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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방불명인의 이름 확인없이 일괄 화장은 결코 안돼”

    “행방불명인의 이름 확인없이 일괄 화장은 결코 안돼”

    “유족들은 어떤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고, 영령님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전국 형무소 터와 학살지를 찾아다니며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신원확인 없이 일괄 화장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이 19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표석 위령제단에서 열린 제24회 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주최하고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주관한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도교육감을 비롯 4·3 유족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제주4·3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마지막 한 명까지 행방불명 희생자의 이름을 되찾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봉행했다. 양 회장은 주제사를 통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아직 미비하다”며 ”전국 각지에서 행방불명된 영령들의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진혼사에서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행방불명 영령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유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뜻을 전했다. 현재까지 행방불명인 표석은 4078개가 설치됐으며, 8차 행방불명인 결정에 따라 추가로 41개가 설치될 예정이다. 위패 봉안실에는 1만 4,837위의 희생자 위패와 일가족이 함께 희생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무명신위 위패가 함께 봉안돼 있다. 추도사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행방불명 희생자의 신원확인과 명예회복을 위한 제도적 지원 강화를 강조한 오 지사는 “행방불명인의 유해를 확인하고 신원을 규명하는 일은 더욱 광범위한 법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과제”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을 통해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에 관한 조항이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국회에 관련 법률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와 유족회가 제주도정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국회, 4·3평화재단, 관련 단체와의 연대와 협력에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지난 13일 국립제주트라우마치유센터 운영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개정안이 국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며 “마지막 한 분까지 행방불명인의 이름을 되찾고, 평화의 섬 제주에서 억울하게 사라진 이름들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 강기정 시장 “제주, 광주와 함께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강기정 시장 “제주, 광주와 함께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이어준 5·18과 4·3이 ‘평화 연대’의 길을 함께 걷는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4·3의 숨결은 역사로, 평화의 물결은 세계로’를 주제로 열린 제77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 희생자 유족 등을 위로하고 헌화·분향했다. 강 시장은 추념식에서 “광주와 제주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아픔의 역사가 있고, 한강 작가는 5·18과 4·3을 다시 한번 이어줬다”며 “4·3의 이름을 찾는 정명(正名)과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더 단단한 민주주의,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밝혔다. 강 시장은 “5·18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이들이 손을 잡아준 덕분에 인권평화의 상징으로 보편성을 갖게 됐다”며 “많은 이들이 평화연대를 통해 광주를 민주주의 도시로 꽃피워준 만큼, 이제 광주가 그 고마움을 되돌려드려야 할 때이고, 이는 4·3과의 평화연대로 구체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시장은 이어 “참혹한 아픔인 4·3을 딛고 제주공동체를 이뤄낸 유족들의 노력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며 “77년이 흘렀음에도, 4·3은 여전히 이름이 없고 생존희생자 등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진상규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같은 활동을 통해 4·3에 이름 붙이는 정명(正名)이 반드시 필요하고 광주는 이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강 시장은 추념식에 앞서 4·3희생자인 고 양천종 씨의 딸 양두영 어르신 등 생존 희생자들을 만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했다. 고 양천종 씨는 광주형무소 옛터에서 75년여만에 유해가 발굴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광주와 제주는 지난해부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과 4·3희생자 추념식에 시장 등 대표단이 교차 참석하며, 평화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해 강 시장은 오영훈 제주지사와 인권·평화와 번영을 위한 ‘상생발전 업무협약’을 체결, ▲제주4·3-광주5·18 평화·인권 교류 ▲국립트라우마센터 운영 내실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틀 일정으로 제주를 방문한 강 시장은 첫날인 2일 제주4·3평화기념관 유족회 사무실에서 ‘한강이 이어준 4·3과 5·18 광주↔제주 동행 간담회’를 열어 ‘평화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는 평화·인권 교류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 연대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강 시장을 비롯해 4·3희생자유족회 김창범 회장과 양성주 상임부회장·양성홍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차호준 센터장과 오수경 제주센터장, 5·18기념재단 박강배 상임이사, 4·3기념사업위원회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는 ▲한강 작가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의 배경 사적지 상호 교류 홍보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전액 국비 운영 등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및 책임 강화를 위한 공동 대응 ▲5·18과 4·3 왜곡·폄훼 공동 대응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초청 등 교류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다.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많은 력을 하고 있는데, 그 롤모델이 5·18이다. 5·18이 있었기에 4·3은 외롭지 않았고, 역사는 진전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5·18과 4·3이 서로 상생의 길을 걸으며, 대한민국이 진정 평화인권을 누릴 수 있는 민주국가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오월광주는 5·18의 손을 잡아준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가 있는 그늘진 곳에, 먼저 손을 내미는 도시여야 한다”며 “5·18 45주년은 대한민국이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광주는 제주와 평화연대 기반을 공고히 구축해 4·3과 함께 뚜벅뚜벅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5·18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4·3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 여객기 참사 유족 “합동분향소, 무안공항에 설치해야”… 국민의힘에 불편한 심기도

