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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이란 종이접기… 한번 접혀도 끝은 아니지”[월요인터뷰]

    “인생이란 종이접기… 한번 접혀도 끝은 아니지”[월요인터뷰]

    엘리트 코스 밟다 파산 후 종이접기도피하듯 떠난 일본에서 종이접기“남자가 무슨” 비웃음과 창작 고통TV 출연하고 버티니 새 경지 도달‘인생과 닮은꼴’ 종이접기실패·반복·선택의 과정 서로 닮아잘못 접었다면 방향 바꿀 기회로포기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 해야K종이접기 리더십 전파美·日 등 자비로 세계에 재능기부지시보다 많이 듣는 리더십 필요어른 된 코딱지들, 초심 잃지 않길 누구나 가슴 속에 추억 하나쯤은 안고 산다. MZ세대(1981~2011년생) 초입에 있는 1980년대 초중반생이라면 대부분 ‘종이접기 아저씨’의 추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아침마다 TV를 틀면 “코딱지(어린이 애칭) 친구들 잘 따라오고 있나요”, “손톱만큼만 남기고 접어요”, “어때요. 참 쉽죠”라며 종이접기를 가르쳐 주던 ‘코딱지들의 대통령’, 바로 김영만(76)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다. 충남 천안 동남구 병천면에 있는 ‘아트오뜨’에서 지난 15일 김 원장을 만났다. 핑크색 셔츠에 하늘색 재킷을 입고, 흰색 뿔테 안경을 쓴 영락없는 ‘영 세븐티’ 노신사였다. 젊음이 넘치는 패션 감각만큼 열정도 그대로였다. 김 원장은 1988년 KBS ‘TV 유치원 하나둘셋’에 처음 등장해 어린이도 쉽게 따라 접을 수 있는 종이 작품을 선보이며 ‘종이접기 아저씨’로 명성을 쌓았다. 서울예고와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미술 전공자로서의 내공과 익살 넘치는 입담은 동심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종이접기를 시작한 지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실력은 여전했다. 오히려 더 노련해졌다.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했다가 9일 만에 돌아온 늑대 ‘늑구’를 단 3분 만에 색종이로 뚝딱 접어 완성한 김 원장은 “종이접기는 ‘인생’과 닮았다”고 했다. 그는 “좀 비뚤게 접어도 괜찮다. 용을 접다 곰이 나오면 그것도 새로운 발견”이라며 “인생도 마찬가지다. 한번 잘못됐다고 끝이 아니다. 벽이 나오면 주저앉지 말고 돌아가면 된다. 벽이 지구 세상 전부를 막았나. 색종이 바꾸듯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30대 시절 대기업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뒤 일본에서 처음 종이접기를 접했다. “남자가 그 나이에 무슨 종이접기냐”라는 세간의 비웃음과 창작의 고통으로 우울증과 공황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은 끝에 ‘종이접기=김영만’이라는 공식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종이접기 분야 일인자에 오를 수 있었다. 김 원장은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가 변화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이접기는 잘못 접으면 비뚤어짐이 눈에 보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틈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그 틈을 파고들었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나 역시 일본에서 틈을 발견하고 뛰어들어 내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에게 종이접기를 배웠던 ‘코딱지’들이 어느덧 40대로 성장해 각자 ‘삶’이라는 색종이를 접어가고 있다. 김 원장도 어느새 70대 중반에 들어섰다. 40년간 종이접기로 세상을 바라봐 온 김 원장에게 종이접기는 어떤 의미일까. 종이 한 장으로 깊숙이 숨어 있었던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내 추억에 눈물짓게 하는 김 원장의 ‘마력’은 무엇일까.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 -TV 앞에 앉아 종이를 접던 코딱지들이 어느새 어른이 됐는데. “행사장에서 만난 한 어머니가 유치원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그때 코딱지였다’고 하더라. 2015년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고 나서 ‘그간 어디 계셨나. 보고 싶었다’는 인터넷 댓글을 보고 눈물이 났다. 종이접기만 했을 뿐인데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늘 감사하다.” -처음 종이접기를 하게 된 계기는. “홍익대를 졸업한 뒤 대우실업(현 포스코인터내셔널)에 입사해 기획·총괄 디자이너로 잘 다니다 사표를 냈다. 디자인 에이전시를 내고 싶었는데 동업자가 갑자기 이탈하면서 집을 날리고 파산했다. 그러다 잠깐 일본에 갔다가 능숙하게 종이접기를 하는 일본 유치원생들과 ‘덕후’(마니아)들을 봤고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 교과 과정에 종이접기가 없는 걸 보고 이걸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창들이 ‘종이접기로 코 묻은 돈을 벌겠다는 거냐’라며 혀끝을 찼다. 부모님도 반대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딱 1년만 해보겠다고 설득한 뒤 ‘김영만표 색종이 작품’을 만들고 종이접기 무료 강의도 했다. 그러다 ‘TV 유치원 하나둘셋’에 출연하게 됐다. 당시 39세였다. 웅변학원에 가서 사투리도 고치고 아동 심리도 공부했다.” -종이접기가 힘들진 않았나. “힘들 때도 있었다. 금요일에 5일치를 미리 한꺼번에 녹화했었는데, 3년쯤 지나니 아이템이 고갈됐다. 창작의 고통이 몰려와 수요일만 되면 불면증이 찾아왔고, 우울증과 공황 장애까지 겪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끝에 새로운 경지에 오르게 됐다.” -색종이 한 장의 의미는. “내 인생을 바꿨다. 사업 실패로 도피하다시피 떠난 일본에서 가로·세로 각 15㎝의 색종이를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종이접기는 내게 희열과 감동을 준다. 나를 즐겁고 편안하게 해준다. 종이접기가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나만의 인생철학이 있다면. “종이접기는 인생과 닮았다. 실패와 반복, 선택의 과정이다. 용을 접으려 했는데 곰이 되면 이조차도 새로운 것이다. 하다 안 되면 옆으로 빠져 다른 길을 선택하면 된다. 나 역시 안정된 길에 머물렀다면 수많은 코딱지들의 기억 속 ‘색종이 아저씨’는 없었을 것이다. 기회가 오면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했다. 노력이 없었으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다.” -종이접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정확함’인가. “각을 맞춰 접는 건 어른의 기준이다. 아이들은 비뚤어지고 찢어져도 괜찮다. 그 과정에서 배운다. 그래서 ‘1㎝’ 대신 ‘손톱만큼’ 접으라고 말한다. 부모의 지나친 지적은 흥미를 잃게 한다. 부모들도 코딱지 시절엔 잘 못하지 않았나. 중요한 건 통제보다 공감이다. 아이들이 보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고 게임도 함께 즐기며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디지털·인공지능(AI) 시대에 종이접기는 어떤 효능이 있을까. “아이들의 인지력을 향상시키고 인성의 발달을 돕는다. 일종의 ‘오감 만족’ 교육이다. 종이 냄새, 사각사각 소리, 색깔, 손바닥 전체를 쓰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길러지고 참을성과 집중력이 자란다. 작품 완성에서 오는 쾌감도 있다. 아이들은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접는다. 부모가 함께하면 효과는 배가 된다. 챗GPT 같은 AI에서 인성을 배우긴 어렵다. 어른에게는 아날로그 감성과 더불어 삶의 여유를 준다.” -한번 잘못 접으면 자국이 남는다. 되돌릴 수 없는 인생과 닮은 걸까. “인생을 색종이에 비유해보자. 한번 잘못 접었다고 끝이 아니다. 다른 길을 선택하면 된다. 실패는 방향을 바꿀 기회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 찾아가는 것이다.” -K종이접기 세계화도 추진하나. “일본·미국·캐나다·독일·몽골·인도네시아 등에서 자비로 재능 기부를 해왔다. 종이문화재단은 비영리 단체라 수익이 없어 선생님들이 개인 비용으로 참여한다. 현재는 종이나라(국내 1위 색종이 제조사)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도쿄 인근 일본조선학교에서 학부모회 초청으로 강의했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비행기와 마술 꽃, 요술 지팡이를 던지는 움직이는 종이접기를 하며 ‘비행기를 김영만 콧구멍에 던지세요’라고 했더니 애들이 금세 깔깔대며 웃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크게 웃었던 게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요즘 시대 필요한 리더십은. “지시하는 것보다 많이 듣는 ‘경청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처럼 수행원 없이 나 홀로 서비스센터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모습과 그런 자세는 의미가 있다. 말은 짧게 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또 손아랫사람에게 먼저 인사도 하고 예의를 지켜야 ‘어르신’으로 존중받는다. 낮은 자세가 오히려 나를 높이는 길이다. 종이접기를 배운 아이들은 나를 친구로 본다.” -이 시대 청년에게 인생의 어른으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이라면. “요즘 청년들은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다. 벽이 있으면 돌아가면 된다. 앞으로 나아가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그런 실패의 경험이 나를 성장시킨다. 젊음은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 그래야 젊었을 때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덮지 말고 책과 인터넷으로 공부해 전문성을 키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른이 된 코딱지들에게 편지를 쓴다면. “정말 잘 자라줘서 고맙다. 힘들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과한 욕심보다 현재에 만족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초심을 잃지 말고 계속 움직여라. 어른이 됐으니 어른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자녀를 대할 때도 늘 공감해 주고 배려해라. 세상이 무너져도 색종이 한 장은 남는다. 걱정하지 말고 힘내라.”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원장은 1950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예고와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부터 KBS ‘TV 유치원 하나둘셋’에 9년간 출연하며 ‘종이접기 아저씨’로 이름을 알렸다. KBS ‘혼자서도 잘해요’, EBS ‘딩동댕 유치원’과 ‘보니하니’, 대교어린이TV ‘김영만의 미술나라’ 등 다양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재능 기부로 종이접기 세계화에도 힘써왔다. 2009년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어린이 미술체험 공간 ‘아트오뜨’를 설립했고, 현재 개인작업실로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수원여대 아동미술과 겸임교수, 한국미술연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김영만과 함께하는 만들기 나라’, ‘코딱지 대장 김영만’ 등 저서도 다수 출간했다.
  • 아들이 들려주는 야구선수전설 ‘최동원’의 삶

