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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인구 상한제

    [씨줄날줄] 인구 상한제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빈곤의 위기를 경고하며 인구를 억제하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하나는 결혼을 늦추거나 독신을 유지해 출생률을 낮추는 예방적 억제. 다른 하나는 전염병과 기근, 전쟁 등으로 사망률이 급증하는 적극적 억제다. 18세기 말 10억명에 불과했던 세계 인구는 현재 82억명으로 늘었다. 맬서스의 인구 증가 예측은 적중했지만 산업혁명이 촉발한 농업 생산성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 덕분에 지구적 재앙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유엔 추계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80년대 중반 103억명 안팎에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다만 대륙별, 국가별 양상은 크게 엇갈린다. 아시아와 유럽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반면 아프리카는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다. 현재 세계 인구의 18.3%를 차지하는 아프리카의 비중은 2100년 37.5%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수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려던 스위스 우파 정당의 시도가 좌절됐다. 2050년까지 국가 전체 인구를 1000만명 이하로 제한하는 인구 상한제 발의안을 놓고 지난 14일 실시된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55%가 반대표를 던졌다. 제1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이 주도한 이 발의안은 이민 인구의 급격한 유입이 인프라 과부하와 주거난, 국가 정체성 훼손으로 이어진다며 초강력 이민 제한 조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연방 정부와 재계는 숙련 노동력 부족과 경제 성장 저해, 국제관계 악화를 초래할 반이민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현재 스위스 인구는 910만명으로, 이 가운데 외국인 비중은 약 28%에 달한다. 한 국가의 적정 인구 규모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필요하지만 일방적인 이민자 통제가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먹을 것 많아도… 맬서스 예언은 유효해

    먹을 것 많아도… 맬서스 예언은 유효해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이라는 역사적인 책을 내놨다. 책에서 맬서스는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이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구 과잉으로 인한 식량 부족은 필연적이고, 그로 인한 빈곤과 범죄 발생 역시 불가피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아 제한, 결혼 연기, 독신 등으로 출산율을 낮추고 기근, 질병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 사망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을 간과했기 때문에 맬서스가 우려했던 것 같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다. 맬서스가 걱정했던 식량 위기는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이 지난해 발표한 ‘세계 식량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59개 국가와 지역에서 약 2억 8200만명이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경험했다. 세계적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바츨라프 스밀 캐나다 매니토바대 명예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가 매일 결정하는 먹을거리 선택이 인류 전체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전 세계 식량 생산 시스템을 점검한 뒤 왜 인류는 극소수의 동식물만 식량으로 쓰고 있는지와 지구온난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축산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 실험실 고기와 곤충 식품이 식량 위기 해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꼼꼼히 살펴본다. 스밀 교수는 책에서 일관되게 과학기술에 관해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기본적인 생물물리학적 현실과 지속적인 수확량 증대를 고려하고 앞으로 이뤄질 개선을 현실적으로 평가할 때 대규모 충돌과 유례없는 사회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세계는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식량 증산을 위한 과학기술 발전이 과연 저개발국으로 확산할 수 있을지다. 저자 역시 국제적 식량 불균형 문제를 언급하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명확한 대안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석학이 뭔가 해결책을 낼 것이라고 기대하고 책을 읽다간 실망이 클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 ‘아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아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한국, 3세대 이후엔 인구 ‘10분의1’日·中 등 사례로 인구문제 해법 제시 통계청에 따르면 가임기(15~49세) 여성 1명이 해당 기간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2023년 기준 0.72로 집계됐다. 한국에서 지금의 출산율이 이어진다면 3세대가 지날 무렵엔 전체 인구가 현재의 10분의1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유명 인구학자인 저자는 자국을 비롯해 이탈리아, 일본,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헝가리, 호주, 중국, 덴마크 등 여러 나라 사례를 기반으로 인구 감소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예컨대 최근 들어 경제성장을 이어 가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경제성장률에서 수십년 동안 태국을 넘어섰다. 현재 평균 소득은 태국의 절반 정도이지만 격차가 줄어들어 조만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1989년 수하르토 정권 붕괴 이후 안정적인 발전 그리고 젊은층이 탄탄해진 인구구조가 한몫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출산율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부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스라엘의 경우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독일이나 일본처럼 급락하지 않은 나라로 꼽힌다. 출산을 장려하는 아브라함계 종교 교리를 비롯해 출산 장려를 북돋우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보육 서비스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보육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지역은 출산율이 1.51명이었지만 보육 서비스 보급률이 60% 이상인 지역에서는 2.18명까지 상승했다. 캐나다 퀘벡주도 풍부한 보육 센터와 가족 친화적 정책으로 21세기 초 출산율이 높아졌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한국에 대해선 ‘총체적 위기의 전형’이라고 꼬집는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로, 도시의 부유층이 점점 줄어드는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극단적인 경우다. 눈을 돌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고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전 세계 여러 나라가 시행한 정책을 넘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 [열린세상] 인구절벽 대비한 과학기술 인력 확보 대책은/이은우 건양대 교수

    [열린세상] 인구절벽 대비한 과학기술 인력 확보 대책은/이은우 건양대 교수

    산업혁명이 처음 일어난 18세기에는 당시의 변화가 산업과 사회의 혁명적 변화로 이어지리라고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당시의 기술 혁신과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생산을 하게 되자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맬서스는 1789년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갈파하면서 인구 폭발로 인한 빈곤의 위기와 인류의 종말을 경고했다. 그러나 18세기 말 10억명이 채 되지 않던 세계 인구가 150여년이 지난 지금 8배로 늘어났지만 인류는 기술 혁신을 통해 이 엄청난 인구를 부양하고 삶의 질도 개선하며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18세기 후반 시작된 1차 산업혁명에 이어 2차와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바이오 등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 K바이오 정책 추진 등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노력 중인 우리나라의 인구 현황은 ‘역인구론’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즉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은 향상되고 있지만 인구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생산성이 증가하는데도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소득의 증대로 개인화의 경향이 강화되고 아기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육아와 교육 및 주거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산업혁명 당시에는 기술 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지만 인구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신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많아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인구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말 주민등록상의 인구수는 전년 대비 2만 838명이 감소한 5182만 9023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구 감소 추세는 더욱 가파르게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이 인구 감소의 위험성을 외쳐 왔지만 정부 당국의 실효성 있는 인구 정책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인구 감소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은 지방 교육 현장에서부터 도화선이 되기 시작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폐교된 지방의 초등학교는 부지기수이고 이제 지방 대학들도 생존이 힘들어지고 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지원자 수가 49만여명으로 수능 도입 이후 역대 최저 지원자 수를 기록했다. 지난 10년간 수능 지원자 수는 30%가량 감소했다. 필자도 아는 거점 지방 국립대학 총장을 역임한 분이 ‘현재 대학 입학 정원은 총 53만명인데 반해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생은 49만명 수준밖에 되지 않아 지방에 있는 사립대와 전문대가 학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 대학들이 사라질 것이다. 향후 18년 정도 지나면 10개 대학 중 8개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절박함을 호소하는 기고를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인구 감소는 한국 사회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과학기술 경쟁력의 약화로 연결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일본의 경우 10년째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최근 10년 동안 일본에서 생산되는 과학기술 논문 수의 증가율과 인구 100만명당 박사 학위 취득자 수가 미국, 중국, 한국 등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적으로 이끌고 과학기술 혁신 역량을 바탕으로 우리의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며 지속적인 사회 발전을 가능하게 하려면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외국의 우수 과학기술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이민 및 비자 정책과 석·박사 유학생 유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인구절벽에 대비하기 위해 해외 우수 과학기술 인력의 국내 유치 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인구 데드크로스 현상으로 나라가 소멸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과학기술을 통해 희망을 쏘아 올리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유진모의 테마토크] ‘어벤져스 3’와 ‘탐정: 리턴즈’의 경고