    여객기 참사 유족 “합동분향소, 무안공항에 설치해야”… 국민의힘에 불편한 심기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유족협의회는 30일 무안공항 2층 대합실에서 “약 5㎞ 떨어진 무안종합스포츠파크(체육관)에 합동분향소가 설치돼 있다는데 유족 대다수는 공항 1층에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신 유족협의회 위원장이 “이런 의견에 동의하시느냐”고 묻자 유족들은 “여기서 떠나면 안 됩니다” 등으로 답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유족들의 동의 여부를 거수로 확인했고,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 유가족은 손을 들어 무안공항 1층 합동분향소에 찬성했다. 유족 대표단은 이같은 요구를 정치권과 피해자지원센터 등에 전달하기로 했다. 수습당국은 현재 무안군 현경면 종합스포츠파크와 전남도청, 광주 5·18 민주광장 등 3곳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둔 상태다. 대표단은 또 사망자가 모두 확인될 때까지 장례 절차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현재 수습되지 않은 시신 이십몇 구가 있다”며 “확인되기까지 장례 절차의 모든 부분이 일시 스톱됨을 알려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개별적 인터뷰도 자제해 주시길 바란다”며 “우리가 다 같이 모여있으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유족의 단합된 대응을 당부했다. 앞으로 발생하는 관련 비용은 제주항공과 모기업인 애경그룹에서 부담하는 것을 명확하게 하겠다는 입장도 꺼냈다. 박 위원장은 “제주항공 측에 확약서를 받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보험과 마찬가지”라며 “(애경 측이 부담하겠다는 내용을) 확약서에 명시하기 위해 문구를 3번 정도 수정했다. 변호사 자문을 받아 진행 중”이라고 안내했다. 박 위원장은 여당인 국민의힘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내비쳤다. 그는 “많은 정당 가운데 딱 한 정당만 찾아오지 않았다. 179명이 하늘나라로 갔는데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제부터 여러 정당 관계자들이 찾아와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며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제 1부 능선을 넘었다. 유족협의회 집행부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발언이 나온 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이날 오전 무안공항을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합동분향소에 조문했다.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전 태국 방콕공항을 출발해 무안공항으로 착륙하려던 제주항공 7C2216편이 랜딩기어(비행기 바퀴) 미작동으로 동체착륙 후 공항 시설물과 충돌해 기체 대부분이 화염이 휩싸이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181명 중 승무원 2명을 제외한 179명이 사망했다.
  • [데스크 시각] 마지막까지 ‘갑툭튀’ 남긴 尹

    [데스크 시각] 마지막까지 ‘갑툭튀’ 남긴 尹

    제주에는 헛무덤이 많다. 제주 4·3 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보니 가족들은 시신 없는 무덤이라도 만들어 억울한 고인의 한을 달랬다. 살기 위해선 ‘속솜’(침묵의 제주어)해야 했다. 엄혹한 시절엔 연좌제에 걸릴까 봐 밤에 몰래 제를 올리는 집도, 차마 비석에 가족 이름을 새기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인 양성홍 할아버지 가족도 75년간 헛무덤 2곳에 술잔을 올렸다. 뭍으로 끌려간 할아버지와 아버지 묘였다. 지난 17일 헛무덤 주인의 유해가 고향 땅 제주로 돌아왔다. 2019년 12월 북구 문흥동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묘지에서 발굴된 261구의 유해들 속에 할아버지의 다리뼈가 있었다. 백발이 된 94세 딸도, 노인이 된 78세 손주도 원통함에 목 놓아 울었다. “난리 통에 마을 청년들에게 보리쌀 한 되를 건넨 게 할아버지가 끌려간 이유였어. 그뿐이야.” 아집일까 아니면 승부수일까. 비상계엄 사태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던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榜)하나를 붙였다. 공석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탈북단체를 운영하는 강성 우파 성향인 박선영 전 의원을 앉혔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후 자신의 운명조차 시시각각 변하던 시기 나온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인사였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나 인권에 대한 생각을 인사를 통해 보여 줬다. 진실화해위원회, 국가인권위원장, 독립기념관장이 그랬다. 뉴라이트에 이념적으로 편향된 극우인사라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대통령실은 “능력만 고려한 인사였다”고 일축했다. 여당 내부에서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누구도 대통령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2022년 진실화해위원장에 오른 김광동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5·18 당시 신군부 헬기사격을 ‘명백한 허위사실’, 북한군 개입설을 ‘가능성 있는 의혹’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임기 내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5·18 광주 북한군 개입설 등을 주장하는 등 자신의 이념적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9월 취임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역시 “동성애가 공산주의 혁명의 핵심적 수단이라는 주장이 있다”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해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윤 대통령 인사권의 마지막(?) 수혜자가 된 박 위원장도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박 위원장은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직후 자신의 SNS에 “파렴치한 범죄자들 처리를 못 했기 때문에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이라면서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이 판치는 대한민국, 청소 좀 하고 살자”는 글을 올렸다. 시민단체들은 진실화해위원장이 외려 비상계엄을 옹호한다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탄핵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 이미 우린 경험한 바가 있다. 국민의 관심도 신임 진실화해위원장이 과거사를 제대로 처리할까보다는 갑툭튀 인사가 헌재 재판에 어떤 변수가 될까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법적으로 활동할 기간은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전쟁 전후부터 권위주의 정권 시기까지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과 인권침해, 조작 의혹 사건 등 ‘진실’을 규명하고 ‘화해’를 중재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다. 광활한 시험 범위를 한 번이라도 짚어 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양씨 가족은 이번 설에도 헛무덤에 술을 올려야 한다. 1949년 대전형무소로 7년 형을 받고 끌려갔다 행방불명된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살아생전 아버지를 찾지 못할 듯해 팔순을 바라보는 아들은 마음이 급하다. “적어도 진실도 화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았으면 해.” 2024년 12월 현재 4·3평화공원 행불인 표지석은 4007기다. 국가폭력의 후유증은 그렇게 현재 진행형이다. 유영규 전국부장
  • “75년 만에 귀향한 할아버지… 4·3 행불 희생자 모두 돌아오길”

    “75년 만에 귀향한 할아버지… 4·3 행불 희생자 모두 돌아오길”