    아들이 들려주는 야구선수전설 ‘최동원’의 삶

    부산근현대역사관은 다음달 11일 오후 2시 역사관 별관에서 ‘대가(大家)의 2세들’ 이라는 주제로 인문콘서트를 열어 야구선수 최동원의 삶을 조명한다고 28일 밝혔다. 강연자는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다. 고교 시절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최씨가 자신의 인생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아버지의 교육관과 인생철학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동원은 한국 야구사의 전설 같은 인물이다. 경남고 시절 당대 최강팀을 상대로 호투하여 전국에 이름을 알렸으며, 1970년대 후반에는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며 해외에까지 이름을 떨쳤다. 최동원은 부산 연고 야구팀 ‘롯데’에 잊을 수 없는 영광을 안겨준 주역이다. 1981년 롯데가 실업(實業)팀 시절에는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에 투수로서 6경기 모두 등판, 2승 1세이브를 기록하며 실업팀 롯데에 마지막 우승을 안겨줬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4년, 최동원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또다시 홀로 4승을 책임지며 프로팀 롯데에 첫 우승을 안겼다. 자신은 최고의 위치에 있었지만, 저연봉‧저연차 후배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1988년부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설을 주도하는 등 한국 야구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특히 이날은 아들 최기호의 기억을 통해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이자 인간 최동원의 모습을 만난다. 대담 진행은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부산 출신 웹툰 작가 배민기가 맡는다. 대담 이후에는 최동원을 떠올리게 하는 ‘부산갈매기’, 최동원이 육성으로 부른 ‘내가’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시민 누구나 사전 접수를 통해 이번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김기용 부산근현대역사관장은 “아프지만 뜨거웠던 80년대에 뜨거운 20대를 보낸 최동원의 생애를 2세의 기억을 통해 돌이켜보며 부산의 지난날도 함께 되새기는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떠나자”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떠나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방송인과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주철환(70)씨는 인생을 ‘재미’와 ‘의미’ 두 단어로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정의했다. 그는 “재미는 나 자신이 누리는 즐거움이고, 의미는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삶에 깊이를 더하는 지혜를 전했다. 지난 28일, 동신대학교 여성리더십 최고위과정 강의실에서 만난 그는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인생철학을 들려주었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삶은 역설적으로 평온합니다. 삶의 본질이 더욱 선명해지고, 인생의 절정을 지나 내려오는 산길조차 한결 가볍고 즐겁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주 교수는 경쟁과 관계에 대한 독특한 통찰도 더했다. “우리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경쟁자는 상대의 단점에 머무르지만, 관계는 상대의 장점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대학 동기들과 가진 50주년 모임을 떠올리며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 ‘안 늙었다’고 농담하지만, 속마음 한쪽에는 ‘저 사람은 뭐지?’ 하는 경쟁심도 있었겠죠. 이제는 그런 시선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복수도, 후회도 모두 내려놓았다”고 말하는 그는 “마이크만큼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는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무대 밖 품격’에 관한 그의 철학은 남달랐다. 방송 PD 시절, 연예인 출연료 정산을 위해 주민등록번호까지 외웠던 일화를 들려주며, 김혜자·강부자·남은희·정혜선·김영옥 등 이름만으로 품격을 상징하는 배우들을 떠올렸다. “이분들은 진정한 주연입니다. 무대 밖에서도 언제나 품격을 잃지 않으셨죠.” 주 교수의 인생관은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깁니다. 매일을 새롭고 아름답게, 감동으로 채워야 후회가 없습니다.” 그는 삶의 태도를 바꾸는 세 가지 주문도 전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려니 하자.’ ‘그러거나 말거나.’ 이 단순한 문장들이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고통을 덜어줍니다.” 음악에 대한 애정도 특별하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입니다. 대학가요제부터 김광석, 서태지의 ‘난 알아요’까지, 노래에는 시대의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스스로를 ‘노래 채집가’라 불렀다. 그는 서태지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을 방송국으로 이끌어 스타로 만들었다. “곤충 채집이 생명을 멈추게 한다면, 노래 채집은 감성을 되살립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건강 비결 역시 인상적이다. “매일 한 시간 음악을 들으며 걷고, 하루를 시작할 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크게 외칩니다. 이런 일상이 노화를 막기보다 웃음을 먼저 챙기게 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도 이어졌다. “60세에 저세상에서 저를 부르시면 ‘아직 젊다’고 전해 주시고, 70세에 오시면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말해 주세요.” 최근 겪은 잇따른 상실의 아픔도 조심스레 털어놨다. 동생이 배우자를 잃고 군대 동기가 아내를 잃었다고 한다.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확인하는 아픔이라 오늘을 더욱 진지하게 살아가게 합니다”라고 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위로와 웃음을 선물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제 인생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 “음식엔 치유의 힘 있어… 남도 요리와 젊은 명장 키우고 싶어”[월요인터뷰]

    “음식엔 치유의 힘 있어… 남도 요리와 젊은 명장 키우고 싶어”[월요인터뷰]