    [유진모의 테마토크] ‘어벤져스 3’와 ‘탐정: 리턴즈’의 경고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그 인기만큼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특히 목적을 위해 사랑하는 수양딸 가모라까지 희생시키는 타노스의 정체성이 큰 논란을 야기했다. 가모라의 행성과 자신의 타이탄 행성의 인구 절반을 죽였지만, 그 배경이 사리사욕이나 단순한 광기가 아닌 종의 보존이란 대의명분을 주장한 때문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기에 종 전체가 멸절될 위기였다. 종족 보존을 위해 열성의 개체에게 희생을 요구한다면 순순히 따를 리 만무할 것. 그래서 인위적인 조정을 한 것이다. ‘소울스톤’을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는 망설임 없이 가모라를 낭떠러지로 민다. 건틀릿에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장착하려는 것은 전 우주를 재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인구의 절반을 줄여 모든 종을 보존시키기 위해서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신화가 없고 역사가 짧은 미국 정체성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아메리칸 그리스 신화’였다면 ‘어벤져스’는 ‘아메리칸 로마 신화’라고 할 수 있다. 타노스는 타나토스(공격적인 죽음의 본능)와 그리스 신화의 티탄 신족의 왕이자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의 조합이다. 그가 타이탄 행성의 왕인 게 그 증거다. 타노스의 논리는 미국이 독립하고 프랑스가 혁명을 일으킨 격동의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멜서스를 연상케 한다. 멜서스는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 증가가 식량 증가를 압도하게 될 것이니 전쟁, 기아, 질병 등의 적극적 억제나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적극적 억제보단 결혼을 늦추거나 출산을 자제하는 등 성욕을 제어하는 예방적 억제를 권장했다. 인구론은 기득권층인 멜서스가 앙시엥 레짐(구체제)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한 데서 나온 이론이라는 해석들이 있다. 그는 국가 재정의 위기를 우려하며 빈민 구제와 사회 복지마저 반대했다. 빈자는 죽게 내버려 두고 부자만 살자는 얘기다. 어쩌면 타노스는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충격을 받은 멜서스를 포함한 영국의 기득권층을 비꼬는 미국의 조소일 수도 있다. 타노스는 ‘왓치맨’(2009)에도 있다. 슈퍼 히어로들로 구성된 자경단 왓치맨의 멤버 코미디언이 살해되자 동료들이 진상 조사에 나선다. 멤버 중 갑부인 오지만디아스가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 60억 명을 살리고자 수십만 명을 죽이겠다는 음모를 꾸민 것. 개봉을 앞둔 ‘탐정: 리턴즈’도 멜서스와 ‘매트릭스’를 닮았다. 재벌과 유명인사, 최고 지성인 등은 카르텔을 형성해 이른바 ‘쓰레기’들을 희생시키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체제 유지를 위해 정당하다는 아전인수식 논리를 펼친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배양한 뒤 ‘연료’로 사용하는 ‘매트릭스’(워쇼스키 자매ㆍ1999)나 부자들이 자신의 DNA로 클론을 만든 뒤 큰 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위해 클론의 인권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무차별 희생시키는 ‘아일랜드’(마이클 베이ㆍ2005)도 매우 유사하다. 오지만디아스는 자만심을 앞세운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대표되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3대 왕이다. 멜서스, ‘매트릭스’의 AI, ‘아일랜드’의 갑부 링컨과 박사 메릭, ‘왓치맨’의 오지만디아스, ‘어벤져스’의 타노스, ‘탐정: 리턴즈’의 부자와 지성의 카르텔 등은 모두 ‘이음동어’다. 어긋난 선민의식, 특권의식 또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집단이기주의가 세상을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며 암울하게 만든다는 경고!
  • 기업 손잡은 인문학, 비판 정신을 잃다