    “할아버지, 이제서야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수다. 편히 영면헙서예.” 영문도 모르고 광주형무소에 끌려가 생을 마감한 4·3 희생자 양천종씨의 유해가 75년 만에 고향 제주의 품으로 돌아왔다. 4·3 희생자의 유해가 제주로 봉환된 것은 지난해 북촌리 출신 고 김한홍씨에 이어 두 번째다. 제주 연동리 출신인 고인은 4·3사건 당시 살던 집이 불에 타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으로 피신했다. 양씨는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宣撫·특정 방향으로 민심을 유도하는 행위) 공작으로 하산해 한 달간 수용 생활 후 풀려났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영문도 모른 채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불과 5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 24일 가족들은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다. 가족들은 고문에 의한 사망으로 생각했지만 사망 원인에 대한 기록도, 유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19년 옛 광주교도소 무연분묘에서 신원 미상 유해 261구가 발굴됐고, 제주도는 유해들의 유전자 정보를 4·3 희생자 유가족 유전자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했다. 광주를 떠난 양씨의 유해는 17일 오후 2시쯤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백발이 된 딸 양두영(94)씨와 손자 양성홍(78) 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유해를 받아 안고 “이제야 도착했수다”라며 참았던 눈물을 글썽였다. 한 줌의 재로 변한 양씨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데 만 75년이 걸렸다. 이날 고인의 귀향길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창범 4·3유족회장,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함께했다. 양 회장은 “늦게나마 할아버지 유해를 수습할 수 있어 기쁘다”며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른 4·3 희생자들의 유해도 하루빨리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봉환식에서 오 지사는 “75년이라는 긴 세월 유가족들의 원통함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며 “4·3 수형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대전, 경산 등과 협조해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 “75년 만에 귀향한 할아버지처럼… 4·3 행불 희생자들 모두 고향으로 돌아오길”

    “75년 만에 귀향한 할아버지처럼… 4·3 행불 희생자들 모두 고향으로 돌아오길”

    “할아버지, 이제서야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수다. 편히 영면 헙서예(하십시오).” 광주형무소에서 숨진 4·3희생자 고(故) 양천종씨의 유해가 75년 만에 고향 제주의 품으로 돌아왔다. 도외 지역에서 발굴된 4·3희생자의 유해가 제주로 봉환된 것은 지난해 북촌리 고(故) 김한홍 씨에 이어 두 번째다. 제주시 연동리 출신인 고인은 4·3사건 당시 가옥이 전소되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으로 피신했다.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으로 하산해 주정공장에서 한 달간 수용생활 후 풀려났으나,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같은 해 12월 24일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다. 당시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고자 밭을 처분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 고인은 1949년 11월쯤 가족들에게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내용의 안부 편지를 끝으로 55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9년 12월, 북구 문흥동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묘지에서 261구의 유해가 발견됐다. 1971년 광주형무소를 이전하면서 그전 형무소의 유해도 함께 매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5·18기념재단은 5·18 행방불명인으로 추정했지만 유전자 정보 대조 결과 일치된 시료가 나오지 않았다. 이후 제주4·3 희생자일 가능성이 제기돼 제주4.3 유족들의 유전자와 대조한 결과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의 유전자와 일치된 유해를 찾아낸 것이었다. 양 회장과 유족들은 전날 16일 제주도,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 등 17명과 함께 부여 영호추모공원을 찾아 법무부 광주지방교정청으로부터 4·3 희생자 양천종씨의 유해를 건네받고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줄만 알았던 고인과 재회한 유족들은 한맺힌 슬픔을 토해내듯 울음을 터뜨렸다. 고인의 유골은 이날 오후 세종시은하수공원으로 옮겨 화장됐다. 17일 오후 2시 제주국제공항 도착장. 친손자인 양성홍(78) 4·3행방불명인협의회장과 유족들의 품에 안긴 고인의 유해가 75년 만에 고향 제주에 귀향했다. 일찌감치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창범 4·3유족회장,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도의회 의원들이 고인을 영접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아버지를 품에 안고 있던 딸 양두영(94)씨와 양 회장 등 유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글썽였다. 백발이 돼버린 딸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듯 유해함을 끌어 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할아버지 뿐 아니라 아버지(양두량씨)마저 1949년 대전형무소로 7년형을 받아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됐다는 양 회장은 “할아버지 유해를 수습할 수 있어 기쁘다”며 “4·3으로 희생된 모든 행불 희생자들이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봉환식에서 “75년이라는 긴 세월 유가족들의 원통함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며 “유족들의 먹먹한 세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추도했다. 이어 “행방을 알 수 없는 수형인은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며 “정부와 유전자 정보를 긴밀히 공유하면서 대전 골령골을 비롯한 경산 코발트 광산과 전주 황방산, 김천 등 4·3수형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과 신원확인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아버지 찾으려 채혈했다가 할아버지가 귀향하듯… 아버지도 곧 돌아오겠죠”

    “아버지 찾으려 채혈했다가 할아버지가 귀향하듯… 아버지도 곧 돌아오겠죠”