    요리 금수저? 일식 흙수저!고깃집 막내아들로 요리에 눈떠대학 진학 실패 후 일식 요리 올인조리장 땐 월급까지 털어 고객 관리 상추튀김 텐동·김치식초 등 연구‘7전 8기’ 대한민국 명장의 철학청년 상인에 기회 주는 명장의 거리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상권 꿈꿔무안참사 땐 음식봉사 동참 이끌어시대에 맞는 전문 요리학교 만들 것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매년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선정해 ‘대한민국명장’이란 칭호를 부여한다. 대통령 명의의 명장패와 장려금 등이 주어지는 이 자리에는 기술만 좋다고 오를 수 없다. 15년 이상의 현장 경험과 입상, 논문 실적, 봉사활동 경력까지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통해 큰 명성을 얻은 안유성(53) 셰프는 2023년 선정된 16번째 대한민국 요리명장이다. 7전 8기 끝에 명장이 된 그는 이미 지역에선 유명 인사였다. 한국바다셰프협회장, 한국조리기능장협회 호남지회장 등 직함만도 수두룩하다. 연예인은 물론 역대 대통령들이 광주 방문 시 그의 식당에 꼭 들렀던 덕에 ‘대통령의 요리사’라고도 불린다. 그의 요리 인생은 얼핏 ‘금수저’처럼 보인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가 전남 나주에서 ‘장수회관’이란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음식에 눈을 떴다. 어머니는 3남 3녀 중 막내였던 그에게 종종 심부름을 시켰다. 젓갈, 천일염, 고춧가루 등 좋은 식재료를 찾는 안목을 키운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럼에도 어머니와 달리 일식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건 고교를 졸업한 1990년 무렵이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그는 1만원만 들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조그마한 횟집에서 기본기부터 배웠던 소년은 이제 어엿한 사업가가 됐다. ‘가매일식’을 비롯해 장수회관, 곰탕집 ‘장수나주곰탕’, 평양냉면집 ‘광주옥1947’ 등을 운영 중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편의점 세븐일레븐 도시락과 밀키트도 냈다. 지난해 말엔 전복죽과 곰탕을 싸 들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을 찾은 그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 요리사의 동참이 이어졌다. 요리명장, 사업가를 넘어 교육자가 될 꿈이 더 남았다고 하는 안 셰프의 인생철학이 궁금해 지난 21일 광주 서구 농성동 가매일식을 찾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머니의 고깃집을 이어 갈 수도 있었는데 왜 일식을 택했나.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외식업이 크게 성장하던 때였다. 한식당, 중식당은 많아도 일식당은 드물었다. 어머니가 큰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단체 손님만 받던 2층이 비어 있었다. 그곳에 일식당을 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낚시를 좋아해 참치 잡는 원양어선의 선장이 되고 싶었다. 한국해양대에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 됐다. 대학 진학을 못 하면서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그저 일식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가족에겐 말도 하지 않고 서울로 향했다.” -어떻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나. “아는 분의 소개로 서울 구로의 조그마한 횟집 모퉁이에서 먹고 자면서 배웠다. 운 좋게 훌륭한 스승님 두 분을 만났다. 웨스틴 조선 서울 출신의 김진국 셰프와 서울신라호텔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모셨던 김영주 셰프였다. 그분들이 호텔에서 나와 차렸던 서울 강남의 초밥집에서 일했다. 스승님 밑에서 일본으로 단기 연수도 수차례 다녀왔다.” -스승에게서 가장 크게 얻은 건 뭐였나. “고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기술은 연마하면 되지만 마음가짐은 그렇지 않다. 항상 일찍 일어나 새벽 시장에서 하루치 재료의 신선도를 확인하며 고르는 눈을 길렀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재료 손질처럼 날마다 반복하는 일에 빨리 지친다. 사실 일을 반복하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성장해 있는 것이다. 똑같이 매일 밥을 지어도 기온과 습도, 햅쌀이냐 묵은쌀이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성장은 반복되는 일 속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광주에는 언제 다시 왔나. “서울에서 일하던 1997년쯤 광주 무등파크호텔에서 총조리장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서울 유명 초밥집에서 부주방장까지 하며 탄탄대로가 열릴 수 있었는데 나의 ‘꿈의 궁전’을 만들겠다고 왔다.” -안유성만의 ‘꿈의 궁전’에선 무얼 했나. “그때부터 고객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난 월급 받는 만큼 일한다는 생각을 멍청하다고 여겼다. 총조리장으로 있는 동안 ‘여기는 내 가게’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고객에게는 내 월급을 털어 선물을 주기도 하고, 바다낚시를 가서 잡은 생선 사진을 단골 고객에게 보여주며 회를 대접했다. 광주의 유명 정재계 인사는 거기서 다 만났다. 그러나 2002년 호텔이 문을 닫으면서 진짜 내 식당을 열게 됐다.” -오너 셰프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빌린 돈으로 작은 식당을 인수했는데 인테리어는 포기하되 음식 질에 신경 썼다. 처음엔 직원 월급도 못 줬지만 입소문이 나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역세권임에도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었다. 주변에 매물이 나오면 하나씩 매입했다. 현재 식당 4곳, 카페 1곳을 운영 중이다. 조만간 막걸리 주점도 하나 열 계획이다. 이 중 2016년 냉면집을 연 것은 이북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이북의 맛을 제대로 살린 냉면집을 내고 싶었다. 처음엔 장사가 안됐는데 2년 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평양냉면 열풍이 불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는 말이 맞더라.” -대한민국 명장이 꼭 되고 싶었던 이유는 뭐였나. “명장이 꿈 그 자체는 아니었다. 명장은 꿈을 이루는 데 지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명장의 거리를 만들고 싶었다. 상권이 활성화되면 거대 자본이 원주민을 밀어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다른 청년 상인들도 들어와 장사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런 상권을 만들고 싶었다. 청년 상인에게 팝업스토어 형태로 장사할 기회를 주고 싶다. 현재 운영하는 카페 1곳은 청년 상인에게 운영을 맡긴 수수료 기반의 매장이다. 명장이 되기까지 여태 사랑받았으니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 -흑백요리사에 나왔던 ‘대통령 명장 텐동’은 안유성만의 요리로 알려졌다. 메뉴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일본 도쿄에 있는 140년 전통의 텐동점 ‘텐쿠니’에서는 튀김에 소스가 발라져 나와 눅눅하다. 광주는 각종 튀김에 초절임을 넣어 상추에 싸 먹는 ‘상추튀김’의 기원지다. 한국인은 바삭한 걸 더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광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상추튀김 텐동’을 만들게 됐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메뉴 아이디어는 내가 필요한 것을 찾다가 나오기도 한다. 평양냉면에 곁들일 고급 식초를 쓰고 싶은데 시중의 식초가 맘에 안 들어 완도 다시마를 발효한 식초를 만들었다. 음식은 계속 진화하는 것이다. 내 음식이 최고라고 고집하기 전에 고객 수요에 맞춰 발전시키는 것 또한 셰프의 능력이다.”(안 셰프는 물김치를 이용한 김치식초 제조법 등 특허 6건을 보유하고 있다.) -광주에도 미슐랭 가이드 식당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일본 후쿠오카는 작은 도시임에도 미슐랭 식당이 많아 미식 관광을 가는 곳이 됐다. 광주는 젊은 인재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미슐랭 식당이 있다면 요리 분야 인재들이 남도 음식 발전을 위해 같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광주시에서 (미슐랭 유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내게 자세히 물어보기도 했다. 초밥은 일본에서 기원했지만 나는 남도에서 나는 식재료로 섬세한 기술을 발휘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하우가 축적되면 나중에 남도 초밥이 꽃을 피울 날도 올 것이다.” -무안국제공항에 봉사하러 갔던 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힘을 좀 보탰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갔더니 컵라면은 있어도 음식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다. 주위의 외식업 하는 분들도 함께했던 거고 나 혼자 한 것은 아니었다. 기사가 많이 나면서 음식을 기부하겠다는 연락도 많이 왔고 현장과 모두 연결해 드렸다. 조금이나마 유가족과 관계자들께서 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음식엔 마음을 고치는 치유의 힘이 있다. 이번 현장에서 그걸 더 절실히 느꼈다.” -요리사로서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는. “일본 초밥 전문점 ‘스키야바시 지로’의 오노 지로 셰프는 1925년생인데 아직도 현역이다. 내 건강만 허락한다면 오랫동안 고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종 꿈은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나 일본 ‘쓰지 조리사 전문학교’와 같이 시대에 맞는 전문 요리 학교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내 아들이 쓰지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현재 많은 대학의 요리학과는 현장과의 연결성이 부족하다. 실무를 가르친 후 1년가량은 오너 셰프로 일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터’(육성 기관) 역할을 하고 싶다. 부지는 충분히 확보했고 10년 안에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 “마음이 치유됐다”…SNS에 ‘1일 1말씀’ 올리는 日 ‘고양이 수도승’ 화제

    “마음이 치유됐다”…SNS에 ‘1일 1말씀’ 올리는 日 ‘고양이 수도승’ 화제

    일본의 한 사원 주지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매일 인생철학이 담긴 문장을 올려 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1597년 설립된 일본 오사카 센넨지(専念寺)의 주지 야부모토 마사히로는 현재 22만 7000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지역의 길고양이 사진과 함께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전하는 짧은 글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올라온 게시물에서 야부모토는 “가치는 ‘자리’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 콜라 하나의 가격도 산 위에서는 400엔(약 3618원), 축제에서는 300엔(약 2713원), 자판기에서는 150엔(약 1357원), 슈퍼마켓에서는 85엔(약 769원)”이라며 “이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어떤 환경에서 발휘할 수 없었던 재능이나 노력은 적절한 환경으로 옮기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환경과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무리하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경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제대로 된 곳을 찾았을 때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게시물은 1만 1000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마음이 치유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게시물에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야부모토는 “일상에 작은 행복이 숨어 있다. 그중 하나가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다. 배부르게 먹고, 깊은 잠에 몸을 맡기는 등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시간이 매일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활력을 준다”고 적었다. 또 “정말 강한 사람은 내 약점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약점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자기 성장의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외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삶에 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건 불가피하나 그것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잊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등의 글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SCMP에 따르면 이 사원은 이 글들을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올릴 뿐 아니라 종이에 직접 써서 사원 문 앞에도 붙인다. 직접 눈으로 이 글을 보기 위해 사원을 찾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깊은 야부모토는 지역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지역 단체도 지원해왔다. 자기 자신을 ‘고양이 수도승’이라고 부르며 글과 함께 꾸준히 고양이 사진을 올리는 이유다. 그는 자기가 올리는 글들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전했다.
  • 노홍철 ‘긍정’ 이유가…“사람 죽었다는 연락만 하루 3통”

    노홍철 ‘긍정’ 이유가…“사람 죽었다는 연락만 하루 3통”

