 일왕 아키히토(명인)의 방한도 예정돼 있는 만큼 이번 대통령의 방일은 한일간 관계를 새롭게 전개,정립시킨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된다고 할 것이다. 새로운 한일협력 시대의 정립을 두고 요즈음 두나라가 겪고 있는 혼선과 갈등은 그런 점에서 보면 「비온 뒤」와 「땅 굳기」에 비유해도 그르지 않다고 본다. 일본쪽으로 보면 지금 한국문제및 재일동포 법적지위와 관련하여 이른바 4대악이란게 있다. 지문날인ㆍ강제퇴거ㆍ재입국허가ㆍ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가 그것이다. 여기에 요즘엔 동포3세에 대한 영주권부여문제가 걸려 있다. 물론 일본으로서는 이런 문제들이 악의 요소가 아니다. 일본측으로는 자국거주 외국인에 대한 통상적인 정책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 있어 또 그들 과거와 관련하여 재일한국인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사와 범죄적 과거의 소산인가를 조금만 인식한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재일동포3세문제만 하더라도 한일간 실무협상에서는 물론 그들 국회에서까지 논의가 됐지만 그들 당국자들은 이상한 명분과 논리를 내세워 앞뒤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점진적인 영주권부여니 또는 특수호적제니 등록증 상시휴대 완화니 해서 겉으로는 그럴 듯한 안들을 얘기하지만 근본문제의 개선보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간 불편한 관계의 깊이를 구태여 지적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조하건대 오늘날 한일문제의 출발은 일본이 일제가 저지른 식민수탈과 전쟁의 역사적 죄과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고 있는데서 시작됐다. 그들은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희생물이다. 또 3세는 그들의 후손이다. 그런 일본은 한일관계사에 관한 한 지금까지 그들의 과거에 대한 것으로는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유감표명」이란 표현으로만 호도해왔다. 사과는 커녕 뒷전에서나마 시인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무책승차라는 말이 있다. 안보에 관한 한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을 빌려 쓰고 미국의 안보호에 동승하고 있다. 부와 힘을 구사하는 풍요로운 그 사회에 「대동아전쟁긍정론」이 대두된지는 벌써 오래 됐다. 재일동포문제ㆍ무역 역조시정ㆍ첨단기술 이전 등 현안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를 인식하고 과거를 청산하는 겸허함을 지녀야 한다.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군인ㆍ군속과 그 유족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물론 생존해 있는 수만명의 원폭피해자들에 대해 최소한 일본인 보상수준과 같은 보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왕의 방한문제는 별도로 언급코자 한다. 그러나 역시 과거청산없는 한일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어렵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 재일동포3세 지위보장 “정치적 절충”/박태준위원 긴급방일의 배경

    ◎의회차원 해결 모색,실무교섭지원/가이후에 결단촉구… 조기타결 압력/노대통령 방일과 맞물린 심각성도 지적할 듯 5월말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 일본방문의 최대 걸림돌로 떠오른 재일한국인3세의 법적지위개선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양국정부간 실무교섭차원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의 막후접촉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23일 한일위원연맹회장인 박태준 민자당최고위원대행이 돌연 방일함으로써 한일 양국간 재일한국인문제해결의 결정적인 주사위는 정치권에 떠넘겨진 인상이 짙다. 이는 그동안 1년 넘게 협상을 벌여온 양국 외무부를 주축으로 한 정부차원의 교섭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협상부진상태가 계속된 가장 큰 이유로는 재일한국인 문제해결에 대한 일본정부측의 미온적이고 무성의한 태도를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양국정부간에 현재까지 합의된 사안은 고작 재일한국인 3세이하에 대한 협정영주권을 부여하자는데 원칙적인 합의를 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3세이하」의 범위도 일반및 특례영주권자ㆍ협정영주권 미신청자 등을 포함,일본사회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모든 재일한국인 3세이하 자자손손에게까지 자동적으로 협정영주권을 부여하자는 우리측의 요구에 비해 일본측은 제한된 세대까지만 영주권을 주장하고 있어 결국 성과가 미약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협정영주권 부여문제가 이와같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문날인,외국인 등록증 상시휴대,강제퇴거,재입국허가등 이른바 4대악제도의 철폐문제는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교착상태가 지속된다면 재일한국인문제는 한일 양국간 「아킬레스건」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고 노대통령의 방일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외교소식통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성의있는 해결책 제시가 없을경우 노대통령의 방일이 연기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게 사실이다. 재일한국인문제로 인해 양국관계가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이때 한일 양국 집권당거물간의 잇따른 상호방문은사태해결의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박 민자당최고위원대행이 정치적 절충을 위해 23일 급거 일본으로 떠난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현재 일본에서는 중의원예결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만큼 박대행이 방일기간중 일본의회를 통해 강경ㆍ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일본행정부에 정치적 압력을 가해주기를 우리측 정부관계자들은 내심 기대하고 있다. 