    #희망이 없었다… 연좌제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연좌제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내 인생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광주형무소 옛터에서 잠들었던 유해 중 첫 4·3 행방불명 희생자의 신원이 제주시 연동리 출신인 고 양천종(1898년생) 씨로 확인됐다. 친손자인 양성홍(78)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4·3평화재단으로부터 이같은 소식을 전해듣고 “여전히, 할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광주형무소 옛터 발굴유해의 유전자 정보를 4·3 희생자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한 결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나왔지만 지난 9월말 고모 양두영(고인의 유일한 딸·97)씨와 사촌동생들까지 채혈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할아버지 유해는 오는 12월 17일 항공편으로 75년 만에 고향 제주로 봉환된다. 연좌제로 60여년을 ‘속솜(침묵의 제주어)’하며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1949년 여름, 중산간마을은 초토화 됐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고모, 작은아버지, 양 회장(당시 3세) 등 6명이 먼저 하산해 주정공장에 수용됐다가 일주일 만에 풀려났다. 할아버지는 농삿일을 하다가 영문도 모른채 그해 겨울에 다시 잡혀 광주형무소로 끌려가 결국 옥사(고문치사) 당했다. 재판 중에 숨진, 판결이 나기 전에 공소기각 처리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유죄 선고가 나야 직권재심을 할 수 있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유죄도 무죄도 아닌 채 죽음을 맞았다. ‘죄 없는 죄’는 살아있는 자식의 자식에게 대물림됐을 뿐이었다. 광주형무소에서 할아버지가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을 당시에는 집안이 넉넉지 않았고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해 1952년 돼서야 어머니가 광주로 시신을 찾으러 갔지만 때를 놓쳤다. 밭까지 팔면서 백방으로 시신을 찾으려 애썼지만 끝내 찾을 길이 없었다. 양 회장은 12일 서울신문에 “한편으로 죄없이 끌려가서 가슴 아팠고 한편으로는 시신을 찾아 기쁜 감정이 교차했다”며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좋았을텐데, 왜 이제서야…”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양 회장은 할아버지 사망 통보를 받았던 12월 5일을 기일로 정해 음력 11월 4일이 되면 제사를 지낸다. # 아버지 마저 7년형 받고 대전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 ‘빨갱이’이라며 옥살이 한 적도4·3의 비극은 할아버지에서 끝나지 않았다. 양 회장의 아버지 양두량(27)씨 역시 1949년 7월 4일 역시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군사재판을 받고 1949년 대전형무소로 7년형을 받아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됐다. 지난 2022년 8월 11차 직권재심때 무죄판결을 받아낸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는 “직권재심 시작할 때 양 회장이 자기 아버지는 맨 마지막에 해줘도 되니 다른 사람 먼저 직권재심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며 “아마도 행불인협회 회장이었기 때문에 이타적인 마음이 앞선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그때 변 검사는 “빨리 해달라 원해도, 늦게 해달라고 원해도, 희생자 결정 순서에 따라 할 것이라고 전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했다. 지난 2023년 봄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양 회장은 역경과 회한의 세월을 되뇌었다.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경찰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얼마나 고문이 혹독했는지 경찰서에서 집으로 올 때는 기어 올 지경이었다”며 “다리에 나무를 끼워서 막 밟아 후유증을 앓았다”고 회상했다. 그의 꿈은 육군사관학교에 가는 거였지만, 동네 형이 연좌제 때문에 육사는 커녕 공무원도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라며 악몽의 세월을 떠올렸다. 특히 양 회장은 “스무살 무렵 친구와 다퉈 경찰서에 갔는데 친구는 바로 풀어주고 나만 남았다”며 “그때 당시 그들은 나에게 ‘빨갱이 자식’이라며 3일간 옥살이를 시켰다”고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그만큼 끈질긴 연좌제의 ‘주홍글씨’가 오랫동안 가슴에 박혔다는 얘기다. 어렵게 선관위에 취직했었지만 이유없이 6개월 만에 퇴사 통보를 받기도 했다. 어머니가 외아들인 그를 엄하게 키우지 않았다면 어쩌면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와 이별해서 얼굴조차 몰랐다.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거울 보면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버지다”라고 했다. 직권재심때 받은 무죄판결문을 제삿상에 올리고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목놓아 불러봤다. 절망의 세월을 딛고 이제 희망만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아버지의 유해를 찾으려고 채혈했다가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듯이 이제 곧 아버지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실제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올해 대전 골령골 70구와 경산 코발트 광산 42구 등 도외지역 발굴유해 112구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진행 중이다. 현재 행방불명 4·3희생자 유가족 2233명의 유전자 정보가 확보된 상태다. 도는 진실화해위원회와 협업을 통해 대전 골령골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며, 4·3희생자를 포함한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공동사업도 추진 중이다. 그의 표정에는 아버지가 70여년 만에 직권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듯이 언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 광주형무소 옛터서 첫 4·3희생자 유해 확인… 75년 만에 고향 품으로

    광주형무소 옛터서 첫 4·3희생자 유해 확인… 75년 만에 고향 품으로

    “죄없이 끌려갔는데… 애타게 시신을 찾아 헤맸는데…” 양성홍(78)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이 이틀 전 4·3희생자의 신원을 최종 확인한 결과 친할아버지(고(故) 양천종) 라는 것으로 확인한 뒤 가슴이 먹먹해졌다. 광주형무소 옛터에서 잠들었던 유해 중 4·3 행방불명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돼 75년 만에 고향 제주로 귀향한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광주형무소 옛터에서 발굴된 유해 중 4·3 행방불명 희생자의 신원을 유전자감식 시범사업을 통해 75년 만에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도와 4·3평화재단은 지난해 ‘도외지역 발굴유해 유전자 감식 시범사업’을 통해 대전 골령골에서 첫 4·3 희생자 신원을 확인한 이후 사업 확대를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광주형무소 옛터 발굴유해의 유전자 정보를 4·3 희생자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한 결과, 제주시 연동리 출신인 고 양천종 씨로 확인됐다. 현재 자식으로는 97세 된 딸이 생존해 있다. 손자인 양 회장은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며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도 4·3때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는데 아버지 유해를 찾으려고 유전자 대조를 하다가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의 유해를 먼저 확인하게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은 1949년, 55세의 나이로 광주교도소에 끌려가 옥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4·3 당시 집이 불에 타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했다.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으로 하산했다가 주정공장으로 끌려가 한달여 수용생활하다 풀려났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되는 아픔을 겪었다. 1949년 11월 안부편지가 가족들에게 전해진 마지막 소식이었다.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내용의 이 편지 이후, 가족들은 12월 4일자로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다. 당시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찾지 못했다. 이번에 확인된 유해는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형무소터 무연분묘에서 발굴된 261구의 유해 중 하나다. 2019년 유해발굴된 이곳에서는 5·18 행방불명자로 추정되는 유골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재판 기록에 따르면 180명의 제주도민이 재판을 받고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판결없이 희생된 사람들까지 포함해 대략 2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는 영문도 모른 채 타지에서 75년 간 잠들어 있던 희생자에 대해 예우를 갖춰 고향의 품에 안겨줄 예정이다. 희생자의 유해는 오는 12월 16일 유가족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 관계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계 절차를 거쳐 유족회 주관으로 제례를 지낸 후 화장될 예정이다. 이어 12월 17일에는 항공편으로 75년 만에 고향 제주로 봉환된다. 현재까지 제주도외 지역에서 유해신원 확인은 지난해 대전 골령골에 이어 두번째이며 도내외 전체 유해확인은 총 145명으로 늘었다. 도는 올해 대전 골령골 70구와 경산 코발트 광산 42구 등 도외지역 발굴유해 112구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진행 중이다. 현재 행방불명 4·3희생자 유가족 2233명의 유전자 정보가 확보된 상태다. 도는 진실화해위원회와 협업을 통해 대전 골령골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며, 4·3희생자를 포함한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공동사업도 추진 중이다. 오영훈 도지사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대전 골령골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과 제주4·3 유해 발굴 사업의 연계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며 “지난해 대전골령골에서의 첫 신원 확인에 이어 경산 코발트광산, 전주 황방산, 김천 등의 발굴유해에 대해서도 4·3 희생자 신원확인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아리셀 화재’ 유족-사측, 교섭시작 30분 만에 ‘결렬’