    방송인 노홍철이 긍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이유를 털어놨다. 노홍철은 5일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노홍철이 미친 듯이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럭키비결, 홍철적사고)’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관련 내용을 전했다. 이날 구독자 6명과 함께 부산 어묵투어에 나선 노홍철은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과거 자신이 여행하면서 얻은 인생철학을 들려줬다. 노홍철은 “베트남에서 기차로 20시간 이상이었나? 그 거리를 이동하면서 한국에서 받은 연락 중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 세 통을 받았다. 동료 어머니, 친구 아버지, 동갑내기 친구의 남편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노홍철은 “(남편의 부고를 전한) 동갑내기 친구가 특별했던 게, 내가 막내일 때 그 친구도 막내작가였다. 어느 순간 봤더니 나도 가운데 자리에 서 있고 이 친구도 메인작가가 되어 있더라. 심지어 히트작도 많더라. 20대 때 만나서 결혼도 하고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웠다. 언제든지 (남편과) 여행을 갈 수 있었는데, (일이) 잘되니까 ‘조금만 더 하고’라며 미루다가 갑자기 그렇게 되니까 너무 허무하더라”고 털어놨다. 이어 노홍철은 “인생이 정말 재미있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하루하루 재밌게 노력해서”라고 덧붙였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오래 살아남기 위하여

    [나태주의 풀꽃 편지] 오래 살아남기 위하여

    내가 사는 공주는 유독 화가가 많은 고장이다. 한국화 전공의 화가보다는 서양화가들이 많다.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화가도 있고 국내에서 그림값을 높이 받는 화가도 여럿 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고 따르는 화가는 임동식 화가다. 오죽했으면 그의 그림에 내가 시를 새롭게 써서 시화집(그리운 날이면 그림을 그렸다)을 내기까지 했겠는가. 임 화가와 나는 1945년생 해방둥이 동갑내기다. 을유생 닭띠로 그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고 나는 시 쓰는 사람이다. 열다섯 열여섯 살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시를 쓰고 싶었으며 이제 80살을 앞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와 나는 너무나도 다른 면이 있다. 그래서 그를 만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가진 것을 임 화가는 거의 하나도 가지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가족이 없는 사람, 혈혈단신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집도 없는 사람이다. 지금 작업실로 쓰는 집은 역시 해방둥이 동갑내기 친구 우평남씨의 것을 빌린 것이다. 그렇다고 나처럼 일생 동안 정해진 직장 생활을 하고 정년 퇴임을 해서 연금 혜택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 어떤 사회생활을 줄기차게 했다든가, 계속 만나는 모임이 따로 있다든가, 그런 사람도 아니다. 동업자인 미술가들과도 일정한 모임을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오로지 그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다. 화가 하나로 시작하여 화가 하나로 끝나는 사람이다. 오직 화가일 뿐인 사람. 어떤 의미에서 임동식 화가는 한 사람의 철학자인지도 모른다. 철학이란 인생 전반에 대해서 깊이 그리고 맑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이며 끝내 어떻게 남을 것인가를 궁구하는 것이 철학이라면 임 화가의 그림 그리기는 그러한 인생철학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임 화가는 그림으로 수도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림 수도승. 한국 천지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세계를 두루 살펴도 이런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오로지 거룩한 심정 하나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는 사람이 바로 임동식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그동안 공주 바깥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임 화가의 그림이 한국 사회에 알려진 것은 2020년 강원도 인제 박수근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제5회 박수근 미술상을 받고 나서의 일이다. 이제는 화가의 그림을 구입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서울 쪽으로, 전국적으로 그림이 알려져 구매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임 화가와 박수근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토크쇼에 참석한 일이 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화가를 대신해서 내가 너스레를 많이 떨었다. 그때 내가 화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것이 있다. 왜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거냐고. 화가는 즉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때 내가 “오래 살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제서야 화가는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짐작과 달리 이 말은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처음 했다고 한다. 본래는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Ars longa Vita brevis)의 뜻이었는데, ‘아르스’란 포괄적인 단어를 ‘아트’로 번역하는 바람에 오늘날과 같은 문장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좋다. 화가가 그토록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나 같은 시인이 또 오래도록 시에 매달리며 살아온 것은 유한한 인생을 무한한 인생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기껏해야 인생은 100년. 하지만 그림이나 시는 그 100년 인생을 훌쩍 뛰어넘는다. 영원의 바다에 풍덩 그 몸을 던진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태주 시인
  • ‘당신의 경제IQ를 높여라’…경제학 실천기, 답을 얻다

    ‘당신의 경제IQ를 높여라’…경제학 실천기, 답을 얻다

    ‘경제 IQ’. 단순하게 돈을 잘 벌거나 투자를 잘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어떻게 벌고 모으고 쓸지는 결국 인생철학의 문제다. 경제학적 삶이란 비단 돈과 관련된 측면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우리 생활 전반에 관여되는 삶의 방식이다. 한순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저서 ‘당신의 경제IQ를 높여라’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경제학의 원칙으로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 또 ‘라이프사이클 이론’을 제시하며 일찍이 연금형 보험으로 노후 대비를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신혼 초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 걱정을 하는 모습으로 ‘컨틴전시 대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경제학자의 ‘경제적인’ 가족관도 들려준다. 한 교수는 행복하고 원만한 가족 관계를 위해서 남편과 아내의 경제적 가치를 지표화해서 평가하는 작업을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 이 책에서는 AI, 플랫폼 산업 등 기술 발전을 비롯하여 고령화, 인구 감소, 세계 정세 변화 등에 대한 경제학자의 견해를 담아 독자들이 경제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한 교수는 “삶을 ‘경제적으로’ 꾸리는 안목과 힘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경제IQ다”고 이야기하면서 “돈 잘 버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경제교육이 되어버린 시대에 경제학자가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 [최보기의 책보기] 누가 진실로 가난한 사람인가

    [최보기의 책보기] 누가 진실로 가난한 사람인가

    “지난 번 어버이날에 최준영 교수님이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들고 병원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책을 통해 새삼 확인했습니다. 인생이라는 학교에 와서 잘 배우고 갑니다. 말년에 여러분과 함께 인문학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진작 공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합니다. 아쉽거나 두렵지는 않습니다. 제 삶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했던 주인공은 그로부터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이 성프란시스대학(노숙인대학)에서 인문학 과정을 열었을 때 참여했던 1기생 중 한 명인 ‘노숙인 김 씨’였다. 그가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최준영 교수님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최준영은 그 즉시 달려가 세 시간 가까이 그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했던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인데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자께서 괜히 그런 말씀을 남기신 것이 아니다.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모든 인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다. 당신의 행동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살아라”고 했다. ‘가난할 권리’는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하늘로부터 받은) 살아야 할 권리인데 ‘함께 사는 세상’에서만 획득이 가능하다. ‘노숙인은 집, 직장, 건강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사람,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과의 관계가 모두 끊어진 사람’인데 ‘그에게도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자기 돈 써가며 20년 째 찾아가는 최준영의 인생철학의 뿌리는 오차 없이, 도덕(道德)을 목숨처럼 여겼던 칸트에게 닿는다. ‘가난할 권리’는 최준영이 지난 20년 동안 만나고, 말을 들어줬던 사회적 약자들과 어울렁더울렁 얽히며 살아온 이야기다.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기록이자 성찰이다. 그날 김 씨 장례식장에 온 노숙인들이 대성통곡 하면서 내놓은 부의금이 130만 원이나 됐다. 옷 속에 바느질 해 지켰던 인생 최후의 비상금들이었다. 그들이 왜 우는지 아는 최준영이 단지 그들을 수단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지난한 길을 걸어왔다는 의심이나 심증은 ‘가난할 권리’ 어디에도 없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가난할 권리’를 읽으며 울지 않거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다면 당신은 신이거나, 사람이 아니거나 중 하나다. 플라톤의 이데아(idea)는 모두가 함께 행복한 유토피아다. “거리에선 인문학이 작고, 인문학엔 거리가 적다”며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저자의 꿈은 ‘교도소 대학 설립’이다. 얼마 전 김소담의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를 소개할 때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라는 말을 다시 함으로써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그와 함께 세상을 견디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책값은 16,000원이고, 온라인 서점에서 10% 할인 받으면 14,400원이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수림문화재단, 수림큐브서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3’ 전시 개최