    기업 손잡은 인문학, 비판 정신을 잃다

    反기업 인문학/박민영 지음/인물과사상사/356쪽/1만 7000원2011년 3월 애플의 아이패드2 발표회장. 스티브 잡스는 무대 위 스크린에 교차로 표지판 영상을 띄웠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인문학’과 ‘기술’이라 적혀 있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사람들은 그동안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한다”면서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스티브 잡스가 명실상부 ‘융합형 인재’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이후 ‘융합’ 하면 인문학과 기술공학을 떠올렸다. 노동을 착취하고 조세를 회피하는가 하면, 시장 독과점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한 비판은 슬그머니 가려졌다.한국에 10여년 전부터 ‘인문학’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인문학 열풍이라며 각종 책과 강연이 쏟아진다. 대기업은 너나 할 것 없이 인문학적 인재를 뽑겠다며 아우성이다. 그러나 정작 인문학의 출발점인 대학가에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든가 ‘인구론’(인문계 졸업자 구십 퍼센트는 논다) 같은 신조어가 씁쓸한 현실을 대변한다.문화평론가 박민영은 신작 ‘반기업 인문학’에서 이런 현상의 중심에 ‘기업 인문학’이 있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기업 인문학은 ‘기업의 이익과 자기계발에 복무하는 인문학’을 가리킨다.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인 정통 인문학과 달리, 기업 인문학은 생존과 출세, 성공과 경제적 이익과 같은 목적을 향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문학의 본질은 ‘전복적인 도전’이고 인문학적 사고는 ‘반성, 회의, 비판’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사회 전반에 물질주의나 과학기술 중심주의, 경쟁체제 등에 대한 반대의 기운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 열풍의 실체는 기업 인문학 열풍이고, 이 기업 인문학이 교묘하고 영악한 논리로 주류적 사고에 영합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대학과 진보 인문학자, 그리고 기업 등에 날 선 칼을 겨눈다.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대학가에 인문사회과학은 이미 밀려났다. 정부에서도 이공계열을 키우고 인문계열은 축소하라며 대학에 뭉칫돈을 쥐여 준다. 인문학자는 비정규직 강사 자리조차 구하기 어렵다. 진보 지식인이 인문학을 매개로 기업과 관계를 맺는 모습을 지적한 부분은 이 책의 백미다. 저자는 ‘시대의 스승’으로 불리는 신영복 교수가 2008년 성공회대 인문학습원 원장으로 ‘CEO를 위한 인문학 과정’을 개설한 것에 관해 날 선 비판을 날린다. 당시 강좌에는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 김연배 한화그룹 부회장, 김태구 넥솔(전 대우자동차) 회장, 이병남 LG 인화원 원장이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진보 학자인 진중권, 강헌, 유홍준 등이 나섰다. 이 밖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김호기 교수,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대표가 회당 500만원에 이르는 고액의 강연료를 받으며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강연한 사례도 꼬집었다. 고액 강연이 좌파 지식인의 몸값을 올리고, 언론은 기업문화를 칭찬했다. 이처럼 인문학이 자본가와 진보 인문학자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지만 어떤 변화를 불렀는지 생각해 보라는 저자의 비판은 곱씹어 볼 만하다.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친 삼성은 정작 노조를 탄압하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 산재 처리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이 미래’라던 두산도 20대 신입사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오히려 ‘반인문학적’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부터 유행하는 ‘빅 히스토리’ 역시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가 빅 히스토리에 관심을 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융합학문의 ‘끝판왕’이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거대 역사를 다룬 빅 히스토리가 민족, 국민, 계급, 성 구별을 하지 않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구별도 하지 않도록 하면서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문제들을 은폐하는 효과를 부른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명 인문학자들을 거론하며 시원하게 비판하는 저자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더라도, 정작 인문학이 어떻게 이를 이겨낼지에 관해서는 대안이 없어 아쉽다. 싸구려 강사들이 짜깁기한 얄팍한 인문학을 들고 나와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기웃거리는 꼬락서니도 보기 싫지만, 정통 인문학이 반드시 해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슬며시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재무의 오솔길] 58년 개띠생들에게

    [이재무의 오솔길] 58년 개띠생들에게

    한 해가 마지막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명년은 황금 개띠해라 한다. 이에 환갑을 맞는 58 개띠의 한 사람으로서 소략하나마 남다른 심회를 밝힐까 한다. 나는 그 유명짜한 58년 개띠생이다. 왜, 우리 또래에게만 유일하게 띠 앞에 58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지 그 이유를 나(우리)는 모른다. 짐작건대 전후에 태어난 세대를 대표하는 기표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58년생 중 유명인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여행가 한비야, 소설가 박상우, 연애인 임백천, 어릴 적 반공 웅변대회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했던 고 이승복 어린이 등등이 있다.맬서스의 인구론으로 볼 때 ‘항아리’ 도표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세대가 58세대다. 그런 만큼 생존을 위한 경쟁이 그 어느 세대보다 우심했던 게 사실이었다. 병영국가 체제에서 나고 자란 우리 세대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 중심의 가족과 사회 속에서 규율에 엄격했고, 체제와 제도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 예로 초등학교 시절 동무와 함께 쓰는 책상 한가운데 분단선이 굵고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고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해야만 했다.고교 시절에는 교련 훈련을 받아야 했고, 오후 5 시가 되면 국기 하강식에 맞춰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국기를 향해 오른 손을 왼쪽 가슴에 얹어 놓아야 했다. 영화 관람 전에 대한뉴스를 시청해야 했고, 두발 상태는 항상 양호하게 단발머리를 유지해야 했다. 이렇게 병영국가 체제 속에 살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 성인이 돼서는 가정보다 회사가 우선인 기업국가 체제에 맞춰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는 미국의 원조 물자로 옥수수죽과 옥수수빵이 배급됐는데 가쟁골에 사는 오쟁이라는 친구는 칡뿌리를 캐어 와 동무들 몫으로 배급된 죽과 빵으로 교환하여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학교에만 있는 유일한 흑백 TV에서는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있었는데 실로 경이 그 자체였다. 레슬링의 영웅 김일의 박치기, 배삼룡 코미디가 우리의 고달픈 하루를 위무해 주던 그 시절 학교는 교과 이외의 과제물로 우리를 괴롭혀 댔다. 꼴 베어 오기, 송충이 잡아 오기, 채변 봉투, 신작로에 자갈 붓기 등등. 하굣길 부락반장의 인솔하에 대통령이 직접 작사했다는 새마을노래를 부르며 구령에 맞춰 구호를 외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일본식 교복을 단정히 입고 교가를 불렀고, 등하교 시 오른손 왼손에 번갈아 영어 단어장을 올려놓고 외웠다. 우락부락한 영어 선생은 회화보다는 독해를 강조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처로 나가 고등학교를 다녔다. 처음 보는 도시는 무엇이나 낯설고 생소했다. 누군가 이런 나를 보았다면 영락없이 장날 팔리러 나온 수탁을 연상했으리라. 고교 시절 참으로 징글징글했던 것은 교련이었다. 고교생을 대상으로 당시엔 교련실기 대회가 있었다. 그 기간이 돌아오면 학사 일정이 예사로 바뀌곤 했다. 한참 감수성 예민한 여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렇게 기대했던 낭만은 없었다. 수업 시간보다 술집에서 보내는 날들이 더 많았다. 장발을 하고 담배를 꼬나물고 통행금지 시간이 가깝도록 거리를 배회했다. 음악다방 구석에 몸을 부리고 앉아 뜻도 모르는 팝송을 들으며 영양가 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죽여 대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올해로 서울 생활 35년째가 된다. 그동안 11권의 시집과 3권의 산문집을 발간했다. 지금 나는 교사를 하는 아내와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는 아들 이렇게 셋이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58년 개띠생들은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리더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생의 중심과 변방에서 오늘도 어제처럼 아랫세대와 윗세대의 가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살고 있는 58년 개띠생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58년생 개띠여, 무궁하라!
  • “양육은 처가에 용돈은 시댁에”… 2017년 또 다른 세태