    ‘아리셀 화재’ 유족-사측, 교섭시작 30분 만에 ‘결렬’

    아리셀 화재 사고 11일 만인 5일 오후 회사 측과 유족 간 첫 교섭이 열렸으나 30분 만에 종료됐다. 이날 오후 2시 화성시청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첫번째 교섭에는 유족 측과 사측 관계자 11명이 참여했지만, 교섭 시작 30분 만에 돌연 유족 측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면서 결렬됐다. 유족 측 한 관계자는 “사측이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와서는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해서(교섭 자리에서 나왔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순관 대표는 취재진에 “어떻게 해서든 아리셀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아리셀 측은 유족 측이 ‘진상규명 전까진 협상도 없다’는 입장이어서 이날 회의 자리에서는 마련해 간 합의안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교섭에는 유족협의회 측 3명, 아리셀중대재해 참사 대책위 측 2명, 법률지원 변호사 2명 등 7명으로 구성된 유족 교섭단과 박순관 대표, 아들인 총괄본부장, 노무사, 변호사 등 사측 관계자 4명이 참석했다.
  • 아리셀 화재 유족-사측, 첫 교섭 시작…사고 11일 만

    아리셀 화재 유족-사측, 첫 교섭 시작…사고 11일 만

    아리셀 화재 사고 11일 만인 5일 회사 측과 유족 간 첫번째 교섭이 시작됐다. 화성시청 소회의실에서 이뤄진 이날 첫 교섭에는 유족협의회 측 3명, 아리셀중대재해 참사대책위 측 2명, 법률지원 변호사 2명 등 7명으로 구성된 ‘유족 교섭단’과 박순관 대표, 아들인 총괄본부장, 노무사, 변호사 등 4명의 사측 관계자가 참석했다. 당초 상황 중재나 정부·지자체 관련 사항 설명을 위해 배석하려 했던 고용노동부, 경기도, 화성시 관계자 3명은 유족 측의 반대로 교섭에서 제외됐다. 대책위 관계자는 “가해자 측이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무얼 준비했는지 먼저 들어보기 위해 이날 교섭에 임하게 됐다”며 “진상에 대해 유족이 궁금한 점에 대해 가해자가 무얼 밝히는지 보고 진정성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상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고, 무엇보다 내 가족이 왜 희생됐는지 진실 규명이 먼저란 입장을 밝혀왔다”며 “교섭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영문도 모른채 옥살이… 4·3 군사재판 수형인 희생자 258명 추가 신고 완료

    영문도 모른채 옥살이… 4·3 군사재판 수형인 희생자 258명 추가 신고 완료

    제주4·3사건 당시 군·경에 끌려가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 2530명 중 미신청된 258명의 희생자 신고·접수가 완료됐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는 지난 23일 제주도 4·3지원과를 방문해 군사재판 수형인 258명에 대한 희생자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27일 밝혔다. 광주고등검찰청 소속 ‘제주4·3사건직권재심합동수행단(이하 합동수행단)’이 제주4·3사건으로 억울하게 올살이를 한 군사재판 및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희생자 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도는 군사재판 수형인을 대상으로 ‘제주4·3사건 희생자 및 유족 제8차 추가신고’ 개별 안내를 지속해왔으나 이전까지 수형인 258명의 희생자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도는 이번에 접수된 수형인 258명의 희생자 결정을 통해 신속한 직권재심 청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이들의 신원에 대한 자체 행정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258명 가운데에는 신원 확인이 안 된 84명도 포함돼 있다. 조상범 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희생자 신고가 완료된 만큼 한 분도 빠짐없이 명예회복이 이뤄지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는 2021년 3월 4·3사건법 전부개정 이후 합동수행단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친인척 조사와 1999년 도의회 4·3특별위원회 신고서, 국회 양민학살조사보고서 등 문헌조사 및 대도민 홍보를 통해 군사재판 수형인 2530명 중 총 2446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한편 도는 4·3보상금 신청·접수를 총 6차에 걸쳐 진행하는 가운데, 다음달 3일부터 4·3희생자에 대한 3차 보상금 신청접수를 시작한다. 1차 2117명, 2차 2500명에 대해 신청·접수를 받은데 이어 3차에는 2810명을 대상으로 신청·접수받을 예정이다. 특히 이번 3차부터 무호적자 희생자에 대한 신청접수가 시작되며, 총 842명의 무호적자 중 당초 1~3차에 해당하는 310명의 무호적자 희생자의 유족이 신청 대상자가 된다. 3차 신청대상자 2810명은 가까운 도·행정시·읍면동사무소에 방문해 신청할 수 있으며, 도외 또는 해외에 거주하는 신청대상자는 제주도청 4·3지원과로 등기우편을 보내면 된다. 이와 함께 3차 대상자에 대한 사실조사(청구권자 확인을 위한 가계도 조사)를 28일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도는 지난해 6월부터 현재까지 4·3보상금 지급 대상자 4617명에 대한 신청·접수 결과, 총 92%인 4251명이 접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4·3실무위원회에서는 매월 200여명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총 2733명에 대한 심사를 마쳤다. 총 1679명의 심의가 완료돼 총 1262억 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 나보다 더 힘든 이웃들을 위해… 4·3희생자 보상금 기부 훈훈한 감동