    수림문화재단, 수림큐브서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3’ 전시 개최

    수림큐브서 월~토 12시~18시까지예약 없이 무료 관람 수림문화재단(이사장 최규학)은 오는 8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수림큐브에서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3’ 전시를 개최한다. 수림아트랩은 시각예술 분야와 전통음악 기반 창작예술 분야의 만 40세 이하 예술가를 선정해 성장 단계에 있는 예술 인재들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작품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수림문화재단의 예술창작지원 사업이다. 올해 전시는 ‘수림아트랩 신작지원 2022’에서의 평가를 통해 재창작 지원에 선정된 김효진, 요한한 작가가 기존 작업에 깊이를 더하는 작업으로 완성했으며, 수림큐브에서 8월 3일까지 전시된다. 김효진 작가의 ‘인간적인 것의 미로’는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전시를 선보인다. 삶과 죽음, 인위와 야생, 동물성과 식물성 등 인간 안의 이중성을 인식하고 하나로 통합하면서 인간이 스스로 부과한 삶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탐구한다. 홍예지 큐레이터는 “미로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나’와 ‘타자’의 경직된 구분을 넘어 낯선 것에 마음을 연다면, 삶은 기꺼이 즐길 만한 모험이 된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요한한 작가의 ‘포:룸-또 다른 시간을 위한 會’는 태곳적 사고, 포스트 디지털, 다른 시대들을 요소로 한 작품으로 요한한 작가의 비유와 상상의 세계를 펼친다. 홍희진 큐레이터는 “다층적 시선을 공유하는 ‘장’으로서 ‘포룸’의 현장을 통하여 지금까지 진행해 온 작가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설명한다. 전시 기간 중에는 ‘퍼쿠스(Percuss)’, ‘아나크로닉(Anachronics)’, ‘오라쿨룸(Oraculum)’, ‘스레딩(Threading)’을 주제로 매주 토요일 총 4회에 걸쳐 포럼을 진행한다. 전시 관람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일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이다. 보다 자세한 전시 정보는 수림문화재단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수림문화재단은 동교(東喬) 김희수(金熙秀) 선생의 인생철학인 ‘문화 입국’을 바탕으로 2009년 설립되었다. ‘배움을 통하여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설립자의 뜻을 이어받아 예술 창작 지원·문화예술 인재 양성·김희수 정신 연구 및 계승 사업 등을 진행하며, 삶 속에서 문화예술이 숨 쉬는 지속 가능한 예술생태계를 만들어나가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 [여기는 동남아] 영국 명문대 석사 출신 ‘고깃집 댄스왕’, 인기 폭발

    [여기는 동남아] 영국 명문대 석사 출신 ‘고깃집 댄스왕’, 인기 폭발

    말레이시아에서 댄스 실력을 뽐내며 돼지구이 작업을 하는 인플루언서가 알고 보니 영국 명문대 석사 출신임이 알려져 화제다. 특히 그의 고된 유학 생활과 ‘인생철학’이 공개되면서 수많은 누리꾼들이 열띤 호응을 보내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네그리 샘비란주에서 고기구잇집을 3대째 이어 운영하는 34살의 케니 씨가 그 주인공이다. 블랙핑크의 '핑크베놈(Pink Venom)'을 '돼지베놈(Pig Venom)'으로 바꾼 댄스 버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큰 인기를 끌었다. 신나게 춤을 추면서 작업을 하는 모습에 현지 블랙핑크의 팬들을 비롯해 수많은 팔로워가 생겨났다. 그런 그가 최근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영국 런던 노섬브리아 대학의 마케팅 비즈니스 석사 학위증 사진과 함께 ”7년, 해외 유학을 하면서 내 운명이 바뀌었다”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 졸업장이 얼마나 비싸게 얻은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없이 다시 성장한 시간들이 소중했다”면서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가진 게 없어도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라고 밝혔다. 학업에 기울인 노력 덕에 학비의 30% 장학금을 받았고, 여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학생회 대표가 되기도 했다.하지만 유학 도중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수중에는 2주치 생활비만 남게 됐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식비와 생활비를 최대한 아꼈다. 1주일에 20파운드(약3만원)으로 생활을 했고, 친구들이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의 어려운 상황을 아는 친구들은 회식이나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그를 초대했다. 비록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는 “그때의 경험은 퍽 좋은 것이었다”면서 “돈의 소중함을 철저히 배웠다”고 전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이미 기업체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고, 대학교수는 그에게 장학금 신청을 받아 박사 학위를 하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고국으로 돌아와 집에서 운영하는 고깃집을 3대째 운영하게 됐다. 그는 “배운 것과 반드시 관련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더라도 배움을 유용하게 쓸 수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소셜미디어에서 ‘로스구이 댄스왕’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그는 더 길게 앞을 내다보고 있다.유학 시절의 기회들을 놓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배운 지식을 활용해 사업을 더 크게 성공시킨 뒤 박사 학위를 마치기 위해 유학길에 다시 오를 계획이다. 그는 해외 유학 시절을 돌아보며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단단한 내면을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것들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의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회의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부모님들, 아이들이 위기를 느끼고,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아이 스스로 위기를 느껴봐야 앞으로 사회에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테니까요”라고 당부했다.
  • 달에 혼자 남은 지구인… 너무 웃긴다, 배 아프게

    달에 혼자 남은 지구인… 너무 웃긴다, 배 아프게

    조석 작가의 인기 웹툰 ‘문유’를 중국 영화사가 사들여 영화로 만들었더니 ‘초긍정’ 휴먼 코미디 ‘문맨’(오는 11일 개봉)이 됐다. 달에 혼자 남아 지구에 행성이 충돌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정비공 ‘독고월’(선텅)이 캥거루에게 두들겨 맞아 가며 좌충우돌 끝에 지구로 돌아온다는, 다소 황당하기도 한 이야기다. 그동안 중국 영화가 보여 준 지나친 애국주의를 덜어 낸 영화는, 꽤나 재미있다. 달을 방패 삼아 소행성을 막으려던 ‘달 방패 계획’이 실패하고 모두가 철수하는데 독고월만 지구 귀환 셔틀을 놓친다. 짝사랑하던 달기지 사령관 ‘마람성’(마리)에게 기막힌 프러포즈를 준비하다 지시를 못 들은 탓이다. 독고월은 달 기지에 남은 캥거루 한 마리와 다투고 정이 들어 교감하면서 지구 귀환 여정에 나선다. 장츠위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해 7000만 관객을 사로잡아 중국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제35회 금계장 2관왕, 웨이보 영화의 밤 최고 인기 영화상, 도쿄 중국영화주간 초청 등을 통해 지난해 아시아 최고의 인기 영화로 올라섰다. 그런데 정작 많은 중국인들은 이 영화가 우리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을 몰랐다고 해서 우리를 화나게 했다. 지난 3일 시사회에서 뚜껑을 연 영화의 완성도는 기대치를 뛰어넘었다. 우선 긍정 코미디로 방향을 튼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4년 동안 600여명의 특수효과 스태프가 매달렸다는 컴퓨터그래픽(CG)은 달을 떠나려고 발버둥치는 독고월과 관객들이 함께 뛰고 달리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축구장 여섯 개 크기인 6000㎡의 달기지 세트에는 달 표면의 질감을 살린 운석 구덩이 조형물을 만들어 두고 200t에 이르는 바위를 갈아 달의 분진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어떤 절망이 닥쳐도 절대 좌절하지 않는 주인공 독고월의 인생철학도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좋은 소식은 내가 살았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지구가 망했는데 나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지구로) 못 돌아갈 내가 아니지” 같은 독고월의 대사나 장면은 관객들에게서 박장대소를 끌어내기도 한다. 선텅은 민망할 정도로 망가지고 한없이 무모하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인류가 희망으로 삼을 만할 ‘대단한 보통 사람’을 완벽하게 그려 냈다. 과학 이론이나 실현 가능성을 내려놓고 유쾌하게 볼 만하다. 다만 중국의 ‘우주 굴기’를 긍정 마인드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 부작용 정도랄까. 왜 이렇게 좋은 원작을 우리 제작자들과 감독들은 외면했을까. 남녀노소 함께 유쾌하게 즐길 만한 영화인데 아쉽기만 하다.
  • 달에 혼자 남겨졌는데, 진지한 SF 말고 ‘초긍정 코미디’로 122분