박대행은 이날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한의원연맹 소속의원들이 의회차원에서 재일교포들의 법적지위문제에 대해 질의키로 돼 있는데다 한일의원연맹회장으로서 가만히 있을수 없어 갑자기 출국하게 된 것』이라며 자신의 방일목적과 배경을 설명했으나 그가 일본정 관계주요인사들을 두루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할 것 같다. 박대행은 2박3일동안 일본에 머무르면서 가이후(해부)총리,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전총리,하세가와 다카시(장곡천준) 일한의원연맹 재일한국인 법적지위개선위원회 위원장등 일본 자민당내 거물들과 폭넓게 접촉할 예정이다. 박대행은 가이후총리와 다케시타 전총리를 만나 재일한국인문제해결의 심각성을 지적,일본측의 정치적 결단을 다시한번 촉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특히 하세가와 다카시위원장과 만나는 자리에서 재일한국인문제에 대한 일의회차원의 강력한 지원사격을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대행도 현재 양국간의 교섭진행상황과 관련,『50대50으로 보고있지만 이번 방일을 통해 70대30으로 끌어 올렸으면 한다』고 밝혔듯이 그의 방일일정이 순조로울 경우 여야를 떠난 범일본의회차원에서 「재일한국인문제에 대한 정치적 결단 촉구결의안」이 제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양국간 정계거물의 상호교환방문에서도 알수 있듯이 양국 정치권에서는 『재일한국인 법적지위개선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는 공동인식을 갖고 있다. 그동안 두번이나 연기된 노대통령의 방일이 이번 사태로 인해 또다시 연기되거나 취소된다면 한일양국 모두에게 가해지는 외교적 손상이 클 수밖에 없음은 차치하고라도 21세기의 양국간 동반자협력시대를 앞두고 양국관계에 결정적인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양국정치권 사이의 인식공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강경한 자세로 버티고있는 일본관계성ㆍ청의 대한태도이다. 특히 경찰청ㆍ법무성ㆍ문부성 등이 「다른 외국인과의 형평」을 근거로 절대 우리측의 요구를 들어 줄수 없다는 비타협적인 자세를 갖고있어 문제해결의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정치권 뿐만 아니라 학계ㆍ문화계ㆍ언론계등 지식인계층의 의견개진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측 지식인 1백15명이 「재일한국인처우개선을 위한 제언」을 23일 일정부측에 전달한 것이나 일본측에서도 동경대교수를 비롯한 지식인계층이 자국정부의 자세전환을 촉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현실은 문제해결의 청신호로 평가된다. 양국정치권의 활발한 엄호를 받으며 양국정부는 오는 30일 서울에서 양국외무장관회담을 열고 재일한국인문제에 대한 막바지 절충작업을 벌인다. 우리측은 이번 회담에서 확실한 해결책이 담보돼야 하고 그래야만 노대통령의 방일을 예정대로 추진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방침이다.
  • 재일동포 3세는 누구인가(사설)

    세상의 인간관계가 그러하듯이 나라끼리 사귀고 친목을 돈독히 하는데는 오랜 시일과 우여곡절이 따르게 마련이다. 각자 국가이익과 견해 차이로 해서 밀고당기는 때는 있어도 대체로 큰 테두리 안에서 적대하지 않고 협조해 나가는 데는 이해와 협동이 필요한 것도 그 까닭이다. 그런데 요즘의 한국ㆍ일본 사이에는 많은 모순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올해는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가 끝난 지 45년이 되고 또 한일관계를 정상화한 국교를 맺은 지 25주년이 된다. 오는 5월중에는 노태우대통령이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두번째로 일본을 공식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한일관계는 그러나 지금 대단히 불편하다. 재일동포 3세의 법적지위 문제논의가 일본측의 표리부동한 태도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게다가 그쪽의 몇몇 각료가 과거 일본의 과오와 그들 선배들의 행적을 놓고 이상한 발언을 해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다시금 그들의 역사 왜곡자세와 본말을 전도한 무책임한 발언을 시비하고자 아니한다. 다만 재일동포 3세의 법적지위보장 문제는 한일관계의 앞날을 위해서도 말끔히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할 뿐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 1세와 2세는 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와 더불어 체결된 법적지위협정에 따라 영주권을 얻었으니 그들 후손인 3세에게도 영주권을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그 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조차 없다. 더욱이 동포3세가 성인이 되는 것은 대개 서기 2000년 후의 일이기 때문에 91년 1월부터 발효하게 될 3세 이후의 법적지위협정에서는 그들의 영주나 인권을 규제하는 각종 제약이 완화돼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관계당국자들은 지금 재일동포3세 문제에 대해 종래의 완고한 입장을 허물지 않고 있다. 처음엔 비교적 완화하는듯 하다가 절차만을 간소화한 채 현행제도를 고수하겠다고 나오는 것은 아무리 안팎이 다르게 움직인다는 그들이지만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재일동포문제뿐 아니라 한일간 모든 현안에 대한 그들의 성실성을 의심하게 된다. 현행제도의 절차만을 간소화한다면강제추방조건ㆍ지문날인ㆍ재입국조건ㆍ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 등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법적 차별은 물론이거니와 동포들의 인권과 생활권 침해 요인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서도 일본 당국이 한일우호관계가 제대로 지속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거듭 묻거니와 재일동포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대부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동안 이른바 「국민동원계획」「조선징용령」「국민징용령」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당사자들이거나 바로 그 후손들이다. 그들은 일제의 전쟁목적에 혹독하게 이용당했다. 일본은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 일본에겐 역사적ㆍ도덕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한다. 일본이 과거의 전쟁 범죄와 과오를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유감」표명으로만 넘기려 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들의 국제적 체면과 도덕성도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 한인3세 지위 일 내부 이견/내일 한일회담 못열듯