    나보다 더 힘든 이웃들을 위해… 4·3희생자 보상금 기부 훈훈한 감동

    4·3 희생자 보상금의 일부를 제주4·3희생자유족회에게 기부해 연말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김홍수 제주4·3희생자유족회 서부지회장이 지난 14일 오전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오임종)를 방문,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 중 300만원을 유족회에 기부했고, 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영남위원회와 서부지회에도 각각 100만원을 전달했다. 김 지회장의 아버지는 1949년 7월 열린 육군 고등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후 대구·부산·마산형무소 등 3곳의 형무소에서 7년6개월 동안 수형생활을 한 후 1956년 출소했다. 그의 부친은 출소 후에 어렵게 생활을 하다가 2004년에 세상을 떴다. 김 지회장은 “70여 년 전 무고한 양민들이 적법한 재판을 받지도 못하고 수형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을 기부하게 됐고, 미래 세대의 평화와 인권교육, 제주4·3의 진상 규명을 위해 사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지방법원은 2021년 3월 재심 재판을 열고 국가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행방불명인 331명과 생존수형인 2명 등 335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제주4·3사건을 통해 국가의 존재가치를 묻고 싶다. 해방 후 이념 대립 속에 국가는 청·장년들이 반정부행동을 했다고 죄를 덧씌웠고 목숨마저 빼앗았다. 그 유족과 자녀들은 연좌제의 굴레에 갇혀왔다”며 무죄를 내린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지난달 18일에는 제주4·3 예비검속 희생자 강순주(90)씨가 국가보상금 1000만원을 유족회에 기부했다. 유족회 관계자는 “여러 유족이 국가보상금으로 후원을 하고 싶다고 문의해 오고 있다”면서 “이른 시일 내 민간 재단을 설립해 후원금을 운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박영선 “李, 고양이 탈 쓴 호랑이… 민주 분당 위험”

    박영선 “李, 고양이 탈 쓴 호랑이… 민주 분당 위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민주당 내부가 요동치고 있다. 비명계(비이재명계) 의원들은 당 차원에서 이 대표를 엄호하는 데 대해 비판하며 분당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반면 친명계와 당 지도부는 연일 당 결속을 주문하며 윤석열 정부 비판에 집중하고 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KBS에서 ‘이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분당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때 제가 (이 대표가) 고양이의 탈을 쓴 호랑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과 유사하게 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매몰돼 있다며 분당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다만 그는 최근 당내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역할론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당장 귀국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에 대한 억측에는 선을 그었다. 비명계 대표 주자인 조응천 의원도 1일 KBS 라디오에 나와 당에 대해 거듭 비판적 입장을 내놓았다. 조 의원은 “이 대표뿐 아닌 민주당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단일대오로 버티자’고 주류들은 이야기하는데 사실관계는 모르지 않느냐”며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 당 공식 라인이 전면에 나서서 반박 대응을 하고, 논평을 내는 건 사실 굉장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보듬기에 나서는 등 민생 현안에 집중하며 민심 잡기에 나섰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의료 및 심리지원을 위한 간담회에서 “최근 참사 유가족들의 협의회 구성이 진행 중”이라며 “정부가 유족협의회 설립을 적극 지원해 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 민주,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내분 조짐…박영선 “분당 가능성“

    민주,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내분 조짐…박영선 “분당 가능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민주당 내부가 요동치고 있다. 비명계(비이재명계) 의원들은 당 차원에서 이 대표를 엄호하는 데 대해 비판하며 분당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반면 친명계와 당 지도부는 연일 당 결속을 주문하며 윤석열 정부 비판에 집중하고 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KBS에서 ‘이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분당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때 제가 (이 대표가) 고양이의 탈을 쓴 호랑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과 유사하게 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매몰돼 있다며 분당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지난 5월 페이스북에 이 대표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와 관련, “문득 민화에서 보았던 ‘고양이 탈을 쓴 호랑이’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정치인들은 가면을 쓰고 사는 존재라고 하지만, 가장 진심과 본질이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박 전 장관은 지난 6월 말에는 이 대표의 당 대표 도전에 대해 “당이 혼란스럽고 분당 가능성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반대한 바 있다. 다만 그는 최근 당내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역할론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당장 귀국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에 대한 억측에는 선을 그었다. 비명계 대표 주자인 조응천 의원도 1일 KBS 라디오에 나와 당에 대해 거듭 비판적 입장을 내놓았다. 조 의원은 “이 대표뿐 아닌 민주당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단일대오로 버티자’고 주류들은 이야기하는데 사실관계는 모르지 않느냐”며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 당 공식 라인이 전면에 나서서 반박 대응을 하고, 논평을 내는 건 사실 굉장히 불편하다”고 말했다.반면 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이날 대통령실 앞에서 ‘정치 탄압 중단 촉구 규탄 회견’을 열며 당의 결속을 과시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 수사 1, 2, 3부가 전임 정부와 현 야당 대표의 민주당 인사 수사에 올인하고 있다”며 “100명이 훌쩍 넘는 인력이 야당 탄압에 총동원됐다”고 비판했다. 김승원 의원도 “검찰은 유동규, 남욱 등 대장동 사건의 주요 혐의자들을 풀어주면서 이재명 대표와 주변 인사들만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이마저도 부족한지 문재인 정부를 향한 대대적인 수사와 함께, 과거 무혐의 결론이 났던 성남FC 사건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특혜 휴가 의혹 등을 다시 파헤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보듬기에 나서는 등 민생 현안에 집중하며 민심 잡기에 나섰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의료 및 심리지원을 위한 간담회에서 “최근 참사 유가족들의 협의회 구성이 진행 중”이라며 “지금까지 정부가 유족들을 분리·고립시키려 한다는 일각의 오해가 있었는데 이런 오해가 불식될 수 있도록 유족협의회 설립을 적극 지원해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 여순사건특별법 일부개정 발의안 놓고 여수시민단체와 유족회 갈등