    “양육은 처가에 용돈은 시댁에”… 2017년 또 다른 세태

    처가에 가사 등 도움 2.4배 많아 연락도 시댁보다 처가와 더 자주 용돈 비율은 시댁이 5.7%P 높아 여고생 우울증 전년比 3.9%P↑ 사범대·교대 졸업생 절반 백수 결혼 7년차 김모(36)씨는 맞벌이 부부여서 매주 일요일 아이들을 처가에 맡기고 금요일에 집으로 데려온다. 김씨는 처가에 양육비로 매월 130만원을 보낸다. 아이들의 일상이 궁금해 하루 한 번 이상 장인·장모의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도 한다. 반면 친가 부모한테는 용돈을 드리지 않는다. 안부 전화도 한 주에 한 번 할까 말까다. 김씨는 “친가 부모님도 맞벌이하는 누나의 딸을 키우신다”면서 “아이들 때문에 친가보다 처가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이렇듯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처가를 중심으로 가정공동체가 꾸려지는 ‘신(新)모계사회’가 도래했다. ‘시월드’(시댁)보다 ‘처월드’(처가)와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경향은 통계로도 확인됐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2017년 한국의 사회 동향’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가 양가 부모로부터 자녀 양육 등의 도움을 받는 비율은 처가가 시댁의 2.4배다. 지난해 기준 처가의 도움을 받는 맞벌이 부부 비율은 19.0%로 10년 전인 2006년(17.0%)보다 2% 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시댁 도움을 받는 맞벌이 부부 비율은 같은 기간 14.0%에서 7.9%로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연락도 시댁보다 처가와 더 자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시부모와 연락하는 비율은 2006년 79.4%에서 지난해 71.5%로 낮아진 반면 처부모와 연락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72.9%에서 73.4%로 늘어났다. 지난해 양가 부모에게 용돈 등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비율은 시댁이 30.6%로 처가(24.9%)보다 많았지만 그 차이가 5.7% 포인트로 10년 전(13.6% 포인트)보다 크게 줄었다. ●몸은 컸지만 마음이 아픈 청소년 청소년의 키와 몸무게는 꾸준히 향상되고 있으나 게임 중독 증세를 보이는 초등학생이 빠르게 늘고 우울감에 시달리는 여고생이 증가하는 등 정신 건강은 나빠졌다. 지난해 초등학생(4~6학년)의 91.9%가 게임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중학생은 82.5%, 고등학생은 64.2%로 진학할수록 게임 이용 비율이 낮아졌다. 게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과몰입군 비율은 초등학생이 0.9%로 전년보다 0.1% 포인트 상승했다. 중고생 과몰입군 비율은 감소세인 점으로 미뤄 보면 초등생의 게임 이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게임에 과몰입되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불안, 우울감 수준이 일반 청소년보다 높고 통제력, 자율성, 관계성, 자존감 수준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또 지난해 고교 2학년 여학생의 우울감 경험률은 33.9%로 전년보다 3.9% 포인트 높아졌다. 이들의 스트레스 인지율도 49.8%로 전년보다 4.1% 포인트 증가했다. 우울감 경험률은 최근 1년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수면 부족을 호소하는 비율도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높았다. 최근 일주일 동안 충분히 잠을 잤음을 뜻하는 수면충족률을 조사했더니 고2 여학생은 2005년 21.4%에서 지난해 13.7%로 크게 낮아졌다. ●사대·교대 졸업생 둘 중 하나는 백수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전공 계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2015년 기준 의약계열 취업률이 83.2%로 가장 높았고 공학(71.3%), 사회(62.4%) 순이었다. 인문(57.7%)과 교육(50.8%)의 취업률이 가장 낮았다. ‘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는 뜻의 신조어 ‘인구론’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종의 기원’ 다윈도 놀란 월리스의 위대한 탐사

    ‘종의 기원’ 다윈도 놀란 월리스의 위대한 탐사

    말레이 제도/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지음/노승영 옮김/지오북/848쪽 “땅에 발을 내딛기만 하면, 내가 다시는 배를 타나 봐라.” 1848년 밑창이 뚫린 배에서 그는 50번도 더 다짐했다. 당시까지 그만큼 아마존 깊숙한 곳까지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채집했다. 영국에 내리기만 하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다. 아뿔싸, 귀국선엔 화재가 발생했고 구조선은 구멍이 났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렇게 끝났다면 우리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1823~1913)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로 갈까?” 1852년 월리스는 서른이 되었다. 전형적인 영국 흙수저인 월리스는 다시 돈이 될 만한 것을 채집해야 했다. 일단 아마존은 제외했다. 거기는 이제 옛 동료 헨리 월터 베이츠의 영역이었다. 말레이 제도가 떠올랐다. 동서로 6400㎞, 남북으로 2900㎞ 너비에 흩어진 2만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다. 모두 합하면 남아메리카 대륙 면적과 비슷한 넓이로 대부분 열대우림으로 덮인 화산지대다. 각 섬의 차이를 연구하면 명성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854년 4월 말레이제도에 도착한 월리스는 곧장 탐험을 시작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찬물로 목욕하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커다란 수집 상자를 어깨에 메고 그물망과 집게, 코르크 마개를 달아 목에 걸 수 있게 만든 두 가지 크기의 표본병을 항상 챙겼다. 때로는 장총을 들기도 했다. 채집에서 돌아오면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소독하고 말리는 작업을 했다. 1862년 1월 말레이제도를 떠날 때까지 8년 동안 96차례의 탐사여행을 하면서 이 섬에서 저 섬으로 2만여㎞를 돌아다녔다. 항상 그의 목적은 채집. 수만 점의 곤충을 비롯해 포유류, 파충류, 조류, 패류 등 12만 5000점이 넘는 표본을 모았다. 이 가운데 1000여 종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신종이다. 월리스날개구리처럼 월리스 이름이 붙은 종만 해도 100종이 넘는다. 1855년 보르네오에서 우기를 보내면서 어떤 통찰을 얻었다. 쉽게 말하면 오래된 나뭇가지에서 새로운 잔가지가 나오듯이 오래된 종에서 새로운 종이 나온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창조한 그대로라고 믿던 시절에 이런 깨달음을 얻고 또 발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리스가 처음 깨달은 사실이 아니다. 찰스 다윈이 이미 20년 전에 품은 생각이다. 하지만 다윈은 감히 발표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금수저 출신으로 부와 명성을 누리던 다윈에게는 평판이 중요했다. 하지만 월리스에게는 걱정이 없었다. 그는 평판은 고사하고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월리스는 지구 환경과 생명을 연관지어 관찰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유산이다. 그는 지구와 생명 둘 다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주장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론을 세울 시간이 있으면 채집이나 열심히 하라는 핀잔을 들었을 뿐이다. 정작 중요한 발견은 우연히 일어난다. 경로를 벗어난 월리스는 발리에서 30㎞ 떨어진 롬복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석 달간 머무는 동안 발리에서 보던 새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폭이 불과 30㎞에 불과한 해협 건너로 새들이 퍼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월리스는 발리와 롬복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선의 동쪽과 서쪽에 다른 새가 산다. 서부에는 원숭이, 호랑이, 코뿔소가 있지만 동부에는 그 어떤 영장류나 육식동물도 살지 않고 캥거루 같은 유대류뿐이다. 이 선을 우리는 월리스 선이라고 부른다. 이 선으로 말미암아 월리스는 생물지리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찰스 다윈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월리스의 고민은 종이 어떻게 진화하느냐는 것이었다. 다윈은 오래전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상태였다. 1858년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고열에 시달리며 다 쓰러져가는 집에 누워 있던 월리스에게 ‘인구론’의 주장이 떠올랐다. 월리스는 깨달았다. 그는 열이 내리자마자 며칠 만에 논문을 완성했다.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가 바로 그것. 그는 논문을 저널에 보내기 전에 찰스 다윈에게 먼저 보냈다. 그후에 일어나는 일은 너무나 유명하다. 결국 다윈이 커밍아웃한다. 월리스가 다시 배를 타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다윈도 없었을 것이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되고 10년 후인 1869년 월리스는 ‘말레이 제도’를 발표하면서 다윈에게 바친다. “개인적인 호감과 우정의 징표로서, 또한 당신의 천재성과 업적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하고자 이 책을 헌정합니다.” 이제 2년만 있으면 ‘말레이 제도’ 출간 150주년이다. 훔볼트에서 다윈을 거쳐 다이아몬드로 이어지는 생물지리학 전통의 빈칸이 비로소 채워졌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서가에 꽂아놔야 하는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동식물, 지명, 인명 색인에 많은 노고가 녹아 있다. 노승영의 번역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김동수 민생프리즘] 노인들이 소외받는 나라?