    달에 혼자 남겨졌는데, 진지한 SF 말고 ‘초긍정 코미디’로 122분

    122분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자니 이 영화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막막함이 몰려왔다. 달에 혼자 남아 지구에 행성이 충돌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정비공 ‘독고월’(선텅)이 캥거루에게 두들겨 맞아가며 좌충우돌 끝에 지구로 돌아온다는, 황당할 수 있는 줄거리다. 조석 작가의 인기 웹툰 ‘문유’를 중국 영화사가 사들여 냉소 가득한 블랙코미디를 우주 굴기를 연상시키는 초긍정 휴먼 코미디 ‘문맨’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 문제다. 오는 11일 개봉하는데 가뜩이나 중국 혐오 수위가 높아지고, 거침없는 우주 굴기에 배 아픈 이들이 늘어나는데 과연 우리 관객이 많이 들까 궁금해진다. 달을 방패 삼아 소행성을 막으려던 ‘달 방패 계획’이 실패하고 모두가 철수하는데 독고월만 지구 귀환 셔틀을 놓친다. 짝사랑하던 달기지 사령관 마람성(마리)에게 기 막힌 프러포즈를 준비하다 셔틀로 돌아오라는 지시를 못 들은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지구는 소행성 ‘파이’와 충돌하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데 독고월 혼자 이 모습을 지켜본다. 알고 보니 캥거루 한 마리가 달 기지에 남아 있었다. 두들겨 맞고 지내다 정이 들어 서로 말이 통할 정도가 되고 어찌어찌해 함께 지구 귀환 여정에 나선다. 장츠위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해 7000만 관객을 사로잡아 중국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제35회 금계장 2관왕, 웨이보 영화의 밤 최고 인기 영화상, 도쿄 중국영화주간 초청 등을 통해 지난해 아시아 최고의 인기 영화로 올라섰다. 그런데도 정작 많은 중국인들은 이 영화가 우리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을 몰랐다고 해서 우리를 화나게 했다. 3일 시사회에서 뚜껑을 연 영화의 완성도는 기대치를 뛰어넘었다. 우선 긍정 코미디로 방향을 튼 것은 너무 좋은 선택이었다. 다소 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줄거리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4년 동안 600여명의 특수효과 스태프가 매달렸다는 컴퓨터그래픽(CG)은 달을 떠나려고 발버둥치는 독고월과 관객들이 함께 뛰고 달리는 듯한 느낌을 안겼다. 제작진은 축구장 여섯 개 크기인 6000㎡의 달기지 세트를 제작했다. 달 표면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운석 구덩이를 조각한 조형을 만들었고, 200t에 이르는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 달의 분진을 실감나게 표현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다.어떤 절망이 닥쳐도 절대 좌절하지 않는 주인공 독고월의 인생철학도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좋은 소식은 내가 살았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지구가 망했는데 나만 살아있다는 것이다.”, “(지구로) 못 돌아갈 내가 아니지” 같은 독고월의 대사는 시진핑 주석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주 궐기에 앞장서라고 인민들을 독려하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너 장면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 배우 박명훈과 방송인 전현무를 뒤섞은 듯한 선텅은 민망할 정도로 망가지고 한없이 무모하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인류가 희망으로 삼을 만할 ‘대단한 보통사람’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공감 가득’하지는 않았는데, 그냥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유쾌하게 볼 만했다. 이 영화의 부작용은 중국의 우주 궐기를 긍정 마인드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 아닐까? 왜 이렇게 좋은 원작을 우리 제작자들과 감독들은 외면했을까? 남녀노소 함께 유쾌하게 즐길 만한 영화인데 아쉽기만 하다.
  • 하남 일가도서관 ‘사람책 서비스’ 큰 호응

    하남 일가도서관 ‘사람책 서비스’ 큰 호응

    지혜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과 마주 앉아 책을 읽듯 미래의 꿈과 인생철학을 만나는 프로그램인 경기 하남시 일가도서관의 ‘사람책(humanbook)’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책’은 ‘사람은 누구나 살아 있는 한 권의 책이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독자들은 도서관에 준비된 ‘사람책’ 목록을 보고 읽고 싶은 사람을 선택해 그와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전문적이고 특정한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일가도서관은 앞서 지난 14일부터 3일간 ‘학교로 찾아가는 사람책 서비스’와 ‘동화 나라로 만나는 하남 이야기’를 주제로 한 ‘사람책 단체 열람 서비스’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학교로 찾아가는 사람책’은 14일, 15일 이틀간 위례숲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초등 3학년부터 6학년 450명을 대상으로 문화유산해설사, 아동문학가, 미디어전문가가 사람책 활동가로 참여했다. 이어 16일에는 일가도서관 다목적실에서 시민 30명을 대상으로 ‘동화나라로 만나는 하남 이야기’를 주제로 김남희 사람책 동화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일가도서관에는 현재 하남시에 거주하는 16명이 사람책 활동가로 참여해 열람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나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독자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사람책 활동가로 등록할 수 있다.
  • ‘103세 철학자’와 대화…김형석 교수, 24일 양구서 강연

    ‘103세 철학자’와 대화…김형석 교수, 24일 양구서 강연

    ‘103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강원 양구에서 인생철학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22일 양구군에 따르면 김 교수는 오는 24일 오후 2시 양구인문학박물관에서 ‘103년의 인생을 돌아보며’를 주제로 한 강연을 갖는다. 이번 강연에서 김 교수는 1세기 넘는 삶을 살아온 철학자의 인생 경험과 지혜를 전한다. 김 교수는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났고, 평양 숭실중학교와 제3공립중학교를 거쳐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47년 탈북해 7년간 서울 중앙고에서 교사로 일했고, 1954년부터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봉직하며 한국 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후학을 양성했다. 1985년 퇴직한 이후부터는 강연과 저술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철학 개론’, ‘철학 입문’, ‘윤리학’, ‘역사철학’ 등이 있고, 철학서 외에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등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성찰을 담은 도서와 에세이집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백 년을 살아 보니’도 펴냈다. 강연이 열리는 양구인문학박물관은 김 교수와 고(故) 안병욱 박사의 철학사상과 이해인 수녀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양구군이 2012년 12월 건립했다.
  • 27억 로또 당첨 18년 후…여전히 급식 일하는 英 부부

    27억 로또 당첨 18년 후…여전히 급식 일하는 英 부부

    로또 당첨으로 한순간에 돈방석에 올랐다가 비극으로 끝나는 사건이 가끔 보도되지만 이와 다른 사연도 소개됐다.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2003년 10월 로또에 당첨돼 170만 파운드(약 27억원)를 거머쥔 트리스 엠슨(51)의 근황을 전했다. 당시 잉글랜드 사우스 요크셔 로더럼의 작은 임대주택에 살던 엠슨과 남편 그래험 노튼(51)은 각각 학교 급식 노동자와 도배 일을 하며 근근히 먹고사는 처지였다. 이들은 로또에 당첨되면서 화려한 제2의 삶을 예고하며 만인의 부러움을 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이들 부부는 지금 어떻게 살고있을까? 놀랍게도 부부는 여전히 같은 집에서 같은 일을 하며 살고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부부 사이에 이제 17살이 된 아들이 생긴 것 뿐이다. 이는 엠슨 나름의 인생철학 때문이다. 당첨금으로 새 차와 큰 집을 사는 것을 거부하고 그 삶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 엠슨은 "부자가 된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비싼 옷을 입으면 스스로 가짜라고 느낄 것이다. 사실 내 청바지가 더 좋다"고 털어놨다. 물론 거액의 돈을 아예 안쓴 것은 아니다. 부부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카라반 2대를 샀고 스페인 휴양지에서 휴가를 몇 번 보냈다. 하지만 그 외에 삶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부부가 오히려 진짜 행운이라고 생각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로또 당첨 2주 후 임신을 해 아들 벤자민을 낳은 것이다. 엠슨은 "임신을 하기위해 5년 이상 노력했는데 로또 당첨 덕분인지 얼마 후 임신했다"면서 "아들은 현재 비싼 사립이 아닌 지역 내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당첨 후 우리 부부는 늘 조심조심 살았다. 화려한 차 대신 기아차를 몰고있고 여전히 동네마트를 다닌다"고 덧붙였다.
  • 정경숙 개인전 ‘버려지는 것들에 대하여’