    여순사건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내용을 놓고 여수시민단체와 유족회가 갈등을 빚고 있다. 여순항쟁유족회는 앞으로 여수지역사회연구소와 어떠한 연대도 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지난 7일 여순사건특별법 제정 1주년에 대한 논평을 내고 “소병철 의원이 특별법을 제정한지 1년 만에 특별법을 개정하겠다며 지난달 30일 특별법 일부 법안을 신설한다는 내용으로 법안을 대표발의했다”며 “하지만 소 의원은 법안에 대한 이해와 인지도가 낮아 특별법 개정법률안의 대표 발의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국회에서 소 의원과 여순사건유족협의회 회장이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수정 삭제된 법안에 대해 유족회 동의도 구하지 않고 단독으로 결정했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통과시킨 특별법안의 주요내용을 보면 사무처는 실무위원회로 축소했고 조사기간은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했다. 또 평화재단 지원과 기부금품 접수조항 삭제와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은 희생자에 한하고 유족은 제외, 소멸시효 배제 조항도 삭제됐다. 당초 원안에서 크게 후퇴한 조항이다. 소 의원은 이같은 문제점에 대한 보완를 위해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재산상 피해를 입은 자’를 신설해 여순사건과 관련한 물건의 멸실·훼손 등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 및 법인 또는 그 밖의 법인격 없는 단체를 규정하고, 위원회가 심의·의결하는 사항에 ‘재산상 피해를 입은 자를 심사·결정’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원래 법안에서 재산상 피해 구제 항목이 빠져 진즉 되돌려야하는 사안인데도 소 의원이 이제야 일부 물적 피해를 넣는 등 특별법을 개정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여순항쟁유족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여수·순천·광양·구례·고흥 5개 유족회는 다음날 성명서를 통해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1년 전 특별법 제정에 환영 성명서까지 발빠르게 발표하는 등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도 없다가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법 개정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유족회는 “그들의 주장은 유족회의 명예를 훼손하고, 지역사회 분열을 조장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기 위한 날조에 불과하다”며 “이미 시행되고 있는 여순특별법 제정에 동의하지 않은 이영일 소장과 박종길 부소장은 위원직을 사퇴해야한다”고 요구했다.
  • 제주법원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재심 청구 첫 심문

    제주법원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재심 청구 첫 심문

    제주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들의 재심 청구 절차가 시작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8일 오전 201호 법정에서 4·3행불인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첫 심문을 했다. 앞서 지난해 1월과 6월 두차례에 걸쳐 4·3 수형인명부에 등록된 2530명 중 행불인 유족 349명이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청구 대상자들은 1948~1949년 사이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적법한 절차없이 군사재판에 회부돼 형무소에서 숨졌거나 행방불명된 이들이다. 이번 재심 청구는 지난해 무죄나 다름없는 공소기각을 받아낸 생존 수형인과 달리 재심 당사자들이 직접 재판에 참여하지 못해 배우자나 직계 자손들이 대신해서 재판에 참여한다.유족 변호인은 현재 실종 상태인 행불 수형인들이 법적으로 사망했는지도 증명해야 한다.재판부는 심문을 마친 후 재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4·3 행불인유족협의회는 이날 심문을 앞두고 제주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유족들이 원통함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셨거나 나이가 들어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청구인이 살아있을 때 결론을 볼 수 있도록 빠른 진행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제주지법은 지난해 1월17일 4·3수형인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군법회의 재심 청구사건 선고공판에서 당시 수형인들에게 적용된 국방경비법 위반과 내란실행죄가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무죄 취지로 공소를 기각했다.공소기각이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인정해 사건의 실체를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제주4·3 행불인 수형자 가족, ‘불법 군사재판’ 재심 청구

    제주4·3 행불인 수형자 가족, ‘불법 군사재판’ 재심 청구

    제주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수형생활을 한 뒤 행방불명 된 피해자 가족들이 18일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번 불법 군사재판 행불인 수형자 재심에 나선 청구인은 행방불명 된 아버지 백운기(나이 미상·대전형무소)씨의 딸 백여옥(79)씨를 비롯한 330여명이다.청구인들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 피해자의 유족들이다. 재심 청구된 수형 피해자는 모두 341명으로 대부분 행방불명됐으며,일부는 제주로 돌아와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들 피해자는 주로 1947∼1949년 내란죄 등의 누명을 쓰고 징역 1년에서 최대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심청구인 대표 김필문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회장은 “7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유족이 원통함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셨거나 나이가 들어 병들고 쇠약해져 있다”며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유족들은 죽기 전에 명예회복을 하기로 뜻을 모아 재심청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 중에서도 4·3 수형인은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영문도 모른 채 서대문형무소와 대구·전주·인천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수감된 이들을 말한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이틀 뒤 71주년… 국회서 잠만 자는 여순사건특별법