    【도쿄 연합】 오는 20일과 21일 이틀동안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재일동포3세 법적지위협상을 위한 제4차 비공식 고위실무자회담이 연기될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양측은 당초 쌍방 외무부 국장급이 참석할 이번 회담에서 그동안의 협상결과를 마무리,30일 열릴 외무장관회담에 올릴 계획이었으나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이 가까워오고 있는데도 일본측의 부처간 의견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바에야 회담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쪽으로 실무진의 의견이 기울어 차라리 회담을 미루더라도 일본측의 부처간 의견조정을 기다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당초 20일로 예정됐던 고위실무회담은 연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최악의 경우 국장급회담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외무장관회담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외무성이 중심이돼 부처간 의견조정작업을 벌여왔으나 지문날인,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재입국 허가,강제추방등 이른바 4대 악제도유지는 물론 영주권조차 당분간 3세로 국한할 것으로 주장하는등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는 법무성ㆍ경찰청등과 유연한 대처를 요구하는 외무성등의 입장이 엇갈려 의견통일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교포3세 법적지위/일 자민,강경론 대두

    ◎한국요구와 배치…협상에 장애 【도쿄 연합】 한일간의 최대 현안이 되고있는 재일동포3세 법적지위협상과 관련,일본의 집권 자민당내에서 강경론이 대두돼 협상전망을 어둡게 하고있다. 자민당은 11일 당본부에서 치안대책 특별위원회를 열고 재일한국인3세 법적지위협상과 관련한 치안대책 등을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치안은 행정상의 문제이지 정치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정치가가 감정에 치우쳐 불규칙한 발언을 하면 한국측에 지나친 기대를 안겨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신중론이 잇달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치안대책 위원회의 이같은 분위기는 지문날인제도 철폐등 한국측의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집권당의 태도경화라는 점에서 협상의 장래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한소수교와 선결문제/한종태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일행의 방소활동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데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간에 주고받은 친서및 답신내용이 공개됨에 따라 한소양국간 수교가 목전에 다다른 느낌이다. 양국관계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남북관계개선과 이에따른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구조정착이라는 점을 인식할때 이같은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부는 또 소련측과 정부차원의 공식수교접촉을 갖기위해 대표단을 5월께 모스크바에 보낼 계획으로 알려져 한소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급진전할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북한과 함께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했던 소련과 어느새 수교협상을 벌이게 됐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우방」이 되는 냉엄한 국제정치적인 현실은 차치하고라도 화해와 협력의 신데탕트기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소간의 수교가 양국간의 보다 성숙한 관계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수교이전에 몇가지 문제에 관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전쟁의 공동책임자인 소련은 당시 그들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1천만 이산가족에 대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소련은 이산가족들에 대한 응분의 유감표시를 해야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83년 KAL기 격추사건의 희생자및 유가족에 대한 소련측의 유감표명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소련이 85년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추진하면서 동구권에 대한 군사지원을 격감시켰음에도 불구,오직 대북한군사지원만은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있어야할 것 같다. 또 북한의 철저한 폐쇄정책을 개방으로 유도하지 못해 긴장이 지속되고 북한주민생활이 피폐화된데 대해서도 소련은 일종의 공동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 여하튼 지난 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당시 그때까지 양국간에 걸려있던 현안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지금까지도 재일동포3세의 법적지위문제,사할린교포송환,원폭피해자및 태평양전쟁희생자에 대한 보상문제등 중요현안들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한일관계를 교훈삼아 한소관계의 개선에 너무 서두르다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정부관계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이같은 문제해결은 양국외무부를 통한 정통외교로 차분하게 추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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