    [김동수 민생프리즘] 노인들이 소외받는 나라?

    한때 대한민국은 노인들을 위한 나라였다. 충(忠)보다 효(孝)를 앞세울 만큼 부모에 대한 공경과 봉양은 도덕규범의 기초이자 사회질서의 핵심이었다. 한자에서 효(孝)라는 글자가 자식(子)이 노인()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의 자화상은 어떤가. 한마디로 말해 우울하다. 우울하다 못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령 인구의 빈곤율이 49.6%로 35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전체 평균보다도 4배가량 많다고 발표했다. 반면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고용률은 31.3%로 OECD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35.2%)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무척 간단해 보이는 통계 수치지만 오늘 이 땅에 발 디디며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의 곤궁한 현실을 잘 상징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결국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은퇴 이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노령 인구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빈곤 문제는 이제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심각한 사회적 현안이 돼 가고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시한폭탄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절박함으로 정부는 물론 기업과 지역사회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우선 정부는 공적연금제도를 강화해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와 노후 소득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기초를 닦아야 한다. 동시에 임금피크제와 같이 은퇴 후에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안정적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산시키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 역시 고령화 사회에 미리 대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올해부터 시행된 정년 60세 의무화 취지에 맞춰 중년층에 대한 인력 관리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중국의 고서 ‘한비자’에 나오는 고사성어인 노마지지(馬之智)라는 말처럼 기업들은 중년층을 경험과 지혜를 갖춘 인적자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한편 지자체를 포함해 지역사회 역시 노인들을 돌보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최일선에서 독거노인들을 보살피고 빈곤에 노출돼 있는 노인들의 신체 및 정신적 건강과 생활복지를 챙기는 데 시민사회와 힘을 합쳐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들 역시 기대수명 100세 시대에 걸맞은 은퇴 후 노년 생활을 준비하는 데 미리 대비해야 한다. 재정 여건상 국가의 공적연금 확대는 일정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세금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부담을 폭증시켜 새로운 세대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개인들 각자가 젊은 시절부터 직장연금이나 개인연금 등을 통한 다층 노후소득 보장 체계를 스스로 구축해 나가야 한다. 어디까지나 정부의 역할은 보조적이고 최소한에 그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정부는 내년도 나라 살림 규모가 400조원이 넘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만 13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기초연금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노인복지 관련 예산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만큼 이 재원이 보다 짜임새 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관계 부처 간 유기적 협조 체제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초고령화에 따른 문제 제기를 과거 경제학에서 유행했던 이른바 ‘맬서스 인구론’의 재림처럼 보기도 한다. 산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구 증가 속도보다 생산성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인구론이 예측했던 비관론이 비록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어찌 보면 지금의 문제 제기도 그와 유사하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수십 년을 내다보는 대비책을 차근차근 도모해 나간다면 비록 예전과 같은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노인들이 소외받는 나라는 되지 않을 것이다.
  • [사설] 심각한 수급 불균형, 대학 구조개혁 급하다

    15일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국무회의에 보고한 ‘2014~2024 대학 전공별 인력 수급 전망’은 수급 불균형과 학력 과잉이라는 한국 노동시장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 준다. 대졸자들이 노동시장 수요를 크게 초과하고 전공별 취업 양극화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을 담았다. 요즘 유행하는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 현상이 계속된다는 의미다. 대학 구조개혁 등 정부의 인재육성 정책 수정이 시급해 보인다. 보고서는 우선 최악의 대졸 취업난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0년간 전체 대졸자 474만여명 중 79만여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대졸자들의 감소를 고려했는데도 그렇다. 특히 4년제 대학의 인문·사회·사범계열의 인력 과잉이 심하다. 사회계열의 경우 필요 인력은 62만여명인데 84만여명이 쏟아져 나와 22만여명이 남아돈다. 사범계열도 교사 수요가 줄면서 12만여명이 초과 배출된다. 반면 4년제 대학 공학계열 구인 수요는 96만여명인데 졸업자는 75만여명에 불과하다. 21만여명이나 모자란다. 4년제 대학의 기계·금속(7만 8000명), 건축(3만 3000명) 분야에서 특히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업하려는 대졸자들이 노동 수요를 초과하는 문제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최악의 취업난이 앞으로도 10년간이나 계속될 수 있다면 우리 청년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대졸 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는 결국 대학의 구조개혁과 청년들의 진로 교육 등으로 풀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학 구조개혁은 해묵은 과제이지만 소모적 논쟁만 거듭되고 있어 안타깝다. 현재 국회에는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 등이 제출한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교육부가 대학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원 감축과 대학폐쇄, 법인 해산 등을 명령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야당과 교수·직원 단체들이 교육부의 권한 독점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법안에 문제가 있다면 논의를 거쳐 수정하면 된다.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다뤄 주기를 바란다. 더불어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을 이공계 쪽으로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9월 교육부가 발표한 문·이과 통합 방안의 이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 [구본영 칼럼] 모두가 지는 ‘거부권 정국’ 속히 끝내야