    이틀 뒤 71주년… 국회서 잠만 자는 여순사건특별법

    2000년 특별법 제정된 4·3사건과 달리 2001년부터 4차례 발의… 여전히 낮잠 96세 할머니 “남편 묘라도 좋게 썼으면” 유족연합회 “진상규명 유족 한 풀어달라”“스물다섯 살 때 남편이 성님 대신 끌려가고 나서 영영 끝이었제. 여순사건 원망 많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할 거여. 이왕 돌아가신 거 나라에서 시신이나 좋은 자리에다 묻어 주면 더는 소원이 없겠어.” 1948년 남편이 경찰에 붙들려 간 후 대전형무소에 있다 6·25전쟁 때 무더기로 죽임을 당한 희생자 가족이 된 홍순례(96·순천)씨는 16일 서울신문과 만나 “남편만 보고 오늘날까지 살았는데 남편 묘나 좋게 써서 그 자리에 같이 누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여순사건이 오는 19일로 71주년을 맞는다. 여순사건은 1948년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에 반발, 국군·미군에 맞서는 과정에서 여수·순천 등 전남 동부권 주민 1만 1131명(1949년 집계)이 희생당한 일이다. 그동안 수차례 여순사건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순사건의 발발 원인이 제주 4·3사건이어서 두 사건은 ‘쌍둥이’로 불린다. 하지만 2000년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것과 달리 ‘여순사건특별법’은 지지부진하다. 여순사건특별법안은 모두 4차례 발의됐다. 2001년 16대 국회를 시작으로 18, 19대에도 올랐으나 보수 정권의 반대와 견제로 자동 폐기됐다. 20대 들어서도 2017년 4월 정인화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5개 법안이 국방위원회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 내용은 2년여 만인 지난 6월 상임위를 행정안전위원회로 바꾼 뒤 다시 심의가 시작됐다. 여순항쟁유족연합회는 “제주 동포를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분단체제를 강요한 외세와 이승만 정권에 대한 민중적 항거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에 나서 유족의 한을 풀어 달라”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은 박성태(72) 보성군 여순항쟁유족협의회장은 “살아남은 유족들은 빨갱이란 낙인에, 연좌제와 갖은 사회적 차별, 학대로 가족 해체의 고통과 억울함을 참으며 고난의 생을 살았다”며 “유복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이 71세로 많은 유족이 연로해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다”고 통탄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세월호 유족들, 김정숙 여사에 도마 선물…文에는 독서대

    세월호 유족들, 김정숙 여사에 도마 선물…文에는 독서대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세운 협동조합 ‘4·16 희망목공소’로부터 독서대를 선물 받았다고 공개했다. 김정숙 여사에게는 요리할 때 쓰이는 도마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24일 트위터에 이런 소식과 함께 독서대 사진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4·16 희망목공소는 세월호 희생 단원고 학생들의 엄마, 아빠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라면서 “이분들이 죽은 느티나무 가로수와 참죽나무로 근사한 독서대를 만들었는데, 제일 먼저 제게 보낸다며 보내주셨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는 튼튼한 특수도마를 만들어 보내주셨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부부에게 보내주신 것은 희망이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한편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와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이날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와 왜곡 보도를 야기했던 ‘받아쓰기 보도참사’의 언론 책임자”라며 현재 무소속 의원인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안광한 전 MBC 사장, 길환영 전 KBS 사장 등 3명을 발표했다. 4.16연대 등은 성명에서 3명에 대해 “박근혜 권력에 부역한 반헌법적·반민주적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길 전 KBS 사장은 최근 자유한국당 미디어기획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 참사는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했고, 거짓과 왜곡을 전파했다”면서 “이후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언론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교통사고’, ‘세금 도둑’ 프레임에 동조해 가짜 뉴스를 퍼트려 조사활동을 방해하고 국민여론을 분열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전 수석이 세월호 참사 직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뉴스 편집에서 빼달라’, ‘내용을 바꿔 달라’ 등의 압력을 행사했다고 지목했다. 또 안 전 사장은 사고 당일 오후 1시까지 ‘전원 구조 오보’를 내보내고, 피해자들의 보험료 산정을 뉴스로 다루거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 등을 왜곡해 보도했다며 명단에 올린 사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길 전 사장도 참사 당일 확인되지 않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전원 구조’ 오보의 단서를 제공하고, 피해자·유가족들에게 악의적인 보도를 내보냈다”는 이유로 목록에 포함했다. 4.16연대 관계자는 “언론사·언론인뿐만 아니라 구조·인양·조사방해 등 영역별 책임자 처벌 대상 명단을 계속해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도 유족이 재심 청구한다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도 유족이 재심 청구한다

    제주4·3 생존수형인에 이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심 청구에 나선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는 3일 제주지방법원에 행불인수형자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제출한다고 2일 밝혔다. 행불인수형인은 1948년 4·3사건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 갔지만 이후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1949년 7월까지 군사재판으로 옥살이를 한 4·3사건 수형인은 2530명이며 이중 상당수가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됐다. 이번 소송은 행불인수형자의 희생자의 93살 아내를 비롯해 자녀 8명, 손자 1명 등 모두 10명의 유족 대표가 먼저 진행한다. 재심의 특성상 청구인은 직접 재판에 참석해 피해사실을 증언해야 하지만 행불인수형자의 경우 재심 대상자들이 생존하지 않아 유족들이 이를 입증해야 한다. 김필문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은 “늦었지만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재심에 나서게 됐고 10명이 우선 재심을 청구하고 이후 진행 상황을 보며 소송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4·3 생존수형인 18명이 제기한 재심에서 1948년과 1949년에 행해진 제주도 계엄지구 군법회의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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