    정경숙 개인전 ‘버려지는 것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그림 재료들 중 작가가 굳이 파스텔을 선택한 이유는 재료적 특징 때문이다. 파스텔은 피그먼트를 스틱형으로 뭉쳐 손으로 잡고 그리기 쉽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면 화면에 붙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가루로 부서져 바닥에 수북이 쌓인다. 이를 바라보면 마치 허무한 인생을 보는 듯하다. 화면에 붙어 살아있는 일부의 존재성. 버려지는 가루를 허투루 여기지 않고 작품으로 다시 남기는 귀한 재생의 작업. 작가는 새로운 희망과 마주하기 위해 하찮은 것에서 다시 생명을 건지는 창작을 즐긴다. 작가의 인생철학이다. 파스텔은 오롯이 손가락을 사용해서 표현된다. 그냥 스틱으로 그려놓으면 얼마 가지 않아 밀착되지 못하고 부스스 흔적만 남기고 날아가 버린다. 반드시 손으로 문지르고 정성을 들여야 정성들인 만큼 남게 되고 실체는 선명해진다. 숱하게 손가락으로 문지르기를 반복하는 작업. 종반에는 손가락이 갈라지고 피가 나는 고통을 참아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우리네 삶의 방식이 그렇지 않을까? 쉽게 얻는 듯 보이지만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그러한 삶을 체득하게 된다는 이유로 파스텔이라는 재료의 매력에 빠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두 번의 개인전에서는 장지 위에 바탕처리를 하고 돌가루를 바른 거친 표면에 파스텔을 밀어 넣어 두께감과 깊이를 표현하였다. 파스텔의 재료적 특징은 가볍고 부드럽다는 것이다. 두께 감 보다는 얇은 느낌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고정 관념을 깨고 싶어 바탕을 거칠게 하고 그 사이사이에 색들을 밀어 넣었다. 쌓여진 색들이 은근하게 시간의 깊이와 두께를 발산하도록 했다. 이 작업 방법은 표현을 위한 재료 사용의 억지스러움과 두께감이라는 강박 때문에 답답함을 낳기도 했다. 작가의 지난 작업들이 거친 바탕에 색을 밀어 넣어 차곡차곡 쌓아 밀착 시키는 것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얇게 펴 발라서 스며든 시간의 안착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작업하는 동안 파스텔을 사용하여 묵직함과 두툼함을 추구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반대 감성이 솟기도 한다. 얼핏 보면 가벼워 보이지만 겹이 느껴지는 표현을 하고 싶다는 작가의 욕구. 그 겹은 시간 또는 세월이라 말할 수 있다. 작가가 살아온 삶의 무게가 더해진 이유 때문이었을까? 때로는 표현의 욕구 중 묵지근한 기운이 작가에게 답답함과 숨 막힘 그리고 우울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요즘은 가볍고 여유롭고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이 작가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우리 땅이 키운 닥나무의 생명으로 탄생한 한지 재료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안동한지에 안착하게 되었다. 파스텔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화사함을 우수한 한지에 맘껏 표현하는 나날이 행복해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자칫 버려지기 쉬운 파스텔 가루와 색조 화장품인 아이섀도우의 가루를 섞어 사용함으로서 색의 선명함과 화사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색감의 풍성함과 부드러움을 최대한 한지에 스며들도록 하여 주제의 특성을 잘 살렸다는 점 또한 눈여겨 볼 일이다. 화면을 꽉 채운 답답함보다는 빈 공간에서 생기는 여유를 찾고 싶은 작가. 천년을 간다는 전통 한지 위에 영속할 수없는 삶의 희망을 결속시키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기본 욕망을 담아내기에 바쁘다. 이전의 작업들이 조금 억지스럽고 거칠었다면 이번 전시작품은 차분한 정적 속에 조금씩 변화할 것 같은 평온의 시간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깊은 어둠 속에 퇴적되어 쌓인 물속의 시간. 활개 치는 잉어의 화려한 시간과 하늘의 변화되는 시간들. 세한의 시간을 버텨내고 화려하게 피어난 매화의 절정. 이들과 함께 사는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이다. 그림을 만나면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뭇 인생의 어둡고 긴 터널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두운 코로나의 시대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 모두는 꽃처럼 피어나고 잉어처럼 자유로이 유영할 것이다.
  • “잘 만든 뼈대 하나, 전기차 진화 내게 맡겨라”

    “잘 만든 뼈대 하나, 전기차 진화 내게 맡겨라”

    요즘 전기차가 핫이슈다. 증권 시장에서 전기차 배터리주가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쓸고, 재계 3위(SK)와 4위(LG) 대기업이 전기차 배터리를 놓고 사생결단 싸우는 모습만 봐도 전기차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다. 자동차의 패러다임도 급변하고 있다. 누워서 편하게 쉴 수 있고, 가전제품을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신개념 전기차가 실제로 우리 눈앞에 등장했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하나의 대형 스마트폰이자 생활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건 순수 국내 기술로 탄생한 전용 플랫폼인 ‘일렉트릭 글로벌 모듈러 플랫폼’(E-GMP) 덕분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차세대 E-GMP 전기차 ‘아이오닉 5’(현대차)와 ‘EV6’(기아)를 출시한다. 이 두 모델 탄생의 주역은 바로 현대차그룹 전동화개발센터장 최우석(56) 상무. 그에게서 전기차 개발 뒷얘기와 함께 ‘자동차맨’으로 사는 법과 인생철학을 들어봤다. 최 상무는 국산 하이브리드 전기차(HEV)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E-GMP 개발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기존 자동차를 활용한 전기차가 출시되는 시점에 새로운 플랫폼 개발에 나서는 건 모험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거의 없는 분야여서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었다. 콘셉트를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많은 고비가 있었다. 플랫폼 엔지니어는 실내 공간을 더 넓히려 하고 전동화 엔지니어는 배터리를 비롯한 부품 공간을 더 요구해 서로 충돌했다. 이럴 땐 누구의 의견을 반영해야 고객의 경험이 극대화되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최종 결정에는 모두가 공감했다. 주행거리를 늘리거나, 제동·조향 성능을 높이는 문제도 개발의 핵심 과정이었다. 특히 자동차 개발 과정에서 디자인과 설계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서로 다르다. 디자인을 중시하면 설계가 흔들리고 설계를 중시하면 디자인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견해 차이는 극복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활용해야 할 자원이다. 엔지니어는 디자이너가 내는 의견을 통해 고객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견해를 보이는 구성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업무에 열정이 있다는 증거이고 미처 몰랐던 다른 방향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 최 상무만의 소통비법을 소개한다면. “직원들의 목소리를 많이 경청하고 변화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면서 반박 논리를 생각하는 건 리더로서 지양해야 할 소통 방식이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면 타협 방안이 보인다. 하지만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려고만 한다면 상대방은 대화를 포기하게 된다. 또 소통을 나눈 이후 변화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면 상대방은 ‘말해도 소용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또 다른 대화를 할 이유를 잃게 된다. 그래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소통의 결과물로 내가 변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원칙을 갖게 됐다.” -최 상무의 삶의 궤적은 어땠나. “부산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위치타 주립대에서 제어와 동역학 전공으로 석사를, 텍사스 A&M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현대차에 입사해 전동화 차량 개발팀 책임연구원으로 첫발을 뗐다. 이후 파트장을 맡아 현대차그룹 고유의 하이브리드 시스템 ‘TMED’를 개발했다. 2015년부터 하이브리드 전기차와 순수전기차 개발을 총괄했고 2017년부터 모든 전동화(PE) 부품 개발을 총괄하는 전동화개발센터장을 맡고 있다. 현대차 아반떼 하이브리드, 쏘나타 하이브리드,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코나 일렉트릭, 기아 레이 EV, 쏘울 EV 등을 개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델은 2016년 전 세계 연비 1위를 달성한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다. 전용 플랫폼 전기차가 ‘아이오닉’이란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다.” -자동차 개발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저만의 ‘극복 철학’을 공유하고자 한다. 극기 훈련에서 무거운 통나무를 여럿이 함께 들고 옮길 때, 내가 포기하면 다른 동료가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악으로 견뎌낸다. 나 하나 때문에 끝까지 완주하고픈 다른 동료의 꿈이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도 통나무를 놓지 못하게 한다. 달리 보면 다른 동료가 버텨 줬기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일 수도 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모두의 꿈을 향해 함께 가자’는 마음을 부여잡고 전진해 왔다. 내가 힘들 때 누군가 통나무를 더 높이 들어 제 어깨를 가볍게 해줬던 것처럼, 이젠 내가 우리 구성원들을 위해 통나무를 높게 들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자동차맨’ 최 상무가 사는 법이라면. “‘매 순간에 충실하자’를 신조로 삼고 있다. 차량을 개발할 땐 차량에만, 구성원과 소통할 땐 구성원에만,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땐 가족에만 집중한다. 이게 어긋나면 어느 쪽에도 충실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모순적일 수 있지만 회사 일에 충실하면 가족도 잘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업무에서 보람을 느끼면 긍정적인 기분이 가족에게 전파되고, 가족에게 인정받으면 업무에서도 자신감이 생긴다. ” -아이오닉 5가 기존 전기차와 다른 점은 뭔가. “기존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플랫폼으로 만들어졌지만 아이오닉 5에는 E-GMP라는 플랫폼, 즉 새로운 뼈대가 적용됐다. 거대한 엔진이 사라지면서 실내 공간은 더 넓어졌다. 차량 바닥에 배치되던 동력 전달 부품과 배기 부품도 모두 사라졌다. 차 안과 밖에서 드라이어, 토스터, 소형 냉장고, TV 등 각종 가정용 전자제품을 220V 콘센트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바로 ‘V2L’이란 기능이다. 대용량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아이오닉 5에 가정용 냉장고를 연결해 15일 동안 가동해도 배터리의 절반밖에 닳지 않는다. 또 충전 케이블을 연결만 하면 자동으로 요금이 결제되는 ‘플러그 앤드 차지’(P&C) 기능도 처음으로 탑재됐다.” -‘아이오닉5 아버지’라는 별명이 부담스럽나. “아이오닉 5를 포함한 E-GMP 개발에서 제 역할은 일부에 불과하다. 전기차는 배터리와 전기모터뿐만 아니라 차체, 현가장치, 제어장치 등 각 분야의 노력이 함께 녹아 나온 결과물이다. 또 시장 개척, 판매 기획, 품질 확보 등을 소홀히 하면 아무리 차를 잘 만들어도 빛을 보기 어려운 게 자동차 산업이다. 따라서 ‘아이오닉 5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는 개발에 참여한 현대차와 협력사 인원 모두의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오닉 5’와 ‘EV6’ 중에 더 애착 가는 모델은. “두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첫째가 좋으냐, 둘째가 좋으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둘 다 같은 크기의 애정을 갖고 개발했다. 두 모델에는 현대차와 기아의 디자인 철학과 지향점이 각각 녹아 있다. 둘 중에 한 대를 꼭 사야 한다면,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모델을 사겠다(웃음). 아이오닉 5와 EV6는 같은 플랫폼을 탑재해 기본적인 성능과 신기술은 모두 공유한다. 차이점이라면 아이오닉 5는 포니에서 시작된 현대차 디자인의 유산을 재조명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추가했고 EV6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디자인 요소를 융합해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 “자동차는 이동 수단에서 생활공간으로 변모해 나갈 것이다. 현대차그룹도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 진화한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로 충전의 불편함을 꼽는 고객이 많다. 아직 초고속 충전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전 설비의 종류와 전압이 달라 충전 속도도 제각각이다. 앞으로 출시될 차세대 전기차에는 변압기를 내장한 ‘프리 볼트’ 기능이 적용된다. 충전기 종류에 상관없이 전기차에 연결만 하면 전기차가 알아서 알맞은 전압으로 충전하는 시스템이다.” -50년 뒤 자동차 시장 대세는 전기차? 수소차? “어려운 질문이다. 10년 전 전기차 개발을 시작했을 때 모두가 궁금해했던 부분이다. 미래차 시장의 주력은 전기차일까, 하이브리드일까, 여전히 내연기관차일까, 이런 질문들이었다. 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결국 고객의 선택에 달렸다. 시장의 방향이 어느 쪽이 되더라도, 고객의 선택에 부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모터, 인버터, 배터리로 통칭되는 전동화(PE)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이 기술에 엔진이 더해지면 하이브리드, 연료전지 스택이 얹히면 수소차가 된다. 현재까진 이 전략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문화마당] 찬란하지 않은 때는 없다/송정림 드라마 작가