    [구본영 칼럼] 모두가 지는 ‘거부권 정국’ 속히 끝내야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 여름의 ‘연평해전’을 영화로 봤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 포격으로 시작된, 31분간의 교전 신에서 자꾸 눈물이 났다. 처절하게 피 흘리며 응전하다 승조원 여섯 명이 희생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괴감 탓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영결식에 앞서 월드컵 폐막식을 보러 도쿄로 떠나고, 금강산 관광객들도 안전하게 돌아왔다는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당시 참수리 357호는 적선이 우리 해역을 침범하더라도 선제 포격을 하지 말고 ‘밀어내기 기동’만 하라는 교전수칙을 하달받았단다. 그래야 남북 화해 무드를 깨지 않는다는 정치적 오산에 이름 없는 민초였던 수병들의 생사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연평해전이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요즘 민생과 동떨어진 명분 다툼에 올인하는 한국 정치의 고질이 되살아난 건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국정은 마비 상태다. 새누리당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 퇴출을 놓고 ‘밀당’이 한창이다. 야당은 그제까지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다. 가뜩이나 여당의 친박·비박이 부딪치고, 야당의 친노·비노가 드잡이를 하던 터였다. 이제 청와대와 여야의 3각 갈등이 폭발하면서 조선시대 4색 당쟁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당파 싸움의 주된 특징이 뭔가. 국상을 맞아 왕이 상복을 입는 기간을 놓고 벌인 ‘예송 논쟁’처럼 민초들의 삶과 유리된 공리공담을 다퉜다는 점이다. 입법부에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 요구권을 준 국회법 개정안이 촉발한 ‘거부권 정국’이 그런 양상을 띠고 있다. 애당초 공무원연금법에 국회법 개정안이란 혹을 단 게 잘못 끼운 첫 단추였다. 국회가 법을 만들면 변화무쌍한 민생 현장의 수요에 맞춰 시행령을 만드는 건 정부의 몫이다. 시행령이 모법에 어긋나는지는 사법부가 가리고, 정부의 자의성이 의심되면 국회는 모법을 고치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여야가 이런 삼권분립 정신을 거스르는 국회법을 합작해 낸 형국이다. 공무원연금 협상에는 소극적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위헌 소지가 큰 국회법 개정안을 끼워 넣은 이면에 국정 발목 잡기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별개로 치자. 여당 원내대표가 야당 이종걸 원내대표의 전략에 동조한 건 실책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뒤늦게 개정안에 강제성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김무성 대표의 말처럼 “똑똑하지만 까칠한” 그답지 않게 스타일을 구긴 꼴이다. 강제성이 없다면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킬 필요도 없었고, 강제성이 있다면 위헌이란 얘기가 아닌가. “여당 원내 사령탑이 ‘자기 정치’에는 열심이면서 민생 현안 처리엔 소극적”이라는, 박 대통령의 비판을 자초한 배경이다. 어떻게 발단이 됐든 거부권 정국이 오래 이어져선 안 된다. 지금이 어느 땐가.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기다. 어찌 보면 요즘 청년들도 저 참수리호 갑판에서 사투를 벌이던 박동혁 상병이나 한상국 하사에 버금갈 만큼 절박한 처지다. ‘청년실신’(졸업 후 실업자·신용불량자가 된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자 90%가 논다)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나. 더욱이 지금 온 국민이 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고 서민 경제에도 큰 주름이 잡혔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민생과 무관한 권력 투쟁을 벌인다면? 여·야·청(靑) 모두를 루저로 만들고, 종국엔 국민을 최대 피해자로 만드는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청년 일자리나 노인 복지 등 실질적 정책을 놓고 싸워야 진정한 승자가 가려진다. 박 대통령이 진작에 여당 지도부와 머리를 맞대며 소통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겠는가. 유승민을 찍어 낸다고 정국이 말끔히 정리될 리도 없다. 성공한 정부로 기억되려면 지시보다 대면 설득으로 공감대를 이루도록 대통령의 리더십부터 바뀌어야 한다. 국정 마비의 또 다른 원인 제공자인 새정치연합도 “만년 야당처럼 행동한다”(대니얼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는 제3자의 고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가 꼬집은 건 대안 없이 국정의 발목만 잡는 야당의 구태였다. 경제활성화법들을 가짜 민생법안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본격적 토론과 심의는 차일피일 미루는 게 딱 그런 증상이다. 논설고문
  • [사설] 청년실업으로 20만명 몰린 9급 공무원 시험

    전국 17개 시·도에서 그제 치러진 9급 국가공무원 시험에 19만 987명이 몰려 52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교육행정직은 10명을 뽑는 데 무려 7343명이 지원했다. 사상 처음으로 응시자가 20만명을 넘어섰던 2년 전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9급 공무원시험 응시자는 여전히 20만명에 육박한다. 국가가 주관하는 단일시험으로는, 60만여명이 응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이어 최대 규모다. ‘관(官)피아’ 척결 분위기가 여전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이 추진되고는 있지만 공무원에 대한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민간 기업의 고용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목도한 뒤부터 공무원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특별한 잘못이 없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업무 강도도 민간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고 임금도 민간기업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갑’(甲)의 역할을 해온 관료에 대한 오랜 선망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도 9급 공무원이 되는 게 민간기업에 들어가는 것 못지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부터 공무원시험에 나이 제한이 없어지면서 20대 젊은 층뿐 아니라 40·50대 중장년도 9급 공무원 시험에 대거 도전하고 있다. ‘인문계 출신 90%는 논다’는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청년실업이 심각한 것도 9급 공무원 시험의 이상과열 현상을 불러왔다. 대졸 실업자 수는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어섰다. 3년 전만 해도 30만명대 수준이었던 게 해마다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올해 1분기 20대 대졸자의 실업률은 9.5%로 역대 최고였다. 기업이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대졸 공시족(公試族)’의 급증을 불러왔다. 직업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창의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민간기업보다 안정적인 ‘철밥통’만 노리는 것은 도전의식이 결여된 일이다. 대학졸업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에까지 굳이 대졸자들이 대거 몰릴 필요가 있나. 경제성장의 불씨를 살리고 국가의 부(富)를 창출하려면 유능한 젊은 인재가 민간기업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가 살아나면서 기업투자와 일자리가 함께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오늘의 눈] 청년실업, 말만 앞세운 정부/홍인기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청년실업, 말만 앞세운 정부/홍인기 정책뉴스부 기자

    청년 실업이 1999년 이후 최고치인 11.1%를 기록하면서 관계 부처 장관 및 정치권 인사들은 득달같이 ‘청년’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새삼스레 ‘청년 실신’(실업자+신용불량자), ‘인구론’(인문대 졸업생 90%가 논다) 등의 신조어를 거론하며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은 정치권이나 정부의 대책에 기대하지 않는다. 청년 실업 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제대로 된 대책은커녕 말의 성찬으로 끝나 버린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청년 관련 정책 32개가 쏟아졌지만 공공부문 청년 일자리 증가, 해외 취업 지원 및 장려, 중소기업 취업 장려, 청년인턴제도 등 이름만 바꾼 정책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동안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의 생존 등을 내세우며 청년 고용을 외면해 왔고, 정부는 경제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이를 방치했다. 인건비를 줄이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비정규직 채용 등 간접고용은 늘어났고, 정부는 단순한 양적 증가만으로 취업률이 높아졌다는 결과를 내놨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정규직’이라는 단어는 멀어져 버렸다.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무임금 노동을 감내해야 하고, 해마다 올라가는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이어졌다. 빚쟁이가 된 청년들은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아르바이트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 인사들은 최근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대책으로 꺼내 들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9일 주요 일간지에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해결됩니다’라는 광고를 실었다. 이기권 장관은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나 “통상임금, 근로시간, 정년, 임금체계, 근로계약 해지와 변경 등 5대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청년 실업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과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인사들이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듯 쏟아내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 발언에는 정규직 과보호론과 기성세대 및 노동계의 양보가 깔려 있다. 그동안 이를 방치한 정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의 유체이탈 화법이다. 한 걸음 물러선 정부 탓에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이 심화될 조짐도 보인다. 청년들은 부모 세대의 일자리를 뺏거나 노동시장 하향평준화로 저임금 일자리를 양성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난 17일 청년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청년단체 대표들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대립 구도로 논의를 가져가서는 안 된다”며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구축과 취업정보망 강화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각종 정책에 ‘청년 실업’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고 있지만 종합적인 방안이나 대책 마련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동으로 가라’는 무책임한 발언이나 ‘노동시장 구조 개혁만이 해결책’이라는 식의 책임 회피로는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 ikik@seoul.co.kr
  • [오늘의 눈] 킹스맨도 좀 보시죠/송수연 특별기획팀 기자

    [오늘의 눈] 킹스맨도 좀 보시죠/송수연 특별기획팀 기자

    스파이 액션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가 국내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영화가 개봉된 전 세계 13개 지역에서 우리나라가 흥행수익 2위를 기록할 정도다. 이를 두고 ‘영국식 젠틀맨십이 통했다’, ‘B급 감성을 기발하게 풀어냈다’ 등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는데 유독 한국에서 인기를 끈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다른 이유가 더 있지 않을까(주의: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 킹스맨이 기존 스파이 영화와 다른 점 중 하나는 ‘악당 대 스파이’의 구도가 아니라 ‘악당과 전 세계 기득권 무리 대 스파이’라는 점이다. 억만장자 악당 발렌타인은 자원고갈의 위기에 놓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며 소수의 인간만 남겨놓은 채 인구를 몰살하려 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 중에서도 탐욕스러운 자들이 악당의 계획에 동조한다. 킹스맨의 활약으로 발렌타인의 계획은 실패하고 이들도 최후를 맞는다. 음모를 꾸몄던 이들의 두상이 하나둘씩 오색착란하게 빛을 뿜으며 폭죽처럼 터지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 영화의 압권이다. 대중 앞에서 짐짓 고귀한 척 가면을 썼던 권력자들의 머리도 여지없이 날아간다. 잔인해야 할 장면인데 오히려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학살당할 뻔한 상황이 역전되고 그동안 사회를 오염시키던 위선자들을 썩은 좁쌀을 골라내듯 솎아 냈다. 국내에서 킹스맨의 열기가 뜨거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관람객이 해외 관람객들보다 위선자들에 대한 응징에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이 특권층에 대한 반감이 더 큰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두 달여간 특별기획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를 취재하면서 느꼈던 것도 그렇다. 사회 양극화가 이제는 감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사회제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악당 발렌타인의 논리도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하다. 19세기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인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이 떠올랐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인구 과잉, 식량 부족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치권은 맬서스의 주장을 적극 받아들였다. 영화에서처럼 인구 말살까지는 아니지만 인구 증가 억제를 위해 빈민 구제방안 등을 무효화시키거나 보류시켰다. 이제 21세기의 기득권층은 ‘인구론’이 아닌 ‘경제위기론’으로 팻말을 바꿔 각종 사회복지 정책을 축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나친 것일까. 한 영화의 흥행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들이 킹스맨도 좀 보셨으면 좋겠다.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하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앞다퉈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았던가. 킹스맨이 왜 유독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정치인들의 대답이 궁금하다. songsy@seoul.co.kr
  • 우울한 졸업

    우울한 졸업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 이후의 암울한 상황을 자조하는 글이 적힌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대학 졸업 시즌이지만 인문계열 졸업생의 90%가 논다는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지난달 구직단념자가 50만명에 육박하는 등 대졸자의 취업난이 한층 심각해졌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인류 재앙’ 누명 쓴 저출산 뒤집어보기

    ‘인류 재앙’ 누명 쓴 저출산 뒤집어보기

    인구 쇼크/앨런 와이즈먼 지음/이한음 옮김/알에이치코리아/660쪽/2만원 ‘저출산은 재앙?’ 자신을 닮은 2세를 낳는 출산의 감소와 그에 따른 고령화. 지구촌 곳곳에선 이 두 개의 복합적 추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다. 평균출산율 1.19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인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출산율이 사망률을 상회, 당장은 인구가 줄고 있진 않지만 머지않아 초고령화에 접어든 일본의 형국을 닮아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를 포함해 거개의 나라들이 ‘인구 위기’로 우려하는 저출산은 정말 재앙적인 차원의 악일까? 신작 ‘인구쇼크’는 저출산을 향한 보편의 생각을 뒤집어 저출산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는 길임을 강력히 주장해 눈길을 끈다. 저출산에 대한 그 ‘악에서 선으로의’ 발상 전환은 바로 인구폭발에서 시작된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세계인구는 4.5일마다 100만명씩 늘고 있다. 1815년 10억명을 돌파한 세계 인구는 1900년 16억명에서 2011년 70억명으로 급증했고 지난해 72억명을 넘어섰다. 2082년 100억명을 넘어설 것이란 추세 예측이 괜한 게 아니다. 신간은 얼핏 보면 ‘인구의 폭발적 증가세에 비해 식량은 더디게 늘어나는 불균형 탓에 인류는 반드시 기근과 빈곤을 겪을 것’이라고 예언한 맬서스(1798년 ‘인구론’)나 인구폭발 파멸의 시나리오를 제시한 폴 에를리히(1968년 ‘인구폭탄’)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인 앨런 와이즈먼은 ‘인구쇼크’에서 이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인구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 핵심은 이미 지구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고 지금 당장 인구감소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드러나는 시각의 신선함은 저출산에 대한 경제학계의 논리를 아주 극명하게 뒤집는 데 있다. 주류 경제학계는 대체로 출산율 감소를 소비·노동인구 감소로 인한 소비침체, 경제성장 둔화, 복지부담과 같은 선에서 바라본다. ‘저출산=국가적 위기’라는 등식을 적용하는 많은 나라의 시각과 일치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구가 감소해 GDP가 줄어도 국민 1인당 소득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고 반박한다. 일할 사람이 줄면 기업은 임금을 올리고 근무시간 단축 등 복지문제에 더 신경을 쓴다고 설명한다. 인구 감소로 빈 일자리는 여성 경제인구가 상당 부분 채울 수 있고 연금문제도 인구감소에 따라 줄어드는 기반시설 투자금액과 정부예산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에 만연한 ‘저출산 망국론’을 보기 좋게 뒤집지만 그 설득의 방식은 아주 부드럽다. 전 세계 20개 나라를 직접 탐사해 세상이 인구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를 읽는 이 스스로가 비교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인구 우위를 점하기 위해 출산경쟁을 일삼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경우부터 이민자들에 대한 배타적 시각이 팽배한 유럽사회, 오랫동안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해 온 중국, 여전히 인구증가를 방관하는 인도와 파키스탄…. 그 다양한 사례에서 환경파괴며 자원고갈, 지구 온난화처럼 한 나라에 국한하지 않은 지구촌 공통의 위기 문제를 곱씹게 만드는 게 책의 특장이다. ‘성장 없는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저출산’ 책을 읽고 나면 머릿속에 진하게 남는 앙금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번영의 평가 척도로 삼아 왔고 여전히 실천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이며 나라들의 입장에선 조금 불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공통의 ‘글로벌 인구문제’에 대한 관심 유발과 지속가능한 공존의 근본 해법 찾기 측면에선 유의미한 역작임에 틀림없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인구론, 돌취생, 청년실신’ 2014 채용시장 신조어