    [문화마당] 찬란하지 않은 때는 없다/송정림 드라마 작가

    새해가 덜컥 당도했다. 나이를 묻는 질문이 더 언짢다. 세월 빠르다는 소리가 말의 틈 사이마다 후렴처럼 새어나온다. 빠른 솜씨를 뽐내며 달리는 세월에 발이라도 탁 걸어 버리고 싶다. 세월이 안타까운 데는 두려움이 있다. 그 공포는 따져 보면 외모 지상주의와 함께 서양에서 물 건너온 정서다. 우리 선조는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젊은 사람은 힘든 세월을 거쳐 온 어른을 무조건 존경했고, 그들에게 모든 특권과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나이 든 걸 죄짓는 일처럼 부끄럽게 여기게 됐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일수록 더 강했는데, 우울증과 싸우며 노년을 외롭게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생일을 따져 축하하기를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도 나이 예순이 넘으면 생일잔치도 안 했다고 한다. 나이 먹은 것을 부끄럽고 슬프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환갑이나 칠순 잔치를 크게 차리고 동네방네 소문 내며 함께 모여 축하했다. 삶을 관조하면서 순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느긋한 동양적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나이 먹는 것이 언제부터 죄가 됐을까. 왜 나이 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돼야 할까. 앙드레 모루아는 그의 저서 ‘나이 드는 기술’에서 늙음의 문제는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고 단언했다. 이미 때는 늦었다고, 승부는 끝나 버렸다고, 무대는 완전히 다음 세대로 옮겨 갔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노화’라는 것이다. 그는 나이 드는 ‘기술’에 프랑스어인 ‘아르’(art)를 썼다. 소양, 기술, 기교, 그리고 예술을 포괄하는 단어가 ‘아르’다. 잘 나이 들어가는 것은 예술만큼 가치가 있고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잘 늙어 갈 수 있는 것일까. 우선 자신의 육체에 대해 체념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감정적인 면도 결코 단념하지 말라고 한다.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기대 역시 놓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지적인 활동을 멈출 게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며 몽테뉴의 이런 말도 적어 놓았다. “마치 기생목이 말라 죽은 떡갈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살듯이 인간의 지성은 노년에야말로 꽃을 피우지 않으면 안 된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67세 때 처음으로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그 나이에 자전거를 배웠으면서도 그는 “사흘 배웠는데 코 한번 안 깼다”고 좋아하며 자랑했다. 이제 와서 뭘 배워, 단념하는 마음을 꾸짖는 일화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7막으로 구성돼 있는데 마지막 7막에 이르면 ‘제2의 천진함’을 갖게 된다고 했다. 7막에 그런 희망이 놓여 있다는데, 우리는 5막이나 6막쯤이 되면 벌써 막을 여는 것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세월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참 많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철학까지, 그리고 인생의 매력까지 알려 준다. 더 넓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더 깊어진 생각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랑하고, 더 맑아진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게 되는 일, 그게 나이를 먹는 일이라면 늙음은 더이상 슬픈 일이 아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은 기자가 연세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나이를 세 가지로 나눠 먹습니다. 생각은 열 살이고, 마음은 서른 살이고, 몸은 또 여든이 훨씬 넘었어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순진무구하고, 소년소녀처럼 설레고, 청년처럼 뜨거운 나이, 그 나이는 결국 세월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얻는 것이다. 인생에서 찬란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세월을 이기는 유일한 기술은 ‘희망을 유지하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면, 아직도 배우고 있다면, 뭔가를 시도한다면 나이를 떠나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난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
  • 이용구 폭행 종결에…野 “면죄부 주려 국민 속이고 있다”(종합)

    이용구 폭행 종결에…野 “면죄부 주려 국민 속이고 있다”(종합)

    이용구 폭행 종결 사건, 윗선 개입 의혹“결백하다면 통화기록 전체를 검증받아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택시 기사를 폭행하고도 처벌받지 않은 것과 관련해 야당은 “사건을 뭉갠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을 것”이라며 윗선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 아침’에서 “경찰에서 직무유기를 한 것이 명백해 보인다”며 “입건을 해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야 마땅한 사건인데 뭉개버렸다”고 말했다. 단순 폭행 사건으로 내사 종결(택시 기사와 합의)할 게 아니라, 운전자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법을 적용해야 했다는 게 판사 출신인 김 의원의 주장이다. 또 김 의원은 “이 차관 신원을 파출소에서 파악 못 했다가 서초경찰서로 갔을 때 파악이 됐을 것”이라며 “무언가 압박이 있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당시 이 차관이 주변에 힘 있는 사람에게 전화통화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차관이 결백하다면 통화기록 전체를 검증을 받으면 된다”며 “그걸 숨긴다면 분명히 어딘가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 통화 내역을 보면 (경찰이) 압력을 위로부터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나섰다. 박완수 의원 등은 이날 오전 11시 40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이 차관 수사에 면죄부를 주려 국민을 속이고 있다. 사건을 덮으라고 지시한 자와 사건을 무마한 자가 누구인지 즉시 찾아내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 등은 오후에 경찰청을 직접 항의 방문한다. 국민의당도 가세했다. 권은희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차관에 대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 중 하루에 8명 정도가 운전자 폭행을 저지른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8명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내 굳이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한 이유가 법질서를 교란하고 정의를 조롱하는 소임으로 설명되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이 차관은 변호사로 재직하던 지난달 초 심야 시간에 서초구 아파트 집 앞에서 택시 기사가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자 그의 멱살을 잡는 등 폭행 논란을 낳았다. 경찰은 택시 기사가 처벌을 원치 않았다며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그는 택시기사 음주폭행 논란이 불거진 후 아직 관련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판사 출신인 이 차관은 2017년 8월~올해 4월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냈으며, 지난 2일 법무부 차관에 임명됐다.진중권 “(검찰)개혁 운운하기 전에 인생부터 개혁하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검찰) 개혁 운운하기 전에 인생부터 개혁하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21일 페이스북에 이 차관이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술자리에서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수사를 왜 했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보도를 두고 이같이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이 차관은 지난 4월 법무부 법무실장에서 물러나기 직전 법무부 간부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뒤늦게 합류한 윤 총장에게 “(허위) 표창장은 강남에서 돈 몇십만원 주고 다들 사는 건데 그걸 왜 수사했느냐”며 “형이 정치하려고 국이형(조 전 장관) 수사한 거 아니냐, 형만 아니었으면 국이형 그렇게 안 됐다”고 조국 일가 수사를 비난했다. 진 전 교수는 이를 두고 “민주 달건이(하는 일 없이 놀면서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인생철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표창장 몇십만원에 사서 딸 부정입학 시키는 범죄가 그에게는 당연한 일로 여겨지나 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의식을 가진 자가 무려 법무부의 차관을 한다. 이 잡것들아, 개혁 운운하기 전에 너희들의 너절한 인생부터 개혁해라”라고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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