    ‘인구론, 돌취생, 청년실신’ 2014 채용시장 신조어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는 논다), 돌취생(입사 후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온 사람)….’ 취업포털 사람인이 올해 채용시장을 반영한 신조어를 19일 소개했다. ’인구론’은 이공계를 선호하는 기업이 늘어난 데 따라 생겨난 단어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취업통계연보를 보면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은 45.9%로 공학계열(66.9%), 자연계열(55.6%)보다 낮다고 사람인은 설명했다.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열 학과를 통·폐합하는 대학가의 움직임도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돌취생’은 입사한 회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취업시장으로 돌아온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사람인이 지난 1년간 신입사원을 뽑은 기업 31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7%가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한 사원이 있다고 답했다. 이와 비슷한 신조어로 20대에 스스로 퇴직한 백수를 가리키는 ‘이퇴백’이 있다. 일단 아무 회사에 들어가 보고 적성에 맞지 않으면 퇴사한다는 것이다. 무급 또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취업준비생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열정페이’라는 단어도 있다. ’열정이 있으면 돈은 필요 없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일부 국제기구, 국가기관, 사회적 기업, 인권단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사람인은 지적했다. 거창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자소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소설을 쓰듯 창작한 자기소개서라는 뜻이다. 봉사활동, 학회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동아리고시’라는 말도 등장했다. 등록금 대출을 받았으나 취업이 늦어져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상태를 묘사하는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장 자크 루소는

    장 자크 루소가 살았던 18세기는 이른바 ‘계몽의 시대’였다. 이 시기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루소는 계몽과 이성을 중시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고,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버렸다. ‘모순의 사상가’로 불리는 까닭이다. 루소는 이 모순조차도 철학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고백록’이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철학자들은 ‘삶의 모순에 대한 성찰’이 루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평가한다. ‘벌거벗은 자신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작품은 더욱 진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벨 에포크’라는 황금시대가 등장한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스콧 피츠제럴드 등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던 20세기 초반의 프랑스 파리다. 하지만 루소의 시대에도 프랑스와 파리는 여전히 벨 에포크였다. 루소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를 쓸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다. 루소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는 마키아벨리와 식물분류의 아버지 칼 린네가 꼽힌다. 평생 자연을 갈구한 루소는 린네를 “이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루소는 당대의 철학자는 물론 예술가, 정치인들과 끊임없이 교류했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순’으로 대표되는 루소의 인생처럼 그의 영향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판이했고 결과도 제각각이었다. 루소에게서 비롯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프랑스대혁명을 들 수 있다. 북프랑스의 시골뜨기 로베스피에르는 파리로 유학 와 루소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고 혁명을 결심, 프랑스대혁명에서 단두대로 대표되는 ‘공포정치’로 이름을 떨쳤다. 역사상 최초의 전업 경제학자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역시 루소와 사상적 교류를 나눴던 부친을 통해 기반을 쌓았다. 그는 19세기를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낙관하던 사람들에게 ‘인구론’과 ‘공황론’을 통해 사회 붕괴와 소멸이라는 끔찍한 미래를 제시했다. 루소 사상의 광신도였던 시몬 로드리게스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사상을 물려줬고 그중 한 명은 역사를 바꿨다. 그가 바로 남미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다. 평생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산책에 나서 동네 주민들에게 ‘시계’로 불린 비판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단 한 번 산책 시간을 어겼는데 이때 읽던 책이 ‘에밀’이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씨줄날줄] 맬서스의 빗나간 예언/오승호 논설위원

    중국은 1953년 인구조사 결과를 분기점으로 인구 증식에서 억제 정책으로 바꾼다. 피임과 인공유산에 대한 각종 조치를 완화하는 등 산아제한 정책을 편다. 그러나 1957년에는 인구증식 정책으로 회귀한다.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베이징대 총장을 지낸 마옌추(馬演初) 등 인구 억제를 주장하는 지식인들을 맬서스주의자로 탄압하기도 한다. 인구 문제로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겪은 끝에 1979년부터는 인구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한 자녀 갖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한 자녀 갖기 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어 완화될지 주목된다. 한 자녀 정책 반대론자들은 노동인구가 줄어들어 경제성장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든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이 정책을 포기할 경우 인구 급증으로 농산물 등 자원부족 상태가 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에서는 자녀를 더 가지려고 해외 원정출산을 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13억명의 중국 인구가 더 늘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일본 정부는 인구 문제로 고민이 적잖다. 인구가 3년 연속 감소했기 때문이다. 일본 인구는 지난해 10월 1일 기준 1억 2730만명으로 0.17% 줄었다. 15~64세 생산가능 인구는 7901만명으로 32년 만에 8000만명을 밑돌았다. 일본에서는 미국이나 호주의 예를 들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해외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오타 아키히로 국토교통성 장관은 지난 3월 ‘국토의 그랜드 디자인’ 골격을 발표하면서 “2050년에는 약 60% 지역에서 인구가 절반 이하가 되고, 20%가량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혀 인구감소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했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는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기억할 것이다. 정책 효과로 1980년에는 출산율이 2.83명으로 떨어졌지만 인구억제 정책은 계속됐다. 지난해 출산율은 1.19명으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만든 지 10년이 지났지만 출산율은 1.3명 미만에 머물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출산율 추정치는 1.25명으로 일본(1.4명)보다 낮다. 분석대상 224개국 가운데 219위다.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난다면서 인구 억제를 주장했다. 식량 부족이나 빈곤 문제의 원인을 인구과잉에서 찾았다. ‘인구 위기’는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 존립 차원에서 극복해야 한다. 그의 인구론이 빛을 발할 수 있게 할 획기적인 출산장려 정책은 없을까.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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